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좋아하는 H.O.T. 소설인데 오랜만에 다시 보면서 윤재로 이름만 바꿨습니다 -.- 인물묘사한 부분이 매치가 안 돼도 놀라지마삼. (재중씨 피부가 모카빛으로 나온다거나 하는..) [게하/자작] 미 열 (美 熱) 1편 조회 : 6,479 이름 : 아게하 작성일 : 2001/10/20 오후 3:55:37 URL : 없음 차라리..널 본것이 꿈였다면... ..................... .............. 난 이토록 널 욕심내지... 않았을 것이다... - 미 열 (美 熱) 1편 - 구름한점없는 밝은하늘... 보기에도 눈이 멀어버릴것같은 그 하늘아래의 땅은... 그의...소유이다. 마치 시골의 시끌시끌한 장터를 떠올리게하는 이곳은 모든 마족들이 살고있는 중에서도 제일 중심지인곳에 한복판였다. 여러가지 색깔의 천막들이 주를 이루는 장소. 부족중에서도 계열이 으뜸인 '마족'들만이 향락을 즐기고 떠들수 있는곳. 그중..제일 빛나는 황금색의 휘장이 걷히며 그 사이로 검정색의 고급스런 비단 신발이 모습을 드러낸다. "뭐가 이렇게 시끄러운거야.." 소란스런 밖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핏빛처럼 붉은 머리를지닌 그가 약간은 성낸 목소리를 내며 주위를 둘러봤다. "족장님.." 그의 등장에 일순 시끄럽던 사람들이 모두 소리난쪽을 돌아보고는 넙죽 고개를 숙였다. "윤호아..무슨일...?" 붉은 머리의 그를 '윤호'이라 부르며 그의 뒤를 살며시 따라나온 사람. 황금색의 머리가 아름다운 사람였다. "아..준수아..별거 아니야..들어가 있어." 자신의 절친한 사촌인 준수를 다시 황금색 휘장안으로 몰아내며, 윤호가 주위를 둘러봤다. "뭐가..이렇게 시끄럽냐고..내가 방금 물었잖아?" 두번 말하는걸 싫어하는 윤호가 아까보다는 조금 사나운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죄송합니다..족장님. '마녀' 한마리가 잠자리를 거부하는 것으로 약간의 소란이 빚어졌습니다." '마녀'라는 단어에 윤호의 눈썹한끝이 올라갔다. "데려와봐." 윤호가 옆에있는 자신을위한 의자에 터억 걸터앉고는 다리를 여유있는 모습으로 꼬았다. 윤호의 명령이 떨어지자 곁에있는 다른 병사들이, 한쪽 구석에 앉아있는 사람을 마치 짐승끌듯이 질질 끌고와 윤호앞으로 내던졌다. 윤호의 눈동자가 자신의 앞에 쓰러진 그를보자 조심스레 빛이난다. 아름다운 마녀였다. 입가에 가볍게 띈 미소와는 달리 윤호의 차가운 목소리가, 자신의 앞에 쭈그려 앉아있는 푸른색깔의 머리를 가진 마녀를보며 말을건낸다. "감히..'마녀'주제에 '마족'이 청하는 잠자리를 거부했다...?" 윤호의 말에 힘없이 쓰러져있던 그가 고개를 번쩍 치켜든다. 그의 눈동자또한 머리색과 같은 푸른색였다. 그의 푸른색 눈동자가 윤호를 도도하게 노려본다. "난 마족들을 경멸해. 너희때문에 우린 씨가 마르니까." 날이 잔뜩 서있는 날카로운 목소리. "하핫~" 그의 말에 상쾌하게 콧웃음을 친 윤호가 곧 웃음을 멈추고 그를 내려다봤다. 냉.정.하.게. "그럼..앞으로도 마족들과의 잠자리를 거부하겠다는..이말씀?" "......." 윤호의 눈이 이내 아무말도없는 그를보며 어두운 회색으로 가라앉았다. "너희들은 우리 '사냥감'에 불과해. 우리가 너희들에게 뭘 원하든 너흰 선택권이 없다는 말씀이지. 그걸 거부한다면 죽음밖에는 없어." "......." 윤호의 입에서 매섭게도 '죽음'이란 단어가 오갔지만, 윤호를 노려보는 그의 눈동자는 일말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윤호의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지켜보고 있을뿐, 어느누구도 그가 행하려는일에 감히 토를 달거나 막으려하지 않았다. 당연히..윤호의 말이 모두맞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음으로... "내 칼을 가져와." 윤호가 낮게 명령하자 옆에있던 병사가 붉은 비단에 쌓여있던 윤호의 칼을 그에게 건내준다. 스르릉----- 칼을 뽑아든 윤호의 눈동자가 마치 사람것이 아닌냥 아무런 움직임도... 어떠한 감정도 담아내지 않았다. "노예가 주인말을 듣지아니한다면..죽음밖에는 없지." 촤아악-----. 윤호는 자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앞에있던 그를향해 날카롭게 잘 갈린 자신의 칼을 사정없이 내리그었다. 온 사방에 붉은 피가 튀어나가고... 외마디 비명한번 못질러본 그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쿵-----. "치워." 자신의 칼을 붉은 비단으로 닦아내며 윤호가 얼음장같은 목소리로 말하자, 옆에 병사몇명은 곧바로 시체를 치우기에 바뻤고 나머지들은 바닥에 널린 선혈을 수습했다. 윤호가 빙그레 웃었다. "요즘은 우리 머리위로 기어오르려는 마녀들이 너무많아." "예..계급적인 차이를 아예 잊어버린듯이 함부로구는 것들이 허다합니다." 윤호의 말에 옆에 서있던 그의 측근중 한명이 고개숙이며 거들었다. "사정을 봐줘서 손쓰지않고 있었지만, 사냥을 다시 시작해야겠어. 어디 마녀들이 사는 마을..아는 사람없나?" 윤호가 주위를 둘러보며 큰소리로 외쳤고, 그의 물음에 서로얼굴만 바라보던 사람들중 어느한명이 윤호의 앞으로 걸어갔다. "족장님..제가 듣기로는 서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모든숲의 색깔이 자주빛인곳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곳에 마녀들이 거쳐하는곳이 있다합니다..." "숲의 색깔이 자주빛...? 나도 들은적이 있긴하지." 그의 말에 윤호가 만족스러운듯 눈빛을 빛냈다. "좋아!!! 내일당장 마녀사냥에 들어간다!!!" 윤호의 결정이 떨어지자마자 모두들..내일있을 마녀사냥이란 단어에 흥분하며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자주빛..숲이라....신비로운 분위기에서 사냥할수있겠어." 원채 사냥을 좋아하는 윤호가 작게 중얼거리며 빙그레 웃었다. . . . 황금색 휘장안에 가만히 앉아있던 준수... 아무리 휘장안이 넓다하더라도..밖에서 윤호가 칼을 내그었던 매서운 소리와... 또 방금들린 '마녀사냥'이란 단어는 쉽게도 그의 귀에 들어와 박혔다. 자신의 부족인 마족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하지만, 노예나 다름없는 마녀들에겐 또 한없이 포악하고 잔인해질수있는 그... 그런점이 준수의 마음 한구석을 아리게 했지만, 이미 이땅을 지배하고있는 그는 다른 수많은 사람들에겐 선망의 대상였다. "후..." 준수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흘러나갔다. 내일은 또 얼마나 많은 마녀들이 사냥을 당하고 노예로 전락될런지... ......................................... .............................. 하지만, 아무도 김.재.중.을 말릴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절친한 자신조차도............... ~~~~~~~~~~~~~~~~~~~~~~~~~~~~~~~~~~~~~~~~~~~~~~~~~~~~~~~~~~~~~~~~~~~~~~~~~~~~~ 어설픈...그러나 또 써보고 싶었던 부류의 설을 쓰게되네요... 계획보다 조금 앞서서 연재하게 됬습니다... '원츄'하구 꾸준히 연재할께여...지켜봐주세용~ 오호호(ㅡ_ㅡ;) 이쁘게 봐주세용~ [게하/자작] 미 열 (美 熱) 2편 조회 : 5,204 이름 : 아게하 작성일 : 2001/10/20 오후 3:57:01 URL : 없음 차라리..널 본것이 꿈였다면... ..................... .............. 난 이토록 널 욕심내지... 않았을 것이다... - 미 열 (美 熱) 2편 - "이봐..돌아가. 아직은 때가 아니야." 옅은 갈색머리를 손으로 쓸어올리며 화가난듯 문밖에 서있는 청년을 째려보는 한사람. "유천야..그럼 얼굴이라도 한번 볼수없을까?" 문밖에 서있는 사람이 옅은갈색의 머리를가진 사람을 '유천'라 칭하며 애원조로 말을 건내본다. "내가 말했지?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한마디 딱딱 끊어서 말하며 유천이 경고성이 띤 목소리에 더욱더 날을 세웠다. "좋은말할때 돌아가." 쾅-----!!! 밖에 서있는 사람을 문전박대하며 문을 사정없이 쾅 닫아버린다. 그리고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뒤돌아, 흔들의자에 앉아있는 자신의 동생을 바라봤다. 눈이 부시도록 윤이나는 그의 까만색 흑단의 머리카락이 눈길을끈다. "형...무슨일이야...?" 흔들의자에 앉아있던 재중이 손을 내뻗으며 유천을 불렀다. "어..아무것도 아니야..아까 잠자는것 같더니 언제 깬거야?" 유천이 곧 재중이 내뻗은 손을 잡아 자신이 그의곁에 있다는걸 확인시켜준다. "방금전에." 재중이 유천에게 대답하며 방긋..웃어보였다. 재중에게 다정스레 말은 건내도, 예쁘게 웃는 자신의 동생을 보고있는 유천의 마음한켠은 여간 불편한것이 아니다. 벌써 집에 아까처럼 찾아온 사람만해도 오늘만 열다섯이나 되는것같다. 자주빛숲에 둘러쌓여 잘 보이지않는 곳에 터를잡아 생활해나가는 그들은 부족들중에서는 노예취급을 받는 제일 낮은 계급인 마녀들이다. 마녀라는것을 표시하는듯 그들은 모두 각자의 눈색깔을 지니고 있었다. 아직...앞을 못보는 이유로인해 항상 눈을 감고다니는 재중의 눈색깔은 정해져있지 않고있지만... 요즘은 그나마 뜸하지만, 해마다 이뤄지는 마족들의 '마녀사냥'이란것에 얼마남지 않은 사람들만이 마녀의 혈통을 이어가고 있었다. 유천과 재중이 살고있는 이 마을만해도 벌써 아이를 가질수있는 사람들은 모두 작년에 마족들에의해 잡혀갔다. 마녀들은 모두 중성이다. 그들중에서는 아이를 가질수있는 사람은 태어날때부터 판별되는데... 애석하게도..마을에 아일가질수있는 사람은 모두 잡혀가고 이제 유일하게 재중, 한명이 남은것이다. 아직..재중의 나이 18세... 너무 어렸다. 그리고 재중 스스로 아이를 가질수있는 시기가오면 자연적으로 현재 안보이는 눈이 뜨여지며 사랑을 깨달을 시기가 올텐데..... 마을 청년들은 그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이렇듯 매일같이 재중의 얼굴을 보고자 유천에게 문전박대를 당하면서도 오는것이다. 어쨌든 자신에게 아이를 잉태시킬 사람을 고르는것도 재중의 몫..... 혈통을 잇기위해선 재중이 무엇보다도 마을에서 소중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의 아름다운 얼굴은 다른 사람들의 욕정을 불러일으키고도 남을만한 충분한 매력이 있다는것이 일단 문제. 여리여리한 몸이 그러했으며 가는 미성이 사람들을 현혹시키는게 그러했다. 감고있는 눈이지만, 길게 드리워진 속눈썹은 마녀들중에서 제일 예쁜 암컷으로 선발될만큼 너무나 아름다운 것였다. 그리고 붉게 움직이는 입술은................... ....누구든지 갖고싶은것............ ..소유하고싶게... 만드는것......... 유천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는 그런 재중을 보호하기위해 한번도 제대로 그를 밖에 내보낸적이 없었다. 분명히 재중을 보게된 사람들이 있다면 그중에선 재중을 더럽히고 해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날터이니...그럴수는 없는 일였다. 세상물정 돌아가는것을 모르는 그는....너무나 무지하고 깨끗하며..... 또 순수할 수 밖에 없다........... 재중은 앞이 안보이는 이유로 이제 유천없이는 마음대로 어디든 갈수없는 처지였다. 자신이 없으면 항상 불안해하는 재중을 유천도 결코 곁에서 떼어낼 생각조차하지 않았다. "..형...나 따뜻한 차한잔이 마시고싶어..." "그래..여기앉아서 기다려..형이 갖다줄께." 유천이 재중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올렸다. 자신의 아름다운 동생..... 언젠가는 모든 암컷들이 그렇듯이 자신의 동생 재중도 사랑에 눈을뜨면... 자신에게 걸맞는 상대자를 찾겠지..... 암컷마녀들이 갖고있는 특징중 하나는 바로 자신의 반려자를 찾을때 비로서 안보이는 눈이 떠진다는 그것였다. 유천의 눈이 재중을 바라보며 아련하게 빛났다. 재중아................ 차라리...니가 나를향해 네 아름다울 눈동자를 보였으면..좋겠어... 그랬으면..좋겠다............. 그래야 형이 널 평생 보호해줄수 있을테니까.... 유천이 재중의 얼굴을 자신의 손으로 상냥하게 쓰다듬다가 그의 입가에 짧게 베이비 키스를 날렸다. "달콤한 열매를 우려서 차를 타줄께." 그런 유천이 마치 눈이 안보여도 어디있는지 다 안다는듯 재중이 그가있을 방향을향해 활짝 웃어보인다. 유천이 막 재중에게서 등을돌려 말려놓은 열매를 가지러 갈때였다. 콰장창-----!!! 무언가 마구 부서지는 소리가 밖에서 요란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뭐지? 커다란 굉음에 유천이 안을 들여다 볼수없게 내려놨던 창문덮개를 슬며시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밖을 내다보는 순간ㅡ!!! 쿠당탕-----!!! ".....!!!!!" 유천의 눈이 경악으로 치켜떠졌다. "...형...?" 청각이 예민한 재중도 뭔가 이상했는지 유천을 불안스레 불러본다. 으아악----- 그때 밖에서 들리는 찢어질듯한 비명소리.. 그 비명소리는 한개..두개..점차 늘어났다. "..혀..형...? 뭐야...? 마을에 무슨일이 난거야...?" 재중이 손을 앞으로 뻗으며 유천이 있는쪽이 어딘지 몰라 허우적댔다. 유천이 얼른 창문밖에서 눈을 거두며 창문덮개를 빠르게 내렸다. "숨어 재중아!!!" "형???" "마족들이야..그 개새끼들이 쳐들어왔어!!!" "...!!!!!" 마족들이라함은..아무리 마을물정 모르는 재중조차도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유천은 허둥대는 재중을 방한구석으로 몰아넣고는 문을 잠궈버렸다. 쾅쾅쾅----!!! "형!!!!!" 문을 두드리며 재중이 날카롭게 소리질렀다. 하지만, 유천은 아랑곳하지않고 탁자옆에 예비로 걸어두는 자신의 검을 빼들었다. "씨발새끼들...! 이곳은 어떻게 안거야!!!" 유천의 입에서 나즈막하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어떻게든 버텨내야했다. 마을이 무너지면..무엇보다도 재중이 위험함으로.... 죽을때까지 버텨내야하는 것였다. 칼을 움켜쥐며 문밖으로 뛰쳐나가려던 유천의 머릿속으로 아까 창문너머로 얼핏봤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마치 마족들의 우두머리인냥...붉은 머리를 휘날리며 잔인하게도 여유스런 미소를 머금던..그. 언젠가 들은적이 있었다. 마족들을 다스리는 최고의 권력자는 머리가 핏빛처럼..붉은 색이라고..... 아름다운 붉은색.............. 차라리...마을사람들과 동생이 위협을 받느니 내가 죽더라도 널 죽여버리고 말겠어!!! 유천이 잇새를 꽈악 다물며 집밖으로 뛰쳐나갔다. ~~~~~~~~~~~~~~~~~~~~~~~~~~~~~~~~~~~~~~~~~~~~~~~~~~~~~~~~~~~~~~~~~~~~~~~~~~~~~ [게하/자작] 미 열 (美 熱) 3편 조회 : 5,477 이름 : 아게하 작성일 : 2001/10/21 오후 10:14:11 URL : 없음 차라리..널 본것이 꿈였다면... ..................... .............. 난 이토록 널 욕심내지... 않았을 것이다... - 미 열 (美 熱) 3편 - 쾅쾅쾅쾅-----!!! "형!!! 유천혀엉!!" 작은 손으로 주먹을 말아쥐며 쉴새없이 나무문을 두드려댔다. 손을 더듬어 손잡이가 있는 부분을 아무리 당겨봐도 기운만 탕진할뿐..재중의 미세한 어떤 힘조차 단단한 나무문에는 미치고있지 아니했다. "하아...하..." 털썩-----. 마치 제풀에 나가떨어진듯 재중이 그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유천형.... 그의 이마위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태어날때부터 안보이던 두눈이 이제는 당연한 일상생활이 되어버렸지만, 지금과같은 시기에는 너무나 두렵고 또 공포의 존재였다. 콰아앙----!!! 아아악----- 사람들의 비명소리. 집을 무너뜨리는듯한 잔인한 소리. 재중이 놀란듯이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그래봤자 어두운 칠흑만이 그를 반길뿐였지만.....항상 유천을 의지하던 그의 주위엔 지금 아무도 없었다. "..혀엉....ㅅ...유천형..." 떨리는 입술을 깨물며 두손으로 자신의 귀를 틀어막는다. 유천이 빨리돌아와서 다시 자신의 손을 잡아주길...바라며............. . . . "비켜 이 개새끼들아!!!" 촤아악---- 유천의 입에서 욕설이 나가는 동시에 그의 손에 들려있던 칼이 정확하게 포물선을 그려내며 상대방의 어깨를 절단했다. 그의 아름다운 얼굴위로 붉은 피비린내가 끼쳤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는듯했다. 유천의 두눈은 지금.... 마치 미치광이인냥..매섭게 핏대를 세우고 있었다. 집밖으로 뛰쳐나가서 제일먼저 내비치는것은 아수라장이 되버린 마을... 아아아악-----! 콰장창!!! 어떤 집들은 불에 타고있었고, 마족들에비해 약한힘을 지닌 마을사람들은 죽어서 널부러져 있었다. 그 시체들을 밟고다니며 마족들의 병사들은 잔인하게도 사살하는것을 멈추지 않았다. "씨발새끼들....다 죽여버릴꺼야!!!" 칼을 고쳐잡은 유천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유천의 매서운 눈이 아까 집안에서 보았던 붉은 머리를 찾고있었다. 자신의 앞을 거슬리는 마족들을 정신나간 사람처럼 베어내며 그렇게..윤호를 찾고있을 때였다. "마음에 드는 마녀들은 죽이지말고 데려가도 상관하지 않겠다--- 반항하는 것들만 싸그리 죽여버려!!! 어차피 사냥이니까!!!" 요란한 비명소리와 칼부림이 난자한 이곳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 유천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바람에 나부끼는 붉은 머리결... 검정색 비단옷을 우아하게 차려입고 마치 지금 일어나는 전쟁과같은 이상황은 자신과는 아무상관 없다는식에 입가에 띈 잔잔한 미소..... 개...새끼. 유천의 입술이 앙다물어졌다. 그리고 막 자신에게 칼을 휘두르는 사람을 무자비하게 베어내며 윤호에게로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유천야!!!" 자신을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게 됐다. 마을안에서 자신의 절친한 친구중에 한명인 민성였다. "민성아?" 유천의 눈길이 민성이 있는곳으로..옮겨가며.....곧 자신의 눈길을 그곳으로 두었을때는 경악하며 미친듯이 내달릴수밖에 없었다. 모든 집들을 허물려던 마족들이 이제는 유천의 집을 허물려고 들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재중아!!!" 바람같이 뛰며 오로지 머릿속으로는 재중만을 외쳤다. "죽어버려 이 개새끼들아!!!" 갑자기 달려들며 마족들의 목을 사정없이 날려버리는 유천의 칼끝. 크아악---- 어억----- 제대로된 외마디도 못질러보고 유천의 칼에 쓰러져버린다. "하아...하아...." 유천의 얼굴위로 마족병사들의 피가 흩뿌려졌다. 마치 더럽다는듯이 자신의 옷소매로 그것들을 닦아내려가는 유천의 두눈이 참지못할 분노로 이글거렸다. 그리고 유천이 자신의 집앞을 사수하고 나서자..마을 중간에서 싸우고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그의 곁으로 다가와 나란히 섰다. 그리고는 유천이 뒤에 지키고 서있는 집을, 그와 똑같이 칼을 세우며 지키려는듯 눈빛을 빛낸다. "...???" 한참을 싸우고있는것을 그저 감상하듯 지켜보던 윤호의 눈썹 한끝이 올라갔다. "...뭐지?" 그의 눈동자는 어느 한 집을 지키고 서있는 마녀들에게로 향했다. 마치 집안에 무언가 소중한것이 있는듯 얼마남지 않은 마녀들이 집으로 들어서려는 마족들을 사정없이 베어내고 있었다. 특히...그들중 가운데 서있는 연갈색 머리카락을지닌 남자의 칼놀림은 마녀족에서는 보기드문 날쌘것였다. 윤호의 미간이 알수없는 궁금증으로인해 찌푸려졌다. 그리고는 다른곳에서 싸우고있는 자신의 병사들에 시선을 그곳으로 이끌게한다. "저기--- 저 집안을 뒤져봐!!!" 그의 명령에 모든 병사들이 한꺼번에 유천이 있는쪽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이런 빌어먹을!!!!!" 유천과 마찬가지로 다른 마을 사람들의 입에서도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리고는 모든 병사들의 시선을 이쪽으로 집중시킨 장본인인 윤호를 노려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갑자기 달려드는 배로늘어난 수많은 병사들의 칼들을 막아내기에 급급해져 버린 그들였다. 아아악---- 챙강-----. 칼날이 부러져 버리는 소리. 그리고 역시 수적으로 딸리는 상황. 유천은 피가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그도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렇게 조금만 있으면 유천네쪽이 완전히 밀려버릴 태세였다. "잠깐 멈춰!!!!!" 또다시 들리는 명령조의 카랑카랑한 목소리. 그 목소리 하나에 유천네쪽으로 미친듯이 달려들던 병사들이 일순간 뒤로 물러났다. "하아...하아...하....." 유천의 입에서 터질듯이 거친숨소리가 뿜어져나왔다. 그리고는 사납게 윤호를 노려본다. 윤호가 그런 유천을 흥미롭다는듯 여유있게 웃으며 자신이 타고있는 말의 목을 쓰다듬고는 조용히 입술을 열었다. "너희들이 그 집을 죽도록 사수하고 있는듯한 기분이 드는건 내착각인가? ...집안에 뭔가 소중한게 있는것같군 그래." 윤호의 말에..집앞을 지키던 유천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갔다. 안돼...... 우리 재중이는 죽어도 안돼!!! "우리 마을에서 꺼져버려...개만도 못한 새끼들아." 유천이 협박조의 목소리를 잇새로 내뱉았다. "풋~! ...재밌군." 윤호가 그런 유천을 우스운듯 쳐다봤다. 그리고는 마치 흥정을하듯 물어본다. "그 집안에 뭐가있는지를 나한테 보여줄 생각은 없나? 그럼 너희 모두를 살려줄 의향은 있어." 퉷----! 유천이 그가 타고있는 하얀색 백마 앞으로 거칠게 침을 뱉았다. "미친새끼." 곧 유천의 무례한 행동에 병사들이 달려들려 했지만, 윤호가 손을들어 그것을 제지했다. 그리고는 여유롭게 웃고있던 웃음을 거두며... 약간은 비웃는듯....그리고 조금은 잔인한듯....그렇게 눈빛을 빛낸다. 연이어 내뱉는 한마디. "집위로 불화살을 쏴." "....!!!!!" 윤호의 낮게 깔린 발언에 몇명의 병사들이 곧 그 명령을 행하며 재빠르게 불화살을 지붕위로 쐈다. 툭----- 화르르륵----!!!!! 지풀을 이어만든 지붕은 이내 붉은 불길을 번져가며 활활 타올랐고 유천의 눈은 충격을 받은듯 놀람으로 순간 멍해졌다. "안돼.....안돼 재중아!!!!!" 그리고 동시에 들리는 유천의 찢어질듯 날카로운 고함소리가 마을을 울렸다. ~~~~~~~~~~~~~~~~~~~~~~~~~~~~~~~~~~~~~~~~~~~~~~~~~~~~~~~~~~~~~~~~~~~~~~~~~~~~~~~~~~ [게하/자작] 미 열 (美 熱) 4편 조회 : 5,598 이름 : 아게하 작성일 : 2001/10/31 오후 10:52:41 URL : 없음 차라리..널 본것이 꿈였다면... ..................... .............. 난 이토록 널 욕심내지... 않았을 것이다... - 미 열 (美 熱) 4편 - 쾅쾅쾅---!!! "혀엉~! 유천형!!!" 재중의 목소리가 파고를 더해가며 점점 높아졌다. 밖에서 얼핏 들린 유천의 목소리에 분명히 집근처에 무슨일이 생겼다는걸 알수있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작은 손으로 애처롭게 문을 두들기는 찰나... 화르륵----- 지붕에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에 고개를 번쩍 치켜드는 재중였다. 뭐......지.......? 두려운듯 입술을 떨며, 안절부절하는 사이... 코끝으로 알싸하게 풍기는 이상한 냄새............ 무언가...타는 냄....새......... 타는 냄새?!!! 쾅쾅쾅---!!!!! "형!! 유천형!!!" 분명 자신에게 안좋은 일이 생겼다는걸 온몸의 감각이 알고있었다. 그걸 깨달은 재중이 더 세차게 문을 두드려대기 시작했다. . . . "재중이야!!!" 유천이 문을열고 들어가려하자 마족의 병사들이 그를 제지했다. 칼을들고 덤비지는 않았지만, 유천이 집안으로 들어서려는걸 막고있었다. "이 새끼들아 저리비켜!!!" 유천이 미친듯이 칼을 이리저리 휘둘렀지만, 이미 이성을 반쯤 잃어버린 그는 어느누구도 베어내지 못하고 허공만을 갈라내고 있었다. "재중이야!!! 재중아!!!" 아직 앞도 안보이는 내동생인데... 아무것도 모르는....우리 재중이... 아무리 날뛰어도 유천의 앞에서 비켜서지않는 마족의 병사들. 그리고 이미 남아있던 마을 사람들은 병사들에게 포박당한 상태였다. 유천의 모습을 재밌다는듯 쳐다보던 윤호의 눈빛이 빛났다. 그런 윤호를 유천이 분노가 담긴 눈으로 매섭게 쳐다보며 소리지른다. "이 씨발새꺄 안에 사람이 있단말야!!!!!" 유천의 말에 순간 윤호의 눈썹 한끝이 올라간다. 사람...? 그럼 저렇게 미치도록 발악하는것이 안에 사람이 있어서였군... 유천의 반응만을 살펴보던것에 재미를두던 윤호가 곧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자신의 병사들에게 고갯짓을 살짝 해보였다. 그러자 이내 유천을 가로막고있던 병사들이 비켜서고 유천은 그제서야 집안으로 발을 들일수있게 되었다. "재중아!!!" 콰앙-----!!! 잘 열리지 않는 나무문을 발로차서 거칠게 열고는 정신없이 집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자신이 재중을 가두고 나온 방문쪽으로 빠르게 달려가 걸어두었던 빗장을 빼낼 겨늘도없이 무지막지하게 칼등으로 부셔버리는 그였다. 벌컥-----!!! "재중아!" 지붕위에서 타오르던 불이 서서히 재중이 갇혀있던 방 창문쪽으로 타고 내려왔다. "콜록 콜록.." 뿌연 연기가 방안에 점차 들어차고 재중의 여린 기관지에 자극을 준듯했다. 그의 끊임없는 기침. "재중이야..형이야..." 유천이 주저앉아있는 재중을 번쩍 안아들었다. "콜록..콜록... 흐읍.......혀..엉........." "그래..나가자..." 재중의 가는두팔이 유천의 목을 감싸안아왔다. 기침을 심하게 해댔는지 눈가에는 눈물방울이 걸쳐져 있었다. 유천이 그런 자신의 동생을 추스려 안으며 밖으로 나섰다. 밖으로 나서면 그 사악한 마족들이 자신들을 맞을테지만, 지금은 어서 불에 타오르기 시작하는 집에서 빠져나가는것이 중요했다. 재중의 눈가에 묻어나는 눈물방울을 자신의 입술로 살짜기 흡수하며, 서서히... 밖으로 나선다. "재중아!!" "유천야 괜찮아...!!" "재중이야!!!" 유천과 그의 품에 안겨있는 재중이 빠져나오자마자 마족병사들에게 포박당한 마을 사람들의 입에서 커다랗게 그들의 안부를 묻는 소리가 솟구쳤다. "흐읍...콜록.." 유천 자신도 방금전까지 마셨던 매케한 냄새에 기침을 토해냈다. "하아..하아..." 재중을 안은채로 기운이 빠져버린 유천이 그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혀엉...형....." 갑자기 느껴지는 밝은 햇살에 재중이 얼굴을 유천의 가슴팍에 묻었다. 밖에 나가는 일이 아주 드문 재중에게는 한낮의 뜨거운 태양은 앞이 안보인다는 이유에도 불구하고 그를 당혹스럽게했다. "하아...흣..." 숨을 가다듬은 유천이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재중을 더욱더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그들을 둥그렇게 감싸고 서있는 병사들과 그중앙에 위치한 윤호를 조심스레 둘러봤다. 걱정스런 마음..... 안되는데.....우리 재중이는.... 우리 재중이는......... 모든 마족들을 베어내겠다는듯 달려들던 기세는 어디갔는지 재중을 품에 안고 적들에게 둘러쌓여있는 유천은 한없이 약해져 있었다. 걱정... 그리고 두려움에 찬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볼 뿐이다. 유천과 윤호의 시선이 허공에서 엉켰다. 자신도 모르게 재중을 안고있는 두팔에 더 힘을 가하게되는 유천. "혀엉..." 작은 목소리로 불안하게 자신을 부르는 재중의 어깨가 떨렸다. "걱정마..형이 지켜줄께." 유천이 재중의 귓가에 나즈막하게 속삭이고는 이내 당당해 보이려고 노력하는듯 윤호의 시선을 피하지않고 계속해서 응시했다. 말위에서 유천을 내려다보는 윤호의 오만한 시선이 재중에게 멈췄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천이 누군가를 안고 집안에서 뛰쳐나올때부터 시작해서, 지금 현재까지 그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시선을 주고있었다는것이 옳은 표재중였다. 유천의 시선이 자신에게 경계의 표시를 명확히 알려왔지만, 그런것따윈 아예 신경조차 쓰지않는다. 윤호의 눈빛이 유천의 품에 꼬옥 안겨있는 까만색의 뒷통수를 바라봤다. 그리고 유천의 목을 감싸 안고있는... 옷틈으로 살짝 드러난 가녀린 두팔을 바라봤다. 유천의 두 팔안이 넉넉히 남아도는걸로 봐서는 안겨있는 그가 얼마나 여린 몸을 지니고 있는지 느끼지 않아도 알수있을것 같았다. 안겨있는 그가 두려운듯 어깨를 심하게 떨고있는것을 지켜보며 윤호가 천천히 시선을 유천의 두눈으로 다시 옮긴다. 그리고 서서히 열리는 입술... "이름을 안물어봤군. 이름이..뭐지...?" 윤호의 질문에 유천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이마에서 자기도 모르게 솟아나는 식은땀은 그치지 않았다. "박유천." 유천의 대답에 이어지는 윤호의 질문. "그럼 품에 안고있는 아이는 너의 무엇인가." 드디어 재중에게로 바뀌는 윤호의 시선에 유천이 마른침을 삼켰다. 또다시 주위를 둘러봤지만, 병사들만이 사방을 지키고 있을뿐였다. 여기서 반항하면..당장 죽임을 당할수도 있어. 자신이 죽는것은 상관없으나 문제는 재중였다. 유천이 순순히 입을 연다. "내동생." '동생'이란 단어에 윤호가 말을몰아 유천의 앞까지 다가왔다. 뚜벅..뚜벅... ..멈칫... 자신의 앞까지 다가온 윤호를 유천이 떨리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얼굴을 보여봐." "...!!!" 자신의 말에 유천의 어깨가 흠칫거리는것을 윤호는 놓치지 않았다. 윤호의 말이 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꼼짝도 하지않는 유천. 그리고 그의 품에 더 두려운듯 떨고있는 재중. "난 두번말하는걸 싫어하지." 화악-----!!! "재중아!!!" "흐읏.." 갑작스레 윤호가 말에 올라있는채로 상체만 숙여 잽싸게 재중의 한쪽팔을 끌어올렸다! 팔이 빠지는듯한 아픔에 재중이 놀란신음을 내뱉었고 윤호의 빠른 행동에 유천이 그에게 달려들려했다. 하지만, 곧 주변에있던 병사들에 의해 제지를 당하고만다. "하아...하....너 이새끼..재중이한테 손대면 죽어!!!" 병사들의 발아래 깔린채로 자신의 손에서 재중이 떠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유천은 바락바락 악을써댔다. "형!! 유천형!!!" 재중이 윤호에게 팔을 붇들린채로 유천의 목소리가 나는쪽을 바라봤다. 그때였다. 윤호의 또다른 손이 재중의 턱을잡아 자신을 바라보게 한것은... "흐읍.." 거친 윤호의 손길에 재중의 몸이 딱딱하게 얼어버렸다. 그리고.......눈썹을 파르르 떠는 그순간.................... 재중의 얼굴을 바라본 윤호의 여유있던 얼굴이 서서히.... ...굳어가기 시작한다. ~~~~~~~~~~~~~~~~~~~~~~~~~~~~~~~~~~~~~~~~~~~~~~~~~~~~~~~~~~~~~~~~~~~~~~~~~~~~~ [게하/자작] 미 열 (美 熱) 5편 조회 : 5,220 이름 : 아게하 작성일 : 2001/11/09 오후 12:39:15 URL : 없음 차라리..널 본것이 꿈였다면... ..................... .............. 난 이토록 널 욕심내지... 않았을 것이다... - 미 열 (美 熱) 5편 - 조용한 바람이 머리결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지나갔다. 작은 잎사귀들이 부딪히는 소리에 순간 귀가멀어, 잠시간 아무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모든것이 자주색으로 반짝이며 곱게 치장을하고있는 ...이곳도..... 자신의 앞에 얼굴을보인 이보다는 아름다울수 없었다. ....................................... ............................. ................... 그렇게..자주색 숲은 작은 설레임과.. 작은 속삭임을 전하며... 그들에게 특별한 마법을 걸어둔다. ..아주....특별한 마법을............... 윤호의 눈썹한끝이 잠시 올라갔다.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해봤던것이 틀림없으리라. "하아..." 자신의 얼굴가까이에 느껴지는 따뜻한 숨결에 그제서야 자신의 손이 붙잡고 있는것은 이 숲이 만들어낸 요정의 환상이 아니라 사람이란걸 알수있었다. 그렇게..윤호와 그의 손에 붙들린 재중을 모두들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야이 개자식아!!!" 전쟁을 방불케하는 그곳에서 잠시 이어진 고요한 침묵을 깨뜨려 버린건 다름아닌 유천의 목소리. "그손 당장...윽..!!" 유천이 윤호을보며 발악하듯 소리를 지르는 동시에 그를 밞고있던 병사들의 발에 힘이 가해졌다. 유천의 얼굴이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래도 눈이 안보이는 재중이 들을새라 간신히 아픔에 새어나오는 비명을 억지로 참고있는것였다. "...형...???" 재중이 윤호에게 팔을 잡힌채로 주위를 둘러봤다. 분명..숨기려고 했을텐데도 작게 유천의 입술을 비집고나온 신음성 때문일것이다. "형..! 유천형!!" 여리디..여린.. 여인네의 그것보다 더 고운 가녀린 미성. 재중이 자신을 붙잡고 놔주지않는 윤호의 팔을 빼내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강한 그의 손길은 아무리 벗어나려 노력해도 이룰수없는 것였다. 자신에게서 벗어나려는 재중의 손을 순간 윤호가 비틀었다. "..아윽...." 금새 재중이 고통에 입술을 깨물며 미간을 찡그렸다. "무슨짓이야!!!" 재중의 손목을 거칠게 비튼 윤호을보며 유천이 깜짝놀라 소리쳤다. 그런 유천을 바라보던 윤호의 입가가 살짝 올라간다. 그리고는 얼굴에 두려움을 가득담고 떨고있는 재중을 바라봤다. 평소에 자기 부족에서 봐왔던 미인이라고 자칭하던 사람들의 하얀피부와는 달리 예쁜 모카빛..피부가 아기같이 부드러워 보였다. 까맣게 돋아있는 눈썹과 그아래 잡혀있는 커다래 보이는 감긴눈. 조용하게 뜬다면 분명 고운쌍커플이 드러날것였다. 숱많고 긴 속눈썹이 마치 만들어 놓은것처럼 살짝 위로 휘어져있는것이 여자의 그것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쭉..뻗은 콧날은 유일하게 그의 얼굴을 도도한 느낌이 들수있게하는 우아한것. 그 아래 자리한 도톰한 아랫입술과 얇팍한 윗입술은 모든 이를 현혹시킬만큼 도발적인것... 비록 감겨있지만, 순수함이 묻어나는 눈동자의 자태. 도도함이 묻어나는 콧날. 겁에질려 떨고있는 도발적인 붉은입술. 그의 얼굴에는 모든 아름다운 미(美)가 모여있는듯했다. "..놔...놔주세요..." 윤호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낀 재중이 당황했는지 윤호에게 처음으로 내뱉은 두려움에 찬 한마디는 겨우 그것밖에 되지못했다. 그런 재중을 바라보던 윤호의 입가에 서서히..... 작은 웃음이 번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방금전까지 잔혹하게 집을 불태우라 명령하고 마녀들을 사냥하라고 말하던 윤호의 입가로 재밌는것을 발견한 어린아이같은 천진한 웃음이 떠올랐다. 마치..소유하고픈 예쁜 인형을 발견한 들뜬 어린아이처럼..... "형...유천형!" "..유..재중아." 재중이 곧 유천의 이름을 다시 부르기 시작했고 유천도 그런 동생이 안타까운지 걱정담긴 애절한 목소리만 내뱉을 뿐였다. 손목에서 느껴지는 아픔을 꾹 눌러참으며 재중이 윤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애원조로 말을하기 시작했다. "..형..곁으로 가게해주세요...부탁이예요.." 곧 울어버릴것같은 얼굴을하고 자신에게 부탁을하는 재중. 하지만, 윤호의 입에서 나온말은 그런 그의 바램을 싸그리 무시하는것였다. "아니. 그렇게 해줄생각따위... 니 얼굴을보는 순간 사라졌어. ..넌 내가 데려간다." "..!!!" 윤호의 단호하고 명령적인말. 자신이 한말에 재중이 채 놀라기도전에 그의 여린몸을 자신의 말위로 단번에 끌어올린다. "..앗!." 윤호의 거친힘에의해 한순간 그의 품으로 안기게 되버린 재중의 입에서 놀라움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너 뭐하는거야!! 어서 그 아이를 놔줘!!!" 자신의 품에 재중을 꼬옥 품어버린 윤호에게 유천이 악을질렀다. 재중이 윤호의 품에서 빠져나오려 바둥대는것이 눈에 보이는데... 마치 돌아버릴것 같았다. "싫어!!! 유천형!!!" 계속해서 약한 두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밀어대는 재중의 뒷목을 콱 움켜잡아, 옴짝달싹 못하게만든 윤호의 입에서 즐거운듯 약간은 들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녀석을 감옥에 가둬." 윤호의 명령이 떨어지자 유천을 짓밞고있던 병사들이 그를 일으켜세워 금새 포박해 버린다. "이러지 말아요...형한테 그러지 말아요!" 재중이 윤호의 말을듣고는 떨리는 입술을 오무리며 애원조로 부탁했다. 하지만, 여전희 그의 두손은 윤호에게서 벗어나려고 그의 등을 미약하게 때리고 있었다. 그런 재중의 입술에 윤호가 빠르게 입맞추며 자신의 말고삐를 돌렸다. 그의 입에 빙그레 웃음이 걸려있다. "넌 나랑같이 가는거야." 병사들에게 끌려가는 유천이 재중을 말에 태우고 사라지려는 윤호에게 분노에찬 소리를 내질렀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야!!! 그 아이에게 손끝하나라도대면 널 죽여버릴꺼야!! 명심해!!!" 병사들의 억센힘에 억눌린채 강제로 발걸음을 옮기는 유천이 내지른 외침에 윤호가 고개를 살짝 뒤로 비틀어 그를 바라보고 한번 웃어보였다. 마치...현재 김윤호에게는 아무것도 대들수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주려는듯 그는 유천을 보고는 비웃음을 날리고 있었다. 개자식!!! 그런 윤호가 자신의 동생을 품에 품고는 유유히 사라지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것이 울화가 치밀어 견딜수가 없었다. 정말로 재중이를 건드리면 죽여버리겠어. 아직 그아이는 아무도 건드리지않은..... 물들지않은...순백(純白)의 아이란 말이야..... ...아직은 어리기만한..... ......너무.......어려.............. ~~~~~~~~~~~~~~~~~~~~~~~~~~~~~~~~~~~~~~~~~~~~~~~~~~~~~~~~~~~~~~~~~~~~~~~~~~~~~ [게하/자작] 미 열 (美 熱) 6편 조회 : 5,118 이름 : 아게하 작성일 : 2001/11/12 오후 10:22:39 URL : 없음 네 마음에 나하나만 가득 채우리라. 어떠한것도 들어올수 없도록 나 하나로만 채우리라... 네 손끝에 닿을수있는 인(人)도 나뿐일것이다. 죽을때까지............... - 미 열 (美 熱) 6편 - 웅성..웅성... 많은 마족들이 마녀사냥에서 돌아온 그들을 보고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모두들 쓸만한 마녀족이 있는지에 대한 관건보다는 윤호의 품에 안겨있는 흑공단자락같은 머리칼을 가진 소년에게 있었다. 윤호가 자신의 백마에서 재중을 끌어안고 뛰어내렸다. "하.." 뛰어내릴때의 두려움에 재중이 작게 숨을 내쉬며 어깨를 떨어댔다. 그런그가 예뻐 보였는지 그를 바라보는 윤호의 입술끝이 말려올라갔다. "저아이는 누구지...?" "여자아인가..?" "족장님이 마녀족의 아이를 품에 안고오시다니..." 모두들 뭔가 특별한 일이 생겨난듯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떼어낼줄 모른다. 그도그럴것이 여태껏 수많은 마녀족들을 사냥해 왔지만, 윤호가 저렇게 품에안고 나타난 아이는 모두들 처음보는 것였다. 그저 사냥을 통해 피의 향연을 즐길뿐인 윤호가 마녀족의 아이를 안고 들어오다니..... 여기저기서 자신들을보고 중얼대는 소리를 무시하듯 윤호가 곁에있는 시녀에게 커다랗게 소리쳤다. "내방 욕실에 뜨거운물을 가득채워라. ..그리고........." 무표정하게 말을 내뱉던 윤호가 순간 말을 멈추고 재중을 내려다봤다. 바들바들... 웅성거리는 소리가 꽤나 두렵게 들렸는지 윤호의 품에서 발버둥 칠때는 언제고... 이제는 그의 옷자락을 꼬옥..끌어당겨 잡고는 얼굴을 뭍어버린다. 왠지 모를 짜릿한 기분에 윤호가 살짜기 웃으며 중얼거렸다. "연초록이..좋겠어." 그리고는 곧 시녀에게 멈췄던 말을 끝맺음한다. "연초록색 비단옷을 준비해라." "예.." 윤호의 말에 여자시녀의 고개가 조아려진다. 그리고 이내 그녀는 발걸음을 옮겨 윤호가 명한일을 시행하려 빠르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윤호가 곧 재중을 추스려 안으며 자신만의 거처로 들어섰다. . . . 덜커덩--- 끼이익-----. 감옥문이 삐그덕 거리며 살며시 열리자 유천이 숙였던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소리난쪽을 급히 바라본다. 하지만...혹시나하고...크나큰 기대를 해버리면..곧 그만큼 커다란 실망감이오는 법이다. 재중의 얼굴을 볼수있으려나 기대했건만 삐그덕 열린 문쪽을 바라보기가 힘이들었다. "젠장." 낮게 욕설을 뱉으며 바닥을향해 주먹을 내리치는 유천였다. 자신은 윤호덕분에 감옥중에서도 독방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말았다. 이곳 감옥은 아무래도 마녀족들만 가두는곳인것 같았다. 유천의 눈에 익은 마을사람들도 보였다. 아는척을 하려했지만, 그럴시간조차 주어지지않고 짐승끌리듯 질질 끌려들어와 버렸다. 그렇게 혼자 자괴감에 빠져 방금처럼 어떻게든 벗어날 궁리를 다시 시작할때였다. 갑자기 들려오는 여린 목소리에 귀가 귀울여진다. "오늘 저녁은 고기종류로 해봤어요.." "감사합니다 준수님." 유천의 시선이 말소리가 들린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핏본 장면은 감옥 철창사이로 저녁밥을 내주는듯한 사람였다. 맛있게 고기를넣어 끊인 스프냄새가 감옥전체에 곧 진동하며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한명한명에게 철창사이로 저녁을 넣어주는 그가 점점 유천의 시야게 가득 잡힌다. 유천의 옅은갈색 동공안으로 그의 모습이 점점 커다랗게 맺혀왔다. "준수님..감사합니다, 잘먹겠습니다." "감사하다니요...더 좋은거 못드려서 미안해요.." 감옥에 갇혀있는 유천과 같은 마녀족들은 준수이라 불리는 그사람이 저녁을 넣어줄때마다 감사하단말을 꼬박 해대고 있었다. 준수는 마녀족 사람들에게 그릇을 내밀며 자신도 덩달아 고개숙여 인사했다. 그의 입가에 다정한 웃음이 서려있다. "후우.." 하지만, 사람들 모르게 살짝 한숨을 내뱉는다. 아무리 시녀를 뒤에 붙이고선 한다지만, 항상 이렇게 감옥에 갇혀있는 마녀족들에게 식사를 건내는것은 준수에겐 조금은 벅찬일였다. 이곳에 갇힌 사람들은 대부분 준수와 같은 마족들에게 대들거나 그들을 살해하려한 혐의를 지닌 자들였다. 당장 죽여버리라는 윤호의 명을 겨우겨우 준수 스스로가 말려서 목숨만은 건졌지만, 이렇게 언제고 풀려날지 모르는 감옥살이를 하는 이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래서 준수는 스스로 자처해서 그들에게 아침, 점심, 저녁을 손수 주고있는 것였다. 준수가 점점 마지막 철창까지 다왔을때였다. 옆에서 시녀가 건내준 그릇을 받아들며 방금과 같이 철창안으로 자신의 손을 내밀때였다. 항상 보이는 다정한 웃음을 던지며 고개를 들었는데............. ...그랬는데........................ "...!!!!!" 준수의 눈이 놀라서 커다랗게 떠졌다. 옅은 갈색의 눈동자. 강하게 자신을 노려보는 옅은 갈색의 눈동자가 매섭게 빛나고 있었다. 준수가 처음보는 얼굴이니 틀림없이 오늘 새로 갇힌 사람인것 같았다. 하지만, 갇혀있는 다른 마녀족들과는 달리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분노로 일렁이는것 같아 준수는 스스로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유천은 자신을보며 겁이담긴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는 준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준수의 황금빛 머리가 그의 볼을 부드럽게 감싸며 흘러내려 있었다. 하얗다못해 신비하게 투명하다고까지 표현해도 무방한 양볼엔 조금은 붉은 홍조가 새겨져 있었다. 쌍커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얇은 눈커플은 그의 단아한 눈동자를 더욱 선해 보이게 만들었다. 끝이 오똑하게 예쁘게 선이 나있는 콧날은 그의 얼굴을 단연 더 돋보이게한다. 게다가 막피어난 꽃봉우리처럼 분홍빛을 자랑하는 입술은 작고 귀여웠다. 유천의 째려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숨을 들이마쉰 준수가 가는 팔을 겨우 내밀어 그릇을 그에게 내밀었다. 하얗고 가는팔...고생한번 안해본것같은 우아한 긴 손가락에 들려있는 그릇... 모락모락 연기를 뿜어내며 맛있게 보이는 스프가 가득 들어있었다. 유천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그리고..이내.............. 탁-----. "..앗..." 쨍그랑-----!!! 준수의 손을 거칠게 내쳐버린다. "괜찮으세요 준수님!!!" 옆에있던 시녀가 깜짝 놀라며 준수의 손을 감싸쥐었다. "너 이자식!!! 무슨짓이야!!!" 감옥을 지키던 간수도 유천의 돌발행동에 깜짝 놀라며 달려온다. 그런 그들에게는 시선도 주지않은채 유천의 눈빛은 계속해서 준수에게로 가있었다. 준수는 가뿐숨을 몰아쉬며 놀란 심장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눈동자와 마찬가지로 옅은갈색의 머리칼을 나풀거리며 유천이 철창을 손으로 뒤흔들며 나즈막하게 잇새로 내뱉는 날카로운 한마디. "필요없어. 난 너희 마족을 경멸한다. 그러니까 너희 더러운손으로 내미는 그릇조차 받기싫으니까 꺼져." "뭐?!!! 이새끼가 지금 누구앞이라고!!!" 간수가 유천의 막되먹은 말에 철창문을열고 들어서려했다. "그만둬요!!!" 순간..그를 제지하고 막아서는 준수. "그만둬요..괜찮아요..." 준수가 붉은빛이 도는 자신의 비단옷을 움켜쥐며 작게 소리쳤다. "준수님..하지만...." "저 다치지 않았어요..괜찮아요..." 준수가 간수를보며 애원섞인 눈빛으로 말하자 곧 간수가 자리를 비켜섰다.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는 유천의 날카로운 눈빛. 숨을 조금은 고르게 진정시킨 준수가 유천을 잠시 바라보며 아까와 같은 미소를 애써 지어냈다. "..미안해요....그런지도..모르고......." "......." 되려 자신보고미안하다고 속삭이듯 말하는 준수을보던 유천의 눈썹한끝이 올라갔다. 그런 유천에게 준수가 자신의 상냥한 말소리를 그치지 아니했다. "제가 드리는게 싫다면..... 다른 마녀족 시녀들에게 부탁할께요...여기..꽤 습기차서 추운곳이예요... 식사는 먹어두는게 좋을꺼예요....." 준수가 방금전 유천에게 느낀 두려움을 지우고자 더 밝게 웃으며 그에게 고개를 꾸벅이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뒷모습을 계속해서 주시하는 유천의 시선이 느껴지는듯하여, 준수는 평소처럼 나가기전에 한번씩 더 둘러보던 감옥을 둘러볼수없었다. .....아직도 놀라서 떨리는 심장은 계속해서 뛰고있었다. ~~~~~~~~~~~~~~~~~~~~~~~~~~~~~~~~~~~~~~~~~~~~~~~~~~~~~~~~~~~~~~~~~~~~~~~~~~~~~~~~ [게하/자작] 미 열 (美 熱) 7편 - for 울 애기 정화 - 조회 : 5,406 이름 : 아게하 작성일 : 2001/11/13 오후 4:32:05 URL : 없음 네 마음에 나하나만 가득 채우리라. 어떠한것도 들어올수 없도록 나 하나로만 채우리라... 네 손끝에 닿을수있는 인(人)도 나뿐일것이다. 죽을때까지............... - 미 열 (美 熱) 7편 - 달칵----. 쿵----. 문이 열고 닫히는 소리. 재중의 귀가 그 소리에 쫑긋이 세워지며 윤호의 품에 파고들었던 얼굴을 서서히 들어올리기 시작한다. 그런 재중을 안아들고 방안 중앙으로 들어서며 윤호가 그를 내려다봤다. 이제는 조용해진 주변과 따뜻함이 맴도는 방안이란걸 알았는지 두려운 기색을 얼굴에 담아내면서도, 여기저기 마치 눈이 보이는냥 고개를 저어본다. "내방이야." 윤호의 짧막한 말에 재중이 윤호의 어깨부분을 미약하게 손으로 잡아 끌었다. 윤호이란 사람의 방............ 향기로운 꽃냄새가 풍기는듯 하지만... 왠지모르게 두려운 혈향도 나는것 같음에 재중이 살짜기 몸을 떨었다. 이제는 아예 윤호의 품에서 벗어나길 포기한것인지 그에게 간신히 매달려있는 재중였다. 그런 재중이 마치 자신의것이 된것마냥 기분좋은 윤호가 빙그레 웃었다. "너 옷이 상당히 낡았어. 난 낡은것이나 더러운것은 좋아하지않아." 윤호의 걸음이 빠르게 욕실로 향했다. 갑자기 빠르게 걷기 시작하자 재중이 깜짝 놀란듯 그의 목을 가는팔로 휘어감았다.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는걸보니..아까완 달리 이 방안엔 윤호와 자신밖에 없는것 같다. 재중이 눈치를보며 윤호에게 나즈막하게 묻는다. "형은.......유천형은........." 윤호가 겁이나는듯 작게 붉은 입술을 오무리며 떠듬떠듬 묻는 재중였다. 그의 그런 질문에 순간 윤호의 표정이 굳어버린다. "알다시피 너희 형은 감옥에 있어. 내가 가두라고 시켰지." 아무렇지도않게 편하게..조금은 딱딱한 목소리로 말하는 윤호에게 재중이 얼굴에 걱정을 담으며 더욱더 매달려왔다. "형을 풀어주세요..유천형..착한 사람이예요..그러니까..." "니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야." 간절함을 담은 재중의 말을 윤호가 뚝하니 끊어버린다. 그리고는 어느새 욕실안에 들어서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는 욕실물에 재중을 앉혔다. "..흣..." 갑자기 닿는 따뜻한 물에 감촉에 재중의 몸이 흠칫하며 놀라했다. 하지만, 윤호의 방금한 말을 이해하지 못한듯 재중의 말은 끊이지 않는다. "제가..어떻게 하다니요? 어떻게하면 유천형이 풀려날수있는 건가요..?" "옷은 벗어야지." 윤호가 재중의 물음을 무시하고는 그의 젖은옷을 벗겨내려했다. "...!!!!!" 윤호의 조금은 거친 손놀림에 재중이 흠칫 놀라며 자신의 옷을 움켜잡았다. "뭐..뭐하시는 거예요.." 겁에 질린듯 자신의 작은 어깨를 꼬옥 감싸고 뒤로 뽈뽈뽈 물러서는 재중을보던 윤호의 입가에서 웃음이 터졌다. "아까 니가 어떻게해야 너네형이 풀려날수 있냐고 물었지?" "......." 윤호의 말에 그가 있는쪽이라 추정되는곳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재중이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윤호가 나즈막히 말을 건낸다. "지금처럼 이렇게 내 손길을 함부로 거부하는것도 용납못해 이제부터는. 내 말에 무조건 순종적으로 따라야 너희 형이 편해질수 있다는것..지금부터 명심해라." 방금전까지 입가에 걸고있던 웃음을 지우며 윤호가 진지함이 서린 말투로 말하자 재중도 그걸 감지했는지 머뭇..머뭇..거리며 그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옷을 여미고있던 손을풀며 묻는말. "내가...당신 말만..잘들으면 되는건가요...?" "......." 순간 자신에게 묻는 재중의 질문에 윤호의 눈이 멍해졌다. ...마치 어린아이가 어떤일을 행함에있어 누군가에게 동의와 허락을 구하는듯 재중의 질문은 너무나 어리고 순수함이 묻어나는 것였다. 자신이 한말에 협박이 담겨있다는것도 간파하고있지 못함이 분명했다. 풋...... ..내가 정말 재밌는걸 데려온것 같은데...... 너무나 오랜만에... 아니. 어쩌면 처음으로 느껴보는 짜릿한 기분에 윤호의 입술위로 흐뭇한 미소가 퍼져나갔다. 한동안..심심하진 않겠군 그래. 자신이 있는쪽을 여전히 바라보는 재중의 아름다운 얼굴을 감상하듯 쳐다보던 윤호이, 그의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넣어 자신쪽으로 더 바싹 끌어당겼다. "자, 알아들었으면 그 너저분한 옷을 벗어." 윤호의 손길이 자신의 옷을 끌어당기자 약간은 흠칫 떨리던 어깨를 애써 단정히하며 재중이 고개를 숙였다. "스, 유천형밖에 본적없는데....." 그리고는 쑥쓰러운것은 아는지 옹알거리며 드러난 자신의 상체를 물속에 감춰버린다. 그 모양을 가만히 지켜보고있던 윤호의 눈빛이..순간 그의 상체를보며 아련하게 빛났다. 재중의 알몸은 너무나 아름다운 것였다. 아름답다고 표현하기가 모자랄 정도의 그것. 인간의 몸은 신이 만들어낸 최고의 아름다움인것을 재중의 몸이 담고있는듯했다. 만지면 녹아버릴듯 여린 피부의 속살들이 그러했고..... 곧게 뻗어있는 쇄골이 가는 목덜미의 고운선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손에 잡히면 으스러질듯 가는 팔과 품에안고 느껴보고싶은 허리라인은 그를 색스럽게 보이게한다. 재중은 자신의 몸을 한번도 본적이 없기에 그런것조차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이 아이는 누구나보면 한번쯤은 탐을 낼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갑자기..아무말이없는 윤호가 이상했는지 재중이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그리고는 왠지모를 어색한 분위기가 싫었는지 엉뚱하게 꺼내는말. "..목..목욕하는거 아니예요...?" 그러더니 한손으로 물을 퍼올려 열심히 자신의 어깨를 닦아내리기 시작한다. "..풋....그래..그래...목욕을 해야지." 윤호가 자신의 옷소매가 젖는것도 신경쓰지않고 물에다가 손을 담가 재중의 얼굴을 씻어내렸다. 그러자 손바닥에 부드럽게 와닿는 재중의 이마..눈..코....그리고 입술. 재중은 마치 그것이 아주 익숙한듯 윤호가 그렇게 하고있는것을 그냥 나두고 있었다. 윤호의 손이 재중의 얼굴을 쓸어내리며 그의 눈가에서 멈췄다. 그리고 궁금한듯 내뱉는말........ "눈이...언제부터 안보인것이지?" 윤호의 딱딱한 말투에 재중이 아이처럼 생긋이 밝게 웃어보였다. "태어날때부터 안보였어요..유천형때문에 불편한건 없었으니까 상관은 없어요...보이지 않아도..........." 어떤 이유에서건 앞이 보이지 않는것에대한 조금의 불평이나 투덜거림도없이 재중이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그렇게 말을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의 입끝에는 '유천'라는 이름이 붙어나오고 있었다. 윤호의 미간이 약간 찌푸려든다. 뭔가 한눈에 갖고싶은것이 들어오면 절대로 놓치지않는 매서움. 갖고있다 실증이나면........... 그것이 물건이라면 가차없이 깨부시던지 버려버리는 윤호였고, 그것이 사람이라면 눈앞에 보이지않게 다른곳으로 보내버리거나 구차하게 매달려오면 그자리에서 죽여버리는 윤호였다. 그리고 소유물을 갖고있는 동안에는 그것이 온전히 자기것이어야했다. 그런 그의 눈빛이 이번엔 이 김재중이란 순백(順白)의 아이에게로 온것이다. 그러므로 김재중은 윤호의 눈에 띈 그순간부터 무조건 그의것이어야했다. ...당연 친형제라해도 재중의 입술끝에 딸려오는 그 이름이 맘에 안들수밖에..... 윤호의 손가락이 재중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스치고 지나가며... 마지막엔 그의 목덜미를 꽈악 움켜잡았다. "..아...!" 갑자기 느껴지는 억센 손길에 재중이 아픔의 신음을 내뱉으며 고개를 뒤로 꺽어버렸다. 그와 동시에 욕실을 가득 매꾸는 윤호의 낮은 목소리. "넌 이제 내것이고 난 내것이 다른 이를 생각하는것도... 그리고 다른 이가 널 생각하는것도 좋아하지않아. ...니가 꼭...명심해야 할 것들이야." ~~~~~~~~~~~~~~~~~~~~~~~~~~~~~~~~~~~~~~~~~~~~~~~~~~~~~~~~~~~~~~~~~~~~~~~~~~~~~ [게하/자작] 미 열 (美 熱) 8편 조회 : 5,383 이름 : 아게하 작성일 : 2001/11/19 오후 9:53:24 URL : 없음 네 마음에 나하나만 가득 채우리라. 어떠한것도 들어올수 없도록 나 하나로만 채우리라... 네 손끝에 닿을수있는 인(人)도 나뿐일것이다. 죽을때까지............... - 미 열 (美 熱) 8편 - 달콤한 장미향기............... 붉은 장미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지만, 줄기에 돋아있는 가시는 자신을 건드리려는 사람이 있다면...가차없다. 토닥..토닥... "뭐라구?!!!" 타악-----. 자신의 얼굴에 연신 하얀색 분가루를 칠하는 시녀의 손을 깜짝 놀란듯 쳐내는 여자. 방금전에 시녀가 얘기했던 말에 신경이 곤두선것이 분명했다. 그녀의 손길에의해 바닥에 떨어진 분첩을 주어올리며 시녀가 고개를 조아렸다. "그말이 정말이야???" 그녀의 질문에 시녀가 긍정을 표하며 사뭇진지하게 말한다. "예..유리님. 방금 제가 동태를 살피고 왔는데 사실이예요." 동그랗고 커다란 눈이 아름다운 그녀의 이름은 유리. 하얀색 비단 드레스가 너무나 잘어울리는 그녀의 붉은빛의 곱슬머리는 가는허리까지 닿아있었다. 마치 어떤 사람이라도 감탄할수밖에 없을정도의 여성스러움. 그녀의 눈가가 시녀의 한마디에 걱정으로 금새 물들어 버린다. 옛날부터 자신의 곁에서 톡톡히 제 할일은 다하고있는 시녀 지연의 확신의 찬 말에 유리의 얼굴이 굳어진건 말할것도 없는것였다. 유리가 오렌지빛으로 곱게 물들인 입술을 살짜기 열고 지연을 바라봤다. "정말로........윤호님이 마녀족의 아이를 방에 들이셨단 말야?" "예...유리님. 얼핏봤는데.. 얼굴은 윤호님 품에 기대어있어 잘 못봤지만, 몸으로 보아하니 여리여리한 계집같아요.." 지연의 말에 유리가 금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그리고는 길게 끌려내려오는 거추장스런 치맛자락을 붙들고 방안을 이리저리 걷기 시작했다. "마녀족의 아이를 품에안고 오셨다니.............. ...처음 있는 일이라 내 맘이 불안하구나." 잘 다듬어져있는 분홍빛 손톱을 잘근..잘근..깨물며 못내 체통있는 약혼녀의 모습은 어디가고 금새 불안에떠는 여자가 되어버린다. "유리님." 그런 그녀를 지켜보던 지연이 고개를 조아리며 말을 꺼낸다. "...차라리............... ..차라리..윤호님께 말씀을 하세요...결혼식도 그리 많이 남지않은 일수이니 다른 여인을 들이지 말라구요..." 지연의 말에 그녀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유리가 곧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니야......." 그리고 작게 달싹이는 유리의 입술. "아니야.......그리해선 안되지." "유리님?" 유리가 이내 돌아다니던 걸음을 멈추고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혼잣말을 하듯..그리 속삭인다. "윤호님은...속박할수있는 분이 아니야. 아무리 내가 그와 약혼을 강행하고있고...곧 결혼할 처지라해도 그분을 함부로 속박하려들면 내가 버림을 받아." 단호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하는 그녀의 얼굴위로 심히..불편한 기색이 오갔지만, 자신이 생각하는것이 모두 맞는것이기에 뭐라고 다른 말을 할수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누군가에게 얽매이는걸 싫어하시는 분이란걸.... 난 너무 잘알아." "그러면..이번에도 가만히 보고계실껀가요 유리님?" 말은 딱부러지게 한마디한마디 내뱉지만, 이번에도 마음속으로 속상해할 유리를 잘알기에 지연이 조금은 침울한 목소리로 묻는다. 지연의 말에...유리가 하얀 목덜미를 내보이며 고개를 살짝 떨군다. "...지금까지도 잘 견뎌왔어. 어차피 나중엔 내사람이 되실분이고..... 또 이런일 한두번 있는것도 아니야. 괜찮아. ...어떤 아이인지...내가 얼굴을봐야 알겠지만, 어차피 윤호님이 질리시면 금새 버림받을 존재라는걸..난 잘알고있어....그러니까 괜찮아." ...결국 처음에는 불안한 기색을 보이던 유리가 사뿐한 걸음걸이로 생각을 금새 정리했는지 거울앞에 다시 앉았다. 유리가 다시 앉자 지연이 다가와 그녀의 얼굴을 다시 아름답게 치장하기 시작했다. "어찌되건..결국 그분께 선택받은건 나야... 윤호님..옆자리에 안주인으로 앉을껀 나야." 그녀의 입가로 당찬 미소가 흘러나왔다. . . . 뜨거운 수증기............................ .......................... .................. 재중의 감은 두눈밑에 곱게 드리워진 긴 속눈썹이 가늘게 떨려왔다. 그의 여린 목을 그러쥐며 윤호의 매서운 눈동자가 그를 바라본다. 작은 새와도 같은...김재중................ 윤호의 행동에 겁을 먹은것처럼 보여도...실상 그리 두려워하는것 같지는 않다. "왜...대답이 없지...? ..내 말대로 따르지 않겠다는건가?" 윤호의 낮은 목소리가 다시 대답이없는 재중에게로 전달됐다. 자신이 물은 질문에 빨리 대답하지않는것을 싫어하는 윤호의 목소리가 조금은 짜증이 섞여있었다. 그에...재중이 살짝 입술을 열었다. "유천형.....얘기를 꺼내지 말라고 하시는 건가요?" 윤호가 물은 얘기를 재차 묻는 재중. 아무 대답이없는 윤호. 그건 재중이 다시 반문하는것에 대해 긍정하는 뜻였다. 그러자 재중이 곧 촉촉하게 젖은 머리칼을 손가락 끝으로 살짝 쓸어올린다. 재딴애는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귀찮다 한짓이지만, 보는이는 짜릿할만큼 유혹적인 자태. 재중의 붉은 입술이 윤호의 물음에..대답을 꺼내기 시작한다. "....유천형...얘기를 꺼내지 않을순..없어요..." "...!!!" 당연히 자신의 말에 따르는 대답이 나올꺼라 생각했던 윤호의 눈동자가 예상과 다른 재중의 대답에 커다래졌다. 그런 윤호를 모르는 재중의 말이 계속된다. "...유천형은...재중이가 어렸을때부터 엄마아빠를 대신하던 존재예요... 재중이한테..없어선 안되는 사람이예요...그런 형..얘길 꺼내지..말라니..." 자꾸만, 자신의 말에 반항하는 대답을 꺼내는 재중을 계속해서 쳐다보는 윤호의 한쪽 눈썹끝이 올라갔다. 자신의 목덜미를 잡은 윤호의 손에 점점 힘이 가해지는지도 모르고 그에게 던지는 재중의 한마디. "....그렇게 말하는건....심술이예요...." "...???" ...뭐...? 지..금........... ...심..술.이라구..??!!! 순간..내뱉아진 재중의 말에 윤호의 험악한 표정이 금새 벙찐 표정으로 바꼈다. 재중의 입술이 삐죽이 나오더니 금새 귀엽게 뚱한 표정으로 바꼈다. 아마도 윤호가 하는말들이 단순히 심술이라고 생각해버리는 그의 어린마음 때문였다. 그 모습이..사뭇 귀엽기도한 동시에 진지하기도해서 뭐라고 매섭게 한마디 쏘아붙히려던 윤호의 입이 열렸다가 곧바로 닫혔다. "부...모같은..존재라..?" 윤호의 물음에 재중이 고개를 끄덕인다. 풋...! 마치..윤호에게 '그러니까 우리형 좋게 대해주세요~'라고 말하는것같은 얼굴로 그가있는 방향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겉모습은 아름답게 성장한 아이지만.......... ...실질적으론 애하나를 줏어온 셈이군. 뭔가..잘못데려왔단 생각을 얼핏하면서도 생전 처음보는 생소한 반응들을 재중이 보이자, 그것조차 새로울지도 모른다고 치부해 버리는 윤호이다. 빨간 입술위로 물방울들이 맺혀있는것이 흡사 붉은 매화꽃이 이슬을 머금고있는듯한 한폭의 그림같았다. 윤호의 입술이 그 위로 살짝 닿았다가 촉촉한 소리를 만들어내며 떨어졌다. 그리고 굉장한 아량을 베풀듯이 하는말. "좋아. 형얘기를 하는건 뭐라하지 않겠어. 하지만, 너무 많이해서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하거나 또 앞으로 내가 말하는 명령을 거부한다면 그땐 가차없다." 윤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곧 재중의 얼굴에 활짝..웃음이 피었다. 유천형 얘기를 꺼내는것을 허락받은것과..... 윤호의 살짝 닿은 입술이 못내 부드러워...스스로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 탓이리라. 입술끼리 살짝 부딪히는것은 유천와도 자주있던 일이기에 어색한것이 하나도 없었다. 재중이.. 배시시 웃으며 눈꼬리를 늘어뜨렸다. 그리곤............ 손가락을 오밀..조밀..만지며...고개를 살짝 치켜올리곤 윤호를 마치 지금 처음만난 사람처럼 대하듯 이리 말한다. "쟤이름...모르시죠? 전 김재중이에요..... 유천형이 처음 만나는 사람한텐 인사 꼭 하라고 했는데..깜빡한거..있죠?" "......." 방글방글..환하게 웃는 재중을 바라보던 윤호의 얼굴이 순간 뻣뻣하게 굳었다. 자신이...자기네 마녀족들을 공격해서 마녀사냥을 즐긴다는걸 알긴아는건지...? 조금만..좋은 소리를 해주면 뭐든지 금새 받아들이는 이녀석을 지금 윤호의 눈이 신기한듯..바라보고 있었다. ......너................ ...........바보냐...?............ ~~~~~~~~~~~~~~~~~~~~~~~~~~~~~~~~~~~~~~~~~~~~~~~~~~~~~~~~~~~~~~~~~~~~~~~~~~~~~~~~~~~ [게하/자작] 미 열 (美 熱) 9편 조회 : 4,813 이름 : 아게하 작성일 : 2001/11/29 오후 11:07:37 URL : 없음 네 마음에 나하나만 가득 채우리라. 어떠한것도 들어올수 없도록 나 하나로만 채우리라... 네 손끝에 닿을수있는 인(人)도 나뿐일것이다. 죽을때까지............... - 미 열 (美 熱) 9편 - 하늘..하늘... 연초록이 이렇게나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까? 나풀..나풀.. 아주 가벼운 끝단 자락이 걸리적 거리는지 작은 손으로 연신 잡아당겨 끌어본다. 보들..보들.. 생전 처음 입어보는 부드러운 옷의 촉감에 그 매끄러운 뺨을 부벼보기도하고... ...마치 생일날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마냥 좋은가보다. "마음에..드나?" 왠지 재중의 활짝 핀 얼굴이 좋아보여 윤호가 은근히 던져본 한마디였다. 다른 여인들같은 경우에는 이런 옷쯤이야 별거 아니겠지만, 재중에게만은 남달라 보였다. 마치 아주 큰 무엇인가를 받은냥 좋아서 헤헤거리고 웃는 모양새가, 윤호으로 하여금 연초록빛의 고운 비단옷을 준게..한없이 뿌듯하게 느껴질만큼... 그리 좋아하고 있었다. 끄덕..끄덕. 윤호의 물음에 아주 커다랗게 고개를 끄덕이는 얼굴도 귀엽기가 그지없다. 그 붉은 입술에 자신의 옷소매를 갖다대보더니..이내 빙긋이 웃으며 윤호가 있는쪽으로 고개를 돌려본다. "..이런..부드럽고..좋은옷..처음 입어보는것 같아... ...재중이는...너무 좋아요...고마워요." 마치 신랑을 대하는 새신부마냥 얼굴에 약간의 홍조를 띄우고 배시시 웃어버리는게 금방이라도 윤호를 살며시 유혹하는듯 비춰졌다. 윤호의 원래 성격대로라면 목욕을하던 그 순간이라도 당장 덮쳐버릴수도 있는일. 하지만, 저리 밝게 웃고..떠들고...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마냥 그냥 좋아만 해버리니... 그 행동들에 당최...평소에 정윤호답게 행동할수 없는게 의아할 따름였다. 갑자기 재중이 자신에게서 약간 떨어져있는 윤호에게 다가가려는듯 손을 앞으로 내밀어 허공을 슬며시 휘휘~~ 저어본다. 아마도 윤호가 있는곳을 찾으려나보다. 저벅. 윤호가 그런 재중의 행동에 한걸음 그의 앞으로 다가가줬다. 그랬더니, 곧 자신의 옷자락을 잡아보는 재중의 손길이 느껴졌다. "여깄다~!" 윤호가 다가와준것도 모르고 자신이 찾았다고 생각하는지 또 그얼굴에 빙그레 웃음을 띄어보인다. 그런 그의 행동을 팔짱을끼고 가만히 감상하는 윤호였다. 따뜻한..방안공기와... 방금 목욕을 끝낸 재중의 몸에서 풍기는 향긋한 은초롱 꽃향기... "....." "....." 어색한듯 하지만, 어찌보면 포근해 보이는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그것도 잠시. 갑자기 뻗어져오는 재중의 손길에 윤호는 금새 자신의 몸을 긴장시켰다. 하지만, 그의 손길을 뿌리치진 않는다. 살금..살금... 손을 쭉 뻗어 윤호의 목덜미를 건드리는가 하더니... 더 위로 올라가 그의 이마를 건드려본다. 여린 손끝이 윤호의 단아한 이마를 지나가고... 그 아래로 내려와서 눈을 더듬으며 던지는 한마디. "..눈이..아주커요...분명..착한마음이 담겨있을껏 같아." 재중의 말에 윤호가 키득..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내가 착할껏 같다고...? 하지만, 윤호의 웃음소리에도 불구하고 재중의 손끝은 윤호의 눈자위를 돌다가 그 아래로 내려가 그의 콧날을 매만져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는 또 툭하고..던지는 한마디. "..음....콧날이 부드러운거 보니까..분명히 다정하겠다." 방긋..웃으며 말하는 재중의 얼굴이 사뭇 진지하다. 글쎄...내가 다정하겠다라..? 속으로는 연신 재중의 말에대해 토를달고 있었지만, 입밖으로는 절대 내지않았다. 그리고는..더듬더듬 조심스레 내려가던 손길이 이제는 윤호의 얼굴 종착역인 입술에 닿았다. 입술선을 손끝으로 슬그머니 그림 그리듯이 매만져본다. 두근. 순간, 이상하게 뛰어버린 심장. 그리고 두눈에 클로즈업 되어버린 재중의 붉은입술. 입맞추고싶어............ 윤호의 머릿속은 그 잠시잠깐의 생각들로 순식간에 잠식당했다. 이렇게 입맞추고싶다는 욕구를 간절하게 느껴본적이 있던가. 저..붉은 입술에............. 윤호의 얼굴이 재중의 손길을 느끼며 그의 얼굴쪽으로 기울어지려던 때였다. "..입술선이 뚜렷한게...참....예쁘게 생겼을껏 같아요...맞죠???" 멈칫. 윤호의 숙여진 얼굴을 아는지 모르는지 재중의 입에서 마지막 한마디가 내뱉어졌다. 이 상황을 모르는 재중의 순진무구한 얼굴에 윤호의 얼굴에서 피식..웃음이 터졌다. 그리고는 이내 자신의 입술을 매만지는 재중의 손목을 잡아버린다. "...???" 갑자기 자신의 손목을 잡아서 내리끄는 윤호의 행동에 재중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 재중의 얼굴을 바라보며 윤호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자꾸..자극하지마라. 난 지금 나가봐야 되니까." "..에..???" 윤호의 말뜻을 못알아 듣는건지..재중의 얼굴이 궁금증으로 벙찐 표정이 되었다. "내가 돌아올때까지 기다려. 심심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예..." 곧 이어진 윤호의 말에 재중이 곧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빙긋이 웃었다. 번쩍----- "엇.." 그리고 순식간에 윤호의 두손에 의해 들려진 자신의 몸에 깜짝놀라 그의 목을 두팔로 감싸안는 재중였다. 저벅_저벅__ 자신을 안고는 가볍게 걸어가는 윤호의 발걸음 소리에 재중이 귀를 기울인다. 털썩----- 멀찌감치 떨어져있는 침대에 재중을 조심스레 내려놓으며 윤호가 나가버릴듯이 몸을 돌렸다. 그러면서 재중에게 던진 한마디. "니가 예상한것처럼 난 다정하지도..착하지도 않아. ..알아두는게 좋을꺼다. 너희 마녀족 사냥은 내 명령에 의해서만 행해진다는것." 아름다워보이는듯 하지만, 언뜻 윤호의 눈동자로 스쳐지나 간것은 가슴시린 냉혹함. 갑자기 내뱉는 윤호의 찬바람부는 한마디에 금새 재중의 얼굴이 주눅이 든것처럼 움츠러들었다. 저벅_저벅__ 그가 나가려나보다.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져 들리는것이 거의 문쪽으로 다 다가간것 같았다. 윤호가 거의 나갈때까지..그의 말에 가만히 움츠리고있던 재중이 슬그머니 어깨를 펴본다. 벌컥-----. 그리고 윤호가 문을여는 소리가 들릴때, 그에게로 급하게 던지는 한마디. "아무리 나쁜사람도 착한마음을 가질수있어요!" 등뒤에서 들려온 재중의 목소리에 윤호의 발걸음이 순간 멈춰졌다. 하지만, 이내 그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린다. 그리고 재중의 말이 우습다는듯 여유있는 말투로 대답해준다. "글쎄...? 과연그럴까? 네 믿음이 어디까진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본 성격은 변하지 않는법이야. 얌전히 방에서 기다려라. 보이지도 않으면서 어디 나돌아 다니지말고.. 위험하니까." 쿵-----. 자신의 할말만 바쁘게 끝낸 윤호이, 문을닫고 나가자... 곧이어 조용한 침묵만이 재중의 주위를 감쌌다. 윤호의 말에 약간의 놀란 표정을 지었던 재중의 얼굴이 곧..시무룩하게 변해버린다. 아닌데............... 나쁜사람도 착한마음을 가질수 있는거라고 유천형이.... ..분명 그랬는데................. 입술을 삐죽이내민 재중이 윤호의 얼굴을 만져봤던 손끝을 자신의 뺨위로 갔다대본다. 그리고는 이내 그 예쁜 웃음을 다시 입가에 내걸었다. 처음엔 재중이와 형에게 나쁘게 굴었어도... 분명..따뜻한 사람임에 틀림없는데..... 모든것을 좋게좋게 보기만하는 재중은 자신이 처음느낀 윤호에대한 느낌을 그대로 믿고있는듯 보였다. ~~~~~~~~~~~~~~~~~~~~~~~~~~~~~~~~~~~~~~~~~~~~~~~~~~~~~~~~~~~~~~~~~~~~~~~~~~~~~~~~~ [게하/자작] 미 열 (美 熱) 10편 조회 : 5,210 이름 : 아게하 작성일 : 2001/11/29 오후 11:08:54 URL : 없음 네 마음에 나하나만 가득 채우리라. 어떠한것도 들어올수 없도록 나 하나로만 채우리라... 네 손끝에 닿을수있는 인(人)도 나뿐일것이다. 죽을때까지............... - 미 열 (美 熱) 10편 - 달칵-----. "누구..?!" 갑자기 문이 열린 소리에 재중의 고개가 급하게 소리난쪽으로 향했다. "아..놀라셨습니까..?" 재중의 귀로 아련히 울리는 여린 소년의 목소리. 눈이 안보여 낯선물건이나 사람에게는 항상 두려움을 먼저 표시하는 재중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 들었다. 당황하는 손길이..자신이 앉아있는 침대보위를..끌쩍대며, 낯선누군가가 방에 들어선 것에대해 재중이 본능적으로 긴장하고 있다는걸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놀라시지 마세여..윤호님께서 보내셨으니까요.." "..유..윤호....가...?" 떠듬떠듬 윤호의 이름을 자신의 입에 올리며 조금은 쑥쓰러워 하는듯하는 모습이 마치 아기같아 웃음이 터져나온다. "인사드릴께요. 저는 환희라 불러주시면 되구여... 나이는 열여섯 입니다. 앞으로 재중님 시중을 들꺼구요." "아..." 시중이라니........... 왠지 멋쩍은듯 손가락만 우물쭈물하던 재중이 순간 환희가 자신의 앞까지 다가온것을 느꼈는지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잘 부탁드릴께요." 밝은 소년의 목소리를 들어하니..분명 아주 온순하고 명랑할껏만 같았다. 그제서야..긴장하고있던 재중의 몸도..서서히 가벼워짐을 느낀다. "....나....나두...." 형밖에 없던 자신에게 자신보다 어린 이 소년이 마치 동생처럼 느껴지는지... 양볼을 새초롬히 붉히며 그리..편하게 반말을 해보고는 방긋..웃어버린다. 그런 그를 내려다보는 환희의 얼굴에 순간 미소가 서렸다. 방금전 원로회의실로 들어서는 윤호에게 명을 받고선 급하게 달려왔는데........ ...윤호이..어떤 사람을..그것도 평소에 관심도 없던 마녀족을 데려왔단 소리에... 내심 누굴까하는 궁금증이 증폭되고있던 차였다. 그런데..이건..정말로 예상밖였다. 연초록 비단옷을 입고선..하얀 실크 침대위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재중은... 마치 비개인 초록 나뭇잎사이로 햇빛이 비추는 그 찬란함보다도..더 예쁘고 아름다웠다. 역시... 이정도나 되니까..윤호님께서 데려오신거지... 새삼..윤호의 눈높은 취향에 감탄하며 환희가 잠시 생각에 빠져있을때였다. "..갑....." 순간 아무말이없는 환희가 이상했는지..중얼거려보는 재중.. "..갑갑해....." "예?" 재중의 갑자기 튀어나온 말에 환희가 퍼뜩 생각을 정리하며 재중을 다시한번 바라봤다. 자신을보는 환희의 시선이 느껴지듯 재중의 작은 얼굴이 그에게로 돌려졌다. "여긴..너무 갑갑해..." 자세히..들어보니..갑갑하다고 칭얼대는 소리다. "..풋.." 그 말하기가 뭐 그리 힘들다고..중얼대는건지... 방금 본 재중이지만, 왠지..정감이가는 느낌....... 앞으로도 자신이 쭈욱 시중을 들어줄껏같은 이상한 느낌. 재중이..조용히 자신이 한말을 내뱉고는 환희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기시작했다. 언제나 집안에서 이런말을 할때면, 유천은 절대로 나가서는 안된다고 딱부러지고 매섭게 얘기하곤 했으니까.... 얼마나 바깥공기가 마시고 싶었는지..... 촉촉하게 젖어있는 흙이란것도..한번 손안에 가득..쥐어보고픈데..... 그리고 지금은 무엇보다 중요한건...감옥에 있다던..유천이 보고싶은것였다. 그나마 감옥에 관해 제대로 개념이 덜 잡힌 재중은 그곳도..자신이온지 얼마안된 윤호의 방처럼 편할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생각할따름였다. 다만 형하고 자신을 떨어뜨려놓은 윤호에게 조금의 섭섭함이란것이 있을뿐...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고있는것이 아닌듯하다. 같이 있게해도..재중이는 말잘듣구 말썽두 안부리는 착한아인데... 순간 표정을 시무룩하게 바꿔버리는 재중을보며 환희가 살짝 그의 손을 잡았다. "뭘그리 우물쭈물 하세요..재중님. 그냥 나가고 싶으시다 말씀하시면..되는거지." 시원시원하게 말을 내뱉은 환희가 재중의 손을잡고 눈이 안보이는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저..정말......바깥에 나가는거야..?..응??? 재중이..나가는거지...?" 환희의 손길에 재중이 가뿐히 끌려가며 그 예쁜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어냈다. "그럼요~ 이곳 앞뜰 공기는 정말 좋아요." "후웃~ 신.난.다!" 어린아이마냥 나머지 한손으로 자신의 입가를 살짝 틀어막고는 키득거리는 재중의 모습에 환희도 빙그레 웃어버렸다. 그리고..그순간드는 안타까운 생각하나. 이분....아름다운 용모에 천진난만한 성격까지... ...만일 앞이 보였다면..더 좋았을것을..... 어쩐지..재중의 앞이 안보이는 일이..환희의 마음 한귀퉁이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 . . 탁..탁... 환희는 한참을 돌다리를 툭툭 손바닥으로 만져보는 재중을 옆에서 그냥 지켜보고 있었다. 벌써 몇십분째인지.... 마치 돌다리 같은것은 만져볼 기회가 없었던것마냥..계속 그 차가운 느낌이 좋은지... 연신 만져대고 있었다. 그의 한쪽 손에는 노란색의 예쁜 꽃 몇송이가 들려있었다. 뒷뜰을 돌아다니며 그 작은손으로 따올린 꽃이리라. 윤호는 원로회의에 들어간지 한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고, 일주일에 한번씩 열리는 이 회의가 있을때면, 이곳주변또한 조용해지곤했다. 지금도 넓은 호수 가운데를 가로지르고있는 이 돌다리 위에는 재중과 환희밖에는 존재하지 않고있었다. "그 느낌이...좋으세요?" 환희의 물음에 재중이 그제서야 굽혔던 몸을 일으켰다. "웅!!! 차갑고 시원하고...손바닥에 착..붙는 기분이야." 세상에 처음 발걸음을 뗀 아기가 말하는 기분이랄까...? 뭘하든 미워할수가 없을것같아 보인다. "그래도..호숫가라 바람이 조금 불어요. 옷도 얇으신데..들어가세요..이제." 자신의 말에 조금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는 재중을 환희가 막..이끌고 발걸음을 돌리려고 할때였다. "환희 아니냐.." 순간 들려온 여자의 목소리에 환희의 걸음이 멈추어지고 그에따라 재중의 발걸음도 멈칫한다. 맞은편 돌다리를 유유히 건너오며 환희를 부른 여인. 얇은 팔을감싼 유들유들한 천을 한번 추스리며 반짝이는 눈을 잠시 환희뒤에있는 재중에게 둔 그녀. 바로 유리였다. "유..유리님.." 어정쩡하게 유리를 부르며 자신의 뒤에있는 재중을 흘낏 쳐다본 환희의 눈가에 당황스러움이 묻어났다. 유리뒤에있던 그녀의 시종 지연의 시선도 어느샌가 환희의 뒤에있는 재중에게 향한다. 거의 그들의 앞까지 다다르자 유리가 도톰한 입술을 오무리며 재중을 살폈다. "네 뒤에있는 여인은 누구지..?" 누구보다도 튀는 외모이기에..재중이 눈에 안뜨일수는 없었다. 그리고 아름다운것에 유달리 민감한 유리의 신경을 자극시킨것또한 당연하리라. "예..저기...." 환희가 막..이리저리 대답을 하려고 할때였다. "저..여자 아니에요.." "..!!!" "..???" 순간..툭 튀어나온 재중의 뾰루퉁한 말. 놀란..시선 세쌍이 재중에게로 쏠렸다. 재중은 아무래도 자신을 여자라 단정지어버린 유리가 조금은 못마땅한가보다. 여..여자가...아니야...? 저리생긴 얼굴을 가지고선....? 유리가 놀란 표정을 짓자, 그제서야 환희가 다급하게 말을꺼내놓았다. "재..재중님이시라고...윤호님께서 데려오신 분입니다." "..뭐...!!!!!" 환희의 그말에 유리와 그뒤를 지키고있던 지연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기 시작한다. 그..그럼..이 아이가...? 유리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리기 시작했다. 눈을 꼬옥 감은채 앞이 안보이는 모양인지 환희의 한쪽 소매끝을 힘껏 쥐고있는 재중을..유리의 차가운 눈빛이 힐끗 훓터봤다. "눈이......." 곧 굳어있는 얼굴을피며 애써 여유있는척..말을 꺼낸다. "..눈이.....안보이는 모양이지...?" 유리의 질문에 환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훗.... 환희의 대답에 유리의 얼굴위로 살짝 조소섞인 미소가 어렸다. 계급낮은 마족의 아이에다가... 눈까지 보이지..않는다....? 결국 결론은 윤호님께서 저 반반한 얼굴보고 데려오셨단건데.......... 왠지 여자인 자신보다도 더 고결해보이는 저 순진해빠진 아름다움이..자꾸만 날카롭게 한쪽 신경을 긁어대고 있었다. 입술끝을 올려 비틀린 웃음을 지어보인 유리가 그들을 비켜지나간다. "..그래.....가보거라." "휴우.." 그대로 자신들을 비켜나는 유리를 지켜보며 환희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막 흘러나올 때였다. 턱-----!!! "...???" 자신의 몸이 비틀거림과 동시에 뒤에서 휘청이는 재중의 몸이 느껴졌다. 뭐지..?!!! "앗!!!" 그리고 환희가 뒤를 채 돌아보기도 전에... 짧은 외마디를 지르며 곧 비틀거리고 고꾸라지는 재중의 몸에 환희의 두눈이 놀란듯이 커다래졌다. "재중님!!!" 푸웅덩------ 하지만, 이미 재중을 불렀을때 그는 이미 저 차가운 호숫물에 빠진후였다. "푸웃!!!" 허우적_ 허우적__ "재중님!!!!!" "어머!!" 옆에서 유리도 놀란듯이 외마디를 질렀고, 아무도없는 돌다리위에 놀라서 당황한듯한 환희의 비명만이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졌다. ~~~~~~~~~~~~~~~~~~~~~~~~~~~~~~~~~~~~~~~~~~~~~~~~~~~~~~~~~~~~~~~~~~~~~~~~~~~~~~~~~ [게하/자작] 미 열 (美 熱) 11편 조회 : 3,183 이름 : 아게하 작성일 : 2001/12/12 오후 8:25:34 URL : 없음 내 지금에 부족한것이 과연 있을까..? 이 대지가.... 그리고 저 하늘이..나에게 아직도 내려주지 아니한것이..과연 있는가. 모두를 얻은듯하나 가슴 한구석이 공허한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 미 열 (美 熱) 11편 - "재중님!!!" 환희의 목소리가 넓은 호숫가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후읍!!!" 물에 빠진 재중이 별다른 비명도 못지르고 허우적대고 있었다. "얘 지연아. 어서 사람을 불러오거라.." 환희의 옆에있던 유리가 시종 지연에게 조용히 말하자 곧 자리를 뜨는 지연였다. "재중님!! 어떻게해!!!" 환희가 주변을 둘러보며 발을 동동굴렀다. 주변에 누구라도 있었으면 좋겠건만, 이미 원로회에 들어간 계급높은 마족들을 비롯해서 지나가는 사람도없는 시간대였다. 하긴..이곳은 마족중에서도 으뜸인 귀족들만 있는곳이니..대지가 넓은만큼 사람도 뜸한곳였다. "뭘그리 서두르느냐..지연이가 사람을 부르러 갔지않아..?" 유리가 그런 환희를 바라보며 걱정스런 얼굴로 살며시 대꾸했다. "......" 환희가 인상을 팍..구기겨 유리를 재빨리 째려봤다. 얼굴은 아름다운 이여자의 비틀린 심보를 어찌 자신이 모를까.. "재중님!!! 제 손을 잡아보세요!!!" 다급한 환희가 수영도 못하는 스스로를 속으로 나무라며 돌다리 밑으로 엎드려 내친김에 손을 쭈욱 뻗었다. "..푸웃.....하..읍...." 하지만, 환희의 외침은 듣지도 못한건지 재중은 연거푸 물을 들이키며 아래로 가라앉으려는 몸을 버둥대고있었다. 두려웠다. 난생처음 이런 두려움은 처음였다. 발은 아무리 발버둥쳐도..안착할수있게 닿는곳이 없었고, 손은 아무리 내저어도 허공뿐였다. "..흐읍..." 점점 몸이 무거워지고..팔다리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형...!! 유천형.....!!! 언제나 자신을 곁에서 지켜주던 유천이 불현듯 떠오른 재중은, 안보이는 이 칠흑같은 공포속에서 연거푸 그를 생각해내며 첨벙이는 물에 매달렸다. 하지만, 이내 자신을향해 뭐라고 소리치는 환희의 목소리도 조금씩 사그라들고... 귓가에는 이내 윙윙거리며 위험을 알리는 경보소리만 울려퍼졌다. 그리고 곧바로 힘이빠지다못해 뻐근한 팔다리가 축저짐과 동시에 그만 물속으로 머리끝까지 잠기고마는 재중였다. 물이란것이...이리도 무서운 것였어...... "재중님!!!!!" 환희가 물속으로 아예 가라앉아버리는 재중을 바라보며 쇠된소리를 질렀다. 이대로 있다간..!!! 환희가 자신의 웃옷을 벗어제끼며 어떻게 되든지간에 극단적으로 뛰어들려고 마음 먹을때였다. 순간 유리와 자신의 옆을 쌩하니 지나쳐 물속으로 뛰어드는 누군가. "...!!!!!" 죽기살기로 뛰어드려 폼잡았던 환희의 얼굴위로 놀라움이 스쳐지나갔다. 풍덩-----. 물속으로 뛰어들어 빠르게 깊은 바닥으로 잠수하는 누군가의 바짓자락이, 수면위로 잠시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누..누구야..." 환희가 우선 누군가 뛰어들었다는 그 안도감에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아마도 일말의 다급했던 긴장감이 풀려버린듯했다. 유리도 물속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눈쌀을 찌푸렸다. 첨벙-----. 얼마나 있었을까...?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않아 수영에 능한사람인듯, 곧 수면위로 얼굴을 내보인 그가 한팔로 축 늘어진 재중의 목을 감싸고 호숫가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환희와 유리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창민님.." 그리고 환희의 입에서 터져나온 그의 이름... "이리와서 좀..도와줘." 창민라 불린 그가 재중을 바닥에 급하게 눕히며 환희를 불렀다. "네!!!" 순간 멍한 표정을짓고있던 환희가 곧 창민가있는곳으로 달려갔다. 창민이 물에젖은 자신의 머리를 흔들어 물방울을 털어냈다. "체온이 많이 떨어진것 같아. 팔다리 좀..주물러." "네!" 환희가 창민의 말에 급하게 재중의 굳어버린 팔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환희가 팔다리를 주무르고 있는동안 창민은 재중의 배를 두손으로 힘껏 꾸욱꾸욱 세게 눌러댔다. "재중님..정신좀 차려보세요!!" 환희가 걱정스런 눈으로 재중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의 손발을 주물렀다. 그리고..창민이 일정한 간격에 맞추어 재중의 배를 계속해서 내리누른지 얼마나 되었을까...? "흐읍!" 재중의 입에서 순간 헛구역질이 터져나왔다. "재중님?" 그소리에 환희가 재중을 깜짝 놀란눈으로 바라보고 창민도 그의 배를 누르던 손길을 멈췄다. "..우욱..." 재중의 창백한 얼굴이 옆으로 돌아가며 삼켰던 물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콜록, 콜록.." 심하게 기침을 해대는 재중의 몸을 일으켜 앉히며 창민이 그의 등을 두드렸다. "흐웁...쿨럭.." "재중님!" 환희가 재중의 곁에 바짝 다가서며 그의 안색을 살폈다. "괜찮아..인공호흡할정도의 상태는 아니었으니까.. 깨끗하게 삼킨물만 토해내면 숨쉴수있는 여력이 생겨." 창민이 눈쌀을 찌푸리고있는 환희의 머리를 자신의 손으로 헝크렸다. "하아...하...." 어느정도 물을 토해냈는지..재중의 입에서 가뿐숨이 터져나왔다. "재중님..괜찮으세요...?" 환희의 걱정어린 말이 들리는지 안들리는지..숨을 고른 재중이 힘없는 몸을 늘어뜨리며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하..아....흡....." "재중님..?" 창백한 얼굴을 한 재중이 추운지 어깨를 떨어대며 조금씩 흐느낌을 높여갔다. "..흐윽...흡...." "많이 놀란 모양이다. 이분이 머물고있는 거처로 향하자." 창민이 불안하게 몸을 사시나무떨듯 떨어대는 재중을 번쩍 안아들었다. "이쪽입니다 창민님." 환희가 곧 앞장서며 창민을 인도했다. 재중을 가볍게 안아들고 빠른 걸음을 향하는 창민와,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 옆을 우두커니 지키고있던 유리의 눈빛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 "......" 순간 짧게 지나간 어두운 침묵속에서 먼저 눈을 돌리고는 환희뒤를 쫒아간것은 창민였다. "흐읍...흑...." 꽤나 추운지 이빨을 맞부딪히는 재중을 바라보며 창민의 마음도 덩달아 다급해졌다. 그런데..누구지...? 이곳에서는 보지못한 얼굴인데............. "들어오세요 창민님!!!" 흐느끼는 재중을 바라보며 걷고있던 창민이 환희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앞을 바라보던 창민이 발걸음을 안으로 들이려다말고 놀란듯이 환희를 바라봤다. "이곳은 윤호의 거처가 아니냐..." ~~~~~~~~~~~~~~~~~~~~~~~~~~~~~~~~~~~~~~~~~~~~~~~~~~~~~~~~~~~~~~~~~~~~~~~~~~~~~ [게하/자작] 미 열 (美 熱) 12편 조회 : 3,170 이름 : 아게하 작성일 : 2001/12/12 오후 8:26:49 URL : 없음 내 지금에 부족한것이 과연 있을까..? 이 대지가.... 그리고 저 하늘이..나에게 아직도 내려주지 아니한것이..과연 있는가. 모두를 얻은듯하나 가슴 한구석이 공허한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 미 열 (美 熱) 12편 - 안절부절.. 윤호가 발걸음을 방안 이곳저곳으로 옮기며 환희와 재중의 그림자를 찾았다. 원로회의가 끝나자마자 내달려서온 윤호였다. 당연히..재중이 자리에 있을줄 알았는데... 문을 열자마자 윤호를 반긴건 연초록의 모습이아닌 싸늘함이 담긴 방안 공기였다. 도대체 어디간거야. 윤호의 미간이 찌푸려들었다. 눈이 안보이는 아이라 자신의 충실한 몸종인 환희까지 붙여줬건만... 그런데 방에 들어와보니 둘이 몽땅 없어진 것이다. 내가 꼼짝하지말고 자리에 있으라고 당부까지 했건만... 자신의 말을 어긴 재중에게 슬쩍..분노가 치솟는 윤호였다. 그렇게 잠시 방안에 깔려있는 붉은 카펫위를 왔다갔다 서성인 윤호가 그들을 찾을 심산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할때였다. 벌컥-----. 갑자기 열려버린 문에 놀란눈을 치켜뜬다. "유, 윤호님..." 문으로 들이닥친 환희가 앞에 우뚝 서있는 윤호을보고 깜짝 놀란듯 입을 쩌억 벌렸다. 그리고...느껴지는 윤호의 화가난 눈빛. "누가..마음대로 나가라고했지...?" "저..저기.." 환희가 매서운 윤호의 목소리에 우물쭈물할때였다. "환희야 비켜봐!" 우두커니 윤호의 기세에 쫄아서 멀뚱이 서있는 환희를 밀치며 창민이 들어섰다. "...!!!" "...!!!!" 그리고 순간 마주친 윤호와 창민의 눈동자. 무거운 정적감이 방안을 감쌌다. 말없이 숨소리만 들리는 짧은 시간이 지나고....... 환희뒤에 따라들어올 재중대신 느닷없이 등장한 창민의 모습에 윤호에 눈동자가 한동안 움직임을 멈췄다. 잠시후..서서히 내려서는 윤호의 눈동자가 창민의 품에 안겨있는 재중에게로 향했다. "흐..읏....하아...." 창민의 옷깃을 꼭 붙들고있는 모습. "무슨..일이지....?" 윤호의 목소리가 급격하게 낮은톤으로 깔리며 차가운 눈빛으로 창민을 바라봤다. 물론 질문은 환희에게 하고있었지만... "저..저기 윤호님.... 재중님께서 호숫가로 바람쐬러 가셨다가 물에 그만 빠지셨습니다. 많이 놀라신것 같아요..." 환희의 말에 윤호가 순간 놀란눈을 하더니만, 곧 창민의 품에안겨있는 재중을 안아들어 자신의 품으로 옮겨왔다. 그리고는 침대가로 그를 다급하게 눕혔다. "괜찮아..?" 윤호가 무뚝뚝한..그러나 어찌들으면 걱정어린 말투로 재중에게 물었다. "흐읍...히끅.." 훌쩍이던 재중이 윤호의 목소리에 어깨를 움츠리며 그의 목소리가 들린곳을 바라봤다. "추..추워..요..." 파랗게 질린 입술이 안쓰러웠다. "환희야! 빨리가서 의원을 불러와라!" "네..!" 환희가 뛰어나가자 윤호가 곧 재중의 젖은 옷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체온변화가 심한것같아." 창민이 윤호에게로 가까이 다가와서 말을꺼냈다. 재중의 옷을 재빨리 벗겨내며 윤호가 창민를향해 중얼거렸다. "너 또 원로회의에 참여안했어..." "아..미안. 가려고했는데..." "자꾸 빠진다면 친구고뭐고..없어. 친분과는 상관없이 회의에 참여하는 자격도 박탈하겠어." 창민의 변명에 윤호가 단호하게 말을꺼냈고, 그런 윤호의 성격을 잘 알고있는 창민인지라 그저 피식 웃어버렸다. "이 아이...네가 데려왔다던 마녀족아이냐..?" 창민의 물음에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윤호가 멀뚱이..서있는 창민을 돌아보며 경계심어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 "구해준건 고마워. 그런데 언제까지 거기서서 이 아이의 맨몸을 보고있을건지..궁금한데..?" 장난끼가 어린듯 보이는 말투지만, 쳐다보는 눈빛에는 섬찟함이 서려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못말리겠다는듯 고개를 설레설레 뒤흔드는 창민였다. "그래, 그래...니 소유욕을 누가 말리겠냐...나간다." "어, 그래." 윤호가 창민을 곁눈질로 대충 바라보고는 다시 시선을 재중에게로 옮겼다. 그 모습에 창민이 살짝 눈쌀을 찌푸렸다. 꼴을 보아하니..요번 그아이는 네 흥미를 한참이나 끌겠구나... 그만큼..아름답긴 하지만말야... 그래도..천하의 정윤호이니..얼마나 갈지는 장담 못하겠는걸..? 재중이란 아이가 떨고있는것이 보기싫은듯 윤호의 입술이 단일자로 다물려진것을보며, 창민의 입가에 비스듬한 웃음이 걸렸다. 쿵-----. 드디어..창민이 나가자 쥐죽은듯 조용해지는 방안. 재중이 호숫가에서 몰고온 기운인지..방안에도 찬기운이 한가득이다. 내가 돌아다니지말라 일렀는데... 조금 화가난듯 눈썹을 일그리며 윤호가 재중의 머리칼을 시원스레 넘겨주었다. "..너무...추워..요..." 바들바들떠는 재중을바라보고는 문쪽으로 시선을 다시한번주는 윤호였다. 이녀석은 의원을 부르러가서 뭐하는거야. 괜히 애꿎은 환희를 마음속으로 꾸짖으며 재중의 벗은 몸을 찬찬히 내려다보던 윤호였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재중의 손을 꼭 잡아보고는 그의 가슴에 자신의 손바닥을 얹어보기도한다. 차가웠다. 그래도 웬만한 사람이라면, 물에 빠지는 정도갖고 이렇게 심하게 반응할리가 없을텐데..... 다른이들보다 조금은 더 특별하게 모든것에 예민한듯했다. 그런 생각이 미치자 순간 스치는 영상... 눈같은..아이..... 필사적으로 재중을 지켜내려던 유천의 얼굴이 생각났다. 윤호가 파랗게 질려버린 재중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곧 앉아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자신의 허리에 둘러져있던 비단 허리띠를 풀러낸다. 그로인해 느슨해진 웃도리의 매듭을 풀어내자 그의 단단하고 하얀가슴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밤에..안으려했건만... 어디 이리약해서..날 받아낼수나..있을지... 윤호가 무표정한 얼굴을 일관한채 자신의 옷을 다 벗어내고는 침대에 올라서서 재중의 곁에 누웠다. 그리고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재중의 몸을 든든한 팔로 당겨서 끌어안았다. "..하아..." 따뜻한 윤호의 몸에 순간 움찔했던 재중이 곧 순순히 안겨오기 시작했다. 매끄러운 살들의 마찰..... "이렇게나 약하지는 말아라... 난 약한녀석들은 딱 질색이야....." 윤호가 재중의 귀에 낮게 읍조리며 그의 목덜미에 뜨거운 입김을 불어넣었다. "하아...우웅..." 웅크렸던 몸이 점점 펴지는듯한 느낌... 윤호의 품이 따뜻한걸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는지, 그의 품으로 좀 더 파고들어보는 재중였다. 그런 그를...윤호은.. 뿌리치지 않는다... . . . 생전 처음보는듯한 윤호의 생소한 표정 하나하나에 황당한듯 웃음을 지어내던 창민이 그의 처소를 빠져나와 자신의 거처로 들어서려 할때였다. "......." 자신과 같은 건물내에 방이있는 유리가 입구에서서 창민을 바라보고 있는것이 아닌가.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창민이 방금전까지만해도 서글서글함을 담아내던 눈빛을 날카롭게 빛냈다. 아무말없이 막 그녀를 지나가려하던 찰나... 창민의 귓가로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 "그 아이는 괜찮나요 오라버니..?" 유리가 슬며시 눈을 내리깔며 창민를향해 묻자 창민이 발걸음을 멈추며 조소섞인 미소를 지었다. "다음부턴 그런 악독한 장난은 그만두지그래. 고운얼굴에 어울리지않게 보기안좋으니까." 순간 창민의 말에 유리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버렸다. 약해보이는 그아이를 자신이 발을걸어 떠민것을 봤단말인가? 뻣뻣하게 굳어있던 유리의 표정이 이내 여유있게 풀어졌다. "어찌됐건 오라버니가 구해냈고, 그런일에 사람은 쉽사리 죽지않아요." 자신의 '이복여동생'이 똑똑히 내뱉는 사악한 말에 창민은 쓴 웃음을 지어냈다. "그아이는 건드리지말아. 여태껏 윤호가 곁을 맴돌았던 다른아이들과는 좀 다른것 같으니까 말이야." "그래봤자, 그리 오래가진 않을테지요..." 오렌지빛 입술꼬리를 말아올리며 비웃는듯 미소짓는 못된성격은 같은 아버지에게서 피를 이어받았지만, 성품만은 닮지못했나보다. 신분의 차이와 태어난 태생이 다른 둘은 한명의 아버지를 두고도, 극과극의 성격탓에 남남이라하면 차라리 낫지..쉽사리 남매라 느껴지지않는 사이였다. 그나마 윤호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유리의 마음에 그녀의 독한 성품에도 별말않하고, 그저 참고있던 창민가었다. 윤호앞에서만은 순한양이되는 그녀이니까..... 고양이처럼 동그란 눈꼬리가 살짝 올라간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유리를 뒤로하며, 창민이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을건내고는 걸어갔다. "니 못된성격에 나도 한계에 다다르려해. 조심하는게 좋을꺼다." 창민의 마지막 한마디에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유리의 입술이 앙다물리며 예쁜얼굴이 일그러졌다. ~~~~~~~~~~~~~~~~~~~~~~~~~~~~~~~~~~~~~~~~~~~~~~~~~~~~~~~~~~~~~~~~~~~~~~~~~~~~~ [게하/자작] 미 열 (美 熱) 13편 조회 : 6,017 이름 : 아게하 작성일 : 2001/12/30 오후 4:17:25 URL : 없음 내 지금에 부족한것이 과연 있을까..? 이 대지가.... 그리고 저 하늘이..나에게 아직도 내려주지 아니한것이..과연 있는가. 모두를 얻은듯하나 가슴 한구석이 공허한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 미 열(美 熱) 13편 - "이쪽이예요!! 빨리, 빨리요!! 설마 윤호님 성격을 모르시는건 아니죠?" 자신의 뒤에서 최대한 빨리 뛰어오고있는 의원을 바라보며 환희가 협박어린 어조로 재촉을 해댔다. "하아.하.. 지금 열심히 뛰어가고 있지않냐!!!" 숨이 꽤나 가뿐 모양인지 연신 빠른 숨을 내뱉는 선호였다. 이선호. 부드러운 얼굴선을가져 어리숙하게 생겼지만, 꽤나 순진해 보이는 이 사람은 이 마을에서 윤호도 인정하는 의원중에 명 의원였다. 나이는 비록 어려도 할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서인지..의술만큼은 뛰어난 그였다. 왠지 허약해 보이듯 조금은 마른 그가 작고 재빠른 환희를 따라오려니.. 여간 힘든게 아니였다. "윤호님이 너무 늦게 왔다고 화내실지도 몰라요~!" 드디어 윤호가 머무는 거처까지 다온 환희가 뒤에서 숨을 고르고있는 선호를 보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리고는.. 벌컥-----. "윤호님!!! 의원....." 급하게 문을열고 들어서려는 순간... "....." 그만 말소리를 뚜욱 끊어버리고 그자리에 딱딱하게 몸을 굳혀버렸다. "......." 멀뚱..멀뚱..문을 열고서는 가만히 서있기만하는 환희가 이상했는지 선호가 뒤에서 그를 재촉했다. "급하다면서 안들어서고 뭐해?" 쾅-----!! "....." 선호의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문을 닫고 돌아서는 환희였다. "...???" 그런 환희의 행동에 선호의 눈이 의아함으로 둥그레졌다. "..하..하하.." 선호의 둥그런 눈을 마주하던 환희가 순간 붉어진 얼굴을 하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죄..죄송한데여..들어가보실 필요..없으실꺼 같습니다.." "엉?? 급하게 부를땐 언제고..." "죄송하다니까여~~~" 슬쩍 웃고 넘기려는 환희를 선호가 조금은 화가난듯 뭐라 다그치려했지만, 등을 떠다미는 그로인해 벌써 걸음은 옮겨지고 있었다. "죄송해요 선호님..하지만, 방금 문을열었을때는 선호님이 필요없게됐다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뭐???" 환희가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선호의 등을 떠다밀어 윤호의 거처에서 반 강제적으로 내쫒듯이 밀어냈다. 그런 환희를 선호는 기가찬듯 바라볼 뿐였다. 환희가 귀엽게 선호를향해 빙그레 웃었다. 하지만...그 웃는속을 누가알까...? 문을 열었을때 잠이든듯 보였던 예쁜 두사람의 실루엣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다는걸..... 윤호님의 편히잠든 모습 꽤 오랜만에 뵙는듯..하였는데... 마치..초야를 치룬 사람들처럼..그 둘은 그리도 곤히 피곤에 지친듯 자고있었다. . . . 덜커덩-----. 여전히..아침이되자 어김없이 걸어들어오는 녀석. 이곳에온지 벌써 며칠째 한결같은 모습만 보여주는 녀석였다. 옅은 하늘빛 비단 옷자락이 나풀거리며 허리춤을 예쁘게 감싸여있는것이 그의 몸이 얼마나 여린것인지 알 수 있게해준다. 비단끝자락 밑으로 보이는 단아한 발걸음과 앙증맞은 작은 신발. 그 발끝을 유천은 조용히 눈으로 뒤쫒았다. "안녕하세요..준수님.." 감옥에 갖혀있는 사람들이 준수을보며 인사를 했지만, 유천만은 여전히 입술을 꼬옥 다문채 그에게 신경조차 쓰지않고 있었다. "네~ 잘들 주무셨나 모르겠어요..어젯밤엔 조금 쌀쌀했는데... 이곳이 습기가 많이드는 곳이잖아요.." 준수가 하얀얼굴에 어울리는 투명한 미소를 지어내며 주위를 둘러봤다. "준수님이 저희들께 어제 갖다준 모포들이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감사할 따름이지요..." 어젯밤 자신이 가져다준 모포에대해 감사인사를 들으며 준수가 환하게 웃고는 고개를 부드럽게 끄덕여 인사했다. 그리고는 곧 옆의 시중드는 시녀에게서 음식을 받아들고는 그들에게 감옥 창살 너머로 직접 식사를 건내기 시작했다. 그런 준수를 유천이 가는눈을 뜬채 지켜본다. 며칠동안 살펴본 결과... 유천과 똑같이 마녀족인 이들은 준수의 따뜻한 마음에 그를 상당히 신뢰하는 눈치였다. 모든 마족들을 증오하는 소리를 지껄이다가도 준수가 식사를 가져올때쯤이되면.. 하나같이 입을 다무는걸보면... "....." 조금씩..조금씩..맨 끝쪽에있는 유천에게 식사를 전해주는 순간이 다가오자 준수의 웃고있는 얼굴이 긴장으로인해 살며시 굳어졌다. 내가..건내준 모포를 덮고 잤을까...? 마족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그인데............. 두근..두근... 이상하게도 두근거리는 심장만큼이나 발걸음이 급해지면서도..빨리 유천의 얼굴을 한번 더 보고자하는 자신이 신기할 따름였다. 그를 처음대한것이..며칠이나 됐다고.........게다가 첫날부터 자신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거부감을 나타내던 그가 아닌가... 아직도 자신이 식사를 건내는것을 싫어하는 그인걸 아는데도.. 그 사나운 눈이..문득 이 시간만되면 슬며시..보고싶은것였다. 드디어 유천에게 아침식사를 건낼수있는 순간이오자 슬쩍..뒤로 물러서는 준수였다. 다른 모든 마녀족 사람들은 다행스럽게도 자신을 꽤나 좋아해주며 손으로 직접주는 그릇을 받아들지만, 유천만은 달랐다. 자신이 건내주는것은 어떤것이든 받지않는다. 그래서 시중에게 유천의 밥그릇을 넘기며 뒤로 슬쩍 물러난 준수이였다. 여시중이 유천에게 그릇을 내밀었다. 유천이 시중뒤에 서있는 준수에게 잠시 눈길을 두었다가 이내 돌렸다. 물론 어떤것도 마족들이 내미는건 받고싶지 않은그였지만, 죽지않기위해선.. 먹어야한다. 여시중이 그나마 같은 마녀족이란 이유가 유천에게는 거부감이 덜들게 하는것였다. "여기." 여시중이 내미는 그릇을 못내 받아들며 그녀의 곁에 쭈뼛하게 서있는 준수에게로 다시 눈길을 돌려본다. 그러자 유천에게 말을 건내는 여시중. "그렇게 째려보지 말아요...우리 준수님 아무죄도 없는데 그렇게 잡아먹을듯 노려볼껀..뭐람.." 자신의 말에도 불구하고 준수를 계속해서 바라보는 유천이 못마땅한지 그녀가 한마디 더 덧붙인다. "준수님께 잘보여둬요...마음도 착하실뿐더러 화가난 윤호님을 그나마 말리실수 있는분은 준수님뿐이니까..." "그런말 그만둬 소진아." 유천에게 계속 뭐라고 낮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것인지 여시중의 이름을 부르며 준수가 당황한듯 낮게 꾸짖었다. "예....알았어요..준수님." 준수의 말에 소진이 입술을 살짝 삐죽이며 고개를 숙였다. 소진의 말을 가만히 듣고있던 유천이 자신을 겁먹은 눈으로 바라보는 준수와 눈을 맞췄다. 두근. 이놈의 심장이 또 두근거려... 이상하게도..... 준수는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옅은 갈색눈동자에 마른침을 삼켰다. "..저...." 준수가 슬쩍 눈을돌려 유천의 곁에있는 모포를 쳐다봤다. 자신이 내어준 그대로 모포는 깨끗이 개어져있었다. 덮고자지 않은것이 틀림없어... 작은 한숨을 내쉬며 준수가 조심스레 다시 말을꺼냈다. "..저...기...... ..저를 싫어하는건 알지만..건내준 모포는 밤에..꼭 덮어요... 습기가 많아..벽이 축축해져요..." 떠듬떠듬꺼낸 말을 추스리며 점점 유천의 눈빛에 목소리가 사그라든다. 탁-----. 준수의 말을 듣고있던 유천이 손에있는 밥그릇을 옆으로 밀쳐놓고는 편한자세로 거만하게 앉았다. "....." 그리고는 갑자기 검지손가락을 까닥이며 준수에게 자신쪽으로 다가오라는 의사를 전했다. "...???" 그런 그의 모습에 준수는 믿지못하겠다는듯이 두눈을 동그랗게 치켜떴다. 자신이 주변에 서있는것도 매섭게 쳐다보던 유천인데...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한다? 계속해서 까닥이는 손짓에 준수가 곁에 서있던 소진을 뒤로 물리고는 용기를내어 한발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애써 무시하며 작은 분홍빛 입술을 열었다. "저기...왜.........허억!!!" 철컹-----! 순간였다. 한발걸음 다가온 준수의 팔을 유천이 철창사이로 손을뻗어 낚아챈것은!! "..흐읏..." 깜짝 놀란눈을 들어 바로 코앞에있는 유천을 바라보며 멈출것같은 숨을 내뱉는 준수였다. "너..너 준수님께 무슨짓이야!!" 준수의 여린 팔을 잡고있는 유천을 바라보고는 곁에 서있던 소진이 경악했다. 바로 숨결이 닿을것같은 거리... 화가난듯한 유천의 거친 숨소리가 준수의 얼굴에 와닿았다. 두려움을 가득담은 맑은 동공이 유천의 얼굴을 겁이나는듯 바라보고 있었다. "이..이거놔요..." 겨우 내뱉는 말이란 우습게도 작은목소리의 가녀림. 그런 준수의 말을 무시하듯 유천은 빠르게..그리고 낮게 속삭였다. "윤호이라함은 그 붉은머리를 말하는것이맞지..? 너희들의 족장말이다." 유천의 물음에..준수가 잔뜩 굳은 얼굴로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준수의 무언의 대답에 유천이 계속 자신의 말을 였다. "그새끼가 데려온 마녀족아이가 있을꺼다. 그아이 내동생이야." "...!!!" 준수의 눈이 유천의 말에 다시한번 놀란듯이 커다래졌다. 분명..윤호가 며칠전 데려온 마녀족의 아이가 있다고 듣긴 들었었다. 찾아가보진 못했지만... "니가 그 새끼와 친분이있다면..이번 한번만 부탁하겠어. 그아이....내...동생...잘있는지..살펴봐줘." 다급한듯 말하는 유천의 목소리에 준수가 떨리는 눈빛을들어 겨우겨우 그의 두눈과 마주했다. "...!!!" 그리고는............. ...심장을 멈출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거만한듯..자신을 비웃는듯 조소섞인 눈길을 주던그가..갑작스레 이렇게 다급함과 애처로움이 담긴 눈빛으로 자신에게 부탁을하다니... 동생이란 그 아이에 대해서........... ..그는 이런 반응을 보이는가 보다........... "말했어..이번 한번만 부탁하겠다고!" "..흣..." 자신의 말에 아무 대답도없는 준수의 팔을 더욱 세게 붙잡으며 유천이 경고성이 띈 목소리로 재촉했다. 다시 사납게 변해버린 유천의 눈빛을보며 준수가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자.. 곧 그를잡고있던 팔을 풀어버리는 유천였다. 그 힘에 준수가 뒤로 살짝 밀려나고 그 모습들을 바라보고있던 소진이 준수에게 달려갔다. "준수님 괜찮으세요!! 감옥관을 부르겠어요!!!" "그만둬..소진아...괜찮아.." 화가많이 난듯 보이는 소진을 제지하며 준수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자신을 갈색의 깊은 심연으로 단호하게 바라보는 유천을 살며시 돌아봤다. 그에게 잡혔던 팔이 아려오며.....후끈거리기 시작했다. ~~~~~~~~~~~~~~~~~~~~~~~~~~~~~~~~~~~~~~~~~~~~~~~~~~~~~~~~~~~~~~~~~~~~~~~~~~~~~~~~ [게하/자작] 미 열 (美 熱) 14편 조회 : 5,011 이름 : 아게하 작성일 : 2002/01/04 오후 7:19:27 URL : 없음 내 지금에 부족한것이 과연 있을까..? 이 대지가.... 그리고 저 하늘이..나에게 아직도 내려주지 아니한것이..과연 있는가. 모두를 얻은듯하나 가슴 한구석이 공허한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 미 열(美 熱) 14편 - 따끔..따끔... 아무것도 안보인지..태어날때부터 정해진 일이라..익숙해질만도 하건만.. 이 따가운 햇살이 두눈을 찌르는것은 여지껏 적응안되는 일였다. 감긴 눈안으로도 아침햇살은 너무나 자신을 괴롭히는 것였다. 결국은...슬쩍 몸을 틀어본다. "후우우웅~~~" 고양이가 기지개를 피듯..가는 신음성섞인 목소리로 몸을 쭈욱 늘려보는 재중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곁에 누군가있는 느낌에 손을 앞으로 내밀어본다. 살짝... 조심스레 손을뻗어 그끝에 닿은 느낌이란것은 단단한 따뜻함였다. 그제서야...모든것이 가물거리며 기억이 난다... 물속에 바보같이 풍덩 빠져버렸던 자신을............ "..후우...." 곁에서 버둥거리며 자신의 가슴을 톡톡 건드리는 재중때문일까...? 윤호도 비척비척 손을 들어올려 자신을 비추는 햇살을 막아보고자 움직였다. 그러다가..어느순간..앞에서 계속해서 꼼지락 거리는 그 느낌에 눈을 번쩍 뜨고만다. "일어난거.. 맞죠...?" 귓가를 아련하게 울려오는 작은 미성. 윤호가 곧 상체를 일으키고는 아직도 잠에서 깨지않은 몽롱한 정신을 추스리려는듯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가슴을 간지럽혔던 장본인인 재중을 바라봤다. 앞에서..환하게 웃고있다... 여지껏 수많은 잠자리를 다른 사람과 같이했어도..자신의 곁을 허용한 사람은 없었는데..... 지금은 그 자리를 턱하니 재중이 차지하고있었다. 그것이 그리..기분나쁜 일은 아니다만..... 예쁜......아이니까..... 어쨌든 윤호는 지금 재중을 신기한듯 바라보고 있었다. 물에 빠져서 온후로...재중은 꼬박 이틀밤을 잠만 잤다. 처음엔 무슨일이라도 생긴줄 알고는 환희와 함께 내심 놀란 윤호였지만, 어제 왔다간 의원 선호의 말에 안심하고있던 차였다. 아무이상도 없다는 그말에...그리 안심이란 기분을 느껴본것또한 처음있는 일. 게다가 그냥 죽은듯이 잠만자던 아이가 갑자기 오늘 아침에 두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툭툭쳐대는통에, 놀라버린 스스로가 웃겨 피식..입가를 말아올리는 윤호였다. 애써..데려왔는데..무슨일이라도 생긴다면..내 손해지... "저기..저...물에 빠진것까진 생각이 나는데...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된건지...." 윤호가 한동안 아무말도없자 이내 재중이 슬쩍 조심스레 말을 건내본다. 그런 재중을 바라보던 윤호가 자신의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내가 그때 분명히 꼼짝말고 나가지 말라고 했었을텐데...?" "...!!!" 낮게 깔린 윤호의 말에 재중이 당황한듯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윤호가 있는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치..앞이보이는듯..자신이 어디 위치에 있다는것을 잘도 간파하고있다. 