사랑과 키스의 관계 By. 낭만소년윤호 오색의 불빛들로 반짝이는 간판들이 즐비한, 유흥가 거리. 밤이되면 이곳은 술과 춤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술에 만취해,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사람들. 한쪽 벽에 쭈그리고 앉아, 거북한 속을 토해내는 사람들 등등. 이곳에선 밤이되면, 낮에는 볼 수 없는 진풍경이 그려진다. 그 수많은 술집 중, 한곳에서 걸음을 우뚝 멈추는 한 남자가 있었다. "...가게 이름 한번 죽이는군. 쿡." 간판을 빤히 쳐다보며, 우스워죽겠다는듯 피식 비웃음을 흘린다. 작은 얼굴을 받쳐주는 다갈색의 핸썸한 머리스타일. 헐렁거리는 베이지색의 바지에 하얀티 위에 걸쳐입은 청자켓을 차려입은 남자. 키도 훤칠한것이, 마치 한명의 모델을 보는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특이하게 지어놓은 가게이름에 이끌린듯,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채 안으로 들어서는 남자다. "어서오십쇼- 혼자오신겁니까?" "예. 혼자왔는데요." "방으로 모실까요? 서비스는 확실히 책임지겠습니다 !" "혼자왔는데 좀 그렇지 않나? 아, 그러죠 뭐." 허름한 간판과는 다르게, 내부는 깔끔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보라빛의 조명은, 가게를 로맨틱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한몫을 하는듯 보인다. 칵테일쇼를 즐기며, 바에서 술을 즐기는 사람들. 벌써 만취해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며 가게를 나가는 사람들. 갖춘 모양새도 제각각이다. 그러려니- 생각한 남자는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방안으로 들어선다. 중앙에는 노래방기계가 있었고, 벽쪽에는 긴 소파가 주욱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넓은 테이블에 차려진 과일안주와 비싸보이는 양주들. "만족스러우십니까? 더 필요한거 있으면 언제든지 호출하십쇼 !" "넓고 좋네요." "혹시, 혼자 술드시기 심심하시면은- 애를 한명 들일테니 부담갖지 마시고 호출하시구요." "...쿡." 웨이터의 간사한 목소리를 들은 남자의 입에선, 실소가 터져나왔다. 술집 웨이터들 특유의 발림하는듯한 목소리가 웃겼던 모양이다. 절도있게도 꾸벅 고개를 숙인 웨이터는, '좋은시간 되십쇼-' 라고 큰소리로 인사하며 방문을 닫고 나갔다. 그 넓은 방에 혼자 덩그러니 남게된 남자. 방 안을 휙휙 둘러보더니만 곧 소파 한가운데 풀썩 앉아버린다. "젠장. 과일안주는 비싼데... 아무튼, 저 새끼들. 비싼것만 팔아치우려고 한다니까." 궁시렁거리면서도, 어느새 사과하나를 입에 물고 우적거리고 있다. 얼음이 담긴 그릇에서 집게로 얼음 몇개를 집어, 작은 유리컵에 집어넣는 손놀림이 꽤나 자연스러웠다. 쌓여진 얼음사이로 부어지는 독해보이는 색의 양주. 몇번 컵을 흔들던 남자는, 그것을 물마시듯 벌컥벌컥 들이키기 시작했다. 그동안 목이 어지간히도 탔던 모양이다. "에이, 술맛 하나도 안나네. 젠장. 이럴줄 알았으면 친구녀석을 데리고 같이오는건데." 양주가 싹 비워진 컵을 테이블 위에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으며, 긴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편히 기대보는 그 남자. 이제 겨우 한잔 마셔놓고, 벌써 취기가 도는지 눈이 넋이나간듯 멍했다. 뜻없는 한숨을 내쉬는 순간, 방 안은 그가 풍겨낸 술냄새로 진동을 했고. 그렇게 한동안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던 남자가 조용히 다시 눈을 뜬다. "술 친구해줄 사람 한명만 보내줘요." 삐- 소리가 나는 호출버튼을 누르고, 짧게 한마디 한다. 목이 막혀오는듯 헛기침을 크게 한번 크흠 하던 그 남자. 또 한번 얼음이 담긴 컵에 양주를 들이붓는다. 한모금 마신후, 입에 묻은 술을 닦아애는 그 모습에서도 멋진 자태가 나오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니 잘생긴 얼굴에, 안 넘어갈 여자가 없어보인다. [똑똑] 과일안주를 집어먹던 남자는, 들려오는 조그만 노크소리에 문으로 시선을 옮긴다. 아무런 대답도 없이, 입안에 물고있던 과일을 씹어먹는 남자. 곧, 손잡이가 돌아가며 부드럽게 문이 열린다. 남자가 흥미있어하는 표정으로, 빤히 열리는 문을 쳐다본다. 방 안으로 들어온 여린 몸집의 한 남자. 아니, 남자라고 하기엔 너무 크고 맑은 눈을 가지고 있었고. 