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나랑 한번만 하자." "뭐?" 오늘 아침 메뉴가 뭐였더라. 평범하게 어제 먹다 남은 김치찌개와 내가 좋아하는 계란말이. 그 외 김치랑 도시락 김...뭐 별로 평소와 다를 것은 없었는데. 아니면 재중이 형이 박유천 밥에만 약을 탔던 것일까? 박유천 저 자식이 미쳐도 제대로 미쳤다. 나는 한 쪽 입 꼬리를 올리고서는 박유천 새끼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봐줬다. 그런데 저도 나에게 지지 않고 진지한 눈으로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거다. 뭐야, 박유천. 진짜 미쳤냐? 추위에 헤드가 빙빙?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박유천 vs 김준수 숙소로 가는 벤 안에서 나는 제일 뒷자리에 앉아 그 동안의 스케줄이 쩔어 살짝 졸고 있었다. 움직이는 차에 맞춰서 머리가 이리저리 춤을 추듯 움직이며 고꾸라지는 것에 뻑- 하고 휙 넘어간 목이 아파옴에 잠시 정신 차리고 몸을 추슬린 후 창문에 기대어 편안하게 누웠다. 어제도 잠을 자지 못하고 무리한 스케줄을 소화한 탓에 나뿐만 아니라 멤버 모두 차에 앉자마자 골아 떨어졌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제대로 기억하는 것은 아무도 없는 뒷자리였는데 자고 있는 내게 좀 땡겨보라며 항상 앞 자리에 앉던 유천이 갑자기 내 옆에 앉았고 나는 내 자리가 좁아지는 것에 불만을 느꼈지만 피곤함이 더 급해 그냥 뭉기적 거리면서 엉덩이를 당기곤 창가에 다시 기댔었다. 그리고 꿈을 꾸는 건지 잠이 들은 건지는 몰라도 엄마가 머릿속에서 스쳤었던 것 같다. 엉덩이가 조물조물...조물조물....엄마..그러지 말랬잖아. 나 가뜩이나 오리 궁뎅이에 S라인 소리 듣는데..그만 만져...엄마..그만.... 꿈 이라기에는 너무 리얼한 그 손 움직임에 나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서는 내 엉덩이로 시선을 향했는데 그곳에는 박유천의 손이 가 있었던 거다. 조물조물... 엄마가 아닌 박유천 손이 조물조물. 박유천...손이...조물조물.....? "야!! 미쳤어?" 자다 일어나 목소리가 잠겨 쇳소리가 나는 게 영 듣기 좋지는 않았지만 나는 소리치며 그 녀석의 손을 세게 내려쳤다. 하지만 유천이는 썩 놀란 표정도 아니었고 앞에 앉아 자고 있는 형들과 창민이를 한번 둘러 보고는 검지 손가락을 하나 펴서는 입술에 가져다 대며 쉿 이라는 몸짓을 한다. 어두운 벤 안이었지만 위에서 나오는 작은 주황빛 조명에 그 녀석의 표정은 너무나도 확실히 보였다. 나는 더 소리를 지를까 하다가 잠에서 깨어나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더 피곤해지겠다 싶어 그 녀석의 말대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소리를 죽이고서는 여전히 화가 났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떽떽거렸다. "왜 그래 정말? 너 욕구 불만이야?" 정말 박유천 요새 너무 이상하다. 너무 이상해서 정말 무리한 스케줄에 혹시 미친 게 아닐까 살짝 걱정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내가 미친 새끼처럼 발발 뛰면서 화를 내지도 못하는 건, 박유천의 표정이 너무나도 진지해 보인다는 거다. 정말 이 새끼가 많은 스케줄에 미친 건가. 나는 최대한 마음을 잡고 혹시라도 뭔가 잘못되었다면 이걸 내가 해결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같은 동방신기니깐. 한 그룹의 멤버이고 그리고 그걸 떠나서도 우리는 친구잖아. 그래, 마음이 태평양 같이 넓은 천사 김준수가 부드럽게 대해줘야지. 부드럽게..부드럽게. "요새 뭐 문제 있어? 말해봐.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건 해결 해줄게." 나는 아까의 일은 싹 다 잊었다는 표정으로 표정을 누그러트리며 유천의 고민을 들어주기 위해서 유천의 쪽으로 몸을 더 기울렸다. 아마 이놈이 내 엉덩이를 조물락 거린 것은 이유가 있을 거다. 단순한 장난이 아닌, 요새 모든 그 상황을 다 통틀어서 복잡한 심정을 가지고 그런 거였을 거다. "....준수야." "응, 응 그래." 팬들이 그렇게도 좋다고 하는 다갈색의 눈동자가 조금은 수분기를 머금고 있다. 나는 그 눈을 보고서는 좀 약해졌다. 박유천 요새 무슨 힘든 일 있어서 그런 건가. 아니면 장난이었는데 내가 부드럽게 넘어가주지 않고 괜히 오버해서 더 상처 받은 건가. 가뜩이나 감수성 예민하다고 광고하고 다니는 새낀데. 혹시… 요새 유천병 기간이었던가? 나는 오만 생각을 다 하며 박유천의 그 두툼한 입술에 집중을 하고 있었다. 열릴락 말락 하던 입은 결국 바들 떨리고 잘개 깨물기를 반복하다 결심한 듯이 내 손을 덥썩 잡는 박유천이다. "그럼 나랑 한번만 하자." "뭘?" "나랑 같이 자자고" 미친 새끼. 상대한 내가 병신이고 돌고래 머리다. 엄마아아아아. 윤호형, 재중 형!! 창민아 다들 일어나봐. 박유천 완전 미쳤어. § 박유천이 이상했던 것은 사실 오늘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의미지만 꽤 오래 전부터 싸이코짓도 자주 했고 유천병이라는 병명을 지 멋대로 만들어내면서 멤버들의 걱정을 한 몸으로 받았던 놈이다. 그런 데에도 나는 박유천을 굉장히 믿고 신뢰했으며 친구로써 사랑했다. 그는 아주 자상하다. 방송에서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항상 웃는 얼굴과 긍정적인 마인드로 세상을 살아가는 녀석이었다. 