그렇게 재중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게된 윤호가 비꼬듯이 계속해서 그를 꾸짖었다. "분명히 니멋데로 하지않겠다고 나랑 약속하지 않았나..?" 윤호의 화가난듯한 말소리에 재중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그랬지만......" 뭔가 말대꾸를 하려는 재중이 마음에 들지않다는듯이 윤호의 인상이 더 찌푸려들었다. 자신이 뭔가를 꾸짖을때 모든이들이 그러하듯 그냥, '용서해주십시오' 또는 '죄송합니다'라는 단 한마디만 내뱉으면 될것을 이 아이는 모두 토를 달고있었다. "니가 잘못해서 생긴일이야. 난 분명 나가지 말라고 명.령.했고, 넌 그걸 어겼어. 앞도 보이지않는 주제야 돌아다니니까 사고를 당한거다. 알아듣겠어..?" 윤호는 내심 재중의 입에서 잘못을비는 말을 기다리며 인내심을 갖고 차근차근 낮은 목소리로 열심히 그의 잘못을 설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밖에...." 재중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결코 잘못을비는 말이 아니었다. "..밖에 너무나 나가고 싶어요..윤호." 꼼지락..꼼지락.. 두 손가락만 그저 꿈틀꿈틀..만지작대며 재중은 작게 속삭인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는 작은 입술로 무언가를 바라는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말하는 모습에 윤호는 찌푸리고있던 얼굴을 도로 폈다. "..후..." 마치 아기같은 녀석한테 무슨말을할까..? 꾸짖는 자신이 죄를지은냥..당황스러워져 버린다. 아무리 매섭고 잔인한 성격의 윤호이라해도 순수한 꼬마아이들한테는 그 성격이 조금은 죽는법. 실제로 윤호는 마녀사냥을 다닐때에도 마을에있는 어린아이들은 그냥 생포하는 경우가 많았다. 윤호가 고개를 푹 숙이고있는 재중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조목조목한 얼굴 생김새 하나가 이리도 아름답고 도발적인데반해... 성격은 멋모르는 철부지 아이같으니... 처음으로 난감한 표정이 윤호의 얼굴위로 스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재중에게 차가운 경고조로 말을 건낸다. "니가 내것인만큼 넌 내말에 절대순종이야. 알아듣겠어? 설마 이 말도 못알아 듣는건 아니겠지?" "......." 자신의 말에 아무대답도 꺼내지않는 재중을 윤호가 뚫어지게 바라봤다. 윤호의 말에 곧장 대답을 하지않고 잠시 침묵을 지키고있던 재중이 머뭇거리며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밖에...나가고 싶어........ 코밑을 간지럽히는 나무와 흙향기가 맡고싶어... 문득 윤호처럼 자신을 나가지 못하게했던 유천이 떠오른다. 그렇게나 밖에 내보내길 꺼려한 자신의 형 유천조차도 온전히 이해하기에 재중은 모르는것이 너무많았다. 어쨌든 자신의 말에 그제서야 긍정이 뜻을 내비친 재중의 머리를 윤호는 자신도 모르게 쓰다듬었다. 쓰다듬는다 표현하기보단 헝크러뜨리는게 맞을정도로 따뜻한 손길은 아니었지만, 윤호 나름대로의 칭찬 방법였다. "밖에나갈때는 나 아니면 환희랑 함께야. 알았어?" 윤호가 침대위에서 내려서며 주섬주섬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침대맡에 시종이 놓고간 물로 얼굴을 닦아냈다. "..네.." 재중이 살포시 대답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윤호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난 오늘 마을 정찰을 돌다가 돌아올꺼다. 저녁때나 들어올수 있을꺼야." 간단하게 말을끝내며 윤호가 막..밖으로 나서려고 할때였다. 똑똑----- 정중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윤호가 걷던 걸음을 멈추고는 그자리에 우뚝섰다. "누구냐." 낮은 목소리로 상대방의 신분을 묻자 곧 들려오는 고운 목소리. "윤호아..나..준수.." 준수의 목소리에 윤호의 얼굴에 곧 옅은 미소가 서렸다. 그리고는 문밖 시종이 문을 열어주기도전에 직접 걸어가 문을 연다. 달칵-----. 문을열자 황금빛 부드러운 머리칼로 양볼을 살짝 감싼 준수가, 방긋 웃으며 서있는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뭘했길래..코빼기도 안비친거야." 윤호의 장난섞인 말에 준수가 키득거린다. "미안. 이래저래 할일이 많았어. 요근래 니가 데려온 마녀족 사람들이 많잖아.." 준수의 말에 윤호가 양미간을 찌푸렸다. "데려온것이 아니라 사냥이겠지." 윤호의 지적에 준수가 곧 웃음을 살짝 거둬냈다. 그 모습에 윤호가 자신의 말을 계속해서 였다. "언제까지 감옥죄수들한테 식사를 직접 건낼꺼야. 모두 사형시켜도 시원찮을 놈들이야. 니 간절한 부탁때문에 겨우 살려놓긴 했지만..." "그렇게 말하지마..윤호아. 마녀족들도 사람이야." "사람이라 하기엔..요물들에 더 가깝지. 쉽게 마족들을 홀려버리는 능력이 뛰어나니까." 자신의 말에 꼬박꼬박 단호하게 대답하는 윤호를 당해낼 겨늘이없어진 준수가, 곧 패배를 인정하고는 그의 어깨 너머로 방안을 들여다봤다. "어디..가려고?" 평소처럼 들어오라는 말없이 자신을 문앞에 내내 세워두는 윤호를 바라보며 준수가 작게 물었다. "오늘은 마을 정찰 좀 돌아야겠어. 모두..풍족하게 사는지는 내가 판단해야 하는거니까." "그래.." 이러나저러나 윤호는 마녀족들에게 있어서는 증오의 대상과도 같았지만, 마족들에게는 한없이 위대하고 훌륭한 군주였다. "같이갈래?" 자꾸만 자신의 어깨너머로 방안을 들여다 보려고 애쓰는 준수를보며 윤호가 말을 건냈다. 그런 윤호에게 준수가 조심스런 말투로 부탁했다. "사실..나 오늘 여기온거...니가 데려왔다던 마녀족 아이가 보고싶어 온거야." 새초롬히 두눈을 들어올려 말하는 준수의 모양새가 귀여워, 피식 웃어버리는 윤호였다. "너라면..상관없어. 대신 데리고 나가는건 절대안돼." 윤호의 경고에 준수가 있는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준수의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던 윤호가 방안을 힐끗 쳐다보고는 밖으로 나섰다. 윤호의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보던 준수가 그의 모습이 사라지자 그제서야 방안으로 들어선다. 쿵-----. 작게 문닫히는 소리가 넓은 방안을 가볍게 울리고..준수는 숨죽이며 침대가에 앉아있는 누군가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살포시 걸었지만, 청각이 예민한 재중의..귀를 쫑긋이 세우기엔 충분한소리. "누구...세요...?" 조심히 걷는걸로 봐서는 윤호의 발소리가 아니다. 아까..윤호와 누군가가 얘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그 누군가일까..? 재중의 궁금증이 점점 증폭되는 가운데 그 누군가가 걸음을 멈추고는 자신을 바라보는게 느껴졌다. 알싸하게 향기로이 풍기는 꽃내음... 좋은향기를 풍기는것이 무척이나 좋은지..누군지도 모른채 재중은 예쁜미소를 살포시 지어버린다. 그 아름다운 모습에 숨을 멈추며 준수가 나즈막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김..준수이라고해요." 준수의 고운목소리에 재중이 손을 뻗어 준수가 서있는 자리를 파악했다. 그 모습에 준수의 두눈이 커다래졌다. 눈이...안보인다..?!!! 준수는 그제서야 재중의 감긴눈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른 모든것들이 너무나 빛이나는 아름다움을 가진 재중인지라 그의 감겨있는 두눈을 눈치챌 겨늘조차 없었다. 준수의 차분한 자기소개에 재중이 또다시 환하게 웃었다. "저는...김재중이예요..재중이." ~~~~~~~~~~~~~~~~~~~~~~~~~~~~~~~~~~~~~~~~~~~~~~~~~~~~~~~~~~~~~~~~~~~~~~~~~~~~~ [게하/자작] 미 열 (美 熱) 15편 조회 : 4,496 이름 : 아게하 작성일 : 2002/01/04 오후 7:20:09 URL : 없음 내 지금에 부족한것이 과연 있을까..? 이 대지가.... 그리고 저 하늘이..나에게 아직도 내려주지 아니한것이..과연 있는가. 모두를 얻은듯하나 가슴 한구석이 공허한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 미 열(美 熱) 15편 - 흔하디 흔한 말였지만, 그 한마디 밖에는 표현할수가 없었다. 아름다웠다. 까만 공단자락같은 머리카락이... 섬세한 얼굴선과 여린 목줄기가......... 준수는 자신이 지금 굉장히 당황하고 있다는걸 깨달았다. 자꾸만..유천의 얼굴이 떠오른다. 동생.....이라고.........? 그의 얼굴 표정을보면 아닌것 같아.. 동생을 걱정하는게 아닌것같아... 확인하고 싶다. 정말 동생이 맞는지.......아니면.........아니면................ 떨리는 가슴을 애써 누르며, 준수가 살짝 입을 열었다. "...예쁜 이름이예요.." "고마워요..준수라고 했죠? 목소리가 참..예뻐... 분명 얼굴도 고운 사람일껏 같아요.." 밝게 웃는 목소리가 재중을 더 아름답게 비춰줬다. 준수가 조심스럽게 재중의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나즈막하게 묻는다. "알고...있어요...?...." 가슴이 이상하게도 두근거렸다. "..형이..감옥에 있다는것......" "...!!!" 준수의 말에 재중의 붉은 입술이 살짝 벌어지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형...유천형을 알아요..?" 그리고는 무척이나 반갑다는듯이 준수의 옷자락을 붙잡고 환하게 웃어보이는 얼굴에 준수의 표정이 순간 안도감을 띄었다. 동생이..맞구나....... 동생이 맞아...... "형 잘있어요? 윤호가...윤호가 유천형을 만날수 없다고해서..난..." 자신의 두손을 꼬옥 맞잡으며 너무나도 기쁘게 떠드는 재중을 바라보고, 준수도 그제서야 수수한 옅은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유천씨가..봐달라고 했어요..재중씨..잘있는지..." "..형이 정말 그랬어요? 재중이 잘있나 봐달라고?" 이내 곧 울음을 터뜨릴것처럼 양볼을 붉게 물들인 재중의 손끝이 떨려왔다. "네.." 그런 재중이 어쩐지 안타까워 그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매만져주는 준수. 준수의 따듯한 손길에 재중이 훌쩍였다. "..보고...싶어......" 자신이 어렸을때부터 한시도 떨어져있어 본적이 없었던 자신의 형였다. "..보고싶어요..유천형이....." 부모의 손을 놓쳐버린 길 잃은 어린아이... 그런 어린아이였다 재중은. 고개를 푹..숙이며 가늘게 어깨를 떨고있는 재중을 바라보는 준수의 가슴이 이상하게도 시려왔다. 아이가 엄마를 찾듯이 재중은 계속해서 보고싶다는 말만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준수의 눈앞으로 동생의 안부를 묻던 유천의 간절한 눈빛이 떠올랐다.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망설이기 시작하는 준수였다. - 대신 데리고 나가는건 절대안돼. - 윤호의 말이 귓가에 윙윙 거리기도한다. 어떻게..하지...... 유천의 간절한 눈빛... 그리고 앞에서 훌쩍이는 그의 동생... 분홍빛 입술을 꼬옥 깨물던 준수가 끝내는 아래로 향하고있던 시선을 들어올리며, 재중을 단호하게 바라봤다. "..보고..싶어요...보고싶어..유천형..." 작게 웅얼거리며 훌쩍이는 재중의 두손을 꼬옥 맞잡는 준수였다. "...???" 그 느낌에 투명한 눈물방울을 볼위로 또로록..흘려내던 재중이 숙이고있던 고개를 들어올렸다. 재중의 촉촉한 양볼을 자신의 손으로 닦아주며 준수가 빙그레 웃었다. "유천씨도..많이 보고싶어해요..내가 데려다 줄께요..같이..가요." "...!!!" 재중의 놀라는 표정을보며 준수가 씁쓸한 미소를 띄었다. 미안해..윤호아... 잠시만.... 아주 잠시만 재중씨하고 나갔다 올께.... "윤호..모르게 나가는 거예요...알았어요..?" "......." 준수의 말에 순간 윤호의 매서운 목소리가 들려오는 착각이 일었던 재중였지만, 이내 망설이는 움직임을 보이다가도.... 고개를 끄덕이고마는 그였다. 그런 재중의 모습에 준수가 그를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좋아요..그럼 어서 준비하고 나가요." 준수의 말에 훌쩍이던 재중의 얼굴위로 환한 미소가 서렸다. . . . "윤호니임~~~~" 커다란 호숫가와 귀족들의 거처를 쩌렁쩌렁하게 울릴만한 낭랑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 말위로 오르려던 윤호의 시선이 뒤로 돌아간다. 윤호뿐만이 아니라 그와함께 있었던 다른 귀족들의 시선도 전부 그곳으로 향했다. "시끄럽다. 환희야." 저 멀리서 뛰어오는 환희를 바라보며 윤호가 나즈막하게 경고했다. "하아..하아..." 환희가 윤호의 바로앞까지 다가와서는 가뿐 숨을 몰아쉬며 방글방글 웃었다. "하아...하....윤호님...어디..가십니까?" 귀엽게 묻는 그의 말투에 윤호가 무표정을 일관하며 말위로 올랐다. "마을 정찰을 돌꺼야." 윤호의 말에 환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곁으로 바싹 다가섰다. 그리고는 조용히 말을건낸다. "재중님이 잠에서 깨어나셨다구 들었습니다." 재중의 얘기를 꺼내는 환희의 얼굴표정이 밝다. 내심 걱정하고있던 차였다. 물에 빠져서 계속 일어나지 못했던 재중인지라 불안한 마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의원 선호의 말에 따르면 잠이 들어있는 상태라 걱정하지 말라했지만, 그게 어디 마음처럼..되겠는가... 환희는 이미 재중이 마음에 쏘옥 들어버린 모양였다. 게다가 윤호가 처음 데려온 마녀족 사람이니까... "그래. 오늘 아침에 일어났어. 어떻게 알았지?" "다른 여시종에게 들었습니다." 환희가 깍듯이 예를갖춰 대답하자 윤호가 곧 자리를 뜰듯이 말머리를 앞으로 돌리며,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오늘 저녁 내가 들어올때까지 재중이... 깨끗하게 목욕시키고 준비해 놓거라." 윤호의 말에 환희가 잠시 얼굴을 붉히더니 곧 개구지게 웃었다. "예..윤호님. 다녀오세요~" 이내 고개를 성큼 숙여 인사하더니 윤호를 배웅한다. "..그래.." 환희와 다른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윤호가 말고삐를 움켜쥐고 유유히 걸어나가기 시작하자 다른 대신들도 그 뒤를 쫒기시작했다. "우선은 동쪽마을부터 돌아보자." "예." 윤호가 건내는 말에 꾸벅 고개를 숙이는 대신들을 뒤로하고 넓게 펼쳐진 초록색 들판을 눈으로한번 흘겨본 그였다. ...그리고..... 초록색 나무들과 들판을 보고있으니..방에 두고나온 재중이 문득 생각나버린다. 연초록 비단옷이 참으로 잘 어울렸지... 윤호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매달았다. 재중이 잠이 들어있던 그 이틀동안 윤호는 자기도 모르게 솟구치는 욕심을 몇번이나 떨쳐냈는지 몰랐다. 이토록...갖고싶었던..아이가..있었나... ..안고싶었던....아이가 있었던가..... 아무것도 모르는듯이 고개를 옆으로 떨구고 우아한 목덜미를 내보이며 세상모르게 잠을자던 재중였다. 윤호가 단호하게 눈빛을 빛냈다. 오늘밤은....꼭..널 취할것이야. 처음 본 순간부터...갖고싶던 너였으니까...... ~~~~~~~~~~~~~~~~~~~~~~~~~~~~~~~~~~~~~~~~~~~~~~~~~~~~~~~~~~~~~~~~~~~~~~~~~~~~~ [게하/자작] 미 열 (美 熱) 16편 조회 : 5,063 이름 : 아게하 작성일 : 2002/01/04 오후 7:21:20 URL : 없음 갖고싶은것과...소유한다는것.... ....원한다면 언제든지.. 내것이 될수있는 모든것들...... ..............그런데. ...'사랑'이란것이...뭐지..? - 미 열(美 熱) 16편 - 갑자기 찬 서리가 온 몸을 에워싸는 느낌에 어깨를 두손으로 감싸는 재중였다. "조금..찬기운이 돌죠..?" 준수가 재중의 한손을 끌어당기며 조심스레 말을 건냈다. 을씨년스런 기운에 재중이 자신의 눈썹을 찌푸렸다. "조심해요..계단이예요...이 계단만 내려가면 유천씨..만날수 있어요.." 눈이 안보이는 재중에게 이것저것 꼼꼼히 상냥하게 설명해주는 준수였다. 계단을 내려서며 살며시 손으로 짚은 벽. 벽을 짚자 축축하고 질퍽한 이끼들이 만져졌다. 그 느낌에 소스라치게 손을 떼어내는 재중였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가면 갈수록 탁해지는 공기와 불쾌한 냄새가 그의 코끝을 자극했다. "후우.." 자신도 모르게 속이 울렁거림에 작은 한숨을 내쉬는 재중이 계단을 다 내려서고는 준수가 이끄는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어? 준수님이다.." "아직 식사시간도 아닌데 왠일이시지?" 뭔가 불안한듯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피려는듯 보이는 재중의 귓가로 웅얼거리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거짓말이야.... 재중이 자신의 어깨를 살풋이 떨었다. 너무..추워............... 밖은 꽤나 따뜻한것 같은데..계단을 내려서자마자 이곳은 마치 다른곳마냥.. 추운기운이 음습했다. 재중은 준수의 손길대로 걸음을 옮기며 애써 눈물이 나려는것을 꾸욱 참고있었다. ..아니야..... 형..이런데 있는거 아니지.....? 그렇지...? 준수의 손을 애꿎게도 눈물을 참으려고 꼬옥 잡는순간..준수의 걸음이 멈춰졌다. "재중씨...다왔어요. 유천씨예요..." 준수의 말에 재중의 볼위로 참고있던 눈물 한방울이 뚝..하니 흘러내렸다. "...혀..엉....?" 유천은 지금 철창 바로앞에 서있는 재중의 모습을, 마치 환영을 본 사람마냥 멍하게 쳐다볼 뿐였다. 너무나 놀라서 커다랗게 치켜뜬 두눈을 깜빡일수조차 없었다. 저 멀리서 걸어들어오는 준수의 모습을 봤을때는 식사시간도 아닌데 왠일인가..하는 궁금증만이 머물렀는데... 그의 손을 잡고 따라들어오는 재중의 모습에 그만 숨을 멈춰버렸다. 오렌지빛이 감도는 예쁜 비단옷을 입고 들어서는 사람은 아름다운 자신의 동생 재중이 맞았다. "재..재중아... 재중이 맞니..?"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차분하게 내려고 노력하며, 유천이 철창사이로 두손을 내밀었다. "..형...이야...?" 이내 자신의 옷자락을 건드리는 유천의 손길에 주저앉아버리는 재중였다. "재중아..너 다친데..없는거지? 무사한거지..?" 유천이 곧 다급하게 물으며 재중의 볼을 자신의 두손으로 빠르게 쓰다듬었다. "..ㅎ....혀엉...유천형..." 그러자 투두둑..재중의 뺨위로 떨어져 내리는 눈물들. "흐윽..흑...." "울지마..재중아." 내가..널 안아줘야 되는건데... 한없이..여리기만한..내동생........ 당장이라도 이 철창밖으로 나서고 싶었다. 나서서 아기처럼 그저 울고있는 재중을 품에 가득 안아서 달래주고 싶었다. 하지만, 팔을 뻗을수있는것이 고작인 이곳은 그를 가슴에 품어줄수가 없다. 자신의 얼굴을 계속해서 쓰다듬는 유천의 손길에 재중은 흐느끼며 중얼거렸다. "흐윽...혀엉....여긴 너무..추워.... ..감옥이란 곳이 이런곳이야?..응...? ..흑... 햇빛한점..들어오지 않을껏 같아....." "쉿..울지마. 형 괜찮아.." "흐으윽...흐읍.." 자신의 볼을 쓰다듬는 유천의 손을 맞잡으며 조용히 주저앉아 흐느끼는 재중의 모습에, 지켜보는 준수도 가슴한쪽이 아파오는것 같았다. "..싫어..형.....형..여기있는거 싫단말야.... 형은 나쁜짓도 하지않았는데..왜 이런곳에 있어..." "괜찮아..걱정마. 형은 곧 여기서 나갈꺼야 나가서 재중이 데려갈꺼야.." 준수는 자상한 표정으로 재중을 두손으로 계속해서 보듬어주는 유천을 바라보며, 왠지모를 우울한 기분에 휩싸였다. 저리도..따듯한 얼굴을 본적이 있었던가...? 자신이 며칠새에 봐왔던 유천은 결코 저런 미소를 지어내며 한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를낼줄 모르는 사람였다. 그런데..................... 동생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유천의 모습을 처음 본것이다. 저 두사람을 이렇게라도 조금 더 같이 있게하고 싶었지만, 준수는 끝내 왠지모를 불안한 마음에 조용히 말을 건냈다. "이제 어서 가봐야해요..재중씨..." 준수의 재촉하는 말에 유천이 준수쪽을 한번 바라보고는, 시선을다시 재중쪽으로 두었다. "널 위협하는 새끼는 가만두지 않을꺼야. 그런새끼..형이..여기서 나가면..살려두지 않을꺼야. 알았어?" "흐윽...흑...." 유천의 말에 그저 고개만 힘겹게 끄덕끄덕. 유천이 무슨 말을하는지 전혀 귓가로 들려오지 않았다. 다만..이렇게 무서운 곳에 자신의 형 유천이 있다는것이 아플뿐였다. 재중이 자신의 입술을 꼬옥 깨물었다. 윤호..나빠요...나빠......... . . . "재중님~~~" 환희의 밝은 목소리가 경쾌하게 울리며 방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에 잔뜩 들려있는 갖가지 이불더미며, 옷가지와 향수를 떨어지지않게 추스려 안는다. 환희가 방안으로 들어섰을때에, 재중은 이미 침대위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웃차~!" 침대위로 자신이 들고온 물건들을 내려놓으며, 환희가 재중의 얼굴을 살폈다. 자신이 들어왔는데도 불구하고 아무 미동없이 앉아있는 그가 이상하기만한 환희였다. "재중님...?" 환희가 재중을 부르자 고개를 푹숙이며 자신의 옷자락만 만지작대는 재중였다. 재중의 머리카락을 슬며시 쓸어올려주던 환희가 두눈을 커다랗게 떠올렸다. "재중님 우셨어요?!" 촉촉하게 젖어있는 길다란 속눈썹에 눈물방울이 대롱대롱 매달린것을 보고는 환희가 깜짝놀라 소리쳤다. 도리도리.. 고개를 가로젓더니 이내 눈물들을 훔치는 재중였다. "왜요? 무슨일 있으셨어요..?" 환희가 그런 재중의 모습에 걱정스레 그의 앞에 무릎꿇고 앉았다. "......." "왜그러시는데요..재중님 말씀해보세요.." 환희가 자신의 손을 꼬옥 잡으며 조용히 묻자 그제서야..붉은 입술을 조금씩.. 달싹이는 재중였다. "..나는...." "예..재중님." "..나는...형이....." 재중이 눈물을 삼키며 띄엄띄엄 힘들게 말을 내뱉었다. "..나는..형이..그런곳에 있는줄 몰랐어... 내가 이렇게 따뜻한곳에 있어서....형이 그렇게 무서운곳에 있는줄은... 꿈에도 몰랐어..." 이내..다시 고개를 더욱더 푹 숙여버리는 재중였다. 재중의 말에 환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자기도 얼핏 재중의 형되는 사람을 윤호가 감옥에 가둬놨다고 들은것이 있기때문에..... "나쁜짓을 한 사람만 감옥이란곳에 가는거랬는데..형이. ...형은....나쁜짓..않했는데......." 재중은 감옥이라곳이 어떤곳인지 제대로 모르는 모양였다. 바보같기 보다는 세상의 때가 묻지않은 그런사람... ...새하얀..눈같은 사람... 환희는 자신도 모르게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를 아는지 모르는지 재중은 계속해서 혼자 중얼거릴 뿐였다. "..너무 추워..거긴...형이 거기있는거 싫어..." 재중이 어깨를 떨며 훌쩍이자 그의 눈물을 환희가 자신의 손으로 닦아냈다. 뭐라고 해줄말이 없었다. 그를 감옥에서 꺼내는것도 가두는것도...모두 윤호의 권한이니까. 이렇게 여린 흐느낌을 내뱉는 재중이 안쓰러웠지만, 자신은 윤호가 명령한 일에 책임을 다해야했다. 재중을 달래듯이 환희가 조용히 말을꺼냈다. "좀있다..윤호님 오실꺼예요...깨끗이 목욕하고 기다리셔야해요.." 도리..도리.. 부정의 고갯짓. "울지마세요..재중님. 윤호님은..그렇게 나쁜분이 아니세요." "......." 환희가 재중을 부드러운 손길로 자리에서 일으켜세웠다. "재중님께서 고집피우시면..재중님 시종인 제가 혼나요. ..저..혼나는거 좋으세요?" 환희의 물음에...붉은 입술을 꼬옥 깨무는 재중였다. "......." "......." 하지만, 이내 환희의 손길에 이끌려 아무말없이 고개숙인채로 터벅터벅 그의 뒤를따라 욕실로 향하는 재중였다. ~~~~~~~~~~~~~~~~~~~~~~~~~~~~~~~~~~~~~~~~~~~~~~~~~~~~~~~~~~~~~~~~~~~~~~~~~~~~~ 미 열 (美 熱) 17편 갖고싶은것과...소유한다는것.... ....원한다면 언제든지.. 내것이 될수있는 모든것들...... ..............그런데. ...'사랑'이란것이...뭐지..? - 미 열(美 熱) 17편 - 눅눅한 바닥에 살풋이 주저앉은 준수가 자신의 단아한 눈을 똑바로 들어올려 감옥안에있는 유천을 바라봤다. 시간은 벌써 저녁때. 어김없이 재중을 낮에 잠시 데려왔다가 나간 준수가 다시 돌아왔고, 그는 여전히 자신의 손에 들린 음식그릇들을 아무거리낌없이 죄수들에게 건내주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제일 마지막 차례인 유천앞에 선것. 하지만 준수는 느낄수 있었다. 유천의 눈초리가 그전처럼 그렇게 차갑지 않다는것을........ 아름다운 그의 동생은 잠시 그 얼굴을 보여줌으로 인해서 사람을 이렇게 다른 표정을 하게끔하는 신통한 재주가 있는 모양였다.... 항상 불안해하며 철창안에서 모든것에 경계하던 그의 긴장된 태도는 어디갔는지, 지금은...그저 벽에 기대어 가만히 앉아있는 편한 자세를 취하고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동생이 걱정되는지..미간을 살짝 찌푸린 얼굴은 지금도 계속이다. 준수가 철창바로앞까지 다가와 자신을 바라보자 그제서야 그와 시선을 맞추는 유천였다. 자신을 바라보는 진갈색 눈빛에............ 준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두근거리는 가슴한켠에 살포시 손을 올려놓았다. 과연..항상 자신이 주던 그릇은 받지않던 그가..오늘은.... 오늘은 받아줄까............? 다른사람의 손을 타야지만 식사를하는 유천인데........ 긴장이 풀린 그의 모습처럼 오늘만은 자신이 내어주는 식사를 받을지... 준수는 내심 궁금했다. 그리고..받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철창안으로 조심스럽게 손을 밀어넣었다. 유천의 눈이 순간 살며시 내밀어진 준수의 손에 놀란듯이 일렁이더니 곧..다시 침착하게 잠잠해졌다. 그러자..자연히 부딪히는 두 시선. 준수의 소매자락이 팔꿈치까지 걷혀지며 곱고 하얀살결을 드러냈다. 얇디 얇은 손가락에는 조금 버거워보이는 식사그릇이 들려있다. 무표정을 일관하며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유천. "준수님..뭐하러 직접주세요. 준수님이 내주시는건 받지도않는 건방진놈인데.. 제가 줄께요 이리 주세요." 준수가 내미는 그릇을 받아들지않는 유천이 얄미운지 곁에 서있는 그의 여시종 소진이 핀잔을 줬다. 하지만, 그 말에도 불구하고 준수는 아무말없이..그에게 내민 손을 거둬내지 않았다. 음식이 가득 들어있는 그릇은 점점 준수의 가는팔이 들고있기 힘들만큼 무겁게 느껴지고 있었다. ..안....받을 껀가요..... 당신이 부탁한것...들어주려고... 간절하게 부탁하는 모습이 너무 안되어 보여서... 당신의 아름다운 동생..데려다줬는데....... 윤호에게 혼날지도 모르는 일..자청했는데.... 이런 사소한것도 제 손을 타는거라면..받지않는 건가요... 자신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유천에게 하고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왔지만, 끝내...애꿎은 입술만 꾸욱..다물어 발갛게 만들어버리는 준수이다. 그리고는 스스로 영문도 모른채 울컥..솟으려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고개를 살며시 돌려버린다. 조금은 가까이 다가가고싶은 마음이 있었던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심하게 자신을...아니. 마족 사람들을 경멸하는 유천은 다가서기 너무나 힘든 사람같아 보였다. 이내 준수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떨리는 손끝으로 손을 거두려할때였다. 탁-----. "...!!!" 그릇을 매개체로 이어지는 느낌... 곧 준수의 손에 들려있던 그릇이 살며시 들려지며, 다른손으로 옮겨갔다. 준수가 자신의 가벼워진 오른쪽 손을 바라보며 곧 놀란시선을 유천에게로 옮겼다. 유천이 그런 준수의 시선을 피하지않고 맞받아친다. 그리고..조용히 내뱉는 한마디. "고마워." "...!!!" 고마워....... ..고마워.......... 유천의 낮은 저음이 준수의 귓가로 가볍게 울리며 맴돌다 흩어졌다. 멍하게........음식을 먹기시작하는 유천을 바라보던 준수.. 이내 자신의 눈꼬리를 늘어뜨리며 살풋이..미소를 지었다. 다행.......이야........ 유천이 자신의 손에서 그릇을받아 그 안에 들어있는 음식을 먹을때까지도.. 준수는 움직이지않고, 옷자락이 축축한 바닥에 스며들때까지 그곳에 앉아있었다. "....." 그런 준수의 시선이 느껴졌는지..얼핏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곧 당황한듯 눈을 피하는 그가 보인다. 그 모습에 유천은 피식..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그리고는 이내 찬바람부는 목소리로 말을 건낸다. "무슨..볼일이..남았나?" "아..!" 유천의 물음에 곧 다시한번 허둥대듯 당황하는 준수였다. "아니...저기..." 자신이 유천을 바라보고 있었다는걸 들킨것이 조금 민망한지 말을 더듬는 준수에게 유천이 단호하게 말했다. "난 음식먹는데 누가 쳐다보는거 싫어. 할 말이 있으면..빨리 하던지..." 유천의 냉랭한 말에 준수가 당혹스러움에 이리저리 움직여대던 눈동자를 다시 그에게로 고정하며 분홍빛 입술을 열었다. "..저기....." 준수가 어느새 불그스름해진 양볼을 드러내며 말을건내자 유천이 음식 그릇을 옆으로 살짝 밀쳐내며 그를 바라본다. 떨리는 심장을 추스리며 준수가 유천의 단호한 눈동자를 똑바로 직시하고는 나머지 말을 건냈다. "...저기.....이곳에서 나갈수있게 도와주고 싶어요.." "...!!!" 준수의 말에 유천의 눈동자가 놀란듯이 커다래졌다. . . . 첨벙... 향료를 뿌린 하늘빛 욕조물안에 자신의 부드러운 몸을 깊숙이 담아내고있는 사람. 그의 둥근 어깨위로 부드러운 천조각을 바쁘게 놀려대며, 환희가 조심히 말을 건냈다. "재중님.....예쁜 눈자위가 망가지시겠어요.." 욕조안에 가만히 앉아서 고개를 푹숙이고는 눈꺼플위로 대롱대롱 눈물방울을 매달고있는 재중을 바라보며, 환희는 걱정되는 마음을 추스릴수가 없었다. 소리내어 우는것보다 그저 가만히앉아 작은 어깨를 오그리고 눈물방울만 똑똑..흘려대는것이 왜그리 더 안타까운것인지.......... 사람의 살결이 이리도 부드럽고 곱고...예쁘기도 하구나...하는 마음에 재중을 감탄어리게 쳐다보던 환희의 시선도 이제..점점 우울해져갔다. 재중의 눈자위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환희가 재중에게 애써 밝게 말을 건냈다. "저기요..재중님." 환희의 부름에 그제서야 숙였던 고개를 살짝 들어올리는 재중이 보였다. 그런 재중의 반응에 환희가 조용히 말을 꺼내본다. "오늘밤..윤호님이 하시는데로 곱게 계시다가..한번..부탁해보세요. 재중님네..형 되시는분..풀어달라구요..." 환희가 슬쩍 눈웃음을치며 말을 건내자, 곧 그의 말에 귀가 솔깃해지는지 눈가에 매달린 눈물을 손으로 훔쳐내는 재중였다. 그리고는 순진한 표정으로 자신의 어깨를 닦아내리는 환희의 손을 붙잡고는 간절한 어조로 조심히 되묻는다. "정..말....... ..정..말...윤호에게 부탁하면..형을 꺼내줄까...?" "....." 솔직히..환희는 재중의 말에 단정지을만큼의 확신이 서지않았다. 하지만, 우선은 재중의 똑똑..떨어지는 눈물을 멈추는게 급선무였다. 그리고 설마..이렇게 아름다우신 분을 보시는데..부탁쯤이야 안들어주실까...하는 환희의 나태한생각도 곁들어있는 말. "그럼요...윤호님..그리 나쁘신분 아니라니까요..." 환희의 확신에 찬 말에 이내 재중이 그를 향해..배시시 웃었다. 방금전까지 우울한 얼굴로 아이처럼 눈물을 떨굴때는 언제라고 환희의 한마디에 금새 웃어버리는 그는 역시나 순한사람. 아무 의심의 여지도없이 환희의 그 한마디를 믿어버리고만다. 그래......손끝에 닿았던 얼굴선의 부드러움은.. 틀림없이 윤호는 나쁜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였어..... 그리고는 이내 자신의 손끝에 느껴졌던 윤호의 느낌에, 재중은 입술을 꾸욱 다물었다. 애초에 윤호의 말을 잘 듣기로 약속했었으니까.... 그랬으니까............. 재중의 눈꼬리가 환하게 휘어지며 다시 아름다운 미소가 그의 얼굴위로 서렸다. 미 열 (美 熱) 18편 갖고싶은것과...소유한다는것.... ....원한다면 언제든지.. 내것이 될수있는 모든것들...... ..............그런데. ...'사랑'이란것이...뭐지..? - 미 열(美 熱) 18편 - "후우.." 윤호가 작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거처로 들어섰다. 하지만, 작게 나오는 한숨과는 달리 피곤한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여러 귀족들과 푸른계곡에서 피곤함을 떨치기위해 몸을 담그고 돌아오는 길였다. 그의 붉은 머리카락이 물에젖어 핏빛처럼 선명해졌다. 차가운 얼굴에 조금의 여유가 있어보이는것은 아무래도 오늘 돌고온 마을순방이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리라... 모두들 어려운것없이 스스로 맡은일에 열심히인 사람들의 모습이 그러했고, 자신이 마을에 들어설때마다 터져나오는 존경의 함성소리에 더욱더 그러했다. ....그리고............ 잠시 재중의 얼굴을 떠올리던 윤호의 표정이 한층 부드러워졌다. 그로인해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윤호의 걸음걸이가 점점 빨라진다. 점점 보이기 시작하는 황금색 테두리의 커다란 문을 바라보는 윤호의 두 눈동자가 선명하게 빛났다. 이 문만 열면.........그 아이가 새초롬이 앉아있겠지. 실로 항상 피곤한 몸을 다른 여인들과의 유희로 밤을 지새며 풀곤했던 윤호였지만, 재중을 데려온 후 부터는 며칠새 그런적이 없었던 그였다. 벌컥-----. 성급한 마음에 문을 열어제끼니 윤호를 반기는건 컴컴한 방안. 갑자기 찾아드는 어둠에 윤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가 다시 펴졌다. 넓은 방안을 둘러보던 윤호의 눈길이 순간..어느 한곳에 멈춰지고... 그 어느한곳은 다른 어두운곳과는 달리 은은한 달빛이 비춰들고 있었다. 그리고............ .......................... 까만 비단자락처럼 고운 머리결을 얼굴끝으로 부드럽게 늘어뜨린 재중이 침대위에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윤호가 환상처럼 달빛아래 걸터앉은 그에게로 한걸음씩 걸음을 옮겼다. 곧 누군가가 걸어오는것을 눈치챈것인지..고개를 살짝 옆으로 비틀어 소리나는곳을 바라보는 재중였다. 그러자 침대가에있는 노란빛 촛불들이 그의 얼굴에 음영을 드리웠다. 그로인해 더욱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그의 커다란 눈자위... 우아한...콧날... 그리고 붉은 입술선이 또렷하게 보인다. 어깨가 살짝 드러나는 아이보리 색깔의 옷이 재중의 작은 움직임에도 사각거리는 소리를 냈다. 어느정도 가까이 다가오자 재중의 고운 얼굴선이 두눈에 온전히 들어왔다. 그 모습에 윤호는 그 답지않게 잠시 숨을 멈춰본다. 그런 윤호를 아는지 모르는지 재중이 자신의 앞에 다가와서 서있는 그의 옷자락을 살며시 손끝으로 잡아본다. "...윤호....맞아요....?" 붉은입술이 유혹적으로 벌어지며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윤호가 참지 못하겠다는듯 그의 볼을 자신의 두손으로 감쌌다. "..윤..호......" 자신의 볼을 감싸는 차가운 손길에 흠칫..놀라는 재중이 느껴졌지만, 윤호는 아랑곳하지않고 자신의 입술을 그의 입술에 부딪꼈다. "우웅..." 어린아이가 칭얼대듯 작은 웅얼거림이 터지며 재중의 고개가 힘없이 꺽였다. 윤호의 매끄러운 혀가 부드럽게 재중의 입술사이를 가로지르며, 거리낌없이 들어서고..... 금새 재중의 혓망울을 달콤하게 빨아들인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격함에... 재중의 미간이 찌푸러들었다. 유천이 자신의 입술에 가볍게 해주던 부드러운 키스가 아니었다. 저 깊은 정신까지 모두 휩쓸어버릴만큼..빠르고 깊은것............ 그것에.....재중은 연신 밀려나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꾸만..자꾸만... 뒤로 쓰러지고 있었다. 게다가 윤호의 가뿐숨에 덩달아 자신도 숨이 막히는지 결국은 그의 가슴팍을 툭툭..쳐대기에 바빠진다. 자신의 가슴을 쳐대는 미약한 힘에 그제서야 윤호는 재중에게서 틈을 내보이며 살짝..떨어져 나갔다. "..하아...하...." 입술을 떼어내자 참았던 숨을 모두 내쉬려는지 촉촉한 입술새로 연신 빠르게 숨을 돌리는 재중이 보였다. 그런 재중을 바라보며 윤호의 입가에 자신도 모르는 미소가 어렸다. "처음인...건가..?" 윤호의 낮은 물음에 재중의 고개가 위아래로 조심스럽게 끄덕여진다. 그리고는 조용히 내뱉는말................ "숨을........ ..숨을....쉬기가..너무나 힘겨워요......" 자신의 옷깃을 두손으로 간신히 잡은 재중이 말을 끝내자마자 곧 길게 내쉬는 숨소리에 윤호는 또 한번 웃을수밖에 없었다. 윤호의 손길이..재중의 얼굴선을 상냥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 손길에 자신의 어깨를 살짝 떨며 움츠러드는 재중의 모습이..사랑스러워 보인다. 윤호가 그런 재중의 얼굴을 천천히 뜯어보며, 낮게 속삭였다. "니가 이대로 온전히 내것이 된다면......... 나는..너에게 사랑을 줄것이다........." 단, 내가 질릴때까지만. 윤호의 입술이 말을 마치자마자 다시 재중의 입술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 곧 그의 이마위로...또 매끄러운 콧등위로.... ..얼굴 이곳저곳을 어루만지듯 배회하다가..이내 재중의 가는 목덜미로 향했다. "..윤..호...?" 생소한 느낌에 자신의 몸을 더욱더 움츠리며, 재중이 살며시 그를 불렀지만 윤호는 아무것도 듣지 않겠다는듯이 대답조차 하지않는다. 입술위로 닿는 부드러움과...혀끝으로 느껴지는 달콤한 살결에서, 전에도 맡아본적있는 은초롱꽃잎의 향기가 윤호를 자극했다. 이 아이만이 가지고있는 특유의 체향처럼....... 진하게...그를 유혹한다. 재중의 어깨쪽에서 입술을 놀리던 윤호가 미칠것같은 향긋한 향내에 이를 세웠다. "..아읏..." 따끔거리는 느낌에 재중이 고개를 비틀었지만, 윤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잠시 몸을 일으킨 윤호가 자신의 윗도리를 벗어내고는, 재중의 어깨에 걸쳐져있던 옷자락도 끌러내렸다. 그러자 더욱 여려보이는 몸의 굴곡들이 확연히 눈안에 들어오고... 윤호는 좀 더 다가가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단단한 가슴을 재중의 매끄러운 상체위로 부딪혔다. 윤호의 몸이 완전히 자신의 몸위로 포개지자..왠지 두려운 느낌이 들어버린 재중이 자신도 모르게 딱딱하게 몸을 굳혀버리고............ 작은 손바닥으로 윤호의 가슴을 밀어낸다. 그런 그의 손길을 차단해 버린건 윤호의 단호한 손. "..윤..호....." 자신의 거부의사를 막는 윤호에게 덜컥 겁이나버린 재중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렸다. 그런 재중을 윤호가 조금은 매섭게 바라보며 위협적으로 말을한다. "내가...말하지 않았던가...? 내말을 듣지않으면... 너의 형이 힘들어 질꺼라고.." "...!!!" 윤호의 말에 순간 재중의 얼굴위로 놀란표정이 역력히 지나가고..... 자신의 형 이야기만 나오면 금새 태도가 틀려지는 재중에게서 윤호는 서서히.. 짜증같은것이 밀려오고 있었다. "......." "......." 한동안 겁에 질린듯 자신의 어깨를 떨어대는 재중과..그런 그를 찌푸린 미간사이로 바라보는 윤호간에..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하지만, 곧 그 침묵을 깨뜨린것은 재중의 작은 목소리였다. "...내...가.........." 무언가 마치 어린아이가 혼날것을 각오하고 말하는듯 조심조심 내뱉는 재중의 말에 윤호는 조용히 귀기울인다. "...내..가...윤호의 말을 잘듣는다면요......" 재중은 말을 하는도중..순간 왈칵..솟을것같은 눈물을 꾸욱 눌렀다. 지금도 차가운곳에있을 유천이 갑작스레 생각이 나서이리라... 하지만, 어느새 촉촉하게 젖어들고있는 눈꺼플을 윤호가 눈치채지 못했을리가없다. "..어째서 우는것이냐..." 재중의 눈물이 마음에 불편하게 걸리는듯 윤호가 눈쌀을 찌푸렸다. 그런 윤호를 아는지 모르는지..이내 울컥..눈물을 솟아내며 재중이 울음을 터뜨렸다. "..흐윽.....윤호...윤호....." 붉은 입술이 곧 흐느낌에 파르르..떨려오고 윤호는 재중의 모습에 처음으로 당혹감을 느꼈다. 재중이 윤호의 옷깃을 잡고있는 두손에 더욱더 힘을줬다. "..우리..형...... 우리..유천형...그런 무서운곳에 안있으면 안되요...? 그러면...안되는거예요.....?" 훌쩍거리며 내뱉는말은...결국은 전부 윤호의 심기를 건드리는것. "지금..." 윤호의 입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뭐라고 하는거야. 낮에..나갔다 온건가." 윤호의 매서운 목소리에 흐느낌을 토해내며 결국은 자신이 제일 하고싶었던 말을 해버린 재중이, 그의 가슴팍을 투닥이며 때리기 시작했다. "왜 유천형을 그런곳에 가둬두는 거예요!!! 형은 나쁜짓따윈..한적 없는데.... ..재중이는 싫어요.....형이 그런곳에 있는거 싫어!!!" 재중이 때리는 손길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다만, 윤호는 흐느끼면서도 계속해서 유천에대한 걱정만 내뱉는 재중에게서 화가 느껴질 뿐였다. 언제나 밝게만 웃으며 생글거릴줄만 아는 아이라...생각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하얗기만해서 요 며칠새 자신을 바라보는것은 미소짓는 모습이 다였었다. 그런데...지금은......... 마치 자신이 미워서 견딜수 없다는듯 힘없는 두손으로 투닥이며 오열하고있지 않은가. 마치..자신이 미워서 견딜수 없다는듯이............. 윤호의 입술이 단일자로 굳게 다물렸다. 그것은 윤호가 간신히 밀려오는 화를 참아내는 방법중에 하나. "흐윽...흑..... ..나빠요..윤호는....정말 나빠..." 아까까지만해도 유혹적으로 반짝이던 저 입술에서 나오는 소리가 이제는 모두 윤호에대한 원망의 말들였다. "..닥쳐..." 윤호가 위협적으로 낮게 속삭였다. "..흐읍...흣..... ..재중이가...재중이가..윤호가 하는말..잘 들을께요....그러니까....." "닥치라고했어!!!" "...!!!" 윤호의 매서운 고함소리에 재중의 어깨가 움찔거리며 움츠러들고..그런 그의 모습에 윤호는 재중의 위에서 내려섰다. 그리고는 급하게 자신의 윗옷을 집어들고는 빠른게 문쪽을향해 걸었다. "흐윽..흑......히끅." 자신의 갑작스런 고함소리에 많이 놀랐는지 곧 다시 울음을 터뜨리는 재중의 흐느낌이 들렸지만, 윤호는 개의치 않았다. 쾅-----!!!! 거칠게 문을열고 문밖으로 나서는 윤호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김준수...너!!!!! 윤호의 화는, 어느새 재중을 몰래 데리고나간 준수에게도 뻗어있었다. ~~~~~~~~~~~~~~~~~~~~~~~~~~~~~~~~~~~~~~~~~~~~~~~~~~~~~~~~~~~~~~~~~~~~~~~~~~~~~ 꼬이는 '미열'. 하지만, 꼬인다고 안봐주시는건 아니겠지..하는 믿음으로 두편 내놓고 갑니다. 이번 주말안으로 설..올리겠습니다. '꿀'이 될지..'원츄'가 될지..'미열'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은여... 꾸준히 쓰려고 노력하는건 알아주세요~~~ 오호호..ㅡ_ㅡ;;; [자작/게하] 미 열 (美 熱) 19편 조회 : 4,876 이름 : 아게하 작성일 : 2002/01/20 오후 5:52:21 URL : 없음 갖고싶은것과...소유한다는것.... ....원한다면 언제든지.. 내것이 될수있는 모든것들...... ..............그런데. ...'사랑'이란것이...뭐지..? - 미 열(美 熱) 19편 - "휴우..." 준수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괜히 애꿎게 들이킨 물잔만해도 벌써 두잔였다. 왠지모를 갈증과 함께..불면증이라도 온것인지 잠이 통 오지 않는다. 아마도..마음속 깊이 자리한 걱정거리 때문이리라. 그리고 자신을 의심스런 표정으로 바라보던 유천의 눈빛이 생각나서일것이다. 마치...준수가 어떤 방법으로 자신을 감옥에서 꺼내줄수 있을지..... 미심쩍어하는 눈초리였다. 사실 준수도 그것이 걱정였다. 그를 꺼낼수있는것은..자신의 권한이 아니었다. 아무리 자신이 윤호의 사촌이라하여 그와 깊은 친분을 유지하는 사이라 할지라도.. 마족들의 모든 권한은 윤호이외의 다른사람이 될 수는 없었다. "휴우..." 벌써 몇번째 내쉬는지 샐수없는 한숨. 단아한 얼굴에 근심이 가득이다. 끝내는 침대에서 발을 내려뜨린 준수가 자리에서 조심히 일어설때였다. 콰앙-----. "...!!!" 마치 부서트리기라도 할듯이 거칠게 열리는 방문에 깜짝놀란 눈을 치켜올렸다. 그리고.............. 정면으로 보이는 시선 앞에는 화가난듯한 윤호가 서있었다. 순간 당혹감이 스쳐지나가는 준수의 얼굴. 침대가에 가만히 서있는 준수에게로 윤호가 빠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잔뜩 일그러져있는 미간이 그가 지금 얼마나 화가 나있는지 잘 알려주고 있었다. 재중씨가 들킨거야.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가라앉히며 준수는 문득 재중에대한 걱정스런 마음을 덮어두었다. 그리고 최대한 여유있는 표정을 유지하며, 자신에게 어느새 바싹 다가선 윤호에게 말을 건냈다. "이 시간에 왠일이야 윤호야? 기척도없이 말야." 준수의 아무일도 모른다는듯이 방긋 웃는 얼굴을 평소에는 좋아하던 윤호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왜이리도 미운건지...... 윤호의 입술 한쪽끝이 비틀려 올라갔다. "그렇게 모른척 웃지마. 나 지금 간신히 참고있는거야." 윤호의 위협적인 목소리. 그 목소리에 준수는 애써 짓고있던 미소를 가라앉히고는 침착한 표정으로 윤호에게 말을 건냈다. "너무 안쓰러워서 그랬어. 형제끼리....." 준수의 단호한 시선이 윤호의 매서운 눈빛과 마주쳤다. "......그렇게 보고싶어하는데...그냥 둘수가 없었다구." "김.준.수." 애처로운 목소리였지만 준수는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전달했고, 윤호는 그런 그에게로 화난 눈빛을 들어올렸다. "난 네 사촌이기전에 마족의 족장이야. 그런 내 말을 니가 어긴거라고..알아?" 윤호의 날카로운 말에 준수의 고개가 살며시 떨구어졌다. "니 말 어긴거..잘 알아. 약속을 어긴것에 대해서 내리는 벌은... 달게 받겠어." "뭐?!" 준수의 말에 윤호는 기가찰 노릇였다. 여태껏 자신이 화가났을때는 그것을 풀어주려고했던 준수였지만, 이렇게 당당한 그는 처음 대하는것였다. 뭐가..그를 이렇게 단호하게 만드는것인지......... 윤호의 머릿속으로 순간 자신의 옷자락을 꼬옥 붙들던 재중의 작은 손이 생각났다. 훌쩍이며 투명한 눈물을 똑똑..떨궈내던 얼굴도.............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달콤하게 들릴 목소리가 다른 이름을위해 애원하다니... 윤호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난 내것에게는 그리 넓은 마음을 갖고있지않아! 일그러진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는 윤호의 얼굴에 준수는 겁이나 가빠오는 숨결을 간신히 참고있었다. 윤호의 이런 모습은 그와 가까운 자신과 그리고 창민까지도 두려워하는 모습였다. 친분이있는 자신들도 이렇게나 그가 뿜어내는 매서운 기운에 질리는데... 처음보는 사람들은 얼음처럼 굳어서 꼼짝 못하는것이 당연했다. 하지만...난............. 준수의 분홍빛 입술이 꽈악 다물렸다. 그를...꺼내주겠다고........... "윤호야..나...." 의도한바가 아니지만, 지금 자신이 하려는 말에 목소리가 떨려나오는 준수였다. 그를.....꺼내주고싶어.....내가..김준수가. "..윤호야..나...재중씨 형..유천이란 사람..내곁에.... ..두고싶어.." "...!!!" 준수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윤호의 경악을 금치못하는 얼굴과 마주치고... 윤호는 준수의 어깨를 날카롭게 낚아챘다. "김준수!!! 너 지금 뭐라고하는거야!!!" "..윤호아!!!" 준수의..여린 어깨가 떨려오며 빠른 숨이 터져나온다. "..하아..하아...." 그래도..끝까지..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담긴 한마디. "그에게...관심이있어. 내곁에..내 호위무사로 두고 싶어... ..진심이야...." 자신에게 겁에질려있으면서도... 떨고있으면서도..부탁하는 준수의 말은..윤호에게 적응되지 않는것였다. 한번도..이런적은 없었다..김준수란 사람은. 항상 웃음을 머금고 자신에게 따뜻한 하나밖에없는 친구이자 사촌인데.... 그랬는데......... "....." 윤호의 입가에 조소섞인 미소가 내비쳤다. 윤호의 머릿속으로 재중에게서 눈물을 자아내는..그리고, 자신의 말에 당당하게 주장을 내세우게 만드는 원인 제공을 한 그가 생각난다. 다갈색의 부드러운머리....... 단호한 눈동자.....뛰어난 칼솜씨........... 박.유.천. 탁-----. 윤호가 잡고있던 준수의 어깨를 다소 거칠게 놨다. 그 반동에 준수의 몸이 살짝 밀리고.... 고개를 숙이고있는 준수에게 윤호가 날카롭게 명령조로 얘기한다. "족장의 권한으로서 너에게 명령하겠어. 김준수." 준수가 놀란 눈빛으로 윤호를 바라보고........ 윤호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는다. "일주일간 방에서 근신해." "윤호야!!!" 말을 끝내자마자 찬바람불게 돌아서는 윤호였다. "윤호야 잠깐만!!!" 준수가 그의 옆으로 달려가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지만, 윤호는 신경조차 쓰지않았다. 벌컥----. 문을 열어제낀 윤호가 준수의 문밖에서 그를 지키는 호위병들에게 단호하게 말을 건낸다. "김준수에게 일주일간에 근신을 명했다. 음식물이외에는 아무도 들이지마라." "예!!!" 양쪽으로 서있던 호위병들의 고개가 윤호에게로 정확하게 숙여지는 동시에... 윤호를 부르는 준수의 외침을 뒤로하고 방문이 닫혔다. "윤호야!!!" 콰앙-----. "......." 하아.............. ...하아................ 분홍빛 잇새로 타고나오는 거친 숨결. 준수가 비척비척 침대가로 흔들리듯 걸어가 주저앉았다. "......." 윤호를 화나게 만들었다. 한번도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화를 낸적이 없었는데...........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다정하고 든든한 사촌이자 친구가 아니던가. 마녀족들에게 가족들을 암살 당했을때도 서로 의지가 되어주던 그들였다. 그런그를 화나게 해버렸다. "......" 도대체..왜....? 얼굴마주한지 얼마되지도 않은 박유천이란 사람이 뭔데.... 그 사람이 뭔데 일을 더 크게벌려 그에게 화를 산단 말인가. 준수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하지만.................... 털썩. "....." 베개위로 자신의 얼굴을 묻어버리는 준수였다. 그의 여린 어깨가 조용히 떨려오기 시작했다. 일주일간은.....그를 볼 수가 없다....................... .......................................... ~~~~~~~~~~~~~~~~~~~~~~~~~~~~~~~~~~~~~~~~~~~~~~~~~~~~~~~~~~~~~~~~~~~~~~~~~~~~~~~~ [자작/게하] 미 열 (美 熱) 20편 조회 : 4,931 이름 : 아게하 작성일 : 2002/01/20 오후 5:53:53 URL : 없음 갖고싶은것과...소유한다는것.... ....원한다면 언제든지.. 내것이 될수있는 모든것들...... ..............그런데. ...'사랑'이란것이...뭐지..? - 미 열(美 熱) 20편 - 달그락. 환희의 손에서 나무로 부드럽게 빚어진 숟가락이 떨어져 나갔다. "후우........." 그의 입가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온다. 윤호와 아름다운 초야를 치뤘을꺼라고 생각하고 신바람난 기분으로 들어와본 방에는 재중 혼자 남겨져 흐느끼고 있었다. 물론 침대위로 곱게 깔아놓은 하얀색 천에는 그들이 어떤한 관계도 하지않았다는걸 증명하듯 깨끗했다. 그리고 훌쩍 지나버린 하루.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제는 윤호가 들어오지도 않았고, 재중혼자 우두커니 이틀째 아침을 그의 방에서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휴~~~ 재중님 정말 왜이러세요...좀 드셔보시라니까요." 붉은 입술을 꾸욱 다물어버린 재중은 아무런 음식물도 넘기지 않았다. 포기하지않고 숟가락을 다시 집어드는 환희에게로 슬며시 내저어지는 재중의 고개. 미.치.겠.다. "재중님!!! 윤호님의 눈밖에나면 안좋단 말예요!!!" 입술을 꾸욱 다문채로 애꿎게 옷자락만 꼼지락대며 만져대는 재중이 환희의 애원섞인 목소리에 띄엄띄엄 말문을 열었다. "..형은........." "....." "....형은....뭘 먹고있는건지...." "아휴!! 진짜 돌겠네!!!" 재중의 말에 환희가 답답한지 자신의 가슴팍을 쳐대기 시작했다. "재중님!! 바보예요? 이러실수록 재중님 형되시는분은 풀려나실수 없으세요!!! 재중님만 윤호님께 화를 산다니까요!!!" 순진한건지 바보인건지......도저히 말이 통하지가 않는다. 좋은말로 하자면 약아빠진 마음이 하나도 없기에..그저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만 고집을 내세우는 단순한 그이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것이 도움이될리 만무하다. "..재중....." 콰앙-----. "..!!!" 갑자기 거칠게 열리는 문소리에 그를 설득하려 입을열던 환희와 재중이 깜짝놀란듯이 흠칫..어깨를 떨었다. 그리고...문앞에있는 사람을 겁이나는듯 뚫어지게 바라보는 환희였다. "..유...윤호님.." 어제 하루는 별채에서 잠을 잔 윤호였다. 물론 끊어 오르는 화에 잠이 올리 만무했지만. 혹시나 재중이 자신의 말을 거역한것을 조금이나마 반성하고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다시와본 거처인데............... 식사를 준비해주는 시중에게 말을들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고............ 문을 열자 당황한듯 보이는 환희가 음식물 가득한 쟁반을 자신의 등뒤로 슬쩍 숨기는 모습이 보이고............... 자신을 외면하는듯 보이는 재중이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두눈에 들어와 박혔다. 성큼성큼 그의 곁으로 걸어가자 환희가 애써 환하게 웃는 낯으로 자신을 대한다. "유..윤호님...어제는 별채에가서 주무셨습니까?" 이미 알고있는 사실을 다시 묻는 환희를 쳐다보지않고 침대가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재중을 바라보는 윤호였다. "환희는 나가거라." "예???" "나가보거라." 윤호가 환희를 흘낏 쳐다보더니 이내 시선을 재중에게로 돌렸다. "재..중님." "....." 재중의 얼굴을 살피며 환희가 그를 불렀지만, 아무말도없이 차가운 얼굴을 빛내고있는 윤호에게 금새 겁이나 버린다. "...예....." 어쩔수없이 환희가 머뭇거리며 음식이 담긴 쟁반을 들고는 조심스레 밖으로 나섰다. 문득 문밖으로 나서기전 돌아다본 재중의 얼굴에 환희는 또한번 깊은 한숨을 내쉴수밖에 없었다. 쾅-----. 조용히 문이 닫히고..... "....." "....." 짧은 정적이 흘렀지만, 이내 윤호로인해 그것이 깨진다. "왜.....식사를 하지않는것이냐." "....." 소매 밖으로 살짝 내비친 재중의 얇은 팔목이 눈에 들어왔다. 하룻동안 아무것도 안먹어서인지 그는 더욱 기운이 없는듯...잔뜩 움츠려있는 모습이다. 그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초연한 아름다움을 자아내기도했다. 윤호의 물음에 재중은 아무대답도 하지않았고, 윤호는 금새 소리지르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눌렀다. 그리고는 재중의 얼굴을 들어올렸다. "나는 니가 바보같이 단순히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나는 너희들을 지배하는 마족의 족장이다. 최고의 지위를 가진사람." "....." "아무도 내말에 거역따윈 하지않아." 재중이..윤호의 말에 숙였던 고개를 들어올렸다. "..형은....아무 잘못도 한적이..없는걸요..... 형을 풀어주세요." "휴우..." 윤호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자신에게 여태껏 이렇게 반항을하며 쌩때를 부리는것은 재중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을 이토록 답답하게 만드는 사람도 처음이었다. 윤호의 손이 재중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그의 여린 목덜미를 부드럽게 잡았다. "내가 하는말이 곧 법이고, 여기있는 모두는 그게 당연하다 생각해. 너희 형을 가두는것도 내 뜻이고, 널 갖는것또한 내 뜻이야." 윤호의 입술이.....살짝 벌어져 작은 숨결을 토해내는 재중의 붉은 입술위로 곧 닿을듯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서로의 숨결이 엉키려는 찰나. "......." "......." 지금!!!!! 윤호의 눈동자가 놀란듯이 커다래졌다. 이유인즉, 재중이 싫다는듯이 고개를 돌려버린것. 윤호가 자신의 주먹에 힘을 실었다. 하얀뼈가 도드라져 보일정도로 틀어쥔 주먹이 그가 얼마나 화가났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또 날 거부한건가." "....." 재중이 곧 울껏같은 표정으로 윤호를 돌아봤다. "..윤호..는...... ...윤..호..는............" 저 예쁜 입술에서 또 무슨말이 나오려는가. "...윤호는..나빠요...... ..나쁜사람이라서....재중이는.. 재중이입술... 내어주기 싫어요...." 울먹거리는 옅은 미성이..띄엄띄엄... 하지만, 단호한 한마디 한마디를 내뱉고 있었다. 윤호의 눈썹 한끝이 올라갔다. 그리고..냉소적인 차가운 미소도 얼굴에 가볍게 서렸다. 재중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쓸어올린 윤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얼음보다 차가운 목소리로 나즈막하게 말을건낸다. "너희...형을 풀어주겠다." "...!!!" 윤호의 말에 곧 재중이 깜짝 놀란듯 얼굴을 들어올리고... "그대신." 하지만... 그 다음 나올 윤호의 말은........전혀 예상하지 못한것. "네가 감옥에 들어가야 한다면? 그래야 한다면?" "......." 재중의 얼굴위로 당혹감이 서렸다. 감옥................. 처음가본 감옥이란 곳. 축축한 기운에 불쾌한 냄새가 배속이 틀어지듯이 좋지않았다. 춥고......작은햇빛도 들어설것같지않은 그곳......... 하지만................... 항상 재중을 지켜주려 애썼던 부드러운 목소리. 하나밖에없는 자신의 가족. 언제나 자신을 따듯하게 안아주고 토닥여주는 유천의 손이 생각났다. 그러자 재중의 얼굴이 곧 체념하듯 수그러든다. 그리고 그 붉은입술은 또한번 윤호의 생각을 어긋나게한다. "..제가....가면........... ...형은..나올수..있는거죠? 그럴수 있는거죠 윤호?" "...!!!!!" 재중의 대답에 윤호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치켜 올라갔다. 너란 애...도대체...!!! 윤호는 기가막힐 노릇였다. 그리고 알지못할 재중에대한...또 유천에대한 분노. 자신이 생각했던 대답을 또다시 틀어지게 한 재중에게 화가난 윤호이.. 참을 수 없다는듯이 소리쳤다. "그래..!!! 마음대로해!!!" 소리치는 윤호의 격한 목소리에 재중의 어깨가 놀란듯이 흠칫거리고... 윤호는 문쪽으로 거칠게 걷기 시작했다. 그래...!!! 난 내 말을 듣지않는 내것은 필요없어!!! 벌컥-----! 문을 거칠게 연 윤호가 밖에있는 호위병들과 문앞에 초조하게 서있는 환희를 돌아보며 소리질렀다. "내방에있는 저 아이를 당장 끌어내서 감옥으로 끌고가!!!" "예!!!" "윤호님!!!" 환희의 깜짝놀란 목소리가 윤호가 머무는 거처를 울렸다. 윤호의 명을받은 호위병들이 후다닥 방으로 들어서고....... 윤호는 자신의 미간을 찌푸리며 주먹을 틀어쥐었다. 배가...고프고.........춥고.....무서워지면......... 날 찾지 않을것이냐........... 내게 안기고....날 부르지 않을것 같으냐....... 윤호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 [자작/게하] 미 열 (美 熱) 21편 조회 : 5,346 이름 : 아게하 작성일 : 2002/01/26 오후 2:56:07 URL : 없음 ##### 클릭비 팬분들..지금 제 설 불펌으로 올리신분들 계실겁니다. 당장 삭제 바랍니다. 전 타가수분들께 절대 허.락.해.드.린.적.없.습.니.다. ##### ---------------------------------------------------------------------------------- 아무것도 모르는 텅빈 마음에... ...한번도 경험하지못한 짜릿한 느낌이.. 빠르게 날 휘저어놓고 말았다. 어떤 누군가는 그것을 이리 부르더라. .....'사랑'..이라고...... - 미 열(美 熱) 21편 - 덜컹-----. 둔탁한 자물쇠소리. "너 나와라." 곧 철창문이 끼익거리는 시끄러운 소음과함께 천천히 열리고 밖에서 자신을 부르는 감옥관의 목소리에 유천은 어안이벙벙했다. 무슨...소리...? "빨리 나오라니까!" 열려진 철창문에도 불구하고, 나오지않고 머뭇거리는 유천를향해 감옥관이 참을성없이 소리를 질렀다. 그제서야 느릿하게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유천였다. 유천이 철창밖으로 나가자 기다렸다는듯 감옥관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그의 팔목과 발목에 쇠사슬을 걸어잠궜다.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유천이 감옥관을 바라보며 조용히 묻자 곧 날카로운 째림이 날라왔다. "어떻게되긴 뭐가 어떻게돼. 니가 풀려난거지." "...!!!" 풀려나?!!! 감옥관의 말에 유천의 눈썹이 살짝 일그러졌다. 어째서? 왜? 어제 하루에이어 오늘 저녁이 될때까지....거의 이틀동안 보이지않던 준수였다. 항상 오던 준수가 오지않자 모두들 수근거리기 시작했고, 그의 시중인 소진에게 다들 어떻게된거냐 물었지만, 우울한 표정인 그녀는 아무말도없이 식사만내주고 급히 나가버렸었다. 혹시.....정말 준수가 자신을 풀려나게 도와준것일까? 준수가 아무리 윤호와 친분이 있다해도 자신을 쉽사리 풀려날 수 있게 해줄수는 없을꺼라 생각하던 유천였다.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이 더욱더 이상하게만 생각되어진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든 감옥안에서 나왔다는것에 감사해야했다. 탈출을 시도하는것도 우선은 이 빌어먹을 감옥에서 빠져나가야 가능한일이니까..... 유천은 애써 다른 생각들은 떨쳐버리려 노력하며 감옥관들이 이끄는데로 이 불쾌한곳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 . . "다른 죄수들이 손대지 못하게 하라는 지시가 계셨어요. 한시도 눈떼지말고 잘 감시하라구요." 환희의 걱정스런 목소리가 유천이 있는곳이 아닌 또다른 감옥안을 울렸다. 그 말에 재중을위해 따로 붙여진 호위병들이 환희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중이 윤호의 명령으로 갇히게 된곳은 유천이 있던 곳과는 반대인곳였다. 유천이 자신과 같은족인 마녀족들끼리 갇혀있던곳에 있었다면, 재중은 자신과는 다른족인 마족들이 죄수로 있는곳에 갇히게된것. 재중을 철저히 격리시키기위한 윤호의 방편였다. 하지만, 아름다운 그의 외모는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했고, 거친 죄수들이 있는곳에서 어떤일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기에 호위병을 붙인것였다. "꼭이요. 한눈팔지 마시구요." 호위병들을향한 환희의 걱정가득한 또 한마디에 재중은 그를향해 살짝 웃어보였다. "걱정마 환희야...재중이는 괜찮아." "......." 말은 그렇게 하지만, 재중의 얼굴위로는 불쾌함이 넘치는 이곳이 두려운지.. 초조한 기색이 잔뜩 서려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한숨밖에 나오지않는 환희였다. 재중님....... 이곳에 거친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알아요...? 다들 죄를지은 죄수들이라구요. 모두들 지금 재중님을 쳐다본다구요. 철창안에 갇힌 많은 이들이 모두 자신을 쳐다본다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재중은 그저 환희가 걱정하지않길 바라는 눈치였다. 철컹-----. 드디어 감옥문이 열리고 감옥관들의 손이 재중을 그 안으로 인도했다. 재중이 들어가게된 감방에는 다른 몇몇죄수들이 숨죽이고 재중이 들어서는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환희가 그런 그들을보고는 눈쌀을 찌푸렸다. "올라가보시죠. 저희가 있을테니 걱정마시구요." 호위병들이 쉽게 발걸음을 떼지못하고 안절부절하고있는 환희에게 넌지시 말을 건낸다. "환희야..재중이 진짜 괜찮아..걱정마." 재중이 어느새 감옥바닥에 쭈그려 앉더니만, 환희가 있을법한 곳으로 고개를 돌려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재중님................ 환희의 얼굴이 한층 어두워졌다가 이내 다시 펴졌다. "재중님. 자주 올께요. 모포랑 갖다드릴테니 기다리세요." 환희의 목소리에 재중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마...윤호가 알면 화낼지도 몰라. ..환희..혼나는거 재중이는 싫어." 재중의 조용한 목소리에 환희는 자신의 눈시울이 순간 뜨거워짐을 느꼈다. "아니예요 재중님. 다시 올께요. 식사가 맛이없어도 꼭 드시구요." 환희가 눈자위를 자신의 손으로 비비며, 명랑한 어조로 말하고는 재중의 손을 철창너머로 꼬옥 잡았다. 손을 맞잡자 환하게 웃어주는 천사같은 재중의 얼굴이 보였다. . . . 타닥..타닥... 조용한 의무실에 커다랗게 울리는 작은 소음. 손가락에 잡힌 팬대의 끝부분이 연신 책상에 부딪히며 만들어지는 작은 소음였다. 쓸데없이 손을 놀리는 윤호의 눈길이 잠시 창밖으로 비치는 파란 나뭇잎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이곳 집무실은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나무들에 쌓여있는 전경으로 윤호가 의회일이나 다른 잡무를 보기에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해내고 있었다. 똑똑-----. "윤호님..환희들었습니다." 문밖에 서있는 호위병의 목소리에 그제서야 찌푸려있던 미간을 애써 펴내며, 고개를드는 윤호였다. 집중이..되지않는다. 환희가 왔다는말에 윤호가 편히 기대어있던 몸을 바로잡았다. "들어오라고해." 짧은 명령에 곧 집무실의 넓직한 문이 소리없이 열린다. "......." 쓸데없이 팬대를 잡은손에 힘을주며 윤호가 방안으로 들어서는 환희를 흘낏.. 쳐다봤다. "윤호님..." "그래." 평소에 명랑하고 씩씩하던 환희는 어디가고..금새 풀이 죽어있는 모습에, 윤호는 그가 왜 그런것인지 잘 알고있다는투로 환희를 바라봤다. 한동안 우두커니 윤호앞에 고개만 숙인채 가만히있는 환희가 답답한것인지 끝내는 윤호가 먼저 말문을 열어버린다. "어떻게됐어? 호위병들은 제대로 붙여놓고 왔겠지?." "....예.." 환희의 머뭇거리는 대답에 윤호가 곧 자신의 시선을 책상위에있는 서류쪽으로 옮겼다. 그리고는 무덤덤하게 말한다. "그래. 수고했다. 나가보거라." "......."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그냥 툭하니..내뱉는 윤호의 말에 환희는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는 이내 뒤적뒤적 서류를 살피고있는 윤호에게 대뜸 큰소리로 말을 건냈다. "윤호님!!! 재중님께 모포를 갖다드릴께요. 음식도 다른걸 준비하겠습니다!!! 감옥안이......." 환희의 커다란 목소리에 윤호의 시선이 다시 그에게로 향한다. ".....감옥안이...너무..춥습니다..." 그 시선에 환희의 얼굴이 금새 우울해졌다. 하지만, 그의 그런 표정에도 불구하고 윤호는 차가운 회색눈빛을 여전히 날카롭게 빛내고 있었다. 무겁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환희를 똑바로 바라보던 윤호가 이내..조용히 그의 말에 대답한다. "아무것도..필요없다. 만약 무엇이든 필요하다면...날 찾으라해. 다른누구도아닌..나." "..윤호님...." 윤호의 단호한 한마디에 금새 환희는 시무룩해져 버리고... 그런 환희가 등을돌려 방에서 나갈때까지도 윤호는 서류에서 눈길을 떼지않았다. - 감옥안이...춥습니다...... - 하지만, 이내 환희의 말이 환청처럼 윤호의 귓가를 파고들어 또다시 무슨일이든 집중할 수 없게 만들어버리고만다. - 감옥안이...춥습....... - 꽈악. 팬대를 틀어쥔 윤호의 손에 힘이가해졌다. 툭. 이내 그의 손안에있는 팬대가 부러지고 윤호의 인상은 더욱더 험악하게 구겨져 있었다. 내 말을 듣지않는 내것은 난 필요없다고 하였다. 필요...없어.......... [자작/게하] 미 열 (美 熱) 22편 조회 : 4,920 이름 : 아게하 작성일 : 2002/01/26 오후 2:57:06 URL : 없음 아무것도 모르는 텅빈 마음에... ...한번도 경험하지못한 짜릿한 느낌이.. 빠르게 날 휘저어놓고 말았다. 어떤 누군가는 그것을 이리 부르더라. .....'사랑'..이라고...... - 미 열(美 熱) 22편 - 똑똑---. 방문을 작게 두드리는소리. 자신의 두손에 들린 작은 서적을 덮으며 준수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준수님..소진입니다." 자신을 짧막하게 밝힌 그녀가 문을 열고선 들어섰다. 쿵----. 그녀가 들어섬과 동시에 조용히 문이 닫히고 소진은 자신이 들고온 식사를 준수의 방한켠에있는 탁자위로 올려놨다. "소진이..니가 고생이 많구나." 준수의 미안해하는 목소리에 소진은 정색을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준수님. 준수님께서 하루빨리 근신이 풀리셨으면 좋겠어요..." 벌써..삼일째 방에서만 시간을 떼우는 준수가 보기안쓰러운지 소진의 얼굴표정이 많이 가라앉아있었다. "고맙다 소진아." 준수가 그런 그녀를 보고는 살짝..미소 지으며 다소곳이 의자에 앉았다. 준수가 앉자마자 그에게로 은색 빛나는 숟가락을 내밀어주며 소진이 그의 곁에 무릎꿇고 앉았다. 그리고는 투명한 유리컵에 한가득 물을따라 준수에게 건내며 그가 목을 축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준수가 자신의 옷소매를 조심스레 거둬내며 식사를 시작하려 할때였다. "저기...준수님." 소진의 말에 준수가 그녀에게로 다시 눈길을둔다. "...풀려났어요." 뭔가 비밀스런 일이라도 되는듯 말을 건내는 소진에게 준수는 의아한듯 눈동자를 빛냈다. 그러자, 소진이 더욱 낮은 목소리로 준수에게 말을 건낸다. "그..유천라는 녀석이요. 어제 감옥에서 풀려났다니까요." "뭐...?!!" 소진의 말에 준수의 눈동자가 놀란듯이 커다래진다. 그리고는 식사하려던 손길을 멈추고 소진을향해 몸을 돌려 앉았다. "그말이..사실이야?" "예~!! 사실이예요." 소진의 확신에 찬 대답에 준수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가...... ..그가.....!!! 준수의 놀란얼굴위로 빠르게 환한 미소가 스쳤다가 사라졌다. 그리고는 그답지않게 약간은 빠른어조로 소진에게 말한다. "그래서? 그래서 지금 그는...." 감옥에서 빠져나왔다면..유천은 어디있단 말인가. 풀려나왔다는 반가움은 잠시, 그 뒤가 더 걱정이되는 준수였다. 그런 그의 걱정을 씻어주듯 소진의 얼굴이 밝은 표정을 띄었다. "제가 듣기론 다른곳에 갇혀있다 들었습니다. 그래도 감옥이 아니라 그냥 머무는 처소에다 가뒀다고 들었는데.. 그곳이 어딘지는 정확하게 알아보지 못했어요." "그래...감옥이 아니란건 확실하지?" 소진의 말에 남몰래 한숨을 내쉬며 재차묻자 그녀가 준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다. "후우..." 준수가 의자뒤로 몸을 묻었다. 긴장감이 모두 풀린듯했다. 화가난 윤호는 그대로 유천을 당장이라도 베어버릴듯한 기세여서..여간 불안한것이 아니었다. 냉정한듯 책을읽고 서적을 뒤적이며 지식을 쌓는척..열심히 무덤덤하게 시간을 보냈지만, 삼일이란 시간동안 유천에대한 생각은 한시도 사라지지 않았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추운...감옥이 아니라서....... 준수의 입가에 살풋이..수줍은 미소가 어렸다. 지금 그는 어째서 그렇게 매섭게 굴던 윤호가 갑자기 마음이 바껴 유천을 풀어준것인지 생각해낼 겨늘이 없어보였다. 그저...... 그저..유천이 풀려난것에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뿐였다. . . . 뽀얀 손이 왔다갔다..열심히 무언가를 포장하기 시작했다. 붉은색 비단으로 곱게 싼 그 무언가의 손질을 끝냈는지 곧 활짝..밝은 웃음이 입가에 서렸다. "기뻐...하시겠지?" 그리고는 자신의 시종인 지연을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짓는 그 여인은 다름아닌 유리. 그녀의 모습에 지연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유리님이 얼마나 정성을 들이신건데요..당연히 기뻐하실꺼예요." 확신에 찬 그녀의 말에 유리가 도도한 눈빛을 치켜세웠다. 그녀의 기분은 오늘 오전부터 매우 상쾌하게 바껴있었다. 그동안은 재중이라는 의외의 아름다운 마녀족의 아이가 등장해 불안해했던것이 사실였다. 무엇보다도 마녀족들을 어지간히도 싫어하던 윤호가 그런 눈먼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는것이 커다란 초조함을 자아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아침 지연이 새로이 가져온 소식에 그녀는 여태껏 윤호를 주려고 만들었던 선물을 곱게 포장해 두손에 안고있었다. 흥. 그럼 그렇지... 내 오래 못갈줄은 알고있었어. 하지만..감옥행이라니...너무하잖아? "후후.." 여린 오렌지빛 입술을 자신의 한손으로 가리고는 살짝미소짓는 그녀의 모습에 당당함이 가득 묻어난다. "가자. 윤호에게로." 어깨가 훤히 들어나 여린몸매를 지나치게 도발적으로 뽐내며 유리가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그녀의 뒤에있던 지연의 걸음도 빨라진다. [자작/게하] 미 열 (美 熱) 23편 조회 : 6,198 이름 : 아게하 작성일 : 2002/01/26 오후 2:58:10 URL : 없음 아무것도 모르는 텅빈 마음에... ...한번도 경험하지못한 짜릿한 느낌이.. 빠르게 날 휘저어놓고 말았다. 어떤 누군가는 그것을 이리 부르더라. .....'사랑'..이라고...... - 미 열(美 熱) 23편 - 가벼운 발걸음.. 자신을 스쳐지나는 나뭇가지들 조차도 어여뻐 보이는건 아마도 윤호에게로 향하는 발걸음이 마냥..좋아서이리라. 자신이 모시는 주인님이 이리도 좋아하니 그녀의 시종인 지연에게서도 연신 웃음이 사라지지않고............... 오랜만에 밖에 나오니..날씨는 화창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우아한 모양새로 또박..또박 걸음을 옮기던 유리가 순간 발걸음을 멈췄다. 그런 유리를 이상하게 바라보며 지연의 발걸음도 자연스레 그뒤로 멈춰진다. 유리의 시선은 호숫가를 지나기전 나뭇잎 우거진 작은숲속 구석에 위치한, 지하감옥쪽으로 향해있었다. 감옥이라서 그런지..다른 아름다운 풍경들과는 전혀 어울리지않는 살벌한 느낌. 많은 병사들이 감옥을 둘러싸고 보초를 서고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그곳을 지켜보던 유리의 입가에 비웃음이 서렸다. 순진한..눈망울을 굴리며...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듯한 얼굴로 그의 곁에 있었겠지? 마녀족주제에... 유리의 고운 미간이 찌푸러들며 눈매가 사납게 치켜 올라갔다. "유리님....심기가 불편하세요?" 그녀의 그런 모습에 지연이 걱정스러운듯 유리의 얼굴을 살폈다. 지연의 말에 유리가 그녀를 돌아보며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지연아. 안에 좀 들어가보고 오련?" "무..슨...?" 유리의 말이 처음엔 무슨말인지 모르는듯 하였으나 눈치빠른 지연이 곧 그녀의 말귀를 알아듣고는 살짝 미소를 띄었다. "아아~ 무슨 말씀이신지..알겠어요. 들어가보고 오겠습니다." 지연이 고개숙이며 그녀에게 예를 표하자 유리의 입가에 날카로운 미소가 서렸다. "난 윤호에게 갔다올께." 그리고는 지연의 손에서 자신이 윤호에게 줄 선물을 받아들고서는 바삐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지연이 곧 주위를 살며시 둘러보고는 감옥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 . . 빛 한점도 들어오지않는 음습한곳. 재중은 이곳이 몸서리 쳐지게 싫었다. 앉아있는것 만으로도 바닥에서의 한기가 그를 잡아먹을듯 올라오는것이 견딜수없게 추웠다. 잔뜩 자신의 몸을 움츠리고는 감옥 구석에 가만히있는 재중. 이곳에 있은지 삼일이되었는데..그의 몸은 몰라보게 약해져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중이 제일 참을수 없는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찌르는듯한 시선들이 자꾸만 느껴졌기 때문였다. 자신을 바라보는 야릇한 시선. 한명도 아닌 여러명이 그렇게 한꺼번에 재중에게로만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덕분에 재중은 두려운 마음에 잠을 잘수도...또 움직일수도 없었다. 다만..재중이 믿고있는것은 윤호가 자신을 봐주려고 세워놓은 철창밖에 호위병들였다. 추워.......... 춥구..힘들어..유천형........ 다른 사람들보다 면역성이 얕은 재중에게는 당연히 감옥살이가 버거울 수 밖에 없는것. 어느새 유천을 애타게 찾으며 눈물을 쏟을껏같은 재중이 세차게 고개를 뒤흔들었다. 아니야.... 내가 나가면..형이 또 들어올지도 모르는데..... 형은 이런곳에서 더 오래 있었는걸..... 이런생각하면..안돼 재중아! 자신이 들어온 대신 유천이 풀려났는지에대한 조금의 의심도 재중은 갖고있지 않았다. 자신이 들어왔으니 당연 유천을 풀어줬을 것이라고, 그렇게 윤호를 신뢰하고 있었다. 윤호은...그렇게..나쁜 사람이 아니야.... 재중이 부탁을 들어줬으니까........ 그러니까..미워할 일도 없는거야. 이렇게 춥고 힘든곳에 들어온것은 전부 자신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그였다. 애초에 환희가 윤호의 말을 잘들으면..괜찮을꺼라고 했었으니까... 그리고 윤호과도 그리 약속했는데.....그것을 어긴것은 자신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절대로 다른사람을 책망하거나..미워하지 않으려한다. 그런 재중이 자신의 어깨를 더욱 움츠리며 고개를 떨굴때였다. "밖에 나가서 별궁에 잠시들 가보거라." "...???" 자신이 갇혀있는 감방 밖으로 들리는 어떤 여자목소리에 재중의 떨궈졌던 고개가 살풋이 들어올려졌다. "예??? 저희는 자리를 뜰 수 없는데요?" 재중이 갇혀있는 감옥안을 들여다보며 호위병들이 지연의 말에 의아함을 표시했다. 지연이 그런 그들을향해 빙그레 웃음을 던지며 안에있는 재중의 모습을 흘낏 바라봤다. "고생스럽게 삼일이나 이곳을 지켰는데...무언가 보답이 있어야지. 위에서 내려온 분부다. 너희들에게 맛있는 식사와 술을 대접하라고 명하셨어." "도대체..어느분이..." 지연의 딱부러진 말인데도 그것조차 의심스러운지 재차 다시한번 질문을 던지는 병사들. 그런 그들에게로 지연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위에서 내려주신 호위를 무시할셈이냐? 당장 별궁으로 가봐!!!" 지연의 날카로운 소리에 병사들이 움찔거리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러더니 이내 지연의 당당한 시선에 슬며시 자리를 떴다. "그럼..다녀오겠습니다." 안그래도 점심시간이 가까워져 배가고프던 참였는데..잘됐다 싶어 그들이 빠르게 지연에게 인사를 건내고는 사라졌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지연이 슬쩍 웃으며 죄수들과 재중밖에 없는 감옥안을 둘러보았다. 꽤나 넓직한 이곳. 그들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곳에서 소란이 나도 밖을지키고있는 병사들은 무슨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를것 같았다. 지연이 재중이 갇혀있는 감옥안을 슬며시 들여다보자 그안에 갇혀있던 험상궂은 죄수들이 그녀를 바라본다. 재중도 생소한 여자 목소리에 자신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재중의 모습에 지연이 조소섞인 비웃음을 담으며 재중과 함께 투옥되어있는 죄수들에게 말을 건냈다. "감옥안에 갇혀있느라 얼마나 피곤들 하겠느냐. 내가 너희들을위해 선물을 내릴것이다." 꽤나 신분높은 사람의 몸종인듯 보이는 지연의 강경한 어투에, 감옥안에있는 죄수들의 눈빛이 의아한듯 날카롭게 빛났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지연이 나즈막하게 차가운 눈빛으로 속삭인다. "오랫동안의 감옥생활로.. 참고있는 욕구를 분출할 기회를 주겠어." "........" 그녀의 말에 모든 죄수들의 눈빛이 전부 하나같이 재중에게로 향했다. 당연하다는듯이 일관적으로 재중을 바라보는 눈빛들. 그런 그들의 표정에 지연의 입가에 냉소가 서린다. "뒷일은 내가 감당해줄테니...그 아이를...짓이겨도 상관없다!" "....!!!" 재중은 여자가 하는말을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다만................... 이렇게 갑작스레 위압감이 느껴지는것은... 순식간에 자신을 바라보고있는듯한 많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때문였다. 도대체...지금 밖에서 말을 건내고있는 여자는 누굴까... 눈이 안보이는 재중으로서는 지금 말을하고있는 지연의 목소리가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는것이기에 두려웠다. 얼음장보다도 날카롭고 차가운, 자신을 향한..그녀의 말투에대한 두려움........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 죄수들이 지연쪽을 다시한번 흘깃 쳐다봤다. 그러자 지연이 단호하게 죄수들을 부추긴다. "어서!!!" 지연의 확신에 찬 말을 기다렸다는듯이 그녀의 명령이 떨어지자 우왁스럽게 재중에게 한꺼번에 달려드는 그들. "아읏!!" 누군가가 힘차게 자신의 위로 올라타는 무게에 무방비 상태로있던 재중이 뒤로 넘어졌다. 털썩-----. 바닥으로 갑작스럽게 눕혀져버린 몸. 재중이 두려운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지.......? 도대체...무슨............ 하지만, 이미 재중이 상황을 파악하기도전에 그의 몸은 여러 사람들에게 붙잡혀있었다. 팔다리를 완전히 사로잡힌 상태. 움직이려해도 무섭도록 강한 힘들이 재중을 내리누르고있어 꼼짝 할 수가 없었다. "후후후...너무 심하게 다루지는 않았으면..좋으련만." 지연이 간사하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 감옥을 빠져나가는 지연의 얼굴위로 여유있는 부드러움이 깃들었다. 감히..유리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죄값이야. 투두둑----. 재중의 가슴에있던 윗옷의 단추들이 한꺼번에 튕겨져 나갔다. "!!!!!" 그러자 가슴위로 전해지는 얼어버릴것같은 공기. 이미..죄수들에게 말을건낸 여자는 나가버린듯 했다. "비켜봐 내가 먼저야!!!" "빨리, 빨리." 무언가를 재촉하는 목소리들. 그 목소리들과 함께 들려오는 가뿐 숨소리. 두렵다. 재중이 자신을 누르고있는 이들에게서 벗어나려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싫.....!!!" 싫다고 저항의 말을 내뱉으려하던 재중이 순간 자신의 가슴으로 느껴지는 축축한 느낌에 놀란 숨을 내뱉었다. "하아..하아...." 거친 숨결들이 순식간에 재중의 가슴과..목, 팔과 다리에 엉켜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여러명이 그의 몸을 구석구석 한꺼번에 유린하고 들었다. "..아..흣....아..!!!"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마치 뜯기는듯한 아픔에 재중의 고운얼굴이 일그러들었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다리를 벌리며 그 사이로 들어서려는 어느 육중한 무게에 놀란듯이 몸을 있는힘껏 비틀었다. 하지만..여러사람의 무게를 한꺼번에 싣고있는 자신의 몸은 여전히 움직이지 못할만큼 짓눌려있었다. "..싫......싫..어..." 재중의 눈가로 눈물이 맺혔다. 싫어...유천형....... 싫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듯 입술을 떨며 어깨를 들썩이는 그의 입술을 끈적한 숨결이 앗아갔다. "하읍.." 입술을 거칠게 열고 들어오는 미끄덩한 느낌에 재중이 고개를 휘저었다. 싫어..싫.어..... 제발....누가............. 그의 여린 몸이 커다랗게 떨리며, 그의 눈가에 맺혀있던 눈물이 옆으로 떨어져 귓가를 타고 흘러내릴때쯤........ ....윤..호..!!!!! .... ...그가 마음속으로 도움을 구한것은..유천이 아닌 윤호였다. [자작/게하] 미 열 (美 熱) 24편 조회 : 2,314 이름 : 아게하 작성일 : 2002/02/05 오후 10:38:46 URL : 없음 아무것도 모르는 텅빈 마음에... ...한번도 경험하지못한 짜릿한 느낌이.. 빠르게 날 휘저어놓고 말았다. 어떤 누군가는 그것을 이리 부르더라. .....'사랑'..이라고...... - 미 열(美 熱) 24편 - "윤호님..유리님 드셨습니다." 탁----. 윤호가 보고있던 두터운 서적이 둔탁한 소리를내며 닫혔다. "들어오라고해." 곧 밖의 시종에게 명령조로 말을하자 이내 소리없이 문이 열리며 살풋한 치마자락이 보인다. "후.." 윤호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윤호....뭐해요..?" 새침하고도 예쁜 목소리. 분명 윤호가 며칠새에 들었던 가녀린 미성과는 확연히 차이가있는 음색였다. "왔어?" 유리의 인형처럼 하얀얼굴을 바라보며 윤호가 애써 지금껏 찡그리고있던 얼굴표정을 바꿨다. "요즘...시간이 많이 남는거예요?" 언제나 바쁜 윤호. 하긴...... 부족일을 돌보려면 당연한 것였다. 거기다가 마족의 지배하에있는 여러 다른 부족들의 일까지 보려면..몸이 열개라도 모자랄텐데. 이렇게 윤호가 편안하게 집무실을 지키고있는것은 유리에겐 큰 기쁨였다. "지금은..괜찮을때야." 혹시나 바쁜데 찾아왔을까 걱정스런 눈치인 유리에게 윤호가 짧게 대답하며 의자에 앉기를 그녀에게 권했다. "고마워요." 윤호의 배려에 곧 양볼에 얼굴을 살며시 붉게 물들인 유리가 우아한 자세로 의자에 앉았다. 그런 그녀를보며 문 안쪽에 아직도 서있는 여시종에게 윤호가 명령했다. "유리가 마실만한 따뜻하고 달콤한 차를.." "예." 쿵-----. 간결한 대답과 함께 여시종이 나가자 유리와 윤호간에 짧은 침묵이 돌았다. "....." "....." 하지만, 곧 유리의 얇은 목소리로 인해 조용한 침묵이 깨지고만다. "항상..윤호가 시간이 없어서..제가 얼마나 섭섭한줄 알아요?" 약간의 애교섞인 말투. 그리고 붉으스름한 볼을 감싼 가는 손가락. "....." "....." 또한번 짧은 침묵을 사이로 여시종이 모락모락 달콤한 향이나는 과일차를 내왔다. 그제서야 그녀의 말에 윤호는 살짜기 눈을 내리깔며 조용히 한마디로 답했다. "미안." "....." 어찌됐던간에 자신이 직접 고른 자신의 반려자가 될 사람였다. 유리라면...예쁜 얼굴에 혈통좋은 아이를 낳을수 있을꺼라 생각하고 결론내린 윤호였다. 그리고..곧 혼례 날짜를 잡으려했던 그였다. 만약................ 자주빛 숲에서의 그를 보지않았다면........... 하지만, 그 신비한 빛깔의 숲에서 재중을 만난 후부터는 혼례에대한 생각을 까맣게 잊고있었다는걸.... 윤호는 이제서야 깨달았다. 그의 아름다운 외모에...자신이 빠져도 단단하 빠져버린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대자 그런 윤호의 모습을 유리가 의아한듯 바라본다. "윤호..머리 아파요?" 그리고는 자신의 모습에 곧 걱정스러운듯한 유리의 목소리가 날아든다. 유리의 말에 이내 그녀와 눈을 마주치는 윤호였다. 갑작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윤호의 강한 눈빛에 유리가 새침한 표정을 지어냈다. 그리고................. 자신을 보고는 손가락을 까닥이며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키는 윤호의 행동에 긴 속눈썹을 깜빡이는 유리였다. "옆...자리에....가도되요?" 윤호의 손짓에 유리가 수줍어하는 어린아이마냥 빙그레 미소짓더니 묻는다. 유리의 말에 윤호가 간단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윤호의 그 대답을 기다렸다는듯 유리가 치마자락을 손으로 거둬내며 곧 그에게 조용히 다가가 옆자리에 소리없이 앉았다. 유리가 곁에 바싹 다가오자 짙게 풍기는 장미향........... 분명 코끝을 짜릿하게 자극하는 꽃내음였다. 하지만................. 순수하게 풍기면서도 도발적인....... 은초롱꽃 향기가 코끝을 스쳤던것이..윤호의 머릿속으로 어렴풋이 자리하고......... 무표정을 일관하는 윤호가 유리의 볼을 손으로 감싸 숙여져있던 그녀의 고개를 들어올렸다. "..윤..호..?" 그러자 조금은 떨리는듯 커다란 두눈을 깜빡이는 유리. 그녀의 두눈은 커다랗고 매력적인 눈자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눈꼬리가 살짝 올라간 옅은 눈꺼플에 덮여있는..... ...아직은 보이지않는 눈동자가 궁금해 더욱더 생각이 난다하면........... 가깝게 드리워진 윤호의 눈빛에 유리가 당연하다는듯이 자신의 두눈을 감았다. 그러자 곧이어 그녀의 입술위로 떨어지는 윤호의 뜨거운 입술. 윤호의 입술이 유리의 입술 끝을 자신의 혀끝으로 살짝이 건드렸다. 그러자 살며시 벌어지는 그녀의 입술. 마치 윤호의 뜨거운 혀가 자신의 입안으로 금새 들어오길 바라는듯 그렇게 입술을 벌리고는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윤호는 그녀의 반응에 응하지않고 옅게 뜬눈으로 가깝게 밀착되어있는 유리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그녀의 입술주변만을 배회했다. 놀리는듯 윤호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라인에만 머물자 조금은 조바심이 나버린 유리가 곧 분홍빛 혀를 유혹적으로 내밀며 먼저 달겨들었다. 그리고......................... "....!!!" 그순간, 자신을 밀어내는 윤호의 손길이 느껴졌다. "윤호?" 윤호가 유리의 어깨를 살짝 밀쳐내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분명...저 입술안으로 들어서면 달콤할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눈같은 깨끗함은 묻어있지 않았다. 입술을 혀끝으로 간지르면 그 느낌이 이상한듯 자꾸만 고개를 슬쩍슬쩍 피하는 수줍은 행동이 없었다. 주체하지 못하고 깊게...혀를 밀어넣어 휘저으면..숨이 찬듯 가뿐숨을 여리게 내쉬는 순진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윤호의 얼굴이 차갑게 굳으며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덜컹-----. 원목으로 만들어진 고급스런 의자가 작은 소음을내며 뒤로 밀렸다. 자리에서 신경질적으로 벌떡 일어선 윤호때문이리라. 갑자기 표정을 날카롭게 굳히는 윤호를 바라보던 유리의 얼굴위로 당혹스러움이 스쳐지나갔다. 자신의 뒷모습을 계속해서 쳐다볼 유리에게 윤호가 낮게 말한다. "지금부터 할 일이 많을것같다. 나가주겠어?" 그래도 자신의 반려자라고 누구에게나 명령조로 말하는 윤호이지만, 유리에게만은 그나마 말투에서도 최대한의 배려를하는 그였다. "..저기..윤호..." "......" 나가달라는 윤호의 딱딱한 말에 유리가 곧 그에게 말을 건내려했지만, 더이상의 대화를 허용하지 않는듯한 윤호의 뒷모습에 이내 입술을 다물어버리는 유리였다. 그리고 말을 건내는 대신 자신이 가져온 선물을 곱게 풀어 그에게로 내밀었다. "......" 그러자 윤호의 짙은 회색빛 눈동자가 그제서야 자신에게로 돌아오고..... 유리는 생긋이 웃으며 밝게 말을 건낸다. "이거...제가 매일매일 정성껏 수놓은 거예요." 아름다운 숲속안에 용맹스럽게 눈빛을 빛내고있는 범의 모습였다. 황금빛털을 빛내고있는 모습이 정교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마치 카리스마적인 윤호의 모습을 나타내려한듯 정성어린 것였다. 윤호가 그것을 받아들며 보일듯말듯 작은 미소를 만들어냈다. "고마워." 짧은 표정이지만, 그 작은 미소에 유리의 기분은 좋아진듯 아까보다도 분위기는 한층 밝아져 있었다. "내가..시간을 너무많이 빼앗은건 아니죠? 저 가볼께요." 유리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넘기며 윤호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모습을 윤호는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윤호에게 예쁜 미소를 지어내며 곧 유리가 문밖으로 나서고......... 쿵-----. 닫혀버린 문을 바라보며 윤호는 멍하니 책상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유리가 주고간 아름다운 수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조금전처럼 얼굴을 일그리는 윤호였다. 자신은..방금 무슨 생각을 했던가. 인정하기 싫었다. 아무리 자신이 소유하고픈 것이라해도 이렇게까지 빠져든적은 없었다. 그저 소유하고나면 아무쓸모없이 곁에서 밀어내던 자신였는데........... 하지만, 부정하기엔 자신이 무슨생각을 했는지 윤호는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수를 건내주는 유리의 가는 손가락을 보며....그녀의 손가락보다.. 조금더 단아하고 깨끗한 그의 손가락을 생각했다는것을........... 유리의 길고 웨이브진 머리를 바라보며, 까만물이 뚝뚝 떨어질것같이 빛나는 흑발의 공단자락 그의 머리카락을 떠올렸다는걸............... "제기랄." 자신은 점점 빠져들고있는것이 틀림없었다. 갖고싶은것이 있다면, 정윤호가 소유를 했어야 하는것이지... 그 소유물이 자신을 소유해서는 아니됐다. 하지만............................ 그래.... 이 느낌은 단지..내가 아직도 그 아이를 갖지못해 생기는 단순한 집착에 지나지 않아서야. 다른것들처럼 갖고나면 금새..없어져버릴 우스운 어린아이같은 감정. 윤호의 입가로 비틀린 조소가 지나갔다. 갖고나면 버릴것을....뭐하러 내가..이리 속을 태운단 말인가. 여태껏 재중을 감옥에 보내고나서부터 복잡해지기 시작한 머릿속을 애써 정리하며 윤호의 눈동자가 단호하게 빛났다. 그리고................. 책상위에 비스듬히 기대었던 몸을 일으키며 윤호가 밖에 있을법한 시종들에게 명령했다. "환희를 불러오거라!! 감옥에........." 윤호의 회색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같이 가야할일이 있다고...빨리." [자작/게하] 미 열 (美 熱) 25편 조회 : 2,204 이름 : 아게하 작성일 : 2002/02/05 오후 10:39:45 URL : 없음 아무것도 모르는 텅빈 마음에... ...한번도 경험하지못한 짜릿한 느낌이.. 빠르게 날 휘저어놓고 말았다. 어떤 누군가는 그것을 이리 부르더라. .....'사랑'..이라고...... - 미 열(美 熱) 25편 - "하아..하아.." 힘겨움에 터져나오는 작은 숨소리. 그 숨소리는 곧 꺼져버릴것처럼 아무런 힘도 담아내고있지 않았다. 이제는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무슨말을 하는지 귓가에 미치지 않을정도로 재중은 손가락하나 움질일 기운조차 없는듯 그렇게 늘어져있었다. 자신의 목덜미와 가슴을 오르내리는 기분나쁜 축축한 무언가는 틀림없이 사람의 입술였다. 끈적끈적한 타액을 한껏 묻혀놓고는 다른곳을 탐하기에만 바쁘다. "..흐....읏...." 가끔 살결로 아픈 기색이 느껴지면 작게 신음성을 내뱉으며 자연적으로 고개를 비틀어 버리는 움직임이 전부. 재중의 두눈에서 투명한 눈물방울이 쉴새없이 뚝뚝..떨어져 내리는데도 그들은 그런 안타까운 모습에 관심조차 없는듯했다. 풀어헤져진 옷들이 기분나쁠 정도로 찢겨져 흩어져있고 이제는 남은 옷가지마저 벗겨내려는지 바쁘게 움직이는 손들이 허리께에서 느껴졌다. "..싫....." 그 억센 힘들사이에서 싫다는 반항한번 못해보고 그대로 입술만 떨고있었다. ..윤호.... ...윤호..... ....윤호..... 강하고 매서운 윤호의 목소리. 그런 그라면 지금의 자신을 구해줄수도 있을텐데..... 그래서..스스로도 모르게 떨리는 입술을 달싹이며 아무도 안들릴만큼 작은소리로 부르는 그의 이름인데..... 그는 와줄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빨리 끝내!" "벗겨." 수근대는 말소리와함께 재중의 옷가지들이 전부 벗겨질 찰나였다. 철컹-----. "...!!!" "..!!!" 갑작스런 철창소리에 재중을 탐하려던 죄수들의 눈길이 소리난곳으로 쏠렸다. 그리고.................. "감방안이....아주 더럽군 그래." 곧이어 들리는 비아냥거리는 목소리. 이 두려움속에서 자신을 구제해줄것같은 햇빛같은 목소리. 재중은 힘없는 고개를 소리난곳으로 떨구지도 못한채 자신의 육체를 괴롭히던 모든 손길에서 해방됐단 느낌에 가뿐숨을 몰아쉬었다. "모두...죽고싶지 않으면 그쯤에서 그만두는게 좋을것 같은데?" 약간은 농담조가 섞여든 목소리. 하지만, 그 말투 하나하나에는 매서운 위협이 담겨져 있었다. 감옥문을 열고 저벅저벅 걸어들어오는 사람을 바라보는 죄수들의 눈빛에 순간 두려움이 서렸다. "뒷일은 책임못져. 이 아이를 건드렸으니.." 붉게 이리저리 엉망으로 얼룩져있는 재중의 가슴위로 커다란 윗도리가 덮어졌다. 그리고는 곧 축.. 늘어져있는 재중의 몸을 가볍게 안아든다. 여기저기 목덜미 쪽에도 생채기가 난 것을보니 죄수들이 어지간히도 아프게 물고 뜯은것 같았다. "하읏.." 든든한 품안으로 금새 안겨버린 재중. 그런 그의 입에서 아픔의 신음성이 터져나왔다. .....벗어났다!!! 재중이 자신을 들어올린 사람의 품속으로 떨리는 입술을 꼬옥 깨물며 힘겹게 파고들었다. 따뜻한 품. 잔뜩 겁에질려 두려움에 몸을 움츠리는 재중이 떨리는 손끝으로, 자신을 안고있는 사람의 옷자락을 겨우겨우 힘줘 잡았다. 그리고는 채 마르지도않은 눈가를 또 한번 적시며 떠듬떠듬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유..윤호..맞아요...? ...맞는거..죠...? 그렇..죠...?" 극도의 불안과 공포속에서 한순간에 풀려난 재중이 심하게 몸을떨며 윤호를 찾았다. 무서웠던 순간에 윤호를 찾아서인지 지금 자신을 안고있는것도 윤호이기를 바라는것 같았다. "..윤호....윤호......" 이내 떨리는 몸으로 불안한듯 옅은 훌쩍임을 내뱉으며 더욱더 파고든다. 그런 재중을 더세게 힘주어 추스려안은 그가 가녀린 모습의 재중을 바라보며 입가에 여유있는 미소를 짓고는 감옥안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그가 감옥안에서 나가자마자 그의 뒷모습을 두렵게 쳐다보며 겁에질린듯 떠들어대는 죄수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 감옥을 지키던 밖에있던 호위병들이 다시 철창문을 잠그는 소리도 연달아 들려오고..... 재중을 품에안은 그가 감옥밖으로 나서자마자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떨고있는 재중을 안정시키듯 그의 이마위로 짧게 키스하고는 속삭였다. "이런...어쩌지...? 난 윤호가 아닌데..." 작은새처럼 자신의 품에만 파고드는 재중을 안고 걸어가는 창민의 발걸음이 윤호의 거처로 향하고 있었다. [자작/게하] 미 열 (美 熱) 26편 조회 : 2,284 이름 : 아게하 작성일 : 2002/02/05 오후 10:40:43 URL : 없음 집착...소유..... 어린아이같은 욕심... 이 모든것들도 사랑에서 비롯된다는것을 가슴깊이 명심하라. - 미 열(美 熱) 26편 - 노란빛이 드는 자신의 머리위로 검정색 귀여운 모자를 꾸욱 눌러쓴 환희의 얼굴위로 밝은 웃음이 걸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윗옷을 집어드는 윤호를 바라보며 놀라움이 담긴 눈을 커다랗게 치켜뜨고 대뜸한다는 소리가... "정말이세요 윤호님???" 믿지못하겠다는듯 내뱉는 말이다. 그런 환희를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며 윤호가 넓은 방안을 가로질러 문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정말 옳바르신 결정이세요 윤호님!! 솔직히 재중님같은 여리신 분이 감옥안을 어떻게 감당하시겠어요!!!" 자신을 불러서 무슨일인가 여전히 시무룩한 기분을 어쩌지 못하고 윤호의 방에 찾았는데... 윤호의 입에서 나온말은 정말 놀랄만한 것였다. 자신이 한번 결정한 것에는 절대로 다른말이없는 그가...생각을 바꾼것이다. 재중을보러 감옥을 간다니........... 재중이 풀려날 가능성이 많아짐에..환희의 얼굴위로 금새 웃음이 서렸다. 만난지는 얼마되지 않았어도 재중의 착한마음과 순수함에 마치 오랫동안 섬겨온 주인같은 느낌을 받은 환희였다. 그래서 재중이 갇혀있단 생각에 입맛도 뚝 떨어져 밥거르기도 일수였는데... 윤호가..생각을 바꾸다니...천만다행였다. 환희가 윤호의 옆에서 재잘거리며 재중이 풀어나게끔 은근히 설득력있는 말을 연신 내뱉는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걸어가는 윤호의 발걸음을 따라잡기 힘든지 통통통 가볍게 뛰어 따라가는 그였다. 그렇게 윤호와 환희가 막 문을열고 밖으로 나서려고 할때였다. 벌컥-----!!! 갑작스레 거칠게 문이 열린것은. "...!!!!" "...!!" "하아..하아..." 제법 빨리 오느라 애썼는지 분홍빛 입술새로 빠른 숨을 내쉬는 창민이 윤호를 마주보고 서있었다. 그리고................ 그의 품에 안겨있는 사람은.................. 윤호와 환희의 두눈이 놀란듯 커다래졌다. "......" "......." 잠시 잠깐 흐른 무거운 침묵. "..흐읏...하아...." 그 짧은 침묵사이를 가른것은 재중의 입에서 흘러나온 옅은 신음소리. 그 소리를 시작으로 놀란 눈을 부릅뜨던 윤호의 미간이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얼굴변화를 바라보던 창민이 천천히 자신의 입술을 연다. "우연히 지나다가 감옥안이 소란스럽길래 들어가봤더니 ..이 모양이더군." "......." 윤호의 눈동자가 한번의 깜빡임도 허용하지 않은채 창민의 품에 안겨있는 재중을 뜯어보기 시작했다. ...커다란 윗옷으로 덮여있지만, 분명 찢어발겨진것이 틀림없을 옷. 작은 입술가에도 상처가 나있고..고운 목덜미쪽도 엉망였다. 게다가 양볼가득 눈물자욱이라니........!!! "자세히..." 억눌린듯한 음성이 꽉다물린 잇새로 천천히 흘러나왔다. "..자세히..말해봐 심창민." 금새 무겁게 가라앉은 윤호의 회색눈빛을 바라보며 창민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어찌된건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이런 여린 아이를 감옥에 둔건 니 잘못이 큰것같다 정윤호. 그리고 내가 감옥안으로 들어가봤을때는 죄수 여러명이 이 아이를 겁탈하려던 상황였어." "재중님!!!" 창민의 말이 끝나자마자 환희가 경악을 금치못하며 품에 안겨있는 재중에게로 달겨들었다. 창민과 윤호의 눈빛이 허공에서 엉켰다. 감옥은 철저하게 방음처리가 우선이기에 밖을지나다가 소란스러움에 들어가봤다는건 당연 거짓말이다. 우연히 숲을 지나던 창민이 유리와 지연의 모습을 보게되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에 들어가본것이 정확한 사실였다. 분명 유리의 여시종인 지연이 확실하게 일을 꾸민것 같았지만, 더 큰 소란이 일어나는것을 막기위해 창민은 거짓말을 하고있었다. 물론 냉철한 윤호는 창민의 거짓말을 잘도 집어낼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윤호가 그런 사소한 거짓을 꼬집을만큼 제대로 이성을 붙들기엔 힘들어 보였다. 분노한듯 꽈악 틀어쥔 주먹과..떨리는 숨소리가 그걸 잘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매서운 눈빛또한 그러했다. 윤호가 창민의 품에서 재중을 빼앗아 안았다. 더이상 아무말없이 재중을 부드럽게 윤호에게 넘겨주는 창민. 그런 창민을 바라보며 윤호가 명령조의 낮은 목소리로 말을건냈다. "심창민. 근위대장인 너에게 마족의 족장으로써 명하겠다. 이 아이에게 손댄자..그리고 내가 이 아이를 지키라고 명했던 병사들을 당장 참수형시켜." "하지만...!!!" 창민이 윤호의 말에 반박하려 했지만, 돌아오는건 날카로운 윤호의 눈빛. "니가 병사들을 아끼는 마음 모르는것 아니야. 하지만, 그들은 내가 내린 명령을 이행하지 못했고 근무태만였어. 분명 참수형 시킬수있는 확실한 구실이다." "......." 윤호의 말에 창민은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절대적인 윤호의 명령. 그러나 그만큼 그는 마족들과 다른 이방인들을 잘 관리하고 있었고, 그러기에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입술을 살짜기 깨문 창민이 이내 윤호에게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이고는 답했다. "족장님 명대로.." 창민이 곧 단호한 모습으로 등을돌려 윤호의 방에서 빠져나갔다. 쿵-----. 그가 나가자마자 윤호의 냉랭했던 눈빛에 다시금 흥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흔들리는 회색눈빛... 그 흔들리는 눈빛은 자신의 품에서 작게 떨고있는 재중에게로 옮겨졌고, 그들의 곁에서 환희는 안절부절을 못하고 있었다. 그런 환희에게 윤호가 빠르게 명령했다. "선호를 불러와라. 그리고 들어올때 뜨거운 물도 함께 가져오도록." "예..예!! 윤호님!" 자신의 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달려나가는 환희의 모습을보며 윤호가 발걸음을 침대쪽으로 옮겼다. 그리고는 침대위에 사뿐히 재중을 내려놓으려 했는데... "...!!!" 자신의 옷자락을 힘없이 잡으며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재중의 작은손이 보였다. "휴우..." 다시금 밀려오는 분노에 윤호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어째서...위험한 순간에는 자신이 곁에 있을때가 아닌건지..... 이런 결과를 초래한것은 이 약하디약한 아이를 감옥에 가둔 자신에게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윤호가 자신의 미간을 일그리며 옷자락을 힘겹게 틀어쥐고있는 재중의 손을 떼어놓았다. 그와 동시에 미약하게 떨리는 입술새로 내뱉어지는 재중의 작은 목소리가... 윤호의 귓가를 울린다. "..ㅇ..유..천..형..." 재중의 들릴듯말듯 작은 목소리에 윤호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질때였다. "...윤...호..." 끊어질듯 새어나오는 자신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듣게된것은. [자작/게하] 미 열 (美 熱) 27편 조회 : 2,372 이름 : 아게하 작성일 : 2002/02/05 오후 10:41:44 URL : 없음 집착...소유..... 어린아이같은 욕심... 이 모든것들도 사랑에서 비롯된다는것을 가슴깊이 명심하라. - 미 열(美 熱) 27편 - 따끔. "..흣!..." 목으로부터 느껴지는 따가움에 작은 신음을 뱉어내며 고개를 꺽어버린다. 고개를 돌리면 피할까하는 아픔인데... 조금 더 있으니..여기저기 목덜미쪽이 쉴새없이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하아..." 깊은 숨소리를 조용히 토해내고는 그 따가움이 견딜수없어 퍼뜩..놓고있던 의식을 다시 잡아내는 재중였다. "아플꺼야." 의식을 차리자마자..귓가로 아련히 퍼지는 목소리. 재중이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을 담아내며 목소리가 난 방향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 재중의 모습에 윤호는 연신 무표정으로 일관할 뿐이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에 들린 뜨거운 물수건으로 재중의 몸 이곳저곳에 난 피맺힌 생채기를 닦아내었다. 상처난곳에 뜨거운것이 닿자 느껴지는 또한번의 아픔. 재중의 고운 눈쌀이 일그러든다. 하지만, 이내 윤호의 손이 자신의 아픈곳을 닦아내주는 그 느낌에..애써 찌푸린 얼굴을 부드럽게 펴냈다. 그리고는 아직까지는 도저히 힘이 들어가지않는 손을 겨우겨우 끌어올려 윤호의 손을 살며시 잡는 재중였다. 자신의 손을 잡은 부드러운 재중의 손길에 멈칫. 윤호의 손짓이..정지해 버린다. 급하게 달려온..선호에게 가볍게 진찰을 하게했다. 그리고상처난 부위는 으깬약초로 자신이 손수 발라주겠다고 말한 윤호였다. 물론 손수한다는 말에 환희와 선호에 벙찐표정을 봐야했지만, 그것이 중요한것은 아니었다. 심하게 몸을 떨며 두려운듯 침대시트를 꼬옥 말아쥔..이 아이를 안정시키는것이 윤호에겐 우선였으니까. 그렇게 여기저기 피가맺힌 상처와 또 그것과 함께 자리한 붉은자욱들을 보며 무던히도 무표정을 일관하려 노력하던 자신였는데..... 그만, 재중의 단순한 손길에 우습게도 멈춰버린 자신의 손이 이상하기까지하다. 그런 윤호를 아는지 모르는지 재중은 곧 붉은 입술을 달싹이며... 울먹였다. "...윤..호......" 며칠만에 들어보는 여린 미성. "...윤..호....맞..아요...?"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물어보는것이 분명 윤호인걸 아는데도 확인하려는 눈치다. 그 조심스런 물음에 윤호는 짧게 대답했다. "..그래." 그리고............ 와락-----! "...!!!"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자신의 품으로 힘겹게 안겨드는 재중을 느꼈다. "..흐윽...흑....." 그러자 이내 터져나오는 눈물. 떨리는 손끝으로 윤호의 허리께를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그런 재중의 갑작스런 행동을 윤호는 놀란 표정으로 내려다볼 수 밖에 없었다. "..흐읏...." 마른 어깨를 연신 커다랗게 떨며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울어버리는 재중이 흐느낌섞인 목소리로 말을 토해냈다. "싫어요..윤호.....나 그런곳 싫어요!!! 무섭고..너무 아파요...나 보내지 말아요!!!..." "....!!!" 재중의 말에 윤호는 순간 멍해지는 정신을 바로잡았다. 드디어 윤호가 원하는 한마디. 스스로도 늘 생각해왔다. 자신의 말을 듣지않는 소유물은 필요없다고... 그래서 어떻게든 재중의 입에서 자신을 찾는말이 나오게끔 만들어 그를 소유하고 싶어했건만............... ..막상...안타깝게 울면서 소리치는 재중의 말에... 이렇게.....마음 한구석이 무언가가 찔러대듯 따끔거리는것은 뭐란 말인가. 윤호가 자신의 허리께를 붙잡고, 자신의 가슴에 깊이 얼굴을 파묻으며 울고있는 재중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흐으윽...윤호........." 옅은 미성으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윤호의 기분을 안정시켜준다. 재중이 윤호의 가슴을 눈물로 흠뻑 적셔내며 고개를 내저었다. "...흐읍....하지만...... ..하지만...유천형은.........유천형은 재중이한텐 엄마같은 사람이예요... ...아빠같은 사람이예요.....흐으읏....." 울먹임으로인해 금새 어디론가 날아가버릴듯한 재중의 몸이 크게 오열해대며 안타깝게 흔들렸다. "우리..유천형...그냥..풀어주구....재중이두 감옥이란곳..안가면...... ...안가면..안되요....? ..재중이가 말 잘들을께요....그럴께요... ..윤호말...잘들으면.......흡!" 순간 흐느낌섞인 말을 토해내던 재중의 입술이 윤호의 입술에의해 막혀버렸다. "...흐읏....흑....." 자신의 입술위로 겹쳐진 윤호의 입술을 어쩌지 못하고 애써 울먹임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재중였다. "...윤..호.......제..발....." "쉿." 무언가 자신의 입술아래서 웅얼거리며 말을 꺼내려던 재중에게 조용히 하라는듯이 나즈막하게 속삭이는 윤호였다. "..흐으읏....하읏..." 윤호의 작지만 단호한 속삭임에 재중이 곧 말을 멈추며 그의 품에 힘없이 안긴채로 흐느낌을 줄이고는 눈물만 뚝뚝 흘려댔다. 