예쁜 선을 그리며 자리잡은 오똑한 코 하며, 붉은색으로 물든 작은 입술까지. "안녕하세요. 김재중이라고 합니다." "이름이쁘네. 일루와서, 나 술친구나 좀 해줘." "미리 말하겠는데, 난 술 안마셔요." "나 혼자 마실꺼야- 너 하나도 안줄꺼니까 걱정마." 검은 머리카락을 연신 만져대며, 쭈빗거리는 포즈로 남자에게 다가오는 재중. 그런 재중의 모습이 마음에 든 모양인지, 그를 바라보는 남자의 입가엔 희미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남자의 옆으로 다가가 앉으려던 재중은, 잠시 걸음을 멈칫한다. 당돌하면서도 도도한 목소리와는 다른, 수줍은 행동에 남자는 피식 웃어버리고. "술 한잔만, 따라주라." "전 분명히 말했어요. 수, 술은 싫다구." "알았으니까, 얼른 따르기나 해. 나 팔아프니까."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여전히 웃고있는 남자를 힐끔 쳐다본 재중은 가느다란 손을 들어, 차가운 양주병을 잡는다. 녹아버린 얼음을 더 보충하고, 시원한 컵에 술을 반쯤 따라주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손이, 굉장히 하얗고 가늘면서도 예뻤다. 단추를 푸른 그 사이로 보이는 가녀린 팔목까지. 보호본능을 자극시키기엔 충분했다. 이리저리 굴리는 큰 눈망울 하나까지도. "혼자마실땐, 진짜 맛 없었는데. 당신이 술 친구 해줘서, 이번 잔은 맛난다. 쿡." "술맛이 다 똑같지. 뭐가 달라요?" "몰라. 그냥 그래. 야. 더 맛있다면 맛있는거야- 토달지마." "순 억지네 아주..." 남자의 말도 안돼는 억지에, 재중은 입술을 비죽이며 궁시렁댄다. 술을 들이키려다, 힐끔 곁눈질로 재중을 쳐다보는 남자의 눈이 휘어진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던 방안. 재중은 살짝 추워오는지 얇은 남방 하나로 가려진 팔뚝을 슥슥 문지른다. 그리고, 그런 작은 행동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빤히 바라보는 남자. 하염없이 술을 들이키더니, 서서히 눈이 풀려가는것이 보인다. "어이. 김재중. 이리와봐-" "왜그래요. 조용히 술이나 마시지." "글쎄 가까이 좀 와보라고. 누가 너 잡아먹냐?" 남자가 서서히 꼬여가는 발음으로 재중에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해보인다. 재중은 그런 태도에 불만인듯, 살짝 인상을 쓰며 힐끔 쳐다보기만하고 관심없다는 표정으로 금방 고개를 홱 돌려버린다. 꽤나 도도하게 나오는 재중의 태도에 남자는 살짝 미소를 흘린다. 그러다, 긴 손을 뻗어 재중의 허리를 자신쪽으로 세게 끌어당겨버리고. "뭐, 뭐하는거예요 지금 !" "너 남자 맞냐? 허리 한번 되게 늘씬하다." "저리가요 ! 술친구 해주러왔지, 나 즐기라고 온거아니예요." "...화내니까 더 이쁘다. 쿡. 무진장 이뻐 너." 남자가 취기가 돈 목소리로 재중의 어깨에 작은 머리를 기대온다. 갑작스레 적극적이게 변한 그의 태도에 당황한 재중은 그를 밀어내려 안간힘을 쓴다. 기분이 상당히 나쁘다는 표정으로 남자를 힘껏 밀어내보지만. 재중의 허리를 휘어감은 팔에 단단히 힘을주곤 도무지 풀어줄 생각을 않는다. 아니, 밀어내려 할수록 더욱 힘이 들어간고 해야겠다. "니가 추워하길래. 안아주는거야. 떨지말라구." "내, 내가 떨긴 언제 떨었다고 그래요," "나도 니 옆에 있으니까, 춥다 김재중. 따뜻해질때까지만, 잠시만 이러고 있자." "이, 이봐요..." 재중의 허리를 감싼채,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남자는 곧 스르르 두 눈을 감았고. 재중은 그의 품안에 가두어진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쩔쩔맨다. 손을 풀어보려 했지만, 단단히 깍지가 껴진 상태라 마음대로 풀기도 힘들었다. 한참동안 몸을 꿈틀대던 재중은, 이내 포기한건지 몸을 축 늘어뜨리며 긴 한숨이다. 눈을 옆으로 돌려, 잠이든건지 어쩐건지 두 눈을 굳게 닫고있는 남자를 힐끔 쳐다보고. "징그럽게 왜 껴안고 난리야- 이씨. "이봐. 나 씹을려면 자고 있을때 씹어." "자, 자는거 아니었어요? 난 자는줄 알고..." "넌 남 앞에서 씹는게 취미냐? 흥. 너무하네 진짜." "모, 몰랐다구요- 자는줄 알았다니까요 !" 남자기 실망한듯한 팍 식은 표정으로 재중에게서 떨어진다. 졸지에 이상한 사람으로 몰린 재중은 손을 휘휘 저어가며 둘러대기에 바쁘다. 혼자서 뭐라고 꿍얼대던 윤호는 곧 컵에 한모금 가량 남은 술을 마셨고. 얼굴이 빨개진 재중은 괜시리 뻘쭘해져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러자,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검은 머리가 그의 하얀 얼굴을 다 가려버린다. "삐졌냐, 김재중? 