멤버들 중에서 가장 웃음이 많은 놈이었고 별 거 아닌 일에도 박수 쳐대면서 좋다고 웃는 그 모습이 나는 가끔 이해 가지 않았지만 도도하게 말 수를 줄이고 앉아있는 나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박유천과 재중이형은 동방신기 안에서 분위기 메이커였다. 둘이서 마구 떠들면 개그맨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웃겨서 우리들의 휴일 날 두 사람의 만담 같은 대화를 보며 쇼파에 뒹굴 거리는 것을 즐기곤 했을 정도였으니깐. 그런 박유천은 유난히 나를 챙겼다. 내가 지보다 동생이라면서 몇 개월 차이 나지도 않건만 내 뒤를 쫄래쫄래 따라다녔고 저랑 나랑 나이가 같다는 것이 무슨 불알 친구라도 되는 것마냥 화장실 갈 때에도 쫓아오고 자기가 화장실 갈 때에도 나에게 같이 가달라고 했었을 정도다. 그래, 이게 우연히 방송을 타면서 또 팬들은 아주 좋아라 캡쳐 뜨고 동영상이 돌아다니고 해서 내가 황당의 웃음을 감추질 못했지. 나는 그저 그 행동이 박유천이 김준수를 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서는 꽤 흔쾌히 받아 들였다. 유천이 농담을 해도 시덥잖은 반응만 내고 했었는데 에도 유천은 그런 내가 편했는지 항상 내 옆에 있어주었고 내가 재미없는 농담을 해도 언제나 방송에서 크게 맞장구 쳐주고 좋아라 입이 찢어질 듯 저 혼자 재미있다고 웃어주고 하기도 했었다. 가끔씩 챙겨주는 시선이 부담스러웠지만 나는 박유천이 원래 이렇게 자상한 놈이라고 생각하며 좋게만 보고 있었다. 그래, 어디까지나 멤버 들 중에서 조금 편하게 대하는 친구 사이였다. 그런데 저 새끼가 언제부턴가 내 몸을 더듬으면서 저 딴 말을 해대기 시작했다. 아마 그때부터였지? 아니 눈빛의 농도가 진해졌던 걸로 따지자면 아주 전으로 올라가야 하지만 저렇게 대놓고 나에게 찍접 댔었던 것은 분명 3집 시작을 앞두고 나서부터였다. . . . . 3집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서 우리는 쇼 케이스니 뭐니 발매되지 않은 CD들 재킷사진이니 이리저리 휘둘리느라 굉장히 바빴다. 간간히 일본으로 넘어가서 조정도 해야 했고 중국에 이벤트가 있으면 되지도 않는 머리로 중국어 가사를 다시 외우며 눈 뜰 틈 없이 바쁘다라는 말을 몸으로, 머리로 실감하고 있었을 때였다. 그런 활동 중에 오랜만에 온 숙소는 너무나도 반가워서 나는 들어가자마자 가장 구석에 있는 내 침대에 누워서 으컁컁 웃었다. 돌고래 인형이 반겨주는 하얀 시트가 깔려있는 침대가 그렇게도 반가울 수가 없어서 나는 한껏 침대를 안듯이 팔을 펴고 푸욱 누웠다. 그런 내 엉덩이를 발로 툭툭 차면서 자신의 침대에 발을 치우라는 윤호형이 있었고 무슨 백설공주 난장이 침대마냥 다다닥 붙어 있는 우리들의 침대를 보며 나는 내 침대 쪽으로 좀 더 몸을 기울려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 새벽에도 배가 고프다는 창민이는 부엌에서 시리얼을 그릇에 따르는 소리를 내면서 한참 늦은 야식을 먹을 준비를 하며 윤호형이나 재중이 형도 피곤하다면서 씻고 바로 자야겠다는 말을 했었다. 나는 그런 멤버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점점 감기는 눈을 느끼곤 씻고 자야 하는데... 옷 갈아 입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했지만 결국 잠이 들었다. "우..음..... 물........." 다시 눈을 뜬 것은 목이 찢어 질 듯 타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눈을 움찔하며 미간을 좁히고 일어나보니 아주 잠시 눈을 감았다고 생각했는데 꽤 깊이 잠이 든 건지 주위는 이미 깜깜했다. 입을 벌리고 자서인지 입 안이 건조한 느낌이 가득하고 목구멍이 찢어질 듯한 느낌에 못 이겨 나는 결국 비지적 거리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옆에서는 바로 윤호형의 거센 콧바람 소리가 들리고 저 쪽에서도 부스럭 거리며 몸을 뒤척이는 소리를 보니 멤버들 모두 지금 침대에서 나뒹굴며 자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어둠에 눈이 익숙해질 때까지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침대를 하나하나 보니 가운데의 창민이나 옆의 윤호형 재중이 형도 보이는데 한 명이 없다. 얼레.....? 이 쥐새끼 어디간 거래. 새벽까지 컴퓨터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며 별로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던 나는 뻐근한 목을 좌우로 움직이며 일어섰다. 목 안에서 뚜둑 하는 뼈 소리가 들린다. 나는 어깨도 이리저리 돌려보면서 차가운 바닥으로 발을 내디뎠다. 잠시 휘엉청 했지만 바로 중심을 잡고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갔다. 거실에서는 침실보다 더 싸늘한 바람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에 몸이 잠시 움츠려 들었었지만 그대로 거실을 지나 부엌을 향한 다음에 냉장고에 있는 생수를 꺼내서 병 채로 그냥 입에 털어 넣었다. 아- 이제 살 것 같다. 말라 비틀어질 듯하던 입안에 수분을 가득 머금고 기분이 좋아서 싱글 웃었다. 그리고 그대로 방안에 들어갔으면 되었는데... 평소 그렇게 주위를 깊게 보지도 않았던 내가 화장실에서 불 빛이 새어 나오는 게 보였다. 누가 화장실 쓰고서는 불을 안 끈 건가 싶은 나는 그대로 생수통을 손에 쥔 채 화장실로 향했다. 그래. 그때 그냥 그대로 방안으로 고고싱 했으면 되는 거였는데. 망할 김준수. 안에 누가 있는 건가...? 