윤호의 진회색 눈동자가 그런 재중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의 뺨을 자신의 손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몰랐었다. 이 아이가 자신에게 반항하는것이라 생각했던건 모두 부질없는 착각였다고... 지금에서야 깨달은 윤호였다. 재중이 자신을 거부했던것은..극히 단순한 이 아이의 감정 표현이었다는 것을..... 이 아이는 약아빠진 생각을 하지도...그렇다고 자존심을 내세우는 일따위는 절대로 없었다. 다만..눈의 결정체처럼 맑고 깨끗하기만해서..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행동했던것 뿐였는데................... 결국은 혼자서 꼴난 성질을 아기같은 녀석한테 부리고만셈이 되어버린것이다. 일말의 자기생각만하는 이기적인 마음도 하나없는 녀석. 윤호는 그런 재중을 더욱 가깝게 끌어당겨 안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히끅...." 그러자 재중의 입에서 곧 울음이 멎은 대신 가벼운 훌쩍거림이 자리한다. 안심이되는...따뜻한 품속. 재중이 자신도 모르게 윤호의 가슴쪽으로 더욱 기대며 젖어있는 볼을 그의 가슴에 부빗거렸다. ...윤호가......윤호가 올줄 알았어요..... ..나쁜사람 아닐꺼란 재중이생각...맞았어요...... 재중이한테...잘 해줄꺼라고......... .......................... 재중이 윤호의 품안에서 서서히 조금씩 나른해지는것을 느끼며 고개를 축..늘어트렸다. 유천이외에 느껴보는 다른 사람의 체온이 이리도 따듯하다는걸 깨달은 재중에게로.. 이제는 자꾸만 잠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윤호......... 유천형....다시..안보내주겠다고...재중이랑 약속해줘요...." "......." 조그맣게 줄어든 말소리에 윤호는 아무대답도 하지않는다. 그런 윤호를 아는지 모르는지..재중은 다시한번 붉은 입술을 달싹였다. "...재중이......무서운곳으로 보내지 않겠다고도..약속해주세요..." "너 많이 지쳤어. 지금은 자두는게좋아." 재중의 말을 가로막으며 윤호가 나즈막하게 속삭였다. 윤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곧 자신의 가슴팍으로 조용히 떨구어지는 재중의 머리가 느껴졌다. 재중을 바라보는 윤호의 눈빛이 알수없는 감정으로 일그러졌다. 누구든지 재중을 품에안고 조용히 그의 잠든 모습을 지켜보는 윤호를 보게된다면.. 화들짝 놀란눈을 떼지 못할것이다. 그도그럴것이....지금 자신이 다른이를 안고 그저 묵묵히 바라보고만 있다는것은 윤호스스로도 당황될만큼....난생 처음있는 어색한 일이었으므로............... 하지만, 복잡한 심정이얼킨 윤호의 머리속에서 확고하게 자리잡은 생각하나. 그것은 어찌됐던간에 지금 자신은 이 아이를 곁에두고 소유하고 싶어한다는 것였다. 자신의 곁에서만....있기를 원한다는 그것. [자작/게하] 미 열 (美 熱) 28편 조회 : 7,153 이름 : 아게하 작성일 : 2002/02/08 오후 10:43:51 URL : 없음 집착...소유..... 어린아이같은 욕심... 이 모든것들도 사랑에서 비롯된다는것을 가슴깊이 명심하라. - 미 열(美 熱) 28편 - 철컥--- "...!!!" 방안 침대위에 가만히 앉아있던 유천이 누군가 문을따는 소리에 깜짝 놀란 시선을 그곳으로 돌렸다. 감옥에서 풀려나와 이곳으로 영문도 모르고 옮겨진 유천. 물론 춥고 힘든 감옥보다는 몇배나 편한 곳였다. 작은 객실처럼 생긴 이곳은 침대도 있었고, 고급스런 책상과 책들이 꽂혀있는 책장까지 있었다. 하지만, 며칠을 기다려도 방안에만 갇힌채 사람조차 구경할 수 없었다. 식사같은것은 작게 나있는 쪽문으로만 밀어넣고 나가니...유천으로서는 여간 답답한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갑갑한 심정에 방안을 빙빙 돌기도 수차례. 지칠대로 지쳐버린 유천이 침대위에 힘없이 앉아있는데 누군가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린것이다. 유천의 커다랗게 놀란눈이 문쪽으로 향하고... 드디어 천천히 문이 열린 틈새로 문밖에 서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끼이익----- 조금은 낡은듯 작은 소음소리를 만들어내며 닫혀있던 문이 완전히 개방되고... "..!!!!!" 멍하니 문쪽을 바라보고있던 유천은 그대로 부릅떠진 눈을 고정시켰다. ...자신이 마을에서 창문틈으로 살짝..본적이있는 바람에 나부끼던 붉은색머리... .. 아름다운 하얀얼굴에 냉랭한 분위기...... 착..가라앉은 차가운빛의 회색눈동자..... 입가에 가볍게 걸려있는 비웃는듯한 조소. ...정윤호였다. "..개......" 분명히 윤호인걸 확인하자 순간 주먹을 꽉 틀어쥔 유천이 입술을 앙다물었다. "..개새끼..!!!" 분노섞인 함성을 내지르고는 그에게 달려드는 유천. 쿠당탕---!! "..흣!" 그런 그를 윤호의 곁에있던 병사들이 재빨리 제지시키며 넘어트렸다. "채워." 옆에서 여유있게 유천의 모습을 재밌다는듯이 바라보던 윤호가 차분한 목소리로 명령하자, 다른 병사들이 곧 그의 팔다리에 단단한 쇠사슬을 채워 잠갔다. "..비켜!! 이 씨발새끼들!!!" 거칠게 반항하는 유천였지만, 이내 여러명의 병사들에게 힘없이 무너지며 꼼짝없이 쇠사슬에 팔다리의 자유를 잃어버렸다. "하아..!" 자신의 팔과 다리를 옭죄는 아픔에 유천의 입에서 거친숨이 뿜어져 나왔다. "일으켜세워서 데리고나와." 그런 유천를보며 윤호가 병사들을향해 말을건냈다. 곧 윤호가 앞장서 걷고 그옆을 유천이 병사들에게 붙들려 나란히 걷게되었다. 그리고 유천은 며칠간 혼자지내던 그 작은 공간을 완전히 탈출했다. . . . 넓다란 호숫길을 걸어나가면서 그곳에있는 마족의 귀족들이 윤호에게 다들 정중하게 인사하는 꼴을 유천은 심기불편한 눈으로 바라봤다. 분명 모든 사람들이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는것이.. 마족을 대표하는 윤호는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받고있는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하지만, 유천의 눈에는 이들의 모습이 그 어떤것도 좋아보일수는 없는법. 자신의 팔에 채워져있는 쇠사슬을 살며시 한번 당겨보며 유천이 윤호을보고 차갑게 말을건냈다. "재중이는?" 재중의 이름이 나오자 자연스레 유천에게로 눈길을 돌리는 윤호였다. 그리고는 보란듯이 유천에게 빙그레 웃어보이며 짧막하게 답했다. "내곁에." 윤호의 여유넘치는 웃음에 유천은 참을수없는 분노를 억누르며 입술을 떨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동생을 생각하며 곧..윤호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 아이......." 미세하게 떨리는 유천의 입술을 윤호의 시선이 놓치지 않았다. 그에 유천이 자신의 입술을 세게 깨문다. "..그 아이를....범했나?" 꽤나 싫은말을..어렵사리 꺼낸듯 유천의 눈동자는 단호하게 빛나며 윤호를 똑바로 응시했다. 순간, 아침일찍봤던 어제부터 내리 잠만자고있는 재중의 얼굴을 떠올리는 윤호였다. 그리고 유천의 물음에 곧 기분나쁘다는듯이 자신의 미간을 살짝 일그린다. "알 필요가 없을텐데...이젠 내소유니까." "닥쳐!!!" 윤호의 대답에 유천이 날카롭게 소리쳤고, 그의 곁에있던 병사들이 유천의 팔을잡아 뒤로 비틀었다. "..흣..." 아픔의 신음성을 꾹눌러 참으며 유천이 방금전과는달리 조금 차분한 말투로 윤호에게 말을건냈다. "..그 아이...건드리지마." 막연히 윤호가 재중을 건들지 않았다고 믿고싶은 마음에 부탁조로 말하는 유천였다. "재중이에 대한것들은 이제 네 얘기거리가 될 수 없어." 마치 형이 동생을 생각하는 범위를 뛰어넘어선것같은 유천의 눈빛에 윤호의 신경이 금새 날카로워졌다. 그런 윤호에게 유천이 자신의 화를 누르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너흰 잘 모르겠지만, 우리 마녀족들은 중성인자를 가진 사람들이 있어. 물론 중성인자를 가진 사람들은 아이를 가질수있는 입장이다. ..재중이가...그런 입장이고." 유천의 말에 윤호의 눈동자가 순간 놀란빛을 띄었다. 윤호의 시선에 유천은 자신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돌리며 계속해서 말을잇기 시작했다. "재중이가 눈이 보이지 않는것은, 너희 마족들의 여자들이 아이를 가질수있는 시기가되면 초경을 하는것과 마찬가지 이유야. 재중이가 언젠가 눈을 뜨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건 그 아이가 완전히 성숙하게 자라 아이를 가질수있는 몸이 된다는 뜻이지." 아이를......가질수가 있어.....? 눈을 뜬다는것이 사람으로 비하면 여자들의 초경? 하긴....재중은 남자라치면 너무나 아름다운 외모였다. 여자보다도 더 유혹적인 자태가..어쩌면 다른사람들과는 조금 다른이유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새로운 사실을 알아버린 윤호의 눈동자가 충격을 받은듯 멍해졌다. 그런 윤호의 반응을 알면서도 유천은 자신의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직 그 아이는 성(性)이란것과 사람의 육체적결합에대해 온전한 지식이없는 아이란 말이다." 유천은 마녀족들만이 알고있는 중성인자에대한 얘기를 꺼내는것에 한쪽 가슴이 아려오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하지만..아직 윤호가 재중을 범하지 않았다는 일말의 희망이 있는한..그 아이를 지킬수있는 유일한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유천이 냉정한 시선으로 윤호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재중이를 범하게 된다면.... 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를 강간한는것과도 마찬가지가 될거다. 설마....아무리 극악무도해도 어린아이를 폭행하는일은 하지않겠지?" 유천의 단호한 말..한마디 한마디. 하지만, 그 말속에는 재중에대한 걱정과 또 그에따른 불안... 그리고 애원이 섞여있었다. 어린아이를...................... 유천의 말에 윤호는 자신의 얼굴을 스스로도 모르게 일그릴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재중을 가지려했던 밤이 떠올랐다. 연약하게 떨리는 붉은 입술과 침대시트를 꽈악 틀어쥔 작은 손이 생각..나버린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라면 윤호가 행하려했던 그 일들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윤호는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유천이 한 말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 아이에대한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었다고..... 그렇게 조금의 뿌듯한 마음을 스스로 자각도 하지못한채 느끼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윤호의 무표정한 얼굴. 그런 그의 모습에 유천은 연신 마음속으로 작은 기도를했다. 제발...재중이는 건드리지마...... 그 아이는 안돼........... 그 아이는.......... 서로 각자의 생각에 빠져 둘 사이에 흐르던 불안정한 기운이 많이 가라앉아있을때였다. "윤호님." 한 병사의 목소리가 그 조용한 침묵을깨며 윤호와 유천을 상념에서 빠져나오게한다. "준수님 거처에 도착했습니다." 앞에 보이는 작지만 상아빛의 단아하고 깨끗한 건물. 윤호와 유천의 시선이 동시에 그곳으로 향했다. [자작/게하] 미 열 (美 熱) 29편 조회 : 8,496 이름 : 아게하 작성일 : 2002/02/08 오후 10:44:54 URL : 없음 집착...소유..... 어린아이같은 욕심... 이 모든것들도 사랑에서 비롯된다는것을 가슴깊이 명심하라. - 미 열(美 熱) 29편 - 안절부절한 모양새로 파란빛 카펫이 깔린 방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준수가 자신의 분홍빛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오늘은 드디어 자신이 근신에서 풀려나는 날였다. 책만 읽고 수를 놓는것 만으로는 지루하기 짝이없는 그간 일주일. 이제는 호숫가에가서 다리를 거닐고도 싶고, 향기로운 풀과 꽃내음을 코끝으로 느껴보고 싶기도했다. 그리고................ 풀려났다는 유천이...궁금하기도........아니. 보고싶기도했다. 똑똑-----. 그렇게 얼마나 있었는지..갑자기 작은 노크소리와함께 준수의 대답도있기전.. 방문이 벌컥 열리며 소진이 들어왔다. "준수님!!!" 소진의 급한 목소리에 준수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하고... 소진은 준수에게 바짝 다가서서 속삭였다. "준수님...윤호님이 오셨습니다..그...." 소진이 계속 말을 이으려 할때였다. 달칵-----. 문이 열리고 윤호가 들어섰다. 그리고................. 그뒤로 병사들에게 양팔을 포박당한채 뒤따라 들어선 유천. "...!!!!!" 준수의 두 눈동자가 놀란듯이 커다랗게 변했다. 준수와 눈동자가 마주친 유천의 눈동자 역시 잠시 일렁임을 보이다 이내 가라앉았다. "유, 윤호아..." 준수가 유천에게서 시선을 옮겨 윤호를 바라봤고, 윤호는 그런 준수를 무표정한 얼굴로 마주했다. 윤호가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있는 준수에게 나즈막하게 말을 건냈다. "니가 바라던..박유천이야. 니 소원대로 해줬으니까 나중에 별말하지 말아라." "..윤...호야...." 준수가 윤호의 배려에 감격한듯 눈동자를 반짝이며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런 준수에게 윤호가 방금전보다도 더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부터 니사람이니까 다른 실수하지않게 준수가 니가 관리잘해" 준수에게 시선을 두었던 윤호가 잠시 차가운 눈동자를 유천에게 돌렸다. 윤호의 말에 준수는 너무나 기쁜듯이 자신의 두손으로 옷자락을 꽈악 움켜잡는다. 어린아이같은 표정. 우유빛같은 하얀피부에..양볼이 붉게 물든 모양새라니... 더할나위없이 예쁜 모습였다. 와락----- 곧 한발걸음 앞으로 다가선 준수가 유천의 시선이 자신에게 가있는지도 모른채 윤호의 허리를 따뜻하게 끌어안았다. "고마워 윤호아..." 윤호의 화가 풀리지 않을줄 알았다. 그래서 그런것인지 예전엔 발견할 수 없던 윤호의 이런 배려가 준수를 더 기쁘게 만드는것인지도 모른다. "됐어." 가는팔로 자신의 허리를 살며시 끌어안은 준수의 어깨를 두어번 토닥이며 윤호가 그의 손에 작은 열쇠를 쥐어줬다. "저녀석..풀어주는것도....저대로 묶어두는것도..이젠 니맘이다." 준수가 윤호가 건네주는 열쇠를 받으며 잠시 유천의 팔목과 발목에 채워져있는 쇠사슬을 바라봤다. "으응...정말 고마워 윤호아." 준수가 깨끗한 하얀미소를 윤호에게 선사하며 열쇠를 쥔 두손을 가슴에 모았다. 그런 준수를 바라보며 윤호는 왠지모를 속시원함에 굳었던 인상을 풀었다. "그럼..나 가볼께. 저녀석 관리잘해." 다시한번 신신당부를 잊지않는 윤호. 윤호가 유천을 곁눈질로 쳐다보며 문밖으로 나서려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 윤호에게 예쁜 미소로 무언의 대답을 한 준수가 그뒤를 몇발걸음 뒤쫒았다. 문쪽에 서있던 유천과 그곁을 지나가는 윤호의 시선이 짧게 마주쳤다 떨어졌다. 유천을 바로 지나치기전 윤호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그에게만 들리는 작은 목소리로 읍조렸다. "준수이에게 위협되는 행동은 용서하지않아. 네 동생이 내 수중에 있다는것 항상 기억하고 행동하란 뜻이야." "......." "준수이와 재중이가 아니었으면...넌 내손에 죽었을지도 몰라." 윤호의 날카로운 말에 유천은 그를 노려보기만 할뿐였다. 그렇게 둘만 알 수 있는 싸늘한 기운이 지나가고..곧 윤호와 나머지 병사들은 준수의 처소에서 빠져나갔다. "준수님..저도 물러가 보겠습니다." 소진도 준수와 유천의 눈치를 살며시 살피고는 이내 밖으로 나가버린다. 쿵-----. 모든 이들이 나가자..한순간 조용하게 찾아오는 적막감. 유천은 계속해서 자신과 똑바로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어물쩡 거리며 바닥만 쳐다보고있는 준수를 바라봤다. 하얀손가락만 꼼질..꼼질...움직이고는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려댄다. 황금빛 금발머리가 마치 물결처럼..그가 고개를 조금씩 움직일때마다 출렁였다. 끝내 무거운 적막감을 깨기로했는지 준수가 유천의 곁으로 살짝 다가섰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는 유천의 발목에 걸려있는 쇠사슬고리에 열쇠를 맞춰넣는다. 철컥-----. 작은 소음이 들려오며 곧 유천의 두다리가 해방됐다. "아팠....겠어요.....빨갛게..부었어...." 준수가 유천의 발목을 바라보며 살짝 뽀얀 미간을 찡그렸다. 그리고는 다시 열쇠를 집어들고는 유천의 팔목에 걸려있는 쇠사슬에 열쇠를 맞댄다. 준수의 입가로 빙그레..미소가 걸렸다. "..그것봐요....윤호..나쁜사람..아니죠?" 윤호에게 무척이나 고마워하는듯 준수의 양볼이 다시 발갛게 물들었다. 그리고는 곧 유천의 두팔을 자유스럽게 풀어내며 예쁜 눈웃음으로 유천을 바라본다. 수줍음이 잔뜩 깔려있는 눈동자. 입술꼬리가 부드럽게 살짝 올라간 미소에는...해맑음이 보였다. 그리고 분홍빛 입술새로 보이는 하얗고 가지런한..치아. "약을....가져올께요." 미소짓던 준수가 발목과 마찬가지로 부어오른 유천의 팔목이 시려보였는지 약을 가져온다며 몸을 돌린다. 탁-----. "..!!!" 하지만, 얼마못가 유천의 단단한 손에 준수의 가는 팔목이 붙들려버렸다. 자신의 팔목을 세게 잡고있는 유천. 그 힘에 유천앞으로 바싹 다가선 준수의 미소짓던 눈동자가 긴장감으로 놀란듯이 커다래졌다. 유천이 그런 준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차갑게 말을 건냈다. "도대체.....날..뭘믿고 풀어주는거지?" "......." 가깝게 다가선 유천에게서 따뜻한 숨결이 느껴지자 준수는 자신도 모르게 긴 속눈썹을 아래로 내리며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어색한 이 상황을 모면하려 애써 미소지어본다. "유천씨....좋은 사람이란거..알아요. 마족들을..싫어할뿐이지...동생사랑하는 착한 사람이란거..나.. 알아요." 준수가 유천에게로 다시 시선을 맞추며 빙그레 웃었다. 작은 얼굴에 퍼지는 환한미소. 그 미소에 유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리고는 조소섞인 목소리로 말을 건낸다. "..풋.....내가......" "....." "너한테 무슨짓을 할 줄 알고........... 당장 널 목졸라 죽이고 재중이를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갈수도있어." 유천이 준수의 턱을 자신의 한손으로 잡아 그의 얼굴을 들어올렸다. 그런 유천의 갑작스런 행동에 당황한 준수. 곧 유천의 손길을 피해 고개를 돌리려 할때였다. "...흐읍!!" 피하려 비틀었던 고개는 유천의 손에의해 다시 돌려지고, 준수의 분홍빛 작은 입술은 거칠게 내리누르는 그의 입술에 막혀버렸다. ~~~~~~~~~~~~~~~~~~~~~~~~~~~~~~~~~~~~~~~~~~~~~~~~~~~~~~~~~~~~~~~~~~~~~~~~~~~~~~~~ [게하/자작] 미 열 (美 熱) 30편 조회 : 5,895 이름 : 아게하 작성일 : 2002/02/22 오후 3:54:41 URL : 없음 집착...소유..... 어린아이같은 욕심... 이 모든것들도 사랑에서 비롯된다는것을 가슴깊이 명심하라. - 미 열(美 熱) 30편 - 고요한 방안과는 대조되게도..... 엉겨드는 숨소리........... 뜨거운...입김........ "하아...!!!" 갑작스럽게 자신의 입술을 덮친 유천의 거친 행동에 준수의 눈동자가 놀란듯이 커다래졌다. 하지만, 그것도잠시. 곧 자신의 입술 사이를 파고드는 유천의 부드러운 혀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의 어깨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싫....!!!" 그러나 싫다고 말하려고 살짜기 벌어졌던 입술은 어이없게도 유천을 받아들이게 만들어 버린다. "..하..읍...." 어깨를 밀어내지 못하게 자신의 손목을 잡고있는 유천의 한손을 어쩌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그냥 자신을 내어주고있는 준수였다. 어째서..... 준수의 고운 미간이 찌푸러 들었다. 유천의 다른 한손이 준수의 가는 허리를 강하게 감아왔다. "..흐읏...." 준수의 따뜻한 숨결을 집어삼키고 얌전히있는 그의 혓망울을 희롱하는 유천의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나가듯 멍해졌다. 무언가...짜릿한 느낌. 그러나..이내............... 준수가 숨을 쉬는것이 곤란한지 가뿐 숨을 내쉬며 고개를 도리질쳤고, 유천은 그제서야 거칠게 내리누르던 자신의 입술을 그에게서 거둬갔다. "하아...하아...." 떨어져나간 입술사이로 가파지는 숨을 애써 진정시키려하며 힘겨워하는 준수가 두눈에 비쳤다. "흐..읏....." 그의 행동이 꽤나 충격였는지..아직도 유천의 가슴에 얹어져있는 두손은 작은 경련을 담고있었다. 그리고 떨구어진 고개를 쉽게 들어올리지 못하는 준수였다. 빠르게 뛰는 심장을 주체할 수 가없다. 어째서..... ..왜............... 짧은 침묵을 사이에두고...천천히 숙였던 고개를 들어올리며 흔들리는 눈동자로 유천을 힘겹게 바라보는 준수다. 자신을 애써 바라보는 준수를 유천은 피하지 않았다. 분홍빛 입술새에서는 빠른 숨결을 뿜어내며 마주친 눈동자에서는 그 떨림이 느껴진다. 작은 입술이 조심스레 움직이며 더듬더듬 말하기 시작한다. "...왜........" 방금전의 따뜻했던 입술과는 달리 유천의 매서운 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냉랭한 눈에 준수는 자신의 심장이 더욱더 오그라드는 아픔을 느꼈다. 불안한듯 동그랗게 떠올려진 눈동자를 바라보며 유천은 자신의 눈빛보다도 더 차가운 말을 꺼내놓는다. "나한테 잘해주지 말아." "...!!!" 유천의 말에 준수의 입술이 미세한 떨림을 나타냈다. "나중에 너한테 돌아가는건 아픔뿐이야." "......" 유천가...무슨말을 하는건지..모르겠다. 모르겠어............. "아..아니예요....나는......" 준수는 애써 부정하려 뒤늦게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준수의 그 모습에 유천은 자신이 하려던말을 마저 꺼내놓았다. "지금 내 무례한 행동에 니 눈은 상처받았다고 말하고있어. 니가 아무리 나에게 관심어린 행동을 보여도..난 너한테 잘해줄 수 없어." "......." 고개를 내젓던 준수가 유천의 말에 다시 멈칫 어깨를 움츠리고, 그런 준수가 조금은 안타까워 보였지만 유천은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나한테....." 준수의 여린 눈동자가 다시 자신에게로 향한다. "정주지마." "........." 준수의 하얀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렸다. 금방이라도 두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내릴것만 같았다. 작은 주먹을 힘들게 말아쥐며 준수가 유천의 말에 애써 입을 열었다. "내가.........유천씨한테 호감있는거 사실이예요."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솟는지 모를만큼 평소에는 아무말없이 얌전한 준수가 자신의 미간을 일그렸다. "하지만.....왜 그렇게 밀어내려 하는건지 이해할 수 없어요. ...내가.......내가........당신이 싫어하는 마족이라 그런가요?" "......." 꾸욱 다물린 작고 새침한 입술이 유천의 두눈에 들어왔다. 그저 이 약한 사람에게 매섭게 겁을주고 차가운 말로 뿌리치려고 키스란것을 빌렸건만, 유천은 자신도 모르게 황홀함을 맛봐야했다. 스스로도 이해가 안되는 우스운 순간의 감정. 그렇기에 준수가 작은 저항을 할때 스스럼없이 그에게서 떨어져나간 것인지도 모른다. "훗.." 유천의 입에 자조섞인 웃음이 걸렸다. "난 다른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 정도로 한가하진않아." "......." "내가 오로지 관심을 가져 줄 사람은 한사람뿐이야." 유천의 말에 준수의 심장이 순간 철렁 내려앉았다. 유천의 저 입에서..나올 말은............. 무슨 말인지.............. 그 사람이...누구인데.......... 감히 누군지도 모르면서.... 갑자기 감옥안에서 자신의 동생을 바라보던 유천의 눈빛이 생각나 버리는건...... 준수의 흔들리는 눈빛에 유천은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렇지도않게 말을 꺼냈다. "내가..사랑해 줄 수있는 사람. 내 아이를 잉태하고 나하고 행복을 누릴사람." 자신의 동생이란 재중을 바라보던 유천의 따뜻한 눈빛과 다정한 미소............ "세상에 김재중 한명뿐이야." "...!!!!!" 유천의 말에 준수는 저도 모르게 자신의 분홍빛 입술을 세게 물어버렸다. 그리고................ "마...말도안되요....동생이라고 했잖아요...동생이라고!" 준수는 어느새 흥분된 목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울껏같은 눈빛으로 다급하게 묻는 준수의 얼굴위로 믿기힘들다는 표정이 떠오른다 하지만, 다시 돌아오는건 여전히 지나치게 감정이 절제된 차가운 목소리뿐. "우리 마녀족들은 대부분이 혈연끼리 평생을 함께하지." "...!!!!!" 입술을 꽈악..깨물고는 자신의 옷자락까지 움켜잡은 준수가 곧 고개를 떨구었다. 손끝이 이상하게도 저려오고 아파왔다. 금새 들어찬 눈물방울이 왜 자꾸 생기는지도 모른채, 두눈만 깜빡 깜빡......다만 볼위로 그 눈물이 흐르지않게 노력하는 그였다. 어떻게든....이 공간에서 벗어나야해. 더이상 유천가하는 말 같은건 듣고싶지 않았다. 어쩌다가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건지... 왜 자신이 박유천이란 사람에게 저런말을 들어야 하는건지... 눈물이........... 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 유천에대한 감정은 그저 무뚝뚝한 그에관한 호기심에 지나지 않는다고... 애써..생각하고 싶을 따름였다. 그와 이런 대화같은건 어울리지 않았다. 이 상황은 마치....자신이..그를........... 준수 자신이 박유천 그를............... 준수가 자신의 옷자락을 더욱 세게 움켜쥐며 차분한 목소리를내기위해 긴 한숨을 내쉬며 어색한 웃음을 애써 입가에 걸었다. "...야..약..발라야..하는데......" 흔들리는 눈동자를 고정시키려 다시한번 유천의 상처난 팔목과 발목을 바라봤다. 다른 주제로 말을 돌리려 입을 열었지만, 콱 막힌듯한 목소리가 마음대로 나와주지 않았다. "...많이...아프.........!!!" 그래도 힘겹게 말을 꺼내려던 준수가 결국엔 유천을 앞에 세워두고서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쿵-----! 준수가 애써 힘들게 밀쳐낸 문과함께 그의 모습이 방안에서 사라지고...... 우두커니 남은 유천였다. 웃기게도...처음부터 준수가 자신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고있단걸 어렴풋이 눈치는 채고있었다. 그래서 그런 그를 이용해보려고 마음속으로 많은 생각들을 했는데....... 자신의 생채기난 손목과 발목을 걱정하는 착한 그를 이용하는대신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고 말았다. 그랬더니.......... 금새 글썽이는 눈물이라니..... 피가 흐를것처럼 꾸욱..베어물은 입술이라니........ 상처받은 얼굴이라니......... 어찌보면......자신에게 보였던 준수의 관심과 호감이란것은...조금 더.... 그 수위가..높은 감정은 아닐런지......... 유천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래....... 아무것도 생각하지말자....... 내가 이곳에서 데려나갈..재중이만 생각해. 앞으로 내 반려자가 될 나의 아름다운 동생만............. [게하/자작] 미 열 (美 熱) 31편 조회 : 6,065 이름 : 아게하 작성일 : 2002/02/22 오후 3:55:58 URL : 없음 사랑이란것을 감지했을때는 재빨리 마음을 움직여 그것을 잡아야하는것이 옳음이다. 뒤늦게 깨달아 달아나버리면... 되돌릴수도 돌이킬수도 없는것..... ..그것이 '사랑'이다. - 미 열(美 熱) 31편 - 콰당-----. "...!!!" 가만히 흔들의자에 앉아 빨래감을 차분히 정리하던 소진의 눈이 놀란듯이 휘둥그레져 갑자기 벌컥 열려버린 문을 바라봤다. 그리고...... 와락-----!!! 갑자기 자신의 품에 다급하게 안겨버린 여린 몸때문에 또한번 놀라버린 그녀였다. "주..준수님?!!" 소진이 자신의 곁눈질로 보이는 황금빛 부드러운 머리결에 사람이 준수임을 확인하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흐윽." 그러자 곧 터져나오는 옅은 흐느낌. "준수님?!!" 소진이 그의 흐느낌 소리에 커다란 눈동자를 더욱 높이 치켜뜨며 안겨있는 준수를 품에서 떨어트리려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자신에게 안겨오기만하는 여린사람. 마른어깨가 심하게 떨리는것이 소진의 품안으로 전해졌다. 준수의 얼굴을 살피려 그를 밀어내는 시도를 했지만, 아무 성과가없자... 소진은 그냥 그가 안기는대로 두었다. 하지만, 준수를 걱정하는 소진의 목소리는 조금은 흥분된 말투를 동반한다. "준수님..무슨일이예요. 어째서 이렇게 우시는거예요!!" "흐..읏.....소..진아.." 소진의 목소리에 준수는 작게 흐느끼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말씀하세요..준수님. 혹시...그녀석이 괴롭힌건 아니겠죠?" 소진이 말하는 그녀석이란 단어에 소진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있던 준수의 감긴눈이 살짝떠졌다. 소진이 말하는 그녀석이란 틀림없이 박유천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유천.................. ..박유천................. 아프다............ ..이상하게...욱신거려......... 자신이 물어본 말에 아무런 대답도없는 준수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소진이 입술을 꼬옥 다물었다. "만약 그렇다면, 제가 윤호님께 말씀드리겠어요. 그런자식...다시한번 감옥에 들어가야 정신 차린다구요. 준수님이 잘해주실 필요........." 도리도리. 소진이 화가난듯 말을 잇자, 재빨리 자신의 고개를 도리질쳐 부정의 뜻을 나타내는 준수였다. "..그러지마..소진아.....그러지마.... .....그런거....아니란 말야....." 준수가 작게 속삭이며 다시한번 자신의 두눈을 살며시 내려 감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듯이 또르륵 흘러내리는 눈물이 그의 창백한 양볼을 타고내려 소진의 어깨자락을 적셨다. "..준수님!!!..." 소진이 그런 준수가 답답한지 긴 한숨을 내쉬며 그를 채근했다. 그러자 또다시 자신의 얼굴로 살짜기 도리질치는 준수의 머리결이 느껴졌다. "...후......." 소진의 입에서는 긴 한숨이 흘러나오고...... "...흐윽......흑........" 준수의 입술에서는 여린 흐느낌이 계속해서 쏟아져 내린다. 소진아......... 마음이..아파........... 그는 그저 나에게 재중씨를 사랑한다 말한것뿐인데..... 내가..이렇게 아파............ 가슴이 쓰라려서...말을..뱉을 수 가없어...... ..자꾸..... ...눈물만..나........... 눈물만.............. . . . "......." "..후...우....." 넓은 방 침대가에서 울리는 작은 미성에 저도모르게 미소가 걸렸다. 곧게뻗은 코끝으로 쏟아지는 얌전한 숨소리. 가끔은 칭얼대는 소리에 깬줄알고 재중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우스꽝스런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지만, 정작 본인인 윤호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듯했다. 일찍..모든 일과..원로회의. 그리고 그밖에 잡무를 바람처럼 해결하고는 급하게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재중곁에 꼬옥 붙여놓은 환희가 빙그레 웃으며 재중이 꿈나라에 빠졌다는 말을 했을때에....그 느낌이란........조금은 생소한것. 여지껏 자신의 방에 그 누구도 재워본적없는 윤호였다. 철저히 자신만의 공간였건만................... 어느순간부터..그것이 어떤 한 아이로인해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피곤한 몸을 깨끗하게 씻고나서 가만히 잠을자는 재중의 얼굴을 들여다보고있던 중였다. 감옥에서 위험한 일을 겪을뻔 한 후로는 무엇이 그렇게 피곤한지..꾸벅꾸벅.. 졸다가 곧바로 초저녁이되면 잠들어 버리는 그였다. 길고 우아하게 위로 말려있는 숱많은 속눈썹이 사람의 그것같지않아, 손가락을 가만히 둘 수가 없어진 윤호가..결국은 살짝..건드려보고만다. "우웅.." 그러자 들려오는 작은 웅얼거림. 아기들의 옹알이보다 훨씬 귀여운 느낌이 물씬 풍겨왔다. 그 모습이 사뭇 더 자세히 보고싶은 윤호가, 침대위로 올라가 재중의 곁에 나란히 몸을 뉘였다. 그리고는 느긋한 표정으로 재중의 모습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윤호의 한손이 재중의 눈자위를 부드럽게 더듬는다..... 다른일을 하면서도 마음속 한구석에는 유천에게 전해들은 얘기가 하루종일 생각이 났던 그였다. 정말.....이 눈이 떠진다는건가? 도대체 언제.....? 이런 여린몸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니........ 윤호가 생각하기엔 신기할 따름였다. 여자들의 그것보다도 더 얇은 선을 지닌것같은 몸의 유형이 아이를 담아내다니... 그렇게 저녁먹는것도 잊은채 재중의 잠자는 모습을 바라보던것이 얼마나 지났을까. "으응...." 작은 신음성 비슷한 목소리가 재중의 입가를 타고 흘러나왔다. "...!!" 그 소리에 조금 놀란 윤호가 자세를 바로고쳐 재중을 살피고............. "...흐..읏...." 그런 와중에도 재중의 입가에서는 방금전보다도 더 괴롭게 들리는 숨소리가 터져나왔다. "...재중아?" 자신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외쳐부른 윤호가 어느새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하는 재중의 이마를 바라봤다. "...시...싫......" "........" 재중의 두손이 자신의 가까이에 닿아있는 윤호를 힘없이 밀어내며 고개를 틀었다. "김재중!!" "하아..!....싫..ㅇ..ㅓ..." 작게 웅얼거리는 목소리를 알아듣기위해 귀를 기울이니 무슨 악몽을 꾸는것인지 싫다는 소리만 반복하고 있었다. "정신차려!!" 윤호가 얼른 재중의 상체를 품에 안아 들고는 그의 볼을 살짝..때렸다. "..아읏....." "꿈에서 깨라고!!" 윤호의 손가락이 재중의 이마위를 어지럽게 덮고있는 땀에젖은 머리칼을 시원스레 넘기며 다시한번 그의 뺨을 두드렸다. 그러자.......... "흐읍!!!" 윤호의 손길이 효과가 있었는지 재중의 어깨가 흠칫..떨리며 입에서는 막혀있던 깊은 한숨이 터져나왔다. "...하..아........." "깬..건가?" "..하아..하아...." 윤호의 손길이 다시한번 재중의 머리를 쓸어넘겼다. 그 손길에 곧 자신의 옷자락을 꼬옥 잡는 작은 두손이 느껴진다. "..윤..호.....맞죠...? 지금....재중이 곁에있는 사람....윤호......" 금방 악몽에서 깨어난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떠듬떠듬 말을 잇는 재중은 무언가 겁을 먹은듯 보였다. "그래..맞아." 우선은 재중의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위해 그의 물음에 얼른 대답하는 윤호였다. 윤호의 목소리와 대답에 그제서야 재중은 긴장하고있던 몸을 그의 품에서 축 늘어트리며 꼬옥감긴 눈끝으로 눈물을 매달았다. "자꾸만...꿈에서..보여요..... 감옥안에서 재중이를 괴롭혔던 사람들이....자꾸만..괴롭혀.." "......." 재중의 속삭이듯 울먹이는 말에 윤호는 그를 품안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이상하게 지금은 자신과 재중밖에 아무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겁먹은 작은 목소리에 그만, 괜시리 보호본능이란것이 불쑥..생겨버린다. 윤호의 두손이 재중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나즈막한 목소리로 말을 건낸다. "널 괴롭히던 사람들은 없어. 다시는.. 그런 일 없을꺼야. 걱정하지마라." 다른 모든이들도 들어보지못한 윤호의 다정한 목소리. 아마 창민과 준수조차도 그의 이런 목소리를 듣는다면 놀랄지도 모르는 일였다. 하지만 그런것도 모른채 윤호는 지금 계속해서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행동들을 재중에게만 보여주는 것이다. 윤호의 단단한 가슴과 든든한 손길에 재중의 표정이 곧 편안하게 바뀌었다. "윤호가....재중이곁에 있어줄꺼예요...그렇죠...? 우리 유천형하구...재중이....지켜줄꺼라고 믿어도되죠?..." 아이같은 사심없는 말투에 윤호는 유천란 이름에 잠시 눈가를 찌푸렸다 곧 웃어버렸다. 그리고는 재중을 안아들어 온전히 자신의 품속으로 끌어들이고는 침대위로 털썩...누워버렸다. 그러자 쉽게 딸려오는 재중의 여린몸. 재중이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윤호가 원하는대로 아무반항없이 기대올때마다 금방이라도 사랑을 나누고싶은 욕구가 몇번이고 샘솟았지만, 아직은 그럴수 없다는 생각에 쉽사리 어쩌지 못하는 자신이 우습기까지했다. 하지만....이렇게 안고있는것만으로도 따뜻해지는 이 느낌은..뭐란 말인가..... 도대체......뭐지................ 재중이 조금더 자신에게 다가올수록..... 그리고 자신에게 예쁜 행동을 더 많이 보일수록......... 윤호의 가슴속엔 아직까진 재중에대한 소유욕이 단단히 뿌리내려 확고한 자리매김을 할 뿐였다. [자작/게하] 미 열 (美 熱) 32편 조회 : 4,854 이름 : 아게하 작성일 : 2002/02/24 오후 4:07:41 URL : 없음 사랑이란것을 감지했을때는 재빨리 마음을 움직여 그것을 잡아야하는것이 옳음이다. 뒤늦게 깨달아 달아나버리면... 되돌릴수도 돌이킬수도 없는것..... ..그것이 '사랑'이다. - 미 열(美 熱) 32편 - 나풀거리는 옷자락을 손으로 살짝 거둬드리는 폼이 어딘지 모르게 어설퍼 보이긴 했지만, 서투른 귀여움을 잔뜩 담고있었다. 밖으로 나온것이 무척이나 기분이 좋은지 활짝 웃는 얼굴이 자신의 곁에 만발해있는 은초롱꽃 보다도 더 예뻤다. "윤호--- 환희야----" 붉은 입술을 동그랗게 벌리고 살짜기 소리치며 꽃밭속으로 쏘옥 주저앉아버린 재중. 아침을 먹자마자 예쁘게 웃어보이더니 한다는말이.. 흙내음이 맡고싶다고... 예쁜 꽃잎을 손끝으로 느껴보고 싶다고... 재중의 소근거리는 그 말에 무작정 재중과 환희를 자신의 처소 앞뜰로 데리고나온 윤호였다. 그래도...이리 좋아할줄은 몰랐다. 재중의 아래로 낮게 깔려있는 작은꽃들. 불투명 하얀빛 비단옷을 곱게 차려입은 그의 상체만이 꽃들속으로 내비칠 뿐였다. 그의 그런 모습에 윤호는 속으론 흐뭇한 마음을 지녔지만, 애써 무표정을 연출하려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윤호과는 상관없이 아직은 어린 환희도 곧 재중의 활발함에 장단을 맞춰주었다. "재중님....이게 무슨 꽃인줄 아세요?" 환희가 묻자 재중이 곧 환희의 목소리가 나는곳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살며시 갸우뚱하는 모습이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어느새 그들의 곁으로 다가선 윤호가 재중의 곁으로 바짝 걸어왔다. "은초롱꽃이라고 부르지. 꽃잎색깔이 은색인데다가 특이하게도 잎색깔이 하늘빛을하고 있어." 윤호가 환희가 해주어야 할 말을 대신하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내비쳤다. "아아~~~" 재중의 입에서 곧 무언가를 알겠다는 표정이 오갔고 그런 그의 모습에 환희는 밝은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우웅.... 윤호...... 그런데 난 하늘색이 어떤건지....은색이 어떤건지...알 수 가없어요.... 한번도 본적이 없는걸..." 재중이 자신의 까만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날려주는 산들바람이 좋은지 입가에 웃음을 띄우며 무심코 꺼낸 말. 자신은 아무상관없이 그냥 꺼낸 말였지만, 그 말을 들은 윤호와 환희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 그런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재중은 다시 고개숙여 꽃내음을 느끼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런 재중을 바라보는 윤호의 눈이 아득하게 빛났다. 저 아이가...눈을뜨는날...... 나를 받아들여 내 아이를 갖는다면...... 그렇게 된다면.............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그런 생각을 불쑥 해버리고마는 윤호였다. 자신에겐..직접 자신이 정한 약혼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벌써 다른 이유들을 생각하기에 윤호는 지금 재중이란 아이에게 한참이나 끌려가고 있었다. "고마워요..윤호." 잠시 유리를 생각하며 눈가를 찌푸리던 윤호가 재중의 목소리에 상념에서 빠져나온다. 그런 윤호가 느껴지는지 재중이 수줍은 미소를 살풋이 지어냈다. "..나....흙냄새랑 꽃내음이 그리워서..... 그래서.....이렇게 있는거..정말 좋아요...정말로..." 몇번 제대로 밖에 나가본적 없는듯 작은 돌맹이 하나를 제 손으로 만져보는것조차 기뻐하다니............. 유천이 꽁꽁 숨겨놓고 키운티가 역력히 나타나는 순간들였다. 하지만, 윤호는 그런 유천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갈것도같아 조용히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이런 아이를 내놓고 키웠다면...어찌됐을까...... 아름다움으로 사람을 매혹시키고... 순수함 자체가 모두를 사로잡을것 같은...이런 아이가... 아마도 밖으로 내돌려 키웠다면, 만약의 경우 못된사람들에게 나쁜일을 당했을지도 모르는 일였다. 그런면에있어 윤호는 잠시동안 유천에게 짧은 고마움을 느꼈다. 촉촉한 정원의 흙은 자신의 작은 손바닥으로 톡톡 두드려보는 재중. 그런 재중의 반응이 재미있는지 환희가 키득거리며 곁에서 웃고있다. 잠시 흙을 톡톡 두드려보던 재중이 갑자기 곁에서있는 윤호에게로 더듬더듬 손을뻗어 그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겼다. "..???" 그러자 자연스레 윤호와 환희의 시선이 재중에게로 옮겨지고....... 그 시선들이 느껴지는지 재중이 예쁜 입술을 오므리며 작게 속삭이듯 말을 건낸다. "...이 꽃......... 꺽어버리면.....아프겠죠...?" "....." 뭐 대단한 일이라고 저리도 조심스레 말을한단 말인가. 잠시간 환희과 윤호가 재중을 바라봤다. 자신의 물음에 아무말도없자 재중이 다시한번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그러니까...이 꽃....재중이가 갖구싶은데.... 꺽어버리면...아파하겠죠...?" 마치 꽃이 팔다리 움직이는 사람이라도 되는마냥 조금은 겁이난 표정으로 차근차근 허락을받듯 윤호의 옷자락을 당기는 재중였다. "풋~!" 그런 재중을 바라보는 환희가 결국엔 먼저 웃음을 터트렸다. 제깐애는 제법 심각하게 말을 꺼냈는데 환희가 웃어버리자 곧 재중의 미간에 귀여운 주름이 잡혔다. "환희..너 웃을꺼야? 재중이는 걱정스러워서 꺼낸 말인데....치..." 뾰루퉁하게 입술을 뿔뚝하게 내민 모양새가 영락없는 어린아이다. 겉으론 대놓고 표현 할 순없지만, 우습기는 윤호도 마찬가지. 재중의 저런 착한 마음이 자신을 더 끌어들이는 매력의 커다란 요소임은 틀림없었다. 투둑.. 윤호가 곧 손을 뻗어 꽃 몇송이를 꺽어들었다. 그리고는 재중의 손에 쥐어주며 나즈막하게 말한다. "은초롱꽃은 꺽으면 그 자리에 또 한번 피는것이 특징이다. 네 손에 들려있는것이라면...이 꽃들도 좋아하겠지." 윤호의 꽤나 다정함이 섞인 상냥한 말투에 환희는 자신의 두눈을 동그랗게 치켜뜨고는 놀란듯이 입술을 살짝 벌렸다. 친분이있는 창민이나 준수에게 편안하게 말을 붙히는 윤호는 많이 봐왔다. 그리고 자신의 약혼녀 유리에게 최대한 예를갖춰 대하는 모습도 가끔은있는 일였다. 하지만................. 이렇게....그것도 마녀족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내는 윤호는 난생처음보는 광경였다. 그러니 환희가 놀랄 수 밖에..... "우웅..." 재중이 윤호의 말에 입술을 꾸욱 다물었다. "내 손에 들려있는것이 행복하다면...정말 좋을텐데..." 윤호가하는 말을 신뢰하는지 진심어린 말을 내뱉으며 작은 꽃송이를 자신의 가슴에 조심스레 품어보는 재중였다. "......." 그러나 이내 꽃송이를 가슴에 품고는 조용히 아무말없이 고개를 숙이고있는 재중을 윤호와 환희가 의아한듯 바라봤다. "왜 그러세요 재중님?" 환희의 조심스런 질문에 곧 재중은 고개를 들어올리고는 아무일도 아니라는듯 천천히 도리질을친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많이도 어두워져 있었다. "무슨일이...있는것이냐." 윤호 또한 재중의 가라앉은 얼굴에 자신도 모르게 신경을 곤두세우고는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자.....이내 윤호의 옷자락을 더욱더 힘주어 붙잡으며 입술을 웅얼거리는것이 틀림없이 뭔가 꺼내기 어려운 말을 하려는듯 싶은데..... "말해봐." 윤호가 그런 재중을 눈치챘는지 그의 대답을 재촉했고... 재중은 끝내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말을 꺼내놓는다. "....갑자기.......... ..갑자기....유천형이 생각났어요....... 가끔 꽃내음을 맡게해주었던 유천형이..........." "....." "......" 잊고있었다. 이 녀석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형을 챙기는 녀석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재중에 대한말을 꺼내면서 눈빛을 매섭게 빛내던 유천은 여전히 윤호에게는 껄끄러운 사람. 그런 윤호의 마음을 어느정도 어렴풋이 눈치채는 환희인지라 슬그머니 그의 눈치를 살핀다. 행여나 또다시 재중이 안좋은일을 겪을까봐서..... 윤호의 붉은 입술이 힘주어 다물렸다. 이렇게..신경 쓸 필요없는문제다....... 그래... 동생이기에 그런 걱정...충분히 할 수도 있고, 또 그 눈빛을 내가 잘못 본것이겠지. 그런..것이겠지... 애써 재중의 우울한 모습을보며 유천의 눈빛을 자신의 착각이라 생각해보려고 노력하는 윤호였다. 분명..재중 또한 자신이 입으로 유천은 부모와같은 존재라고 인정하지 않았던가. 이내..걱정스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환희에게 잠시 눈을 맞춘 윤호가 천천히 입을열었다. "환희야...." "예?!" 윤호의 무거운 어조에 화들짝 놀라며 그를 바라보는 환희. 윤호가 주저앉아있는 재중을 살짝 들어올려 일으키며 말을 였다. "오랜만에 준수와 유리..그리고 창민에게 저녁 만찬이나 하자고 전하거라." "예?!!!" 윤호의 말에 환희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고, 그런 환희를 못본척 그저 재중을 자신의 한쪽품으로 온전히 감싼채 처소로 들어서는 윤호였다. "......." 잠시동안 윤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환희의 얼굴위로 활짝 웃음이 피어났다. 자신도 얼마전 준수의 시종들에게 얼핏 전해들은 말이 있었다. 재중의 형되는 유천라는 사람이 준수의 사람이 되었다고........ "저녁때 재중님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겠는걸~!!" 지금은 모르는것 같았지만, 조금있다 자신의 형이 만찬에 나온다는걸 알게된다면 무척이나 좋아할 재중의 얼굴이 벌써부터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런 중에도 한가지 떠오르는 또하나의 생각. 윤호님께서....재중님이 오신후로 많이 후덕해 지셨단말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곧 뛰어가는 환희의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진다. 하지만..누구도 알지 못하는것이겠지..... 그렇게까지 상냥히 대해주는것은 김재중이란 사람이기에 가능하다는것을..... 정윤호가 보여주는 그것은 김재중이란 사람에게만 한정되어있다는것을....... 그리대하는 윤호 스스로도 아직은 깨닫지 못하는 감정의 작은 시작이란것을..... [자작/게하] 미 열 (美 熱) 33편 조회 : 4,693 이름 : 아게하 작성일 : 2002/02/24 오후 4:08:49 URL : 없음 사랑이란것을 감지했을때는 재빨리 마음을 움직여 그것을 잡아야하는것이 옳음이다. 뒤늦게 깨달아 달아나버리면... 되돌릴수도 돌이킬수도 없는것..... ..그것이 '사랑'이다. - 미 열(美 熱) 33편 - "......." 가만히 유천을 째려보는 소진의 시선에... 곁에 서있는 준수가 더 몸둘바를 모른다. "소..소진아 나가서 내 옷 좀 가져다주련?" 준수가 작은 목소리로 말하자 소진이 입술을 꾸욱 다물며 유천을 바라보던 시선을 겨우 떼어낸다. "전 준수님 목욕 시중을 들어야지요." 그리고는 한시도 준수와 떨어지지 않겠다는듯 입술을 삐죽이 내미는 그녀였다. 분명, 준수가 울었던날이 모두 유천때문인줄로 알고있는것이 틀림없었다. 그 후부터는 아주 유천을 못잡아 먹어 안달인듯 째려보며 가시담긴 말을 툭툭 내뱉어대니............. 준수는 자신이 실수했다는것을 뼈져리게 느꼈다. 누구보다도 자신을 잘 따르고 공경하는 소진인걸 알면서도..어째서 그녀앞에서 그렇게 서럽게 눈물을 쏟아냈는지... 하지만............. 그때는..... 그런 마음으로는 누구에게도 쉽게 기댈 수 가 없었다. "소진아....저번에 바느질이 잘못되었던 옷은 수정해 놓았어? 오늘은 그 옷이 입고 싶구나." 준수가 차분하게 저번에 소진이 바느질을 잘못했다던 옷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러자 금새 흠칫 놀라는 소진의 얼굴. "어머!! 다시 해놓는다는것이 깜빡했어요...이를어째!" 준수가 제일 좋아하는 옅은 물빛의 비단옷이 생각나자 두눈을 휘둥그레 치켜뜨는 소진였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준수님..금방 수선해갖구 올께요." 준수이있는 방에서 나가기 싫었지만, 그가 오늘 입고 싶다는 말에 소진은 곧 유천을 노려보던 눈길을 거두고는 밖으로 나섰다. 쿵-----. "......." "......." 그녀가 나가자 갑자기 조용해지는 방안. 유천은 여전히 준수를 마주하는것에 전혀 거리깜을 느끼지 않는듯 보였으나, 준수는 그렇지 않았다. 눈물을 보였던 그 이후로 유천을 똑바로 바라보는것이 더 어렵고....힘이 들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첫입맞춤을 도둑질 해가지 않았던가. 멀뚱이..고개만 푹 숙인채 가만히 서있는 준수를 잠시 바라보던 유천가, 자신이 먼저 이 무거운 침묵을 깨야겠단 생각이 들어서인지 입을 열었다. "목욕하시는것...시중을 들어드리겠습니다." "...!!!" 그리고 준수가 그에게 호감이 있다는것을 어렵사리 밝힌 후부터는 자신을 대하던 그 건방지던 태도는 어디가고.... 계속 존칭어를 붙히고 있었다. 그 점이 준수를 더욱더 속상하게 만들었다. 무언가 선을 딱 그어버린 느낌이랄까? 준수는 그저..자신을 부리는 주인일 뿐이고, 유천 자신은 그의 몸종이나 된듯한 저 태도... 준수는 며칠새 계속된 유천의 그런 태도에 살며시 눈을 내리뜨며 조심스레 말을 건냈다. "...당신은............." 그에게 한마디 건내는것조차..작은 떨림이 동반된다. "....당신은...내 호위무사로 임명된것이지.... ...몸종이 아니예요..." "......." 준수의 그말에 유천은 무표정한 얼굴로 답한다. "어느누가 당신같이 신분높은 사람의 호위무사로.. 마녀족 사람이되는것을 인정하겠습니까. 몸좀이라는것이 더 어울리겠지요." "......." 유천의 냉랭 할 정도로 딱부러지게 끊어지는 말. 그 말에 준수의 긴 속눈썹이 불안하게 떨렸다. 그렇게............. 선을 그어두고 싶은가요............ 자신의 입술을 살짝 깨문 준수가 조심히 걸음을 옮겨 소진이 따뜻한 물을 받아두었다던 욕실로 향했다. 그 뒤를 유천이 조용히 뒤따른다. 달칵-----. 문을 열자마자 뜨거운 뿌연김이 욕조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자신의 옷자락을 두손으로 우아하게 거둬낸 준수가 맨발로 욕실안을 들어섰다. 그리고는 자신의 뒤에 서있는 유천이 어색한지 잠시 멈칫...걸음을 멈춘다. "저..혼자.....할 수 있어요. 나가있어도..상관없......" "제가 거들겠습니다. 저야말로 아무상관... 없으니까요." 아무상관..........없으니까요................... 자신의 말을 자르며 내뱉은 유천의 말. 그 말에 준수는 다시한번 자신의 가슴한구석이 아파오는걸 느꼈다. 그가 한말은...즉...... 준수를 아무렇지도않게 생각한다는 그 뜻과 같을것이다. 준수는 떨리는 하얀손끝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런 모습에 유천은 느릿하게 몸을 움직여 준수에게서 등을 보이고 돌아섰다. 유천이 뒤돌아 섰다해도 여전히 긴장되는 마음은 똑같다. 준수가 투명한 손톱끝으로 자신의 가슴쪽에 묶여있던 매듭의 끈을 풀어내고... 곧이어 유천의 뒤로 사각거리는 옷벗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유천의 옆쪽으로 살며시 내밀어진 뽀얀손은 자신이 벗은 옷을 건내고 있었고, 유천은 그의 옷을 받아들었다. 찰랑------. 가벼운 물의 마찰음이 들려오고.. 준수가 따뜻한 물속에 몸을 담그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조금있다 유천이 준수가 있는곳으로 손을 뻗으며 향료와 부드러운 수건을 내려놓았다. 뒤돌아서서 자신에게 목욕준비를 해주는 유천의 행동에 새가슴을 가진것처럼 흠칫..놀라는 준수. 유천은 준수가 내는 물소리에도 미동없이 뒤돌아 서있는 그 자세 그대로 서있었다. 유천이 자신에게 아무상관없다 하였는데도........ 그렇게 말했는데도........ 그저 떨리는 자신의 마음은 다른 어떤것도 진정시킬 수 없을것 같았다. 준수의 투명한 뽀얀볼위로 붉은 홍조가 살풋이 그려졌다.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는지.. 작게 첨벙이는 소리가 등뒤에서 들려왔다. "....." 욕조 밖으로 나온듯 보이는 준수에게서 잠시 아무말도 들리지 않았지만, 그가 잔뜩 긴장하고있는것이 충분히 느껴지는 유천였다. 바보같이.............. 계속해서 냉랭하게 대하는데.......... 뭐가 그렇게 아직도 우물쭈물...멍청하게 구는것인지........... 딱부러지는 자신의 행동에 정나미가 뚝뚝 떨어질만도한데 여전히 부끄러워하거나... 우울한 눈빛을하는 준수가 신경에 걸려 미칠 지경였다. 차라리..자신을 몸종부리듯 마구 부리면 속이 편할것 같은데... 애초에 감옥에 갇힌 마녀족 사람들에게 식사를 나눠주는 꼴을 봤을때부터 생각되었다. 생긴것만큼이나 마음여린 녀석이 분명할꺼라고.................. 유천은 살며시 자신의 주먹에 힘을 실으며 끝내 준수가 먼저 말을 꺼낼때까지 기다렸다. 그러자 곧이어 등뒤에서 들려오는 가는 목소리. "...옷..을....." 준수의 목소리에 유천이 손을 등뒤로 내밀어 옷을 전했다. 이내 사각거리며 옷을 받아입는 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돌아서도...되겠습니까?" "...!!!.." 어느정도 잠시 시간을두고 전해져온 유천의 목소리. 그 말에 준수가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어냈다. 그리고............... "..아, 아니..저..잠깐....." 미끌------! 유천이 뒤돌아 볼지도 모른다는 그 생각에 가슴께를 여미던 준수가 허둥대며 미끄러운 바닥에 쓰러지듯 휘청거렸다. "..아..!!" 턱-----. 위험천만하게 넘어지려는 그 순간 든든한 두손이 준수의 허리를 빠르게 감싸왔다. "...하아...!!!" 매끄러운 대리석 바닥에 부딪힐뻔한 사실이 아찔했는지 순식간에 준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리고..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유천의 가슴자락을 꼬옥 힘주어 쥐고있는 자신의 두손을 발견한다. "......" 그러자 다시 떠오르는 두뺨의 홍조. 두근..두근.. 갑자기 빠르게 뛰기 시작하는 가슴을 애써 누르며 준수가 후다닥 유천의 품에서 떨어져 나왔다. 무척이나 부끄러운듯 붉게 물들어있는 뺨이라니............ 그런 준수가 어찌보면 너무나 귀여워 보였다. 그리고..... 촉촉하게 젖어 물방울을 떨구고있는 황금빛 머리카락과, 고운선으로 뻗어있는 턱. 살며시 내리깐 속눈썹 끝에도 작은 물방울이 매달려있었다. 가는 숨소리를 내뱉는 분홍빛 작은 입술. 그래.............. 이건 욕조에서 뽀얗게 솟는 수증기때문에 일어나는 착각이야........... 새초롬히 서있다가 욕실밖으로 걸음을 옮기며 도망치듯 빠져나가는 준수는... 유천의 눈에 비치기엔 지나치게 아름다웠다. 유천보다 앞서서 욕실밖으로 나온 준수는 주체 할 수 없을만큼 뛰어대는 가슴에 작은 손을 얹어놓았다. 바보같이...! 바보같이.....!! 어물쩡하게 넘어지려 휘청였던 자신을 쉴새없이 자책하며 입술을 꼬옥 깨무는 준수였다. 그리고는...이내 어두워지는 표정을 어쩔 수 없다. 저 사람에게 오늘...재중씨를 만나게 될꺼라고 말한다면........... 아마도..무척이나 기뻐하겠지?..그러겠지....? 그 단아한 눈동자에 다정함이...어릴꺼야... 윤호가 초대한 저녁만찬에..분명 재중도 나올꺼라 확신짓고있는 준수였다. 그에따라 자신도 유천을 데려나가야 하는것도 분명했다. 그 두 형제를 만나게 해주려면..........그래야 하는것. 하지만...지금은 유천에게 그 사실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조금있다가 저녁에 만나게 될텐데....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뒤에서 유천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것도 모른채, 준수는 자신의 눈꼬리에 눈물을 매달았다. 못됐구나..김준수.... 너...너무 못됐어............ 유천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조금씩 뚜렷하게 보임에따라..스스로에대한 자책이 자꾸만 늘어가는 준수였다. 미 열(美 熱) 34편 - 깔끔하게 정리되어있는 아이보리색 커텐. 한쪽에는 여러시종들이 시중을 들기위해 일렬로 서있었고, 그 앞쪽엔 두개의 커다란 테이블이 놓여져 있었다. 테이블 위를 덮고있는 하얀빛 천이 매우 고급스러워 보였으며 곳곳을 장식한 고풍스런 물건들이 방안 분위기를 매우 차분하게 보이게했다. 달칵-----. 시종들 조차도 말없이 서있는 조용한 방안으로 제일 먼저 문을열고 들어선 사람. 다름 아닌 윤호였다. "준비는...다된건가?" "예.." 윤호의 낮은 목소리에 옆에있던 여시종이 예의바르게 고개 숙이며 대답했다. 윤호의 시선이 방안 구석구석을 맴돌며 끝내는 만족한듯한 눈빛을 띄었다. 이 정도면 오랜만에 만찬을 하기엔 적합한 분위기였다. 방안을 둘러보던 윤호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문앞으로 다가갔다. "들어와도 된다." 그리고는 문앞에서 우물쭈물 서있는 사람의 손목을 끌어당긴다. 그러자 힘없이 윤호의 손길에 불쑥..앞으로 튀어나와버리는 여린 몸. "..후아..." 방안에서 풍기는듯한 달콤한 향내에 깊은 숨을 들여마시는 찡긋거리는 코끝이 사뭇 귀엽다. 윤호가 요리저리 고개를 저으며 사방을 둘러보는듯한 포즈를 취하는 재중을 바라보고는 그의 손을 잡아이끌어 커다란 테이블이 있는곳으로 자릴 옮겼다. "정말 오랜만에 함께들 만찬을 하시는거네요.." 재중의 뒤를 따라 들어선 환희의 얼굴도 활짝..웃음꽃이 피어있었다. 환희의 작은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인 윤호의 표정도 그리 나빠 보이진 않았다. 그렇게 윤호가 재중을 이끌고는 정중앙에 위치한 자신의 옆자리에 앉히려 할때였다. 달칵-----. "창민님과 유리님 드셨습니다." 그들의 등뒤로 들리는 여시종의 목소리. 자연스레 문이 열린곳으로 시선이 옮겨갔고, 환희는 유리의 등장에 탐탁지 않은듯한 표정을 관리하려 애쓰고 있었다. "..윤호." 문이 열린틈으로 곧이어 작은 분홍빛 비단신이 보였다. 그리고.............. 오늘따라 유난히 머리와 의상에 신경을 잔뜩 쓴 유리와 그녀의 시종 지연이 들어선다. "왠일이예요..저녁만찬....!!!...." 곱슬거리는 웨이브진 머리를 우아한 손동작으로 쓸어넘기며 들어서던 유리의 말문이 순간...턱..막혀버렸다. 윤호의 곁에 서있는 사람. 여린몸을 윤호의 옆에 밀착시킨채 자신쪽을향해 고개를 돌리고있는 재중이 보였다. 어...어떻게............. 윤호가 재중의 손목을 붙잡고있는 모습까지 두눈에 들어오자 유리의 놀란 눈가가 작은 경련을 일으켰다. 감옥에서 큰일을 당하는것은 겨우..피했다고 들었던 재중이..윤호의 곁에 떡하니 서있자 놀란것은 그녀의 시종 지연도 마찬가지. 유리의 뒤에 뻣뻣하게 굳은 얼굴로 서있던 지연이 슬쩍 자신의 몸을 사렸다. 혹시나...내 목소리라도 기억한다면............ 자신의 뒤로 몸을 숨기는 지연을 눈치챈 유리가 애써..담담한듯 부드럽게 웃었다. "저 아이를 본적이 있어요..호숫가에서 물에 빠졌던 아이가 아니던가요?" "그때 유리도 곁에 있었어." 어느새 유리와 지연의 뒤를 따라 들어선 창민이 그녀의 말을 은근히 걸고넘어지며, 발걸음을 옮겨 재중을 좀 더 잘 볼 수 있는곳으로 방향을 옮겼다. 그리고는 자신을 노려보는 유리의 시선을 무시하며 재중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나....기억 못하겠지? 그때 물에 빠졌을때랑 감옥안에서 구해줬는데.." 창민이 상냥하게 웃으며 재중에게 말을 건냈다. 그러자 곧 재중의 붉은 입술이 살짝기 벌어지며 놀란 표정을 담아낸다. "..아..그럼......." 그리고는 여지껏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윤호이라 여겼던 재중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새어나갔다. "...재중이를 두번이나 위험에서 구해주셨다구요...??" 두손을 들어 입술을 살포시 가리고는 조심스레 묻는 재중의 모습은 무척이나 귀여운것였다. "어쩌다가 꼭 니가 위험할때만 지나가게 되더군." 창민이 재중의 아이같은 행동에 빙그레 웃으며 한쪽에 서있는 유리와 지연을 조소섞인 눈빛으로 바라봤다. 뜨끔... 유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지금 상황에서 창민의 말에 예쁘게 웃고있는것은 재중뿐였다. "고마워요....정말..고맙습니다." 환하게 웃던 재중이 창민에게 넙죽..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까만머리가 찰랑이며 앞으로 쏟아지고는 얇은 목덜미가 살짜기 보이는데..... 그 모습은 누구라도 한번쯤 이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하기에 충분한것. "인사받자고 한 얘기는 아니었어." 창민이 재중의 행동이 귀엽다는듯 키득거리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손을 뻗을 때였다. "준수는 왜 아직까지 오지 않는것이지!!" 윤호의 손이 날카롭게 재중의 허리를 감싸안고는 자신의 품으로 끌어들였다. 그러자 그의 손길 한번에 여린 몸이 그대로 윤호의 가슴에 폭삭.. 안기는 꼴이 되어버리고 만다. 창민이 딱딱하게 굳어있는 윤호의 표정을 순간 놀란듯이 바라보다가 이내 웃어버렸다. 정윤호...너...... 정말 재밌구나... 네 욕심은 알고있지만, 이건 정말 너무 심한걸. 항상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것을 건드리진 못하게해도 남들에게 내보이는것은 좋아하던 니가........ 그 아이를 곁에 둔 순간부터... 지금은 마치 아무도 못보게 그 아이를 꽁꽁 숨겨두고 싶어하는 얼굴이잖아. 윤호 자신은 눈치채치 못할 눈빛을 창민은 금새 알아채고는 빙그레 미소지어 버린다. 그런 창민이 윤호는 자꾸 재중에게 신경을 쓰고있는듯한 착각이 들어 조금씩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환희야!! 당장 준수를 불러오너라." 윤호가 빙그레 웃고있는 창민에게로 매서운 눈빛을 보이고는 환희에게로 시선을 돌릴때였다. "미안해 늦어서." 가는 미성과 함께 아이보리빛 비단옷을 단아하게 차려입은 준수가 조용히 그들 틈으로 들어섰다. "아아....오랜만." 창민이 오랜만에 보는 준수에게 가볍게 손을 들어보였다. 창민를향해 살짝..입가에 미소를 지어보인 준수가 윤호와 그의 품에 안겨있는 재중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재중을 향해 애써 어색하게 웃어보이며 말을건낸다. "재중씨..잘지냈어요? 준수예요..." "..준수..씨??" 예전에 유천을 만나게 해줬던 준수가 반가운지 재중이 윤호의 품에서 약간 비켜서며 그의 손을 잡고는 밝게 웃고 반가움을 표시했다. 자신을보고 진짜로 반가워하는 재중을보며 준수는 힘없이 미소지은 얼굴로 고개를 떨구어 내린다. 그리고는 재중의 뒤에서 굳은 얼굴로 서있는 윤호를 잠시 바라봤다. 순간, 허공에서 엉켜버린 윤호와 준수의 시선. "..후우...."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만큼 작은 한숨소리를 내뱉은 준수가 아직..이 방안으로 들어서지 아니하고 문밖에 있을 그를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 "..ㅇ...유천씨...들어와도되요.." "..!!!!!" 준수가 살짝..뒤를 돌아보며 유천란 이름을 꺼내자 윤호는 애초에 알고있었다는듯이 굳게 입술을 다물뿐였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반응을 아는지 모르는지..재중은... 준수가 내뱉은 자신의 형 이름에 그만 놀라서 떨리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한다. 형..??? 뚜벅.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느릿하게 재중의 귓가를 울려대고.... 재중은 그만 너무나도 익숙한 유천의 향내에 작은 어깨를 떨어버리고 말았다. - 미 열(美 熱) 35편 - 두근. 두근. 문밖으로까지 작게 들리는 준수의 목소리에 유천은 뛰는 가슴을 애써 눌렀다. 저녁만찬이라는 명분하에 직속 시종인 소진을 데려가지 않고 자신을 데려온 이유가 뭘까라는 생각을 이곳까지 오면서 계속해왔던 그였다. 그런데..................... 재중까지 이곳에 있을지는 몰랐다... 아니, 윤호가...재중을 데려온다고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마주친적이 있었던 윤호의 눈빛은 자기것에 대한 강한 소유욕이 담겨져있어, 재중에 대해서도 그럴것이라고 생각했던 유천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고싶고 걱정되서 미칠것 같았던 자신의 동생 재중이 이 문안으로 발만 들여놓으면 있다니!! 두눈을 깜빡이지도 못한채 굳은 얼굴로 그렇게 꼼짝도 못하고 있을때였다. ...자신을 들어오라고 부르는 준수의 작은 목소리가 들릴때까지는........ "..유천씨..들어와도되요..." 준수의 목소리에 유천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저기...문만 지나면......재중이가 있다................. 감옥에서 이후로...또 얼마만에 보는건지... 마른침을 삼킨 유천이 준수의 부름에 꼿꼿이 서있던 발걸음을 옮겼다. 재중이............ 내동생...... 내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 "...!!!!!" 모두의 시선이 문쪽으로 향하고.... 드디어 유천이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자 사방은 쥐죽은듯 조용하기만했다. 유리와 지연 또한 무슨영문인지 모른채 왠지모를 긴장감 넘치는 이 상황을 그냥 말없이 지켜 볼 뿐였다. "......." "......." 유천은 준수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것을 느낄새도없이 몇번이고 눈을 깜빡였다. 작은어깨.......... 그 어깨를 움츠리고는 두손을 모아 자신의 입가를 막고..고운 미간을 살짝.. 찌푸린 재중이 눈에 들어왔다. 몇번이고 눈에 넣어도.... 예쁘기만 할...김재중이............. "...ㅎ..ㅕ...." 재중이 목이메이는지 잠시 숨을 들이마쉬며 입술을 열었다. "....형..이야..? ...유천..형..???" 유천가..모두의 시선이 자신들에게 가있다는것을 알면서도 천천히 재중의 곁으로 다가섰다. 그러자 재중에게로 더 확실하게 감지되는 유천라는 그만의 느낌. 언제나....지켜주겠다고했던 형였다. 어릴때에도 자신보다 재중이 더 먹기를 바라고 더 입기를 바랬던... 그런 소중한 형였다. 한시도 떨어져본적 없었던....재중의 보이지않는 눈 역활까지 마다하지않고 짜증한번 낸적없던 그런 형였다. 재중이 곧 눈가에 눈물을 매달았다. "...혀..ㅇ....." "그래." 유천이 전보다 눈에 띄게 더 아름다워진 재중의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그에게로 자신의 가는 두팔을 뻗어 안겨드는 재중. "혀엉..." 작은 흐느낌조차도 내뱉지 못하고 마냥 자신의 품에 쏘옥안겨 눈물만 똑똑 떨궈내는 재중이 예뻐서 미칠것 같았다. 당장이라도...이곳에서 재중을 데리고 벗어나고싶은 마음만 굴뚝같아진다. 그런 재중의 등을 감싸안으려고 유천이 손을 움직일 때였다. "거기까지." 역시나 그들의 모습을 달갑지않게 보고있던 윤호가 재중을 유천의 품에서 떼어내어 자신의 곁으로 끌어당겼다. "......." "......." 한쪽팔로는 재중을 여유있게 품고는 유천을 바라보는 윤호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아무리........동생을 챙기는 마음이 각별하다지만, 저..눈빛은 아니었다. 인정하지 않고..재중이 원하는데로 유천을 한번이라도 만나게 해주려했던 자신였지만......뭔가 잘못된것같은 생각이 윤호의 머릿속에 지배적으로 자리잡았다. 과연...어느누가 저 눈빛을보고...동생을 바라보는것이라..말할것인가. 애틋하면서도 갈색의 깊은 심연으로 한시도 눈을떼지못하는 저..얼굴을보고... 누가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곧..재중을 바라보던 유천이 윤호에게로 시선을 옮겼고, 윤호또한 애써 딱딱하게 굳어버린 얼굴 표정을 숨기려 노력하고 있었다. 재중만을 바라보는 유천의 시선에..준수는 아까부터 고개숙인채 내내 말이없고...... 눈치빠른 창민만이 그들의 심경변화를 어렴풋이 알아챈듯 무표정한 얼굴로 양쪽에 서있는 그들을 지켜보고 있을뿐였다. 유천과 제대로 말한번 해보기도전에 자신을 그에게서 떼어놓아 끌어당긴 윤호였다. 하지만, 재중은 자신을 품에안고있는 윤호에게 아무런 반항도 하지않는다. 다만...윤호가..너무나 고마울뿐였다. 그럴뿐였다. 눈가에 눈물을 고운 손가락으로 슬쩍 훔쳐낸 재중이 윤호의 옷자락을 꼬옥 잡으며 밝게 웃었다. "고마..워요...... 형..만나게 해줘서...형 건강하게 있는거..알게해주어서... 윤호한테 너무 고마워요 재중이는....." 예쁘게 휘어지는 눈꼬리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방금전까지 유천의품에 포옥 안겨있었던 재중에대한 섭섭함이 한번에 날아가버리는듯한 느낌였다. 그런 재중에 행동에... 불안해하는 사람은...따로있으니........... 재중아..!!! 아무 거리낌없이 윤호의 곁에 서있는 재중을 바라보는 유천의 눈빛이 순간 흔들림을 보이다가 이내 차분해졌다. 그리고..그런 그들을 바라보고있던 유리는..자신도 모르게 피가베어나올 정도로 입술을 앙다물었다. 모든 이들의 등장으로 인해..언제나 차분하게 진행되던 만찬은 오랜만인데도 불구하고 어색한 정막감을 감출 수 가없게 되어버리고.... 하지만, 그런 분위기를 단번에 깨버린것은 창민이었다. "아아~~ 난 배가고픈데.... 다들 앉는게 어떨까?" 낙천적인 성격의 그답게 예의 어색한 분위기를 조용히 풀며 말을꺼냈고, 곧 그의 말에 다들 윤호를 바라봤다. "앉지." 낮은 목소리로 윤호가 창민의 말에 동의하듯 한마디를 던지자, 모두들 시종들이 빼내어주는 의자에 앉기 시작했다. 그리고....지연을 비롯한 환재..중수가..다른쪽에 배치되어있는 작은 테이블이 있는곳에 앉았다. 시종들은...자신이 모시는 주인과 같은 곳을 쓸 수 없다는것은 모두들 알고있는 사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채 윤호가 이끄는데로 그의 옆에 곱게 앉은 재중. 그런 그를 다들..놀란눈으로 바라본다. 그들의 시선을 모른건 아니지만, 윤호는 아무감정없는 평소의 냉랭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유천또한 그런 윤호를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는데............ 모두의 시선에 윤호가 곁에있는 여시종에게 음식을 들이라는 말을 짧게하고는 테이블 양쪽에 앉아있는 창민과 지연..그리고 준수와 시종들이 앉아있는 곳까지 쭈욱..시선을 돌렸다. 손가락을 깍지끼고 여유있게 그들을 둘러본 윤호가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꺼낸다. "난..내가 소유하고있는것이 나와 똑같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누구든 어떤 이유도 달지마." 혹시나 나올지도 모르는 신분의차이에대한 다른 어떤 말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그의 말. 윤호의 곁에 앉아있는 재중은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들이 느껴지는지 마른 어깨를 움츠렸다. 윤호의 곁에......앉으면..안되는걸까....... 자세히는 몰라도 어렴풋이 어색한 분위기를 느끼는 재중이 조용히 고개를 떨궜다. 달칵-----. "따뜻한 과일잎으로 울궈낸 차를 먼저 드리겠습니다." 어색한 분위기를 뚫고 김이 모락모락나는 작은 컵에 담겨져있는 차를들고 여시종들이 들어섰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만찬을 즐기기전에 나오는 차를 건내주는데............ 달그락---!! 여시종이 내주는 찻잔을 뒤로 밀쳐서 받지않겠다는 뜻을 밝힌 유리가 윤호와 그옆에 멀쭘이 앉아서 고개숙이고있는 재중을 노려봤다. "저 아이를 정말 같은 자리에있게 할껀가요?!!" 유리의 애써 화를 누르는듯한 목소리에 그녀의 시종 지연은 걱정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다른 이들또한 놀란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유리가 이내 침착한 얼굴을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엄연히 주인과 시종은 신분차이가 있는법. 게다가..저 아이는 계급중에서도 제일낮은 마녀족 아이가 아니던가요?" 고양이처럼 살짝 치켜올라간 눈을 가진 그녀가 재중을 노려보자 윤호가 낮게 명령했다. "앉아." "...윤호..!!!" 윤호의 낮은 명령조에 유리의 눈동자가 충격을 받은듯 커다래지고....... 심상치않은 분위기에 재중은 저도모르게 또다시 옆에있는 윤호의 옷자락을 잡고만다. "앉으라고했어." 자신의 치맛자락을 꼬옥 붙든채 재중을 노려보며 서있는 유리에게로 윤호가 다시한번 말을 건냈다. 하지만.................. 윤호에게 언제나 예쁘게만..보이려던 그녀의 인내심이 조금씩 바닥이 나고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항변은 어쩌면 당연한것였다. 신분의 차이라는것은 결코..무시 할 수도...무시 될 수도 없는것이 아니던가. 게다가..윤호의 바로 옆자리를 차지하다니...!!! 한낮 천한 마녀족아이따위가!!! 자신은 당연히 따질것을 말한것뿐인데도 윤호의 저 매서운 눈동자와 냉랭한 말은 순간...울컥솟는 감정을 주체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유리가 자신의 입술을 꼬옥 깨물고는 눈동자에 그렁그렁하게 눈물을 담아냈다. 그리고는 아까보다 더 차가운 눈빛으로 재중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재중에게 건내던 시선을 이내 애처롭고 사랑스럽게 바꾸며 윤호를 바라보는 그녀였다. 곧 우아하게 손가락을 뻗어 잘 다듬어진 예쁜 손톱으로 눈가에 눈물을 훔치며 떨리는 목소리로 윤호에게 말을건내는 그녀. "저 아이가 계속 그 자리에 앉아있는다면.... ..전....전.....제 방으로 돌아가겠어요......" - 미 열(美 熱) 36편 - 또다시 가라앉은 분위기. "..휴우...." 유리를 지켜보는 창민의 입에서 작은한숨 소리가 터져나왔다. 준수 또한 윤호가 한말에 토를 다는 유리를 불안한듯 바라보고...... 마녀족의 아이라고 무시하는 그녀를 유천은 금방이라도 달겨들듯 화가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윤..호.." 아무도 안들릴만큼 작은 목소리. 가녀린 미성으로 윤호를 부르며 고개숙인 재중이 테이블 밑으로 손을 뻗어 윤호의 바지자락을 당겨댔다. 하지만, 재중의 건드림에 아무 미동도없는 그. "...어떻게 하실꺼예요? 저 아이를 계속 옆자리에 두실껀가요?" 아무말없는 윤호를 바라보며 유리가 작은 입술을 뾰루퉁이 내밀어 보였다. 그리고는 순진한듯 자연스럽게 붙인 긴 속눈썹을 깜빡이는 모습은..영락없이 다른이가 보기엔..예쁜모습. "자리에 앉아. 너때문에 분위기가 엉망이 되버린다는건 알아야지." 옆자리에 앉아서 이제껏 지켜보기만했던 창민이 얼굴표정을 매섭게 바꾸고는 유리만이 들리게끔 속삭였다. 그런 창민을 흘깃 쳐다본 유리가 그의 말을 싹 무시하고는 다시 윤호를 바라본다. 금새라도 연약하게 울것같이 코끝을 살짜기 찡그리는 유리를 윤호가 잠시 움직임없는 단호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러자 윤호의..옷자락을 다시끔 잡아끄는 미세한 힘이 느껴진다. "..윤..호....... 재중이가..일어날께요...그럴께요...." 자신때문에 금새 긴장감 넘치게 변해버린 분위기에 재중은 잔뜩 겁을먹고 있었다. 재중이는..좋은데........... 재중이한테..잘해주는..윤호가 너무 좋은데......... ..다른사람한테 윤호가 혼나는거..재중이 싫단말예요.... 여린척 울먹이는 유리의 목소리에서 어떤 기운을 느꼈는지.. 결코 살갑지만은 않은 그녀의 말투에 재중은 윤호가 자신때문에 궁지에 몰린듯한 생각이 들었나보다. 재중이 곧 우울한 표정을 애써 감춰내려 노력하며 윤호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던 손을 내려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려 할때였다. "어디가. 앉아있어." 윤호의 무뚝뚝한 목소리. 그리고 자신의 손을 강하게 잡아끄는 손길. 재중의 손을 잡아 다시끔 자신의 다리위에 포개얹는 윤호였다. "난 너보고 나가란말 입밖으로 꺼낸적없어. 마음대로 움직이지마." 윤호가 입술을 열어 재중이 또렷하게 들을 수 있게끔..크게 말을했다. 그리고..이내 살짝..내리뜬 눈으로 빙그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있는 유리를 보고는 드디어 말을 꺼낸다. "자리에 그냥 앉아." "윤호!! 전 분명히 말했어요 저 아이가 있으면......" "그만!" 자신에 말에 발끈하는 유리의 항변을 한번에 끊으며 윤호가 의자뒤로 몸을 젖혔다. "내가 보기엔..지금 내 옆자리를 내어주지 않아서 그런것 같은데... 잘못 본것인가?" "......." 윤호의 뜬금없는 물음에 금새 유리의 양볼이 붉게 달아올랐다. "..난.............난..그런게 아니라....." "분명히 말하지만, 난 내가 하고싶은데로해.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유리가 이런일로 발끈한다면.. 틀림없이 혼인을해서도 수없이 내일에 간섭이겠군. 안그런가?" 자신의 정혼자에게하는 얘기라고 안믿길만큼 윤호는 냉랭하게 말을 꺼내고 있었다. "난 내 사생활을 방해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용서하지않아. 다시한번 말하지만, 난 내가 하고싶은데로해. 아무도 그걸 막을 권리는 없어. 그게 정혼자인 너라도." "......." 윤호의 차가운말에 유리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었다. 사랑없이 필요에 의해서 유리를 정혼자로 선택한 윤호였다. 그래도..다른 이들보다는 자신의 정혼자이기에 조금의 배려심은 있어보였는데.. 지금 이 시간..그것조차도 완전히 깨지는 순간였다. "..윤호...." 유리가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랬다. 윤호는 자신의 부족과 그 밑에 연계되어있는 일말의 사사로운 부족들까지 통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였다. 그만큼..자신에게 복종을하는 부족들에겐 인정넘치지만.. 자신을 거스르는 자들은 가차없이 용서하지않는 냉혹한 사람이기도 했다. 어쩌면...여지껏 미약한 힘으로 마족들을 적대시하는 마녀족이..그래서 윤호에게 특별나게 미움을 산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윤호옆에 앉아있는 저 마녀족 아이는............ 저 아름다운 마녀족 아이는.................... "미안해요..윤호........ 제가..잘못한 일였어요....." "......." 윤호의 말을 듣고있던 유리가 이내 고개를 떨구며 눈물을 삼키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곧 안쓰러워 보이는 표정을 지어내며 윤호를 돌아다봤다. "하지만........ ..마음이 많이 아픈건 사실이예요...... 저 먼저 방으로 돌아갈께요..저녁만찬..즐기세요." 윤호의 말이 섭섭했다는것을 드러낸 유리가 윤호에게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돌아섰다. "유리님!!" 그러자 그녀의 시종 지연도 자연스레 유리의 뒤를 뒤쫒고............ "......." 쿵-----. 유리가 문밖으로 나설때까지 윤호는 아무런 말도...하지않았다. 윤호의 성격을 너무나 잘알고있는 창민과 준수는 유리를 붙잡지않는 그가 당연하다는듯 그저 조용하기만했고...작은 테이블쪽에 앉은 환희의 표정은 쌤통이라는듯 밝아보였다. 그리고..그옆에 앉아있는 유천의 갈색 심연은..더욱더 낮게 가라앉아 어두운빛을 띄어냈다. 아무리..그래도...... 자신의 정혼자를 저렇게 무심하게 대하다니.....냉랭한 모습였다. 하긴......... 그 수많은 마녀족들을 몰살하고 사냥할만큼 잔인한 성격도 가지고 있으니까..!! 저렇게 재중을 감싸고 도는 이유는 무엇인지..... 하지만, 윤호의 눈빛을보면..왠지모르게 자신이 그렇게 하고있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하고 있는것 같아보였다. 점점..불안해지는 생각에 유천의 얼굴빛 또한 어두워진다. "..미안...해요....." 윤호의 곁에서 더욱 움츠러든 재중이 뭐가 미안한지 금새 물기젖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그런 재중의 말을 듣고있던 윤호가 잠시 아무말없이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는 재중의 말을 마치 못들은것처럼 테이블에 앉아있는 이들을 둘러보며 낮게 말한다. "만찬을.....시작하지." . . . 콰당---!!! 방안을 커다랗게 울리는 문소리. 화가 난 발걸음은 곧장 침대쪽으로 향했다. "하아..하아...." 방금전까지 눈동자에 맺혀있던 눈물은 어디갔는지 이제는 찌푸려진 눈쌀에 격분한 숨소리만이 그녀의 얼굴에 남아있을 뿐였다. "빌어먹을." 그리고 곧이어 터져나오는 욕설. 분을 못참겠는지 곱게 빗어 올린 머리를 거칠게 헝크려트려 망쳐놓는다. "유리님!!" 이내 열려진 문으로 그녀의 시종 지연이 다급하게 들어서고............... 두주먹을 꽉 틀어쥔채 베개를 내려치는 유리의 모습에 지연의 얼굴위로 걱정이 서렸다. "진정하세요!!" 유리의 두손을 꽈악 움켜잡으며 지연이 그녀를 말렸다. 누구보다도 윤호의 일에 있어서는 민감한 유리였다. "젠장!! 싫어!! 싫다구!!! 그 까만머리 마녀족 아이가 너무나 싫어!!!" 털썩----. 방안이 쩌렁쩌렁 울릴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유리가 침대위로 엎어졌다. "유리님.." 재중때문에 분노할때로 분노한 자신의 주인이 안쓰러워 그녀의 이름을 조심히 불러보는 지연였다. "..흐읏!!" 유리가 침대위로 내던졌던 몸을 벌떡 일으키며 거친숨을 들이마셨다. "그것이 윤호를 꼬신게 틀림없어!! 그 더러운 천것이 윤호를 홀리게 만들었어!!!" 유리가 자신의 입술을 세게 깨물며 손바닥이 패일정도로 주먹을 꽈악 틀어쥐었다. "유리님..진정하세요.... 이렇게 화내시면 유리님 건강을 해치신다는것..모르시겠어요? 혼인식까지 고운 모습으로 남아계셔야 윤호님도 좋아하시지요..!" 예쁜 얼굴을 찾아 볼 수 없을정도로 인상을 일그리고있는 유리에게 지연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건냈다. "어차피 윤호님께선 한번 소유하신 물건이 질리시면 버리시잖아요. 그 아이도 언젠가 버려질껄 잘 아시면서 왜이렇게 유리님 답지않게 흥분하세요.." 유리의 격분한 마음을 진정시키기위해 지연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내며 그녀의 주먹쥔 손을 펴냈다. "..하아..!!" 유리가 지연의 말을 듣고있다가..이내 고개를 돌리며 아니라는듯 도리질친다. 아니야........ ..그 아이.....윤호곁에 두면 위험할 아이야........ 윤호는 스스로 모르는것 같지만... 난 느낄 수 있어........... 그 아이는 내게서 윤호를 빼앗아 갈꺼야... 이내 일그리던 얼굴을 애써 펴내는 유리였다. 그리고..잠시후... 다시끔 차분해진 얼굴에선 아까와같이 어떠한 사악한 표정도 찾을 수 없을만큼 그녀의 얼굴은 침착을 되찾고 있었다. 하지만............ 고개를 살며시 쳐들어 지연을 바라보는 그녀의 두 눈동자는 섬뜩할 정도로 매서운 빛을 띄우고 있었다. "마녀 한마리때문에 내가 이리 맘고생 할 필요없지." "그럼요..유리님." 유리의 얼음보다 차가운 말에 지연이 동의하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지연을 바라보고 계속해서 말을 잇는 유리의 입가에 악독한 미소가 떠오른다. "내게 언제나 걸림돌이되는 건방진 내 오라버니랑 마녀족아이. 둘다 같이 처리해야 되겠어." 그녀의 머릿속으로 자신에게 여유로운 미소를 보내며 비꼬던 창민와.. 윤호의 곁에 얌전한 척 앉아있는 재중의 모습이 단번에 스쳐지나갔다. 두고봐......... 어찌되나........!!! - 미 열(美 熱) 37편 - 달칵---.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들어선 비단신 하나가 빼꼼히 발을 내밀더니 사뿐사뿐 걸어가 침대위로 털썩...자신의 몸을 앉힌다. 왜그런지 윤호의 곁에서 내내 식사를 하면서도 계속해서 우울한 기분. 그건 다름아닌 유리의 존재 때문일것였다. 유리가 나간뒤 이내 차분하게 저녁만찬은 무사히 끝이났고... 유천와의 아쉬운 작별끝에 겨우 먼저 방으로 돌아온 재중였다. "재중님~!! 윤호님께서는 창민님하고 준수님하고 따로하실 말씀이 더 있으시다고 조금 늦는다 하셨어요~!!" 환희가 곧 방안으로 재중을 따라 들어서며 명랑한 어조로 말을꺼냈다. "..우웅...." 하지만, 재중이 고개를 푹 숙이고는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이내 그에게로 다가서는 환희. "왜그러세요..재중님? 방금전 만찬때문에 그러신거예요?" 도리도리. 환희의 말에 짧게 도리질을 치는 모습은 영락없는 어린아이. 그런재중의 얼굴빛에 살짝 웃음짓던 환희가 놀리는듯한 말투로 말을 건냈다. "에이~~~ 아니긴요..맞는거 같은데~~" "..후우....." 재중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터져나갔다. 환희가 곧 재중의 손등을 토닥이며 말을 건낸다. "재중님이 걱정하실 필요..하나없어요. ..그러니까..그...유리님이....잘못하신 일이라서 윤호님께서 그렇게 매섭게 구신거니까요." 환희는 아직도 비참한 얼굴로 등을 돌리고 방으로 돌아가던 유리의 얼굴이 생각나는지 작게 키득거렸다. 환희의 작은 웃음소리에 이내 재중이 숙이고있던 고개를 들어올렸다. "..저기......환희야......" "네???" 갑자기 조심스런 표정을 연출하며 나즈막한 목소리로 귓속말을하듯... 환희를 부르는 재중. "..저기..........저기있잖아......" 그리고는 무슨말을 그렇게 어렵게 꺼내려는지 머뭇거리는것이 계속된다. "여쭤보고 싶으신것 있으시면 여쭤보세요~! 환희가 알고있는것은 전부 재중님께 말씀 드릴께요!!" 환희가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우물쭈물 귀엽게 입술을 삐죽이는 재중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냈다. 그러자 이내 조심스레 입을 여는 재중... "..그..........그 유리님이라는...사람........ 윤호..하고...치...친해....???" "..네???" 뜬금없는 재중의 말. 그 말에 환희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잠시 자신의 물음에도 아무말이없는 환희때문에 조금 당황했는지 재중이 황급하게 다시 질문을 바꾼다. "아니..아니...내말은....... 그러니까.....재..재중이하고..윤호만큼....... 그..유리님이란 사람도 윤호하고....친한지........." 끝내는 말끝을 흐리며 못물어볼것을 물어본것마냥 고개를 다시 푸욱 숙이는 재중이 두눈에 들어왔다. "재중님..." 윤호에대해 여지껏 제대로된 어떤 질문도 하지않던 재중이 방금 꺼낸 질문에 환희는 적지않게 놀랐나보다. "아니...그냥...재중이는....." 재중이 궁금함을 꾸욱 누르고는 다시 우물쭈물 모드로 돌입한다. 그냥 너무나 궁금할 따름였다. 윤호의 이름을 그렇게 예쁜 목소리로 부르며 다정하게 말을 건내는 유리가 윤호와 얼마나 친하지...그것이 너무나 궁금할 따름였다. 아기들 옹알이하듯 우물거리는 재중의 얼굴이 너무나 귀여운지 그보다도 나이가 어린 환희의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는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이내 재중이 궁금해하는것에 대답을 꺼내놓는다. "말씀드릴께요 재중님." "......." 환희의 대답에 금새 숙였던 고개를 치켜드는 재중. "유리님........그분은....... ..윤호님의 정혼자세요. 곧 혼인하실 분이요." "호..혼인...?" 재중이 혼인이란 뜻이 잘 이해가 가지않는다는듯 고개를 갸우뚱했고, 환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천천히 설명을 했다. "그러니까 혼인이라는건..나중에 윤호님이랑 유리님이 함께 사시는걸 말해요. 윤호님께 예쁜 아가를 낳아주실 분이 바로 유리님이란 말이죠.." "..윤호에게.....예쁜 아가를 낳아죠..?" 재중이 곧 잠시 마을밖으로 외출했을때 느낀적이 있는 작고 올망졸망한 아기를 생각해냈다. 유리가 맘에 아주많이 안들지만, 윤호가 선택한 정혼자이기에 그녀에대해 궁금해하는 재중에게 최대한 자세히 설명을 해주려는 환희. 하지만..이내 재중의 얼굴이 많이 어두워진것을 그는 눈치챘을까? "그럼......나중에 유리님이 윤호와 혼인하면....... 재중이는 윤호하고 함께 있을 수 없는거네....?" 자신의 표정이 지금 어떤지나 알고있는지... 마냥 울껏처럼 석류속같이 붉은 입술을 살짝 내밀고는 우울한 얼굴을 하고있는 재중의 말에 환희는 잠시 주춤 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말할까....? 지금은 윤호가 재중을 다른 어떤 사람보다 아끼고 맘에 들어하고..특별난 소유욕을 자랑하고있지만..그것이 언제까지 갈런지는 환희조차도 모르는일. 여지껏 수없이 윤호에게 총애받다가 버림받은 사람이 한둘은 아닌 일인데....... 혹시나..나중에..윤호가 실증을 느끼게 된다면 그에게서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차마 마음 여린 재중에게 할 수는 없는 노릇였다. "휴우..." 환희의 입에서 작은 한숨소리가 터져나왔다. 적어도 환희는 재중을 계속 모시고 싶었다. 순수한 마음이.....아기같이 사심없는 얼굴과 아름다운 자태가.... 충분히 사랑받아 마땅하지 아니한가. 하지만, 앞일은 환희도 장담하지 못하는것. "정말..그렇게되면.....윤호하고 재중이는 더이상 같이 못있어? 재중이는...윤호에게 줄 아가를 낳을 수 없는거야..???" 한번 말문이 트이자 망설임없이 그저 우울한 얼굴로 계속해서 질문하는 재중을피해 환희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재중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것은 당연히 환희는 모르는 사실. 여자보다 더 아름다운건 사실이지만...남자가 어찌 아이를 가질 수 있겠는가. 차마..재중이 실망할까봐 말은 못하고 걸음을 옮겨 다른것으로 화제를 돌리는 그였다. "재중님~!! 샤워하실래요?" "..우웅....." 자신의 물음에 대답없이 다른말을하는 환희에게 조금 섭섭한지 재중이 고운 미간을 살풋이 찡그려본다. 쿠웅-----. 작게 닫히는 문소리. 터벅. 터벅. 발걸음 소리를 들어하니..윤호인것 같았다. "윤호..예요....?" 침대위에 우두커니 앉아서 윤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는지 재중이 벌떡..자리에서 일어났다. 윤호가 재중의 물음에 아무대답없이 침대가로 다가왔다. "샤워를..했나...?" 재중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코끝으로 알싸하게 풍기는 향내가 아주 상큼하게 퍼졌다. "..네.......환희가...도와줬어요...." "그래." 재중이 움직일때마다 이리저리 풍기는 그의 체향을 애써 무시하며, 윤호가 자신이 입고있던 윗도리를 벗어내고는 시종이 건내주었던 다른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창민하고..준수은..돌아갔어요...? 유천형도...갔구요..??" 어김없이 빠지지않는 유천에대한 질문. 그 질문에 윤호는 또..아무런 대답을 하지않는다. "오늘부터..내방이 아닌..옆방에서 자게될꺼야." 대답대신 윤호가 내뱉은 말은 재중이 던진 질문과는 전혀 무관한것. "..!!!" 그 말에 재중이 곧 놀란 표정을 지어냈다. 그리고는 떠듬떠듬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이..이제.....재중이는...윤호방에서 같이 못자요...? 그래요???" "그래." 무뚝뚝한 대답. 그 말에 순간..재중의 얼굴이 금새 울상이 되어버린다. "..왜....왜..요....?" 작은 목소리로 윤호에게 이유를 묻는 재중은 어느새 우울해져 울먹이고 있었다. 오히려 울먹이는 그의 목소리에 놀란것은 윤호. "어째서 우는거지?" 윤호가 숙여져있는 재중의 고개를 들어올리며 낮게 읍조렸다. "유리님하고.....윤호하고............. 혼인..하는건가요...? 그래서 이제....재중이는 윤호하고 함께 못있어요???" "..?!!!" 재중의 붉은 입술에서 쏟아진말에 윤호는 눈쌀을 찌푸렸다. "무슨..말이야..그게...." 뜬금없는 유리에 관한 말이 재중의 입에서 나오다니...이해 할 수없었다. 윤호의 말에 코끝을 훌쩍이는 재중이 입술을 달싹인다. "환희가..재중이 물음에 그렇게 대답했어요... 유리님하고..윤호하고..혼인하면.....둘이 같이 살게 되는거라고...." "그래서?" 재중의 말에 윤호가 그의 볼을 쓰다듬으며 다음말을 재촉한다. "그..그러면...재중이는...윤호하고 같이 못살잖아요... 떨어져..있어야..하는거잖아요...." "......." 아이처럼 곧 눈물방울을 뚝뚝 떨구며 다시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란.......... 울고있는 그에겐 모순이지만, 너무나 사랑스러운것였다. "...그러기...싫은데......... 재중이...그냥 윤호방에..있음..안되요...?"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린 재중이 이내 윤호의 옷자락을 꼬옥 잡으며 그의 가슴팍에 살며시 얼굴을 기대고..커다랗게 울어버린다. "옆방 안갈래요.... 가기 싫어요....여기가 좋아요.....흐윽..." 어쩌면..좋을까...? 매일매일 함께 할수록 갖고싶어지는 이 아이를 지키는 일은 될 수있으면 자신과 떨어트려 놓는 것였다. 평소의 윤호같았다면..아무생각없이 가지고 말았을 아이.... 유천의 그 한마디에 지금 무던히도 참으려고 노력한다는걸...알아주기만해도 좋을텐데.. 그걸 깨닫기엔 너무나 순수한 아이였다. 결국은 환희에게 말해두어 오늘밤부터 다른방에서 자게하려 했건만..이렇게 눈물을 흘리고 가지않는다고 칭얼거릴줄은 몰랐다. 그렇기에 재중의 이런 반응에 아무대책도 세울 수 없는 윤호. 결국은 딱부러진 말로 재중에게 으름장을 놓고만다. "내가 말했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필요없다고. 환희가 한 말은 사실이지만, 내가 지금당장 유리와 혼인을하기위해 널 옆방으로 쫒아내는것이 아니야. 알아듣겠어?" "..우흑...흑...." 윤호의 말이 뭐가 그리도 섭섭한지..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눈물을 멈출 생각을 하지않는다. 그런 재중의 눈물을 닦아내며 윤호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주체 할 수가 없어지고 있었다. 매일같이 인내심이 바닥나려는 순간의 연속였다. 끝끝내 울먹임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재중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부딪낀다. "..흐윽...." 작게 맴도는 울먹임. 그 울먹임을 허용하지 않겠다는듯 재중의 여린 입술에 거칠게 입술을 맞대며 다른 한손으로 윤호가 재중의 눈물을 닦아냈다. 그러자 아무반항없이 포옥..안겨오는 마른 몸이..... 자신의 가슴께를 꼬옥 붙들고 어쩔줄 몰라하는...사랑스러운 움직임이 물씬 느껴진다. 재중의 입술사이를 윤호의 부드러운 혀가 파고들었다. 이내 아무것도 모른채 그저 윤호가 원하는대로.... 그의 뜻대로 열리는 입술............. 이렇게..미칠것같이..자극하면....견딜수가 없잖아... 조금만 덜 순수했더라면..난 널 어떻게 했을지 몰라. 금방이라도..뒤에있는 침대위로 눕혀 마음껏 취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지만, 재중의 입술안에서만 맴도는 윤호였다. 네가..눈을 떠 내 아이를 가질 수 있는때가 온다면......... 온전히 내것으로 만들어 버릴꺼야. 다른 누구도 넘 볼 수없게 나에게만 속한 내 사람으로 만들것이다. 윤호의 머릿속으로 순간 다정하게 재중을향해 웃어보이던 창민과 날카로운 질투의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유천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 미 열(美 熱) 38편 - 사락-----. 준수가 자신의 마른어깨를 덮고있던 윗옷을 거둬냈다. "......." 그러자 마치 예전부터 준수의 시중을 들었다는듯 다가오는 손길. 유천의 두손이 준수의 옷을 받아내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준수의 입에서는 애달픈 작은한숨이 새어나가고........ "이러지......" 준수가 분홍빛 입술을 달싹였다. "..이러지..않으면 안되요..?" 그리고 곧 흘러나오는 부탁조의 말. 그 목소리에 유천은 아무말없이 준수의 옷장으로 걸어가 그의 옷을 차분하게 걸어놓는다. 만찬에서 돌아오는 길. 아무말도없이 그저 준수의 뒤를 묵묵하게 뒤쫒던 유천였다. 정말로 자신의 시종마냥 구는 모습이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아니.....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고 말하면..더 정확한 표현인지도..... 벌써 만찬을 마치고 거처로 돌아왔을때의 시간은 어느덧 저녁을 넘어서 늦은 밤시간으로 향하고... 유천은 그저 고개를 숙인채 우두커니 서있는 준수를 스쳐지나 그가 잠을 잘수있게 이부자리를 살펴주기 시작했다. "..유천씨..!!" 준수가 그런 그의 손목을 잡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 자신의 손목을 잡아끄는 미약한 여린 힘. 그 부드러운 손길에 유천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 놀라며 비켜섰다. 그리고는 자신을 살며시 올려다보다가 곧 눈을 피해버리는 준수을향해 나즈막하게 말을 꺼낸다. "..고마워." "......." ..고마..워........... 유천의 말을 들은 준수의 눈커플이 살며시 떨려왔다. 무슨뜻에서 하는 말인지 너무나 잘 알기에 심장마저 조여왔다. 분명..... 자신의 동생 재중을 만나게 도와준것에대한 표현이리라. 아니에요.............. 고마워 할 필요 없단 말예요....... 난..... 준수의 머릿속으로 순간 윤호의 곁에 서있던 재중을 질투의 눈길로 바라보던 유천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란..사람....... 당신이 윤호를 바라볼때의 그 눈빛으로 똑같이.... ..재중씨를 바라봤어요.... 순진하고 착한 그를....... 유천씨가 사랑한다는 그를...그렇게 바라봤..어요.... 준수는 곧 자신의 눈시울이 뜨거워지는걸 느끼고선 애써 입술을 깨물어 눈물을 삼켰다. "..나.........유천씨......." 준수가 이내 아래로만 떨구고있던 시선을 용기있게 유천에게로 돌렸다. "...나....유천씨.....좋아하는것 같아요...." "...!!!" 준수가 힘겹게 띄엄띄엄 꺼내놓은 말. 그 말에 순간 유천의 눈이 놀란듯이 커다래졌지만, 준수는 그에게 한번 주기 시작한 눈길을 피하지 않고있었다. "..소진이가....그리 말했어요......... 마음이..아플 정도로 누군가를 생각하면....... ..그거......좋아하는거래요...... .....사랑.....하는...거래요........" 준수가 유천을 처음봤을때의 떨리던 자신의 느낌을 기억해내며 아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유천씨도......... 재중씨...생각할때......그래요.......? 내가 유천씨...생각하는것처럼...이리 아파요...?" "......." 준수의 말을듣는 유천의 얼굴이 아이러니하게 일그러졌다. "..그만." 유천이 무엇인가 더 말하려고 입술을여는 준수를 제지했다. "더 말하지마." "....." 유천이 이내 준수를 바라보고있던 시선을 돌리며 몸을 굽혀 잠시 주춤한 상태에서 다시 이부자리를 곱게 펼치기 시작한다. "....." "....." 그저 아무일없었다는듯이 묵묵히 준수의 침대를 정리해주는 유천와..그런 그를 곁에서 애처로운 어깨를 움츠리고 바라보는 준수였다. 아프다....... ..아..파... 멈추지가.....않아......... 준수가 울음에 막혀 나오지않는 목소리를 겨우 밖으로 토해냈다. "그렇게....." 고개를 숙여 유천의 손에 들려있는 이불을 슬그머니 빼앗아 들고는 고개를 숙인다. "..그렇게...모질게...... 무관심..하지 말아요......." "......." 물기가 잔뜩 묻은 목소리. 가늘게 떨리는 옅은 음색에서 충분히 그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잘 알고있는 유천였다. 하지만...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야. 애초에 그저 준수가 자신의 주위에 자꾸 맴도는것은 사사로운 호감이라 치부해 버리고 싶었지만, 이렇게 여린 모습으로 자신에게 고백해 버릴 준수는 아닐꺼라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은 완벽하게 비껴나가고 있었다. 그냥 바보같이 착해서 모든 이들에게 져주기만 할껏같은 준수은...... 여린 모습으로라도 자신의 마음을 확실하게 털어놓는 그런....사람.. 박유천이...사람을 너무나 잘못봤어.......... 그저..딱부러지게 선을 그어놓으면 갖고있던 호감조차도 버려버릴꺼라고... 그렇게 생각했어...... 준수가 자신을 바라보는 유천의 시선을 느끼며 손에 들린 이불을 펼쳤다. 그리고는 이내 여전히 머리카락에 가려 보이지 않는 얼굴을 들어올리지 않은채 그에게 말을 건낸다. "..나가...줄래요....? 이부자리정도....제가 볼 수 있어요...그러니까..." "......." 곧...울껏같은 목소리로 겨우 말하는 준수에게 유천은 할 수 없이 가볍게 예의를 갖춰 고개를 끄덕이고 발걸음을 돌렸다. 우습다. 방금전 재중이를 보고왔을때의 그 떨림이 아직도..있는데....... 잔뜩..물기를 머금고있는 준수의 목소리에 그를 달래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버리다니......!! 그럴수록 더 냉정하게 끊어야 하는것임을... 터벅...터벅..... 점점 방을 빠져나가는 유천의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가 들릴때마다 준수는 떨리는 손으로 이불을 꼬옥 움켜잡으며 두눈을 감았다. 쿵-----. 그리고 이내 들리는 문닫히는 소리. 그 소리에 감겨있는 준수의 두눈에서도 맑은 눈물이 뚝뚝..떨궈지기 시작한다. 털썩-----. 준수가 힘없이 침대위로 자신의 몸을 가라앉혔다. ..그러니..소진아....? 나 어릴적......... 사랑이란것에대해 그저 동경만하던 그때에.... 니가 말해줬던 느낌이 이런거였어...? 한없이..행복해지는것도 모자라 더 행복해 질 수 도있다고한거... ...어딘지는 모르겠는데...가슴이 미여질듯이 자꾸만 아파 질 수 도있다고한거... 그리 말했던거...... 사랑이라고....... 니가 말해주었던 그 사랑을....... 지금 내가 시작하려나보다............. 바보같이..... 아픈쪽을 택하려나보다...... ...나.......어쩌니......... - 미 열(美 熱) 39편 - 또각_또각__ 단단한 나무를 정교하게 깍아 아름답게 색을입힌 그녀의 신발굽이 신경질적인 소음을 흩뿌리며 앞으로 나아가기에 바쁘다. 다른때와는 달리 화려한 치장을 거부하고 그저 청초해 보이기위해 단정하게 다듬어진 머리가 그녀의 모습을 더욱더 순해 보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지금 어떤 말로도 형용 할 수 없을만큼 불편한 심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그녀의 시종인 지연조차도 따라오지 못하게 하고서는 바삐 걸어가는 걸음. 그곳의 목적지는 다름아닌 윤호의 거처였다. 저녁만찬이후 며칠이 지난새에 그녀는 거의 지옥을 오가는 심경속에서 방안에 틀어박혀 있었던것을 기억해냈다. 그리고는 그 며칠만에 외출하는곳이 다름아닌 윤호의 거처라니. 기분좋은 모습으로 가고싶었건만, 그럴 수 없는것은 아마도............. 그녀가 자신의 거처에 머무는 며칠새에 지연의 입으로 들려오는 수없는 얘기 때문였다. [오늘은 윤호님께서 그 아이와 정원을 산책하셨어요....] [오늘은 윤호님께서 그 아이에게 줄 옷감을 손수 고르시더군요...] [오늘은...그 아이와..........] "후우..!!!" 자신에게 윤호와 재중의 동태를 살피고는 쪼르르 달려와 분하듯이 얘기를 해주는 지연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를 울리고 있었다. 그에 짧은 숨소리를 내뱉으며 고개를 도리질쳐 마음을 진정시키는 유리였다. 여우같은것!! 유리가 자신의 화장기없는 창백한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만찬중..그렇게 섭섭한 마음을 나타내며 가버린 자신을 끝끝내 붙잡지 않았던 윤호였다. 하지만, 상처입은듯 모습을 보이지 아니하면 혹시나 찾아와 간단히 달래주는 말이라도 해줄줄 알았건만............ 결국..... 그는 아무런 기별없이 그 재중이란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것이다. 재중에 대한 솟구치는 분노를 누르며 이내 발걸음이 멈춘곳을 한번 바라보는 그녀. "내가왔다고 윤호에게 고해라." 방금전까지 넘쳐나던 그 찡그린 미소는 어디갔는지 금새 눈빛을 우울하게 바꾸며 윤호의 서재앞에 서있는 호위병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내는 유리. 곧 유리에게 고개숙여 인사한 호위병이 윤호의 서재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곧 다시나와 유리를 안으로 들여보낸다. "고마워." 자신에게 정중히 서재문을 열어주는 호위병에게 기품있는 목소리로 인사를전한 유리가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유리의 눈에 비친것은 자신이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는 사람. 커다란 창을 통해 밝은 햇살을 받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이리저리 서류더미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검토하는 당당하고도 멋진 자신만에 윤호이였다. "...저...왔어요...." 그 모습에 저도모르게 눈을 두고있던 유리가 퍼뜩 자신을 바라보는 윤호의 시선에 당황스레 고개를 돌린다. 그 모습은 영락없는 수줍은 많은 소녀같은 모습을 연출해낸다. 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윤호의 눈빛에는 그 어떤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왠일이야." 원채 무뚝뚝한 윤호인걸 아는지라 그의 억양없는 목소리에도 기죽지않는 그녀가 그의 앞으로 바싹 다가섰다. 그리고는 하얀분을 입술위까지 곱게발라 창백해 보이는 얼굴로 말을 꺼낸다. "..저.....며칠새에..많이 아팠어요......" 그녀의 말에 윤호의 눈동자가 순간 짧게 일렁임을 보이다가 이내 가라앉았다. 그리고는 정말로 아픈듯 평소의 화려함을 숨긴 옷차림과 머리에 작은 한숨을 내쉰다. "지금은..? 다..나은건가...?" 그나마 방금전까지와는 조금 다르게 냉정한 말투가 많이 누그러진듯 묻는 윤호의 물음에 그녀는 입술을 꼬옥 다물며 연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안좋아 보이는데 시종도없이 여기까지 뭐하러왔어. 좀 더 쉬도록해." 윤호가 곧 다시 책상쪽으로 걸음을 옮겨 보고있던 서류를 집어들었다. 그의 그런 모습에 유리의 눈가로 슬그머니 심술이 뻗쳐오른다. 도대체...저리도 냉랭한 사람을 그 아이는 무슨수를 어떻게 굴렸길래 같이 정원을 산책하기도....한낱 천한것의 옷을 고르게도 한단 말인가. 자신도 꽤나 자신있는 외모에 윤호의 수없이 거처간 잠자리 상대들보다도 더 뛰어난 애교와 화술을 가지고있다 생각했건만..............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는 노릇였다. "그리 바빠보이시는건..... 좀 있으면있을 마을순방때문이신가요..?" 살며시 윤호의 일정을 확인하듯 묻는 그녀를 신경조차 쓰지않은채 윤호가 짧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런 그의 모습에 유리가 자신의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윤호쪽으로 옮긴다. 정식으로 마을순방을 돌자면....꼬박 하루가 걸린다는것을 유리는 잘 알고 있었다. 언제나 자신의 부족에 관해서는 늘 꼼꼼하게 챙기는 전형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잘 갖춘 윤호이니까. "....." "....." 하얀얼굴에 도톰하게 매력적인 입술을 꾸욱 다문채 조용히 서류에만 시선을 두고있는 윤호을, 눈꼬리를 내려뜨려 흘깃 바라본 유리가 끝끝내 침묵을깨며 말을 꺼냈다. "저...당신한테 할 말이 있어요..." "....." 할 말이 있다는 유리의 작은 목소리에 곧 윤호의 시선이 다시 그녀에게로 돌아간다. 정면으로 닿아온 윤호의 시선에 유리는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는 자신의 볼을 살그머니 하얀손으로 감싸쥐었다. 그리고는 감히 윤호의 눈동자에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조심스레 말을 꺼내놓는다. "...우리....이제...... ..혼례를 올릴때도 되지않았나요.....?" 여자가 먼저 말을 꺼내기엔 껄끄러움이 없지않는 결혼이란 얘기. "......." 하지만, 이미 윤호앞에서 그녀의 자존심은 저 멀리 물건너간것과 다를바 없었다. 유리가 윤호의 얼굴을 살피며 마른침을 삼켰다. 제발...내 말에 그렇게하자는 한마디만 해줘요...... 그렇다면 난 그 아이를 최대한 너그러운 마음으로 처벌하겠어요... 유리의 눈빛이 윤호의 대답에 거는 기대로 반짝이고 있었고, 그런 그녀의 상기된 얼굴을 윤호는 한동안 바라만보고 있었다. 그리고 끝끝내 터져나온 윤호의대답. "..아니." "...???" "..그 얘기는 없던걸로 하지." "..!!!!!" 윤호의 대답이 떨어지는 순간. 유리의 눈동자가 충격으로인해 찢어지듯 커다랗게 변했다. "..유...윤호..??" 그리고는 그의 대답을 잘못들은것마냥 재차 윤호를 불러보지만... 그녀에게로 돌아오는건 냉랭한 눈길뿐. 놀란 표정으로 말도 제대로 잇지못하는 그녀에게 윤호가 차갑게 말을 건냈다. "내가 그대를 정혼자로 선택한건 사실이다. 하지만, 난 혼례한다는 확실한 말은 하지않았어. 다른 더 좋은 상대가 나타난다면 충분히 바뀔 수 도 있는 말였지." "..!!!!!" 