내가 뭐라고 그래서 맘 상한거야?" "나 진짜 일부러 그런거 아니란 말이예요- 그쪽 씹은거 아닌데. 왜 뭐라고 그래요 나한테..." "야, 왜 우, 울려고 그래- 장난이야 장난 !" "진짜 그런거 아니란 말이예요 나- 아니라구." "하, 참나. 야 김재중. 장난이라니까?" 울먹거림으로 변해가는 재중의 조그마한 목소리를 들은 남자는, 놀래서 눈을 커다랗게 뜨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재중과 눈을 마주치려 요리조리 고개를 돌려가며 애를 쓰고있었다. 어깨를 흔들거리며 장난이라고 뒤늦게 변명해보지만, 이미 재중은 많이 상처를 입은 모양이다. 숙인 고개를 들 생각을 안하는 재중의 답답한 태도에, 남자는 짧은 한숨을 내쉬고. "잘못했어." "당신 진짜 짜증나. 아니라는데 왜 안 믿는데요? 씨이...아니라는데 !" "아, 그래- 미안해 ! 미안하다고." 가만히 이대로 놔뒀다간, 울것만 같은 재중의 목소리에 남자는 결국 먼저 사과를 해버리고 만다. 조그만 말에도 잘 상처받고, 기뻐하는 성격의 재중으로썬, 당연히 삐칠만도한 일이다. 그제서야 마음이 조금 풀렸는지, 푸욱 숙이고 있던 고개를 조심히 들어 남자와 마주하는 재중. 정말 울려고 그랬던건지, 눈가에 살짝 눈물같이 희미한것이 고여있었다. "바보. 그런거 갖다가 울려고 그러냐." "눈물이 나오겠다는데, 막을 필요는 없잖아요. 내 눈이 울고싶다는데." "니 눈이 울고싶으면 단 줄 알아? 참으라고 좀 해봐." "이젠 별거 갖다가 다 하지말라네. 참나." 재중이 기가막히다는듯 코웃음을 치며, 피식 웃어버린다. 팔짱을 낀채, 조금은 거만한 자세로 앉아 재중을 바라보는 남자의 입가도 미소로 가득했고. 일어나려는 재중의 팔목을 세게 끌어당겨, 다시 소파로 앉히는 남자. 아까처럼 재중을 인형을 끌어안듯이 허리에 팔을 감싸온다. 움찔거리며 몸을 비트는 재중. 한쪽 눈썹을 찡그린채로 남자를 쳐다본다. 그 귀여운 표정에, 남자는 피식 웃어버리고. "니가 울려고 하니까, 내 가슴이 아팠어." "...뭐예요 지금? 쿡. 나랑 말장난 하자는건가?" "나 그렇게 한가한 놈은 아닌데." "그 느끼한 멘트는 또 어디서 배워서 써먹는거예요?" "그딴건 잘 모르겠는데. 일단은 내 가슴이 아팠던게 중요해. 니 그 이쁜 눈한테 전해, 김재중. 울려고 하지 말라고." 말을 끝마친 남자가, 자신이 생각해도 많이 진지했던듯 쑥쓰러운 웃음을 내뱉는다. 그 한마디에 재중의 입가엔 기분좋은 미소가 한가득 피어오른다. 그러더니, 그 가는 팔목을 남자의 목에 둘러오고. 갑작스런 재중의 행동에 흠짓 놀라서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그 남자. 반짝이며 빛나는 그 맑은 눈동자에, 남자는 빨려들어갈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정말 지극히도 매혹적이다. 옅게 내뱉는 고른 숨소리 하나에서, 유혹적인 눈빛까지. "왜 그렇게 날 쳐다보는데? 쿡. 민망스럽게." "그럼, 당신의 그 속좁은 가슴한텐 이렇게 전해요. 김재중이 흘리는 그깟 눈물때문에, 아파하지 말라고." "니가 안울면, 내 가슴도 안아플꺼라는데?" "...풋. 내가 졌어요 졌어." 씨익 미소짓는 남자의 등을 짝 내리치며, 먼저 웃어버리는 재중. 남자의 목에 두르고 있던 팔을 풀어내며 팔짱을 끼려는 재중의 손목을 끌어당겨, 자신의 얼굴과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하도록 하는 남자. 재중이 놀란듯 커진 눈을 하고선 깜빡거리며 남자를 쳐다본다. 서로의 작은 숨소리가 느껴질만큼, 아주 가깝고도 긴밀한 거리의 두사람. "우리, 키스하자 김재중." "내 입술은 비싸서, 아무한테나 안내줘요." "니가 먼저 그렇게 쳐다보지만 않았어도, 나 참을 수 있었다고. 젠장. 니가 자초한 일이다." "조금만 더 참지 그랬어요- 풋." "너같으면 참겠냐? 이렇게 이쁜데." 남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몇마디 중얼이더니, 재중의 머리를 한손으로 끌어당겨, 강하게 입을 맞춰온다. 장난이라도 한판 하자는건지, 입을 꾹 다문채 열어줄 생각을 않는 재중이다. 이미 애간장이 타오른 남자는, 재중의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어 벌어진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다. 재중은 이 상황을 즐기기라도 하듯, 그 와중에도 싱긋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서로를 밀고 당기던 아슬아슬한 키스가 끝이나고. 둘은 꽤나 아쉬운듯한 표정으로 거리를 두고 떨어진다. "이봐요.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뭔데. 몸무게 빼고 다 물어봐도 돼." 