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인다. 얽힌다. 감긴다. 　　　　　　　　　　　　　　　　　하나가 된다. 　　　　　　　　　　　　　　　.끈　　　　　#00. 　　　　　　　　　　　　　　written by. 샤그락처녀 　　　　　　　　　　　　　(dndzidzid22@hanmail.net) 　　　 　　　　　　　　　　　　　　　　　　　　. 　　　　　　　　　　　　　　　　　　　　. 　　　　　　　　　　　　　　　　　　　　. "왜 나한테 지랄이셈?" "잔 말 말고, 그냥 갔다와라." "아, 싫어어! 네가 해!" ".....박유천, 진짜 뒤질래?" "응. 뒤질래." 윤호는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매캐한 연기를 흐드러지게 내뿜는 담배를 한번 투욱 털었다. 그의 교복남방은 이리저리 풀어헤쳐져 가슴팍이 훤히 들어 나 있었고, 유천은 쭈그리고 앉아서 한참이나 의미없는 표정만 일군다. 그리고, 땅에 얼굴을 박은채로 일어 날 생각도 하지 않고있는 한 남자의 몸 위에 저기 구석에서 뒹구는 교복 마이를 가져다가 덮어버렸다. "더러워. 에이씨. 이런 애를 어떻게 데려 다 주라는 거야. 씨발, 정윤호 너는 맨날 네가 다 쑤셔놓고 나한테 갖다 놓고 오래지. 내가 니 꼬봉이냐, 새꺄? 엉?" "얼른. 버리던지 모셔 다 주던지, 네 마음대로 하라니까. 보고만 있어도 토 나오니까." ".....보고만 있어도 토 나오는 새끼 미친듯이 핥아대던 게 누구였는데 그래." 짜증섞인 목소리로 중얼대면서 유천은 씁슬히 굳어진 얼굴로 한참이나 남자의 몸매를 훑는다. 하얀 몸 구석 구석 박혀있는 향기 없는 꽃자락들이 알려주는 그의 더러움. 분명, 이 녀석은 1시간 전만 해도 깨끗한 몸을 가지고 있었겠지. 그래- 정윤호의 눈에 띈 이상 더 이상 깨끗함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까. 유천이 손 가락 하나를 슬며시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아주 찝찝하다는 표정으로 그 쓰러져 있는 이름도 모를 남자의 들어 난 하얀 허리를 꾸욱- 꾸욱- 누르며 손 장난을 쳤다. "미친새끼. 얼른 갖다 놓고 오라니까. 뭐 하냐, 지금?" "아, 툭하면 욕이야. 너 자꾸 욕 하면 나 삐진다." ".....혈압 오르니까 얼른 그 걸레 들고 너도 꺼져버려. 얼른." 유천은 특유의 실실~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알았다구요, 알았어" 란다. 그리고는 정말 꺼질 생각이였는지 쓰러진 남자의 몸을 거칠게 들어 올렸다. 매가리없이 그대로 유천의 품으로 딸려 들어 온 남자는 갑작스레 자신의 몸이 들려지자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는지 안 떠지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올려 눈을 떴다. 그리고 심드렁한 표정과 눈짓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의외의 인물에 놀라기라도 한 것인지 멍한 눈짓으로 눈을 꿈뻑거리는 게, 상당히 귀엽고 예쁘장했다. 눈동자가, 굉장히 맑았다. .......굉장히 예쁘다. "......뭘 봐." 그 예쁜 눈동자가 자신을 쳐다보는게 뭐 그리 기분이 나빴던 것일까. 유천은 여전히 심드렁한 표정으로 저 위엣말을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그에 당황 한 남자는 재빨리 고개를 바닥으로 내리박았다. 둘의 모습을 앉아서 빤히 바라보던 윤호는 반도 안 핀 긴 장초를 그대로 저 벽쪽으로 튕겨버렸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서 교복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채로 그들에게 다가섰다. 맥없이 유천의 품에 안겨서 간간히 부들부들 자신의 몸을 지탱하는 그 남자의 턱을 잡고 천천히 들어 올린다. 두 시선이 아프게 엉켜들었다. 너무나도 무미건조한 윤호의 눈빛과는 다르게, 남자의 눈빛은 아찔히 일렁였다. "아직도 내가 좋냐, 예쁜아?" "........................................" "나 좋다며. 그래서 내가 너 핥아줬잖아. 예뻐 해 줬잖아. 그러니까 나 더 좋아해 줘야 하는 것 아니야?" "..........................으으.....흐윽......" 참았던 눈물을 그는 드디어 터트려버렸다. 유천은 "짜지마, 새꺄. 사내라면 이 정도 일에 우는 거 아니야!" 하고 우스갯소리로 중얼거리고, 윤호는 아주 자그맣게 피식. 하고 바람이 빠지는 듯한 무언가 의미가 담긴 웃음을 뱉어 버렸다. 남자의 턱을 쥐고있던 윤호의 손가에도 남자의 눈물이 툭- 하고 떨어져 내려왔다. 순간, 눈에 띄게 표정을 화악 굳혀버린 윤호가 그대로 발을 들어서 들어 나 있는 그의 마른 배로 내리찍어 버렸다. '파아악!' 하는 둔탁하고도 소름끼치는 마찰음과 함께, 남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 한채로 그대로 고개를 숙여버리는 것을 보아 아무래도 다시금 기절을 해 버린 것 같았다. 유천은 놀란 듯 남자를 바라보다가 윤호를 향해서 불만스럽다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이 잔인한 새끼. 그걸 또 때리냐, 안 그래도 헤롱헤롱 한 애를!" ".....드럽게 어디서 눈물 묻히고 지랄이야. 아, 씨발. 기분 존나 잡쳤어. 나 먼저 간다, 박유천." "야!! 야, 이 씹새꺄!!! 어디가아!!! 나보고 뭘 어쩌라고!!" 간절한 유천의 고함에도 윤호는 아무런 반응 없이 그대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열려진 셔츠를 잠구면서 말이다. 한참이나 멍하니 굳어있던 유천이 "아, 나 미치겠네..." 하고 짧게 중얼거린 뒤 안고있던 남자를 다시 소파위로 내 던져 버렸다. 정윤호의 취미라는 것을 처음에 알았을 땐 정말 기겁을 하면서 놀랐지만 녀석과 2년째 친분과 우정을 이어 온 지금, 이런 일은 정말 일상다반사였다. 늘 하루가 멀다 하게 여자를 갈아치우다 이내는 그 것도 못 참고 조금이라도 꼴리는 짓 하는 사내새끼 있다면 그대로 따 먹는, 그리고 그 사내들을 보고 더럽다 더럽다 하지만, 사실은 자기가 더 더럽다는 걸 모르는 친구인지 악마인지 모를 자식. 정윤호-... 유천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남자의 마이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머니 안에 들어 있던 핸드폰을 꺼내들고, 아무런 감흥 없는 표정으로 열어 이리저리 뒤지다가 이내 '이쁜 내 동생' 이라고 찍혀있는 번호에다 전화를 걸었다. -"헉, 형! 왠일로 전화 했어! 설마, 엄마가 벌써 말 한거야?!"- "......" 유천은 아무런 말 없이 그저 핸드폰을 통해서 들려오는 가느다랗고 높지만, 조금은 허스키한 이 목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을 정말 형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아다다 말을 이어가는 게, 무언가 당황 한 눈치였다. -"에이. 말 없는 거 보니까 엄마가 말 했나보네? 말 하지 말랬더니... 형 왜 이렇게 안 들어와! 나 형네 집이야. 짐도 다 싸왔어~ 많이 놀랐나 보구나, 형? 얼른 와! .......어라. 왜 말이 없어어..?"- "나 네 형 아닌데." 심드렁한 표정으로 무미건조하게 말을 내뱉는 유천. 그런 유천의 말에 상대편에서는 놀라긴 한 건지 잠시 아무런 말이 없었다. -"...누구세요...?"- "....니네 형 쓰러져 있으니까 네가 좀 와 줘야겠다. 드러워서 안고 가기도 싫거든." . .. ... .... ..... ...... ....... ........ ......... .......... ........... .......... ......... ........ ....... ...... ..... .... ... .. . ".....맙소사....." 핸드폰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유천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였다. 놀라 다물리지 않는 입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수수한 옷 차림을 한 녀석이 소파위에 넝마조각처럼 엎푸러져서 정신을 차릴 생각도 않는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유천은 핸드폰 플립을 닫고 자신의 교복 마이를 들고 일어서서 멍하니 굳어서 지금 상황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는 듯 보이는 녀석을 향해 툭 하고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중얼댔다. "아마 몇일은 못 일어 날 거다." ".....너 뭐야..? 이게, 이게 무슨 짓이냐고!!" ".....왜 나한테 그래요. 나 아니에요, 무섭게 왜 그래요-" 유천은 입술을 뚜웅 내밀고 멍하니 굳어있는 남자를 향해서 진심으로 억울하다는 듯 중얼거렸고, 그런 유천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리가 없는 남자는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다는 표정으로 유천을 바라보기에 급급 할 뿐이다. "그러게 누가 겁 없이 윤호한테 고백을 하랬나. 쯧... 어쨌든, 네 형이지? 그러니까 네 형 데리고 가서 엉덩이 맛사지 좀 해줘. 오늘 죽도록 굴리느라 힘들었을테니까. 난 상관없으니까 가 봐도 되지? 또 보자, 귀염둥아." 생글거리며 특유의 귀엽디 귀여운 웃음을 잔뜩 지어보이고 유천은 어이없다는 듯 자신을 죽일 듯 노려보는 남자의 뺨을 툭툭 건드려 주고는 그대로 조금은 역겨운 냄새가 나는 그 곳을 서둘러 빠져나왔다. 그리고 멍하니 굳어있던 남자는 재빨리 빠져나가는 유천을 따라서 나와봤지만, 이미 유천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후 였다. 질끈 아랫입술을 깨물고 한참이나 이곳 저곳을 둘러보던 그가 소파에 시체처럼 널부러져 있던 자신의 형이 생각 난 건지 서둘러 다시 그 쾌쾌하고 역겨운 냄새가 나는 창고 비슷한 곳으로 들어섰다. ".....형....." "....................." "............혀어엉......." 이미 울먹이는 중이다. 믿을 수 없었다. 1년 전, 워낙 성적이 좋고 출중하고 총명한 탓에 홀로 서울로 보내어진 형을 동경하여 자신도 죽도록 공부해서 드디어 형과 같은 고등학교에 붙었고, 그래서 형에겐 한 마디 말도 없이 멋지게 놀래켜줘야겠다는 심사로 다짜고짜 형으로 집으로 찾아 와 봤건만 있어야 할 형은 없었고 갑작스레 걸려온 형의 전화에 놀라서 이리로 달려 와 보니, 상황은 이렇게 번져 있었다. 처음보는 낯선 모습. 늘 봐 왔던 따뜻한 미소 없이 그대로 눈을 감고 쓰러져있는 형의 하얀 몸 구석 구석엔, 무언의 새빨간 꽃자락들이 즐비했다. 단 한번의 장면으로도, 단 한번의 대화로도 단 한번에 상황을 파악 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머리는 좋았다. 지금 자신의 형이 무슨 짓을 당한건지, 지금 자신의 형이 어떤 상태인지 확실하게 파악 할 수 있었다. 재빨리 형을 일으켜 업었다. 잠시 다리를 휘청이긴 했지만 빠르게 창고를 빠져나와서 한 손으로 형을 지탱하며 핸드폰을 꺼내들어 어딘가로 급히 전화를 걸었다. 응급실에 전화를 하려는 듯 하다. 그러나- "!!........ 형..." 정신을 잃은 줄로만 알았던 남자가 등에 업힌채로 전화를 하려고 핸드폰을 귓가에 갖다 붙인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헐떡이는 거친 숨을 내쉬며- 그의 귓가에 대고 너무나도 떨리는 목소리로, 아프디 아픈 목소리로. ".......준수야.....창피해.....병원...싫어......." 　　　　　　　　　　　　　　　　　　　　 . . . . . ........................... "........재중 형........" ".............집에 가자.....형이...우리 준수 왔으니까 맛 있는 거 해줘야지........" 가슴 언저리에서부터 무언가가 급히 끓어 올랐다. 참을 수 없는 이런 분노. 누군가를 증오 해 본적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없었다. 방금 자신의 형에게 몹쓸짓을 하고 그대로 도망치듯 사라져 버린 그 남자를 향해서 끓어오르는 이 느낌은, 단 한번도 느낀적이 없는 정말 엄청나게 큰 분노였다. 그리고, 방금까지 기절 한 상태였으면서, 웃음기 섞인- 한 없이 힘 없는 목소리로 저렇게 위엣말을 중얼거린 자신의 형에게. 형용할 수 없는 증오가 끓어올랐다. 형, 지금 무슨 짓을 당한건데. 무슨 짓을 당한거냐구!!!!! 어쩌면 그렇게 태평해...어쩌면 그래..... "누구야....." ".........응...?" 준수는 아주 천천히 걸었다. 여전히 재중을 등에 업은채로, 그렇게 천천히 걸으면서 중얼거렸다. "형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누구야.....?" "....................준수야... 많이 컸다..원래 형보다 키 훨씬 작았는데... 키 많이 컸다.... 우리 학교에 입학 한 거야...?" ".............. 누구냐구!!!!!!!!! 형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누구냐구!!!!! 방금 그 자식이지!!! 아까 있던 그 자식이지!!!" 　　　　　　　　　　　　　　　　　　　　. . . . . ........................... ".....정윤호는...내가...사랑하는 사람이야, 준수야......내가 참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야..... 미워하지마......" 울음섞인, 한없이 아픈 재중의 목소리에 준수는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방금, 그 녀석이... 그렇게 사라져 버린 그 녀석이, 정윤호라는 말이지. ....................................... 용서하지 않겠어. * 　　　　　　　　　　　　　　 묶인다. 얽힌다. 감긴다. 　　　　　　　　　　　　　　　　　하나가 된다. 　　　　　　　　　　　　　　　.끈　　　　　#01. 　　　　　　　　　　　　　　written by. 샤그락처녀 　　　　　　　　　　　　　(dndzidzid22@hanmail.net)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기보다는 차갑게 내려치기를, 따뜻히 웃어주기 보다는 차가운 비아냥을, 　　　　　　　'사랑한다' 고 따뜻하게 말 해 주기보다는 '사랑?' 이라고 비웃어주기를. 　　　　　　　　　　　　　　　　　monologue by. U-know 　　　　　　　　　　　　　　　　　　　　. 　　　　　　　　　　　　　　　　　　　　. 　　　　　　　　　　　　　　　　　　　　. "어제 잘 버리고 왔냐?" "씨발놈. 너 때문에 나만 의심 받았잖아, 개새끼야." 하품을 쩍쩍 해 가며 유천은 자신의 노란빛을 내는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게슴츠레한 눈짓으로 윤호를 노려보는 폼이 조금은 심기가 불편해 보인다. 윤호는 교복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가며 "왜?" 라고 웃음을 담고 되물었고, 걸어가다 잠시 침을 한번 타악- 뱉은 뒤 유천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걔 동생을 불렀거든. 근데, 나 보고 '네가 이렇게 만들었지!' 하면서 지랄대잖아." "...동생? 예뻐? 마음에 들어?" "예쁘긴 한데, 마음에 들진 않아." ".....쿡. 걔도 지네 형이랑 똑같이 만들어 주면 되겠네." "누가?" "네가." "미쳤죠? 나까지 당신 같은 변태 엔드 사이코로 만들지 말아줘요." 윤호는 여전히 웃음기 그득한 얼굴로 아무 말 없이 걸어나갈 뿐이였다. 교문 앞까지 다다르자 갑작스레 유천이 윤호의 팔에 굳건히 매달려온다. "윤호야. 나 명찰 없어잉!" "어쩌라고." "학주가 너한테는 아무 말 안하잖아. 나한테는 존나게 지랄한다구. 명찰 빌려주세요. 네네?" 어느새 찌푸둥한 표정을 지우고 헤벌레- 한 특유의 귀엽디 귀여운 미소를 얼굴 가득 띄우고 곰만한 등치를 흔들어가며 애교를 부려오는 유천에게 짜증섞인 눈짓을 한번 날려 준 후에, 윤호는 "먹고 떨어져." 하며 '정윤호' 라고 이름이 반듯하게 새겨진 명찰 한 개를 유천에게 내밀었다. 금새 명찰을 받아들고 자신의 가슴팍에 달고 너무나도 당당한 표정으로 교문을 통과하는 가 싶더니만. "박유천. 너 일로와, 일로와." "..아씨, 왜요! 명찰 달았잖아요!" "네 이름이 정윤호냐, 새꺄!?" "...아, 존나 짜증나! 왜 맨날 나한테만 지랄이셈!? 나만 만만하지! 나만 좆같지!!" "너 이 자식, 일로 안 올래!!" 어린 아이의 다리 길이 만한 몽둥이를 휘두르며 유천에게 다가서는 얼굴이 심히 거무죽죽한 학주와, 그런 학주의 내려쳐지는 몽둥이를 요리조리 살살 잘도 피해가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유천. 그리고 그런 그들을 남겨두고 유유히 학교 건물로 사라져버리는 윤호였다. 한참뒤에서야 얼굴이 땡땡 불어서 풀려 난 유천이 있는 대로 짜증을 부리며 교실로 들어섰고, 그는 결코 곱지 않은 손놀림으로 들고 있던 마이를 책상에 패대기 치더니 고대로 책상위에 얼굴을 묻고 잠을 청 하는 듯 했다. 반에 들어앉아 있던 모든 학생들은 그에게 설사 피해라도 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쥐 죽은 듯 조용해 졌지만, 일단 그것은 유천이 잠을 곤히 자게 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시끄러우면 벌떡 일어나서 고래고래 악을 지르는 유천의 못된 성미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제 마악 너무나도 달콤한 잠에 빠져들려는 순간- 누군가가 결코 약하지 않은 손동작으로 머리를 타악- 하고 내려 쳐 왔다. 순식간에 무언의 방해로 인해서 잠을 빼앗겨 버린 유천의 미간엔 굵은 川자가 그득히 새겨졌고 재빨리 고개를 들어서 무언가 심한 욕을 하려는 듯 입을 벌렸다가, 이내는 자신의 뒤통수를 내려 친 장본인을 확인 하고서는 그대로 입을 다물고 짜증섞인 목소리로 가볍게 중얼대기에 이른다. "뭐야, 심창민. 죽여버려." "...어떻게 너는 오자마자 잠 드냐. 진짜 대단하다니까." "...너 어제 왜 전화 안 받았냐? 윤호 화 났어. 어제 애들 다 모였었다구우. 당신 없어서 섭섭했답니다!" "....귀여운 자식-" 창민의 입가엔 보는 사람마저 기분이 좋게 만들어지는 아주 부드러운 웃음이 걸렸고, 그 웃음을 지으며 손으로는 유천의 결 좋은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고 있었다. 그러나 유천은 결코 좋지 않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아, 왜 지랄? 어제 다시 염색 한 거라서 함부로 만지면 안돼!" ".....똑같은데?" "아니여! 잘 봐! 틀려! 훨씬 더 노래졌어!" "....똑같다니까." "아씨. 아니라니까! 잘 봐봐!" 창민의 찌푸려진 안면으로 자신의 머리통을 마구 들이대며 유천은 흥분 한 듯 침까지 튀겨대며 소리를 지르고, 이내 졌다는 듯 창민은 "알았어, 훨씬 노래졌다. 됐냐?" 하고 우스갯 소리로 중얼댄다. 그제서야 기분이 풀린건지 유천은 들이댔던 자신의 머리를 원래 자리로 도로 가져다 놓는듯 하다가 이내는 다시금 책상에 패액 엎드려 버렸다. 유천의 앞 자리에 앉아서 MP3를 들으며 손 가락으로 책상을 톡- 톡- 튕기며 리듬을 타고 있던 창민. 그리고 엎드려 있던 유천이 무언가 생각 났는지 갑작스레 고개를 들더니 그런 창민의 귀에 꽂혀있는 이어폰을 급하게 빼 내었다. "아, 그 이름이 뭐였더라. 아...김....재중? 그래, 김재중. 너 그 새끼랑 같은 반이지?" "아아- 재중이? 응, 왜." "...재중이라고 하는 거 보니까 친한가 본데?" "응, 꽤. 그 자식 되게 착해. 귀엽고. 반에서 여자애들 제치고 귀엽고 섹시한 사람 1위로 선정 됬다나 뭐라나." "...지랄섹스들을 하는구만. 너네 반 그러고 노냐?" "그런가봐." 어깨를 으쓱- 해 보이며 자신은 상관도 없다는 듯 가볍게 웃음을 짓는 창민에게선 굉장히 묘한 느낌이 세어 나왔다. 유천은 잠시 턱을 괘며 무언의 생각에 빠져버렸다. 은연중 늘 느끼는 것이 있다면 자신에게 있어서 단 둘 뿐인 친구. 정윤호와 심창민은 도무지 알려고 들 수록 더욱 알 수가 없는 녀석들이라는 거다. 물론 자신도 그렇게 평범한 성격은 아니다만, 정윤호와 심창민은 그 도를 지나쳐서 아예 알 수 없는 녀석들로 자리매김을 한 학교 최고의 사이코들이다. 원래 생긴 것 부터 싸납게 생겨서 작년 학교를 입학 할 때부터 온 학생들의 시선을 끌었던 정윤호는 생긴 것 답게 포악하고 난폭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말수는 굉장히 없는 편이고, 거기다가 학교 학생들과 선생들이 모르는 무언가 세심한 구석이 있는 녀석이다. 물론 하는 짓은 싸이코 개 쌍또라이 쯤은 되겠지만. 아니, 저 말로도 부족 할 정도로 이해 할 수 없는 녀석이지만 말이다. 2년동안이나 친구를 해 왔지만 여전히 녀석은 알 수 없는 것 투성이다. 한번 화가 나기 시작하면 친구인 나도 개 패듯 팰 수 있는 녀석이 정윤호였고, 왠지 모르게 편하면서도 편히 대할 수 없는게 정윤호다. 싸움은 또 좀 잘하냐. 저번에 한번 장난으로 시비 걸었다가 된통 당한적이 있어서 그 후론 대답도 시원찮게 못하던 나다. 이제는, 뭐- 깡만 지랄같이 세져서 개기는 일이 종종 있다만.. 그리고 스마트한 외모에 사람 좋게 웃는다-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예쁘게 웃는 심창민은 온 학교 여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임이 틀림 없다. 성격 좋고 넉살도 좋아서 늘 잘 웃고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기분이 나빴다가도 웃음 만으로 상대방 기분을 화악 풀어주는 정말 대단한 녀석. 학교에 입학 한 후로 처음 알게 된 이 녀석과 친구가 되는 일은 한달도 넘짓 지나지 않아서 생긴 일이였고, 내가 녀석과 친해지자 자연스레 중학교때부터 친구였던 윤호까지도 창민이와 친해져 버렸다. 윤호는 나보다도 창민이를 믿고 신뢰해지만 나는 그딴 것 상관없다. 뭐, 처음부터 나는 믿을만한 인간이 되지 못하기때문이다. 딱 한번, 창민이의 화 난 모습을 본 윤호와 나는 그 다음부터 절대로 창민이에게 '그 말' 을 꺼내지 않았다. '그 말' 을 들은 창민이의 모습은- 이제껏 내가 봐 왔던 수많은 사람들의 화 난 모습들 중, 가장 무서운 모습이였기 때문이다. 정윤호도 쫄았을 게 틀림 없다. 아무런 말 없이 미친 듯 날뛰는 창민이를 보고만 있었으니까. 킬킬. "혼자 뭘 웃고 그래?" "응. 그냥- 웃기잖아." ".....새끼, 참 희안하다니까. 귀여운 놈." "...지랄. 네가 더 희안해." 원래 말투가 애교있고 장난기 어리긴 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에게 애 취급을 받아 본 일은 거의 없었건만 창민에게는 늘 어린애 취급을 받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창민의 성격은 딱 어른스럽고 자상한 편이라서, 기대는 걸 즐기지 않는 나도 은근슬쩍 기대게 되는 듯....... 뭐,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유천은 창민에게 게슴츠레한 눈짓으로 한번 쏘아 준 뒤, 이내는 쏟아지는 졸음을 참을 수 없다는 듯 그대로 책상위에 엎드려 버렸다. 창민은 유천이 엎드림과 동시에 다시 귓가에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은채로 흥얼 거리며 음악에 잔뜩 심취해 있는 상태였다. 유천은 잠을 청하고 있었기에, 창민은 음악을 듣고 있었기에 갑작스레 열리는 교실 문 소리를 듣지 못 했고 반 아이들의 웅성거림도 듣지 못했다. 비장하고도 심각하게 굳은 얼굴로 문을 열어제낀 것은 준수였다. 1학년 표시인 '김준수' 라는 이름이 반듯히 새겨진 주황색의 명찰을 달고서 너무나도 당당히 2학년, 그것도 유천이 있는 교실 문을 열어제낀 그를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는 반 아이들. 그러나 준수는 그런 그들의 시선따위는 아랑 곳 없이 너무나도 당당한 발걸음으로 교실로 쿵쾅 쿵쾅 들어섰다. 여전히 눈을 감고 음악을 듣는 창민, 여전히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하는 유천은 그런 그의 등장을 알 도리가 없었다. 한동안 심호흡을 하는 듯 하던 준수는 눈을 부릅뜨고 이리저리 교실을 둘러보는 듯 하고,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선배들의 눈짓을 애써 피해가며 어제 밤 보았던 그 남자를 찾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엎드려 있는 유천의 얼굴을 그는 볼 수 조차 없었고, 딱 한번 봤던 사람인데 뒤통수를 보고 그 남자를 찾아 낼 만큼 준수의 눈썰미는 좋지 못했다. 한동안이나 이리저리 둘러보던 준수의 눈에, 드디어 유천의 엎드려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 준수는 결코 조심스럽지 못한 발걸음으로 그를 향해 걸어갔고, 누군가의 등장에 눈을 감고 있던 창민은 자연스레 눈을 떴다. 그리고, 헐렁한 교복을 입고서 잔뜩 굳은 얼굴로, 거기다가 1학년인 얼굴에 솜털도 채 가시지 않은 왠 놈이 자신의 앞에 서 있자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떠 보였다.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은 마주쳤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동자지만, 왠지 모르게 심장을 관통하는 듯한 창민의 시선에 잠시 흡- 하고 날숨을 들이마시는 준수였다. 그리고서는 일렁이는 눈동자를 그에게서 떼어내고 엎드려서 곤히 잠이 든 듯 보이는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너 누구야?" 창민은 결코 나쁘진 않은 목소리로 준수를 향해 조용히 물었고, 준수는 그런 그를 쳐다보면서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결국 창민의 얼굴에도 차츰 감정의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지그시 인상을 찌푸리는 창민으로 인해 준수는 잠시 멈칫 했지만, 다시금 날숨을 들이마시며 용기를 내어 자신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창민을 향해 입을 열었다. "실례지만... 정윤호라는 사람, 몇 반인 줄 아세요?" 말 끝을 살짝 떨기는 했다만, 그래도 다부진 목소리였다. 창민은 처음 보는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이름 '정윤호' 를 듣고 놀란 듯 잠시 눈을 크게 띄였다가, 대답을 해주려는 듯 입을 벌렸고. 창민이 무언가 말을 꺼내려는 그 순간, 엎드려 있던 유천이 드디어 몸을 부스스 일으켰다. "...왜그래?" 하는 잔뜩 짜증섞인 목소리를 하며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옆에 누군가 서 있다는 것을 이제서야 자각한 듯 그가 고개를 들어 준수와 시선을 맞추었고, 그런 유천을 본 준수의 눈동자는 급격히 늘려지고 말았다. '찾았다..!' 하고 마음속으로 중얼 댄 준수의 눈동자는 이미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은 어느덧 주먹이 옴팡지게 쥐어졌고, 지그시 아랫입술이 깨물렸다. 잠시나마 가라앉아 있었던 열들이 다시금 천천히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갑작스레 떠올려지는 자신의 형, 김재중의 모습.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대로 쓰러져서 오늘 아침까지 눈을 뜨지 못한 자신의 형. 그리고, 오늘 아침 자신을 더욱 기겁하게 만들었던, 침대 가득한 새빨간 핏자락들. 안 된다. 이러면 안 된다. 라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 한동안이나 심호흡을 한 준수의 남아있던 이성까지 모두 폭팔하게 만들어 버린 유천의 한 마디. "어어- 너, 어제 그 걸레새끼 동생 아냐? 너도 이 학교야? 신입생?" 　　　　　　　　　　　　　. . . . . . ............ 걸레.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걸레' 라고 자신의 형을 더럽게 칭하며 너무나도 쉽게 웃고 있었다. 형은 밤새도록 눈을 뜨지 않으면서까지 그렇게 중얼거렸는데- '정윤호 미워하지마, 준수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야.' 라고.. 그렇게 평생 흘릴 눈물과 고통을 그렇게 다 참아냈는데, 정작 정윤호라는 이 사람은 우리 형을 걸레 조각, 그것도 다 찢어진 걸레 조각 따위로 보고 있었다. 순식간에 두 눈가에 차오르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다. 자기 자신조차도 제어 할 수 없을만큼 준수는 심히 흥분 한 상태였다. 그대로 준수의 다부지게 쥐어진 주먹이 유천의 생글거리며 웃는 안면으로 박혀 들었고- '퍽!!' 하는 둔탁한 소음이 조용하던 교실을 싸늘하게 울리고 말았다. "야!! 너 뭐야!!!" 당황한 듯 창민도 벌떡 일어나서 준수의 손목을 낚아채었지만, 정작 맞은 유천은 고개만 돌아가 있을 뿐- 아무런 행동도, 아무런 표정도 지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주먹 한 대로 모든 앙금을 날려버릴 정도로 준수의 분노가 조그마한 것은 당연히 아니였다. 그대로 다시금 준수의 두 손이 억세게 유천의 멱살을 잡아챘고, 창민이 그대로 준수의 몸을 붙들었다. 그리고 시작되는 준수의 울음섞인 고함. "이 씨발새끼야!!! 네가 뭔데!!! 네가 뭔데 우리 형을 그렇게 만들어!!! 걸레!? 걸레!?! 씨발새끼야!!! 형은, 형은 아직도 너 때문에 일어나지도 못 하고...!! 우리 형이 얼마나 깨끗하고 착한 사람이였는데!!!!! 네가 뭔데!!!!!" 그렇게 미친 듯 울먹이며 소리치는 도중에도 준수의 시선은 유천에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되새겨 보고 있었다. 확실했다. 그 명찰엔 아주 반듯하게 '정윤호' 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고, 그 이름이 한번 더 자신의 뇌리에 상기되자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아무런 죄책감 따위는 없다는 듯, 그냥 우습기만 하다는 듯 그저 그렇게 자신을 바라보는 유천을 향해서 다시 주먹을 쥐어버리는 준수였지만, 이내 그 주먹 쥔 손목은 그대로 유천의 손에 쉽사리 잡혀버리고 말았다. 반 아이들의 모든 시선이 그들에게로 가 있었고, 유천이 그냥 그렇게 맞고만 있어 줄 위인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상기 한 듯 창민은 그들에게서 한 발자국 물러서 주었다. 준수가 잡힌 손목을 빼 내려 이를 악 물고 손을 비틀어 보았지만, 유천은 아무런 미동없이 그저 가볍게 여전히 준수의 손목을 아주 세게 쥐고 있을 뿐. 한참이나 그렇게 소리없는 힘 싸움을 벌이자 이내는 자신의 힘은 유천에게 새발의 피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자각한 듯 준수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모든 열들을 아주 깊게 한숨으로 토해냈다. 그리고, 약간씩 경련까지 일어나는 눈을 비집고 뜬 뒤에 결코 그냥 넘길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눈빛으로 유천을 쏘아보았다. 두 눈 가득했던 준수의 눈물들은 떨어질랑 말랑을 연속하다가 이내는 바닥으로 툭 떨궈지고 말았다. "놔. 놔... 씨발새끼, 네가 그러고도 인간이야!? 네가 인간이냐구!!!" "뒤지고 싶냐." 탁하게 가라앉은 유천의 눈동자를 그제서야 진지하게 마주친 준수는 순식간에 퍼져오르는 온 몸의 살기에 잠시 쏘아대던 입을 멈추어 버렸다. 그의 의지대로가 아닌, 말 그대로 몸이 제멋대로 움직여 입이 막혀버렸다. 이런 유천의 모습을 몇 번 보지 못한 반 아이들도 그대로 숨을 죽이고 그들의 미동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고, 창민은 한동안이나 그들을 바라보다가 이내는 아까 자신이 앉았던 자리에 다시 철퍼덕 앉아서 이어폰을 귀에 꼽고 있었다. "너 방금, 이 손으로 여기 때렸냐?" 아무런 표정없이, 그저 그렇게 낮은 목소리로 중얼대어 보이며 유천은 준수의 손목을 붙들지 않은 나머지 손으로 자신의 발갛게 부어오른 뺨을 가르켰다. 준수는 일렁이던 눈짓을 멈추고, 다시금 눈에 강하게 힘을주고 터지려는 울음을 그렇게 끄윽 삼키며 말을 이었다. "그래, 때렸다. 때렸다구. 억울하면 너도 때려. 때리라구!! 너는 짐승만도 못한 드러운 인간이야. 그래도 너 같은 자식 좋다고 징징대는 내 형, 내 하나뿐인 형한테 미안하니까. 너도 나 때려. 아마 우리형은 내가 너 때렸다고 하면 나랑 당장에 인연 끊을지도 모르거든? 그만큼 너 좋아한데. 아니, 사랑한데!!!!! 근데, 네가 우리형을 그렇게 만들어!?! 정윤호!!! 네가 인간이냐구!!!!!" 어제부터 벌어진 이 모든 상황을 알 리가 없는 반아이들은 저렇게 진지하게 소리치는 남자의 입에서, 쌩뚱맞게도 '정윤호' 라는 이름이 흘러나오자 다들 '뭐야' 를 연발하기 시작했다. 분명, 준수가 때린 사람은 유천인데 준수는 여전히 유천이 윤호인 줄 알고 계속해서 무어라 무어라 이해 할 수 없는 말들만 골라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준수가 오해를 해도 확실하게, 너무나도 대단한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는 유천은 자신도 모르게 터지는 웃음을 막지 못하고 그대로 피식- 하고 낮게 웃음을 흘려버렸다. 젠장..... 정윤호, 너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 되는 일이. "웃겨? 웃기냐고! 너 지금 웃음이 나와!? 사람 한 명 완전 죽여놓고!! 웃음이 나오냐고!!!" "아, 나 진짜 봐 줄래도 봐 줄수가 없게 개기네. 야, 이 귀염댕아." "뭐!?!" "난 정윤호가 아니라고!!" 드디어 말 해버렸다. 순간, 그 소리를 들은 준수는 기가 차다는 듯 '하!' 하고 탄성을 질러댔고- 그대로 시선을 내려서 유천의 가슴팍에 달려있는 명찰을 코옥 손으로 찌르며 다시 한번 크게 소리를 내질러 버렸다. "그럼 이건 뭔데!? 네 가슴팍에 달려 있는 명찰에 '정윤호' 라고 새겨진 건 어떻게 설명 할 건데! 그리고 어제 그 자리에서 우리 형하고 같이 있던 너는 어떻게 설명 할 건데! 내가 하룻 밤 사이에 얼굴 잊어 먹을 정도로 멍청한 줄 아냐? 어? 내가 그렇게 만만해!?" 어이가 없어도 이렇게까지 없을 수는 없을거다. 유천은 여전히 황당하다는 듯 피식 피식 하는 바람이 빠지는 듯한 웃음을 계속 흩날리고 있었고, 그런 유천의 행동이 절대 마음에 들리가 없는 준수는 더욱 더 뻗쳐오르는 열을 견디지 못하고 잡히지 않은 다른 손을 이용해서 유천의 뺨을 내치려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바로 또 다시 나머지 손으로 준수의 들린 손을 잡아채는 유천덕에 준수는 더 이상 화를 참을 수 없을 데 까지 끌어올려 버렸다. "미친자식. 뭘 좀 알고나 말 해라. 나는 정윤호가 아니라 박유천이고, 어제 너의 소중한 걸레 형 김재중을 그렇게 만든 건 4반의 정윤호라는 자식이야. 정윤호는 어제 그 걸레 쑤셔놓고는 나한테 떠맡기고 고대로 날라 버렸고, 나는 그 걸레가 어디 사는지도 몰라서 그 걸레 핸드폰 뒤져서 네 핸드폰에 전화를 건 거라고. 그리고 이 명찰은 오늘 아침에 내가 정윤호한테 빌린 명찰이고! 이제 알겄냐, 싸가지가 바가지로 없는 귀염댕이야?" 　　　　　　　　　　　　　　　　　　　. . . . . . . . .......... 청산유수가 흐르듯 줄줄 말을 내뱉는 유천으로 인해서 준수는 아무런 말도 못 한채로 그저 멍하니 굳어버릴 수 밖에. 뭐, 뭐야... 정윤호가..... 아니라는 거야? 준수는 일렁이는 눈동자로 유천의 시선을 마주했다. 유천의 시선엔 거짓 따위는 단 한덩이도 담겨 있지 않았고, 거짓과 진실을 가려내는 것 쯤은 준수도 쉽게 할 수 있었다. 그럼, 이 사람은 정윤호가 아니라는 말이잖아. 근데 난 이 사람을 때렸고. 그리고, 이 사람은 2학년이야. 난 오늘 갓 학교를 입학한 1학년이고. 왜, 왜, 왜!! 이제서야 이 모든게 자각이 되는 거지!?! 준수는 잔뜩 겁이 먹은 눈동자로 유천의 시선을 마주했고, 유천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잔뜩 일궈 낸 채로 온 몸을 사시나무 떨 듯 오들오들 떨고있는 준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반 아이들은 이제서야 모든 상황을 이해했던지 이 상황을 구경하던 것을 관두고 다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고, 조용하지 못한 교실안에서- 여전히 유천의 두 손에 자신의 두 팔을 잡힌채 준수는 어찌 해야 할 바를 몰라 이리저리 눈알만 굴리고 있었다. 완전히 역전이 되어버린 상황. 이제, 준수가 유천에게 두 손 닳아라 싹싹 빌어야 할 상황에 오고야 만 것이였다. "너 어떻게 할거야? 내 뺨 후려 갈긴 거 어떻게 할 거냐구- 내 얼굴 비싸. 너 같은 촌닭이 함부로 손 댈 만한 얼굴이 아니라구." "......." "왜 말이 없냐? 아깐 말 잘만 하더니만, 왜 지금은 말이 없어-" 이미 준수의 두 눈 두덩이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창민은 듣던 MP3를 내려놓고 턱을 괜 채로 준수의 온 몸을 위 아래로 샅샅히 훑어보고 있었다. 재미있다는 듯, 아주 의미심장한 웃음을 띄운채로 말이다. 그런 창민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몹시나 불만스럽다는 말투로 중얼대는 유천. "창민아. 이 자식 이거, 어떻게 해야 돼?" ".....글쎄. 아무것도 모르고 그런거니까, 그냥 봐 줘. 1학년이잖아." "너 방금 나 맞는 거 봤잖아! 내 잘생긴 페이스에 데미지가 생기면 어떡해! 봐 봐. 얼굴 뻘개졌지?" "괜찮아. 귀엽기만 하구만 뭘. 빨간 게 더 귀엽네, 우리 유천이. 볼터치 한 것 같이." "미친새끼, 장난 까!?" 이내 유천은 창민이의 말 장난에 걸려들어 스르륵 준수의 잡았던 손목을 자연스레 놔 버렸고, 준수는 가만히 자신의 손목을 들여다 보았다. 방금 유천이 잡았던 손목은 바알갛게 부어올라 있었고 이제 얼마 안가서 분명 새파란 멍이 들 것이 자명했다. 이제 어떡한다는 말인가. 사실 싸움에 일가견이라고는 저기 멀고 먼 이국땅으로 던져 버렸다고 할 정도로 싸움엔 지지리도 자신이없는 준수였다. 이 남자는 보아하니 학교에서 알아주는 양아치인듯 싶었고. 거기다가 2학년 선배다. 두다리도 아닌 한다리선배다. 두다리라면 어리다고 봐 줄 지 언정, 한다리가 다짜고짜 자신의 뺨을 후려친 못되도 한참 못된 후배따위를 어리다고 봐 줄리는 절대로 없었다. 이제, 끝장이였다. 한참동안이나 유천은 준수를 돌아보지 않고 창민과 무어라고 말 싸움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런 그들을 보며 차오르는 공포감과 두려움 때문에 몸만 죽어라고 떨고있는 준수. 그 때- 창민은 유천에게 무어라 무어라 중얼거리며 준수를 향해 손짓을 했다. 훠이- 훠이- 하고 손을 저어대듯, 어서 가 보라는 손짓. 순간. 울컥하는 기분과 함께 준수가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멍하니 눈물만 흘려대며 서있자, 이번엔 창민이 잠시 흘깃하며 준수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아주 살짝이지만 조그맣게 웃음을 지으며 어서 가라는 듯 다시 한번 손짓을 해댔다. 눈을 질끈 감고 그대로 준수가 교실문을 빠져 나갔고, 한참이나 창민에게 무어라고 쏘아붙이던 유천이 옆을 돌려 봤을 때, 이미 준수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린 후였다. "야, 심창민!! 너 때문에 이 자식 놓쳤잖아!!!" "너 정윤호 취미 닮아가냐. 그 어린 것 무서워서 벌벌떨어대는 거 안쓰럽게 뭘 또 지랄을 하려고. 그냥 내비 둬. 너 아닌 거 알았으면 됐지." "싫어!!! 나 뺨 맞은거 절대 못 참아!! 네가 나에게 키스를 한다고 해도 못 참아!!" "그냥 참지마." 　　　　　　　　　　. . . . . . . . . ............................................... "장난식으로 말 하긴 했지만, 나 정말로 화 났다고. 친구놈들 한테도 손도 못 대게 하는 내 면상에 주먹을 박어? ........안 참아, 창민아. 아니- 못 참아." 조용한 교실 풍경은 여간해서 쉽사리 적응이 되질 않는다. 윤호는 한참동안이나 찌푸린 얼굴을 하고서 탁- 탁- 하고 손가락으로 조용한 교실에 조금이나마 반영이 되도록 책상을 건드려 보았다. 2학년으로 올라오기 전 까지만 해도 박유천 녀석과 같은 반이였고- 심히 시끄럽기는 했지만 서도 심심하진 않았던 걸로 기억되는데. 지금은 원, 학교를 왜 다니는 건지. 그저 시간 떼우려고 다니는 건지 아니면 집에 있으면 엉덩이가 배겨서 다니는 건지. 이유조차 모를 정도로 모든 게 진부하고 심난하다. 잔뜩 인상을 굳히고서 윤호는 무언가를 계속 중얼대며 칠판에 따닥.따닥 하고 분필을 부딪히며 열심히 수업을 하고 있는 선생을 결코 곱지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그 곳으로 가 있었지만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생각은 수업과는 전혀 무관 한 것. 바로, 어제 저녁즈음에 자신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했던 그 녀석의 얼굴이였다. '좋아해.' '정말 많이 좋아했어, 예전부터. 남자가 고백해서 기분 나쁘지...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좋아하는 것 같아.' '왜... 대답이 없어?' 대체 무슨 대답을 바라고 그런 고백을 해 온건지는 알 수 없겠지만. 나는 여자, 남자 상관없이 일단 고백이라는 걸 받으면 무조건 기분이 엿 같아 진다. 대체 나에게 뭐 그리들 바라는 게 많은 건지. 일단 얼굴은 심각히도 예쁜 녀석이였고 남자고 여자고 간에 하룻밤 즐기는 데에 예쁘기만 하면 무조건 다 오케이라는 일념을 가지고 사는 나였기에 녀석이 남자라는 이유 따위에 연연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열 받는다. 명치 끝까지 파고드는 짜증을 막을 길이 없었다. 대체 그 고백이라는 것을 입 밖으로 꺼낸 이유가 무엇이냔 말이다. 자신과 사귀어 주기를 바라는 건가? 택도 없는 소리다. 주제를 알고 하늘을 봐야지, 어디서 망발이냐. 그 죄로- 나는 녀석을 아주 짖궂게, 처참히 밟아주었다. 정말 원하는게 이거 아니였냐? 하는 말도 안되는 말로 녀석을 위로해주며 말이다. 금방, 시들어 버릴 거면서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녀석들 따위는- 아주 예쁘게 죽여버릴거다. 아주 예쁘게. 한참이나 무언갈 곰곰히 생각하는 듯 멍하니 있다가, 핸드폰을 들어서 창민의 번호를 가볍게 찍어 눌르고 귓가에 핸드폰을 가져다 대는 윤호. 신호음이 두 번이 채 지나기도 전에 들려오는 늘 한결같은 창민이의 목소리. -"어, 윤호야."- "창민이 너, 김재중이랑 같은 반이랬지." -"....아까 난리 났었다. 유천이한테 김재중 동생이 찾아와서는.."- "아아, 됐어. 나중에 말하고, 김재중 학교 왔냐?" -"아니. 안 왔더라."- "김재중하고 친한 녀석 지금 우리 교실 앞으로 보내. 얼른. 급하니까." 선생님의 목소리만 메워지던 교실은 어느덧 윤호의 목소리까지 덧 붙여 울렸지만, 정작 선생은 아무런 말 없이 너무나도 당연스레 계속 수업만 진행하고 있을 뿐이였다. 전화를 가볍게 끊어제끼고 윤호는 그대로 책상위에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던 가방을 들고 일어서서 교실을 나와버렸다. 교실 앞에서 복도 바닥에 한참이나 침을 뱉어대고 있을 때쯤, 커다란 안경을 끼고 있는 녀석의 형태가 어스름하게 들어났다. 그런 남자에게 다짜고짜 불쑥 용건부터 꺼내오는 윤호의 표정은, 상당히 심기가 불편 해 보인다. "김재중네 집이 어디냐?" 그냥 한번 지져주고 넘어가 버리기엔, 네 자식은 꽤나 아까운 놈이였어. 굉장히- 예뻤거든. 아주 철저하게 더 밟아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말이야. 웃음이라는 것을 다시는 못 짓게 만들어 주고 싶을 정 도로, 너는 예뻤어. 　　　. . . . . . . . . ............................특히, 그 우는 게 말이야...................... 　　　　　　　　　　　　　　 묶인다. 얽힌다. 감긴다. 　　　　　　　　　　　　　　　　　하나가 된다. 　　　　　　　　　　　　　　　.끈　　　　　#02. 　　　　　　　　　　　　　　written by. 샤그락처녀 　　　　　　　　　　　　　(dndzidzid22@hanmail.net) 　　　진짜로 나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명도 없다. 내가 웃는 이유는 　　　　　　　무조건 단 하나다. 모순으로 둘러쌓인, 울음 따위는 거북하기 때문에. 　　　　　　　　　　　　　　　　　monologue by. Micky 　　　　　　　　　　　　　　　　　　　　. 　　　　　　　　　　　　　　　　　　　　. 　　　　　　　　　　　　　　　　　　　　. 아파트 단지에 들어 설 때부터 무언가 초조해지는 게 강하게 느껴졌다. 괜시리 울컥 울컥 치닫는 짜증도 결코 무시 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랗다. 잠시 인상을 지긋하게 찌푸려 보인 윤호는, '902호' 라는 말을 계속해서 곱씹으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9' 라는 숫자를 괜시리 세게 누르고서는 잠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훑어본다. 　　　　　　　　　　　. . . . . . . .............우습게도, 악마 같았다. '띵-' 하는 그닥 좋지 못한 소음과 함께 엘리베이터 문에 가로로 갈리며 열렸고, 윤호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마자 바로 눈에 띄는 902호 현관문을 보고 잠시 날숨을 들이마셨다. 무언가 떨리거나 무서운 일도 없는데, 왠 일인지 괜시리 심장의 고동이 갈수록 급박해져왔다. 무언가 긴장했을 때 느껴지는, 입 안의 갈증과 몸안이 타들어가는 듯한 기분 나쁜 느낌.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시금 표정을 바로잡으며, 꽤나 예의바르게 현관 문 옆에 달려있던 벨을 두번 눌렀다. '띵동- 띵동-'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지 30초는 거뜬히 지났건만 안 에선 아무런 기척도 나지 않았다. 잠시 심기가 불편해진 윤호가 이번에는 조금 우왁스럽다 싶게 벨을 눌렀고, 그리고 한참이 지나도 역시나 문은 열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씨발." 안 그래도 차 올라 있던 짜증은 머리 끝 정수리까지 치닫고 올라왔다. 이런 상태에서 재중을 만난다면, 자신을 제어 하지 못하고 무슨 짓을 할지는 윤호조차도 알 수 없는 일. 그러나 윤호에게도 조금의 이성은 남아있는 상태였다. 한참의 심호흡 끝에 다시 한번 눈을 부릅뜨며 벨을 누르려고 손을 들어올리는데- 비척이는 발소리가 현관 안 쪽에서 어렴풋이 들려왔다. 그리고 얼마 후, '누구세요...' 하는 다 죽어가는 메마르고 거칠다 못해 투박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잠시 회심의 미소를 지은 윤호는 아무런 대답 없이 그대로 현관 앞에 서 있을 뿐. 안 쪽에서는 이상하다 싶었는지 한동안이나 문을 열지 않다가 이내는 결심을 하고 문을 여는 듯 싶다. 부드럽게 열리는 현관문. 그리고, 그 사이로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던 재중은.. "!!!!!....." 윤호를 발견하자 마자 눈이 급격하게 일렁였다. 움찔거리는 두 손으로 한동안이나 온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벌벌 떨어대던 그는 급히 문을 닫으려 현관 문 고리를 잡았지만 이미 윤호는 재빨리 집 안으로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집 좋네?" 　　　　　　　　. . . . . . ........얼굴 가득 지어진 심장을 파고드는 비웃음. 몸이 떨렸다. 목은 탁- 하니 메여왔다. 몸을 이루는 기관들이 하나 둘 씩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스러운 느낌. 자신을 바라보며 생긋 웃음짓는 윤호를 보고는 재중은 재빨리 시선을 피해 아래쪽에서 두고야 말았다. 그리고,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마자 보이는 것은 자신의 알몸. 온 몸에 짧은 반바지만 간당하게 걸쳐 있을 뿐, 위의 티셔츠는 어젯 밤 준수가 벗겨 냈는지 발 밑에 형편없이 던져져 있었다. ".....무...슨...일이야....?" 끝이 살짝 갈라지는 결코 좋지 않은 목소리로 재중이 조심스레 물었고, 윤호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집 인냥 소파에 철퍼덕 앉아 양해도 구하지 않고 담배를 입에 물어 익숙하게 불을 붙여갔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재중은 일단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옷이라도 입어야겠다는 심사로 바닥에 떨어져 있는 티를 들어올렸지만, 그의 행동은 낮게 울려 퍼지는 윤호의 목소리로 인해 금방 저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입지마. 안 입는게 보기 좋아." 