유리는 윤호의 딱부러진 말에 떨리는 손끝을 주체 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 자신의 부족과 그것도 모자라 여러 다른 부족까지 통치하는 그에게는 당연히 바꿀수도있는 선택과도 같은 혼례. 유리보다 더 좋은 사람이 생기면 자연스레 좋은 혈통을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과의 혼례를 생각 할 수도 있는것이다. 하지만.................... 이리도 몸 떨리는 배신감이 느껴지는건 아마도..윤호의 마음까지 모두 앗아간 그 천한것에대한 분노때문이리라. 유리는 결국 치솟는 분노를 어쩌지 못하고 날카롭게 소리질렀다. "말해봐요!! 사람 홀리게생긴 천한것이 당신 마음을 어지럽혔어!!! 아닌가요!!! 그 요사스런것이 윤호 당신에게 해를끼치고 있는거라구요!!!" 격분한듯 소리치는 유리를 윤호는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하겠다는듯 바라봤다. 평소에 그 얌전한듯 조심스레 말을 건내던 그녀가 맞단말인가. "용납 할 수가 없어요!! 제가 윤호를 이렇게 사랑하는데 도대체 뭐가 부족하단 말인가요!!! 그 아이는 당신하고 어울릴 수 조차없는 하등한것인데!!!" "그만." 윤호가 유리의 터져나오는 막말을 맏으려 단호한 목소리로 낮게 읍조렸다. "그 순진해 보이던 얼굴뒤에 악마성또한 숨어있었던걸 내가 미처 몰랐군그래." 그리고는 비꼬듯이 유리를 자조섞인 눈빛으로 바라봤다. 윤호의 말에 유리가 금새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을 애써 다듬으려 노력하며 가뿐숨을 몰아쉬었다. "다시한번 생각해봐요 당신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지.... 그 아이...다른 무성한 소문들이 떠돌고 있어요 알아요? 그 곱상한 얼굴로 윤호가 잠시 외출을 할때 다른 이들을 홀리고 다니는걸 알고있기나 한거예요?" 유리가 윤호의 싸늘한 표정에 거짓설명을 부연하고 과장된 몸짓으로 어깨를 떨며 눈물을 떨궜다. "그만하고 나가." 윤호가 그런 유리를 제지하며 고개를 돌리고는 의자에 앉아 잔뜩 지푸려진 눈빛으로 서류쪽에 시선을 두었다. "아무 신빙성없이 그저 그런 소문이 돌것같아요? 윤호가 없을때 당신 침대위에서 그 순진한 얼굴로 누구랑 뒹굴지 어떻게 아냐구요!!!" 콰앙----!!! "분명히 그만 말하고 나가라고 했을텐데!!!!!" 윤호가 유리의 말에 못참겠다는듯이 거칠게 책상을 내리치며 분노로 변한 회색빛 눈동자를 날카롭게 치켜떴다. "..윤..호......" 그의 갑작스런 돌발행동에 깜짝놀란 유리가 윤호를 두려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당장...꺼져." 그리고는 곧..죽일듯이 노려보는 윤호의 억눌린 말에 금새 뒷걸음질 쳐버린다. "..오..오늘은 이만 가겠어요. 하지만 정말로 당신곁에서 당신만 사랑할 사람은 저라구요..!" 유리가 화가난 얼굴위로 눈물을 흘리며 빠른걸음으로 그곳에서 벗어났다. 쿠웅-----. "......." 유리가 나가자..두려움마저 돌던 공간은 다시 적막감이 찾아오고........... 윤호는 벌떡 일어났던 몸을 금새 의자뒤로 깊숙이 파묻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한손으로 감싸고 눈을 감자............ 자신을향해 예쁘게 웃는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려오는듯했다. 빌어먹을..!! 정말로..그 아이에게 어떻게 되기라도 했단말인가. 마음속으로는 유리를 혼례자로까지 확실하게 결정하고 있었던것이 사실였다. 그 아이를 ... 그 숲에서 보기전까지는 .......... 하지만, 아무 이유없이 유리와의 정혼을 파기하고 게다가 재중의 욕을 봤다해서 이렇게 격분하다니...!!! 자신조차도 이해 할 수 없는 현상였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그 아이의 몸을 온전하게 갖지도 못하면서..곁에 두고싶고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만 든단 말인가. 어떤 이유에서...!!! "..후..우...." 윤호의 입에서 짧은 한숨소리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부족일을 보고있는 와중에도.... 또 지금처럼 머리가 터질듯이 복잡한 순간에도...떠오르는것은 이 시간쯤 환희와 정원에서 살풋이 놀고있을 재중의 모습뿐였다. - 미 열(美 熱) 40편 - "우..웅...." 재중의 입가로 삐죽이 짧은 웅얼거림이 새어나왔다. "재중이는..따라가지 못해요...?" 그러더니 약간은 투정이 섞인 목소리로 슬그머니 묻는다. "오늘은 환희도 함께 동행해야 하니까 심심해도 방안에 있는것이 좋을꺼다. 밖은 아예 나가지마. 위험하니까." 어린아기를 다루는듯한 윤호의 말투에 재중은 작은 한숨을 그 붉은 입술새로 내뱉고.......... 환희는 그런 그의 모습에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원래 환희는 재중의 시종이기전에 윤호의 시종였다. 무엇보다도 윤호가 순방을 나설때에 필요한게 무엇인지 어디마을부터 도는지까지 확실하게 알고있는 그였다. 그렇기에 오늘 순방에 따라나선것인데.............. 숲을 가로질러 가는곳도 있기에 산짐승이있는 위험한곳도 다반사. 그러기에 재중을 데려가지 않는것이 좋겠다고 판단한 윤호였다. 게다가............이 아이가 옆에있는다면... 아마도 예상하건데..자신은 확고하게 일에 전념 할 수 있을지가 의문였다. "왜 대답이 없는거냐. 내 말에 따르지 않겠다는건가." 도리도리. 윤호의 매서운 눈초리가 느껴졌는지 곧바로 고개를 가로젓는 그. "저녁때쯤 금새 돌아올테니 걱정마세요....오늘하루만 꾸욱 참으면 내일은 윤호님과 함께 호숫가로가서 물고기를 잡기로해요..아셨죠?" 난데없는 호숫가 약속이라니... 환희의 말에 윤호가 놀란눈을 치켜뜨며 재빨리 그를 돌아다봤다. 윤호의 시선에 환희는 움찔..놀라며 이내 손을들고 윤호에게 고개숙이며 한번만 봐달라는 표정으로 소리없이 연신 입모양만 꿈뻑이는데............ 결국 윤호는 자신멋대로 약속을 해놓은 환희를 혼내려던 시선을 다시 재중에게 돌린다. "..정...말로...? 정말로...윤호하고 같이 나가요..? 호숫가에...?" 은근히 요며칠 바빴던 윤호가 마음에 걸렸는지 재중이 조금은 들뜬 목소리로 묻는다. 섭섭했던 표정은 어디갔는지 환희의 말에 밝게 웃으며 양볼을 상기시키는 그. 그리고는 앞에 윤호가 있는것을 확인하려는듯 그의 옷자락을 단아한 손가락으로 자꾸만 당겨댄다. 윤호의 입에서 무슨 대답이 나올지......... 환희도 긴장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자신의 물음에 아무 대답도없는 윤호가 불안한지 재중의 붉은 입술도 어느새 꾸욱 다물려있었다. 잠시 환희를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재중에게로 다시 돌린 윤호가 평소의 그답지않게 조금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는 곧 고개를 살짝 끄덕여보이고는 말한다. "그래." "..우아..." 윤호가 내뱉은 찬성의 대답에 곧 재중의 입에서 어린아이같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꽤나 기쁜 모양인지 손바닥을 맞부딪히며 이내 윤호에게 귀염성있게 포옥 안겨오는 마른 몸. 애초부터 윤호에게 어떠한 거부감을 보인적없는 재중이었다. 오히려 윤호에게 아이같은 호기심으로 무장한채 한없이 예쁘게만 굴던 아이가 아니던가. 유천을 각별하게 생각하는 마음때문에 그를 엄하게 다뤘던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줄곧 자신에게 안겨드는 폼이 싫지않은 윤호였다. 아니. 오히려 사랑스러워 보인다는 기분이 이런것인지...모르겠다. "오늘..재중이 꼼짝도 안하고 여기 있을께요. 윤호하고 환희 올때까지 기다리다가 밥두 같이 먹을래요." 재중이 윤호의 가슴팍에 고운 얼굴을 묻으며 배시시 웃었다. 그 모습에 윤호의 손은 자신도 모르는새에 자연스레 재중의 볼을 감싸올리고..... 다정한 그들의 모습에 환희는 뿌듯한 미소를 짓고는 방긋방긋 소리없는 웃음을 토해낸다. 그 여시같은 유리님보다는 재중님이 백배.. 아니, 천배 만배는 낫지~~~~~ 은근히 재중이 윤호의 곁에 머물기를 바라는 환희로서는 두사람의 사이가 좋은것은 무척이나 달가운 일였다. 자신의 허리를 감아오는 가는 두팔에 윤호의 얼굴은 연신 무뚝뚝을 담아내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평소에 볼 수 없는 따뜻함이 서린것였다. 자신의 품에 고개를 묻자 언뜻 보이는 가녀린 목덜미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모카빛 피부가 마치 만져주기를 바라는것처럼 너무나 고와... 윤호는 그만 자신의 입술을 재중의 목덜미에 깊이 묻었다. "..우웅?? ..헤헤..." 자신의 목덜미에 닿는 뜨겁고 촉촉한 감촉에 선뜻 놀란듯 보이던 재중이, 곧 그것이 윤호의 입술인것을 깨닫고는 눈꼬리를 휘며 간지러운듯 살며시 웃어버린다. 바보같은 녀석........ 내가 너를 얼마나 갖고싶어 몸이 달아오른지도 모르는.. 순진한 녀석. 그저 결코 가볍다 할 수 없는 스킨쉽에도 마냥 예쁘고 사랑스럽게 웃을줄만아는 재중을보며 머리가 지끈거리는것을 지금까지 수도없이 느낀 윤호였다. 어서 눈을떠.............. 날 위해서.....! 그럼 난 널 끝없이 안아줄꺼다... 자꾸만 더 깊어져만가는 윤호의 입술에 옆에 서있던 환희가 작은 헛기침을 쏟아냈다. "저..저기요..윤호님.... 밖에 다들 기다리시는데요..." "....." 그의 말에 고개를 살며시 치켜올린 윤호가 붉어져있는 환희의 얼굴과는 달리 아무기색없이 너무나 태연한 표정으로 재중을 품에서 떼어냈다. "빨리오기예요..윤호. 알았죠?" 재중이 윤호의 허리춤에서 손을 떼지 않은채 수줍은듯 작게 속삭였고, 그런 재중의 볼위로 짧게 베이비키스를 남긴 윤호가 환희와 함께 방을 나섰다. 쿵-----. 윤호가 나가고 문이 닫힐때까지 재중은 서있던 곳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빨리.......... 저녁이 왔으면..좋겠다. 해가 지고 재중이 눈안으로 빛이 들어오지 않을때가... 어서 왔으면 좋겠어..... 재중이 금새 찾아든 적막감에 우울한 표정을 지어내며 손을 더듬어 뒤에놓인 침대위로 몸을 뉘였다. 잠을 자고난 후 윤호가 와 있었으면........ 두손으로 이불을 꼬옥 말아쥔 재중이 얼굴을 푹신한 베개에 묻으며 빙그레 웃었다. "......." 곧이어 아기처럼 쌔근거리는 숨소리가 방안을 어렴풋이 울린다. 알고나 있을까...? 언제부터 자신이 이리도 윤호를 찾았는지.......... 곁에 있고싶어 하는지.............. 더이상 예전처럼 그렇게 애타게 유천을 찾지 않는다는것도......... 스스로 깨닫고나 있는건지................ . . . "창민님. 유리님 드셨습니다." 밖에서 들리는 그녀의 시종 지연의 목소리에 창민은 보고있던 책을 덮었다. 달칵-----. 그녀가 왠일이란 말인가. 창민이 곧 평온하던 얼굴을 얼음장처럼 굳히며 문쪽을 바라봤다. "오라버니...안가셨나봐요..마을순방에." 전같지않게 조용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물으며 유리와 지연이 들어섰다. "어차피 준수와 나. 둘중에 한명이 윤호를 보필하면 되니까." 저번에는 준수대신 자신이 윤호와 마을순방을 했던것을 기억해내며 창민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유리를 바라봤다. 그런 창민의 매서운 눈빛에도 불구하고 용기있게 그에게로 다가가 의자에 앉는 유리. "..그리..쳐다보지 마세요....... 저 오늘..아주 우울해서 오라버니 찾아온거니까요." 유리가 고개를 푹 숙이며 힘없는 말로 중얼거렸다. "..???" 그러자 유리를 미심쩍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창민. 그들의 잠시 이어진 무거운 침묵에 옆에 서있던 지연이 자신의 두손에 받치고온 달콤한 술을 두사람앞에 내려놓았다. 미리준비해온듯한 술잔에 창민이 눈쌀을 찌푸리고는 지연을 바라봤지만, 그녀는 그저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여보일뿐. "무슨...일이지?" 창민이 유리를향해 말을건내자 그녀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흑..." 처음보는 유리의 눈물. 그 눈물에 창민의 눈동자가 놀란듯 커다래졌다. 그런 창민의 시선을 느꼈는지 유리가 조심스레 손으로 눈물을 훔쳐내며 애처롭게 살며시 웃어보인다. "..훗....오라버니...저............ ....저...어제.....혼례를 없던일로 하자는 ..윤호의 말을 들었어요......" "..!!!!!" 파르르 떨리는 눈커플이 그녀의 말이 사실임을 입증하듯 불안해 보였다. "너무나..속이 상해서....... 찾아갈 사람이 없었어요...그래서............. ...제겐....가족이라곤..오라버니뿐이잖아요........." 유리는 곧 다시 눈물을 떨구며 마음이 아프다는듯이 작게 흐느꼈다. "그 말이..사실이냐...?!" 끄덕끄덕. 창민의 물음에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인 유리가 슬프게 웃어보이며 술잔을 들어 창민에게 들어보였다. "..마음이...많이 아파요...... 오늘 하루만.....저 좀..달래주시면..안되요 오라버니...?" 유리의 눈동자위로 눈물이 한가득 차올랐다. "......." 마음은 비록 사악함이 담겨있는 유리였지만, 윤호에대한 여자로서의 순정은 진심어린것이란걸 창민은 잘 알고있었다. "..후우........" 창민이 머릿속으로 윤호가 아마도 혼례를 깬것은 그 아이 때문일꺼란 생각이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그 아이가 나타나기 전까진 유리가 윤호의 배필이 될것이 확실해 보였는데.......... 자신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잔을 들어올린 유리를향해 창민도 앞에 놓여져있는 잔을 들어올렸다. 챙-----. "술..조금만 마실테니..오늘만 봐주세요..오라버니."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과일주를 한모금 슬쩍 마시는 유리를 바라보며 창민은 작은 한숨과 함께 술을 들이켰다. 탐탁지않았던 못된 이복여동생이어서, 이 일을 기뻐해야할지..씁쓸해 해야할지.. 구분이 지어지지 않았다. 끝까지 술을 들이키자 코앞으로 싸한 쓴기운이 돌았다. 향내는 꽃처럼 향긋해도 그 맛은 의외로 독한것이 바로 이 과일주. 하지만..그것을 목구멍으로 넘겨 입안으로 그 맛이 다 퍼지기도 전에 창민은 왠지모를 어지럼증을 느껴야만했다. "..!!!" 순간 눈앞이 멍해지는 아찔함. 탁-----!! 창민이 그만 탁자위로 휘청이는 상체를 세우려 손을 뻗었다. 그러나................... "어지러우세요...오라버니?" 멍해져버린 눈앞으로 유리의 얼굴이 뿌옇게 비쳐왔다. "하아..!!" 창민이 무슨 말인가를 꺼내려 입을 열었지만, 목에서 콱 막혀버린듯한 말은 밖으로 전해지지 않았다. "윤호가 그렇게 말해서..너무나 속상하답니다....." 유리가 자신의 볼위에 맺혀있는 눈물을 닦아내며 여유있게 말을 건냈다. "하지만...저밖에 그의 사람이 될 수 있는 여자는 없어요." "..흐읏...." 이상하게 숨이 가빠오는듯 하더니..조금씩...지쳐가기 시작한다. 창민이 잠시간 뚜렷해진 시야 사이로 빙그레 웃으며 말하는 유리의 얼굴을 찡그린 미간으로 겨우 바라봤다. "죄송해요 오라버니. 하지만, 그는 제꺼예요." 쿠웅----!! 유리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창민의 몸이 완전히 의식을 잃은듯 앞으로 고꾸라졌다. "..흥." 자신의 앞에 쓰러져있는 창민을 바라보며 조소섞인 음색으로 콧웃음을 치는 그녀의 간사스런 목소리가 방안을 가볍게 울렸다. - 미 열(美 熱) 41편 - "..후아....." 아무것도 모르고 잠들어있는 그의 숨소리가 따뜻함과 함께 침대가를 살풋이 울렸다. "우웅...." 뒤척이는 작은 움직임 마저도 사랑스러운 그. 하지만..누가알까.... 지금 창문을 넘어 누군가가 자신을 위협하려 한다는것을. 터벅--. 창을넘어 조심스런 발자국 소리가 연거푸 방안을 가볍게 울렸다. 그리고는 두리번거리는 시선을 방안 여기저기로 두며 곧 한곳에 멈추고만다. 침대위에 곤히 잠들어있는 그. 살며시 걸어가는 까만 단복을입은 그의 빠른 몸놀림이 어느새 재중에게 바싹 다가가 있었다. "......." 찰랑이는 까만 머리카락을 이마위로 흐트리며 방금전에 피어난 새초롬한 꽃잎처럼 그렇게 무방비 상태로 잠이 들어있었다. "잠이 들어있으니 데려가기 더 편하겠군." 사내가 작게 중얼거리며 재중을 바라봤다. 옷깃 사이로 보이는 티하나없는 부드러운 살결. 곱게만 뻗어있는 얼굴선이 옆으로 살짝 꺽여 그의 작은 얼굴이 커다란 베게에 묻혀있었다. 그러자 더욱더 도도한 선을 내보이는 콧날이 보는이로 하여금 가슴마저 두근거리게 만들어 버린다. 아래로 펼쳐져있는 긴 속눈썹이 아름답고도 우아하게 휘어져 있는 모습에 까만 단복에 사내는 저도 모르게 잠든 재중을 잠시 바라봤다. 필시..사람을 빠져들게 만드는 얼굴빛이다. 재중을 바라보던 사내가 곧 머리를 느릿하게 뒤흔들었다. 그리고는 곧 준비해온 손수건으로 재중의 코와 입을 살짝 막았다가 떨어트린다. 손수건에 묻어있는것은 나무에서 추출한 수면제와도 같은 작용을하는 비약. 앞으로 재중은 저녁이 될때까지는 이대로 계속 잠만 청할것이다. 잠시후 사내는 두손을 뻗어 재중을 안아들었다. 가벼운 몸이 힘없이 딸려오며 그의 품으로 포옥..기대어온다. 사내는 다시 재빠른 동작으로 밖의 동태를 살피더니 아까 들어선 창문을 가뿐히 넘어 그를 데리고 어디론가 바람처럼 달려가고 있었다. . . . 과일주의 향내가 아직도 남아있는 방안. 유리와 지연이 초조한 얼굴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여인이 쓰러진 창민을 힘겹게 침대위로 눕혀놓은지 벌써 꽤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두 세시간 후면 윤호가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왜이렇게 늦는것인지........ 침대위에 저도 모르게 잠에취해 쓰러져있는 창민이 아무기척없이 그저 늘어져있는것을 또 한번 확인한 유리가 불안한듯 자신의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러기를 얼마간. 달칵-----. 커다란 창문이 들어올려지며 한 사내가 재중을 안고는 방안으로 들어섰다. "왔군!!" 유리가 왔다갔다 안절부절 못하던 발걸음을 멈추며 사내의 팔안에서 고히 잠들어있는 재중을 바라봤다. "흥!! 요사스러운것." 순진하게 잠들어있는 재중의 얼굴을보자 울분이 터지는지 유리가 자신의 입술을 꾸욱..깨물었다. "저리로 옮겨." 유리의 명령에 곧 사내가 재중을 창민이 누워있는 침대옆으로 사뿐히 옮겼다. "..훗..곳곳에 호위병들이 꽤나 있었을텐데 수고했다. 한명에게라도 들키진 않았겠지?" 유리의 날카로운 말에 사내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여기." 유리가 곧 지연이 들고있던 파란 비단주머니를 내밀었다. 꽤나 두둑한 금이 들어있는지 축 늘어진 비단 주머니는 곧 유리의 손을떠나 남자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그 정도면 꽤나 과분한 양일꺼다." 사내가 곧 유리에게 고개숙여 인사를 하고는 자신이 넘어 들어왔던 창문을통해 다시한번 몸을날려 사라졌다. "......." "......." 그가 완전히 사라진것을 확인한 유리가 이내 시선을 침대가로 돌렸다. "감히..너같은것이 윤호를 빼앗아가게 둘 순 없지." 유리가 화가난듯 인상을 찡그리고는 지연을 바라봤다. 그러자 지연이 재빠르게 잠들어있는 그들에게 다가간다. 그리고는.................... 냉랭한 손길로 창민과 재중의 옷을 모두 벗겨놓는것이 아닌가. 축늘어진 그들의 옷을 벗기는 일도 보통일이 아니건만, 그녀는 한참만에 그들의 옷을 완벽하게 벗겨냈다. 유리가 지연의 동작이 끝나자 우아한 걸음으로 터벅터벅 걸어가 그들곁으로 다가섰다. 그리고는 잠시 싸늘한 눈빛으로 재중과 창민을 바라본다. "확실히 천한것 치고는 아름다운 몸을 가졌구나....." 유리가 낮게 중얼거리며 재중의 목덜미쪽으로 입술을 떨어트렸다. "여자인 나도 예쁘다 생각 할 정도로 곱게 잘도 뻗은 곡선들이야...." 유리의 입술이 재중의 목덜미와 가슴부근을 깊게 빨아들이며 붉은자욱을 새겼다. "이렇게 부드러운 살결들로 그를 홀렸겠지?" 얼마나 그렇게 시간이 흘렀는지... 유리의 입술이 떨어져나간 재중의 가슴과 목언저리는 보기에도 자극적인 붉은 자욱들이 한가득 피어있었다. "후후..." 유리가 손을 뻗어 재중의 마른몸이 창민의 품에 안길수 있도록 떠밀었다. "기가막힌 우연을 내가 만들어 낼 것이다..." 유리가 사악한 미소를 한가득 지어내며 재중의 머리를 쓸어넘겼다. "기대해도 좋아....... 윤호는 자신의 소유가 다른이의것이 되는것을 결코 용서하지 않지." 그들의 옷이 불경스러워 보일 정도로 침대주변 이곳저곳에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창민과 유리가 마신 과일주가 담겨있던 두잔의 술잔이 고스란히 테이블위를 지키고 있다. 유리가 눈빛을 빛내며 지연과 함께 방을 나서려 몸을 돌렸다. "윤호는 곧.....더러운 모습에 널 보게 될꺼다." 창민의 방문을 열고서는 밖에 누군가가 있는지 살피던 지연이 먼저 나서고 그뒤를 유리가 따라나섰다. 쿠웅-----. "......." "......." 자신들이 지금 어떠한 상황에 놓였는지조차 모르는 그들은.... 지독한 수면에 취해 일어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다. - 미 열(美 熱) 42편 - 달칵-----. "재중님----!" 어둑어둑해진 저녁시간이 다 되가는 무렵. 윤호의 방문이 경쾌하게 열리며 명랑한 목소리가 연이어 재중을 찾았다. "재중님???" 환희가 불러도 대답이 없는 재중을 의아하게 생각하며 다시한번 방안을 둘러봤다. "......." 곧이어 환희를 뒤따라 들어오는 윤호. "벌써 주무시고 계시나?" 환희가 자신의 뒤를 따라 느린걸음으로 터벅터벅 걸어들어오는 윤호에게 생긋이 웃어보이며 기분좋은 어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침대가로 쏜살같이 달려간다. "재중님!!!" 침대 주위에 걸려있는 아름다운 얇은 휘창이 여러번 환희의 손을지나 거쳐지고... 불러도 대답없는 재중이 당연히 잠들어있을꺼라 생각한 환희는 웃는 낯으로 재중을 다시한번 불렀다. 하지만.......................... "..어?!!!" 텅텅 비어있는 침대를 바라보고는 환희의 입에서 잠시 당황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무슨일이야." 그제서야 침대가에 서있는 환희의 엉거주춤한 자세에 윤호의 걸음이 조금 더 빨라졌다. "저..저기...." 자신의 곁으로 바싹 다가온 윤호를 돌아다보며 환희가 난감한 얼굴로 소리쳤다. "재중님 어디가셨나봐요!!!" "..!!!" 환희의 목소리에 윤호의 두눈도 놀란듯이 커다래지고... 이어 윤호의 두손이 황급히 침대휘장을 제꼈다. "......." 그리고 넓은 침대를 빠른 눈길로 살펴본 윤호가 곧바로 발걸음을 돌렸다. 도대체...어디간거야!!! 움직이지 말라고 했건만............ 금새 재중의 모습이 보이지않자 윤호의 미간이 살며시 일그러졌다. 정말 자신은 오늘 하루종일 우습게도 계속해서 마음속으로 조급함을 느꼈었다. 자기 자신이 생각해도 놀랄일........... 마을사람들의 사는모습과 농사법..그리고 빈부의 차를 꼼꼼히 측근들과 따지고 체크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한순간도 재중을 생각하지않은 순간이 없었다. 자신을향해 활짝 핀 꽃잎마냥 웃어줄 그 아이가 눈에 안보이는것이 신경 쓰인것인지, 마을 순방을 대충 할 수 있는 성격도 아니면서..그리도 조급한 마음에 평소보다도 훨씬 빨리 일을 처리한 윤호였다. 그리고 도착한 거처앞에서도..애써 자신도 모르게 빨라지는 걸음을 억누르며 여유있는 모습이라 한껏 가장하고 들어선 방였는데............. 자신이 왔을때에 환하게 웃으며 품안에 포옥 안겨오길 은근히 많이도 기대했었다. 만약 자고있다면 흔들어 깨워서라도 그 미소를 꼬옥 한번 보겠다는 엉뚱한 생각에 내심 속으로 당황도 했었다. 하지만............. 평소에 가득차 있던 냉소들은 어디갔는지 재중을 만나면서부터 이상하게 심장한구석이 찌릿해지는 느낌을 가지게됐던 자신. 겪어본적 없는 그 느낌이 설레임이라는걸 알리없는 그가 어린아이같은 기대감으로 재중을 찾았건만, 예상과는 달리 그는 방안 어디에도 없었다. "서재로 가보자." 윤호가 차분한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며 발길을 서재쪽으로 돌리자 환희도 그의 뒤를 급한 걸음으로 뒤따랐다. 벌컥-----!!! 다소 거칠게 열린 서재문. "후우..." 뛰다싶이 한걸음에 서재로 온 윤호의 입에서 짧은 숨소리가 터져나왔다. 서재문을 열고서는 그 조용한 공간을 한번 둘러보던 윤호의 눈동자가 순간 어느한곳에서 멈췄다. "...흑....흐......" 여린 흐느낌. 윤호의 눈동자가 자신의 책상옆에 서있는 사람을향해 고정되고...환희의 눈동자도 그 사람을 의아한듯 동그란 눈으로 바라봤다. "...유..리..?" 윤호가 우두커니 서서 훌쩍거리는 유리에게로 다가갔다. "..윤호..예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눈물에 젖은 두뺨을 들어올리는 그녀. "유리님?" 환희도 유리가 울고있는 모습이 이상한지 윤호의 뒤를 바짝 따라서 그녀곁으로 다가섰다. "뭐야...여기서..왜...." "..흐윽...윤..호......" 윤호가 유리에게로 다가서서 얼굴을 일그리며 말을 건낼때였다. 순간 그녀의 마른몸이 윤호의 품안으로 안기고 든다. 유리의 그런 모습에 환희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구겼다. "흐으윽...." "무슨일이야..도대체..." 자꾸만 자신의 가슴을 적시며 울어대는 유리를 떼어놓으려고하며 윤호가 아까보다 조금더 냉정하게 물었다. 그러자 그제서야 빼꼼히 눈물가득한 두눈을 들어올린 그녀가 다짜고짜 큰 목소리로 억울하다는듯 말을 꺼내놓는다. "..제가..아까 뭘 봤는줄이나 아세요...?" "......." 유리의 격앙되어있는 목소리에 윤호가 자신의 품에서 그녀를 조금 떨어트려 놓았다. "..창민오라버니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그래서.....방에 들어가봤는데......" "........" 유리가 띄엄띄엄 말을 꺼낼때마다 윤호의 가슴으로 불안한 기운이 스물스물 기어오른다. 뭔가 불안한 마음에 잔뜩 미간을 일그린 윤호에게 유리는 흐느낌과 같이 말을 토해냈다. "..그...마녀족..아이가....그 마녀족 아이가....오라버니와..함께... 침대위를 뒹굴고 있었어요.........." "...!!!!!" 뭐...??? 지금..뭐라고 그런거야.......... 유리의 말에 윤호의 두 눈동자가 충격으로 커다래졌다. "흐윽....보기에도..너무...민망해서....차마 그곳에 있을 수가 없었어요...... ..제가..들어온지도 모르고.....그 둘이..계속해서........." 유리가 자신의 손을 들어올려 볼위로 흘러내린 눈물을 찍어냈다. "...제가 말씀드렸잖아요......그 아이....천하디..천한 그 아이가 여러사람을 희롱하는게 틀림없다구요.....오늘같이 윤호가 늦게 들어오는 날을 노린거예요..그렇지 않다면 설마 순진하신 저희 오라버니께서 윤호의 소유인 그 아이를 건드리시겠어요.....요사스럽게 꼬신거라구요!!" 유리가 흐느낌을 조금씩 멈추며 자신이 하고싶은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 윤호는 순간 자신의 숨소리가 매우 가빠졌다는것을 깨달았다. 그..아이가.....뭐라고............? 여러 사람을 희롱해...........? ..창민과 함께...잠자리를 했다고.....?!!!!! 윤호의 눈동자가 못믿겠다는듯이 작은 떨림을 일으켰다. "..무..슨........." 윤호가 자신의 주먹을 힘껏 말아쥐었다. "...무슨 말도안돼는 개소리야!!!!!" 윤호가 유리에게 분노에 찬 소리를 내지르며 거칠게 발걸음을 돌렸다. 말도안돼.... 그 아이가........... 순진한 눈동자로 항상 날 바라보던 그 아이가 어떻게!!! "윤호님..아닐꺼예요.....재중님은 아니예요!!!" 빠르게 서재를 빠져나가는 윤호의 뒤를 쫒으며 환희가 격분한듯 말을 건냈지만, 지금 윤호의 귀에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아니했다. 오로지.................. 두눈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윤호의 걸음은 방금전 보다도 더 빨라져 있었다. . . . "..으음....." 마치 물먹은 솜뭉치마냥 축축 늘어지기만하는 몸을 간신히 추스리며 눈을 떠올리려 애를 써본다. "하아..." 머리가 핑 도는것 같은 착각에 눈을 뜨기란 그리 쉬운일이 아니었다. ...애써 손을 들어올려 정신을 차려보려 노력하지만..... 금새 자신의 팔 안쪽에 얹어져있는 가벼운 무게에 창민이 힘겹게..눈을 떠올린다. 뭐...지....? 겨우겨우 흐릿해진 시야를 제대로 맞추려 몇번이고 깜빡이는 눈커플. 조금있으니 서서히 눈앞에서 어지럽게 돌아다니던 사물들이 확실하게 윤곽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자신의 가슴쪽을 간지럽히는 보드라운 느낌에 시선을 아래로 낮추는데.... "..!!!!!" 창민의 동공이 충격으로 활짝..열려졌다. 이게 어떻게 된일이야!!!!! 창민이 자신의 가슴께에 볼을 부비며 다정스레 안겨오는 재중을 발견하고는 침대에서 튕겨오르듯 몸을 일으킨다. 그러자..자신의 허리를 좀 더 힘껏 감아오는 가는 두팔...... "..하아..!!!" 당황한듯 창민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재중의 목덜미부터 가슴께까지 흩어져있는 붉은자욱에 그만 몸서리치게 놀라고만다. 아...아니야........ 이럴리가 없어..!!!!! 애써 어지러운 머리를 정리하려 노력하며 창민이 떨리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하고, 아까 아침부터 자신이 한 일을 모두 생각해내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무언가에 맞기라도 한것인지..으레 수면중에 겨우 눈을 떠올린 창민의 머리속은 혼탁하기만하고.......아침에 자신이 무얼했는지 조차도 흐릿 할 뿐였다. "......." 하지만, 이내 차분히 자신의 머리를 감싸고 생각해내려 노력하자 어느새 거친 숨소리가 진정됨과 동시에..하나둘씩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낮에는............ 방에서....책을보고......... ..그..리고.................................... 잃어버린 기억을 다시 찾듯이 창민이 서서히 자신이 낮에 무얼했는지 생각해냈다. "..!!!!!" 이내 기억이 끊긴 공간에서 마지막으로 자신이 보았던 사람. 유리!!! 창민이 곧 자신의 이복동생 유리를 생각해냈다. 그녀의 시종이 건내준 과일주를 마시것이 화근였다. 틀림없이 이건 유리와 지연의 계략였다. 도대체....어째서 재중을 자신의 옆에다가 이렇게 놔둔것인지... 그것도 누가봐도 오해할만한 이런 모습으로..!!! 창민이 미처 유리가 벌인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실마리를 잡지도 못하고, 빠르게 침대에서 내려서려 할때였다. 왠지 모르게.....불안해!!! 그때였다. 창민이 막 이불을 제치려고 하는 순간..문이 열린것은. 벌컥-----!! "......." 갑자기 열린 문에 당황한 창민의 눈동자가 곧 충격으로 커지고........... 창민의 시선 끝에는.................. 역시나 자신과 똑같이 충격으로 인해 얼음장처럼 굳어져있는 윤호과...환희가 있었다. - 미 열(美 熱) 43편 - "유..윤호..야........." 창민이 콱 막혀서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애써..쥐어짜냈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입고있지않는 하체를 간신히 침대밑에 떨어져있는 자신의 옷으로 가려버린다. 지금 이 상황........... 충분히 오해하고도 남을만한 일였다. 어떻게든.......넘겨야한다!!! 여지껏 살아오면서 이렇게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를만큼 긴장한적이 있었던가... 창민의 당황한 목소리에 그제서야 윤호는 뻣뻣하게 굳어있는 시선을 침대위에 누워서 곤히 자고있는 재중에게로 옮겼다. "......." "......." 순간 무서울 정도로 무거운 침묵이 그들을 내리누르고............... 윤호는 어둡게 내리깔린 진회색빛 눈동자를 창민에게로 다시 돌렸다. "..어떻게..된건지.....설명해봐........" 윤호이...듣기에도 섬찟할만한 낮은 목소리를 음산하게 깔았다. 젠장할..!!! 창민이 침대옆에서 몸을 일으키려 움직이며 두주먹을 꽈악 움켜잡을때였다. "..우웅.......싫...어........." 자신의 곁에서 따뜻한 온기가 사라지는것을 느꼈는지 재중의 가는팔이 창민의 허리를 더욱더 가깝게 감싸안아오고..... 재중이 붉은 입술을 계속해서 웅얼거리며, 창민의 곁으로 가깝게 몸을 밀착시켰다. 창민의 눈동자가 재중의 행동에 더욱더 당황한 기색을 나타냈다. "..후우..!!!.." 그런 재중의 모습에 윤호는 순간 참을 수 없는 살인충동을 느낀다. "일어나 심창민!!!" 윤호가 순식간에 창민의 곁으로 다가가 거칠게 그를 잡아 일으켰다. "니가..니가 어떻게 이럴수있어!!!!!" 주체 할 수 없는...터져버릴듯한 분노였다. 퍼억-----!! 쿠당탕!!! "으아아---!" 윤호의 돌발행동에 깜짝놀라 비명을 내지르며 두려움에 몸을 움츠린 환희. 윤호의 움켜쥔 주먹이 창민의 왼쪽 얼굴을 매섭게 가격했고, 그 바람에 아무 방어자세없이 서있던 그는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유..윤호..!!!" 창민이 넘어진 자신의 몸을 날렵한 동작으로 일으켜 세우며 입가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훔쳐냈다. 그리고는 소리쳤다. "분명..오해야!!! 저 아이하고 난.........." "닥쳐!!!" 퍼억-----!! 또 한번 작렬하는 윤호의 주먹은 이번에 창민의 복부에 정확하게 꽂혀들었다. "흐욱!!!" 고통스런 신음소리가 창민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우우웅......" 그때였다. 시끄러운 주변의 소음을 뚫고 작은 웅얼거림이 들려왔다. 그에 모두의 시선이 재중이 누워있는 침대로 향하고................. 무서운 압박감속에 가득찬 이 순간을 아는지 모르는지....재중이 서서히 잠에서 깨어난듯 몸을 오그렸다 쭈욱 피며 시원하게 기지개를피는 모습이 모두의 시선에 들어왔다. "..후암...잘잤다." 그리고 이내 개운하게 자다가 일어난것마냥 상쾌한 목소리를내며 말하는 재중을 창민은 불안한 눈으로 바라봤다. 이글거리는 격분한 눈동자로 재중을 응시하는 윤호........... 김재중............... ..박..유..천..............!!!!! "윤호아..정말 아니야..니가 잘못알고있는거야....절대로 난 저애와......." "이봐!!! 거기 아무도없나!!!" 창민이 잠에서 깨어난 재중을 바라보다가 빠르게 말을 꺼내려는 찰나, 윤호의 외침이 그의 말을 날카롭게 막아섰다. 곧이어 창민의 거처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윤호의 목소리에 보초를 서고있던 호위병들이 방안으로 들어서고................. 윤호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명령했다. "당장 심창민을 독방에 가둬라!!!" "정윤호!!!" 윤호의 말에 창민의 눈동자가 충격으로 그 움직임을 멈췄다. "내말이 안들려!!! 당장 가두라는데 뭐하는거야!!!" 공적인 일로는 서로에게 냉정하지만, 사적인곳에서는 창민과 윤호가 누구보다도 절친한 사이라는걸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 그런 창민을 윤호가 감옥에....그것도 독방에 가두라는 명령을하자 호위병들이 모두 주춤했다. 하지만, 그걸 용납하지않는 윤호는 다시한번 매섭게 명령했고, 그제서야 병사들은 몸부림치는 창민의 양팔을 포박한다. "정윤호!!! 정신차리고 제대로 눈을떠서 잘 보라구!! 틀림없이 오해야 이건!!!!!" 병사들에게 끌려가는 창민이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지만, 지금 윤호에게는 그 어떤소리도 들리지 않았고.......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이 상황을 전혀 모르는듯, 앉아서 주위를 조심스레 두리번 거리는 김재중의 모습만이 두눈에 들어올 뿐였다. "유...유..윤호예요...? 거기있는 사람....윤호...맞아요....?" 잠에서 막 깨어났을때는 평안한 얼굴을 하고있던 재중도 창민의 시끄러운 외침과 윤호의 화가난 목소리에 그만..금새 주눅이 들어버린 모양였다. 하지만, 방금 일어난 그에게있어 지금 이 소란스런 주변상황은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것. "..김.재중..너..!!!" 윤호가 자신의 꽉 다문 잇새로 말을 내뱉으며 재중을 매섭게 노려봤다. 그리고 자신의 무서운 목소리에 여린 어깨를 잔뜩 움츠린 재중의 가슴을 내려다보는 윤호의 얼굴이 격앙된 표정으로 일그러들었다. 스스럼없이 드러나있는 울긋불긋한....저 표식들은 도대체 누구멋대로 감히 누구의 허락을 받고 허용했단 말인가. "윤호..?" 자신에게로 성큼성큼 가까이 다가온 윤호를 느꼈는지 곧 재중이 그의 이름을 작게 불렀고...그와 동시에 재중의 몸은 어느새 이불에 감싸여 윤호의 어깨에 들쳐매져 있었다. "윤호님! ..윤호님!!" 거칠게 재중을 자신의 어깨에 매고는 거처로 돌아가는 윤호를 환희는 여러차례 불렀지만, 그 애절한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않는 윤호였다. "윤호? 왜이래요? 재중이싫어요....불편하단 말예요..!" 재중이 꽤나 힘겹게 윤호의 어깨에 매달려 투정부리며 벗어나려 애쓰고 있었다. "모르겠어? 내가 지금 화난걸? 그러니까..입닥치고 조용히해!" 하지만, 곧이어 들린 윤호의 매정한 말에 재중의 말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자신을 다루는 손길이 무척이나 거칠다는것을 재중은 아무영문도 모른채 오로지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윤호에게...미움 받을껏..같은...너무나도 싫은...느낌.............. - 미 열(美 熱) 44편 - 쾅쾅쾅---!!!! "윤호님!! 문 좀 열어주세요!!!" 문밖에서 환희의 시끄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장 네 거처로 돌아가지 않으면 너에게도 처벌을 내릴것이다!!!" 그런 환희에게 윤호가 날카롭게 소리치며 매몰차게 말을 끊었다. 재..중님.................. 방안에서 울려퍼지는 윤호의 명령에 환희는 어깨를 떨어야만했다. 윤호의 명령은 절대적인것. 그 어느누구도 무시 할 수 있는것이 아니었다. 어떻게해..................... 환희가 차마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문밖에 쭈그려 앉았다. 자신이 여태껏 윤호곁에서 그를 모시며 이렇듯 분노한 그는 처음보는것였다. 아니야.......... 재중님은 절대로 그러실 분이 아니야............... 환희도 방금전에 창민의 방안에서 그에게로 파고드는 재중의 모습을 지우려 머리를 뒤흔들었다. 제발....아무일이 없어야 하는데................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한 환희가 무릎사이로 자신의 얼굴을 파묻어 버렸다. 털썩-----!! 윤호의 냉랭한 손길이 재중을 침대위로 던져놓자 힘없는 몸이 곧 그위로 푹..파묻혀 버린다. "...윤호........" 재중이 두려운듯 윤호가 있는쪽으로 고개를 들어올리며 자신의 몸을 감싸고있는 이불을 두손으로 꼬옥 움켜잡고는 뒤로 물러났다. "아..!!" 그런 재중의 곁으로 다가선 윤호가 그가 힘주어 잡고있는 이불을 빼앗아 저만치로 던져버린다. 갑자기 자신의 몸을 감싸고있던것이 떨어져나가자..순간 밀려오는 싸늘함에 재중은 자신의 몸을 한껏 움츠렸다. "말해봐. 심창민을 어떻게 유혹했는지." 윤호가 그런 재중을 노려보며 나즈막한 목소리로 말을 건냈다. "..윤...호....." 도대체 무슨 말인지..아무것도 알 수 없는 재중은 그저 윤호가 하는말에 겁에질려 고개만 갸우뚱. "모르는척 시치미 뗄 생각따위 애초에 버리는게 좋을거다!!!" 윤호가 재중의 순진한 얼굴에 화가 치솟는지 그를 침대위로 넘어트리며 어깨를 자신의 두손으로 짓눌렀다. "하읏.........아....파........." 재중이 강압적으로 내리누르는 윤호의 두손에 작은 비명을 내질렀다. "유리 말대로 정말 이 아름다운 얼굴로 창민을 유혹한건가? 아니면 이 부드러운 몸으로?" 윤호의 입에서 금새 비아냥 거리는 말투가 흘러나왔다. "...몰.....라.................. 윤호가...무슨말 하는건지.....재중이는..모르겠어요.........." 재중이 윤호의 말에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으며 입술을 떨었다. "어째서 몰라...뭘 모른다는거냐....... 니 몸에는 내것이 아닌 다른사람의 흔적이 이토록 선명한데!!!!!" 증거가 명백한데도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백치미마냥 그저 자신을 무서워하며 두려움에 질려있는 재중에게 윤호는 화가나 미칠것 같았다. 차라리...솔직히..말해........... 솔직히 말해라................ 윤호의 눈동자에는 이성이라곤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평소의 냉철한 머리를 가진 마족의 족장 정윤호는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소유욕과....질투심에 사로잡혀 잔인함만이 남은 남자 정윤호가 전부였다. "......." 그저 안타깝게 입술만 바들바들 떨며 어깨만 움츠리는 재중을 바라보는 윤호의 눈빛이 잔인한 회색빛으로 깊게 물들었다. 정말....... 이 아이같은 순진함뒤에......여우같은...요사스러움이..있는것인지.............. 한참을 자신의 아래에서 굳은듯이 꼼짝안하는 재중을 노려보던 윤호가 이내 입가에 시니컬한 웃음을 내걸며 조용히 말을 꺼냈다. "네가..정말........이 아름다운 얼굴로 한번도 다른사람의 소유가 된적이 없다는것이 사실일까......? 그렇다면 내가 직접 확인해봐도 상관없는 일이군." 말을 끝내자마자 윤호가 곧바로 자신의 옷을 거칠게 벗어내렸다. ".....유..윤호.......?" 왠지모를 공포에 재중이 윤호의 이름을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부르며 손을 내뻗었다. 그러자 금새 윤호의 손에의해 포박당하는 재중의 손목. "이..키스마크중에....과연 창민의것만 있는지........" 윤호의 나머지 한 손이 재중의 맨가슴을 부드럽게 훑고 지나갔다. "흐..읏......" 윤호의 뜨거운 손끝이 가슴을 쓸고지나가자 그 생소한 느낌에 금새 몸을 떠는 재중이 느껴진다. "과연..이 입술은 나만 담아내었나?" 살짝 벌어져 윤호에대한 공포감을 드러내놓고있는 그의 입술을 윤호가 순식간에 짓이기듯 맞부딪혔다. "..흐읍...." 갑작스런 윤호의 입술에 깜짝놀란 재중이 이내 고개를 돌리려 애썼지만, 집요하게 쫓아드는 윤호는 막무가내였다. "..하아......!!" 숨을 쉬가가 곤란한지 재중의 입에서 가뿐 숨이 흘러나왔지만, 윤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으..응........." 다소 공격적으로 달겨드는 윤호의 혀가 재중의 입안을 이리저리 숨막히게 배회하고... 재중은 처음느끼는 두려움속에서 애꿎은 눈물만 삼킬뿐였다. "..하아..하......" 재중의 입안을 맘껏 맛본 윤호의 입술이 순식간에 그의 목덜미를 거칠게 빨아들이며 진한 아픔을 남겼다. "아..읏....." 그 아픔에 재중이 곧 고개를 세게 가로저으며 거부의사를 밝혔지만, 윤호는 그런 재중의 얼굴을 잠시 무표정하게 바라볼뿐 자신이 행하고있는 행위를 멈출 기색은 전혀 없어보였다. "..싫...ㅇ...ㅓ...." 이내 재중의 눈꼬리에서 맺혀있던 눈물방울이 투두둑..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흐윽...흑......." 그런 재중을 바라보는 윤호의 미간이 일그러들었다. 울지마............ 그렇게 울어서 내 맘 약하게 만들려는 수작이면 집어치워!!! 재중의 작은 흐느낌에 일순간 마음이 흔들린 자신을 비웃으며 방금전보다도 더 거칠게 달겨드는 윤호. 윤호의 입술이 미친듯이 재중의 가슴과 목덜미를 오르내렸다. 그리고 윤호의 손끝이 자신의 다리사이를 머물자... 재중은 그만 공포스러울 정도로 생소한 느낌에.....도망치려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흐윽..흑....싫...어.............. ..싫어..요....윤...ㅎ..ㅗ......." 점점 파고를 더해가는 애처로운 흐느낌. 하지만, 이성을 잃어버리고만 윤호에게는 그 울음이 가슴아프기보단 자신을 거부하는 의사로밖에 내비치지 못했다. "어째서..우는거야.....내가..그렇게 두려운가....? 그저 니가 다른사람의 것이 되었는지..확인만 해본다고 하잖아!!" "흐으윽....흐읏....." 서럽게 울어대는 재중을 애써 무시하며 윤호가 잔뜩 오므린 그의 다리를 단호하게 열었다. "..싫어.....재중이...싫어요............. ....윤호...제..발............." 커다란 오열을 터트리는동안 땀으로 질척해진 재중의 이마를 윤호의 손끝이 쓸어넘겼다. 여지껏..내 소유가 된것을 난 단한번도 못가져본적이 없었다. 니가 내것이 되었다고 생각했을때도.......... 난 내 욕심보다는 널 배려했어. 네 빌어먹을 형의 말을 듣고 멍청하게도 널 생각했단 말이다!!! 그런데................ 그런데 이제와서 다른 사람에게 아무렇게나 몸을 주는 녀석이라면........... 나를보며 순진하게 웃던 그 미소가 가식이라면............... 난 너를 용서 할 수가 없어..........!!! "흐읏...흡....." 윤호가 자신의 입술을 단호하게 다물며 힘없는 재중의 다리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단번에 자신을 그의 몸안으로 깊이 밀어넣었다. "..아..윽!!! 아아........" 조금의 여유도.........그렇다고 짧은 멈춤도없이 순식간에 아무도 침범한적없는 여린 성역을 꽤뚫어버린 그 잔인함에, 재중의 붉은 입술에서 고통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하..읏....아악........." 한번도 느껴본적없는 죽을껏같은 아픔에 재중이 윤호에게 붙잡힌 두손목을 어쩌지 못하고 가냘픈 목이 드러나 보이도록 고개를 꺽어내렸다. "..하아...!!!" 그런 재중의 몸에 순식간에 잠식해 들어선 윤호. 순간 자신을 아프도록 조여드는 순진한 몸에 충격을 받은듯 두눈을 부릅...떠올렸다. 설마........!!!!! "..아..윽........흐읍......" 윤호가 자신의 안에서 아무움직임없이 가만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처음 받아들인 고통에 재중은 끝끝내 아픔의 눈물을 커다랗게 토해냈다. "...흐으윽....흑.......유...윤...ㅎ...ㅗ....." 흐느낌섞인 목소리. 보기에도 안타까울 정도로 바들바들..떨리는 작은 몸. 처음인것이 분명한 재중의 몸에 윤호는 거칠게 자신을 들여보내놓고도.... 쉽사리 물러서질 못하고 있었다. 이미..물러서기엔.....너무...늦어버렸다. "하아....하아........." 재중이 순결하다는것이 명백히 느껴지는 순간. 하지만, 자신이 그를 오해했다는 그 충격적인 놀라움 중에도..그렇게 재중을 갖고싶어하던 욕망이 분출되자 더이상 자신을 어쩌지 못하고 서서히 그의 몸안에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윤호였다. "..아..아읍.....흐윽...흑........." 내가...........!!! 내가 지금..이 아이한테..무슨짓을 한거야!!!!! 자신이 재중에게 잘못했다는것이 확실하게 생각되는 지금 이 순간........ 또 모순되게도 마음 한구석에서 늘 재중을 갖고싶다고 바랬던것이 이루어지는 지금 이 순간........ 재중에게 상처를 줬다는걸 알고 괴로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몸안에 머물고있다는 쾌락으로 절정을 달리고있는 상반된 마음... 지독한 행위가 끝날때까지.... 윤호의 귓가로.......재중의 아픈 울음과 신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 미 열(美 熱) 45편 - 조용한 적막감. 곧...무거운 공기에 짓이겨져 모든것이 뭉개져버릴만큼...고요 할 수밖에 없는 침묵였다. 한밤중이라 아무것도 보이지않는 캄캄한 어둠을 그저...푸르스름한 달빛만이 비쳐... 사물들을 구별 할 수 있게 해주고 있었다. 잔뜩...구겨진...침대시트. 가끔가다가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애달픈 흐느낌. 침대밑에 주저앉아 자신의 머리를 두손으로 감싸쥐고 그렇게 꼼짝않는 윤호는....... 울고있는 재중을 달래 줄 수가 없었다. 미칠듯한 자괴감. 그리고 또 자기혐오. 한순간에 놓쳐버린 이성으로인해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법조차 모르는 여린아이에게 쏟아버렸다. 돌아버릴것같은...소유욕과 질투심이...... 그를 눈멀게하고 말았다. 왜...믿지 않았던가. 그저 주변에..들리는 소문일지라도 무시했어야 하는것을.......... 일순간 창민과 함께 누워있는 모습에 벌써 냉철한 정윤호는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것이다. 창민과 무슨 일이 있었건............ 우선은 이 순진한 아이를 믿는것이 올바른 선택이 되어야 했었다. "........." 윤호가 입술을 깨물며 힘겨운 숨소리를 내뱉고는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어째서냐................ 니가 나에게 무슨 존재이길래............ 이 나를 이렇게까지...미치게도 만들 수 있는건지............... 돌아버리게..만들어 버리는건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를 폭행하는것과 똑같은........] 유천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도는듯하여 더더욱 그를 달래 줄 수가 없다. "훗..." 윤호의 입가로 시니컬한 비웃음이 터져나왔다. [사람과 사람끼리의 결합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그럼............. 그렇다면................. 내가....어린아이를 범한것과 똑같이 되버린것인가. ...약하디약한...... 눈조차 뜨지도못한 저 여린 마녀족의 아이를..? 윤호의 표정이 괴로움에 일그러졌다. "흐윽....흣......." 멀찌감치 떨어져...힘없이 널부러져있는 육체가 작은 떨림을 일으키고 있는데도...... 자신은 이상하게 꼼짝을 할 수가 없다.... 어째서................. 무엇때문에........................ 침대위를 점점이 붉게 물들인 붉은 선혈. 얼마나 아팠고 고통스러웠는지 역력히도 보여주는 지독한 증거였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힘이 없건만..... 입에서는 하염없이 흐느낌이 터져나온다. 그것은 아마도..자신을 이렇게 아프게 했는데도..따뜻한 손길로 안아주지조차 않는 윤호에대한 섭섭함 때문이리라... 그리하여 마음이 더 아픈..것이리라.............. 작게 흐느끼던 재중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겨우겨우..막혀있던 목소리를 끄집어냈다. "..나........." 떨림이 가득한 옅은 미성. 그 미성에 윤호의 어깨가..흠칫.....움직임을 나타낸다. "...나.......뭔가........... ..뭔가.....윤호에게......잘못한게 있는거죠..?...그렇..죠...?" 재중이 침대시트를 작은 손으로 힘겹게 움켜잡아 끌어올리며 소리없이 눈물을 떨궜다. "...그래서...윤호가...나 아프게...한거야.... ..재중이 말이.....맞죠..?....재중이가...윤호한테....잘못해서.....흑.." 순간..말을 잇지못한 재중이 또한번 눈물을 쏟아냈다. "..윤호한테...틀림없이 잘못한것이..있어서............ ..재중이 잘못..이라서..........이렇게............흐으윽.." 움직일 수 조차없는 고통. 진득하니 느껴지는 끈적한 선혈과 그 아픔에 아까부터 주체 할 수 없을만큼 떨리는 몸을 재중은 도저히 혼자 감당해낼수가 없었다. 제..발...윤호................... 재중이..좀..안아줘요......... 재중이가......... 재중이가..잘못..했다잖아요.............. 너무..아파........ 아파서...견딜수가..없어............ "흐윽..흑....." 끊임없는 오열. 안타까운 떨림이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앉아있는 윤호에게도 전해질 정도였다. 바보같은 새끼. ..뭘 잘못했어......... 도대체 니가 나한테 뭘 잘못했다고 빌어!!! 멍청할만큼 착해 빠진 녀석!!! 그저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며 울기만하는 재중에게 윤호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더이상...." 윤호이..이제껏 다물고있던 입을 열었다. "더이상 울지마라... 울지마." 널 의심하고 상처준것은 바로 나란 말이다!!! 정작 밖으로 터트리고싶은 말은 입안으로 꿀꺽 삼키고, 그저 울지말란 차가운 말한마디 던져놓고는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선다. "..의원....불러올께." 그리고 마음과는 다른 차가운 또 한마디.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윤호를 느끼고는 놀랐는지 순간 재중이 흠칫..어깨를 움츠렸다. 그리고는 작은 움직임도 괴로울만큼 아픈몸을... 거친입맞춤으로 부은 입술을 꽈악 깨물어가며...일으켜 세우고야 만다. 상체를 지탱하는 가는 두팔이..불안하게 미약한 떨림을 드러냈다. "..싫어요........재중이 두고 나가지 말아요......그러지..말..아요....." 재중이 애원조로 말하며 겁먹은 얼굴로 윤호가 있는곳을 어림잡아 바라봤다. 하지만, 자신을 회피하는듯이 느껴지는 윤호때문에..또 한번 가슴한구석이 아려오고... ....... 윤호의 목소리가 들려왔었던 방향을 기억해내며 입술을 앙다문다... "아읏.." 재중이 곧 침대아래로 발을 내리며 찌릿하게 올라오는 고통에 미간을 일그렸다. "하아...." 이내 어렵게 말아쥔 시트를 놓칠새라 조심스레 한발자국 한발자국 걸음을 떼는 재중은 몹시나 힘겨워 보였다. 금새라도 넘어질것처럼 비틀거리며 자신이 있는곳을향해 조심스레 다가오는 재중을.. 윤호가 놀란눈으로 바라봤다. 재중이 잔뜩 젖어든 뺨위로 아직도 맑은 눈물방울을 똑똑 떨구고는, 윤호를 원망하듯 말을건내며 계속해서 불안정한 걸음을 자꾸만 옮기고 있었다. "..윤..호.....왜...안아주지 않아요.......... 재중이.....재중이가...잘못했다잖아요......" 말하면서도 계속 떨어져 내리는 눈물. "..이렇게...재중이..힘들고...아픈데.......어째서....... 따뜻하게....안아주지 않아요.........." 사시나무 떨리듯 울먹이는 작은 목소리. "..미....워요.....흐윽.......... ....윤호....너무......미워...흐으읏......." 그저..안아주기만을 원하고 있었다. 직접적으로 자신을 아프게 만든 원인인 윤호이..안아주기를 간절히 바라고있을 뿐였다. 이렇게...내 마음이 부서질 정도로..가슴저릿하게 만드는..김재중...... 넌 도대체............. 나에게..어떤의미냐........... 나에게 어떤 존재야............... 윤호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침대시트 밑으로 곧게 뻗은 재중의 두 다리가 들어왔다. ...그의 두 다리 사이에는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붉은 선혈이 흘러내려 얇은 선을 내리긋고 있었다. 자신이 입힌 상처를 고스란히..보여주듯이..... 재중의 그런 모습에 자신의 두 주먹을 아플정도로 세게 움켜쥔 윤호. 그러는동안 어느새 재중은 윤호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 윤..호..........." 힘겹게...자신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재중을 더이상 외면하지 못하고... 젖어있는 그의 얼굴에 자신의 눈을 마주친다....... 그리고 불쌍할 정도로 처연한 그 행동 하나하나에...... 부서질것같은 여린 몸을 안아주려는 순간.....!!!!! 휘청------- "..!!!!!" 그대로 자신의 품안으로 낙하하듯 떨어져 내리는 재중을 윤호가 재빨리 받쳐 안았다. "재중아!!!" 힘없이 축 늘어진 몸............. 윤호가 그의 물기어린 뺨을 두어번 때려봤지만, 이미 의식을 잃은 그는 깨어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재중아!!!" 정신적으로도...육체적으로도.....아직 아이같기만한 그가 견디기 힘든 몸의 고통. 달이뜨고 새벽이 될때까지 지치도록 쏟아낸 눈물. 그리고 그토록 안아주길 바랬던 윤호가 다가와주지않은 긴장속에서의 심리적 불안감. 이 모든것이 지금 재중을 탈진시켜버리기엔 너무나 충분한것였다. "재중아!! 재중아!!!!!" 자신의 품에서 고개를 꺽은채 죽은듯이 축 늘어져있는 재중을 바라보는 윤호의 눈동자에.. 난생처음.....공포라는것이 떠올랐다. 미 열(美 熱) 46편 - "환희야!!!" "..!!!"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 고개를 푸욱 숙이고있던 환희가 순간 꼬옥 감고있던 눈을 번쩍 떠올렸다. "환희!!!!!" 다시한번 들려온 다급한 목소리에 그만 벌떡 몸을 일으켜 윤호와 재중이 있을 방문을 힘차게 열었다. 밤새..쭈그려 앉아있던 다리가 저려왔지만, 그런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벌컥---!!! "..!!!!!" 활짝 문을 열고 들어선 방. 환희의 눈동자가 방안을 둘러보며 놀란듯이 커다래졌다. 후끈하게 달아오른듯 뜨거운 열기로 가득찬 방안 공기와 더불어..밤새 들려왔던 재중의 흐느낌 소리가 교묘하게 매치되는 순간였다. 하지만...........절대 그럴일 없다고 확신하고 싶은 마음뿐... "재중..님..?!" 환희의 눈동자가 순간 어느 한곳에 고정되고..그 시선 끝에는 재중을 들쳐안은 윤호와 아슬아슬하게 시트로 몸을 가리고는 힘없이 축 늘어져있는 재중이 있었다. "재중님!!!" 그 모습에 부리나케 그에게로 달려가는 환희는 쿵쾅거리는 심장의 불안함을 멈출수가 없었다. "어..어떻게 된거예요..윤호님!!! 재중님이........" "방안을 정리해줘. 난 선호에게 갔다오겠다!!" "윤호님!!!" 환희의 말이 채 끝나기도전에 재중을 안아든 윤호가 뭐가 그리 급한지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윤호님!!!!!" 방문앞까지 그를 쫒아가는 환희였지만, 끝내는 윤호의 빠른 몸을 따라잡지 못하고 망연자실하게 깊은 한숨을 내쉬고야 만다. "하아...." 불안했다. 재중의 창백한 얼굴이........그리고 땀에젖은 그 머리카락들이....... 얼핏보인 메마른 입술이...너무나 불안하게 보였다. 환희가 느릿한 걸음으로 엉망으로 되어있는 침대가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사정없이 구겨져있는 침대시트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커졌다. 맙..소사...!!! 침대를 위아래로 훓어보는 환희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얀시트위에 엉겨있는 붉은 선혈들은 과연 누구의것이란 말인가...!! "아..니야........... 윤호님은...윤호님은....그러실분이..........." 침대시트와 여기저기 널려있는 재중이 입었던 옷을 바라보던 환희의 눈동자가 눈물에 젖어들었다. "..어....떻게 해......우리..재중님........." 그리고는 금새 울상을 지으며 그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린.............. 아직은.....어린....소년였다.......... . . . 조용하게 자수를 놓는 그 가는 손가락의 움직임에 시선이 머문다. 자신이 한땀한땀 정성스레 놓은 수를 하얀 손바닥으로 살풋이 쓸어내려보는 그 자태또한 너무나 아름다워 누구든 그를보면 한번쯤은 탐을 낼듯..어여쁘기만하다. ".........." 하지만..그의 눈동자는 짙은 슬픔이 깔려있고..그의 분홍빛 작은 입술은 예전에없는 처연함으로 꾸욱 다물려 있었다. 달칵-----. 방문이 열리고 넓은 쟁반을 두손에 든 유천이 나타났다. 아아..... 벌써 점심때가 된건가.......? 어찌 시간이 가는줄도 모르고 그렇게 넋놓고 수만 놓고있었는지..자신도 의아할뿐였다. 한걸음 한걸음 자신에게 다가오는 유천의 모습에 준수의 단아한 눈동자가 따라든다. 하지만.........유천의 눈동자는 여전히 준수의 심연과 단 한번에 마주침도 허용하지 아니하고.............. 그럴때마다 무너지는 가슴에 준수는 입술을 깨물뿐이다. 달각. 준수가 수를 놓던 작은 탁자위로 점심을 놓는 그의 손길이 조심스럽다. 이렇게...................... 부드러워보이는 유천의 머리카락이 그가 고개를 숙임에따라 앞으로 자연스레 흘러내렸다. 이렇게.................... 시선도.....마주쳐주지 않을껀가요.............. 그렇다면.........난 당신께 고백하지도..않았어요............ 그냥....가슴앓이한채..살았을꺼예요........... 지금이..........훨씬..더.....많이..아픈걸............. 준수의 시선이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본다는걸 유천은 알고있었다. 이상하게도 준수의 심장 철렁이는 그 애절한 고백을 듣고선 자신도 밤잠을 통 이루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또 매일같이 그의 시중을 아무일 없었다는듯 들어주는 자신의 연기력에 놀랄뿐이다. 적어도 자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사람였다. 신경이......쓰이지 않는다하면..그건 거짓말이다. 냉정하게 무시하듯 그의 마음을 못들은척 밟았는데도 불구하고.. 언제나 같은..시선. 재중에게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는 또다른 감정이 생겨나게 만드는 사람이 준수였다. 빨리 준수가있는 이곳에서 벗어나야했다. 자신을 쳐다보는 저 맹목적인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뭔가 위험할껏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따뜻한 음식이 담겨져있는 그릇들을 조심스레 내려놓고 몸을 일으키는 유천. 그때였다. 미약한 힘이 자신의 머리카락 끝을 건드린것은.............. "..!!!" 그 느낌에 순간 유천의 모든 움직임이 멈칫하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머뭇머뭇 건드리는 그 얇은 손을 유천이 잡아내렸다. "....." "....." 순간 마주친 시선. 그리고 이어진 침묵. 똑바로 마주하게된 유천의 시선에 준수의 입가에...살며시...미소가 걸렸다. ..눈은..울고있는 아름답도록 슬픈..미소. 준수는 애써 떨리는 심장을 뒤로하고 천천히..자신의 말을 입밖으로 내었다. "..이제야........... 이제야...눈이...마주쳤네요............" "........" 얼마나 자신이 모질게 대했으면..용기를내어 머뭇거리는 손길로 자신을 건드렸을지.. 준수의 한마디에 충분히 이해가갔다. "이러지마." 유천이 낮은 목소리로 준수에게 경고하듯 말을 건낸다. 하지만, 곧 자신의 목소리에 흔들리는 눈동자를보자...잡고있던 준수의 손을 차마 놓아버리지 못하고 그렇게 어정쩡하게 있을뿐였다. "그럼........." 복잡한 유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준수가 소리없이 눈물을 떨궜다. "그럼..어떡해요......." 옅은 떨림을 내보이는 분홍빛 입술이 유천의 머릿속을 혼란하게 만들어버린다. "용기내서 고백해봐도..시선한번 주지않는데........... 그럼..어떡해요..........아무리 바라보고 바라봐도....지나가는 눈길한번 주지않는 유천씬데........제가............" 떨리는 목소리를 끝내 다 내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버리는 준수이다. "...제가.....어떻게해야..되는건데요..........." 바보..같아......... 고개를 숙이고 흐느끼는 소리도없이 눈물만 떨구는 준수가 그렇게나 안쓰러워 보일 수 가없었다. 가늘게 오열하는 마른어깨에..자신도 모르게 손을 얹는다. "..나는.......네게 줄 수있는것이..없어..........." "...흐윽....." 끝내 차분한 유천의 목소리에 여린 흐느낌을 뱉어내는 준수. 가냘픈..너에게.....다른건..내 줄 수있다고..해도............. "마음을..주기엔.....힘들어........." "..흐읏....흐으...." 자신에게 잡혀있는 손을 빼내려는 준수가 느껴졌다. 언제나 딱 부러질 정도로 모진말만하는 유천이 미운것이겠지......... 하지만, 그 미약한 손놀림에 유천은 그의 손을 놓지못하고 있었다. 어쩌면..재중보다.....더 나약하고...더 여릴지도 모르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흐..윽....." 준수의 작은 얼굴을 유천의 한손이 들어올렸다. 자꾸만 내리려는 그의 고갯짓에 겨우겨우 볼을감싸 들어올려진 얼굴은 이미 아픔뿐인 눈물 투성이. 눈물에 젖은 분홍빛 입술은 너무나 약해보여 건드리면 아스라질껏처럼 그렇게 여린 살들만 내비치고 있었다. 난..벌써 내 마음을 재중이에게 주기로..맹세했는데............. 돌아가신 부모님께도 그렇게 약속드렸는데.......... 어째서 너같이 고귀한 녀석이...날 이리도 흔들어............ 네게..어울리는 사람은..따로있을텐데............. 바라만봐도 심장이 두근거릴만큼 준수가 예쁘다는건 자신도 그의 곁에 머물며 수시로 느끼는 감정였다. 마족중에서도 윤호의 친척에 속하는 고급귀족인 그가...자신을 좋아한다는것에대해... 자부심을 느껴야 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허나...............박유천는.....자신을 좋아하는 준수의 모습에........ 같이..아플뿐였다. 이유도 모르겠는 지독한..쓰라림......... 준수의 얼굴을 들어올린 유천의 손가락 하나가 그의 입술을 살풋이 스쳐지나갔다. "......." 그리고 계속되는 자신의 시선에 고개를 숙여버리려는 준수의 입술에 순간 다급하게 입맞춘다. "..!!!!!" 입술이 닿자 처음에는 미약한 떨림을 보이며 놀란듯 몸을 비트는 준수였다. 그러나............이내 부드럽게 애무하듯 어루만지는 유천의 따뜻한 입술에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그저...가만히 자신을 내어준다. "...흐..ㅅ...." 흐느낌을 토해내는 준수의 입술위로 조심스럽게 움직이던 유천이 조금은 조급하게 그의 입술사이를 파고들었다. ...나빠.............. 준수는 그런 그를 거부하지않고..아무런 반항없이 수줍은 입술을 열어준다. 그러나..그의 눈가에서 떨어져 내리는 눈물은...끝이 없었다. ..나...싫다면서................ .....재중씨...사랑한다면서................ 냉정한 말과는 달리 부드럽게 입맞추는 유천을 준수는 원망하면서도... 그의 목을 가는 팔로 끌어안는 자신을 느낀다. ..유천...씨.............. - 미 열(美 熱) 47편 - 온몸이 부서지듯 아파왔다. 그래서.............. 그래서..더 찾는것인지도 모른다.............. "..흐..읏...." 짧은 아픔의 신음소리를 토해내며 떨리는 손끝으로 옆자리를 더듬거리는 가는 손가락엔 힘이라곤 하나도 없어보였다. "재중님..!!" 그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는것은..어린 환희뿐. "..환..희야...?" 누구인지 확인하려는듯 묻는 재중의 손을 꼬옥 잡아주는 환희의 얼굴에 걱정이 한가득이다. "많이...아프세요...?" 조심스레 묻는 환희의 눈빛을 느꼈는지..재중은 이내 고개를 가로젓는다. 하지만...환희는 알 수 있었다. 뜨거운 열이 재중에게서 수분을 빼앗아가 메말라버린 그 붉은 입술이..... 그가 지금 얼마나 불편한 몸을 하고있는지 명백히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손을 잡고있는 환희의 손위로 다른 한손을 포개며 재중이 머뭇머뭇 말을 꺼낸다. "...유.......윤호는....?" 역시나..재중이 찾는 사람은 윤호가 먼저였다. 환희는 순간 울컥한 기분에..자신도 모르게 울먹거렸다. "윤호님을 왜 찾으세요!! 재중님을..이렇게..무심하게...대하셨는데....." 환희는 자신의 코끝을 찡긋거리며 애써 울상인 표정을 펴내고자 노력했다. 선호에게 황급히 재중을 안고 뛰쳐나갔던 윤호는 다음날 점심때가 되어서야... 다시 자신의 두팔에 재중을 안아들고 돌아왔다. 환희 역시 윤호의 방문앞에서 우두커니 밤이 지나도 꼼짝 않고 서서 그들을 기다렸었다. 재중을 자신의 옆방 침대에 놓아준 윤호는 환희에게 그를 부탁하고 나가버렸다. 그 모습에 환히는 더욱더 윤호에대한 섭섭함을 지우지 못하고 재중곁에 있었는데.. 재중은 무의식중에서도..그리고 깨어난 지금에도 그를 찾고있었다. 환희가 입술을 꼬옥 다물며 화가난듯 중얼거렸다. "윤호님..정말 나빠요..재중님께..어떻게......" 도리도리. 환희가 윤호에 관하여 잔뜩 투정을 부릴때였다. 재중이 환희에게 그러지 말라는듯 자신의 고개를 힘없이 내젓는다. 그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입가에 웃음을 띄우고 말을했다. "그러지마...환희야............윤호은...아니야......... 나쁜사람....아니야............" "......." 재중의 말에 곧 환희의 입술이 다물려지고... 재중은 환희에게 부탁하듯 말을 건낸다. "..윤호이..보고싶은데.............여긴..윤호의 향기가..나지 않아..... 윤호의..방이..아니야........그렇..지.....?" 자신이 윤호의 방에 누워있지 않다는걸 느낌으로 알았는지 재중이 곧 우울한 표정을 지어냈다. ..나.....정말..윤호의 미움을 단단히..사버렸나봐...... 재중이가..깨어나서도....곁에 없는걸..보면.....정말 그런가봐............. 재중의 입술이 미묘한 떨림을 나타냈다. "제가..윤호님..모셔......." 달칵. 그런 재중을 바라보던 환희가 곧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단호하게 말을 할때였다. 갑자기 열린 문으로 들어선 누군가에게 환희가 놀란 시선을 던진다. 재중또한 터벅터벅 들리는 발자국 소리에 긴장한 얼굴이 되었다. 터벅_터벅__ "......." 침대쪽으로 걸어오는 사람의 모습에 환희의 얼굴에 다소 안심스런 빛이 띄어졌다. 익숙한 발자국소리. 들어서자마자 풍기는 낯익은 향기. 재중의 얼굴이 언제 우울했었냐는듯 서서히 웃음꽃이 피었다. "..윤호........" 그리고 그의 이름을 작게 불러본다. "..윤호야....그렇죠...?" 자신이..기다렸던..윤호였다. 재중이 누워있는 침대까지 다가온 윤호가 환희를 잠시 바라보자, 곧 환희가 윤호의 뜻을 알아채고는 방에서 나갔다. 쿵-----. "......." "......." 환희가 나가자 완벽하게 둘뿐이 안남은 공간에서는 잠시 무거운 적막감만이 흘렀다. "..괜..찮은건가...?" 윤호가 어렵사리 재중의 초췌한 모습에 말을 꺼냈다. 그러자 이틀새에 야윈얼굴에 역시나 아름다운 미소가 걸린다. "..하나도..아프지..않아.....정말이예요......" 자신이 아프다하면 윤호가 또다시 자리를 뜰까봐 애써 아프지 않다며 눈꼬리를 예쁘게 휘어내려 웃어보인다. 바보..같은....녀석............... 내가..어째서..널 데려왔나............. 너같은 녀석을............... 윤호의 얼굴위로 괴로운 표정이 새겨졌다. 윤호의 아픈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재중은 또다시 손을 더듬어 윤호의 손을 살풋이 움켜잡는다. 가늘고 단아한 손가락이 자신의 손을 힘없이 잡으려했지만, 윤호는 도무지 그의 손을 맞잡아 줄 수가 없었다. 널...본것부터가..나에겐..실수였어......... 널 보지않는것이 차라리..나았어......... 윤호의 미간이 일그러들었다. 후회였다. 지나치리만큼 순수하고 아름다운 녀석에대한 원망였다. 차라리 소리라도 지르고 널 망가트린 나에게 독이라도 품었으면... 널 끝까지 내품에 두었을꺼야............ 재중을 안았던 그 순간부터 밀려드는 자기혐오와 후회뿐였다. 하얗기만한 너는.....피에 물들은 내가 소유하기엔..너무나 넘쳐나는 사람임을... 이제...깨달았어............. 널..철저하게 망가트린 후에야........ "......." 아무말이 없는 윤호가 이상했는지 재중이 자신의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는 왠지 모르게 밀려드는 불안함에 머뭇머뭇 말을 꺼내놓는다. "..아직도.....재중이한테...화난거....아니죠......?" 재중을 바라보는 윤호의 눈빛이 아련해졌다. 넌..니가 언제부터 유천란 이름을 찾지 않게 됐는지..모르고있어..... 완벽하게 나에게 의지하게 만들어놓고는............ 이제는 버리려고해........알고나 있는거야...? 날 누구도 흔들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생각했는데.......... 그랬는데............. 윤호가 느린 손길로 재중의 몸을 안아올렸다. 갑자기 자신을 안아올려 꼬옥 안아주는 윤호의 품에 재중이 놀란 표정을 지어냈다. 하지만..이내 곧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는 그의 품안으로 더욱더 파고든다. 그런 재중을 더욱더 가까이 끌어당기며 윤호가 아무감정없는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나와...섞이기..힘든존재야..너란녀석." "......." "애초에...너같은 녀석..소유하겠다고 어리석은 생각한 내가..잘못이였어." "..윤..호....?" 윤호의 억양없는 목소리에 재중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재중을 알고있었지만, 윤호의 얼굴위로는 냉랭함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단호한 목소리까지. "너희 마녀족들이 있는곳으로 돌아가." "..윤......." 재중이 윤호의 품에서 떨어져 나왔지만, 윤호는 다시한번 그를 안아줄 생각이 없다는듯이 그저 가만히 앉아있을뿐였다. "......." 더이상 아무말이없는 윤호에게 재중이 손을 뻗어 그의 옷자락을 당겼다. "......." 재중의 애처로운 손길에도 아무응답없는 그. 그리고 곧 윤호의 말을 부정하려고 고개를 내젓던 재중이 윤호의 옷자락을 더욱더 세게 부여잡았다. "싫어......싫..어요.......... ..왜.....보낸다고해요............" "......." 투정을 부려본다. 윤호가 내뱉은 말을 스스로 다시 번복하길 바라는 심정으로 그렇게 칭얼거려본다. 하지만................... 그는 더이상 아무말이 없었다. 그런 윤호의 품에 안겨들며 재중이 울먹거렸다. "재중이......아프지 않다고..한거...거짓말이예요....... 많이..아파요.........그러니까............흑......" "........" "그러니까......싫어어........." 자신의 옷자락을 힘들게 붙잡고있는 마른손가락이 안쓰러워 입맞춰주고 싶었다. 하지만...여기서 받아들여주면..안된다. 날카로운 내가...여린..널...어디까지 망가트릴까..겁이나........ 손에...쥐면....아스라질까봐...두렵다.............. 나에게 예전에없던 공포란 감정을....심어준...널............ 그리고...날.....감당 할 수가 없을것같아............. "...흐윽....흐으......." 자신의 가슴팍을 적시는 재중의 눈물이 뜨거웠다. 그래도..두 주먹만 꽈악 움켜쥐고있는 윤호는 아무미동없이..꿋꿋하게 앉아있을 뿐였다.................... 재중의 눈물에...떨리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달래주고 싶어도 달래주지 않는일은..... 마치 자신과의 싸움과도 같은..괴로움이..뒤따른다는걸..깨달은 윤호였다. - 미 열(美 熱) 48편 - 긴 입맞춤으로도 후끈 달아오른 열기는 쉽사리 꺼질 생각을 하지않고 있었다. "..하아...." 참았던 숨을 겨우 몰아 쉰것인지..준수의 입가에서 가뿐숨소리가 여지껏 터져나온다. "......." "......." 하지만, 그 뜨거운 입맞춤뒤에도 아무말이없는 유천. 그런 그를...준수는 더이상 마음속으로라도 원망하지 않는다... 준수이..유천의 품으로 수줍게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애써 덤덤한 표정으로 웃음까지 띄우며 말을 건낸다. "상관...없어요........재중씨...사랑해도...상관없어요........." 준수의 말에 유천의 흔들리는 시선이 순간 그에게로 향하고... 유천의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본다는걸 알면서도 용기내어 말을 꺼내놓는다. "..내가.......내가..유천씨 사랑하니까......저..그걸로....만족할래요.... ..더 욕심내면...벌 받을꺼예요......" 혹시나..유천이 방금전 일로 자신을 더 껄끄럽게 대하지 않았으면..하는 소망에서 내뱉은 준수의 말였다. 착하디..착한 그의 맹목적..사랑에.......그리고 마음이 많이 쓰릴텐데도 자신을 더 배려하려는 그 말에...유천의 눈동자가 순간 일렁임을 보였다. 그렇다면....... 조금더 안고있어도..죄가 되지는 않을지..... 자신의 행동이 준수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일밖에 되지않겠지만, 괜찮다고 말하는 준수는 곧 연약한 나뭇가지처럼 툭..부러질듯 위태로워보여 안아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후우..."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유천의 작은한숨. 유천이..애써 웃고있지만, 얼굴 한가득 슬픔을 담고있는 준수를 더 가까이 끌어당겨 안으려 할때였다. 똑똑-----. "준수님..소진입니다." 갑자기 들려온 노크소리와 소진의 목소리에 두사람은 그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달칵---. 잠시후, 문이 열리고 양갈래로 깔끔하게 머리를 땋아내린 소진이 들어섰다. 그녀의 눈동자가 순간 준수의 옆에서있는 유천을 보고 조금 놀라는듯하더니 이내 말을 꺼내놓는다. "준수님.." "..그..래..소진아.....무슨일로...." 소진의 시선이 잠시 유천에게 향했다는것을 안 준수가 조금 당황스런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자 소진이 준수에게 고개를 숙여보이며 공손하게 말을 건낸다. "저..준수님...지금 윤호님께서 유천을 뵙으면 한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유천..씨를...?!" 준수의 두 눈동자가 놀란듯이 커다래졌다. 그리고는 자신의 옆에서 동그란 눈을 치켜뜬 유천의 모습을 주시했다. "어..째서..윤호가...?" 준수가 자신의 앞에있는 소진을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왜........ 윤호이...유천을 찾는것인지..................... "저도..잘 모르겠어요..준수님. 전 그냥 윤호님께서 그리 말하셨다고 환희에게 전해들었으니까요.....지금 당장 오라는데요..." 소진이 준수의 옆에 서있는 유천에게 못마땅한 시선을 던졌다가 이내 거둬들였다. 순간 준수의 눈빛과 유천의 눈빛이 마주쳤다. "......." "......." 뭐지......? 이 불안한 예감은......... 준수가 자신의 옷자락을 두손으로 꽈악 움켜잡으며 연신 소진과 유천을 번갈아 쳐다봤다. 아직.........유천이 해줬던 그 따뜻한 입맞춤의 열기가 채 사그라들기도 전였다. 날..사랑하지 않아도..상관없어............ 언젠가...떠나가도..상관없어......... 그래도....유천씨...사랑해..... 결국은 유천이 아무의미없이 준수에게 키스를 했다해도...준수에게 그 의미는 남달랐다. 결국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은 박유천을......사랑한다는 결론밖에..내릴 수가 없다. 그런데..지금쯤 한창 주방일을 해야할 소진의 방문. 게다가 윤호가 유천을 지금 보자고 한다니..... 준수으로서는 여간 심장 철렁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준수가 조심스레 두눈을 들어올려 유천을 바라봤다. "..갈..꺼예요...? 제가 먼저...윤호를 만나보겠어요..." "아니." 준수의 말을 단호하게 끊으며 유천이 부정의 뜻을 나타냈다. "내가 가겠어. 안내해." 잠시 준수를 바라봤던 시선을 거둬들이며 유천이 소진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따라와." 소진은 그런 유천이 여전히 맘에 안드는지 뾰루퉁한 행동으로 뒤돌아섰다. "유천씨..!" 뒤에서 준수가 작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지만, 유천은 뒤돌아보지않고 소진을 따라나섰다. 유천..씨...!!! 손을 내밀어 그를 잡으려던 준수의 손길이 순간 멈칫했다. 어째서.....갑자기...윤호가 유천씨를 보자고 하는거야....... 준수가 유천에게 뻗었던 손을 거둬들이며 이내 그의 나가는 뒷모습을 떨리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가슴이........쉴새없이...뛰고있었다. . . . 따뜻한 바깥공기와는 다르게 음지진곳에 있는곳. 숲속에서도 제일 끄트머리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간간히 온순한 산짐승들이 왔다갔다 할만큼 외진곳였다. 그 숲속 구석..낡은 건물주변에는 모든 호위병들이 빈틈없이 둘러싸고있는데..... 그곳이 바로 죄인들을 홀로두는 독방였다. 철컹-----!! "이봐!!! 윤호를 불러줘..할 얘기가 있다고!!!" 창민이 다시한번 철창문을 손으로 뒤흔들며 바로앞에 서있는 보초병에게 애원섞인 목소리로 말을 건냈다. 그러자 이내 창민의 신분을 아는 보초병이 고개를 숙여 예를 표시한다. "하지만..창민님...윤호님이 직접 찾아오실때 까지는 안되는거 아시지 않습니까.." 좋은 평판이 자자한 창민인지라 이런 감옥에 갇히게 된것이 보초병들에겐 상당히 안쓰럽게 비친 모양였다. 목소리를 한껏 낮춰서 말하는것을 보면................ "한번만...한번만 윤호에게 전해줘....꼭 할말이 있다구 말이야!!! 내가 직접 말해야 하는거라고!!!" 창민이 가슴이 타들어가는 심정으로 다시한번 애원했다. "..죄..송..합니다..창민님." 그러나 들려오는건 보초병의 송구스럽다는듯한 말뿐. 빌어먹을!!!!! 창민이 끝내는 철창에서 떨어져나와 구석으로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하아...!!" 갇혀있는 며칠동안 끝없이 터져나온 깊은한숨. 식사같은것은 그래도 다른 죄수들과는 특별나게 다른 대우로 잘 나오는 편이어서 이리도 매일 소리지르고 애원하며 보내도 건강에는 별탈이 없었다. 하지만...................... 오해하고있을 윤호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재중과 아무일이 없었다는걸 어떻게해서든 알았다고 한들..분명 재중을 침대에 끌어들인건 자신이라고 생각하고있을것이 틀림없었다. 절친한 친구의 소유물을....그것도 윤호가 끔찍히 아끼는 사람을..건드린.. 천하의 몹쓸놈이 되어버렸다. 타앙___!!! "젠장할!!" 화를 참지 못한 창민이 감옥바닥을 손바닥으로 세차게 내려치자..그 파장이 음침한 공간을 메아리처럼 울렸다. 이것이..다 누구때문이던가. 창민의 눈동자에 날이 섰다. 그래도..난 널 끝까지..여동생이라고..조금이나마 신뢰를 줬건만...!!! 전장에서 돌아가신 아버님의 유언대로 못된 널 돌봐주려했어..!!! 그래서............그래서............... 니가 윤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혼례까지 성사시켜주려했는데...... 창민의 두눈으로 분노의 빛이 역력히 드러났다. 그런데...니가..나를............!!!!! 머리속으로 윤호에게 파혼얘기를 들었다면 가증스런 얼굴로 훌쩍이던 유리가 떠올랐다. 창민이 자신의 입술을 피가날 정도로 세게 깨물었다. 더이상.........널 잠깐이라도 여동생이라 생각하는 일따위..없을것이다........!!! - 미 열(美 熱) 49편 - 달칵-----. "소진입니다..윤호님. 데려왔습니다." 소진의 머리 너머로 보이는 방안 풍경은 한마디로 윤호의 위치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게 해주는 화려함이 가득했다. 보아하니..집무실인듯 보이는곳이데로 불구하고 황금색 테두리로 모든 물건들이 휘감겨 있어 보는 사람이 눈이 멀 지경였다. "들어오라고..해. 그리고 다른사람들 접근시키지말고." 윤호의 명령에 소진이 고개를 숙이고 나가며 유천이 들어갈 수 있게 몸을 비켜줬다. 쿵-----. "......." "......." 문이 닫히자 곧 둘뿐인 공간에 정적이 맴돌았다. 윤호을보자 순식간에 눈빛을 매섭게 바꾼 유천이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의 주변을 돌아보며 재중이 없는것을 확인한다. "날..보자고 한 이유가 있을텐데?..재중이는 어디있어." 유천의 입에서 나온 재중의 이름에 윤호는 순간 자신의 입술을 단호히..다물었다. 어깨를 떨며 오열하는 여린 모습이 생각나..그만 주먹을 꽈악 틀어쥔다. 그러나..윤호는 애써 당당함을 내보이며 아무렇지 않게 말을건냈다. 앞뒤 부연설명따위..필요 없다는듯이. "...내가....그 아이를..먼저 가졌어." "...!!!!!" ....뭐.........?!!! 아무 망설임없이 내뱉어진 윤호의 말. 그 말에 순간 유천의 눈이 충격을 받은듯 커다랗게 열렸다. "...무..슨......." 그리고 그 놀란 동공은 한동안 움직임을 나타내지 않고있었다. 뻣뻣하게 굳어서 마치 나무토막이라도 된것마냥 움직잊 못하고있는 유천을 향해, 윤호는 숨이 멎을것만큼 꺼내기 힘든말을 다시한번 덤덤하게 꺼내놓는다. "내가 그 아이를.. 범했다고 말했다." "..!!!!!" 무거운 적막감. 그 속에서 윤호는 자신이 재중을 상처준 행동을 유천란 인물앞에서 말하는것이 이렇게까지 힘들다는것을..새삼 깨달았다. 하지만.......자신은 마족의 족장이다. 누구든 우러러보며 존경해마지않는 그런 최우수 부족, 마족의 족장 정윤호였다. 그러므로...어떤 경우에도 자신보다 낮은부족에겐 결코 위태로움을 보이지 않는다. 윤호는 천천히 이어지는 공기의 압박감속에서 서서히..유천의 손이..주먹을 굳세게 틀어쥐는것을 보았다. 그리고................. 퍼억----!!! "이 개새끼야!!!" 유천의 몸이 순간 앞으로 튀어나온다고 생각한 찰나 날렵하게 그의 매운 주먹이 윤호의 왼쪽 얼굴을 치고나갔다. 쿠당탕---. 당연 무방비 상태인 윤호는 뒤로 나가떨어졌고, 곧바로 그위로 유천이 올라와 그의 멱살을 거칠게 잡아챘다. "방금..뭐라고 그랬어. 다시한번 말해봐..이 씨발새끼야... 그..아이를...어떻게해?.....범..해.....?" 유천의 두눈에서 금새라도 더 크게 폭발할껏같은 분노가 이글거렸다. 윤호는 꽤나 아프게 맞았을 얼굴인데도 불구하고 작은 신음성하나 내뱉지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유천을 바라봤다. "니가 인간이야!!!!!" 유천이 윤호을향해 악을 지르며 그의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 하지만, 여전히 윤호는 얼핏 보면 거만한듯 보이는 눈을 깊이 내리깔고.. 아무 잘못없다는것처럼 쉽사리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런 윤호과는 달리 그의 멱살을 손등위로 핏대가 설만큼 꽈악 잡고 흔들어대는 유천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들었다. "니가 조금이라도 인간다운 면모가 있었으면...... 그 여린 아이를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어....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말이야!!!!!" 유천이 터질것같은 가슴을 억누르며 윤호를 잡고있던 멱살을 힘껏 뿌리쳤다. "..하아......" ..미..칠것..같다........ 그리고는 비틀거리며 눈가에 가득고인 눈물을 거칠게 손으로 털어냈다. "어디있어...." 계속해서 쏟아지는 눈물과는 달리 분노한듯 잇새로 내뱉는 말투에는 윤호에대한 살기가 가득 들어있었다. "재중이 어디있냐구!!!!!" "......." 다른이가보면 넘쳐나는 살기에 무서워서 피할정도의 눈빛였다. 하지만, 윤호는 그런 유천을 똑바로 응시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을였다. "옆방에있어....네 마음대로...데려가도 좋아." 윤호가 자신의 입술에 맺힌 핏망울을 손등으로 훔쳐냈다. 그런 윤호의 여유있는 모습을 보며 유천이 시니컬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개새끼들.....너희들은 무조건 니들이 갖고논건 버리는 습성이 있지... 니들보다 낮은 종족들은 무참히 짓밟는 쓰레기보다 못한 부족이야!!!!!" 콰앙-----!! 유천이 피가 베어나올만큼 입술을 깨물며 부셔트릴듯 문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 닫히지도 않고 활짝 열려진 문. 순식간에 깨져 달랑거리는 문고리가 유천이 나간 반동에 흔들거렸다. "........" 유천이 자신에게 대드는 그 순간, 그의 동작이 안보인것은 아니었다. 하지만.....피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누구에게라도 더 많이 맞고싶은 더러운 기분였다. 아직도..........자신의 품속으로 파고들던 그 미약한 온기가 남아있는것같아 ..많이도...괴로웠다. 수정같은 눈물을 똑똑 떨구며 그리도 구슬프게 목놓아 우는것이... 그러다가도 매달리면서 마른 어깨를 파르르 떨어대는 그 모습이..눈앞에서 아른거리기까지했다. 결코..예전에 윤호이라면..이렇지 않았다. 누구를 소유하는것도..집착하는것도 이렇게까지 지독하진 않았다. 수없이 많은 사람을 가지고..또 버리고를 반복해도 이토록 가슴 시리진 않았다. 냉정한 성격과 칼같은 이성을 지니고 있어야하는 자신이 이렇게 그 아이 하나때문에 지도자로서의 판단을 흐리면 아니되었다. 아무것도..아니다...... 그 아이는 그저 스쳐가는 바람과도 같아......... 결코..내게 있어서...어떠한 존재도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돼......... 윤호가 자신의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마음을 짓누르는듯한 통증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그저.........돌아버릴 정도로 혼란스런 머릿속을 무시하며, 단호하게 입술을 다물고 손바닥이 파일정도로 주먹을 틀어쥐고 있을뿐였다. . . . "재중아!!!!!" 콰앙-----!! 과격하게 열리는 문소리에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서 손가락만 꼼지락대던 재중이 놀란듯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재중아!!!" 그리고 다급하게 성큼성큼 들려오는 발걸음소리. ...윤호가..........아니었다.............. 하지만, 그 반가운 목소리는 다름아닌 형였다. "혀....혀엉...?" 재중이 갑작스런 유천의 출연에 놀라며 그를 불렀다. "재중아!!!" "..유천..형...?" 와락-----. 재중이 유천인것을 깨닫고 기뻐하기 전이었다. 유천이 자신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그 아름다운 얼굴을 보이는 재중을 세차게 끌어안은것은. "우리재중이 괜찮지..? 응..? 죽을것같이..아픈거..아니지..? 그렇지...?" "...유천형...." 재중을 꽈악 틀어안은 유천이 그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으며 빠르게 뛰는 심장을 가라앉히려 애쓰고 있었다. "빨리 말해. 형 가슴타서 죽는꼴 보고싶어!" 유천의 걱정가득한 조급한 말에 재중은 그만 또다시 눈시울 뜨거워지는걸 느끼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재중이....괜찮아..형...........괜찮은데............." 괜찮은데.............. 윤호는.....날 보낸데.............. 아프다고..떼써도...보내버린데............... 그래서..이상하게......심장이...아파......... 자꾸만....따끔..거려........... 자신의 가슴에 파고드는 마른 어깨를 연신 쓸어내리며 유천은 재중이 자신의 품에 있다는것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내가....널 어떻게...지켰는데............. 널 갖고싶어하는 많은 사람들 틈에서 널 어떻게 지켜냈는데....... 빌어먹을..!! 다시한번 윤호에게 치미는 분노를 추스리지 못하고 유천이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는 재중의 얼굴을 자신의 손으로 들어올려 바라본다. "..형..." "......." 붉고 생기있던 입술은 어디갔는지, 까칠하고 메마른 입술이 가슴아프게 다가왔다. 그리고 아직도 열이있는듯 뜨거운 양볼이..그가 지금도 상당히 아프다는걸 잘 알려주고 있었다. 유천이 재중의 이마위로 입을 맞추며 그의 얼굴을 슬픈 눈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낸다. "..아무것도 아니야....이런 지옥같은곳...잠깐 꿈꿨다 생각해....." "..형..?" 유천의 말에 재중은 자신의 볼을 감싸고있는 그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불안한듯 입술을 떨고.......... 그런 재중을 다시 자신의 품에 꼬옥 안아 가두며 유천이 눈빛을 빛냈다. "이곳에서..나가서....형이랑 예전처럼 행복하게..다시 그렇게 지내는거야." - 미 열(美 熱) 50편 - "........." "........." 자신의 말에 아무 대답이없는 재중. 유천이 그런 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왠지모르게 아까부터 뛰어대는 심장을 침착하게 다스리려했다. 그리고는 다시 재중에게 물었다. "..왜...대답이..없어....." "........" 유천의 말에 재중은 역시나 아무말도 않는다. 게다가..뭔가 죄를 지은것마냥 고개를 푸욱 숙이고는 유천에게 얼굴조차 보여주지 않는데............. 그 모습에 불안해지는 유천였다. 흔들리는 눈동자로 재중의 얼굴을 다시 들어올리는 유천. "왜그래..재중아....어디..아퍼? 그래서..그래?" 누구보다도 다정하게 물어오는 유천을 느끼며 재중은 잘 떨어지지 않는 말문을 머뭇머뭇 열었다. "....형..." "그래 말해." 겨우 말문을 연듯 보이는 재중에게 유천이 사뭇 걱정스런 표정을 지어냈다. 재중이 유천의 손을 자신의 작은손으로 겹쳐 잡으며 천천히 말을 였다. "..유천형.....나............... .....나.......가고싶지가...않아........." "..!!!!!" 재중의 말에 유천의 눈동자가 부릅 떠졌다. 이 아이가..지금 무슨말을 하는건지............... 자신의 볼을 감싼 유천의 손이 흠칫..놀란것을 느낀 재중였지만, 말을 멈추지 않았다. "..형...나....윤호옆에 있구싶어..... 형은 잘못생각하고 있어......윤호가 나한테 얼마나..잘해주는지......" "입다물어 김재중!!!" 순간 유천이 재중의 떠듬떠듬 이어지는 말문을 날카롭게 자르며 소리쳤다. 그 바람에 재중이 깜짝 놀란듯 어깨를 떨고....... 그모습에 아랑곳하지않고 유천이 재중의 마른손목을 틀어잡았다. "너 지금 니가 무슨 소리하는지 알고나 있는거야?" 그 녀석이 너한테 어떤짓을 했는지도 모르는 바보같은 녀석!!! "우리 마녀족들에게 얼마나 가혹했는지 알고 말하는 거냐구!!!" 아무것도 모르고 윤호곁에 있겠다고 하는 이녀석이 지금 얼마나 바보같아 보이는지 유천은 미칠 지경였다. 아니. 어쩌면 재중의 입에서 더한 말이 나올지도 모르는 불길한 예감에 더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일수도 있다. 자신이..............어떤일을 겪었는지도..모르면서................ 그건 중성인자들이 겪는 일중 제일 수치스런 일이란 말이다. 그녀석은 네 순결을 한순간에 앗아갔어..!!! 화가 잔뜩 난 유천의 목소리에 재중은 입술을 떨었다. 그리고 그에게 잡힌 손목이 조금씩 아파왔지만, 그저 가만히 유천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 있을뿐였다. 하지만.................... ...하지만.....난.................... 재중이 애써 울먹이는 목소리를 숨죽이며 말을꺼냈다. "...윤호가....좋아..........." "재중아!!!" "...재중이는.......윤호가 좋아..형......" 정말 기가막히고 어이없는 일였다 이건. 자신이 소중히 지켜오고 마음속에 담아두던 재중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어째서..!!! 그것도 다른사람도 아닌..윤호를 좋아한다고......... 지금 자신이 말하는 그 좋아한다는 의미가 얼마나 큰것인지..머리로 깨닫기도전에 벌써 본능적으로 윤호를 생각하는 마음을 말로 내뱉고있는 재중였다. "..준수씨가..형에게도 잘해주잖아..... 우리..............우리그냥..여기있으면 안돼 형..?......" "..!!!" .준..수...... 재중의 입에서 갑자기 나온 '준수'이란 이름에 순간 유천은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는듯 갈색 눈동자를 일렁였지만..이내 입술을 깨물며 그의 생각을 멀리 밀쳐두었다. 자신의 말에 적지않게 충격을 받은 유천을 아는지 모르는지..이제는 투정을 부리듯 그렇게 유천의 팔을 잡고 늘어지는 재중. "..혀엉...유천형........ 나는.......재중이는.........." 제발............. 제발 유천이 자신의 뜻데로 하자는 말을..해주길..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렇게...여린 손가락으로 유천의 옷자락을 꼬옥 잡고..놔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내 재중의 그런 투정 조차도 소용없다는듯 유천은 눈빛을 사납게 빛냈다. 그리고는 단호하게 재중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아무리 니가 이런다해도 절대안돼...니 말..못들은걸로 하자. 다시한번 그런 말 꺼내면..형한테 단단히 혼날각오 하는게 좋을꺼야." "유천형..!" 더이상 재중의 아무말도 허용하지 않겠다는듯, 유천이 그의 몸을 번쩍 안아들었다. 그리고................ 문을 박차고나가 윤호의 거처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형!! 유천형!!!" 재중이 유천에게 안긴채로..벗어나려 했지만, 여전히 일어나기 어려울만큼 아픈몸은 바둥거리기에도 힘에 부쳤다. 자신의 가슴을 투닥거리는 재중의 작은 주먹이 느껴졌지만, 유천은 아까 자신이 윤호를 만났던 그의 집무실에 눈길한번 주지않고 그곳을 스쳐 지나갔다. 그들이 빠져나가는걸 알면서도 여전히 집무실에있을 윤호였다. 그래서..였을까..................... 재중의 코끝으로 미미하게 느껴지는 윤호만의 체향은........ 집무실을 막 지나치자 마치 윤호가 있는것처럼 어느 한순간 그의 향기가 났다. 어느새..익숙해진 윤호의..향기가................. "..윤호........." 재중이 울먹이며 내뱉는 작은 이름에 유천은 더욱더 걸음을 빨리해 그 넓은 거처를 단번에 걸어 나갔다. 거처를 빠져나가자 살랑이는 봄바람이 얼굴을 스쳐지나갔다. "윤-호----!!" 그리고 재중은 윤호의 영역에서 완전히 빠져나오는 그 순간 그의 이름을 커다랗게 외쳐불렀다. 하지만................... 한없이 입술을 떨며..울음을 살킬 수 밖에 없었다. 쫒아 나와주지 않으므로............... 아무리 불러도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느껴지지 않으므로........... .................................... .............................. ..........목이..............메여왔다......... . . . 달칵-----. 문을 연 준수의 눈빛이 놀란듯이 커다래졌다가 이내 차분해졌다. 아니. 차분하게 보이려 가슴미어지는 심장을 억누르고..그리..태연한척..하는것인지도 모르겠다. "...유천...씨...." 그리고 자신의 앞에 서있는 유천을 바라봤다. ..잠이든것인지 의식이 없는것인지 유천의 품에 힘없이 안겨있는 작은 사람도.......준수의 서글픈 눈안에 들어왔다. 오늘 하루 유천을 윤호의 거처까지 데려다준 소진의 말에 준수는 넋놓은듯 그렇게 침대에서 종일을 보냈었다. 윤호가.....그들을......보내려 한다는 그 말에............. 그렇게...넋놓고.....앉아있을 따름였다. 모든 기운을.....탕진하것처럼.......머리속이 새까맣게 타버린듯했다. 하지만, 막상 유천이 이렇게 눈앞에 있다니.. ....그가....떠나기전.....얼굴을 볼 수있는 기회가 생겼구나라는 안도감과 그의 품에 안겨있는 재중의 모습에 어찌해야 좋을지..갈피를 잡지 못한다. "......." 아무말없이 조금은 난감한 표정을하고있는 유천을 바라보는 준수이.. 애써....정말...애써 웃어보였다. "드....들어와요.......재중씨가.....많이 아파보여요....." 준수의 말에 유천이 머뭇거리는 발걸음을 이내 떼어내며 준수의 방에 들어섰다. 그러자 준수가 자신의 침대위 이불을 곱게 펴준다. "..눕혀요.." 준수가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며 옆으로 비켜줬다. 자신과..제대로 시선을 맞추지 못하는 준수의 마음을 모르는 유천이 아니었다. 하지만.................. 재중을 데리고 당장 나갈 수가 없었다. 제대로 걷기도 힘들어보여 오늘까진 할 수 없이 이곳에 머무르고 내일 오전일찍 나가야 겠다는것이 재중을위한 유천의 선택였다. 하지만, 한시도 윤호의 거처에 재중을 놔두기 싫은 유천였고, 또 자신이 머무르고있는 낡은 방은 아픈 재중에겐 안좋을것같아..여러번의 고민끝에..내린 결정였다. 준수에게로.........데려온것은.............. ".....미안...." 유천이 재중의 몸위로 이불을 덮어주며 평소의 냉랭한 그 답지않게 미안한 기색을 보였다. "......." 그의 그런 모습이..준수에겐..더 가슴 아프다게 다가온다는것을 왜 모르는지..... "..왜.......미안하다..그래요........ ..괜찮은데............." 정말 괜찮은데.......... 유천씨가...재중씨 사랑하는거 다 알고 시작한 내 마음인데...... 뭐가 미안하다 그래요........... 준수가 고개를들고 환하게 웃으며 유천에게 말을 였다. "..내일......" 하지만, 웃는것과는 달리 목에 가시가 걸린듯..말이 잘 나와주지 않는다. "...내일....떠나는...건가요..?...아침..에?" 이미 자신들이 떠난다는걸 알고있는듯 묻는 준수의 말. 그말에..유천은 가만히 준수를 응시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유천의 대답에 준수는 놀란눈을 떠올렸다가..이내...다시 밑으로 시선을 내리고... "..내일....가는군요........." 준수의 말을 끝으로 짧은 침묵이 겉돌았다. "......." "......" 하지만, 이내 자신의 손가락만 우물쭈물..만지며 굳어버린 나무토막처럼 그렇게 서있던 준수가 다시한번 웃으며 말을 꺼냈다. "..내일...........내일 아침에 떠나려면....많이...힘들텐데..... 가서..쉬세요.....재중이씨는 제가...잘 보고 있을께요." 띄엄띄엄 힘들게 꺼낸 자신의 말투를 들키지 않으려는지 작게 한숨을 몰아쉬며 준수가 빙그레 웃었다. 그런 준수를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재중에게로 잠시 시선을 고정시킨 유천가.. 조용히 발걸음을 돌렸다. "..그럼...부탁할께....." "......." 천천히 몸을 돌려 방에서 빠져나가는 유천의 뒷모습을 준수가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자신을 꼼짝않고 쳐다보는 준수를 유천은 알고있었지만, 뒤한번 돌아보지 않았다. 자신이..뒤돌아 본다면.........틀림없이..울고있는 준수일것 같아서 ..돌아 볼 수 없었다 - 미 열(美 熱) 51편 - 조용한 방. 해는 벌써 뉘엿뉘엿 넘어간지 오래였고, 불조차 밝히지 않은 방안은 그저 어둡기만했다. 재중은 아까부터 잠이든채로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준수가 몸을 움직여 자신이 잠이 잘 오지 않을때 피워두는 향내를 불태웠다. 그러자 이내 은은한 향기가 방안을 맴돌고, 조금더 기다리자 재중의 약간 찡그린 얼굴이 편안하게 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준수의 눈빛이 아득해졌다. 나는.......잡지 못할 사람................ 당신은...벌써..가졌어요............. 내가 기대하지 못할사랑......... 당신은...이미............. 재중을 안고들어오던 유천의 영상이 지워지지 않았다. 가슴속에 영영 아픔으로 남아버릴듯한..그 모습이..사라지지 않았다. 내일..가버린다는 사람..... 언젠가..떠날꺼라면..잡지 않겠다고.....그렇게 다짐해놓고......... ..그렇게.......다짐해..놓고................ 덜컹---. 갑자기 의자에서 벌떡 일어선 준수가 자신의 옷자락을 꼬옥 두손에 움켜 쥐었다. 한번만................... ..한..번....만...............유천씨..!!! 그리고는 단호하게 입술을 깨문 준수가 자신의 방문을 열고 다급하게 뛰어나간다. 쿵-----. "......." 곧 준수가 나가자 둔탁한 문닫히는 소리와함께 잠이 든 재중만이 그 방안에서 낮은 숨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 . . 토독..토독... 밤이 깊어지자 떨어지기 시작했던 빗방울 소리에 유천이 침대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작은 창문을 통해 하늘을 바라본다. 방금전까진..많이도 내렸는데...그새 그칠듯 보인다. 깜깜한 하늘였지만, 별빛을 보니..내일까지 내릴 비는 아닌것 같아..마음을 놓는다. 문득..자신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훌쩍이다가 이내 아프고 피곤한듯 잠들어버린 재중이 생각났다. 그리고.............함께 떠오른 영상................ 숨기려해도..그 눈빛에 아픔을 담고 자신을 바라보던......준수......... "후우..." 유천이 미간을 찌푸리며 낮은 한숨을 깊게 내뱉을 때였다. 달칵----. 순간 들린 문열리는 소리에 창문을 바라보던 몸을 급하게 돌린다. 그러자................ "...!!!!!" "하아...하...." 달려왔는지..가쁜 숨소리를 고르며 자신의 옷자락을 꼬옥 부여잡고있는 사람. 내리는 차가운 비를 맞았는지 황금색 머리결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게다가....하얀 얼굴이..창백할 정도로 질려서는................ "..유..천.....씨......" "......." 자신의 앞에 서있는 준수를 믿지 못하겠다는듯이 유천의 눈동자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준수가 또한번 유천을 부르려고 입술을 여는 순간, 유천은 자신도 모르게 빠른 동작으로 준수를 방안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았다. 쾅-----. 조금 거칠다 싶을 정도로 문을 닫은 유천이 준수의 가는 팔을 낚아채며 매섭게 말을 였다. "미쳤어? 이렇게 얇게 입고....!!!" 유천의 화가난 눈빛. 그 눈빛에 준수는 추워서 떨리는 입술을 가늘게 움직이며 처연한 눈빛을 아래로 떨구웠다. "...보고...싶은..걸....어떻해요........ 내일이면..유천씨...간다는데.....보고싶은걸..어떻해요....." 파르르..떠는 마른어깨가 몹시나 추워보였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유천이 원망스럽다는듯이 내뱉는 말들이 안타까웠다. "..너....바보야...? 나 내일..간다는데...끝까지 왜이래...... 이럴수록 너만 힘들어...알아....?" 준수의 바보스러울 정도로 미련한 마음에 유천은 자신이 오히려 속이 타들어감을 느끼고는 그를 꾸짖었다. 유천의 말에 준수는 금새 눈물을 떨궈낸다. 그리고 끝끝내 자신에게 모질게 대하는 유천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그럼 어떻게 해야돼요...사람 사랑하는거...마음먹은대로 되는거 아니잖아요!! 왜 끝까지 나에게만 모질어요!! 재중씨는 이미 유천씨를 가졌는데!!!" 와락-----! 준수가 울음을 터트리며 유천의 품에 파고들었다. "..흐윽....흑......" "......." 자신의 품에서 오열하는 마른 어깨가 너무나 슬퍼보여 함부로 손을 올릴수가 없었다. 그저..품안으로 더 파고드는걸 내버려 둘..뿐였다. 하얀빛 얇은 옷이 흠뻑 젖어 준수의 마른몸에 달라붙어 그가 지금 얼마나 떨고있는지.. 추위에 새파랗게 질린건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흑...흐..으......." 하지만...무엇보다도 그를 아파 보이게 하는것은...온몸에 내려앉아있는 슬픔였다. "......." 유천의 손이..머뭇머뭇 준수의 어깨위를 감싸려 할때였다. "...안....아..줘요......." "......." 준수가 유천의 가슴에 파묻고있던 얼굴을 들어올리며 흐느꼈다. "...나...........안아줘...요......." "..!!!!!" 준수의 정확한 말뜻을 제대로 이해한 유천의 눈동자가 놀란듯이 커다래졌다. 그런 그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않고 준수가 자신의 젖은 옷을 떨리는 손으로 붙잡아 내리려했다. "..재중씨.......... .....재중씨.....앞으로 유천씨.....매일 볼 수 있잖아요....... ..그런데....나는........나는........." "김준수." "..!!!" 준수가 순간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유천의 목소리에 옷고름을 풀러 내리려던 떨리는 손끝을 멈췄다. "이러지마. 어서 돌아가." "..유천..씨.....흐읏......" 자신에게서 냉정하게 뒤돌아 서버린 유천을 보며 절망에 빠진 준수가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아왔다. "유천씨야 말로 이러지 말아요........ ..어차피...내일...떠나면...다시는 안볼 꺼잖아요...... ...나...유천씨 보고싶어도...다시는 보지 못하잖아요..........." "......." 준수의 목소리를 듣고있는 유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신을 사랑한다 말한 준수이기에..유천또한 그를 완전히 뿌리칠수가 없었다. 사랑하는..마음이 어떤건지...너무나 잘 알고있으니까........ 준수를 정말 냉랭하게 뿌리칠꺼였으면 벌써 문밖으로 그를 밀어냈을 터였다. 자신의 허리를 감은 힘없는 두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등뒤에서 들리는 옅은 숨소리에 유천은 그만....가뿐 숨을 터트린다. "..유천씨......알아요.....? 내가..얼마나....유천씨....사랑하는지..........." 유천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준수의 창백한 볼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처음..봤을때..얼마나..가슴이 떨렸는지...... 내가..많이..사랑하는거.....조금도.....몰라요..유천씨는....." 어찌하면..좋을까........ 너에게.....줄 마음이 없는데........그럼에도 이렇게나 신경이 쓰이는걸... 날 사랑한다는 널......이렇게 아프게 우는 널....어떻해야해... 유천의 등이..촉촉하게 준수의 눈물에 젖어들었다. "...후..회......." 유천이 바들바들 떨리는 준수의 팔을 잡았다. "...후회..할꺼야....." 유천의 말에 준수가 아니라는듯 고개를 도리질치고..... 휘익----. 준수의 대답과 동시에 유천의 입술이 그의 입술을 덮쳤다. "..흐읍...." 유천의 밀려드는 입술에 준수의 가는 허리가 뒤로 꺽여들었다. 그러자 유천의 든든한 두 팔이 준수의 마른 몸을 받쳐안았다. "..흐읏...." 유천에게 입술을 열어주면서도 계속해서 터지는 준수의 흐느낌이 방안가득 울렸다. "..울지마....... ....울지...마라......." 유천이 입술을 떼어내며 준수의 볼에 맺혀있는 눈물을 닦아냈다. 유천의 낮은 목소리에 준수가 머뭇머뭇..고개를 끄덕인다. "......." 준수의...모습이....왜이리......가슴 시리게 비치는지............. ..유천의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유천의 두팔이 준수의 몸을 안아올렸다. 그리고.....발걸음을 침대쪽으로 옮겼다. 준수가 자신의 입술을 꼬옥 깨물며 유천의 목을 감싸안았다. 후회를...왜해요...내가............ 나..다른사람도 아닌 유천씨한테...안기는데....후회를 왜해요....... 내가...후회하는거....하나있다면........ 유천씨를....본거예요........ 보지않았다면...........마주치지 않았다면......... 이렇게 아프진..않았을텐데............. 애초에.....처음부터..만날 인연이 아니었으면............ 가슴 메어지는...아픔...몰랐을텐데.............. 그래도.....유천씨............. 나한테........사랑이 뭔지...알려줘서....감사해요......... 유천씨...사랑 할 수있는 기회를..줘서......... 