시시한 남자의 농담에, 재중은 피식 웃음을 흘린다. 남자를 빤히 쳐다보던 재중이, 아까처럼 목에 팔을 휘감아오면서 들릴듯말듯한 목소리로 남자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 나 좋아해요?" 딴에는 꽤나 진지하게 물어본건지, 재중의 표정은 담담했다. 어이가없어서 터트리는 실소인지, 아니면 저말이 정말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남자는 픽 소리를 내고 웃으며, 한손으로 재중의 허리를 끌어당긴다. 키스는 잘하면서 스퀸십은 영 기분나쁜듯, 재중의 하얀 이마가 살짝 찌푸려진다.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운듯, 재중의 시선이 아래로 향하며 눈을 내리깐다. 재중은 과연 알고있을까. 이런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그에겐 미치도록 자극적이라는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넌 뭐라고 할껀데?" "뭐, 그냥 그렇구나- 하고 말겠죠." "김재중. 너도 나 좋아하는거 아니야?" "풋. 또 무슨 말도 안돼는 소리예요. 재미없다 정말-" "그 비싼 입술, 나한테 내줬잖아." 남자의 한마디에, 시선을 아래로 향하던 재중은 눈을 들어 마주본다. 승자의 뿌듯한 미소와도 같은, 환한 미소를 짓고있는 그 남자. 재중은 꽤나 당황한듯, 시선처리를 하지못하고 이러저리 눈동자를 굴리기 시작한다. 그때까지도 남자의 목에 두르고 있던 팔을 풀어내고, 괜한 헛기침과 손부채질을 하면서, 아주 부산스럽게 소파에 앉는다. 그럴줄 알았다는듯, 여유로운 표정의 남자다. "말해봐- 니 입술은 비싸서 아무한테나 안준다매." "그, 그거는- 당신이 갑자기 들이대니까..." "그랬으면, 발로 내 복부를 차던지 입술을 깨물어버리던지, 가만히 있진 않았을꺼 아냐. 니 성격에." "뭐, 뭐라구요? 그럼 지금 내 성격이 드럽다는거예요 !?" "드럽다기보다. 좀- 앙칼지다고나 할까? 쿡." 남자가 재중의 빨개진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느끼한 한마디를 날린다. 신경질적으로 남자의 손을 밀어내는 재중은, 연신 남자를 째리고 있었다. 과일을 하나 집어먹더니만, 이내 소파에서 일어나는 남자다. 고개를 들어, 의아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는 재중. 벗어두었던 청자켓을 걸치며 한마디 하는 남자다. "나 좋아해, 안좋아해? 지금 얼른 말해. 가버리기 전에." "그, 그런게 어딨어요- 너무 치사한거 아니야?" "난 그딴거 몰라. 그러니까 얼른 말 한마디만해- 그거면 돼." "이씨..." 남자가 청자켓을 바로 입고, 테이블위에 수표 몇장을 올려둔다. 그때까지도, 손톱을 물어뜯으며 고민중에 있는 재중이다. 뭐가 이렇게 불안한걸까.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갈 채비를 하는 남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문을 열고 나가려던 남자는, 고개만 뒤로돌려 재중을 한번 쳐다본다. "대답안하는건, 안좋아하는걸로 친다." "아, 그게요. 그러니까..." "술친구 해줘서 고마웠다, 김재중." 어느새 낮아져, 차갑게 변해버린 남자의 목소리. 재중의 애매한 태도에, 조금 화가 난 건지 표정이 많이 굳어있었다. 조그만 목소리로 한마디 남긴 남자는, 문을 신경질적으로 쾅 소리가 나게 닫아버리며 방을 나갔다. 적막만이 흐르는 방안에, 혼자 남아있는 재중은 다급한 표정으로 문만 빤히 쳐다본다. 아직, 마음에게서 대답을 듣지 못한 모양이다. "저 인간, 도대체 왜 날 가만히 안두는거야? 이씨..." 차갑게 식은 표정을 하고서, 방을 나온 남자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차라리, 확실하게 말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저렇게 답답한 태도로 대하니, 괜한 애간장만 끓어오를 뿐이다. 아랫입술을 꼭 깨물고, 아까 재중과 나누었던 키스를 머릿속에서 지우지 않으며 남자는 그렇게 출구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막 카운터를 돌아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이봐요 !" 뒤에서 들려오는 재중의 목소리에, 남자는 조용히 씨익 미소를 짓는다. 그자리에서 걸음을 우뚝 멈춘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있는 남자. 급하게 달려오는 재중의 발소리가 멈추고. 그와동시에 뒤에서 남자를 와락 끌어안는 재중이다. 자신의 허리를 감싸오는 재중의 차가운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는 그 남자. 