심장이 철렁 하며 몸 저 끝으로 내려 앉는 듯한 아찔한 느낌이 재중의 온 몸을 삽시간에 엄습 해 왔다.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다. 한동안이나 떨리는 손으로 티를 쥐고있던 재중은 윤호의 말을 똑똑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티를 입으려는 듯 들어 올렸고, 그의 행동을 하나 하나 자세히 지켜보고 있던 윤호는 지그시 자신의 눈썹을 찌푸려 보이며 다시 한번 똑똑히 말했다. "입지 말라고 했다." 집 안은 온통 소름끼치는 침묵으로 뒤덮혀 있었다. 한치의 숨소리 조차도 용납하지 않는 너무나도 잔인한 침묵. 숨이 멎을 것만 같다. 탁탁 막혀오는 목과 숨때문에 재중은 숨 조차 쉬기도 곤란할 지경까지 와 버렸다. 　　　　　　. . . ......결코 무섭기 때문이 아니였다. 그렇게 짓밟히고도 아직도 이 사람을 　　　　 향해 미친 듯 뛰어대는 나의 심장이 미치도록 경멸 스러웠다. "...왜....온 거야..." "왜? 오면 안돼? 너 나 좋다며." ".....너는 아니잖아.. 어제 네 마음 똑똑히 잘 알았으니까, 이젠... 얼굴 보는 일 없었으면 좋겠.." "닥쳐." 낮게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에 다시 한번 온 몸이 반응을 해 왔다. 눈에 띄게 어깨를 움찔하며 어느덧 두 눈동자 가득 눈물을 채워버리는 재중을 그저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바라만 보고 있던 윤호의 입에 잠시 비릿한 미소가 걸린다 싶었을 때, 윤호는 몸을 가볍게 일으켜 재중에게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가서고 있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재중은 눈동자를 일렁이며, 미친듯 뛰어대는 심장이 담겨있는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고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윤호의 발걸음을 피해 천천히 뒷 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왜.....왜 이러는 거야.....대체......" "예뻐서." "......왜.....나한테.....난, 잘못한게 없는데... 그저, 네가 좋다고 고백을 했을 뿐인데...." "빙고. 그게 잘못한거야. 네 주제에 감히 나한테 고백따위를 해?" 　　　　　　　　　. . . . . . .........어쩌면, 이렇게 잔인 할 수가 있는건지. 재중은 점점 더 자신에게로 거리를 좁혀오는 윤호를 바라보니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무서운 예감.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또 당할 것만 같다는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너무나도 끔찍스러운 예감이 온 몸을 관통하고 들어왔다. 타악. 등 뒤에 차가운 한기가 느껴졌다. 안돼. 안돼..... 안돼....... "왜, 왜....!! 나 싫다며...그래, 나 따위가 고백해서 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어. 이제 네 눈 앞에 띄는 일은 없을테니까, 제발 이러지마. 왜 집까지 찾아와서...!!" "누가 내 눈앞에 띄지 말래? 넌 이제부터 학교에 내 허락없이 나오지 않는다거나, 아무 말 없이 나오지 않는다거나 하면 그땐 죽어. 하루도 빠짐없이 내 옆에 붙어서 몸을 제공해야 돼." ".....내가 왜......!" "....................나 좋아한다며?" 　　　　　　. . . . . ........... 인간의 모습을 잃어버린 잔인한 짐승. 그게 바로 정윤호. "으읍..!!" 한치의 미동도 허용치 않고 그대로 자신의 두 팔을 가볍게 부여잡고 입술을 치닫고 밀어대는 윤호로 인해, 이미 재중의 온 머릿속은 새하얀 백지 상태가 되어 버린지 오래였다. 미친 사람 인 양 온 몸을 비틀며 윤호를 밀어내려는 재중의 몸짓은, 다만 윤호에겐 미약하게 반응하는 음탕한 암컷의 유혹따위로 밖엔 보이질 않았다. 턱을 부여잡고 입술을 열지 않으려는 재중이 못내 괘씸했는지 윤호는 완력으로 재중의 턱을 잡아 벌렸다. 살짝 열려진 그 입술 사이로 미끄럽게 혀를 밀고 들어가 이리저리 도망치는 재중의 혀를 붙잡아 버렸다. 자신을 벽에 있는대로 밀어 붙이며 채로 뜨거운 숨결과 함께 정신없이 밀고 들어오는 윤호의 혀에 이미 재중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싫다. 너무나도 싫다. 이 사람이, 이 지독히도 잔인한 사람이 싫은게 아니라, 이 사람의 거친 행동에도 반응하며 미친듯이 뛰어대는 이 빌어먹을 심장이 싫다. 짜릿한 느낌이 역류를 타고 온 몸을 삽시간에 정복해 버렸다. 느껴지는 서로의 감촉에 이미 두 사람은 헤어나올 수 없는 깊은 나락속으로 점점 더 빠져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띵동- 띵동- 띵동-' 희미하면서도 어렴풋이 들려오는 현관 벨 소리에 재중은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더욱 더 치닫고 들어오는 윤호를 있는 힘을 다 실어서 밀어내려 하지만 여전히 윤호는 다른 행동은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오로지 자신만을 느끼라는 듯 더욱 더 재중의 턱을 잡은 손에 아프게 힘을 주기 시작했다. "으...으으.ㅂ... 그.... 그마....." 입이 조금이라도 떼어질 새면 무어라 말을 이으려는 재중이 못내 짜증이 났던지 윤호는 더욱 더 밀고 들어 갈 뿐이였다. "형! 형..! 나 왔어. 문 좀 열어...!" 재중의 눈이 급격히 늘어난다. 다른 사람 일 줄 알았건만, 뜻 밖에도 현관 밖에 서 있는 것은 자신의 동생인 준수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마지막 남은 모든 힘을 실어서 간신히 윤호를 밀어 낸 재중, 그리고 그런 재중을 찌푸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윤호였다. 타액으로 인해 번들거리며 방금 키스를 하기 전 보다 갑절이나 부어오른 자신의 입술을 손등으로 문대며 재중이 재빨리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자신의 티셔츠를 윗 통에 걸쳤다. "열지 마. 열면, 죽여버릴거야." 현관쪽으로 빠르게 다가서는 재중의 뒷 모습을 향해 내뱉어진 윤호의 차가운 목소리. 온 몸을 일시정지라도 누른 듯 멈추었던 재중은, 그런 윤호의 말을 듣고도 덜덜 떨리는 손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삽시간에 찌푸려지는 윤호의 얼굴을 재중은 쳐다보지 않는다. "형, 일어났네. 왜 이렇게 문을 늦게 열어." ".....어.... 왜 이렇게 빨리 왔어, 준수야......" "형 걱정되서, 조퇴하고 일찌감치 왔지. 죽 끓여주려고 재료도 사 왔어. 잘 했지? 몸은 괜찮아?" "...........응...." 울컥- 하고 눈물이 터져 나올 뻔 했지만 꾸욱 눌러 참으며 재중은 그렇게 힘 없이 웃었다. 자신의 더러움을 봤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주는 자신의 동생에게, 한없이 죄스럽고 또 미안했다. 준수는 여전히 생글거리는 낯으로 집 안으로 들어와서 그제서야 거실에 오독하니 서 있는 윤호를 발견한건지 놀란 듯 잠시 웃던 얼굴을 굳혀 보였다. 주머니에 손을 꽂아넣은 채로 자신을 바라보는 윤호의 눈빛에 잠시 멍해져 있던 준수가 "아!" 하며 작은 탄성을 지르고 그를 향해 살짝 목례를 하며 결코 나쁘지 않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형 학교 친구이신가봐요. 안녕하세요!" 　　　　　　　　　. . . . . . . . ...........준수야, 그 사람이 정윤호야............... 자신의 앞에 서서 아무런 표정없이 그저 그렇게 서 있기만 한 윤호가, 어제 재중을 그렇게 만든 장본이라는 것을, 아니 이 남자의 이름이 정윤호라는 것 조차 모르고있는 준수는 어색히 웃으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윤호는 아무런 대답없이 그저 자신을 바라보는 준수의 시선을 조금은 매몰차다 싶게 피해버렸고, 그에따라 여실히 민망해진 준수가 다시 살짝하며 웃어 보였다. "놀다 가세요. 저는 제 방에 있을테니까..." "아니, 준수야. 얘 이제 나갈거야. 그러니까 그냥 있어." 급히 말을 내지르는 재중으로 인해 준수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던 발걸음을 짐짓 멈추었고, 그런 재중의 말이 괘씸해도 심히 괘씸했는지 윤호는 잠시 "하.." 하고 자그맣게 자조적인 웃음을 흩뿌리고 말았다. 재중은 자신의 뒷 목을 잡고 자신의 시선을 어디에다 둬야 할 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이리저리 눈만 굴리고 있을 뿐. "............김재중, 너 내일 학교 안 나오면 죽는다. 명심해. 꼭 나와. 그리고, 오자마자 우리반으로 와." 차갑디 차가운 목소리로 싸늘히 중얼거린 윤호는 그대로 자신을 향해 급히 고개를 숙이는 준수를 가볍게 무시 한 채로 현관문을 박차고 빠르게 나와버렸다. 준수는 그런 윤호가 사라지자마자 재중을 향해 불만스럽다는 목소리로 중얼댄다. "친구야? 왜 저렇게 무뚝뚝해? 그리고, 왜 형한테 나오라 마라 명령이야. 형은 바보같이 착해서 당하기만 하지!" 준수의 아무것도 모르고 내뱉어지는 저 말들에, 저 사람이 정윤호라는 사실을 쉽사리 말 할 수 없는 재중은 그저 씁슬히 웃음을 짓는 것 외엔 다른 행동은 해 보이지 못 했다. 　　　　　　. . . . . . . .......미안해. 준수야..... 더러운 형이 되어버려서 미안해. . "오호라. 뽀뽀 한번에 10만원? 그럼 키스는 얼만데!" "키스? 키스는 20만원!" "와우! 그럼 키스 하자, 누나~" 가슴이 훤히 다 들어나는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머리를 이리저리 꽈 올린 여자의 가는 허리를 그대로 부둥켜 안고 생글 생글 웃어보이는 유천이다. 피식거리는 웃음과 함께 붉게 칠해진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거리낌 없이 갖다대고는 자연스레 벌려지는 그 입안으로 매끄럽게 혀를 집어넣는다. 농도가 꽤나 짙은 그들의 키스를 보며 창민은 그저 빙그레 웃으며 술잔만 기울이고, 윤호는 쉴 새 없이 계속해서 술을 들이켰다. 안주따위는 입에 대지도 않고 계속해서 술만 마시는 윤호를 빤히 쳐다보던 창민이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시 따라지는 윤호의 맥주병을 슬그머니 빼앗아 들었다. "정윤호, 술 먹다 뒤질래? 왜 이렇게 마셔대. 무슨 일 있었냐?" "아니. 이리 내 놔." 지그시 찌푸려진 인상을 하며 윤호는 다시 창민의 손아귀에서 맥주병을 낚아챈 뒤, 또 다시 입안으로 털어넣기 시작한다. 평소와 달리 심각히 과하게 술을 마시는 윤호가 못내 걱정스러웠는지 창민이 계속해서 윤호를 쳐다보다가, 이내는 먹지 말란다고 먹지 않을 녀석이 아니라는 걸 깨닫긴 한 건지 다시금 자신도 잔을 비운다. 그제서야 키스를 마친 유천은 아직도 방금 전 키스의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 하고 헤롱거리는 그녀에게 손을 스윽 내밀며 신이 나서 중얼거린다. "봉투, 봉투 열렸네! 누나 얼른 돈 줘." "....너 나이도 어린게 어떻게 이렇게 키스를 잘 해..?" "아, 몰라도 돼. 일단 돈 부터 줘. 누나 립스틱 먹어서 입 안 찝찝해. 나 립스틱 칠한 여자랑 키스하는 거 존나 싫어하는데 누나가 돈 준대서 한 거란 말야. 그니까 빨리 내 놔." 매몰차게 한 쪽 눈썹을 슬쩍 치켜올리고 말 하는 폼이, 돈을 안 주면 뺨이라도 한 대 때릴 기세였다. 여자는 "알았어, 알았어~" 하고 웃으며 유천에게 수표 두 장을 내밀었고 그 것을 설마 다시 도로 집어넣을까- 생각 했는지 유천은 얼른 돈을 받아 챙긴다. 그 모습을 빤히 보던 창민은 다시 한번 피식. "박유천, 그지같이 왜그래-" "나 그지 맞아." "...귀여운 자식." "귀엽다고 하지 마라!!" 금새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치는 유천이 여간 귀여운게 아니였는지 창민은 "그래, 귀염댕아-" 라고 말하며 손을 내밀어 유천의 머리를 있는대로 헤집었고 그게 그리도 기분 나빴던 건지 유천이 벌떡 일어나서 무어라고 고래고래 악을 질러댔지만, 시끄러운 음악이 귀를 멍멍하게 할 정도로 소음이 짙은 이 나이트클럽에서 유천의 외침은 아주 작게, 미세하게 모기가 윙윙대는 것 보다 작게 들려 올 수 밖에 없는 일이였다. 그 때 마침- 하나같이 노출이 굉장히 심한 옷차림들을 하고 나이트로 들어오는 여자들. 창민이 그들을 보며 잠시 지그시 인상을 찌푸리다가 윤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 했다. "그 돈 많다던 여자들, 그 여자들이야?" "......응." "네가 불렀냐?" "응." "왜?" "따 먹을라고." 씨익- 웃으며 말하는 폼을 봐서, 윤호는 이미 간당하게 췻기가 올라 온 터였다. 지금 막 나이트로 들어서서 모든이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던 그 여자들은 이 쪽 테이블을 보더니, 다같이 짜기라도 한 듯 자그맣게 웃음을 짓고 또각거리는 소리를 내어가며 다가왔다. 창민은 여자들이 다가서자 마자 풍겨오는 독한 향수내에 잠시 미간을 좁혀왔지만 윤호는 그녀들을 향해 웃음을 지었다. 아주, 상냥한 웃음을 말이다. "윤호, 오랜만이네." "응, 누나도. 잘 지냈어?" "연락 없다가 갑자기 왠 연락이야. 돈 떨어졌어? 아니면, 이제 기집애들이 다리 안 벌려주디?" "아니. 그냥- 누나 가슴이 그리워서 말이야." 늘 싸늘하고 차갑고 무뚝뚝하기만 한 정윤호가 이런 식으로 나온다는 건 무언가의 꿍꿍이가 있다는 뜻이였다. 유천은 지금 들어온 이 여자들 한 무데기에 금새 꼬리를 내리고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핑계로 도망치는 방금 자신과 키스를 나눈 그 여자의 뒷모습에 대고 키스를 날리며 생글생글 웃음을 짓는다. "잘가, 갑부누님."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이미 거나하게 취해 버려서 자신의 옆에 앉은 여자의 가슴께로 손을 올리며 실 없이 웃고 있는 윤호, 여전히 술잔만 기울이며 말을 거는 여자들에게 간간히 웃으며 대답만 형식적으로 하는 창민, 여자들에게 잔뜩 둘러쌓여 신이나서 무어라 무어라 마구 중얼대고 있는 유천. "심창민. 애들 왜 안와." "글쎄. 오라고 연락은 해 놨는데 안 오는 거 보니까 딴 데서 여자 꼬시나 본데." 창민의 심드렁한 표정으로 뱉어지는 대답에 잠시 미간을 좁혀보인 윤호가 끌어안고 있던 여자를 잠시 밀어냈다. 그리고는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서 이리 저리 둘러보더니,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멍하니 알아챌 수 없는 시선으로 어딘가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다. 　　　　　. . . . . . . .......머리가 아플 정도로 짙은 향기를 뿜는 것 보다, 　　　　　　　　　아무런 향기 없이 활짝 핀 꽃이 더 향기로울지도............... 윤호의 입가에 미소가 잠시 걸렸다. 창민을 돌아보는 그의 시선엔, 이미 장난기가 가득이였다. 순진하고 어린 단순히 호기심에 찬 순수한 장난기가 아니라, 무언가 괴롭혀 줄 것을 발견했을때의 빛나는 짖궂은, 혹은 잔인한 장난기가 발동되고 말았다. "심창민, 너 혹시 김재중 번호 알아?" "김재중? 저장 되어 있을지도. 근데, 그건 왜." "........가지고 놀려고. 재미있게." 그들의 대화를 간간히 듣고 있던 유천이 자신의 팔에 매달린 여자를 잠시 밀어내며 얼굴 가득 생글생글한 미소를 띄우고 얼른 대화에 끼어들며 말을 내질렀다. "정윤호, 김재중 부를거면 걔 동생도 불러." 뜻밖의 유천의 말에 왠 쌩뚱맞은 소리냐는 표정으로 유천을 쳐다보는 윤호였지만, 유천은 이미 웃고 있었다. "나도 너처럼 또라이 짓 좀 해보려고 그런다. 왜, 떫냐-?" "왜 하필이면 김재중 동생이냐?" "응, 걔가 나 때렸거든." "뭐.....?" 유천은 잠시 테이블 위에 자신의 두 팔을 올려놓고 자조적인 미소를 짓는가 싶더니, 이내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하이얀 연기를 흐드러지게 내 뿜으며 그의 눈이 이지러지고, 입 보다 먼저 눈이 웃고 있었다. 한참이나 대답없이 담배 연기만 내뿜던 그가, 매캐한 담배 연기와 함께 말을 뱉어낸다. "사이코 짓 재미있어 보이더라, 정윤호. 나도 한번 해 보려고. 이리로 불러. 둘 다. 지금." 　. . . . . . . . ............울리고 싶어 졌어. 내 밑에 깔려서 질질짜는 그 모습이, 보고 싶어졌어. 　　　　　김준수라는 그 녀석이 날 노려보며 울었을 때 말이야. 무언가 안에서 움찔- 했거든. * 　　　　　　　　　　　　　　 묶인다. 얽힌다. 감긴다. 　　　　　　　　　　　　　　　　　하나가 된다. 　　　　　　　　　　　　　　　.끈　　　　　#03. 　　　　　　　　　　　　　　written by. 샤그락처녀 　　　　　　　　　　　　　(dndzidzid22@hanmail.net) 　　　　　　　　　　　　　　　휘성# 불치병 　　　다가서면 아프다는 것도, 다가서면 상처 받는다는 것도 모를리가 없다. 그만큼 그는 잔인하니까. 　　　　　　그만큼 그는 차가우니까. 이 눈물이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면, 그는 또 나에게 다가온다. 　　　　　　　　　　　　　　　　　monologue by. Hero 　　　　　　　　　　　　　　　　　　　　. 　　　　　　　　　　　　　　　　　　　　. 　　　　　　　　　　　　　　　　　　　　. 샤워를 마치고 나온 재중의 얼굴은 피곤에 잔뜩 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피곤해 보였다. 그러나 금새 자신의 앞으로 달려와서 생글거리며 웃어보이는 준수를 보며 웃어 줄 수 밖에 없는게, 아무리 힘들고 피곤해도 웃어 줄 수밖에 없는게 재중이였다. "형, 내가 죽 끓였는데, 무지 맛있어!" "그래...? 우리 준수, 죽도 끓일 줄 아네..." "...형, 목소리에 왜 이렇게 힘이 없어." 강해야 돼, 형. 그런 일 때문에 잔뜩 피곤에 젖어있는 얼굴 하지마. 강해야 돼. 형은, 내 앞에서만은 강해야 돼. 내가 아는 형은 그런 사람이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끝내는 웃음을 지어버리는 형이니까. 그 웃음으로 그 일을 극복해내는게 형이니까. 그래서, 나도 웃는거란 말이야.......... 　　　　　　　　　. . . . . . . . ...........이상했다. 엇박의 음악을 듣는 것 처럼 어색하다. 　　　　　　　　　　　형과 나 사이에 무언가 보이지 않는 벽이 서 있는 것 처럼. 재중은 잠시 희미한 미소를 준수를 향해 내뱉은 뒤, 자신이 먼저 주방으로 가서 식탁에 앉았다. 홀홀 김을 내며 예쁜 그릇에 담겨있는 죽을 보니, 무언가 왈칵하고 쏟아져 내릴 것 만같은 치명적인 기분. 울컥거리는 기분을 어렵게 삼킨 뒤 재중은 수저를 들었다. 그러나 그것 뿐. 수저를 들었을 뿐 그 수저로 죽을 뜨지는 않았다. 무언가 잔뜩 생각에 잠긴 듯 그는 그렇게 멍한 시선을 식탁 모서리에 주고 있을 뿐이였다. 재중 쪽으로 다가 온 준수는 재중의 멍한 모습을 보고 잠시 아랫입술을 지그시 윗 이로 눌렀다. "재중 형." "......" ".....재중 형." "......." "형!!!" 싸아한 느낌을 가득 담아 꽤액 내질러진 준수의 음성에, 재중은 그제서야 온 몸을 흠칫 떨고 "어...?" 하며 어색하게 웃어왔다. 주먹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또 다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온 몸을 감싸고 맴돈다. 도대체, 도대체... 어쩌다 형이 이렇게 된 건지. 어쩌다. 어쩌다가...! "내가 죽여줄게. 내가 죽여준다구!! 형 힘들게 하는 사람은 내가 다 죽여줄거라구!!! 제발, 제발 이러지마. 형... 형 이런 모습 보는 거 나 정말 힘들어. 내가 아는 형은 엄청 강한 사람이야. 그렇게 멍하니 굳어있을 사람이 아니란 말야. 형 그런 모습 보는 거 내가 더 힘들어.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준수의 눈물이 가득 섞인 외침은 재중의 가슴 깊은 곳 까지 파고들어 아프계도 후비고 있었다. 그래. 지금 나는 제정신이 아니야. 나 김재중은 제정신이 아니라구. 어쩌면, 나는 김재중이 아닐지도 몰라.................. 이렇게 지독히도 아프면서, 그렇게 지독한 일을 당했으면서. 우습고 수치스럽게도 떠오르는 건 정윤호의 잔인한 웃음뿐이야. "...와. 맛있다. 우리 준수 이런 거 다 누구한테 배운거야...? 역시 엄마한테 배운건가..?" ".....형.." ".......엄마 보고 싶다. 아빠도. 다들 잘 지내시지?" "형.." "........형 알바하다가 관둔 거 너 몰랐지..? 준수한테 선물 하나 못 주고 관뒀..." "형!!!!!!" 계속 웃으며 무언가 말을 이어가던 재중은 갑작스레 내질러 지는 준수의 고함에 들고 있던 수저를 떨어트려 버렸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죽이 담겨있던 숟가락이 바닥에 부딪혀, 이리저리 파편들이 튀었고 재중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행주를 들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수저를 들어올리고 바닥에 흩뿌려진 죽들을 닦아내는 재중의 손놀림을 그대로 우뚝 멈추게 하는 준수의 말. "더러워. 더럽다고. 그것보다 형이나 닦아. 형이나 닦으란 말이야...!!!!! 그 몸 가득 묻어난 징그러운 자국이나 닦아!!!! 이런 말 하기 싫어. 나도 이런 말 하기 싫어!!! 하지만 내 형이니까!! 내 형이 그런 일 당했다는게 지독히도 수치스러우니까!!!! 하지만 그것보다 더 수치스럽고 화가 나는 건!!! 그래놓고도 여전히 그 정윤호를 사랑한다는 형이야!!!!!" 파르르. 속눈썹이 떨려왔다. 솟구쳐 올라오는 눈물은 도무지 막아 낼 재간이 없다. 이미 재중의 눈물은 셀 틈도 없이 바닥으로 향해 곤두박질 치고 있었고, 소리없이 눈을 가린채 눈물만 주구장창 흘려대는 건 준수도 다를 게 없었다. 눈물이 흐르는 눈으로 재중은 웃고 있었다. ".....자꾸 떠올라. 몸이 떨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죽어버릴 것 같아, 준수야......................................." 머릿속으로 자꾸만 그려지는 그의 잔인한 웃음도, 나를 있는대로 눌러오던 그 거친 손놀림도, 나를 향해 더럽다는 듯 비웃던 그 못된 입술도. 어제의 그 일이 자꾸만 떠올라서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아. 그런데도 밉지가 않아. 싫지가 않아. 난 어떻게 해야 되니, 준수야..... 나 정말 어떻게 해야 돼..... "어떡해... 어떡해, 준수야... 형.....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아..... 어떡해..... 너무... 아파...." 　　　　　　　　　. . . . . .........무엇보다 아픈 건, 아직도 그는 나를 비웃고 있다는 것...................... "형...잘못했어...내가 잘못했어...으...흐윽...내가 미안해..그러니까 울지마. 형, 울지마......미안해...... 우리형을, 제일 깨끗하고 착한 우리형 더럽다고 해서 미안해... 미안해..... 울지마.....흐윽...윽...." 형의 몸 구석구석엔 꽃자락들이 여전히도 즐비했다. 분명, 내일이 와도, 며칠이 지나도 저것들은 계속해서 우리 형 몸에 박혀서 지독한 수치를 뿜어내겠지. 그 수치로 인해 짓이겨진 형의 모든 것들은 계속해서 끔찍한 피를 뿌리겠지. 형은 아프겠지. 아파서..... 죽을지도 모르지................ 그걸 보는 나도..... "내가, 내가 형 지킬게...형 아프지 않게.....형이 울지 않게.... 흐윽.... 형..... 울지마............흐윽......" 점점 더 울음소리는 짙어져 갔다. 바닥에 주저 앉아 이미 그 어깨를 심하게 들썩이며 울음을 자아내는 재중도, 그 어깨를 그러쥐고 같은 눈물을 반복해 흘려내는 준수도. 그리고 그 때. '♬♩♪♩♪♩♩♬♩♪♩♪♩♩♬♩♪♩♪♩♩♬♩♪♩♪♩♩' 거실에 놓여있던 재중의 핸드폰이 벨소리를 뱉어내고 있었다. 재중의 시선과 준수의 시선은 동시에 핸드폰으로 향했고, 무언가 갑작스레 차가운 느낌이 두 사람의 몸 주변을 휩싸고 돌았다. 갑작스레 목이 메어왔다. "뭐야, 얘네는...? 설마 너희 친구들이야?" "누님. 그렇게 말 하면 나 섭섭해. 어딜 봐서 이런 애들이 우리 친구라는 말이여!" "그렇지..? 어우, 젖 비린내나. 저리로 치워, 얘네." 이미 굳어 질 데로 굳어진 재중과 준수의 표정. 그런 그들을 너무나도 당당히 훑어보며 찌푸린 인상으로 카랑한 목소리를 내어가며 중얼대는 이름 모를 여자와 그런 여자와 맞장구치며 즐겁게 말장난을 하고 있는 유천. 창민은 여전히 아무런 말 없이 잔을 비우고 있었고, 윤호는..... "......마셔." 한동안이나 찔러 죽일듯한 눈빛으로 재중만을 쳐다보던 윤호는 맥주 한 잔을 고개를 푹 숙인채 아무런 말 없이 온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고있는 재중을 향해 내밀었다. 잔인한 그 웃음은 절대로 지우지 않고 말이다. 마시라고 내미는 윤호의 손을 보고 놀란것은 재중도 아닌 준수였다. 형은, 술 같은 건 전혀 입에도 대지 못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언가 말 하려고 입을 벌리는 준수의 옆에 서 여자와 즐겁게 말장난을 치던 유천이 갑작스레 옆으로 몸을 기대어 왔다. 흠칫, 놀라 말하려던 입을 곧바로 다물어 버리는 준수. "겁대가리 상실했냐. 어떻게 오란다고 정말 오냐." 방금 전 여자에게 내뱉던 장난스러운 목소리는 이미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린 후였다. 준수에게 살며시 몸을 기대어 온 유천은 이 시끄러운 음악이 난무하는 곳에서 준수만이 들을 수 있게 준수의 귓가에 입술을 붙이고 나즈막히 중얼거렸다. 무릎 위에 올려져 있던 손을 살며시 그러쥔 준수 역시 나즈막히, 유천만이 들을 수 있게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댁 보러 온 거 아니에요." "에이. 나 보러 왔다고 해줘. 안 그럼 나 민망해진다구." "왜 저희를 불렀는지 용건부터 말 해주시죠." "너 대충 짐작했지? 누가 정윤혼지." "대충이 아니라 아주 확실히 알았어요." 기계가 말을 내뱉 듯 그저 딱딱하기만 한 준수의 음성에 유천은 잠시 말을 멈췄다. 괜시리 무언가가 안에서 울컥 하며 치솟고 있었다. 흥분이라는 것을 잘 하지 않는 무난한 성격을 가진 유천이 이 녀석의 말 한마디에 짜증이 올라왔다면 그건 필시 대단한 일이 분명하다. 한참이나 준수의 곧기만 한 표정을 바라보던 유천이 아주 작게 웃음을 내지었다. "왜 안 때려? 너 나는 때렸잖아. 근데 윤호는 왜 안 때려. 나만 만만하지?" "우리 형이 있으니까 못 때려요." ".....왜?" "......형이 더 아플테니까." 준수의 귓가에 붙여있던 입술을 드디어 떼어놓고 다시 아까있던 그 자리로 자신의 몸을 놓은 유천이 옆에서 시끄러운 욕설을 짓껄이며 즐겁게 떠들고 있는 여자들을 하나 둘 씩 천천히 훑어보다가, 이내는 결코 작지 못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누님들 너무 시끄럽네. 욕도 너무 많이 하고. 싫어진다-" 장난처럼 말했지만 진심이 콕 들어박혀 있는 유천의 작지않은 목소리에 여자들은 쉴 새 없이 종알대던 입을 금새 멈추어 버렸다. 윤호는 그런 유천의 말에 피식- 웃으며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게나 말이다. 이제 좀 사라져 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는데, 누님들...?" 그의 말에 곧바로 벌개진 얼굴을 하고서, 남자들에게 이런 취급을 받아 본 적이 없는 반반한 얼굴을 잔뜩 구기고 차마 입에 담기도 거북할 욕짓거리를 하며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버리는 여자들이였다. 준수와 재중은 여전히 아무런 말 없이 그냥 버젓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을 뿐. 얼마 후 몇분의 실랑이 끝에 화가 난 유천이 맥주를 여자의 얼굴에 뿌림으로써, 여자들은 그대로 자리를 피해 다른 자리로 엉덩이를 씰룩이며 사라져 버렸고 이 테이블에 남아있는 사람은 창민, 윤호, 유천, 재중, 준수. 이렇게 다섯명 뿐이였다. "기집애들 사라지니까 조용하네. 윤호야, 빨리 하려던 짓 해 봐." "...무슨 짓?" "싸이코 짓." 생글생글. 귀엽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의미는 절대 알아차릴 수 없는 웃음을 짓는 유천은,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윤호보다 더욱 잔인할 지도 모른다고 창민은 가만히 생각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놈, 박유천. 박유천은 자신을 알 수 없는 놈이라고 생각한다는데 내가 보기엔 박유천, 저 놈이 제일 알 수 없는 놈이다. 웃어도, 웃는 것 같지가 않은...... 여실히 자신을 숨기고 숨기는, 가면속에서 사는 듯한 그런 놈. 윤호는 '싸이코 짓' 이라고 중얼거린 유천에게 잠시 웃어준 뒤, 아까 자신이 건넨 맥주잔을 아직도 비우지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며 들고서 눈알만 이리저리 굴리는 재중에게 잠시 시선을 주었다. "마시라고 했다. 5분 지났어." 얼음장과 함께 내뱉어지는 듯 했다. 윤호의 말이 던져짐과 동시에 재중의 몸엔 차가운 오한이 일어왔다. 그건, 옆에있던 준수도 그닥 다를게 없었다. 저 사람이 정윤호구나. 그래. 그렇구나...... 저런 사람을, 우리 형이 사랑한다는 거구나. 온 몸을 떨어대면서, 두려움속에서 발버둥치면서 그렇게 사랑하는 거구나. 재중은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 손에 쥐어진 차가운 맥주가 담긴 유리컵을 더욱 세게 그러쥐었다. 그리고서는, 정말 마시기라도 할 생각이었는지 이내는 맥주잔을 들어올렸고, 그 모습을 계속 바라보던 준수는 빠르게 그의 손에 들려있던 맥주잔을 빼앗아 들었다. "...준수야....." 놀란 듯 커다란 눈을 한번 꿈뻑- 하며 떠 오는 재중에게 준수는 미약하게나마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런 그를 턱을 괘고 빤히 바라보던 유천은 참지 못하고 피식- 하고 웃음을 터트려 버렸다. "귀염댕이, 너 흑기사야?" 아무런 대답 없이 그대로 맥주잔을 입에 대고 꿀꺽 꿀꺽 마셔 버리는 준수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창민은 휘파람을 불어대며 놀라워 하고 있었고, 유천은 그런 그를 빤히 바라 볼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표정이 굳어진 건 재중과 윤호였다. 윤호는 비워진 맥주잔을 한번 힐긋 바라보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살짝 이그러진 표정으로 준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너한테 마시라고 한 적 없어. 누구 맘대로 네가 마시는거야?" 단 한번이였다. 말을 걸어 준 건 단 한번이였는데, 이렇게까지 오싹하고 두려울 수가 있다니. 이런 사람에게 그런 짓 까지 당한 재중이 새삼 놀랍게 느껴지고 있었다. 우습게도, 존경스러운 기분까지 들고야 말았다. 이렇게 무서운 사람에게 고백이라는 걸 했다는 자신의 형이 참 신기하게까지 느껴진다. 그만큼 이 남자는 차갑다 이말이다. 차가워도 그저 차가운것이 아니라 만지기만 해도 몸이 녹아버릴 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차가움을 다 담아내고 있는듯한 사람. 윤호는 아무런 말 없이 다시 비워진 맥주잔에 맥주를 따랐다. 금새 차오르는 맥주잔을 보고 재중은 잠시 눈을 감았다. 한번도 대 보지 못한, 그 냄새만 맡아도 격하게 밀려드는 역겨움을 어찌 막고 이 맥주를 마시라는 말인가. 그러나, 그 걱정도 잠시. 준수는 그대로 재중의 앞에 놓여진 그 잔을 다시 들어 누군가 뭐라 할 틈도 주지 않고 그대로 또다시 원샷을 해 버렸다. 이제는 슬슬 테이블에 놀라는 기색이 들어나기 시작했고, 윤호의 얼굴은 더욱 더 굳어질 뿐이였다. 재중이 준수의 손을 붙잡았지만, 준수는 그런 재중의 손을 슬그머니 밀어냈다. 그리고 살짝이 고개를 들어올린다. 준수와 윤호의 시선이 강하게 허공에서 부딪혔다. 두 사람다 결코 밀려드는 그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또 따르시죠." 결코 좋을 수 없는 목소리로 칼을 내뱉듯 뱉어버린 준수의 싸늘한 말에, 윤호는 잠시 멍하니 굳어있다가 이내는 아주 자그맣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번에도 맥주를 따라왔다. 유천이 "야, 넘치잖아." 라고 급히 말을 내지름에도 불구하고 윤호는 계속해서 맥주를 부어댔다. 맥주의 많은 양을 못 이긴 유리컵위로 맥주가 넘치다 못해 테이블 위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준수는 그런 컵을 그대로 잡고, 다시한번 맥주를 들이켰다. 지칠 수 없었다. 따르는 윤호도, 마시는 준수도 결코 지칠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번을 그 행동만을 거듭했을까. 아찔해지는 머리와, 점점 풀려가는 초점에 준수는 정신을 차리려는 듯 잠시 자신의 고개를 털었다. 재중이 급하게 준수의 팔을 잡으며 "그러지마, 준수야...제발..." 이라고 중얼대지만, 준수는 다시 한번 따라지는 맥주에 시선을 주고 다시 그 맥주잔을 잡아왔다. 순간, 무언가 밑에서 욱하고 올라왔지만 간신히 그 역겨움을 견뎌낸 준수는 눈을 질끈감고 맥주를 있는 힘을 다해서 마셨다. 안다. 자신도 알고 있다. 무모한 행동이라는 것. 더이상은, 한계라는 것도 말이다. "우와-" 유천은 아무런 표정없이 저 감탄사를 내뱉으며 박수를 치고 있었고, 창민은 아무런 표정없이 눈만 깜빡하며 턱을 괘고 준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한잔을 간신히 비운 준수는 컵을 조금은 세다싶게 테이블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윤호와 마주친 준수의 시선은 심각히도 풀려 있었다. ".................우리 형, 괴롭히지 마세요. 아프단 말이에요............." 쿠당. 말을 내뱉자 마자 준수의 몸이 테이블 위로 쏟아져 내렸다. 재중이 이미 눈물 가득한 자신의 눈을 훔치며 준수의 몸을 붙들고 흔들어 깨웠지만 이미 준수는 정신을 잃은 듯 보였다. 준수의 말을 듣고 잠시 멍하니 굳어있던 윤호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낯선 미소를 지어보였다. 흘깃하며 아무 생각없이 윤호를 돌아보던 창민까지도 그대로 굳어버릴만큼, 그 미소는 굉장히 싸늘하고 또 공허했다. 　. . . . . . . . ...............안됐지만, 너희 형은 벌을 받아야 해. 나에게 고백을 했다는 크나 큰 죄로. 그때였다. 아무런 말 없이 준수를 쳐다보던 유천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아무런 말 없이 그대로 준수의 몸을 가볍게 들어올려 자신의 어깨에 매어버리고는, 아주 신이 난 목소리로, 그러나 무언가 잔인함이 담긴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잘 먹겠습니다!" 순간. 재중의 눈빛이 아찔하게 일렁였다. 준수를 어깨에 들쳐 맨채로 빠르게 나이트를 빠져나가는 유천을 붙잡으려는 듯 재중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을 때, 낮고도 무미건조한 특유의 윤호의 목소리가 재중의 발목을 아프게 붙잡아 왔다. "어디가냐...?" 　　　　　　　. . . . . . . . .................이미 붙잡힌거야. 이미, 나는 묶인거야. 　　　　　　　　　　　　　　정윤호라는 이름의 끈에 나는 온 몸이 묶인거야.......... * 　　　　　　　　　　　　　　 묶인다. 얽힌다. 감긴다. 　　　　　　　　　　　　　　　　　하나가 된다. 　　　　　　　　　　　　　　　 .끈　　　　　#04. 　　　　　　　　　　　　　　written by. 샤그락처녀 　　　　　　　　　　　　　(dndzidzid22@hanmail.net) 　　　 　　　　세상엔 까만별이 있다. 어두운 하늘과 그 색이 같아서 자신의 몸이 보이지 않는 아주 슬픈 별. 　　　　　모든 별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매일 밤 기도를한다. 그건 까만별도 마찬가지다. 　　　　　　　　사랑한다고. 늘 웃어달라고. 언제나......... 행복하길 빈다고............... 　　　　　　　　　　　　　　　　　monologue by. max 　　　　　　　　　　　　　　　　　　　　. 　　　　　　　　　　　　　　　　　　　　. 　　　　　　　　　　　　　　　　　　　　. "앉아. 어딜 가려고 그래? 넌 나랑 놀아야지." ".........하지만, 준수가...." "앉아." "..............." "앉으라고 했다." 심장이 멎어버릴 것만 같았다. . . . ...참, 신기한 사람. 너무나도 대단한 사람. 이 사람을 마주하고 있으면 나의 심장은 미칠듯이 뛰다가도, 　　　　　　　　또 갑작스레 멎어버린다. 나의 모든 걸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 재중은 계속해서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이내는 다시 아까 자신이 앉았던 자리에 조심스레 앉아왔다. 심한 긴장 탓일까. 그의 두 손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자꾸만 덜덜 떨리는 다리를 주체 할 수가 없다. 그런 그를 바라 보던 윤호는 그의 행동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살그머니 미간을 좁혀가고 있었다. 한참이나 턱을 괘고 재중을 바라보던 창민이 계속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드디어 열었다. "재중아, 몸은 괜찮아?" 갑작스러운 창민이의 물음에 재중은 놀란 듯 흠칫하며 어깨를 떨어보이고, 억지로 만들어진 웃음이라는 게 뻔히 들어나도록 어색하게 웃으며 아주 자세히 봐야 눈에 띌 듯한 동작으로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학교에서는 그렇게 착하고 반 아이들에게도 생긋생긋 잘 웃어보여서 꽤나 좋은 사람으로 보였던 창민이 이렇게 윤호의 옆에 앉아서 자신을 바라보니 왠지 모르게 쳐다 볼 수 없을 만큼 위험 해 보이는 건 당연지사. "김재중." 갑작스레 내질러진 윤호의 음성에 재중은 온 몸으로 반응을 해 왔다. 흠칫 떨어지는 그의 어깨가 안쓰러울 만도 하다만 윤호의 차갑게 굳어진 표정은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커다란 눈에 겁을 가득 머금고 자신을 바라보는 재중을 한참이나 지긋한 눈짓으로 바라보던 윤호의 입가에 아주 작은 웃음이 걸렸다. 　　　　　　. . . . . . ......저 웃음이 지어졌으니, 또 나에게 견딜 수 없는 상처를 주겠지. "벗어." 　　　　　　　　　　　　　　　　. . . . . ............................ 우습게도 그렇게 시끄럽던 나이트 안이 순식간에 조용 해 졌다. 무대에서 미친 듯 춤을 추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내려오는 걸 봐서 아무래도 조용한 음악이 잔잔히 깔리는 듯 싶었다. 휘영청 꺾이는 재중의 눈빛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윤호는 계속해서 명령하고 있었다. "올라가. 무대위로. 그리고 벗어." 윤호의 옆에 앉았던 창민까지 굳어진 얼굴을 하고선 "정윤호, 작작 좀 해." 라고 낮게 읊조렸지만 그런 창민조차 안중에도 없다는 듯 윤호는 계속해서 재중만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였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간신히 추스린 뒤 재중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지금 껏 윤호와 한마디도 하지 않던 그가, 무언갈 말하려는 듯 하얗게 식어버린 입술을 열었다. "............내가 왜...." 그리고 드디어 열린다 싶었던 그 입에서 힘 없지만 꽤나 반항적으로 말이 뱉어지자, 윤호의 안 그래도 굳어있던 표정은 다시 순식간에 화악 굳어버리고 말았다. 곧바로 변하는 윤호의 표정 하나 하나에도 심각히 반응하며 온 몸을 떨어대는 재중이 여간 가여운게 아니였는지 창민이 계속해서 윤호의 팔을 툭툭 건드려 보지만 윤호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리고, 윤호의 눈동자가 탁 하고 비어버린다 싶었을 때. "나 좋다며. 그러니까 해. 하라면 하는거야." 잔인하게 뱉어진 저 말이 혼돈스레 요동치는 재중의 가슴속으로 깊히 스며들었다. 그러나 재중은 윤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수 없었다는게 오히려 더 명확한 묘사일지도 모르겠다. 온 몸을 떨어대던 재중의 눈빛이 전과 같지 않게 조금은 힘이 들어 가 있다는 것을 느낀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재중은 입을 열었다. ".....싫어." 그러나 그 대답 역시 윤호의 마음에 절대 들리가 없는 말이였다. "해." "...싫어." ".....지금 반항하는거냐?" ".....반항이 아니야. 하기 싫은 걸 해야 할 이유는 없어." "나 좋다며?" "........이젠.....아니야..." 아니라고 말하면, 이렇게 가슴이 찢기듯 아픈데도 참아가면서, 눌러가면서 아니라고 말 하면 너는 날 괴롭히지 않을거니. 그래 줄 거니. 그냥 내 마음 꾹꾹 눌러담기만 하면 더이상 나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거니............. 아니라는 재중의 대답에 윤호는 그저 피식, 하는 자조적인 웃음으로 대꾸했을 뿐이다. 금방 식어버릴거라고 했지. 금방 식을 줄 알고 있었어. 그래, 그럴 줄 알고 있었어. 너라는 자식에게 상처를 주고 끝없이 짓이겨 주면 금방 나를 증오하게 될 줄 알았다고. 그렇지만, 내가 너에게 이러는 이유가 바로 너의 그 '아니다' 라는 대답 때문이라는 걸 모르는 거냐. 그렇게 고백을 해 온 날부터 너는 살아갈 수 없을 만큼의, 미칠 듯한 벌을 받아야 해. 금방 식을 네 마음을 모르고 섣불리 나에게 고백을 한 게 죄니까. 　　　. . . . . . . . .........................어쩌면 단박에 식어버릴 거라는 그 예감이 다시 한번 적중해서. 　　　　　　　　　 우습지만, 나를 슬프게 만들었으니까.................................................... 잠시였지만, 지독히고 슬픈빛을 내며 아프게 일렁이는 윤호의 눈빛을 본 사람은 애석히도 재중이 아니라 창민이였다. 잠시 딴 곳이라도 봤다면 놓칠 뻔 했을 윤호의 아픈 눈동자는 창민의 가슴 깊은 곳 까지 찔러 올 정도로 아파보였다. 　　. . . . . . . . . .........정윤호, 너에게 예전에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너..... 아주 지독하고, 아프고, 잔인한 사랑을 겪었었구나. 　　　　　　　　　　　　　　그랬었구나. 그래..... 많이 아팠었구나. 정윤호..... "빨리 내 앞에서 사라져." 금새 원래의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되돌아 온 윤호가 내뱉은 말은 뜻밖에도 저 위엣말이였다. 재중 역시 놀란건지 두 눈을 크게 떴고, 옆에서 아무런 말 없이 듣고만 있던 창민은 잠시 입에 대지 않던 술잔을 다시 기울이고 있었다. 한참이나 망설이는 듯 하더니 재중이 일어섰다. 그리고 타박거리는 발걸음으로 조금은 비척이듯 나이트를 빠져 나가는 재중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윤호가 그의 뒷모습에 대고 결코 작지 않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착각은 하지마. 내가 너를 이대로 봐 준다고 생각하면 크나 큰 오산이야. 내일 학교 나와. 우리반 앞에 오지 않아도 돼. 내가 너희 반 앞으로 가면 되는거니까." 우뚝하고 발걸음을 멈춰보이던 재중이, 한참 뒤 다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나가는 것, 그리고 그 모습이 입구를 지나쳐 사라져 버리는 것 까지 하나도 빼 놓지 않고 지켜보던 윤호는 5분이 지나도, 10분이 지나도 아무런 말 없이 그저 술잔만 기울이고 있었다. "정윤호." "....." "네 상처때문에 다른 사람에게까지 똑같은 상처를 주지는 마." "!!..................." 술잔을 들어올리던 윤호의 손짓이 우뚝하니 멈춰져 버렸다. 심장이 기나 긴 창 처럼 날카로운 물건에 그대로 관통을 당한 것 같이 찌릿찌릿 아파왔다. 창민은 윤호의 손에 들려있던 술잔을 빼앗아 자신의 입에 훌훌 털어 놓고는 다시금 말을 이어간다. "누구에게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권리는 없어. 만약 네가 재중이에게 상처를 준다고 해도, 너에게 돌아오는 건 역시 똑같은 상처일 거야." ........우스웠다. 무척이나 우스웠다. 상처...? "웃기지 마. 난 그렇게 비참한 놈이 아니야, 심창민. 함부로 말하지 마. 죽여버릴 수도 있어." "그럼 왜? 왜 그러는건데. 너 앞 뒤가 하나도 안 맞는 행동만 하고 있다는 거, 알기는 아냐?" 짜맞혀진 감정같은 건 없어. 무조건 뒤틀려 있을 뿐이야. 보는 사람까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정도로 얽히고 얽힌 모든 감정들에게 이미 나는 지쳐 버렸어. 그래서 그 감정에게 잔인한 모습만 보여주는 것 뿐이야. 다른 이유는 없어. 　　　　　　. . . . . . . ............그래, 없어. "대답 해, 정윤호. 왜 말이 없어. 아니라면 대답 해. 너 이러는 거 아주 보기 안 좋아." "내가 대답을 해도 네가 원하는 대답이 아닐거야." "그래, 들어나 보자. 도대체 무슨 이유인데?" 이유라면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어. 그래...... "우는 게 예뻐서." 윤호의 무미건조한 말이 건성으로 툭 내뱉어지자, 이내는 창민도 지금 윤호의 말이 진심인지 아니면 대충 할 말이 없어서 둘러대는 것인지 단 한번에 파악 할 수 있었다. 아주 자그맣게 웃음을 지어보이던 창민. "정윤호, 네가 뭘 모르나본데." "..............................." "김재중은, 우는 것 보다 웃는 게 훨씬 더 예뻐." "에이씨, 더럽게 무겁네." 침대에 준수를 내 던지듯 내려놓고 유천은 땀에 잔뜩 절은 자신의 윗 옷을 거칠게 벗어 제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채로 쥐죽은 듯 잠만 자고 있는 준수를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는 준수의 옆 자리에 슬그머니 앉아버렸다. 아직도 거칠은 자신의 숨소리만이 이 조용한 방을 급박히 울리고 있었다. "호텔 갈 걸. 그래도 처음으로 남자새끼랑 떠 보는건데." 자신의 집으로 준수를 데리고 온 유천은 새삼 후회하는 눈치로 혼자서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거칠은 호흡을 하는 자신과는 다르게 고르게 숨을 내쉬는 준수는 무척이나 편안해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숨을 쉰다는 거추장스러운 이유때문에 준수의 가슴팍은 오르락 내리락. 단 하나의 떨림 없이 잘 감겨있는 그의 눈. 그리고 방금 자신이 거칠게 내려놓은 탓 일까. 슬그머니 들어올려져 있는 그의 셔츠밑으로 들어난 여자보다도 얇아보이는 그 허리선을 보자 다시금 안에서 무언가 꿈틀- 하고 움직여 왔다. 처음으로 남자에게 욕정이라는 것이 느껴지자 괜시리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울컥하며 짜증까지 밀려오는 상태.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한치의 움직임도 없이 곤히 잠만자던 그가 몸을 꽤나 심하게 뒤척인다 싶었다. 뒤척이기만 했다면 얼마나 좋았으랴. 운 나쁘게도, 눈꺼풀을 비집고 준수는 힘겹게 눈을 뜨고야 말았다. ".................." 두 사람의 시선은 곧 허공에서 허공으로 부딪혀 천천히 얽혀 들어갔고 유천은 아무런 놀라는 기색없이 그저 심드렁한 자신의 특유의 눈빛으로 준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머리가 어지러워도 심하게 어지러운지 자신의 고개를 이리저리 털어내던 준수가 힘겹게 두 팔로 짚고 자신의 몸을 일으켰다. 이리 저리 고개를 돌려가며 두리번 거리는 가 싶더니만, 다시 한번 유천에게 시선을 준다. 그러나, 터져나온 준수의 말은 굉장히 뜻 밖의 것이였으니. "헤에...너 누구야......?" 가볍게 취한 줄로만 알았던 그가, 아니. 취했어도 방금 아주 짧았지만 잠을 자고 난 뒤의 그는 술에 깨어나서 여기가 어디냐고 난리를 칠 줄만 알았지만 의외로 아직도 술에서 깨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아니 오히려 전보다 훨씬 더 췻기가 올라 와 있는 상태로만 보인다. 심하게 꼬인 혀와 풀려도 심각히 풀린 그의 동공이 그 사실을 적날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양 볼을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말 그대로 헤벌죽- 하고 웃어보이는 그를 유천은 잠시 놀란 듯 바라보다가 이내는 다시 특유의 심드렁한 표정으로 돌아오고야 말았다. "이런 거 싫어. 웃지마. 나는 너 우는 거 보고 싶었다고." ".....