더..많이...사랑해요............ - 미 열(美 熱) 52편 - "소진이한테..들었습니다....내일 아침에 재중님...유천님하고..떠나신다구요..." 조용한 집무실에 울려퍼지는 환희의 목소리에 윤호는 그저 뒷모습을 보이고있을 뿐였다. "지금...준수의 거처에 있는건가." 그리고 환희에게 넌지시 물어보는 윤호. "예..윤호님." 환희의 우울한 대답에 윤호는 곧 몸을 돌려 애써 편안한 얼굴로 가장하며 말했다. "그래...밤도 깊었는데 그만 물러가도록해." "..예......" 윤호의 말에 환희가 이내 예의 바르게 고개숙여 인사하고..... "......." "......." 하지만, 막상 자신의 말에 대답만 하고 나갈생각을 하지않는 환희를 윤호가 다시 뒤돌아본다. 윤호의 시선이 다시 자신에게 오자 환희가 계속 고개를 숙인채로 머뭇머뭇 거리며 말을꺼냈다. "...윤호님......." "......." "...재중님을 정말로......" 환희의 입에서 무슨말이 나올줄 안다는듯이 윤호가 재빨리 손을 들어올려 그의 말을 제지했다. "그만." "..윤..호님...." "나가거라 환희야." "......." 윤호의 조용하지만, 단호한 말에 환희가 곧 다시 말을 꺼내려다가 입을 다물고 밖으로 나갔다. 쿵-----. "......." 닫혀버린 문과 함께 찾아드는 적막감. 윤호의 시선이 비를 쏟아내는 하늘을 바라봤다. 내일....아침에는...그칠비야....... 다행이군. 순간 윤호의 입에 자조섞인 미소가 번졌다. 이미...보내기로..했으면서......뭘 그리...걱정한단 말인가. 냉정하게......끊어버렸으면서........... 하루종일..집무실에서 한발걸음도 떼지않은 윤호였다. 유천이 재중을 데려가는 소리를 들었는데도 불구하고..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이지 않으려고 최대한의 노력을 동원했다는것이 맞는 표현이겠지..... 커다랗게 울먹이는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땐..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날카로운 송곳으로 후벼파듯이...그렇게....아파와서........ 가슴을 부여잡았는데..... 족장으로서의 자존심과 의무심.......그리고 이미 보내기로 결정한 자신의 의지는 윤호가 재중에게로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힘겹게 짓눌렀다. "...후...우......." 그래....... 눈에 보이지 않으면...어찌 되겠지............ 빌어먹을 얼굴과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면......어차피...잊혀질 아이야........ 애써.....단정지었다. 하지만........한동안 자신은 마녀족 사냥이란것을...전처럼 잔혹하게..... 할 수 없을꺼란걸..너무나 잘 알고 있는 윤호였다. . . . 내리는 빗줄기도 멈춰진지 이미 한참였고.............. 새벽은 지나 아침으로 치닫고있는 시각였다. 생전처음..자신이 사랑하는 연인에게 자신의 의지대로 입술을 열어주고... 늘 볼품없다 생각했던 마른몸을 부끄럼없이 내보였다. 뜨거운 손길이 닿았던 곳곳마다..그의 입술이 자신을 더 잘 가질 수 있도록 몸을 틀었고, 촉촉한 입술이 닿는곳엔 수줍음도 뒤로하고 열심히 그를 받아들였다. 처음이자..마지막으로 자신을 줄 수있는 사람였기에................ 초야의 고통을 뒤로하고...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도 매달리고..또 매달렸다... "......." 아침이........ ..오려는건가............... 눈썹끝에 매달려있는 눈물 한방울을..뚝하니..떨어트리며 말간 눈동자를 들어올려 작은 창으로 비치는 하늘을 바라본다. 어렴풋이 햇님이 얼굴을 보이려 준비를 하고있는데............. "......." 자신을 뒤에서 끌어안고있는 그가 깨지않도록 움직임 하나에도 조심스레 몸을 돌려 얼굴한번 더 봐두려한다... 밤이 깊어가면.....달님과 별님이 사라지지 않길 바라고..... 별님과 달님이 사라진 어슴프레한 새벽이 찾아오면..햇님이 오지 않길 바랬는데..... 준수의 간절한 소망을 깨고, 안타까운 시간은 가고..또 가고...... 결국은 그를 보내야하는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유천..씨...." 자신의 몸 곳곳에 남아있는 그의 흔적이 못내 벌써부터 그리움으로 남기 시작했다. 그가 듣지 못할만큼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러본것은... 아마도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이때, 불러보고 싶어서 일것이다. 다시는 그의 앞에서 불러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을테니..... ..혼자........울면서 불러야 할지도 모르는 이름일테니........... 아름다운 갈색머리를 손끝으로 조심스레 뒤로 넘기니 그의 단아한 이마와 더불어 고운 눈자위가 드러났다. 그래......... ..감사해야지.......... 어젯밤만은 이 눈동자가 나를 바라봤고....이 입술이 내 몸에 닿았다는걸.... 언젠가..소중히 간직한 나를 주려했던 사람이...당신인걸..... ..나는....감사해야지.............. 준수가 아래에서 밀려드는 아픔을 누르고 살풋이 몸을 일으켜 유천의 입술위로 닿을듯말듯...입을 맞췄다. "......." 그리고는.....아침햇살이 더 밝아지기 시작하자....두눈을 꼬옥 감아버린다. 마치....조금있으면 깨어날 유천의 모습을 보지 않겠다는듯이................... 따가운 햇살이 정확하게 그 비좁은 창문을 넘어 유천의 눈위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간을 찡그리며 곧 눈을 떠올리는 유천가...눈동자에 촛점을 맞추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 그러다가 어느 한순간 자신의 바로 앞에서 등을 보이며 잠들어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작은 등을 돌리고 있는 사람에게서 밤새 처음느껴봤던 열정이란것이... 새록새록 기억나기 시작한다. 유천이 아직도 잠에 취해있는 머리를 두어번 털며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베개에 얼굴을 푸욱 파묻고있어..준수의 아름다운 옆모습만이 살풋이 비칠 뿐였다. 분명...초야를 자신에게 주었을 준수의 모습이..그를 바라보고 있자 다시한번 머릿속으로 아로 새겨지고 있었다. 유수처럼 쭈욱 뻗은 가는 팔과 다리로 자신을 놓치지 않겠다는듯이... 그렇게 말간 눈에 눈물을 담고 필사적으로 매달리던 준수의 모습이 생생했다. 초야의 고통에.....아픈 신음성을 내뱉기도 힘들텐데..... 자꾸만 입술에 담아내는..그 말은............ - 유천씨....사랑해요........... - 간헐적으로 계속해서 내뱉던 말였다. 유천이 준수의 눈가를 가리고있는 머리카락을 옅은 손길로 거둬냈다. 그러자...긴속눈썹을 곱게 드리운 그의 꼬옥 감은 눈자위가..드러난다. ..바보같이........... 맹목적인 마음. 그리고 사랑. 끝까지 해만 바라보는 해바라기처럼 한곳만 바라볼 녀석였다. 준수가..자신의 초야를 유천에게 내주었듯이......... 유천또한 자신의 초야를 내준것은...늘 생각했던 재중이 아닌 준수가 되어버렸다. 그래도....자신에게있어..준수를 안았다하여 후회라는것이 느껴지지 않는 마음은... 또...무엇인지.............. 다만...자신이 떠난 후에도 계속해서 아파할지도 모르는 이 착한 녀석이..마음에 걸릴뿐였다. "......." 잠시 아무말없이 준수를 바라보던 유천이 몸을 일으켜 침대밑으로 떨어져있는 옷들을 주워 입기 시작했다. 어찌됐건..자신은 재중을 데리고 이곳을 떠나야한다............. 자신들이 제일 잘 어울릴곳은 마녀족들이 사는 곳이니까... 언제 깨어날지....아직도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준수였다. 옷을 다입은 유천이 준수의 곁으로 다가섰다. 그리고는 우유빛같이 곱기만한 그의 허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많이도..아플까봐..은근히 걱정되는..모순된 마음... 싫다고....냉정한 말만 던졌으면서도.....걱정되는...마음... 이대로 자신이 나갈때까지 준수가 깨어나지 않았으면하는 유천였다. 차라리......자신이 가는 모습을 안보는 편이 나을것이기에... "......." 유천이 머뭇거리다가 이내 준수의 말끔한 이마위로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착한녀석.....행복했으면..좋겠다." 잠든 그는 듣지못할 말을 유천이 나즈막히 내뱉으며 몸을 돌렸다. "....." 터벅_터벅__ 발걸음 소리. "......." 끼익_. 낡은 문이 열리는 소리. 그리고............. 쿵-----. 최대한 작게 닫은 문닫히는 소리. ".........." 그 소리와 함께 준수의 감겨있던 눈이 조용히..떠올려졌다. 혼자남은 적막감. 싸늘한 방안. "......." 눈물이 흘렀지만, 이내 흐느끼진 않았다. 유천씨..... 또 한번 불러보고 싶었지만, 차마 입에 담을수가 없었다. 그의 이름을 부르려 입을열면....꾸욱 참고있던 흐느낌이 터져나올까봐..... 차마....그의 이름을 입에 담을수가 없다... "...흐....읏......" 하지만, 이내 유천이 잠에서 깨어났을때부터 누르고있던 흐느낌은 아무리 입술을 굳게 깨물어도 터져나오고.... 준수는 그만 자신의 얼굴을 베개에 묻어버렸다. "..흐으으......." 차라리........ 차라리....따뜻한 말도 없이...그냥가지............ 다정한 입맞춤없이...그냥...가지 그랬어요..유천씨............. 유천이 해줬던 이마위에 입맞춤이..그새 그립고... 끝에 나즈막히 속삭였던...유천의 속삭임이..이내 다시 듣고싶어..준수는 오열했다. 유천이 떠나는 뒷모습을 보기싫어 끝끝내 잠이든척 눈을 뜨지 않은 자신.... 그것은..... 여지껏 준수가 살아오면서 제일 용기있게.. 눈물을 참아내며 해낸 최고의 연기였다. - 미 열(美 熱) 53편 - 달칵-----. 문을 열자마자 향기로운 향내가 코끝으로 몰려왔다. "......." 유천의 시선이 향내를 뿜어내고 있는듯 보이는 작은단지쪽으로 머물렀다가 이내 침대위에서 아직도 자고있는 재중에게로 향한다. 그리고는 조금은 다급한 걸음으로 재중에게 다가가 그를 살며시 흔들어 깨운다. "..재중아.....일어나." 자신의 귓가를 간지럽히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 재중이 움찔..손가락을 까닥였다. 환청처럼 자신의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 - 일어나..나랑같이..정원에 나가려면... - ..윤호.....인가.............. - 재중님 빨리 일어나세요!! 아침드셔야죠!!! - ....환희......목소리..같기도해............... 밤새 준수가 피워놨던 기분좋은 향내는 재중을 예쁜 꿈속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지금 그 꿈과 현실의 사이에서 함께 공존하는 정신은 아직도..유천의 목소리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김재중." "..!!!!!" 쉽사리 일어나지 않는 재중의 이름을 유천이 끝내는 조금 큰소리로 외쳐불렀다. 그러자..퍼뜩 정신을 차린듯 고개를 돌리는 재중. 그런 재중의 모습에 유천이 그를 일으켜 앉혔다. 그리고는 그의 눈자위와 머리를 쓰다듬고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춘다. "일어..났니?" "..혀..엉....." 재중은 마치 방금전까지만해도 생생하게 들렸던 윤호의 목소리를 찾듯 입으로는 유천을 부르며, 여기저기 손을뻗어 자신의 앞을 더듬어본다. 그 모습에 작은 한숨을 내쉰 유천이 재중의 옷을 잘 추스려입혔다. "몸은..많이 괜찮아 진거지..? 그럼 당장 여기서 나가자." "......." 유천의 말에 금새 재중의 표정이 사색이 됐다. 정말...나갈꺼야....형...? 재중이는.....재중이는 이곳에..있고싶은데........ 자신의 팔을 이끄는 유천의 손길을 느끼며 재중이 침대위에서 내려가지 않으려고 몸을 뒤로 내뺐다. "유천형....혀엉.." 그리고는 유천의 말을 잘들었던 그와는 다르게 또다시 투정을 부리기 시작한다. 투정이라 하기엔 우울함이 가득깃듯....무언가 아주 다급한 말... "..유천형...난..가고싶지 않아....... 윤호곁에 있고싶어...귀여운 환희와 함께 있고싶어...." 마치 동생처럼 밝고 귀여웠던 환희를 떠올리며 재중이 유천의 손안에 잡혀있는 자신의 팔을 빼내려했다. "왜이래 너. 이제 형말도 듣지 않는거야!" 재중의 완강한 거부에 유천이 화가난듯..눈쌀을 찌푸렸다. 섭섭함이..더한 마음.............. 예전에 재중은 이렇지 않았다. 무엇이든 유천만이 먼저였고, 그의 말에 무조건적였다. 모두다....정윤호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생각하자 갑자기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혀엉...그냥.......그냥........" 재중이 울먹임을 참으려는듯 입술을 떨며 말을 였다. "....윤호랑..재중이랑....그리고 형이랑...준수씨랑....같이 살면 안돼..? 응?" 착하디 착한 준수도 이미 벌써 재중은 좋아졌는지..빼놓지 않는 재중였다. 하지만...무엇보다도.............. 마음가득 차있는 사람은 윤호가 우선이겠지만........... 지금은 단호한 유천을 어떻게든 설득시키려 애쓰는 재중. 그런 재중을 바라보던 유천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형이 말했지? 또한번 그런말하면...형한테 혼난다고." "유..유천형....." 유천의 낮은 목소리에 재중이 여린 어깨를 흠칫..떨며 입술을 꼬옥 다물었다. "어서 일어나라." 유천이 재중의 발을 침대위에서 끌어내렸다. 그리고는 신발을 신겨주려 몸을 낮췄다. 그러자 재중이 금새 자신의 발을 다시 침대위로 올리며 몸을 웅크렸다. "...나..............나..아파...형......... ..걷지..못해......그러니까............" "......." 유천은 재중의 모습에 할말을 잃었다. 걷지 못한다라................. 거짓말조차 못하던 아이가 자신을 속이려 하고있었다. 재중은 자신의 두 무릎을 가는 두팔로 끌어당겨 안았다. 싫어......형............... 왜 안된다고 하는거야.............. 윤호옆에 있으면 왜 안된다고 하는거야............ 모두 같이 살면...왜 안된다고..하는거야............... 모두 잊은채 좋은 꿈만꾸고 일어난 아침엔 몸이 거의 정상적으로 돌아와 아픈곳이 없었다. 하지만, 재중은 지금 유천에게 거짓을 말하며 어떻게든 가지 않으려 떼를쓰고있는 것이다. 그런 재중을 유천이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만, 자신의 두팔로 번쩍 안아들었다. "..형?!!!" 아주 가볍게 들려버린 몸. "아프면..형이 안고가겠어." 유천의 단호한 말에 재중이 금새 고운 미간을 일그리며 눈물을 삼켰다. 자신의 옷자락을 꼬옥 두손으로 붙든 재중에게 유천이 나즈막히 말을 건냈다. "알고나..있어? 정윤호는 너 싫대. 싫다고 말했다고." "........" 유천의 말에 재중이 금새 눈물 한방울을 떨궜다. "..아...니야.......윤호는..........윤호는............" "널 데려가라 말한것도 정윤호였어." "......." 울먹이는 재중의 말을 냉랭하게 끊으며 유천이 가슴아픈 말을 던졌다. "네가..갈때..정윤호 그새끼가 널 한번이라도 부르는지 어디볼까? 그럴까?" "........" 유천의 말에 재중은 더이상 아무말도 못하고 유천의 옷자락만 잡은 손을 바들바들 떨고있었다. ...윤호는.....재중이가....싫은게..아니야......... ..재중이....많이 예뻐해준거.......다 안단말야........... .....재중이 간다고하면......꼭 불러줄껀데........꼬옥.......... 유천의 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재중이 자신의 입술을 꾸욱 다물었다. 그것은 재중이 갖고있는....처음부터 변한적없이 그대로 남아있는 윤호에대한 믿음였다. 유천의 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재중의 몸은 마치 아이를 안은듯 여리고 가볍기만해서 그가 걷는것에 아무런 지장도 주지 않았다. 유천이 마족들중 귀족들이 머무는 그 넓디넓은 궁을 빠져나가기위해 정원을지나 호숫가를 건너갈때도 여러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향했다. 말끔하고 단아한 외모를 지닌 남자가 여리여리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사람을 가뿐히 안고가는 모습은 누구봐도 눈에 띄는 모습였다. 하지만, 유천은 아랑곳하지않고 발걸음만 빨리 할 뿐였다. 아까부터 자신의 품에 얼굴을 묻은 재중은 아무말도 꺼내지 않고...... 차라리 유천에겐 그것이 다행였다. 유천이 드디어 초록빛 숲을 지나 윤호와 준수가 있는 거처에서 빠져나가려 커다란 황금빛 아치형 문을 지나려 할때였다. 철캉-----. 갑자기 수십개의 날카로운 창들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으며 마치 근위대처럼 보이는 병사들이 매섭게 눈을 빛냈다. "......." 그들의 모습에 유천은 금새 긴장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고...병사중 한명이 유천을 보며 딱딱한 말투로 말을 건냈다. "윤호님..허락없이는 벗어날 수 없는 영역이다." "..뭐?!" 그의말에 유천의 얼굴위로 당황의 빛이 서리고........ 윤호란 이름에 재중은 숙였던 고개를 번쩍 들어올렸다. 윤호의...명령없이는..나갈 수 없는곳이라니...!!! 생각지 못했던 일에 유천의 낯빛이 점점..굳어가고............. 병사들은 다시 돌아가지 않으면 죽일듯한 기세로 그들을 노려봤다. 그런와중...갑자기 들린 낮은 목소리. "창을 거둬라." 중압감이 느껴지는 그 목소리에 병사들과 유천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유.....윤호님...!!!"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아본 병사들이 다급하게 몸을 숙였다. 윤......호............?!!! 윤호의 목소리에 재중도 놀라긴 마찬가지. 순간..윤호의 시선이 잠시나마 자신에게 온것을 재중은 몸으로 느낄수가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던 그 시선은 오래가지..않고.............. 윤호...... 윤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중은 남모를 희망으로 입가에..살풋이 미소를 담았다. 분명...자신을 데리러 온것이 틀림없다고.....그리 믿고있었다. 유천은 재중을 바라보던 윤호의 시선이 일렁이는것을 놓치지않고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자신의 목소리가 난 방향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재중. 그 아이의 모습에 윤호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병사들에게 말을 였다. 그리 쳐다보지마라......................... "..길을 비켜라." 마음..약해지는 모습....그 누구에게로 보이고 싶지 않아!!! "이들이 지나갈수 있도록." "..!!!!!" 윤호의 말에 유천의 얼굴에는 안도한 표정이 새겨지고.......... 재중은 그만....놀란 입술을 다물지 못한다. 윤....호.......... "예!!!!!" 곧 윤호의 명령에 양쪽으로 길을 비키는 병사들. 윤호가..재중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으려 얼굴을 돌리며 얼음보다 차가운 목소리로 유천에게 말을 건냈다. "어서 나가라." "......." 유천이 곧 재중을 추스려 안고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윤...호............. 유천의 어깨 너머로 얼굴을 내민 재중이 윤호의 목소리가 들린곳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윤호의..가슴이.....또 한번 철렁 내려앉고.............. 왜..그런 얼굴로...바라봐...............보지...마....... "윤..호.......윤......" 재중의 볼위로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아니야...... 윤호는...분명..부를꺼야........ 재중이....부를...꺼야.................. "흐윽...흑....." 데려갈꺼야............ "..윤...ㅎ....ㅗ...흐으으......." 재중이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유천의 어깨자락을 꼬옥 잡은 두손이..안타깝게 떨리고 있었다. 분명히......윤호는.......재중이를................ "..윤..호.....!!!!" 어린아이처럼 커다랗게..불러본다. 하지만..아무 대답이 없다. 아무 대답이..없어................. 윤호는 그만 그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몸을 다급하게 돌려 신하들과 자신의 거처로 발걸음을 향하고..... "..흐아아아.....흐으윽......." 목놓아 우는 재중의 흐느낌이..파고를 더해가며 숲을 울렸다. 그렇게..울지말고 부르지도마. 너 따위가 나한테 뭐라고....족장인 이 정윤호가 이렇게 마음이 아파야돼.... 용납 할 수가 없어. 그러니.......부르지마라. 윤호가 자신의 두주먹을 움켜쥐며 걸음을 빨리했다. 그때................... "재중님-----!!!" 저 멀리서 뛰어오는 작은 몸. 환희였다. "재중님!!!!!!" 다갈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뛰어오는 그 모습이 무척이나 다급해 보였다. "하아..하아...." 열심히 뛴 그가 윤호를 지나쳐 병사들이 지키는 문을 지나려했다. 철캉-----. 하지만, 아까처럼 병사들이 그를 막아서고......환희는 뛰어오면서 계속해서 흘렸던 눈물사이로 보이는 재중과 유천의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지켜봤다. "재..중님......흑...." 그리고는 그가 떠날때 주려던 자신이 간밤에 챙겨두었던 먹을음식과 막 딴 과일이 든 커다란 종이봉투를 꽈악 작은 손으로 틀어쥐었다. "흐으윽...흑........"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우두커니서서 울고있는 환희를 바라보며 윤호가 저만치 떨어진곳에서 손을 내밀었다. "환희야......" 아직은 어린 환희의 어린눈물을 보는 윤호가 그를 불렀다. 윤호의 모습에 환희가 눈을 들어올려 재중이 나간 길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끝끝내 걸음을 그에게로 옮겼다. "...흐윽....재중니이임...." 환희가 얼마나 재중을 따랐는지 너무 잘 아는 윤호였다. 하지만, 훌쩍이는 환희보다...자신이 더 가슴아픈 이유는 뭐란 말인가. 이제...모든게 저 아이가 나타나기 전으로.....정상적으로 돌아갔건만.......... 윤호가 환희의 어깨위로 손을 올리며 자신의 거처쪽으로 걸음을 다시 옮겼다. 마치...........모든것이....원래대로..돌아온듯..하였다. 그렇게......보였다. - 미 열(美 熱) 54편 - "........." 항상 햇살은 같은 곳을 투과해서 언제나처럼 방안을 그리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마족의 귀족들은 여전히 부족들의 일에 무던히도 관심을 쓰려 애쓰고..... 계급 낮은 부족들은 아무런 반항없이 자신이 맡은일에 꾸준히 노력하며 농사에 일관하고 있었다. 시간은 그렇게 잘도 흘러가는것처럼 보였으며........ 모든게 여전히 조용하기만했다. 평화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만큼 차분한 생활... 가끔씩 즐거움을위해 향락을 즐기는 그런 부유한 생활. 늘 변함없이 다른 모든 이들이 자신을 우러러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것도... 마찬가지로 흔들림이 없는데................ 정말로 아침이 찾아오면 점심이 오고...점심때가 지나면..저녁때가 오고....... 시간은 꾸준히..흘러가는것 같았다. 그런데.................... 아직은..........삼일뿐이 지나지.....않았다. 단....삼일뿐. "......." 전보다 더 많이 이런저런 부족일에 관심을 가지며 다른 대신들의 일까지 자신이 처리하기 시작한지도 이틀째였다. 자신의 책상앞에 펼쳐져있는 종이위에 가득 쓰여있는 깨알같은 글씨들을 보는 윤호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해야 할 일은 스스로 산더미처럼 쌓아놓고도..전처럼 차분히 앉아서 그것들을 들여다 보는것이 지금은 왜 이렇게 힘든것인지... "..후우......" 낮은 한숨을 내뿜으며 윤호가 고개를 숙였다. 뭐야........정윤호................ 아직...삼일뿐이 지나지 않았어...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그 우는 모습때문에...삼일밤 잠을 제대로 자지못한 그의 눈가엔 피곤이란 녀석이 가득..들어있었다. 새삼..그 아이의 중독성에 다시한번 고개를 내젓는다. 이러지..말자. 여지껏 살아오며 누구도 자신을 이렇게 극심하게 뒤흔든적은 없었는데... "..훗...." 윤호의 입가로 짧은 자조섞인 웃음이 터져나갔다. "......." 하지만, 이내 곧 긴 한숨또한 내뱉어지는 입술을 자신의 손바닥으로 틀어막으며 흘러내리는 붉은 머리를 쓸어넘긴다. 그리고..다시 자신의 다른 한손에 잡혀있는 펜을 힘주어 세워잡았다. 애써 등을 곧추세우고 이내 눈앞에 있는 아무 서류나 붙들고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 단호한 빛이 서렸다. 다시 일에 몰두하려고 신경을 날카롭게 세운순간.. 똑똑-----. "윤호님..저 환희입니다." 문밖으로 들리는 환희의 목소리에 윤호가 숙이고있던 고개를 들어올렸다. 어린녀석이 재중이 떠났다고 훌쩍이던 모습이 어지간히도 가슴시려 보였었다. "들어오너라." 찰칵----. 윤호의 짧은 응답에 빼꼼히 문이 열린다. 전과 다름없는 모습인데도 어째 우울해 보이는 얼굴낯에 웃음이란것이 그새 없어진듯 두눈만 동그랗다. "무슨 일이야." 그런 환희에게 애써 따뜻한 목소리를 건내며 윤호가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이내 환희가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말을했다. "..저기....원로회의장에서...모두들..기다리고 계십니다...." "..!!!!!" 환희의 말에 윤호가 순간 깜짝놀란 두눈을 치켜떴다. 맙소사........... 하지만, 이내 놀란 표정을 차분히 가라앉히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중요한 원로회의 조차도 깜빡 잊고있다니......... 마치 다른것에 미친듯이 정신이 나가있는것처럼..자신은 지금 제정신이 아닌듯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언제나 잊어본적없는 원로회의를 생각도 못한채 이렇게 다른 잡무에 신경을 쓸 수 있단 말인가. 빠르게 자신의 윗옷을 들고서는 걸음을 옮기는 윤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환희가, 그가 자신의 앞을 지나자 옆으로 비켜서며 나즈막히 말을 건냈다. "윤호님..." "........" 그 작은 목소리에 윤호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 "........" 윤호의 시선에 환희가 고개를 푸욱 숙이며 중얼거리듯...그러나 쓸쓸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재중님....보내시고나서...많이....허전해 보이세요....." "......." 분명..재중을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말투였다. 그 말에 윤호는 커다랗게 떠올렸던 눈빛을 낮게 내리깔며 이내..뒤돌아섰다. 그리고....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틀어쥔다. "........" 자신의 뒷모습을 바라보고있을 환희의 시선이 느껴지는듯 했지만, 결코 다시 뒤돌아 보지않는 윤호였다. 이내..윤호가 자신의 짧은 침묵을 깨며 낮고도 흔들림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환희야......" "......." 잘 떨어지지 않는 입을 애써 움직인다. 단호한 목소리. 스스로도 질릴듯한 냉랭한 자신의 의지. "..보낸것이 아니라....내가 그아이를 버린것이다." "...!!!" 윤호의 떨림을 가장한 차가운 말에 환희의 얼굴위로 놀란표정이 새겨졌지만, 이내 윤호는 빠른걸음으로 자신의 집무실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윤호..님...... 썰렁한 집무실에 혼자남은 환희의 눈가로 그렁그렁 눈물방울이 매달렸다. . . . 커다란 창을 통해 솔솔 불어들어오는 작은 바람이 무척이나 기분좋았다. 가만히 눈을 감자 긴 속눈썹을 간지르는듯한 기분에 가볍게 웃음을 띄어보기도 한다. 그리고..감은 두눈 사이로 환영처럼 보이는 모습에..이내 창틀에 살풋이 기대어도본다. 진한 갈색눈빛과.....그와 똑같은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 웃을때 접히는 눈꼬리가..참 상냥했는데............ 물론 자신에겐 보인적없는 웃음였지만....... 뚜렷이 떠오르는 그 얼굴에 준수가 감은 눈을 다시금 떠 올렸다. "......." 그리고 몇번이나 뜨거워지는 눈시울때문에 두눈을 깜빡여댄다. 조금은 서툰듯..그래도 자신의 하얀살결에 조심히 입맞추던 그 입술의 감촉이 생각나 더욱더 그리워진다. 보고..싶어............. 분홍빛 입술사이로 아무도 듣지못할만큼 작게 속삭이는 준수의 입술이 애처롭게 떨려왔다. 다시는 못볼꺼라 생각하니까......... 자꾸만.....보고싶어요...유천씨......... 유천씨한테..안기는걸로 감사해하자고..몇번이나 다짐했는데...... 유천씨...향기가..남아서......... 너무..그리워서......보고싶은 욕심이 생겨나요........ 이젠......... 기다려서도..안되는데......... 준수가 자신의 눈가를 슬쩍 훔쳐내며 입술을 꾸욱 다물었다. 유천이 떠나고 바로 삼일동안은 항상 해오며 보람을 느끼던 감옥에서의 식사분배도 가지않고있는 준수이였다. 그가 갇혀있던 자리를 바라보면..자신이 처음 유천을 봤을때의 그 느낌이 생생히도 전해질것같아..두려웠기 때문이다. 언젠가 사랑하는 이한테 주기로한 초야를 지낸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았다... 자신의 가슴에 유천이 남긴 붉은 꽃잎자욱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그저............. 더 그리울 뿐였다...... - 미 열(美 熱) 55편 - "후우......" 그저 하염없이 걷는것에 연속였다. 자신들이 살던 자주빛숲까지 얼만큼이 남았는지도 가늠 할 수가 없었다. 다만..그 아름다운 숲이 기적적으로 모습을 보여주길 바랄뿐였다. "하아.." 뒤에서 자신의 손을 잡고 힘겨운 걸음을 옮기는 재중의 이마위에도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삼일동안 잠깐식 돌바위에 앉아서 쉬고, 밤에는 나무기둥에 기대어 잠을 청한것이 전부였다. 힘에 부쳐하는 재중을 업고가기도하고 안고서 걸음을 옮기기도하며 삼일내리 걸어온 길은 그들에겐 최악였다. 그래도 이내 불평한마디 하지않고 고른숨을 내쉬려 노력하는 재중이 안쓰러워 유천이 잠시 멈춰서서 그의 이마위에 솟은 땀을 자신의 손으로 훔쳐내준다. "힘..들지..?" "......." 유천의 걱정가득한 목소리에 이내 고개를 도리도리 살며시 저어대는 재중. 그리고는..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다본다. "......." 뒤를 돌아보는 재중의 모습에 유천이 순간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걸어오면서도 계속 뒤를 돌아다보는 재중의 모습에..그저 아무말도 할 수가 없다. 모르겠어....? 정윤호은..널 갖고놀다 버린거란걸..... 그는..널 쫒아오지 않아. 이내 뒤돌아보고서는 아무 기척도 느껴지지 않거나 발걸음 소리도 들리지 않으면 눈에 띄게 실망하는 모습의 재중... 누구를 기다리고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지 너무나 잘 알고있기에 버럭..화가 치밀었지만,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자신을 거의 강제로 데리고 나오다시피한 유천을 원망하는 말한마디 하지않는 재중였기에.......... 유천또한 그곳에서 떠나온지 삼일내내, 윤호를 기다리는 재중을 애써 모른척했다. "형이...업고 갈까..?" "..아..아니야..형...." 유천이 재중의 손을 이끌어 당기자, 화들짝 놀란듯이 보이는 재중이 괜찮다는듯 고개를 흔들었다. 제대로 먹은것없이 걸어온 길이라 유천도 충분히 힘들다는것을 잘 알고있는 재중였다. 그런그에게 또 업혀가다니...말도 안됐다. "형 생각 안해도돼. 괜찮으니까 업혀." 마음착한 동생을 잘 아는지라 유천이 이내 재중의 앞으로 몸을 숙일때였다. 바사삭.. 고요한 숲길에 나뭇잎이 밟히는 소리에 유천의 눈빛이 순간 날카롭게 빛났다. 그리고............. 이내 여기저기 숲속에서 걸어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에 재중을 업어주려 굽혔던 몸을 재빨리 일으킨다. 타박_타박_ 날렵한 발걸음 소리를 내며 유천과 재중의 앞까지 바싹 다가온 사람들. 갑자기 나타난 그들의 등장에 유천은 사뭇 긴장하며 그들의 수를 세기 시작했다. "..형..?" 재중도 낯선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를 알아챘는지 유천의 등뒤로 바짝 붙어섰다. 그리고는 그의 등에 얼굴을 묻으며 겁먹은듯 입술을 꼬옥 깨문다. "..뭐야..?" 유천이 낮은 목소리로 그들을 쏘아보며 위협적으로 말을 건냈다. 그들의 수는 총 열댓명으로 보였고, 모두들 유천과 재중을 경계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허리춤에는 모두 칼과 화살촉등을 착용하고 있어 섣불리 움직이기 두려운 상황. 만약 산도적이라도 된다면 자신이 이길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기에 유천은 저도 모르게 금새 솟는 식은땀을 애써 무시하려 노력했다. 잔뜩 겁을 먹은듯 보이는 재중을 안정시키는것이 우선였기 때문이다. 유천이 재중을 자신의 뒤로 끌어당겨 보호하며, 자신들을 포위하고있는 이들을 날카롭게 노려보고 한발걸음 앞으로 나서려 할때였다. "경계할 필요 없는것같군 그래." 유천과 재중을 둥그렇게 포위하고있는 이들의 사이를 헤치며 누군가가 걸어나왔다. "......." 그가 나서자 그들을 감싸고 있던 무리들이 길을 열어준다. "아아..미안." 앞으로 나선 그는 유천을 바라보며 가벼운 미소를 띄었다. "넌..누구지..?" 유천이 자신들을 향해 웃는 그에게 조금 긴장감을 늦추며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을 건냈다. "난..전진이라고해. 이곳에사는 마녀족들의 대표이기도하지. 너희도..보아하니...마녀족인것 같은데...아닌가?" "..!!!!!" 전진의 말에 유천의 눈동자가 놀란듯이 커다래졌다. 같은...마녀족...?!! 유천의 놀란 모습에 전진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서렸다. 그리고 그들의 앞으로 더 바싹 다가간다. "역시..맞군. 눈색깔과 머리카락빛이 같은걸보니.." 전진이 유천의 외모를 살펴보고는 마녀족들만이 가지고있는 특징을 살폈다. 하지만, 이내 유천의 의심에 가득찬 시선에 피식..웃어버린다. "그렇게 쳐다보지마. 난 마녀족과 마족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라... 우리들이 가지고있는 특징처럼 머리카락과 동공의 색이 같지않으니까.. 특징은 물려받지 못했지만, 마녀족은 분명하지." 전진의 설명에 그제서야 유천이 작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전진의 뒤로 서있는 다른 마녀족들을 바라봤다. 이제보니..그들도 모두 자신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있는 마녀족들이 분명해 보인다. 천만..다행이군. 그들을 하나하나 뜯어본 유천이 이내 자신의 등뒤에 꼬옥 붙어 숨어있다시피한 재중의 손을 끌어당겨 옆에세웠다. "재중아..우리 부족을 만났어." 그리고는 따뜻한 목소리로 재중의 두려움을 없애려한다. "......." 재중이 유천의 말에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러자.......... 순간 재중을 바라보는 전진의 눈동자가 놀란듯이 커다래졌다. 이....아이........!!! 재중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전진의 시선에 유천이 순간 눈쌀을 찌푸렸다. 그런 유천의 눈길을 느꼈는지 이내 다시 차분하게 긴장한 표정을 감추고는 활짝 웃어보이는 전진. 유천에게 안심하라는듯 편안한 웃음을보인 그가 나즈막하게 말을 건낸다. "우리..마을로 가자." . . . 그들을 만난곳에서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곳였다. 숲길을 가로질러가자 신기루처럼 나타난 자주빛숲에 유천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리...마을....." 그리고는 잠꼬대처럼 중얼거렸다. 그 중얼거림에 놀란 표정에 재중이 그의 옷깃을 꽈악 붙들고, 전진도 의아한듯 유천을 바라본다. "습격당했던...우리 마을터야. 바로 앞에두고도 찾았다니!!" "뭐라구..형? 진..진짜야..?" 아름다운 자주빛 나무들을 바라보는 유천의 눈동자가 믿지 못하겠다는듯이 넋이 나갔다. 그리고 유천의 말에 재중은 삼일만에 보이는 예쁜 웃음을 잠시 지어냈다. "그럼 우리가 들어오기전엔 너희가 이 마을에 있었단 소리군." 전진이 그런 유천의 반응에 이해가 간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부연 설명을 덧붙인다. "우리가 떠돌다가 들어왔을때 이 마을은 이미 마족들에게 습격당한 후였지. 한번 습격한곳은 원채 다시 습격하지 않기에 우리가 터를 잡은거야."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마치 예전 습격당하기전에 유천네들이 살았던것처럼 분주하게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는것이 보였다. 꼬마아이들이 부산스럽게 뛰어놀며 돌아다니는 모습도 보였다. 여자들은 우물가에서 수다를 떨고있었고, 남자들은 모여서 얘기를 하거나 일을하고 있었다. "새로운 손님들이 왔어!!!" 하지만, 이내 그 평화로운 모습은 순간 전진이 내지른 소리에 깨어지고만다. 전진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들쪽으로 향하고... 웅성거린던 꼬마녀석들도 다들 유천과 재중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앞으로 우리 마을에서 같이 살꺼야." 전진의 말에 모두 재중과 유천의 곁으로 모여든다. 그들의 갑작스런 다가섬에 유천이 사뭇 당황한 표정을 지어낸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재중은 자신을 바라보는듯한 수많은 시선을 느끼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듯 둘레둘레 고개를 저어댄다. "히야~~~ 예..뻐...." 작은 꼬마아이가 순간 재중의 앞으로 다가와 활짝 웃으며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우아....정말..예뻐....예쁜 사람이..왔어..." 그러자 다른 꼬마녀석들도 한둘씩 모여들어 재중의 옷자락과 손가락을 잡아보기 시작한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전진이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하...우리 꼬마들이 너처럼 아름다운 중성인자는 처음봐서 흥분했나보다." 전진의 말을 잘 이해못한 재중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 재중의 허리를 감싸며 유천이 낮은 목소리로 전진에게 말을 건냈다. "정말..같이 지내도 상관 없는건가?" 유천의 말에 전진이 그의 어깨위로 친근하게 팔을 두르며 밉지않은 미소로 대답한다. "그럼..당연하지...같은 부족인데. 집이 여러채 남으니까..괜찮아." "......." 유천이 재중을 바라보다가 다시 마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찌보면 굉장한 행운였다. 예전에..그 모습 그대로는 아니더라도 우선은 살았었던 마을로 돌아오게 되었으니.. 그리고 다른 마녀족들도 많이 만나게 되었으니까..... 이제..재중과 다시 새로운 터를 잡으면 되겠다는 생각에 유천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형..우리 이제...여기서 살아..?" 재중이 자신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아이들의 손을 꼬옥 맞잡으며 유천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래....그래야지." "..으응...." 유천이 재중의 손을 이끌며 전진이 이끄는 곳으로 발걸음을 따라 옮겼다. 유천의 손길에 터벅터벅 이내 걸음을 옮기던 재중이 다시한번 고개를 뒤로 돌린다. 혹시나....익숙한 윤호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하는 어리석은 기대....... 하지만 금새 재중의 얼굴이 우울해진다. 나중에...윤호가..재중이를 못찾으면..어떻하지.......? ..못찾으면...........재중이.. 못찾으면........... 입술을 꼬옥 깨문 재중이 고개를 푸욱 숙이고는 유천의 손길에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그들에게 소개해줄 작은집으로 유천을 안내하는 전진의 시선위로 재중의 모습이 비춰졌다. 순간 환하게 웃고있던 전진의 눈이 무언가 확신에찬듯 가늘어진다. 분명.....그 아이가..맞아..... 정윤호의 방에서 데려나와 여자에게로 넘겨줬던 그 아이. 정신없이 잠들어있던 아름다운 얼굴이 생생했던 아이. 자신이 윤호의 약혼녀 유리라는 여자에게 넘겼던 그 아이는 분명..지금 유천의 뒤를 따라오는 눈앞에 재중이 맞았다. - 미 열(美 熱) 56편 - 또각_또각__ 규칙적으로 들리는 구두굽소리. 고급스럽게 나무로 다듬어져있는 구두밑창이 경쾌한 소리를내며 방안 가득히 울렸다. 하지만, 그런 발걸음 소리와는 다르게 초조한듯 자신의 손톱을 깨작깨작 깨무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경박스러 보이기도한다. "왜이렇게..안오는거야 윤호는...." 이내 짜증섞인 한마디를 내뱉으며 유리가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어깨가 드러난 하늘거리는 하얀색 윗옷을 추스리며 유리가 윤호의 서재책상위로 걸터앉을때였다. 달칵-----. 문이 열리며 여지껏 유리가 기다렸던 윤호가 모습을 나타냈다. "윤호." 그의 등장에 유리가 금새 몸을 일으키며 그에게로 다가간다. "......." 서재에있는 유리를 바라본 윤호가 순간 놀란눈을 치켜떴지만, 이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지나 의자에 앉았다. 편안하게 앉은듯 보이는 그가 금새 다른 서류를 집어드는 모습에 유리는 자신의 입술을 꼬옥 깨물었다. 그리고는 그의 옆으로 바싹 다가가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저기..윤호......." 재중이란 아이때문에 전에없던 모습을 보인 자신의 이미지를 복구시키는게 절실하다 느끼는 그녀였다. 유리의 작은 목소리에 이내 윤호가 어쩔수 없다는듯이 시선을 돌리고... 그제서야 자신의 얼굴을 바라봐주는 윤호을향해 살포시 눈을 내리깔며 유리가 망설이듯 말을 꺼내놓는다. "..그동안.....그 마녀족 아이때문에..심기가 불편했다는것..다 알고있어요...." 유리가 은근슬쩍 재중의 말을 흘리며 눈꺼풀을 깜빡였다. 그리고는 윤호의 손에 조심스레 자신의 손을 얹어놓는다. "이미..윤호의 소유이면서 다른이와..놀아나는 모습이..얼마나 괘씸해 보였을지도.. 짐작하고 있고요..........." 마치 재중의 천박한 행동에 화가난다는듯 눈쌀을 살며시 찡그리며 유리가 윤호을향해 말을 던졌다. "..하지만....윤호...그런아이는......" "그만." 그때였다. 윤호가 유리의 손길을 냉랭히 피하며 그녀의 말을 끊어버린것은. "윤..호..?" 유리가 윤호의 날카로운 말투에 사뭇 긴장하며 그의 옆에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눈길조차 주지않는 윤호의 눈치를 살피며 이내 촉촉한 눈물을 담아낸다. "그렇게..외면하지 마시고...제 말 좀 들어주세요..." 애처롭게 윤호의 옷자락을 잡으며 다시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유리가 부탁하는 어조로 간절한듯 말을 꺼낸다. "..물론............ ..물론 저희 오라버니가 잘못을 하기는 했지만, 그리 계속 비좁은 감옥에 가둬두실 껀가요...?" "......." 유리의 말에 윤호의 시선이 드디어 그녀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유리가 마치 윤호에게 우는 모습을 안보이겠다는듯이 고개를 새초롬히 돌리고는 눈물을 찍어냈다. "저한테는.....하나뿐이 없는 오라버니예요.......... 감옥안에있는 오라버니 생각에 잠을..잘수가..없어요.........." 유리는 하얗게 분을 칠해 창백해보이는 입술을 살짜기 떨며 윤호를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휴우...." 그래..........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어............ 창민를....잊고있었다... 빌어먹을. 둘이 함께있는 모습을 봤을때 자신은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창민의 말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않고 그를 독방으로 내몰았으니....... 게다가 그는 오랫동안 자신을 지켜봐온 친구이자, 또 어려울때 도움을 주던 보좌관 역할을 훌륭하게 해오지 않았던가... "일어나..유리. 윤호가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자신의 앞에서 작게 어깨를 움츠리고있는 유리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윤호...." 이러나저러나 유리에겐 하나뿐이 없는 오빠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어떤 잘못을 했건..그에게 작은 변명의 말이라도 할 기회를 줘야했음이 옳았건만..... 그런 판단력 마저도 재중과 관계된 일이라하여 쉽게 이성을 잃고 말았던 윤호였다.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윤호의 품에 유리가..머뭇거리다가 이내 안겨들었다. 그리고는 훌쩍거림을 토해낸다. "..흑...." 윤호가 자신의 품에 파고든 유리를 살짝 떨어트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냈다. "..창민을 만나보겠어. 그러니 걱정말고 처소에가서 쉬도록해." 유리가 윤호의 말에 정말 다행이라는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윤호.......오빠가..걱정이 되서..견딜수가 없었어요... 그래서..윤호가 바쁜걸 알면서도....." 유리가 윤호에게 작게 속삭이듯 말을 건내며 활짝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곧 윤호을향해 다시한번 예쁘게 웃어보이며 문밖으로 나서려고 발걸음을 옮길때였다. "하지만.." 그녀를 붙잡는 윤호의 목소리. 윤호의 말에 유리가 기다렸다는듯이 금새 나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는 뒤를 돌아본다. "......."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윤호가 낮게 읊조렸다. "여전히 난..너와 혼례할 생각이 없어. 명심해." "..!!!!!" 마치 유리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듯 단호한 목소리와 흔들림없는 눈동자. 그의 말에 순간 유리가 충격을 먹은듯 두눈을 커다랗게 치켜떴다. 하지만..이내..부들부들 떨리는 손끝을 애써 치마뒤로 감추며 어색하게 웃어보인다. "..윤호의..말.......무슨말인지.....잘...알아요........ 그러니까........그러니까......괜찮아요....." 유리가 곧 고개를 숙이며 황급히 방안에서 빠져나갔다. 쿵-----. 다급하게 나가버리는 유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윤호가 자신의 뒤에있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왜이러는거냐....정윤호.............. 자신을...이해할 수가 없었다. 유리의 모습위로 겹치는..그 아이라니......... "풋.." 윤호의 입술위로 자조적인 웃음이 터져나왔다. 미쳤어............. ..미쳐버렸어.............. 주먹을 꽈악 틀어쥔..윤호가 두눈을 꼬옥 감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하지만.............. 눈을 감으면 안보일줄 알았던 환영이............ 당연하다는듯..어둠속에서도....생생히.........살아나고 있었다. 마치 손을 뻗으면..앞에있을듯 그렇게도 또렷하게..모습을 드러낸다. - 윤호... - 환청처럼 들리는 작은 미성이 귓가를 맴도는것 같아..돌아버릴 지경였다. "나타....나지마........." 윤호가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며 분노한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무엇에 이렇게 화가나는것인지............. 이제는..볼 수 없게 떠나보냈는데도 눈앞에 밟히는 그 아이에게.. 화가나는것인지............. 아니... 아니었다. 하루에도 몇번이나 치솟는 분노는 자신을 향해 예쁘게 웃음짓던 그 아이에게 향한것이 아니었다. 그것은...여린 아이를 상처주고 버리듯이 내친..자신의대한 분노였다. 다른 모든것에 지독히도 냉랭했던..자신에게 내려진 가혹한 벌처럼.......... 재중을 상처준것만이 가슴 시리게 아프고..또 아파오는...자신였다... . . . "젠장." 오목조목한 입술에서 작은 욕설이 터져나왔다. 윤호의 방을 나서던 유리가 분하다는듯이 입술을 앙 다문다. 그 아이가..눈에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다니......... 말도 안됐다. 애초부터..그 아이가 이곳에 발을 들여놓지만 않았어도 자신은 벌써 윤호를 낭군으로 맞아들여 행복한 매일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유리의 눈동자위로... 오로지 재중에게로만 향하는 비뚤어진 원망이 가득 서렸다. 너따위만..없었어도............... 두눈을 매섭게 치켜뜬 유리가 곧 발걸음을 자신의 거처로 옮겼다. - 미 열(美 熱) 57편 - 축축하게 진초록색 이끼가 잔뜩 낀 계단을 내려서는 발길이 조심스럽다. 밖에 배치되있던 병사들의 예의바른 인사에 살며시 웃어주고는, 옷자락을 두손으로 거둬내며 들어서야 할 만큼 공기자체가 눅눅한 곳였다. 준수가 조금은 두렵다는듯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계단을 다 내려설때였다. "준수아!!"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에 준수의 시선이 곧 말소리가 들린곳으로 향한다. "창민아!" 그리고는 재빨리 창민이 갖혀있는 감옥쪽으로 다가섰다. "창민....." 정말 오랜만에 보는듯한 창민의 모습은 그전보다 좀더 마른듯했다. 아무리 병사들이 좋은 대우를 해준다고 하여도 감옥은 감옥였다. 준수가 철창 너머로 창민의 손을 붙들며 주위를 둘러봤다. 이곳은 감옥중에서도 무기징역을 당하는 사람들만이 갇히게 되는 독방였다. 그래서 식사분배때도 윤호의 단호한 명령에 준수는 결코 이곳엔 들어올 수 없었다. 일반감옥보다 훨씬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에 준수가 눈쌀을 살풋이 찡그렸다. 창민이 갇혔다는 소리를 전해들은것이 바로 오늘 오전. 유천이 떠났다는 슬픔때문에 주변 경황을 돌아볼 상황이 없었던 준수에게는 정말 깜짝 놀랄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창민을 믿고 신뢰하던 윤호가..그를 가뒀다니....... 아마 아침에 소진에게서 얼핏들은 말이 없었다면 준수는 창민이 갇혀있다는것을 언제 알았을지 모를만큼......... 요즘 준수는 잠시도 자신을 놔주지 않는 유천생각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준수이..너...무슨일 있어? 수척해진것..같은데......." 자신의 처지도 잊은채 그새 더 초췌해진 준수의 안색에 창민이 먼저 걱정의 말을 꺼낸다. 그런 창민에게 아니라는듯 고개를 저어보이는 준수가 애써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곧 촉촉하게 젖은 눈망울로 그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이게...도대체 무슨일이야..창민야.......... 윤호가......윤호가....너를 가두다니........." 준수의 말에 창민이 긴 한숨을 토해내며 억울하다는듯 입술을 깨물었다. "오해하고있어 윤호가. 그 아이를 건드린건..내가 아닌데.....오해하고 있다고." 창민이 주먹을 꽈악 틀어쥐며 진지한 눈빛으로 준수를 바라봤다. "무슨..소리야..그게....." 창민의 알 수 없는 말에 준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후우...." 창민의 입에서 다시한번 답답함을 참지 못하는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돌겠어." 철컹----. 창민이 자신의 머리를 쓸어넘기며 화가 난다는듯이 철창을 힘껏 잡아당겼다. 그리고는 준수을향해 다급하게 말을 꺼냈다. "윤호를 불러다줘. 한번만 만나러 오라그래. 꼭 할말이......" "들어볼까." 창민이 막..말을 끝마치기도전에 들려온 목소리. 그 목소리에 준수와 창민의 시선이 한꺼번에 감옥 입구쪽으로 향했다. "윤..호야...." 갑작스런 윤호의 등장에 감옥안에 서있던 보초병들이 고개를 숙이고... 이어서...물을 끼얹은듯 엄숙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두눈만 깜빡이며 놀란듯 자신을 바라보는 창민과 준수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며, 윤호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냈다. "어떻게 설명할껀지...들어볼까...심창민." 전과같은 분노는 없지만, 여전히 창민에대한 냉랭함은 풀지않은 윤호의 말투. 가까이 다가온 윤호를 바라보는 창민이 차분하게 표정을 가라앉히며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넌 내 친구이기전에...족장이야." 창민이 마른입술을 혀끝으로 축이며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족장의 소유를 함부로 탐하면..그건 사형을 당해도 당연한 일였지." "..그래서?" 창민의 말에 윤호가 살며시 내리깐 눈꺼풀 사이로 그를 바라봤다. 그런 그들의 대화를 준수가 초조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윤호의 차가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않고 창민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였다. "내가 감히 족장의 소유를 탐했을까..? 난 너의 충실한 보좌관이야. 너에대한 경외심이 밑바탕에 깔려있지 않았다면..결코 네 곁에서 너에게 수많은 도움을 줄 수 없었어." "......." 자신을 믿길 바라는 창민의 말에 윤호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짧은 침묵후 창민의 맑은 눈동자를보며 윤호가 말을 꺼낸다. "이미......" 윤호가 갑자기 떨리듯이 저려오는 손끝을 감추려 주먹을 틀어쥐었다. 이말을...꺼내는것 조차도..힘이든다.................. "..이미...니가....그 아이를 가진것이 아니란건...확인했어......" 우는 모습이..떠올라.......... "아주..비참한..방법으로말야." 눈에 선해서..죽을 지경이란 말이다. 윤호가 계속해서 흔들리는 시선을 다른곳으로 돌렸다. "......." 그러나 이내 흔들리는 시선을 차분히 가라앉히고는 다시 창민을 쏘아본다. "하지만..그 아이를 가지려고 시도했던것은..명백히 내눈으로 봤는데도.. 더 변명할 말이 있어?" 날카로운 윤호의 말에 창민이 긴 심호흡을 반복했다. 이 말은 꼭..꺼내야 하는건데.....왜이리도..마음에 걸리는지.... 아니... 더이상..유리는..내 동생이 아니지 않은가. 창민이 철창을 부여잡은 손에 힘을 실으며 윤호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리고는 내뱉듯이 말을 던진다. "유리짓이야." "........." 창민의 말에 준수의 시선도..그리고 윤호의 눈동자도..무슨소린지 모르겠다는듯 의아해졌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창민이 더 정확하게 말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유리..그 아이가 벌여놓은 일에 휘말렸다고. 그 아이가 준 과일주를 받아먹고 정신을 잃었어. 그 사이엔..어떤일이 있었는지 생각나지 않아. 눈을 떠보니 옆자리에 재중이 있었어..." 창민이 입술을 꾸욱..다물었다. 그리고 마지막 말을 강조한다. "믿어줘..정말이니까." 하지만, 윤호의 머릿속은 금새 혼란스러움에 사로잡힌다. 유리는 그 눈에 슬픔을 가득담고는 자신에게 창민을 풀어달라 눈물로 호소를 하였는데... 그와 상반되게 유리를 지목하는 창민가라니.............. 그러나..창민의 눈빛은 분명 진실됨이 묻어있었다. "윤호야...어떻게 된거야......" 준수가 그들의 대화를 듣고는..무슨일인지 조금은 이해한듯 그를 바라봤다. "......." 준수의 물음에도 아무말없이 냉정한 눈빛만으로 창민을 응시하던 윤호가 이내 입을 열었다. "내가..확실하게 확인하겠어. 그동안..넌 방에서 자숙하도록." 그럼..창민이가....우선은 감옥안에서 나가도..되는거야..? 윤호의 말에 준수가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창민도 그의 말에 어느정도 확신이 생긴듯 더이상 아무말도 꺼내지 않았다. "......." 윤호가 곧 몸을 돌려 빠져나가자 준수도 창민을 향해 살짝 웃어보이고는 그를 따랐다. 막..윤호가 계단을 오르려는 순간. 그의 걸음이 멈춰진다. 갑자기 걸음을 멈춘 윤호를 준수와 창민이 의아한듯 바라봤다. "......." 창민에게 뒷모습을 보인채 윤호가 낮게 말을 꺼냈다. "미안하다 심창민. 어찌됐건 그땐 니 말도 들어보지않고 부당한 판단을 내렸어." "윤호아..." 윤호의 말에 창민이 그의 이름을 작게 불렀다. 그러나, 이내 차가워진 목소리로 윤호가 그의 말을 자른다. "하지만, 만약 니가 거짓말 하는것이라면..난 널 정말로 용서하지않아." "......." 윤호가 마지막 말을 내뱉고는 재빨리 감옥안에서 벗어나기위해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를 따라 올라서는 준수가 잠시 창민을 향해 걱정말라는듯 가벼운 미소를 보이고는 윤호를 따라나섰다. "......." 그들이 나가는 모습을 끝까지 바라보는 창민의 입가로 피식..웃음이 걸렸다. 우선은..감옥을 나갈수있게 되서 다시 자신의 편안한 방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그 동안에 긴장이 모두 풀리는듯했다. 그리고....................... 윤호가 자신을 오인했다는것이 밝혀진다해도.... 순간의 판단으로 자신을 감옥까지 보낸 윤호를 원망하지 않기로 다짐하는 창민이었다. 이미.........윤호의 눈빛에서................ 냉랭하던 마족의 족장이기전에 사랑이란 열정속에 푸욱 빠져버린 한 남자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사랑에 눈이 멀어 자신을 오해한것이 분명하리라. 적어도................. 창민이 보기에 윤호는 그러했다. - 미 열(美 熱) 58편 - 터벅_터벅__ 감옥에서 빠져나와 푸른 숲길을 걷는 윤호와 준수 사이에는 오랜만에 본듯한 그들이지만, 아무런 말없이 침묵만이 연속이다. 오로지 발밑으로 바삭거리며 밟히는 나뭇잎들의 소리만이 전부였다. 그동안 안본사이 준수의 얼굴이 많이 마른듯 그새 수척해져 보였지만, 쉽게 말을 꺼낼수 없는 그 무엇때문에 윤호또한 시선을 아래로하며 부지런히 발걸음만 옮길뿐였다. 하지만, 그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않고 일에만 몰두한 윤호의 안색도 피곤에 절어보이긴 마찬가지. 그의 뒤를 천천히 따르던 준수가....끝내는 먼저 입을연다. "왜...재중씨와..유천씨를..내몬건지....이제..알것같아....." 아까 윤호와 창민의 대화로 조금은 어떤일인지 눈치를 챈 준수가 말을 꺼내자, 윤호가 그런 그를 바라본다. 자신을 바라보는 윤호의 시선을 느꼈지만, 준수는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유천씨....떠나는날....너한테..당장가서 애원하고 싶었어....." "....." 준수의 뜻밖에 말에 순간 윤호의 걸음이 멈춰진다. 그러자 윤호의 앞에 준수도 멈춰섰다. 그제서야 예쁜 회색빛의 심연을 들어올리며 준수가 윤호를 똑바로 바라봤다. "..유천씨...내보내지 말라고....왜 그를 내보내는건지..모르겠지만....... 제발...계속 내곁에 있게해달라고........." 준수의 한마디 한마디에 윤호의 눈동자가 점점 놀란듯이 커다래진다. "...그렇게....해달라고.....애원하고 싶었어....." 윤호의 입술이 작은경련을 일으키며 떨렸다. "너..지금..무슨말 하는거야....김준수." 그리고는 준수가 한 말을 잘 모르겠다는듯이 윤호가 되물어왔다. 그런 윤호를 바라보던 준수가 자신의 입술을 꽈악 깨물며 단호하게 눈빛을 빛냈다. "유천씨...다시 찾고싶어.....곁에 두고싶어........" "김준수!" 준수의 말에 윤호가 그의 어깨를 잡으며 못믿겠다는듯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놀란 윤호를 충분히 잘 알지만, 준수는 끝내 하고싶었던 말을 터트리듯...한꺼번에 쏟아내기 시작했다. "왜..? 찾으면 안되는거야? 그런거야? 응?" "준수이..너 지금 니가 하는 말을 몰라? 그들은..마녀족이야." 마족의 족장으로써 윤호가 언제나 자신의 생각밑에 깔고있는 신분에 대한 언급. 그 말에..준수의 눈동자가 화가난듯 반짝거린다. "어째서 계급차이를 들먹이는거야....단지 보고싶을뿐인데....." 기다리면..안된다고..생각해도..자꾸 그립기만..한데......... "찾으면 안되겠지..마음먹으면서도..못보면..내가 시들어 버릴것처럼..아픈데..... 어째서..그런 쓸데없는 말을 들먹이는거야..!!!" 너무나..욕심이..나버리는데........... "준수아." 준수의 두 눈동자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에 윤호가 미간을 일그렸다. 그런 윤호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준수가 애원하듯 중얼거렸다. "너라면..쉽게 다시 그들을 찾아낼 수 있잖아...그렇잖아...... 다시..찾아줘.....유천씨............." 준수이...입술을 깨물며 눈물 한방울을 떨궈냈다. "..보고싶어........" 혼잣말을 하듯..입술에서만..겨우 맴도는 말에 준수는 흐르는 눈물을 막아내지 않는다. "...보고싶어......보고싶어...유천씨........." "준수야..." 처음보는듯한 생소한 준수의 모습에 윤호는 그저 놀랄뿐였다. 아니. 어쩌면..마음한구석이 너무나 시려오는건지도............. 자신또한..예쁘게 웃으며 수줍게 말을 건내고..여린 몸으로 부드럽게 안겨오는 그아이가 눈앞에서 아른거렸으니............. 그립지 않다고..보고싶지 않다고...... 진실된 마음을..차마 아니라는 말로 내뱉을 수 없지 않은가. 자신은 마족의 족장였으며 그들은 자신이 경멸해 마지않는 마녀족였다. 윤호는 콱 막혀버린 목구멍으로 마른침을 삼켜내며..힘겹게 말을 꺼내놓는다. "준수야..내가 이미 내보냈고 다시 마녀족으로 돌아갔을 그들이야." 윤호의 말에 준수가 흐느끼며 아니라는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는 윤호의 품에 안기며 절규하듯 울음을 터트렸다. "아직도 모르겠어!!!......내가 그를 사랑한다는걸......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만큼....내가 유천씨를 사랑한다는걸...!!!" "..!!!!!" "..흐으윽...흑......" 준수의 입에서 터져나온 말에 윤호는 마치 단단한 얼음장처럼 굳어버린 얼굴로 그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뭐라고............? 방금 뭐라고 했어..김준수...... 사랑..이라고.................? 그게...뭔데............. 도대체 그게 뭔데................. 니가 말하는 보고싶고..곁에두고싶고......한없이 그리운게...사랑이야...? 널 그렇게 오열하게 만드는게 사랑이란거야...? '사랑'이란 짧은 단어가 윤호의 머릿속에서 맴도는듯 그렇게...메아리치고 있었다. 내가....그 아이를 생각하는것은.................... 나만 바라봤으면하는 욕심은............ 끝없는 소유욕은............... 미칠것처럼 갖고싶은 욕망은................ 나만 한없이...지켜보고싶은 아름다움은.................... 보내고나서.....느껴지는 터져버릴것같은 허전함은.......... 그..모든것은.................... 어떤걸로..정의를 내려야 하는거냐.................. '사랑'...이라는 그 한마디로....? 자신도 모르게..난생처음 뜨거워지는 심장의 떨림을 감추며, 윤호가 울고있는 준수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차분히 가라앉힐수가 없었다. 통제불능. '사랑'이라......불러야..옳은것인가........... ..이.......마음을..................... 한번도 겪어보지않아..전혀 예상해본적 없는 그 한마디로? 고개를 거칠게 가로저으며 윤호가 자신의 입술을 단호하게 다물었다. 그게 무엇인지.........자신은......모른다.....몰라. 아니. 모른다고...치부하고 싶은건지도........ . . . "어때? 조금 좁긴 하지만, 괜찮지?" 따뜻한 차한잔대신 톡쏘는 술한잔을 들이밀며 전진이 빙그레 웃어보였다. 그런 그에게 이젠 완전히 긴장을 풀어버린 유천이 희미하게 따라 웃는다. "고맙다. 그리고 재중이와 내가 살기엔..그리 좁은것도 아니야." 그리고는 진심인듯 그가 내민 술잔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모두들..잠이든 시간.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있는 재중을 겨우 재우고나서 전진의 집으로 방문을한 유천. 고맙다는 말은 꼭 해야할것 같아서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전진을 찾은것이다. 다행히도 그는 자지않고 있었지만. 전진이 유천의 무뚝뚝한 인삿말에 그의 앞자리 의자에 앉으며 가벼이 술잔을 들어보였다. "재중이라고 했던가? 네 동생은 벌써 잠이든 모양이군." 전진의 말에 유천이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 그런 유천을 바라보며 전진이 머뭇거리다 이내 말을꺼냈다. "그런데.....네 동생은..어쩔셈이지..?" "무슨...?" 재중의 얘기가 나오자 금새 민감하게 반응하는 유천의 표정에 전진이 빙그레 웃어보인다. "그렇게 경계하지마. 난 다만 걱정이 되서 말하려는것뿐이야." "......" 전진의 편안한 웃음에 유천이 이내 굳어있던 표정을 다시 풀며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러자 전진이 곧 말을 잇는다. "..저 아이...아직도 눈을 뜨지 않았어. 중성인자라면..벌써 자신의 상대자를 찾아서 눈을떠야함이 정상인데... 아직까지..미성인 상태라니........저러다가 수명이 줄어드는것 아니야?" "......." 전진의 말에 유천이 자기도 모르게 술잔을 잡은 손에 힘을 줬다. 마녀족 중에서도 태어나기 힘들다는 중성인자들. 때를 맞춰 제대로된 혼기를 놓치면 수명이 줄어드는것이 특징였다. 즉, 시한부 인생이 되어버리는것이다. 그걸 모르는 유천이 아니었다. 비록 윤호가 그를 강제로 안았다하나..그건 절대적으로 욕망이었지 사랑이 아니었다. 따뜻하게 감싸 안아줄............. 그런...부드러움만이 그 아이의 눈을 뜨게 해줄텐데............ 자신은..과연..그렇게 해줄 수 있을지............의문였다. 저렇게 윤호만 찾아대는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을 깨닫게 해줄 그런 사람이 정말 자신이 될 수있는건지..... 가만히 생각을 하는듯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유천에게 전진이 덤덤한 말투로 말을꺼냈다. "저렇게 불안정한 상태로 놔두면..결코 좋지않아. 눈은 나중에 뜨더라도..먼저 안정된 분위기에서 편안하게 초야를 치루게하는것이 좋을꺼다." 전진의 상냥한 한마디 한마디에 유천은 더욱더 인상을 일그렸다. 이 말을 해야하는건가............. 벌써 초야는 정윤호이란 마족의 족장과 치뤘다고.............. 빌어먹을. 유천이..자신의 입술을 깨물고 어렵사리 전진을향해 말을 꺼내려 입을 열때였다. "저 아이....마족들 사이에선...정윤호의 애첩이란 소문이 자자하던 아이더군." "..!!!!!" 전진의 갑작스러운 말. 그 말에 유천의 눈동자가 놀란듯이 커다래졌다. "어...어떻게...." "알았냐고?" 유천의 더듬거리는 말을 덥썩 자르며 전진이 빙그레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유천의 빈 술잔에 술을 따라주며 눈빛을 빛냈다. "언젠가 알게될 일이니 말하겠지만, 여기 이 마을에 모여있는 마녀족들은 모두 정윤호에대해 반감을 가지고있는 사람들이야. 다른 마녀족들은 이미 그의 밑으로 흡수해 들어가 정윤호 아래서 편안한 삶을 살고있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의 생각은 달라. 모두 정윤호의 병사들에게 가족이나 형제들을 잃은 사람들만 모여있어. 나도 그중 하나고." 전진의 입에서 쏟아지는 말들을 유천은 숨죽이며 듣고있는다. 진지한 유천의 표정에 전진도 어느새 웃고있던 얼굴을 뒤로하고 단호한 눈빛을했다. "여기있는 남자들 몇명은 정윤호의 암살을 도모하고있어. 한참..그가 머무는 거처를 조사할 틈을 노리는데..그의 약혼녀란 여자가 나를 그저 날렵한 산도둑인줄로만 알았는지...나에게 먼저 교섭을 해오더군. 네동생에게 극심한 질투를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야......쿡." 전진이 얘기를 하던 도중 유리의 심술궂은 얼굴이 떠올랐는지 짧은 실소를 터트렸다. 하지만, 이내 다시 차분해진 얼굴. "그 덕분에 난 네동생도 먼저 본적이 있고, 또 윤호의 애첩이란 사실을 알게됐어. 그리고 정윤호의 방안구조와 그 근방을 자세히 살필 수 있었지." "..!!!!!" 정..윤호의..암살........?!!! 계속해서 놀라운 말들만하는 전진을 바라보는 유천는, 숨쉬는것 마저도 잊을만큼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전진은 이내 다시 편안하게 웃음을 띄우며 의자뒤로 몸을 젖혔다. "그 말은..나중에 내가 더 자세히 하도록할께......... ..무슨말을 하려다가...여기까지 왔더라..?" 그리고는 뒷통수를 긁적이며 여유있는 몸짓으로 술잔을 기울였다. 술한잔을 다시한번 들이킨 전진이 이내 생각이 났다는듯이 유천에게로 가까이 얼굴을 갔져갔다. "..결국..니 동생은 아직 정윤호의 품에 있으면서도..눈을 뜨지 못했어." 다시 재중의 얘기로 돌아오자 유천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전진을 바라봤다. "그래서?" 자신의 말에 딱딱하게 되묻는 유천의 물음에, 전진이 머뭇거리듯 탁자위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네 동생을 내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싶어." "..뭐..?" "내 품에서 눈을 뜰지도 모르지...진심으로 사랑해준다면말야." "..!!!!!" 전진의 말에 유천의 눈이 또한번 놀람으로 부릅 떠졌다. 하지만, 자신을향해 상냥한 웃음을 보이고있는 전진의 눈동자는 진심어린 그것였다. - 미 열(美 熱) 59편 - 딱딱하게 굳어진 유천의 얼굴.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전진의 얼굴위로도 어느새 진지함이 서렸다. "......." "......." 잠시간의 침묵. 전진의 갑작스런 말에 유천은 그의 말뜻을 이해하기까지 한참이란 시간을 두어야했다. 아니.... 갑자기 뜬금없이 재중이를 달라니......... 그 아이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하고있는것이 아무것도 없는상황에서... 무턱대고 자신의 사람으로 하고싶다는 전진의 말은 유천로 하여금 충분히 충격적인 얘기였다. 하지만, 장난끼란것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전진의 눈빛에 유천은 마침내 꿀먹은 벙어리처럼 꾸욱 다물고있던 입술을 간신히 열었다. "무슨...." "....." "..무슨 말이야..그게." 충분히 그가 한말을 알아들었으면서도 다시한번 재확인하듯 묻는 유천. 그런 그의 물음에 전진은 이내 웃고있던 얼굴조차도 차분하게 바꾸며 나즈막한 목소리로 확신에 찬듯 대답을 꺼내놓는다. "내가 한말..그대로야. 그 아이....내사람으로 하고싶다고." "......." 전진의 확고한 의지가 담긴듯한 말에 유천은 또한번 긴 한숨을 짧은 시간 들이마쉬며 놀란 눈동자를 치켜떴다. 하지만, 이건 자신의 동생과 관련된일. 그리고 무엇보다도..자신과도 관계된일이 아닌가. 무조건적으로 당황한 모습만 보일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다시한번 흔들리는 눈빛을 가라앉히며 의자등받이에 편안히 등을 기대는 유천였다. 그리하여 여유있는 모습을 어느정도 갖추고 나서야 입을여는 그. "어째서...우리 재중이야. 얼마 보지도 않은 아이를 받아들이겠다는 의도를 모르겠군." 유천이 내심 비수같은 속마음을 감추며 냉정을 가장해 말을 건냈다. 그런 유천의 날카로운 눈빛에 전진이 진심인듯 정중하게 대답한다. "난 이미 혼기가 다 찬 몸이야. 이곳에있는 사람들도 모두 혼례를 치룬 사람들뿐이고. 작년에야....나도 약혼녀가 있는 몸이였지만말야...." 전진의 눈빛이 순간 어두워졌다. 그런 전진의 안색을 살피며 그의 다음말을 기다리는 유천.. "그런데?" 짧은 말로 전진의 대답을 재촉해본다. 유천의 목소리에 어둡던 눈빛을 애써 다시 감추며 전진이 빙그레 웃었다. "그런데..죽었어. 마족들과 싸움이 났을때." "..!!!" 빙그레 미소는 짓고있지만, 왠지모르게 어딘가 무척이나 아파보이는 모습에 유천은 놀란 표정을 드러낼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유천의 반응을 다 알고있다는듯 전진은 여전히 씁쓸한 미소를 뒤로 숨긴채 말을 잇는다. "이제..나도..안정적이게 가정을 꾸려야하고....또 사랑을 해줄 사람이 절실히 필요해.....약혼녀가 죽었을땐..언젠가 다시 누군가를 받아들여야 하는것이 힘들꺼라 생각했지만........네 동생을 보는 순간 생각이 달라졌어." "......." 전진이 천천히 말을 이으며 유천의 눈을정면으로 바라봤다. "물론 니 동생을 지금 내가 사랑하는건 아니야. 하지만..네 동생 정도라면..앞으로 충분히 사랑을 줄 수 있을껏 같아 하는 소리다." "......." 무척이나 단호한 눈을가진 전진. 그 눈동자가 지금 자신이 하는말은 모두 진심이라 뜻하고있었다. 사랑하는건..아닌데.................. 앞으로..사랑을 주기에..충분하다라........... ".........." 앞으로..사랑을 준다고....? 순간 전진의 눈을 마주보고있던 유천의 머릿속으로 누군가의 영상이 빠르게 지나갔다. 고운 머리카락.......... 다정하고도 나른한..말투............... 끝없이 자신을 갈구하는 눈빛................. 받지못할 사랑이라해도....자신이 아파 무너져도..... 끝끝내 속마음을 당당히 드러낼줄도아는 대나무처럼 곧은...심성..... "..!!!" 순간적으로 생각난 준수의 모습에 유천은 내심..흠칫..어깨를 떨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빠르게 머리를 저어 그의 모습을 지워버렸다. 어째서...니가.................... ...생각이 나는거야...................... 유천의 당황한 표정에 전진이 그를 의아한듯 바라본다. 그런 전진의 눈빛을 느꼈을까? 이내 흔들리는 눈동자를 바로잡은 유천이 마른침을 삼키며 그를 마주봤다. "......." "......." 또다시 이어지는 짧은 침묵. 전진의..제안. 물론 받아들일 수가 없는 얘기였다. 재중이의 배필은 이미 자신이 되어주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또 다짐하지 않았던가. 그러면..어서 말해야지...... 안된다고. 딱부러지게 말을 내뱉어야지...뭐하는거야. 유천은 머릿속으로만 맴도는 말들이 입밖으로 꺼내지지 않음에 자신의 무릎을 꽈악 움켜잡았다. "어때? 생각해..보겠어...?" 그런 그를 배려하는듯한 전진의 목소리에 유천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며 탁자위에 술잔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머리를 흔들어 지운줄 알았던 준수의 영상이 어느새 또다시 또렷하게 자리잡았기 때문였다. 빌어먹을. 유천이 자신의 입술을 깨물며 미간을 일그렸다. 그리고........................ "....." 덜컹-----! 마침내 다시 고개를 들어올려 전진의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한 유천가..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재중이는 내사람이 될꺼라고..... 이미 그렇게 내가 정해놓았다고............... "허락하지..않겠다는 뜻인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유천를보며 전진도 따라일어났다. 그리고는 유천의 얼굴을 조심스런 표정으로 살펴본다. 그런 전진의 긴장하는 얼굴빛에 유천은 이내 긴 한숨을 내쉬며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생각........" ..재중이는 안된다고...말해야.............. "...생각은..해보겠어." 유천은 자신이 내뱉은 말에 스스로가 놀라며 두눈을 커다랗게 떠올렸지만, 이미 그 시선 앞에는 유천의 대답에 환하게 웃고있는 전진이 있었다. "그래. 니 동생문제니까 쉽진 않을꺼야. 하지만...네 동생만큼 깨끗하고 맑은 아이라면..누구라도 곁에 두고서 사랑하지 않을수가 없겠지. 생각해보고..대답해줘." 전진이 유천의 어깨를 장난스레 투욱 치며 기분좋은듯 말했다. ..내가..지금................ "좋은 대답 기다릴께." ..내가 지금.....무슨말을 한거야......!!! 좋은 대답을 기다리겠다며 유천에게 빙그레 웃어보이는 전진의 얼굴에는 사심이란 전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그런 얼굴표정도...그리고 그의 말들도 유천의 귓가에는 모두 들려오지 않았다. 재중이를.....다른 사람에게..내주는걸....생각해 보겠다고...? 내가..지금....그렇게 대답한건가.....?!!! 술잔에 술을 한가득 따르며 미소짓고있는 전진과는 달리 유천은 그 자리에서 넋나간듯 한참을 꼿꼿히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 미 열(美 熱) 60편 - 타다다다닥-----. 덜컹---. 아직은 수리가 덜된 문이 낡은 소음을 내며 거칠게 열렸다. "하아..." 유천의 입에서 가뿐숨소리가 터져나왔다. 전진이 내미는 술잔도 마다하고 부리나케 뛰어온곳은 이제부터는 자신들이 생활해야하는 새로운 보금자리. 마을사람들이 열심히 도와준덕에 처음엔 무척이나 허술해 보이던 집안들이 지금은 매우 깔끔해져 있었다. "휴우..." 다급하게 뛰어온지라 고를새도 없었던 숨결을 정리하며 유천이 집안을한번 둘러봤다. 그 순간부터였다. 재중을 전진에게 준다는것을 생각해보겠다고 자신이 대답한..그 순간부터...... 머릿속은 까맣게 비워진듯 혼란스럽기만했다. 도대체.....이 두근거리는 심장을 어떻게 다스려야할지....... 속수무책였다. 끊임없이 뛰어대기만하는 이 심장이 과연 무엇때문에 그러한지....... 이유조차..알 수가 없는데..... "......." 숨을 겨우 고른 유천의 눈동자가 집안을 천천히 둘러보다가 이내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진 방문에 고정됐다. 그 방문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유천이 곧 느린동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끼익__ 그리고 조심스레 문을열었다. ...그러자..................... 작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달빛.. 그 아래 새초롬히 잠들어있는 재중이 보였다. 자신의 발걸음 소리에 깨지않게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걸음을 옮기는 유천은 무척이나 긴장된 얼굴을하고 있었다. 하얀베개위에 흐드러지게 흩어져있는 까만 머리결이 마치 풀잎에 이슬이 맺힌듯 그리도 달빛아래 반짝거리고 있었다. 소리없이 재중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침대앞에 조심히 주저앉은 유천의 이마위로 차가운 식은땀이 맺혔다. "......." 약간은 여윈듯 갸름한 재중의 얼굴을 자신의 손가락으로 한번 부드럽게 쓸어넘겨보던 유천이 흔들리는 시선으로 재중의 여린 목덜미를 바라봤다. 아름다웠다. 막 피어난 붉은장미 꽃잎같은 입술도..... 마치 만들어낸듯 쭈욱 뻗은 쇄골과 가녀린 작은어깨도....... ..여전히 자신의 동생은 아름다웠다. 언젠가 이 아이의 눈을 꼬옥 뜨게 할꺼라고... 자신이 그렇게 했으면..좋겠다고..소원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렇게 될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유천의 미간이 일그러들었다. 미친건가............... ..누구...에게........? 쉴새없이 떠오르는 작은 모습에 유천이 이내 다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하지만..소용이없다. 사라지지가 않아............... 재중이를 안고 그곳을 빠져나오면서부터 무던히도 눈에 밟히던 사람을 애써 가슴속 저 깊숙이 몰아내 버리고 생각지 않으려했다. 그런데..이렇게 갑자기 불쑥 생각나 버리면..어쩌자는...거야. 유천이 재중의 얼굴을 쓰다듬던 손을 뒤로 물리며 주먹을 움켜틀어쥐었다. 하지만, 곧 찡그렸던 미간을 바로하며 곱게 잠들어있는 재중을 바라본다. "......." 재중을 바라보던 유천의 입술이 단호히 다물렸다. 그리고..다시 손을 뻗어........... 재중의 가슴께에 자리잡고있는 옷 매듭에 손을댔다. 재중이는....내 사람이 될꺼라고.... 그렇게 믿고 생각해왔었어. 이 아이는 내것이 될꺼라고....... 망설이는듯 잠시 머뭇거리던 유천의 고개가 이내 아래로 떨구어졌다. 그리고 자신의 뜨거운 입술을 곧바로 재중의 부드러운 입술위로 묻어버린다. 달콤한 향이 화악 코끝을 스치듯 끼쳐오며 보들거리는 살결이 기분좋게 다가왔다. 조금더..... 조금더..재중의 입술을 파고들어보는 유천의 손이 재중의 옷 매듭을 풀어내렸다. "우웅..." 자꾸만 입술을 짓누르는 그 느낌이 이상했는지 재중이 이내 의식을 차리는듯 작은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그에 신경쓰지않고 재중의 살짝 열려진 입술틈을 유천의 혀가 침범했다. "으..읍..!" 윤호를 통해 많이 접해봤던 느낌. 하지만...어딘지 모르게 생소한 그 느낌에 재중이 퍼뜩 잠에서 완전히 깨어난듯 놀란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입술을 틀어막은 유천의 어깨를 꼬옥 움켜잡는다. "흐읍..." ..윤호과는 전혀 다른 느낌에 재중이 미간을 일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누..누구...." 자꾸만 따라붙는 입술에 눌려 금새 막혀버리는 말. "..하아..." 하지만, 곧 잠에서 깨어난 재중의 목덜미를 상냥하게 손으로 쓸어내리며 유천이 입술을 떼어냈다. "하아..하..." 입안 깊숙이 휘저어놓고 나가버린 유천때문에 재중의 입에서도 가뿐숨이 터져나왔다. 놀란숨을 들이키는 재중을 바라보는 유천의 얼굴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재중아.." 그리고..작게 속삭이듯 그를 불러보는데.... 재중은 자신의 입술에 입맞췄던 사람이 유천인걸 알고는 잔뜩 굳어버린 얼굴이 되어버리고만다. "..혀..형...?!" 유천의 어깨를 잡고있던 손에 더욱더 힘을주며 재중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방금전 행동은 평소의 유천이 아니었다. 재중이 알고있는 자신의 형 유천은 좀더..가볍고..따뜻하게.... 그저 재중이 사랑스럽다는듯 그렇게 다정하게 입술만 마주쳐주던...사람인데... 그런.. 사람인데... "재중아.." 순간..입술을 떨며 아무말 못하고있는 재중을 바라보는 유천의 눈빛이 아련해졌다. 니가..내 사람이 될꺼란걸..난 의심해 본적이 없었어.....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순간..내가 어떻게든 널 꼭 곁에서..지켜낼꺼라고..... 그럴꺼라고...약속했어... 그러므로......... 너 외에는 아무도 내 마음속에 들어오지 않아야 옳음이야... 그래야만돼. "......." 유천이 다시 재중의 입술위로 고개를 떨궜다. 갑자기 또한번 다가오려는 유천의 숨결에 소스라치게 놀란 재중이 얼굴을 옆으로 틀어보지만, 유천의 빠른손이 그의 머리를 고정시켰다. "..ㅇ..유..읍...." 하지만, 그의 이름을 부르려던 재중의 입술이 어느새 유천의 입술로 꽈악 막혀버렸다. 바둥바둥-- 두손으로 안간힘을 내며 그를 밀어내려하지만, 역부족이다. 싫..어.... ..싫...어....!!! 재중이 고개를 저으며 유천의 입술을 피하려 버둥거렸다. 자신의 입술을 아프도록 집요하게 따르는 유천의 입술. 이내 그의 손이 재중의 옷을 걷어올리며 그 안으로 들어섰다. "..!!!!!" 윤호가 아닌 다른 손길에 놀란 재중이 더욱더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이..건...아니야..... 아무리..형이라도........ 이건......이런건....윤호만이.....나한테..... 재중의 눈꼬리에 눈물방울이 맺혔다. 윤호만이..재중이한테......해주는건데.................... ..다른 누구도...말고.......... 형도..말고............ ..윤호만이....... 재중이 작은 어깨를 파르르 떨며 눈물을 떨궜다. 그리고 재중이 우느것도 모르는 유천의 입술이 그의 목덜미에 깊이 묻히려할때였다. "흐으윽....흑....." 결국은 흐느낌을 토해낸 재중이 힘없는 팔을 들어올려 유천의 어깨를 바들거리는 손끝으로 밀어낸다. "..싫.....싫..어.....유천형......흑...." "..!!!!!" 자신의 어깨를 미약한 힘으로 자꾸 밀치며 훌쩍이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 정신을 추스린 유천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재...재중아....." 어느새 눈물을 얼굴 가득 담아낸 재중이 입술을 꾸욱 다문채로 흐느끼고 있었다. ..내가............... ..내...가................. 유천의 눈이 충격을 받은듯 멍해지며 순간적으로 그의 몸이 뒤로 물러섰다. "..흐으으윽.......혀엉.....유천혀..ㅇ...." 가녀린 목소리가 울음에 잔뜩 잠긴채 작게 새어나오고 있었다. "미안.....미안재중아." 유천이 자신의 머리를 다급하게 쓸어올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아.." 숨이 턱 막혀오듯 가빠오기 시작한다. 자신이 지금 이 아이한테 무슨짓을 한건지...!!! "..형이......." 충격을 받아 움직이지 않는 동공을 애써 다른곳으로 돌리며 유천이 떨리는 손을 세게 말아쥐었다. "...형이....어떻게 됐나보다....미안." 결국 유천은 울고있는 재중을 더이상 달래줄 다른 어떤말로 하지못한채.. 그대로 밖으로 뛰쳐나갈 수 밖에 없었다. 콰앙-----!! 거칠게 문을 닫고 나간 유천이 깜깜한 마을 공터로 쉴새없이 달려갔다. 그리고..마을 공터를지나 자주빛 숲쪽으로 하염없이 뛰어간다. "하아..하아..." 어둠속에서 어떤 사물도 제대로 분간하긴..힘들었다. 오로지 달빛만이 은은하게 비춰주는 숲속. 자신은..미쳤다. 확실하게...미쳐버렸다. "하아..하아...흐읏...." 터억----. 얼마나 달려왔는지 모를만큼 터질것같이 빨리 뛰어대는 심장을 추스리려 유천이 커다란 나무 기둥에 등을 기댔다. "하아..하아..." 바람에 식혀져 차가워진 땀이 그의 이마위에서 뚝뚝 떨어져 내리고..... 그와함께... 자신의 볼 위로도...땀과는 상반되게 뜨거운 그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하아...하...." 거친숨결속에서 허튼 웃음이 터져나온다. "하...." 자조적인 웃음. 자기자신을 비웃는듯 그렇게 웃음을 터트리며 풀숲에 털썩 주저앉아버린 그는.. 이미 모든 기운을 탕진한듯했다. "..하아....흣...." 유천의 고개가 이내 힘없이 아래로 떨궈지고....그의 어깨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한다. 무작정..생각나는 그 녀석때문에....함부로 재중이에게 손을댄 자신이 너무나 한심스러웠다. 아련히..내리는 빗소리가 마치 환청처럼 귓가를 울려퍼지고...... 자신이 안았던 우유빛 육체가 눈앞에서 아른거리듯 흩어졌다. 사랑한다..속삭였던...그 목소리가.....귓가로 생생히 전해져오듯...그러하고..... 우는 얼굴마저 숨기고 웃으려 노력했던 그의 모습에... 미쳐버릴듯 가슴 한구석이 시려왔다. 자신의 볼위로 타고흐르는 눈물을 거칠게 닦아내리며 유천이 머리를 뒤로 젖혔다. 그리고.....떨리는 입술을 달싹여본다. "...ㅅ..ㅜ....." 왜이러지.....? "...준..수......." 천하의 박유천같지않게...... 언제나 재중이를 지켜주자고 맹세하며 누구보다 냉철한 사람이 되고자 했는데... "..김..준수....." 그녀석의 이름을 부르며 흐느끼는 자신이라니.... 말도 안됐다. "하아....흐읍......" 하지만...이미 자신은 울고있지 않은가. "..김준수....우....." ..자신은..이미.......그의 이름을 몇번이고 부르고 있지 아니한가.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며 자신을 혼란케한 그 김준수이란 녀석때문에............. ...................................................... .......................................... 박유천은..울고있었다. - 미 열(美 熱) 61편 - 며칠새에 그저 조용하기만한 귀족들의 궁 내부에선..이제 찬바람마저 불 지경였다. 예전같이 커다란 여흥도 없었을뿐더러, 또한 그들이 즐기던 마녀사냥이란 마치 전부터 아예 없었던 놀이같이 입도 뻥긋하는이가 없었기 때문였다. 물론 그것또한 윤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허락의 목소리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기에..마땅한 놀이지만..... 요즘은 허락조차 구하기 힘들만큼 윤호는 매서운 얼굴을 하고다니고 있었다. 그의 그런 모습에 당연 이런저런 말못붙이고 그저 조용히 지내기만하는것이 요 며칠새에 보이는 마족들의 생활..... 코빼기도 안보이고 집무실에서 온갖 잔일만 해대는 윤호의 거동탓에 모두들 남모르게 긴장만하고 있을뿐였다. ..그리고.................. 잠시잠깐 정원을 거닐때의 모습을 볼때빼고는 윤호를 볼 수 있는 날은 없는데, 오늘은 어쩐지 보통때보다도 더욱더 화가난듯한 윤호가 호숫가의 다리를 가로질러 가고있었다. 그가 지나가는 모습에 호숫가에서 놀고있던 사람들이 사뿐히 고개를 숙이고....... 평소같으면 기분좋게 인사하는 자신의 부족들에게 고개짓이라도 가볍게 해보일텐데 그런것도 아예없이 어딘가로 바쁘게 걷기만한다. "......." 그의뒤를 십여명의 부하와 그의 몸종인 환희가 뒤따르고 있었다. . . . 윤호가 발걸음을 옮긴것은 다름아닌 준수의 거처. 오늘아침까지만해도 환희의 흘리는듯한 말을 듣지않았다면, 준수의 상황을 몰랐을 것이다. "준수는." 갑자기 불쑥 나타난 윤호때문에 준수의 몸종인 소진이 놀란눈을 커다랐게 치켜떴다. "유, 윤호님..." 윤호의 날카로운 눈빛에 소진이 곧 고개를 숙이며 준수의 문밖에서 어쩔줄 몰라하며 머뭇거렸다. 그러자 환희가 그녀에게 낮게 중얼거린다. "어서문열어..누나....윤호님..화나셨다구..." 윤호의 눈치를보며 살금살금 조심스런 목소리로 말을 건내는 환희를 바라보는 소진. 그녀가 결국은 자신의 앞에 놓여진 준수의 커다란 방문을 소리없이 열었다. "주..준수님..윤호님..드셨습니다..." 그리고는 준수의 등을 보고 작은 목소리로 빠르게 외친다. "......." 하지만 자신의 말을 듣고도 꿈쩍 않하는 준수의 좁은등을 바라보며 소진은 내심 마른침을 삼켰다. 분명..윤호님의 얼굴을 보아하면...화가 단단히도 나신것 같은데...... 윤호의 손짓에 소진이 물러서고, 그제서야 준수의 방에 발을 들여놓는 그. 쿵-----. 모두의 걱정스런 표정을 뒤로한채 문을 닫은 윤호가 침대에 등을 보인채 누워있는 준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여린 어깨를 낚아채듯 잡아올려 일으켜 앉힌다. "......." "......" 윤호의 손에 마지못해 일어나 앉은 준수는 고개를 숙인채 아무말이 없다. 그런 준수의 볼위로 흘러내린 금빛 머리카락을 손으로 걷어올리며 윤호가 미간을 일그렸다. "..너 정말 왜이래......아무것도 안먹는다며...... 굶어.....죽을셈이야...?" 윤호가 그의 아침인듯 보이는 탁자위에 놓여져있는 음식을보며 낮게 읍조렸다. "......." 그에 아무대답없는 준수가 답답하기만한 윤호. 그의 부드러운 머리를 거둬올리자 창백할 정도로 하얀 준수의 얼굴이 드러난다. "..후우...." 준수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본 윤호의 입에서 긴 한숨이 뿜어져 나온다. "......." 하얀 얼굴에 그 아름답던 기색은 어디갔는지 자취를 감췄고, 윤호를 마주보고있지 않은 두 눈동자에는 깊은 어둠이 깔려있었다. 아기것인마냥 작은 분홍빛 입술에는 까칠함만이 남아있을뿐...... 윤기라곤 존재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며칠째 안먹어 부쩍이나 마른 그의 몸. 가녀린 몸이 더욱 말라버린것같아 윤호의 마음 한구석을 너무나 쓰리게 하기엔 충분했다. 준수의 어깨를 흔들며 윤호가 언성을 높인다. "너 왜이래..!! 나한테 시위하는거라면 이런식은 아니야!!!" 윤호의 화가난 목소리에 준수가 그제서야 메마른 눈동자를 그의 시선에 맞춘다. "........" 그리고는 천천히 떨리는 입술을 열기시작했다. "..나........" 말을 하기에도 힘에 부치는듯 작은 숨을 몰아쉬는 그가 그저 안타깝다. "....나.......너한테.....시위하는거 아니야......" 이내 시선을 돌려버리는 준수의 얼굴을 억지로 잡아 돌리며 윤호가 매섭게 말을 였다. "그런데 왜이래. 사람속을 꼭 이렇게 뒤집어 나야겠어..김준수? 그래?" 너까지..왜이래...... ..나도 힘든데....너까지 왜이래..정말....... 잔뜩 화가난 눈동자 뒷편에 감춰진 걱정. 모르는건 아니었다. 하지만................ 준수가 자신의 얼굴을 잡고있는 윤호의 손을 살며시 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천천히 머뭇머뭇 조심히 입술을 연다. "..나......노력하고 있는거야.......안보여.....?" "..뭐라고...?" "..니 말대로...우리......신분차때문이라도.....안되는 거잖아..... ..그래서...나름대로.....잊어보려고.....노력하는거야....." "김준수." 윤호가 그의 말을 들으며 말도 안된다는듯이 준수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윤호의 말에도 아랑곳하지않고 계속해서 말을잇는 준수의 얼굴에는 이제 가볍게 미소까지 띄어져 있다. "...음식이 넘어가질 않는걸..어떻해....... 걱정하지마.....나 잘하고 있어.......그러니까........." "..후우....." 준수의 말에 괴로운듯 그에게서 등을 보인 윤호가 두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그런 윤호를 여전히 바라보지 않은채 준수가 작게 중얼거린다. "...나만...잊음되는건데............ ...어차피............" 마치...혼잣말을 중얼거리듯.. "..어차피..그 사람은 애초에..나같은것...한번도 눈길준적 없는데....." 자신이 말하고..자신이 상처받는다.. "......." 준수가 소리없이 눈물 한방울을 뚝하니 떨구며, 곧 떨리는 손끝으로 뒤돌아있는 윤호의 팔을 힘없이 잡았다. "..난....니가..걱정이야...윤호아......." "......." 준수의 손길에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윤호. 그런 윤호의 붉은 빛 머리카락을 손으로 조심스레 쓰다듬는 준수의 손끝에는 따뜻함이 어려있었다. "..넌...예전부터....족장이란 무거운 사명감에 짓눌려...니 감정에...... 솔직한 모습을..내 보일 수가 없었어......." 준수가 뚝뚝..뺨위로 떨어져 내리는 눈물들을 무시하며 떨리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어냈다. 그리고..마른 손가락으로 윤호의 얼굴을 마치..엄마인듯 감싸는데......... ".........." "...어째서............" 평소에도 온화했던 준수가... 그런 준수의 손길이 왜 이렇게 오늘따라..더 포근한건지...... "...어째서..내 눈에는 니가 더 아파보이는건지 모르겠다..윤호야...." 준수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는 윤호. "..니가.....더....아파보여........" 준수의 나즈막한 마지막말에 윤호는 그제서야 자신이 두 주먹을 꽈악 틀어쥔채, 얼굴을 아픈듯이 한껏 일그리고 있다는걸 깨달았다. 다른 어느곳도 아픈것이 아냐................ ..그 녀석을 보낼때부터.......아니. 그전부터......... 이상하게 가슴에만.....통증이와........ 따끔...따끔......... 마치 바늘로 찌르는듯말야....... 그렇게...아파오기도..하고......또 이유없이 춥고 시리기도해........ 너보고...뭐라고 할게 아닌데...준수야........ 나또한...음식한번 제대로 못삼키면서도....괜시리..... 너한테......화를내고 말았어........ 빌어먹을..정윤호가....어째서...이런지경까지 왔는지...모르겠다. 다만................. ..다만.....하루하루가....힘이들어............... 그녀석때문에............ 예쁘고 맑기만한....그녀석때문에................ - 미 열(美 熱) 62편 - 짹짹_찌르르__ 다른곳보다도 훨씬 아침이 빨리 시작되는듯 보이는 자줏빛 숲에 밝은 햇살이 곱게 비치고 들었다. 그와동시에 모두들 바쁜 하루일과를 시작하려 막..잠에서 깨어나 우물가에서 물을 길어 가기도하고...아침운동을 하기도 한다. "아아~~~ 모두들 잘잤어?" 커다랗게 기지개를 켜며 큰키를 더욱더 쭈욱 늘리는 전진이 마을사람들을 보고 환하게 웃어보이며 인사한다. 그러자..사람들도 덩달아 전진을 보며 한마디씩 건네고........ 그런 그들과 한참 우스갯 얘기를 나눈 전진의 눈동자가 이내 유천네 집으로 향했다. 아직까지 아무도 나오고 있지 않은 그들의 집을...... "....." 새벽이 다 되서야 집안으로 들어온 유천은 한숨도 자지못해 두눈에 피곤함이 가득 서려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재중은 밤새 얼마나 훌쩍였는지 고운 눈두덩이가 붉게 부어있었다. 그쯤되니...서로 말없이 어색한건 사실였고....... 살아오면서 싸움한번 한적없는 이 형제에게 있어..그것은 너무나도 생소한 일였다. 결국은 유천이 침대가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재중에게 먼저 다가간다. "형..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잠깐 마을 밖에좀 나갔다올께. 마을밖 나무에 심어놓은 과일나무가 풍성해졌다고 하더구나. 조금..얻어서 니가 좋아하는 과일차 타줄께." "......." 끄덕_끄덕. 유천의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이는 재중. 침대시트위로 삐죽이 손가락만 내밀고 연신 불안한듯 꼼지락 거리고 있다. 물론 그 예쁜 얼굴을 유천에게 안보여주고 푸욱..숙이고 있기도 했지만...... "..형...간다." "...으..응...." 그런 재중의 얼굴이라도 한번 쓰다듬어 주고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용기가 없어 그냥 발걸음을 옮기는 유천였다. 이내 여전히 침대위에서 꼼짝 않하는 재중을 곁눈질로 한번 바라본 유천이 기운없는 모습으로 집밖에 나서고.............. 쿵-----. 작게 닫히는 문소리에 재중은 이제 철저하게 혼자남은 공간에서 우두커니 그냥 앉아있을뿐였다.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을 소란스럽게 밖에서 떠들던 마을 남자들이 드디어 마을밖으로 나섰는지 이내 다시 조용해진 마을였다. 그제서야 조심스럽게 부스럭거리며 침대에서 내려서는 재중. 발을 바닥에 내딛은 그가 천천히 일어선다. 그리고는 유천이 떠다놓은 물을 손으로 더듬거려 찾아 부지런히 세수를 하기 시작했다. 다른때보다도 더욱더 열심히 씻는듯 뽀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세수를한 재중이, 이내 물묻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조심스레 더듬어 내린다. 마치 누군가에게 예쁘게 보이려는듯 그렇게 수줍은 손길였다. 그리고.................... 몸을 살며시 일으킨 그가 좁은 방을 돌아다니고는 결국 문고리를 찾아내어 방을 나선다. 조금의 시간을 더 투자해서 찾아낸 집밖을 향하는 문고리를 돌리자 맑은 공기가 그의 코끝으로 와 닿았다. 아무것도 안보이는 두려움속에 긴 심호흡을 한번 내뿜은 재중이 곧 주위를 둘러보며 동네 아이들이 떠들고있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재중이 집밖으로 나서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순수한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재중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것임으로..그는 계속해서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그리고 재중이 멀뚱멀뚱 쉽게 걸음을 옮길 생각을 못하고 그리 서있자, 곧 동네 꼬마녀석들이 그에게로 먼저 몰려든다. "..예..쁜....누나야..." "우아~~~ 헤헤.." 그중에는 그를보고 얼굴이 붉어지는 어린 사내녀석들도 있었다. 자신의 손을 이내 아무 사심없이 맞잡는 꼬마들에게 재중이 환하게 웃어보이며 머뭇머뭇 말을 꺼냈다. "저, 저기..미안한데.....자줏빛 숲 입구까지...나 좀...데려다 줄래..?" 재중의 말에 꼬마녀석들은 너나 할껏없이 달겨들어 그의 손을 맞잡고 그를 이끌고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들이 마냥 귀여운 재중였고..... 또 좀있으면..윤호를 만나게 될꺼라고 확신하는 그는 기분이 무척이나 좋아보였다. . . . 한참이나 자신과 놀겠다는 아이들을 마을로 다시 돌려보낸 재중이 이내 조용해진 주변에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긴숨을 내쉬었다. 숲 입구라서 그런지 꽃내음이 한가득 였고, 새들의 잦은 울음소리도 들려왔다. 아무것도 보이지..않는다...아무것도........... 하지만, 이 마을로 왔던것처럼 다시 자줏빛 숲을 가로질러 똑바로 걸어가면... 꼬옥 윤호를 만날꺼란 그의 무모한 생각. 그저..너무나 보고싶은 마음 한가지에.......... 이내..위험천만한 숲길에 첫발을 내딛는다. 터벅_터벅__ 작은 움직임으로 불안스레 발걸음을 내딛기를 얼마나 했는지... 끝도 보이지 않을만큼 한참을 걸었는데도 불구하고 숲길이 끝나려면 아직도 멀었는지 여전히..향긋한 꽃내음은 가득했고, 새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하아.." 아까부터 가빠오기 시작하는 숨소리에 재중은 잠시 주저앉아 쉬기도 했고, 이마위로 송글송글 맺히는 땀을 작은 손으로 쓸어내리기도 했다. 왜...숲이 끝나지 않는거야........ 금새 울상이 되면서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는 재중의 표정은 어느새 다시 단호해져 있었다. 미안...유천형.......... 하지만...재중이는....윤호가...너무너무..보고싶어서....... 유천에게 미안한 마음을 빌어보며 우울한 얼굴빛을 해보이던 재중이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눈앞에 어떤것이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조금씩 내뻗는 걸음은 무척이나 시간이 걸렸다. 이미 허공을 더듬던 손가락에는 몇번이나 나무를 잘못찔러 가시가 박혀들어 있었다. 게다가 여기저기 나뭇가지에 긁혀 생채기난 여린 팔에는 피가 맺혀있었지만, 그는 전혀 상관없다는듯 앞으로만 나갈뿐였다. 숲속도 가로지르는 따뜻한 햇볕. 그 햇볕이 뜨겁다고 느껴지자 순간적으로 작은 현기증이 몰려오듯 그렇게 잠시 휘청거린 재중이 다시 몸을 추스렸다. 갑자기 울컥 쏫아져 나오려는 울음을 삼키며 두눈을 아픈 손가락으로 꾸욱꾸욱 누른다. ..보고..싶어........... 윤호이..보고싶은데............. 오로지 그가 보고싶다는 신념은 재중을 끝까지 숲에서 걷게 만들었다. 이 숲만..벗어나면......윤호가 있을껏..같은데............. 윤호도....재중이를 찾고있었다고.....웃어줄것 같은데............. 마치 숲만 벗어나면 윤호가 있을것 같은 생각에 이제는 힘이 없는 다리를 무의식적으로 끊임없이 옮기고있을때였다. 어딘지....어떤곳에 발을 내딛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재중. "..아...!!!" 갑자기 순간 자신의 몸이 밑으로 쑤욱 가라앉는 느낌에 본능적으로 두팔을 허우적댔다. "..!!!!!" 그리고...몸이 아래로 뚜욱 떨어질것처럼 추락하려던 그 순간!! 휘익-----! 너무나 가볍게도 재중의 몸을 안아올린 사람이, 그를 안은채 뒤로 나뒹굴었다. "하아..하아...." 발을 내딛는 순간 발을 지탱해줘야할 땅이 없었음에 깜짝 놀란 재중. 그리고 그런 그를 안아올려 뒤로 넘어진..누군가. "하아..하..." 생전처음 느껴본 그 소름끼치는 두려운 느낌에 재중의 입에서 가뿐 숨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리고 그를 안은 누군가의 입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 재중을 안은 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쓰러지려는 재중의 몸을 안아올렸다. "누, 누구.." 자신을 갑자기 안아올린 그의 품에서 재중이 깜짝 놀라며 벗어나려는듯 발버둥쳤다. 두려움에 금새 식은땀이 솟아있는 재중의 이마를 보며 전진이 낮게 중얼거린다. "너..대범하구나. 눈도 안보이는 녀석이. 바로앞은 낭떠러지였어." 그리고는 위험천만했던 그 상황을 마치 편안하게 넘기려는듯 아무일 아닌것처럼 그렇게 재중에게 말을 건낸다. 그 목소리가 누구인지.....정확하게 알아들은 재중이 곧 인상을 굳혔다. 그리고 다시한번 그의 품에서 빠져나가려고 버둥거린다. 분명..형과 나를 마을로 안내했던 사람이야! "놔, 놔줘요....가야해요...." 가는 두팔로 버둥거리는게 귀엽기도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게 문제는 아니었다. "가긴 어딜간다는거야." 전진이 곧 그를 안은채로 걸음을 옮겼고, 재중의 반항은 더욱더 심해졌다. "싫어...놔줘요!!......갈꺼야.......윤호한테...!!!......." "뭐...?" 재중의 입에서 나온 말에 전진은 믿지 못하겠다는듯 걸음을 멈추고는 그를 바라보고... 재중은 계속해서 땅으로 내려서려 몸부림치고 있었다. "윤호..만나러 가는 길였어요....그러니까......" "너 미쳤어..? 바보인건지..아니면..무모한건지...!!" 전진이 커다랗게 호통치며 재중의 말을 무섭게 끊어버린다. "여긴 길을 잘아는 사람들도 헤매는 자줏빛 숲이야. 그런데 어떻게 눈도 안보이는 니가 여길 지나가. 그것도 혼자서." "......." 전진의 날카로운 말에 금새 쫄아든 재중이 자신의 입술을 꾸욱 다문다. 그런 재중에게 전진이 긴 한숨을 내쉬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내가 아이들 말을 듣고 와보지 않았다면..넌 여기서 죽은목숨였어. 그렇게..아무대책없이 행동할만큼 정윤호가 대단한 인간이냐." 윤호에게 적대심을 가득 드러낸 전진의 말. "......." 그런 전진의 품에 힘없이...안겨있던 재중이 이내 어깨를 움츠린다. 그리고...입술을 떨며....눈물을 한방울씩 소리없이 뚝뚝..떨구는데........ 훌쩍이는 재중의 울음소리에 이내 전진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하고..... 한참을 무모하게 걸어옮긴 재중의 몸은 이미 전진의 품에서 바둥거릴 수 없을만큼 축 늘어져 버린다. "..흑...흑....." 말간 눈물을 뚜욱..뚜욱.... 윤호이...보고싶어서............ 너무나..보고싶어서....... ..보고..싶............. "흐으으윽..." 재중이 커다랗게 울음을 터뜨리며 두 주먹을 최대한 힘껏 말아쥔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흐윽...흑...." "이봐...너.." 그런 재중의 행동에 당황하는 전전의 얼굴. 하지만, 그에 아랑곳없이 재중은 계속해서 자신의 머리를 작은 주먹으로 투닥거리고.. 마치......자신을 탓하듯이................... "..흐아아아아......윤....ㅎ..ㅗ....." 그리고 그의 흐느낌속에서 같이 터져나오는 윤호의 이름. "...재중이..바보.......재중이...바..ㅂ..ㅗ...." 이렇게...스스로를 미워해본적은 한번도 없었다. 앞이 안보인다고..절망감에 휩싸인적또한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눈이 보였다면.....그랬다면............... ..지금쯤..윤호를 만났을지도..모르는데.......... 자신이..눈이..보였다면....윤호은.......자신을 더 예뻐했을텐데..... 그래서...이렇게........버리...지도............. "흐으읏....흑......" 더 커져버린 재중의 울음.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전진의 가슴에 파고들어 크게 오열하는 그의 몸. 알고있었다. 윤호가..자신을 버린것이라는걸......... 다만......스스로가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유천에게 투정을 부리고..떼를 썼다는걸...... 그래도..언젠가는 윤호가 찾을꺼라는 희망때문에 그가 아직도.... 이렇게 보고싶다는걸................. ..이제서야 깨달아버린 재중였다. - 미 열(美 熱) 63편 - 콰당-----!! 부서질듯 거칠게 열려진 문. 그리고 곧이어 들어선 사람은 다름아닌 숨이 턱까지 올라찬 유천였다. "하아..하아..." 가뿐숨을 돌릴새도없이 그의 눈은 누군가를 찾고있었다. 이마위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손등으로 대충 훔쳐낸 그가 집안으로 들어서며 눈을 빛낼때였다. "거참 눈빛하고는...어디 무서워서 말 붙이겠어?" 약간의 장난끼가 섞인 목소리. 그 목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유천이 곧 전진의 모습에 걸음을 멈춘다. "...재중이는?" 자줏빛숲으로 갔다는 아이들의 말을 들었을때 얼마나 놀랐던가. 지금도 그 쿵쾅거리는 심장은 멈춰지지않고 있었다. 재중의 행방을 묻는 유천의 다급한 말에 전진이 자신의 방안 나무침대를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전진의 가리킴에 유천의 걸음은 단숨에 그의 방으로 향하고..... 부리나케 문을 열고 들어선 방안 침대위에 살포시 잠든듯 보이는 재중의 모습에 그만....... 맥이 탁..풀려버린다. 어디도 크게 다친곳은 없어보이는 모습... 가는 팔위로 피가맺힌 생채기가 보이기도 했지만, 그 위로는 전진이 발라놓은 약초가 묻어나 있었다. "..후우....." 털썩---. 그저 피곤한듯 잠을 자고있는 재중의 모습이 자신의 두눈으로 확인되자, 긴 한숨이 입에서 터져나오며..