재중은 남자의 등에 얼굴을 묻은채, 말을 꺼낸다. "그래요. 나 당신 좋아해요. 좋아한다구요 ! 그러니까, 가지마요." "그러게, 왜 그렇게 튕겨대서 나 아프게 하냐?" "튕긴게 아니라- 단지 대답을 늦게 찾았을 뿐이예요." "좀 빨리 찾으면 안된데?" 남자가 뾰루퉁한 말투로 투정을 부리듯 꽁알대자, 재중은 피식 웃음을 터트린다. 남자는 허리를 감싸안고 있던 재중의 팔을 풀어 자신의 옆쪽으로 끌고온다. 무방비 상태던 재중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남자와 살짝 부딪히게 되고. 남자는 그저, 씨익 웃으며 재중의 찬 손을 맞잡아 온다. "김재중. 근데 너, 언제까지 나보고 당신당신 거릴래?" "이, 이름을 알아야 뭐라고 부르던 말던 하죠." "앞으론, 윤호라고 불러. 정윤호." "당신 이름이예요? 되게 멋있네. 얼굴하고 딴판이게." 놀리듯 말하며 킥킥 웃어대는 재중의 머리에, 콩 하고 알밤을 먹이는 윤호다. 그래도 금방 마주보며 씨익 웃는게, 천상 연인이다. 입고있던 청자켓을 벗어, 달랑 남방 하나만 걸친 재중에게 둘러주고. 됐다는듯 인상을 찡그리며 자켓을 벗으려는 재중의 어깨를 단단히 누르며 저지시킨다. 매너좋은 윤호의 모습에, 재중은 싱긋 웃으며 윤호를 몰래 한번 쳐다본다. "저, 손님. 그 아일 데리고 어딜가십니까?" "집에 가는데요?" "아, 아니 저- 그 아이는 저희 가게와 계약을 맺어서 나갈시엔 계약금을 물어주고 나가야 하거든요. 그냥 데리고 가시는건..." "얘가 무슨 물건입니까. 돈으로 사고팔고 하게." 윤호가 어이가 없는듯, 기가찬 웃음을 터트리며 인상을 찡그린채로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낸다. 그리곤, 수표 몇장을 카운터지기에게 던지듯 줘버리곤 재중의 손을 꽉 잡는다. 액수를 확인하는 남자의 표정이 가히 놀랠 노자다. 한시라도 재중을 이곳에 두고싶지 않았던건지, 그대로 끌고 나와버리는 윤호다. 차가운 표정을 하고있는 윤호를 보며, 재중은 작게 웃었다. ........ 재중을 데리고, 그 더러운 술집을 나온 윤호는 밤이 깊어지자, 사람들로 더욱 붐비는 그 유흥가 거리를 빠져나왔다. 어느새, 그 기분나쁜 거리를 벗어나 시내를 걷고있는 두사람. 가는동안, 재중은 계속 윤호의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무슨 이유에선지, 아까부터 표정이 어두운 이유 때문이었다. "나, 나한테 뭐 화난거 있어요?" "아니. 그런거 없어." "그럼, 왜 한마디도 안해요- 아까처럼 웃어봐요 좀. 나 무서워 죽겠단 말이예요." "기분이 더러워서 그래." 윤호의 그말에, 재중은 눈을 크게뜨며 힐끔 쳐다본다. 어디서 난건지, 그새 입안에서 사탕을 우물거리고 있는 윤호다. 자기만 놔두고 혼자먹는것이 불만인지, 재중은 입술을 비죽이고. 한쪽이 흘러내린 청자켓을 다시 잘 올려주며 윤호가 말을 이었다. "꼭 내가, 널 돈 주고 산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 기분이 더러워서 그래." "치. 뭐 그런거 갖다가 그렇게 뚱해 있어요? 난 윤호씨같이 좋은 주인님한테 가는거라, 기분 되게 좋은데..." "...쿡. 너 그새 애교 많이 늘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다 그렇게 되는거래요. 힛." 한껏 애교섞인 목소리로 말해놓고, 스스로가 민망한듯 머리를 긁적인다. 그런 재중을 힐끔 쳐다본 윤호는,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눈길을 준다. 하얀피부에서부터, 새까만 눈동자, 붉은 입술. 가만히 보고있노라면, 마치 인형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녀석이다. 하는 행동마다, 사랑스럽기 그지없어서 꽉 끌어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녀석. "나 따라온거, 후회안해?" "당신 따라온거에 대해서라면. 그런거 안키워요 나." "쿡. 갈수록 이뻐지냐 어떻게?" "나, 윤호씨 많이 좋아요. 진심이예요." 재중이 꽤 진지해진 목소리로 들릴락말락하게 중얼인다. 그 예쁜 목소리를 놓칠리 없는 윤호는, 입을 귀에 걸며 재중의 머리를 살짝 끌어당긴다. 갑작스런 태도에 놀란듯 눈이 커진 재중이지만, 이내 잠자코 있어준다. 아니, 오히려 이런 윤호의 돌발행동을 좋아하는 눈치다. "진심이라는말. 함부로 쓰는말 아니라는거 알지?" "머리는 나쁘지만, 그 정도는 아니까 걱정마요." "윤호씨. 나 부탁하나만 해도 돼요?" "부탁?" 갑자기 걸음을 멈춰버리는 재중때문에, 윤호도 그자리에 멈춰선다. 두 눈을 반짝이며, 간절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는 재중. 