나는 그 생각을 하면서 아직도 잠이 걸쳐져 있는 눈을 부비며 다가섰다. 우리 숙소는 특이하게도 화장실에 잠금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냥 열면 되는 거다. 그래도 안에 누군가가 있는 기척에 나는 유천의 침대가 비어있던 것을 생각해냈고 아아, 유천이구나 라는 마음에 그냥 뒤돌아 서려고 했었다. "주..준수야. 준수야.... " 어? 화장실 안에서 약간은 숨에 찬, 낮은 신음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나는 순간 불안해졌다. 쥐새끼, 내가 온건 또 어떻게 알았대.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디 아파서 지금 내게 구조 요청을 하는 건가 싶어서 나는 뒤돌아 섰던 걸음을 서둘려 돌려 안에 있는 사람에게 양해도 없이 문을 파악 열어 젖혔다. "무슨 일이야?!" 휙 열었던 문에 바로 보이는 것은 하얀 백열등 아래에 있는 박유천의 놀란 얼굴이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뭔 일인데! 라고 다시 물었다. 어..어? 어? 라고 바보 같이 같은 말만 내뱉는 박유천의 붉은 얼굴을 보고 아픈 것은 아닌 것 같아서 안심 한번. 그리고 바보 같은 표정에 한심한 눈으로 흘겨주기를 한번. 그리고... 저절로 내려가는 시선에 나는 결국 보고 말았다. 변기 커버를 내리고 그 위에 앉아서 바지를 내리고 가운데에 손을 두고 혼자 하고 있던 박유천을. "................." "................" 서로 잠시 아무런 말이 없었다. 붉은 얼굴과 신음 섞인 소리가 왜 그랬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듯한 그 상황에 나는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세상이 멈춘 듯 잠시 그렇게 서 있었다. 그리고 타이밍이 뭐같이도 하필이면 쥐새끼네 자식들이 나오고 있어서 나는 동그래졌던 눈이 더 커져버릴 뿐이었다. 아래에 있던 시선을 올려 유천의 표정을 보니 박유천의 표정은 나보다도 눈이 더 동그래져 있었고 놀란 표정이다. 나는 놀라서 어버버 하는 입 모양이었지만 그 이상 말 끝을 삼키고 바로 다시 화장실 문을 닫고 침실로 향했다. 김준수. 아무것도 못 봤다. 아무것도 못 봤어. 이렇게 새벽 내내 침실 안에서 눈만 감고 아무것도 못 봤다고 스스로에게 체면을 걸었다. 그럴 수록 더 생각나는 모습이었지만. . . . . 나는 그 후에 조금 박유천과 거리를 두었다. 어린애도 아니고 웃기 다는 걸 알지만 머리로 인식하기도 전에 슬쩍 피하고 있는 나를 볼 수가 있었다. 하지만 박유천 그 새끼는 나를 보면서 평소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고 나는 그거에 조금 황당했지만 박유천이 부끄러워서 저러나 싶어 애써 내색하지 않았고 그 일은 누구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래, 건장한 남자가 혼자서 일 처리하는 것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 솔직히 나도 해봤고 우리 멤버들 중에서 한번도 안 해봤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 아니 이 세상 남자들 중에서 안 해본 남자가 어디 있겠어. 멤버들이 다 같이 자는 방인 만큼 화장실에서 혼자 처리하는 그 정성이 갸륵한 거다. 그래 그게 좋은 거다. 그래 그런 거다...... 그런데.…. 진짜 신경 쓰였던 것은.......... 왜 화장실에서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냐고오오오오오오.....!!!! 우연히 내가 밖에 있는 것을 알고서 나를 불렀던 걸까. 그건 아니다. 그건 말도 안되지. 박유천의 그 표정에서는 내가 들어온 것에 아주 깜짝 놀랜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걸 하면서 내 이름은 왜 부르냐고. .........설마 내 생각하면서 한 건가...? 설마....에이 김준수 또 자뻑 나온다. 그럴 리가 없잖아. 하하..그래 말도 안되지..말도 ....아이 시바. 나는 박유천이 내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팡팡 쳐댔던 것이 갑자기 머리에서 오버랩 되었다. 나는 그걸 얼른 떨쳐내려고 괜히 고개를 세게 저어보면서 아니야 아니야 말도 안돼 라고 반복할 뿐이었다. 개새끼. 아니 쥐새끼. 왜 사람 마음을 괜히 심란하게 해. 응? 왜 그래 너! 나는 아주 며칠 동안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고민했었다. 그런데 박유천이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저게 어젯밤에는 나보고 같이 자자고. ………어떻게 해야 하니. 하느님...또 이렇게 힘들고 어려울 때만 찾아서 죄송한데요...저 어떻게 해야 해요? "준수야." "어 왜" 혼자 쑈를 하면서 고개를 흔들어대고 손을 쭉 펴다가 쥐었다 가를 반복하고 있는데 그걸 재미있게 쳐다보던 재중이 형이 나를 부른다. 지금 우리는 잡지 촬영을 대충 끝내고 개인촬영을 하면서 먼저 남은 우리 둘이 이렇게 먼저 대기실에 있는 상태였다. 이 촬영이 끝나고 바로 다음 스케줄이 있다는 성환이 형의 말을 듣고서는 우울해지는 기분을 가지며 좀 쉬고 싶어 하다가도 차라리 이게 낫다 싶었다. 박유천이랑 좀 덜 만날 수 있잖아. 스케줄상에서는 어차피 옆자리라 이리저리 많이 마주치게 되지만 다른 멤버들이 있어서 괜찮은데 이렇게 쉬는 시간 동안 둘이서 같이 있는 자리가 생기면 조낸 뻘쭘한거다!! "너 유천이랑 싸웠냐?" 쭉 뻗어 앉아있던 내 옆으로 조심스레 앉던 재중이 형이 주위에 누가 있나 없나 살피고서는 조심스럽게 입을 떼며 물었다. 