으응...? ......너 누구야, 근데에.....?" "울어. 울어. 아씨, 울으라니까!!" ".......왜 화를 내..난 잘못한거 없는데.....근데 너 되게 잘생겼다..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였다. 잘생겼다고 중얼대며 또 그 멍한 표정으로 웃어보인다 싶더니, 갑작스레 준수가 유천의 몸을 누르고 몸 위로 올라타 버렸다. 그제서야 놀란 듯 두 눈을 꿈뻑거리는 유천. 준수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내려서 유천의 얼굴로 자신의 얼굴을 아주 바싹 밀착시킨다. "......먹어주세요.." 준수의 입술이 아주 오묘한 선을 그리며 끌어올려진다 싶었을 때, 귓가에 착 감기는 목소리로 저렇게 중얼대어 왔다. 무언가 머릿속에서 강렬한 스파크가 튀는 듯한 느낌을 받아버렸다. 한참이나 멍하니 있던 유천이 더 이상 지체 할 수 없을만큼 달아올라버린 자신의 온 몸을 느끼고 그대로 자신의 위에 걸터 앉아있던 준수를 내려 밑으로 깔아 올라 타 버렸다. "....기대 하지마, 귀염댕아. 남자는 나도 처음이니까." "........내가 왜 귀염댕이야...?" "귀염댕이니까." ".........네가 더 귀여워......" "알아." 완전히 풀려버린, 그래서 더 섹시하다고 할 수 있는 눈빛을 꺾으며 웃어보이는 준수에게 유천은 급히 입술을 맞추어 버렸다. 자연스레 벌려지는 그 입술안으로 매끄럽게 혀를 밀어넣자 느껴지는 입안의 모든 뜨거움. 입술을 갖다 대기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에 덴 듯 온 몸이 뜨거워 졌다. 무엇보다, 역겨운 립스틱 맛이 나지 않았다. 움찔거리는 준수의 두 팔을 아주 가볍게 그러쥐고 유천은 더욱 더 깊이 준수의 입안으로 혀를 밀어넣었다. 느껴지는 감촉 모든게 생소해서 그런지, 마치 첫 키스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왠지 모르게 묘하다. 자연스레 입술을 떼어내고 주르륵, 한번에 미끄러져 내려와 준수의 목에 자신의 입술을 묻는 유천의 행동은 왠지 급박해 보였다. 목선을 끈적하게 핥아내면서도 깜빡거리는 유천의 눈빛엔 이미 재미있다는 듯한 어린아이의 순진한 눈빛이 조금 쯤 담겨 있었다. 말 그대로, 왠지 모르게 재미있었다. 　　　. . . . . . . . . ........앞으로는 더욱 더 재미있어 질 것 같다는 예감도 무시 못할 정도로 크게 다가온다. "...흐윽..." 억눌린 신음. 뱃속에서부터 천천히 맴돌아서 성대밖으로 울려퍼지듯 흩어지는 그 음성은 무시 할 수 없을 정도로 유혹적이였다. 유천이 준수의 굳게 잠겨진 셔츠 단추를 하나 둘 씩 풀어가며 천천히 그 몸의 내음을 맡아가고 있을 때 였다. 아무런 말 없이 곱게 신음만 뱉어대던 준수가 갑작스레 '쿡쿡' 거리며 웃음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쿡....뭐야...하하..." "...미쳤어? 왜 쪼개? 좋아서 그래?" 괜시리 무시당했다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살짝 나빠진 유천이 결코 곱지 못한 얼굴을 하고서 곱지 못한 목소리로 건성으로 말을 툭툭 내뱉자, 준수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 . . . . .......웃을 때, 끌어올려지는 입 꼬리가 정말 묘하다. "...나 왜 이러고 있어...? 너 누구야......" "먹어 달라면서요. 네가 나 유혹했어. 그니까 가만히 있자, 귀염댕아?" "......아...진짜...열받으려고 그래..." "열 받지마세요." 유천은 여전히 특유의 심드렁한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내뱉으며 준수의 마른 배 주위를 혀로 샅샅히 핥아대고 있었다. 거칠어진 숨결 탓일까- 준수는 가슴은 심하게 오르락 내리락하며 그 느낌을 표현해주고 있었다. "너 순진한 척 하더니 아니였나 봐. 나 속은거지?" ".........나 졸려......" "...자면 이빨로 물어 뜯어 버릴거야. 자지 마, 귀염댕아." 낮게 읊조려지는 그들의 대화에서는 묘한 흥분감이 묻어 나왔다. 살짝이 끝이 갈려지는 목소리를 내뱉는 유천도 지금은 무시 못 할 만큼 심히 흥분해있는 상태였다. 급한 마음에 서둘러서 준수의 바지를 벗겨내린 유천은 잠시 굳게 멈춰있었다. 하얗다. 다리가 하얀것은 언 기집애들도 마찬가지일텐데, 왠지 이 녀석의 다리를 보니 그동안 가라앉았던 모든 욕정들이 화산이 폭팔하기 무색하게 미친 듯 끓어오르고 있었다. "...졸려........" 다리를 잡아 큼직하게 벌려놓는 유천의 행동에도 여전히 준수는 아무런 감흥이 없는 모양이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꽤나 흥분했다는 듯 신음을 뱉어내더니, 그것도 잠시. 금새 가라앉았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흥분따윈 한 적 이 없었던 건지 녀석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졸리면 자. 하기 더 편하고 좋지, 뭐." ".......응....잘자..." "......자지 마. 잘못했어." 정말 자버리려는 듯 그 얇은 팔로 자신의 눈가를 가려버리는 준수로 인해서 유천이 금새 꼬리를 내리며 준수의 팔을 잡아 내렸다. 내리자 마자 눈에 띈 것은 지극히 찌푸려져 있는 준수의 눈가. 그리고, 그 눈가에 맺혀있는 어룽어룽한 눈물자욱들. "...드디어 우네. 더 울어. 윤호가 그러는데, 애들 질질 짜는데 박으면 기분 더 좋데." ".......흐윽......으...윽....." "......야아. 너무 심하게 울지는.." "흐윽...흑.....으으...으...." 이미 유천은 당황하고 말았다. 뭐 이런 녀석이 다 있어. 술주정이 이렇게나 심하고 바로바로 바뀌는 녀석은 정말 처음이였다. 왠만한 일에는 당황따위 안하고 뭐든 그런가보지- 하고 넘겨버리는 유천이 오늘은 정말 김준수라는 이 알 수 없는 녀석때문에 황당감을 대체 몇번이나 느꼈는지. "...나 열받았어. 아파도 참아라. 좋게 좋게 해주려고 했는데 네가 기분나쁘게 굴어서 기분 잡쳤어." "...으...흐윽......흑..." 분명 지금 유천과 자신이 이러고 있다는 것 때문에 우는 것은 아니리라. 준수는 심각히도 취해있는 상태였고, 김준수는 절대 이런식으로 남을 유혹하고 몸을 함부로 굴리는 녀석이 아니라는 것 쯤은 유천은 잘 알고 있는 상황. 지금이 절호의 기회인데 운다고 해서 이 녀석을 놔주고 싶은 마음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맨 정신일때 덮치면 분명 무지막지한 반항과 발길질을 해 올 것이라는 걸 그는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벌려진 다리 사이를 보자 또다시 미친듯이 무언가가 안에서 움찔거리기 시작한다. 기집애들은 키스만 해 줘도 느끼기 때문에 곧바로 박아버려도 상관은 없다만, 이 녀석은 무언가 다를 것이라는 예감때문일까. 성가시긴 하지만 그래도 또 한번 이 녀석의 신음을 들어보고 싶다는 이유 아래로 유천은 그의 벌려진 다리 사이에 얼굴을 들이민다. 너무나도 하얘서 손을 대면 더러움이 묻어날까봐 조바심이 날 정도. 그 하이얀 허벅지 안쪽에 입술을 묻고 혀를 내어 살짝이 핥아봤다. 그러나, 준수는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다. "...반응 좀 해. 재미 없어." "...흐윽...윽.....으..으...흐윽......" 그칠 줄 모르는 준수의 흐느낌에 슬슬 유천도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씨, 그냥 냅다 박아버려? 열 받게 하고 있네. 이미 준수가 베고있던 베개는 그의 눈에서 흘러나온 눈물때문에 흠뻑 적셔진 상태. 코가 뻘개질 정도로 미친 듯 울고 있는 준수를 보자 이내는 끓어올랐던 욕정마저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아, 씨발. 왜그래!! 하다말고 질질 짜고 지랄이야. 먹어달라매!" "......흐윽...재중이형.....괴롭히지 마.....으으.....흐윽..." 순식간에 유천의 끓어올랐던 모든 것들은 그렇게 화악 가라앉아 버렸다. 그대로 준수의 허벅지에 묻었던 입술을 떼어내고 유천이 그의 옆에 데굴 몸을 굴려서 누워버렸다. 붉은빛을 내는 천정이 괜시리 눈이 부시다. 쿵. 쿵. 쿵. 　　　　　　　. . . . . ............뭐지, 이 가슴속부터 울리는 듯한 기분 더러운 느낌은... 유천이 자꾸만 쿵쾅거리는 자신의 심장에 의문을 가지며 한동안 멍하니 있을 때에도 준수는 계속 흐느끼고 있었다. "...괴롭히지 마..... 으으.....우리 형, 우리 형......" "......너 느그 형 좋아하냐? 미친 거 아녀. 내비 둬. 정윤호가 알아서 잘 빨아 줄 거야." "...으으...으.....으윽.....흐윽.." "아, 그만 좀 짜!! 진짜 시끄럽네. 나 시끄러운거 존나 싫어하거든? 제발 좀 그만 울어라. 응?" 머리 끝까지 치닫고 올라오는 짜증을 막을 길이 없었는지 드디어 유천은 그 더러운 승질머리를 못 참고 울먹이는 준수에게 짜증을 내 버렸다. 그러나, 역시 준수의 울먹임은 멈출 기세조차 보이지 않는다. "너 진짜 계속 울면 나도 김재중 따먹어 버린다." 사뭇 진지해진 유천의 목소리에 급박스레 울음을 멈추어 버리는 준수였다. 그리고는 그 눈물 그렁그렁한 눈을 동그랗게 늘려보이고는 유천에게 시선을 맞추었다. 쿵. 쿵. 쿵. 다시 한번 이 지랄맞은 심장이 발광을 하고 있다. 아, 씨발. 심장병 걸렸나. 왜이래. 짜증나게시리. 유천은 지그시 자신의 표정을 찌푸리고 자신을 쳐다보는 준수의 시선을 그대로 외면한채 다시 고개를 돌려 버렸다. 기분 잡쳤다. 그 것도 확실하게. "......박.....유천...?" 아까 낮에 자신의 이름이 '박유천' 이라고 소개한 것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일까. 바로 옆에서 자신의 이름을 불러오는 준수의 목소리가 왠지 모르게 묘하고, 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심장 박동수는 다시 현저히 빨라지고 있다. 기분 더럽다. 좆같다. 왜 이러지? 이렇게 심장이 뛰는 것, 기분이 나쁘다. 꼭 무언가를 원하는 것 처럼... 　　　　　　　　. . . . . . .........박유천, 미쳤냐. 설마. "...박유천........." 다시 한번 낮게 불러오는 저 목소리에, 우습게도 온 몸이 움찔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럴수록 유천의 표정은 더욱 굳어져만 갈 뿐. "반 말 하지마, 새꺄. 어디서 선배 이름을 함부로 불러." "....박유천....." ".....왜, 귀염댕아." "........유...천......박유천..." "아 이름 닳어! 왜 자꾸 불러!" ".........헤에.....박유천....." 곱게 휘어지는 그 눈망울에 방금 전까지 맺혀있던 눈물이 또로록 굴러 떨어졌다. 쿵...... 　　　　　　　　　. . . . . .........드디어, 내려 앉았다. 계속 위태하게 뛰어대던 심장이, 　　　　　　　　　　　저 깊고 깊은 혼돈의 나락으로 떨어져 내렸다. 　　　　　　김준수라는 이름의 끈이 내 마음을, 내 심장을, 내 모든것을, 천천히 옭아매고 있었다. * 　　　　　　　　　　　　　　 묶인다. 얽힌다. 감긴다. 　　　　　　　　　　　　　　　　　하나가 된다. 　　　　　　　　　　　　　　　.끈　　　　　#05. 　　　　　　　　　　　　　　written by. 샤그락처녀 　　　　　　　　　　　　　(dndzidzid22@hanmail.net) 　　　더럽혀졌다고 해서 계속 더럽게 행동해야 할 이유는 없다. 나는 그렇게 포기를 하며 계속 더럽혀 　　　　　　　지기 보다는, 오히려 깨끗해지려고 노력한다. 그게 그와 내가 틀린 점이다. 　　　　　　　　　　　　　　　　　monologue by. Xiah 　　　　　　　　　　　　　　　　　　　　. 　　　　　　　　　　　　　　　　　　　　. 　　　　　　　　　　　　　　　　　　　　. 재중이 학교에 도착 한 건 꽤나 늦은 시각이였다. 밤 새도록 잠을 자지 못한 탓일까, 그의 얼굴은 피곤한 기색이 잔뜩이였다. 밤 늦도록 오지 않는 준수를 기다리며 전화를 도대체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끝끝내 준수는 날이 다 샐때까지 전화를 받지 않았고, 불안한 마음에 지금까지 꼬박 밤을 지새운 재중의 얼굴은 말이 아니였다. 비척이는 발걸음으로 학교 앞에 다다른 그가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 정윤호에게 전화가 온 것은 다섯통. 10시를 넘긴 이 시간에 역시 학교앞엔 아무도 서 있지 않았다. 깊게 끓어오르는 긴장을 한숨으로 잠시 무마시킨 그가 역시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교문에 들어서고 있을 때 였다. "죽고싶냐." 낮게 귓고막을 울리며 퍼지는 저 목소리에 재중은 심장이 멎는 듯한 아픔을 느껴버렸다. 왜 여태껏 발견하지 못 한 걸까. 윤호였다. 윤호는 교문 옆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던 중이였다. 그러나 재중은 그를 발견하지 못 했고, 윤호는 그가 한숨을 쉬는 것, 긴장감에 자꾸만 고개를 숙이는 것 까지 세세하게 옆에서 다 지켜보고 있었던 터였다. ...바보, 김재중. 어떻게..어떻게 못 봐. 바로 이렇게 옆에 있었는데. "지금이 몇 시야." 낮게, 그리고 특유의 냉랭한 그의 목소리에 재중의 몸은 점점 주체 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려오고 있었다. 재중이 아무런 말 못한채 계속 우물쭈물, 몸만 벌벌 떨어대자 안 그래도 올라왔던 짜증을 어렵사리 삼키고 있던 그는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버렸다. 연기를 미약하게 뿜어대는 담배 꽁초를 잔인스레 지져밟고는 다시 한번 입을 연다. "몇시냐고 물었다." "......................." "대답 안 해?" ".........10시 5분.." "왜 지금 온 거야?" "...................." 자신을 끝끝내 쳐다보지 않는 재중의 행동에 참으려 해도 참을 수 없는 짜증이 명치 끝 까지 치닫고 올라오는것을 느낀 윤호가 그대로 재중의 턱을 잡아 고개를 들게 했다. 굳게 잡혀진 턱이 아팠는지, 천천히 찌푸려지는 재중의 미간을 무시 한 채로 윤호는 잡은 손에 더욱 더 힘을 주기 시작한다. "말 해. 왜 지금 온 거냐고." ".....아파....." "아프냐고 물어 본 적 없어. 왜 지금 온 거냐고 물었어." "...아파, 아프다구...!" 턱을 점점 더 세게 조여오는 느낌에 재중은 온 얼굴을 찌푸리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보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손에 힘을주는 윤호는 쉽사리 재중의 턱을 놔 줄 것 같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턱에 멍이라도 시퍼렇게 들 것 같은 두려움에 재중이 조금은 매섭다싶은 손놀림으로 타악- 윤호의 손을 뿌리쳐 버린다. "...아주 제대로 개기네." "...이제 그만 해. 이제 나 너 안 좋아해. 내가 잘못했어. 내 주제도 모르고 너한테 고백 한 것 정말 미안해. 죽을 죄를 졌다고! 그러니까 이제 제발 좀 그만 하란 말이야!!" 　　　　　. . . . . ............제발 그만해. 좋아하는 사람한테 이런 취급 당하고 싶지 않아. 　　　　　　　　　　　　　　내가 이렇게 비참 한 것 싫단 말이야. 그러니까....................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내뱉으며 역시 울먹이며 소리치는 재중을 바라보던 윤호의 눈엔 어느새 빛이란 게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싸늘히 식어버린 텅 빈 윤호의 동공을 바라보던 재중은 어느새 소리치던 입을 굳게 다물어 버렸다. 오싹하다. 너무나도 오싹했다. "그만 두던 말던, 그건 내 마음이야. 명령하지마." ".....명령이 아니야. 부탁이야." "........그래...?" 순간, 또 다시 걸리는 윤호의 얼음장같이 냉랭하고 싸늘한 그 미소에 재중은 온 몸을 떨었다. 또다. 또 나왔다. 엄청난 상처를 예감하라는 무언의 경고. 그의 웃음은 그랬다. 경고였다. 상처 받지 않으려면 심장을 쥐고 있어야 할 걸? 하는 듯, 그렇게 차가운 그 미소에 재중은 여전히 아무런 행동조차 해 보이질 못하며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럼 무릎 꿇어. 부탁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무릎 꿇고, 고개 땅에 박어. 그리고, 잘못했어요. 당신께 고백해서 죄송해요. 나같은 걸레따위가 당신에게 고백을 한 것, 정말 죽어 마땅한 일이에요. 죄송해요.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라고 빌어. 어서." 아찔. 머릿속이 아찔해져 왔다. 어쩌면 이럴수가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렇게까지 잔인 한 말을 청산유수 흐르듯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을수가 있을까. 어떻게, 어떻게 이렇게 비참해지는 말만 죽고 싶어지는 말만 골라서 할 수가 있는 걸까. 　　　　　　　. . . ........어쩌면 이렇게 남의 심장을 파고 들어 올 수가 있을까. 숨막히는 침묵이 흘렀다. 굵은 눈물만 뚝 뚝 흘려대던 재중은 그대로 주먹 쥔 손으로 자신의 눈물을 훔쳐내고, 윤호를 밀치고 교문 안으로 들어서려는 듯 발걸음을 옮겼지만, 가려던 재중의 발걸음은 그새 재중의 팔을 낚아채는 윤호의 행동으로 인해 저지되고야 말았다. "어딜 가. 아직 나 너한테 볼 일 안 끝났어." "...난 볼 일 끝났어." "죽고 싶으면 죽고 싶다고 말 하지 그래?" ".......그래, 죽고싶어. 그냥 죽여줘."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이렇게 아플 바엔, 이렇게 힘들 바엔, 너를 좋아하는 게 이렇게 힘들고 이렇게 슬플 바엔 그냥 죽어버리는게 나아. 죽지 않으면, 여전히 나는 너를 좋아 할 테고 너도 여전히 나에게 잔인 할 테니까. 　　　　. . .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 살 만큼, 이 생에 미련이 있는 것도 아니야. 　　　　　　　　　　　　　　　　　　그냥 차라리 죽여줘. 슬픈빛을 띄며 일렁이는 재중의 시선을 마주하던 윤호는 결국은 다시 같은 웃음이다. 그리고, 갑작스레 그 웃음이 걷히는 가 싶더니 재빠른 손놀림으로 재중의 얇고 여린 하얀 목덜미를 낚아 채 버리는 윤호였다. 이미 그의 눈동자는 싸늘히 텅 비이버린 지 오래다. "으윽.....!!" 그대로 교문 옆 벽에 몸이 밀쳐진 재중은 갑작스러운 충격이 자신의 목을 감싸고 돌자 목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아픔의 신음을 질러댔지만 윤호는 여전히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부들부들. 어찌나 힘을 주고 있었는지 핏줄이 일어선 윤호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눈이 돌아간다. 얼굴은 이미 백지장처럼 새하얘진지 오래였다. 그러나 재중은 단 한번의 움직임 없이 그냥 그저 그렇게 그대로 목이 조여진 채로 서 있을 뿐이였다. 하늘이 노랗다. 그래...... 　　　　　　　　　　. . . . . ..............그냥, 죽을게. 죽을게....................... 　　　　　　　　　　　　　　　죽어서도 너는 날 비웃겠지. 그래. 그럴거야........ 　　　　　　　　　　　　　　　　　넌 지독히도 잔인한 사람이니까. 혼미해져 가는 정신을 더는 버티려 하지 않았다. 그저 억센 힘으로 자신의 목을 쥐고있는 윤호 손의 감촉을 느끼며, 그렇게 재중은 멎어오는 숨을 놓아버리려 더욱 노력했다. 숨을 이으려 노력하는것이 아니라 더욱 놓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갑작스레 손을 놓아버리는 윤호로 인해 재중은 갑자기 뚫리는 숨으로 인해 그대로 정신을 놓아버리는 재중이다. 앞으로 파악 쓰러지는 재중으로 한손으로 가볍게 잡아 낸 윤호는 정신을 잃은 체 자신의 팔에 몸을 맡기고 있는 재중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갔다. 낮은 목소리로, 차갑디 차가운 그 목소리로 나지막히 말을 내뱉는다. "......넌 죽은거야. 넌 내가 죽인거야. 그러니까, 이제부터 넌 내 말만 들어야 해. 사랑같은 걸 다시 한번 바란다면, 그땐 진짜로 죽여버리겠어. 이제 넌 내게 묶인거야. 넌, 김재중이 아니야. 넌 죽었으니까." 　　　　　　　　　. . . . . . . .........................말 잘 듣는 인형이 되어라. 　　　　　　　　　　　　　　나는 널 가지고 노는 주인이 될테니. 준수가 눈을 뜬 시간은 11시를 조금 넘기는 아주 늦은 시간이였다. 흐느끼는 듯한 고통에 찬 신음을 하며 눈을 뜬 준수의 어지러운 눈에 띄인것은 난생 처음보는 천정. 놀란 듯 눈을 몇번이나 깜빡거리다가 이내는 이리저리 눈을 굴려보던 준수의 시선에 들어 온 것은 자신의 옆에서 잠을 자고있는 남자. 바로 유천이였다. "...뭐...뭐야......."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 그래..어제, 재중이형에게 주는 술을 내가 미친듯이 받아 먹었지. 그래. 그래.... 근데, 그 다음부터 뭐가 어떻게 된 거냐고!! 이, 이 자식은 왜 옷을 벗고 있는거야!! 내 옷은...!! 서둘러 자신의 밑을 내려다 본 준수의 얼굴은 순식간에 새하얗게 변질되고 말았다. 알 몸이였다. 윗 옷은 침대 밑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상태였다. 제길. 제길. 제발 기억 좀 해내라, 이 멍청한 대가리야. 한참동안 온 몸을 벌벌 떨어대며 머리를 마구 굴리며 어제의 기억을 생각해내려고 하지만 도무지 생각 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갑작스레 몸을 뒤척이는 유천으로 인해 안 그래도 굳어있던 준수의 몸은 더욱 굳어 질 뿐이였다. ".....어....." 잠에 가득 잠긴 두 눈을 억지로 뜨는 듯 하더니, 이내는 준수를 보고 자그맣게 저 소리를 내는 유천이였다. 준수는 두 눈 가득 두려움을 담고 유천을 쳐다보기만 할 뿐, 어떠한 말은 꺼낼 수 조차 없었다. 유천이 부스스한 머리를 헤집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으켜진 유천의 상체에도 역시 옷은 걸쳐져 있지 않았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두려움 가득 담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준수를 여전히 잠에 잠긴 눈으로 멀뚱멀뚱 쳐다보던 유천이 드디어 입을 연다. "뭘 봐." 준수의 눈빛이 아찔이 꺾이는 듯 싶다. 그리고 찡- 하며 아파오는 머리는 아랑곳 않고 그대로 소리를 꽤액 내질러 버렸다. "이게 뭐야!! 나 왜 여기 있어!!" "...어쭈. 반말하네. 이게 뒤질라구." "...하...대체, 대체. 여기가 어디냐고!!" "마이 하우스!" "그러니까,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거냐구!!!" "존댓말 안 쓰면 대답 안 해줄거야."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는 듯 준수는 그대로 입을 벌린체로 유천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유천은 침대에서 그대로 몸을 일으키더니 발을 바닥으로 내딛는 듯 하다. 그러더니 갑작스레 다시 침대속으로 쏘옥 몸을 들이 밀고 다시 자신의 몸을 침대에 눕혀버렸다. "침대 밖으로 나가니까 추워. 귀염댕아, 나 밥 차려 줘." 그러더니 하는 말이 저 위에 것이였다. 그것도 생글생글 웃으며. 답답해서 속이 터져버릴 것 같다는 듯 준수가 짜증섞인 눈빛으로 유천을 계속해서 노려보고 있었고, 유천은 그런 준수를 한참이나 빤히 바라보다가 자신의 커다란 손을 내어 준수의 두 눈을 가려 버렸다. "그러다가 눈알 빠지면 어쩌려고 그러셈." "치워!" 그대로 유천의 손을 매몰차다 싶은 손동작으로 내쳐버린 준수는 여전히 끓어오르는 자신의 열을 감당할수가 없는 건지 아까의 그 표정 그대로 생글거리는 유천을 심하다 싶게 노려보고 있었다. "뭘 갈궈-" 심드렁하게 말을 내뱉으며 유천은 옆으로 돌아누웠고, 그대로 준수는 돌아선 유천의 팔을 잡고 다시 자신의 쪽으로 몸을 돌려 눕혀버리고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하고서 치미는 열을 참아낼 수 없다는 듯 결코 좋지 못한 목소리로 꽤액 소리를 질러 버렸다. "뭐냐구!! 대체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거냐구!!" "존댓말." "지금 내가 존댓말 쓰게 생겼..!" "존댓말." "........하아........" 속 언저리에서부터 급하게 끓어오르는 이 무지막지한 홧기를 준수는 간신히 참을인을 계속 곱씹으며 심호흡을 해댔다. 이 상황, 지금 이 상황. 딱히 알아보지 않아도 어렴풋이 짐작이 가고 있었다. 그래, 짐작이 간다. ".....내가. 내가 왜 여기 이러고 있는 건데요." "응, 어제 너 나랑 잤어." "왜요!!!!!" "네가 나 유혹했거든. '먹어주세요' 하고 유혹했어. 기억 안 난다고 할려고?" ".....마...말도 안돼....." "정열의 밤을 불싸른 뒤에 네가 나한테 사귀자고 했고, 나는 그대로 오케이- 했어!" ".....하...." "오우, 허니. 그 표정 섹시해~" 그대로 준수는 자신이 베고 있던 베개로 유천의 얼굴위에 덮어버렸다. 유천은 놀란 듯 두 팔을 내저었고 준수는 "죽여버릴거야!!!!!!" 하는 엄청난 고함을 지르며 여전히 베개를 쥔 손에 더욱 힘을 주며 미칠듯 올라오는 열에 있는 힘을 다해서 베개를 누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당해주는 듯 하더니 유천은 금새 그런 준수를 밀어내고 헝클어진 머리를 다시 바로 잡으며 "아, 뒤질래!?" 하고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을 내지른다. 그리고, 준수의 눈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보더니 잠시 짜증섞인 그 표정을 지워버렸다. 　　　　. . . . . . ......................쿵. 쿵. 쿵. 다시 시작됐다. 심장의 울림이. "...이게..뭐야...... 난....난...너같은 애 알지도 못하는데..." ".....존댓말." ".....뭐야, 이게.....나 뭐야...나 정말 무슨짓을 한 거야......." 재중이 형, 이런 기분이였어..? 이렇게 더러운 기분이였어.....? 더렵혀진 이 느낌은. 정말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끔찍해. 이게 뭐야. 대체, 이게 무슨일이야. 나..... 정말 무슨짓을 한 거냐구.....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눈물만 뚝뚝 떨어트리며 크게 번지려는 눈물을 막고있는 준수를 빤히 쳐다보던 유천의 눈동자에도 이미 따뜻함이란게 사라져 버린 후 였다. "질질 짜지마. 보기 싫어." "...흑...으윽......" "어쩔 수 없어. 넌 이미 나한테 몸을 줬고, 우린 사귀기로 한 거야. 그러니까 너는 그냥 나한테 계속 먹혀주기만 하면 돼." 그대로 떨궈진 준수의 고개를 유천은 짜증난다는 듯한 표정을 일구며 손을 내어서 들어 올렸다. 이미 얼굴 가득 눈물이 한바닥이다. 가슴 저 언저리에서 무언가 찌릿- 찌릿- 하는 듯한, 전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메마른 입술을 축이며 한동안 말이 없던 유천은 다시 입을 열었다. "눈물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질 때 마다 그 갯수대로 너 나한테 따먹힐 줄 알아. 내 말이 좆같이 들리냐?" 이미 그는 정윤호 무색할 정도로 훨씬 더 차가워지고 말았다. 기분이 좆같다. 승질같아서는 그대로 얼굴이라도 내쳐버리고 싶은데 그 것도 못하겠다. 준수의 눈빛에 가득 담긴 원망스러움이 더욱더 유천의 화를 돋구고 있었다. 　　　　. . . . ........나도 기분 드럽다고, 귀염댕아. 이 미친 심장이라는게 계속 왜 뛰는지 밤새도록 생각을 해 봤거든? 근데, 우습게도. 그건.......................................... "귀염댕아. 내가 잘 해줄게. 그니까 울지 마." 조금은 사근사근해진 유천의 말투에 준수는 잡혀있던 자신의 턱을 그대로 치워내며 눈물을 쓱쓱 닦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스스럼 없이 일어섰고 바닥에 떨궈져 있던 자신의 옷가지들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빤히 쳐다보던 유천은 솟구치는 열을 어렵사리 삼키며 다시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말을 잇기 시작한다. "너 나 싫어?" "네." "왜?" "징그럽거든요." "어디가?" "남자라는 것 부터 시작해서 형이 정윤호의 친구라는 것 까지, 모조리 다요." 기계가 말을 내뱉는다 해도 저렇게까지 딱딱 할 순 없을것 같이 준수는 그렇게 형식적으로 존대만 붙였을 뿐 전혀 상대방을 높히지 않는 어투로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준수가 그렇게 말을 하면 할 수록 유천의 얼굴엔 더욱 웃음기가 서릴 뿐이였다. "너, 네 형은 좋아하면서 왜 나는 싫어? 네 형도 남자라고, 남자." "형은 단지 형일뿐이에요. 형을 좋아하지 않는 동생이 어딨겠어요?" "오호. 그래, 나는 형제가 없어서 그런 거 잘 몰랐어. 미안해. 잘못했어요." "안녕히 계세요. 다시는 뵐 일 없었으면 좋겠어요." 깍듯했다. 참 깍듯하게 고개까지 숙이며 인사를 하고 정말 나가려는 듯 그대로 현관쪽으로 다가서는 준수의 뒷 모습에 대고 유천은 크지도, 작지도 않지만 준수가 당연히 들을 수 있을만한 목소리로 말을 내질렀다. "귀염댕아, 나 심장떨려. 어제 네 모습이 자꾸 생각나서." 화악. 얼굴이 달아오르는 듯한 소리가 자신에게까지 들리는 듯 했다. 수치스러운 더러운 느낌이 온 몸을 감싸고 천천히 옭아매고 있었다. 밑에서 부터 끓어오르는 홧기를 그대로 한숨으로 뱉어 낸 준수는 현관 문고리를 잡았다. 그러나, 뒤에서 작지않게 들려오는 유천의 낮은 목소리. "넌 이미 더러워졌으니까 깨끗한 척 할 것 없어. 그래봤자 알아주는 사람도 없을테니까. 그냥, 얌전히 나한테 계속 먹혀주기만 하면 돼." 부들부들. 현관문고리를 잡은 준수의 손이 조금씩 떨려오고 있었다. 그대로 몸을 돌리고 유천과 시선을 마주 한 준수가 미칠듯한 분노와 증오를 삼키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급하게 내질렀다. "난 너 같은 사람 몰라. 그리고 너 같은 씨발놈한테 계속 먹혀주고 싶지도 않아. 더러워졌다고 해도 상관없어. 더러워졌다고 계속해서 더러운짓을 해야 하는 이유는 없어. 그리고, 무엇보다 난 네가 싫어. 징그러워." 　　　　　　　. . . . . . . ....................죽어도, 너 같은 놈한테 얽매이고 싶지는 않아. "아, 그래~? 근데 이걸 어쩌나. 난 이미 네가 좋아져버렸는데. 이 미친 심장이 말이야. 너만 보면 발광을 해대. 왜 그럴까 하고 밤 새도록 잠도 안자고 생각을 해 봤어. 근데, 그게 사랑이래. 사랑. 알겠냐?" 　　　　　　. . . . . . . .............불쌍한 귀염댕이. 넌 이미 끝장났어. 나한테 묶일수밖에 없어. 　　　　　　　　　이런 감정은 나도 처음이라서 내가 너한테 어떻게 할 지 몰라. 다짐 단단히 하는게 　　　　　　　　　　　　　　좋을거다. 난 방법을 모르니까. 어떻게 예뻐해줘야 하는 건지. "사랑 참 쉽게한다. 그 사랑한테 미안하다고 전해. 나는 너 같은 놈한테는 한톨도 줄 사랑같은 거 없거든." 말을 마치자 마자 준수는 급하다 싶은 몸짓으로 현관밖으로 나와버렸다. 조금은 요란스러운 소음이 현관문이 닫히면서 일었고, 준수는 나오자 마자 급히 맺히는 눈물을 우왁스러운 손놀림으로 빠르게 닦아내었다.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어쩌다 이렇게까지 꼬여버린 걸까. 왜 저 자식에게 내가 그런말을 들어야 하는걸까. 여전히 침대에 앉아 아까 그 자세로 있던 유천의 입가에는 아주 자그마한 미소가 걸렸다. 아주 짖궂게 말이다. "귀염댕아, 이걸 어쩌지. 네가 내 자존심이 팍- 하고 뭉개버린거 있지. 기대해. 나한테 그런식으로 나온건 네가 처음이거든. " 　　　　　　　. . . . ...............아주 기대하는 게 좋을거야, 김준수. * 　　　　　　　　　　　　　　 묶인다. 얽힌다. 감긴다. 　　　　　　　　　　　　　　　　　하나가 된다. 　　　　　　　　　　　　　　　.끈　　　　　#06. 　　　　　　　　　　　　　　written by. 샤그락처녀 　　　　　　　　　　　　　(dndzidzid22@hanmail.net) 　　　　　　　　너와 내가 같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지는게 사랑이라면. 　　　　　　　결코 너와 나는 사랑을 할 수 없을거야. 나는 네 얼굴만 봐도 심장이 식어버리니까. 　　　　　　　　　　　　　　　　　monologue by. U-know 　　　　　　　　　　　　　　　　　　　　. 　　　　　　　　　　　　　　　　　　　　. 　　　　　　　　　　　　　　　　　　　　. 무언가 흐느끼는 듯한 신음소리와 함께 재중이 눈을 떴다. 낯선 느낌때문일까, 눈을 뜨자마자 온 몸을 휘감고 드는 오싹한 한기에 잠시 몸을 떨었다. 낯설지만 생소하진 않은 향기가 재중의 코를 익숙치 못하게 찔러왔다. 정윤호에게서 나는, 가라앉은 느낌을 주는 차분한 향이 이 낯선 집 안 곳곳에 베어 있었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보니 시계가 눈에 띄었고 시곗바늘은 오후 4시를 조금 넘어서고 있었다. 순간, 갑작스레 머리가 찡하니 아파왔다. "......." 자신이 지금 살아있는건지 죽어있는건지. 굳이 생각 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지긋지긋한 느낌이 알려주는 이곳은 분명히 정윤호의 집이였다. 그리고 자신은 지금 정윤호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침, 윤호에게 목을 졸렸을 때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기억들때문에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죽는다는 것은 두렵기 그지 없었다. 그래서 그가 손을 놓았을때, 풀려버린 긴장탓에 그대로 기절을 했던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이 집안에 지금 정윤호라는 사람의 인기척은 없었다. 재중이 바닥에 발을 디딛고 일어서자 또 다시 현기증이 거칠게 일었다. 머리를 잠깐 부여잡고 이리저리 고개를 털어대던 그가 의자 등받이에 걸려있는 자신의 마이와 가방을 들고 방 문을 열었을 때 였다. 놀랍게도 거실엔 정윤호는 보이지 않았고 창민이 아무런 표정없이 앉아있을 뿐이였다. "..일어났냐?" "................" 아무런 말 없이 재중은 그런 그를 스쳐지났고, 등 뒤에서 또렷히 들리는 창민의 목소리에 잠시 목을 움츠렸다. "너 목에 멍 들었어." 잠시 자신의 목을 만져봤다. 욱씬- 하는 고통이 갑작스레 엄습해옴이, 아무래도 심하게 멍이 든 것이 틀림없다. 그리 쉽게 멍같은게 드는 체질은 아닌데 윤호가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그 짧은 순간에 이렇게까지 심한 멍이 목에 들다니. 일단 멍이 든 것은 그리 신경쓸일이 아니지만 준수가 보기라도 한다면 어떤 반응을 해 올지 그것부터 걱정이 되는 듯 재중은 현관에 걸려있는 거울에 자신의 목을 비춰보며 잔뜩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목도리 있는데, 줄까?" 결코 차갑지 않은 목소리로 자신의 까만 목도리를 들어올리는 창민에게 재중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조금은 안타깝다싶게 내려가는 목도리를 쥔 창민의 손. 그리고, 재중이 돌아서서 나가려는 듯 신발을 신고 있을 때였다. 갑작스레 현관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윤호가 들어섰다. "..........." 윤호와 재중의 시선이 천천히 허공에서 얽혀들어갔다. 무미건조한 텅 빈 윤호의 눈동자. 그리고 일렁이며 두려움을 가득 뿜는 재중의 눈동자. 그 시선들은 어쩌면 평생이 가도 변하지 않고 서로에게 끊임없이 상처를 줄 지도 모르는 일이다. 현저히 빨라져만 가는 심장 고동수를 억제 할 수가 없었다. 마른침을 삼킨 재중이 다시금 두통이 일어나는 머리탓에 눈을 꾸욱 감고 슬쩍 윤호를 피해 몸을 옆으로 돌려 현관쪽으로 몸을 밀착 시켰지만. "죽을래." 무미건조한 목소리와 함께 내뱉어진 저 말에 잔뜩 몸을 굳히는 재중의 허리를 윤호가 한 팔로 감싸안아 그대로 거실바닥으로 내 던져버렸다. "으윽.." 하는 낮은 신음과 함께 바닥으로 팽개쳐진 재중이 거실바닥에 주저 앉아 몸을 일으키려 할 때 윤호는 그런 그를 지나쳐 집 안으로 들어선 상태였다. 재중은 다시금 심하게 지끈거려오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정윤호. 너 왜 그러냐, 진짜." 좋지못한 창민의 목소리가 윤호를 향해서 비난이 섞여 내뱉어졌고, 피식 웃는 윤호의 목소리가 재중의 귀를 파고들었다. 다시 힘겹게 몸을 일으킨 재중이 현관쪽으로 다가서자 뒷 쪽에서 들려오는 냉랭한 목소리. "이리 안 올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가슴 언저리에서 돌고 도는 화라는 감정은 무마시키면 무마시킬수록 더욱 더 커져만 갈 뿐이다. 그렇지만 달리 화를 내야 하는 이유도 없다고 이제는 자신까지 버려버린 상태에서 재중이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는가. 역시 그는 윤호의 말을 넘기며 그대로 다시 나가려는 듯 현관문고리를 잡았다. "창민아. 너 나가라. 쟤가 나한테 죽여달라고 발악하는 중이거든." 재중을 향해 하는 말 처럼 들려왔다. 창민아, 라는 수식어가 붙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재중은 무언가의 좋지 않은 예감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서둘러 현관문고리를 잡아 돌렸지만, 저벅거리는 발소리는 그닥 느리지 않게 뒷 쪽에서 들려왔고 어느덧 재중의 허리는 윤호의 팔에 잡혀버린 상태였다. 날숨을 들이마쉰다. 점점 호흡이 곤란해 지고 있었다. "정윤호. 제발 작작해라. 보기 싫다고 몇번 말하냐." "너한테도 열내기 전에 얼른 나가. 요즘 너 듣기 싫은 말 자주 해대는데, 짜증나니까 얼른 나가." "너야말로 보기싫은 행동 자주해댄다. 내가 알던 정윤호가 겨우 이거냐? 청승맞게 남자애한테 얽혀가지고. 뵈기싫게." ".....심창민. 그만하라고 했어." 창민과 윤호의 목소리는 점차 낮아지고 있었다. 그대로 창민은 좋지않은 시선으로 윤호를 봐준뒤에 현관쪽으로 다가섰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며 말 한마디를 남긴채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정윤호, 나한테까지 성질 낼 정도로 그 자식이 중요해? 실망시켜도 정도껏 시켜라." 　　　　　　　　. . . . . ............내 허리를 잡은 그의 손은 미약하게 떨려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였다. 치미는 화를 억제 못한 윤호가 그대로 재중을 거실바닥에 내던져 버렸다. 알싸한 고통과 함께 재중이 잠시 감은 눈을 찌푸렸다가 느릿하게 떴을 때, 이미 윤호의 윗도리는 저리로 던져진지 오래였다. 아찔한 두려움과 고통이 찾아들었다. 어두운 그림자가 자신을 덮쳐온다 싶었을 때 이미 재중은 공포스러움과 두려움에 이성을 잃은 상태였고, 윤호는 치미는 홧기와 무언의 짜증감때문에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왜...왜..!" "넌 죽은거야." "!!!....." "죽은거야. 알아들어? 넌 아까 죽었어. 네가 나에게 죽여달라고 했지. 그리고 나는 너를 죽였어. 너는 죽은거야. 이제부터 내가 네 주인이야. 너는 함부로 말을 해도 안돼고 함부로 나를 거부해도 안돼. 내가 화가 났을 땐, 너는 그저 벌벌 떨기만 하면 되는거야. 그리고 나는 화가 날 때마다 너를 괴롭힐거야. 그래도 너는 나에게 감사해야 돼." 납득할 수 없다는 듯 잔뜩 얼굴에 나타난 공포심을 지우지 못하고 고개를 느릿하게 저어대는 재중을 보던 윤호의 입가엔 이미 미소가 서린지 오래다. 쿵쾅.쿵쾅. 서로의 울림이 확실하게 느껴질 정도로 두사람의 간격은 좁았다. 그리고, 점점 더 그 간격이 좁혀져 간다 싶었을 땐 이미 윤호의 입술과 재중의 입술을 닿아있는 상태였다. 급히 들어올려지는 재중의 한 손으로 가볍게 제어하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그의 바짓속으로 급하다 싶게 손을 밀어넣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대로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너무 아프다. 머리끝에서 부터 발 끝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하지만 가장 아프고 시린것은 이 안에서 여실히도 뛰어대는 심장이다. 　　　　. . . . .........네가 싫다고 몇번이나 말해도 소용이 없는거구나. 죽고싶다고, 죽여달라고 해도 　　　　　　너한테서 결코 벗어날 수는 없는 거구나. 나는 끝끝내 너를 이길 수 없는 거구나. 입술을 떼어내자 마자 흐느끼듯 터지는 재중의 울음소리에 윤호는 짐짓 움직임을 멈추었다. 감긴 눈에서 뺨으로 흐르는 눈물은 보는 사람까지 미어지게 할 정도로 슬퍼보였지만, 그런것에 연연하고 마음약해질 만큼 윤호는 좋은사람이 되지 못하다. 그대로 들어올려진 윤호의 손이 결코 약하지 않은 동작으로 재중의 뺨과 세게 부딪히고 말았다. 짜악...! 소름끼치는 마찰음과 함께 재중의 고개는 그렇게 돌아갔다. 울먹거리던 소리도 어느새 그쳐버렸다. 슬픔만으로 이 공포를 이겨내기엔 역시 턱없이 부족 할 뿐이라는 걸 그렇게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방금 맞은 뺨이 무척이나 욱씬거리며 그 고통이 느껴지고, 쉴 새 없이 지끈거리던 머리는 더욱 심하게 두통이 일기 시작했다. 이러다간, 정말 정신을 놓아버릴 것만 같았다. "울지마. 더럽게 눈물 묻을까봐 조바심나니까 울지마." "....흐윽.....으....." "......김재중. 싫어?" 스스럼 없이 올려지는 윤호의 입꼬리는 그 묘한 느낌을 여전히 자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손으로는 재중의 그 은밀한 곳을 약하지 않은 동작으로 쓰다듬고 있었다. 아찔한 그 느낌에 재중은 급하게 눈을 질끈감고 고개를 이리저리 저었다.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그 날의 악몽이. 그 날의 그 기분이. 더렵혀진다는 그 끔찍한 느낌이. 아주 천천히 재중의 온 사지를 휘어감고 올라오고 있었다. 스물스물 무언가 기어오르는 듯한 그 아찔한 느낌에 머릿속이 한 순간에 텅 비어버렸다. 새하얀 백지장이 되어버린 재중의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도망치고 싶다는 일념 하나 뿐. 새파랗게 멍이 든 재중의 목언저리에 윤호가 입술을 가져대 대자 방금 전까지와는 다르게 온 몸을 움찔하며 재중의 곧던 눈썹이 보기 싫게 일그러지고야 말았다. 그 입술이 벌어져 멍이 든 살결을 빨아올리자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틀린 아픔이 재중의 몸 구석구석으로 퍼지고야 말았다. "으윽..!!!" 심하게 요동치는 재중의 허리를 그닥 부드럽지 않게 감싸안은 윤호의 입술은 여전히 재중의 목언저리를 배회하고 있었고, 나머지 한 손은 빠르게 재중의 바지를 벗겨내렸다. 그리고 다음으로 풀리는 재중의 와이셔츠 단추는, 그렇게 부드럽게 풀리는 듯 하다가 짜증스러운 손놀림으로 화악 잡아뜯어버리는 윤호 탓에 그대로 튕겨져 거실바닥을 나뒹굴어 버렸다. 지분거리는 손놀림으로 재중의 상체 이곳저곳을 쓰다듬는 윤호의 손길은 농도가 굉장히 짙었다. 점점 더 거칠어지는 숨결과 간간히 흘러나오는 미약한 신음은 여전히도 재중에겐 생소했다. 자신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오고 자신의 몸이 이렇게 반응 한다는 것은 여전히 지독히도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냥 혀를 깨물고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나는 건, 무엇보다도 미친 듯, 좋아서 미칠것 같다는 듯 반응을 하는 자신의 몸이였다. "...넌, 몸은 참 예뻐. 그런데-" "......으.....아.............." "내 마음엔 안 들어." 　　　　　　　. . . . . ..........상처를 주고 싶어. 미친듯이 울게 만들어주고 싶어. 　　　　　　지금까지와는 비교할수도 없는 상처를 줘서, 끝끝내 네가 무너져버렸으면 좋겠어. 　　　　　　　　　　　왜냐고 물어온다면, 역시 대답은 하나야. 그건.................... 쾅쾅쾅! 재중의 상체에 얼굴을 갖다대고 이리저리 움직이던 윤호의 움직임이 굳건히 멈춰 버렸다. 거칠은 숨결을 내뱉으며 눈을 질끈 감고있던 재중의 눈도 빠르게 띄어졌다. 누군가가 발로 심하게 윤호의 집 현관을 걷어차는 소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잠시의 멈춤만이 있었을 뿐, 얼마 안가서 윤호는 다시금 재중의 상체를 샅샅히 탐색하고 있었다. "흐윽..." 억눌린 신음이 터져나옴과 동시에 윤호의 얼굴은 재중의 상체에서 벗어나 재중의 벌려진 다리사이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찔한 관능미를 풍기는 재중의 온 몸은 보기만 해도 움찔거림이 일어난다. 희미하게 남아있는 전번의 흔적들. 허벅지 안쪽에 즐비한 그 자욱들에 윤호는 다시 입을 가져다 대고 더욱 진한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쾅쾅쾅쾅! "정윤호, 씨발놈아!! 안에 있는 거 다 알거덩!?" 드디어 윤호의 표정에 짜증스러움이 들어나버렸다. 재중은 다시 한번 놀란 듯 힘없이 벌어져있던 다리에 힘을 주어 다리를 오무렸고, 그에 윤호가 고개를 들어올리며 현관쪽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작지 않게 말을 내질러 버렸다. "박유천, 너 안 꺼지면 죽여버릴 줄 알아." "나 심심해!! 학교 갈라했더니 수업도 다 끝났데!! 으엥엥, 들여보내주세요~ 네?" 오바가 섞인 울먹거림으로 중얼거리는 유천을 향해 솟아오르는 열을 참지 못하고 윤호는 잠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대로 일어나서 빠르게 현관문을 열어제끼고 현관앞에 서서 해맑게 웃고 있는 유천을 잔뜩 찌푸려진 좋지 못한 시선으로 노려본다. "윤호씨. 갈구지 마셈. 내가 얼마나 심심했으면 당신에게 찾아왔겠어." "창민이한테 연락하지." "방금 심창민이 나 쌩까고 그냥 지나쳤어. 내 청렴한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구. 나도 쌩깔꺼야!" 자연스레 윤호를 밀치고 안으로 들어오며 재잘대던 유천은, 거실에서 허겁지겁 옷을 걸치고 있는 재중을 보고 잠시 온 얼굴을 굳혀버렸다. 따라 안으로 들어오며 무어라 상스러운 욕을 짓껄이는 윤호. 상황이 단 한순간에 짐작이 되어버린 유천은 잠시 굳었던 표정을 걷고 그대로 장난스레 웃어버렸다. "정열을 불싸르고 있었네. 미안해." "알았으면 꺼져." 확실히 열이 받은 듯 평소보다 갑절이나 낮아진 윤호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여전히 서투르게 옷을 걸치고 있는 재중을 힐끗 바라 본 윤호의 얼굴은 더욱 굳어지고야 말았다. "누가 입으래." 셔츠를 걸치던 재중의 움직임은 다시 한번 멎어버렸고, 유천은 안으로 들어와 거실에 있는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재중을 위 아래로 훑어보고는 아주 낮게 웃음을 지었다. 테이블에 놓여있는 윤호의 담배를 입에물고 자연스레 불을 붙이며 아직도 굳은 얼굴로 서서 재중을 내려다보는 윤호를 향해 특유의 심드렁한 목소리로 중얼댄다. "쪽팔리겠지. 걸레가 걸레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거 봤냐, 정윤호." 유천의 말에도 여전히 윤호는 표정을 예전처럼 피지 못했으며, 재중은 안그래도 굳어진 몸을 더욱 더 뻣뻣하게 굳히고만 있었다. 이 상황이 너무나도 싫다. 미치도록 끔찍하다. 모든게, 잔인하고 두렵기 그지 없는 이 곳에서 한시라도 빠져나가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용기도 깡도 자신에겐 없다. ......기분이, 끔찍하다. "아참, 나 저 걸레 동생이랑 사귄다, 윤호야?" 담배를 한번 깊게 빨고 연기를 내뱉으며 한다는 소리가 저것이였다. 윤호는 그저 한 쪽 눈썹만 꿈틀- 하며 자그맣게 반응을 해 보였지만 유천과 단 한번도 시선을 마주치려하지 않던 재중은 급하게 고개를 들어 유천을 쳐다보았다. 그런 재중을 향해 유천은 전과 다르지 않게 "뭘 봐." 하고 낮게 중얼대었지만, 재중은 전과는 전혀 다르게도 더욱 눈동자를 일렁이며 유천을 쳐다보기에 바쁘다. 살짝이 이맛살을 찌푸린 유천이 담배를 재떨이에 지지더니 꼬았던 다리를 풀고 소파에서 내려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재중에게 다가가 재중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자신의 안면을 재중의 얼굴 바로 앞으로 홰액 들이밀었다. 그러더니 생긋. "왜, 나같은 새끼가 네 동생님하고 사귄다는게 마음에 안 들어?" "...무슨...소리야...알아 듣게 말을.." "그것도 아니면, 네 동생하고 사귀니까 네 동생의 형인 너한테 잘 하라 이 말이지? 그런거야, 형수님?" "무슨 소리냐구..!! 대체 준수가 왜 너랑..!" "귀염댕이 핸드폰 번호 알려 줘. 지금 부를테니까, 네가 귀염댕이한테 확실히 들으면 되겠네." 　　　　　　　. . . . . ...............