그 부탁이라는게 뭔지, 상당히 궁금한듯 눈만 깜빡이며 빤히 쳐다보는 윤호. 잠시 짧은 제채기를 하던 재중이, 입을 열었다. "나랑, 밤새서 데이트 한번 해줘요." "야, 김재중. 너 진짜 바보아니야?" "내, 내가 또 뭘 어쨌길래 바보예요 !" "그게 부탁이라고 할말이냐? 바보. 당연한거지." 윤호의 말에, 인상을 쓰고있던 재중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진다. 마냥 즐거운듯, 이젠 나서서 팔짱까지 껴오는 재중이다. 제법 대담해진 태도에 놀랐던 윤호지만, 구지 거부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두사람은, 야심한 밤에 데이트를 즐기기위해 좀 더 넓은 시내로 나갔다. 역시, 거리는 밤이되어야 더 멋있는 법이다. 즐길거리도 훨씬 많았고, 낮에는 볼 수 없었던 갖가지 이벤트가 다양하게 열렸다. "나, 밤에 꼭 한번 영화보러 와보고 싶었어요." "그럼, 우리 영화보러 갈까?" "이렇게 힌트를 주면, 그냥 말없이 끌고가는거예요 아저씨야-" "알았어- 거 참 되게 뭐라 그러네." 그렇게 두사람은 영화를 보러 근처에 있는 큰 영화관으로 향했고. 영화관은 이들처럼 심야영화를 즐기러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대세가 코믹영화로 몰리고 있는 때인지라, 코믹영화를 선택했고. 재중이 한쪽 소파에서 앉아 기다리자, 조금후 팝콘을 사들고 윤호가 다가왔다. "팝콘이 왜 하나예요? 내꺼는-" "돈없어 임마. 돈을 아끼는 차원에서 그런거니까 그냥 먹어." "치. 순 뻥쟁이야. 아까 지갑보니까 돈이 수두룩 하던데요 뭐." "그 돈이 내꺼냐? 내꺼 아니야." "그럼 누구껀데요?" "지갑꺼야." 윤호가 조용히 흘리듯 중얼거리더니만, 먼저 극장안으로 들어가버린다. 혼자 남은 재중은, 어이가 없다는듯 황당한 표정을 짓더니만 곧 귀여운 그의 개그 아닌 개그에, 피식 웃고만다. 사람이 저렇게 썰렁해서야. 혀를 끌끌차며 윤호에게로 뛰어가 팔짱을 끼는 재중이다. "윤호씨. 영화 되게 재밌죠? 아- 난 너무 웃었더니 배아프다." "넌 배가 아프겠지. 그치만 난 등이 따가워서 죽겠다 !" "당신은 등으로 웃어요? 왜 등이 아프다고 투정이예요." "니가 하도 때려대서 그래 ! 손자국 빨갛게 다 났겠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오는 두사람의 표정은 가히 대조적이었다. 재중은 오랜만에 원없이 웃었다며 밝게 웃고있었고. 윤호는 영화를 보는 내내 등짝을 쉬지않고 내리치며 웃어대는 재중의 극성맞은 행동때문에, 쓰라려오는 등을 만지며 괴로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콜라를 빨대로 쪽쪽 빨아마시며, 기분좋은듯 걸어가는 재중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는 윤호. "김재중. 너 웃는거 보느라, 나 영화 하나도 못본거 알아? 쿡." 오히려, 웃고있는 윤호는 영화를 재밌게 본 재중보다 더 행복한 표정이었다. 그곳에서 윤호는, 환하게 웃는 재중의 예쁜 모습에 만취했었다. 어느새 이렇게 깊이 빠져버린걸 보면, 정말 좋아하는게 맞긴 맞는 모양이다. 아니, 자칫하면 좋아하는 정도를 넘어설것만 같은 예감. 그 기분좋은 예감을 만끽하며, 멀리서 얼른 오라고 손짓하는 재중에게 향하는 윤호다. "윤호씨. 우리 뭣 좀 먹으면 안돼요? 너무 웃어서 배가 다 고프다." "뭐 먹고 싶은데. 비싼거 빼고 말해봐." "치. 끝까지 돈 없는척 하는거봐- 음- 그럼, 간단하게 떡볶이나 먹어요 ! 그건 괜찮죠?" "쿡. 그거 좋네- 얼른가자." 두사람은, 출출해오는 배를 달래기 위해 포장마차로 들어섰다. 맛있게 잘 요리된 떡볶이하며, 갖가지 메뉴들이 눈을 먼저 즐겁게 해주었고. 다른것도 먹고싶다며, 왕창 애교를 부렸던 재중이지만, 끝끝내 윤호는 떨려오는 손을 억누르며 완강히 거부했고. 재중은 삐져서 툴툴거리면서도, 한접시를 죄다 먹어치우고 나왔다. "삐졌다면서 먹을건 다 먹네." "배는 채워야죠- 삐진거랑 배고픈거랑은 별개니까." "알았어. 내가 사과의 뜻으로...기다려봐." "뭐하는거예요?" 바지주머니를 뒤적거리던 윤호는, 잠시후 막대사탕 하나를 꺼냈다. 친절하게도 껍질까지 까서, 재중의 댓발 나온 입에 넣어주기까지. 입안으로 상큼한 레몬향이 가득 퍼진다. 그 세삼한 모습에, 금새 화도 눈녹듯 사라져버리고 어느새 웃고잇는 재중이다. 별다르게 할것도 없어서, 그냥 시내를 걷기로 한 두사람. 손에 땀이 찰만도 한데, 꼭 잡은 두 손을 도무지 놓을 생각을 않는다. "어? 윤호씨, 우리 저기서 구경하고 가요 !" "뭐. 야- 저긴, 그냥 선물가게잖아." "그러지말구 좀 보고가요- 네? 이쁜거 엄청 많단 말이예요. 빨랑와요, 얼른." "뭐 그런걸 다 구경하쟤. 아, 귀찮은데..." 시내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구경하던 재중의 눈에, 작은 선물가게 하나가 들어온다. 