나는 박유천 생각을 하던 도중에 재중이 형이 유천이에 대해서 물어 움찔했지만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하고서는 싱긋 웃었다. 유천이랑? 내가 뭐할라구 싸워. "그런데 니네 요새 왜 그러냐....?" "..............." 일방적으로 박유천을 피하는 나를 눈치 챈 재중이 형의 까만 눈동자가 보인다. 내가 지금 이러고 싶어서 이러겠어. 형은 내가 아니어서 모르는 거야. 같이 자자고 하는 새끼한테 내가 방실방실 웃으면서 그러자 그럴까? 목구멍까지 튀어나오는 말이었지만 그걸 한숨으로 묻었다. 하아- 한숨이 푸욱 길어진다. 그런 나를 보고서는 재중이 형이 뭔 일 있긴 있나 보네. 라면서 저 혼자 자문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에 대꾸할 생각이 없었다. 재중이 형.. 우리 동방신기 큰일났어. 이러다 우리 다 째지면 어떻게 해... 나는 앞으로 쭉 뻗었던 몸을 일으켜서 쇼파에 기대 누웠다. 목이 뻐근하고 눈은 침침하다. 스케줄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요새 그나마 쉬는 수면시간에도 박유천 새끼 생각하느라 제대로 잠을 못 잔 원인도 클 거다. 나는 잠시 천장을 보다가 옆에 앉은 재중이 형의 옆 얼굴을 쳐다보았다. 재중이 형...참 보면 여자보다 더 예쁘지. 그런 내 시선을 느꼈는지 살짝 곁눈질로 나를 보다가 테이블 위에 놓인 포카리스웨터에 손을 가져다 댄다. 재중이 형 손가락도 예쁘다. 정말 여자같이 다 예쁘고 그런데.. 그런 형은 누가 깔리라고 하면 과연 깔릴까? "형은 윤호형이 자자고 하면 잘 거야?" "갑자기 뭔 소리여." "윤호형이 자자고 하면 잘 거냐고. 그것도 밑에서." "....자는 게 뭐가 어때서. 어차피 우리 방도 같이 쓰고 있는데....." "아니 그거 말고 섹스." 심드렁하게 대답하던 재중이 형의 입으로 들어간 음료수가 분무기처럼 푸웁- 뿜어져 나왔다. 아-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구나. 나는 그런 생각에 머리를 북북 긁다가 바로 옆에 있는 티슈를 건 냈고 재중이 형은 사례가 걸린 듯 한참 켁켁 거리면서 그 큰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서는 나를 쳐다본다. "뭐? 미쳤냐? 말을 해도...." "그치? 그치? 미친 소리 맞지? 정상이 아닌 거지?" 그럼 그게 정상이냐? 건내준 티슈로 입가를 닦는 재중이 형을 보면서 나는 다시 시선을 내리 깔고 한숨을 푹 쉬었다. 아 씨발 미치겠어. 나지막이 내뱉어지는 욕에 재중이 형은 뭔 일인데 라고 물었지만 나는 그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섣불리 말하기에도 무섭고 솔직히 말하자면 박유천 그게 무슨 생각으로 내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어서 지금 이러고 있는 거다. 팬들이 워낙에 유수유수 거리니깐 그러는 걸까... 처음 화장실에서 내 이름을 불렀던 것은 정말 우연이라고 넘기고 싶었다. 그런데 그 후에는 나보고 확실히 못이라도 박을 듯 같이 자자고 한다. 그 놈이 미국에서 와서 처음부터 성에 대해서 너무 개방적이라 우리가 학생 때 만나고 그런 이야기를 할 때 박유천의 성에 관한 사상에 대해선 놀란 일들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박유천이 게이였던가? 아 그것도 모르겠어. 혹시 나 좋아하는 거야? ....설마 말도 안되지. 진짜 욕구불만? ....아니 그런데 왜 하필 나냐고..!!! 여자 찾으면 될 거 아냐. 줄 서는 여자들만 해도 몇 트럭은 될 텐데. 나름대로 박유천이랑 꽤 오랫동안 지내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지금 생각해보니 박유천이 뭐 하는 인간인지도 모르겠고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인간인지도 모르겠다. "김준수!!"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데 우악스레 내 등뒤에서 안아오는 큰 손이 있다. 나는 잠시 그 무게에 못 이겨 휘영청 했지만 지금 나를 안고 있는 이 놈이 누군지 바로 알아내고 미간을 좁혔다. "뭔 그렇게 생각하냐? 응?" "아으으으 하지마아아" 개인 촬영이 나보다 늦게 끝난 박유천 새끼는 이제 끝났는지 대기실로 들어와서는 내 볼을 주욱 늘어트려 놓고서는 좋다고 웃어댔다. 나는 그 날부터 저 때문에 지금 머리가 뽀개질 것 같은데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이다. 그래서 화가 나기도 하고 나도 저기에 맞춰야 되나 싶기도 하고 불편한데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려고 하니깐 이게 엄청나게 힘든 거다!! 내 볼에 가 있던 손이 자연스럽게 내 목을 두르게 되었고 나를 꼬옥 소리가 날 듯이 껴안는 박유천의 숨결이 내 목덜미에 닿았다. 그 숨결이 뜨거워서 나는 비키라고 손짓을 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입술로 내 어깨를 아프지 않게 물어버린다. 아 진짜 이렇게 나오면 나 어떻게 하라는 거야. 한번 잘근 물었던 것이 목을 타고 올라오길래 나는 있는 힘껏 유천을 뒤로 밀었고 갑작스런 내 힘에 잠시 밀려난 유천이는 내가 그저 장난을 치는 건 줄 아는지 다시 나를 안으려고 했지만 나는 얼른 그에게서 떨어졌다. 진짜 그 동안 나도 많이 참았다. 정말 많이 참았어. "박유천. 너 잠시만 나 좀 보자." "응? 왜?" "빨리 따라오기나 해" 왜 그래? 라고 내게 물으며 뒤돌아 있는 내 등뒤로 소리지르고 있었지만 나는 그런 것은 다 무시하고 얼른 대기실을 빠져 나왔다. 