준수야................................................. 　　　　　　　　　　도대체...도대체........................................................... 낯선 현관 앞에 선 준수는 자그마한 심호흡을 했다. 늦게나마 학교에 갔다가 집에 들어가보니 역시 형은 없었고, 그렇게 집에서 정신없이 무언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을때에 생전 처음보는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유천이였고, 그가 준수에게 했던 말은 대충 이러했다. '지금 내가 불러주는 주소대로 찾아 와. 너희 형 여기에 있으니까. 너 안 오면 나랑 윤호랑 둘이 동시에 화악- 뭉개줄거야.' ................................................ 떨리는 손가락으로 준수가 벨을 누르자 마자, 놀랍게도 5초가 흐르기도 전에 곧바로 현관문이 열려버렸다. 현관문을 연 사람은 아무런 표정이 없는 윤호였고 준수는 그런 그를 보자마자 갑자기 턱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목례같은 형식적인 인사도 없이 준수가 얼른 집 안으로 들어오자 마자 눈에 띈 장면은 단추가 떨어진 셔츠를 입고 있는 자신의 형, 김재중. 그리고 그 형의 목 언저리에 보기싫은 시퍼런 멍들. 그리고 그런 재중의 옆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티비를 보며 태평히 웃고있는 박유천. "...김준수." 눈물이 그렁하게 맺힌 눈으로 준수를 쳐다보던 재중은 결코 좋지 못한 딱딱한 음성으로 준수를 불렀다. 준수역시 좋지 못한 표정으로 재중을 쳐다봤고, 재중은 잠시 마주친 동생의 눈빛에 갑자기 울컥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말이야. 내가 아까 박유천한테 들은 말이, 대체 무슨 말이냐구." "...형 왜 이러고 있어. 여기서 뭐해." "내가 묻는 말에나 대답 해!!!" 유천은 처음으로 감정을 들어내고 크게 소리를 내지르는 재중에게 놀란 것일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재중을 쳐다봤고 윤호는 그저 아무런 표정없이 살짝 소파에 기대어 그들을 말 없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였다. 준수 역시 몇 번 보지 못한 재중의 화내는 모습에 잠시 당황한 듯 입을 다물었지만 이내는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형이 뭘 묻는지 모르겠어. 뭐가 궁금한건데." "박유천이 너랑 자기가 사귄다고 했어. 그게 무슨 말이야." "......휴. 개 헛소리야. 그걸 믿었어?" 준수는 유천에게 노려보는 듯한 시선을 주며 재중에게 말했고, 유천은 어깨를 으쓱 해 보이며 그저 생긋 웃을 뿐. 그리고는 준수를 향해서 웃음기 서린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귀염댕이, 그렇게 말 하면 섭하지. 아까 아침에 내가 몇번이고 말했잖아. 너랑 나 사귀기로 했다고." "나도 몇번이고 말했잖아? 네 자식 징그럽다고." "존댓말." "너같은 자식한텐 존댓말도 과분해." 있는데로 쏘아붙이는 준수에 의해 유천의 좋던 기분도 천천히 바닥을 들어내고 있었다. 조금씩 굳어지는 유천의 표정을 보고도 준수는 보란 듯 고개를 돌리고 재중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번엔 내가 물어볼게. 형, 왜 여기에 있는거야." "..........나가자, 준수야." 재중이 몸을 힘겹게 일으킴과 동시에, 소파에 얌전히 기대고 서 있던 윤호가 갑작스레 재중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재중의 앞에 서 있던 준수가 몸이 굳었고, 재중과 준수 둘 사이에 들어섰던 윤호는 천천히 준수를 쳐다본다. 　　　　　　. . . . . .......젠장. 저 눈빛만 봐도 오한이 일어나는 것 같아. 치미는 긴장감에 준수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고 윤호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너 올해 1학년이지." ".......네, 그런데요." "그럼 말투 깍듯이 해. 박유천이 무르게 나오니까 좆같이 보이냐?" ".........제가 형한테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할 이유는 없어요. 형이 박유천이에요?" 퍼억..! 윤호는 아무런 감정없는 얼굴로 그대로 발을 들어 준수의 배를 걷어 차 버렸고, 뒤로 홰액 밀려난 준수의 미간이 보기 싫게 일그러지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아무 말 없이 웃고만 있던 유천의 표정이 굳어버리고야 말았다. "정윤호." "정윤호!!!!!!" 첫번째로 윤호를 부른것은 낮게 가라앉은 유천의 목소리였고, 고함을 내지른것은 재중이였다. 재중은 잠시 놀란 듯 유천을 쳐다봤고, 유천은 재중에게 힐끔 시선을 준 뒤에 아무런 말 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준수의 팔을 잡아 한번에 가볍게 일으켜 버렸다. 그러나 준수는 여전히 일그러진 얼굴로 매몰차게 그런 유천의 팔을 뿌리쳐 버렸고, 그런 준수의 매몰참에도 아랑곳 않고 유천은 너무 세게 맞아서 그런지 다시 주저앉으려는 준수의 허리를 휘어감고 계속 바둥거리는 준수에겐 신경도 쓰지 않은체 윤호에게 시선을 주며 입을 벌렸다. ".........함부로 때리지마." ".....박유천. 너 지금 감싸고 도냐." "응. 싸가지 없어도 내 애인이니까 봐 줘, 정윤호." 　　　　　. . . . . ...................가짜가 아니라고. 지금 나, 귀염댕이가 자꾸 신경이 쓰인다구. 　　　　　　　　　심심해서 그냥 건들여보는 거라면, 처음부터 심장이 그렇게 발광할리가 없었잖아. * 　　　　　　　　　　　　　　 묶인다. 얽힌다. 감긴다. 　　　　　　　　　　　　　　　　　하나가 된다. 　　　　　　　　　　　　　　　.끈　　　　　#07. 　　　　　　　　　　　　　　written by. 샤그락처녀 　　　　　　　　　　　　　(dndzidzid22@hanmail.net) 　　　어쩌면 그렇게 잔인 할 수가 있는건지 묻고 싶어. 그러나 네 얼굴만 쳐다봐도 　　　　　　　나는 그대로 굳어버려. 넌, 그 눈동자조차 너무 잔인하기 때문이야.　　　 　　　　　　　　　　　　　　　　　monologue by. Hero 　　　　　　　　　　　　　　　　　　　　. 　　　　　　　　　　　　　　　　　　　　. 　　　　　　　　　　　　　　　　　　　　. "박유천-" 윤호의 인상은 이미 찡그려질데로 찡그려진 상태였다. 후들거리는 다리와 심하게 욱씬거리는 배를 부여쥐고 자꾸만 주저앉으려는 준수를 여전히 한 팔로 안은채 유천은 무표정 그대로다. 그 싸늘한 표정으로 하는 말이라곤 역시나 약간의 애교가 섞여있는,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긴 했지만 일단 그는 진실해 보였다. 장난식으로 건들어보는 줄만 알았던 유천이 진심이라는게 확연히 들어나자 누구보다도 놀란 건 바로 재중이였다. 그의 표정엔 이미 진심이라는게 확고히 들어나 있었다. "그거 맞고 달달대고 지랄이야. 좀 서 봐-" "...놔..." "내가 놓으면 너 바로 엎어지거덩?" 유천의 얼굴엔 어느새 유천 특유의 생글대는 웃음이 걸려버렸다. 이를 악 물고 버티려 하지만 지 멋대로 풀리는 다리는 역시 자제 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자신이 유천의 품에 기대어 있다는게 미치도록 싫었던건지 준수는 그대로 유천의 팔을 매몰차게 뿌리쳤고, 그 바람에 견디지 못한 두 다리는 그대로 접혀서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고 말았다. 여전히 배를 부여잡고 거친 숨을 내뱉는 준수를 빤히 내려다보던 유천은 쭈그리고 앉아보이더니 준수와 시선을 마주했다. ".....예쁘다." "....병신. 정신상태 썩었냐?" "응응. 더 헉헉대봐. 아오. 어떡해, 귀염댕아. 나 꼴릴려고 해." "...저, 저리 안 꺼져...!?" 생글거리며 자신의 안면을 더 들이대는 유천의 얼굴을 밀어내는 준수의 얼굴은 이미 굳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런 둘의 모습을 바라보던 윤호는 무언가 의미가 담긴 한심스럽다는 듯 탄성을 질렀고, 재중은 아무런 말 없이 그저 그렇게 둘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였다. 이미 어긋나 버렸다. 무언가 확실히 잘못되고 있었다. 　　　　. . . . . ...............나의 서투른 고백 탓이였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어긋나 버린 건. 무언가의 불길한 예감이 천천히 재중의 가슴을 헤집고 있었다. 누가 뭐래든, 박유천은 절대로 알 수 없는 놈임이 틀림 없다. 정말 알 수 없는 놈.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건지. 늘 웃는 그 얼굴이 가끔 띄워주는 살기는 정말 얼마나 오싹한지. 그런 그가 지금 내 하나뿐인 동생 김준수를 좋아한댄다. .........위험했다. "준수야. 집에 가자." 저 말을 내가 뱉은건가. 할 정도로 재중은 자신이 막무가내로 말을 뱉어놓고도 놀랐는지 잠시 흠칫거렸다. 아무말 없던 재중의 갑작스러운 말에 윤호도 유천도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재중에게로 시선을 돌렸고, 그건 준수도 마찬가지였다. 준수는 아무런 말 없이 재중을 바라보다가 이내는 힘겨운 듯 작은 신음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어딜 가?" 저 말을 내뱉은건 윤호도 아닌 유천이였다. 윤호와는 확연히 다르게도 그는 역시 생글거리며 저 위엣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그러나 그 속에 깃든 살기를 눈치 못 챌 정도로 재중과 준수는 둔하지 못했다. 준수는 여전히도 힘이 풀려 떨려오는 다리와 엄청난 고통이 엄습해오는 배를 속으로 감춘채로 윤호에게 시선을 마주했다. 그는 역시나 아무런 표정없는 무표정. "박유천한테만 반말하고 싸가지없게 구는게 거슬린다면 너한테도 반말해줄게. 됐냐?" 이미 준수의 입술은 오묘한 곡선을 그리며 비웃음을 자아내는 중이였다. 순간, 그의 당돌해도 심히 당돌한 말에 듣고있던 세사람이 홀연히 굳어버린것은 말 할 것도 없었다. 숨막히는 침묵은 거실은 완전히 뒤덮었다. 서로의 간당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걸 보아서 지금 그들은 숨 쉬는 방법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놀란 것임이 틀림 없었다. 준수는 왈칵 눈물을 쏟을 것만 같이 흔들리는 재중의 눈동자를 한번 쓰윽 본 후에, 재중의 손을 잡고 걸어나갔다. 현관쪽을 향해서 말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거기 서." 낮게 읊조려지는 윤호의 목소리는 정말 상상이상이였다. 끝이 살짝 떨리는 걸로 봐서 지금 그는 이성을 잃을 상태에 까지 도달한것임이 틀림 없었다. 그러나 준수의 움직임은 멎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내는 신발까지 신고있는 준수를 말린것은 윤호도, 유천도 아닌 재중이였다. "준수야........" 그때였다.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몇분을 그대로 그자세만을 고집하던 윤호가 드디어 움직임을 보인 것은. 갑작스레 커다란 힘이 자신의 어깨를 부여잡자 준수가 고개를 돌렸고, 그 힘은 곧바로 준수를 바닥으로 내팽겨쳐 버렸다. 그리고, 여태껏 자신이 먼저 윤호의 몸에 손을 대 본적이 없던 재중이 윤호의 팔을 잡고 매달린 것도 그때였다. "정윤호!!!" ........튄다. 마주친 시선에선 무언가가 강력하게 튀어올랐다. 재중은 섬칫해도 이렇게까지 섬칫한 눈짓을 보내올수 있는 윤호에게 다시 한번 더 놀랐다. 그 무언의 의미가 가득담긴 눈동자는.........아무런 미동조차 보일 수 없게끔 만드는 강력한 무언가를 발산시키듯. 그렇게 천천히 옭아매고 있었다. 재중의 모든것을. 　　　　　. . . . .................그런 눈은 너무 아파. 정말 너무 아파서, 이대로 심장이 멎어버릴 것 같아. "어이. 너 다시 한번 말 해봐." 이미 윤호의 시선은 재중에게서 거두어졌다. 바닥에 고꾸라진 몸을 간신히 일으키는 준수를 향해서 다시 한번 내뱉어진 윤호의 냉랭한 목소리. 냉랭하다 못해서 듣는 사람까지 차갑게 굳혀버릴만큼 그의 목소리는 서늘하다. 그만큼 미친듯이 화가 나 있다는 거겠지. "네가 원하는게 이런거 아니였어? 내가 너한텐 존대 붙이니까 띠껍다 이거 아니야. 그러니까 너한테도 반말하겠다는데, 뭐 불만이야?" "죽고싶냐." "......너희같은 족속들은, 상대방이 착하게. 오로지 온순하게만 나와주길 바라겠지만.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건 비웃음 뿐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거든?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깍듯이 대해야 할 이유가 도대체 뭔데. 우리 형 저렇게 만들어 놓은 너희처럼 짐승만도 못한 자식들한테, 내가 깍듯이 예의바르게 대해야 하는 이유가 도대체 뭔데!!!!!" "너.." "정윤호, 네가 뭔데!!!!!!!!! .......대체. 대체, 왜.... 우리형을 저렇게 비참하게 만들어 놓은건데........." 　　　　　　　　　　　 잘 웃던, 그렇게 해맑던, 너무 순해서 늘 웃기만하던, 아파도 웃었던, 힘들어도 웃었던 내 형이... 내 하나뿐인 형이... 지금 울잖아. 너 때문에 울잖아. 안 보여? .......너는 그렇게 잔인한데. 너는 그렇게 못됬는데. 그래도 너 좋다고 울잖아.. .....죽을만큼 아픈데도, 네가 좋다잖아.....그래서 저렇게 울잖아....... 솟구치는 증오와 분노로 윤호를 쏘아보는 준수의 눈엔 희미한 눈물이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지만, 이를 더욱 더 악물었다. 여기선 울면 안돼. 내가 강해지지 않으면 형이 또 무너져. 형 마저 다시 무너지면 우린 이대로 지는거야. "...그만해. 우리 형 괴롭히지마. 그래. 존댓말 쓸게요. 저기, 저 사람한테도 존댓말 쓸게요. 우리 형 괴롭히지 마요. 내 형이에요. 내 하나뿐인 형이에요. 제발 괴롭히지 마세요. 그냥..! 으윽!!!!!" 파악!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이미 거실 구석까지 몸이 밀려버린 준수였다. 윤호의 발이 가차없이 준수의 얼굴을 가격했고, 준수는 그대로 쓰러질 것 같은 아픔에도 불구하고 다시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벽을 짚고 일어섰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준수를 감싸주던 유천은 이미 소파에 편히 앉아있는 상태였다. 유천의 눈동자는 준수를 아무런 감흥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역시 박유천은 알 수 없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정윤호!!! 하지마, 하지말라구!!" 목소리가 갈라질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재중이 윤호의 팔에 매달려 보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다시 일어서는 준수가 뭐가 그리 못마땅했던지 윤호는 아무런 표정없이, 아까 전 자신에게 차인 준수의 배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전보다 훨씬 더 세다싶은 힘을 주어 차 버렸다. '쿠욱..!' 하는 소리를 내며 한동안이나 말 없던 준수가 입에서 피를 파악 토해 낸 것도 그 때였다. 그대로 준수는 앞으로 고꾸라졌고,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준수를 내려다 보던 재중은. "...정...윤..호......" 이미, 그의 목소리는 심하다 싶게 덜덜 떨려오고 있었다. 바닥에 흩뿌려진 피들에 윤호는 잠시 이맛살을 찌푸렸다. 움찔- 움찔- 엎어진체로 조금씩 몸을 움찔거리는 준수를 한참이나 쳐다보던 윤호가 다시금 찌푸린 표정을 지우고 준수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가고 있었다. 　　　　　. . . . .........얼마나. 얼마나 더 잔인해져야하니. 얼마나.....도대체 어디가 끝이냐구. 　　　　　　　　　 그리고 한동안 아무런 말 없이 그들을 지켜보고만 있던 유천이 조용히 입을 떼어냈다. "윤호야. 내 애인이니까 봐 주라고 했잖아, 아까." "닥쳐, 박유천. 한 마디라도 하면 그땐 너도 죽고 얘도 죽어." "........씨발새끼. 하지 말라고 했어." ".............뭐.....?" "좆같이 보는 것도 한두번이다. 정작 나 좆같이 보는 건 저 자식이 아니라 바로 네새끼야, 정윤호." 점점 더 화가나고 있었다. 이성을 잃는다. 아주 작게 남아있던, 한가닥의 이성마저도 이제는 점점 어딘가로 솟구치고 있었다. 사라진다. 사라진다. "피 봤으면 됐지, 뭘 그렇게 바라는게 많아. 더 이상은 나도 안 참아." 　　　　　　. . . . . . .........................끝장이다. 한순간, 모든 이성을 잃어버린 윤호의 시선이 간 것은 역시나 유천이 아니였다. 여전히 바닥에 쓰러져있는 준수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 유천에게 화를 내는 것 보다 더욱 유천에게 본때를 보여주는 건 이렇게 쓰러져있는 김준수를 완전히 지져 뭉개버린다는 것. 그것은 이성이라고는 한가닥조차 남아있지 않은 윤호에게 아주 크게 자리잡은 잔인한 본능이 알려 준 지혜였다. 결코 느리지 않게 들리는 윤호의 발이 준수의 거실 바닥에 뉘여진 머리로 잔인히 내려 꽂히 려는 순간. "정윤호!!!!!" 　　　　　　　　　. . . . ..............버릴게. 날 버릴게. 그래.....그럴게. 차츰차츰. 이성이라는 것을 되찾은 모양일까. 윤호의 아무런 표정, 감흥따윈 없던 그 눈동자가 갑작스레 크게 띄어졌다. 이유인즉슨 자신의 발 밑에 무릎을 꿇고 앉은 재중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였다. 그의 눈동자에서 볼로 빠르게 떨어지는 눈물도 말이다. "...할게. 오늘 아침, 네가 나에게 부탁하려면 제대로 하라고 했지. 그래..... 할게." 준수의 떨리던 머리가 천천히 들렸고, 바알갛게 충혈된 준수의 눈동자에는 믿을 수 없는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꽂고 서서 입가에 조그마한 미소를 띄우고 있는 윤호, 그런 윤호의 발 밑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고 있는 재중. 　　　　　　　　　. . . . . . . . . . . . . . . . .......................................안돼....... "잘못했어. 나 같은... 으윽.....흐윽.....나 같은 걸...레.....따위가..... 더러운 나같은 게...너에게 고백따위를 해서... 흐으......윽......미안해...용서해줘.....제발..................................." 　　　　　　　　. . . . . . . . . . . .......................................................... .....얼마나 아파...형, 얼마나 아파. 죽을죄를 지었어. 형...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방금 했던 말. 전부 다 취소해. 믿을 수 없어. 형 그런 말 하지마.. 형 아프잖아. 제발 그러지마. 나 죽어버릴 것 같아, 형. 내가 잘못했어. .....................................................형을, 비참하게 만든건 정윤호가 아니라 나였던거야.... 조용한 거실을 나른하게 울리는 것은 재중의 흐느낌이 가득한 울먹거림이였다. 조용했다. 숨 소리조차 내기 미안 할 정도로 조용했다. 뉘엿대는 해가 커다란 베란다창문으로 통해져 들어와 이 모든것들을 샅샅히 비추어내고 있었다. 방 안, 거실 구석구석까지 말끔히 비추어내는 저 햇빛으로 몸을 묻어버릴수만 있다면. 그럴수만 있다면. 그럴..수만... ".........싫어." 　　　　　　　　. . . . . ...................믿을 수 없는.....잔인함... "내가 왜? 내가 왜 네 부탁을 들어줘야하는건데? .....용서? .....쿡...... 싫어." "정윤호랑...친구야..? 왜...? 왜 친군데에...?" "응! 2년 전, 그러니까 중3 때. 노상방뇨하다가 우연히 만난 사이야." ".....헤에...그..래......?" "응!" "......근데.....정윤호...사람 맞아...?" "응!" "......정말.....? 맞아.....?" "응!" ".....................못 믿겠다........" 준수의 두 볼은 이미 붉다싶게 물들어 있었다. 소주잔을 들고 이리저리 훑어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중얼대는 그의 두 눈엔 이미 형용할 수 없는 눈물이 한가득이였다. 그런 그를 턱을 괘고 빤히 쳐다보던 유천이 잠시 손을 내밀어 그의 배를 만져보았다. "어디, 속 안에 터지기라도 한 거 아닐까? 아까 피 났잖아." ".....크으.....쓰다....너두 먹어 봐." "싫어. 너랑 나 둘 다 취하면 내가 어떻게 널 따먹어. 그니까 언니 많이 잡숴요~" 윤호가 '싫어' 라는 말을 끝내자 마자 정신을 잃은 듯 보이는 준수를 그대로 업고 밖으로 빠져나온 유천이 향하던 곳은 처음부터 이런 포장마차가 아니였다. 당연스레 병원쪽으로 향하던 유천의 발걸음을 막아낸 건 어느새 정신이 들었는지 내리려는 듯 발버둥을 치는 준수였고, 그런 준수에게 유천이 '아, 병원 가야지 병원!' 이라고 소리치자 준수는 무너지는 목소리로 이렇게 중얼댄 것이였다. '술...사줘.' 미친듯이 술만 마셔댄 것도 어느덧 한시간째다. 유천은 소주를 입에 절대 대지도 않았고, 결코 알콜농도가 약하지 않은 소주를 두병이나 깡으로 마셔버린 준수는 이미 제정신이 아닌채로 이리저리 머리를 떨구느라 정신이 없다. "....헤에..우리 형, 우리 형 어딨어...." "느그 형 윤호네 집에 있겠지. 또 따먹히고 있을거다." ".....넌, 정윤호 안 무서워...?" 준수의 혀가 심히 꼬인 물음에 유천은 아무런 대답없이 그저 생긋 웃었다. 그리고는 마이 안 주머니에서 자그만 손 거울을 꺼내고 이리저리 자신을 훑어보더니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준수를 쳐다보며 괜한 딴 소리를 짓껄인다. "나 너무 잘생기지 않았냐?" "......응..........근데, 정윤호 안 무섭냐구..." "전혀. 난 네가 더 무서워." "......난...정윤호가 정말 싫어...너보다 더 싫어..." "그러니까 너는 나랑 사귀는걸 고마워해야 돼. 네가 김재중이 아닌걸 하늘에 감사하고 땅에 감사해야 돼. 봐라. 네 형 얼마나 불쌍하냐? 허구헌날 따먹히지~ 허구헌날 쳐맞지~ 완전 저기 굴러다니는 개뼉다구만도 못한 취급 받으면서, 그래도 좋댄다~ 쯧쯧." 유천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준수는 그대로 자신의 몸을 앞으로 쓰러트렸다. 아무래도 격하게 올라오는 술기운에 못 이겨 앞으로 고꾸라진 듯 싶었지만, 유천은 그런 그를 일으키려는 자그마한 손짓조차도 안 해보인다. 그저 가만히 그런 그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아무래도 그 짧은 시간에 잠이 든 모양인지 준수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준수의 손에 꼬옥 쥐어진 소주잔을 조심스레 받아 든 유천은 아무런 표정없이 술을 입에 탁- 털어놓고는 다시 소주를 잔에 따르고 마시기를 여러번이나 반복한다. "아줌마. 이거 또 줘~" "그냥 그것만 마시구 가요. 교복 입고 와서 한병만 마시겠다구 하고서는 아주 몇병을 거덜내구 가네." "나 그럼 여기 다신 안 와~ 안 와, 안 와! 아줌마 후회할걸?" ".....허이구. 그래그래. 내가 학생 귀여워서 주는거여." 사람 좋게 생긴 아주머니는 그냥 허탈한 웃음과 함께 소주 한병을 내밀었고 유천은 그 병을 두 손으로 받아들며 생글 생글 웃으며 '아줌마 알라뷰!' 라고 중얼거린 뒤, 그대로 병 뚜껑을 따고 잔에 따르지도 않은채 꿀꺽 꿀꺽 마셔 버렸다. 이미 밤은 깊어져가고 있었고, 포장마차의 사람들도 하나 둘 씩 빠져나가서 고요한 침묵이 잦아들고 있다. 그렇게 한참이나 술만 축내던 유천이 술 먹던 손을 멈춘 건 준수가 엎어진지 20분이나 지나서였다. "....정윤호는 나쁜새끼가 아니야. 그래서, 내가 정윤호에게 웃는거야. 사실 네 형보다 힘든게 정윤호라고, 귀염댕아." 　　　　　　 아무래도 정말로 깊게 잠이 든 건지 준수는 아무런 미동없이 그저 아까 그 자세 그대로다. 다시 한번, 욱씬거리며 찾아오는 심장의 움직임. 쿵. 쿵. 쿵. 이제는 이 소리도 지겹다, 젠장. "귀염댕아. 어떡해. 나...진짜로 너 좋아하나 봐." 　　　　　　　　 * 　　　　　　　　　　누가 뭐래도, 그대가 날 매몰차게 버려도, 　　　　　　　　　　잔인하게 날 비웃어도, 날 잔인하게 짓밟아도, 　　　　　　　　　　다시 나의 발목을 붙잡는 또 하나의 매개체. 　　　　　　　　　　　　　　　　　 　　　　　　　　　　　　　　　.끈　　　　　#08. 　　　　　　　　　　　　　　written by. 샤그락처녀 　　　　　　　　　　　　　(dndzidzid22@hanmail.net) 　　　정말이라면, 그게 정말이라면 나는 너에게 큰 죄를 짓는게 되더라도 　　　　　　　더 잔인하게 말 해 줄거야. 네 눈이 나를 봐도, 내 눈은 널 피해버리니까.　　　 　　　　　　　　　　　　　　　　　monologue by. Hero 　　　　　　　　　　　　　　　　　　　　. 　　　　　　　　　　　　　　　　　　　　. 　　　　　　　　　　　　　　　　　　　　. "허니~ 일어나요, 허니! 아침해가 면상 들이밀잖아요! 얼른 눈을 떠요~" 시끄러운 소음. 너무나도 달콤한 잠에서 깨어나기 싫다고 어렴풋 생각하며 다시금 잠을 청하려는데 느끼하다면 느끼하다고 말 할수 있는 목소리가 바로 귀 옆에서 자신을 깨우고 있었다. 놀란 듯 눈을 퍼뜩 뜬 준수가 그 장본인을 쳐다보자 그 장본인은 떠지지 않는 눈을 뜨려 애쓰는 준수의 얼굴에 더욱 더 자신의 안면을 들이밀며 생글생글 웃음을 지었다. 한참이나 멍하니 눈만 꿈뻑거리던 준수가 이제서야 어제의 일이 기억 난 건지 화악- 빠르게 몸을 일으켜 보였고 일으키자마자 복부에서 느껴지는 알싸한 고통과 머리가 찡- 하고 울리는 느낌에 아주 작은 신음을 내뱉으며 얼굴을 있는대로 찌푸려버렸다. 안 둘러봐도 알 수 있는 그닥 낯설지 않은 이 곳은 유천의 집이였다. "눈 좀 제대로 떠! 내가 내가~ 콩나물국 끓여놨다? 이뻐? 키스 해 주고싶어?" "....왜 또 여기로 데려 온 건데.." "귀염댕아." "..........." "존댓말 써." 생글. 위엣 말을 중얼거리며 유천은 다시 한번 생글 웃어보였고, 준수는 그냥 고개를 매몰차게 돌리고는 몸이 많이 아픈 듯 얼굴을 심하게 찌푸리면서도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빠져 나왔다. 다행히 옷은 교복 차림 그대로였고, 보아하니 무슨 짓을 한 것 같지는 않다. 괜시리 느껴지는 의아함에 잠시 움직임을 멈추던 준수는 이내 생각을 털어버리려는 듯 고개를 훌훌 털더니 바닥에 곱게 개켜져 있는 자신의 마이를 집어 들었다. "내가 개놨어! 이뻐?" "안녕히 계세요. 다시는 뵐 일 없었으면 좋겠어요, 진짜로." "...같이 가. 나도 학교 갈 거야." "아침 드시고 오세요. 저 먼저 가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딱딱한 어조로 유천의 얼굴도 쳐다보지 않은채 아무런 표정없이 침을 뱉 듯 아무렇게나 말을 뱉던 준수는 정말로 가려던 것인지 현관쪽으로 빠르게 다가섰다. 생글거리던 표정은 온데 간데 없이 너무나도 차갑게 굳어버린 유천의 표정을 안타깝게도 보지 못 한채로 말이다. "..으윽!!"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일이였다. 뒤 쪽에서 무언가 빠른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갑작스레 어깨를 센 힘으로 옭아 매어 준수를 강하게 현관 문쪽으로 밀어 부쳤다. 심하게 느껴지는 고통에 준수는 자신도 모르게 낮은 비명을 질렀고, 준수의 어깨를 굉장히 강한 힘으로 누르고 있는 유천의 눈동자는 타악 가라앉아 있었다. 순간적으로 털이 쭈삣 서는 듯한 오한이 일었다. 준수는 심각히 자신의 얼굴 앞으로 가까이 와 있는 유천의 얼굴을 보자마자 왠지 모를 욱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 착한 것 같냐? 어? 나 착해보여?" "........전혀요." "근데 왜 속을 긁어. 너 깡 존나게 세다, 진짜? 귀엽다, 예쁘다 해주니까 아예 눈에 뵈는게 없어?" "뵈는 거 원래부터 없었어요." 참으려고 해도 참을 수가 없었다. 감정의 기복이 준수를 만나고부터 엄청나게 심해졌다. 미친듯이 화가 났다가도 미친듯이 좋았다가도, 다시 미친듯이 화가나고 미친듯이 좋아진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아예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은 느낌. "내가 하라는 데로 해. 지금 당장 식탁앞으로 가서 앉아. 진짜 지져버리기전에." "...아, 제발 좀 짜증나게 하지마. 대체 나한테 바라는게 뭐야, 너? 존대 써줬지, 깍듯이 대해줬지. 대체 뭐가 부족해. 넌 네 생각만 해? 네가 날 좋아하는 건, 내가 전혀 상관 할 일이 아니야. 좋아해, 계속. 누가 뭐래? 대신 귀찮게 하지마." 순간적이였다. 순간적으로 유천의 아주 아픈빛을 내며 일렁이는 것을 준수는 볼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그 눈빛에 준수조차 몸이 굳어버렸고, 유천은 그런 그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이내는 강하게 입술을 부딪혔다. "읍..! 으으..!!!!" 눈을 동그랗게 늘려보인 준수가 얼마 안돼 입 안으로 헤집고 침범해 들어오는 말캉한 혀의 느낌에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미친듯한 저항을 해 보이기 시작했다. 두 팔로 유천의 어깨를 엄청 난 힘으로 쾅쾅 쳐댔지만 그것도 얼마 안가 유천의 두 손에 잡혀버렸다. 이내는 발을 동동구르며,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유천의 입술을 피하려는 듯 하지만 역시나 고개가 옆으로 틀어지기 무섭게 유천은 곧바로 준수의 얼굴을 쫓아 계속해서 미친 듯 준수의 입술을 느끼고 있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하고 떨려왔다. 이대로 가다가는 바닥에 패액 주저 앉을 것만 같았다. 깊게 들어오는 유천의 혀에 준수는 모욕감과 수치심을 한꺼번에 느껴버렸다. 잡혀버린 자신의 두 팔목이 너무나도 아파왔다. 엄청난 힘. 자신 따위는 한 방에 죽일수도 있을만큼 엄청난 힘이였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지만 준수는 마치 짐승마냥 치닫고 들어오는 유천에 의해 눈물따위는 내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칠 줄 모르는 입맞춤은 계속 되었다. 준수의 두 손을 머리위로 들어올려 한 손으로 눌러버리고는 나머지 한 손은 준수의 셔츠자락 속으로 쓰윽 밀어넣었다. 차가운 손이 갑작스레 옷 안으로 기어들자 준수는 잠시 미약하던 저항을 더욱 거세게 하기 시작했다. 미칠것만 같았다. 이런 취급을 받는다는 것 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가슴까지 지분거리며 만져오는 이 미친자식이 정말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싫었다.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다. "그...으..읍.....그만..제..ㅂ..." 입이 조금이나 떼어질새라 숨 쉴 틈도 없이 유천은 입술을 밀어부쳤다. 천천히 그의 손가락이 준수의 셔츠단추를 풀어내리고, 아찔한 공포감과 두려움이 빠르게 준수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두번다시는 더러운 짓을 하지 않을거라고 누구도 모르게 다짐했었다. 똑같은 실수를 두번씩이나 저지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 . . . . ...........................사실, 마음속 깊은곳에서 울리는 울림은. 　　　　　　　　　　　　형처럼 되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너무나도 잔인한 두려움.................. "아앗..!!" 유천은 황급히 준수의 입술에서 자신의 입술을 떼어냈다. 아찔한 고통이 혀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굉장히 힘껏 깨물은 듯 유천은 재빨리 현관 바닥에 침을 뱉어냈다. 새빨갛기만 한 피가 바닥에 흩뿌려졌고, 준수는 흘러내린 옷깃을 어깨위로 올리며 자신의 입술을 심하다 싶게 비비고 있었다. 거칠어진 숨을 내쉬며 말이다. 준수의 입가엔 혈흔이 눈에 띄게 남아 있었고, 그것은 분명 유천의 혀에서 흘러내린 피였음이 자명하다. 유천은 자신의 입술을 한번 손등으로 쓰윽- 훑고는 준수를 쳐다봤다. 준수의 시선은 방금 자신이 깨물어버린 유천의 입으로 가 있었고, 유천의 입가에는 유천의 깨물려진 혀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끊이지 않고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입가가 짓는 피보다도 비릿한 미소에 준수의 눈동자는 아찔하게 일렁였다. 준수가 먼저 한 발작 뒷걸음질을 치자 유천은 천천히 다시 준수에게로 다가서고 있었다. "..내 혀 그냥 잘라 버리지 그랬냐. 아예 죽을 힘을 다해서 깨물지 그랬어." ".....네가 먼저 억지로..!" "나는 사랑하는 방법같은 거 몰라." "!...." 준수는 여전히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고, 유천은 계속해서 그런 준수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오싹한 한기가 등에 닿았다. 준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유천은 흘러내리는 피가 거추장스러운지 손등으로 다시 한번 닦아냈다. 그 피는 옆으로 번져 유천의 볼에까지 묻어버리고 말았지만, 어느덧 다시금 피는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정말 심하게 깨물린 듯 하다. "난 몰라. 난 너를 어떻게 예뻐해줘야 하는지도 몰라. 난 아무것도 몰라. 난 사랑하는 방법같은 거 모른다고. 네가 나에게 화를내면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그 이유때문에 참아야 하는 거. 그런것도 내가 이행해야 할 이유는 없어. 난 모르니까. 어떻게 사랑해줘야 하는지,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뭘 어떻게 대해줘야 하는지. 난 아무것도 모르니까." 이미 유천은 다시 준수의 코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준수의 눈빛이 두려움과 공포심으로 심하게 흔들리는것을 가만히 쳐다보던 유천은 준수의 입술앞에 바로 자신의 입술을 갖다대었다. 닿을 듯 말 듯, 아주 미약하게 그들의 입술은 닿아 있었고, 유천의 입술이 열리며 말을 내뱉었다. 유천의 숨결이 준수의 입술에 화악 뜨겁게 느껴졌다. "좋아하는 사람이 나 싫어한다고 해도...잊거나 놓아주거나....그런 건 절대 못 해. 왜냐면, 잊는 방법. 놓아주는 방법. ....아무것도 모르거든. 그러니까, 너는 나를 절대 못 벗어나. 내가 너한테 질려버릴 때까지." 그들의 입술이 드디어 닿았다. 유천의 혀가 다시금 준수의 입 안으로 부드럽게 흘러들어갔고, 느껴지는 역겨운 피비린내에 준수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파르르. 떨리는 그의 속눈썹 사이로 무언가가 반짝인다. 그 빛남이 쭈르륵. 볼을 타고 내려와 어깨깃을 스쳐, 바닥으로 곤두박칠 치고, 그 빛은 산산조각이 되어서 흩어져버렸다. 　　　　　　　　　　. . . ........박유천, 너....진심이였냐.......................................... 재중은 욱씬거리는 허리를 부여잡고 간신히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그렇게 어제 유천이 준수를 업고 사라진 뒤 이성을 잃을 정도로 화가 난 윤호에게 몇번이나 그대로 당했는지 모르겠다. 윤호가 절대로 깨지 않게 엄청 조용히 교복을 챙겨입은 재중이 창민이 두고 간 까만색 목도리를 한참이나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는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목에 친친 감았다. 안 그래도 하얀 재중의 얼굴은 새까만 창민의 목도리로 인해 창백해 보일 정도로 하얘보였다. 재중의 시선이 거울에서 빗겨가 잠을 자고있는 윤호의 얼굴에 가서 박혔다. 그리고, 윤호의 곤히 자는 얼굴이 시야에 들어오자 순식간에 차오르는 눈물을 막아내는 방법을 재중이 알 리가 없었다. "....네가 나한테 웃어주면 얼마나 좋을까........잔인함을 지우고 따뜻하게 웃어주면..얼마나 좋을까.............." 아주 작은 중얼거림이였다. 귀를 자세히 열지 않으면 들을 수 없을만한 너무나도 작은 목소리. 그 작은 흐느낌을 간신히 집어삼킨 재중이 재빨리 눈물을 닦아내고 현관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재중이 나가자 마자 천천히 띄어지는 윤호의 눈. 띄여진 윤호의 눈빛은, 형용 할 수 없는 슬픔으로 가득 들어찬 굉장히 아픈 눈. "......미친새끼...김재중........." "안녕." "!!....어, 아...안녕..." 이른 아침시간이라 교실은 텅 비어있었다. 멍하니 생각에 잠긴 듯 턱을 괘고 책상에 몸을 거의 반쯤은 기대고 있던 재중의 어깨에 올라앉은 손과 들려오는 익숙한 음성에 재중은 놀란 듯 온 몸을 흠칫- 하며 떨어보였다. 올려다 보니 여느때와 다름없이 단정하게 교복을 차려입었지만 결코 순진한 인상이 아니라 무언가 이지적인 인상을 잔뜩 풍기는 창민이였다. 어색하게 대답을 하고 보니 어느덧 창민은 재중의 앞자리에 천천히 앉아보인다. "용케 학교 나왔네." "........" "....좀 웃어라, 임마. 정윤호 오늘 학교 안 올지도 몰라. 걔가 이틀 연속으로 나와줬으니 오늘은 아마 안 나올걸." "......." "............네가 웃지를 않으니까 정윤호는 더 너를 괴롭히는거야." 말은 별로 해보지 않았지만 익숙하게, 또는 너무나도 자연스레 말을 이어가는 창민이 왠지 모르게 더욱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건 여전하다. 그리고 이해 할 수 없는 말들만 골라서 하는 것도. 웃지를 않아서 정윤호가 자신을 더 괴롭히는 거라니.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전혀 이해 할 수 없는 말이였다. "목도리 했네." "..아..줄게." "아니야, 집에 갈 데까지 하고 있어. 멍 보기 흉하니까." 생긋- 웃으며 창민은 대답했고 재중은 목도리를 잡았던 손을 머쓱한 듯 다시 책상위로 내려놓았다. 째깍.째깍. 시곗 소리가 텅 빈 교실을 조용히 울리고 있었다. 우습게도 갑자기 다리가 벌벌 떨려옴을 느낀 재중이 얼굴을 살짝 찌푸린다. 그런 재중을 빤히 바라보던 창민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울지 마. 웃어. 그리고, 정윤호에게 상처 주지 마." 창민은 재중을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은색 담배케이스를 이리 저리 둘러보며 기스가 난 곳을 유난한 손놀림으로 계속 문지르고 있었다. 하는 행동과 표정은 전혀 진지하지 않고 건성으로 툭툭 내뱉는 것 처럼 보였지만 그건 창민의 말을 전하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것을 모를 정도로 재중이 둔하지는 않았다. "....상처라니." "너는 모르겠지. 그래, 모르고 있는 게 나을거야. 정윤호가 어떤 놈인지 모르는 게 나을거야."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뭐야...?" "너 정윤호랑 친구잖아. 이 말을 하고싶은 거지, 지금?" 여전했다. 여전히도 창민은 재중을 돌아보지 않았다. 너무 깨끗해서 반짝 반짝 윤이나는 담배케이스만 줄기차게 닦아 댈 뿐이였다. "그래. 난 정윤호의 친구야. 그렇다고 너를 아끼는 것도 아니고. 보고 있으면 짜증나는게 너희 둘이야. 보고 있는 나 까지 짜증나게 하지 말란 말이야." "그게 무슨..!" "사랑놀음 하지마. 보기 싫어. 열받아. 내 앞에서 그런식으로 고백하고 차이고, 울고 웃고, 매달리고 달라붙고, 좋아한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는 하찮은 사랑놀음 하지마. 보기 싫어." ".....너는...!!" 　　　　　　　　. . . . . . ...........이 사람은 누구지? 이 사람은 심창민이 아니야. 　　　　　　　　　　　　대체, 대체 왜.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거지? "지금 내가 널 왜 쳐다보지 않는 줄 알아?" 창민의 물음에 재중은 잠시 쓴 침을 삼켰다. 안 그래도 긴장해 있던 온 몸은 다시금 뻣뻣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심장의 고동은 듣기 싫을 정도로 심한 소리를 내며 쿵쿵쿵 뛰어대고 있었다. "내 눈과 네 눈이 마주치면, 넌 울지도 몰라. 너 같은 건 단번에 울려버릴수도 있을 만큼 슬픈 눈이거든." 　　　　　　　　. . . . . . . . . ...........너를 생각하면 자꾸 슬퍼지는 내 눈을 알아..? 　　　　　　　　　　이 지독히도 잔인한 심장이, 자꾸만 슬픔을 따라가려는데 그걸 붙잡지 못하는 나를 알아..? 　　　　　　　　　　　　김재중만을 보는 이 눈을, 끝내 감아버려야 하는 심창민을..... 너는 알고 있냐고. * 　　　　　　　　　　누가 뭐래도, 그대가 날 매몰차게 버려도, 　　　　　　　　　　잔인하게 날 비웃어도, 날 잔인하게 짓밟아도, 　　　　　　　　　　다시 나의 발목을 붙잡는 또 하나의 매개체. 　　　　　　　　　　　　　　　　　 　　　　　　　　　　　　　　　.끈　　　　　#09. 　　　　　　　　　　　　　　written by. 샤그락처녀 　　　　　　　　　　　　　(dndzidzid22@hanmail.net) 　　　어쩌다가 내가 너를 따라가게 되면, 그땐 네가 빠르게 나에게서 도망 　　　　　　　쳐 줬으면 좋겠어. 그 자리에 머무른다면, 난 분명 너에게 안기고 말테니까.　　　 　　　　　　　　　　　　　　　　　monologue by. Xiah 　　　　　　　　　　　　　　　　　　　　. 　　　　　　　　　　　　　　　　　　　　. 　　　　　　　　　　　　　　　　　　　　. 9시 반이 지나서야 학교에 도착한 준수는 아주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박유천이라는 놈의 눈빛은 예사로이 넘길 만큼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웃음으로 넘길만큼 그렇게 같잖은 것도 아니였다. 그리고, 그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지금. 밋밋한 걱정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온 몸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 역시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서 자신을 얼마나 괴롭힐것인가에 대한 예측은 조금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무엇인가에 쫓기듯 자꾸만 두렵고 초조해진다. 입 안에서 갑작스레 비릿한 피 맛이 격하게 느껴졌다. 순식간에 무언가 밑에서 욱하는 느낌과 함께 치솟았고, 간신히 그 역겨움을 견뎌낸 준수의 얼굴엔 아주 잠깐이지만 누렇게 핏기가 사라졌다. 비린내. 비린내 중에서도 가장 자신이 증오하는 피비린내가 입 안에서 아직도 맴돌고 있다. 그렇게 간신히 몸을 진정시키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어 그가 타박거리며 교문 안으로 들어선다. 넓게 놓인 운동장을 가로질러 아무런 멈칫함 없이 계속 그렇게 걸어나가는데 위에서 조금의 소음이라도 있었다면 들리지 않았을, 작은 누군가의 목소리가 준수를 불러 세웠다. "김준수?" 화들짝 놀란 준수가 고개를 번쩍 들어올려 그 장본인을 확인하려 했다. 건물 위 옥상에서 누군가 손가락에 담배를 끼우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희미하게 흩어지는 하얀 담배연기. 그러나 눈을 강하게 찌르는 햇빛탓에 그 사람을 잘 확인 할 수 없었던 준수가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눈가를 가리고 다시 한번 눈을 크게 깜빡거렸다. 그제서야 윤곽이 천천히 들어나 사람의 얼굴이 시야에 확연히 박혀들었다. ...심창민이였다. 잠시 몸을 멈칫한 준수가 우물쭈물 하는 듯 싶다가, 조금은 우습게도 저 위에서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있는 창민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해 보였다. 창민이 희미하게 웃는 게 어렴풋이 보인다. "왜 지금 와?" "...그냥요." "잠깐 올라올래?" 창민은 다시금 담배를 들이키며 그렇게 중얼대듯 말을 내뱉었고, 준수는 그저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였다. 무슨 이유로 자신에게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을 걸어오고, 저렇게 얘기라도 나누자는 듯 제의를 해 오는 걸까. 누가뭐래도 지금 준수와 재중에게 적은 박유천과 정윤호. 그런 박유천과 정윤호와 같이 다니며 제일 친하다는 저 사람이 어째서 자신에게 이렇게 잘 해주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그대로다. 그렇게 한참이나 준수가 생각에 빠져 멍하니 창민을 바라보는 동안, 창민은 이미 담배를 다 태우고 운동장을 향해 튕기듯 던져버렸다. 다시 한번 생긋거리며 웃는 창민의 얼굴에, 아주 잠깐이지만 준수는 무언가 심장안에서 일렁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 것뿐. 일렁이는 이 느낌이 무엇인지 그런것에 대해 전혀 문외한인 준수가 그 느낌을 제대로 파악 할 수 있을리 없었다. 그냥 그렇게 다시 발걸음을 내딛는 준수의 몸은 자신의 교실이 있는 1학년 쪽 건물이 아니라, 창민이 있는 2학년 건물이라는 것이 아주 조금의 힌트를 내어주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까 인사 해 놓고 왜 또하냐." "....그런데 무슨 일로.." "아니, 그냥. 혼자 놀기 심심해서. 들어가봐야 되면 들어가 봐. 그러고 보니까 너 입학하고 나서 한번도 수업 제대로 받은 적 없겠다. 괜히 불렀나?" "..그럼 가보겠습니다." "어어, 진짜 가려고?" 창민은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을 급히 내지르다가, 이내는 그냥 피식 웃어버렸다. 기분좋은 느낌. 창민을 보면 그저 이런 말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보고만 있어도 기분좋은 사람. 웃음을 짓는 그 입꼬리가 굉장히 매력적인 사람. 보고만 있어도 괜시리 기분을 들뜨게 만들어주는 그런 신기한 마력을 지닌 사람. 지금 준수가 창민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건 겨우 고작 이것 뿐이였다. 한참을 멀뚤멀뚱 창민을 바라보던 준수는 살짝 가방을 내려놓고 창민의 옆에 서서 난간에 몸을 나직하게 기대었다. "...유천이랑 있다 왔어?" "...." "대답 없는 걸 보니까, 그런가 보네. 그 자식 말 하는건 싹수 노랗지만 그래도 절대 나쁜 녀석은 아니니까. 마구자비로 몰아붙이거나 그러지 마. 보니까 사랑받는 것 같던데." "그딴 거 필요 없어요, 저는." "...쿡..그래.." 다시 한번 대화의 흐름이 멈칫히 끊겼다. 괜시리 억눌려오는 답답스러움에 준수는 티 나지 않게 지그시 인상을 찌푸려보인다. 이 사람과는 왠지 모르게 거북하다. 역시나, 정윤호와 박유천의 둘도 없는 친구라는 고정관념때문일까. "준...수지? 네 이름." "아, 예." "재중이랑 형제인데 성격이 딱 틀린 것 같더라." "......형이랑, 친하세요?" "......그렇다면?" 의미모를 웃음이 다시 한번 더 창민의 입가에 담겨졌다. 그 웃음에 의미를 해석 할 수 있을리가 없는 준수의 표정은 더욱 더 굳어만갔다. '그렇다면?' 이라고 물어온다면 무어라고 대답을 해야하지. 하는 우스운 고민을 하는 동안 이미 창민은 난간에 붙였던 몸을 떼어내고 바닥에 주저앉은 상태였다. 오늘따라, 굉장히 날씨가 화창하다. "정윤호랑 김재중사이, 네가 끼어들어 억제 할 수 있을만큼 쉽게 풀릴리는 없을거야. 그만큼 얽혔거든. 그러니까, 그냥 네 일에나 신경써라. 처음부터 네가 뭣 모르고 나대지만 않았어도 네 상황까지 이렇게 꼬일리는 없었잖아. 그냥 보고있는게 제일 좋은 방법일거야." 　　　　　　　. . . . . . . . ..............괜시리, 기분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형한테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할 이유는 없어요. 재중이형은 제 친형이에요. 그런 재중이형의 일에 끼어들고 안들고는 제가 정해요. 왜 형이 그런 말을 하시는 거죠." "...너 말 꽤 잘하는구나. 재중이랑은 정말 딴판이네." ".........." 지금껏, 창민에게는 조금의 악감정도 없던 준수는 점점 차오르는 짜증을 느꼈다. 그래. 이 사람이 첫 만남때 자신을 위험에서 구출해 준 사람이라고 해도, 결코 좋은 사람일리는 없어. 