예쁜 장식품들과 인형, 갖가지 선물용품들로 가득 진열된 가게를 보고는 연신 싱글벙글 웃어대며 좋아하는 재중이다. 오목조목하고 예쁘게 생긴 것들을 좋아하는 그 성미에, 가만히 있을리가 없었다. 질색하는 표정을 짓고있는 윤호를 질질 끌고, 결국 안으로 들어서게 되고. "어서오세요-" 주인의 인사소리를 듣는둥마는둥, 재중은 구경에 들어갔고. 무료한 표정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으며 입구에 그저 서있기만 하는 윤호다. 이렇게 구경하는것을 딱 질색하는 윤호로썬, 지루하기 짝이 없을게 당연하다. 어슬렁어슬렁한 걸음으로, 가끔가다 힐끔 쳐다보는것이 전부. 재중은 신기한 눈을 하고 이것저것 만져보는데 여념이 없다. "애처럼 뭘 그렇게 좋아하냐? 뭐가 그렇게 좋다고." "이쁘잖아요- 인형도 그렇구, 장식품도 그렇구." "이쁘긴 뭐가 이뻐. 하나도 안이쁜데 뭘." 무심코 한마디 내뱉고는, 깜짝 놀라며 주인의 눈치를 보는 윤호. 곧 입을 꾹 다물고 얼른 잘 안보이는 진열대로 사라진다. 귀엽게 생긴 인형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재중이다. 열면 음악소리가 나는 오르골도, 죄다 한번씩 열었다 닫았다. 혼자 구경하는데 아주 푹 빠져있었다. "어? 우와- 이거 되게 이쁘다." 순간, 인형을 구경하던 재중의 시선이 딱 한곳에서 멈춘다. 푹신푹신하고 부드러운 털을 가진 인형들 사이에서, 투명한 유리 사람처럼 조각된 유리인형이 자리하고 있었다. 얼굴 표정은 없었지만, 사람처럼 긴 갈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고. 옷도 수수한 하늘색의 드레스 차림이었다. 그 유리인형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계속 바라보는 재중. "김재중- 어딨어? 이제 그만 가자." "윤호씨. 나 이거 하나만, 사주면 안돼요?" "뭐야 그게. 뭐 이런걸 다 살려고 그러냐? 애같다 정말." "하나만 사줘요- 네? 진짜 가지고 싶단 말이예요." 어린애처럼, 인형을 손에 꼭 쥐고, 투정을 부리는 재중을 보며 한숨을 쉬는 윤호. 윤호가 아무말이 없자, 다급해진 재중은 팔을 붙잡고 흔들어본다. 못말리겠다는듯 쳐다보던 윤호는, 곧 진열되어 있는 또 하나의 유리인형을 집어든다. 그 인형은, 깔끔하게 정장을 입혀놓은 터라 얼굴과 손만 유리를 드러냈다. 이리저리 살펴보던 윤호는, 곧 재중의 손에 들려진 인형을 가지고 카운터로 향한다. "와, 그럼 사주는거예요? 고마워요 윤호씨 ! 히잇." "안사주면 울까봐 사주는거야, 바보야." "그래두 고마워요. 와, 너무 이쁘다-" 두개의 유리인형을 나란히 붙여놓곤, 좋다고 웃고있는 재중이다. 마냥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모습에,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린 윤호. 이런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재중의 매력인것 같다. 선물가게를 나온 재중이, 갑자기 윤호의 손에 들려져 있는 인형을 자신이 가져가고 예쁜 드레스를 입은 유리인형을 윤호에게 건넨다. 윤호는 뭐하는거냐는듯,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이제. 이게 윤호씨구. 그게 나예요." "무슨 재미없는 소리야. 이게 어떻게 너랑 나야?" "...윤호씨." 갑자기, 낮아져버린 재중의 목소리에 흠짓 놀라는 윤호. 눈을 마주치지못하고 있다가, 결국 고개를 숙이고 만다. 손장난을 하고있는 손가락이 살짝 떨리고 있는건, 단지 윤호만의 착각일까? 갑작스레 변해버린 재중의 태도에, 뭔가 좋지않은 감을 느낀다. "오늘 나랑 데이트 해줘서 고마웠어요." "고마웠어요? 왜 그렇게 끝내는 식으로 얘기하냐?" "...나요. 윤호씨랑 잘 지낼 자신 없어요." "김재중. 왜 갑자기 그런말 하는건데, 지금." 지금, 윤호의 표정이 어떻다는걸 뻔히 잘 알기에 고개를 들어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재중이다. 무슨 말을 하고싶은건지, 이미 다 파악을 끝낸 윤호는 표정이 식어버렸고. 잠시 말을 끊기고 나서, 재중의 작은 목소리는 또다시 들려왔다. 유리인형을 꼭 쥔 윤호의 손은 부들부들 떨려왔다. 밀려오는 화를 억누르려는듯이. "나같은건, 당신하고 어울리지 않으니까." "뭐, 뭐라고?" "당신같이 귀하게 자란 사람하고 난, 너무 많이 달라요." "...야." 떨려오는 목소리로, 화가난듯 재중을 부르는 윤호. 그만 하라고 재중의 가느다란 팔목을 꼭 붙잡아보지만, 뿌리쳐버리는 재중이다. 지금 재중이 하는 말들이, 귓속으로 하나도 잘리지 않고 들어온다는것이 원망스럽다. 좋아한다고 안겨오면서 고백했던게, 불과 몇시간 전이었다. 