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는 유천였다. 한참이나 긴장하고 있었던지라 모든신경이 그대로 움직임을 멈춘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힘이들었다. 유천이 문지방에 기대어 고개를 숙이며 숨을 돌리고 있을때, 그의 앞으로 불쑥..향긋한 향이나는 차 한잔이 내밀어졌다. "마셔." "....." 유천을 향해 부드럽게 웃어보인 전진이 내민 찻잔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천이 이내 그것을 받아든다. 그리고 마음이 안정되는듯한 그 향내를 코끝에 가까이 가져갔다. "많이..놀랐지?" 분명 재중을 안고오던 전진의 모습을 본 마을사람들이 마을밖에 나갔다 들어온 유천에게 과장되게 말했을것이 분명했다. "......" 자신의 질문에 아무말이 없는 유천을 잠시 내려다보며 전진이 미소지었다. "오죽하겠어...그 복잡한 자줏빛숲을 눈도 안보이는 녀석이 나갔다는데....." 유천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는듯이 그렇게 말을한다. 그제서야 유천은 전진을 올려다봤다. "......." "......." 잠시잠깐 짧은 침묵이 이어지고.... 유천이 마룻바닥으로 시선을 떨구며 조용히 말을 꺼냈다. "저녀석......" "....." 유천의 목소리에 흘깃..그를 바라보는 전진. "....저녀석.........정윤호를 사랑해." "......." 유천의 말에 당연 알고있었다는듯이 전진은 아무말이 없다. 하지만, 이내 밝게 웃으며 상냥한 어조로 대답한다. "자줏빛숲에서 벌써 눈치챘어~ 정윤호가 보고싶다고 아이처럼 엉엉 울어대던데 그래....." 전진의 말에 자신의 찻잔을 꼬옥 움켜쥔 유천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재중이는...정윤호를 사랑해............. 비록..자신이 느끼고있는 감정이 '사랑'이란 단어로 불리는것도 잘 모르는 아이지만....... 숲속을 무작정 헤매는 무모함 또한... 그것에서 비롯되는거야.. 그리고...나도........ 재중이가 정윤호를 사랑하는것처럼....... ..나도.....그녀석이 보고싶고.....그립고...... ...또.............. ..나도...그 마음여린 녀석을.......... 유천이 머릿속으로 떠오른 하얀얼굴을 차분히 하나하나 되새기는듯 눈을 감았다. 하지만, 이내 그 환영도 전진의 목소리에 깨어지고만다. "알고있어? 네 동생 면역성이 많이 떨어졌어." "..!!!" 전진의 걱정스럽다는 말투에 유천이 퍼뜩 정신을 차린듯 고갤 들었다. 잠시 딴생각에 빠졌는듯 보이는 유천의 모습에 전진이 피식..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였다. "설사..나와 혼례를 시켜주지 않을꺼라해도...정상적인 다른 사람과의 합방이 시급할텐데말야. 더이상 몸이 약해지기전에." "......." 마녀족 중에서도 태어나기 힘들다는 중성인자. 그만큼 그들은 아름다운 존재이기도했고, 또 특별한 존재이기도했다. 그리고...그만큼 생명력이 빈약하기도하다. 전진의 말에 다시한번 곤히 잠자고있는 재중을 돌아다보는 유천의 눈빛이 아련해졌다. 내가......... 내가 널 어떻게해야 좋을까...재중아.....응...? 이런 마음가짐으론 더이상..널 안아줄수도..행복하게 해줄수도 없을것만 같은데............. 니가..아무리 정윤호를 사랑한다해도.... 그리고 내가 그녀석을 원한다는걸 이제서야 깨달았다해도....... 우린............... ..모든 부족들이 천대하는..기껏해야..마녀족일뿐인데..말이야... 유천의 복잡한 심경이 잘 드러나듯 그의 미간이 일그러들었다. 괴로운 표정의 그가 사뭇 안타까운 전진였지만, 자신은 더이상의 말도.. 해줄수가없는 상황이 아니던가. 모든건...유천의 결정이고 선택였다. "......." "......." 유천이 급하게 들어서느라 활짝 열려진 집안문. 그 안으로 불어들어오는 살랑이는 바람이 전진과 유천의 머리카락을 간지럽혔다. 아이들의 떠들고 웃는소리. . . 아낙네들이 수근거리는 정다운소리. . . 남자들이 열심히 일하며 웃는 경쾌한 소리. 계급낮은 마녀족 일지라도 자신들의 삶의터전에 경계선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저 죽은듯 조용히 지낸다면....... 특별하게 위해가 끼칠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냥..이렇게..평화롭게만 살아갈수 있다면....... 아무생각도 없이.......... 재중이 니가 정윤호의 눈에 띄지 않고...... 내가 김준수의 맑은 눈을 끝내 마주보지 않았다면..... 이렇게..괴롭진 않았을텐데..... ..정말.........그랬을텐데.......... "......." "......." 말이없이 그저 우두커니 앉아있는 유천의 곁에 전진은 자신의 몸을 살며시 벽에 기대며, 문밖으로 보이는 마을풍경에 눈을 두고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는지. 정말 끈질길 정도로 앉아서 꼼짝않는 유천였고, 그 옆에서 움직임조차없는 전진였다. 오후가..지나가고....저녁이 오려는지 어둑어둑해지는 시간은 이제 해까지 삼키려 하고있었다. 서서히..마을 어귀를 붉게 물들이며 사라지는 노을에 잠시 고개를 들어 시선을 던진 유천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이나 앉아있어 다리가 저릴법도 했지만, 유천의 얼굴은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 그런 유천을 말없이 전진이 바라보고........ 전진의 앞까지 바싹 다가온 유천의 모습은..무척이나 단호해 보였다....... 하지만, 그 뒤엔 그도 모를 슬픔이 보이는것은 왜인지... "......." "......." 그저 아무말없이 서로의 시선만 교차한채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결국 먼저 그 침묵을 깬것은, 유천였다. 애써 차분해지려는듯한 그의 목소리. "..재중이....." 유천의 목소리에 전진의 눈동자가 일순 움직임을 멈췄다. 그런 그의 시선을 마주보며 유천이 말을 였다. "...재중이.....너에게 맡기겠어." "..!!!" 유천의 자포자기한듯한 말투. 아니. 오히려 너무나 힘이 들 정도로 내린 결정의 확고함때문에 오히려 아무느낌없어 보이는듯했다. 그의 흔들리는 눈동자가...그리고 슬며시 떨리는 손끝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결정..한건가?" 유천의 대답에 전진이 놀란눈을 치켜뜨며 넌지시 다시한번 묻는다. "......." 하지만, 전진의 물음에 아무대답없는 유천. 그것은 곧 긍정을 뜻하기도 하는것이 틀림없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전진의 눈길을 피하며 이내 시선을 아래로 떨구어 버린 유천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우리재중이....내 목숨만큼 소중한 녀석이야." ..하지만....그런 녀석이 하나 더 생겨버린듯해... "누구보다도 잘 지켜주고......" ..사랑이란걸 깨닫게 된 녀석이 있는데..... "행복하게 해준다고 약속해야되. 안그러면 널..죽일지도 몰라." ..차라리...깨닫지 않았으면하는..그런 녀석.......... "......." 유천이 마지막 말을 내뱉으며 전진을 노려봤다. 마치 자신이 한 말대로 그렇게 하지않으면 정말로 죽여버릴듯이... 유천의 눈빛에 전진이 곧 따뜻하게 웃어보이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걱정마. 나도 내 사람은 꼭 지키고 행복하게해줄 자신은 충분히 있어." 전진의 확신에 찬 말투에 다소 안심을 한듯이 보이는 유천이 다시 생각에 잠기듯 잠시 고개를 숙였다. 그런 유천을 전진이 기다리듯 유심히 바라본다. 그리고............... 마침내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린 유천의 표정은 사뭇 아까와는 달리 차가운 얼굴였다. 냉랭한 기운이 흐르는 유천의 얼굴을 바라보는 전진마저 마른침을 삼키고..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린다. 유천이 잠시 흔들리는 눈동자를 고정시키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대신........부탁이있어." "무슨..?" 부탁이 있다는 유천의 의외의 말. 전진의 표정 또한 진지해진다. 그런 전진을 똑바로 응시하며 유천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윤호.........." 마족과 만들어진..인연........ "...내가 죽인다." 내가.....확실하게...끊어............ 차라리..그것이............. 재중이에게도.......그리고.............. ..그리고....그녀석에게도......... 나을테니까. - 미 열(美 熱) 64편 -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은 더 애달파지고.............. 터질것 같은 그리움에............. 네 입술마저.....바싹..타오를것이다............... . . . 첨벙-----. 보름달이 보기좋게 까만 하늘위로 얼굴을 드러내었다. 하지만, 그 달빛이 왜이리 밝지않고..어두워 보이기만 하는지............. 퐁당-----. 손가락으로 욕조안의 물을 퉁퉁 튕기는 작은 움직임. 그 느낌이 재미있는지 연신 반복을 하고있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따뜻한 안정감이 한껏 좋아보이는 모습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욕조 문밖에 서서 커다란 하얀빛 천을 들고 서있던 유천의 목소리. "장난치는거냐..아니면 다 한거야." 자꾸만 들리는 물소리에 유천이 재중에게로 넌지시 질문을 내던졌고, 유천의 그 말에 재중이 순간 손장난을 멈췄다. "우웅...잠깐만...유천형......재중이 아직......" 언제나 목욕하는것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녀석였다. 자줏빛 숲에서 전진에게 무사하게 구출된후 재중은 며칠내내 우울함만을 나타냈었다. 밥을 거르기도 일쑤였고, 말도 잘 하지않으려고 했었다. 물론 유천와의 그 어색했던 일도 원인였겠지만, 시도때도없이 재중은 밖에 나가고 싶어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만 보였다. 그걸 모르는 유천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결심대로 결코 허용될 수 없는 일이지 아니한가. "빨리 나와라 재중아." 부드럽게 말을 건내는 유천의 목소리에 곧 물속에서 첨벙거리며 나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유, 유천형 절대로..재중이 보면안돼...알았지..?" "......." 윤호와 헤어진후로 재중에게 생긴 하나의 버릇. 절대로 맨몸을 아무에게나 보이려 하지않았다. 설사 그것이 예전부터 자신이 목욕하는것을 도와주던 유천이라 하더라도........ 이제는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아마도..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몸가짐을 조심해야 한다는걸.. 본능적으로 알고있는 것일지도................ "......." 유천이 재중의 모습을 보지 않으려 시선을 떨군채 조심히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자신이 들고있던 하얀색 천으로 그의 몸을 감싸준다. "조심해..바닥이 미끄러우니까." 유천이 상냥하게 재중의 손을 맞잡아주며 그를 방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침대에 그를 사뿐히 앉히고는 옆에 살포시 개두었던 새하얀빛 예쁜 옷을 집어준다. "이리돌아봐...형이 웃도리만 입혀줄께." 행여나 유천이 볼까나 앞섬을 꼬옥 쥐고있는 재중의 머리를 헝크리며 유천이 옷속으로 그의 머리를 쏘옥 집어넣었다. "촉감이..좋아..형......재중이..새옷이야...?" 향긋한 향기까지 나는 옷이 좋은지 그제서야 살며시 그 예쁜 미소를 지어보인다. 모두들 자야할 이 밤에 왜 새옷을 입고있는지 생각도 못한채 환하게 웃는 재중. 그 모습에 왠지모르게 가슴한구석이 시려옴을 느끼며 유천이 짧게 '응'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천천히 웃옷을 입혀주고는 나머지 옷을 재중에게 입으라는듯 내민다. 옷을 내민 유천이 곧 뒤돌아 등을 보이고 앉았다. 부시럭 거리며 차분히 옷을 입는 소리가 들리고............. 어디가 앞인지 잘 분간이 안가는듯 머뭇거리자 금새 유천이 뒤를 돌아 알려주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버린다. "......." 유천이 다리를 끌어모아 앉으며 무릎사이로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는 혼잣말을 하듯 재중에게 말을 건낸다. "....미안하다..재중아.........." "..웅...?" 갑자기 들린 유천의 말. 그 말에 재중이 동작을 멈추고 멀뚱이 유천이 있을법한 자리로 고개를 돌린다. "..그날...........그날은...정말 형이 잘못했어......" 자신이 재중에게 실수를 범한날을 떠올리며 유천이 미간을 일그렸다. 하지만, 그저 착하기만 한 녀석은 금새 배시시 웃어버리고............. "...아니야...유천형........재중이두..잘못했는걸........ 형..걱정하게...혼자서...집을 나섰잖아......" 자신이 자줏빛 숲을 나섰다고하면..크게 혼낼줄 알았던 유천였는데..오히려 자신을 꼬옥 안아주던 그에게 고마워하는 재중였다. "......." 재중의 말을 들은 유천의 가슴 한구석이 더 아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안돼............... 너무.....늦어..버렸어.............. "형..?" 순간 아무말이없는 유천이 이상했는지 재중이 나즈막히 그를 불러본다. 그제서야 찡그리고있던 인상을 다시 피며 유천이 곧 옷을 다 입고 앉아있는 재중을 바라봤다. "......." 새하얀 옷................ 물기에 촉촉히 젖어든 얼굴과 까만색 머리카락. 부드러워 보이는 살결. 마치..초야를 기다리는 신부처럼 한없이 곱기만했다. 그런 재중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유천이 우울한 미소를 입가에 담았다. "우리..재중이..새옷입으니까..예쁘구나......" "..우..웅....." 유천의 칭찬을 들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조금은 새침해진 재중였다. ..재중이..이쁜모습............ 윤호한테..보여주고 싶은데.............. 어느새 금방 윤호를 떠올리며 고개를 살포시 내리는 재중였고, 그런 재중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유천이 속삭였다. "형은..늘 재중이가 행복했으면..좋겠어...... 아프지도 말고 항상 웃었으면 좋겠고, 불행한일은 없었으면 좋겠어..." 걱정이 가득담긴 말. 그말에 재중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우울한 얼굴은 감추지 못한다. 윤호가..보고싶다 말하면........... 형한테..........혼나겠지...............? 이리저리 꼼지락 거리기만하는 재중의 손을 맞잡으며 유천이 그 부드러운 살결위에 짧게 입을 맞췄다. "잠시만..기다려." "..형...?" 머뭇거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유천을 불러보는 재중. 하지만, 금새 유천은 문밖으로 나서고 있었다. 달칵-----. 쿵. 천천히..문을 열고 조금은 다급하게 문을 닫자마자 참았던 긴 숨이 터져나왔다. 가슴이...........심하게....요동친다.............. 끼익-----. 발걸음을 옮겨 또다시 문을 열자 한밤중에부는 조금은 싸늘한 공기가 끼쳐들었다. "......." "......." 문을 열자 기다리고 있었다는듯이 바로 그앞에 서있는 사람. 그를 바라보는 유천의 눈빛이 순간 어둡게 가라앉았다. "..들어가도돼." 말끔한 모습을 하고있는 전진을 바라보며 유천이 문에서 비켜섰다. 그에 조금은 긴장한듯한 얼굴을 감추며 전진이 집안으로 들어서고......... "오늘밤은 내 집에서 자도록해." 전진의 말에 유천가..짧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막 걸음을 재중이 있는 방으로 옮기려는 전진에게 부탁하듯 말을 꺼냈다. "우리재중이........." "......." "..우리..재중이....초야(初夜)나 다름없어........." "......." 유천의 말에 이내..전진이 안심하라는듯 웃어보였다. "걱정마. 나도 긴장되긴 마찬가지니까. 소중히 할꺼야. 그리고...내일 아침엔 마을 사람들에게 혼례할 사람이라 공표할꺼니깐." 믿음을 주는 전진의 말에 유천이 이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유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전진도 그제서야 문을 닫으며, 뒤돌았다. 굳게 닫혀있는 문. 그 문을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조심히 연다. 그러자.......................... "..유천..형..?" 사뿐히 침대위에 앉아있는 아름다운 이가 자신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 미 열(美 熱) 65편 - "유천형...??" 아무대답없는것이 이상했는지 재차 확인하듯 묻는 재중의 곁으로 전진이 한걸음 다가섰다. "이런....난..유천이 아닌데..." 그리고는 조용히 웃으며 그의 곁으로 더 가까이 다가선다. "..!!!!!" 이..목소리......... 전혀 낯설지않은 그 느낌과 목소리에 순간 재중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그런 재중을 이해한다는듯이 그의 곁에 앉은 전진이 머뭇거리며, 재중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하지만, 그 손길을 슬쩍 피하며 당황한 표정을 한껏 지어낸 재중이 고개를 두리번 거리며 유천을 찾는듯하다. 그리고..불안한듯 오물거리는 그 붉은입술. "유, 유천형은요..?" 유천을 찾으며 어쩔줄 몰라하는 귀여운 모습에 전진은 그만 피식..웃어버리고 말았다. 어쩌면.................... 정윤호의 마음이 이해가 갈지도................. 자꾸만 다가서는 전진을 피해 옆으로 물러나 앉으며 재중이 자신의 옷자락을 꼬옥 두손에 쥐었다. 그런 재중의 볼을 자신의 두손으로 감싸며 전진이 진지한 얼굴로 나즈막하게 속삭인다. "오늘...유천은..... 오지않아..." "..무슨.....!!!" 재중이 말을 끝내기도전에 갑자기 다가서는 전진의 숨결. 그 숨결에 재중이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려 할때였다. "...아..읍......" 입술을 부드럽게 포개오는 느낌에 금새 말문이 막혀버린다. "..으..읍...." 자신의 입술위에서 최대한 나른하게 움직이는 전진의 입술을 피하려 고개를 이리저리 틀었지만, 뒷목덜미를 움켜잡고있는 그의 힘에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시..싫........ 갑자기 다가와 자신의 입술을 파고드는 전진의 혀끝이 느껴지자 이내 달아나려 바둥거리는 재중. 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진은 이미 그를 서서히..침대위로 눕히고 있었다. "...하..아...." 잠시 떨어진 전진의 입술에 가뿐숨을 몰아쉬며 재중이 자신의 위에 올라와있는 전진의 가슴을 밀었다. "..어..어째서........." 재중의 입술이 달싹이며 미세한 떨림을 보였다. 그 모습이 어찌보면 안타깝기도 했지만, 또 그 반면에 사랑스러워 보이는 이유는 무엇때문인지. 재중의 볼을 쓰다듬으며 전진이 그의 귓가로 입술을 움직였다. "넌 나와...혼례를 치를꺼야...그러니까.........." 전진이 재중의 목덜미에 짧은 키스를 퍼부으며 말을 끊었다. 전진의 말. 그 말에 순간 반항하던 재중의 모든 움직임이 멈추고........... 이내 떨리는 입술을 세게 깨문다. 혼......례............................ ...혼......례...라니!!!!! 예전에 환희에게서 얼핏 들었던 얘기였다. .....그 뜻은................... "아....안....돼....." 재중이 곧 고개를 가로저으며 두팔을 뻗었다. 그리고 전진의 가슴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이봐." 재중의 옷을 거둬올리던 전진이 다시 시작된 재중의 반항에 잠시 벙찐 표정을 지어냈다. 하지만, 그런 전진은 아랑곳하지않고 눈꼬리에 눈물을 매단채 재중은 더욱더 그의 밑에서 벗어나려 애쓸뿐였다. "싫어....싫...!!!..." 자꾸만 자신을 밀어내는 재중. 그런 모습에 조금의 오기가 생겨버린 전진이 곧 재중의 양팔을 붙잡아 위로올렸다. "고집부리지마. 널 위해서라도 이렇게 해야하는걸 모른단 말이야?" 전진이 설득하듯 재중을향해 조용히 말을 건냈지만, 재중은 막무가내로 그의 말은 들으려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듯했다. "..흐윽...흑....." 유천형........혀엉........... 어째서.......... ..어..째...서.................... ..재중이는..그저........ ....윤호가...보고싶을뿐인데.... 짧은 흐느낌을 토해내는 재중을 바라보던 전진의 얼굴이 순간 안타까움에 어둡게 가라앉았지만, 이내 단호한 표정을 지어낸다. "마족따윈....잊는게 좋아." 전진의 손이 재중의 웃도리를 손쉽게 벗겨냈다. "..!!!!!" 그러자 방안에 떠돌던 찬공기가 재중의 여린 몸위로 덮쳐오고.... 그 싸늘한 느낌에 어깨를 바들바들 떠는 재중였다. 붙잡힌 손목때문에 옴짝딸싹도 못한채 그저 사시나무 떨듯이 눈물만 뚝뚝 떨구며 떨고있는 재중의 가슴위로 전진의 손길이 다가왔다. 부드러운 살결...... 마치 아기살결처럼 그리도 달콤할것만 같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그 느낌을 입술로도 느껴보고자 곧 전진이 고개를 숙였다. "..아...." 싸늘한 가슴위로 닿는 뜨겁고도 촉촉한 무언가. 가슴위를 간지럽히는 전진의 입술에 깜짝놀란 재중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흐읏......" ...윤호................. 자신의 목덜미와 가슴을 쉴새없이 탐하는 움직임. 그리고 허리께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손길. "..싫........싫....어.....흐읍..흑...." ...윤....호..................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윤호를 부르던 재중이 자신의 바짓자락에 손을 대려는 전진의 손에 화들짝 놀라며 몸을 틀었다. "싫어!! 놔줘요!!! 싫.....!!!" 그때서야 있는힘껏 더욱더 거칠게 반항하는 재중의 필사적인 움직임. "정신차려!! 넌 정윤호와 이어질수 없다는걸..아직도 모르겠어!!!" 작게 흐느끼면서도 끊임없이 도망치려고 미약한 힘을 쏟아붓는 재중에게 호통을치며 전진이 냉정하게 얼굴을 굳혔다. 하지만, 재중은 그의 외침에 작게 어깨를 움츠리면서도..이내 다시 흐느낀다. "..흐으윽.......갈.......꺼야......." 보고싶어요............... "...재중이는.....히끅.....유...윤호한...테....." 보고싶어............. "..흐...아아...." 재중이 곧 숨이 넘어갈듯 오열하며 바들거리는 손끝으로 전진의 옷자락을 꼬옥 움켜잡고 커다랗게 울부짖을때였다. "..싫...!!!!!" 계속되는 재중의 반항에 입술을 단호하게 깨문 전진의 날카로운 손길이, 그의 옷을 남김없이 벗겨버림과 동시에. "싫어어어어-----!!!!!" ...재..중......!! "!!!!!!!!!" . . . 또옥_또옥__ "......." 어디선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부터..계속해서........ 작은 소음였지만, 그것마저도 날카롭게 신경에 거슬리는것은..... 아마도.......불안한 자신의 마음 때문이리라. 전진을 재중이있는 방안으로 들여보낸것도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짐작 할 수가 없을만큼 모든 신경은 전부 혼란에 빠져있는듯했다. 재중에게 아무런 예고도없이 전진을 들여보낸것.............. 그것은 틀림없이 자신이 재중에게 저지른 또하나의 잘못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몸이 급격하게 약화되는 그로써는 다른 이와의 합방이 필요했고, 또 만약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그런것을 설명하려한들 틀림없이 그 순진한 녀석은 당장에 이해하기 힘들어 할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 윤호를 찾겠지............. "...후우...." 긴 한숨을 내쉬며 유천이 자신의 머리를 두손으로 감쌌다. 재중아......... 형은 적어도 널위해서라 생각하고 있어............... 네가.....똑같은 마녀족의 곁에서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바래........... 그리고..난..............정윤호를 죽인다. 그건 김준수과의 인연을 끊을수 있겠지........... 그럴수............있겠지................ 애써 옳은 결정이라 몇백번이고 곱씹으며 피곤한 눈망울을 살며시 감아 내리는 유천였다. 그러나 이내 그의 얼굴에는 고뇌의 흔적만이 가득하다. "하아!!"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곧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유천. 그런 그가 바깥 바람을 쐬려는 심정으로 문쪽을 향해 걸어가려 할때였다. 벌컥-----!!! "..!!!!!" 갑자기 거칠게 열려진 문. "하아..하아..." 그리고 그 문앞에 윗옷이 반쯤 풀어헤져진 모양새로 서있는 사람. 그의 모습에 유천이 놀란눈을 치켜떴다. "...전....진.......?" 그리고 다급하게 달려온듯한 그를 바라보며 그의 이름을 떠듬떠듬..불러보는데... 놀라서 활짝 열려진 유천의 동공을 마주보며 전진이 가뿐숨과 함께 말을 토해냈다. "..저...녀석.....하아..하아...." "......." "저..녀석.....하아..." "....." "..눈을 떴어." "..!!!!!!!" - 미 열(美 熱) 66편 - "하아..하아..." 푸르스름한 달빛이 오묘하게 빛나고......... . . . 자줏빛 숲에 그 색들이 더욱더 진하게 물들어 있다. 타다다다닥----- 최대한 빨리 달려가길 바라는 걸음은 뛰어도 뛰어도 제자리인것마냥 느껴지고..... 목적지에 발걸음이 다 했을때 그 거친숨은 턱까지 차있었다. "하아...하...." 이마위로 맺혀있던 땀방울이 살랑이는 밤바람에 구슬져 흘러내린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멈출수가없어... "하아...후..우..." 막상 빨리오길 바랬건만.....문을 앞에두고 굳어버린듯하다. 문앞에서 순간 우두커니 가뿐숨을 몰아쉬며 멈춰버린 유천의 등뒤로 전진이 바짝 다가섰다. 당장에 문을 열고 들어가볼 생각을 하지않는 유천. 그런 유천을 전진역시 뛰는 심장을 억누르지 못하고 재촉한다. "어서..안들어가 볼꺼야..?" 전진의 다급한 목소리에 유천은 그때서야 정신을 차린듯 멍한 눈빛을 바로잡았다. 그리고............ 조금씩 경련이 일어나려는 긴장된 손으로 서서히..문고리를 잡아 돌리기 시작했다. 끼_익__ 천천히 돌린만큼 껄끄러운 소음을내며 열리는 문. 그 문이 열리자 또다시 보이는 두개의 방문. 그 중 하나의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 유천이 마른침을 삼키며 느린 걸음으로 열려있는 방문을향해 걸었다. 한시도 흔들림없는 눈빛으로 천천히 방문앞까지 바싹 다가간 유천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방 근처에만 와도 알 수 있었다. 얼마나....달콤한 향내가 나는지............. 풋풋한 과일향처럼 알싸한 향내가..코끝을 스쳐오며..마치 유혹하듯 그리 퍼져나온다.......... 그것이...누구에게서 나는것인지도 짐작 할 수 있기에 쉽게 방안으로 완전히 들어서지 못하는 자신인것을......... 유천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너.......... ..재중이..너............ 정말로............. 심호흡을 한번 길게 내쉰 유천이 드디어 방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뚜벅___ "......." 그리고 아래로 살며시 내리깔았던 눈을 조심히 들어올려 방안을 살펴보는데..... ".........." ...순 ... 간..... ..잔뜩 긴장되어 내쉬던 불안한 숨소리까지...멎어버리는듯했다. 방안을 유일하게 밝혀주는 노란빛 미약한 전등. 그 따뜻한 빛깔아래로...도대체 누가 있는건지......... 유천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 그만.. 동생의 이름을 부르는것조차 잊어버린듯했다. 그만큼......... 침대아래에서 몸을 낮게 엎드려 누워있는 사람은.......... .................................... 자신의 눈조차 의심할만큼 아름다운, 신이만들어낸 하나의 완벽한 피조물였다. 유천의 뒤에 서있던 전진도 그만 눈도 깜빡이지 않은채 뚫어져라 그의 모습을 바라보기에 그지없다. "..하아...." 침대위에서 그대로 굴러떨어진듯 맨몸의 가녀린 허리위로 얇은 침대시트만이 걸쳐져 있을뿐였다. ..땀에 젖은듯 촉촉하게 빛나는 까만빛 머리카락의 모든 끝부분만이 신비한 에머랄드 초록빛으로 변해있다. 그리고 힘겨운듯 바닥을 지탱하고 있는 두 팔은........ 예전에있던 어린티를 벗어난듯 그렇게 유혹적으로 뻗어 불안한듯 떨리고 있었고... 모카빛 피부들은 더욱더 윤을 내며 잡티하나 없는 그의 몸을 훨씬 아름답게 꾸며주고 있었다. 손으로 느껴보고싶은 우아한 허리선. 그 허리를 감싸고있는 침대시트 아래로 드러난 가는 허벅지와 선이 예쁜 종아리.......... "..하...." 언제나 어둠만 지배하던 세상에서 갑작스럽게 벗어난 충격이 상당한지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듯 보였다. 하지만...........그 매혹적인 붉은 입술밖으로 흘러나오는 긴 숨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것은.............. "..재......" 유천이 저려오는 손끝을 앞으로 뻗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재중..아..?" 그리고 나즈막하게 그의 이름을 부르자...... 깊게 숙이고 있던 고개를..들어올려 자신을 바라보는데........... "..!!!!!!!" 재중의 두눈과 마주친 순간. 그만..멍한 눈을 놀란듯이 커다랗게 치켜뜨며 그의 곁으로 쓰러지듯 주저앉은 유천였다. "..하...아...."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 가지런히 정리된 눈썹아래로 부드러운 곡선으로 말려올라간 긴 속눈썹. 그리고....그 음영아래 드리워져있는............. .....까만색................. ..... 흑 .... 요.... 석..... "..재중아......." 아름다운 결정체. 갸름한 얼굴에 매력적으로 생겨버린 짙은 쌍커플. 도도한듯 살며시 올라간 눈꼬리와 이제서야........보게되는......... 그 까만동공의 신비함. 그 커다란 동공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대로 이 아이에게 빠져 버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될만큼............아름다운 눈. 마치 까만빛의 눈물을 담아낸것처럼........... 유혹적이면서도........강아지처럼 그리 순진해 보이기도했고......... 또한 슬픔을 담아낸듯 초연해 보이기도 했다. "...재중..아..재........" 감격의 순간였다. 울컥 밀려오는 눈물에 이름을 내뱉기가 무척이나 힘이들었다. 하지만...이내 유천의 손은 자신을 바라보는 재중에게 뻗어있었다. 익숙한 목소리. 어둠뿐였던 곳에서 언제나 자신을 지켜주고자 노력했던 목소리. 눈물에 가득찬 유천의 눈을 마주보며 재중이 입술을 떨었다. 자신에게 느껴지는 몸의 위험을 깨닫고 간절하게 윤호를 불렀을뿐인데........ 그를 애가타게 찾아 울부짖었을뿐인데............. 자신은 어느샌가....세상의 빛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지금은.......... 자신의 하나뿐인 형 유천의 다정한 다갈색 눈을 마주하고 있다. "..유......." 재중이 흔들리는 까만동공을 움직이며 유천의 얼굴을 바라봤다. "...유..천....형...?" 와락-----!! 재중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유천은 그를 거칠게 끌어안았다. "..유천형..?" "..그래..." "..유천형이지...?" "...응....." 자꾸만 불안한듯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재중. 그의 물음에 목까지 차오른 눈물을 삼키고 연신 대답해 주는 유천. 유천의 따뜻한 손길. 그리고 그의 상냥한 목소리에 재중은 그제서야 목놓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흐윽.....흑......" 유천의 옷자락을 꽈악 붙잡자 후두둑 떨어져 내리는 눈물들. "..재중..아...." 그의 이름을 아련히 불러보는 유천의 눈에도 참을 수 없는 눈물이 터져나왔다. 그런 유천의 등을 재중이 작은 손을 말아쥐어 투닥거리며 때린다. 아무말없이 잠시 기다리라더니...이내 전진을 방으로 들여보낸 유천을 원망이라도하듯이..... 그렇게 미약한 힘으로 투닥거렸다. "..흐으윽.....어...째서........어..째...서........" 그런 재중을 더욱더 꽈악 끌어안아 보지만... 그는 연신 흐느낄뿐이다. "...ㅁ..ㅣ..워......" ..형..나빠.......왜...재중이를........ ".....미...워.....유천..혀..ㅇ...." 아이처럼 엉엉 울어버리는 재중을 끌어안은채 유천은 아무말없이 그의 얕은 주먹질을 받아내고.......... 행여나 입을 열면 흐느낌이 새어나올까 그저 두눈을 꼬옥 감은채 재중의 등뒤로 눈물만 떨굴뿐였다. "...흐으윽....흑....." "재중아...재중아....재중......." 그리고..그런 형제의 뒤로는 그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차마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시선을 다른곳으로 돌리며 서있는 전진이 있었다. 미 열(美 熱) 67편 - 달칵-----. 작게 문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이내 작은발이 빼꼼히 들어선다. 그 빨간색 귀여운 신발에 침대위에 앉아있던 창민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민님..부르셨어요..?" 짧막하게 인사하며 빙그레 웃는 환희의 얼굴에 창민도 곧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아....환희는 못본사이에 아주많이 컸구나..?" 그대로인듯 보이는 키와 여전히 동안인 얼굴. 하지만, 창민은 낙천적인 성격인 그답게 오랜만에 대하는 환희에게 듣기좋은 말을 서슴없이 꺼내놓았다. 그런 창민을 모르는바가 아니기에 그의 칭찬에 키작은 환희의 얼굴위로 더욱더 환한 미소가 어리고......... 창민은 곧 살짝 열려진 방문틈 사이로 자신의 방문앞을 지키는 병사들을 흘낏 쳐다봤다. 그리고는 이내 그들에게 씨익 장난스레 웃어보이고는 살며시 문을 닫는다. 쿵-----. 커다란 문이 창민의 손길에 금새 닫혀버리고 환희는 그런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을뿐였다. "여기앉아." 창민이 의자를 건네며 환희에게 앉기를 권유했다. 환희가 창민의 말에 따라 가볍게 의자위로 올라앉자, 창민이 기다리고 있었다는듯이 달콤한 향이 나는 차한잔을 건낸다. 그것을 작은 손으로 받쳐든 환희가 두눈을 동그랗게 치켜뜨며 창민을 바라봤다. "창민님은 언제 근신명령이 풀리세요?" 윤호의 명령으로 감옥에서는 빠져나왔지만, 계속해서 방안에만 있어야하는 창민이 안타까운지 환희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말에 창민이 금새 개구지게 웃어보였다. "갑갑하긴..하지만....그 구질구질한 감옥보단 백배낳지. 그리고..내가 널 보자고 한것도..내 누명을 풀기위해 도움을 얻고자 한거거든?" "..네...?" 창민의 뜬금없는 말. 그 말에 환희가 호로록..마시던 차를 탁자위에 사뿐히 얹어놓으며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환희의 눈동자를 마주보는 창민의 눈빛이 어느새 진지하게 바뀌어간다. "요즘..윤호가 힘들어하지? 그 재중이란 아이때문에.... 얼핏 듣자하니..그 아이와 형을 내보냈다고 하던데." "아아..." 창민의 말에 곧 환희의 얼굴이 우울하게 어두워진다. "......." 재중의 말이 나오자 이내 고개를 숙여버리는 환희를 창민이 조심스레 바라봤다. 한동안 조용히 말이없던 환희가 머뭇머뭇 숙였던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곧 눈물이 뚝뚝 떨어질것같은 눈망울로 말을 꺼낸다. "제가 보기엔..많이.....힘들어 하시는것 같지만........ 드러내지 않으시려 하는것 같아요....... ...저도.....재중님이 많이 보고싶긴..하지만...말을 꺼낼수가......" 재중이 무척이나 보고싶은지 환희의 눈동자엔 그리움이 가득 서려있었다. 그런 환희의 대답을 듣고있던 창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어린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윤호이는 족장의 신분이야. 마녀족이란 신분의 아이를 진정 사랑해서 정실로 맺는다는것 자체가 지금으로선 힘들어. 그리고 개인보단 부족일을 생각해야하는게 그가 짊어진 짐이니까..할수없지." 창민의 차분한 말에 환희가 동의하듯 입술을 꾸욱 다물었다. "그래서 내가 너에게 부탁하려는거다." 창민이 환희를 바라보던 따뜻한 눈빛을 단호하게 빛내며 아까보다 한층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읍조린다. 평소에는 장난기많은 그의 목소리가 나즈막하게 바뀌며 눈빛또한 날카롭게 변하자 그제서야 환희는 그를 긴장된 얼굴로 마주봤다. 창민이 환희의 어깨에 커다란 손을 얹으며 행여 혹시나 누가 들을까 그의 귓가에 낮게 속삭인다. "시간 틈틈히 유리뒤를 감시해주지 않으련?" "네?!" 창민의 말에 환희가 동그란 눈을 커다랗게 치켜떴다. 그런 그에게 손가락을 입술에 대보이며 조용히 하라는듯 창민이 눈가에 힘을줬다. 그러자 곧 환희의 놀란 표정이 누그러들고......... "내 측근들에게 부탁하려했지만, 너무나 눈에 띄어서 말이야. 그나마 윤호의 몸종을 맡고있는 네가 확실하게 더 조심스레 감시할수 있을꺼야." "하지만..어째서..." 창민의 말에 환희가 모르겠다는듯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창민이 심각했던 표정을 편안하게 바꾸며 빙그레 웃어보였다. "유리가 얼마나 못된 아이인지 밝혀내지 않으면, 윤호나 재중에게 해가 될꺼야. 그래서 부탁하는거니 들어주겠어?" "......." 유리가 윤호의 정혼자로 정해졌었던 사실도 탐탁지 않았던 환희였지만... 정확한 내막을 모르는 어린 그로서는 걱정이 될 뿐였다. 하지만, 재중과 윤호에게 해가되는 사람이라면.......... "......."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입술을 뾰족이 내밀고는 잠시 생각을 하는듯 보이는 환희가 이내 다시 숙였던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창민님. 나쁜짓을 하나 안하나 제가 잘 보고선..윤호님이나 창민님께 알려드리겠어요." 환희의 결심에 찬 표정에 창민이 소리내어 웃으며 그의 머리를 헝크러뜨렸다. 그리고 여유로운 얼굴로 환희의 이마위에 살포시 입맞추고는 빙그레 웃었다. "귀여운 녀석. 고맙다 환희야." "..///////.." 창민의 따뜻한 입술에 환희의 얼굴이 금새 폭팔할껏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 . . 시끄럽게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를 무시하고는 고요한 침묵아래 잠시 아무말없는 유천을 전진은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리고는 방금전 자신이 유천에게서 들었던 말을 곱씹으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니까......아무 도움이 필요없다?" 전진의 반문에 유천이 그제서야 공허한 눈빛을 치켜올린다. "그래. 오히려 나 혼자가 편해. 그곳은 경비가 삼엄해서 같이 행동하면 위험해." 유천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꺼내며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짧은 단검을 하얀색 천으로 윤이나게 닦아내리기 시작했다. "..후우..." 물론 유천의 말이 맞긴했다. 마족들...특히 정윤호의 거처를 두세명이 들어가는것은 확실히 무리였다. 꼬리잡힐 확률이 거의 백퍼센트에 가깝기에 발견되는 즉시 모두 사살되겠지..... 그래서 정윤호 암살계획에 해당된 몇명 중에서도 서로 잠입하려는 사람이없어 머리가 아플지경였다. 결국 자신이 가려고 했건만..............유천이 기어코 나서겠다고 한다. 전진 자신은 지켜야할 식구가 없기에 당장에 죽어도 상관없다지만, 유천에겐 재중이란 책임져야할 동생이 있지않은가. "동생을 두고가도 상관없겠어? 위험해. 날렵한 몸놀림이 아니면 잠입할수 없다는 말이야." 전진의 걱정어린 눈동자에 유천이 단호한 눈을 들어올렸다. 순간 머릿속으로 지나가는 준수의 모습. 그리고 약해져버린 몸으로 침대에 누워있을 재중의 모습. 하지만....이 모든건...................... 모두를위한 일. 아니. 꼭 그래야만한다고 자기 자신을 달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족의 그늘에서 벗어나기위한 마녀족을 위한 일이라고... 자신의 동생 재중을위한 일이라고... 또한........................... 다른 더 좋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야할... 착한 그녀석을위한 일이라고...믿고싶었다. "충분히 할 수 있어. 그리고......." 유천이 다시 아래로 시선을 떨궜다. "...살아 돌아올 수 있어." 유천의 말에 전진이 착잡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궁금하다는듯 질문을 던졌다. "정윤호에게 네 동생을 줘야겠다는 생각은 안해봤어? 저 아이가 그를 그토록 사랑하는데." 전진의 말에 순간 유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 하지만, 이내 자신이 빛나게 닦아놓은 단검을 칼집에 꽂아 넣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둘이 될 수 없는걸 잘 알고있어. 마녀족과 마족의 신분차가 얼마나 나는지도 말이야." 그래...... 그래서 나도 그 여린 녀석과 맺어질 수 없지....... 내가 한 결심은 결코 변하지 않아. "재중이녀석은 어린아이처럼 솔직한 녀석이라 죽을때까지 정윤호만 찾을지 몰라." 하지만..난 견딜 수 있어.......... 그저..마음속으로만 그녀석을 그리겠지...... 정윤호를 죽인 날... 원망할 그녀석을............... 유천이 잠시 눈을 감으며 준수의 하얀얼굴을 떠올렸다. "...후...우....." 그리고 잠시 후에 다시 눈을 뜬 유천의 얼굴은 냉철할 정도로 차분한 기운만이 느껴졌다. 얼음처럼 냉랭해진 유천의 갈색눈빛.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전진을 향해 마지막 말을 던졌다. "내가 죽이려는건....마족의 족장 정윤호가 아니라, ...재중이가 사랑하는 남자 정윤호야." - 미 열(美 熱) 68편 - 벽 한쪽에 위치한 작은 거울을 들여다 보기를 여러번... 그 거울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는것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는 자신의 두 눈자위를 살며시 쓸어보는 조심스런 손놀림. 곧 붉은입술을 깨물고는 얼굴을 살짝 붉힌다.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살짝 곁눈질로 또 한번 거울을 바라보고... 그 모습이 사뭇 무언가 신기한것을 본듯 어린아이같은 모습였지만, 처음으로 자신의 얼굴을 살펴보는 재중으로서는 당연한 일였다. 거울속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재중이 자신의 분홍빛 혓망울을 살짝..입술밖으로 내보였다. 그리고는, 얇은 검지손가락 두개로 자신의 눈썹을 쭈욱 늘려보기도한다. 하지만..이내 그의 얼굴에 비춰진건 우울함이였다. ...예........... .....예쁘지...않..아.......... 둥글둥글하고 선이 부드러운 유천의 얼굴과는 달리, 어딘지 모르게 뚝뚝 끊어진듯한 자신의 얼굴선 하나하나에 실망을 한듯하다. "..휴우....." 그의 입에서 깊은 한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렇게..예쁘지..않으면..... ..윤호..는............ 재중이 두 눈동자를 커다랗게 뜨며 자신의 손가락 끝을 바라봤다. 이 손끝에 닿았던 윤호의 느낌은 분명..따뜻했다. 아주..뜨거운것 같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강함이 느껴지는.... 분명..자신의 느낌이 맞다면 윤호도..아주 예쁠텐데...... 그리고 자신의 두 눈동자 색깔은............ "......." 자신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재중이 고개를 꺄우뚱했다. 이런걸.....무슨색이라...할까....? 색깔에 관한 단어는 알았지만, 막상 실제적으로 본적이 없는 재중이 생각에 잠긴듯 까만색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갸우뚱한 얼굴을 하고있던 재중이 이내 입술을 삐죽이 내밀고는 유천을 찾기 시작했다. 형한테..물어봐야지..... 나중에 윤호에게 말해줘야해....... 재중이 눈동자색은....어떤색이예요..라고........꼭............. 재중이 마치 별천지에 와있는듯한 착각속에서 이리저리 방안을 둘러봤다. 눈이 안보이는 캄캄한 어둠속에서는 그저 느낌만으로...주전자도 만지고, 침대도 만지고...문을 여닫곤했는데..... 막상 앞이 보이자 안보일때보다 더 당황이되는듯. 재중이 고개를 휘휘 저으며 방안을 둘러보고는 그제서야 유천이 없는것을 알았나보다. "..웅?" 자신이 오전내내 침대에 누워있는동안 어디나간듯 보였다. 재중이 곧 발걸음을 옮겨 집밖으로 유천을 찾아 나서려 할때였다. 달칵-----. 재중이 열기도전에 먼저 열린문. 그 문을 열고, 유천이 걸어들어왔다. "혀엉." 재중이 환하게 웃으며 그런 유천의 곁으로 바싹 다가섰다. "어....재중아." 침대위에서 누워있을줄 알았던 재중이 일어나있자, 놀란듯한 눈치의 유천. "혀엉....어디갔었어...." 재중이 살며시 눈꼬리를 휘어내리며 유천에게 투정을 부리듯 칭얼댔다. 오랜만에 보는 재중의 예쁜모습에 기분이 좋아야 하건만.... 오늘만은 가슴한구석이 싸하게 시려왔다. 아니... 앞으로도 계속 그래야할지 모르지만................. 벌써 어둑어둑한 저녁 시간이 되어버린듯, 해는 그 모습을 산너머로 감춘 후였다. "언제 일어났어?" 유천의 물음에 재중이 작게 '얼마안됐어'라고 대답한다. 어딘지 모르게 들떠있는듯 보이는 재중의 모습에 유천은 착잡한 심정을 감추고는 자신의 한손에 들고온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웅...? 형 어디가..?" 자신의 눈동자 색을 물어본후 윤호를 보러가도 되겠느냐고 조심스레 말해볼 생각였던 재중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까만색 단복의 윗도리에 머리를 껴넣으며 유천이 대답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가는데..?" 재중이 바짝 유천에게로 다가서며 물었다. "......." 하지만, 유천은 재중에게 눈길한번 주지않은채 무언가 계속해서 바쁘게 움직일 뿐였다. 허리춤에 긴 장칼과 짧은 단도를 꽂은 유천이 자신이 준비한 작은 주머니 여러개를 오른쪽 허리춤에 찼다. "..혀..엉.....유천..형.... 진짜...어디가는데...응?" 왠지모르게 단호한 분위기가 풍기는 유천을 불안한듯 바라보며 재중이 걱정스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잽싸게 준비를 다끝낸듯 보이는 유천이 작게 뚫려있는 창문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두워......비가 올듯이.............. 마치........ 내가 그 녀석을 안았던..날처럼.....많은 비가 쏟아질것 같아..... 유천이 입술을 깨물며 곧 자신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는 재중을 쳐다봤다. "........." "........." 마치 유천의 입에서 무슨 얘기라도 나올것같아 재중은 자신의 입술을 꾸욱 다물고 있을뿐였다. 까만색 아이같은 눈동자... 아무것도 때묻지않은.......깨끗한...눈동자............. "....." "..!!" 유천의 입술이 이내 재중의 이마위로 빠르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형?" 유천의 따뜻한 입술에 재중이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떠올린다. 그러나, 그 잠깐 사이에 유천은 벌써 문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유천형!!!" 왠지 모르게 며칠전부터 기운이 부쩍없는 다리로 유천의 이름을 부르며 재중이 그를 쫒았다. 하지만................. 쾅------!! 재중을 앞에두고 거칠게 문을 닫아버린 유천였다. "형?!!" 재중이 굳게 닫힌 문고리를 비틀었다. 그렇지만, 이미 밖에서 걸어 잠궜는지 열리지않는 문. "유천형..어디가!!! 응?!" 냉랭한 기운이 돌 만큼 차가운 바람을 일으켰던 유천의 모습과는 달리, 자신의 이마위에 닿았던 따뜻한 입술의 감촉....... "형..!!" 재중이 문고리를 당기려 안간힘을 쓰자, 문밖으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먼저..자. 형 내일 아침에나 들어올꺼다." "..!!!" 유천의 말에 순간 문고리를 잡아당기던 재중의 손이 멈칫했다. 가슴이...........뛰어.............. "유천형!!!!!" 이내 사라지는 유천의 발자국 소리에 다시한번 커다랗게 그를 부르는 재중였다. 형........ ..유천..형............ 곧 눈물을 뚝뚝 흘릴것처럼 재중이 코끝을 찡그렸다. 두근..두근.............. 문으로 들어서는 유천을 바라볼때부터 이상하게도 쿵쾅거리는 심장을.... 주체 할 수가 없다............. 이 문을 열지않으면 안될것같은..느낌에................. - 미 열(美 熱) 69편 - 단지 궁금함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 순진한 녀석은 어쩌고 있을까.............. 만약..자신의 형 박유천이 정윤호를 죽이러 가는날이 바로 오늘이라고 말한다면...... 정윤호에대해서 맹목적인 사랑만을하는 그 녀석은...과연....어떤 표정을할까.... 어떻게 나올까............... 애써 자신이 지금 그의 집앞으로 온 이유를 그저 궁금함이라고 치부해 버리며, 전진이 여전히 쿵쾅거리는 시끄러운 문을 바라봤다. 연신 유천의 이름을 부르며 무작정 안에서 문을 얼마나 두드리는지..... 아까부터 서있던 전진도 질릴만큼 끝이없었다. "혀어엉!!!" 꽤나 다급한 목소리가 문 밖을 삐집고 들려왔다. 전진이 짧은 한숨을 내쉬며 계속해서 유천의 이름을 부르는 재중에게 조용히 말을 건냈다. "너희 형...오늘 들어오지 않을꺼야." "..!!!!!" 갑자기 문밖에서 들려온 낯익은 목소리에 재중이 순간 문을 두드리던 손을 거뒀다. 그리고는 그 목소리에 주인공이 누구인지 빠르게 생각해 내고는 다시한번 문을 두드렸다. "형이 어디갔는지 알아요? 문 좀 열어주세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재중이 큰소리로 외쳤지만, 전진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않는다. ..........과..연..................... "제발 문 좀 열어주세요!!!" ..이 녀석은 어떻게 나올지................. 우두커니 문밖에 서서 아래로 향하고있던 시선을 들어올리며 전진이 나즈막히 속삭였다. "너희 형이....어디갔는지....너 모르지...?" 차라리...나중에라도 알게될꺼, 유천이 스스로 괴롭게 토해내느니.. 자신이 말해주는게 낳다고 합리화 시키고있는 스스로를 비웃으며 말을 잇는다. 전진의 목소리에 이내 귀를 귀울이며 조용해진 재중. 그런 재중과 문 하나를 사이에두고는 전진이 낮게 읍조렸다. "오늘...정윤호는..... 죽을지도 몰라." "..!!!!!!!" 문밖으로 들린 전진의 말. 그 말에 재중의 눈이 충격을 받은듯 커다랗게 변했다. 무슨............... 재중의 입에서 가뿐숨이 터져나왔다. ..윤호가.............? 바들바들 떨리는 손끝... ....윤..호가........?!!! 재중이 이내 흔들리는 눈동자의 갈피를 잡지 못한채 입을..벙긋거렸다. 그리고 너무놀라 잘 나오지않는 목소리를 겨우 짜내어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그게...무슨..........윤호가............." 하지만, 이내 그 속삭임은 조금씩 외침으로 바뀌고 있었다. 쾅쾅쾅쾅---!!!!! "문 좀 열어줘요!!!! 어째서..윤호가..!!!!" 쉴새없이 쿵쾅거리는 문을 바라보며 전진이 무표정을 일관했다. 도대체 자신은 무엇이 보고싶어 이렇게 잔인한 말을 서슴없이 꺼내는지..... 쾅쾅쾅쾅---!!! "제발...!!!" 재중이 아무반응없는 문밖에 전진에게 지친듯 깊은 숨을 내쉬었다. "하아....하........." 갑자기 숨이 가빠오며 열이 오르기 시작하는지 그의 이마위로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힌다. 그리고 힘이 쭈욱 빠쪄버린 두 다리. 털썩----. 재중이 온 몸에 기운이 빠진듯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끊임없이 불안하게 움직이며 방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아니야......... 그럴리 없어...........윤호가.............. .....윤호가....죽는다니........... 다시는...볼 수 없고, 안길수도 없잖아............. 너무 보고싶어 울어도....정말 볼 수 없는거잖아......... 그런게 바로..죽는다는거잖아............. 재중이 눈가에 눈물을 매단채로 옷자락을 꼬옥 틀어쥐었다. 그리고는 코끝을 찡그리며 이내 눈물을 떨구려고 할때... 바로 그때 그의 눈에 보인 의자. 순간 재중이 흔들리던 눈동자를 멈춰 의자를 바라보고는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섰다. 이내..조금은 무거운듯 보이는 나무의자를 여린 두손으로 비틀비틀 끌어오며, 재중이 우뚝 선곳은 바로 창문 앞. 작아보이긴 했지만, 자신은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을것만 같았다. 싫어...... 그런건..싫어............ 다시는....못보다니............ ..싫..어....!!! 재중이 눈가에 눈물을 두손으로 훔치고는 의자위로 조심스럽게 올라섰다. 조금은 두려웠다. "......." 하지만, 재중은 지금 자신이 이렇게 앞을 볼 수 있게 된것에 감사해하고 있었다. 어떤수를 써서라도 윤호에게 갈 수 있을테니까..... 꼭..그럴테니까. 재중이 여린두팔에 힘을주며 창틀을 잡고는 온힘을 다해 훌쩍 뛰었다. "..아..!!!" 하지만 순간 느껴진 그 아찔함에 두눈을 꼬옥 감아버린다. 그리 높은 위치도 아니었다. 자신의 키보다 조금 높은 위치에있는 창문인데.......... 그렇지만, 생전처음 두눈으로 높이라는것에 실감을 한다는건 쉬운일이 아니었다. 어..어떻게해........... 마치 바닥으로 뚝 떨어질것처럼 위태롭게 쉽게 내려서지도 못하는 자세로 매달려버린 재중이 두려움에 바짝 움츠려 있을때였다. 끝내 두눈을 질끈감고 그냥 무작정 뛰어내리기로 결심한 재중의 귀로 아련히 들려오는 목소리. "그대로 내려와. 받쳐주겠어." 질끈감은 눈을 살며시 떠보니, 전진이 두팔을 조심스레 벌리고 있었다. 재중이 입술을 꼬옥 깨물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전진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윤호에게 가려는 자신을 몇번이나 방해했던 사람. 하지만........... 하지만, 지금은 이곳에서 나와야지만 윤호에게 갈 수 있다. 이내 생각을 마친듯 보이는 재중이 조심스럽게 두손을 전진에게 내밀었다. 그리고는 다시한번 두려운듯 두눈을 꼬옥 감는데..... 그런 그의 모습에 전진이 재중의 가슴과 허리를 두팔로 부드럽게 감싸고는 잡아내린다. 툭---. 전진의 팔이 닿았다고 생각하자마자, 발바닥이 바로 땅위로 닫는 느낌에... 재중이 살짝 감았던 눈을 떠올렸다. "하아...." 그리고 곧 느껴지는 안도감.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자신의 두팔을 전진이 잡고있다는 생각에 재중이 깜짝 놀라며 바둥거렸다. "놔, 놔줘요...!!!" 재중이 안간힘을쓰며 전진의 팔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런 재중을 바라보는 전진의 눈빛이 아련해졌다. 역시나..무모한 녀석였다. 아무것도 안보이는 상태에서 숲길을 나설때부터 알아봤지만.................. 아무말없이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전진에게 위협을 느낀 재중이 이내 그의 손을 세게 물었다. "..!!!" 따끔거리는 아픔이 손등으로 전해졌지만, 이내 눈썹만 살짝 찡그린 전진이 재중의 손목을 고쳐잡았다. 얼마나 있는힘껏 물었는지 불그스름한 자국이 남은 손등였지만, 전진은 상관없다는듯이 재중의 손목을 잡은채 어딘가로 걷기 시작했다. "놔줘요!!! 싫어..!!!!" 자신을 끌고가는 전진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려 끝까지 바둥거리는 재중. 그런 재중을 흘낏 바라본 전진이 낮게 속삭였다. "따라와. 정윤호가 있는곳에 데려다 주겠어." "..!!!!!" 뜬금없는 전진의 말에 놀란듯 재중의 두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 자신을 못믿겠다는 생각을 갖고있는지 순간 입술을 꾸욱 깨무는 재중에게 전진이 억양없는 목소리로 말을 건냈다. "믿지 않으려면 말고." "......." 어떻게할까..머뭇머뭇 고민하는 모습. 하지만, 이내 진지해 보이는 전진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본 재중이 고개를 조심스레 끄덕여 보인다. 재중의 허락이 떨어지자 곧바로 걸음을 옮기는 전진였고, 그의 뒤를 놓칠세라 다급히 따라붙는 재중였다. - 미 열(美 熱) 70편 - 한치앞도 제대로 분간이 가질않는 방안. 오로지 침울 할 정도의 고요함만이 그 넓은 공간을 휘감고 있었다. 침대에 앉아있던 윤호가 조용히 창문을 바라봤다. 커다란 창으로 언제나 그의 방을 은은히 비춰주던 달빛이 숨어버린 어두운 밤였다. 달빛이..........그 빛을 보이지 않아................ 윤호의 눈가가 살풋이 일그러들었다. 어떻게...해야 하나........... 자신조차도 아이러니하게 만들었던... 아니 미칠정도로 고민하게 만들었던...단 한사람의 존재를... 어떻게 결정지어야할지...... 녀석을 떠나 보낸후 하룻밤도 마음편히 잠든적이없는 그의 눈가로 피로가 가득하다. 눈을 감고자하면............. 복잡할 정도로 터질껏같이.. 머릿속에선 그대로 챗바퀴 굴러가듯 지워지지않는 잦은 영상들이 그를 사정없이 괴롭혔다. 그리고......그립게 만들었다. 아련히 퍼지는 목소리에 몇번이나 원로회의 도중에도 뒤를 돌아보고 문쪽을 흘깃거렸는지............. 그리고 그 환청에 돌아본 시선끝에는 우습게도 가슴시림만이 가득했다.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정도로 우습게 변해있었다. 지금의 자신은........ 그 아이가 아니면 아무것도못할 정도로..... 꼭 눈앞에 보여야지만, 안심이 될 정도의 지독한 소유욕과...... 그리고....할 수만 있다면 다시한번 그 여린몸을 안고싶은....미칠듯한 욕망과..... 또...찢어질듯....가슴아픈..........이 마음으로........... "..하...!!" 물론 걱정을 담은 준수의 말을 잘 알고있었다. 하지만, 그새 수척해진 자기자신보다 윤호가 더 아파보인다는 그 말..... 그 말은 윤호에게 있어서 비수같은것였다. 그 아이가 없음으로 망가질때로 망가져버린 속마음을 들켜버린것. 단 한번의 결정을 결코 바꾼적없는 강인한 윤호의 의지에...... 깊이 상처를 남겨버린..말였다. 그러나 아니라고.....부정하기엔......스스로가 지쳐가고 있었다. 그렇지만......맞다고 하기에도 늦어버리지 않았던가. 그렇게..아프게 울어대는 녀석을 매몰차게 몰아내 버렸다. 그렇게..끝까지 자신의 이름을 외치던 녀석을 냉랭히 뿌리쳐냈다. 그리고.....이렇게.............. 뒤늦게...쓰라린 후회감과 죄책감만 맛보고있는 자신은... 참으로 어리석었다. ".........." 자신의 얼굴을 두손으로 가려버린 윤호가 한참동안을 그렇게 꼼짝않고 우두커니 부동자세를 지켰다. 하지만, 이내 어두운 먹구름이 방안을 내비치며 지나갈때에... 다시 고개를 들어올린 그의 눈동자에는 단호함이 서려있었다. "......." 살짝 내리깔린 윤호의 동공이 쉽게 움직임을 나타내지 않는다. 인정 할 수밖에 없는것인가.............. 족장으로서의 자존심을 꺽어버리고.............. 금방이라도 그리움에 지쳐 죽을것같은 자신을위해........ ...그 아이를 품에 안아야 할것인가......... "......." 내 앞에............. 데려다 놓고 싶다......... 그 볼을 만지고 싶어.......... 그 입술을................ 그리고 그 눈동자를.....내가.............내가................. 마음을 인정하지 않는것은 엄청난 고통이 뒤따르고 많은 괴로움을 느끼게 한다. 벗어나려하면 할 수록...끊이없이 갈망하게 되는것을..... 왜 깨닫지 못했는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해도...결코 사라질수 없는것도 있다는걸..이제 깨달았다. "...재......" 윤호가 여지껏 다물고 있던 입술을 달싹였다. "...재중...아........." 그토록 내뱉기 힘들줄 알았던 이름을 짧막히 반복하며..결국은 초조한듯 입술을 깨문다. 그리고 여지껏 자신을 자괴감에 빠지게했던 생각들을 모두다 정리하듯, 있는힘껏 주먹을 틀어쥐는 윤호였다. 내손이 닿는곳에.. 널.....붙들어놓고 싶어........ . . . _타악__ 힘없는 손길로 찻잔을 가볍게 내려놓은 준수가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봤다. 제대로 먹지못해 말리버린 입술을 그나마 풀잎향이 나는 차 한잔으로 축였다. 하지만...이내 다시 바싹 말라버린 준수의 입술이, 그가 지금 얼마나 힘든 상태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달을 가려버린 먹구름. 비가 올것같다. 이젠 그리움도 익숙해져 버린듯 더이상 울지 않는다. 아니. 가슴속 깊이에는 아직까지 조금도 떨치지못한 사랑이 있기에 쉽게 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유천씨............ 습관처럼 되어버린 마음속의 이름이 입밖으로 잘 흘러나오지 않았다. 계속해서 지쳐가요.......바보같이........... 유천씨는.......행복할텐데.............. 재중씨와............. ..부디...그래야....할텐데............ 애달픔이 한껏 묻어나는 슬픈미소를 입가에 살풋이 띄운 준수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나 아름다운 달빛을 좋아하는 준수였지만, 오늘같이 먹구름이 널려있는 밤하늘 아래를 걷고싶은것은...아마도 유천에대한 끝없는 그리움에서 나오는것였다. 비가오면.............. 유천에게 가려고 내달렸던 그 길을 그대로 걸으면....... 그의 품에 안겼던것이 행여나 생각날까............ 기억의 그 작은부분이라도 가슴속에 다시한번 새겨넣고 싶음이리라. 준수의 발걸음이 밖을 향하려는듯 문쪽으로 옮겨졌다. - 미 열(美 熱) 71편 - 사람의 그림자 조차도 구분하기 힘들정도로 어두운밤. 희미한 달빛 조차도 내비치지 못하게 까만 먹구름이 하늘위로 잔뜩 깔려있었다. 그리고 비가오려는지 아까부터 간간히 쳐대는 천둥은 온몸이 오싹 떨릴만큼 두려운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우르르르릉------! 휘익---. 턱-. 그리고 그 소리를 기다렸는지 천둥이 치는것과 동시에, 높은 성벽에 갈고리 밧줄을 힘껏 던져서 걸어놓는 검은 그림자. 단단하게 걸렸는지 여러번이나 팽팽하게 당겨본 그 그림자가 이내 자신이 쓰고있는 까만 복면을 다시한번 어루만져본다. 그리고는 튼튼한 밧줄이 자신의 몸을 잘 지탱해 줄것같자, 곧 서서히 벽을 타고 가벼운 몸놀림으로 그곳을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후우." 비가 쏟아지기전에는 성벽을 넘어야했다. 마족들과의 싸움을 대비해 언제나 마을에서 주기적으로하는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던걸 속으로 감사해하며 작은 한숨을 내쉰다. 전진과 다른 이들이 알려준대로 확실히 성벽은 뒷쪽보단 앞쪽이 더욱더 경비가 느슨했다. 정문쪽에만 열댓명이 드문드문 서있을뿐 성벽 주위로는 빈자리가 꽤나 컸다. 아마도 이렇게 대범하게 앞쪽을 노리는 사람들이 없을꺼라 추정한것일테지..... 마침대 성벽 꼭대기에 올라선 유천이 아래쪽에있는 경비병들의 눈치를 살피며 낮게 몸을 낮췄다. 그리고 나무숲이 무성한 정원뜰이 내려다 보이는곳으로 조심히 몸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사사사삭-----. 스산한 바람소리에 나뭇잎들이 작은소음을내며 부딪끼고......... 마침내 그 틈을 틈타 재빨리 밧줄을 반대방향으로 내려 단번에 아래로 내려서는 유천였다. 터억. 작은 발소리 조차도 조심해야하는 상황. 복면사이로 드러난 매서운 눈으로 이곳저곳을 살피며, 이내 유천이 예전에도 몇번 흘깃 눈으로 봐둔적이있는 숲길을 가로질러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숲속 구석에 위치한 자신이 머물던 거처로 잠시 눈길이 향하는건 어쩔 수 가 없는데........ "......." ...금새 떠올라 버리는 준수의 모습과 비가 오던날 그를 안았던 느낌이 되살아남에 애써 냉랭히 고개를 돌려버린다. 어차피 자신의 목적은 그가 아니다. 그와의 모든 인연을 끊기위함이 아닌가. 유천의 입술이 단일자로 확고하게 다물렸다. 그리고 이내 다시한번 돌아가려는 시선을 정면으로 붙잡았다. 이 숲과.....호숫가를 지나면......... 바로 정윤호의 거처다. 유천이 자신의 허리춤에 가죽끈으로 매여있는 단도와 장칼을 확인하며 나뭇잎이 무성한 숲길을 숨소리조차 내지않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모든것이 유천을 도와주는듯했다. 비가 쏟아질것같이 어두운 하늘도......... 매서운 바람소리와 그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들의 소음도........... 그 모든것이 박유천을 도와주는듯 주위의 시선에서 그를 지켜주고 있었다. . . . 유천이 그 숲길을 지난지 얼마나 지났을까. 타박타박. 작은 발걸음 소리를내며 역시나 조용히 움직이는 두 그림자. 눈에 잘 띄지않는 진회색 비단천으로 곱게 얼굴을 가리고있는 여인 두명이 빠르게 유천이 밟았던 길을 똑같이 밟고 있었다. 그리고는 순간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데...... 그 중 한명이 비단천 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눈동자를 빛냈다. "여기 어디가 나갈 구멍이 있다는거야. 정문 주위엔 병사들이 깔렸는데....." 냉랭한 목소리로 앙칼지게 말을 던진 유리가 뒤에있는 자신의 시종 지연을 바라봤다. 그러자 지연이 살며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성벽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수북히 나뭇잎이 쌓여있는곳을 손으로 헤치자, 그곳에 사람 한명이 왔다갔다 할 만큼의 작은 구멍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까 생각을했던 참인데..... 성벽 주변을 살펴보니 이렇게 유리님이 나가실 수 있을만한곳이 있지 않겠어요?" 그녀의 말에 유리가 금새 지연곁으로 다가선다. 비가 쏟아질것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유리가 지연에게 작게 속삭였다. "분명히 자줏빛 숲에 있는게 틀림없겠지?" 재중의 행방을 확실하게 되묻는 유리의 질문에 지연이 대답했다. "제가 정확하게 알아봤습니다. 틀림없이 자줏빛숲에서 살고있다고 확인했어요." 지연의 확신에 찬 대답에 유리가 고개를 살며시 끄덕인다. 유리가 곧 멀리 떨어져있는 정문쪽을 응시하며 자신의 품에 들어있는 날카로운 단도를 만지작 거렸다. 그리고는 사악한 웃음을 한껏 지어낸다. 흥. 그 여린아이...없애는것쯤은 일도 아니지. 자신을 바라봐주지않는 윤호를 미워하면서도 끝까지 그의 마음을 사로잡길 바라는 유리로써는 최악의 발악과도 같았다. 영영 사라졌다는 말을 듣는다면.... 윤호또한 포기하겠지........... 그리고 깨달을것이다. 자신의 곁에 있을 사람은 바로 이 유리밖에 없을꺼라고............... 유리가 매섭게 눈동자를 빛내며 지연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는 막..주변 눈치를 살피며 그 작은구멍을 통과하려 몸을 낮추는데..... ..찰나............ 바삭---. "..!!!!!" 갑자기 들려온 부스럭거리는 나뭇잎소리. 누군가가 발로 밟고있는 나뭇잎 소리에 유리와 지연이 깜짝 놀라며 다급하게 풀숲으로 몸을 숨겼다. 사사삭-----. 곧이어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누군가가 유리와 지연이 빠져나가려던 구멍으로 살며시 넘어 들어오는 모습이 포착됐다. "!!!!!!!" 그리고..그 모습을 어둠속에서 숨죽이며 바라본 유리와 지연의 눈동자가......... ...놀란듯이 커다랗게 변했다. 저...건.....?!!! 그 작은구멍을 마른 몸으로 가볍게 통과해 성벽안으로 들어온 사람. 그 사람은 다른아닌 그들이 찾아가려던 김재중였다. - 미 열(美 熱) 72편 - 겨우겨우 험난한 자줏빛숲을 전진의 도움으로 무사히 넘어 드디어 도착한 윤호가 있는곳. 그들앞에는 높은 성벽이 있었지만, 재중의 얼굴위로는 자신도 모르게 설레임의 미소가 가득 서려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전진이 주위를 조심스레 둘러보고는, 예전에 자신이 유리의 부탁으로 이 성벽 안으로 잠입했을때 만들어 두었던 작은 구멍을 찾아낸다. 아직 누구도 이 구멍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안막혀 있는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는 전진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 정도라면 재중의 몸은 통과하기 쉬울것였다. "이리와." 풀이 무성히 나있는곳을 손으로 헤치자 곧 드러나는 구멍에 전진이 작은 목소리로 재중을 불렀다. 전진의 목소리에 재중이 타다다닥..작은 걸음으로 그에게 가까이 다가서고..... 전진은 재중의 몸을 낮게 낮춰주며 속삭였다. "내가 해줄수 있는건 여기까지야. 더이상 도와주는건 정윤호를 싫어하는 나로써는 힘들어. 그러니까 여기로 들어가서부터는 니가 알아서 해야하는거야. 알았어?" "......." 더이상은 같이 가줄 수 없다는 전진의 말였다. 하지만, 이내 재중의 얼굴위로 활짝 웃음이 핀다. "웅...괜찮아요.....재중이는 찾아갈 수 있어요....." 아마도...윤호의 느낌을 따라가면..찾을수 있을꺼라 확신하는 재중였다. 재중의 확신에 찬 말에 전진이 곧 깊은 한숨을 다시한번 몰아쉬며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정윤호와 니 형을 발견할때까지는 누구의 눈에도 띄어선 안돼. 그러면..위험하니까. 알아들어?" 끄덕끄덕. 자신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긴 하는건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재중의 모습에 오히려 조마조마한건 그였다. 하지만..............자신이 해줄수 있는건 끝났다. 여기...까지야. 전진이 재중에게 어서 들어가라는듯 그의 등을 떠밀며 주변 눈치를 살폈다. 전진의 손길에 재중이 낮게 몸을 쭈그려 앉고는 살풋이 구멍을 통과한다. 그리고는 끝까지 주변을 살펴봐주는 전진에게 진심으로 고마운듯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고마워요...재중이는...윤호를 꼭 만날꺼예요." "그래..꼭 만나길 바래." 재중의 진심어린 목소리에 전진이 씁쓸한 미소를 한껏 지어내고는 손을 들어보였다. 그리고 머뭇거리던 발걸음을 이내 뒤로 홱하니 돌려 빠르게 뛰어간다. "......." 다시 자줏빛 숲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과연 재중이 저 성벽안에서 무사히 정윤호이나 자신의 형 유천을 찾아내서, 유천이 윤호를 죽이기 전까지 만날수 있을지도 의문였다. 하지만, 재중을 이곳까지 데려다준 전진으로써는 많은배려를 해준것였다. 누구보다도..정윤호와 그가 속한 마족을 싫어하는 자신이지 않은가. 만약 마족의 마녀사냥이란것이 없었다면..자신도 그저 그들의 밑에있는 마녀족이란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마녀사냥이란것에 자신의 약혼녀를 잃지만 않았다면............ 자신이 잠시나마 재중을 갖고 싶었던것은 아마도, 정윤호가 그렇게 애지중지 한다던 애첩이란 소문에 재중을 그저 단순히 빼앗고 싶었던 치졸한 감정에서 비롯된것였다. 하지만..결국은 자신도 사랑이란것을 경험해본 당사자였고, 또 무엇보다도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없다는 괴로움이 어떤것인지도 뼈저리게 알고있었다. 그것이 부족이라는 계층때문에 다른 감정이 될 수 없다는것 또한 잘 알고있다. 어차피 사랑이라는 인간이 느낄수 있는 최고의 감정은 누구나 똑같은 것이기에..... 그럼으로...정윤호를 증오는 하지만, 재중을 이곳까지 데려다준 계기는 어쩌면 단순히 그저 자신의 바램였다. 그리고 아련한 기대.................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사랑에대한 미련을 재중에게 담아 보내는것............. "..하아...." 어느새 멀리까지 뛰어온 전진이 뒤를 돌아봤다. 성벽이 작아 보일만큼 쉼없이 뛰어온듯하다. 가빠오는 숨을 삼키며 잠시 쉬기위해 나무기둥뒤로 몸을 기대는 그였다. "후우..." 만약 그들이 끝끝내 사랑을 이루어야 할 사이라면..... 하늘이...도와주겠지............ ...반드시........만날 수 있겠지................ ..................................... 지금쯤 열심히 정윤호를 찾고있을 재중의 모습을 떠올리며 전진이 짧은미소를 머금었다. . . . 깜깜해서 한치앞도 잘 보이지 않을것같은 정원숲을 둘러보길 여러차례. 하지만, 쉽게 발을 뻗을수 없을만큼 어디로 가야할지 종잡을 수 가 없었다. 워낙에 넓었기에..... 금새 울상을 짓다가도 다시한번 입술을 꼬옥 깨문 재중이 전진이 주위를 준대로 주변을 살며시 살펴보며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려고 할때였다. 바스락-----. 갑자기 들려온 소음에 깜짝 놀라며,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재빨리 돌리는 재중. "..!!!!!" 그러자 재중이 오기전부터 그곳에 있었던듯 보이는 두 여인이 그 앞에 서있었다. - 누구의 눈에 띄어서도 안돼............ - 순간 재중의 귀로 아련히 퍼지는 전진의 목소리. 전진의 말이 생각나자 재중이 놀란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재중의 당황한 얼굴과는 달리 여유있는 표정으로 한발걸음 앞으로 다가선 유리가 예쁘게 미소짓고 있었다. 아니. 애써 웃고는 있지만, 그녀는 적지않게 당황했다. 재중의 눈이 보인다는것에서.......충격을 받았다. 앞이 보이지않던 아이가 아니었던가. 그런데....어째서........? "윤호를..찾으러온것.....맞지...?" 사심없는 눈동자를 불안스레 굴리는 재중을 쳐다보던 유리가 말을 건냈다. 상냥한 목소리로 묻는 유리의 말에 재중은 순간 당황하던 표정을 딱딱히 굳히며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어...어떻게....." 재중이 마치 얌전한 숙녀인듯 아름답게 미소짓고있는 유리를 바라보며 말문을 열었다. 자신의 상냥한 얼굴빛 때문인지 조금은 느슨하게 긴장을 풀어버린 재중의 눈치를 살피며, 유리가 재중의 곁으로 더욱더 바싹 다가섰다. "..날 따라오면, 윤호가 있는곳에 데려다 주겠어." 번거롭게 자줏빛숲까지 널 죽이러 가야할 필요가 없어졌군..그래. 유리가 재중의 손목을 덥썩 잡으며 그를 이끌었다. 그러자 갑작스런 그녀의 손길에 재중이 따라가지 않으려 버티며 유리에게 잡힌 손목을 빼냈다. "자..잠시만요..." 그리고는 두려운듯 자신의 앞에있는 두 여인의 얼굴을 계속해서 바라보는데.... 뭔가...따라가선 안될것같은 분위기에 재중이 잔뜩 어깨를 움츠렸다. 그러자 그런 그를 바라보고있던 지연이 앙칼진 목소리로 나즈막히 위협적으로 말을 건낸다. "유리님께서 손수 널 윤호님앞에 데려다 주신다지 않느냐!!" "..!!!!!" 유...리........? 지연의 입에서 흘러나온 '유리'라는 이름. 그리고 자신의 귀로 들려온 지연의 목소리에 재중이 놀란눈을 치켜떴다. 저...목소리.............. 분명...저 목소리는..........!!!!! 자신의 형 유천이 감옥에서 풀려나는 조건으로 대신 감옥에 들어갔을때.. 들어본적이있는 목소리였다. - 그 아이를 짓밟아!! - 소름끼치도록 냉랭하고도 잔인한 목소리. 그 목소리가 떠오름에 재중은 순간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하는 입술을 꼬옥 깨물었다. 그리고........... 타다다닥-----! 위험을 감지하고 그녀들이 있는곳에서 반대쪽으로 달아나려 몸을 비틀어 내달리는 순간. 콰악----. "아읏!!!" 자신의 머리를 거칠게 잡아당기는 매서운 손길에 그만 뒤로 쓰러져 버리고 만다. "하아...흐읍!!" 뒤로 넘어지자마자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듯 내리찍는 지연의 억센 손길에 재중이 짧막한 아픔의 비명을 내지르며 바둥거렸다. 그리고 그런 재중을 내려다보며 유리가 그제서야 비틀린 웃음을 지어냈다. "내가...널 윤호에게 보내줄것 같으냐...? 그는 내꺼야." 유리가 광기어린 눈을 빛내며 가슴안에 품고있던 날카로운 단도를 끄집어냈다. 누군가가..그 모습을 경악에찬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는것도 모른채........... - 미 열(美 熱) 73편 - 저벅저벅.. 까만색 신발이 작은 흙더미들을 동반하며 긴 복도를 더럽혔다. 주위를 조용히 소리없이 둘러보던 유천이 굳게 닫혀있는 방문에 시선을 못박았다. 집무실 바로 옆에 위치한 윤호의 방. 그는 아마도 침대위에서 곤히 잠을 청하고 있을것이다. 콰르르릉----! 음침한 밤하늘을 가르며 천둥이 내리쳤다. 쏴아아아-----. 그에 따라 기다렸다는듯 갑자기 퍼붓는 비. 유천이 자신이 쓰고있던 까만색 복면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의 방문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벌써 그 방문 앞과 윤호의 거처 앞을 지키던 경비병들은 유천이 쏜 침을 맞고 깊은 수면에 빠져있었다. 뒤늦게 일어나면 벌써 정윤호는 죽어있겠지......... 그리고 그들의 족장 정윤호를 지키지못한 경비병들은 아마도 사형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였다. 윤호의 방문앞까지 다가선 유천이 자신의 오른쪽 주머니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내들었다. 살짝 뚜껑을 열자 풋풋한 나무체액의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유천의 긴장된 손끝이 천천히 유리병을 기울여 문틈에다가 나무체액을 쏟아붇기 시작했다. 혹시나 문을 열때 날지도 모르는 소음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 아무리 그래도 상대는 정윤호였다. 마족의 족장 정윤호. 족장이란 자리는 아무나 되는것이 아니었다. 잠들어있다해도 만만히 볼 상대는 아니다. 유천이 짧은 심호흡끝에 조심스럽게 문을열었다. 일말의 아주작은 소음도없이 조용히 열리는 문. "......." 날카로운 눈으로 조금열린 방문틈 사이로 안을 살펴보니 정적만이 가득했다. 그리고..넓은 침대위에서 이불을 덥고 자고있는듯 보이는 정윤호. 유천이 이내 방안으로 완벽하게 들어서고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쿵-----. 작게 문닫히는 소리가 방안을 울려퍼졌지만, 침대위에있는 정윤호는 아무기척도 없었다. 아마도 빗소리 때문에 다른 어떤소음도 들리지 않는것이겠지. "후우..." 가빠오기 시작하는 숨을 진정시키며 유천이 떨리는 손을 허리왼쪽에 차고있는 단도쪽으로 뻗었다. 긴장하지마. 박유천. 이미..결심한 일이잖아. 여러번 심호흡을 내뱉은 유천의 눈동자가 마침내 차분해지며 날카롭게 빛나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저벅저벅__ 조심스러우면서도 당당한 발걸음으로 윤호가 누워있는 침대곁으로 바싹 다가선 유천이 이불을 푸욱 뒤집어 쓰고있는 그를 노려봤다. 재중이에겐....나중에...죄값을 치르겠어. ...준수...에게도. 유천이 깜깜한 방안 어둠속에서, 허리에 차고있던 단도를 높게 치켜들었다. 그리고 다시한번 떨리는 손끝을 긴장시키며 이를 악물고 그가 누워있는 이불위를 힘껏 단도로 내리찍었는데.......... 푸욱-----!!! "..!!!!!!!" 순간 이불위를 찍어내린 유천의 얼굴위로 경악이 떠올랐다. "..하아..!!" 아니었다!! 정윤호가............... 유천이 재빠른 손길로 이불을 들쳐냈다. 휘익----!! "..!!!!!" 없...어......?!! 이불을 들쳐내자 윤호를 대신한 커다란 베개라니..!!! 콰르르르릉-----!!! 다시한번 천둥이치며 순간적으로 번개가 내리쳤다. 사방을 뒤덮은 번개로인해 잠시 밝아진 방안. 유천의 시선이..다급하게 뒤를 향하자...... 그곳에는 마치 유천이 뒤돌아 보기만을 기다렸다는듯..윤호가 서있었다. "........." "........." 숨조차 쉴 수 없을만큼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온몸을 짓누르듯 무겁기만한 침묵이 그 둘의 입을 막고 있었다. 유천을 바라보는 윤호의 눈빛에 순간 매서운 눈빛이 돌다가 사라졌다. 유천이 윤호를 똑바로 응시하며 손에 들고있던 짧은 단도를 버렸다. 스릉-----. 그리고는 왼쪽 허리춤에 꽂혀있던 긴 장칼을 끄집어냈다. 그런 유천을 무덤덤하게 바라보던 윤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 아이......." 윤호가 천천히 유천의 곁을 둘러본다. "...재중이는.....?" 그리고 자신을 명백히 죽이러온 유천을 바로 앞에 두고도 찾는것은 재중. 윤호의 말에 놀란듯 두눈동자를 커다랗게 치켜뜬 유천이 이내 가볍게 장칼을 잡은 손에 힘을 실었다. "오지않았어. 나중에야 니가 죽은걸 알게되겠지." 애써 재중을 찾는 윤호앞에서 냉랭함을 가장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은 유천이 한발걸음 앞으로 나섰다. 칼을 쥔 유천이 언제 달겨들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윤호의 얼굴은 그저 덤덤하기만했다. "얼마전 작은 마녀족 집단이 날 죽일 암살회를 결성했다 들었는데... 설마... 니가 올줄은 몰랐어." 유난히도 재중의 생각에 잠이오지 않았던 오늘밤. 벌써 윤호는 자신의 거처로 숨어든 그림자를 어렴풋 눈치채고 있었던것이다. 윤호의 말에 유천이 마른침을 삼켰다. 역시 마족들은 결코 우습게 볼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특히 정윤호는. 이렇게 작은 마녀족 마을에서 결성되는 일들도 어떻게든 정보망을통해 모두 알아두는 재력을 지녔으니........ 결국은 그에게 대항할 부족들이 없는것도 당연한 일였다. 유천의 입술 한쪽끝이 살며시 올라갔다. "내가 죽이러 온것은 마족의 족장이기보단....." 유천이 칼잡은 손을 바로고치며 자세를 교정했다. "..내동생 재중이가 사랑하는 사람이야!!!" 순간 고함을 내지른 유천의 칼이 매섭게 윤호를 내리치고... 콰지직----!! 아슬아슬하게 몸을 돌려피한 윤호대신 그의 뒤에있던 나무탁자가 부서져 내렸다. "하아...하...." 꽤나 날카로운 유천의 칼끝. 천하에 정윤호도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솟는듯하였다. 하지만..........같이 칼을 맡잡을순 없었다. 이미..자신은.............. "부탁이야...재중이 삶에...끼어들지마." 유천이 금새라도 눈물을 쏟아낼듯 애원섞인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그냥 이대로 사라져줘..!!!" 유천이 다시한번 윤호에게로 칼을 휘둘렀다. 휘이익---!!! 그러나.............. 유천의 움직임을 미리 파악한 윤호가 교묘하게 그의 칼이 휘둘리는 사정거리를 벗어나며 침대휘장을 말아쥐었다. 그리고는 바람처럼 유천의 등뒤에서 그의 칼을 침대휘장으로 빠르게 감아쥐었다. "..흣!!" 유천의 칼을 옴짝달싹 못하게 침대휘장으로 여러겹 감싸말아쥔 윤호가 나머지 다른한손으로 그의 멱살을 잡아끌었다. "하아...하아...." "..하아...하..." 거친숨이 두사람의 입에서 가쁘게 터져나왔다. 유천이 어느새 휘두를수 없게된 칼을 빼내려 이를 악물며 몸을 비틀었지만, 윤호또한 단단한 힘으로 그의 움직임을 제지하고 있었다. 슬퍼보이지만 여전히 매서운빛을 하고있는 유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윤호가 나즈막히 속삭였다. "준수가..널 사랑하는건 알고있나?" 갑자기 터져나온 준수이란 이름에 순간 유천의 눈동자가 움직임을 멈췄다. 어째서...그 이름이....지금.............. 유천이 애써 흔들리는 시선과 동요되는 마음을 감추며 냉랭하게 말했다. "말하지마....... ..그..이름.......내뱉지마." 어느새 윤호를 날카롭게 응시하던 유천의 시선은 준수이란 이름 한마디에 아래로 떨구어져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윤호가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난.....인정하기로했다." 윤호의 말에 숙여져있던 유천의 고개가 빠르게 들어올려지고..... 유천의 놀란시선에도 불구하고 윤호는 자신의 말을 계속해서 였다. "..나 정윤호가.....김재중을..사랑한다는걸..인정했단 얘기야. ..니가..걱정한게 무엇인지 알고있어." "......." 도대체..정윤호는 뭘 안다고 하는건지................. 유천이 입술을 깨물며 윤호를 노려봤다. 윤호가 침대휘장으로 감싸 옭아쥐고있던 칼을 놓아주며 똑바로 유천을 응시했다. "하지만, 내가 그녀석을 사랑한다 인정한만큼... 난 그녀석을 지켜주겠어. 맘껏사랑하고...행복하게 해주겠다고." "........" 철그랑-----. 윤호의 진심어린 눈동자와 진지한 얼굴에 순간 유천의 한쪽 손에서 힘이빠지며, 칼이 떨어져 내렸다. 모든 긴장이 빠진듯..마치 넋이나가 보이는 유천의 시선에 촛점을 맞추며 윤호가 부탁하듯 마지막 말을 던졌다. "너에게..있어 준수는? 너 때문에...많이 아파하는....김준수는.....?" ".........." ...김..준수............ 언제부터였을까.............. 네 이름 석자에...이렇게 가슴이 시려와.......... 자신의 말에 커다랗게 동요하듯 흔들리는 눈동자를 하고있는 유천의 두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윤호가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나는..........." ..사랑해.......... "..나..도........" 유천이 이내 말을 꺼내려 떨리는 입술을 달싹일때였다. 벌컥----!!!!! 갑자기 거칠게 열린문. 그리고 다급하게 뛰어든건 다름아닌 환희였다. "하아..하아..." "환..희야..?!" 곧 숨이 끊길듯이 가뿐숨을 몰아쉬는 환희를 유천과 윤호가 놀란 시선으로 바라봤다. "유..윤호..님...하아.." 지금 환희의 시선에는 밖에서 유천의 침에맞아 고꾸라져 잠들어있는 경비병들도.. 그리고 윤호의 앞에서있는 유천의 모습도 모두 눈에 들어오지 않는듯했다. "무슨일이냐..이 밤에." 무언가 매우 다급해 보이는 환희를 바라보며 윤호가 그를 다그쳤다. 그러자 그제서야 턱까지 차오른 숨을 정리하며 환희가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차, 창민님한테 가려고..했는데...아직 방에서 못나오시니까.... 아니..저기...윤호님....그게아니라요...." 환희가 너무 다급한 나머지 말을 더듬는 자신이 원망스러운지 작은 주먹으로 자기가슴을 쳐대며 발을 동동굴렀다. "차분히 말을해. 무슨일인지." 생전처음보는 환희의 허둥대는 모습에 윤호가 미간을 일그리며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제서야..윤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한 환희가 커다랗게 외쳤다. "재중님이 죽을지도 몰라요..!!!!!" "..!!!!!!!.." 환희가 내뱉은 외침에 순간 마주친, 윤호와 유천의 시선이 충격으로 굳었다. - 미 열(美 熱) 74편 - 쏴아아아아------. 쏟아지는 빗줄기가 온 몸을 아프도록 때려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아픔도 모두 까맣게 잊어버린듯 준수는 걷고 또 걸었다. 그저...발끝이..닿는곳에............ 유천이..처음으로 자신의 이마에 살풋이 입맞춰 주던곳......... 비록..마음은 주지못한다 했어도....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줬던곳.......... 마치.....유천이 자신을 안았던 날과 똑같은 상황이였다. 쏟아지는..비와....... 흠뻑 젖어버린 준수자신............ 단지...사랑하는 박유천이 없을뿐였지만........... "........" 황금빛 머리카락에서 흘러내린 물방울들이 준수의 창백한 얼굴위로 떨어져 내렸다. 유..천씨............... 준수가 기운없는 걸음을 조금도 쉬지않은채 꾸준히 옮기고 있었다. 조금만...더 가면....... 유천이 머물었던 그의 거처가..나온다.... 지금은..텅텅 비어버린 곳이지만............. 준수가 빗물과 함께 흘러내리는 눈물을 옷자락으로 훔쳐내며 유천이 머물던 거처로 한참을 걷고있을때였다. "..아..읏.....싫...ㅇ..ㅓ...!!" "..!!!.." ..무슨...소리...?! 요란한 빗소리에 섞여 들여오는 짧은 비명소리. ..빗소리에 파묻힌 소리였지만, 분명 가까이에서 나는 소리였다. 순간 준수가 걷고있던 걸음을 반대로 돌려 소리가 난 방향쪽으로 몸을 옮겼다. 그리고...어렴풋이 나뭇잎에가려 잘 보이지않는 사람을 보려고..두손으로 풀숲을 헤쳤는데............. "..!!!!!.." 순간 자신의 눈앞에 광경을 바라본 준수가 두손으로 입술을 틀어막았다. ..유..유..리님.....? 준수 또한 윤호의 정혼자였던 유리를 잘 알고있었다. 하지만, 지금 유리와 그녀의 시종 지연은 처참하게 도망가려는 누군가의 발목을 붙들고 있었다. 그리고......그...누군가는....바로............. "..재....." 준수가 충격으로 커다랗게 떠올려진 눈을 깜빡일 생각도 못한채 입술을 달싹였다. "..재..중..씨....?" 하지만, 이내 유리의 손에쥐어있는 날카로운 단도에 준수는 반사적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재중씨!!!!!" "..!!!!!!!.." 갑자기 재중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들어 유리의 손을 붙잡은 준수의 등장에, 유리와..지연, 그리고 재중이 놀란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준수님..?" 유리의 당황한듯한 목소리에 준수가 그녀의 단도가 들려있는 손을 있는힘껏 제지했다. "유리님 왜이러세요!! 어째서 재중씨를..!!!" 준수가 다급한 상황에서 바닥에 넘어져있는 재중을 흘깃..바라봤다. "주...준..수....씨...?" 재중이 유리의 말을듣고 그제서야 준수의 얼굴을보며 작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비키세요 준수님!! 저 요망한것이 윤호님을 망치고 있다구요!!! 당장에 죽이지 않으면...!!!" "이러지 말아요 유리님!!!" 유리의 광기어린 눈빛에 준수의 눈동자가 충격을 받은듯 활짝 열렸다. 이내 준수가 재중을 돌아다보며 소리쳤다. "재중씨...도망가요!!!" 재중이 준수의 외침에 겁에 질린 눈동자를 들어올려 유리옆에 서있는 지연을 바라봤다. "하아...하아....." 갑자기..숨이 막힐듯 가빠왔다. ...윤....호................... .....윤.......호.................... ..도와...줘요........!!! "..재중씨...빨리......" 준수가 유리의 억센힘과 지연의 손길을 더이상 막아내기 힘든지..비틀거렸다. ...자신을 몇번이나 내리치려던 저 날카로운 칼끝. 그리고 도망치려고 버둥거릴때마다 잡아끌던 긴 손톱. 벌써 재중의 발목과 팔목 여기저기는 유리와 지연의 손톱에때문에 피맺힌 생채기가 가득했다. 바들바들.. 재중이 온 몸을 극심하게 떨기 시작했다. 준수의 말을 못알아 들은건 아니었지만, 몸이..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지..............않아..................... "윤..호..." 몸을 바싹 웅크린채 그저 안타깝게 떨고만있는 재중을 준수가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몸이 많이 약해질대로 약해진 자신은 더이상 유리와 지연의 힘을 막아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깨를 바짝 움츠린채로 머뭇머뭇..뒷걸음질치는 재중을 노려보던 유리가 준수의 손을 있는 힘껏 뿌리쳤다. "네가 윤호곁에 갈 수 있도록 내버려둘껏같아!!!!!" 앙칼진 목소리와 함께 유리가 자신의 손에 들려있더 단도를 황급히 내리찔렀다. "..재중씨-------!!!" 푸-욱----. 살을 꽤뚫는 소름끼치는 느낌이 유리의 팔을 타고 전신으로 흘렀다. 그러나........... "...주..준.....준수......." 재중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준수를 촛점없는 눈으로 바라봤다. 뚝__뚝_____ 주저앉아있는 재중의 얼굴위로 떨어져내리는 붉은선혈. 준수의..것이었다. "..마...말도안돼...." 유리가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칼을 떨어뜨리며 뒷걸음질쳤다. "꺄아아아아아!!!" 그리고 곧 자신의 시종 지연의 옷을 붙들고 쓰러지듯 뒤로 고꾸라졌다. "..하아....하아......" 흐릿한...시선........... 힘없는 눈동자 안으로 충격을받아 움직일줄 모르는 재중의 모습이 들어왔다. 더이상......버틸..힘이......없어............... 준수가 가슴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손으로 감싸며 그대로 쓰러져 내렸다. 털썩-----. 그러자 질퍽한 땅이 준수의 여린몸을 금새 파묻어 버린다. 그리고 그위로 진하게 베어나오는 선혈들................ "..주..준수..씨....." 재중이 드문드문..말을...이으며....사정없이 떨리는 손길을 준수에게로 뻗었다. 하지만, 울음을 터트릴듯한 재중의 얼굴을 바라보며 준수는 살며시 미소 지을뿐였다. "재중님----!!!!!!" 그때. 멀리서 들리는 목소리. 다급하게 뛰어오는 환희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리고....그 옆에서 미친듯이 달려오는 두 남자. 준수가 감기려는 눈을 똑바로 들어올려 애써..입술을 달싹였다. ..윤....호............... 그리고.......유...천......씨..........? 비바람에 젖어있는 다갈색머리카락. 단아한..몸. 그토록..보고싶었던 얼굴............. "유..천..씨...." 준수의 얼굴위로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꿈..이죠............. ...꿈이야.........그렇죠.......... "준수......" 몇번이나..꿈속에서만이라도 나와달라고........ 그렇게도 보고싶다고........... 기도하고..또 기도했는데................... 정말로 유천은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준..수야...?" 그리고..이렇듯..자신의 이름을 다정하게..불러주는데............. ..정말로.....유천씬가요..............? 윤호와 함께 달려와준 사람은 틀림없이 유천이었다. 자신의 곁에있는 재중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지만..이내 다시 자신에게로 시선을 돌리는건....분명..김준수가 늘 보고싶어 울던 박유천이었다. ..유..천씨.......... 준수의 눈가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정말...다행이예요........... 내가 재중씨를 지킬 수 있어서............... 유천씨가 사랑하는 재중씨를..내가...지켜서.............. 윤호가 눈앞에 펼쳐진 처참한 광경에 함께 데리고 온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유리와 저 시종을 붙잡아!!!" 윤호의 외침에 병사들이 넋이 나간듯 앉아있는 유리와 그 옆을 지키는 지연을 붙잡았다. 그리고.................... "환희는 당장 유천을 선호가 있는곳으로 안내해라!!" "예!!!" 윤호의 명령에 환희가 놀란 눈물을 훔치며 유천을 바라본다. 유천이 준수의 곁에 쓰러지듯 주저앉아 창백한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하아..하아..." 곧 숨이 끊어질듯 헐떡이면서도...그 눈동자를 자신의 눈앞에있는 유천에게 맞추려 애쓰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안돼......." 유천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꾸만 붉은 선혈을 뿜어내는 준수의 가슴을 두손으로 틀어막았다. "안돼...아직은 아니야......." 하지못한 말이..있어........... "김준수!!!!!" ..사랑..한다고.............. 유천이 준수를 번쩍 안아들었다. 그리고는 눈물이 흘러 뿌옇게 변해버린 앞을 바라보며 환희가 이끄는데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제...발..................부탁이야................... ..이 말만은.....할 수 있게................ 이미 의식을 놓아버린듯 두눈을 꼬옥 감고 자신의 품에서 축 늘어져있는 준수의 이마에 몇번이고 입술을 맞대며..유천은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위해 바람처럼 달리고 있었다. . . . "........." "........." 서서히 비가 그치려는지 작은바람만이 살랑이며 일었다. 그리고........... 흠뻑 젖어버린 재중과...........그런 그를 지켜보고있는 윤호............. 윤호가 거친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발걸음을 재중쪽으로 옮겼다. 하지만........ 자신쪽으로 다가오는 윤호를 피하려 흔들리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본 재중이..... 뒷걸음질쳐 도망가려했다. 그러자 그런 그를 재빨리 붙잡아 돌려세우는 윤호. "싫어...놔줘...!!!!!" 자신의 품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재중의 어깨를 틀어잡으며, 윤호가 그를 품에 안으려했다. "싫어..!!!....윤호.......!!!!!" 공포에 질려있는 재중의 입에서 튀어나온 자신의 이름. "....윤.....!!!" 다시한번 그의 이름을 외치며 발버둥치던 재중의 입술이 윤호으로인해 막혀버렸다. "..흐읍..!!!" 윤호가 재중의 목덜미를 강하게 잡아 고정시키고 발버둥치는 그의 두손을 붙잡았다. "하읏...하아...." 그리고..잠시후 떨어져나간 입술에서는 둘다 가뿐숨만이 터져나올뿐였다. "..하아...하아...." 들썩이는 작은가슴. ...여전히...아름다운...........얼굴. 그리고........... 자신이 없는새에 모습을 드러낸 까만색 동공. 빠져들듯 예쁘기만한 눈동자............. 윤호이...곧 울어버릴듯 눈물을 그렁그렁 담고있는 재중의 눈동자에 입맞췄다. 그리고 그의 귓가에 나즈막히 속삭인다. "..나야..........네가....사랑하는 정윤호." "..!!!!!!.." 윤호의 목소리............. 그의 입술............. 자신을 지켜주는 단단한..가슴과 두팔............... "...윤....호....?" "........." "..정...말..로....?" 재중이 곧 말간 눈물을 뚝뚝 떨궈내며 바들바들 떨리는 손끝으로 윤호의 옷자락을 꼬옥 잡았다. "윤--호---!!!" 하지만 이내 어김없이 자신의 품안으로 뛰어드는 재중은, 틀림없이 자신의 곁에서 말갛게 웃음짓던 사랑스런 김재중 그대로였다. "흐으윽....흐윽...."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하염없이 우는 재중의 정수리에 쉴새없이 입맞추는 윤호. "..흐아아아아......" 자꾸만 커져가는 재중의 울음소리에 그를 달래듯 윤호의 입술이 재중의 이마를... 그리고 예쁜눈가를......또 고운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윤호가 자신의 품에 기대어 옷자락을 꼬옥 잡고 놓치않는 재중을 번쩍 안아들었다. 그리고 다시한번 흐느끼고있는 그 입술에 깊게 입맞춘다. 두번다시.......내손에서...놓지않겠어.......... - 미 열(美 熱) 75편 - "........." "........." 끝없이 이어질것같은 침묵속. 서로 얼굴을 바라보지도..그렇다고 깊은 한숨소리조차 마음대로 내뱉지 않는다. 시간은 어느새 새벽을 지나가고 있었다. 밤새 많은 시종들이 방안을 들락거리며, 피묻은 시트와 따뜻한 물을 가지고 몇번이나 왔다갔다하는 장면을 그저 다들 묵묵히 지켜볼뿐였다. 하지만, 해가 어렴풋이 떠오를때쯔음 벽에 기대어 가만히 서있던 창민이 먼저 무거운 침묵을 깨트렸다. "뭐야....너무 오래걸리는거아냐." 윤호의 명령으로 긴급히 근신명령이 풀린 창민이 준수가 있을 방의 방문을 가만히 응시했다. "........" 창민의 말에 윤호도...그리고 그옆에 앉아있는 유천도 아무말이없다. 다급하게 의원인 선호를 불러 곧바로 치료에 들어갔는데 시종들만 출입허용을하고 아무도 들어오질 못하게하니..미칠지경였다. 바들..바들.. 자신의 깍지 낀 두손이 심하게 떨려오는것을 유천은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어차피 준수의 모습을 두눈으로 확인할때까지 이 떨림은 멈추지 않을것이기에..... 불안하고 초조한듯 보이는 유천을 곁눈질로 살피며 윤호가 무표정한 시선을 다른곳으로 돌렸다. 철저하게 차가움으로 무장한 그의 얼굴은 윤호의 감정상태를 전혀 파악할수없게 만드는것였다. 하지만, 윤호의 포커페이스를 창민은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이제는 습관처럼 되어버린..저 얼굴. 얼마나......준수를 걱정하고 있는지........ 그리고 윤호의 방에 고이 있다던 그 아이에게 또 얼마나 지금당장 가고싶어 하는지..... 그의 오랜 친구이기도한 창민은 충분히 느낄수 있었다. 환희에게 자초지종을 대충 들었을때는 유리가 드디어 덜미가 잡혔다는 생각보단 다친 준수가 먼저였다.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그 따뜻한 녀석이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일은 생각조차하기 싫을만큼 끔찍한 일였다. 언제나 무슨말을 하든지 온화하게 웃어주는 그녀석이 없다면, 지금의 족장 윤호도 그리고 윤호를 보좌하는 자신또한 있을수없다. 얼어버릴 정도로 차갑고 냉정한 윤호... 그리고 조금은 제멋대로인 자신을 진실로 받아주는 사람은 준수뿐였다. "..후우...." 누구의 것인지 모를 긴 한숨소리가 울려퍼졌다. 시간이 꽤 지나고 이제는 밝은 햇살이 준수의 거처속으로 쏟아져 들어올때쯤... 드디어 준수의 방문이 빼꼼히 열리며 선호가 나왔다. 다들 선호의 등장에 숙이고있던 고개를 들어올리고.. 유천은 마치 여지껏 호흡을 멈추고 있었던것처럼 갑자기 가빠져오는 숨을 간신히 목구멍속으로 집어삼켰다. 아직도..유천의 비에젖어 축축한 옷에는 준수의 선혈이 가득 베여있었다. 자신의 품에서도 계속 쏟아져 내리던..그 선혈들. 그리고 두려울 정도였던 준수의 창백한 얼굴. 차마..선호에게 입도 뻥긋거리지않고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유천을 대신해 윤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됐나?" 윤호의 짧은 물음. 하지만, 거기있는 누구도 그 물음을 대신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을 느끼며 선호가 하얀색옷위로 묻어내린 준수의 선혈들을 바라보며 살풋이 눈가를 찡그렸다. 이내 피곤한 숨소리를 커다랗게 내뱉은 선호가 안심하라는듯 살짜기 웃어보인다. "생각한것만큼 출혈상태가 심각한건 아니어서 한시름놨어요. 상처가 꽤 깊지만, 다행히 심장에서 떨어진곳을 찔렸으니까요. 회복되려면..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듯합니다." "......."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듯........... 선호의 그말이 떨어지자 창민이 온몸의 긴장이 한순간에 풀렸는지 자신의 얼굴을 두손으로 감싸고는 벽쪽으로 몸을 기댔다. 윤호또한 한순간에 차가운 표정을 지워내고는 깊은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문가에 서있는 선호를 손으로 재빨리 제치며 유천이 방안으로 부리나케 들어섰다. 상당히 흥분한듯 보이는 유천의 모습였지만, 창민도 윤호도.. 아무도 그런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하아..하아...." 눈앞이 아찔해 지는듯하다. 방안에는 준수의 풋풋한 향내대신 피빛향이 가득했다. 터벅_터벅__ 천천히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기는 유천이 자신의 입술을 꼬옥 깨물었다. "......." 털썩----. 드디어 바짝 준수곁에 다가선 유천. 침대옆에있는 의자에 힘없이 주저앉아버린다. "......." 불안정한 숨소리. 우유빛처럼 곱던 얼굴색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있었다. ....김............. ......준...수................. 혹시라도 이 무거운 공기가 준수를 누를것같아 함부로 그의 이름을 입밖으로 꺼내놓지도 못하는 유천이 준수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부쩍 말라버린 그의 얇은 손가락이 못내 가슴시림으로 다가왔다. ..힘들..었어............? 준수의 여린 가슴위로 감겨있는 하얀붕대가 그가 짊어지고 있기엔 너무나 버거워보였다. 유천이 여전히 떨리고있는 자신의 손으로 준수의 손을 부드럽게 감아쥐었다. 그리고 그 손등에 조용히 입술을 맞댔다. 미안해..... 너무 늦게 깨달아서.............. ..널 사랑한다는걸...... 끌리고 있었다는걸............. 인정하지 않으려해서............... 창백한 얼굴위로 송글송글 솟아나는 식은땀. 메마른 입술위로 뜨거운 숨결만 토해내는 준수의 얼굴을 매만지며 그렇게 한참동안을 유천은 꼼짝도 하지않았다. "........." 몇번이고....준수의 이마위에 땀에젖은 머리카락을 넘겨주고... 또 그 가는 손가락 마디마디에 입을 맞추고... 간절한 눈빛으로 준수가 의식을 차리기만을 바라는 유천을 윤호와 창민이 뒤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을 느낀것인지 준수의 손등에 맞댄 이마를 조심히 떼어내는 유천이, 숙이고있던 얼굴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고있는 그들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 작은한숨을 내몰아쉰 유천이 나즈막히..말을 꺼냈다. "...내 죄값은 나중에 받겠어....지금은........... ..지금은....안돼..........." 준수가 깨어나는걸 내눈으로 확인할때까지는..... 유천의 단호한, 그러나 부탁하는듯 애원의 눈빛에 창민은 자신의 옆에 서있는 윤호의 얼굴을 바라볼뿐였다. 감히 마족의 족장..윤호를 암살하려했던 죄. 결코 가볍지않은 죄목였다. "......." 잠시 유천의 시선을 당당하게 마주하고있던 윤호가 삐딱하게 벽쪽으로 기댔던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살짝 내리깐 시선 아래로 침대위에 누워있는 준수를 흘깃..바라본다. - ...내가..박유천을 사랑해.... - 귓가로 울려대는 울먹이는 목소리. - ..모르겠어...? 내가...박유천을 사랑한다는걸..!!! - 언제나 예쁘게 웃을줄만 알았던 녀석였는데........ 그렇게 우는 모습을 그날 처음봤던 윤호였다. 이내..침묵을 지키고있던 윤호가 곧 자신을 바라보는 유천에게서 등을돌렸다. "정윤호!!!" 아무말없이 뒤돌아선 윤호의 이름을, 유천이 불안한 목소리로 불러 세운다. 혹시라도.............. 이녀석이 깨어나는걸 보지못하고...감옥에라도 들어간다면........... 제...발............... 윤호가 유천의 부름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이미 문밖 정면을 바라볼뿐 유천을 뒤돌아 보진 않았다. "........" 윤호의 입에서 무슨말이 떨어질지... 짐짓 긴장을 한 창민이 유천과 그를 번갈아가며 뚫어지게 바라봤다. 이내 윤호가 걸음을 밖으로 옮기며 나즈막히 내뱉는 말. "준수이녀석....책임져. 그렇지 않으면 널 죽일지도 몰라." "..!!!!!" 윤호의 대답. 그 대답에 유천의 눈이 놀란듯이 커다래지고... 창민은 윤호가 당연히 그럴줄 알았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한마디 잘 건내본적없는 유천를향해 친근하게 눈을 찡긋거려 보였다. "우리 준수..부탁드립니다~!" 창민이 장난스레 유천에게 말을 던지며 곧 윤호의 뒤를 따라 나갔다. "........" 강인해 보이는.......... 그러나 절대적으로 어딘가 모르게 외로워보이고..또한 그 뒤에 감춰져있는 따듯함이 엿보이는... 윤호의 족장다운 면모에 유천은 그들이 있던 자리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 마음 한구석에는 벌써.............. 자신의 동생 재중을 윤호에게 맡겨도 될것같다는 생각이 스물스물... 피어오르는것을 조금씩 느끼며................ . . . 터벅_터벅__ 간결한 발자국 소리가 정원 호숫가 돌담위를 울렸다. 간간히 지나치는 귀족들이 근신명령에서 풀려난 창민을 보고는 반갑다는듯이 꾸벅꾸벅..인사를 건내며 웃음을 보냈다. 그런 그들에게 일일이 모두 싱긋거리며 신사답게 웃어보인 창민이 곧 윤호의 곁으로 나란히 섰다. "......." 여전히 웃음을 모르는듯 무표정한 얼굴. 하지만, 늘 느긋할것만 같았던 그의 발걸음은 자신의 거처로 빠르게 향하고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창민은 충분히 알지만.... 자꾸만 골리고 싶어지는 이유는...왜일까. 이내 창민이 한동안 보지못했던 정원의 푸른 정경을 눈으로 감상하며 장난스런 말을 던졌다. "그 아이가 빨리 보고싶어 죽겠다는 표정이네 정윤호." 창민의 말에 윤호가 바로앞 자신의 거처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시선을 그에게로 돌렸다. "......." "......." 그리고 순간 짧게 이어진 침묵끝에 툭 내뱉어진 윤호의 대답. "응." "......." 뭐...? 지금 정윤호이...대답한거......맞..아....? 너무나도 간단한 답변에 창민의 얼굴이 멍하니 벙찐표정이 되었다. 당연히 그 아이에 관한 질문이니..조금쯤은 당황한 얼굴이 될만도한데, 무덤덤하게 '응'이라는 간단명료한 말로 일관하다니. 오히려 질문을 던진 창민이 당황스런 얼굴을하는 광경이 연출됐다. 그런 창민을 바라보며 윤호가 발걸음을 계속해서 자신의 거처로 옮기며 낮게 말을 건냈다. "내가 처음으로 사랑하는 아이고, 곁에 두고싶은 아이야. 인정하는거........당연하잖아?" ...