누가 뭐래도 박유천과 정윤호의 친구니까. 뗄래야 뗄 수 없는 절친한 친구사이니까. 조금이라도 착한 사람인 줄로 알고 마음을 열려던 내가 병신이였지. "난 공부나 하러 가야겠다. 너도 1학년이라고 놀지 말고 공부 좀 해라. 아참..." "......" "재중이, 힘들테니까 그 애 앞에서 윤호 얘기는 꺼내지 마." 창민은 그렇게 아리송한 말을 남겨두고 옥상을 나갈 생각이였는지 앉혀있던 자신의 몸을 가볍게 일으켰다. 그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옥상문 쪽으로 다가설때쯤에, 문득 준수의 머릿속을 채우는 궁금증. 무엇이든 일단 말을 내뱉고보는 성격인 준수가 급하게 말을 내질렀다. "저기요..!" 준수의 다급한 부름에 창민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고개를 돌려 준수의 자그맣게 일렁이는 두 동공과 시선을 맞대었고, 자신을 쳐다보는 창민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준수는 아주 작게 마른침을 삼키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씩 손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무언가 콱 막힌듯한 느낌이 심장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심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재중이형 얘기를 왜 그렇게 자주 하세요?" 조금은 터무니없는 질문이였다. 창민이 재중의 얘기를 자주 하건 말건, 그런 것까지 세세하게 신경 쓸 정도로 준수가 호기심이 왕성한 것도 당연히 아니였다. 그렇지만 그런 호기심을 빌미로 무엇인가, 한 마디라도 더 붙여보고 싶은 이기분을 준수는 그저 가볍게 치부한다. 그저, 이 사람과 조금의 대화를 더 나누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쉽게 흘리듯 내뱉은 질문이였는데, 우습게도 창민은 너무나도 진지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대답을 해 왔다. "좋아하니까." 준수의 눈동자와 어깨는 동시에 일렁였다. 순식간에 머릿속을 메우는 형용 할 수 없는 무언의 감정. 그것은 걱정과 근심이기 전에 무언가의 치미는 짜증스러움. 대체, 이 느낌이 뭐지? 그렇지만 지금 생각되는 건 단 하나. 막아야 한다. 이 사람까지도 재중이형을 좋아하게 만들수는 없었다. 안그래도 헤진 재중이형의 가슴을 이사람이 다시 헤집어놓기라도 하면 어쩌나. 그러나, 그것은 역시 모순일뿐이다. 사실적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느끼는 것에 준수는 익숙하지 못하다. 그저, 이 사람은. 무언가 굉장히 암울하면서도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으로 사람을 붙든다. 그래서, 그래서....... "좋아하다니요. 불쌍하다면서요. 우리 형 불쌍하다면서, 정윤호가 형 가지고 노는 거 보니까 재미있어 보였던거에요? 좋아한단 말, 당신네들은 진짜 쉽게하네요. 대체 뭐가 진실이고 뭐가 거짓인거에요? 그만하세요, 제발 좀. 우리 좀 괴롭히지 말라구요!" 준수의 내질러지는 말에 창민은 그저 피식하는 웃음을 지어보일 뿐이였다. 그의 매료적인 웃음은 여전히도 아찔하다. 떠올랐다, 천천히. 얼마 전, 자신을 향해 웃으며 어서 가라는 듯 손짓을 해보이던 창민의 모습이. 유천을 붙들고 자신을 향해 몰래 손짓을 하던 창민의 모습이. 아주 천천히 준수의 가슴을 스미고 들어와 적셔왔다. 이게, 대체 무슨 느낌이지. "그래, 생각 해 보니까 좋아하는 것 같지가 않네." "............." "좋아한다는 말로는 아쉽거든. 그래. 사랑한다는 말이 적절하겠네. 사랑하는 것 같다, 너희 형을." ".........하......." "......비밀이다, 아가야." 창민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웃음을 띈 얼굴을 하고 중얼대더니, 그대로 옥상을 나가버렸다. 홀로 남겨진 준수의 가슴을 급하게 메우는 무언의 감정. 대체 이게 무슨 느낌이지. 이건 단순한 걱정과 근심이 아니야. 형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흘러나온 그런 걱정따위가 아니란 말이야. 도대체, 뭐지. 이 느낌이 뭐지. 　　　　　. . . . . . .....................얽혀도, 너무 쉽게 얽혀버려서. 이제 더 이상 손을 댈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러 버렸다. 숨 막힐듯 잔인한 이 꼬리잡기는, 지금부터 시작된다. "너 발음 똑바로 안 할래. 씨발, 남자새끼가 콧소리 내는 거 같아서 들어주기 역겹다고." "자기 정말 이럴거야? 난 뭐 이렇게 말 하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아! 귀염댕이가 억세게 혀를 자물자물 씹어버렸는데, 낸 들 어쩌라고." "그러니까 누가 그딴 애송이한테 키스를 하래?" "애송이라니! 애송이라니이!! 당신은 변했어! 그렇게 말 함부로 하지 않았잖아!!" "제발 꺼져라. 제발." 윤호는 잔뜩 골이 난 표정으로 자신의 두 귀를 손으로 억세게 막으며 바닥에 주저앉아 '흑흑.' 하는 소리와 함께 소박당한 처녀마냥 가냘픈 울음소리를 자아내는 유천을 발로 툭툭 건들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만차지?" 하고 날카롭게 눈을 번뜩이며 중얼대는 유천의 안면을 한번 더 억세게 발로 지져준 뒤 그는 소파에 아무렇게나 철퍽 주저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다. 유천도 한참이나 그러고 있기가 민망했던건지 어기적거리며 윤호의 옆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다. 동시에 붙여지는 담뱃불. 그들의 표정은 쳐다보기 민망 할 정도로 비슷했다. 심드렁한 특유의 무표정일뿐이다. "........정윤호." 문득, 장난스럽고 발음이 새어나가던 유천의 말소리가 사뭇 진지해졌다. 윤호는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고, 유천은 볼이 페일정도로 깊게 담배를 한 모금 빨아내고 '푸우' 하는 소리와 함께 담배연기를 뱉어냈다. 윤곽이 들어나지 않을정도로 하얀 담배연기가 그의 안면을 덮어버려 표정은 들어나지 않았다. "귀염댕이...너무 심각해." "뭐가." "일단 나한테 하는 것도 그렇고, 존나게 싸가지가 없어. 몇 대 패주고 싶을 정도로." "근데." ".....근데, 난 걔가 심각하게 좋다. 어떡하냐, 진짜." "지랄 싸고있네." 그러나 진심이였다. 윤호는 유천의 감정을 제 발의 떼만도 못하게 봤지만 이미 유천의 모든것은 진실이였다. 하나하나 대충 말을 내뱉는 듯 해도 그 속엔 그의 모든 진심들이 여기저기 들어가 박혀있다. 그리고, 사실 윤호가 그런 그를 모를리가 없다. 이토록 무언가에 집착하고 감싸주려 하는 유천의 모습은, 윤호에게 있어서 그저 보기 안 좋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다. 사실 김재중의 동생이라는 이유만 아니면 별로 유천과 준수의 사이를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고 가장 하찮게보는 녀석의 친동생인 김준수를, 자신의 둘도 없는 친구 박유천이 좋아한다는 건, 그리 썩 좋은 일만은 아니다. 그저 보기 안 좋고 보고 있으면 짜증나는 일. "당신 머리 좋잖아요. 나 좀 도와줘. 나 빠가라서 뭘 생각 좀 할려고 하면 그대로 눈 감긴단 말여. 도와 줘. 도와 줘!" "...제발 네 집 가. 제발. 나 귀찮게 좀 하지마." "도와줘요. 도와줘요. 벗으라면 벗을게요. 그니까, 제발-" "아, 이 씨발새끼야. 벗으라면 벗을게요? 아주 지랄로 좆을 만들어라 진짜!! 안 그래도 괜히 역겨워 죽겠는데 왜 토 쏠리게 만들고 지랄이야, 지랄이!" 누가 뭐래도 무서울 정도로 말이 없는 윤호는, 유천과 있으면 이다지도 말이 많아졌다. 자신이 유천을 아낄 수 밖에 없는 이유. 늘 유천이 자신에게 빌빌거리며 셀셀 웃기는 하지만 사실적으로 판단해 볼때, 언제나 유천에게 지는쪽은 자신이였다. 매일 그렇게 열을내도 생각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그저 그렇게 셀셀 웃기만 하는 병신같은 놈이지만. 그냥 넘겨버릴 정도로 그 웃음이 내는 효과는 약하지 않았다. 윤호는 아주 작은 한숨과 함께 소파에 깊게 몸을 묻어버렸다. "...뭐. 어떻게 도와 달라고. 뭐 어쩌라고." "응응! 그러니까요. 귀염댕이가 나한테 진짜로 훼까닥 반하게 할, 뭐 그런. 획기적인 거 없을까!?" "....네 좆 보여줘 봐. 바로 넘어 올 걸." ".....진짜 그래볼까?" "응." "장난까지 말자, 윤호야. 도와 줄 것 처럼 말하더니 갑자기 또 왜 딴길로 새고 지랄이셈." 새침한 표정까지 만들어 보이며 그렇게 윤호를 닥달하는 유천은 심각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어디론가 김준수라는 그 자식이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무서운 예감이 적지않게 그를 계속해서 누르고 있었다. 무엇이 이렇게 자신을 바꿔버린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자신은 달라져 있었다. 남의 일엔 그닥 신경을 안 쓰고 무조건 주변에서 좋은일이 생겨도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으면 관심도 갖아보지 않았고, 특히 자신이 원하는데로 행동하지 않는 녀석은 무조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대로 신경을 꺼 버리는게 자신의 성격이였다. 이렇게 계속해서 집요하게 말을 걸고 집요하게 괴롭히는 일은 자신의 적성에도 맞지 않는다. 그러나 혀와 머리와 사지는 뇌의 명령과는 다르게 본능만을 삼키며 천천히 온 몸을 지배해가는 것이다. 　　　　　. . . . ...........자신이 변해도, 심각하게 변했다는 것 쯤은 유천 자신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내 일만해도 생각하기 귀찮아 죽겠는데 네 일까지 내가 왜 신경을 써 줘야 하냐." "...네 일이라니?" "...모른다고 해라. 병신새끼." "........아아- 그 걸레새끼와의 해프닝?" 순간, 아주 약간이지만. 윤호의 눈살이 지그시 찌푸려졌다. 유천은 그런 그를 놓칠리가 없었다. 그의 표정에서 무언가 조금의 살기를 느끼긴 했지만 그런것에 연연할 정도로 유천이 약한 사람은 아니였다. 오히려 아주 조금의 독기를 품은 미소를 살짝이 지어보이며 유천도 윤호와 똑같이 소파에 깊히 몸을 묻으며 입술을 천천히 떼어냈다. "그걸 '일'이라고 칭 할 정도로 너한테 있어서 대단 한 거였어? 흐음. 몰랐네. 그 걸레새끼 갖고 노는 거, 그게 '일'이였어? ...정윤호, 너 생각보다 걸레새끼 마음에 두고 있는 거 아냐? 아니, 맞네. 그렇네. 마음에 두고 있었네. 하긴 예쁘긴 좀 예뻐?" "닥쳐, 박유천." "싫어." 생글. 유천의 안면이 생글- 하는 귀염성있는 웃음을 자아냈다. 순식간에 파밧- 하는 느낌과 함께 죽어있던 핏줄이 윤호의 팔을 감고 일어섰다. 무엇이 이렇게 자신을 화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그저 화가났다. 이런 말을 듣고 왜 자신이 화가 나는지 이해 할 수가 없다. 그게 바로 더욱이 화가 나는 것이다. "좋은 기분 깨지말고, 그냥 입 다물어 박유천. 너 그럴때마다 진짜 같이 있기도 싫을 만큼 질린다." "왜, 정곡 찔리니까 기분 드러워? 형님, 그런거요?" "박유천!!" "아이, 흥분하지 마. 왜 흥분을 하고 그러시나. 알았어, 알았어. 말 안하면 되잖아. 내가 졌어. 됐지?" 　　　　　　　. . . . . . . .....................알 수 없는 자식. 젠장...................... 윤호는 황급히 치닫는 짜증과 홧기를 간신히 억누르며 급하게 담배를 빨아댔다. 이럴 때 담배로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스럽게 느껴지는 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이런 감정들. 그저 김재중만 보면 화가나고 증오가 일어나는 이 느낌을 자신도 궁금해하고 있던차에, 박유천이 한 말을 들으니 이루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감정들과 느낌이 한꺼번에 일어나 사지를 뒤흔들고 있었다. "...네 자식처럼 잔인해 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 "...........입 다물어, 박유천.." "차라리 묶어버릴까. 그냥 묶어서 평생 데리고 다닐까." "............." "......이렇게, 꽈악-..말이야." 유천의 입가에 자그마한 웃음이 걸렸다. 그는 자신의 팔로 소파에 놓여있던 쿠션을 아주 세게 껴안았다. 푹신하던 쿠션은 그대로 뭉그러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천은 계속해서 그 쿠션을 세게 옭아매고 있었다. 자신의 두 팔로 말이다. 윤호는 아무런 말 없이 주구장창 담배만 줄 지어 피어 댈 뿐, 아무런 대답이 없다. 　　　　　　　　　. . . . .......김..준수. 김준수. 김준수. 김준수. 김준수. 김준수....... 　　　　　　　　　　　나는 네가 발버둥치면 칠 수록 더 세게 묶어버려서, 　　　　　　　　　이 끈이 네 살을 파고들어 피가나던, 멍이들던- 그저, 더욱 묶어버려서. 　　　　　　　　　　　　　　나만 쳐다보게 만들어 줄 거야. 　　　　　　　　　　　 　　　　　　　　　　누가 뭐래도, 그대가 날 매몰차게 버려도, 　　　　　　　　　　잔인하게 날 비웃어도, 날 잔인하게 짓밟아도, 　　　　　　　　　　다시 나의 발목을 붙잡는 또 하나의 매개체. 　　　　　　　　　　　　　　　　　 　　　　　　　　　　　　　　　.끈　　　　　#10. 　　　　　　　　　　　　　　written by. 샤그락처녀 　　　　　　　　　　　　　(dndzidzid22@hanmail.net) 　　 　　　어쩌면 내 진짜 웃음은 너라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그동안 　　　　　　아끼고 아껴왔던 건지도 몰라. 우습게도 뭔가가 두려워진다.　　　 　　　　　　　　　　　　　　　　　monologue by. Micky 　　　　　　　　　　　　　　　　　　　　. 　　　　　　　　　　　　　　　　　　　　. 　　　　　　　　　　　　　　　　　　　　. '나 지금 교문 앞이셈♡ 언눙 와 귀염댕아♡ 뽀뽀쪽~!' 잠시 지그시 인상을 찌푸린 준수는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핸드폰에 와 있는 문자에 찍혀있는 번호는 굉장히 낯선 번호. 말 하는 투를 봐서 박유천이라는 걸 단박에 알아챈 준수는 그대로 문자를 삭제하고 신경질 적인 손놀림으로 폴더를 거칠게 닫아 버렸다. 교문 앞이라는 그 말이 머릿속 깊숙히 파고들어 짜증이라는 짜증을 계속 끌어올리고 있었다. 박유천이 학교에 나와서 공부를 하든 학교 앞에서서 삥을 뜯건 신경조차 쓰고싶지 않은게 지금 자신의 입장이다. 지독하다. 정말 지독한 사람. 도대체 어떻게 말 해줘야 이 사람이 상처를 입고 무너질 수 있는건지, 엄청난 수수께끼다. 내가 내뱉고도 오싹하고 잔인한 그 말들을 들어도 이 사람은 그저 생글생글. 안면 근육만 움직여 웃음이라는 것을 자아내는 것이 딱 보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한 건 너무 한 거다. 도대체 뭐라고 말을 해야할까. 도대체 뭐라고 말을 해야 이 사람에게 큰 상처라는 걸 줄 수 있는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준수는 어느덧 건물을 빠져나와 학교 교문쪽에 다다르고 있었다.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교문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나직히 찌푸려진 인상으로 추운지 잔뜩 몸을 웅크리고. 바닥에 빨간색 사탕을 먹어서 그런지 붉어보이는 침을 찍찍, 신기한 혀놀림으로 뱉어대고 있는 유천이 시야에 박혀 들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대로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푹 숙인체로 지나가야만 할 것같이 행동하고있는 박유천의 모습은 양아치도 완전 쌩양아치의 표본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짐짓 아무렇지도 않아보이는 표정으로 자신의 표정을 가꾼 준수는 그렇게 유천의 쪽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아니, 좀 더 명확히 묘사를 한다면 유천 쪽으로가 아니라 유천이 지키고 앉은 교문 쪽으로 다가서고 있다. 준수를 발견한 듯 동그란 눈을 잠시 크게 늘려보이던 유천은 고새 벌떡 일어나 사탕을 뱉고 발로 짓밟았다. 빨간색 사탕을 먹느라 한층 더 붉어진 그의 입술은 웃음이라는 것을 비릿하게 자아냈다. "귀염댕이." 유천의 시선은 집요하게 준수를 향해 있었지만 준수의 시선은 그렇지 못 했다. 그저 바로 옆에서 자신을 불러오는 유천을 너무 당연스레 넘기며 앞만을 똑바로 주시하고 그렇게 교문을 빠져나갔다. 아니, 빠져나가려 했지만 그 것도 잠시 뿐. 화악 찌푸려진 인상으로 팔을 낚아채는 유천으로 인해 준수는 걸음을 단박에 멈춰 버릴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로 인해 무표정이던 준수의 표정까지 심상치않게 굳어버렸다. "어딜 갈라구." "집에요." "집엔 왜?" "가야 되요." "집에 부모님 계시는 것도 아니잖어." "가야 되요." "나랑 놀자, 오늘." "가야 되요." ".....귀염댕아. 가야된다는 말, 한번만 더 하면.." "가야 되요." 서로를 응시하는 둘의 눈동자엔 서로를 찔러 죽여버릴 듯한 증오가 일고 있었다. 한치의 흔들림 없이 곧은 준수의 눈빛을 한참이나 마주하던 유천의 눈빛에도 이미 장난끼라는 것은 사라진 지 오래다. 똑같은 말만 되풀이 하는 준수도 이제는 막무가내로 나오겠다는 박유천에게 본때를 보여줘야겠다는 심사인지도 모른다. 그 것을 다 꿰뚫어 보기라도 했다는 듯, 유천은 "아아-" 하고 무언갈 알아챈 듯한 탄성을 내지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준수의 시선에 자신의 시선을 곧게 마주한다. "그 걸레, 역시 너한테도 엉덩이 까주나 봐?" "!!..뭐...뭐라구요...?" 사지가 바들바들 떨려왔다. 주체 할 수 없게 저 밑 언저리에서 부터 끓어올라 정수리 끝까지 치닫고 올라 온 홧기를 준수는 어찌 억제해야 할 지 몰라 그렇게 떨리는 목소리로 나지막히 되물었다. 어쩌면, 되묻지 않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저 아무런 말 없이 유천을 스쳐 지나가버렸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상처를 더 주지 못해서 안달난 사람이라는 걸 잠시동안 준수는 잊고 있었다. 어쩌면 정윤호보다도 더 잔인한 사람일지도 모르는 게 지금 자신의 앞에서 생글거리며 웃는 낯짝을 들이대는 박유천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준수는 아주 잠시 망각한 듯 했다. "왜, 아니야? 너 하는 짓 보니까 형 끔찍하게 아끼던데. 그리고 그 자식 엉덩이도 좀 가벼운게 아니더라구. 드럽게 형제끼리 러뷰러뷰라도 하는거야? 그 것도 아니면, 대체 집에 일찍 가야한다는 이유가 뭔데 그래." "그렇게 말 하는 댁 입이 훨씬 더 드럽다는 거 모르시나 보네요." "응, 몰라." 순간, 욕이 험악하게 튀어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삼킨 준수는 여전히 생글거리는 유천의 낯짝을 한참이나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의 표정엔 더 이상 말을 해봤자 내 입만 아프다. 라는 말이 큼직하게 새겨져 있었고 그런 그의 표정을 읽을만한 능력은 유천에게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더 생글거리는 유천의 얼굴은 여전히 이해 할 수가 없는 얼굴. 더 이상 상대하지 않는게 좋겠다. 라고 생각한 준수가 그래도 잡혀있던 자신의 팔을 뿌리쳤다. 오늘 아침의 일이 갑작스레 떠올라 무슨 일을 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없잖아 있지만 자신의 커다란 자존심을 아무렇지도 않게 웃는 낯으로 잔인하게 뭉개버리는 박유천이라는 자식과는 단 1초도 같이 있고싶지 않았다. 그러나 뿌리치며 빠르게 앞으로 걸어나가는 준수를 그냥 보내주려는 듯 쳐다보던 유천은 더욱 빠르게 준수를 앞질러 준수의 앞에 섰다. 준수가 오른쪽으로 비켜 가려고 방향을 틀면, 다시금 막아오는 걸 여러번이나 반복하는 유천은 전혀 지치는 기색이 없다. 이러다간 눈물이라도 나올 것 같은 느낌. 정말, 지독히도 이 사람과 같이 있는게 싫다. 이렇게 앞에서 설치는 이 사람이 정말 지독스럽게 밉다. 너무 싫고 미워서 눈물이 치솟아 오르는 듯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부터 코끝은 시큰거리고 있었다. 준수의 증오가 끓는 눈빛을 보고도 유천은 여전히 그 표정, 그 행동 그대로다. "너 계속 이렇게 귀엽게 나오면 나 못 참아." "....." "여기서 그대로 눕혀버릴 수도 있어." 이번에 내뱉은 유천의 말은 확실하게 효과가 있었다. 그렇게 무표정으로 씹기만 하던 준수의 눈동자가 단박에 일렁였기 때문이다. 그 짧은 찰나를 놓칠 리 없는 유천의 입가엔 승리의 미소인지 모를 조금은 야릇한 미소가 걸렸고 그 미소에 다시 한번 자신이 실수 했다는 것을 깨달은 준수는 얼른 재빨리 표정을 붙들었다. 다시금 아까의 침착한 표정으로 되돌아 온 준수는 여전히 아무런 말 없이 유천만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을 뿐이였다. 그의 표정엔 나타 나지 않았지만 지금 준수의 머릿속은 온통 복잡하게 난장판이 되어있는 상황. 오만한 자신의 자존심을 뭉개고 이 사람을 따라나선다는 건 있을수도 없는 일. 그렇다고해서 그냥 씹어버리고 다시 갈 길을 가다간 곧바로 이 차디 찬 길바닥에 내동댕이 쳐 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누가 뭐래도 이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는 사람임이 분명하니까. 무슨 짓을 할지, 무슨 행동으로 나를 곤란하게 만들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박유천이라는 이 사람은, 여태껏 (얼마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나에게 해왔던 행동으로 보아 한번 내뱉은 말은 어떻게 해서든지 지키는,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 같다. "....해 보시죠." 그러나 역시나였다. 준수는, 하늘을 치솟는 자신의 자존심을 그렇게 쉽게 뭉개버릴 수 있을 정도로 나약한 인간이 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자존심을 중요시하는 자신이 그렇게 쉽게 자존심따위를 버릴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 오만한 자존심탓에 욕 볼 일이 흔치 않다는 것, 너무나도 잘 알고있는 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자신을 버릴 정도로 준수는 절대로 나약하지 못 하다. 그런 그의 대답이 몹시나 뜻밖이였는지 유천의 표정도 갈 수록 굳어가고 있었다. 그 굳어진 표정이 살짝이 풀리고 섧은 미소를 짓는가 싶다. 그대로 준수의 몸이 강한 힘에 의해 벽으로 밀쳐졌다. 젠장. 벽에다가 사람 밀치는게 취미인가. 하는 짓이라고는 드럽게 진부한 자식. 안 그래도 교문을 나서는 학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있던 그들인데 이번 유천의 행동으로 인해서 다시 한번 크게 시선이 집중 되고야 말았다. 어떤 학생은 가던 걸음까지 멈추고 이 장면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고, 또 어떤 학생은 뭐가 그리 무서웠던건지 그저 흘깃거리며 유천과 시선이 마주 칠 새라 아주 느린걸음으로 걸어가며 흘깃, 흘깃. 몸까지 흠칫거리며 이 장면을 집요하게 훔쳐보고 있었다. 그러나 유천은 정작 그런 그들에겐 관심도 없다는 듯 자신을 증오가 이는 눈동자로 죽여라 노려보는 준수만 똑바로 응시하고 있을 뿐이였다. "나 원망 하지마. 난 네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 뿐이니까." "원망하지 않기를 바라는 거라면 이쯤에 해 둬, 이 지저분한 새끼야." "어쭈. 또 반말이네. 그리고, 너 지금 말은 그렇게 해도 나한테 부탁하는 거지? 솔직히..지금 무섭지? 내가 이대로 너한테 키스 해 버리면 어쩌나. 그거 걱정되지? 아니라고 해 봐, 이 귀여워서 깨물어주고 싶은 자식아." ".....씨발놈." 그렇게 꾹꾹 담아두었던 욕설이 드디어 터지고야 말았다. 그런 그에게서 욕설이 내뱉어졌다는 게 뭐가 그리 기쁘고 좋은건지 유천은 참으려던 웃음을 참듯 '쿡' 하는 낮은 웃음을 내뱉었고 그 웃음에 무언가가 잔뜩 담기어 있다는 것 을 알아 챈 준수의 얼굴은 의지와는 다르게도 금새 붉게 타오르고야 말았다. 호흡이 차차 곤란해진다. 점점 유천의 얼굴이 준수의 안면에 다가옴과 동시에 안 그래도 이 장면에 호감을 가지고 있던 여러 학생들의 표정까지 점차 굳어 가고 있었다. 이건 아니다. 이건 절대 안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것도 같은 학교 학생들 앞에서 이런 모습을 절대로 보여 줄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해서 이제와서 그만두라고 말 하기에도 여실히 애매모호한 상황. 준수는 이 추운 날 등짝으로 흘러들어가는 땀방울을 느끼고 더욱 더 치를 떨었다. 유천의 얼굴은 더욱 더 준수의 얼굴에 가까이 밀착되었다. 이제, 조금만 더 다가오면 입술이 닿는다. 닿는다. .........씨발. 닿았다. '타악..!' 결국 참지 못한 준수가 온 힘을 실어서 자신의 두 팔로 유천의 가슴팍을 세게 밀쳐내었고, 갑작스러운 준수의 행동 에 유천은 가볍게 밀쳐져 한발작 물러서게 되어 버렸다. 준수는 아주 살짝이지만 뜨겁게 멍울 진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에 닿았다는 게 어찌나 수치스러웠는지 입술의 여린 살이 다 까질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들 만큼 까슬한 마이가 입혀진 팔로 미친 듯 입술을 벅벅 부벼대고 있었다. 교문 앞이고, 운동장이고 꽈악 들어차게 서 있던 모든 학생들의 웅성거림이 더욱 더 커져가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이제서야 인식한 건지 유천은 천천히 그들을 쫘악- 한번 둘러 봤다. 게 중인 3학년 남자선배들도 더러 눈에 띄였고 무언가 욕짓꺼리를 뱉으려는 듯 입을 벌렸던 유천은 그 중 자신과 안면을 트고 지내는 선배들도 눈에 띄이자 그냥 욕설을 삼키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박유천." 유천은 자신을 부르는 타악 가라앉은 조금은 쉰 듯한 목소리에 냉큼 고개를 돌려 준수와 시선을 마주했다. 처음 일 지도 모른다. 준수가 먼저 자신의 이름을 불러 준 건. 표정이나 행동에 딱 들어나지는 않았지만 유천은 자신도 모르게 일렁이는 심장에 하마터면 인상을 찌푸릴 뻔 했다. 씨발....... 존나 유치해, 박유천. 떨리냐, 씨발놈아. 설레이냐고. 젠장. 그러고 보니까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완전 호모 변태사이코 게이로 찍히게 생겼잖어. 지금에서야 모든 현실들이 직시가 된 건지 유천은 그렇게 부끄러움 없던 자신에게도 무언가 형용 할 수 없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서 짜증이 밀려들었다. 명치까지 파고드는 짜증을 간신히 집어삼키고 자신의 이름을 불러세운 준수에게 다시금 온 신경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열려지지 않던 준수의 마른입술이 드디어 열렸다.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 . . . . . . . ..........................의외의 물음이였다. 유천과 준수의 그닥 멀지 못한 사이로 차디 찬 겨울바람 한 줄기가 사악하는 소리와 함께 파고 들어왔다. 준수의 표정은 아주 심각했고 유천의 표정은 아주 조금의 장난끼가 서려있었다. 문득 유천의 시선을 잡아 끄는것은, 방금 전 무지막지하게 자신의 입술을 비벼댄 터라 발갛게 부어오른 준수의 입술이였다. 유천의 안 그래도 서려있던 장난끼가 더욱 더 빛이 나기 시작한다. 얼굴엔 이미 심각함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개구진 미소가 한가득이다. 오랜 시간을 밖에 서 있어서 그런지 차갑고 싸늘하게 얼어버린 손을 들어올려, 검지손가락을 내밀어 유천이 준수의 입술에 아주 살짝 갖다 대었다. 유천의 손가락엔 준수의 부드럽고, 조금은 촉촉하게 젖어 뜨거운 김을 내는 입술이, 준수의 입술엔 차갑고 딱딱하게 식어 입술을 아프지 않게 눌러오는 손가락이 동시에 느껴졌다. "...........이거."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자신의 모든 기대를 절대로 져버리지 않고 잔인스레 말 하는 유천에게 준수는 다시 한번 더 질려버렸다. 그래도 진심을 담고 물은것이였다. 만약 괜찮은 거라면 들어 줄 의향도 완전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만큼 자신은 지금 지쳐있으니까. 더 이상 자신을 괴롭히지 않을거라는 약속을 받아내기라도 한다면 진짜로 이 사람의 연인이 되줄 마음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이 사람은 죽어서라도 자신을 괴롭 힐 인생 최대의 적이라는 걸. 그러나, 그렇게 한참을 증오가 섞인 마음가짐으로 생각하고 있던 준수의 시선을 잡아끄는 무언가. 　　　. . . . . . .................슬픈 웃음. 아이러니 한 그 웃음. 웃음이라는 것은 즐거워야 하는데, 　　　　　　박유천이라는 이 사람이 짓는 웃음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시큰거릴 만큼 슬퍼보였다. 아직도 준수의 입술에 닿아있던 자신의 손가락을 잠깐 떼어내는 유천. 그리고, 다시금 그의 손가락이 준수의 입술에 다가가 두어번을 '톡톡' 부드럽게 건들였다. "......이게, 내 앞에서만 예쁘게 웃어주는 거. 그게 내가 원하는거야." 여전히 유천의 손가락은 준수의 입술 위에, 준수의 입술 위엔 유천의 손가락이 자리하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그대가 날 매몰차게 버려도, 　　　　　　　　　　잔인하게 날 비웃어도, 날 잔인하게 짓밟아도, 　　　　　　　　　　다시 나의 발목을 붙잡는 또 하나의 매개체. 　　　　　　　　　　　　　　　　　 　　　　　　　　　　　　　　　.끈　　　　　#11. 　　　　　　　　　　　　　　written by. 샤그락처녀 　　　　　　　　　　　　　(dndzidzid22@hanmail.net) 　　　죽여버릴거야. 갈기갈기 찢어져서, 지독히 잔인하게 죽여버릴거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제 더이상 나한테 다가오지 마.　　　 　　　　　　　　　　　　　　　　　monologue by. U-know 　　　　　　　　　　　　　　　　　　　　. 　　　　　　　　　　　　　　　　　　　　. 　　　　　　　　　　　　　　　　　　　　. 한층 섧어진 바람이 그들을 옅게 훑고 지나갔다. 그대로 굳어버린 준수를 쳐다보던 유천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것도 바로 그 때다. 그 웃음을 보자마자 얼른 표정을 바꿔버린 준수는 무언가의 형용 할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가슴 저 언저리, 자칫하면 느끼지 못 할 만큼 저 깊은 그 곳에서 무언가가 찌릿 찌릿. 날카로운 바늘로 콕 콕 찌르는 듯한 기분 나쁜 느낌. 심장이 움찔거린다거나 가슴이 쿵쾅거린다거나 하는 느낌없이 그저 가슴아픈 느낌. "...해줄 수 있냐?" 말간 웃음을 짓는 유천을 역시 준수는 바라보고만 있었다. 따뜻하게 웃어 줄 수 있냐니. 그건 터무니 없는 소리였다. 그 웃음을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이 박유천이라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지어 줄 수 없는 자신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는 준수는 역시 대답없이 그저 그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였다. 그런 준수의 머릿속을 뚫고 지나가는 한줄기의 생각. 　　　　　　. . . . . ............이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났다. "아니요." "왜? 왜 못 해주는데. 그냥 웃어주기만 하면 되잖아?" "...형." "......오빠라고 하지?" "형." "...왜, 임마."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듯 해도 지금 유천은 말초신경 하나하나까지 자신의 모든걸 준수에게 쏟아붓고 있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벌릴때마다 심장이 미친듯 움찔거리는 자신을 조그 맣게 비하도 해 보지만 그럴수록 더욱 발광하는 이 심장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머리가 주는 상식과는 전혀 동 떨어진 동세포 생물. 그저 모든것에 순응하기로 한 유천은 반은 포기한 심정으로 그렇게 움찔거리는 심장을 신경 안 쓰려고 남 모르게 노력하고 있다. 그런 유천의 귓가를 뚫고 단박에 들어박히는 준수의 낮은 음성. "형은 나를 좋아하는게 아니에요." 　　　　　　. . . . . . . . . ..................................................... "...지랄하지 마." 있지도 않던 자존심이 한순간에 개박살이 났다. ".....나를 좋아하는게 아니에요." 　　　　　. . . . . . . . . .................................................... 우습게도, 나 박유천이 정말 슬퍼져버렸다. 여태까지 내가 보여줬던 것. 내가 김준수를 향해서 내뱉던 말들, 행동들. 그것이 이 녀석에겐 얼마나 하찮았으면 저런 말을 하는걸까. 좋아하는게 아니라는 그런 말. 내가 뭘 어떻게 해야 네가 내 진심을 알아줄지. 받아주는 것은 추호도 바라지 않는다. 알아줘라. 알아줘라. 그렇게 내가 너에게 보여줬던 행동이 겨우 그거로 밖에 안보였다는게. 　　　. . . . ...........씨발, 병신처럼 슬퍼지고 지랄이냐, 박유천.................. 보이지 않으려고, 슬픈빛을 보이지 않으려고 더욱 부릅 뜬 유천의 눈동자를 단박에 파악해 버린 준수는 참 잔인하게도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역시 준수에게 있어서 유천이란 사람은 여실히 이 것 밖에 되지 못한다. 어느덧 시간은 흘렀고 그들이 침묵으로 버틴 시간만 해도 20분이 넘어간다. 한참이나 이들을 구경거리로 삼고 지켜보던 이들도 하나 둘 씩 짜증섞인 얼굴로 그대로 교문을 나가버렸고 남아있는 건 텅빈 운동장과 그 운동장 구석 교문에 기대어 있는 유천과 준수뿐이였다. 사방이 조용해지자 더욱 자신들의 숨소리가 거칠어진 다는 걸 두 사람 모두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중이다. 한참의 그 지독스러운 침묵이 지겨웠는지 준수가 드디어 떼어지지 않는 입을 떼어냈다. ".....안녕히 계세요." 이번엔 잡을 수 없겠지. 라고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준수가 유천에게 등을 보이고 교문밖으로 그닥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나가버렸다. 그런 준수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유천은, 이해 할 수 없게도. 정말 이해 할 수 없게도 웃음을 머금고 있다. "귀염댕아!" 　　　　　　. . . . . . . . . . . . ............................................ 한층 더 밝아진 목소리가 뒤에서 자신을 불러세우자 준수는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늘려보였다. 설마, 설마...저 사람 아무렇지도 않은거야.....?! 정곡을 찔렀다고 생각 했는데..! "네가 틀렸어." 준수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가방끈을 고쳐매고 다시 걸어나가는 듯 하다. '네가 틀렸어.' 라는 말을 내뱉은 유천에게 더 이상 무슨 말이든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런식으로 넘겨버릴 줄은... 역시, 박유천은 만만하게 볼 상대가 되지 못한다. "내 마음은 너보다 내가 잘 알아. 나 너 좋아하는 거 맞어. 네가 틀린거니까 괜히 잘난척 하지마~" 　　　　　　. . . . . .................................................... "귀염댕아!" "........" "알라뷰한다!" 습관처럼 내뱉어지는 한숨. 재중은 그렇게 몇번씩이나 한숨같은 심호흡을 들이키고서 익숙치 못한 현관문 앞에서 몇분이나 시간을 끌고 있는지 모른다. 귀찮다는 듯 짧게 핸드폰에 와 있던 문자. '집으로와' ....문자일 뿐이였는데 우습게, 아니 신기하게도. 번호도 확인해보지 않고 재중은 이 문자를 누가 보냈는지 알 겨를도 없이 심장이 미친듯이 두근거렸었다. 이젠, 이해 하려고 해 보지도 않았다. 　　　. . . . . . .........나 자신도 이해 할 수 없는일을 고민한다고 이해가 될 리는 없었다. 그렇게 몇십분을 윤호의 집 현관앞에서 서성거렸을까. 문자를 받았다고 바로 벨을 누르는것도 우스웠다. 아니, 사실 그런 것 보다도 안에서 자신을 기다릴지 기다리지 않을진 모르지만 여튼 이 집 안에 있는 사람이 정윤호라는 사실은 오히려 기쁘기 보다도 두렵고 무섭게 재중의 눈앞을 가로막는다. 그만큼, 그는 아픈 사랑을 하고 있다. 한번 더 심호흡을 한 끝에 벨을 누르려는 듯 손가락을 들어올렸던 재중은 벨 가까이까지 손가락을 가져갔지만 끝내 누르지 못했다. 수전증 무색할 정도로 떨려오는 손가락때문에도 그랬고, 도저히 벨을 누를 엄두조차 나질 않는거다. 안타깝게 내려오는 손가락을 떨궈버리고 재중은 그렇게 현관에 등을 기대고 주르륵, 미끄러져 바닥에 주저앉다 시피 쭈그려 앉아버렸다. 차갑고 시린 바람에 몹시도 춥고 떨려왔지만 어차피 윤호의 집 안에 들어가봤자 따뜻할리는 없다. 아니, 오히려 바깥에 있는게 더 따뜻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만큼 그는 차가우니까. 달칵. 달그락. 순간, 재중의 몸이 눈에띄게 흠칫거렸다. 현관 안 쪽에서 현관 문고리가 움직거리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재중이 두려움과 공포로 들어찬 동공을 이리저리 굴리며 그 짧은 순간에도 엄청나게 얽혀버리는 머리로 미친 듯 고민을 시작했다. 어디로 가야하지? 이건 분명 정윤호가 문을 여는 소리야. 어디로 도망을 가지? 어디로 숨지? 벌컥. 생각의 끝을 잡고 결론을 내리기도 전에 현관문은 빠르게 열려버렸다. 문 밖에 서있던 재중의 표정은 빠르게 굳어갔지만 그 굳어진 표정 안의 눈동자는 떨어져 내릴 듯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동공안으로 부드럽게 비춰진 윤호의 모습은, 역시 아무런 느낌없는 포커페이스. 어떻게 알고 문을 열었을까. 라는 되도 않는 궁금증이 잠시 재중의 머릿속에 박혀 들 무렵, 이미 윤호의 손에 이끌려 재중은 집 안으로 끌려 들어오다 시피 들어와버렸다. 재중을 집 안으로 밀어넣은 윤호는 다시 현관문을 닫았다. 굳게 현관문을 잠그는 소리가 괜시리 무섭게 들려와 재중은 한번 더 온 몸을 얄팍하게 떨어댄다. 윤호는 그런 재중을 힐끔거리는 시선으로 한번 바라 본 뒤 슬리퍼를 직직 끌으며 거실안으로 들어섰다. 현관에 서있던 재중은 또다시 우스운 고민에 한차례 빠져버렸다. 여기서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야 하나, 계속 이렇게 서 있어야 하나. 하는 아주 우스운 고민 말이다. 그렇게 고민을 하는새에 10분이 후닥 지나가버렸다. 이제는 지칠법도 한데 재중은 여전히 열심히 고민을 하고 있었고, 그런 재중이 신경에 거슬리지 않을리가 없는 윤호가 한참 티비에 꽂혀있던 시선을 돌려 재중을 드디어 쳐다 봐 주었다. 그 눈빛에 다시한번 재중은 흠칫거리며 들려있던 고개를 바닥에 떨궈버렸다. "뭐하냐, 거기서." ".....아....." "......병신새끼." 재중의 어깨가 잠시 들썩거렸다. 그는, 분명 아무렇지도 않게. 별로 생각조차 않하고 머릿속에서 말을 한번 걸러내지도 않고 대충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래, 분명 그렇기 때문에 저렇게 말을 하는 거겠지만 우습게도 그 말 한마디에 재중은 반응한다. 어찌됐든 윤호가 뱉은 말에는 들어오라는 말이 일단은 어렴풋 실려있었기 때문에 재중이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이제부터 또다른 고민이 시작된다. 대체 어디에 있어야 하는걸까. 이렇게 안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소파에 앉은 윤호의 옆에 쪼르륵 가서 앉는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였다. 그렇다고 다시 이 거실 한복판에 우뚝하니 서서는 멍청하게 있을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추운 날 등짝이 싸아해질 정도로 재중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머리까지 아파오려 하는 그 느낌에 재중은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을 내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그림자가 자신을 덮쳐오는 느낌과 무언의 생물체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 들어 퍼뜩 눈을 떴을때. 자신보다 키가 큰 윤호가 자신의 앞에 서서 무표정한 얼굴로 내려다 보고 있다는 것을 확인 한 재중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늘려보이며 한 발작을 뒷걸음질 쳤고, 어느새 윤호의 팔이 단단하게 재중의 허리를 홰액 잡아 자신의 쪽으로 이끌었다. 순식간에 윤호의 가슴팍에 온 몸이 묻혀버린 재중이 놀라서 두 눈을 심하게 깜빡거리며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고개를 숙여가며 자신의 허리에 감긴 윤호의 팔을 붙들었다. 그 몸짓이 여간 맘에 들지 않았는지 윤호는 한 쪽 눈썹을 지그시 찌푸리며 팔에 더욱 힘을 주어 재중의 허리를 더 세게 끌어 안아 자신의 쪽으로 밀착 시켰다. 윤호와 재중의 신장차이로 인해 재중의 얼굴은 윤호의 목덜미 쪽으로 바싹 밀착되고야 말았다. 순간, 자신의 코를 찔러오는 아찔한 그 향기에 재중의 얼굴은 더욱 붉게 달아올랐고 그 느낌이 수치스럽다고 느껴졌는지 재중의 반항하는 몸짓이 한층 더 강해짐이 보였다. 이제는 두 손을 동원해 자신의 허리에 감겨진 윤호의 팔을 빼내려고 조금은 거세다싶게 저항을 하고 있었고, 윤호의 표정도 정정 붙들 수 없을 만큼 굳어가고 있었다. 떼어 낼 공간조차 없었다. 그만큼 윤호와 재중은 타악 붙어있는 상태였다. 서로의 숨소리는 너무나 적날하게 귓가를 메우고 찔러와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였다. 물론 그것은 재중에게만 해당하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김재중." "..어, 어...?" 낮게 읊조려지는 윤호의 음성에 재중은 자신도 모르게 대답하며 빠르게 고개를 들어올렸고, 그 순간 윤호의 얼굴이 숙여져 살짝 벌려져있던 재중의 입술로 자신의 입술을 강하게 내리 꽂았다. '흐읍..!' 하는 소리와 함께 재중이 눈을 크게 떴고 윤호는 억지로 재중의 턱을 벌려가며 더욱 빠르게 자신의 혀를 밀어넣었다. 입 안을 침범해 들어와 제 것인양 휩쓰는 윤호의 혀 덕택에 재중은 이미 정신이 없을 정도로 혼미해진 상태였다. 은근슬쩍 고개를 돌려가며 회피하려는 재중이 못마땅했는지 윤호는 재중의 허리를 감은 손 외에 남아있던 다른 손을 들어 재중의 뒷머리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재중의 고개가 더욱 뒤로 꺾임에 뜻하지 않게 입술은 더욱 크게 벌려졌고 윤호는 더욱 강하게 재중을 밀어 붙이고 있었다. 조금은 강제적인 그 키스가 더욱 짙어진다고 생각될 때, 재중의 저항이 조금은 멎었다고 느껴질 때. 윤호는 재중의 허리를 감았던 그 손을 갑작스레 풀고 빠르게 내려 조금은 헐렁한 재중의 교복 바지춤을 뚫고 손을 쑤욱 밀어넣었다. 그 느낌에 놀란 재중이 감기려던 눈을 재빨리 뜨고 다시 한번 강하게 저항을 하기 시작했다. 싫다. 싫다. 싫다. 싫다........................................... "하지.....으...읍...흐으...." 아주 잠깐 입이 떼어질새면 윤호가 정말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지마' '그만해' 등등만을 내뱉어대는 재중이 윤호는 몹시도 못마땅하다. 더욱 인상을 찌푸리며 윤호는 재중의 입술을 아예 삼켜버릴 듯 빨며 집에넣었던 손을 뒤척거려 손가락을 세워 이곳저곳을 지분거리고 있었다. 미칠듯한 수치심이 재중을 덮쳐왔고 그 사이, 윤호는 재중에게서 입술을 떼어내고 바지춤으로 집어넣었던 손까지 빼내었다. 재중이 거칠어진 숨을 몰아내쉬기도 전에 윤호는 곧바로 재중의 허리를 다시 한 손으로 휘어잡고 그대로 질질 방 안으로 끌고 들어와버렸다. 끌려가지 않으려는 듯 두 팔과 두 발을 허공에서 저어가며 반항하는 재중의 허리를 잡은 윤호의 팔엔 더욱 더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싫어..!! 싫어...!" "닥쳐." "...왜.....왜 나한테....." 늘 하는 말. 윤호가 재중에게 이런 행동을 할 때마다 지겹게도 똑같이 내뱉어지는 재중의 말. '왜 나한테 이러는거야.' 이 말은 싫다는 뜻이 담겨있음과 동시에, 어쩌면 무언가를 바라는 듯한 뜻도 담겨있기 때문에. 그래, 그렇기 때문에 윤호가 더욱 화가나고 더욱 짜증이 나는 것. 침대에 재중을 던져버리 듯 내동댕이 친 윤호가 입고 있던 티를 단박에 벗어버렸다. 그 모습에 재중의 눈동자는 또다시 두려움과 공포심으로 아찔히 일렁이고, 자신에게 빠르게 다가오는 윤호에 의해 재중은 침대에 던져진 자신의 몸을 빠르게 일으켜 봤지만 그것은 단 1초의 시간도 허용치 않고 다시금 저지되었다. 아프게 침대에 몸이 강제로 눕혀진 재중이 무언가를 말 하려는 듯 입을 벌리기도 전에, 윤호가 재중의 옷자락을 거칠게 붙들었다. 그리고 강하게 힘을 주어 양 옆으로 쫘악 뻘리자 달려있던 단추들이 탁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다 뜯겨져 나가 방 안 이곳 저곳으로 튕겨져 흩어졌다. 훤히 벌려진 셔츠사이로 들어난 재중의 상체를 말 없이 바라보던 윤호가 재중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그리고... "...흐윽....으으...윽...하지마...하지마..." 이내는 참지 못하고 재중은 참았던 울음을 터뜨려버렸다. 두 눈을 두 팔로 가리고, 그렇게 숨가쁜 오열을 터뜨려 버렸다. 너무나도 아파보이는 그 울음에, 너무나도 슬퍼보이는 그 눈물에. "........씨발새끼...." 멈출 것 같지않던 윤호의 행위도 금새 멈춰져 버렸다. 왜 이 자식을 마주대하면 이성이 없어지는지. 왜그렇게 미친듯이 화가 나는건지. 대체 왜 이렇게 뭐든지 다 못마땅한건지. 왜 이렇게 울려버리고 싶은건지. 　　　. . . . . . .................그리고, 막상 울면 왜 더욱 미친 듯이 화가나는 건지............. 　　　　　　　　　　누가 뭐래도, 그대가 날 매몰차게 버려도, 　　　　　　　　　　잔인하게 날 비웃어도, 날 잔인하게 짓밟아도, 　　　　　　　　　　다시 나의 발목을 붙잡는 또 하나의 매개체. 　　　　　　　　　　　　　　　　　 　　　　　　　　　　　　　　　.끈　　　　　#12. 　　　　　　　　　　　　　　written by. 샤그락처녀 　　　　　　　　　　　　　(dndzidzid22@hanmail.net) ******************************************** 　　　앞 날을 예상 할 수 있다는 건, 내가 지금 하는 이 사랑의 결말을 짐작 할 수 　　　　　　　　　있다는 건 꽤나 슬퍼. 하지만 멈출 수가 없어.　　　 　　　　　　　　　　　　　　　　　monologue by. Max 　　　　　　　　　　　　　　　　　　　　. 　　　　　　　　　　　　　　　　　　　　. 　　　　　　　　　　　　　　　　　　　　. "심창민!! 아, 개새끼 진짜. 존나 짜증나게." "미친새끼야. 네가 못 하는거 가지고 나한테 왜 승질이야." "아, 그냥 좀 봐주면 안돼!? 꼭 그렇게 게임 하나에 목숨 걸고 그렇게까지 이겨야겠냐고!" "허이구. 사돈 남말 하고 자빠졌네." 창민의 옆에 앉아서 게임을 하느라 얼굴까지 벌겋게 물들이고 잔뜩 짜증을 부리는 유천의 모습은 영락없는 어린애였다. 그런 그가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는지 그저 그렇게 너털웃음을 지어대던 창민이 "아, 재미없어. 너 혼자 실컷 해라." 라는 말을 남기고서 컴퓨터 앞에서 비켜났다. 그런 그의 행동에 잔뜩 화가 났는지 또 다시 고래고래 악을 쓰는 유천을 뒤로하고 창민은 그대로 원룸인 유천의 집 한 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침대에 몸을 눕혀버렸다. 괜시리 쏟아지는 졸음에 커다랗게 하품을 해 보이는 창민의 옆으로 어느새 다가와서는 팔짱까지 끼고 눈에 도끼를 담고 창민을 노려보는 유천. "당신 이럴거야? 하다 말고 어딜 누워! 거기다가 나와 귀염댕이만이 누울 수 있는 침대에! 부정 타. 얼른 내려 와. 