키스 왜 받아줬냐고 물었을때, 주체못하고 얼굴 붉히며 부끄러워 하던게, 불과 몇시간 전 일인데. 지금은 어째서 이렇게 정이 뚝뚝 떨어지는 말들을 하고 있는건지. "내가 잠시, 당신한테 홀렸던것 같네요. 주제도 모르고... 나같이 질 안좋은애, 만나지 마요. 윤호씨." "......." "그래도, 좋아했었으니까 추억은 남기고 싶어서 이 유리인형 사달라고 한거예요. 버리고 싶으면, 버려도 돼요." "........" "나같은거 그냥 잊고, 편하게..." "야 !!!" 재중의 울먹임을 잘라버리며, 그자리에서 큰 고함을 질러버리는 윤호. 고개를 숙인채 어깨만 살짝 들썩이던 재중은, 마침내 고개를 들어올려 윤호와 눈을 마주한다. 그의 맑고 큰 예쁜 두눈에선, 이미 눈물이 차올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 재중을 바라보는 윤호의 두 눈은, 얼음보다도 시리고 차갑게 냉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주먹을 꼭 쥔채, 입술을 꽉 깨물어봐도 끓어오르는 이 무언가는 멈추지 않았다. 무언가 묵직한것이, 뒷통수를 내려친것만 같은 기분. "너랑 내가, 뭐가 그렇게 다른데. 너도 인간이고, 나도 인간이야. 그거면 된거 아니야?" "윤호씨는, 나랑은 다르게 멋있잖아요." "김재중 넌 이뻐." "당신은, 돈도 많구 능력도 있잖아요." "그거 별로 안중요해. 없어도 잘 살아." "나처럼, 더럽진 않잖아요 당신은. 흐윽." "...난 니 그 더러움까지 사랑해." 이 한마디를 함과 동시에, 그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재중의 소리없는 눈물은 끝내 흐느낌으로 변해버렸다. 그저 아무말없이, 윤호를 바라보며 울기만 했다. 울면 안되는데. 그럼 정윤호 저사람 가슴아파 할텐데. 그 바보같은 꼴 보기 싫어서라도 울지 않아야 하는데. 이 추책맞은 눈물은 그칠줄을 모른다. 내가 당신 그 좁은 가슴한테 전하랬잖아요. 김재중이 흘리는 그깟 눈물때문에, 아파하지 말라구. 말하랬잖아요. "진심이라는 말, 함부로 쓰는거 아니랬지." "...흐윽." "한번 좋아한다고 했으면, 죽어도 좋아해주고 죽어서도 좋아해줘야지. 그깟 말 한마디 던져놓고 떠나기냐, 너 !?" "........" "이깟 인형이나 보면서 서로 추억하자고? 하, 내가 너한테 그딴 존재밖에 안됬었냐? 너라면 그게 쉬울것 같냐고 멍충아 !!!" 윤호가 눈물을 흘리며 악에 받쳐 소리를 질러댄다. 흐느낌을 애써 참으며, 윤호에게서 고개를 돌려버린 재중의 어깨가 들썩인다. 이제 서서히, 사랑이라고 느껴가고 있었는데. 아직 피어보지도 못한 꽆잎을, 무참히도 짓밟으려 하고 있다. 처음 느꼈던 그 설레임, 그 행복을 한순간의 꿈으로 여기라니 도저히 못할짓이다 그건. 눈물을 떨궈내며, 긴 한숨을 내쉬던 윤호가 재중의 머리를 끌어당겨 품에 안는다. "씨발, 울지 좀 마. 나 가슴아프단 말이야." "흐윽. 난 이렇게 못난단 말이예요- 당신한테 해줄거라곤 아무것도 없잖아요 ! 바보같이..." "절대 울지말고, 나만 사랑해주면 돼. 그거말고 나, 너한테 바라는거 없어." "......." 우는 아이를 달래듯, 편안하면서도 따뜻한 윤호의 목소리에, 재중은 설움이 밀려와 더 굵은 눈물들을 쏟아낸다. 그의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 손에 꼭 쥐어진 유리인형의 얼굴에 떨어져 그대로 타고 흘러내린다. 김재중이 우니까, 정윤호 인형도 함께 우는건가보다. 아파오는 가슴을 느끼면서. "니가 주는 사랑 하나면 돼 재중아." "미안해요. 윤호씨. 괜히 아프게 해서." "사랑한다, 김재중." 재중을 품에서 약간 떨어뜨리곤,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며 웃어주는 윤호. 엄지손가락으로, 재중의 눈가에 매달린 눈물을 닦아준다. 수줍어서인지, 추워서인지 빨개진 얼굴을 하고선, 갑자기 그때의 당돌했던 포즈와 똑같이 윤호의 목에 팔을 둘러온다. 예쁘게 눈을 휘며 웃더니만, 곧 두 눈을 지긋이 감고는 차가운 윤호의 입술에다가 살짝 떨려오는 자신의 입을 맞춘다. "사랑해요..." 사랑을 한다는것은, 어쩌면 많은 용기와 자신감이 필요하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당돌한 키스를 선사할 수 있는, 그 용기만큼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 자신들에게 닥쳐올 많은 아픔들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까지도. 그 위험한 사랑의 굴레속에 뛰어든 이 두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사랑을 챙취한 사람들이 아닐까?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