사랑하는..아이................. 정윤호이..사랑하는 사람이라........... 혹시나 저 딱딱한 녀석이 사랑한번 못해보면 어쩌나..내심 걱정했던 창민의 떨떠름한 마음을 한번에 날리는 말였다. "풋..." 창민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윤호의 어깨를 투욱치며 가벼운 고갯짓으로 그의 거처를 가리켰다. "그럼 빨리 들어가봐. 그 아이도 많이 놀랬을테니....." 창민의 말에 윤호가 간단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으로 들어선다. "......." 하지만, 이내 가던 걸음을 멈추고는 창민을 향해 뒤돌아선 윤호이, 단호한 어조로 마지막 말을 던졌다. "유리에게 내릴 형벌은...네게 맡기겠어!" "..!!!!!" 갑자기 던져진 윤호의 말에 순간 창민이 두눈을 놀란듯이 커다랗게 치켜뜨며, 금새 등을 보이고 뒤돌아서는 윤호를 부르려고 움찔했다. "..윤...." 하지만, 그는 벌써 안으로 모습을 감춘후였다. "........" 유리의 형벌을 자신에게 맡긴다라...........? 창민이 입가로 피식...작은미소를 내걸었다. 윤호의 의도를 알것같았다. 무슨일을 저질렀든간에 유리는 이제 창민에게 하나밖에 남아있지않는 피붙이였다. 그리고 창민이 존경해마지않는 아버지가 아끼고 아꼈던 딸. 창민이 끝내 그녀에게 가벼운 형벌을 내릴지라도 이해한다는 뜻였다. 윤호의..그 말은. 그만큼 창민을 신뢰하고, 또 그만큼 창민을 생각하기에 유리에게도 아량을 베풀겠다는것. 예전에 윤호를 생각한다면 결코 있을수도 없는 결정였다. 어느누가 감히 윤호와 그가 아끼는것을 해하려한단 말인가. 하지만.......지금의 윤호는 조금....아니 아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족장으로서의 강인함을 결코 잃지는 않았지만, 그것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인정이란것이 생긴것. 누가..널 그렇게 변화시켰을까..........? 천하의 냉랭하던 정윤호를 말이야.............. ..그 아이.......... 정말 대단한데............? 니가.....사랑할만해. 창민이 윤호의 거처를 바라보며 살풋이 웃음을 날렸다. - 미 열(美 熱) 76편 - 저벅저벅__ 자꾸만 급해지는 발걸음. 어쩔수없이 다급해지는 마음은 스스로도 통제불가능였다. 재중이 없는동안에는 어쩐지 들어가기 싫었던 자신의 방. 예전에는 그것을 인정하기싫어 힘들었지만, 언제나 걷던 자신의 거처인데도 오늘은 감회가 새로웠다. 놀랐을 녀석을 빨리 달래주고 싶은 마음과............. 그리고 꼭 안고 입맞춰 주고싶은 욕심........... 저 방문을 열면........ 예쁘게 웃는 재중이 있을것였다. 빌어먹을. 윤호가 방문앞에서 그 안으로 선뜻 들어서지 못하고 우두커니 제자리에 섰다. 웃기게도 떨리는 가슴이라니.............. 뛰어대는 심장이라니.......... 하지만, 어느새 새로운 자신의 모습에 한심해 하면서도 이내 문고리를 잡는손은 급하기만하다. 달칵-----. "......." 방문을 열자마자 그동안 싸늘하기만했던 공기가 왠지모르게 향긋한 향내로 가득찬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따뜻한.............재중의 체향이......... 코끝을 스치고 지난다. "어? 윤호님!!" 갑자기 들려온 환희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순간 멍하게 서있던 윤호가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깔끔하게 예쁜 옷을입은 재중이 자신을 바라볼꺼라고 기대했던 윤호의 생각이 산산히 무너지는 순간였다. "..너...!!!.." 윤호가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서 자신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재중을 보고는 놀란눈을 치켜떴다. "..윤..호...." 작은미성-. 비를 맞아 흠뻑 젖고, 바닥에 뒹굴어 흙투성이가 된 옷도... 그리고 손목과 발목에 가득한 피맺힌 생채기도...그대로였다. 윤호가 재빨리 옆에 서있는 환희를 바라봤다. 분명 자기가 준수의 상태를 확인하고 올때까지 재중을 보살피라 명했는데... 윤호의 날카로운 눈빛에 환희가 금새 쫄아들며 입술을 삐죽이 내밀었다. "재중님께서..꼼짝도 하시지 않는걸요... 따뜻한 물도 받아놨는데 목욕도 안하시겠다하고... 윤호님 오실때까지 기다리신다고 했어요......" 환희에 말에 윤호의 시선이 다시 재중쪽으로 향했다. "..화..환희야..미안...." 자신을 걱정스레보는 환희에게 미안한지..재중은 계속해서 그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후우...." 윤호가 그런 재중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나즈막히 긴 한숨을 내뿜고는 환희에게 말을 건냈다. "나가봐도 괜찮다 환희야." "예?...아..네...." 윤호의 말에 환희가 곧 머뭇거리더니 이내 재중을 한번 쳐다보고는 밖으로 나섰다. 쿵-----. 문이 닫히는 동시에 짧은 적막감이 흐르고............. 윤호가 재중에게 바짝 다가섰다. "........" 그러자 까만색 강아지같은 순진한 눈동자가 자신을 올려다본다. 비에젖은 옷자락을 두손으로 꼬옥 틀어쥔것이 분명..추워보였다. 그런 재중을 바라보며 윤호가 조금은 화가난듯 말을 꺼내려 입을 열때였다. "..너..어째서.......!!!!!" 와락-----!! 윤호가 말을 다 끝맺기도전에 안겨든 여린 몸. 윤호의 가슴에 볼을 부비고 파고들며 가는 두팔로 있는힘껏 그의 목을 감싸안는다. "........" 재중의 차가운 체온이 윤호의 몸으로 그대로 전해졌다. 얼마만에 여유있게 이녀석이 예쁘게 안기는지... 내심 기분이 좋기도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윤호가 애써 한품에 포옥 안기는 재중의 몸을 밀어내려 노력하며 조용히 읍조렸다. "우선 따뜻한 물로 몸 좀 녹여. 밤새 너 이렇고 있었다는거 생각하면.. 나 화나니까..어서." 도리도리. 하지만 이내 싫다는듯이 고갯질만 해대고 윤호의 냉랭한 말에도 아랑곳하지않는 재중은, 여전히 윤호의 품에 매달려 있을뿐였다. 더욱더 여린팔에 꾸우욱 힘을주며 떨어지지 않는다. "휴우..." 윤호가 나즈막히 한숨을 몰아쉬며 잠시 그대로 재중을 감싸안았다. 자신의 허리와 어깨를 감싸는 따뜻한 손길에 재중이 이내 웅얼거리듯 조심스런 말을 꺼내놓는다. "...주....준수는......." 불안스레 내묻는 말에는 걱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그런 그의 이마위에 가볍게 입맞추며 윤호가 낮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많이 안다쳤어....지금 너희 형하고 자고있으니까........" 물론 준수의 상처가 가벼운 상처는 아니다. 날카로운 단도로 지독하리만큼 깊게 찔렸으니까......... 하지만, 이 마음 여린 아이가 상처받을까 어느새 조심스러워진 윤호였다. 재중이 이내 윤호의 가슴에 더욱더 포옥 안겨들며 다행이라는듯 희미한 미소를 지어냈다. "........" 잠시후. 재중이 어느정도 안심이된듯 보이자 윤호가 그의 어깨를 살짝 밀어내며 욕실로 데려가려 할때였다. "..!!!" 윤호의 밀어내는 손길에서 어떤 불안감을 이 아이는 또 느꼈을까. 이내 깜짝 놀란 동그란 눈을 해가지고는 윤호의 옷자락을 두손으로 꼬옥 붙잡고 놓치지 않으려는듯 그렇게 입술을 꾸욱 깨문다. 그런 재중의 행동에 윤호가 미간을 일그리며 말을 건냈다. "이봐..너 지금......" ".....어..." "..뭐..?" 곧 자신의 말을끊으며 뭐라고 옹알거리는 소리를 알아듣기위해 재중쪽으로 고개를 숙이는 윤호. 그러자 그런 윤호를 곧 말간 눈물을 가득채운 눈동자가 바라본다. "..싫..어.........또........." 재중이 코끝을 찡그리며 이내 눈물을 떨궜다. "...또....재중이....떼어놓으려고........" 미간을 일그리고있는 윤호가 자신을 예전처럼 어딘가로 멀리 보내버리는줄 알았나보다. "........" 그런 재중을 바라보던 윤호의 가슴한구석이..아려왔다. 널..상처입히고..... 매몰차게....떠나보냈으니............ 윤호이..이내 머뭇거리는 손길로 재중의 얼굴을 조심스레 매만졌다. 그러다가 계속해서 뚝뚝 떨어지는 그의 눈물위로 가벼운 입맞춤을 전해주고.... 윤호의 다정한 행동에 재중은 더욱더 많은 눈물을 쏟아냈다. "....다시는....싫어요....... 재중이......보내지..말아요..........이..이렇게..안아주면........." 재중이 작게 훌쩍이며 떠듬떠듬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런 재중의 입가에 입술을 맞대며 윤호가 나즈막히 속삭인다. "보내지..않아.......... 놔달라고해도...절대 놔주지도않겠어....... 오히려..내 욕심에 니가 후회할지도 몰라." 사랑한단걸 깨닫는순간 부쩍 샘솟는 재중에대한 욕심에 윤호는 그가 눈을 뜬 경로를 자세히 묻고싶었지만, 재중의 맑은 눈동자를 보는순간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지금은..그게 우선이 아니니까................... 복잡한 윤호의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재중이 수줍은듯 작게 중얼거렸다. "...유..윤호가...좋아............ 재중이는...윤호가....너무너무..좋아요.......그러니까........" 그리고는 이내 재중이 작게 흐느끼며 윤호의 허리를 꼬옥 끌어안았다. 가는 두팔. 더욱더 여려진 몸. 아름다운 눈동자. 붉은입술. 금새 샘솟는 미칠것같은 열정을 꾸욱 누르며 윤호가 재중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넘겼다. "울지마. 자꾸 울면...안아주지 않아." "..!!!" 윤호의 안아주지 않겠다는 그말. 그말에 금새 놀란 눈을 동그랗게 올려뜬 재중이 훌쩍이며 터져나오는 흐느낌을 일순간..두손으로 막아버린다. 그러자...... "....히끅...!" 이내 딸꾹질이 생성되는 소리에 윤호는 자신도 모르게 가볍게 미소를 지어냈다. "..우웅....." 재중이 살며시 눈가를 찌푸리고는 자신의 볼위에 떨어져있던 눈물들을 손등으로 재빨리 훔쳐냈다. 마치 처음부터 울지않은것처럼..... 그리고는 자신을 사랑스럽다는듯이 뚫어져라 바라보는 윤호의 두눈을 마주하고... 이내 우물쭈물..손가락을 꼼지락댄다. 무언가..할말이 있는듯하다. 그런 재중의 말을 기다리는 윤호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지고... 이내 머뭇거리던 재중이 윤호를 조심스럽게 올려다보며 천천히 말을 꺼냈다. "..재중이...얼굴이....너무 예쁘지 않아서............" 윤호는..이렇게나...멋진데........ 재중이 입술을 뾰루퉁이 내밀며 고개를 푹 숙인다. "...예, 예쁘지 않으니까.....재중이는..........." 무언가 잔뜩 걱정스러운듯 불안스레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는 재중의 모습에 윤호는 끝내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풋...." 이 아이는 자신이..얼마나 아름다운지..모르는가 보다. 전혀...모르고있어............. 윤호가 재중의 숙이고있는 얼굴을 부드럽게 들어올리며 그 붉은 입술에 깊게 입맞췄다. 그러자 마치 윤호만을위한 것인듯 부드럽게 감겨드는 입술. 그 입술위에서 윤호가 웃음섞인..그러나 진지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에겐...최고야." 시무룩해진 재중이 사랑스럽다는듯 그의 귓볼을 살짝 깨문 윤호이, 재중의 허리를 두팔로 감싸 그의 몸을 안아 들었다. "하지만, 지금당장 목욕을하면 더 끝내줄것같은데.." 그리고 스스로도 놀랄만큼 장난스런말을 서슴없이 내뱉은 윤호가 자신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재중을 안아들고는 욕실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내가 이렇게 웃을수 있는것도........ 전에없던 삶의 여유를 가질수 있게 되는것도............. 모두......네가 있기 때문이야......... 저 깊숙한곳부터.......따뜻함이...올라와.............. ...내곁에.......네가 있기때문에........... ......널 사랑한다는걸 인정하기 시작한 후부터.......... - 미 열(美 熱) 77편 - 첨벙---. 뜨거운 물을 둥그런 욕조위로 가득 퍼담는 윤호의 손길이 분주해졌다. 그런 그를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재중. 언제나 시종들이 해주는 잡일에는 전혀 신경조차 쓰지않던 자신였는데..... 이제는 재중을위해 손수 물 온도가 적절한지 손까지 넣어보는 스스로가 우습기도하다. 하지만.......... 정말 자신의 행동이 우스울지 모르지만............ 그건..지극히 당연한 변화였다. "자. 들어가. 따뜻할꺼다." 어느정도 기분좋을 만큼의 물온도를 맞춰놓은 윤호가 재중을향해 고갯짓을했다. 그러자 머뭇머뭇..뻘쭘뻘쭘..걸음을 옮긴 재중이 윤호을한번 흘깃 바라보더니만, 이내 조심스레 욕조안으로 발을 담근다. 그리고는 더러운 옷을 벗을 생각도않고는 그자리에 풀썩 주저앉아버리는데........ 윤호가 두눈을 동그랗게 떠올려 그런 재중을 바라봤다. "뭐하는거야. 옷은 벗어야지." 그리고는 아주 당연하다는듯 재중의 옷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싫..." 첨벙----!! 갑자기 윤호의 손길을 거부하는 재중. "..!!!.." 그의 그런 모습에 내심 당황한것은 윤호였고, 재중은 자신의 옷자락을 꼬옥 잡은채 고개를 푸욱 숙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이미 발갛게 달아오를때로 달아올라 있었고, 그 예쁜 눈동자도 윤호에게 전혀 맞추려들지 않았다. 재중을 의아하게 바라본 윤호가 작은 한숨을 내쉬며 이해못하겠다는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휴우...." 그리고는 차분하게 다시한번 재중의 옷자락에 손을 갖다댔다. "너...옷입고 목욕해? 입고 할 수는 없잖아." 다시한번 재중의 둥근 어깨위 옷자락에 손을대자 역시나 아까와같이 흠칫 놀라는게 두눈에 뚜렷이 들어온다. "뭐하자는거냐 도대체." 윤호가 이내 미간을 일그리며 재중을 노려봤다. 예전에 자신이 직접 목욕을 시키던 때에도 이렇게까지 거부하진 않았었다. 그런데..어째서........... 윤호가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자 그제서야 재중이 머뭇거리는 눈동자를 들어올렸다. 까만빛 흑요석이 자신을 빨아들일듯 그렇게 수줍게 바라본다. "......." 재중이 이내 꾸욱 다물고있던 입술을 조심스레 열기 시작했다. "..차......." "......." 저 입에서............. "창..피해......" 무슨말이 나올까........... "뭐?!!" 재중의 속삭이듯 내뱉은 작은말에 윤호의 한쪽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창피하다니.......?! 뜻밖에 말이었다. 자세히 재중의 얼굴을 바라보니 정말 부끄러운지 보기좋게 달구어진 얼굴, 그리고 옷자락을 꼬옥 잡고있는 떨리는 손가락. 정말 쑥쓰러워하고 있는것이 그제서야 윤호의 두눈으로 확연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전과는 다른모습. 예전에는 이렇게까지 작은 사소한일에 창피함을 느끼지는 않았었다. 아이같은 순수함으로 똘똘 무장한채 아무것도 몰라 그저 윤호가 이끌면 이끄는데로 그렇게 움직이던 녀석였는데............... ..눈을 뜨면서......모든 사랑에 눈을 떠버린것인지....... 이제는 부끄러움도 안다고한다. "..쿡..." 윤호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웅?" 꽤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자신을보고 입가에 비스듬히 미소를 걸고있는 윤호의 모습에, 재중의 입술이 뾰로퉁 해졌다. "어..어째서....웃는거..예요...." 자신의 얼굴은 뜨거워 죽겠는데..왜 웃는건지............. "..아아..." 윤호가 키득거리던 웃음을 멈추며 예쁜 눈을 흘기고있는 재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머리카락에 맺혀있던 물방울들이 그의 어깨위로..얼굴위로 흩어져 내린다. "......." "......." 윤호가 잠시 그렇게 재중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의 두눈동자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묻고싶었다. 네..그 예쁜......두 눈동자는....도대체 어떻게 세상을 볼 수 있게 된거냐고.... 누가..........네 눈동자에 빛을 담아줬느냐고........... 하지만,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그 질문을 애써 삼키며 윤호가 낮게 읍조렸다. "좋은 생각이야. 물론 아무에게나 네 몸을 보여선 안되지." 재중의 머리를 쓰다듬던 윤호의 손길이 천천히 그의 볼을 어루만졌다. "...하지만.......니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보여줘도 상관없는거야. 니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있어 너 자신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보석과도 같으니까. 부끄럼없이....보여 줄 수 있어야하지 않겠어?" "........" 제..일.....좋아하는 사람.................. 그건....."사랑"이란 단어로도 표현 될 수 있다 했었지...유천형이........ 재중이 자신의 볼을 쓰다듬는 윤호의 손위로, 자신의 손을 살포시 얹었다. 난......윤호가..........좋아요.............. ...사랑...해요............... 새초롬히 떠올린 긴 속눈썹 위로 맺혀있던 얕은 물방울이..두눈을 깜빡이자 토독.. 떨어져 내린다. "......."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재중이 조심스런 손길로 자신의 어깨위에있던 옷자락을 내려트렸다. 그러자 이내 드러나는 선이 고운 둥근어깨. 그 모습에 윤호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이녀석은..아마도.................. 눈을뜨는 동시에 몸도 마음도 부쩍 자라버린 모양였다.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순리처럼.............. 그렇게..조금씩..사랑에 눈뜨는 모습... 옷자락이 욕조안에있던 물속으로 잠겨들자, 마른듯 보이는 가슴이 드러났다. 그리고...가는 두팔과 얇은선의 허리. "......." 집요하게 따라붙는 윤호의 시선에 재중의 얼굴은 아까보다 더욱더 붉게 변해있었다. 재중이 윤호의 시선을 피하며 살며시 손을들어, 멋쩍은듯 자신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그렇게..쳐다보면.........재중이는..................... 윤호의 여유있는 시선에 오히려 바짝 긴장해버린 재중의 손가락끝이 가늘게 떨려왔다. 자신도 그걸 느꼈는지 이내 윤호를 바라보며 입술을 오므린다. "이..이상해요 윤호..... 재중이.....왜 이렇게....손끝이...떨리..죠....?" 모르겠다는듯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에 윤호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떨리는 재중의 손끝을 꼬옥 붙들어버린 윤호이..그의 손 마디마디에 입을 맞췄다. 미칠정도로 사랑스러웠다. 그래.............. 이대로 안고싶을 정도로............... 순식간에 재중을 바라보는 윤호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원했다는듯이 재중의 입술위로 겹쳐지는 뜨거운 숨결. 윤호의 갑작스런 키스에 흠칫..놀란듯 어깨를 떠는 재중였지만, 윤호이기에 당연하다는듯..자연스레 작게 입술을 열어준다. "..우...웅..." 가는 미성.......... 사랑스러워..너................ 첨벙---. 자신의 옷자락도 같이 젖어드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윤호의 뜨거운 입맞춤은 한참이나 숨가쁘게 이어졌다. - 미 열(美 熱) 78편 - 펄럭-----. 창문가에서 얼핏 새어들어오는 바람때문에 부드럽게 물결치는 실크커텐. 하지만, 그 작은 움직임은 자신도 모르게 깜빡 졸고있던 유천을 화들짝 놀라게끔 하기엔 충분했다. "엇.." 흠칫 놀라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유천이 창문을 조심스레 닫았다. 며칠째 제대로 잠들지 못한 피로함 때문일까. 준수의 얼굴을 빤히 지켜보다가 꾸벅 졸아버리는것은 절대로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후우..." 짧은 한숨을 내쉬며 유천이 다시 준수의 곁에 다가가 앉았다. "......." 핏기없는 얼굴이 조금전보다는 그래도 희색이 돌아보이는건 저 달빛의 장난인지.. 아니면..그러길 바라는 유천의 바램때문인지... 어쨌든 메마른 입술에 붉은기가 돌자 유천은 다시한번 그의 손을 꼬옥 붙잡았다.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잠시라도 자리를 뜨면 곧바로 저 보드라운 눈자위가 조용히 떠지며, 준수의 짙은 회색눈빛이 보일것 같았다. 차분하면서도 깊음을 감추고있는 짙은.....회색동공................... 말하고 싶었다. 이제껏...너에게..끌리고 있었다고............ 안본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너무많이 널 떠올려서 나중에야 그것이 그리움인줄 깨달아 버렸다고..말하고 싶었다. 그러니까....빨리 그 눈 좀..떠보라고................. 하고싶은 말이 아주 많아져 버렸는데....... 그렇게 있으면..나보고 어쩌란 거야.............. 유천이 준수의 손을 꼬옥 붙잡으며 두눈을 질끈 감을때였다. "..!!!..." 꿈틀. 미세한..움직임. 틀림없이 유천이 꽉잡은 손안에서 느껴지는 세세한 떨림였다. 준수야?!! 유천의 눈이 순간 커다랗게 변하고... 그와 동시에 파르르 작은 울림을 울리던 준수의 눈꺼플이 조금씩 조금씩 들어올려졌다. "......." 조용한 침묵. 숨소리 조차도 낼 수 없을만큼의 무거운 정적이 준수의 눈 뜨는 모습을 천천히 바라보는것 같았다. 까만색 긴 속눈썹이 우아하게 들어올려지며 유천이 그토록 보고싶었던 짙은 회색 동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준..수...." 입술을 달싹여 작게 그의 이름을 불러보는 유천. 조심스럽게 그의 손을 더욱더 꼬옥 잡은 유천이 마른침을 삼키며 경이로운 눈빛으로 준수의 얼굴을 바라봤다. 잠시동안 멍한 눈빛으로 뚫어지게 천장만을 바라보는 동공. "..아..." 하지만, 이내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물기없는 입술을 힘껏 깨문다. 찌릿한 고통이 발끝까지 전해지는것 같았다. "하아.." 금새 가뿐숨을 내쉬며 어깨를 움츠리는 준수를 바라보던 유천의 눈길이 다급해졌다. "며칠간은 지독히 아플꺼라했어." 이런 마음일까.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면 자신이 더 아프다는 말... 얼핏 누군가에게 흘리듯 들었을때는 정말 우스운 말이라고... 콧웃음을 쳤었는데..... 지금 이순간 그 말이 사실이라는것이 증명되고 있었다. "움직이지도 말고." 유천이 이마위로 흘러내린 준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넘겨준다. 그러자 그제서야 유천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의 손길을 느낀것인지, 순간 고통으로 꼬옥 감고있던 준수의 두눈이 놀란듯이 커다랗게 떠졌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떨리는 눈동자로 유천의 손길이 시작된곳을..천천히 바라보는데..... "......." "......." 드디어 마주친 서로의 시선에 조용한 정적이 겉돌았다. 하지만, 자신의 곁에있는것이 유천라는걸 믿지 못하겠는지 이내 입술을 열어 말을 꺼내려는 준수의 눈동자위로 눈물이 고였다. 목이 콱 막혀버려..목소리를 내기란 여간 힘든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불러보지 않는다면............ 마치..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릴까봐............. 어떻게든 불러야했다. 그의 이름을.............. 가슴의 통증도 잠시 잊은 준수가 떨리는 입술을 천천히 열었다. "..유....." "......." "..유천...씨....." 준수의 마른 목소리. 못본사이 그새 더욱 여려진 준수인것같아 유천의 마음이 시려온다. "......." 많이도 아파 보이는 준수의 목소리에 유천은 순간 아무말도 하지못하고..... 아무말없는 유천앞에서 준수는 마치 자신의 옆에있는 그의 모습이 환상일꺼라 단정지었는지 그렇게 다시 절망감에 빠져든다. 하지만. "..보고......싶..었어...." 작게 준수의 침대가를 울리는 나즈막한 목소리에, 준수의 눈동자는 다시한번 커다래 질 수 밖에 없었다. "..유천씨...." 꿈이 아니었다. "유천씨...맞아요...?" 항상...사라지고마는 꿈이나 환상이 아니었어..... 눈물이 차오르면 앞에있는 그의 모습이 흐려질까 자꾸만 눈물을 집어삼키는 준수가 자신의 손을 잡고있는 유천의 손을 바라봤다. "떠나지..않을께....." "..!!!!!..." 이미 촉촉하게 젖어버린 준수의 눈가를 자신의 손으로 살며시 쓸어내리는 유천은 따뜻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있었다. 정말........... 유천씨가......내가..보고싶었다고........ 떠나지..않을꺼라고.......말하는 건가요...... "...흑......" 준수가 이내 구슬프게 흐느끼며 울음을 터트렸다. "울지마...." 니가 우는게 이렇게 가슴 아플줄은 몰랐어. 그래서.....그래서....내가 떠날때....니 얼굴이 그렇게 바라보기 싫었나보다. 우는 니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면.. 차마 널 부정하려던 내 마음이 들킬까봐... 그럴까봐...그랬나보다..준수아. "..흐으윽...흑...." 금새 조금씩 오열로 바뀌는 흐느낌에 유천이 그의 이마위로 작게 입맞췄다. 그리웠다고... 얼마나 자신도 모르게 많이 생각해왔는지.. 깨어나면..꼭 이런저런 얘기를 해줄꺼라고 생각해왔던것은 모두 어디로 날아갔는지 지금 현재는 이말만을 하고싶을뿐였다. 가슴 깊숙이에서부터 솟아오르는 진심어린 단 한마디. 유천이 울고있는 준수의 귓가에 조금은 긴장된 목소리로 낮게 속삭였다. "......." "..흐윽....흑...." "..사...랑해...." "..!!!.." ...사랑해................ 자신이 먼저 유천에게 알렸던 그 말. 아무리 말하고 말해도 대답없을 꺼라고..... 언제나 자신의 목소리만 되돌아오는 메아리가 되어버릴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던 그 말이..지금.......... 자신의 귓가로 조용히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얼굴을 스치는 유천의 따뜻한 입술............... 마치 소중한 무엇인가를 다루는듯한 유천의 그 부드러운 입술은 준수에게있어 최고의 감동였다. "..흐으윽....흐읏......" 준수가 자신의 눈물을 하염없이 닦아내리는 유천의 옷자락을 꼬옥 붙들었다. "..다시는......." "......." "..다시는..떠난다고...하지말아요..... 그러지.....말아요........." 준수의 간절함이 베어있는 말에 유천은 그저 눈물맺힌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을뿐였다. 그리고..준수의 가는 두팔이 자신을 안으려고 힘겹게 움직일때는, 다시한번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파묻고 나즈막히 중얼거렸다. "..사랑해..김준수.......사랑해." "...흐윽.....흑...." 가슴의 통증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전혀...아프지 않아..... 유천이 곁에 있어준다고...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지금... 그동안의 모든 가슴시림이 깨끗하게 날아가 버리는 순간였다. . . . 먼길을..돌아온........또 다른 연인들에 새로운 사랑의 시작....... - 미 열(美 熱) 79편 - 우거진 나무숲에 가려져 잘 보이지않는 건물. 하얀색의 우아한 건물이긴 했지만, 유난히도 다른 거처들과는 뚝 떨어져있어 외져보이기까지 한다. 터벅터벅--. 사방을 애워싼 싸늘한 정적 소리를 깨는 낮은 발자국소리. 가뿐한것 같으면서도 결코 가벼워 보이지않는 기품있는 걸음걸이에 복도를 쭉 늘어선 보초병들은 깊게 허리를숙여 예를 갖췄다. 그런그들을 보며 애써 여유있는 미소를 지어보이는 창민이 드디어 어느한곳에 그 발걸음을 멈춰섰다. "......." 잠시동안 방문을 뚫어지게 바라본 창민이 옆에서있는 보초병에게 나즈막히 말을 건냈다. "문을열게." 창민의 명령에 즉시 소리없이 문을여는 보초병. 그리고 그가 열은 문틈으로 서서히 보이는 방의 풍경. 작은 방였지만, 꽤나 깔끔하게 정리정돈 되어있었다. 하지만, 분명 자신이 쓰던 방과는 비교도 안되는 낡음에 화가나 있을지도 모르는 그녀였다. 철저하게 격리된 이곳에 갇힌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드디어 창민이 조금전과는 달리 날카롭게 인상을 바꾸며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침대위에 우두커니 앉아있던 유리와 창살이 나있는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던 지연이 고개를 돌린다. "........" "..오라....버..니...." 유리가 그 동안 바싹 마른듯 까칠해진 입술을열며 놀란눈으로 창민을 바라봤다. 그런 그녀를 잠시 쳐다본 창민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항상 아름답게 치장하고 꾸밀줄만 알았던 그녀였기에 어쩐지 수척해져버린 얼굴은 전혀 생각도 못해봤기 때문이리라. 아무리 사악한 마음을 지녔다 하더라도 자신의 죄에대해 그리 여유있게 맞설수있는 사람은 없을텐데도............. "......." 자신을보고 아무말이없는 창민을 바라보며 유리가 다시 머뭇머뭇 침대위로 앉았다. 그리고는 불안한 눈동자를 애써 위로 들어올리며 창민의 눈동자와 마주했다. 커다란 눈밑에 어려있는 검은 그림자가 그녀의 얼굴빛을 더욱더 어둡게 만들었다. "..우리...어떻게...되는건가요........ .....죽는.........건가요...........?" 스스로 말을 꺼내기 힘들만큼 무서운질문. 윤호가 아끼는 그 아이를 해하려하고, 게다가 절친한 친구이자 유일한 피붙이 사촌인 준수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 무섭도록 잔인한..질투심때문에..... 가늘게 경련을 일으키는 유리의 손끝을 바라보는 창민의 마음이 착잡해졌다. "창민님-!!!" 털썩-----!! 순간 그런 유리를 가만히 지켜보던 지연이 창민의 앞으로 고꾸라지며 이마를 바닥으로 떨구었다. 마치 사형수가 죽을날만을 기다리는듯 그렇게 겁에질린 지연의 어깨또한 커다란 떨림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모든것을 감추고 애원하듯 창민에게 애써 말을 던진다. "유리님은 창민님의 하나밖에없는 여동생이시잖아요!! 제발 한번만 용서와 배려를 베풀어주세요!!! 유리님이 얼마나 윤호님을 사랑하셨는지...힘들어..하셨는지 알아주세요..!!!" 엄마가없는 유리의 곁을 가득 매꿔주었던 지연이 눈물을 참아내며 창민에게 호소했다. ".........." 하지만, 그런 지연에게 시선조차 돌리지않은 유리가 이내 입술을 파르르떨며 울음을 터뜨리고는 악에바친 고함소리를 토해냈다. "내가 어째서 이꼴이 되야하는거지? 오라버니도 알잖아요!!! 내가 윤호의 반려자가 되어있기로한것을!!! 그런데..어째서..그따위 천한 마녀족 따위에게........그런....." 유리가 이내 두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흐으윽..흑흑....." 커다랗게 오열하는 마른어깨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하아...." 깊게 새어나오는 한숨. 자신도 알고있었다. 아버지의 사랑으로 한껏 받을줄만 알고 자만심과 도도함으로 가득찬 자신의 이복동생이 처음으로 반하며 매달린 사람이 윤호이란것을............ 하지만, 그것은 갖지못한것에대한 이기심과 욕심이다. 사랑을 뛰어넘어 집착만 남아버린 잔혹한 이기심. 다른사람이 다치는것에 대해서는 전혀 어떤것도 개의치못할만큼 자신의 감정에만 푸욱 빠져버린 그녀였다. ..사랑이 아니라는것을...인정하지 못할만큼 그 골은 꽤나 깊은것였다. 그래도..자신의 아버지는 살아생전 그녀를 얼마나 예뻐하고 귀여워했던가. 전쟁에 치쳐있던 그에게 딸이란 존재는 커다란 위안였다. 부인의 빈자리를 채워줄만한 따뜻한 존재........... 물론 그의 지나친 애정이 지금의 그녀가 있게한 결정적 요인이 되어버렸지만..... "흐으윽...흑...." "......." 더이상 눈물을 참아내려 노력하지않는 지연도 유리와함께 커다랗게 오열하고 있었다. 윤호의 입장에서는 이 둘을 가만히 두고싶지않은 마음..당연한것일텐데.... 용서가 되지않을텐데............. 창민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뜨거워진 눈동자를 식히려 두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울고있는 유리에게로 다가서서, 그녀의 어깨위를 커다란 손으로 따뜻하게 감쌌다. 이내 울리는 창민의 낮은 목소리... "이제 인정해야지....윤호가 선택한 사람이 니가아닌 그 아이라는걸......" "흐윽...흣...." 창민의 차분한 말에 유리가 마치 아니라고 부정을하듯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창민은 자신의 말을 멈추지 않았다. "윤호가 그 아이를 사랑하게 되어버린걸..누구보다도 네 자신이 제일 잘 알고있을텐데도...그걸 인정하지 못하는구나........... 그러면...더 힘들어질뿐인데......" "싫어요 오라버니....누구에게도 뺏기고싶지..않아.....흐윽.... 어느 누구에게도...절대로............" 유리가 더욱더 커다랗게 흐느끼며 창민의 옷자락을 잡고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흐으으윽...." 창민이 자신에게 기대우는 유리의 등을..머뭇거리던 손으로 이내 가볍게 쓸어내려 주었다. 지금 그녀가 흘리는 눈물은 결코 거짓되거나 가식된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진심으로 창민자신도 그녀에게 따뜻해 질 수 있는것이다. "........" 생각해보면.....난...어릴때도 네 어머니가 미워서 널 안아줬던 기억이 없구나... 여동생이라 귀여워해준적이 단 한번도 없어..... 창민이 처음으로 자신의 배다른 남매인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따뜻하게 위로해주며 조용히...입술을 열었다. 그리고 여지껏 유리에게 들려준적이 없었던 부드러운 목소리로 낮게 속삭이듯 말을 꺼낸다. "...이곳을..떠나라.........차라리..떠나......" "흐윽...흑..." "이 오라버니가..그렇게 할 수있게 해주마. 지연과..둘이 다른곳에서...편히 살수있게......" . . . ..그래........... 지독한 그리움도..시간이 지나면..잊혀지는것이고...... 잔인한 사랑또한 서서히 시간속에 사라지는거다...... "......." 창민이 결국 내린 결정은 그들의 귀향였다. 지금 시점에서 자신이 여동생인 유리에게 해줄수있는 최대의 배려와 용서는 그것이..전부였다. - 미 열(美 熱) 80편 - 창민이 보내온 전갈을 급하게 받아 본 윤호가 살짝..미간을 일그렸다. 유리와 지연을 이곳에서 떨어진 먼곳으로 귀향을 보내고싶다는 결정였다. 물론 자신의 의지대로 했다면 가차없이 살려두지 않았을것이다. 하지만, 창민에게 결정권을 준것은 자신이 그에게 내린 친구로써의 배려가 아니었던가. 그의 결정에 결국은 따르기로 하면서도 자꾸만 화가 치솟는것은 비오던날의 재중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였다. 터벅터벅---. 애써 유리와 지연에 대한 분노를 삭히며 발걸음을 부지런히 옮기는 윤호는 당연하다는듯 자신의 거처로 가고있었다. 지금쯤이면...아직도 자고있으려나.......? 조금은 이른아침. 부지런히 일어난 윤호는 벌써 귀족들과의 회의를 일찌감치 마쳤다. 아니면....환희와..놀고있던지........... 눈이 보인후로는 뭐가 그리 궁금한것이 많은지 정원숲을 돌아다니느라 정신없는 녀석였다. 그런녀석에게 환희는 이제 몸종이라기 보다는 재중에게있어, 더없이 훌륭한 보모역활과 친구역활을 확실히 해주고 있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곁에서 곤히 잠든 모습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는데도, 회의를하는 그 세시간 남짓한 동안이 마치 하루왠종일을 보지못한듯 조바심을 불러일으켰다. ..그..까만눈동자를 바라보면, 많은 일때문에 지끈거리던 머리가 깨끗이 맑아지는 기분였다. 정말로.......거짓말같이................... 그렇게 본회의실이 자리잡고있는 커다란 귀족들의 궁을, 재중생각에 한참을걸어 빠져나오는데 문득 윤호의 눈에 들어오는 어느 방 하나. "......." 타각-타각---. 살짝 열린 방문틈으로는 쉴새없이 실짜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시종들로 보이는 여인네들의 수근거리는 얘기소리와 콧노래소리. 방문 사이로는 각 짜내어진 옷감들이 나풀나풀 여인네들의 손에의해 움직이고 있었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휘둥그레 치켜뜬 윤호가 어느 여인네의 손에 들려있는 연초록빛 옷감에 시선을 두었다. "...저..옷감..!"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서는 그 옷감을 자신의 손으로 낚아챘다. "어머..!! 윤호님!!" 순간 갑자기 들어선 윤호덕택에 일을하고있던 여인네들이 화들짝 놀란듯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중히 고개숙여 인사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윤호가 평소에 그답지않게 눈빛을 반짝여 보였다.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연초록빛 옷감은 무척이나 가볍고 아름답고, 또 청초했다. 뭔가에 들떠보이는듯한 윤호의 모습에 멀뚱멀뚱 서있던 나이든 여인네들의 얼굴위로 의아함이 번졌다. 그도 그럴것이 한번도 윤호의 그런 표정따위..볼 수 없는것였으니..... 언제나 그가 걸어다니는 모습을 볼때는 화가 나있거나 포커페이스를 일관하고 있었기때문였다. 그가 웃을때라곤 오로지 여러귀족들과 마녀사냥을 즐기거나 향락에 취할때뿐였는데..... 어린아이처럼 기대감이 가득한 눈빛이라니..... 자신을 당황한 눈으로 바라보는 그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윤호는 이내 자신의 가까이에 서있는 여인네에게 말을 건냈다. "예쁜..옷을 지을수 있겠느냐." 보일듯말듯한 미소까지 피어오른 윤호의 얼굴을 감히 마주보지 못한채 여인네가 예를 갖춰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녀의 모습에 윤호가 옷감을 두손으로 쭈욱 펼쳐보이며 차근차근 말을 잇기 시작했다. "좁은 어깨가..들어날 수 있도록 어깨선은 둥글게 하는것이 좋겠다." 모카빛..고운 피부가..눈에 아른거리는듯해... "그리고..목선과 쇄골이 아름다운 아아니까 상체부분은 약간 비춰보이게 한다면 상당히....예쁠꺼야." 그 까만 눈동자가 평생..자신을 바라본다고 생각하니... 발끝에서부터..올라오는 이 희열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허리곡선이 아주 부드러워. 비단천으로 한번 감싸준다면 아이같이 귀여울것이 틀림없어." 사랑.......하지 않을수가...없어.......... "......." 윤호가 곧 자신의 말을 다 맞쳤는지 여인네에게 옷감을 건내주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말대로 할 수 있겠냐는 뜻의 눈빛으로 대답을 기다린다. 그러자 나이든 여인네가 옷감을 곱게 접어 손에 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맘에 쏙 드는 옷을 만들어준다면, 그에 따른 상을 내려줄 것이다." 윤호가 자신도 모르게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어내며 방을 나섰다. 그런 자신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을 눈치채지못한 윤호가 다시 가벼운 발걸음을 자신의 거처로 황급히 옮겼다. . . . 연두색 나뭇잎. 바람에 따라 살랑거리며 하염없이 내리쬐는 따가운 햇빛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침해인데도 불구하고 유난히도 강하게 쏟아져 내리는 햇빛을 나무그늘 밑에서 피하고있는 유천이 저 멀리서 걸어오는 윤호를 바라봤다. "......." 그리고 어느정도 윤호과의 거리가 가까이 좁혀졌다 생각하는 찰나, 나무기둥에 기대고있던 몸을 일으켰다. "..!!.." 갑자기 불쑥 앞에서 튀어나온 유천을 보고 놀랐는지 윤호가 걸음을 멈췄다. "......." "......." 아직까진 어색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들였다. 하지만, 이내 먼저 입을 연건 윤호. "..준수가..깨어났다는 말..전해 들었어. 잘..해주고 있다는 말도...소진이에게 들었고." 윤호의 나즈막한 목소리에 유천이 멋쩍은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아마..아직까지도 윤호를 암살하려했던 자신의 판단착오가 마음속깊이에서 걸리는 모양였다. "재중이를..보러온거라면..따라와. 자고있을지 모르겠군." 윤호가 자신을 아무말없이 쳐다보는 유천에게 따라오라는 고갯짓을 해보였다. "......." 하지만, 유천은 윤호를 따라서지않고 그자리를 지키고있을뿐였다. 마치 뭔가 할말이 있다는듯이... 이내 유천이 자신의 뒤를 따라오지 않자 다시 걸음을 멈춘 윤호가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이내 유천이 윤호의 곁으로 한발걸음 다가서며 조용히 속삭였다. "재중이가..보고싶기도 하지만, 아직은 너희 둘만의 시간을 방해하고싶은 생각.. 전혀없어. 내가 지금 준수하고의 시간이 방해받기 싫은것처럼 말야." "......." 유천의 말을 잠자코 듣고있는 윤호의 한쪽 눈썹끝이 올라갔다. 재중을 보러온것이 아니라고...? 그렇다면..무슨말을 하려고 온것일까? 궁금해지고 있었다. 이내 윤호의 궁금증을 날려버리듯 유천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혹시...알고싶지 않았어..?" 유천이 윤호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말을 였다. "재중이가 누구때문에 눈을 뜨게되었는지 말이야." "..!!!..." 두근. 순간, 유천의 말이 끝나자마자 두근대는 심장. 난생처음 이런 긴장감을 느껴보는듯했다. "......."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만볼뿐 아무말이없는 윤호에게 유천이 처음으로 살며시 미소를 지어보이며 장난스레 말을 건낸다. "...정윤호..그런 얼굴표정 생소한데?.." "......." 분명 놀리는 말투였지만, 지금 윤호에게 그런것따윈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살짝 일그린 미간을한채 나름대로 진지한 윤호의 얼굴을 마주보며, 유천이 아무렇지않게 툭하니 말을 던졌다. "...너야 정윤호. 울면서...널 찾았을때..눈을 떴다고 하더라." "..!!!!!.." 여유있는 표정으로 말을 건낸 박유천. 그리고 그의 대답에 깜짝 놀란 눈빛을하고있는 정윤호. 둘의 모습이 사뭇 대조적였다. "......." 심장이 쉴새없이 뛰기 시작한다. 그..예쁜눈이...........날 생각해서 모습을 드러냈다니........ 이 정윤호를 사랑해서.........!!! 바로앞에있는 자신의 거처를 올려다보는 윤호의 눈동자가 기쁨으로 일렁였다. 당장..가서...안고싶고...보고싶고........ 그자리에서 깊이..입맞추고 싶어....... 윤호의 희색이 도는 얼굴을 약간은 흐뭇한 기분으로 바라본 유천이 그의 어깨위로 한손을 올리며, 윤호의 귓가에 나즈막히 속삭였다. "그아이....우리재중이.......... 이제 온전히...네것이라는거...인정해줄께." "......." "그러니........우리재중이와....정식으로 초야를 치뤄." "..!!!.." 갑작스레 뜬금없는 유천의 말.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방금전까지의 미소는 없고 진지함만이 가득했다. 재중을 온순히 받아들여도 된다고 허락하는 유천의 얼굴만이 윤호의 커다란 두눈에 확연히 들어섰다. . . . 김재중이.........미치도록 갖고..싶어.............. ....미치도록............. ........원..해...... - 미 열(美 熱) 81편 - 고운 하늘빛이 어우러진 예쁜 침실. 얼마전 하얀색였던것에 비해서 훨씬 보기좋고 우아해보였다. 그리고 중요한것은 무엇보다도 김준수에게 그 하늘색이 잘 어울린다는 것였다. 이제 어느정도 하얀 얼굴위로 생기가 돌고... 그 창백하던 입술에 다시 촉촉한 분홍빛 혈기가 맺힌것은 며칠전부터였다. 그에따라 유천도 커다란 걱정거리를 한시름 덜어버린듯..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치 자신의 옆에 있었던 유천이 순간 안보인것에 당황했는지 짙은 회색눈동자가 걱정을 가득 담아내고 있었다. "..유천씨..." 준수가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유천을 조심스레 바라봤다. 그러자 이내 유천이 부드러운 미소를 얼굴위로 지어낸다. "걱정했어..? 잠깐 나갔다왔어...." "아.." 유천의 말에 이내 준수가 그 잠시를 못견디고 걱정했던것이 멋쩍었는지 고개를 떨궜다. 이렇게...박유천이 자신의 곁에 며칠이고 계속 있어줬는데... 사랑한다고 몇번이고 뜨겁게 고백해줬는데............... 아직도 마냥..자신의 앞에 서있는 그가.. 사라져버릴 신기루 같이 느껴지는 기분은 왜그런지...... 매몰찼던 그가 이제는 자신을 바라봐주고 상냥하게 곁에서 따뜻함을 속삭이는데도..... 유천의 사랑을 얻기까지가..많이......아파서였는지........ 준수는 아직도 촉촉히 젖은 회색빛 눈을 잃지 않았다. 글썽거리는 눈동자를 빠르게 깜빡이며 애써 웃음을 지어보이는 준수를 바라보는 유천의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김준수...." 유천이 이내 준수의 곁으로 다가가 그를 조심스레 품에 안았다. "너...바보야...?" "......." 유천의 나즈막한 물음에 준수는 아무말이없다. 그런 준수의 정수리에 입맞추며 유천이 말을 건냈다. "왜 아직도 그런눈을 하고있어.........." 너....정말..그동안......많이도 아팠나보다............ "나..못믿어.....?" 그래서...더 많이 사랑해줄꺼야............ "이제...너밖에 모르는 박유천라는걸....못믿겠냐고...." 유천의 말에 이내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대는 준수이다. 그리고는 곧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나...믿어요...유천씨...말 다 믿어요......." "......." "..그런데..자꾸...꿈같아서....깨버릴까봐..무서워............" 어린아이같은 준수의 투정어린 말. 그 투정이..이제는 유천의 귀에 제일 사랑스럽게 들려왔다. "꿈이 아니란거..알게 해주고싶어........." 유천가..준수의 가슴에 아직도 감겨있는 하얀색 붕대를 살며시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리고는 준수의 목덜미에 자신의 입술을 깊게 묻는다... "내가 널..얼마나 안고싶어 하는지........ ...갖고 싶어하는지.......느끼게 해주고..싶어.........." 유천의 낮은 목소리에 곧 준수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떠올려졌다. 그런 준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곧 입술을 그의 쇄골있는곳으로 부드럽게 옮긴다. "그때처럼...아픔이 어린것이 아니라.......... 내품에서 행복함에 아침을 맞을수있게...그렇게..........." "..유..천...씨......." 준수가 가늘게 어깨를 떨며 자신의 얼굴을 보듬고있는 그의 손을 조심스레 맞잡았다. 순간 마주친 유천와의 시선. 그 눈동자에 담긴 단호함에..이내 입술을 꼬옥 깨문다. 자신이...박유천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절실히 느낄수 있었다. 자신이...박유천의 사람이라는...확신였다. "......." ..그래요...... 나 유천씨한테.....사랑 많이..받을꺼예요............ 내가 힘들었던만큼....계속 사랑해 달라고..조를꺼예요.......... ..칭얼댈꺼예요........ 준수가 머뭇머뭇 유천의 품안으로 기대며 볼을 부볐다. 그리고는 자신의 어깨를 어루만지는 유천의 손길에 이내 눈을 감아내린다. 행복함이 한가득 묻어나는.........지금였다. 앞으로도 변하지않을.....시간들이되길....준수는 간절히 바랬다. . . . 똑똑---. "준수님..소진입니다." 한참을 그렇게 잠이 들것처럼 고개를 떨구고 자신의 품에서 꾸벅거리는 준수의 이마위에 입술을 맞대고 있을때였다. 준수의 몸종인 소진이 곧 문을 열고는 점심으로 보이는듯한 음식을 두손으로 조심히 받쳐들고 들어왔다. 그 소리에 준수도 이내 감았던 눈을 떠올리고..... 처음엔 준수를 막대하는 유천에게 반감이 있었던 그녀였지만, 이제는 준수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걸 다 아는 마당이라 유천에게도 꼬박 예의를 갖추는 그녀였다. "준수님..점심 드셔야지요....유천님것도 함께 가져왔어요...." 꽤나 무거워 보이는 그것들을 유천이 소진의 손에게 옮겨 받았다. 그리고는 준수의 침대 바로옆에있는 탁자위에 그것들을 내려놓는다. 덮개를 열자 모락모락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음식들이 모습을 보였다. "고마워요 소진씨." 그래도 준수의 사랑이라고 자신에게 예의를 차려주는 그녀에게 유천도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대하고 있었다. 또한 소진 그녀도 자신과 똑같은 종족인 마녀족이지 않은가. "그럼...맛있게 드세요...좀있다 치우러 올께요." 준수와 유천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소진이 막 몸을 돌려 밖으로 나서려 할때였다. "잠시만요 소진씨." 유천이 그녀를 불러세운다. 그런 그를 준수또한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고..소진도 의외라는듯 돌아다봤다. 유천이 준수의 어깨에 다정히 손을 올리며 조심스레 소진을향해 말을 건냈다. "준수 곁에...제가 있겠습니다. 제가 모두 다 할테니 소진씨는 더이상 신경 안쓰셔도 될것같아요." "..유천씨..." 자신의 모든일을 다 하겠다는 유천을 준수가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괜찮아요. 걱정말아요. 내가 다 할 수 있으니까...." 금새 안된다는 말을 꺼내려는 소진의 말을 부드럽게 끊으며 유천이 상냥하게 웃어보였다. "......." 소진의 당황하는 얼굴을 보던 준수도..이내 예쁘게 웃어버린다. "그래..소진아.......... 이제...내곁에 있지않아도..되니까.....유천씨가..있어줄테니까...." "준수님......." 유천이 준수의 이마위에 살며시 키스하며 소진에게 물었다. "소진씨...가족없어요...? 같은 마녀족이니까..내가 알수도있잖아요..." 유천이 소진에게 작게 물으며 그녀를 배려했다. 하지만, 곧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그녀를 보고는 금새..말문이 막혀버리는데... "......." "......." 준수도 소진에게 가족이 없다는것은 처음 알았다는듯이 놀란눈을 동그랗게 치켜떴다. 뭐든 잘 말하지 않으려던 그녀였기에..준수도 소진에대해서 자세히 아는것이 없었기 때문였다. 자신을 바라보는 유천과 준수에게로 잠시 쓸쓸한 눈빛을 빛내던 소진이 이내.. 고개를 떨구고 조용히 말을 꺼낸다. "가족은....없어요............. 그런데.......사랑하는 사람은 있어요.....약혼자예요...... 제가 이곳에 잡혀오면서..헤어졌지만..................." "약혼자...?!" 순간 소진의 말을 전해들은 유천이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왠지............... 왠지..마치.................... "약혼자..이름은...몰라...? 말해보렴..소진아." 소진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니......... 소진의 눈빛에 마음이 아픈 준수가 마치 금새라도 그를 찾아줄듯이 물었다. 그러자..서서히 소진의 입을 타고 흐르는 이름 두글자. "...전..진...이라고.........." "..!!!!!.." 소진의 나즈막한 목소리에 유천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변했다. 전..진................. ..전.....진................!!! 자신을 향해 털털하게 웃던 모습이 금새 유천의 머릿속에 아로 새겨졌다. "......." 이내 유천의 얼굴위로 환한웃음이 서리는걸 바라보던 준수와 소진의 얼굴위로 의아함이 가득떠올랐다. ..전진............. 니가 죽은줄 알았던....네 약혼녀가........살아있는듯하다. 살아있다고..!! - 미 열(美 熱) 82편 - 터벅터벅--. 설레이는 발걸음이 사뭇 가벼워 보이기도하고..또 작은떨림을 동반하고 있는것 같기도했다. 유천의 말을 들은 직후여서일까. 두근대는 마음은 조금도 진정되지 않았다. 자신이 생전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들의 시작은 언제나 김재중으로부터 시작되는것들............. 그것에대해 이제는 조금의 거부감도 따르지 않았고, 혼란스러운 머릿속은 벌써 예전에 깔끔하게 정리정돈 되어버렸다. 그를 사랑한다는걸............... 자신이 재중에게 느끼는 감정이 바로 사랑이 맞다는걸 확실하게 인정하고나자마자 마음은 마치 잔잔한 호수처럼 그리 평화로울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로 김재중이. 지금 자신의 곁에...그것도 자신이 생활하는 공간의 일부인 방안에 있다는 점였다. 우뚝--. 문뜩 이런저런 재중과 관련된 생각을 하고있다가 어느새 문앞까지 와버린 윤호가 순간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정면을 응시하는 그가 살며시 주먹을 말아쥐었다. 물론 미치도록 갖고싶은 김재중였다. 마음이야 이미 가졌지만, 사람이란것이 본래 사랑을하면 상대방에 몸에 대해서도 탐이나기 마련아니던가. 아름다운 김재중을 자신의 품에 가둬두고 매일밤 그저 잠만 청하는것은 정윤호가 살아오는동안 한번도 발휘해보적없는 최대의 인내심이 아닌가싶다. 하지만, 예전에 강제로 그를 한번 취한적이 있는 자신이었다. 그런 아픔을 줬는데... 김재중은 또한번 그런 고통을 감수하려할까? 그리고 그를 사랑하기때문에 덩달아 생겨버린 이 조심스러움을.. 뛰어넘어 그를 안을수있을지...의문였다. 자신이 그를 그렇게 범하지만 않았다면..아마 자신은 지금쯤 재중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 다시한번 재중을 아프게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사뭇 가슴이 답답해져오는 윤호였다. 작은한숨을 조용히 몰아쉬며 윤호가 이내 방문을 열때였다. 달칵----. "아아앙-----!!!" "..!!!!!.." 와락----!! 순간 문을 열자마자 안겨오는 여린몸에 그만 깜짝 놀라버린 윤호가 뒷걸음질쳤다. 그리고........ "히잉..." 이내 울먹거리는 목소리에 자신의 품에 꼬옥 매달려있는 재중을 쳐다보는데..... "..!!!"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윤호의 두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아...윤호님 오셨어요?" 재중의 모습을 눈하나 깜짝않고 쳐다보던 윤호가 재중의 뒤를 바싹 따라붙은 환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잉.....윤호........환희가 자꾸..재중이 머리를...머리를....." 울먹거리는 목소리 틈사이에서 훌쩍거리며 코를 찡그려 보이는 재중의 모습에 윤호가 다시한번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삐죽이 양쪽으로 묶여져있는 재중의 흑단자락같은 머리카락을 뚥어져라 쳐다봤다. "..풋...." 그리고는 갑자기 터져나오는 웃음에 이내 입술을 꾸욱 다물며 웃지 않으려 노력한다. 윤호의 오묘한 표정에 재중이 금새 다시 울상을 지었다. "..우웅......." 윤호의 옷자락을 꼬옥 틀어쥐고있던 재중이 이내 화가난듯 입술을 삐죽이며 환희를 노려봤다. 물론 노려봤다라고 표현하기에....... 그의 모습은 너무나 귀여웠다. "유, 윤호가 웃잖아. 재중이는..머리.....이렇게.......싫었는데..." 드문드문 완성되지못한 말들이 붉은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그 모습에 환희가 커다랗게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목구멍 안으로 간신히 밀어넣으며 장난끼어린 말을 던졌다. "재중님..머리가 너무 길어서 싫어하셨잖아요. 그렇다고 자르는것도 싫다고 하시니, 묶는 수 밖에요.." 환희는 틀림없이 재중의 삐죽이 귀염성있게 자신이 묶어준 머리에..은근히 뿌듯함을 느끼는 모양였다. 그리고 어쩌면 재중의 귀여운 반응을 너무나 재밌게 즐기고 있는것일지도..... 반짝이는 은빛 실크천으로 리본까지 완벽하게 걸어놓은것이 여간 실력이 있는것이 아니었다. 환희를 노려보는 재중의 머리를 상냥한 손길로 쓰다듬으며 윤호가 조용히 웃었다. "환희의 손장난 실력이 보통이 아니구나... 이렇게 재중이를 예쁘게 꾸며놨으니 말이야.........." "..웅??.." 순간. 윤호의 입에서 흘러나온 '예쁘게'라는 말에 재중의 귀가 솔깃해졌다. 분명..윤호가 보면.. 안예쁘다라고 말을 할것같아 자신의 머리를 이렇게 만들어놓은 환희가 어지간히도 미웠다. 하지만, 자신을보고 살며시 미소짓는 윤호의 모습에 금새 얼굴이 달아오른다. 재..재중이...이상해............ ..왜 이렇게.....얼굴이...뜨겁지....... 자신의 볼을 가볍게 두손으로 감싸쥔 재중이 다시한번 윤호의 옷깃을 사로잡았다. "..으응....정말......재중이가...예뻐요?....응??" 윤호의 가슴에 얼굴을 부벼오는 사랑스러운 움직임. 이런 귀여운 모습을보면..당장에라도 눈앞에 보이는 침대에서 금새 사랑을 나누고 싶지만, 그의 내면속에 생생하게 기억되어지는 아픔이 있을까봐 두려운 마음이 일었다. 정윤호................. 니가 두려운것이 있었던가...........? 그래..... 김재중을 사랑하고부터 새롭게 생긴 감정중에 하나가 바로 두려움이었다. 목숨을 지금당장 잃는다해도 두려움이란 단어를 모를만큼 용맹스럽다는 말을듣는 자신이 아니었던가. 그런데..이제는................ 김재중이 혹시라도..떠날까. 아침에 일어나면 어느새 앞에서 사라져 있는것이 아닌지... 웃기지도 않는 두려움이...생겨버렸다. 자신때문에 상처 받았던 아이를 또다시 안아버리면, 그 아물었던 상처가 터져버리지는 않을까...... 두려움이...생겨버린것이다. 자신의 품에 살포시 몸을 기대어오는 재중의 정수리에 깊게 입을 맞추며 윤호가 든든한 두팔로 그의 여린몸을 감싸안았다.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그래서 너무생소해 겁나기까지하는 두려움이란 감정에.. ..이리저리 치인다해도............. 절대로 놓치고 싶지않은..아니, 이제는 놓칠수없는 김재중을.. 자신은 사랑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널......사랑하지 않을수가 없어........................ - 미 열(美 熱) 83편 - 따사로운 햇살. 커다란 방안에 꽃들이 한가득이다. 물론 예전에는 꽃들이 있을리 만무한 윤호의 방였지만, 지금은 이렇게 어여쁜 마녀족의 아이가 정원에 있는 모든 꽃들을 옮겨 놓기라도 할 듯 뚝하면 꽃을 한아름 꺽어들고 들어와 방안이 마치 꽃밭을 연상케했다. 그중..항상 윤호가 마음속으로 자신을 비유했던 꽃인걸 아는지 모르는지 연한 은빛깔이 나는 은초롱꽃이 제일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꼼지락-꼼지락--. 가는 두손가락으로 꽃줄기 아래쪽에 지저분한 자잘한 풀들을 차분히 떼어낸다. 그 모습을 침대가에서 여유롭게 지켜보는 윤호의 입가에 웃음이 서렸다. "꽃이 그렇게....좋은거냐...?" 윤호의 짧은 물음에 곧 꽃을 바라보고 있던 재중의 눈빛이 새초롬히 윤호를 돌아다봤다. 그리고는 이내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살포시 끄덕인다. 한참동안 꽃만 보고있던 재중의 눈길이 드디어 자신을 바라보자 내심..... 한층 더 기분이 좋아진 윤호. 자신이 그런 사소한 일에도 금새 기분이 좋아지는것이 한편으론 조금 서먹하기도하다. 다른 어떤곳도 보지않고 일관성있게 자신을 지긋이 바라보는 윤호의 얼굴을 보고있던 재중의 눈빛이 이내 재빨리 꽃으로 다시 향해버렸다. 그리고는 머뭇머뭇 손끝으로 꽃잎을 만지작 거리며 작게 내뱉는 말. "....그..래도....." 재중의 작은 말소리에 윤호가 귀 기울인다. "...그..래도....윤호..보다 좋은건...없어...." 사그라들듯 작게 속삭이는 웅얼거림을 겨우 알아들은 윤호가 곧 살며시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반쯤 누워있던 상체를 일으키며 재중의 곁으로 바짝 다가앉는다. 성큼 다가와버린 윤호의 상쾌한 체향. 자신도 모르게 두근두근 뛰고있는 심장이 재중은 이상하기만하다. 그런 재중의 마음을 꽤뚫은것도 아닐텐데..이내 윤호의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에 재중의 눈동자는 다시 윤호를 향했다. "..언제나.....날 두근거리게해..김재중 니가." "..!!.." 두..근.....거려.....? 가슴이...콩닥콩닥....재중이처럼...이렇게....? 윤호...도...??? 재중이 곧 자신의 눈빛을 윤호의 눈과 마주쳤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한쪽손을 들어올려 윤호의 가슴위에 얹어본다. "......." "......." 잠시간의 침묵. .....두.....근......... 두근..두근..두근.. 윤호의 가슴에서 서서히 전해져오는 따뜻한 두근거림. 윤호의 가슴에 얹은 자신의 손까지 따뜻해지는듯 했다. 그리하여..이번엔 고개를 조용히 숙여 자신의 한쪽볼을 조심히 갖다대본다. "..따뜻해..." 예쁜 재중의 미성이 윤호의 가슴위로 잔잔히 퍼지고..... 이내 윤호의 한 팔은 재중의 허리를, 그리고 또 다른 한 팔은 그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자신을 감싸안은 든든한 윤호의 팔이 너무나 기분좋은지 고양이같이 귀여운 미소를 지어내며 곧 재중이 웅얼거린다. "윤호도 두근두근...재중이도..두근두근... 똑같아..." 아이같은 말투에 한가득 사랑스러움을 느끼며 윤호의 입술이 재중의 이마위에 닿았다. 보드라운 살결의 느낌에 윤호가 자신의 입술을 재중의 이마위에서 살포시 떼지않은채 중얼거린다. "..너한테만 그래.." "..으응.." 금새..잔뜩 낮아져버린 윤호의 목소리가 듣기좋다.. 윤호의 옷자락을 꼬옥 움켜쥔 재중의 손에 살며시 힘이들어가자, 윤호의 입술이 이마위에서 볼로 내려왔다. 어쩌지..재중아............... 니가 갖고싶은데.............. 널 내사람으로 온전히 만들어 버리고 싶은데.......... 재중의 볼과 코끝.. 이마위를 계속해서 배회하던 윤호의 입술이 마지막 종착지인 재중의 입술위로 내려섰다. 후욱...입가로 불어오는 뜨거운 숨결. 윤호에게만 반응하는 붉고 촉촉한 입술이 금새 열린다. 애를 태우듯 입술주위를 간지럽히던 윤호의 입술이 그 자극을 피하지않고 이내 뜨겁게 몰아붙이는데............... "..아....웅....." 작은 입술틈새를 비집고 흘러나오는 재중의 숨소리에 윤호의 손이 재중의 목뒤를 휘감았다. 그러자 윤호의 가슴께에 옷자락을 꼬옥 잡고있던 재중의 손이 자연스레 윤호의 어깨로 향한다. 윤호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던 재중의 손끝이, 가볍게 스치듯 그의 목을 지나쳤다. 재중의 손끝이 스치고 지난자리. 그 짜릿한 느낌에 윤호는 저도 모르게 재중을 부드럽게 침대위로 넘어뜨리고 있었다. "응..?" 자신의 몸이 뒤로 넘어가는걸 느꼈는지 짧은 의문사가 툭하고 터져나오는 재중의 입술을 부드럽게 핥으며, 그의 머리를 자신의 양 팔 사이에 가둬버리는 윤호였다. "......." 그리고 잠시 고개를 들어 자신의 아래 얌전히 아무 반항없이있는 재중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갸름하고 작은 얼굴에 정말 신기하게도 너무나 잘 조합되어진 눈 코 입이 자리잡고있다. 순진함을 한껏 담고있는 까만색 흑요석이 자신을 그리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옷자락을 살포시 잡고있는 그 작은 두손이 귀여워 미칠것같았다. 살짝 붉어진 붉은 입술은 순진함을 담은 두눈과는 다르게 윤호를 유혹하듯 쉴새없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고.............. 도도함을 나타내듯 곧게 뻗은 콧날은 그의 얼굴이 그저 예쁘기만 한것이 아니라 아름답다라고 말하고 있는듯했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그저 재중이 자신의 사람이라는것이..... 뭐랄까...............?? ..뿌듯..? 하다고 해야하나..? 그래......... 이런 기분또한 전혀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기분을 느끼게해준 재중을 향하는 진심어린 윤호의 한마디. "사랑해..김재중.." 윤호의 낮은 목소리가 자신의 귓가에 아련히 울려퍼지자, 약간은 붉으스름해진 얼굴빛으로 수줍은듯 살며시 두 눈꺼플을 내리뜨는 재중의 모습. 그런 재중의 모습에도 윤호는 사랑스러운듯 작은 웃음을 입가에 걸었다. 이대로..........가질수만 있다면.............. 세상 모든걸 얻은것보다 기쁠꺼야........ 윤호의 입술이 다시 재중의 새초롬히 웃고있는 입술을향해 내려섰다. 그때였다!! 벌컥--!! "재중님 안계세요??" 윤호의 입술이 재중의 입술에 다시한번 닿으려는 찰나, 갑자기 열린 문. 그리고 그 뒤로 들어선 환희의 모습에 윤호와 재중의 깜짝 놀란 눈이 문쪽으로 단번에 향했다. 이내 윤호의 방안으로 성큼 들어선 환희의 눈이 곧 침대위에 묘한 자세로 겹쳐져있는 윤호와 재중에게로 향하고..... "으아~~/// 죄, 죄송해요!!" 재빨리 인사를 꾸벅 던진 환희가 빠알개진 얼굴로 뒤돌아섰다. 그리고는 다급한 걸음으로 다시 나가려던 순간, "화, 환희야아~~ 재중이도 같이가---" 환희쪽을 쳐다보느라 느슨해진 윤호의 품에서 꿈틀꿈틀 힘겹게 빠져나온 재중이 후다다닥 환희곁으로 뛰어가는것이 아닌가. 갑작스런 재중의 행동에 윤호의 놀란눈이 더욱 커졌다. 하지만, 그러긴 환희도 마찬가지. 어느새 옆에 바짝 다가서서 자신의 팔을 꼬옥 붙잡고 이끌며 나가려고 애쓰는 재중을 그는 당황한듯 바라봤다. "재, 재중님 이것놓으세요~ 윤호님하고 놀으셔야죠~~" "환희랑 꽃따러 갈테야." 자신을 바라보는걸 아는건지 모르는건지 재중은 끝내 윤호의 눈을 똑바로 보지도 않은채 기어코 환희의 팔을 이끌고는 문밖으로 나섰다. 이미 문밖으로 반쯤 넘어선 환희가 자신의 팔을 잡아당기는 재중의 힘에 꼿꼿하게 버티며, 간신히 고개만 빼꼼히 안으로 내밀고는 윤호을향해 급하게 소리쳤다. "윤호님-- 재중님 바람만 쐬어드리고 금방 돌아올께요--!!!" "......." 쿵--!! "......" 우습게 닫혀버린 문 안으로 덩그러니 침대위에 남겨진 윤호의 표정이 가히 가관였다. 갑작스레 나가버린 재중의 온기가 아직도 침대위에 가득했지만 정작 본인은 있어야 할 곳에 없다니..... "휴우..." 윤호의 입가로 짧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내가..너무 성급했던가. 좀더 천천히 다가가도 됐을텐데... 아직 겁먹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그래도 꼭 갖고싶은 김재중였기에 자신도 모르게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섰고, 본능이 뒤따랐다. 침대에 발을 내려뜨리고 걸터앉은 윤호의 얼굴위로 걱정스러움이 한가득 떠올랐다. - 미 열(美 熱) 84편 - "잠, 잠깐만요 재중님!!!" 최대한의 빠른 속도로 자신의 팔을 잡고 걷는 재중의 손을 살며시 뿌리치며 환희가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벌써 그들은 윤호의 거처를 빠져나온 뒤였다. 갑자기 걸음을 멈춰버린 환희의 눈치를 살짝 보던 재중이 이내 고개를 떨구고는 두손가락만 꼼지락댄다. 그런 재중을향해 환희가 작게 긴숨을 내뱉고는 조용히 물었다. "윤호님하고 오붓한 시간을 가지셔야지...왜 절 따라나오세요." "..우웅..." 환희의 말에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있는 재중이다.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반들반들 예쁘게 윤나는 머리만 보일뿐, 재중의 표정이 잘보이지 않아 더욱 답답해진 환희가 이번엔 타이르듯 묻는다. "윤호님..싫으세요..?" 도리도리. 자신의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니라는듯 도리질치는 재중의 모습에, 환희는 스스로 생각해도 우스운 질문을 해버린것같아 멋쩍어져 버렸다. 재중이 윤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누구보다도 곁에서 지켜봐 잘 알고있으면서..... "......." "......." 뒤로는 윤호의 거처. 앞으로는 화려하게 가꿔진 정원을 두고는 잠시 우물쭈물하는 두사람. 그 짧은 침묵의 시간은 왠지 우울해 보이는 재중의 기분을 환희가 어떻게 풀어줘야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되어버린듯했다. 결국 재중의 손을 꼬옥 붙든 환희가 밝게 웃으며 한마디 툭 던진다. "재중님-- 우리 준수님하고 유천님께 놀러갈까요??" "응?" 자신의 손을 힘차게 이끄는 환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재중이 나머지 한손을 자신의 심장이있는 가슴부근에 살며시 올려놓았다. 어떻게....말해........ 윤호만 가까이오면.......... 심장이 두근두근 간질간질..이상하기만한데........ 얼굴이 뜨거워져서 참기 힘든데........... "......." 끝내 환희에게 말도못할 소리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그를 따라 걸음을 옮기는 재중였다. . . . 너무나 강하게 들어오는 햇빛이 혹시나 불편할까 우아하게 묶여있는 실크커텐을 잘 다듬어 내려뜨린 유천이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오히려 내리쬐던 햇볕이 사라져버려 이상한지..곤히 낮잠을 자고있던 준수가 부시시 눈을 뜨고만다. "아, 깼어? 그냥 놔둘껄 그랬어." 유천이 아직도 가슴위로 하얀붕대를 감고있는 준수곁으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그가 일어나는 모습을 천천히 지켜보는듯 하더니 이내 준수가 일어나 앉는것을 도와준다. 자신을 바라보는 유천에게 준수가 조용히 물었다. "소진이는..잘 찾아갔을까요...?" 얼마전에 자줏빛숲에 소진의 약혼자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아니. 아마 확실한거 같다는 유천의 말을 듣자마자, 그곳으로 소진을 보낸것이 준수는 조금 마음에 걸리는 모양였다. "걱정마. 마녀족은 다른 종족보다 방향감각은 뛰어나니까. 잘 찾아갔을꺼야." 유천이 하얀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부비는 준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살며시 웃어보인다. "그런데..유천씨 언제 들어온거예요..?" 유천이 언제 자신의 방에 들어온건지 몰라..혹시라도 자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을까 조심히 묻는 준수... "들어온지 얼마안됐어." 그런 준수를 잘 알고있는 유천은 일부러 거짓말을 툭 뱉어냈다. 준수가 잠들기 막 시작한때부터 조용히 들어와 그가 자는 모습을 여지껏 지켜보고있던 자신이 아니던가. 하지만, 부끄럼 잘타는 준수는 그런 작은것도 수줍어할것이 분명했다. 물론 수줍어하는것도 예쁘지만..... "아프지는 않아??" 아직도 완전히 아물지않은 상처위를 잘 동여맨 붕대를보며 유천이 걱정스레 묻자, 준수가 아프지 않다는듯 설레설레 고개를 내젓는다. 빙긋이 웃다가도 자신의 상처부위를 보면 금새 걱정스런 얼굴을하는 유천. 준수가 유천의 단아한 얼굴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예전엔....소진이가 잠시라도 곁에없으면..너무 허전했는데..." "....." 준수의 목소리에 곧 유천이 그의 눈을 바라본다. "..그랬는데....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 "..유천씨가..있어서..오히려 든든해.." 자신의 다갈색 머리카락을 스치듯 건드리는 준수의 손을 유천이 살며시 잡아내렸다. 그리고는 준수의 가늘고 작은 손가락에 입을 맞춘다. "앞으로도 니곁에..있어주고싶어.." 유천의 진지한 말 한마디에 곧 준수의 뽀얀볼이 빨간 홍조를 띈다. 요즘은 정말 자신이 살아오면서 제일 행복하다고도 할 수 있는 매일매일였다. 언제나 다정하게 웃는 유천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의 진심어린 말들을 항상 들을 수 있었다. 제발...이 행복이 계속될수있다면...... ..내 모든걸 다 잃어도 좋아요.................... 마음속으로 작은 기도를 해보며, 준수가 유천의 품으로 파고들때였다. 똑똑---. 짧은 노크 소리에 둘의 시선이 문쪽으로 향한다. 곧이어 문밖으로 들리는 명랑한 목소리. "준수님-- 환희입니다--." 환희라는 말에 유천이 천천히 침대위에서 일어섰다. 환희란 소년이 재중의 시중을 들고있는 아이라고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들어오너라-" 곧 준수도 침대에서 일어서더니 상냥한 목소리로 그들이 들어오는것을 허락했다. 그러자 이내 살며시 문이 열리고 환희의 작은 머리통이 쏘옥 먼저 들어선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들어오는 사람... "재중아!!" "재중씨-." 아이보리색 고운 비단옷을입고 환희에게 손을 붙잡힌채 들어오는 재중의 모습에, 유천은 놀란눈으로 준수는 반가움이어린 표정으로 바라봤다. 뭐..지...? 윤호하고 같이 있어야 할 시간 아닌가. 늘 이 시간대가 될때쯤엔 재중이 윤호와 함께 시간을 보낼때라고 알고있는 유천에게는 조금 의아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우웅..형.." 한쪽눈썹을 치켜올린채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유천을 작게 부르며, 재중이 소매 끝자락을 매만졌다. "저희 놀러왔어요..괜찮지요 준수님?" 누구에게나 싹싹한 환희가 밝게 웃으며 유천에게도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그럼..괜찮고말고. 어서 이리와서 앉아요 재중씨." 원목으로 만들어진 의자를 빼내어주며 준수가 재중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곧 뻘쭘뻘쭘 준수곁으로 다가온 재중이 의자에 살포시 앉는다. 뭔가 기분이 많이 다운되어 보이는듯한 재중을 바라보며 유천이 환희에게 살짝 나가자는 눈짓을 보였다. 역시 눈치 빠른 환희가 유천의 눈짓을 알아채고는 곧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한다. "재중님 준수님과 얘기나누고 계세요~ 저는 잠깐 유천님하고 나갔다 올께요~" "잠깐 나갔다올께. 재중이하고 얘기하고있어." "그래요 유천씨." "......." 유천이 준수에게 다정다감하게 말을거는 목소리를 듣자 그제서야 숙이고있던 고개를 조용히 치켜드는 재중였다. 그러더니 유천과 준수를 빤히 쳐다본다. 이제껏 자신에게만 다정다감했던 유천이 다른 사람에게도 저렇게 상냥한것이 마냥 신기한듯한 눈빛이다. 그리고 자신의 동생 재중을 잘 알고있는 유천는..... "..!!!.." 재중이 보는 앞에서 대담하게 준수의 입가에 살짝 입맞췄다. "유, 유천씨///" "이따봐." 갑작스런 유천의 애정공세에 깜짝놀란 준수의 양볼이 발그레해졌다. 그러자 덩달아 빨개진 환희의 얼굴. 재중은 잘 달아오른 준수의 얼굴이 자신의 눈에는 예쁘게 보였는지 그 까만 눈망울을 그에게서 떼지 못한다. 그런 재중을 지켜보다 조용히 웃은 유천이 환희를 이끌고 슬그머니 나갔다. 쿵---. 그리고는 그들이 나가자 금새..... 굳게 닫혀진 문 안으로는 준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재중과 아직도 붉은 홍조를 띄고있는 준수만이 조용히 남겨졌다. - 미 열(美 熱) 85편 - 터덜터덜 준수의 방에서 빠져나온 유천과 환희. 한참을 나란히 걸어 준수의 거처에서 빠져나온 유천이 궁금해서 못참겠다는듯이 대뜸 환희에게 물었다. "저녀석..윤호와 무슨일 있었어??" 유천의 뜬금없는 질문에 환희가 두눈을 동그랗게 떠올렸다. 그러더니 곧 유천의 제법 진지하게 묻는 눈빛에 조용조용 대답하기 시작했다. "아까 윤호님방에 재중님 찾으러 무작정 그냥 들어갔는데.. 두분이서 다정다감한(?) 자세로 계시더라구요.." 환희가 아까의 상황을 떠올리고는 조금은 부끄러운듯 말을 였다. "그래서 그냥 두분이 오붓하게 계시라고 재빨리 나오려고 했는데..갑자기 재중님이 윤호님을 놔두고 다급하게 저를따라 나오셨어요.." "아아~~ 그래?" 환희는 심각한 문제라도 발견한듯 양 미간에 힘을주며 말을했지만, 막상 그의 말을 듣고 난 유천은 당연하다는듯 고개를 끄덕인다. 틀림없이 재중이 그 녀석 감정처리가 서툴러서 그래. 하긴....그렇게 따지면, 정윤호 그녀석도 만만치 않을지도 모르지. 남이보면 아마도 윤호가 싫어서 그의 곁에서 부리나케 도망칠걸로 충분히 오해할수도있는 일였다. 환희가 걱정스럽게 얘기하고있는 것처럼, 정윤호도 재중의 행동에 잔뜩 걱정하고 있을꺼라 확신하고 있는 유천였다. 재중은 단순히 쑥쓰러워서 그러는 것일텐데..... 뭐든 아직 서툰 그는 여전히 어린아이와도 같은니까... 하지만, 자신이 짐작하고있는 사실을 유천은 윤호에게 말하지 않을 작정였다. 고민할꺼면 혼자 고민하라구~~ 재중이마음을 송두리째 뺏어갔으니까 그 정도는 알아서 해결해. 유천의 한쪽 눈썹이 씰룩였다. "......." 윤호에게 재중을 맡기기로 결정했지만, 그래도 동생의 대한 사랑은 조금도 사그라지지않은 모양이다. 이제는 형인 자신보다는 윤호를 더 많이 생각하는 재중였다. 그리고 그를 그렇게 만든 정윤호에대한 약간의 심술내지 질투랄까. 자신을 여태껏 곁에서 돌봐주고 지켜줬던 부모같은 형보다 사랑하는 남자 정윤호가 먼저라니... 오랜만에 봤는데 웃는얼굴한번 안보여주고 말이야...칫. 잠깐 뒤를 돌아 준수의 거처를 바라보는 유천의 입가로 조금은 얄궂을법한 미소가 떠올랐다. . . . "......." "......." 유천과 환희가 나가자마자 이어지는 침묵. 이래저래 예쁜 미소를 보이며 재잘재잘 말도 잘하던 재중이 갑자기 우울한 모습을 보이니까 지켜보던 준수마저 새침해져 버린다. 준수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달콤한 향내가나는 과일차를 다려서 재중앞에 살며시 놓았다. 탁--. 모락모락 김이나는 과일차를 바라보던 재중이 뜨거운컵을 조심스레 두손으로 잡는다. "고마워요 준수.." 그리고는 드디어 입을열었다. 재중의 말에 준수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앞에 마주앉았다. 근심이 가득 서린듯한 재중의 얼굴이 조금은 걱정이된다. "..재중씨....무슨 걱정있어요..?" "..!!!.." 정곡을 콕하고 찌른 준수의 말에 화들짝 놀란 재중이 곧 아무일도 아니라는듯 도리도리 고개를 내젓는다. "쿡쿡.." 무슨말이든 솔직하게 반응해 버리는 재중의 순진한 모습이 귀여운지 준수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곧 웃음을 멈추고는 다정한 눈길로 그를 바라본다. "말해봐요 재중씨...해결책은 못줘도 들어줄수는 있으니..." "..우웅..." 붉은 입술을 새초롬히 삐죽이던 재중이 살짝 눈꺼플을 올려뜨며 준수를 조심스레 바라봤다. 그리고는 과일차를 한모금 호로록 마신다. 달콤한 과일차가 조금은 새큼한듯 코끝을 살짝 찡그린 재중이, 아직도 자신을 바라보고있는 준수을향해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준수는...." 뭔가 말을 꺼내려는듯한 재중을 진지하게 주시하는 준수. 그의 입에서 나올 고민거리는 도대체..뭘까..? 재중이 갖고있는것이기에 더 궁금한걸지도 모른다. 준수의 궁금증을 한증 유발한 재중의 고민거리가 서서히 그의 입을타고 흘러나온다. ".....준수는.........두근두근하지 않아요...??" "..???.." 응..?? 재중의 말에 순간 준수가 무슨 소린지 잘 못알아들은듯 두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말이예요..재중씨?" 그래서 재차 묻는다. 준수의 다시 되돌아온 질문에 재중이 자신의 두 검지 손가락을 우물쭈물 꼼지락 거리며 다시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재중이말은......." "......." "..유천형이..아까처럼....뽀, 뽀뽀할때....두근거리지 않는지....." "..!!.." 말을 채 끝내지 않은 재중이 준수를 새초롬히 바라봤다. "......." "......." 잠깐 이어진 침묵. 하지만, 이내 그 침묵은 준수의 부드러운 미소로 깨졌다. 자신을 사랑스럽다는듯이 바라보는 준수를 재중이 의아한듯 쳐다본다. 두눈을 깜빡이며 곧 진지한 얼굴로 자신을 보는 재중에게 준수가 사근사근 차분한 어조로 물어본다. "재중씨...두근거리는거 싫어요?" "..아니..요..." 곧 다시 추욱 늘어져 대답하는 재중이 기운없이 말을 였다. "하지만, 재중이는 윤호가 안아주거나 입맞춰주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심장이....푸슝...하고 터질껏같아..." 긴 속눈썹을 꿈뻑이며 깊게 한숨을 내쉬는 재중. 그런 재중의 손을 살며시 잡아주며 준수가 입을 열었다. "나도 유천씨와 있으면 두근거려요..심장이 떨리기도하고.." "우웅?" 준수도 자신과 똑같은다는 소리에 재중이 더욱더 그의 말에 귀기울인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재중에게 준수가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 두근거림이 재중씨처럼 나도 싫거나 하지는 않아요... ..재중씨...혹시 그 두근거림을 꾸욱 참고 윤호와 더 있어봤어요...?" ..도리도리. 준수의 질문에 고개를 젓는 재중이 입술을 꼬옥 깨물었다. 준수의 말이 이어진다. "그 두근거림 이후가 더 행복한건데... 안타깝게도 재중씨는 그걸 모르는구나....." 정말 유감이라는듯 말하는 준수의 얼굴표정에 재중이 무언가를 생각하듯 까만빛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윤호도 마찬가지로 재중씨만큼 못견디게 두근거릴꺼예요.. 하지만 재중씨하고 더 행복해지고 싶으니까 꾸욱참고...재중씨를 따뜻하게 안아주기도하고 또 부드럽게 입을 맞춰주기도하는 걸테구요.." 한마디 한마디 상냥하게 말을 해주던 준수가 금새 진지한 눈빛으로 말을 건냈다. "재중씨....윤호가 행복하게 해주고싶지 않아요..?" "......." "..재중씨...윤호를 사랑해주고싶지 않아요..?" "......." 나즈막하게 방안에 울리는 준수의 목소리. 사..랑....... 행복하게............. 준수의 말을 차분히 듣고있던 재중이 멍하니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재중이는.....윤호가 너무좋아..... ................. ....재중이는....윤호를.......... ....사랑..해............ 너무...좋아서.............. 너무 좋아서.....사랑...해......... 무언가를 생각하고 깨달은듯 그저 아무말없이 두눈만 깜빡이고있는 재중에게, 준수가 마지막 말을 던지며 활짝 웃어보였다. "우리윤호를....많이 사랑하면.. 행복하게도 해줄꺼죠 재중씨?? 난 그랬으면 정말 좋겠는데." - 미 열(美 熱) 86편 - 환희의 뒤를 쫄랑쫄랑 따라오는 재중의 얼굴이 아까보다는 한층 밝아진것같아 보인다. 준수가 무슨말을 어떻게 했는진 몰라도 내심 감사해하는 환희였다. 그나저나 큰일였다. 이래저래 있다보니 벌써 저녁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윤호에게 말도 안하고 나온 길였는데... "재중님 우리 빨리가요. 윤호님 걱정하시겠어요~" 환희가 재중의 손을 이끌며 걸음을 재촉했다. 강아지처럼 까만 눈망울을 빛내던 재중이 서두르는 환희를 종종종 쫒아가기 시작한다. 윤호를 행복하게 만들어 줘야지!!! 두눈이 반짝반짝. 준수.... 고마워요....... 여전히 두근거리지만은........ 재중이도 행복할것 같아요...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혼자서 눈웃음까지치며 새초롬히 웃는 재중을 환희가 돌아다봤다. "풋.." 그러더니 금새 환희까지 웃음을 터뜨려 버린다. 배시시 웃고있는 재중을보니 절로 웃음이 터져버린 것이다. "빨리빨리 가자 환희야~~" "거의 다왔는걸요." 윤호의 거처가 가까이 보이자 재중의 표정이 환해졌다. . . . 책들이 빼곡하게 둘러있는 커다란 서재 한가운데. 조금은 독하다싶은 과일주를 남은것까지 단숨에 들이킨 창민이 앞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기만하는 자신의 친구를 바라봤다. "오랜만에 찾아왔는데 아까부터 시키는말만 대답하기야?" "응??"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멍하니 정신놓고있던 윤호가 창민이 물은 말에 깜짝 놀랐는지 멍한 눈빛을 그에게로 돌린다. "내참..." 그런 윤호의 반응에 창민이 곧 어이없다는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서재 이곳저곳을 눈으로 훑으며 다시 말을 꺼냈다. "그런데 아까부터 그 아이는 코빼기도 안보이던데-어디갔어?" 창민의 질문에 벌써 어둑해지기 시작하는 창밖을 바라보며 윤호가 걱정스러운듯 눈쌀을 살짝 찌푸렸다. 분명 환희와 나간것이 맞기에 큰 걱정은 안되지만, 그래도 어딜가든 보고를하라 했건만..... "곧 들어올꺼야. 눈이 보이기 시작한후로 돌아다니는걸 아주 좋아하는 녀석이니까." 윤호가 내심 괜찮다는듯 쇼파뒤로 몸을 기댔다. "......." "......." 짧은 침묵. 그런사이 창민은 윤호의 표정을 찬찬히 살피고 있었다. 뭔가는 할말이 있는듯 하지만, 계속 머뭇거리는 그. 그런그를 이제서야 눈치를 챈듯 윤호가 다시한번 창민을 바라봤다. 평소에는 모든 상황에 날카로운 윤호이기에 애초에 처음부터 창민이 자신의 서재에 들렀을때는 뭔가 할말이 있었을꺼라 생각했겠지만, 지금 자신은 오후내내 보이지않는 재중 생각에 정신이 없었다. 뒤늦게 창민의 할말있는듯한 눈빛을 눈치챈것이 미안한지 윤호가 딱딱해져있던 표정을 한층 더 부드럽게 풀었다. "미안하다. 내가 오늘 정신이없어." 윤호가 자신의 앞에 놓인 잔을 입술안으로 기울였다. "일밖에 모르는 니가 날 그냥 찾아왔을리도없고..무슨 중요한 할말이라도 있는거야?" 친구로서 편하게 말을 놓으며 서로 마주 앉아본것도 어찌보면 참 오랜만였다. "....." 윤호의 편안한 말투에 조금은 긴장을 놓은 창민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도 알고있지?" "..뭘..?" 창민의 질문에 무슨말인지 모르겠다는듯 반문하는 윤호. 그런 윤호에게 약간은 머뭇거리며 얘기를 꺼내는 창민이다. "귀족들 사이에선 니 혼례에대한 말이 많이 오가고있어. 어쨌든 혼기를 조금 넘어선건 맞는말이잖아." "....." "그러다보니 니가 예뻐하는 그 아이에관한 말도 많이 나오고있고..." "아아--." 창민이 하는말을 알겠다는듯 고개를 끄덕인 윤호가 자신의 머리를 쓸어올리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마녀족의 아이를 족장의 안사람으로 허락할리 없을테니까..... 미간을 살짝 찡그린 윤호의 표정이 지금 그가 그런것들을 벌써 한참전부터 생각해왔단것을 알수있게 해준다. 물론 윤호가 그런것도 생각안하고 막무가내로 그 아이를 사랑하고 예뻐하지는 않았을꺼라 믿고있던 창민가었다. 그래도 어찌보면 생각해왔던것보다 더 어려운 과제일지도 몰랐다. 벌써 자신들이 태어나기 훨씬전부터 있었던 계급세계가 아니던가. 그런것을 바꾼다는것은 틀림없이 무리가 오는 일였다. 거기다..최상급 계급인 마족과 최하급 계급인 마녀족이 얼켜있으니... 창민이 윤호의 걱정하는 마음을 모르는것은 아니지만, 다시한번 말을 꺼낸다. "지금현재 모두 그 아이를 니 첩쯤으로 알고있는데... 마녀족 아이가 첩이라는것도 불만인 귀족들이 많아...그래도 널 존경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만큼 그러는것이니..이해해라." "고마워." 창민의 진심어린 말들에 윤호가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나즈막히 말을 였다. "그래도 겨우잡은 아이야. 내품에서 놓고싶은생각...조금도없어." "......." 윤호야.. 그의 흔들림없는 눈빛을보며 창민이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섰다. "나 그만 가볼께." "아, 그래." 창민이 간다는 말에 윤호가 뒤따라 일어서려했다. 달칵---. "윤호 거기 있어요??" 갑작스레 열린 문 사이로 살짝 보이는 작은머리. 커다란 눈망울을 반짝반짝 빛내는 재중이 서재 안으로 쏘옥 들어선다. "안녕." 그런 재중의 귀여운 행동에 빙긋이 웃으며 창민이 인사를 건냈다. "아...창민이다." 반갑게 인사를건낸 그가 자신도 반가운지 빙긋이 웃어버리는 재중였다. "재중을보고 조금더 수다를 떨고싶긴 하지만, 그만 가봐야겠다~" 창민이 한쪽눈을 재중에게 찡긋거려 보이며 금새 문밖으로 나섰다. "다음에 보자-." 언제나 장난끼어린 창민의 밝은 말투가 맘에 드는지 재중이 고개를 끄덕인다. 쿵---. 창민이 나가자 살짝 문닫히는 소리가 뒤를 잇고..... "어디갔다 온거야?" "으응...준수한테요." 윤호의 걱정섞인 물음에 재중이 아이같은 손가락질을 해댄다. "환희는?" "여기까지 바래다주고 돌아갔어요." 꼬박꼬박 말을 높이는것도 어쩜 저렇게 사랑스러운지... 재중의 표정 하나하나, 그리고 행동 하나하나를 보는 윤호의 눈위로 다정함이 어렸다. 누가뭐라해도....포기할수가 없을텐데......... 결코.............. 윤호가 살짝 미소 지으며 재중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오늘은 일찍자자. 피곤해.." 재중을 가슴에 안으면 가득 퍼지는 편안함과 충만감... 내품에서 이 아이를 절대 떼어놓을 수 없어........... 피곤하다는 윤호의 말에 재중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얗게 비치는 윤호의 얼굴. 그리고 가끔은 냉정하기도 하지만, 자신에게만은 따뜻한 눈빛. 붉은 입술과 자신을 안고있는 강인한 두팔. 두근.두근.두근. 어어~~ 또 두근거린다!!! 재중이 곧 두눈을 동그랗게 치켜떴다. 윤호을....행복하게 해주고싶어...재중이는.............. 재중이 자신의 두근거리는 심장을 무시하며 입술을 꼬옥 깨물다가, 이내 두눈을 살며시 감아내리고는 빠알간 입술을 스리슬쩍 내밀었다. 그러면 분명 윤호의 입술이 평소처럼 닿을꺼라 생각했던 탓이리라... 하지만... 으응...??? 아무리 눈을감고 기다려도 따뜻한 윤호의 입김이 닿지않고................ 다시 살며시 두눈을 떠올렸을때엔 벌써 윤호는 서재 문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재중의 그런 모습을 못본듯하다..;; 으잉??? 히잉.............. 심장이 터질껏 같은걸 꾸욱 누르고 겨우 내민 입술였는데... "어서와." 자신의 뒤에서 따라오지않고 울상으로 입술을 쌜쭉이는 재중을 재촉하며 윤호가 서재문을 열었다. "으응..." 윤호의 부름에 곧 쪼르르 그의 뒤에 따라붙는 재중. 그런 재중을 바라보며 윤호의 입가로 남모를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 예쁜녀석을 옆에두고만 있어야하다니.. 오늘밤도 어떻게 함께 보내야하나................... 걱정이 앞서는 윤호였다. - 미 열(美 熱) 87편 - 푸르스름한 달빛이 커다란 창을통해 은은하게 방안으로 퍼져 들어온다. 아직은 새벽을 알리는 어둠이 두눈에 더 익숙해지는 시간. 살짝 열린 입술사이로 쌔근쌔근 고른 숨을 내뱉어내는 입술이 마치 신기하듯 가만히 바라보던 윤호가 한쪽손을 조심히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재중의 살짝 열린 입술틈을 손가락으로 지긋이 꾸욱 눌러본다. "우웅.." 그러자 이내 잠속에서 헤어나지못한 웅얼거림을 터뜨리며, 고운 미간을 살짝 일그리는데.................... 부비적--. 곧 윤호의 품으로 더욱더 파고드는 재중였다. 잠자리가 예민한 녀석은 언제든 조금만 장난스레 건드려도 더 깊게 품속으로 파고들곤한다. "......."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자신은 오늘도 불면의밤을 보내고 있건만 이렇게 혼자서만 달콤하게 자다니. 그러나 조금의 얄미움도없이 그저 예뻐보이는걸보면 정윤호가 단단히 미친것이 틀림없었다. "..아..웅...." 이제는 버릇이된듯 자신의 몸위를 감싸안는 윤호의 팔이 없으면 허전한지, 눈한번 제대로 뜨지도 않고 어떻게 윤호의 팔을 더듬더듬 찾아 자신의 몸위로 척하니 올려놓는것이 거의 수준급이다. "..쿡..." 그런 재중의 잠버릇 행동에 낮은 웃음소리를 터뜨린 윤호가 그의 이마에다 살며시 입맞췄다. 그리고는 지긋한 눈길로 잠자는 그를 하염없이 쳐다보기 시작한다. 이 어린녀석아. 내가 널 안고싶다고... "......." 항상 그를 안고싶다고..모두 갖고싶다고 생각을하던 자신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일까. 그 생각 이면에 어느 순간부터 뒤따라오던 갑갑한 마음은... 그건 자신이 지니고있던 족장이란는 위치때문였다. 줄곧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의 선친보다도 훨씬 훌륭하게 이 자리를 지켜내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 또 다짐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자신은 이제껏 후회하지않는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했다. 분명..... 사랑이란걸 깨닫기 전까지는 족장이란 자리를 값지게 생각해왔었다. 모두 자신이 원할때에는 다 얻을수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정말 그랬었는데..... 이제는 그 자리가 자신이 제일 소중하게 생각하는 누군가를 떼어놓을것만같아, 우습게도 두려움이 먼저 앞섰다. 천하의 정윤호가..... 김재중 하나로인해 자꾸만 두려워진다. 그를 잃게 될까봐서........... "후우..." 남모를 깊은 한숨을 몰아쉬며 재중을 바라보던 윤호의 눈빛이 확고해졌다. 창민이 자신에게 걱정스럽게 말했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지금 윤호는 자신에게 제일 필요한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있었다. 그러므로 주변이 더 시끄러워지기전에 이대로 어물쩡대며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릴수는 없었다. 수백번.....아니. 하루에도 수천번 머릿속을 어지럽히며 곱씹고 되뇌였던 질문에 답을 내릴 결정이... 지금은 서서히 흔들리지않는 뜻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 . . "유천씨-- 나 준비 다 됐어요--." 우아해 보이는 검정비단위로 어여쁘게 자수가 들어간 단아한 모자를 눌러쓴 준수가 자신을 돌아다보는 유천를향해 수줍게 웃어보였다. 윤나는 까만빛 모자때문일까? 어느때보다도 하얀얼굴이 더욱더 뽀얗게 빛나는것이 그렇게 예쁠수가 없없다. 가슴위로 상처가 점점 아물어가면서, 오늘은 의원 선호에게서 바깥 외출을해도 상관없다고 허락을 받은날. 항상 창문으로만 봄의 풍경을 바라보던 준수에게는 너무 오랜만에 나들이란 가슴설레이고도 남을만한 일였다. 그것도 이제는 사랑하는 박유천과 나란히 걷게될테니까... 벌써부터 한창 들뜬 표정이다. 자신을향해 새색시같이 수줍은 미소를 띄는 준수가 너무나 귀여운지 살짝 미소를 지은 유천이 그의 곁으로 다가섰다. "평소에도 예쁘지만 오늘은 더 예쁜데?" 장난스럽지만, 진심이 담긴 말에 준수는 기쁜 표정을 애써 감추지 않는다. "오늘은 날씨가 더 좋은것 같아요. 구름한점 없는것이." 준수의 밝은 목소리에 유천은 내심 걱정이 되는지 다정한 한마디를 빼놓지 않는다. "아무리 그래도 아직 환자야. 무리하면 안돼." "으응." 혹시나 날이 좋다해도 행여 봄바람이라도 들어갈까 준수의 옷깃을 잘 여며주는 유천의 손길이 마냥 상냥하기만하다. 유천이 준수의 여린몸을 자신의 팔 한쪽으로 끌어당겨 고스란히 가슴에 품었다. 그리고는 막 문쪽으로 걸음을 떼려던 순간. 똑똑---. "환희입니다--." 문밖으로 들린 환희답지않은 조용한 목소리에 유천과 준수의 걸음이 동시에 멈춰선다. 그리고는 곧 의아한듯한 표정으로 준수와 유천의 시선이 마주쳤다. "재중이녀석이 또 무슨 사고를 쳤나?" 유천이 슬쩍 우스겟 소리를 던지며 직접 걸어가 문을 열어준다. 달칵--. 문이 열리자 들어서는 환희가 자신의앞에 서있는 유천에게 꾸벅 인사를 해보였다. "환희답지않게 오늘은 무척 조용하구나...무슨일이 있어..?" 준수가 환희의 차분한 표정에 따뜻하게 먼저 말을 걸었다. 그러자 곧 환희가 공손하게 말을 전한다. "윤호님께서 윤호님거처 회의실로 두분 모시라는 말씀 전하려고 왔습니다." "윤호가..??" 느닷없는 윤호의 부름이라니... 유천도 준수도 두눈을 동그랗게 떠올린다. "지금???" 유천이 준수를 흘깃 쳐다보고는 환희에게 묻자, 곧 그가 재빨리 고개를 끄덕인다. "윤호가..뭔가 할말이 있나봐요. 이렇게 이른낮부터 부르는건 중요한 일이 있어서일텐데..." 준수가 유천에게 다가서며 조금은 걱정스러운듯 그를 바라봤다. 그런 준수의 어깨를 든든히 감싸안으며 유천이 환희에게 말을건낸다. "앞장서거라. 가자." 환희가 유천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꾸벅 고개숙여 인사하고는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유천과 나란히 걷는 준수의 회색빛 눈동자위로 걱정스러움이 잔뜩 어렸다. 무슨일인지................... 자꾸만 심장이 뛰어대고 있었다. - 미 열(美 熱) 88편 - 말그대로 회의실인만큼 엄숙한 분위기가 흐르는듯 방안 공기는 무겁기만했다. 무언가를 결정하고자할때 원로회의장 보다는 더욱 자주 찾던곳이 아니던가. 그런데 오늘따라 아무 미동없이 그저 앉아서 누군가를 기다리는것처럼 보이는 윤호의 무표정에 모두들 말이없다. 윤호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는 재중도.. 그리고 커다란 원반형 탁자 저 오른편에 우두커니 윤호를 바라보는 창민도..... 그저 아까부터 입도 뻥긋않는 윤호를 주시하고만 있을뿐이다. "......." "......." 굳게 입을 다물고있는 윤호에게 감히 말을 걸어볼 생각도 못한 재중은 늦잠을자고 일어난터였다. 깨어나자마자 보이지않는 윤호를 찾아 회의실까지 왔지만, 정작 아까부터 그는 평소에는 보여주던 따뜻한 포옹도..다정한 한마디도 없다. 그래서 그저 윤호의 얼굴을 가끔 쳐다보며 새초롬히 조신하게 앉아있는 재중였다. 창민역시 윤호의 부름을받고 왔지만, 마음속으로는 그의 단호한 표정에 왠지모를 불안감이 서려 초조하기만했다. "......." 그런 그들의 침묵이 얼마나 계속되었을까. "윤호님--환희입니다. 모시고 왔습니다." 갑자기 들린 환희의 목소리와 자연스레 열린문. 그리고 곧 들어선 유천과 준수의 모습에 창민과 재중의 두눈이 휘둥그레졌다. "어..형!!..준수씨.." 그들의 등장에 멋모르는 재중의 얼굴위로 작은 반가움이 떠오르고.. 창민의 얼굴은 아까보다 한층 진지해져 있었다. 윤호이녀석.........도대체 뭐야......?? 갑자기 이렇게 자신들을 부른걸보면 뭔가 중요한 말이 있어서인건 확실한데... "뭐야....무슨 일이라도 있는거야..?" 언젠가 준수의 얘기로 몇번 본적이있는 창민을 바라보며 유천이 윤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준수에게 듣기로는 창민은 그들의 절친한 친구이자 듬직한 근위대장이라 들었다. "그냥 만찬이나 즐기자고 부른건 아닌것 같은데..? 점심을 먹기엔 조금 이른시간이잖아." 역시나 유천이 무슨일인지 궁금해서 못참겠다는듯 말을 꺼냈고, 다들 그런 유천의 말에 동의하듯 윤호의 말을 기다린다. "......." 아래로 향했던 시선을 조용히 들어올리며 윤호가 그들을 한번씩 천천히 바라봤다. 드디어 말문을여는 그. "유천도..준수도..자리에 앉아." 여실히 어디서나 드러나는 족장으로서의 명령어린 말. 하지만 오늘은 그의 표정도 매우 진지했기에, 유천은 그런 그의 말투에도 아랑곳않고 준수와 나란히 앉았다. "......." "......." 다들 진지한 표정, 또는 긴장한 표정으로 윤호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정작 재중은 이런 어색한 분위기가 낯설기만한듯 두 손가락만 꼼지락거릴뿐이다. 준수는 꽤나 오랜만에 보는 윤호의 감정없는 얼굴에 불안함을 느끼며 옆에 앉아있는 유천의 손을 꼬옥 움켜잡았다. 항상..그가 저런 표정을 짓곤 할때면... 무언가 안좋은말을 꺼낼때였지..... 자신을 바라보고있는 시선들을 두고 윤호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나즈막한 목소리로 입을열었다. "..내가...갑자기 오늘 부른이유는....모두 짐작들은 하고있겠지만, 중요한 결정을 내렸기때문이야." "....." 윤호의 첫마디에 다들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정은 여기있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알아야 하는것이라서 이렇게 회의실로 모이라고 부른거고." 도대체 무슨 결정을 내렸다고 그러는걸까............... 모두의 시선이 윤호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들의 시선을 피하는거없이 받으며 윤호가 말을였다. 단호하게. "족장자리를....." 그의 입에서 무슨말이 나올지............. 덜컹--!!! 창민이 두눈을 부릅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족장자리를 물러나겠어." "정윤호!!!!!" "윤호야!!!" 유천과 준수도 윤호의 말에 충격을 받은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두들 놀란 표정을하자 영문도 모르는 재중또한 불안한 기색에 두눈만 깜빡일뿐이다. "너..무슨말이야 그게!!" 창민이 침착함을 잃은 눈을 빛내며 윤호에게 다시한번 물었다. 점점 매서워지는 창민의 얼굴을 눈한번 깜빡이지않고 똑바로 쳐다보는 윤호가 다시한번 말을꺼냈다. "말한 그대로야. 족장자리를 물러....." "입닥쳐 이새끼야!!!!!" 창민이 성큼성큼 단번에 윤호에게로 다가섰다. 그리고는 그의 멱살을 움켜잡는다. "다시말해봐!! 그 말이 그렇게 쉽게 잘도나와? 모든 부족을 다스리는 족장 정윤호가 할 수 있는 말이냐고 그게!!!" 곧 날아올것같은 창민의 주먹에도 아랑곳않고 윤호는 여전히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한번내린 결정은 바꾸지않아." 흔들림없는 목소리. "뭐?? 이 자식이 정말!!!" 퍼억---!!! 결국은 윤호의 말에 창민의 주먹이 그의 얼굴을 거칠게 후려쳤다. 쿠당탕--!! 아무 저항없이있던 윤호가 힘없이 뒤로 나자빠졌다. "창민야!!!" "이봐!!" 준수가 깜짝 놀란듯 소리를 질렀고, 유천은 재빨리 창민의 두팔을 잡았다. "윤호!!" 인정사정없는 창민의 주먹질에 윤호의 입가에 핏방울이 맺혔다. 재중이 주저앉아있는 윤호에게로 부리나케 달려가며 그의 품으로 안겨들었다. "내가 믿고 따르던 족장 정윤호가 이것밖에 안되는 새끼야? 부족 모두를 져버릴만큼 독단적인 자식이냐고!!!" 흥분한 창민이 유천의 팔을 뿌리치며 윤호에게로 다시한번 달려들었다. "안돼!!!!!" 순간. "..!!!.." "안돼....안돼요...." 넘어져있는 윤호의 목을 꼬옥 끌어안으며 부들부들 떨고있는 재중이 울음을 터뜨렸다. "창민..나빠........어째서 윤호를 때려요..... 아무것도 잘못한거 없는데...어째서.......흐으윽....." "하아..하아...." 창민의 거친숨을 담아내는 가슴이 빠르게 오르내린다. "재중씨.." 준수가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숨죽여 오열하는 재중을 지켜보고는 자신도 함께 두눈가득 눈물을 채웠다. "..흐윽...흑........재중이를......." 떠듬떠듬 새어나오는 작은미성. "...재중이를.....때리면 되잖아요....재중이가....맞으면.....흐윽...." 절대로 윤호에게서 떨어지지 않겠다는듯 그를 감싼 재중의 여린 몸은 작게만 보였다. "......." "..흐윽...흑..........윤호...윤.........." 결국 목놓아 엉엉 거리며 아이처럼 우는 재중의 좁은 어깨를 윤호가 한쪽 팔로 감싸안았다. 그리고는 차츰차츰 숨을 고르는 창민의 눈빛을 똑바로 바라본다. "..하아...하......." 정윤호... 그 눈빛이 무얼 말하는거냐................ 절대로 포기 않겠다는 거야.....?? 니가 그렇게 생명처럼 여기던 족장자리를 단호하게 내팽겨 친다는 뜻이냐고.... ..벌..써....... ...그렇게............ 허탈해진 창민의 눈빛. 누구에게도... 무엇에게도 양보 할 수 없다는듯 그렇게 윤호는 재중을 끌어안으며 창민을 바라봤다. 정윤호!!!!! "어떻게 인정하란 말이야!!!!!" 인정하지 못한다는듯 고함을 지르는 창민의 미간이 일그러들었다. 하지만 이내..... 두눈가득 눈물이 차올라 버린다. 최고의 지도자인 그를.........어떻게............... "....." 꽉 움켜쥔 주먹을 주체하지 못하며, 끝내 창민이 이를 악물고 뒤돌아섰다. "젠장!!!" "창민야!!" 못들은걸로 하겠어 정윤호. 난.....아무말도 듣지 못했다구. 준수가 그를 뒤쫒아 나가려 걸음을 옮겼지만, 유천이 그를 막아섰다. 뒤쫒지 말라는 무언의 말였다. 쾅---!!! 창민이 나가고 거칠게 닫혀진 문. "흐으윽...흑....." 여전히 어깨를 떨며 울고있는 재중의 이마위에 조용히 입맞추며 아까부터 윤호는 나즈막히 속삭일뿐였다. "괜찮아....." "..흐읍...흑......윤..ㅎ..ㅗ...." "울지마...재중아....쉿.." 자꾸만 자신의 품으로 파고들기만하는 여린몸을 힘껏 두팔로 따뜻하고도 강하게 안아준다. "...윤호야..." 그런 그들을 지켜보던 준수가 놀란가슴을 진정시키며, 두손으로 입가를 감싸고는 유천의 품으로 기대었다. 윤호가........족장자리에서 물러나겠다니............... ..그...런.......... 두사람을 바라보는 유천과 준수의 마음은 한없이 무거워질 따름였다. - 미 열(美 熱) 89편 - 방으로 돌아온 준수의 얼굴빛이 무척이나 어두워져 있었다. 침대에 힘없이 걸터앉은 준수를 바라보며 유천또한 아무말없이 그저 멍하니 그의 옆에 서있을뿐였다. 자신조차도 깜짝놀란 윤호의 폭탄선언. 족장자리를 포기해...? 재중이때문에.............??? 사람이란 본래 권력과 부를 안고있다면, 그것에 한번 빠져 헤어나올수 없다는것을 잘 알고있는 유천였다. 그런 모든것들을 안고살던 정윤호가 한꺼번에 그 모든걸 버리고 재중이만을위해 살아갈 수 있을까? 물론 그런 결정을 내렸으니 그렇게 단호한 눈빛으로 모두를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할 수 있었겠지... 그래..... 사람이 권력과 부의 맛들여 그것을 포기할수 없다는 말은 틀림없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게된다면.. 그것은 권력과 부를 능가하는 위험을 가지고 있다는것 또한 잘 알고있었다. 그 사람이 전부가 되어버린이상 그걸 얻지 못하게하는 방해요소가 자신의 족장자리라면 그리 결정내릴수도 있는것이다... 다만..그를 따르고 믿던 주변사람들이 그걸 받아들이는데는 적지않은 시간과 이해가 필요하겠지만. 아까부터 자신의 입가에 떨리는 손을 올려놓고있는 준수의 어깨를 부드럽게 두드리며 유천이 말을 건냈다. "좀 누워있을래?" "....난....몰랐어요...." 유천이 말을 건내자 준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나즈막히 입을 열었다. "...윤호가.....그런 생각을하고..그런 결정을 내릴동안....난......" "......." 마치 자신이 큰 잘못이라도 한것마냥 준수는 어깨를 움츠렸다. "나는 유천씨하고 행복하게 살수있지만...족장이란 짐을 어깨에 짊어진 윤호는 남모를 고민....참 많이하고...그랬을텐데......." "준수야.." "그런 생각 조금도 안하고....난 그저 유천씨랑 행복해서....." 준수가 결국은 자신의 두손으로 얼굴을 가린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휴우..." 유천의 머리속으로 벌써 자신의 생각에 결정을 지은듯한 윤호의 얼굴과 그런 그를 감싸고 아이처럼 울던 자신의 동생이 스쳐지나갔다. 결국..... 둘이 행복할 수 있겠지...? 울고있는 준수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유천은 그에게 아무런 말도 해줄수가 없었다. 마음약한 그를 그저 안아주고 토닥여주는 것 밖에는... 그리고 이제는 진정으로 재중과 윤호가 잘 되길 바랄뿐였다. . . . 자꾸만 떨려오는 손끝. 그저 심한 배신감만 들어버리는 자신을 추스리려 창민은 무던히도 노력하고 있었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알수없는 일그러짐이 얼굴위로 깊게 새겨졌다. "......." 촤악---!! 창문을 가리고있던 커텐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그렇게 허리에 손을 얹고있던 창민가, 곧 입가로 가져간 손가락을 까닥이고 있었다.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자신이 우스웠다. "휴우..." 절로 나오는 긴 한숨. 그런 그가 변함없는 창밖 풍경을보며 막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할때였다. 달칵---. 문이 열리는소리. 그 소리에도 창민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익숙한 발자국 소리만해도 누구인지 대번 알것같았으니까... 그래. 발자국 소리조차도 그는 다른 이들보다 특별한것 같았다. 언제나 절제되있는 빠르지도..그렇다고 느리지도않은... 어떠한 조급함도 내재되어있지 않은 딱딱한 그의 표정과 그의 발걸음. 그런것 조차도 그를 족장의 위엄있는 모습들로 비춰내곤 했는데..... 언제부터인지 자신의 거처로 들어갈때쯤엔 조금은 들뜬 아이처럼... 그리고 정원을 즐겨찾아 꽃하고도 어울릴줄아는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있는 그를..... 자신도 조금은 반가워 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아니지만. "당장나가. 다시한번 얼굴을 갈기고 싶으니까." 얼음장같이 냉랭한 창민의 말에도 불구하고 윤호는 문을닫고 창민에게 가까이 다가선다. "복잡한 마음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러니까 나가라고!!!" 그런 그를 돌아다보며 창민이 매섭게 소리질렀다. "심창민." 하지만, 어느때와 똑같이 차분한 윤호의 목소리. 넌...어쩌면................. 모두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든 소리를 지껄이고도.... 그렇게 평소처럼 똑같은 얼굴에 흔들림없는 목소리야... "니가 할 말 다 끝났잖아. 너란 인간 언제나 남보다는 니 결정과 니마음이 우선이잖아." 윤호를 노려보는 창민의 눈빛과 비수같은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 윤호가 나즈막히 말을 꺼냈다. "물론 그렇게 내린게 내 생각이고 결정이야. 내멋대로인거..인정해. 하지만, 내가 생각없이 그런말 뱉어낸거 아니야. 모든걸 각오하고 너희한테 말한거니까." 윤호가 아직도 피가 맺혀있는 자신의 입술끝을 손가락으로 훔쳐냈다. "그래. 그래서 다 떨쳐버리고 너혼자 그 아이와 희희낙낙 살겠다는거냐?" "말 함부로 하지마 심창민." 창민의 비아냥 거리는 말투에 윤호가 한쪽 눈썹을 살짝 일그렸다. "내가 족장자리를 물려받은지 10년이 넘었어. 아이였을때부터 무거운 짐을 어깨위에 짊어지고 걸어온 자리야..그만큼 자부심도 많고 애착도 많은 자리였고." "......." "하지만, 그 사이 내가 진짜로 웃었던적이 얼마나 될 것같아? 두 다리 쭉뻗고 깊은잠에빠져 잠들어본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않아. 다른부족들을 통합하는데만 수년간이 걸렸고, 늘 누군가 날 암살할지도 모른다는 상황에서 떳떳하려고 노력했어. 사사로운 연민이나 정에는 언제나 단칼처럼 날카롭게 굴었지." "......." 점점 감정이 고조되어 망설임없이 모두 내뱉는 윤호의 말을 창민은 소리없이 듣고있었다. 그런 창민를향해 윤호는 처음으로 흔들리는 눈빛을하고 있었다. 