그러니깐 나를 따라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뒤돌아본 그 자리에 서 있던 박유천은 태평한 얼굴이었고 볼을 긁적이면서 정말 아무런 이유도 모른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 얼굴이 화가 나서 괜히 귀를 잡아 당겼고 내 우악스런 손짓에 아야야야 아파! 라며 얼른 쫓아오고 있다. 박유천 너, 나랑 긴 이야기 좀 하자. 도대체 니가 왜 이러는지 나도 좀 알자. § 인적이 드문 비상구에 들어선 나는 그제서야 유천의 귀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고 유천도 귀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잠시 움츠리더니 아프잖아.. 라며 어루만지다가 바로 주머니 속의 담배를 꺼낸다. 담배 피우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내 말은 졸라게도 안 듣지. 담배를 입에 무는 그 두툼한 입술이 괜히 밉다. 라이터로 불을 붙여 한 모금 빨아내는 그 얼굴이 밉다. 그냥 다 밉다. "왜 부른 거야? 이런 인적이 드문 곳까지... 나랑 뽀뽀라도 한번 할라구?" "도대체 요새 왜 그래?" "모가?" 나는 잔뜩 분위기가 심각해져서 입술만 깨물고 있는데 박유천 저 새끼는 아직도 분위기 파악이 안된 건지 실실 웃어대면서 내게 얼굴을 드이밀다 뽀뽀라도 할거냐면서 입술을 쭈욱 내밀었다. 아 진짜 짜증이네. 신경질 적인 목소리로 요새 왜 그러냐고 묻는 내 카랑진 목소리에 뭔 소린지 저~언혀 모르겠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술을 오므린 채 내게 다시 묻는데 나는 그 꼴이 우스울 정도였다. "몰라서 물어? 씨발...." "욕하지마. 듣기 안 좋다." "지금 욕이 안 나오게 생겼어? 같은 그룹 안에 변태가 있는데." 저절로 나오는 내 옆에 살짝 인상이 찌푸려진 박유천이 보인다. 그리고 바로 나오는 내 말에 박유천의 표정은 보기 좋게도 굳어졌다. 나는 내가 말해놓고도 변태는 심하지 않나 고민했었지만 얼른 박유천에게 확실히 쳐낼 방법을 찾아야 했다. "말을 꼭 고따우로 해야 하냐?" "...아님 뭔데? 도대체 뭐라서 이러는 건데? 같은 멤버한테 자자고 하고, 그렇게 끈적끈적하게 보는걸 뭐라고 해야 해?"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하! 하고 기가 차다는 듯한 웃음을 내뱉은 유천은 신경질적으로 피던 담배를 벽에 지져서 꺼버리고 입술을 한번 축이더니 시선이 다시 나를 향한다. 나는 그 시선에 살짝 움찔했지만 내가 잘못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더 기세 등등하게 허리를 폈다. 잘못은 박유천이 한 거다. 괜히 김준수 흔들어 놓고 있었잖아. 그리고 신경 쓰이게 했잖아. 어떤 대한민국의 20대가 지 친구한테 같이 자자고 하는데. 변태가 아니고 뭐야. 나는 잘못한 거 없어. 화내도 괜찮은 거야. "....진짜 아무것도 모르냐....?" 화가 난 듯한 박유천의 눈이 다시 펴지면서 이제는 슬픈 빛을 보이고 있었다. 낮은 톤의 목소리는 팬들도 좋아하는 거였지만 나도 참 그 목소리가 남자답고 멋있어서 좋아하던 목소리였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는 전혀 반갑지 않다. 갑자기 바뀐 눈에 나는 또 한번 당황했지만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고 그런 눈 해 봤자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는 표정을 했다. 속지말자 김준수. 저 눈에 속지마. 반전드라마랑 논스톱 찍으면서 연기력만 키워온 박유천이다. 속지마 속지마. "내가 알게 뭐야." "........." "아무튼... 앞으론 좀 조심하자." "뭘" "몰라서 물어? 내 말 다 어따가 팔아 먹었냐? ...아무튼 이런 일로 얼굴 붉히지 말자고." 앞으로 내 몸에 손대지마. 라는 말까지 하려다가 그건 참았다. 웃기잖아. 무슨 저랑 나랑 남자 여자도 아니고 그런 말 자체가 웃길 것 같아서 나는 이쯤 하자고 생각했다. 박유천 저것도 눈치가 있으면 알아 먹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출구 쪽으로 나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몸을 돌리자마자 바로 맡아져 나오는 담배 향과 큰 손이 내 어깨를 잡아 다시 자기에게 돌린다. 나는 세게 잡힌 어깨가 아파 미간이 좁혀졌고 바로 마주친 박유천의 시선은 굉장히 뭔가 애타 보인다. "너는 나한테 궁금한 거 없어? 왜 내 말은 아무것도 안 듣고 가는데?" "...모르겠어. 지금 니 말도, 니 행동도 모르겠는데.......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것 같아." 내가 할 일은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빨리 가서 이젠 쉬고 싶다-라는 생각만 머리에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앞으로는 박유천의 이상한 행동 때문에 생각한다고 잠을 쪼개고 하고 싶지 않았다. 저 문을 열고 재중이 형을 보고 윤호 형을 보고 창민이를 보고...그 안에 있는 김준수와 박유천이 보고 싶다. 그냥 동방신기의 멤버이자 친구로 잘 남고 싶다. 괜한 저런 눈은 부담스럽다. 그러지마.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 괜히 불안하게 만들지 마라. 두꺼운 철문을 열자 바로 보이는 것은 빼꼼히 고개만 뺀 채 있는 재중이 형과 윤호형, 창민이였다. 