당신이 누우면 나 귀염댕이랑 할 때 안 슬지도 모른단말야." ".....쿡...귀여운 자식." "귀엽다고 하지 말랬지!" ".....근데 너 진짜 김준수랑 사귀는 거야?" 정말 궁금한 듯 눈까지 동그랗게 늘려보이고 물어오는 창민의 물음에 유천은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그리고는 그대로 자신도 창민의 옆에 몸을 털썩 눕혀버렸다. "귀염댕이는 진짜 특이해." "네가 더 특이해." "닥쳐봐, 새꺄. 장난까는 거 아니야." "어이구. 그랬어요~" "아, 씹새끼! 좀 진지해 질라고 하면 초를 쳐요, 초를!" "네가 무슨 진지냐. 평소처럼 애교나 떨어, 그냥." 다시 한번 커다란 하품을 흘리며 창민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어느덧 유천의 표정은 사뭇 진지해져 있었다. 저렇게 표정이 가지각색으로 빠르게 바뀌는 유천에게 처음부터 적응을 했었다면 그건 말도 안되는 일일거다. 처음보는 사람은 박유천의 신기한 행동과 표정에 다들 넋을 잃고 바라보기 일수니까. 물론 그건 창민도 예외는 아니였다. ".....그러고 보니까, 심창민. 너는 사람 좋아하는 거 한번도 못 봤던거 같더라. 아, 예전에 그 돈많은 누나랑 사겼었지. 그 누나랑은 왜 깨졌어? 하긴, 첨부터 내가 밀어줘서 사귄거였지." "...그랬지." "너는 언제 제대로 된 사랑 해볼래냐~ 나는 지금 뜨거운 사랑을 하고 있다고! 나한테 형님이라고 해!" "...누가그래?" ".....뭐?" "누가 내가 사랑을 안한데. 나 지금 좋아하는 사람 있는데?" 벌떡. 유천은 눕혀져 있던 몸을 스프링이 튕기기 무색하게 빠르게 일으켜 보였고 눈까지 반짝 거리며 창민에게 자신의 안면을 빠르게 들이밀었다. 재미있다는 느낌이 가득 담긴 유천의 눈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창민은 그저 낮게 '쿡' 하고 웃어버렸고 유천은 그런 창민을 닥달하며 급하게 말을 내질렀다. "누군데!! 누가 감히 나의 심창민의 마음을 가져간건데! 누구야! 누구!" "....김재중." 　　　　　　. . . . . . . ...................................................................... 잠시 타악, 비어버리는 유천의 눈동자에 창민은 아무런 표정없이 그렇게 웃음 띈 얼굴 그대로 유천을 바라보기만 한다. 유천은 잠시 인상을 지그시 찌푸리고는 주먹을 들어 창민의 배에 팍 하고 내리꽂았다. "장난까지마, 새꺄." "...진짠데." "......돌았냐?" "응. 김재중에게 돌았어." "......언제부터?" 창민은 유천에게 주었던 자신의 시선을 거두고 몸을 똑바로 눕히고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 띄워진 잔잔한 미소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그대로 머무르고 있었다. "예전부터. 진짜로 좋아하게 된 거 깨달은지는 얼마 안됐어." "......진심으로?" "엉." "...미친놈. 좋아 할 애가 없어서 그딴 걸레새끼를 좋아하냐?" 순식간이였다. 창민의 띄워져있던 웃음이 너무나도 빠르게 지워져 버린 건. 창민은 빠르게 몸을 일으 키고는 유천을 아무런 감정없는 눈동자로 쳐다보았다. 그 눈빛에, 순간 유천의 머릿속을 스치는 예전의 일. 어떤 무식한 놈이 창민에게 '그 일' 을 거론한 적이 있었다. 우습게도, 지금 이 눈빛은 그때 그 무식한 놈에게 쏘아대던 눈빛과 흡사했다. 아니, 똑같았다. "박유천." "왜." "나 지금 화 났다는 거 아냐, 모르냐." "안다." ".......다시 한번 그딴식으로 말 하면 친구고 뭐고, 그때 너 내손으로 죽여." "............씨발놈. 지랄하네." 유천 역시 아무런 표정없이 저렇게 내뱉었지만 창민은 다시 몸을 눕히며 가만히 아까처럼 눈을 감았다. 　　　. . . . . . ..............진심. 심창민, 이 녀석은 진심이다. ".....심창민." "왜." ".....왜 하필이면 김재중이냐." "...내 마음이야." 유천도 일으켰던 몸을 다시금 눕혀버렸다. 시계가 눈에 확연히 들어온다. 시계 안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시곗바늘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그렇게 유천은 떼어지지 않는 입을 떼어냈다. "....김재중 좋아하면 아파지는 건 너뿐이야." "알아." "근데 왜 좋아한다고 지랄대냐." "...............나도, 그런 놈 좋아하고 싶지 않아." "...................." 　　　　　　　. . . . . . . . . . ............................................................ "그렇지만 좋아하게 돼. 아플 거 뻔히 다 알고 이뤄지지 않을 거 뻔히 다 아는데도 좋아하게 돼. .....나도 이런 내가 병신같아." . .. ... .... ..... ...... ....... ........ ......... .......... ........... .......... ......... ........ ....... ...... ..... .... ... .. . "울지 마." ".....으..흐..윽....." "울지 말라고 했어." "...흐으..흐윽...." "울지 말라고 했다고!!!" 결국 솟구치는 홧기를 누르지 못하고 윤호는 터뜨려 버렸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손이 빠르게 들려 매섭게 재중의 들어 난 뺨과 빠르게 마찰되었고 그 마찰음이 내는 소리는 가히 오싹하다고 칭 할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랬다. 순간 아찔하게 다가오는 고통에 재중은 급히 울음을 막으며 자신의 맞은 볼을 부여쥐고 입술을 아프게 깨물었다. 그런 그를 쳐다보는 윤호의 눈빛은 스산하다 싶을 정도로 오싹하다. 거칠어진 숨을 가쁘게 내쉬며 그렇게 윤호는 재중을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흐으..흐읍...." 밀려드는 울먹임을 참느라 힘겨운 숨소리를 뱉으며 그렇게 재중은 소리없이 눈물만 뚝뚝 떨구고 있었다. 그 모습이 결코 윤호에게 좋아 보일리 없다. 안 그래도 찌푸려져 있던 인상을 더욱 험악하게 찡그리며 윤호는 재중을 위 아래로 여러차례 훑어보다가 이내는 탁자 위에 놓여 있던 담배를 꺼내 한 개피 입에 거칠게 물고 빠르게 라이타를 켜 불을 붙여 갔다. 그렇게 한참이나 지났을까. 윤호가 피우는 담배가 반 쯤 타들어 갈 무렵, 드디어 그칠 것 같지 않던 재중의 울음소리가 조금은 멎었다. 이제야 조금 진정이 되는 듯 윤호는 한창 가라앉은 모습을 하고 있었고 재중은 하도 울어 뻑뻑해진 눈을 몇번씩이나 깜빡거리며 멍하니 천정을 응시한다. 아릿하게 느껴지는 방금 전 윤호에게 맞은 뺨의 고통이, 참았던 눈물을 다시 터트리려 하고 있었다. "...씨발새끼." 조금 전 급하게 소리를 질러서 그런지 끝이 약간 갈라지는 거친 목소리로 윤호는 저렇게 중얼거렸다. 그 말에도 재중은 여전히 멍하니 천정만을 올려다보며 텅 빈 머릿속에 무엇이든 채워넣으려 애쓰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또 다시 눈물이 흘러내릴 것이 자명하다. 무엇이든 생각을 해야 돼. 그의 말을 들으면 안돼. 그럼 난 분명히 또 울거고, 그럼 그는 또 화가 날 거야. 　　　. . . . . . ........나로 인해 정윤호가 화 내는 모습을 보면, 난 더 울 수밖에 없어..... "한번만 더 내 앞에서 질질짜면, 그땐 진짜로 죽여버릴거야. 그냥 하는 말인지 진짜로 진심을 담고 하는 말인지 궁금하다면 어디 한번 다시 울어 봐. 난 내가 뱉은 말은 지키는 성미거든." "............." 재중은 여전히 아무런 대답없이 방금 전 그자세와 똑같이 멍하니 굳어 있었고 윤호는 거의 다 타들 어간 담배를 재떨이에 신경질적으로 지져버리고는 그대로 재중의 옆에 몸을 귀찮다는 듯 눕혔다. 너무나 고요한 나머지 귀가 멍멍 할 정도로 침묵이 두 사람을 스산히 엄습해 왔다. 눈을 깜빡거리지도, 안면 근육을 움직이지도 않으며 재중은 그렇게 멍하니 천정만을 주시한다. 그러는 동안에도 코가 시큰거리고 눈이 찡하니 아파오며,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륵 굴러내려 침대 카바를 적셨지만 그것은 재중도, 윤호도 느끼지 못 했다. 서로의 규칙적인 숨 소리가 서로의 귓 가를 가늘게 찔러온다. 그렇게, 시계는 째깍째깍 흘러간다. 몇십분을 그렇게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송장마냥 꿈쩍않고 누워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얼굴을 한 윤호와 재중은 어쩌면 동시에 생각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 . . . .............이대로, 시간이 멈춰져 아픔도 없고 괴로움도 없고 화남도 없는, 　　　　　　 　　　　　　　그런 어딘가로 떠나버렸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정윤호..." 흠칫. 우습게도 윤호의 몸이 흠칫했다. 타악 가라앉은 목소리가 울먹임에 젖어서 자신의 이름을 내뱉자 무척이나 생소하고 또 조금은 신기하게까지 느껴졌다. 그러나 윤호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재중을 쳐다 봐 주지도 않았다. 쳐다보지 않는 건 재중도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윤호에 의해 재중은 아주 잠시 눈을 감고 소리나지 않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목청을 가다듬을 수도 없었다. 심하게 오열을 한 탓에 목소리는 갈라지고 타악 가라앉았지만 그런 것 까지 허용 될 만큼 이 상황이 편안하지 않았다. 마치, 바닥에 섬세하게 박혀있는 가시들 위에 몸을 간신히 눕히고 피를 쏟아내고 있는 느낌에 이유도 없이 울음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정윤호....." 다시한번 이름을 내질렀다. ".......정윤호.." 또 한번. "...정.....윤호....." 　　　　　　　　　. . . . . . . . . ........................................................... 머릿속에도, 심장속에도, 손가락 끝 하나까지에도 담기 너무나도 버거운 그를, 그의 이름을. 그렇게 아프게 되뇌이는 재중에게 역시 윤호는 아무런 눈짓 하나 주지 않았다. 아무런 미동도 없이 그렇게 잔인하게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있었다. ".......제발.....나를 놓아줘......." "..............닥쳐." "...나 싫어하잖아...나 밉잖아...나 죽여버리고 싶잖아...나 쳐다보기만 해도 역해지잖아..나 같은거 건들기도 더럽잖아...나같은게 너랑 눈만 마주쳐도 넌 화나잖아...나같은거....미치도록 증오하잖아..." 용케도 눈물을 참고 있었다. 용케도 목소리를 떨지 않았다. 그렇게 재중은 쓰디 쓴 아픔과 슬픔을 간신히 삼키며 그동안 쌓아놨던 모든것을 윤호에게 털어내고 있었다. 제발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길. 자신을 바라 봐 주길 원하는 그런 직설적인 사랑은 바랄 수 조차 없는 슬프고 아프고 괴로운 자신의 마음을 단 한톨만이라도 느껴주길. 제발, 자신을 놓아주길. ".....닥치라고 했어. 난 나 하고싶은데로 해. 네가 아무리 짓껄여 봤자 소용없어." "..........왜 이러는건지...이유나 말해줘. 왜 이러는건지. 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 한건지..." "..병신새끼. 몇번을 말해? 너같은게 나한테 고백을 했다는게 죄라고. 그러니까 넌 벌을 받아야.." "웃기지마!!!!!" 심장이 아프도록 뛰어온다. 그 끔찍스러운 울림에 모든것을 빼앗겨 버릴 것 같은 무서운 기분. 아무런 미동 없던 재중이 벌떡 일어나며 방 안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커다랗게 소리를 내질렀다. 그런 처음보는 그의 모습이 아무런 표정없던 윤호의 표정에도 드디어 변화가 생겼다. "웃기지마, 웃기지 말라고!!!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거야!!! 넌 사람이 아니야!!! 넌 인간도 아니라고!!! 어쩌면 이래!! 어쩌면 이렇게 잔인해!!! 대체 내가 뭘 어떻게 해야돼!! 안 좋아해 줘도 된다잖아! 나 역겨워 해도 된다잖아!!!!!! 괴롭히지만 말아달라잖아!!!!!!!!!!!!" 그렇게, 그렇게. 그동안 그렇게까지 아파했던 그 마음을 눈물대신 고함으로 표현하는 재중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여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눈물이 흐르는것을 용납이라도 하지 않겠다는 듯 우왁스럽게 손을 들어 눈물을 단밖에 닦아내어 버리고는 다시 끝이 보이지 않을 아픈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하는 재중이였다. "나 이렇게 아파!! 나 이렇게 아프다고!! 너무 아파서, 정말 너무 아파서..!! 심장이 찢겨져 나가는 것 같아!!! 그런데, 정말 내가 제일 아픈게 뭔 줄 알아!? 병신처럼, 진짜 완전 미친 또라이새끼처럼!!!!!!!!!!!!" ".................." ".....네가 좋아......네가.....네가...너무 좋아......이 미친 심장이라는 건...아무리 억눌러도 너만 향해서 뛰어........이렇게까지 나한테 잔인한 네가.....너무 좋아...........그게...난 제일 아파..................." 그 아픈 울먹임이, 자지러질 듯 내뱉어지는 그 슬픈 눈물이, 드디어 윤호에게도 와 닿았던 걸까. 아무런 대답없이 천정만을 응시하던 윤호의 시선이 재중의 동공으로 박혀들었다. 쉴 새 없이 흐르는 재중의 눈물을, 윤호는 조금은 멍하다 싶게 바라보고 있었다. 입술을 꽈악 깨문 재중은 울먹이는 소리가 흘러가지 않게 그렇게 참고 있었다. 그렇게 모든 슬픔과 아픔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윤호의 손이 천천히 들어올려져 재중의 뺨에 닿았다. 뜨겁게 달아오른 자신의 뺨에 차갑게 식은 윤호의 손이 닿자 재중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아니, 윤호의 손이 자신의 뺨을 만졌다는 것. 그 것조차 놀라운 일이였지만, 재중을 기절하게만큼 놀라게 만든건............................... 　　　　. . . . . ....................정윤호의 눈물이였다. "...........잔인해 질 수 밖에 없어..................." ".................................." "..................네가 날 너무 좋아하니까.....네가 날 정말 좋아하니까.................." "....................................." "...................난........그런 너를 증오 할 수밖에 없으니까............................" 　　　　　. . . . . ............아프다는 말. 슬프다는 말. 괴롭다는 말.................................. 　　　김재중, 그거 아냐. 사실 내가 너에게 여태껏 내가 한 짓은. 아직까지도 잊지 못하는 내 아픈 　　　　사랑에게서 벗어나려는 나의 처절한 몸부림이였다는 거. 　　　　　　내가 그에게 하고싶은 말을, 네가 나에게 했다는 거................................ "........사랑해.....아직도........." 　　　. . . . .................난, 아직도.....그 사람을 사랑하기때문에.................................... 　　　　그 사람이 나를 너무 아프게 했기 때문에................................. "......김재중, 너를 증오하는게 아니야. 네가 싫은게 아니야. 난 그사람이 싫어.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을 증오해. 사랑하고, 또 증오해. 아니........그를 사랑하는, 나 자신을 증오해.............................." 　　　　　　　　　　누가 뭐래도, 그대가 날 매몰차게 버려도, 　　　　　　　　　　잔인하게 날 비웃어도, 날 잔인하게 짓밟아도, 　　　　　　　　　　다시 나의 발목을 붙잡는 또 하나의 매개체. 　　　　　　　　　　　　　　　　　 　　　　　　　　　　　　　　　.끈　　　　　#13. 　　　　　　　　　　　　　　written by. 샤그락처녀 　　　　　　　　　　　　　(dndzidzid22@hanmail.net) 　　　　　　　　　　Fancafe# http://cafe.daum.net/SoulYS 　　　그대로 두는 게 아니였어. 엉키도록 그렇게 바라보고만 있는게 아니였어. 　　　　　　　　　　가장 아플 사람은 바로 난데, 왜 네가 더 아픈 표정을 짓는건지....　　　 　　　　　　　　　　　　　　　　　monologue by. U-know 　　　　　　　　　　　　　　　　　　　　. 　　　　　　　　　　　　　　　　　　　　. 　　　　　　　　　　　　　　　　　　　　. '♪♩♪♩♬♪♪♩♪♩♬♪♪♩♪♩♬♪ ♪♩♪♩♬♪♪♩♪♩♬-' 나른한 기분으로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정을 응시하고 있던 준수가 잠시 몸을 흠칫거렸다. 벨소리가 울리며 그의 고막을 지그시 눌러왔기 때문이다. 잠시동안 몸을 움직이지 않던 그가 조금의 짜증으로 인해 얼굴을 살며시 찌푸리고는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액정에 뜨는 엄청 생소하고 낯선 번호에 그의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스쳐지나간다.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준수가 플립을 열어 귀에 가져다 대고 '여보세요' 라고 중얼거리기도 전에 귀를 파고드는 낯익은 음성. -"귀염댕아!"- 눈에 띄도록 얼굴을 굳혀보인 준수가 잠시 질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대로 핸드폰을 닫으려는 듯, 귀에서 핸드폰을 떼어내자 마자 급하게 유천의 목소리가 그런 준수를 붙들었다. -"큰일났어! 니네 형 지금 쓰러졌어. 그러니까 네가 데리러 와."- 　　　　　　　　　　　　　　　　. . . . . . . .................... 심장이 철렁 내려 앉는것만 같았다. 쓰러졌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렇다면, 또 정윤호에게 당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금새 눈물이 차오르려는 것을 준수는 입술을 깨무는 걸로 간신히 막아냈다. 이제는 화가 난 다기 보다는 슬퍼졌다. 얼마 전, 서울로 올라 와 재중이 형의 오랜만에 본 그 쓰러져서 박유천에 팔에 들려있던 모습이 떠올라서 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또 무슨 일인데요! ...또 정윤호가 그런 거에요?" -"지금 말 할 시간 없고, 일단 빨리 와."- ".....어딘데요." -"번화가로 나오면 'section' 이라는 술 집 있어. 얼른 와!"- 그대로 유천은 전화를 끊어버렸고, '뚜-뚜-' 하는 신호음에 준수는 급하게 핸드폰을 내려놓고 겉 옷을 챙겨입었다. 그러나 머릿속을 파고드는 조금의 미심쩍음에 움직임이 잠시 주춤거린다. 형이 술 집에서 쓰러져 있다니. 그럼 술을 먹고 쓰러지기라도 한 건가? 형이 자기 자신을 못 가눌 정도로 술을 마실 사람은 아닌데. 여전히 무겁게 머리를 짓누르는 여러 생각들에 한참이나 머뭇 거리던 준수는 이내 한숨을 내쉬고 급하게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섰다. . .. ... .... ..... ...... ....... ........ ......... .......... ........... .......... ......... ........ ....... ...... ..... .... ... .. . 어렴풋한 조금은 눅눅하다 싶은 빛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호프집이였다. 그닥 시끄러운 소음이 들리지는 않았지만 조용조용한 사람들의 말 소리에 괜시리 더욱 주눅이 드는 듯한, 그런. 조금은 끈적한 느낌이 감도는 호프집. 얼어있던 뺨이 녹아남에 조금은 기분이 풀어진 준수가 이리저리 호프집 안을 둘러보던 참이였다. 종업원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다가와서 미심쩍은 표정으로 준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민증 보여주셔야 겠는데요." "...예?" 난감한 듯 표정을 굳히던 준수가 어떻게 말 해야 할 지 몰라서 얼버무리느라 정신이 없을 때 즈음에, 자신의 어깨에 닿아오는 낯선 느낌에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빠르게 옆으로 돌리자 생글거리고 있는 유천의 얼굴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얘 내 동생인데, 술 안 먹일거니까 그냥 들여 보내~" 사근한 말투로 익숙하게 말을 걸어오는 유천과 종업원은 평소에 꽤나 친분이 있었던 건지 무섭게 준수를 몰아붙일 줄 알았던 종업원은 왠 일인지 순순히 카운터로 다시 가서 분주히 몸을 움직이기 바쁘다. 혼자서 속으로 자그맣게 안도의 한숨을 쉬던 준수가 갑작스레 떠오른 자신의 형 생각에 급하게 고개를 들고 유천과 시선을 마주했다. "형은요? 형 어딨어요?" "응? 니네 형?" "네. 어딨냐구요." "모르지. 니네 형 어딨는지 내가 알 게 뭐야." 　　　　　　　　　　　. . . . . . .................................... 황당해도 이렇게까지 황당 할 수는 없을것이다. 준수는 순식간에 머리 끝 정수리까지 치닫고 올라서는 분노에 눈물까지 핑 돌 지경이였다. 이런 놈 말을 순진하게 곧이 곧대로 믿고 온 자신에게 까지 화가 나서 자학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 거칠어지는 숨결을 간신히 막으며 준수가 한참이나 생글거리는 유천의 낯짝을 심하게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돌려 술 집을 나가려는 듯 발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곧바로 준수의 어깨를 낚아채어 그 발걸음을 저지하는 유천 때문에 강압적으로 몸이 멈춰 질 수 밖에 없었다. "기왕 온 거 놀다가 가~" ".....네가 사람이냐?" "응." 태연하게 고개까지 끄덕이며 대답하는 유천을, 문득 준수는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어 버렸다. 치미는 홧기와 분노에 숨 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씨근거렸고, 주먹까지 쥐어져 바들바들 떨려오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준수의 손목을 붙들고 유천이 그를 거의 반 강제 적으로 질질 끌어 술 집 안 구석쪽으로 슥슥 걸어갔고, 있는 힘 껏 손목을 비틀며 반항 하다가 힘으로는 안 되겠다는 걸 깨달았는지 이내는 고래고래 악을 지르려는 듯 크게 배에 힘을 준 준수가, 자신도 모르게 우뚝 멈 춰 서버리고 말았다. 유천의 자리인 듯한 테이블 맞은편에, 창민이 앉아서 술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 ........왜 자신의 발 걸음이, 미친 듯 솟구치던 분노가 갑작스레 사그라드는 건지, 　　　　　　　　　　　　준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 왔네. 쿡쿡...결국 박유천한테 속았구나. 난 네가 안 속을 줄 알았는데. 아까 그거 유천이가 쓴 핸드폰이 내 핸드폰이거든." 생긋 웃으며 저렇게 중얼거리는 창민에게는 차마 욕조차 해 줄 수 없었다. 자신을 속이고 여기 까지 끌어들인 건 분명 박유천이지만 창민에게도 죄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공범이 라고 칭 해도 모자랄 판인데 왜 그에게는 화가 안 나는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아니 더욱 이해 할 수 없는 것은. 미치도록 화가 났던 게 왜 그를 보자마자 지는 꽃 처럼 순식간에 가라앉는거냔 말이다. "상황판단 못 한 네 잘못이야. 나한테 화 내지마. 너 화내면 얼마나 무서운 줄 아냐?" 우스갯 소리를 짓껄이듯 가볍게 말 한 유천이 준수를 끌어다가 자리에 앉히고 자신도 절제 된 동작없이 매끄럽게 소파에 몸을 걸친다. 잔이 넘칠 듯 가득히 따라져 있는 술을 한번 들이키고는 멍하니 굳어있는 준수를 힐끔 바라보았다. "너 왜 아무말이 없어? 지금 쯤 이면 나간다고 발광을 해도 모자랄 판인데. 이상하네. 어디 아파?" 정말로 궁금한 듯 진지하게 물어오는 유천에 의해 무언가에 생각에 잠겨있던 준수가 퍼뜩 몸을 떨고는 다시금 주위를 둘러보았다. 머리가 아파 올 지경. 묵직하게 누르는 이것 저것의 걱정들과 이해 할 수 없는 자신의 반응. 준수의 시선은 어느새 안주를 깨작거리며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는 창민에게로 가 있었고, 그런 자신이 더욱 못 마땅하게 여겨져 인상이 지그시 찌푸려지고 있었다. 　　　　. . . . ..........우습다. 이 곳을 나가고 싶지가 않다. 누군가와 같이 있다는 　　　　　　　　　　　　　　　그 이유 때문에. "쟤한테 말 걸지마. 찍 소리 안하고 가만히 있어주면 오히려 너한테는 고마운 거 아니냐, 박유천?" "...그렇긴 한데. 재미가 없잖아, 재미가." "...쿡쿡.....너도 참 성격 희안하다니까." "희안하다고 하지 마!" 창민은 뭐가 그리고 우습고 즐거운건지 금새 표정을 우락부락하게 바꾸어 자신을 쏘아보는 유천을 향해 그칠 줄 모르는 웃음을 자아내고 있었다. 굉장히 껄끄럽고 불편한 느낌에 준수는 자신이 지금 푹신한 시트가 깔린 의자에 앉아있는 건지, 날이 날카롭게 선 바늘방석 위에 앉아있는 건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목구멍이 싸아하게 더워지고, 이 추운날씨에 땀까지 날 지경이다. 자꾸만, 기분 나쁜 고동소리를 내며 쿵쾅거리는 자신의 심장에게 욕 짓꺼리라도 퍼부어주고 싶은 심정. 대체 왜 이러는 거지..... 자신의 앞에 놓여진 술에 괜시리 갈증이 느껴졌다. 마시고 싶은 충동이랄까. 이렇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것 조차도 불편해서 미칠 지경인데 그리고 싫어하는 술이 먹고 싶어지다니. 왠지 모르게 자신도 갈 데까지 갔다는 느낌에 더욱 기분이 안 좋아지고 있는 추세다. 그렇게 한참이나 치솟는 짜증때문에 준수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을 때, 유천이 한참이나 준수를 쳐다보다가 그의 얼굴 가까이로 자신의 안면을 갖다 대었다. "야." 낮게 울려퍼지는 그의 목소리가 준수가 아주 살며시 고개를 들자, 조금의 웃음기가 서려있는 유천의 눈과 아주 강하게 마주쳐버렸다. 그리고 이내는 그 눈매가 휘어지며 이지러지는 웃음을 자아낸다. "답지 않게 왜 그렇게 주눅 들어 있어? 보기 안 좋아."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준수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더 이상 이 곳에 있고 싶지가 않다. 아니, 자세히 말 하자면 이 곳에서 심창민이라는 저 사람을 쳐다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 . . . . . ..............'솔직하게' 라면. 당연한 대답. 우습게도, 자신은....... "앉아." 명령조로 내뱉는 유천의 표정엔 방금 전의 생글거리던 미소는 온데 간데 없이 휘몰리는 싸늘한 정적만이 감겨 있었다. "갈래요." "어딜 가. 나 오늘 너랑 끝까지 갈거야. 그러니까 앉아. 절대 못 가." "......." 아무런 대답 없이 준수는 그렇게 한치의 망설임도 않고 그대로 나가려는 듯 몸을 돌렸지만, 곧이어 급하게 자신의 귓가에 강하게 다가오는 유천의 말 소리에 움직임을 멈추어 버렸다. "여기서 벗겨지고 싶으면 가던가." 형용할 수 없는 감정과 얼굴이 싸하게 더워질 만큼 치미는 수치심에 준수의 주먹이 아주 살짝 쥐어졌다. 보아하니 유천과 창민은 꽤나 오랜 시간을 이 곳에서 머문 듯 했고, 유천의 말투와 표정엔 췻기가 상당히 올라와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지금의 유천이라면 자신을 이 사람 많은 차디 찬 맨 바닥에 그대로 눕혀버리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평소에도 그렇게 생각없이 자신의 느낌이 동하는 데로만 행동하는 그였기에, 술 기운을 보태어 그런 짓을 한다는 건 방바닥에 눌러붙은 하찮은 개미를 죽이는 것 만큼 아주 간단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죽기보다도 싫지만, 굽힐 땐 굽힐 줄 알아야 한다는 현명함을 지니고 있는 준수였기에 으드득 갈리는 이를 깨물고 다시 자리에 앉아버렸다. '피식' 하는 자조적인 웃음소리가 창민 쪽에서 어렴풋이 새어나오자 더욱 수치스러운 느낌에 차라리 혀 깨물고 죽고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 였다. 그러나 그 것도 잠시, 온 몸이 흠칫거릴 정도로 이유없이 자신을 놀라게 하는 창민의 음성이 들려오자 그나마 가라앉았던 심장이 다시금 세차게 달음박질하는 것을 준수는 느낄 수 있었다. "너희 형 어디있냐?" 정말로 궁금한 듯 의미없이 빛나기만 하던 그의 눈동자에 조금의 생기가 돌고 있었다. 준수는 마른침을 가만히 삼키고서 다시 더워지는 자신의 몸에 짜증이 일었다.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증오스럽고 분노가 느껴지는 건,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였다. 　　　. . . . . . ...........재중이 형에게, 이해할 수 없는 질투를 느끼는 자신에게 말이다. "모르겠어요." "...집에 없었어?" "네." ".....어디 갔는지, 연락 안 해봤어?" 무언가 안타까운 느낌마저 들고 있었다. 자신의 심장에서 가슴으로 휘감고 들어오는 그 느낌엔 창민을 향한 안타까운 느낌이 뒤섞여 있어서 더욱 머리가 묵직해져온다. 좋아한다더니, 그게 정말 이였구나. 그래... 그랬구나. "아, 심창민. 궁금하면 전화 해 봐. 왜, 부끄러워서 못 하겠냐?" "넌 닥치고 술이나 들이켜, 멍청아." "죽여버린다! 우리 귀염댕이한테 말 걸지 마. 기분 나빠. 훠이, 훠이~ 절루 가~" 정말로 취하긴 취한 모양이였다. 혀의 발음도 예전처럼 곱지 못 했고, 답지않게 양 볼까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런 유천이 심하게 귀여웠는지 끝끝내 다시 웃음을 터트리며 창민이 그의 볼을 가볍게 잡아 쥐 흔들며 무어라고 마구 중얼거렸고, 그것이 뭐가 그리 화가 나는지 곧바로 창민의 손을 매몰차게 떼어놓으며 유천이 커다란 목소리로 짜증을 내고 있었다. 그러나 유천을 놀리는 것에 금새 흥미를 잃었는지, 다시 창민은 아무런 말 없이 앉아있는 준수에게 시선을 주기 시작한다. "니네 형한테 전화 좀 해 봐." "........" "오라고 해. 여기로." "......왜요?" "왜긴. 보고싶으니까." 넉살좋게 웃으며 시원스레 대답하는 창민에 의해 심장이 시큰거렸다. 울컥- 하며 치미는 느낌에 준수는 저도모르게 술잔으로 가는 자신의 손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야..야' 하고 자신의 옆구리를 찌르는 유천에게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그렇게 술만 들이켰다. 순식간에 싸아- 하고 올라오는 술 기운에 왠지 모를 역겨움이 느껴졌지만 아랑곳 않고 잔이 비워지기 무섭게 다시 잔을 따르며 그렇게 연거푸 몇 잔이나 들이켰는지 모르겠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유천의 시선이 아주 잠시 흐릿해진다. 　　　　　　. . . . . ............김준수, 너......... 그 정도의 눈치도 없을만큼 자신이 호락호락한 건 아니다. 분명했다. 준수는 창민과 얘기를 할 때 마다 답지않게 무척이나 조심스러웠고, 말투에선 심하게 묘한 느낌이 감돌았다. 갑작스레 치밀어 오르는 화에 유천이 아무런 말 없이 준수를 쳐다보는 창민을 노려보았다. 씨발. 좆 같아. 진짜..... 　　　　　　　. . . . . ............젠장할. 되는일이 하나도 없구만. 또 이렇게 꼬일 게 뭐야. 　　　　　　얽혀도 단단히 얽혔어. 머리까지 아파. 아니, 머리 아픈 것만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나 조차도 가늠 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화가 나. "너 미쳤어? 왜 그렇게 술을 마셔?" 걱정 스러운 듯 준수에게 말을 거는 창민에게 또 다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었다. 친구에게 이런 감정을 느껴보는 건 처음인지라 유천 자신도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정말로 이러다간, 미치도록 꼬여버린 자신들에게 지쳐서 숨 조차 쉴 수 없을것만 같은 기분 더러운 느낌. "야. 그만 마셔. 맘 드럽게 약한 너네 형 또 너 술 취한 거 보고 질질 짜겠다. 그만 마셔라." 우습게도 창민은 준수를 걱정하는 것은 아니였다. 준수를 보고 마음 아파 할 재중을 걱정한 것이였던 거다. 그리고, 그것을 눈치 채지 못 할리 없는 준수가 잠시 술잔을 쥐었던 손에 핏기가 가실 정도로 힘을 주어버렸다. 그 것을 빤히 바라보던 유천이 자신도 술잔을 들어올렸다. 이런 기분에 술이 몸 속 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위험하다. 자기 자신을 이길 수 있을 만큼 강한 사람도 아니다. 그렇게 유천이 술 잔을 다시 입가에 가져가려는 그 때에. "!!........." 유천의 모든 행동과 움직임이 그대로 멈춰버리고 말았다. 준수의 몸이, 아니 자세히 말 하자면 준수의 머리가 유천의 가슴께로 다가와 기대 듯 안겨버리고 만 것이였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준수의 실수가 아니라 일부러 한 행동인 것이 뻔히 들어나고 있었다. 갑작스레 냉각되었던 전신의 피가 뜨겁게 끓어 오르는 게 느껴졌다. 굳어있던 심장이 다시 힘차게 도약질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이나 굳어있는 유천의 가슴팍에 힘 없이 자신의 머리를 기대고 있던 준수가 눈을 질끈 감으며, 치미는 술 기운에 나른하고 또 타악 가라앉은 목소리로 유천만이 들을 수 있게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 듯 중얼거린다. "우리 나가자. 어디로든. 빨리." "..............얼마든지." 　　　　　　　　　　누가 뭐래도, 그대가 날 매몰차게 버려도, 　　　　　　　　　　잔인하게 날 비웃어도, 날 잔인하게 짓밟아도, 　　　　　　　　　　다시 나의 발목을 붙잡는 또 하나의 매개체. 　　　　　　　　　　　　　　　　　 　　　　　　　　　　　　　　　.끈　　　　　#14. 　　　　　　　　　　　　　　written by. 샤그락처녀 　　　　　　　　　　　　　(dndzidzid22@hanmail.net) 　　　　　　　　　　Fancafe# http://cafe.daum.net/SoulYS 　　　나 정말 나쁜 사람인가봐. 나 정말 나쁜 건가봐.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널 이용하는 내가 나 조차도 증오스러워. 그렇지만 제일 바보같은건.. 　　　　　　　　　　　　　　　알면서도 속아주는 바로 너야. 　　 　　　　　　　　　　　　　　　　　monologue by. U-know 　　　　　　　　　　　　　　　　　　　　. 　　　　　　　　　　　　　　　　　　　　. 　　　　　　　　　　　　　　　　　　　　. 조금의 비틀거림도 없이 능숙하게 또박또박 잘 걸어나가는 걸 보니 준수는 그리 취한 상태가 아님이 자명했다. 조금의 췻기는 올랐겠지만 정신은 또렷 할 게 뻔한데 그가 유천을 끌고 나왔 다는 건 도무지 이해 할 수가 없는 일이다. 유천은 자신보다 한 발짝은 더 앞에서 걸어나가는 준수의 뒷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차가운 바람이 그들의 얼마 안 되는 사이로 계속 해서 파고들었지만 아랑곳 하지 않는다. 한참이나 그렇게 정착지 없이 걷기를 몇십분이다. 지칠 만도 한데 조금의 머뭇거림 없이 걸어나가는 준수의 뒷 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는 게 왠지 바보스럽게 느껴져서 유천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하고 자조적인 미소를 뱉어버렸다. "귀염댕아." "............." 유천이 준수를 향해 똑똑히 들을 수 있을만큼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뱉어 봤지만, 준수는 아무런 대답없이 여전히 앞을 향해 계속 걸어나갈 뿐이였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묵직한 건 유천 뿐만이 아니였다. 태어나 처음 느낀 이 감정이, 어쩌면 정말 '그 것' 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그리고 죽도록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들과 제일 친하다는 그 사람에게 자신이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에 진절머리가 날 정도였다. 추악하고, 또 수치스러웠다. 결국 이 것밖에 되지 않는 사람인가. 하는 이단적인 생각까지 들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에게 말이다. 한참이나 그렇게 같은 행동만 반복하여 앞으로 빠르게 걸어나가는 준수를 바라보다가 유천이 걸음을 빨리 해 금새 준수를 따라잡았다. 사람 많은 이 길거리 한복판에서 욕 짓꺼리를 내뱉고 싶은 마음은 자신도 없었기에, 그저 조금씩 차오르는 홧기를 억누르며 준수의 손목을 거칠게 잡아 챈다. 그제서야 조금도 멈 출 기미를 보이지 않던 준수의 발걸음이 확연히 굳어졌다. 유천을 돌아보는 준수의 얼굴은 아주 붉게 상기되어 있다. 그렇게 심히 취한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 했지만 그의 얼굴은 평소와 다르게 아주 붉었다. 그리고, 눈동자에 아주 어렴풋이지만 조금의 물기까지 서려있었다. "어디까지 가. 벌써 두 정거장은 걸었겠다, 병신아." "........................" "...귀염댕아. 어디 아파? 응? 왜 그래. 화 나게..." 정말이다. 정말로 걱정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가 아프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지만, 너무 안타까워 보이는 표정과 몸짓에 우습게도 울음을 터트려 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어버렸다. 유천은 그렇게 쓰러 질 듯한 표정과 얼굴을 하고 있는 준수를 내려다 보며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왼 쪽 가슴에서 심하게 울렁거리는 심장에 숨이 차 올랐다. 젠장...병신같은 새끼... ".....추워." "...집에 갈래? 데려다 줄게." "......아니요...집에 안 갈래요." "..짜증나. 그럼 어떡하자고. 나오자더니 미친놈처럼 걷기만 하고 있냐." ".....형." 잔뜩 얼굴을 찌푸리며 무어라고 준수에게 말을 하려던 유천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버렸다. 분위기와 너무 어울리지 않게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을 '형' 이라고 불러오는 준수에 의해서 였다. 자신도 모르 게 유천은 쥐고 있던 준수의 손목을 더욱 세게 그러쥐었다. 준수는, 그렇게 그런 유천을 빤히 쳐다보다가 발갛게 얼어있는 입술을 드디어 떼어냈다. "....나 좋아한댔죠." "........부끄럽게시리." 모든것을 관통 할 만큼 강하게 자신을 쳐다보며 물어오는 준수에 의해 유천은 또 다시 시큰거리는 심장에 의해 당황하고 말았다.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표정을 추스리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 한뒤 에도 그의 심장은 아프도록 뛰고 있었다. "...대답 해 봐요. 나 좋아한댔죠." "..응." "....그럼. 내가 다른 사람 걱정하고, 다른 사람 얘기 하거나 그러면. 형은 화 나요?" "............응." "형 친구인 정윤호가 나한테 말 걸어도, 그렇게 아끼는 친구가 말 걸어도 질투 나요?" "...........응." ".................그게.....사랑이에요.....?" ".........응........"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런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해 진 느낌. 두 사람 다 확연해진 느낌에 가슴이 미어지는 것만 같은 아픔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희미하게 눈치챘던, 그래. 김준수가 심창민을 좋아하는 게 아닌가 하고 희미하게 걱정을 하던 그게 확실히 들어나는 순간임에 유천은 그렇게 가슴이 미어지고, 준수는 형을 좋아한다는 심창민을, 그렇게도 증오해야 마땅 할 사람인 심창민을 좋아한다는 자신에게 슬퍼져 가슴이 미어진다. 그렇게, 시리고 끔찍스러울 정도로 잔인한 사랑에 얽히고 섥혀버린 자신들의 감정에 미어진다. 심장이 멎어버릴 것만 같았다. "귀염댕아." "............." "나랑 사귀자." "................." "잘 해줄게." 　　　　. . . . . ......오기 안 부릴게. 잘못 했어. 귀염댕아. 내가 잘못했어. 　　너를 내 모든것에 옭아매서 내 손안에 넣겠다는 생각은 이제 안 할게. 내가 잘못했어. 　　　　　그냥, 다른 곳만 가지 말아줘. 그냥. 내 사랑만 받아줘. 이젠 그런 하찮은 오기 안 부릴게. 　　　　...............나 무서워. 네가 심창민한테로 가 버릴까봐. 정말 무서워................ 숨이 막혀버릴 듯 아프게 자신을 바라보는 유천을 준수는 한치의 흔들림 없는 곧은 눈동자로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 감정이라는 것은 들어나지 않았지만, 분명 머릿속으로는 무언가를 잔뜩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진심을 담아서 자신을 바라보는 유천에게, 분명히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 . . . .......아니. 차라리, 심창민을 향해 뛰는 이 심장을, 박유천이라는 이 사람이 　　　　　　　　　잡아주기를 원하는 잔인한 마음도 피어나고 있을 것이다. ".......네." "....사귄다고?" ".......네....." 그렇게, 그들은 아무런 말 없이 한참동안이나 살을 에는 듯한 추위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 . "아. 잠깐만요. 아아아아. 잠깐!!" "아, 왜!!" "...사귄 첫 날에 이러는 법이 어딨어요!!" "난 원래 사귄 첫 날에 이래. 안 그러면 오래 못 간단 말야." "오래 못 가도 돼요! 으악, 이거 안 놔?!" "쉿!" 얼굴에 잔뜩 짖궂은 미소를 띄운 채 그렇게 유천은 얼굴이 욹그락 붉그락 해 져서 있는대로 유천을 밀어내는 준수의 손목을 손 쉽게 낚아채었다. 이미 술은 다 깬 상태였고 준수는 아무런 반항 없이 유천을 따라 유천에 집에 온 것이 잘못이라는 걸 이제서야 자각 한 모양이였다. 곱게 깔아져 있던 침대 시트는 두 사람의 몸 싸움에 이리 저리 형편없이 구겨진 지 오래였고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두 사람에 이마에 땀 까지 송골하게 맺힌 것이 아주 가관이였다. "알았어. 알았다고!! 해, 하면 될 거 아니야!" "아씨. 그냥 가만히 좀 있어 봐! 어쭈?" "으악!! 네 새끼가 자꾸 만지니까 그렇잖아아아아!" "또 반말이네, 우리 귀염댕이~ 응? 혼날라구." 귀염성 있는 그 얼굴에 잔뜩 개구진 미소를 띄우며 유천은 그렇게 턱을 벌벌 떨어가며 두려움에 눈물까지 흘릴 지경인 준수에게 자신의 안면을 화악 들이밀었다. 그리고, 그의 파르르 떨어대는 입술을 자신의 혀를 내어 사악하게 한 차례 스윽 핥는다. "으악! 뭐 하는 거야, 이 변태새끼야!!" "맛 좋다, 우리 이쁜이. 형이 골 가게 해줄게. 알았지?" "으아아아악! 하지마! 하지마!!" 준수는 이번이 유천과 자신의 두 번째 관계인 줄 알고있지만 사실 그들에게 이번 관계는 처음 이였다. 예전에 윤호가 따라주는 술을 마시고 완전히 취해 필름이 끊겨버린 준수를 속여 몸을 섞었으니 이제 넌 내거다. 라는 말을 종종 해 온 유천 덕택이였다. 그러나 유천은 이번이 처음인 준수와 자신의 관계에 자신 답지 않게 몹시도 흥분을 한 상태였다. 긴장이 되서 마른 침 까지 꿀꺽 넘어 갈 정도인데, 이 걸 평소 박유천과 친하고 박유천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듣는다면 삼일 밤낮을 박장대소 할 일이였다. "끝 까지 가는거다, 귀염댕아." "싫어!! 내가 왜애!!" "왜긴, 우리 사귄 첫 날이잖아." 유천의 웃음은 평소보다 몇 갑절은 더 진득했으며, 그리고 또 진했다. 호흡조차 곤란 할 정도로 막혀오는 숨에 감전이 될 것만 같았다. 윤호의 눈엔 이미 물기라고는 역력히 없어진 지 오래였지만 재중에겐 그렇지 못 했다. 재중의 눈가엔 쉴 새 없이 물기가 어려 빠르게 떨어져 내리기를 여러번, 멈 출 기새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한참이나 그런 재중을 눈 안에 담고 있던 윤호가 가라앉아 잠긴 목소리로 드디어 입을 열었다. "가." 짧게 내뱉어진 그의 목소리는 다시 평소의 정윤호의 목소리로 돌아 와 버린 지 오래였고, 그런 그의 목소리에 재중은 왠지 모를 안타까움에 더욱 숨이 막혀옴은 물론이였다. 말을 마치자 마자 윤호는 고개를 돌려 시선을 다른 곳에 주어 버리고 귓 가를 어렴풋하게 울리는 시계 초침이 움직 이는 소리에만 열중 하고 있었다. 차라리, 이대로 모든 시간이 멈춰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의 온 몸을 잠식 해 온다. 너무 오랜만에 눈물을 흘려서 그런 지 괜시리 머리까지 지끈하고 무언가가 무겁게 짓 눌러 온다. 잊었던 무언가의 향기가 그의 코끝을 간지려 왔다. 눈물이, 또 흐를 것만 같은 기분나쁜 느낌에 윤호는 아주 잠시 눈을 감는다. 그의 감긴 속눈썹이, 아주 미미한 움직 임을 보이며 파르르 떨려왔고, 그런 그를 눈물로 인해 흐릿한 시야로 바라보던 재중 또한 눈을 감았다. ".....정윤호." 아련하게 불리어지는 자신의 이름에 윤호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떨림을 감추려는 듯 꾸욱 눌린 재중의 목소리는 그 만큼 아프게 자신의 귓 가에 와 닿는다. "정윤호...." "............" "........나...사랑 해 주면 안 되냐....." "........." "....나...사랑 해 주면 안돼.....?"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대로 목이 메이고 심장이 미치도록 시큰거려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큰 슬픔이라는 감정이 그대로 복받쳐 올라와 온 몸이 부서 질 것만 같았다. "네 머리를 누르는 아픔 같은 거...내가 다 껴안을 수 있어....힘들다면 나한테 기대도 좋아. 네가 나를 증오하는 거, 이제 아무런 상관이 없어졌어." "........." "네가 아무리 네 자신을 미워하라고, 미워하라고 무언으로 명령을 한다고 해도. 네가 아무리 날 아프게 해도, 네가 아무리 날 슬프게 하고 날 짓밟고 날 힘들게 한다고 해도............................" ".......어쩔 수가 없어. 난 그런 너 조차도 너무 사랑하니까. 풀어 버릴 수가 없으니까. 끊어 버릴수가 없으니까. 내 모든 걸 옭아매는 정윤호라는 이름의 그 끈이, 너무 단단하고 또 강하게 묶여 있어서.... 손 조차 댈 수 없으니까. 나는...너를 너무 사랑하니까..............." 숨이 막혀왔다. 가슴속에 빠르게 스며들어와 냉각 되었던 내 이 모든것을 녹이는 그 감정이 숨이 막혔다. 　　　　　　 . . . . . .......................이젠, 거부 할 수가 없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윤호의 얼굴이 돌려졌다. 웃음기 어린 표정으로 윤호를 바라보고 있는 재중의 눈가에 서는 여전히 셀 수도 없을 만큼 물기가 어려 빠르게 떨어져 내리기를 반복 했지만, 그 것은 슬픔으로만 위조 된 아픈 눈물이 아니였기에, 모든 진심을 담아 낸 성스럽고 또한 아름다운 눈물이였기에, 그 눈물을 바라보는 윤호의 입가에도. 아주 희미하고 여린 미소가 차츰 번져 나갔다. "............김재중." ".......응..............." "......병신새끼야." ".....응..........." 피식, 웃으며 대답하며 눈물을 닦아내려는 재중의 손을 윤호가 저지한다. 그리고, 그런 재중의 손을 아주 소중한. 깨지기 쉬운 유리를 다루 듯 부드럽게 그러쥔 윤호가 아주 한참동안이나 재중을 지그시 바라봤다. 윤호의 입가에 차츰 번지던 웃음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리고, 나머지 다른 한 손으로 재중의 흘러내린 눈물을 천천히 닦아내는 윤호. 모든것이 시작되었다. 가슴을 아프게 울리는 기쁜 심장의 고동은 도무지 멈 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김재중. 너, 우는 것 보다 웃는 게 훨씬 더 예쁘다." "......응............." "..............사랑할게." 　　　