자신의 결정에 흔들리는 눈빛이아닌..... 여지껏 살아오면서 족장으로서의 말못할 고뇌가 가득 쌓인 안타까운 눈빛였다... 그러기에 그가 하는말을 창민은 함부로 가로막을수 없다. "후.." 자신의 머리를 쓸어넘기는 윤호의 손끝이 조금은 긴장한듯 보인다면 착각일까..? 잠시 다른곳을 보다가 다시 창민에게로 시선을 돌린 윤호가 말을 잇는다. "그런데...이제 사랑이란걸 알아서........... 어떻게보면 너무 뒤늦게 깨달아 버려서.....처음으로 가슴깊이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으로 즐겁게 웃어도보고...무너질것 같은 쓰라림에 아파도보고.... 미칠것같이 보고싶은 마음에 무너져 내리는 자신도 느꼈어..." "......." "냉정함이나 무력만이 능사가 아니란 사실도 깨달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따뜻한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것도 깨달았어." "......." "그 아이에게서 배운것들이야..." "......." 말없이 부딪히는 창민과 윤호의 시선. ...너....말야............ 창민의 눈가가 떨려왔다. ..너...... ...너무 많은걸 윤호에게 알려줘 버렸구나.... 내가 그의 눈가가 젖어드는걸 지금 이렇게 보고있으니 말이야..... ....내가.....살아오면서............ 정윤호의 이런 모습도 다 보게되니 말이야......... 분노로 뛰어대던 가슴이 이제는 시려오기 시작했다. 아파오기...시작했다. 그래. 어릴적.. 아주 어릴적 기억의 틈바구니 그 작은 사이로 기억하는 윤호의 모습은, 족장인 아버지와 그의 어머니곁에서 울기도 잘 울어대던 그런 아이였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단편적으로 기억나는 어린모습의 추억. 귀족의 아이들과도 잘 뛰어놀고 귀엽게 웃을줄 알았던 그런 친구로 자신도 무척이나 그를 따르고 좋아했는데..... 어떻게보면 그가 족장자리에 오르면서부터, 이기적인 자신들이 그를 그렇게 차갑고 인간미없이 만들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다른 부족들 사이에선 냉혹하다는 이미지로 전락시킬만큼 자신들은 윤호에게 좀 더 좋은 지도자가..자신보다는 무조건 부족이 우선시 되어야하는 그런 벼랑끝으로 내몰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좋은 지도자 아래서 편하고 먹고 즐기고 일하며, 정작 그 지도자는 어떻게 살든.... 그저 정해진 가문좋은 반려자를 만나 훌륭한 혈통만을 중요시하며, 윤호과같은 아이가 태어나길 기대하며............... 그가 진심으로 웃거나 바라는걸 깨닫게해줄 생각도 해보지 않은채..... 여기까지 달려왔는지도..... 어쩌면 자신들이 더 많이 이기적인것을................ "......." 자신도 모르게 뚝뚝 떨어져 내리는 눈물을 느끼지도 못하는지 그렇게 창민은 윤호를 응시하고 있었다. 뚜벅--. 그런 창민에게 한발 걸어간 윤호가 그의 바로앞까지 다가섰다. "......." "..창민야.." 윤호가 창민의 어깨에 조용히 손을 올리며 젖은 눈가로 따스하게 웃어보였다. 진정 처음보는 윤호의 따뜻한 웃음에 창민의 눈가에서 더 많은 눈물이 떨어져 내리고..... 한손으로 눈가를 가리고 고개숙여 우는 자신의 귓가로 나즈막히 퍼지는 윤호의 목소리. "이제 나...정말 행복해지고 싶은데... 안되겠니?.." 행복해지고..싶은데...안되겠니...? ..안되겠어...? - 미 열(美 熱) 90편 - "재중님--." 환희가 밝은햇살이 들어오는 따뜻한 방안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재중을 불렀다. 그리고는 우울한 표정으로 자신이와도 바라보지 않는 그의 앞에 바짝 다가갔다. 바닥에 살며시 무릅꿇고 앉아도 재중은 환희에게 눈길을 주지않는다. 그가 왜이렇게 우울한지 잘 알고있었다. 그리고 환희 자신도 마음이 어지러워 죽을 지경였다. 문밖에서 들었던 윤호의 말이 환희의 가슴에도 꽂혔던것이다. 정말로..윤호가 족장자리를 물러선다는것은 꿈에서도 상상해본적이 없던 일였다. "......." 어떻게보면 윤호가 족장자리에서 물러선다는것은 재중이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누가 이 아름답고 순수한 그에게 책임을 물을수 있단 말인가. 서로...사랑한다하는데... 환희가 곧 재중에게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어여쁜 옷을 보여준다. "아까 본궁쪽에 잠시 들렸는데 의궁에서 옷을 만드는 시종이 전해주더라구요.." 연초록빛이 옅게 도는 아름다운 옷감은 둥근 어깨선을 지니고 허리부근에는 단아하게 묶을수있는 비단끈까지 달려있었다. 그 옷을 본 재중의 눈동자가 그제서야 환희에게 머문다. 환희가 재중을 바라보며 활짝 웃어보였다. "윤호님께서 부탁해놓으신 옷이래요. 재중님을위해." 환희의 말을 들은 재중의 두눈이 조금씩 커다래졌다. "..윤호..이...?" 다시한번 작게 물어보는 재중에게 환희가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바느질이 정교하게 잘되어있는 옷은 사람이 손으로 만들었다고 믿기가 어려울만큼 선이 고왔다. 윤호가..... 환희가 건내주는 옷을 떨리는 손길로 받은 재중이 그 옷을 꼬옥 끌어안았다. 이상하게 바늘로 찌르는듯 가슴이 따끔거려왔다. 마음에 찬바람이 불어 얼리듯..그렇게 시려왔다. "......." 두눈에서 커다란 눈물방울이 뚝뚝. 왜 눈물이 나는지............. 갑자기..왜 자신이 우는건지................ 흐느껴 울진 않아도 점점 연초록 옷감위로 떨어지는 눈물방울은 늘어만갔다. "재중님..." 아무소리없이 어깨를 떨며 눈물만 떨구는 그가 자꾸만 안쓰러워 보인다. 잔뜩 몸을 웅크리며 옷을 두팔로 가득안은 재중이 울먹임 사이로 작은 목소리를 토해냈다. "창민이는..나빠......윤호를 때렸으니까....." 재중의 말에 환희가 아니라는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예요 재중님...아니예요..." "흐윽...흑...." 조금씩 새어나오는 흐느낌 속에서 재중이 떨리는 입술로 자책하듯 말을꺼낸다. "...재중이가....흑....재중이가...제일 나쁜거야........ 제일..나빠.........제일............." 마치 자신과 연관된 일로 윤호가 맞았다는것을 알기라도하듯 재중은 연거푸 자신이 나쁘다고 말하고있었다. "..흐으윽.....흐읍............... ....재중이가.........윤호밖에 모르니까.......그래서....." 어떠한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틀림없이 재중은 윤호가 왜 힘들어하고 창민에게 맞아야 했는지 느끼고 있는듯했다. 재중은 자신을 다정한 눈빛으로 안아주고 다독여 주면서... 울지말라고 말해주었던 윤호가 떠올랐다. 그 다정한 눈이..자신의 눈에는 이상하게도 아파보였다. 그래서 더 많이 울고...... 또..지금도 그 눈빛이 생각나 울고있는건지 몰랐다. 자꾸만 울고있는 재중을보며 자신도 울컥하고 울음이 터질것같아 입술을 꾸욱 깨무는 환희. 이럴때 윤호가 들어와주면 좋을텐데... 창민의 거처에 들린다고 재중을 데리고 먼저가라던 윤호은.. 시간이 꽤 지난듯한 지금도 돌아오지 않고있었다. 토닥토닥.. 재중을 토닥여주며 옆에서 그의 눈물을 닦아준지 얼마나 됐을까.. 이제는 오후가 지나고 서서히 저녁으로 넘어가는 시간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눈자위가 붉게 변해버린 재중이 울음을 서서히 그치려는듯 연초록빛 옷을 살짜기 펼쳐본다. 그리고는 입술을 꾸욱 다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호가 재중이한테..선물 준 옷...입을래." "그러실래요?" 더듬더듬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는 재중을 따라, 환희도 일어섰다. 그리고는 재중이 옷 갈아입는것을 도와준다. 꾸우욱 옷을 안고있던 재중때문인지 조금은 구김이 간곳도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예쁜 옷였다. 재중이는.....윤호를 행복하게 해줄테야..... 차분히 옷을 갈아입고, 마지막으로 허리부근을 단단히 묶어 감을때였다. 달칵--. "재중아." 순간 열린문 틈으로 그제서야 윤호가 재중의 이름을 부르며 모습을 드러낸다. "윤호-!!" 후다다닥--- 반가운 마음이 한가득인 재중이 방으로 들어선 윤호를 보자마자 그에게로 뛰어들었다. 와락---!!! 그리고는 가뿐하게 자신에게로 안겨드는 재중을 윤호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옷이 완성된 모양이군." 자신이 얼마전 만들어달라 부탁했던 옷감을지어 그걸 입고있는 재중을보고는 활짝 웃어버리는 윤호였다. 자신을 번쩍안아드는 윤호에게 재중이 더욱더 파고든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던 환희가 윤호에게 조용히 말없이 인사해 보였다. 그리고는 윤호의 품에안겨 마냥 행복해 보이는 재중의 얼굴에 사뿐히 걸어 밖으로 나간다. 쿵--. 작게닫힌 문소리가 환희가 방에서 나갔다는것을 알려주고.. 윤호는 자신의 연인을 품안으로 더욱더 꼬옥 끌어안았다. - 미 열(美 熱) 91편 - 두손으로 자신의 옷깃을 꼬옥 움켜쥐고있는 재중의 손에 윤호가 고개숙여 입맞췄다. 그리고는 재중의 두눈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너..울었구나." 붉으스름해진 눈자위에도 살짝 입맞추던 윤호가 재중을 걱정스레 바라봤다. 도리도리. 그러자 곧 아니라는듯.. 울지 않았다는듯 다급하게 도리질치는 재중. "쿡.." 그 모습에 윤호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친구의 눈물을 보고온 직후라 마음 한구석이 무겁던 그였는데 재중의 모습에 마치 모든게 정리되듯 말끔해 지는것같다. 이젠..니가...... 나한텐 대단한 존재가 되어버렸구나... "..아프..겠다..." 곧 그 까만 눈망울을 촉촉하게 빛내며 윤호의 입가를 살짝살짝 만져보는 재중이 속삭이듯 그를향해 '아프겠다'라는 말을 연발한다. "아프지않아." 재중의 찡그려진 고운미간에도 윤호가 입을맞췄다. "......." "......." 윤호의 입술이 자신의 볼에도 내려앉고 이마위에도.. 콧등위에도 내려앉자..살며시 눈을 감았던 재중이 자신의 두손을 들어올려 그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리고 자신의 입술위에 닿으려던 윤호의 입술을 살짝 피한다. "..??" 자신의 입술을 피한것이 의아한지 곧 재중의 두눈을 바라보는 윤호이다. 그런 윤호를 마주보던 재중이 이내 그에게로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했다. 그리고는 윤호의 입술끝자락 상처에 조심히 입술을 갖다댄다. "....." 부드러운 입술이 사뿐히 닿고..곧이어.......... ..이 촉촉한 느낌은...? 윤호의 눈이 커다래졌다. 언제나 자신이 키스를해야 입술을 열어주던 재중이, 오늘은 먼저 분홍빛 혀를 살며시 내밀어 윤호의 상처를 조심스레 매만지고 있었던것이다. 하지만, 뭐가 부끄러운지 재중의 두뺨은 발갛게 홍조를 띄우고 있었다. 너무나.........사랑스러워................ 그 자극을 참지 못하겠는지, 끝내 윤호가 재중의 입술위로 조금은 다급한듯 키스하기 시작했다. 윤호의 부드러운 혀가 밀려들어오자 금새 열린 입술은 그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인다. 달콤한 촉촉함이 자꾸만 윤호으로 하여금 그를 갖고싶다고... 아니. 그를 가지라고 말하고 있는듯했다. 재중이야... 재중이야.......... 자꾸만 마음속으로 그를 불러보는것만큼 입맞춤은 깊어져만갔다. "우웅.." 작게 웅얼거리는 소리가 살짝 떨어진 입술새로 흘러나왔지만, 윤호는 개의치않고 그를 안은채 침대쪽으로 망설임없이 걸어갔다. "..하아..." 입술을 완전히 떼어내니 참았던 긴 숨이 한꺼번에 터지는듯하다. "윤..호..." 윤호가 했던 길고 긴 입맞춤이 아무래도 그에게 나른함을 준것같다. 재중의 표정이 한껏 긴장이 풀린채였다. 그런 재중을 침대위로 살며시 뉘이며 윤호가 그 위로 몸을 겹쳤다. 포근한 따뜻함. 자신도 모르게 윤호의 목을 스스럼없이 끌어안자 다시한번 그의 입술이 내려온다. "..아..웅..." 속삭임같은 신음소리가 윤호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자신의 질투심때문에 너무나 아프게 그를 가졌던것에대해 적지 않게 걱정을해왔다. 그가 두려워하며 겁을 먹을까... 싫어하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이 재중을 사랑한다면... 또 재중또한 자신을 사랑한다면... 예전에 아프게 했던것까지 모두 보상할만큼 그를 사랑해줘야 하는거라고... 그게 옳은거라고... 그래서 지금 자신은 그를 가지겠다고.. 온전하게 정윤호의 사람으로 받아들이겠다고 결심했다. "..윤호..." 가는 미성이 귓가를 울리는게 너무나 듣기 좋다. "그래.." 그의 부름에 대답을 해주며 자신이 선물한 연초록빛 비단옷의 허리끈을 풀어제쳤다. "아.." 방안을 맴돌던 약간은 서늘한 공기가 옷속으로 파고드는 느낌에 재중이 어깨를 움츠렸다. 허리끈을 풀자 둥근어깨를 자연스레 나타낸 옷은 미끄러지듯 내려섰다. 예쁜 목선과 모카빛 피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윤호는 그만 자신의 빨라지는 숨을 조용히 들이마셨다. 조금은 추운듯 자꾸만 자신의 목을 당겨안으려하는 재중의 손길을 피하며, 윤호가 자신의 옷가지를 벗어 침대 아래쪽으로 떨어뜨렸다. 연초록빛 비단옷을 이불삼아 그위로 누워있는 재중의 몸위에 자신의 몸을 조심히 맞댄 윤호이, 그의 목덜미를 부드러운 혀로 가볍게 핥았다. "우응.." 간지러운듯 하면서도 이상한 기분에 자꾸만 흠칫거리며 놀라는 재중의 반응이 윤호에겐 귀엽기만하다. 내꺼다................ 김재중은 내사람이야......... 윤호의 입술이 자신의 여린 살결을 깊게 빨아들이자 약간 따가운듯, 그의 어깨를 힘주어 잡은 재중이 자연스레 고개를 뒤로 젖혔다. 윤호가 재중의 목덜미를 배회하던 입술을 가슴위로 옮겨 꽃잎같은 분홍빛 봉우리를 살짝 깨물자, 그의 붉은 입술사이에서 신음이 터져나온다. "아..응..." 너무나 이상한...피하고도 싶지만... 한편으론 그저 고스란히 윤호가 하는데로 내맡겨 버리고 싶은 느낌에 재중의 얼굴은 어느새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재중의 나머지 옷자락을 깨끗하게 펼친 윤호가 입술을 그의 허리로 내려뜨렸다. 얄쌍한 허리는 여인의 그것보다도 훨씬 감질나는 부드러움과 매혹적인 선을 갖고 있었다. "..아...윤..호..." 윤호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허리를 살짝 비트는 재중의 손을 꾸욱 잡아 누르고, 나머지 한쪽손으로는 그의 엉덩이를 감쌌다. "하아..하..." 순간 갑자기 가빠지는 숨결. 도망치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져 버린다. "..싫...어....." 윤호의 입술은 재중의 긴장을 풀어주고자 따뜻하게 애무하고 있는데, 막상 자신의 작은 성역으로 닿아버린 그의 손끝이 재중은 끝끝내 더럭 겁이나는 모양이다. "윤호...재중이는..." 도망치려는듯 점점 몸부림치는 재중의 양팔을 잡아 누르며 윤호가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김재중." 그리고 거친 숨소리 사이로 그를 부른다. "..하아....." 똑바로 바라보는 자신의 눈빛에 재중이 금새 울상이되어 입술을 떠는것이 보였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만 재중의 손을 올려 자신의 왼쪽가슴위에 조용히 얹을뿐이다. 두근.두근.두근. 평소보다도 빠르게뛰는 윤호의 심장소리. 그 느낌에 재중이 어느새 꽈악 깨물었던 입술에서 긴장을 풀고............ 윤호는 그런 그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문을 연다. "널..원해서 내심장이 미치도록 뛰어..... ..재중이 니가 너무 갖고싶다그래...사랑하고싶다그래.." "......." 윤호의 깊은 눈빛이 진심을 담고있었다. 자신은 방금전까지만해도 윤호를 행복하게 해줄꺼라 다짐하지 않았던가. "......." 잠시 머뭇거리던 재중이 살짝 상체를 일으켜 윤호의 입술에 다시한번 입맞췄다. "재중아.." 분명 자신을 받아들인다는 승낙의 표시임에 틀림이없었다. 다시 시작된 그들의 열기에 서늘했던 방안의 공기는 따뜻해져만갔다. "하아....아...." 자꾸만 자꾸만 깊어지는 윤호의 애무에 그저 간간히 신음을 내뱉으며 그렇게 스스럼없이 자신을 맡겼다. 그러자 윤호가 주는 그 새로운 느낌은 어느새 재중 자신도 모르게, 그를 바라게되는 열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윤호의 손끝이 자신도 몰랐던 성스런 성역에 다시 닿았을때는 어깨만 움츠릴뿐 두눈을 꼬옥 감아내리는 재중였다. 서로를 더욱 가깝게 느끼고자 노력하는 두사람의 몸위로 땀방울이 맺혀간다. 재중의 가는 허리를 자신의 쪽으로 바짝 끌어당겨 안은 윤호가 그의 다리 사이를 파고들며, 귓가로 작고 달콤하게 속삭였다. "사랑해 김재중." "..윤..호....하아...." 그리고 그와동시에 자신의 몸안으로 들어선 윤호의 움직임에 재중의 고운 미간이 일그러들었다. "..아...읏..." 밀려들어오는 아픔을 꾸욱 눌러참으며 윤호의 어깨를 세게 잡은 재중의 손에 더욱더 힘이 들어갔다. "사랑해..재중아....사랑해..." "..하읏...하아..." 처음엔 애써 부드럽게 들어서던 윤호가 재중을 가진다는 기쁨에 점점 거칠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아...하아...." . . . 어느새 새벽을향해 치닫을지도 모를 시간속에서... 자신의 안에서 끝없이 움직이는 윤호를 느끼며, 재중은 꼬옥 감았던 눈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감당하기에 조금은 버거웠지만, 절대로 윤호와 떨어지기 싫다 생각했다. 그리고 재중은 윤호가 움직임을 서서히 멈춰갈때쯔음... 가뿐 숨사이로 겨우...한마디 내뱉을 수 있었다. 꼭 해야할것같은 말....... "...재중이도............" "..하아...하아..." "...재중..이도.....윤호를 사랑해........" 윤호를 사랑해........................ 속삭이는 목소리가 왜 그렇게 사랑스러운거니....... 내 목을 끌어안는 네 손길 하나하나가..미치도록 좋아.......... 우리..행복해지자...재중아. 내가 그렇게 해줄께... 이 정윤호가. [자작/게하] 미 열 (美 熱) 92편 내가 너를 온전히 갖게되는 그날이...... 나에겐 마치 다시 태어난 날과도 같을꺼야.. . . 너와내가 비로서 하나가 된 날이니까. - 미 열(美 熱) 92편 - 이른아침. 달칵--. 방문을 살짝 열고 들어선 환희가 창문가에 우두커니 서있는 창민을 바라봤다. "....." 환희가 자신의 방에 들어온것을 알아챘는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듯 보이던 창민의 눈길이 문쪽으로 향한다. "부르셨어요 창민님?" 자신을 바라보는 창민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여보인 환희가 사뭇 긴장한듯한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선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널 부른것은 부탁이 있어서야." "부탁...이요?" 창민의 말에 환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창민의 호출을 받고 올땐 뭔가 시키실일이 있으시겠거니..했는데, 부탁이라니........? 환희의 눈을 바라보며 창민이 입을열었다. "환희 너도 알고있을꺼라는거 알아. 윤호가 족장자리에서 물러서겠다 말한일을." "......." 갑작스레 꺼내지는 윤호의 얘기에 환희가 창민의 눈을 마주보았다. 그런 환희의 어깨위로 손을 얹으며 창민이 한층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냈다. "일하는 모든 시종들에게 자연스럽게 소문을내. 윤호가 족장자리에서 물러나겠다...그리 말했다고." "네?!!" 창민의 말에 환희가 놀란듯 두눈을 치켜떴다. "하, 하지만.." 환희가 당황한듯 말문을 열려 했으나 곧 창민의 부드러운 손짓에의해 거부당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것은, 소문을 내고자해도 윤호의 입장을 얼마나 잘 살려서 내느냐에 달려있다는거다. 어차피 우리 아래있는 계급들에겐 상관없어." "......." "문제가 되는건 귀족들과 원로 장로들뿐이니까." "아아.." 창민의 말뜻이 무엇인지 이제 알겠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는 환희. "그러니까 환희 너의 말이 중요해. 지금 상황에선 뜬소문이라도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레 퍼지는것이 좋으니까. 나중에 윤호가 정말 공식적으로 발표했을땐, 다들 동요하거나 혼란스러워해도 큰충격을 받진않을꺼야." "예. 창민님." 자신의 어깨를 상냥하게 두어번 두드리는 창민의 손길에 환희가 살짝 미소지었다. "부탁한다." "걱정마세요." 다른 시종들보다 두 세살 더 어린 자신은 언제나 그들사이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하곤 했다. 게다가 윤호를 섬겼고, 지금은 그가 제일 사랑하는 재중을 모시는 몸이니 자신이 그냥 흘려하는 말이어도 신빙성을 가질것이 분명했다. 환희가 창민이 부탁한 일을 꼭 잘해내겠다는듯 입술을 꾸욱 다물었다. 그런 환희가 귀여운지 그의 머리를 웃으며 헝크러뜨리는 창민의 손. "내가 너에게 하고싶은말은 여기까지." 환희에게 돌아가도 좋다는 말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창민이 곧 등을 돌리고서는 다시 창문가로 돌아섰다. "......" 서서히 창을 통해 들어오는 아침햇살이 창민의 몸위로 쏟아져 내렸다. 늘씬한 그의 뒷모습은 누가봐도 반할정도로 멋드러졌다. 게다가 붉은색이도는 갈색머리카락은................. ..................................... ......................... 창민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는 어린 환희의 눈이 아득해졌다. 족장자리를 그만둔다는 소리에 금새 윤호를 죽이기라도 할듯이 달겨들던 그가... 지금은 윤호를 도와주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듯 보였다. 곱상한 외모와는 다르게 어딘지 모르게 믿음직한 창민이었다. 뚜벅뚜벅. 환희가 이내 문쪽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우뚝. 하지만, 곧 방에서 나가기 직전 걸음을 멈춰선다. 그리고는 햇빛을받아 더욱 하얗게 빛나는 창민의 얼굴을 바라보고 작게 미소지으며, 명랑한 목소리로 커다랗게 외쳤다. "저도 윤호님과 재중님이 행복해지는게 좋아요 창민님!!!" "..!!.." 쿵---. 뜬금없는 환희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창민이었지만, 그는 이미 문밖으로 나선 후였다. 피식..... [윤호님과 재중님이 행복해지는게 좋아요..] 환희의 말을 떠올리며 가볍게 웃어버리는 창민.. 그래... 나도 윤호가 그 자식이 예쁜아이와 행복했으면 좋겠다 환희야... 하지만... 하지만 족장자리도 그녀석이 아니면안돼. "후우..." 창민의 입술새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밤잠을 설친듯 보이는 그의 눈동자 아래로 피곤이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 [자작/게하] 미 열 (美 熱) 93편 내가 너를 온전히 갖게되는 그날이...... 나에겐 마치 다시 태어난 날과도 같을꺼야.. . . 너와내가 비로서 하나가 된 날이니까. - 미 열(美 熱) 93편 - 겹겹이 이중으로 쳐진 커텐 때문인지 밝은 햇살이 들어올곳을 못찾고.. 그러기에 방안은 아직까지 어둑했다. 아이보리빛 휘장이 우아하게 걸쳐져있는 침대안. 깊은잠에빠져 헤어나오질 못하는 두사람이 여전히 서로의 몸을 부딪낀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 이리저리 휘둘리듯 구겨진 얇은 비단 이불아래로 시려워 보이는 발 하나가 삐죽이 나와있다. 얇은 발목이라 더욱더 시려워 보이는지도..... "우웅..." 발가락끝을 꼼지락 거리며 조금은 추운듯 미간을 찌푸리는 재중. "음.." 그런 그의 작은 웅얼거림에 살짝 한쪽눈만 떠올린 윤호가 부시시 일어났다. 그리고는 아직 잘 뜨지도 못한 두눈을 겨우겨우 힘겹게 치켜뜨며 재중을 살펴본다. "......." 어깨를 조금씩 움츠리는 재중이 보였다. 윤호가 곧, 주섬주섬 이불을 잘 펼쳐 그의 발끝까지 고이 덮어준다. 그러자 슬금슬금 이불 안으로 들어서는 작은 머리통. "으응..??" 하지만, 눈도 뜨지 못한채 옆자리를 더듬더금 거리며 이내 윤호의 온기를 찾는다. "쿡쿡.." 아기같이 사랑스럽다... 다시 이불위로 조심스레 누운 윤호가 재중을 꼬옥 끌어안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듯이 윤호의 맨가슴위로 부비대는 재중의 보드라운 뺨. 불과 몇시간전......... 부드럽게 안는다는게 그만, 참을수가 없어 제법 거칠게 재중을 안아버린 자신였다. 그러니 온 몸이 뻐지근하며 아플만도한데 그는 참 잘도잔다. 여리기만한 재중의 몸이 내심 걱정이되어 그의 몸을 상냥하게 만져주는 윤호의 손길이 다정함을 담고있었다. 이제는 정말 그토록 바라던 재중을, 온전히 모두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린듯하여 한없이 흐뭇하기만했다. "......" 살짝 벌어진 입술틈새로 쌔끈쌔끈... "......." 그 모습에 윤호의 때아닌 장난끼가 남몰래 고개를 들고... 이내 포근한 숨소리를 뱉어내는 재중의 입술위를, 자신의 혀로 부드럽게 핥아내리는 개구진 장난질을치며 슬쩍 웃어버리는 윤호였다. "..아..웅..." 하지만 귀찮아하는 기색도없이 윤호의 혀가 지나간 자신의 입술을 한두번 뻐끔거리며, 재중은 그저 고양이처럼 웅얼거릴뿐였다. "풋.." 미치도록 귀여운 모습에 윤호의 입에서 끊임없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자신과 제대로된 초야를 치룬 재중의 모습은 지난밤보다 어딘지 모르게 달라져 있는듯했다. 뭐랄까.................... 얼굴이라던지 모든 몸의 굴곡이 조금더 아름다워졌다고나 할까? 물론 새신랑이 첫날밤을 지내고 잠든 자신의 신부를 본다면 누구나가 다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재중은 어느누가봐도 예쁘고 고왔다. 그래서 그를 온전히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곁에만 꽁꽁 묶어두고 싶어하는 욕심이 생기는건지도 모른다. 아무도 보지 못하게 자신의 품에 꼬옥 안고 다닐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꼼지락꼼지락.. 깊게 잠든 재중이 윤호의 품으로 더욱더 파고들었다. 촉.. 그런 그의 허리를 감싸안아 당기며 윤호가 재중의 어깨에 부드럽게 입맞췄다. 그리고는 고이 잠든 재중의 귓가로 그가 듣지 못할말을 나즈막히 속삭인다. "그렇게 예쁘게 자지마..." "......." "자꾸만 사랑해주고 싶어 미치겠어..." "......." "나..아직....하룻밤으로 만족하지 않았다구..." 윤호가 무슨말을 하는지 알턱이없는 재중은 좋은꿈을 꾸고있는듯 그 예쁜 눈꼬리를 내려뜨리며 빙그레 웃고있었다. 자면서도 예쁘게 웃는 김재중. 윤호가 결국은 못참겠다는듯이 재중위로 올라서며 그의 입술에 부드럽게 키스하기 시작했다. "우웅??" 갑작스런 기습키스에 재중이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듯 감고있던 눈커플을 파르르 떠올리고..............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떼지않은채 윤호가 중얼거린다. "김재중. 너...내꺼야......." 장난이 가득서렸지만 진심어린 말투. 지금 그의 모습은 모든 부족을 책임지고있는 족장이라기보단, 자신의 연인을 사랑해줄줄아는 완벽한 남자의 모습였다. ---------------------------------------------------------------------------------- [자작/게하] 미 열 (美 熱) 93편 내가 너를 온전히 갖게되는 그날이...... 나에겐 마치 다시 태어난 날과도 같을꺼야.. . . 너와내가 비로서 하나가 된 날이니까. - 미 열(美 熱) 93편 - 겹겹이 이중으로 쳐진 커텐 때문인지 밝은 햇살이 들어올곳을 못찾고.. 그러기에 방안은 아직까지 어둑했다. 아이보리빛 휘장이 우아하게 걸쳐져있는 침대안. 깊은잠에빠져 헤어나오질 못하는 두사람이 여전히 서로의 몸을 부딪낀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 이리저리 휘둘리듯 구겨진 얇은 비단 이불아래로 시려워 보이는 발 하나가 삐죽이 나와있다. 얇은 발목이라 더욱더 시려워 보이는지도..... "우웅..." 발가락끝을 꼼지락 거리며 조금은 추운듯 미간을 찌푸리는 재중. "음.." 그런 그의 작은 웅얼거림에 살짝 한쪽눈만 떠올린 윤호가 부시시 일어났다. 그리고는 아직 잘 뜨지도 못한 두눈을 겨우겨우 힘겹게 치켜뜨며 재중을 살펴본다. "......." 어깨를 조금씩 움츠리는 재중이 보였다. 윤호가 곧, 주섬주섬 이불을 잘 펼쳐 그의 발끝까지 고이 덮어준다. 그러자 슬금슬금 이불 안으로 들어서는 작은 머리통. "으응..??" 하지만, 눈도 뜨지 못한채 옆자리를 더듬더금 거리며 이내 윤호의 온기를 찾는다. "쿡쿡.." 아기같이 사랑스럽다... 다시 이불위로 조심스레 누운 윤호가 재중을 꼬옥 끌어안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듯이 윤호의 맨가슴위로 부비대는 재중의 보드라운 뺨. 불과 몇시간전......... 부드럽게 안는다는게 그만, 참을수가 없어 제법 거칠게 재중을 안아버린 자신였다. 그러니 온 몸이 뻐지근하며 아플만도한데 그는 참 잘도잔다. 여리기만한 재중의 몸이 내심 걱정이되어 그의 몸을 상냥하게 만져주는 윤호의 손길이 다정함을 담고있었다. 이제는 정말 그토록 바라던 재중을, 온전히 모두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린듯하여 한없이 흐뭇하기만했다. "......" 살짝 벌어진 입술틈새로 쌔끈쌔끈... "......." 그 모습에 윤호의 때아닌 장난끼가 남몰래 고개를 들고... 이내 포근한 숨소리를 뱉어내는 재중의 입술위를, 자신의 혀로 부드럽게 핥아내리는 개구진 장난질을치며 슬쩍 웃어버리는 윤호였다. "..아..웅..." 하지만 귀찮아하는 기색도없이 윤호의 혀가 지나간 자신의 입술을 한두번 뻐끔거리며, 재중은 그저 고양이처럼 웅얼거릴뿐였다. "풋.." 미치도록 귀여운 모습에 윤호의 입에서 끊임없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자신과 제대로된 초야를 치룬 재중의 모습은 지난밤보다 어딘지 모르게 달라져 있는듯했다. 뭐랄까.................... 얼굴이라던지 모든 몸의 굴곡이 조금더 아름다워졌다고나 할까? 물론 새신랑이 첫날밤을 지내고 잠든 자신의 신부를 본다면 누구나가 다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재중은 어느누가봐도 예쁘고 고왔다. 그래서 그를 온전히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곁에만 꽁꽁 묶어두고 싶어하는 욕심이 생기는건지도 모른다. 아무도 보지 못하게 자신의 품에 꼬옥 안고 다닐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꼼지락꼼지락.. 깊게 잠든 재중이 윤호의 품으로 더욱더 파고들었다. 촉.. 그런 그의 허리를 감싸안아 당기며 윤호가 재중의 어깨에 부드럽게 입맞췄다. 그리고는 고이 잠든 재중의 귓가로 그가 듣지 못할말을 나즈막히 속삭인다. "그렇게 예쁘게 자지마..." "......." "자꾸만 사랑해주고 싶어 미치겠어..." "......." "나..아직....하룻밤으로 만족하지 않았다구..." 윤호가 무슨말을 하는지 알턱이없는 재중은 좋은꿈을 꾸고있는듯 그 예쁜 눈꼬리를 내려뜨리며 빙그레 웃고있었다. 자면서도 예쁘게 웃는 김재중. 윤호가 결국은 못참겠다는듯이 재중위로 올라서며 그의 입술에 부드럽게 키스하기 시작했다. "우웅??" 갑작스런 기습키스에 재중이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듯 감고있던 눈커플을 파르르 떠올리고..............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떼지않은채 윤호가 중얼거린다. "김재중. 너...내꺼야......." 장난이 가득서렸지만 진심어린 말투. 지금 그의 모습은 모든 부족을 책임지고있는 족장이라기보단, 자신의 연인을 사랑해줄줄아는 완벽한 남자의 모습였다. ---------------------------------------------------------------------------------- [자작/게하] 미 열 (美 熱) 94편 내가 너를 온전히 갖게되는 그날이...... 나에겐 마치 다시 태어난 날과도 같을꺼야.. . . 너와내가 비로서 하나가 된 날이니까. - 미 열(美 熱) 94편 - 거처앞에 마련되어있는 작은 화단은 준수가 직접 키우는 꽃들이 있었다. 그곳에 얼마전 여러 야채들의 씨앗도 심어 놓았었는데, 완연한 봄인걸 알았는지 벌써부터 작은 새싹들이 솟아 있었다. 파릇파릇한 어린 잎들을 바라보며 준수가 빙그레 미소지었다. 직접 물을 뿌려주는 그의 손길이 세심하다. "......." 그런 준수를 지켜보는 유천의 입가에도 미소가 어려있었다. "나는 봄이 제일 좋아요. 따뜻하고 이렇게 예쁜 새싹들을 볼 수 있으니까. 유천씨는요?" 준수가 웃음가득한 눈길로 유천을 돌아다봤다. 고개를 숙이자 살며시 내려온 결좋은 머리카락. 고운 손으로 직접 새싹들에게 물을주는 준수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유천가, 갑작스레 질문을 던지는 그의 물음에 흠칫 놀라고 만다. "응?" 자신을 단아한 눈으로 올려다보는 준수에게 유천이 무슨 말을 했는지 잘 못들었다는듯 두눈을 동그랗게 떠올렸다. "풋.." 그런 유천를보며 살며시 웃음을 터뜨린 준수가 다시한번 물어본다. "내가 좋아하는 계절은 봄인데, 유천씨는요..?" 정말로 궁금한지 눈을 빛내는 준수. 준수의 옆에 더 가까이 다가선 유천가, 그가 새싹들에게 주다가 멈춘 물을 자신이 계속주며 대답한다. "뜨거운 태양때문에 여름이 좋았는데, 이제는 봄을 좋아하기로했어." "..???..." "니가 좋아하는 계절이니까, 좋아졌어." 대답을 듣자마자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준수에게 빙그레 웃어주며, 유천이 어린 새잎을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톡톡 건드린다. "어이없이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널 사랑하니까 니가 좋아하는것들 모두 좋아졌어." "......." 하루하루 그러듯 그가 하는 상냥한 말들은 준수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유천의 팔에 수줍게 머뭇거리며 팔짱을 낀 준수가 그의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기대었다. "어이없는 일 아니예요....나도 그러니까." 자신의 어깨에 기대고있는 하얗고 작은 얼굴을 유천이 다정스레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그의 깨끗한 이마위로 입을 맞춘다. 사랑스런 내 연인.................. 산들산들 부는 바람이 준수의 옷자락을..그리고 유천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듯 흔들어놓고 지나갔다. 차갑지않은 바람. 완연한 봄이다. 준수의 팔을 슬며시 빼낸 유천이 그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유천의 가슴께에 옷자락을 손가락으로 살짝살짝 건드리던 준수가 곧 예쁘게 펼쳐져있는 눈앞에 정원을 바라보며 걱정섞인 말문을 열었다. "내일이 원로회의가 있는 날이예요. 내일은 저도 참석할꺼예요.." "너도..?" 유천의 조금은 놀란 눈빛에 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천씨도 알고있죠? 요며칠 자꾸만 사람들이 수근대는 소리를... 윤호가 족장자리를 그만둔다 말한걸 알고있는건 창민과 재중씨..그리고 우리밖에는 없을텐데 어디에서 어떻게 새어나온 말인지 빠르게 퍼져서 돌고있어요.." "..응.." 유천도 준수가 꺼낸 말에 살며시 미간을 찡그리며 수긍한다. "어찌보면 잘된것일수도 있어. 갑작스레 알려지는것보다 소문이든 뭐든 다른사람들이 미리 알고있다는것이." "그런면에서는 다행이지만..." 유천의 안정감있는 목소리에도 약간은 불안한듯 말끝을 흐린 준수가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확고함이 담긴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리듯 말을 꺼낸다. "내일 원로회의때...나도 도울수있는것은 다 돕고 싶어요." "그래." 준수를 꼬오옥 안아주며 유천이 그의 귓가에 나즈막하게 속삭였다. "사랑해." "으응...저도요..." 유천의 따뜻한 품안으로 준수가 파고들었다. 윤호와 재중을 이대로 있게끔 지켜내는것이........... 지금현재 준수가 유천에게 해주고싶은 제일 커다란 선물였다. --------------------------------------------------------------------------------------- [자작/게하] 미 열 (美 熱) 95편 내가 너를 온전히 갖게되는 그날이...... 나에겐 마치 다시 태어난 날과도 같을꺼야.. . . 너와내가 비로서 하나가 된 날이니까. - 미 열(美 熱) 95편 - 똑똑---. "......." 달칵---. 노크를 해도 아무 대답이없는 방안을 잠시 이상한듯 갸우뚱 거렸지만, 곧 환희는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제도 하루종일 방안에서 재중과 함께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던 윤호가 아니던가. 식사는 꼬박 문밖에 얌전히 차려두고 나가면 먹는것인지 없어지긴 했지만 오늘은 원로회의가 있는 날이라 심히 걱정이 된 환희가 직접 윤호를 찾았다. "윤호님.." 작은 목소리로 윤호를 부르며 문을 열고 들어서자, 깊게 드리워진 커텐과 탁자위에는 식사를 했던 흔적들만이 있었다. 넓은 방안을 두리번 거리던 환희의 시선이 침대쪽으로 향했다. "윤호님 침실에 계세요?" 희미하게 비치는 침대 휘장뒤에 실루엣. 그쪽으로 가까이 다가서자, 침대위에 걸터앉아있는 윤호가 조용히 하라는듯 손가락을 입가에 살짝 갖다댄채 환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윤호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던 환희가 다시 입을 다문다. "아직 곤히 잠들어있을 때야.." "......." 윤호의 시선이 다시 아래로 향했다. 침대위에는 세상모르고 잠들어있는 재중이 예쁘게도 자고 있었다. 그의 헝크러진 까만 머리카락을 사랑스럽다는듯 쓸어넘기며 윤호가 재중의 볼에 살짝 입술을 갖다대었다. "......." 두 사람의 예쁜 모습에 환희도 말없이 가만히 그들을 지켜본다. 하지만... "내가 이틀정도 잠을 재우지 않았으니 쉽게 깨지는 않을꺼다." 윤호의 말에 금새 얼굴을 붉히고 만다. 자신의 말에 당황한듯 얼굴을 귀엽게 물들이고있는 환희를 바라보며 윤호가 미소지었다. "니가 왜 아침부터 온것인지 알것 갔구나." 윤호가 재중의 어깨부근까지 이불을 잘 끌어올려 덮어주며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방 한쪽으로 걸어가 우아한 노란빛 비단 허리띠를 꺼내어 자신의 허리에 동여맨다. 아무것도 모른다는듯이 요염하게도 흐트러진 모습으로 자고있는 재중과는 달리 윤호는 의복을 갖춰입고 있었다. 벌써 그는 원로회의에 참석할 준비를 끝낸것였다. "제가..회의장까지 모실께요." 자신의 뒤를 따라서겠다는 환희의 말에 윤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다시한번 침대위에있는 재중을 바라본다. "오후 늦게쯤이나 재중이가 일어나면 수발을 들어주거라. 무척이나 고단할테니...끼니 잘 챙겨먹이고." ".....예..윤호님.." 윤호의 당부어린말에 환희가 조용히 대답했다. 환희에게 이런저런 말을 하면서도 그의 시선은 결코 재중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잠든 재중에게서 어렵게 시선을 떼어낸 윤호가 문쪽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다녀오십시오--." 환희가 그의 뒷모습에 예의 바르게 고개숙여 인사한다. 달칵----. "......." 문을 열고 나서는 윤호의 표정은 사뭇 긴장한듯 했지만, 그의 눈동자에 담긴 확고한뜻은 전혀 변한것이 없어보였다. . . . 수근수근. 윤호가 도착하기 전까지도 항상 조용하던 회의장이 오늘은 어쩐지 술렁이고 있었다. 물론 왜 이런 분위기를 자아내는지 알고있는 창민도..그리고 그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준수도 알고있기에 둘은 가만히 침묵만을 지킬뿐였다. 커다란 원형탁자를 빙 둘러싼 20명의 원로 장로들. 그들의 구성원중 제일 젊은 사람은 준수와 창민일뿐, 다들 그들보다 나이가 많거나 심지어 하얀수염이 희끗한 할아버지뻘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윤호를 도와 모든 귀족과 다른 부족들을 수하에두고 마족을 잘 이끌어가고 있는 재력있는 사람들이니,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듯 다들 존칭어를 쓰고있었다. "윤호님께서 족장자리를 그만 두신다는게요?" "뜬 소문일뿐이요.." "마녀족의 아이와 혼례하신다던데..." 본 회의가 들어가기 전부터 술렁이니 창민은 그것 조차도 심기가 불편해 미칠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족장님 드십니다---." 커다란 여 시종의 목소리와 함께 활짝 열린문으로 윤호가 들어섰다. 덜컹--. 그러자 다들 앉아있던 의자를 다급히 뒤로 빼며 모두들 일어나서 엄숙히 고개를 숙인다. 뚜벅뚜벅. 순식간에 조용해진 회의장에는 윤호가 들어서는 발소리만이 커다랗게 울릴뿐였다. 그리고... 쿵---. 회의실 문이 굳게 닫히고.. 그와 동시에 정 중앙에 위치한 의자에 앉은 윤호가 말을 꺼낸다. "제가 조금 늦은 모양입니다. 다들 자리에 착석하세요." 윤호의 말이 떨어지자, 모두들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시작합시다." 그리고 또다시 회의의 시작을 알리는 윤호의 목소리가 떨어졌다. "족장님.." 원로 장로들 중에서 제일 우두머리라 할수있는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윤호를 불렀다. 그는 언제나 회의가 시작되면 회의의 토론주제를 거론하는 사람이기도했다. "........" 윤호가 그가 주제를 꺼낼때까지 기다리는듯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모두의 표정은 그의 입에서 제일 먼저 나올말이 무엇인지 알고있다는듯, 주변의 눈치를 보고있었다. 그 모든 분위기가 자꾸만 정적감만 불러일으켰다. 아무도 말이없이 침묵만 지키고있는 가운데 윤호가 먼저 입을 열려고 입술을 달싹일때였다. "본 회의로 들어가기 전에..족장님께서 직접 사실규명을 해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가 나이가 명백히 드러나는 주름진 눈으로 윤호를 바라봤다. "원로회장님- 말씀해보세요." 윤호가 그런 그의 시선을 똑바로 쳐다보며 나즈막히 말할 기회를 준다. 창민과 준수의 눈동자도 원로회장에게로 옮겨졌다. "......." 잠시 가만히 침묵을 지키는듯 보였던 원로회장이 천천히 입을연다. "요즘 이상한 소문이 궁내에 돌고있습니다. 윤호님께서 족장자리에서 물러나신다는..." "......." 아까부터 떠들어대던 문제의 근본이 원로회장의 입에서 터져나오자 일제히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윤호에게로 향해졌다. 탁자위로 위엄있게 얹어져있던 윤호의 두손이 굳게 주먹을 틀어쥐었다. 윤호의 눈동자위로 미세한 떨림도 없는 단호한빛이 서린다. 서서히 그들을 둘러보던 윤호가 아무렇지도않게 원로회장의 말에 대답했다. "그 소문. 거짓이 아닙니다." 술렁--. 윤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 한번 술렁이는 회의장. 그런 그들의 입을 다물어 버리게 할만큼 무거운 목소리로 윤호가 다시한번 명확히 말을 꺼냈다. "원하는 혼례를 하지 못할바엔 족장자리를 물러나겠습니다." ---------------------------------------------------------------------------------------- [자작/게하] 미 열 (美 熱) 96편 내가 너를 온전히 갖게되는 그날이...... 나에겐 마치 다시 태어난 날과도 같을꺼야.. . . 너와내가 비로서 하나가 된 날이니까. - 미 열(美 熱) 96편 - 연신 계속 술렁이는 회의장. "이, 이게무슨.." "족장님께서 저런 말씀을.." "원하시는 혼례란 그 마녀족의 아이를두고 하시는 말씀인가." 모두들 서로의 얼굴을보고 윤호가 토해낸 놀라운 사실규명에 흥분해 있었다. "진정 무슨 말씀이십니까 족장님.." 원로회장의 목소리가 떨려오듯 커다랗게 윤호에게 질문을 던지자, 다시한번 소란스러움이 사라지고... 모든 시선이 금새 윤호에게로 돌아왔다. "말씀드린 그대로 입니다. 제가 원하는것은 그 아이뿐입니다. 그 아이가 아니면 혼례를 할 마음이 없습니다. 혼례를하지 않는다면 정식후계자가 태어나지 않을텐데, 제가 족장자리를 이어간다는것 자체가 무의미 하지않습니까." 윤호의 단호한 한마디 한마디에 모두들 놀란 눈을 치켜떴고, 그 중 한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윤호에게로 말을던졌다. "하, 하지만 마녀족이지 않습니까!! 안 될 말씀입니다!! 차라리 혼례를 하시지 않을꺼라면 양자라도 들이시는게..." "필요없소!!" 윤호가 그의 말을 단번에 자르며 매서운 눈초리로 모두를 쳐다봤다. "내가 여러분들에게는 사람이기 전에 족장이라고 칩시다. 족장이란 자부심에 부족을위해 헌신적으로 일한 대가가 겨우 그런 말뿐인가? 양자라니!!!" 조금은 화가난듯한 윤호의 눈빛에 다들 그만 입을 다물어 버렸다. "어째서 사람으로서의 내 인생까지 멋대로들 생각하는거요!!! 여지껏 그대들의 의견을 존중해왔던 나지만, 혼례는 결단코 내 뜻대로 합니다." 자신의 인생을 멋데로 결정하려는것같은 원로장로들의 생각. 침착해지려는듯 윤호가 분함에 빨라지는 숨결을 정리하듯 긴 한숨을 토해내었다. "하지만, 너무 무모하신 생각입니다 족장님!!." "모두 족장님만을 바라보고있지 않습니까--." "그 말씀..부디 거둬주십시오!!!." 윤호의 얘기가 끝나고 그가 벌써 결심을한듯 얼굴을 굳히자 다들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를 설득해보겠다는 표정으로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런 말들에도 아랑곳않고 꿋꿋하게 확고한 낯으로 자리를 지키는 윤호. 그때였다. 여러사람들의 말을 뚫고 커다랗게 들려오는 목소리. "거참. 애원하는 모습들이 안되어 보이십니다 다들!!!" 회의장을 울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이 몰린곳에는 여유있게 일어나있는 창민이 있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창민님." 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빙그레 웃고있는 창민에게 화가난듯 누군가가 말을 건냈다. 창민이 탁자를 두손으로 짚고는 느린 시선으로 천천히 모두를 둘러봤다. 아주 편안한 얼굴과 미소. 창민이 커다랗게 말을 던진다. "족장은 왕족의 혈통만이 될수있는 자리. 다들 윤호님이 마녀족의 아이를 본처로 맞겠다는 말에 반대하시는듯한데...윤호님께서 물러나신다하면 다른 사람이 족장자리를 이어가면 되는거 아니겠소." "다른사람?!!" "다른 사람이라니!!" 창민의 말에 윤호와 준수가 그를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두눈만 커다랗게 치켜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모두에게 창민이 마지막 말을 던졌다. "윤호님이 물러나신다하면 그 족장자리- 내가 꽤차고 싶은데..어떻습니까." "..!!!!!.." 창민의 말에 이제 회의장내는 아수라장이 되어버린듯했다. "말도안돼!!" "창민님은 부족의 보안을 맡고 계시지 않습니까." 떠들썩한 원로장로들 틈사이로 이번에는 준수가 걸어나왔다. "잠시만!! 잠시만 제 말에 집중을 해주세요!!" 평소에도 큰소리를 낸적없던 준수가 원형탁자 중앙으로 걸어들어와 소리치자 시끌시끌하던 사람들이 그를 바라봤다. "......." 그렇게 사람들이 자신을 모두 바라봐 줄때까지 준수는 분홍빛 입술을 꾸욱 다문채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이내 어느정도 정리가된 분위기 속에서 준수가 말문을연다. "창민님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고 봅니다. 족장자리를 그만두고 안두고는 윤호님이 결정하실 문제이고, 우리는 그것을 어찌됐건 따라야하는 입장이니까요." 준수의 침착한 말에 다들 입을 다물고 그를 바라본다. 준수가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윤호님이 원하시는걸 모두들 반대하시는데, 굳이 이런 문제로 이렇게 엄숙한 회의장이 소란스러워야 할까요? 족장자리가 새 인물로 바뀌면 다른부족들이야 상관없겠지만, 우리 부족들이 당분간은 혼란스러워 하겠지요. 그만큼 윤호님이 잘 해주셨으니까요" "......." "하지만, 커다란 사건들도 시간이가면 잊혀지는것처럼- 그런 문제 또한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면 충분히 극복할수 있다고 봅니다." "그럼 지금 준수님 말씀은 윤호님께서 끝끝내 족장자리에서 물러나신다하면, 찬성하시겠다는 겁니까?" 누군가의 언성높은 질문에 준수가 자신의 입가로 작은 미소를 떠올렸다. 그리고는 자신이하는 말을 여유있는 표정으로 잠자코 지켜보고있는 창민을 바라본다. "저도 족장자리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요." "..!!!!!.." 살짝 입꼬리를 올리고 웃는 준수에게로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한번 집중됐다. 그리고 윤호의 시선까지도. 조금은 거만한듯 서로를 바라보는 창민과 준수를 사이에 두고, 사방은 물을 끼얹은듯 조용해졌다. "........." 순식간에 조용해진 틈을 뚫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윤호가 씨익 웃어보였다. "내가 물러난다해도 든든한 족장 후보가 두명이나 생긴셈이군." 아무렇지않게 툭하니 내뱉어진 윤호의 말. 여유있게 서로를 바라보는 윤호와 준수, 그리고 창민와는 다르게 다른 원로장로들의 얼굴을 딱딱하리만치 굳어버리게 만들어버린 그의 말였다. ---------------------------------------------------------------------------------------- [자작/게하] 미 열 (美 熱) 97편 내가 너를 온전히 갖게되는 그날이...... 나에겐 마치 다시 태어난 날과도 같을꺼야.. . . 너와내가 비로서 하나가 된 날이니까. - 미 열(美 熱) 97편 - 어느새 오전을 훌쩍 넘겼을법한 시간. 하지만, 여전히 이중으로 쳐져있는 커텐을 거둬버리지 아니한것은 재중을 더 잘수있게하는 방법였다. 분명 커텐이 거둬져 밝은 햇빛이 쏟아져 들어온다면 그는 눈을뜨고 말테니까... 재중이 고단하지않게 편히 잘 수 있게 하는것. 그것이 윤호의 당부였으니까. 환희는 아직까지도 푸욱자고있는 재중을 침대곁에 의자를 갖다놓고 앉아 지켜보면서도 자꾸만 길어지고 있는 원로회의를 걱정하고 있었다. 평소때보다 두배이상이 길어지고있는 시간였다. "휴우..." 환희가 은근히 회의를 걱정하면 긴 한숨을 내쉴때였다. "우우웅..." 잠에서 깨어난듯 재중의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웅~~~" 마치 고양이처럼 팔과 다리를 쭈욱 늘리며 기지개를 켜는 재중. 이불안에서 꼼지락 거리는 팔다리가 우습기도했다. 그리고 긴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까만빛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일어나셨어요??" "으응.." 아직도 나른한듯 두눈을 귀엽게도 꿈뻑이는 모습에 환희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 그렇게 눈을 뜨고도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던 재중이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물론 여기저기 아픈곳이 있는지 고운미간 가득 찌푸림을 담아냈지만, 윤호를 찾는것이 우선인가보다. "환희야!! 윤호은??" "네??" "윤호가 없어--!! 재중이옆에 없잖아!!" 금새 콧등을 찡그리며 윤호를 찾는 재중. "풋.." 그런 재중을 향해 밝은 웃음을 지어보인 환희가, 이불로 가려져있는 그의 몸위로 커다란 가운을 걸쳐주며 타이르듯 말했다. "욕조에 향긋한 거품을 내드렸으니 샤워하고 오시면 윤호님이 어디가셨는지 알려드릴께요 재중님--." "응??" 재중이 환희의 말에 그를 빤히 바라본다. "알았어~!!!" 그러더니 어느새 자신의 뻐지근한 몸을 잊었는지 후다다닥 욕실로 뛰쳐들어가는 재중였다. "하하--" 그런 재중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환희가 웃음을 터뜨려 버린다. 분명, 뭐든지 순수하게 반응하는 재중의 아이같은 사랑스러운 모습에 윤호도 빠진것이리라... . . . "환희야아---!!" 들어간지 얼마나 됐을까? 윤호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자신의 몸을 보는것을 싫어하는 재중이기에 이번에도 따라 들어가지 않았는데..... "깨끗하게 물기닦고 오셔야죠 재중님~" 그냥 환희가 건내준 하얀빛 커다란 가운을 걸쳐입은 재중이 그의 손길이 이끄는데로 의자위로 앉는다. 물기가 가시지않은 촉촉히 젖은 머리카락에서 물방울들이 꽤 많이 후두둑 떨어지는것을 본 환희가, 곧 커다란 수건으로 그의 머리를 털어주기 시작했다. "우웅...환희야 윤호는 어디간거야??" 정말 빨리도 했는지 목뒤에있는 거품을 환희가 또다른 수건으로 훔쳐내며 어쩔수없다는듯이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지금 다른분들과 얘기중이세요." "응?? 누구랑?? 무슨얘기?" 윤호에대해 물어보는거라 그런지 아주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까지한다. 재중의 물기어린 머리카락을 손으로 잘 정리정돈 해주며, 환희가 말을 였다. "윤호님...재중님하고 평생 함께 지내고 싶으셔서 다른분들과 얘기중이세요.. 윤호님과 재중님 함께 지내시는거 싫어하시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으응..??" "......." "..시...싫어하..는..사람들..?" 환희의 말에 재중이 조금은 놀란듯 커다란 눈으로 그를 돌아다봤다. 그리고는 금새 잔뜩 걱정이 서린 얼굴... 환희가 그런 재중의 앞에 조심스레 무릅꿇고 앉아 그의 손을 꼬옥 잡았다. "그러니까..재중님이 윤호님께 많이많이 힘이되어 드리세요..." 저도 잘은 모르겠지만...족장자리..포기하는거 쉬운일은 아니니까요... 차마 뒷말을 하지못한 환희가 재중의 눈동자를 올려다봤다. "........" 갑작스레 진지해진 환희의 눈빛에 재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재중이는......" "......." "재중이는...윤호를 많이 사랑하니까..." "......." 재중의 말에 환희는 이상하게 자신의 가슴이 뿌듯해져 오는것을 느낄수있었다. 비록 자신이 재중보다도 어리긴 했지만, 처음 보았을때의 재중과 지금의 재중과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처음과 달라지지 않은게 있다면 순수한 마음과 아이같은 귀여움과 사랑스런 외모. 그리고 변화가 있었던것은 바로 '사랑'이란걸 알고, 그 단어를 진심어린 마음으로 말할줄 알게 되었다는것이다. 자신을 미소지으며 바라보는 환희에게 재중도 예쁘게 웃어보였다. "걱정마 환희야.......재중이가............." 그때였다. 재중이 환희에게 마지막 말을 하려던 순간, 달칵---. 문이 열리며 윤호가 들어섰다. "윤호!!" "윤호님!" 그러자 금새 반가운 기색이되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그에게로 달려가는 재중. "일어난지 얼마안된 모양이구나~" 가벼운 걸음으로 종종거리며 뛰어오는 재중을 품에 포옥 안아올리며, 윤호가 그의 젖은 머리카락에 입을맞췄다. "향기로운데?"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보는 윤호의 열정 가득한 눈빛에 재중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으응..환희가 향기좋은 거품을 잔뜩 내주었는걸요.." 예쁜 눈꼬리가 휘어지도록 환하게 미소짓는 재중이 미칠만큼 사랑스러웠다. 자신의 거처에 들어설때 이 아이가 있다는 생각만해도 얼마나 가슴 설레이던가. 그리고 문을 열면 고양이처럼 자신의 품으로 뛰어 들어오는 사랑스러움과 그 즐거움이란..... "윤호-- 힘들어요..?" 아까 환희가 했던말들이 마음에 무척이나 걸렸는지 대뜸 힘들지 않냐고 묻는 재중였다. "아니--. 왜?" 뜬금없는 재중의 물음에 의아한듯 윤호가 그를 바라본다. 그러자...... 꼬오오옥--. 갑작스레 윤호의 품에 안긴채 그의 목을 꼬오옥 껴안은 재중이 혼잣말을하듯 중얼거렸다. "..재중이가..." "......." "재중이가..윤호를 지킬꺼야.." "..???..." 윤호가 재중의 말을 들으며, 시선은 멀찌감치 서서 그들을 지켜보는 환희에게로 돌렸다. 환희가 무슨말이라도 한것일까..? 이 여린 몸으로 누가 누굴지켜... "쿡쿡.." 어찌됐든 자신을 있는힘껏 끌어안으며, 지킬꺼라 웅얼거리는 재중이 너무나 귀여워 그만 웃어버리고마는 윤호였다. ---------------------------------------------------------------------------------------- [게하/자작] 미 열 (美 熱) 98편 내가 너를 온전히 갖게되는 그날이...... 나에겐 마치 다시 태어난 날과도 같을꺼야.. . . 너와내가 비로서 하나가 된 날이니까. - 미 열(美 熱) 98편 - 나무뿌리를 잘 우려내어 끓인 차에서는 달콤함 보다는 쓰디쓴 향내가 코끝을 찔렀다. 하지만, 준수는 그 차의 효능이 긴장된 몸과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효과가 있다는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었다. "휴우..." "......." 떨리는 손끝을 꼬옥 잡아주는 든든한 손. 자신을 바라보는 유천의 눈빛과 잠시 시선을 주고받은 준수가 앞에앉은 창민을 바라봤다. 제법 밖이 어둑해져 올 무렵의 시간. 그렇게 셋은 준수의 방안에 놓여있는 자그마한 탁자를 둘러싸고 있었다. "......." "......." 그리고 그들곁을 맴돌던 짧은 침묵. 원로회의를 막 끝내고 돌아오자마자 준수는 뜨겁운 차부터 부탁을 했었다. 준수가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들어온것이 의아했지만, 유천은 그 이유를 조급하게 묻지 않았고, 어느정도 안정감을 되찾은 그의 눈빛을 보고나서야 침묵을 깨뜨린다. "어떻게 됐어..?" 유천의 낮은 목소리. 창민의 눈빛이 유천에게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창민도 조금은 긴장했었다는듯이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도 여전히 입가에 걸려있는 그의 특유의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뭐...배짱좋게 연기를 좀 하고왔지." "..??.." 창민의 말뜻을 이해 못했는지 유천이 의아한 표정으로 준수를 바라봤다. 그러자 준수가 한시름 놨다는듯이 그를향해 살며시 웃어보인다. "무슨..소리야 그게?" 아직까지도 일의 전후를 알지못하는 유천로서는 답답할 나름였다. 살짝 찌푸려진 미간. 유천의 그런 마음을 알듯, 곧 준수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놓는다. "윤호가 족장자리에서 물러서는것을 우리 둘다 찬성한다했고, 나와 창민. 둘중에 한명이 족장자리를 이어받겠다고까지 선언했어요." "뭐?!!!" 준수의 깜짝 놀랄만한 소리에 유천의 두눈이 동그래졌다. 그런 유천의 표정에 창민이 이내 피식..웃음을 터뜨린다. 그리고는 차근차근 그에게 설명해주기 바랬다. "어차피 원로원들 누구하나, 우리 둘중에서 족장자리를 물려받는것에대해 찬성하는 사람은 없을꺼야. 다들 정윤호가 그대로 족장자리를 이어나가주길 바라니까." "......." "우리가 그런 발언을 한것은 불안한 원로원들의 심리를 자극하기 위해서야." "심리..자극?" 창민의 말에 유천이 아직 무슨말인지 잘 모르겠다는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뜨거운 차를 살짝 한모금 들이킨 준수가 말을 였다. "이렇게되면 선택의 궁지에 몰린건 윤호가 아니라 원로원들이예요. 마녀족인 재중씨와 윤호를 혼례시킬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훌륭한 족장인 윤호를 그대로 놓칠수도 없으니까요." "아아..." 그제서야 창민과 준수의 생각이 이해가된듯 유천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고개를 끄덕이는 유천을 바라보며 창민이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벌써 재중과 혼례하겠다는 윤호의 결심은 확고해. 게다가 족장자리를 물려받겠다고 욕심을 내는 사람이 준수와, 나. 둘이나 나왔어." "......." "결국 훌륭한 족장을 잃고 탐탁치않은 우리가 그 자리를 이어받는꼴을 택할지.. 아니면 재중과 혼례할꺼라는 윤호에게, 한발 양보해서라도 그를 족장으로 잡아둘껀지는 이제 그들이 택해야겠지." "..그렇군." 그들의 생각에 수긍하는듯 진지하게 얘기를 듣는 유천. 결국..... 어찌됐건 원로원들이 그렇게까지 고민을하게끔 만든것도 족장으로서의 정윤호의 능력였다. "난 아까 덤덤하게 말하려고 애썼는데 너무 떨려서 혼났어요.." 준수가 원로원들 앞에서 족장자리를 이어받고 싶다고 말했던 순간이 생각났는지 얼굴이 빨개졌다. "하하-- 김준수. 너무 아무탈없이 훌륭한 연기라서 다들 놀라는 눈치더라. 니 새로운 면모를 보는듯한 눈치였어." 창민의 웃음섞인 목소리에 준수의 얼굴이 더욱더 붉게 물들었다. "창민이 니가 한 수 위였어. 나도 처음엔 니 능청스러움에 당황했다니까. 조금 지나서야 니 생각을 알 수 있었지만...아마 나니까 알았지, 다들 놀랐을꺼야." 준수가 자신을 놀리듯 계속 웃어대는 창민을 고운 눈으로 흘기며 웅얼거렸다. 그런 준수의 어깨를 자신의 두팔로 감싸 안으며 유천이 물었다. "그럼 도대체 결정은 어떻게 난거야?" 유천의 질문에 창민이 곧 웃음을 멈추고는 간단하게 대답한다. "다음주 원로회의때 아무래도 투표로 진행될것같아." "으응.." 유천의 조금은 걱정스런 눈빛에 준수가 속삭이듯 부드럽게 말을 건냈다. "걱정말아요 유천씨...다 잘 될테니까..." "그래.." 따뜻한 준수의 한마디에 유천이 미소지었다. 다정다감한 그들을 지켜보며 창민이 편안한 표정으로 말한다. "아마..우리 생각. 윤호가 녀석도 눈치채고 있을꺼야. 마지막 말을 던지면서 씨익 웃는 녀석 얼굴이 너무 여유만만이었거든." -------------------------------------------------------------------------------- [게하/자작] 미 열 (美 熱) 99편 내가 너를 온전히 갖게되는 그날이...... 나에겐 마치 다시 태어난 날과도 같을꺼야.. . . 너와내가 비로서 하나가 된 날이니까. - 미 열(美 熱) 99편 - 하얀빛 나풀거리는 옷이 그의 몸에 딱맞게 만들어진듯 여린 몸을 감춤없이 드러내준다. 밝은 햇빛을 받아 그런지 까만 흑단자락같은 머리카락은 그가 움직일때마다 넘실넘실 춤을추듯 그렇게 찰랑이고..... 윤호의 한팔에 매달려서 걷는 한걸음 한걸음은 사뿐사뿐 가볍게만 보였다. 뭐가 그리 신난건지... 얼굴한가득- 예쁜미소 또한 한가득이다. 행복함이 담긴 재중의 얼굴. 하지만, 오히려 그가 얻는 행복의 두배만큼, 더 큰 행복을 느끼는것은 바로 윤호 자신이 아닐까... 언제나 윤호의 거처 근처에서만 외출을했던 재중. 하지만, 어쩐일인지 오늘 윤호는 그를 대리고 귀족들이 살고있는 성내 주변을 모두 돌고있었다. 그런 긴긴 나들이에 분명 재중의 얼굴이 저리도 활짝 피어있는것이 분명하리라... 게다가 오늘은 환희도 동반하지않은 단 둘만의 외출였다. "그렇게도 좋으냐." 끄덕끄덕. 윤호의 흐뭇한 한마디에 재중이 재빠르게 힘찬 고갯짓을 한다. 돌담다리를 건너고.................. 아름답게 정리해놓은 장미정원을 지나쳐......................... 섬세하게 지어놓은 여러 궁들과.......................... 타박타박--. 걷는소리마저 즐거운, 편편한 돌로 깔려있는 거리들. 선선한 바람이 윤호와 재중의 머리카락을 살풋이 어루만지고 지나갔다. 한참을 얼마나 그렇게 둘만의 행복함을 맛보며 걸었을까. 문득 재중은 자신들을 바라보는 눈들을 그제서야 느낀다. 자신과 윤호를 바라보는 눈길들... 윤호의 팔에 매달려 기분좋게 걷던 재중의 눈이 서서히 자신들을 둘러싸고있는 주변으로 옮겨진다. "......." 어떤이는 놀라는 눈길로... 어떤이는 어이없는 눈길로... 어떤이는 울것같은 눈길로..... 제각기 다른표정, 다른눈빛. "..유....윤호.." 많은 눈빛들이 부담스러웠는지 재중이 조심스런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러자 이내 차갑게 정면을 바라보고있던 눈빛이 다시 재중에게로 내려오면서 다정스럽게 바뀌는데................... "무엇이 겁나는거냐." 아무것도 두려워할게 없다는듯이 그렇게 든든하게 말해주는 윤호의 말에 재중이 곧 붉은입술을 꾸욱 다물었다. 그리고는 다시 윤호의 품에 안겨 천천히 안정된 표정으로 걷기 시작했다. 자신들을 바라보는 귀족들의 눈빛. 각오한 일였다. 어차피 원로회의가 끝난후이니, 모두들 자신이 족장자리에서 물러날지도 모른다는 소문은 벌써 퍼지고도 남았을것였다. 그렇다면 굳이 재중을 숨기는듯 보일필요는 없다. 더이상 자신의 거처만을 서성거리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누가 뭐래도.. 이 정윤호가 선택한 당당한 자신의 반려자였다. 정윤호의 사람. 떳떳하게 재중을 동반하고 나선 이 나들이의 목적이 그러했다. 모두에게 재중의 얼굴을 알리고 자신의 뜻을 밝히는것. 당당한 배짱이야말로 오히려 자신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더 강인해 보인다는것을 윤호는 잘 알고있었다. 그렇게 그들이 아무렇지도않게 걸어가고 있을때였다. "윤호님---!!!" "......." 우아한 옷차림을 한 여인네가 갑자기 그들이 가는 앞길을 막아섰다. 그녀로 인해서 멈춰버린 걸음. 그리고 당황함이 역력한 재중의 표정. 하지만, 오로지 윤호만큼은 아무감정없는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먹일듯한 눈빛으로 말을 꺼내고 있었다. "어째서 족장자리를 그만두신다는 겁니까. 마녀족의 아이때문이란 말씀..저희는 믿을수가 없습니다!!!" "윤호님--!!!" "그런 말씀은 당치도 않으세요!!!" 그녀의 말이 기폭제가 된것일까. 거리를 지키며 유유히 그들이 걸어가는것을보고 한마디 말도 못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그들 앞을 가로막고는 고개숙여 목소리를 높였다. "부족의 태양과도 같다는 족장자리를 지키시는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요!!" "그 말씀 거두어주십시오!!!" 모두들 제각기 말을하지만, 그 뜻은 같았다. "......."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윤호가 냉랭한 회색눈빛을 빛냈다. 그리고는 낮은목소리로 조용히 말을 꺼낸다. "결국..그대들도 이기적이군. 어쨌든 한 부족의 족장으로서의 나의 행복을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으니 말이야." "윤호님.." 윤호의 꾸욱 다물린 입술. 화가난듯 하지만, 태연한 눈빛.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사람들에게로 윤호가 나즈막히 말을 던졌다. "이 길 한복판에서 돌을 맞는다해도 내 결정은 변하지 않아. 오늘 내가 이 아이와 길을 나선것은 그대들에게 그 뜻을 전하려고였소." "윤호님." 윤호가 곧 재중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그들 가운데를 뚫고 지나가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눈빛과, 변하지않는 확고한 목소리. 남모를 그의 중압감이 느껴지는 분위기에 다들 그가 지나가는 길을 안타까운 눈길로 바라보면서도 비켜 줄 수 밖에 없었다. "윤호님.." 연신 뒤에서 윤호를 부르는 그들의 목소리에 재중은 왠지모를 슬픔을 느꼈다. 자신들을 바라보며 곧 울음을 터뜨릴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윤호..." 재중이 그들을 뒤로한채 걷고있는 윤호를 조용히 불렀다. "걱정하지마. 넌 나만 바라보면 되니까." 그의 그런 불편한 마음을 아는것처럼 윤호는 언제나 그러하듯 단호한 말투로 자신을 안심시킨다. 자신이 윤호를 지켜주겠다고도 약속해놓고.............. 이내 저 사람들의 얼굴과 눈빛을보니 금새 투정만 부리고 싶어진다. 그래서...재중은..... 그의 품으로 더욱더 파고들었다. 자신을 끝까지 사랑해 주겠다는 그의 품으로............................... -------------------------------------------------------------------------------- 내가 너를 온전히 갖게되는 그날이...... 나에겐 마치 다시 태어난 날과도 같을꺼야.. . . 너와내가 비로서 하나가 된 날이니까. - 미 열(美 熱) 100편 - 오늘은 다른날 보다도 날이 좋았다. 바람한점, 구름한점없이 그저 최상의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아주 좋은날. 멋모르고 뛰어노는 귀족의 어린 자녀들. 여전히 호수가운데 위치한 조각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원한 분수는 그들의 평화로움을 증명하고있는듯했다. 그리고............................ 원로회의장에 다시모인 그들. 일주일이 지난 원로회의장은 다소 엄숙한 분위기였다. 가운데 윤호를 기점으로 모두들 저번 회의때의 시끄러움과 혼란스러움 보다는 나즈막한 침묵이 자리잡고 있었다. "투표를...시작하지요.." 원로회장의 말에 따라 다들 무표정한 얼굴로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투표란 저울대에 올려진 윤호는 그저 묵묵한 얼굴로 자리를 지키고 있을뿐였다. "......." 신성한 원로회의장은 곧 사각대는 붓소리로 가득찼다. . . . 다른 이들보다 일찍 거처로 돌아온 윤호. 아마도 개표를 하기전 결과가 어떻게 날지에 대해서는 추후에 통보하기위해 족장인 윤호를 제외시킨것였다. 그것에 그저 동의하며 다시 자신의 거처로 돌아온 그였다. 족장의 자리를 지키고 싶었다. 할수만 있다면, 재중을 얻고 족장의 자리도 자신의 생이 다하는날까지 훌륭하게 마치고 싶었다. 하지만 만약..운명의 신이 그가 족장자리에서 끝끝내 물러나게 한다면... 자신은 한치의 망설임도없이 재중을 택할것이다. 둘다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였지만, 그에겐 이제서야 찾은 사랑과 행복이 더 중요했다. 자신을 그렇게 해줄수있는 재중이 더 소중했다. 사람들은 과연 틀에박힌 계급차이를 택할것인가. 아니면.....이 족장정윤호를 택할것인가....... "윤호..어디 아파요..?" 평소보다도 안색이 좋지않은 윤호를 바라보는 재중의 눈동자에 걱정이 서렸다. "아아--. 아니야..괜찮아." "으응..." 그저 윤호의 곁에 꼬옥 붙어서 그의 어깨에 자신을 기대고있는것밖에 재중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윤호의 눈동자가 왜 저리 떨리는지..... 초조한듯 자신의 무릅을 톡톡 내려치기를 반복하는 손가락의 움직임.. 그래.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자신과 관련된 일이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윤호와 같이 덩달아 불안했다. "......." "......." 그리고 잠시간의 둘 사이를 매도는 침묵. 자신의 옆에서 아무말없는 재중의 어깨를 감싸안아 당기며 윤호가 조용히 읍조리듯 묻는다. "무슨일이 있다해도..날 따라와 줄 수있지?" "..??.." "설령..이런 방, 이런 침대. 여유로움을 누릴 수 없어도... 날 따라와 줄 수 있겠지..?" "..윤.호..." 그저 정면을 응시하며 무표정을 일관하고, 자신에게 지나가는 말투처럼 묻는 윤호의 물음. "...나..는.." 그런 윤호를 바라보며 재중이 조심스레 입술을 열었다. "..재중이는....." "......." 그리고는 그의 품으로 더욱 파고든다. "재중이가 제일 바라는건 윤호예요..다른건 필요없는걸.." 여린몸을 자신에게로 안기고들며 속삭이듯 웅얼거리는 재중의 말. 그 말이 윤호의 조금은 어지러웠던 마음을 다시금 안정시켜준다. 윤호가 아기같이 까만눈망울로 자신을 바라보는 재중의 이마위로 살며시 입맞추며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그래..어떤일이 있어도 너만 사랑해 줄 수 있는 날 믿고 따라와주면 되는거다." "으응..." 꼭 그럴꺼라는듯 고개까지 끄덕이며 대답하는 재중을 윤호가 자신의 두팔로 포근히 안아주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침대위에 나란히 앉아있는 두 연인들 위로 오후에 강한 햇살이 비춰내릴때였다. 콰당---!!! "정윤호!!!" 뭔가 다급한듯, 시끄럽게 열린문과 함께 뛰쳐나온 사람. "하아..하아..." 부리나케 뛰어왔는지 그의 입에서는 빠른숨소리가 터져나오고 있었다. "창민아.." 갑작스런 창민의 등장에 놀란 윤호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하아..하아...." "......." 어떻게..된걸까................결과는.................... "하아...후...." "......." 가뿐 숨을 몰아쉬며 그저 윤호와 재중을 굳은듯이 바라만 보고있는 창민가었다. 좋은소식이라면 창민의 성격상 저리 뜸을 드리지는 않을텐데... 게다가 그의 표정은............................ 결국은..안된것인가. 이내 창민의 어두운 표정에 윤호가 포기했다는듯, 초조한 마음을 침착함으로 바꾸어 놓는다. "......."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올 최후의 통첩을 기다리고 있는데..... 뚜벅뚜벅----- 터질듯한 숨을 꽤나 안정시켰는지 창민이 갑자기 윤호와 재중곁으로 성큼성큼 다가선다. "창민아..." 입술을 꾸욱 다물고 자신을 조용히 부르는 그를 바라보는 창민. "......." "......." 이내 허공에서 얼키는 시선속에 윤호가 먼저 창민에게 무언가 말을 던지려고하던 그 순간, 털썩----!!! "......." 대뜸 윤호의 앞에 큰절을 올리듯 몸을 숙여 예를 갖추는 그였다. 그리고... "심..창민.." "앞으로도 근위대장으로서 족장님을 보필하겠습니다!!!!!" 방안 구석구석을 가득 메꾸는 창민의 우렁찬 목소리. "심창민......" "......." "..뭐라고..?" 무슨말인지 모르겠다는듯 멍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윤호에게 창민이 숙였던 고개를 들어올리며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원로원들 과반수 넘게 모두 널 택했다고 이 바보같은 자식아!!" "..!!!.." "윤호.." 눈물까지 그렁그렁 달고있는 창민의 얼굴을 바라보던 재중이 윤호의 이름을 불렀다. "......." 그런 재중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것일까. "........" 과반수가 넘게............. 족장 정윤호를 선택했다........? "..하..!!" 윤호의 입에서 짧은 숨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리고 뒤이어지는 그의 낮은 한마디. "..그렇군." "뭐? 야 이 자식아!! 좋아할때는 좋아해야지!! 이런일에도 족장인냥 무게잡는거냐!!" 윤호의 너무도 간단한 대답에 창민이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런 창민의 앙칼진 목소리가 순간 멍해졌던 윤호의 정신을 바로잡아 놓은것일까? 조금씩..조금씩..굳었던 긴장감이 풀어지듯 윤호의 얼굴위로 화색이 돌기시작했다. 과반수가 넘게................... 나를 택했어........!!! 눈동자에 촛점을 재중에게로 맞춘 윤호이... 와락---!!!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그를 거칠게 끌어안았다. "윤호." 꼬오오옥.. 숨이 막힐듯 꼬오옥 자신을 안아오는 강한두팔. 그래서 재중도 팔을들어 그의 등을 감싸안았다. 재중의 귓가로..나즈막히 윤호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우리부족을위해 더 노력할꺼야..." "........." "그리고......널 평생 행복하게 해줄꺼다." "으응..." 윤호의 목소리에 왜....이리도 눈물이 나는거지................ 재중은 자신도 모르게 윤호의 품안을 적실만큼 눈물을 떨구는 자신을 발견했다. "..흐윽...흑...." 끝내 조금씩 터지는 흐느낌. 그리고 여전히 자신의 귓가에 사랑을 약속하는 윤호의 목소리. 그들을 지켜보며 웃음짓는 따뜻한 근위대장 심창민. 또 문가에서서 어느샌가 눈시울을 붉히는 준수와 그런 그를 안아주는 유천의 미소가 서로를 꼬옥 부둥켜안은 두 연인을 지켜보고 있었다. ----------------------------------------------------------------------------------------- [자작/게하] 미 열 (美 熱) 101편 내가 사랑하는건 오직 너 하나. 너를 얻음으로 인해서... 나는 세상모두를 얻었어..... - 미 열(美 熱) 101편 - 나른한 햇살이 비치는 오후. 바람마저 따뜻한 5월의 시작였다. 꽃들이 한창 많이 피어나고 또 그 모습을 제각기 뽐내듯 아름다울때. 꽃보다도 더 어여쁜 사람둘이 정원 한구석에 구부리고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하고 있었다. "아니-- 거기에 꽂는것 보다는 이쪽이 훨씬 예쁘겠어요." "우웅?" 준수의 지시에 고개를 갸우뚱거린 재중이 곧 알맞은 길이로 잘린 꽃을 조심스레 옮긴다. 수근수근. 두런두런. 둘이서 무슨말을 하는지 들으려 했지만, 잘 들리지 않는다. 예쁜꽃을 한송이 한송이 곱게 잘라 재중에게 건내주는 준수. 그런 꽃을 받아들고는 나름대로 꽤나 심각한 표정을 짓고있는 재중. 둘은 꽃꽂이가 한창였다. 마치 파라솔과도 같이 햇빛을 피할수있는 그늘을 만들어주기위해, 얇삭한 나무를 기둥삼아 자그마하게 하늘을 가리고있는 비단천. 바닥위로 펼쳐진 자수를 수놓은 넓은 돗자리. 그 돗자리 중앙에는 향긋한 술과 싱싱해 보이는 과일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반쯤 몸을 뉘인체 상체만을 일으키고 저쪽에서 무언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있는 재중을 바라보며 웃고있는 윤호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예쁜 미소로 옷자락을 나풀거리며 꽃을 꺾는 준수를 바라보는 유천이 앉아있었다. 잠을자듯 사방은 조용했고.................. 꿈을꾸듯 눈앞에 풍경은 그저 아름답기만했다.............. 평화로웠다. 가만히 준수와 재중의 모습을 지켜보던 유천이 대뜸 말을 꺼낸다. "혼례일이 얼마 안남았군. 기분이 어때 새신랑?" 장난기가 다분한 그 목소리에 윤호가 재중에게 향해있던 시선을 유천에게로 돌렸다. "하루하루 기대되서 잠도 안올지경이라구." "풋..." 역시나 장난기어린 윤호의 대답에 유천은 웃음을 터뜨린다. 아무래도 장난기어린 그의 대답과는 상반되게 애써 무표정을 일관하려하는 그의 얼굴모양새가 웃긴모양이다. 그런 유천을 따라 빙그레 미소지으며 윤호가 궁금하다는듯 유천에게 묻는다. "그나저나 준수과는 어찌하기로했어? 너희들은." "아아.." 유천이 윤호의 말에 뒷통수를 긁적이며 정면을 응시했다. "너희가 혼례한다고한 마당에 우리까지 한다하면 다들 또 시끄러워질것 같아서 시간이 조금 흐른후에나 생각해보자고..그러더라구." "준수가 녀석이?" "응." 약간은 씁쓸함을 담고있는 유천의 말에 윤호가 몸을 일으켜 그의 어깨를 두어번 두드렸다. "먼저 혼례하게되어 미안하다. 그래도 준수녀석 말대로 조금만 더 기다려봐. 그 사이에 내가 마족과 마녀족의 계급차를 확실하게 줄어들게할테니." 윤호의 확신에찬 말에 유천이 그를 어이없다는듯이 바라봤다. "정윤호. 배짱한번 두둑한데?" "이런배짱 없었으면 박유천한테서 동생얻기 힘들지." 유천의 말에 적절한 대답을 해주며 씨익 웃어버리는 윤호의 모습에 유천도 결국 웃어버린다. 하지만 이내, 웃음을 멈춘 유천이 준수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재중이 혼례하는 모습을보고 부러워하고 우울해할까봐 은근히 걱정이야." 준수를 생각하는 유천의 마음 씀씀이에 윤호가 걱정말라는듯 대답한다. "물론 그런서운함. 조금은 들지도 모르지. 그래도 준수이녀석 속이 깊으니까 괜찮아. 나중에 너희 혼례할때는 우리보다 더 화려하게 해줄께." 꼭 그렇게 하겠다는듯 윤호의 말에 깃든 하나의 약속. "그래." 그의 말을 믿는듯 짧은 대답하나로 말을 끝낸 유천의 시선이 다시 준수와 재중에게로 향했다. 정윤호이란 남자에게 재중을 보낸다는것이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른 부족들이 봤을때 그는 여전히 냉정하고 또 때론 잔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그를 봤을때 그는 진정 멋진 남자였다. "......." 아버지..어머니.. 재중이를 좋은 남자에게 보내겠다고 마음으로 한 약속..아주 훌륭하게 이행될것 같아요.. 하늘을 바라보는 유천의 눈동자로 흐뭇함이 서렸다. "얼마나 예쁘게 꽃꽂이를 했는지 한번볼까?" 작은 손으로 서툴게 꼼지락대던 솜씨가 설마 완벽할까. 사실 재중이한 꽃꽂이에는 그리 큰 관심이 없었다. 다만 정원에서 준수와 함께 꽃꽂이에 정신이팔려 자신쪽으로 시선한번 주지않는 재중을, 당장 데려와서 옆에 앉혀야겠다는 일념하나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윤호였다. 그런 윤호를 알아챈건지, 곧 걸음을 옮기는 그에게로 재중의 까만눈동자가 돌아온다. 그리고는 차분히 걸어오는 윤호에게 꽃한송이를 든 손을 사뿐히 흔들어 보이며 해맑게 눈웃음을 짓는 재중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저렇게 순수하고 아름다운 이가 정말로 내 사람입니까...? 하늘님. 감사드립니다. 구름한점없는 하늘을 바라보며 윤호가 작은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 [자작/게하] 미 열 (美 熱) 102편 내가 사랑하는건 오직 너 하나. 너를 얻음으로 인해서... 나는 세상모두를 얻었어..... - 미 열(美 熱) 102편 - 새빨간 융단이 깔린 길. 그리고 그 양쪽을 하얀색 꽃들이 곱게 치장을하고 있었다. 제단을 화려함으로 만들기에 바쁜 사람들. 그 앞에서 원로회장은 아까부터 분주하게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몇번이고 자신이 외칠말을 준비하고 있었다. 웅성웅성. 여기저기 모여있는 사람들이 꽤나 많은 인파였다. 모두들 꽃단장을 하고 나온것인지 저마다 깔끔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어서 마무리 해야지!! 몇시간후면 혼례라구!!!" 시종들 사이에서도 우두머리인듯 보이는 여인네의 목소리에 더 바빠지는 그들. 마족들 사이에서 종종 보이는 다른부족 사람들. 화창한 날씨에. 5월에 마지막날. 오늘은 바로 그들의 혼례식이있는 날였다. . . . "우앙~ 싫어어---" 방안을 울리는 칭얼거림. "재중니임!!!" 환희가 그의 머리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금장식을 가깥으로 잡아내었다. "무, 무거워 환희야아~ 오늘 재중이 아프단말야아---" 어딘지 모르게 아침부터 창백해 보이는 얼굴을하고 조금씩 식은땀도 흘리는 그였지만, 어찌됐던간에 혼례는 바로 몇시간후였다. "재중님 윤호님하고 영영 함께 하고싶으시다면서요~ 그래서 오늘을 손꼽아 기다리셨잖아요!!" "그렇지만..." 금새 윤호의 얘기가 나오자 울상인 얼굴을 찡그린채 말꼬리를 흐리는 재중. "재중님..오늘은 중요한 날이랍니다. 모든분들이 재중님을 보신다구요.." 재중의 곁에 붙어있던 여러 여시종중에 한명이 그를 달래듯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그래요!! 오늘은 윤호님하고 함께하실꺼라고 모두가 보는앞에서 약속하는날. 바로 혼례하시는 날이라고 제가 누차 말씀드렸죠? 그러니까 좀 가만히 계셔보세요." "아웅..." 그녀의 말을 거드는 환희의 일침에 다시금 잠잠해진 재중이다. 그래도 여전히 입술을 삐죽이 내밀고있는데... 그때를 놓칠새라, 다른 여시종 한명이 재빨리 재중의 뾰루퉁한 입술위로 붉은빛 연지를 발랐다. 그러자 금새 더욱더 반짝이는 매혹적인 입술. 환희가 금새 화려한 금장식을 그의 머리위에 다시한번 얹었다. 금이라 무겁기는 하지만, 재중의 예쁜 얼굴을 감싸고 내려온 장신구들은 그에게 너무나 잘 어울렸다. 반들거리는 하얀빛 고운 비단 혼례복이 혹시나 구겨질새라 재중의 움직임에 옷자락을 펴대느라 정신없는 여시종들. 모두들 그를위해 고생하고 있는건 알고있는지..... 난생처음 이런 소란함에 재중은 재중나름대로 애를 쓰고있었다. 치렁치렁 크기만 한것같은 옷에다가 머리에는 무겁게 내려앉은 금장식. 게다가 사정없이 자신의 얼굴에 무언가를 바르는 여인네들의 손과 보기만해도 정신없어 보이는 분주한 사람들의 움직임. 그리고 아까 아침부터.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제 저녁부터 이상하게 머리에서 열이나고 어지러운것이 오늘 그의 몸상태가 안좋은것만은 확실했다. "히잉..." 그래서 지금 자신의 눈앞에 당장 없는 그를 자꾸만 찾고있는건지도 모른다. 자신의 옆에 언제나 꼭꼭 있어야지만 안심이되는 단 한사람. 재중이 입술을 달싹이며 이내 울음을 터뜨리듯 커다랗게 소리질렀다. "으앙--- 윤호---!!!!!" "...!!!...." 순간 뒤를 한번 휘익 돌아다보는 윤호의 움직임에 여시종들도 그를 거들던 손을 일순간 멈췄다. "무슨일 있으십니까 윤호님?" 다소곳이 묻는 여시종의 물음에 뒤를 돌아다보던 윤호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니야." 그리고는 신발을 신겨주는 손길에따라 발을 들어올린다. 조금만 있으면 기다리던 혼례식. 그 여린녀석 또 칭얼대지나 않는지 걱정였다. 방금전에도 얼핏 그녀석의 목소리가 들린듯하여 뒤를 돌아본 자신였는데..... 자신은 본관에있고 재중은 신관에 있으니 환청을 들었다는 깨달음에 곧 피식..웃음을 터뜨려 버리고 말았다. 나도 참...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윤호. 그의 붉은 머리위로 금장식만큼이나 우아한, 은으로 만들어진 단아한 장신구가 얹어졌다. 차가워 보이지만, 남성다움을 나타내듯 붉은머리위를 장식하게된 은장식은 윤호와 함께하자 더욱더 빛을 발하는듯 아름다웠다. 재중과 똑같이 하얀색빛 고운 비단옷을 갖춰입은 그의 눈빛에 설레임이 잔뜩 차올랐다. 금빛 자수로 수놓은 허리띠를 마지막으로 윤호는 준비를 끝냈다. 이제는 제단에서서 모든이들이 보는 앞에서 둘만의 서약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 . . 어느새 조용해진 본관앞. 여러꽃들과 의례를 갖춰 완벽하게 준비되어있는 제단. 그리고 붉은 융단길을 사이에두고 빽빽하게 매꿔진 여러부족의 사람들.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몰렸지만, 족장의 혼례를 앞두고 어느누구하나 입도 벙긋하지 않은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적막함 가운데에 원로회장이 제단앞으로 올랐다. 그리고 신성한 혼례를 알리는듯 그가 붉은색 꽃잎을 투명한 유리그릇에 짓이겼다. 그것은 나중에 두사람의 혼례식 마지막 순서로서, 하얀색천에 두사람의 약속을 붉은 꽃잎물로 글을써 새기기위한 관례였다. 원로회장의 손길에 모두들 더욱더 숨을죽이고..................................... 그가 본관뒤쪽을 바라보며 엄숙히 고개를 숙여 손을 내밀자, 이내 제단 앞으로 뚜벅뚜벅 차분하게 걸어나오는 윤호가 보였다. 와아아아----------- 느긋하면서도 당당한 자신들의 족장의 모습에 모두들 방금전까지의 조용함은 어디갔는지 일제히 환호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귀가 따가울 정도의 환호성에도 윤호는 그저 뿌듯하기만했다. 오늘은........................ 그렇게 바라던 김재중이......................... 자신과 평생을 함께할 반려자가 되는날이 아니던가. "......." 원로회장 바로앞에 우뚝선 윤호가 재중이 나올순서를 긴장된 눈빛으로 기다렸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커다랗게 울려퍼지는 원로회장의 목소리. "반려자 되시는분 모십니다-------!!!" 그의 목소리가 퍼지자 일제히 모두들 뒤를 돌아다보기 시작했다. 신부측은 붉은빛 융단길을 밟고 제단앞 신랑의 옆까지 올라가게 되어있었다. 잠시후, 자신의 양옆으로 여시종의 시중을 받으며 들어서는 재중. 살짝 숙인 고개위로 떨구어지는 금빛 장식. 물결치듯 아름답게 일렁이는 검은머리. 여린 몸을 감싸며 허리부근을 강조한 아름다운 옷매무새. 붉은연지를 발라 촉촉하게 젖은 입술은 잔뜩 긴장한듯 꾸욱 다물려 있었다. 두손을 가지런히 접어모아 옷자락속에 살풋이 숨기고는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조심스런 발걸음. 두근두근. 떨리는 그의 마음을 숨겨버린 긴 속눈썹과 애써 덤덤하게 걷는 움직임. 모두들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의 모습에 두눈만을 동그랗게 떠올릴뿐, 딱히 다른 할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후우..." 그런 재중을 바라보는 윤호의 눈빛위로 새로운 감회가 떠올랐다. 이순간, 다른이들도 왜 자신이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마녀족인 저 아이를 반려자로 택했는지.............. 그리고 아름다운 외모뿐이 아니라, 사람을 끌어드리는 저 매력이란것을 그들도 지금 보고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바들바들 떨려오는 손끝. 재중은 고개를 들어 제단앞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윤호를 흘깃 쳐다보았다. 이상하게 자꾸만 이마위에서 식은땀이 떨어지는듯하다. "괜찮으세요?" 그것을 눈치챈것인지 속삭이듯 묻는 시종의 말에도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윤호이............있는곳까지만 가면.................................. 눈앞이 팽글팽글..... 어지럽다고 느낀 그순간. 피잉..... 휘청----!!! 순간 조심스레 내딛던 재중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듯 쓰러졌다. "꺄아---" 재중이 쓰러지자마자 그를 거들던 양옆에 여시종들이 소리를 질렀다. "!!!!!!!" 그러자 순식간에 혼례식장은 소란스러움으로 가득찼다. ---------------------------------------------------------------------------------- [자작/게하] 미 열 (美 熱) 103편 내가 사랑하는건 오직 너 하나. 너를 얻음으로 인해서... 나는 세상모두를 얻었어..... - 미 열(美 熱) 103편 - "후우.....후........." 윤호의 입에서 아까부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는듯 계속해서 깊은 한숨만 터져나왔다. 어째서........................................ 제단앞까지 거의 다와서 쓰러져버린 재중때문에 얼마나 놀랐던가. 놀란것은 윤호뿐만이 아니었다. 윤호의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유천도. 또 누워있는 재중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움을 담뿍 담아내고 있는 준수도....................... 모두들 불안하기만했다. 신성한 혼례식에서 신부 될 사람이 쓰러지다니. 본관앞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떠나지않고 그 앞을 지키고 걱정하며 서있었다. "뭐야-. 도대체 무슨일이야!!" 재중의 곁에서 진맥을 짚어보는 선호에게 다그치듯 묻는 윤호. 그런 윤호에게 재중의 맥을 짚어보던 선호가 조심스럽게 그의 손목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윤호와 준수, 그리고 유천을 천천히 한번 훑어보는것이 아닌가. 설마..뭐 나쁜일이라도........................... 동생의 안색을 가슴졸이며 쳐다보는 유천이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저 창백한 얼굴하며..... 마른 입술과....... 열이 나는듯 이마에 맺힌 땀방울. 주먹을 꽉 틀어쥐던 유천이 순간 두눈을 깜빡였다. 잠깐. 유천의 한쪽 눈썹이 교묘하게 비틀려 올라간다. 재중이가 윤호와 함께 지낸날이 몇개월이나 됐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듯한 유천의 모습. 하지만, 준수와 윤호는 재중의 상태를 점검한 선호에게 관심이 있을뿐였다. "어서말해라. 뭐가 잘못된건지!!" 윤호가 뜸을 들이는 선호를 매섭게 몰아붙이며 인상을 일그렸다. "저기...윤호님." 그제서야 뒷머리를 긁적이며 조용히 입을여는 선호. "아무래도..제가 봤을때는..." 선호가 막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윤호와 준수에게 말을 전하려 할때였다. "아이 가진거 아냐?" "...!!!..." "...뭐!!!..." 선호의 말을 끊고 뜬금없이 터져나온 유천의 말에 모두들 놀란눈을 치켜뜨며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뭐라고?" 윤호가 믿지 못하겠다는듯이 다시한번 유천에게로 재차 반문한다. 그러자 유천이 재중곁으로 바짝 다가서고는 잠이들어있는 그의 머리를 쓸어넘기며 다시한번 말했다. "너랑 함께지낸 밤이 벌써 몇개월인데--아이가진거 아니냐고." "아, 아, 아이..?" 유천의 확실하고 차분한 어조에 윤호가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어 버린다. "뭐예요? 정말이예요 선호씨?" 옆에서 가만히 유천과 윤호의 얘기를 듣고있던 준수가 살며시 떠오르는 미소를 뒤로하고 의원 선호에게 대답을 바란다. 그러자 다시한번 선호에게로 돌아가는 모두의 시선. "......." 그들의 부담스런 시선을 받아내며.. "흐흠..!!" 두어번 헛기침을 해댄 그가,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말을 꺼낸다. "그러니까 제 생각도 같습니다..한 이주정도 된것....." "뭐? 정말인가 그게?!!!" 선호가 막 말을 마치려하는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윤호가 그의 멱살을 잡아 일으키며 흥분된 모습을 감추질 못했다. "아이를 가진게 틀림없느냐고!!!" 흔들흔들. 윤호에게 잡힌 멱살을 풀지못한채 앞뒤로 몸이 흔들려 정신이 없는 선호는, 그의 다급한 물음에 그저 긍정에 대답으로 고개만 끄덕일뿐였다. "정말....." 선호의 확답이 겨우 끝나자 그의 멱살을 순식간에 탁 놓아버린 윤호가 두눈을 동그랗게 떠올리며 잠이든 재중의 얼굴을 바라봤다. "정말로...이 여린몸에........" 그리고는 말랐다싶을 정도로 가녀린 재중의 몸을 찬찬히 훑어본다. 쌔근쌔근... 깊은 숨소리를 뿜어내며 잠이든 그. "......." 그런 재중을 경외로운 눈빛으로 하염없이 바라보는 윤호였다. 맙소사............... 내.......... 내 아이라니...................... 내가................. "정윤호. 애아빠되게 생겼네?" 재중의 손을 꼬옥잡고 감동의 눈빛을 감추지못한 윤호의 어깨를 투욱 치며 유천이 밝게 웃었다. "축하해 윤호아." 준수도 그런 윤호에게 빙그레 웃어보인다. "보시다시피 몸이 많이 여린편이라 오늘 혼례식이 부담스러워서 잠시 정신을 잃은것 같습니다. 별 문제는 없으니 걱정마세요." 선호가 윤호를 향해 안심하라는듯 말을 건낸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10개월이 걸리겠지만, 중성인들은 보통 여자들처럼 배가 그리 커다랗게 부풀어 오르진 않을꺼야. 그래서 아이도 낳게되면 일반 갓난아이보다 몸집도 훨씬 작을테고. 그래도 세달정도 지나면 평범한 아이와 똑같이 자라게되니 별다르게 생각은 말아." 마녀족에 있어서는 당연 지식이 풍부한 유천이 윤호가 걱정할만한 말들을 모조리 해주며 의원인 선호보다도 해박한 말들을 늘어놓는다. "아아~ 그래." 자신의 말을 듣기나 하는건지 하염없이 재중의 얼굴만 바라보는 윤호에게 유천이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선호와 준수에게 나가자는듯이 조용히 손짓을한다. 유천의 손짓에 슬그머니 일어서는 그들. 당장 나가서 문밖에서 걱정하고있을 원로회장과 또 그밖에 다른 이들에게 이 기쁜소식을 알려야하는 의무가 그들에겐 있었다. 혼례식때 갑자기 쓰러진 신부를보고 불길한 징조라고 생각할지 모르는 이들에게는 아마 깜짝 놀랄만큼 커다란 희소식이 될것이다. 윤호의 후계자가 태어날지도 모르는 일이니..... "이봐-. 나중에 정신차리면 얘기하자구." "......." 나가기직전 유천이 던진 말에 뒤도 돌아보지않는 윤호. 쿵-----. 그런 윤호를 두고 조용히 문이 닫혔다. "......." 그리고 잠시후. "오오-- 정말이란 말이요?" "혼례식날 이런 경사가 겹치다니!!!" "밖에서 기다릴 모두에게 알립시다!!!" 문밖에선 이내 기쁨에 들뜬 사람들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웅성거렸다. "......." 하지만...................... 누가 떠들던............................ 무슨말을 하던지간에.......................... 오로지 윤호의 촉촉하게 젖은 두 눈빛은 재중에게만 고정되어 있을뿐였다. 땀에붙은 그의 머리카락을 이마에서 떼어내주며 그는 그렇게 조심스럽게 재중의 손등에 입맞췄다. 몇번이고.................. 몇번이고................................ 이내 재중의 손등을 자신의 얼굴에 부비며 조용히 속삭이는 그의 한마디. "사랑해 김재중." 오늘은 정윤호. 생애최고의 날였다. ---------------------------------------------------------------------------------- [자작/게하] 미 열 (美 熱) 104편 내가 사랑하는건 오직 너 하나. 너를 얻음으로 인해서... 나는 세상모두를 얻었어..... - 미 열(美 熱) 104편 - 달칵--. 문을닫고 자신들의 방으로 돌아온 준수와 유천. 한참을 밖에서 축제분위기를 실컷 즐기다가 들어온 그들였다. 재중의 임신 소식이 알려지면서 혼례식였던 날은 금새 기쁨을 나누는 장소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족장에 후세가 태어난다는 생각에 모두들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그런 즐거운 순간였다. 이제 곧 자정을 넘기는 시간. 오늘같이 기쁜날. 준수는 그만 방에 들어오자마자 유천의 허리를 뒤에서 꼬오옥 끌어안을 수 밖에 없었다. "응?" 자신의 뒤에서 자신을 끌어안는 연인의 하얀팔. 그 여린팔을 두손으로 감싸며 유천이 흘깃 뒤를 돌아다봤다. 그러자 자신의 등에 얼굴을 묻고있는 준수가 보였다. "왜그래? 어디아파?" 준수의 행동에 걱정이 된것인지 유천이 조심스레 묻는다. 그러자 이내 도리질을 치는 준수. "그럼..왜그래?" 유천의 걱정이 담뿍담긴 목소리. 그 목소리에 준수가 머뭇머뭇 입술을 연다. "미안해요..유천씨....." 뜬금없는 그의 미안하단말.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뭐가?" 무슨말인지 도통 모르겠다는듯 유천이 뒤돌아서서 준수의 얼굴을 감싸 올렸다. "......." 그러자 조용히 젖어드는 준수의 눈동자.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 "..재중씨....아이를 가질수 있지만..........난 유천씨한테.....그렇게 해줄수가 없잖아요...." "..!!!.." 띄엄띄엄 꺼내는 그말에 유천은 그만 커다란 숨을 들이마셨다. "..미안......유천씨...." 이내 고개를 숙이며 유천에게 자꾸만 미안하다고 말을 건내는 준수. 그런 준수를 자신의 품안에 따뜻하게 가두며 유천이 그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괜찮아....나한테는 니가 있는걸......너 그런생각 하는거 원하지않아." "유천씨...." "..쉿." 무언가를 더 말하려던 준수의 입술을 막으며 유천이 그에게 살풋이 키스를 전했다. "..나...너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녀석이야. 알았어?" "유천씨..." 유천의 너무나 다정한 말에 준수가 눈시울을 붉히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고마워요 유천씨................. 나 유천씨한테..평생 잘할께요............... 유천씨가 나 사랑해주는만큼........그보다 훨씬...사랑하며 살께요................. 훌쩍이는 연인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유천. 그런 그를 평생 사랑하겠다고 다짐하는 준수. 그들의 사랑은 그 나름대로 그렇게..그 깊이를 더해가고 있었다. . . . 시간은 흐르고 흘러.. . . , 뜨거운 땡볕아래 푸른 나무들은 울창해지고........................... 이어 찾아온 스산한 바람에 물든 낙엽들은 떨어져 내린다........................ 그리고 추운겨울이 조금씩 물러가고 다시금 봄의새싹들이 눈 뜰 준비를 하려는 무렵. "아아아앙------!!!!!" 고통스러운듯 커다랗게 울려퍼지는 울음소리. "뭐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윤호가 굳게 닫혀있는 방문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진정해. 도대체 몇번째야!! 이렇게 벌떡벌떡 깜짝놀라게 일어나는거." 유천이 안절부절 못하고서는 계속 마른침만 삼켜대는 윤호를 지켜보며 잔소리를 해댔다. "윤호---------!!!!!" 또다시 들리는 재중의 애타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 윤호는 그만 자리를 박차고 방문을향해 성큼성큼 발을 내딛었다. "이봐!! 너 어딜들어가!!" 그런 윤호의 팔을 낚아채며 그를 붙잡는 창민. "저러다가 무슨일 생기는거 아냐? 저렇게 아프다고 소릴질러대잖아!!!" 윤호가 창민의 팔을 뿌리치며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애아빠 두번 됐다간- 너 아주 그 눈빛으로 우리모두 싸그리 쏘아 죽이겠다?" "어후~!!!" 창민의 톡쏘는 말에 가뿐 한숨을 푸욱내쉰 윤호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랬다. 안에서는 한참 재중의 진통이 시작되고 있었다. "꺄아아아----!!!!!" 귀가 찢어질듯한 비명소리. "아, 젠장!!" 자신의 머리를 틀어쥔채 감싼 윤호가 이내 고개를 숙여버린다. 어떻게 해 줄 수가 없는 자신이 한심스러울뿐였다. 10개월이 지나는 사이 재중에게선 별다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자신이 윤호가 바라는 아이를 가졌다는 기쁨에 들떠 있었긴 했지만, 이건..역시나 애가 애를 낳는다는 꼴였으니.............. "좀..길어지는것같네.." 벌써 진통이 시작된지 한참이 지난 시간였다. 유천이 준수의 말에 조금씩 윤호와 같은 불안한 증세를 얼굴에 띄운다. 자꾸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초조해 지기만한다. 그리고--- "윤호-------------!!!!!" 다시한번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재중의 목소리에. 벌떡. "도저히 못참겠어!!!" 무슨일이 있어도 들어가겠단 심산으로 자리에서 일어선 윤호. 족장으로서의 체면이고 뭐고도 생각할 겨늘이 없어보이는 그였다. 그런 그를 깜짝 놀란 눈으로 지켜보는 창민과 유천. 그리고 준수. "내가 옆에 있어줘야겠어!!" 확고한 말을 던지며 윤호가 걸음을 옮긴다. 그때였다. 달칵----. "..!!!!!.." 피가묻은 손을 하얀색 천으로 닦아내며 문을 연 여시종. 막 문으로 들어서려던 윤호와 마주친 시선에 그녀가 빙그레 웃는다. "어..어떻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건내는 윤호에게 그녀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축하드립니다 족장님. 재중님께서 건강한 남아를 출산하셨습니다" "...!!!!!..." 건강한............................. ...아............ ..........아........들..........이다....................... 물론 재중이 낳을 아이에 대해서 딸과 아들을 구분짓고자 하는것은 아니었다. 그와 자신의 사이에서 자식이 태어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할뿐. 하지만, 첫아이가 아들이라니. 원로원과 부족에있는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고도 남을만한 일였다. 그리고 윤호 스스로도......................... 자신의 뒤를 물려줄 아들이 태어나고보니....................... 기쁘다못해 정신이 멍해 질 수 밖에 없었다. "......." 여시종의 말에 두눈만 멀뚱멀뚱 뜨고는 아무런 미동도 보이지않는 윤호. "야아아-!!! 정윤호 축하한다!!!" "아들이라니!!!" 주변 사람들의 축하인사속에 정윤호는 그저 그렇게 멍하니 있을수밖에 없었다. 어서빨리 고생한 재중을 따뜻하게 안아줘야 할텐데..................... 고생했다고.................... 정말...잘해냈다고................... 많이 아팠지..라고.......................... "......." 가슴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치밀어오는 뜨거운 무언가가 숨을 쉬지 못하게 할 만큼 그의 심장을 저릿하게 눌러왔다. "......." 사랑.....한다고................................... 알고나 있는걸까..? 한번도 깜빡임을 생각하지않는 그의 두눈에서 그 자신도 모를 눈물이 뚝뚝 떨궈지고 있다는 사실을..... 어서...빨리.....안아주면서......................... 사랑한다고....................... 끝내 고개숙여 울어버리는 그를 유천이 안아주며 빙긋이 미소지었다. 자신의 동생이 마냥 기특할뿐였다. "흐윽...흑..." 재중아.......................... ....재...중.....아.......................... 커다란 감동에 어깨를 들썩이며 작게 흐느끼는 정윤호의 지금 모습은, 이순간 그가 족장이라기보다...재중을 사랑하는 그의 단 한사람의 남편일뿐이라고... 여실히 보여주는것였다. ---------------------------------------------------------------------------------- [자작/게하] 미 열 (美 熱) 105편 <완결> 내가 사랑하는건 오직 너 하나. 너를 얻음으로 인해서... 나는 세상모두를 얻었어..... - 미 열(美 熱) 105편 <완결> - 살랑이는 바람. 그 고운 바람결에 흩어지듯 살며시 헝크러지는 머리. 그런 재중의 머리를 자신의 손으로 곱게 쓸어넘겨주는 윤호의 손길이 아직도 다정스럽다. "아빠-엄마--!!!" 커다랗게 자신들을 부르며 통통통 뛰어오는 작은아이. "오빠가 막막..때려.." 서로 한살차이라 그런지 뚝하면 투닥거리는 아이들. 금새 울상이 되어서 뛰어온 아이는 저 멀리서 자신을 바라보는 오빠를 향해 손가락짓을 해보인다. 귀여운 그 여자 아이는 재중처럼 까만 눈동자에 긴 속눈썹을 가지고 새초롬한 붉은 입술을 삐죽이고 있었다. "현준이 너- 자꾸만 현희 괴롭힐꺼야?" 윤호의 곁에 찰싹 붙어서 자신의 오빠를 곱게 흘기는 귀여운 아이. 윤호를 대신해, 재중이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며 고운미성으로 살짝 나무란다. 그러자 곧 잘못했다는듯이 꾸벅 고개를 숙여보이는 남자아이는 어리지만 기품이 느껴지는 성품바른 아이였다. 윤호를 쏘옥 빼닯은 아이. "자. 이제 오빠가 괴롭히지 않을테니 가서 사이좋게 놀거라." 윤호가 딸아이의 등을 토닥여주자, 금새 또 언제 다퉜냐는듯이 숲속길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였다. 그런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그들. 그들이 천천히 걸으면서 나들이 길로 택한곳은 다름아닌 자줏빛 숲였다. 재중의 허리를 끌어안고 걷는 윤호가 나즈막히 말을 던진다. "유천네는 어떻게 하기로 한거야?" 윤호의 질문에 기쁜듯한 어조로 대답을하는 재중의 두눈이 반짝인다. "아이를 입양하기로 했데요~ 준수씨도 아무거리낌없이 찬성했다하고." "아아~ 잘됐군." 아이같은 표정으로 마치 '정말 잘된일이죠?'라고 묻는듯한 재중의 얼굴에 윤호는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시간이 흘러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물가에 내놓은 아이같은 불안한 모습이 많이 없어진 그였다. 하지만, 여전히 순수한 눈동자와 말투. 그리고 그 사랑스러움은 전혀 사그라들지 않아, 이렇듯 여지껏 윤호의 마음을 사로잡고 놔주지 않는다. 아름다운 김재중을 자신의 평생의 반려자로 맞고..................... 예쁘고 총명한 아이들은 아픈곳없이 잘 자라고 있는듯하다. 여전히 처음 재중을 만난 그 날처럼... 자줏빛숲은 그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 "......." 말없이 마주친 둘의 시선. 그 시선뒤엔 이젠 서로를 사랑한다 입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다. 자신들보다 앞장서서 걷고있는 아이들의 뒤에서 살짝 입맞추는 그들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서로가 함께하는한 무슨일이 있어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과..늘 곁에있을 이 행복함이.. 언제라도 함께할것이라고 확신 할 수 있었다. 지독할만큼 평화롭고, 따뜻하고, 또 서로를 사랑하고있는 그들. 반짝이던 그 자줏빛 숲에서 처음 너를 보았을때.. 나는 너의 아름다운 모습(美)에 빠지고 말았지... 그리고 그 마음을 사랑이란 뜨거운 열정(熱)으로 변하게한건....... 내가 널 사랑 할 수 밖에 없이 만들었던.. 너의 그 순수함였어... 언제까지나 널 사랑하고 지켜준다 약속할께... 약속해.................................... ................................ ................. . . . 귓가에 잔잔하게 퍼지는 그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듯 하지않습니까...? 뒤를 돌아보면 아름다운 그들의 잔영이 보이는듯 하지않습니까...? 그들의 사랑을 여지껏보신 당신은 지금..... 그들만의 낙원에 와계십니다..... 그들이 영원히 사랑하고 꿈을나눌................ 그들만의 낙원........................... - The end - ---------------------------------------------------------------------------------- 드디어 < 미열(美熱) >이 완결까지 왔습니다. 이루 말 할 수가 없을만큼 가슴이 뿌듯하고 기쁩니다. 조금 아쉬운감이 없지않게 끝이 났지만, 전 많은분들이 예쁘게..그리고 재미있게 봐주실때가 적절하게 소설을 마무리 할때라 생각하거든요^^* 정말 뿌듯합니다. 여지껏 미열을 지켜봐주신. 그리고 제가 잠수탈동안 기다려주신 많은분들. 정말로. 진심으로 아게하 감사하단말씀 드립니다. 앞으로도 언제나 노력하는 게하, 또 최선을 다하는 게하, 항상 겸손한 자세로 팬픽을쓰는 사람되겠다고 약속드립니다. ** 꿀번외와 새 소설은 에쉬프를 떠나 연재할것 같습니다. 잠수타기 전부터 생각했던 일이니 알고계신분들 많으시리라 생각됩니다. 소설 올릴곳이 확정됐지만, 자세한 사항은 공지사항 띄우겠습니다. 미열을 끝낸후 잠수는 없을테니 걱정마시구요, 빠른시일내에 나올테니, 에쉬프에 올라오는 제 공지사항 확인해 주실것을 당부드립니다. 끝으로 미열완결까지 보시고 감상 남겨주실분들 틈틈히 들어와 감사덧글 달아드리고 인사드릴테니 지켜봐주세요^^* 감사드립니다 진심으로요!!! ---------------------------------------------------------------------------------- 내옆에서 고생많았던 사랑하는 멍멍이양~ 너 때문에라도 힘낼수 있었어. 많이 사랑하고 항상 곁에 있어줄께. 제일 많이 사랑했고, 사랑하고, 앞으로도 평생 사랑할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