아까의 우리 둘 사이가 안 좋아 보여서 몰래 쫓아온 것인지 엿듣고 있었던 낌새를 보인 세 사람은 내게 아무것도 못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마침 여길 지나가고 있었을 뿐이라는 어색한 거짓말을 했고 나는 그들에게 약간은 머슥한 미소를 하곤 손을 내저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니 걱정스런 얼굴로 기다리던 세 사람의 표정이 그제서야 펴진다. 나는 얼른 세 사람을 데리고 다시 대기실로 들어가려고 살짝 열여 있는 철문에서 손을 떼고 닫히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그래....!!" "......?" "그래, 넌 몰라서 좋겠다!!" 갑자기 비상계단 안쪽에서 들린 고함 소리에 우리 네 명은 가던 발걸음은 모두 멈추었고 모두 다 비상구 계단 쪽을 향하게 되었다. 비상구 계단 철문 사이로 들리는 그 쩌렁한 고함 소리에 복도가 모두 울린다. 그리고 이내 거칠게 열린 철문에서 박유천은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내게 소리 지르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렇게 막 행동하고, 남 상처 받을 생각 안하고 말할 수 있어서 좋겠다." "........" 처음에 나는 정말 이게 나에게 하는 말인가 싶어 멍청한 표정으로 눈만 껌뻑껌뻑 거리고 있었다. 지금...나한테 하는 말 맞아...? 옆에 서 있는 세 사람의 표정도 굉장히 놀란 표정이었다. 무슨 일인지 앞 뒤 상황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라 더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라고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아는 것도 아니어서 나는 목에 핏대 세워 크게 고함 지르는 듯한 박유천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모르겠지... 가슴 두근거리게 된 사람이 같은 그룹 멤버라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 그 사람이 지꺼랑 같은 게 다리 사이에 달렸을 때의 기분이 어떤지..!!" "..............."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아침에 욕실에 서서 면도할 때의 그 심란함 너는 아무것도 모르겠지...!!!" "................" "그래....넌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 같은 거.. 몰라서 좋겠다..." 뭐...? 살짝 떼어진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되묻는 소리가 비집고 나왔는데 크게 나오지 않은 그 소리를 아무도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박유천 너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이라니.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의 기분 같은 거.. 넌 몰라서 좋겠다." 심장이 갑자기 쿵- 내려 앉는 기분이 든다. 갑자기 핵폭탄 같은 것이 머리와 가슴 속에서 일어나는 느낌이었다. 꼭 토토독 쏘는 탄산 음료가 내 머리에 부어진 듯이 별이 보이는 느낌이었다. 나를 잠시 노려보듯 쳐다보던 유천은 조금은 씩씩거리는 거친 숨소리를 내며 손등으로 자신의 눈을 한번 슥 닦고는 자기 말을 끝났다는 듯 얼른 반대편 복도로 뛰어 가버렸다. 아니 지가 무슨 순정만화의 주인공도 아니고 뭘 저렇게 뛰어가. 한참 벙하니 뛰어가는 박유천의 등 짝을 바라보았다. 이마에서도 축구 하면서 놀 수 있을 만큼 넓지만 박유천의 등 짝은 마른 몸에 약간은 언발란스하게도 넓고 곧았다. 그게 참 당당하고 좋아 보였던 등이었는데 오늘은 왠지 초라하다. 그렇게 만든 사람이 나인건가 싶어서 내 좁은 어깨가 더 밑으로 추욱 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방금....내가 무슨 소리를 들은 걸까. 머리에서 정리를 하고 싶었지만 쉽게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냥 주마등처럼 여태까지의 박유천의 모습들이 머릿속에서 그려질 뿐이었다. "니가 잘못했네" "그러네..유천이 울고 있을 거야" "형, 달래주러 안가?" 어느새 뒤에 서서는 자기들끼리 자판기에 음료수를 빼먹으며 꼭 영화관람이라도 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굴던 세 사람이었고 내 어깨에 한쪽 손을 올린 윤호형은 씨익 웃고 있었다. 그리고 나보고 잘못했다며 심창민새끼는 나보고 달래주러 안 가냐면서 내 등을 떠민다. "아 내가 왜..!! 나 아무것도 잘못 한 거 없어!!" 쉰 듯 갈라지는 목소리가 복도를 매었다. 나는 그렇게 큰 소리 치고서도 혹시라도 박유천이 들었을 까봐 다시 박유천이 향한 복도 끝을 주시했다. 잘못한 게 없다면서 뭐가 그렇게도 가슴 조리고 두근두근 한 건지 김준수도 참 알지 못하겠다. "잘못한게 없기는..둔탱이 김준수 여태 박유천 마음 저렇게 무시했다고 하잖아" "저렇게 찐한 고백 듣고서도 무시하면 사람이냐" "빨리 가" "뭐.....?" 고백이라는 재중이 형의 말에 뚝 떨어졌던 심장이 더 밑으로 가는 느낌이었다. 그래..그건 누가 봐도 고백인 거지..? 내가 착각하는 게 아니라 박유천 그게 나한테 그렇게 말한 거 맞지? 내 얼굴은 누가 봐도 바보같이 입이 벌어지고 눈은 동그랗게 떠 있을 거였다. 심창민 새끼도 내 얼굴을 보면서 얼굴 봐라, 사진 찍어놓으면 또 짤방용으로 돌아다닐 감인데. 라면서 놀리고 있었는데 나는 어떻게 표정을 풀지 몰랐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머리가 새하얘진 기분이었다. "....