. . . . . ............사랑할래. 두려워 하지 안을래. 모든 것을 다 벌려 이 벅찬 숨결과 　　　아픈 눈물을 다 끌어 안을래. 이제, 내 모든 것을 너에게 줄래. 이젠, 네 웃음만 볼래. 　　　　　　　　　　　　　　사랑할게, 김재중........... 　　　　　　　　　　누가 뭐래도, 그대가 날 매몰차게 버려도, 　　　　　　　　　　잔인하게 날 비웃어도, 날 잔인하게 짓밟아도, 　　　　　　　　　　다시 나의 발목을 붙잡는 또 하나의 매개체. 　　　　　　　　　　　　　　　　　 　　　　　　　　　　　　　　　.끈　　　　　#15. 　　　　　　　　　　　　　　written by. 샤그락처녀 　　　　　　　　　　　　　(dndzidzid22@hanmail.net) 　　　　　　　　　　Fancafe# http://cafe.daum.net/SoulYS 　　　이젠 진심으로 웃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진심으로 웃는 방법 배웠는데. 　　　내가 진심으로 웃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인 너는, 날 향해 웃질 않는다는 게. 이렇게도 슬픈 거구나. 　　　　　　　　　　　　　　　　　 　　　　　　　　　　　　　　　　　monologue by. Micky 　　　　　　　　　　　　　　　　　　　　. 　　　　　　　　　　　　　　　　　　　　. 　　　　　　　　　　　　　　　　　　　　. "잠깐만. 알았어, 할게. 한다니까." "말만 할게, 할게~ 이러면서 왜 자꾸 반항이야!" "네가 자꾸 미친듯이 밀어 붙이니까 그렇지!" 이미 두 사람의 숨결은 거칠어져 있었다. 그 이유는 흥분으로 인해 달아오른 것이 아니였고, 유천은 밀어붙이려는 데에 힘을 써서, 그리고 준수는 그런 그를 막으려는데에 힘을 써서 그런 것이였다. 얼굴에 새빨개져서 씨근거리는 준수와는 다르게 하얀 얼굴로 생글거리는 유천은 무척 신이 난 얼굴로 그렇게 계속 싱글 벙글이다. "어...?" 정말로 무언가를 발견이라도 한 듯 준수가 유천의 뒷 쪽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늘려보이며 작게 탄성 을 질러대자, 유천은 순진하게도 정말 그 것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준수가 재빨리 유천의 가슴팍을 자신의 발로 무지막지하게 걷어 차고는 유천의 낮은 신음 이 울리기가 무섭게 빠르게 침대에서 벗어 나 현관 쪽으로 뛰어갔다. 문을 열으려고 현관 문 고리를 잡았지만 왠 걸, 역시나 철저한 유천은 세 개나 되는 문고리를 꼼꼼히 다 잠궈놓고 있었기에 그 것을 여는데는 꽤나 긴 시간이 필요했다. 이 추운 날 땀까지 흘려대며 덜덜 떨리는 손동작으로 현관 문 구조 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준수가 이리 저리 문고리를 거칠게 돌려대다가 이내는 몸이 홰액 앞으로 쏠려 현관 문에 이마를 세게 박고야 말았다. "아아!!! 아, 왜 밀어!!!" 심하게 이마를 박아서 골이 다 흔들릴 지경이였다. 준수가 이마를 벅벅 문지르며 유천을 향해서 눈을 부릅 뜬 채 그렇게 소리치자 유천도 만만찮은 눈빛으로 준수를 쏘아보며 자신의 가슴팍을 그러안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댄다. "너 때문에 갈비 뼈 나갈 뻔 했잖아!" "네가 자꾸..!" "한다매. 한다매. 한다매. 한다매!!!" 유천의 막무가내인 고함소리에 잔뜩 기가질린 준수가 얼굴이 새파랗게 변질되어 그를 망연자실히 바라 보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유천은 재빠르게 준수의 몸 가볍게 들어올려 저벅저벅 침대로 데려가 거칠은 동작으로 홰액 던져버렸다. 안 그래도 방금 부딪힌 이마때문에 머리가 징- 하고 울려오는데 거칠게 자신을 던지는 유천으로 인해서 준수는 눈 뜨는 것 조차 가물가물 할 지경이였다. 흐릿한 천정을 넌지시 바라보며 자신의 귀를 무지막지하게 울려오는 자신의 심장 고동소리에 잠시 멍하니 있는데, 희뿌연 시야로 유천의 씨근거리는 얼굴이 박혀 들어왔다. "너 한번만 더 지랄하면 진짜 죽여버리는 수가 있다." ".....씨발....하기 싫다잖아..!" "하고 싶다잖아!" "...개새끼.." "그리고 네가 한댔잖아. 한댔잖아! 그래놓고 왜 가슴팍은 까고 지랄이야, 지랄이!" 준수에게 맞은 가슴팍이 아파도 굉장히 아프긴 아팠던 건지 유천은 아직도 얼굴을 찡그리며 그렇게 자신의 가슴을 부여쥐고 화난 듯 한 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렇게 잔뜩 씨근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 유천을 지지 않는 눈빛으로 쏘아보던 준수가, 1분이라는 시간이 지나자 짐짓 화났던 표정을 풀어버리며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한 차례의 심호흡을 한 후, 여전히 눈을 뜨지 않은 상태로 그렇게 입술을 떼어냈다. "...해. 반항 안 할게. 진짜야." 너무 순순하게 말 하는 준수로 인해서 유천은 무언가 미심쩍은 기색이 역력한 듯 했지만, 일단은 차려진 밥상이니 먹고보자라는 심보를 가지기라도 한 건지 준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곧바로 입술을 부딪혔다. 그러나 벌어지지 않는 준수의 입술에 조금은 괘씸한 기분이 들어 한참이나 그렇게 입술만 대고 있다가, 이내는 손을 내려 준수의 티셔츠 속으로 손을 쑤욱 밀어넣었다. "아!" 놀란 듯 작게 소리를 내는 준수로 인해 그의 입술이 벌려졌고 그 틈을 놓치지 않으며 재빠르게 매끄러운 혀 놀림으로 그의 입 안으로 파고드는 유천이였다. 숨으려는 준수의 혀를 붙들어 그렇게 그 동안 참아왔던 모든것을 다 뽑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거친 키스를 퍼붓는다. 점점 거칠어지는 숨결에 준수가 쥐고 있던 유천의 어깨를 더욱 세게 쥐었지만 아랑 곳 않고 그런 그의 턱을 억지로 더 벌려 더욱 깊이 들어가는 유천은 막무가내였다. 셔츠안으로 들어 가 있던 손을 이제는 천천히 움직여보이며 준수의 가슴부분을 지분거리다가 이내는 손을 밑으로 내려 배 주변을 더듬거리며 아주 천천히 이곳 저곳을 살짝 눌러본다. 안 그래도 아까 먹은 술 탓에 머리가 어지러웠고, 방금 부딪힌 이마탓에 골이 뒤집 힐 지경이였는데 이렇게 숨막히는 키스에다가 속살까지 타인의 손에 만져지니 준수는 이미 제 정신이 아니였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고, 유천의 입술과 맞물려진 자신의 입에서는 자꾸만 옅은 신음이 튀어나오려고 해서 그 것을 참아내느라 다른 것엔 신경 쓸 틈도 없다. 유천과 전에 한번 했다고 해도(하지 않았지만 준수는 한 줄 알고있다) 그 땐 술을 마셨기 때문에 기억조차 나질 않으니, 이번 관계가 준수에게 있어서는 첫 경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신을 조금도 배려하지 않고 가슴 좀 찼다고 막무가내로 나오는 유천이 못내 야속하기만 한 준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다 인과응보인걸. 그렇게 몇 분동안을 그칠 것 같지않은 키스를 해대던 유천이 드디어 준수의 입술에서 자신의 입술을 떼어냈다. 그가 입술을 떼어냄과 동시에 분수처럼 준수의 입에선 거친 숨결이 쏟아져 나왔고, 유천은 그 게 뭐가그리 웃기고 기분 좋은지 아주 조그맣게 '쿡쿡' 하는 웃음을 자아낸다. 그리고 그의 헐떡이는 입술에 아주 작게 입술을 다시 한번 맞추고,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와 미칠듯한 내음을 가득 풍기는 하얀 그의 목에 입술을 파묻었다. 흠칫, 떨리는 어깨와 그의 두근대는 심장이 유천에게까지 아주 세세하고 선명하게 느껴진다. 한참이나 목 언저리에서 그렇게 배회하다가 한번에 주르륵 미끄러져 준수의 가슴팍에 내려와 이곳 저곳을 농도 깊은 혀놀림으로 지분거리기 시작한다. ".....흐윽....." 한번도 흘리지 않고 그렇게도 참아댔던 신음이 결국은 터져버리고 말았다. 준수는 자신이 내뱉은 그 소리에 유천보다 더 놀란 양 급하게 입술을 아프게 깨물며 눈을 질끈 감았고, 속으로 '나이스' 를 외친 유천은 점점 더 아래로 입술을 야한 동작으로 내려왔다. 말랐지만 탄력있는 준수의 배를 한참이나 배회 하다가 이내는 손을내어 그의 헐렁한 바지를 한번에 벗겨버렸다. 놀라서 다리를 홰액 움츠리는 그에게 '어쭈' 하는 시선을 한번 주고는 아무런 배려없이 그의 하얀 다리를 세게 잡고 쫘악 벌려버렸다. 다리에 잔뜩 힘을주며 아둥거리는 준수를 살짝 올려다보니 두려움, 공포심, 그리고 수치스러움에 얼굴이 잔뜩 달아올라서는 눈꼬리엔 눈물까지 그렁하게 맺혀있었다. "귀염댕아, 오빠 믿지?" ".....죽어." 유천은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을 잔뜩 쏘아보며 내뱉는 준수의 대답에 아주 살짝 웃어보였다. 그리고 그의 다리에 살짝 입술을 맞췄다. 흠칫, 하고 떨리는 그의 다리. 그리고 그의 입술이 점점 더 윗쪽으로 올라가 여리고 민감한 준수의 허벅지 안 쪽으로 더욱 파고든다. "아...으으..ㅇ...그만....잠깐..." 처음으로 느껴보는 생소하고 낯선 감촉과, 척추를 타고 스물거리며 기어오르는 육체적인 쾌락이란 것에 정신을 빼앗길 것 같아서 준수는 더욱 두려워졌다. 느껴지는 이 감촉과 느낌은 생전 처음이라 굉장히 생소하고 낯설었지만 싫지만은 않았다. 그 것이 더욱 두렵게 느껴지고 자신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유천이 자신의 옷가지를 빠르게 벗어내리는 것을 본 준수의 떨리는 몸이 갑작스레 굳어버렸다. 극도로 치닫은 두려움과 공포심 때문이다. 일렁이는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준수를 내려다 보던 유천이 얼굴을 숙여 그런 그의 뺨에 살짝 입을 맞추며 나긋한 어조로 말을 잇는다. "안 아플거야. 괜찮아. 괜찮아." 달래는 듯한 그 어조에 준수는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자신의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에 귀 까지 멍멍 할 정도다. 이제는 두렵다고 다시 가슴팍을 발로 차버리고 도망 갈 수도 없다. 어떻게 하지? 너무 무서워. 정말 너무 무서워서 눈 돌아 갈 것 같아. 젠장... 이미 진지해진 유천의 얼굴은 그가 얼마나 흥분하고 있는 지 낱낱히 알려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준수가 공포와 두려움에 휩 쌓여 벌벌 떨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한참을 그렇게 준수의 얼굴 이곳 저곳에 입을 맞추며 달래던 유천이 드디어 준수의 양 다리를 휘어잡아 올렸다. "흐읍..."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준수는 낮은 목소리를 흘리며 그렇게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서 부들 부들 떨리는 손에 잔뜩 힘을주어 시트를 그러쥐었다. 흉칙하게 일그러지는 시트에도 아랑 곳 없이 더욱 세게 시트를 쥐는 준수의 손엔 아주 작게 핏줄까지 서려있었다. 그리고. "아아아아앗!!!!!!" 상상을 초월하는 너무나도 크나 큰 고통에 왠만한 고통은 다 견디는 준수조차도 유천의 집 떠나 가라 비명을 지르고야 말았다. 그가 쥐었던 시트가 들어올려져 금새 침대가 엉망이 되었지만 준수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더니 유천의 손에 잡힌 자신의 두 발을 있는대로 뒤 흔들기 시작했다. "아퍼!! 아퍼, 아퍼!!! 미친놈아! 진짜 아퍼!" "야, 좀 참아 봐! 나도 아퍼! 왜 이렇게 조여!" "죽을 것 같아! 흐윽.....죽을 것 같다구..." 이내는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렇게 고통으로 잔뜩 구겨진 얼굴로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준수였다. 그런 준수를 보며 유천 또한 마음이 굉장히 불편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곧바로 멈출수는 없는 일이다. 한참이나 그렇게 준수가 괜찮아 질 때까지 움직임 없이 그 상태로 있던 유천이 준수가 조금은 잠잠 해 진다 싶었을 때 아주 살짝 허리를 움직여 보았다. "아아!!! 야, 이 씨발놈아!! 죽여버려! 움직이지 말라고!" "....아, 그럼 이렇게 박고만 있으리?!" "제발 그만하자. 응? 나 진짜 죽을 것 같거든?" 목소리가 다 갈라져서 조금은 애처롭다 싶을 정도로 애원하는 준수를 내려다 보던 유천이 고개를 쉬이 쉬이 저으며 목소리에 힘을 주고 또박거리며 말을 이어간다. "안돼. 오늘 안 하면 다음엔 더 아플거야! 이렇게라도 해야 나중에 덜 아프지. 고통도 익숙해지면 안 느껴진다는 것도 모르냐, 바보야." "미친놈아! 이 건 익숙해 질래야 익숙해 질 수가 없다고! 이렇게 아픈 건 처음이란 말야!...아악!!!" 준수가 말을 끝내자 마자 다시 홰액 준수를 밀어붙이는 유천으로 인해 준수는 다시 높고 커다란 비명을 내질러야만 했다. 정말 숨이 멎어버릴 것만 같은 고통이다. 씨발. 젠장할. 이런일을 재중이형이 당했단 말이지. 그리고, 그 때 아무리 술에 취했다고 해도 이렇게 온 몸이 쪼개지는 아픔이라면 당연히 기억 할 수밖에 없을텐데 어떻게 기억이 안 날까. 정말 미칠지경이다. 차라리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유천은 얼굴 가득 흐르는 눈물을 보니 시큰거리는 가슴도 가슴이지만, 왠지 모르게 더욱 기분이 이상해 지는 걸 느끼고 자신을 제어 할 수가 없었다. 이러다 기절 해 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우스운 걱정도 없잖아 있었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다. 느릿하던 유천의 움직임은 어느덧 점점 빨라지고 있었고, 그렇게 미친 듯 비명만 내지르던 준수는 이제 참아 보기로 결심을 한 건지 아니면 이미 고통에 익숙해 진건지 대견하게도 비명만은 내 지르지 않았다. 잔뜩 억눌린 신음을 내뱉으며 그렇게 아픔만이 느껴지는 이 행위에 몸을 맞추려는 듯 손에 쥔 시트만 더욱 강하게 움켜 쥘 뿐이다. "하아...아..아....! 으으..으윽..." 어느덧 귀를 울려오는 준수의 신음성이 아주 조금은 바뀌어졌다. 고통으로만 내뱉어지는 신음이 아니라, 무언가를 조금 느끼기라도 했다는 듯 아주 살짝은 떨림도 있었고 갸르릉 거리는 듯한 듣기 좋은 신음으로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점점 빨라지는 유천의 움직임에 신통하게도 적응 해나가며 준수는 거칠게 흔들리는 자신의 온 몸에 그렇게 힘을 뺀 채로 몰아붙이는 유천에게 그저 모든 것을 맡기고 있을 뿐이였다. 침대 역시 삐걱거리며 온 몸으로 비명을 내질렀지만 두 사람에게 지금 그 소리는 조금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상대방의 거칠어진 숨결과 간간히 내뱉어지는 신음에 모든 것을 내맡긴 채 그렇게 무언가를 갈증하는 몸놀림으로 더욱 서로를 갈구하고 있을 뿐이다. "..하..김...준수...하...." "...아..아...! 흐윽.....아....." "....하아..김준수......" "...흐윽...! 으으...아아...!" "....하..아...김준수......." "..심창민 좋아하면 안돼.....나 좋아해줘야 돼...." 집 안에서 있을 땐 몰랐지만, 밖은 굉장히 쌀쌀하고 평소와는 다르게 굉장히 차가운 바람이 거칠게 불고 있었다. 윤호의 집 밖으로 나오자마자 갑자기 찾아드는 차가운 느낌에 재중이 흠칫 몸을 떨었고, 그런 그를 옆에서 바라보던 윤호는 아주 잠시 자신의 눈빛을 흔들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그의 어깨를 향해 윤호가 손을 들어 올렸을 때. "춥다. 그냥 들어 가." 조금은 어색하게 생긋거리며 자신을 홰액 돌아보며 저렇게 중얼거리는 재중으로 인해 화들짝 놀란 듯 빠르게 자신의 손을 내려버리는 윤호였다. 지그시 재중을 바라보는 윤호, 그리고 그런 윤호의 눈빛에 조금은 당황스러웠는지 아주 어설프게 다시 웃음을 띄워버리는 재중이다. 그런 재중을 특유의 심드렁하고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윤호가 빠르게 손을 올려 그의 떨리는 어깨를 그러쥐었다. "!........" "가자." 툭, 건성으로 내뱉 듯 말을 뱉고는 그렇게 윤호가 그의 어깨를 잡아 쥔 채 걸음을 재촉한다. 한참이나 멍하니 굳어있던 재중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그의 발걸음에 자신의 발걸음을 맞추며 따라걷는다. 차갑게 부는 바람이, 우습게도 따뜻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진짜 병일지도... 자신의 입가에 자꾸만 번지려는 미소에 재중은 아주 허탈하게 웃어버렸다. 물론 윤호가 보지 못하게 아주 여린 웃음을 지은것은 당연하다. 자상하게 웃어 주는 것, 그런 것 따위는 처음부터 바라지도 않았다. 이렇게 무심하게 대하지만, 형식적으로만 대답하고 묻고를 반복한다지만..그 것은 원래 정윤호의 성격 이고 여태껏 자신에게 했던 정윤호의 행동과 비교 해 봤을 때 지금 자신에게 정윤호가 얼마나 잘 해주는지는 굳이 생각 해 보지 않아도 확연히 들어난다. 　　　. . . . .........너무 행복해서, 이게 꿈이여도 좋다는 그런 바보같은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천천히 걷는 내내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규칙적인 윤호의 숨 소리에 재중은 자신도 모르게 붉어지는 자신의 뺨에 적잖게 당황 한 중이였다. 너무 어색하고 또 어설퍼서 무슨 말이라도 걸어보고 싶지만 그 것 또한 쉽사리 되지 않아도 괜시리 주눅이 들었다. 물론, 벌써부터 편해질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걷는 내내 한마디도 건네지 않는 윤호에게 섭섭한 기분까지 생겨버리는 재중 자신에게, 자신 조차도 놀랄 정도. "어-.." 그리고, 갑작스레 윤호의 입에서 자그마한 탄성이 터지자 화들짝 놀란 재중이 숙였던 고개를 들었을 땐,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창민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창민을 보고 목소리를 내 준거구나. 정윤호. 괜시리 또 다시 섭섭해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재중이 창민을 쳐다보고 있었다. "정윤호- 어디 가. 나 너네 집 가고 있었는데." 밝게 웃으며 다가오는 창민으로 인해 재중은 갑자기 자신의 어깨위에 얹혀져 있는 윤호의 손이 걱정 되었다. 걱정이 되는 이유는 윤호가 갑작스레 손을 내려버려 분위기가 훨씬 어색해지면 어쩌나 하는 아주 자질구레 한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얘네 집." 무심하게 툭 하고 내뱉으며 재중을 힐긋거리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윤호였다. 재중은 고개를 살짝 숙여버렸고, 끝까지 내려가지 않는 윤호의 손에 온 신경을 다 쏟아붓고 있던 참이였다. 그리고, 그런 윤호의 대답에 재중을 바라보던 창민의 눈길이. 그리고 재중의 어깨에 놓여져 있는 윤호의 손을 본 창민의 눈길이 갑작스레 흐려졌다. "...뭐야. 둘이 얼레리 꼴레리야?" . 슬픔을 웃음으로 위장한 뒤, 철저하게 자신을 가린 뒤 창민은 그렇게 생글거리는 낯으로 윤호와 재중을 향해 넌짓 질문을 던져왔다. 그런 그의 대답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윤호는 "응." 이라고 대답을 해왔고, 그런 그의 대답을 듣고 놀란 건 창민도 아닌 바로 재중이였다. 빠르게 고개를 들더니, 윤호를 쳐다보고 창민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이내는 다시 고개를 푹 숙여버린다. 　　　　　　. . . . . ...................김재중. 좋겠네...... "뭐야- 평생 그 지랄로 괴롭 힐 것 처럼 행동하더니. 결국 이럴거면서." "닥치고. 같이 가자. 얘 데려다 주고 집에 다시 갈거니까." "됐다, 병신아. 난 눈치도 없는 줄 아나. 그냥 집 앞에서 기다릴테니까 빨리 다녀 와. 김재중, 잘 가라." 그렇게, 생긋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윤호와 재중을 지나 치자 마자, 창민의 생글거리던 얼굴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지러졌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반짝이는 무언가. 한참을 그렇게 걸으며, 창민은 소리없는 울음을 그렇게 흘렸다. 그리고, 손을 올려 자신의 뺨에 서려있는 눈물을 닦아내며, 허탈하고. 또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웃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뭐야, 심창민...우네.....병신같이....." 너무나도 슬픈 혼잣말. 너무나도 가슴 아픈 혼잣말. 　　　　　. . . . . . ........................이렇게 될 줄 알았는데.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는데. 　　　끝까지 너만 생각하고 너만 쳐다보다가 이렇게 우는 내가 병신이다. 병신도 이런 병신은 없지. 　　　　　끝과 시작을 다 알면서도, 마지막에 이렇게 울어버리는 난...세상에 둘도 없을 병신이지...... 　　　　　　　　　　누가 뭐래도, 그대가 날 매몰차게 버려도, 　　　　　　　　　　잔인하게 날 비웃어도, 날 잔인하게 짓밟아도, 　　　　　　　　　　다시 나의 발목을 붙잡는 또 하나의 매개체. 　　　　　　　　　　　　　　　　　 　　　　　　　　　　　　　　　.끈　　　　　#16. 　　　　　　　　　　　　　　written by. 샤그락처녀 　　　　　　　　　　　　　(dndzidzid22@hanmail.net) 　　　　　　　　　　Fancafe# http://cafe.daum.net/SoulYS 　　　　　　　　　　　　　Nakashima Mika-雪の華 　　　행복해라. 난 네 행복을 지킬게. 날 보지 마. 그저 행복하기만 해라. 　　　　　　　　　　　　　　　그게, 내가 바라는 것 　　　　　　　　　　　　　　　　　 　　　　　　　　　　　　　　　　　monologue by. Max 　　　　　　　　　　　　　　　　　　　　. 　　　　　　　　　　　　　　　　　　　　. 　　　　　　　　　　　　　　　　　　　　. 재중의 집 앞에 도착하자 마자 인사도 없이 곧바로 뒤를 홰액 돌아서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가는 윤호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재중이 윤호의 뒷 모습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져 버릴 때 쯔음에서야 아주 작게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심호흡과도 같은 한숨을 나지막히 내뱉은 뒤 열쇠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집 안은 아무도 없는 침묵과 칠흙과도 같이 어두운 어둠 뿐이였다. 신발을 벗다가 문득 아래를 내려다 보자, 없을 줄 알았던 준수의 신발이 있는것을 보고 머릿속을 스치는 의아함에 잠시 멍하니 있던 재중이 서둘러 거실안으로 발을 들여왔다. 한참이나 이곳 저곳을 둘러보다가 준수의 방 문앞에 선 재중이 문을 두어번 두드린 뒤, 작진 않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준수야. 자?" 그러나 방 문 안에선 아무런 기척조차 들리지 않는다. 문고리를 쥐었던 손에 살짝 힘을 주자 스스럼없이 돌아가는 문고리에 재중이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문을 열었다. 방 구석에 덩그마니 놓여있는 나직한 하얀 침대엔 사람 형체의 윤곽을 띄고있는 시트가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머릿속을 파고드는 걱정에 잠시 멈칫하던 재중이 발 걸음 소리가 거의 나지않게 침대쪽으로 다가갔다. 이불을 걷어 볼까 말까 하는 조금 어이없는 망설임을 짓다가 이내는 살짝 이불을 걷어봤다. 걷혀진 이불 사이로 보이는 준수의 얼굴이, 요즘 제대로 보지 못 해서 그런지 조금은 수척해져 있었다. "..준수야. 형 왔어. 자는거야...?" 잠 귀가 꽤나 밝은편인 준수는 엄청 깊게 잠이 들지 않는 한 분명 재중의 목소리가 들렸을 법도 한데 결국 감겨있는 눈을 뜨지는 않았다. 한참이나 그런 준수를 내려다 보던 재중이 이불을 다시 한번 꼼꼼히 덮어 준 뒤에 소리없이 다시 방을 빠져나왔다. 달칵.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침묵으로 뒤덮힌 방 안을 조용히 울리자, 그제서야 준수는 고집스럽게 내려앉아 있기만 하던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들어 난 그의 눈동자는 조금은 흐릿해 보인다. 어디를 응시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눈동자엔, 초점이라고는 없이 그저 말갛기만 하다. 바스락. 몸을 일으킨 준수가 방금 재중이 닫고 나간 방 문을 뚫어져라 주시했다. 온 몸이 부서질 것 처럼 아파왔지만, 그래. 평소같았으면 형에게 먹을거라도 만들어 달라고 응석을 부렸을테지만, 우습게도 지금. 재중이형의 얼굴따위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다. 자꾸만 싫어진다. 모든게. 형이라는 사람 자체가, 나라는 사람 자체가. ".....나 미친놈이야....." 묘한 공명음같은 것이 숨이 막혀 올 듯 온 몸을 잠식하던 침묵을 드디어 깨트렸다. 자신이 내뱉은 나지막한 중얼거림이 다시 허공을 타고 돌아와 혼돈으로 요동치는 가슴속으로 간교하게 스며들어 심장을 울렸다. ".....나...나쁜놈이라구..." 심장을 울리는 그 교묘한 슬픔에, 슬픔에 밀려 난 그의 눈물은 빠르게 내려와 양 볼을 적셔왔다. 유천과의 행위에 몸이 미칠 듯 아파왔지만, 오히려 그 몸보다 아픈 건 자신의 심장이였다. 자신의 마음이였다. 그리고 이런 도중에도 유천을 이용해 슬픔에서 도망치려는 자기 자신이 너무나도 잔인하고 또 추악스럽게 느껴졌다. 　　　. . . . . . . .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건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형....미안해......" 　　　. . . . .........나, 이러면 안된다는 거 알면서도 있지. 나...형이 너무 밉다..? ................. 　　　형한테, 전 처럼 웃으면서 동생으로 있을 자신이 없어........ 나, 형이 정말 너무 미워서........ 　　　　　　　　내가 왜 형의 동생인지, 형이 왜 내 형인지....그 것조차도 원망스러워...... 　　　　.............나, 심창민을 좋아하니까............그런데, 심창민은 형을 좋아하니까...... "............미안해.....흑.....미안해, 형..........형이 너무 미워......" "네 자식, 지금 할 말 있지?" 의외로, 윤호는 눈치가 굉장히 빠른편이다. 자꾸만 자신을 곁눈질하며 평소와는 다르게 부자연스레 말을 이끄는 창민에게 무언가의 눈치를 엿 본 것일까. 윤호는 '피식' 하는 자조적인 웃음이 섞인 물음을 뱉었고, 그의 말에 정곡을 찔린건지 창민의 어꺠가 눈에 띄게 움찔거렸다. 그 순간, 꽤나 말이 끊이질 않던 윤호의 집 거실엔 쓰디 쓴 정적에 휘감겨 버렸다. 윤호 또한 창민이 어깨를 움찔거린다 거나, 흠칫 하거나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는 철저하게 자신을 가릴 줄 알았고, 이성이 본능보다 먼저 앞서는 친구로 두기에는 굉장히 까탈스러운 사람이였기에 그렇게 당황하며 어깨까지 철렁 할 정도로 놀라는 모습은 단 한번도 보여 준 적이 없었기에 윤호 또한 놀라서 멍 하니 굳어져 버렸다. 한참이나 입이 쉴 새도 없이 무언가를 말하던 창민의 입술이 말 그대로 딱 붙어버렸다. 윤호는 잠시 소파에 몸을 기댄 뒤, 창민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저 그가 먼저 알아서 입을 열기를 기다리겠다는 표시였음을, 창민 자신또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엉켜버린 시선에, 심장이 시큰거릴 정도로 울렁거렸다. 윤호의 시선은 때때로 사람의 속까지 간파하는 듯한 느낌을 담고 있어서 보고 있자면 역겹다. 　　　. . . . . ..................눈치 빠른 자식. "그래, 할 말 있어. 넌 왜 그렇게 눈치가 빠르냐?" ".....할 말이 뭔데." ".............김재중하고, 어떻게 사귀게 된 거야?" 그리고 창민의 물음을 귀에 담자마자 윤호의 시선이 아주 여릿하지만, 눈이라도 깜빡했다면 놓쳐버렸 을 정도로 짧았지만 그렇게 심한 기복을 담고 일렁거렸다. 이렇게 말을 해온다면 분명히 창민 자신도 이성을 잃고 자신이 김재중을 좋아한다거나 하는 그런 말들을 윤호에게 다 털어 놔 버릴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면 제어 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자신조차도 이해 할 수 없게 제어따위를 하고싶지 않다. 한참이나 창민을 바라보던 윤호의 입가엔 보일 듯 말 듯한 웃음이 자그맣게 걸렸다. "좋으니까." "싫다며. 죽여버리고 싶다며. 그냥 괴롭히고 싶을 뿐이라며." "아니더라고." "제대로 대답 해. 건성으로 하지 마." "왜?" 　　　　　　. . . . . . . ..................................................................... '왜?' 라는 물음, 그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머릿속이 허옇게 비어져 버렸다. 뭐라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하느라 이미 많은 시간을 잡아먹었다. 뭐든 다 꿰뚫어보는 시선으로 창민을 바라보는 윤호의 입가엔 미미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지만 그 것은 얇은 가면과도 같았다. 마음을 감추려는 덮어 쓴 가면. 입술이 말랐다. 침을 축이고 싶었지만 이미 입 안도 다 바싹바싹 말라버린 상태였다. 두근대는 심장이 그리도 미울 수가 없었다. 한참이나 윤호를 마주하던 창민이, 마른침을 꿀꺽 넘기고 그의 옆으로 가서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편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윤호의 시선은 창민의 무엇 하나도 놓치지 않겠 다는 듯 집요하게 그가 하는 행동과 그가 짓는 표정 하나하나까지 다 관찰하고 있었다. ".....심창민. 왜냐고. 왜 내가 너에게 나랑 김재중 사이를 자세히 말 해줘야하는 거냐고. 이유를 말 해. 그럼 나도 대답 해 줄게. 심창민. 나 봐. 나 똑바로 쳐다 봐. 나, 그정도로 눈치 없는 놈 아니야." "..........그래." ".....그래라니." ".........그래." "심창민." "그래!!!! 알았다고!!!!! 씨발새끼야!!! 알았다잖아!!!! 뭐가 궁금한데. 대체 뭐가 궁금한데!!!!!!!" 그렇게나 차곡차곡 쌓아뒀던, 담고있기 너무나도 힘들던 슬픔과 화들이 전부 한꺼번에 폭팔해 버렸다. 위태하다. 무슨 말이 나올 지 창민 자신조차도 두려웠다. 이미 그들의 시선은 엉킬대로 엉켜있었고 풀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눈에서 칼이 튀어나와라 서로를 노려보는 윤호와 창민의 시선은 전과 같지 않았다. 서로를 향한 경계심. 서로를 향한 칼날이 조금이라도 흔들릴 까 두려워 하는 듯한 그런 시선을 윤호와 창민은 동시에 서로에게 보내고 있었다. 부들부들. 쥐어진 창민의 주먹이 경련이라도 일으키는 양 여지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동공만은 확고하다. 전혀 흔들림 없이 윤호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였다. "...........심창민....." "........하아......." 그렇게나 이성을 잃지 않던 사람이였다. 그렇게나 자기 자신을 숨기는데에 익숙한 사람이였다. 그런 창민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윤호가 지금 창민의 행동에 창민이 무엇 때문에 이러는 지 모를리가 없다. 아니, 사실은- 아까 재중과 같이 있을 때 창민과 마주쳤을 때. 그 때 아련하게 무언가가 채워지는 창민의 눈동자를 보고부터, 그 때부터 이상하다고 느꼈었다. 심하게 엉켰다. 너무나도 심하게 엉켜버렸다. 창민은 끓는 분노를 죽이려는 듯 그렇게 몇번씩이나 숨을 당기고 밀고를 반복했다. 그러나 명치 끝 까지 파고 든 홧기는 도무지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 창민을 바라보던 윤호는, 한참이나 그를 쳐다 보다가 이내는 답답해져 묵직하게 느껴지는 머리에 몇 번 고개를 털더니 테이블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 다른 담배 한개피를 들어 창민에게 내밀었다. 말 없이 그 것을 바라보고 있던 창민이 결코 좋진 않은 손동작으로 빼앗 듯 담배를 들더니 윤호보다도 먼저 빠르게 불을 붙여 버렸다. 화악- 하고 차오르는 뿌옇고 매캐한 연기는 어느새 윤호의 집 안 곳곳으로 파고들어 아련한 담배향을 가득 뿜어대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담배만을 주구장창 빨아대던 두 사람 중, 먼저 입을 연 것은 윤호였다. "바보 같았어." 　　　　　　. . . . . . . . . . . . . ......................................................... "......................" "김재중을 밀어내려는 내가 바보같이 보였어. 내가 바보라는 것을 깨닫고 나니까, 나도 김재중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도 곧바로 깨닫게 됐어. 당장 몸 속으로 스며드는 따뜻한 걸 막아 낼 수가 없었어. 날 보면서 웃고있는 김재중이 너무 예뻐보였어. 사랑.....하고 싶었다. 그게 이유야." 　　　　　　. . . . . . . . . . . . . ......................................................... 손가락을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담배를 빨아대던 창민의 움직임이 그렇게 일시정지 버튼이라도 누른 듯 멈춰져 버렸다. 눈 조차도 깜빡이지 않았다. 윤호 또한 그 건 마찬가지였다. ".....이제 안 울릴거야. 이제.....안 울릴게." ".............." ".....그러니까, 양보 해." "............정윤호....." "네 말대로, 김재중은 우는 모습보다 웃는 모습이 더 예뻤어." "정윤호!!" "........미안하다. 창민아." 　　　　　　. . . . . . . . . . . . . ......................................................... 윤호의 시선은 창민에게 향해있었고, 창민의 시선 역시 윤호에게 향해 있었다. 살짝 이지러진 눈매로 창민을 향해 '미안하다' 라고 중얼거린 윤호의 시선엔 아련함이 가득했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창민의 동공엔 형용 할 수 없는 느낌들이 가득하다. 그렇게 한참이나 서로를 바라보던 중, 먼저 시선을 돌리며 가볍게 웃어버린 건 창민이였다. 거의 다 타들어가 필터만 남은 담배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창민이 고개를 숙여왔다. 그리고, 담배를 재떨이에 지져버린 후 한참이나 그 자세 그대로다. ".....윤호야." "응." "........울리지 마라." "응." "...........울리면, 화 낸다...." "......그래.." "............행복하게 해 줘라." ".......알았어." 　　　　. . . . . . . . . . . . ................세상엔 까만별이라는 게 있다. 빛을 내는 하얀 별과는 다르게 　　　까맣디 까만 어두운 밤 하늘에 몸이 묻혀서 그 까만별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세상의 모든 별들을 제각기 기도를 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리고, 까만별도 기도를 한다. 　　　　　　　그 사람은 모르겠지만, 까만별도 그 사람을 위해 늘 기도한다. 　　　......행복하라고, 행복 해 달라고, 사랑했다고, 아니.............지금도 사랑한다고........................ 　　　　　　　　　　누가 뭐래도, 그대가 날 매몰차게 버려도, 　　　　　　　　　　잔인하게 날 비웃어도, 날 잔인하게 짓밟아도, 　　　　　　　　　　다시 나의 발목을 붙잡는 또 하나의 매개체. 　　　　　　　　　　　　　　　　　 　　　　　　　　　　　　　　　.끈　　　　　#17. 　　　　　　　　　　　　　　written by. 샤그락처녀 　　　　　　　　　　　　　(dndzidzid22@hanmail.net) 　　　　　　　　　　Fancafe# http://cafe.daum.net/SoulYS 　　　　　　　　　　　　　 　　　세상에서 가장 아픈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증오하는 것. 　　　　　　　　　　　　　　　차라리 몰랐으면 하는 잔인한 바램.... 　　　　　　　　　　　　　　　　　 　　　　　　　　　　　　　　　　　monologue by. Hero 　　　　　　　　　　　　　　　　　　　　. 　　　　　　　　　　　　　　　　　　　　. 　　　　　　　　　　　　　　　　　　　　.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준수야." "......" "......준수야." "...왜." "......밥...안 먹어.....?" 휴일이 싫어진다. 학교에라도 나가면 재중과 같이 있는 시간이 그나마 덜 했지만 휴일이라도 되면 거의 하루종일 얼굴을 맞대고 있어야 하기에 평소보다도 배로 짜증이 불었다. 그 큰 눈을 꿈뻑거리며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재중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얼굴위로 희미하게 창민의 얼굴이 겹쳐진다. 이해 할 수 없는 짜증과 홧기를 준수는 도무지 억누를수가 없었다.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게, 마주치지 않는게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싫어지는 건 재중이 아니였다. 바로 자기 자신이 더욱 더 싫어지는 거다. 참을 수가.....없다. "...준수야. 언제까지 누워 있으려고 그래. 아..형한테 뭐 화난 거 있어...? 요 일주일간 통 말을 안 하네.." 저번주에, 그러니까 윤호와 사이가 좋아지고 난 후부터 줄곧 준수는 저런식이였다. 말을 걸어도 대답하는 횟수가 거의 줄어들어 미미하기 까지 했고 밥 조차 제대로 먹지를 않았다. 학교에 다녀와 집에 돌아와도 늘 집에 있던 준수는 어디론가 나가버리고 집 안은 차가운 정적에 쌓여있기만 했을 뿐이다. 항상 밝게 웃던 준수의 얼굴엔, 어느순간부터 웃음이라고는 사라져버린지 오래이다. 예전같지가 않다. 변해버린 자신의 동생에게 자신이 무언가 잘못을 하기라도 한건가, 하는 생각도 아예 없던 건 아니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준수에게 자신이 잘못 한 것은 없었다. 말 조차 안하고 눈조차 마주치지 않으려하는 준수를 보면 가슴이 탁하고 메어오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그의 행동에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해지곤 했다. "...준...수야..." "좋아?" 　　　　　　. . . . . . . . . . . .................................................................... 갑작스러운 질문. 희미하게 심기를 비트는 듯, 비꼬는 어조의 준수의 목소리는 재중에게 있어서는 너무 나도 생소하고 또 낯선 것이였다. 심장이 멎어버리는 듯한 느낌에, 그리고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준수의 물음에 재중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무...슨...말이야...?" "좋냐고." "...뭐.....가..?" "정윤호랑, 그렇게 이어지니까 좋냐고." 그만해. 그만해, 김준수. 지금 뭐하는거야. 김준수. 준수는 머릿속과는 다르게 청산유수처럼 흘러나오는 말 들에 자기 자신조차도 놀라고 있었다. 이미 재중의 낯빛은 하얗게 식어버린 상태였다. 대체, 준수가 무슨말을 하려는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것만은 확실하다. 지금 준수는 자신이 윤호와 사귄다는 것에 엄청난 불만을 품고 있는 게 틀림 없었다. 하지만, 하지만... "....왜 그러는 거야, 준수야." ".........왜..네가 내 형이야.....?" "!............" 　　　　　　. . . . . . . . . . . .................................................................... 울음섞인 준수의 목소리에, 재중은 갑작스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머리가 아찔 할 정도로 깊숙히 뇌리를 파고드는 준수의 음성에 재중은 아무런 말도, 아무런 행동도 해 보일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준수의 손을 잡고 무슨일인지, 대체 왜 그러는건지 묻고 싶었다. 자신이 잘못을 한 거라면 무릎이라도 꿇어 준수의 화를 풀게 만들고 싶었다. 너무나도 사랑하는, 단 하나뿐인 동생이............. 　　　　　 . . . . ......저렇게 말을 해 온다는 건, 자신을 증오한다는 증거였다......... "....준..수야.." "왜 네가 내 형이냐구. 대체, 대체 왜 네자식이 내 형이냐구!!!" "...준수야...김준수..." "싫어. 나 네가 너무 싫어. 너무 싫어서 얼굴만 보고 있어도 역겨워. 뭔가 속에서 올라오는 거 같아!!!" 흐르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 거칠게 자신의 손을 들어 눈물을 우왁스레 닦아버리던 준수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재중에게 다가섰다. 그들의 사이가 한층 가까워지자 점점 더욱 뜨겁게 솟구치는 슬픔과 아련함을 도무지 막아 낼 수가 없었다. 이미, 재중의 눈가에도 이루 말 할 수 없는 눈물이 가득하게 맺혀 있다. "왜 하필이면 너야. 왜 하필이면 형이야. 왜 하필이면 네가 내 형이냐구!!!!!!" ".....준수야.....왜이래...왜그러는거야..." 눈물에 잔뜩 잠긴 목소리로 그렇게 있는대로 고함을 내지르는 준수의 얼굴은 너무나도 아파보였다. 보는 것 만으로는 그의 속마음을 알 수도, 그가 느끼는 슬픔을 가늠할 수도 없을테지만 그의 얼굴을 보는 것 만으로도 눈물이 그대로 쏟아져 내릴것만 같이 온 몸이 다 시큰거리며 아파왔다. 너무나도 아파보였다. "...형만 아니라면.....형만 아니였다면...때려서라도.....욕을 해서라도...내 이 마음을 다 풀어버리고 싶은데... 형이니까...아무것도 모르니까...형은 내가 제일 잘 아니까..너무 착한 우리 형...내가 다 아니까......." ".....준수야......" "...........그러니까......화를 낼 수도.....욕을 할 수도 없어서.....난 정말 너무 아픈데....어떻게든 이 마음 풀어내고 싶은데...화 풀이 할 상대조차 없는게 너무 화가 나....왜 하필이면 형이야..왜..." "......김준수........" 　　　　　　. . . . . . . . . . . .................................................................... "......형이라면...미워 할 수가 없잖아..............." 　　　　　　. . . . . . . . . . . .................................................................... 그렇게 무너져 버리는 준수를 재중은 바라 볼 수 조차 없었다. 바닥에 어린아이처럼 주저앉아 자지러지듯 울음을 내뱉으며 어깨를 들썩이는 준수의 모습을 재중을 바라 볼수가 없었다. 아니, 바라 볼수는 있었지만 자신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탓에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어떻게 해야하지. 대체 뭐라고 말해야 하지. 대체..준수가 왜 이러는 거지. 재중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대체 갑자기 준수가 이러는 이유가 뭔지. 그러나 지금 그런 생각보다는 자신의 심장이 타들어 갈 듯 아프게 느껴지는 건, 자신의 하나뿐인 동생이 자신 때문에 여실히도 힘들어한다는 걸 알아버렸기에. 너무나도 아파한다는 걸 알아버렸기에. "...심창민이...심창민이 형 얘기를 하면 화가 나.....흐윽...으.....박유천은 그게 사랑이래...그게 사랑이래... 심창민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흐으...으윽.....왠 줄 알아...? 왠 줄 아냐구......" 　　　　　　. . . . . . . . . . . .................................................................... 심..창민이라니...준수야. 김준수. 너 그러면..... "........심창민은.....형을 좋아하니까. 김재중. 너를 좋아하니까........................" 　　　　　　. . . . . . . . . . . .................................................................... 귀를 막아버릴 수 있다면, 눈을 감아버릴 수 있다면 좋을텐데. 그것조차 할 수가 없었다. 내 의식과는 다르게, 몸은 그저 멍하니 굳어있을 뿐이였다. 그저 들리는 건, 준수의 울음소리 뿐. 그저 떠오르는 건, 준수의 우는 얼굴과 겹치는 창민의 늘 언제나 웃던 얼굴. 그리고, 그런 재중을 더욱 울리게 하는 건. 이틀 전, 자신을 한참이나 자신을 바라보던 윤호가 갑자기 자신을 안아버리고 조용히 귓가에 나지막히 속삭였던 그 말. 　　　　　　. . . . . . . . . . . .................................................................... '.....많이 좋아 해. 그러니까 흔들리지 마. 넌 바보같이 너무 착해서...누가 널 좋아한다고 하면 그대로 흔들릴까봐...웃기지만 솔직히 조바심 나. 흔들리지 마, 김재중. 흔들리지 마.....' . .. ... .... ..... ...... ....... ........ ......... .......... ........... .......... ......... ........ ....... ...... ..... .... ... .. . "이씽! 너 죽어! 왜 맨날 늦어!!!" "아, 좀 늦으면 어때!" "먹어달라고 용을 써라, 용을 써. 한번만 더 늦으면 그땐 바로 호텔로 직행이다. 오케이?" "웃기지 마." 갈 수록 짙어지는 차가운 바람에 한참동안이나 기다린 건지 양 볼이 붉게 상기되서 잔뜩 짜증을 부리는 유천을 바라보던 준수가 아주 작게 피식 웃어버렸다. 왠지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냥 유천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 늘 머릿속을 파고들어 집요하게도 괴롭히던 형과 창민의 생각들이 유천과 있으면 그나마 조금은 덜해지는 느낌. 그래서 유천이 만나자고 연락을 해 와도 뺀지는 커녕 단박에 오케이를 해 버리는게 준수였다. 밖에 오래 있어서 그런지 차가운 팔로 홰액 목덜미를 낚아채오는 유천에게 준수는 '아! 차가워!' 하며 그의 손을 매섭게 뿌리쳤다. "뭐가 차가워! 잠바도 입어놓고!" "병신아! 목엔 아무것도 없잖아!" "...어? 진짜. 목이 너무 들어났잖아. 안 춥냐?" "...안 추워." 대충 받아치듯 말을 하고 준수는 그렇게 걸으려는 듯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앞 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얼마 후, 채 30초도 지나지 않아서 목에 감겨오는 따뜻한 무언가에 조금 놀라서 퍼뜩 고개를 들자 자신의 목에 감겨있던 목도리를 준수의 목에 감아버린 유천이 보였다. .....바보. 뭐가 그렇게 좋은 지 또 혼자서 생글생글이다. "내 온기를 가득 담은 사랑의 목도리야. 으하하하!" "...바보같아. 웃지 마." "...너 미워. 나빴어." ".....쿡..." 이 사람에겐, 도무지 차갑게 대하려고 해도 대할수가 없다. 그저 허탈하게 웃어보이며 그리 싫지만은 않았는지 유천이 감겨 준 목도리를 아무소리 없이 다소곳이 하고 있는 준수에 의해 만족스러웠는지 혼자 생긋하고 웃어보인 유천이 그의 손을 잡아 끌었다. "어디 갈까. 영화볼까?" "그저께도 봤잖아. 질리지도 않냐." "응. 우리 귀염댕이랑 있으면 유천이는 뭘 해도 안 질리구 좋아요." 커다란 키에 맞지 않게 어린애처럼 달라붙어오는 유천을 떼어내느라 준수는 오늘도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참이나 그렇게 짜증을 내며 붙어오는 유천을 밀어내던 준수, 그리고 준수에게 붙으려고 더욱 발버둥치며 뭐가 그리 좋은지 커다란 목소리로 웃어대던 유천이 갑자기 부자연스레 표정을 화악 굳혀버렸다. 그의 갑자기 굳어진 표정에 준수가 잠시 움직임을 멈칫하자 유천이 준수의 얼굴 가까이로 자신의 안면을 들이대더니 차갑게 식은 손가락을 들어 준수의 눈가를 천천히 어루만지기 시작한다. "..뭐야, 왜 이래." "......야." "........." "너 눈 왜 부었어. 너 울었냐?" 방금 전 까지만해도 애교를 가득 띈 목소리로 그렇게 신이나서 중얼거리던 모습과는 참 상반되는 모습이였다. 