나 어떻게......" "그냥 가서 안겨" 조금은 세게 밀었다 싶은 이 손은 윤호 형의 손. 바보같이 어버버 거리는 내게 얼른 가보라는 듯이 유천이 향한 복도 쪽으로 밀고 있었다. 나는 아파! 라면서 신경질적으로 손을 털어내듯 쳤는데 내 그런 투정에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세 사람은 웃고 있었다. 빨리 가서 잡아. 라는 재중이 형의 말에 나는 그 말에 마법이라도 걸린 듯이 뛰었다. 아 씨발 뭐야 진짜. 박유천 미친 새끼. 쥐새끼. 뭐야 진짜. 그런데 ..... 이렇게 열심히 뛰고 있는 김준수 너도 뭐니. 한참 그렇게 유천이 향했던 복도 끝을 향했고 나는 휴게실로 통하는 유리문을 보았다. 방송국 제일 끝머리 쪽에 있는 곳인 만큼 사람이 없어 한적한 이곳 유리문을 살짝 열자 밖의 바람이 차게 일어난다. 나는 그 바람 안에서 박유천이 자주 피는 던힐의 향을 맡으며 그대로 걸어갔다. 역시 내 기대를 버리지 않고 보이는 벤치에 앉아있는 넓다란 등과 어깨. "야..!! 빡유!!" "......왜" 나는 일부러 분위기가 무거워지지 않도록 발랄하게 목소리 톤을 높여서 박유천을 불렀고 내가 온 것을 보고서는 바로 힘없이 대답하던 박유천은 담배를 바닥으로 떨어트리고 발로 꺼버린다. 나는 벤치 옆에 앉아서는 박유천 새끼의 얼굴을 좀 더 자세히 보려고 했는데 계속 고개를 돌리면서 내 시선을 피했다. 울고 있었는지 또 수분기가 가득한 목소리다. 아 진짜...다 큰 남자애가 맨날 이렇게 눈물이나 흘리고. "화났냐? 삐졌어?" "...미쳤냐. 저리 좀 가" "나 좋다면서, 응? 그런데 나 보기 싫을 정도로 삐졌냐아아아 쥐새끼?" 응컁컁 거리면서 박유천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니깐 하지 말라면서 내 손을 계속 거둬낸다. 나는 그래도 계속 굴하지 않고 빡유야~ 내 얼굴 좀 보자 응? 이라며 말을 걸었고 박유천은 그런 내가 귀찮다는 듯이 밀어내고 있었다. 요놈 봐라. 내가 지 때문에 얼마나 고심하고 힘들었는지도 모르고 지 혼자 다 힘들었다는 표정이다. "......언제부터야?" "........몰라." 나는 아직도 꽁한 듯이 있는 박유천에게 살짝 다가가서 언제부터냐고 물었다. 내뱉는 듯이 말했지만 나는 엄청나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물은 거였다. 언제부터 좋아했냐고 직설적으로 이야기는 못하겠고 조금 뜸을 들여서 이야기 했는데 박유천은 단 두 글자로 몽땅 무시해버린다. "아 진짜 화났나 보네. 응? 응? 나 보면서 화 풀어라." 천사 시아 해줄게. 응? 유처나아아아아아~ 나는 그러면서 평소에는 잘 하지도 않던 애교를 박유천 앞에서 부리고 있었다. 아 이게 뭐야. 아까는 내가 틱틱대면서 혼자 잘난 듯 이야기 했었는데 지금은 손 가지런히 모으고 고개 까딱거리면서 귀여운 척이나 하고 있고. "진짜 몰라. 그런 거 따진 적 없어. 그냥...그냥 어느 새부터였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 내 손을 거둬내는 그 모습에 고개를 숙이자 신경 쓰였는지 바로 고개를 내 쪽으로 향하며 내 어깨를 잡아 토닥거린다. 나는 풀이 죽은 게 아니라 박유천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그런 것뿐이었다. 지가 지금 날 신경 쓸 때인가? 그리고 어느새 부터였다는 그런 멋진 말 해버리면 어쩌냐? 반칙이다. 진짜.. 내가 아무런 말도 못하게 만들고. 나는 또 박유천에게 알지 못할 감정으로 가슴이 울렁거리고 있었다. 꼭 심장에만 멀미가 난 듯이 아까부터 욱할 듯 하면서 또 간지럽기도 하고 쿵쾅거리기도 하고 이상한 감정들이 잔뜩 있어서 나는 미칠 것 같았다. "신경 쓰지마 그냥 이러다가... 이러다가 말 거야." ".........진짜?"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언젠간 되겠지." 한숨을 푸욱. 땅이 꺼져라 한숨을 크게 내쉰 박유천은 주머니에서 다시 담배 케이스를 꺼내서는 하나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이미 어두워진 밤이라 담배 불이 붉게 보이는 것이 묘했다. 목 울대가 물에 젖은 솜이라도 막혀 있는 듯 침이 힘겹게 넘어갔다. 박유천이 여태까지 나에게 찍접 거린 이유가 앞에 말한 것처럼 나를 좋아해서 라고 생각하니 왠지 안타까웠다. 조금 불쌍하기도 했고 끝까지 눈치 없이 굴었던 내 행동이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우씨..그러길래 누가 말도 안하고 그런 짓만 하래?! 내가 아니어도 이건 누구라도 몰랐을거다!! 그래..!! 아까 재중이 형이랑 윤호 형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눈치였지만 나는 몰랐잖아..!! 나 평소에도 그렇게 눈치 없고 둔하다며! 그럼 직접 적으로 이야기 하던가 같이 자자고 말하는 너야말로 뭐야. 진짜 박유천 미워죽겠어. 그런데.... 갑자기 박유천이 저런 모습을 보이니깐 싫다. 널따란 네 등이 왜 이렇게 갑자기 초라해 보이는 건지 모르겠다. 난 그런 니 모습 싫은데... "있지 유천아." ".........." " 나 요기가 이상하다." 나는 박유천의 손을 가져다가 내 심장이 있는 곳에 가져다 댔다. 내 손에 놀란 유천의 손이 움찔 했지만 나는 두 손으로 꼭 부여잡았다. 내 두 손으로 잡아야지 박유천의 손이 가려지려고 한다. 쳇. 손은 오지게도 크네. 나는 잠시 투덜댔지만 내 손에서 빠져나가려는 그 손을 더욱 단단히 쥐고서는 내 심장에 대었다. "니 말 듣고 나서...아까부터 심장이 간질간질해서 죽겠어." "어.......?" 박유천 손 아래에 있는 내 심장이 두근두근 거린다. 아 진짜 다 큰 남자 둘이서 뭐 하는 짓인가 싶어서 나는 얼른 유천의 손을 떼냈다. 아 김준수 미쳤어. 지금 뭐라는 거야. 그런데 정말 아까부터 긁지 못하는 곳에서 간질간질해서 손을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꼬물꼬물 뭔가가 심장가에서 피어 오르는 느낌이다. 간질거리기는 한데 긁을 수는 없고. 괜히 가렵지 않은 곳까지 벅벅 긁었다. "박유천." "......." "나는 말이지................" 조금은 차가운 겨울 바람이 일어났다. 꼭 그 바람 안에 우리가 주인공이 된 것 같이 같은 공기를 공유했다. 오늘 밤은 별도 참 많이 떴네. 차가운 바람은 모든 때를 다 벗겨낸다는 듯이 먹구름을 모두 가져갔고 우리는 잠시 그렇게 서로의 눈과 입술에 집중했다. § 북적북적한 팬 싸인회에서 잠시 짬이 난 그 틈을 이용해 으항항 웃고 다른 멤버들과 장난도 치는 준수다. 오늘의 준수는 굉장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옆에 앉은 유천이도 그런 준수를 보면서 생긋이 미소 짓는다. 아 진짜..그런 농도 짙은 시선은 그만하래두. 부끄러워 죽겠네. 준수는 그런 유천의 시선을 멈칫 피하고서는 자기 앞에 놓여있는 하얀색 켄트지에 마카로 낙서를 하기 시작한다. "유천이 이마에서 츄꾸하고 노는 저입니다. 응컁컁" 갑자기 들이대는 카메라를 보며 준수는 으항항 웃으면서 자신이 그리고 있던 그림을 보여줬다. 묘하게 자기를 닮은 그림을 보며 유천이라고 말하며 넓은 이마에서 축구하고 있는 자신을 그렸다. 옆에서 유천은 자기가 그렇게 못 생겼냐며 우와- 너무하다 라면서 준수에게 그림을 못 그린다고 하고 있었지만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분명 내심 좋아하고 있을게 뻔했다. 박유천과 김준수의 사이는 전과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동방신기의 멤버이고 같은 나이의 김준수에게만 유독 잘 대해주는 편한 친구다. . . . . . "나는 말이지.........아직 사랑 같은 마음 잘 모르겠어." ".............." 꿀꺽. 준수의 목으로 마른 침이 넘어간다. 아까의 그 오열에 찬 고백은 자신의 심장을 너무나도 간질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느낌 하나 가지고 좋다고 고개만 마냥 끄덕일 수는 없는 거니깐- "넌 내 옆에 너무 당연히 있어주었고...너무 다정했지만 그게 우정으로 느꼈었으니깐..." "......역시..그렇구나." 시무룩한 박유천의 얼굴이 보였다. 아 진짜... 팬들은 네 그 표정을 좋아하지만 나는 너의 그런 풀 죽은 표정 같은 거 좋아하지 않았다. 네 표정과 같이 네 넓은 어깨도 같이 바닥을 향하는 것 같아서 속상하다. 아직 내 이야기 다 안 끝났는데 왜 그렇게 움츠러드는 등인지 모르겠다. 준수는 찬바람을 후욱- 크게 한번 쉬었다. 박유천은 이미 고개를 숙인 상태고 저만 일어서서는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다. "그런데..... 별로 나쁘진 않을 것 같아." "........?" "윤호형이나 재중이 형이나 창민이가 했으면..바로 욕하면서 발로 깠을 텐데." "풉..." 준수의 말에 유천이 푸하하 웃어버리고 말았다. 준수는 그 웃음을 보며 진짜래도~! 솔직히 생각해봐라. 다른 형들이나 창민이가 나보고 같이 자자고 했으면 나 바로 어퍼킥 날렸어!! 괜히 과장된 몸짓을 하며 조그만 한 두 손을 꼬옥 쥐고 유천의 턱에 킥을 넣는 척을 한다. 유천은 그런 준수를 보며 맞지도 않은 주먹을 맞은 척 뒤로 훌러덩 넘어가며 으악- 오바스런 행동을 하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또 한번 두 사람의 사이에 불었다. 하지만 그 차가운 바람도 서로의 시선에 곧 따스히 변한다. "...........조금 천천히 가도 되냐?" "....언제든지." 그 날밤의 유천의 눈빛은 달빛을 머금고 있어서 더 아름다웠다. 어두운 밤이지만 준수의 붉어진 얼굴도 확연히 보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조금 천천히 가기로 약속했다. . . . . . . . "에에 뭐야 이거. 박유천 아냐? 유천의 머리에서 하루 종일 뛰어 놀겠다, 이거냐?" "스아실 축구는 혼자하는게 아니잖아요? 유천이 형 머리를 자기 혼자서 점령하겠다는 심리에서 나온 그림이란 말이죠" "김준수 말고는 박유천 머리에 아무것도 있으면 안 된다- 이 말이지?" 어느새 다가온 건지 준수와 유천이를 둘러싸고 있는 윤호, 재중 창민은 저들끼리 그림에 대해서 열띤 토로를 하고 있었다. 그 말에 얼굴이 새빨개진 준수는 아니라고 컁컁거리는 돌고래 소리를 내고 있었고 유천은 그걸 웃으면서 진짜야? 김준수 진짜지? 우와- 라면서 괜히 오바해서 더 큰 웃음 소리를 내고 있다. 얼른 유천이 그려진 종이에다가 마카를 들이대면서 아 형들도 그려줄께!! 같이 축구하면 되잖아!! 라고 항의해 봤지만 형들은 유천이가 그건 용납 안한댄다~ 라면서 빈정되는 웃음을 띄우고 다시 자기 자리로 가고 있었다. 얼굴이 빨개진 준수는 또 자신에게 정확히 꽂히고 있는 시선을 찾아 눈을 돌린다. 그 곳에서는 역시 박유천이 있다. 언제나 그렇게 바라 볼 수 있다는 듯이 곧은 시선을 하고. 조금은 어색한 웃음을 띄우며 헤헹 웃는 준수를 보며 유천이는 자신도 마카를 꺼내서 준수의 얼굴을 그린다며 그리고 있었고 준수도 유천이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을 보면서 응항항 웃으며 즐겁게 또 같은 공기와 온도를 유지한다. 당장 급하게 다가가지 않아도 된다. 아직 두 사람에게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으니깐. 조금은 천천히... 그렇게 두 사람의 사이가 가까워져 자연스레 마주할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