굳어진 얼굴로 목소리까지 화악 가라앉히고 물어오는 유천에 의해서 당황해도 심하게 당황 한 준수가 빠르게 유천의 손을 치워내고 고개를 다른 쪽으로 홰액 돌려버렸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 안 가 다시 턱을 억지로 부여 잡고 자신 쪽으로 준수의 얼굴을 돌려버리는 유천으로 인해 저지되고야 말았다. "울었냐고 했다. 너 눈이 왜 이렇게 부었냐고." "......아니야. 그냥..." "그냥 뭐." "...드라마 좀 보다가." "....................." 거짓말을 하는게 눈에 뻔하게 들어나는 표정으로 머뭇거리듯 말하는 준수에 의해 유천은 급하게 속에서 번져 오는 홧기를 억누르느라 숨을 당기고 밀고를 반복했다. 한참이나 그렇게 준수를 빤히 쳐다보던 유천이 손을 들어 준수의 머리를 한번 쓰윽 쓰다듬는다. "울지 마라." 　　　　　　　　　　. . . . . . . . . . . ..................................................... 팔짝팔짝 뛰며 엄청나게 화를 낼 줄 알았던 유천은 의외로 차분해진 목소리로 저렇게 중얼거리고 다시 걸음을 걷기 시작한다. 그에 놀라 멍하니 벙쪄있던 준수가 이내 곧 정신을 차리고 그의 옆으로 다시 다가서자 유천이 낮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입을 떼었다. "아니. 울어도 돼. 대신, 이제부터 울 거면 나한테 와서 울어." 　　　　　　　　　　. . . . . . . . . . . ..................................................... 그렇게 한참이나 두 사람은 말 없이 걸었다. 갑작스레 숨 막히듯 밀려오는 아련함과 슬픔에 준수의 심장은 현저히 빨라져가 점점 그 고동수를 늘려가고 있었다. 아파보이는 모습. 어쩌면, 자신보다 더 힘들어 할 지도 모르는 유천. 그는 알고 있다. 자신이 누구를 좋아하는지. 알면서도 웃는다. 자신을 이용하는 걸 알면서도 나만을 계속 바라본다. 그런 그의 심장은, 어쩌면 다 타들어가 남아 있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네 앞에서만 울게." 　　　　　　　　　　. . . . . . . . . . . ..................................................... 유천은 갑작스레 발걸음을 멈춰버렸다. 분명, 저 위엣말을 중얼거린 건 준수의 목소리였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유천에 의해 조금은 창피해졌는지 준수가 얼굴을 옅게 붉히고 괜시리 얼굴을 찌푸리며 그런그의 팔을 약하지 않은 힘을 담아 투욱 때려버렸다. "뭘 쳐다 봐! 무안해지게." "..............." "......아씨. 짜증나. 알았어! 딴 데 가서도 미친듯이 울게. 됐냐?" 창피해도 여간 창피한게 아니였는지 짜증을 있는대로 내며 홰액 앞으로 가버리는 준수에 의해 멍하니 굳어서 바보스럽게 눈만 꿈뻑거리던 유천이 얼마 후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홱홱 털었다. '후아..' 하고 터져나오는 한숨. 정말 심장이 멎어버리는 것 같았다. 자신이 준수를 좋아한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말 한마디만 듣고도 심장이 앞섶을 헤치고 뛰쳐나올 것 만큼이나 뛰어 댈 줄은 몰랐다. 그만큼 그가 소중한지는 몰랐다. 그러나 웃긴 건. 　　　　. . . . . . ........많이 사랑한다는 걸 깨달으면 깨달을 수록, 더욱 슬퍼지는 자신이였다. 이미 저 만치로 가서 아직도 빠르게 걷고있는 준수의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던 유천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띄우고 빠르게 그를 향해서 뛰었다. 그의 옆에 탁 하니 붙어 생글거리며 그의 얼굴을 쳐다보던 유천의 얼굴에 갑자기 미소가 지워진다 싶다. 그 이유는 앞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는 준수의 시선이 무언가 형용 할 수 없는 빛이 가득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였다. 준수가 응시하는 곳을 따라 시선을 돌리던 유천의 시선도, 갑작스레 빛을 잃고 텅하니 비어져 버린다. "어! 니네 뭐하냐!" 맞은편에서 환하게 웃으며 걸어오는 것은, 바로 다름아닌 창민이였다. 그를 한없이 바라보던 준수는 빠르게 고개를 털며 멍하니 굳어있는 표정을 애써 지우려 노력했지만, 그런 준수를 바라보는 유천의 얼굴과 시선은 더욱 더 굳어져만 갈 뿐이다. "어쭈. 데이트 하는거야? 어디 가-?" 밝게 웃으며 저렇게 중얼거리는 창민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참을수가 없었다. 아프게 울려오는 자신의 심장과, 금새 시큰거리며 따갑게 올라오는 눈물과, 아늑해지며 묵직하게 뇌리를 눌러오는 여러종류의 감정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창민을 쳐다보지도 못하는 준수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유천이 창민을 쳐다보았다. "데이트 하는거야." "그래? 쿡..재미있게 놀다 와라. 나 윤호네 집 가 있을거니까 전화 해." "..어." "준수야. 너 어디 아프냐? 얼굴색이 안 좋아보인다." 그리고 이내, 하얗게 질려버린 준수의 얼굴에 무언가의 기색을 느꼈는지 창민이 잔뜩 걱정스러움을 담아 중얼거리며 손을 들어올렸다. 아무래도 준수의 이마라도 짚어보려는 심사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은. "!!........" 빠르게 준수의 팔을 잡아 그대로 자신의 뒤 쪽으로 끌어 준수를 자신의 뒤에 감추어 버리는 유천으로 인해 저지되어 버리고야 말았다. 준수의 이마를 짚으려던 창민의 손이 무안하게 허공에서 멈춰져 있었고,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늘려보이고 당황해서 유천의 손 조차 뿌리칠 생각도 않고 있는 준수였다. 유천은 아무런 감정없는 낯빛으로, 그렇게 무심한 눈동자로 창민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처음보는 유천의 눈빛에 당황해도 적잖게 당황 한 창민이 유천을 똑바로 쳐다보자, 열릴 것 같지 않던 유천의 입술이 드디어 열린다. ".....만지지 마." 　　　　　　　　　　누가 뭐래도, 그대가 날 매몰차게 버려도, 　　　　　　　　　　잔인하게 날 비웃어도, 날 잔인하게 짓밟아도, 　　　　　　　　　　다시 나의 발목을 붙잡는 또 하나의 매개체. 　　　　　　　　　　　　　　　　　 　　　　　　　　　　　　　　　.끈　　　　　#18. 　　　　　　　　　　　　　　written by. 샤그락처녀 　　　　　　　　　　　　　(dndzidzid22@hanmail.net) 　　　　　　　　　　Fancafe# http://cafe.daum.net/SoulYS 　　　　　　　　　　　　　 　　　이러다가 죽어버릴지도 몰라. 이러다가 쓰러져 버릴지도 몰라. 아니, 틀림없이 그럴거야. 　　　　　　　　　　　　　널 사랑한다는 그 이유로 난 너무 아파서 죽어버릴지도 몰라. 　　　　　　　　　　　　　　　　　 　　　　　　　　　　　　　　　　　monologue by. Micky 　　　　　　　　　　　　　　　　　　　　. 　　　　　　　　　　　　　　　　　　　　. 　　　　　　　　　　　　　　　　　　　　. "...박유천.....?" 그렇게 한참이나 굳어있던 창민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해 할 수 없다는 눈빛과 표정으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창민을 그렇게 동요없는 눈동자로 바라보던 유천의 준수의 팔을 잡은 손엔 더욱 힘이 들어간다. 이제서야 현실직시가 된 준수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유천의 손을 뿌리쳐 보려고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유천의 손 힘은 더욱 억세게 강해 질 뿐이다. 질끈. 입술을 깨물어 준수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보이는 건 유천의 넓다란 등 뿐, 창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온 몸의 피가 거꾸로 역류하는 듯한 먹먹한 느낌. "...너 왜그래? 무슨 일 있냐? 아니, 내가 애를 잡아먹는데..? 뭐가 무서워서 만지지 말라는거야." "만지지 마. 내거야." "......하...." 어린아이가 자신의 인형을 누구도 못 만지게 하듯, 그렇게 말도 안되는 이유로 유천은 준수를 놓아주지 않았다. 어이가 없다는 듯 내질러진 창민의 거친 숨결. 단순히 호의와 걱정심만을 가지고 준수를 보려했던 창민도 화가 나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자신의 친절이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무시를 당했기 때문에. 숨이 막힐듯한 침묵속으로는 경계심과 얼어버린 시선, 서로에 대해 깎아진 신용들이 역에서 역으로 비춰지기 바쁘다. 그렇게 한참이나 엉켜있던 두 사람의 시선은 창민이 먼저 고개를 돌려버림으로 풀려버렸다. 아무런 말 없이 그렇게 유천을 지나치던 창민의 시선이 문득 유천의 뒤에 서 있던 준수에게 가 있었다. 준수는 그런 창민의 시선을 느끼고 안 그래도 굳어있던 몸이 더욱 굳는 걸 느낀다. 고개를 숙여버렸다. 아무것도 보지 못 하게. 그가 나를 보던, 그가 나를 울리던 아무것도 알지 못하게. 그저 고개를 숙여버렸다. ".....아파 보인다. 집에서 쉬어." 그 말을 남기고 창민은 자신이 가던길을 무뚝뚝하게 빠른 걸음으로 걸어 가 버렸고, 그제서야 놓치지 않겠 다는 듯 우왁스레 쥐고있던 준수의 팔을 천천히 놔 주는 유천이였다. 유천의 손이 떨어지자 마자 팔에 감기 는 격한 통증에 준수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아직도 쿵쾅거리는 심장의 고동이 현저히 그 속도를 늦춰간다. 　　　　　　　. . . . . . ............이젠, 뭐든 상관없다. ".....언제야?" 갑작스러운 유천의 질문. 탁- 하고 가라앉은 냉기가 흐르는 목소리가 그렇게 조용한 거리를 낮게 울렸다. 그런 이해 할 수 없는 물음에 준수가 고개를 들어 유천을 바라보자, 유천은 여전히 그 빈 눈동자로 준수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대체 언제냐고." ".....뭐가." "언제 네 마음 밝힐래..?" "!....." ".....그리고, 나는 언제 버릴건데...?" ".........박유천..." "...언제야. 대체 언제까지 나 이용할래..." "..................." "......언제까지 나 갖고 놀건데...대체. 씨발, 대체 언젠데!!!!!!" 　　　　　　　　. . . . . . . . . ............................................................... 그리고는 침묵이다. 심장까지 시리게 할 정도의 냉각 된 침묵.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그저 서로를 격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두 사람의 숨소리만이 공존 할 뿐이였다. "...네가 원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버려 줄 수 있어." 　　　　　　　　. . . . . . . . . ............................................................... 그렇게, 뛰어대던 숨줄이 느슨해지며 모든게 탁 풀린듯한 느낌이였다. 준수의 눈빛은 확고하다. 자신을 향한 유천의 마음따위는 아랑곳도 없다는 듯 그렇게 막역한 표정이였다. 냉정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은 더 상처받는다. 그렇지 않으면 난 더 나쁜사람이 되고 만다. "...김준수. 너 참 잔인하네." 이제는 웃음까지 띄어진 유천의 얼굴이였지만, 왠지 모르게 그게 더 슬프고 애잔해보였다. 준수는 울컥 거리는 심장을 간신히 바로잡으며 그렇게 아무런 감정없는 표정으로 유천을 바라봤다. 하필이면 이 거리 는 왜 이렇게도 조용한건지. 그 흔한 사람 한 명 지나가질 않는건지. 차라리 시끄럽기라도 한다면 그의 슬픔과 아픔을 가늠하기가 어려울텐데, 이렇게도 조용하면 너무 내 가슴에 깊이 와닿잖아. 박유천이라는 사람이 지금 얼마나 힘든지. 지금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슬픈지. 　　　　　　　　　　　. . . . . .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박유천." "......" "........나한테 오지마." "!....." 　　　　　　　　. . . . . . . . . ............................................................... "나한테 잘 해 주지마." "......" ".....네가 나한테 잘 해 주면 잘 해 줄수록, 나는 그만큼 너한테서 물러서게 되니까." . .. ... .... ..... ...... ....... ........ ......... .......... ........... .......... ......... ........ ....... ...... ..... .... ... .. . "왔냐." 아무런 표정없이 그렇게 현관앞에 서서 무뚝뚝하게 인사를 건네는 윤호에 의해 재중은 또 자신도 모르게 긴장을 하고 말았다. 대답도 시원찮게 못 하고 "어..?어.." 하고 간신히 떨리는 목소리를 억누르며 말까지 더듬어 가면서 대답을 하자, 윤호는 들어오라는 듯 자신의 몸을 살짝 옆으로 비켜선다. 잠시 숨을 당기고 집 안으로 들어선 재중의 유치한 고민은 또 시작되고야 만다. 자, 이젠 어디에 앉아야 할까요. "밥 먹었냐." 퍼뜩. 아침이라서 그런지 더욱 낮게 들려오는 윤호의 목소리에 재중이 흠칫 놀라서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 보며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 하는 또 듣기싫게 더듬거리는 어조로 대답을 하며 말이다. 윤호는 한참이나 그런 재중을 바라보다가 이내는 다시 평소처럼 눈을 내리깔고 소파에 철퍼덕 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다. 재중이 머뭇거리며 바보처럼 그렇게 거실 한복판에 오도카니 서 있자 윤호는 담배를 한참이나 태우다가 아무런 동요없는 무심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본다. "뭐하냐?" "..어, 어?..." "......." ....조금은 재미있다는 듯한 장난끼가 아주 약간이지만 윤호의 시선에 담겨 있었다. 언제까지 저렇게 서 있나 어디한번 볼까? 하고 잠시 뇌리를 스치는 고약한 생각에 윤호는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재중에게서 시선을 떼어내고 다시 담배만을 태웠다.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여전히 진전은 없었다. 역시나 재중은 그 자세 그대로 거실 한복판에 못 박힌듯 서서 눈만 꿈뻑거리며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고 윤호는 이미 담배 한 대를 다 태우고 다시 다른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는 중이였다. 불을 붙이는 도중에 이유없이 웃음이 나오 려는 걸 윤호는 간신히 참아내며 드디어 재중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문득 시선을 돌리다가 윤호와 갑자기 눈이 마주쳐버린 재중은 또 온 몸을 떨어대며 흠칫 놀란다. 내가 졌다. 내가 졌어, 김재중. 허탈하게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윤호가 그를 쳐다보며 자신의 옆자리를 탁탁, 손으로 쳤다. 그러자 안 그래도 커다란 그 눈을 더욱 늘려보이며 꿈뻑거리는 재중. 윤호는 다시한번 손으로 탁탁 내려쳤고, 그제서야 이해가 된 건지 재중이 '아..' 하고 낮게 목소리를 흘리며 또 한참이나 쭈삣거리고 머뭇거리더니 이내는 윤호의 옆자리에 가서 앉았다. "바보냐." "...어?.." "...바보가..바보가..이런 바보가 없지. 쿡..." "......어.....?;" 꼭 한 템포씩 박자를 놓쳐가며 어리벙벙하게 되묻는 재중이 못내 우스웠던지 윤호는 다시 웃음을 낮게 터트 렸다. 솔직히 재중이 이렇게 당황스러워 하고 어색해 하는것은 다 이해가 간다. 그동안 자신이 재중에게 했던 짓이 얼만데. 이 정도 반응쯤은 당연히 이해해줘야 하겠지만, 어느새 일주일이란 시간이 지났는데도 전혀 진전이 없는 재중의 행동에 가슴 속 깊이에서 부터 올라오는 괜한 섭섭함까지는 막을 수 없나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다 자신의 산물인걸. 그냥 웃어 넘기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다. 윤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테이블위에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던 리모콘을 들어 티비를 켰다. 켜자마자 요란스레 울려퍼지는 소리들에 괜시리 한 결 낫다는 생각이 들어 재중이 잠시 숨을 밀었고, 윤호는 그런 재중을 곁눈질로 바라보다가 이내는 또 피식. 언제부터 이 애가 나에게 이런 존재가 되었을까. 언제부터일까. 대체, 언제부터. 　　　　　　. . . ........언제부터였는지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건 아마도, 처음부터였다는 말이겠지. 그래. 처음부터. 이내 재중의 시선과 관심은 티비로 쏠려버렸고, 우스꽝스러운 모션을 취하는 개그맨들의 현란한 말빨과 몸놀림에 간간히 작은 웃음까지 터트리며 티비에 열중하는 중이였다. 윤호의 시선조차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아까 전 부터 심하다고 하면 심하게 강한 시선으로 재중을 쳐다보던 윤호였으니까. 웃을 때, 손을 들어 입을 살짝 가리고 웃는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꼭 기집애처럼 저러고 싶을까. 남자가 저렇게 웃는다면 보기 싫겠지만 김재중이라서 그런지 또 엄청 잘 어울린다. 하긴. 김재중이 박유천처럼 '으하하하하하하!!!' 하고 큰 소리로 입을 쫘악 다 벌리고 목청까지 들어 날 정도로 웃는다면 그건 말이 안되지. 눈도 되게 많이 깜빡거린다. 눈이 커서 먼지가 잘 들어가나? 초를 세어보니까 3초에 한번씩은 꼭 눈을 깜빡거리는 것 같다. 그것도 말똥 하게 한번만 깜빡하는 게 아니라 동시에 이어서 두번이나 깜빡깜빡. 그리고 웃으면 눈이 먼저 웃는다. 입 보다도 눈이 먼저 이지러지며 굉장히 예쁜 눈웃음을 자아낸다. 그리고 심하게 웃기면 어깨까지 바르르 떤다. ....젠장. 이건 완전.............. "야." 참지 못하고 낮게 재중을 불러버린 윤호였다. 그러자 깜짝 놀라서 "어?!" 하고 화들짝 윤호를 돌아보는 재중. 윤호는 한참이나 그런 재중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이내는 그런 재중의 얼굴 가까이로 자신의 안면을 들이민다. 놀란 듯 두 눈을 엄청크게 늘려보이는 재중을 또 그렇게 바라보다가 피식, 웃으며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아주 살짝 맞췄다. 온 몸으로 반응하며 크게 흠칫, 떠는게 느껴지자 더 웃겨서 입술을 맞춘채로 피식, 웃어버렸다. "......." 입술을 살짝 떼어내고 재중의 허리를 한 살짝 감아 재중을 화악 끌어안아 버렸다. 쿵쾅 쿵쾅. 미칠듯이 뛰어 대는 심장이 당최 누구의 것인지 알 도리가 없다. "..귀엽게 좀 굴지마." "......어...?" "안 그래도 예쁘고 귀여워서 죽겠으니까." 그렇게 한참이나 윤호의 품에 안겨서 어리둥절 하던 재중의 입가에, 어느새 미미한 미소가 띄워져 버렸다. 너무나도 사랑하는 이 사람의 부드러운 가슴 속에는, 자신과 다를 것 없이 뛰어대는 심장의 고동소리가 다 울려퍼지고 있다. 밤 낮으로 고민하던 준수와 창민에대한 일도, 지금 이 때 만큼은 아련히 흩어질 정도로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이 사람만 있어주면 된다는 그런 조금은 잔인한 생각. 이 사람만 있으면 누가 자신을 싫어하든 증오하든 걱정도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조금은 못 된 그런 생각. "김재중." ".....응.." "배고파. 밥 차려." ....그러나 그것도 잠시다. 금새 재중을 안던 손을 풀고 무뚝뚝하게 말하는 윤호에 의해 한참이나 멍하니 벙쪄있던 재중이 이내는 살짝 눈을 흘기며 윤호를 향해 놀랍게도 짜증섞인 목소리를 낸다. "...지가 해 먹지..." "...뭐?" "...내가 식모야?" ".......쿡......쿡.....푸하하하하하-" 윤호의 집안엔 그칠 줄 모르는 윤호의 웃음소리가 계속 울려퍼지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그대가 날 매몰차게 버려도, 　　　　　　　　　　잔인하게 날 비웃어도, 날 잔인하게 짓밟아도, 　　　　　　　　　　다시 나의 발목을 붙잡는 또 하나의 매개체. 　　　　　　　　　　　　　　　　　 　　　　　　　　　　　　　　　.끈　　　　　#19. 　　　　　　　　　　　　　　written by. 샤그락처녀 　　　　　　　　　　　　　(dndzidzid22@hanmail.net) 　　　　　　　　　　Fancafe# http://cafe.daum.net/SoulYS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그렇게 말 하고 싶어. 　　　　　　　　　　　　　하지만, 그 것 조차도 너무 미안해서 할 수가 없어. 　　　　　　　　　　　　　　　　　 　　　　　　　　　　　　　　　　　monologue by. Xiah 　　　　　　　　　　　　　　　　　　　　. 　　　　　　　　　　　　　　　　　　　　. 　　　　　　　　　　　　　　　　　　　　. 햇살이 따뜻하게 밀려드는 것 같다. 볼륨을 꽤나 크게 올려놓은 티비소리보다 저기 부엌에서 아련히 들려오는 찌개가 끓는소리, 그리고 듣기만 해도 나른해 질 정도로 기분이 좋은 재중의 흥얼거림이 더욱 크게 들려온다. 윤호는 괜시리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힘들게 붙들며 이게 무슨 청승이냐- 하는 생각에 보는 사람도 없는데 괜시리 쑥스러워졌다. 이렇게나 사람을 바꾸어 놓는구나. 사랑이란게, 이렇게나 사람을 간지럽게 만드는구나. "저기- 유, 윤호야." 문득 미묘하던 침묵을 깨고 울리는 재중의 부름에 윤호는 대답없이 주방쪽을 바라봤다.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윤호를 쳐다보며 무언가 어색한지 자신의 볼을 살짝 긁으며 입술을 여는 재중이다. "밥이 좀 질었는데 괜찮아..?" "..나 끈적거리는 거 싫은데." "아..그럼 다시 할게. 조금만 더 기다려줘." "아니야! 됐어. 그냥 먹지 뭐. 아깝게 뭘 다시해." 그냥 생각없이 평소대로 끈적거리는거 싫다는 말을 한게 잘못이였나. 아까워서 다시 하지 말라는게 아니라 힘들게 뭣하러 다시하냐는 말을 하고싶었지만 그게 또 뜻대로 되지 않아서 짜증이 괜시리 울컥 거리며 밀려드는 윤호였다. 윤호의 대답에 한번 생긋 웃어보인 재중이 다시 주방으로 사라졌고, 그걸 빤히 쳐다보던 윤호는 아주 작게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 . . . . ..............이 미친 심장이, 이제는 지 멋대로 발광이다. 그릇을 꺼내는 소리가 들리고, 무언가 부스락거리는 소리가 여러차례 들려오고 드디어 재중의 목소리가 윤호를 부르자 윤호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갔다. 편리하게 작게 만들어진 하얀 식탁에,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그득하게 쌓여있는 반찬가지들을 보자 탄성보다는 한숨이 나왔다. 삼십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였던 것 같은데 대체 언제 이렇게 반찬을 만들었을까. 아니, 그것보다 우리집에 이렇게 많은 반찬을 만들만한 재료거리들이 있긴 했었나. 윤호가 애써 놀라운 느낌을 추스리고 식탁에 앉자 천정에서 몇달 째 쓰지도 않던 머그컵을 뽀득뽀득 씻어 물을따라 국 옆에 놓고는 이내 윤호의 맞은편에 앉는다. "...이 컵은 왜 꺼냈어?" "..보니까 나와 있는 컵은 다 맥주잔이더라구. 맥주잔에 무슨 물을 먹어.." ".....컵은 다 컵인데 뭘." "아니야. 이제부턴 여기다가만 물 먹어." ...이건 또 무슨 고집인가. 한참 재중을 바라보던 윤호는 이내 피식 웃음을 짓고 수저를 들었다. 일단 국이라도 한 술 떠야될 것 같아서 김이 폴폴 오르는 김치찌개를 먹어보았다. "...맛있네." "..응..많이 먹어. 살 좀 쪄야지." "무슨 살이야. 살 찌는거 싫어." "아니야, 얼굴에 살이 너무 없는 것 같아. 이것도 먹고. 이것도.." 듣기만 해도 나른해지는 기분좋고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쉴 새 없이 중얼거리며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밥그릇 그득하게 들어 찬 밥 위에 올려놓으며 입술을 계속 오물거린다. 이렇게 말 많이하는 거 처음보는 거 같은데. "김재중." "..응?" "나 안 무섭냐?" 짖궂은 질문이였다. 살짝 감도는 장난끼를 애써 추스리며 윤호가 그렇게 지긋한 눈빛으로 물어오자 윤호를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재중의 어깨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 할 정도로 미세하게 떨렸다. 괜히 물었나. 하는 생각에 아차하는 윤호지만 그렇다고 했던말을 물릴수는 없는 노릇이다. 괜시리 분위기나 망친 자신에게 머리라도 쥐어박고 싶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다시 주워담을 수도 없고, 그냥 김재중에게서 멋진 대답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전혀 무섭지 않아' 라던지. '여전히 무서워' 라던지.... "..모르겠어." 대답은 그닥 윤호가 바라던 대답은 아니였다. 살짝 윤호가 얼굴을 찌푸리며 '왜 몰라' 라고 나지막히 물어 오자 재중은 아주 살짝 웃음을 지었다. "무서운건 아닌데, 그렇다고 안 무서운것도 아니야. 근데 좋아하는 마음은..전보다 훨씬 커졌어." "...안 무서워하는 것 같은데, 전에는 내가 말만 걸어도 움찔거렸잖아. 나한테 먼저 말도 안 걸었잖아." 피식 웃으며 윤호가 반문하자, 재중의 표정이 아주 살짝은 뚱해졌다. "그래서, 무서워 했으면 좋겠어?" "...쿡...아니." "...밥이나 먹어." 퉁명스레 대답하고 윤호의 밥그릇 위에 또 반찬을 그득하니 쌓아놓는 재중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윤호가 인상을 팍 쓰며 '아씨, 나 시금치 싫어한단 말이야.' 하고 짜증을 내자 재중이 한참이나 피식 웃다가 이내는 손을내어 윤호의 뺨을 아프지않게 살짝 꼬집으며 '완전 애기야. 애기.' 하고 중얼거리자, 황당하다는 듯 재중을 바라보던 윤호는 결국 피식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놔." 결코 차갑지 않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자신의 볼을 꼬집던 재중의 손을 그러쥔 윤호가 재중의 눈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이내는 다시 한번 낮게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재중의 하얀 손에 살짝 입을 맞추며 중얼거린다. "좋아한다. 많이." 정말, 정말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 아니, 좋아한다. 그래..... 사랑한다. . .. "나 집에 가고싶어." 영화를 보던 중이였다. 아무런 표정없이, 주인공이 뭘 하든 무슨 대화가 오가든 관심도 없다는 표정 으로 유천과 준수는 영화를 보던 중이였다. 그렇게나 사가지고 온 팝콘에 손도대지 않으며 영화엔 관심 없이 오로지 머릿속을 묵직하게 누르는 고민들만 생각하던 두 사람중 먼저 입을 연 건 준수였다. 집에 가고싶다고 나지막히 중얼거리는 준수를 바라보던 유천이 그를 지그시 쳐다보다가 이내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나가자.' 하고 중얼거렸다. 뒷 좌석에 앉아서 영화를 보던 사람들이 갑작스레 일어나는 유천과 준수에게 짜증섞인 목소리를 조용히 내었지만 아랑곳 않고 오히려 발자국 소리도 줄이지 않고 쿵쾅거리며 영화관 밖으로 빠져나가는 유천 을 바라보던 준수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에 인상을 팍 쓰며 재빨리 영화관을 빠져나왔다. "왜 짜증을 내. 더 보고 싶으면 더 보지. 나 혼자 나와도 되는데." "아니야." ".....박유천." 빠르게 걷던 걸음을 멈춰버리며 준수가 그렇게 나지막히 유천을 불렀다. 그 부름에 우뚝하니 걸음을 멈춰보인 유천은 한참이나 그 자세 그대로다. 뒤 돌아 볼 생각도 없다는 듯 그렇게 멍하니 서 있는 유천을 찌푸려진 시선으로 바라보던 준수가 그에게로 빠르게 다가섰다. 고개를 숙이고 어디를 주시 하고 있는 지 모를 정도로 엉켜버린 시선으로 어딘가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유천은 지금 무엇인가 생각에 깊게 잠겨있는 것 같았다. "....들어가서 영화 보라구. 이렇게 짜증 낼 거면." "귀염댕아." ".....뭐.." "내가 생각을 해 봤는데." 또 뜬금없이 이상한 소리다. 유천의 말에 준수가 안 그래도 찌푸려졌던 인상을 더욱 찌푸리며 그를 바라 보자 유천은 멍하게 생각에 잠겼던 표정을 어느새 지우고 잘 어울리지 않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준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멀리로 가자." 숨막히는 침묵이 감돌았다. 한참이나 유천이 내뱉은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준수가 멍하니 굳어있자, 유천은 여전히 그 진지한 표정으로 준수의 손을 붙들었다. "멀리로 가자. 멀리로 가서, 아무도 만나지 말고. 아무도 보지 말고. 나는 너만 보고. 너는 나만 보고... 이렇게 살자. 응? 우리 둘만 가서 누구랑도 연락하지 말고 둘이서만 살자." "...박유천...?" ".....그러면, 그러면...어쩌면 네가 나 좋아해줄지도 모르잖아....." "나만 보면, 하루종일 나만 쳐다보면...심창민 같은 거 잊어버리고...나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잖아.. 귀염댕아. 그러자. 응? 우리, 먼 데 가서 둘이서만 살자." 한 마디 말이라도 할 수 있다면, 멍청하게 굳어서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술이라도 떼어 낼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 것 조차도 허용할 수 없이 그저 바보같이 멀거니 유천을 쳐다 볼 수 밖에 없는 준수였다. 그의 아픔이 너무 절절하게 느껴져 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바보냐' 라고 말이라도 해줘야 할 이 상황에, 눈물이 고여 버릴 것만 같은 슬픈 기분이 온 몸을 엄습해왔다. 　　　　. . . . .........정말, 너무 힘들어 보여서. 너무. 너무. "...미안해." ".....왜?" ".....난 그런 거 못 해." "............왜...?" ".....못 해. 병신아. 못 한다구..." 할 수가 없다. 절대 그럴 수 없다. 난, 모든 걸 하찮게만 생각해오고, 오로지 나 사는것에만 연연하던 나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찾아 온 것 만으로도 곤욕인데, 그걸 잊기위해 이 사람과 모든것을 포기한채 떠나버린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다. 절대 할 수 없다. 아무리, 아무리 힘들어도... 그럴 수 없다. 절대로 나는 할 수 없다. ".....가." "......가..심창민한테 가...." "......박유천..." "....가도 돼. 가..가서, 가서 창민이한테 다 말해. 말 안하기만 해봐. 나 진짜 화낼거야. 계속 그렇게 꽁꽁 싸매고 있지마. 가서 다 말해. 그리고, 만약 눈물 나올 것 같으면..." ...심창민이, 널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면... "..그땐, 역시 나한테 와도 돼."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하고 싶었다. 너무나도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슬픔이라는 덩어리가 목에 걸려서, 도무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준수는 차오르는 눈물을 그렇게 감추며. 한참이나 유천을 바라보다가 이내는 뒤를 돌았다. 　　　. . . .........용기 낼게. 그래, 어차피 이뤄지지 않을 거라는 거 알고 있지만 용기 낼게. 　　　　　　　　　　　　박유천. 너 참 좋은 사람이야. 정말 좋은 사람. 정말....... 어디론가로 뛰어가듯 빠르게 걸어 가 버리는 준수의 뒷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유천은 자조섞인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준수가 가 버린 곳과 정 반대방향인 곳으로 천천히 걸었다. 주머니를 뒤적여 핸드폰을 꺼낸 뒤, 배터리를 빼 버렸다. 꺼져버린 핸드폰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이내는 천천히 누군가의 번호를 찍는다. 꺼져버린 핸드폰이기에 번호가 찍혀 나올리도 없고, 액정도 본래 빛을 발하지 못 하고 그저 까맣기만 한데, 번호를 누른 뒤, 정말 통화라도 하듯 그렇게 핸드폰을 귀에다 가져다 댔다. "...귀염댕아..." ...... "...내가 이런 말 한다고, 화 내지 마..." 아무리 중얼거려 보아도, 역시나. 꺼져있는 핸드폰에선, 그가 원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유천은 연신 웃으며 말을 한다. ".....사실, 네가 안 갔으면 했어........" ......... ".....응. 그러니까...난, 네가....잊겠다고. 심창민 잊을거니까, 고백 같은 거 할 필요도 없을 거라고 말 해주길 바랬었어." ........ "...바보...같냐.....?" ........ "......너한테...몇가지만 부탁 할게." .....목이 메여왔다. 그렇게 차갑게 식어서 거칠하던 유천의 입술에, 무언가 하얀것이 내려와 앉았다.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던 유천이 힘 없이 웃었다.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들어 귀에 가져다 댄 채 말이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날 좋아 할 수 없다면, 좋아 할 수 없다고...나 다시는 볼 수 없으면 볼 수 없을 거라고...내 앞에 나타 날 수 없다면 나타 날 수 없다고...그렇게 말 해줘. 난 네가 그렇게 말 할 때까지 죽자살자 기다릴 거니까. 제발, 그렇게 말이라도 해 줘라." ....... "...그리고, 이제부터 나한테 괜한 기대는 주지 마....네가 나에게 기대를 주면, 난 괜히 그 기대를 믿게 되고, 또 한번 네가 그 믿음을 져버리면. 난, 정말. 정말.....너무 힘들어진다......" ...... "그리고, 꼭 심창민하고 행복해라. 만약 네가 혼자가 되서 울고 있다거나 하는 모습 내 눈에 띄이면, 나 바로 너 끌고 내 옆에다만 놓고. 아무도 못 보게, 꽁꽁 싸매고 나만 보게 할 거구. 네가 싫다고 해도 난 너 내 옆에다만 붙여 놓을거야. 행복해라. 죽어도 행복해라." ...... ".....마지막으로..." 어느덧, 하얀 눈과 눈물은 서로 조화를 이루어, 하얗게 식어버린 유천의 뺨을 그어내린다. 빛은 저 밑으로 곤두박질 쳐, 산산 조각으로 부서져 이곳 저곳으로 파편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미안하다는 말, 고맙다는 말..그런 말 하지마라.....그럼 나...정말 너무 비참해지거든.............." 　　　　　　. . . . . . ...............너무 슬퍼지거든........................ 　　　　　　　　　　누가 뭐래도, 그대가 날 매몰차게 버려도, 　　　　　　　　　　잔인하게 날 비웃어도, 날 잔인하게 짓밟아도, 　　　　　　　　　　다시 나의 발목을 붙잡는 또 하나의 매개체. 　　　　　　　　　　　　　　　　　 　　　　　　　　　　　　　　　.끈　　　　　#20. 　　　　　　　　　　　　　　written by. 샤그락처녀 　　　　　　　　　　　　　(dndzidzid22@hanmail.net) 　　　　　　　　　　Fancafe# http://cafe.daum.net/SoulYS 　　　　　　　　　　　　　 　　　사랑이라고, 그게 사랑이라고. 바라만봐도 행복 할 수 있다고. 　　　　　　　　　　　　　언제까지나 바라만 봐도 행복 할 수 있다고.... 　　　　　　　　　　　　　　　　　 　　　　　　　　　　　　　　　　　monologue by. Max 　　　　　　　　　　　　　　　　　　　　. 　　　　　　　　　　　　　　　　　　　　. 　　　　　　　　　　　　　　　　　　　　. 턱까지 차오른 숨에 힘이 들었다. 코끝이 시려오고 계속 쥐고있던 주먹에선 더운 열이나와 손바닥이 땀으로 흥건하다. 한참이나 그렇게 멈춰서서 호흡을 가다듬던 준수가 차가운 입김을 두어번 불어내고 핸드폰을 살짝 그러쥐었다. 핸드폰이 떨리는 건지, 자신의 손이 떨리는 건지 가늠하기 어려 울 정도로 심하게 떨려오는 손에 잠시 호흡을 당겼다. 액정에 불이 들어오고 언젠가 저장해두었던 창민의 번호를 그렇게 소중한 것이나 되는 것 마냥 한참이나 바라본다. 번호일 뿐인데도, 그 형식적인 숫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걸 바라보는 동안 준수의 눈에서 빠르게 무언가가 흘러내려와 그의 상기 된 뺨을 적신다. 　　　　　. . . . .........그냥 떨려서, 그냥 긴장되서 그런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가슴 　　　한 구석이 아련하다. 왜 자꾸만 웃으며 가라던 박유천의 얼굴이 떠오르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그렇게 한참동안이나 망설이다가 결국은 버튼을 꾸욱 눌렀다. 빠르게 걸려지는 전화. 이젠, 더 이상 피할수도 없고 머뭇거릴 수도 없다. 차일거라는 건 당연히 안다. 아니, 내가 왜 자신을 좋아하는지 이유부터 묻겠지. 막말로 만난지 한달도 안 된 사인데 이게 무슨말인지 묻겠지. -"여보세요."- 조금은 고르던 숨결이 다시 또 벅차올랐다. 핸드폰을 통해 울려지는 목소리는 틀림없이 창민의 목소리. 따뜻하면서도 차갑고, 또 부드러우면서도 딱딱한 그 말투에 준수는 힘차게 숨을 당겼다. 살짝 눈을 감고 숨을 빠르게 당겨보인 준수가 떼어지지 않는 입술을 살짝 떼어낸다. "선배, 안녕하세요. 저 준수에요." -"어? 아아아- 준수? 어, 내 번호 어떻게 알았어?"- "....드릴 말씀이 있는데, 잠깐 뵐 수 있어요?" -"...전화로는 안돼? 나 지금 조금 곤란한데." "..아, 그럼 다음에.." 그렇게 두근대던 심장이 막상 얘기를 해보니까 가라앉는다. 그래, 이 사람과 얘기를 하면 마음이 편하고. 한 없이 따뜻해지고, 힘들었던 모든게 가라앉는 듯한 느낌에, 그래서. 나는 그래서 이 사람을... -"아니야. 할 말 있는 것 같은데, 바쁜 일 있어도 제껴두고 나가야지. 어디서 만날까?"- 　 　　　　　. . . .........이래서인가보다. 이래서 이 사람 일 수 밖에 없는가보다..... 전화를 끊고 난 후 준수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앞 날의 일을 다 알 수 있다는 건 그다지 유쾌한 일이 되지 못한다. 자꾸만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른다. 웃으면서 가라고 하던 박유천의 그 얼굴이.... 사실, 그 웃음은 무언의 울음이였고 또 슬픔이다. 웃음으로 얼굴을 몽땅 가리고 나에게 가라고 말 한건... 　 　　. . . ..........사실은, 눈물을 흘리며 가지 말아달라고 부탁 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 걸 알면서도 이렇게 냉정하게 대 할 수밖에 없는 내가 너무나도 잔인하다. 내일 떠나버려야지. 그래. 내일 떠나버려야지.... 다시 집으로 내려가야지. 이 명문고를 포기하면서, 그냥 동네 고등학교에 가면 돼. 이렇게까지 엉켜버린 관계속을 헤집으며 살수는 없어. 여태껏 살아 온 동안, 이렇게까지 힘들고 울었던 한달은 없었으니까. 짧았지만, 그리고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것도 느껴봤었으니까. 그래. 떠나자. 　 　　　　. . . .......너무 힘들다. 도망치자, 김준수. 그래.....도망 가자. 그냥...도망 가 버리자. 준수는 점점 풀려오는 다리에 거리 한복판에서 그대로 쭈그려 앉아버렸다. 무릎팍을 적셔오는 것은 틀림없는 자신의 눈물이다. 두렵다. 많이 두렵다. 사실, 지금 창민에게 고백을 한다는 것 조차가 너무나도 두렵다. 하고싶지 않다. 비참 해 질 것 같다. 너무 싫다. 모든게 다 싫다. 하지만....... 　 　　　. . . . ...........박유천이라는 사람이, 그 좋은 사람이 날 바라보고 있음에, 고백 조차도 　　　　하지 않고 그대로 도망가버린다는 건. 안 그래도 미안한 그 좋은 사람에게 더욱 죄를 짓는게 　　　　　　　　되는거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무섭지만. 무섭지만.................. . "어, 미안하다. 우리 동네까지 오라고 해서. 집에 빨리 가 봐야되서 그냥 여기서 말 하는게 괜찮을 것 같더라구." "아니에요. 미안하긴요." 준수가 살풋 웃으며 고개를 젓자 창민도 살짝 미소를 짓는다. 상기 된 준수의 두 뺨과 붉게 충열 된 두 눈에서, 그가 울었다는 것 쯤은 재차 확인 대답을 듣지 않아도 단박에 알아 낸 창민이 조금은 의문 이라는 표정으로 준수를 빤히 쳐다봤고, 준수 역시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를 빤히 바라본다. 아까부터 내리던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다. "어, 그런데...할 말이 뭐야?" 드디어 창민이 용건을 묻는다. 창민의 집에서 조금 떨어진 이 외진 길가엔 사람은 한명도 다니질 않는다. 오로지 두 사람만 공존한다는 그런 느낌. 아까는 나풀거리며 조금씩 내리던 눈이, 이제는 함박눈이 되어서 펑펑 내린다. 이미 바닥에 쌓여버린 눈을 흘깃거리며 바라보던 준수가 창민이 눈치채지 못 하게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 아까는 그렇게 뜨겁게 느껴지던 자신의 손바닥이 이제는 차갑게 식어버렸다. "...선배." "응." "...나 선배 좋아해요." 눈은 계속해서 내린다. 두 사람의 조금 벌어진 간격을 파고들며 그렇게 계속해서 내려온다. 멍하니 준수를 바라보던 창민이 거의 1분 정도를 아무런 말 없이 굳어 있다. 그런 창민이 이해가 간다는 듯 준수 역시 넘어가지 않는 마른침을 삼키며 계속해서 창민을 바라봤다. "....그렇구나." 아주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왜?" 도 아니고 "정말?" 도 아닌, 그렇구나. 마치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는 듯 너무나도 덤덤한 그 대답에 준수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같은 숨을 깊게 내쉬었다. 아무리 그래도, 놀라 는 기색 정도는 보여줘야 하는게 예의가 아닌가. 자신의 마음같은 건 아무리 아랑곳 없다고 한들, 어쩌면 저렇게 고백을 해왔는데 태연하게 받아드릴 수 있다는 말인가. 어쩌면. 어쩌면. "나 재중이 좋아해. 알잖아." "......네." "근데 왜 고백을 해. 너만 상처 받을거라는 거 다 알면서." ".....어쩔 수 없었어요.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나긋하고 따뜻한 창민의 어조에 준수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래. 다 알고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 진행되는 이야기에, 정말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선배는. 처음부터 날 보면서 웃어줬으니까, 그러니까..." "...지금도, 웃어달라는 말이지?" "...네.." 벌써부터 창민은 웃고있었다. 너무나도 그에게 잘 어울리는 따뜻한 미소에 준수는 흘러내리는 눈물 은 아랑곳 않고 그렇게 그를 마주보며 웃었다. 너무나도 좋아하는 사람. 아니, 이젠 너무나도 좋아한 사람. 이젠 다시 이 사람을 볼 수 없겠지. 날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차버린 사람이지만, 우습게도 밉지가 않았다. 이젠 사람을 미워한다거나. 그런 것 조차도 하찮게 느껴진다. 　　. . .........사랑이라는, 너무 대단한 감정을 알아버려서. 이젠 다른 감정따위는 하찮게 느껴진다. "선배는, 재중이 형한테 고백 안해요?" "응. 안해." ".....왜요...?" 꼭 물어보고 싶었어요. 왜 그렇게 웃으면서 자신의 마음을 철저히 숨기는지. 정윤호에게 미안해서 그런 거라고는 생각 할 수 없어요. 심창민은 그런 면에선 잔인한 사람일거라는 거, 잘 아니까. 대체. 대체 왜 재중이형에게 자신의 마음을 밝히지 않는건지. 정말 궁금했어요. 꼭 물어보고 싶었어요. "...김재중 그 바보는, 내가 말하면 분명히 울거야." "그 바보는, 분명히 하루종일 미안해서 울거고. 그 바보가 울면, 난 더 슬퍼지고. 더 비참해지고. 더 가슴 아파지니까, 그냥 고백 안 하는 것 뿐이야. 그리고, 사실 고백같은 거 하려면 귀찮잖아." 피식. 장난스러운 창민의 대답에 결국은 준수도 웃어버리고 말았다. ".....바라만 보는 사랑도 있어. 꼭 마주해야만 되는게 사랑은 아니야. 뒤에서 바라보면서 행복을 빌어주는 것도 사랑이야. 사랑받아야 사랑한다고 말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지금 내가 하는 이 사랑이 최고로 멋진 사랑이니까.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랑이니까.." 맞아요. 당신은, 세상에서 제일 멋진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내가 당신을 좋아 할 수밖에 없었죠. "그럼 나 들어간다. 어, 집에 잠깐 들러서 차라도 마시고 갈래? 너무 춥다 야." "아니에요. 하실 거 있으시다면서요. 그냥 집에 갈게요. 재중이 형 기다리잖아요." ".....그래. 그럼 나 간다. 잘 가라. 차 조심하고." 고백 했다가 차인 사람과, 고백 받고 차버린 사람답지 않은 대화가 오가자 준수는 괜시리 기분이 이상 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생각했던 것 만큼 슬프지 않았다. 가슴 한 쪽이 먹먹해져 오는 건 여전하지만 이상하게도 슬픈 감정은 아닌 것 같았다. 뒤 돌아서 많이 추운지 자신의 집 쪽으로 빠른걸음으로 걸어가는 창민을 그렇게 한참이나 바라보던 준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선배!!" 그의 부름에, 빠른걸음으로 걷던 창민이 우뚝 자리에 멈춰선다. 그렇지만, 뒤 돌아 보지는 않았다. 준수는 창민의 뒷 모습을 바라보며 한없이 웃으며, 또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커다란 목소리로 소리친다. "재중이형 잊으면! 그땐 나 받아 줄 수 있어요?! 그땐, 나 보면서 웃어 줄 수 있어요?!"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창민은 여전히 뒤 돌아보지 않은채로 머리위로 엑스자를 팔로 그린다. 그의 대답에 준수는 한번 더 생긋 웃으며 "잘가요!" 라고 소리친 뒤 그렇게 자신도 뒤를 돌았다. 　　. . . . .......안녕. 안녕. 정말 많이 좋아했어요. 나한테 이런 멋진 감정 알려줘서 너무 고마워요. 　　　　　　정말, 정말 많이 고마웠어요............ 　　　　　　　　　　누가 뭐래도, 그대가 날 매몰차게 버려도, 　　　　　　　　　　잔인하게 날 비웃어도, 날 잔인하게 짓밟아도, 　　　　　　　　　　다시 나의 발목을 붙잡는 또 하나의 매개체. 　　　　　　　　　　　　　　　　　 　　　　　　　　　　　　　　.끈　　　　　#21 (完) 　　　　　　　　　　　　　　written by. 샤그락처녀 　　　　　　　　　　　　　(dndzidzid22@hanmail.net) 　　　　　　　　　　Fancafe# http://cafe.daum.net/SoulYS 　　　　　　　　　　　　　　　정철- My love 　　　　　　　　　....................사랑해. 　　　　　　　　　　　　　 　　　　　　　　　　　　　　　　　 　　　　　　　　　　　　　　　　　monologue by. ... 　　　　　　　　　　　　　　　　　　　　. 　　　　　　　　　　　　　　　　　　　　. 　　　　　　　　　　　　　　　　　　　　. "응? 그러니까아아안. 나는 말이야. 그 나쁜새끼가아! 나를! 엉?! 나를 안 떠났으면 하는 그런 마음 에서어! 그런 마음에서!!! 그냥 한번 슬쩍 떠본건데. 그 씨발 싸가지 없는 놈은!! 싸가지만 드럽게 없는 그 놈으으으은!!!!! 뒤도 안 돌아보고. 자빠지지도 않고 존나게 뛰어가고오오!! 씨발, 나만 좆되고!! 어?!" "..그만 해라, 박유천. 시끄럽다. 잠 자자. 자자. 코 자자." "싫어어어!!! 내가 왜 자!! 나 귀염댕이 좋아. 좋아. 좋아! 쪼우아! 이히히. 나 귀염댕이 없으면 잠 안자!" "...아오. 진짜 이걸 어떻게 해야 돼..." 이렇게 추운 날 보일러도 세게 틀어놓지 않았거늘 윤호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미 자신의 집 거실은 난장판이 되어버린지 오래였고 그 난장판 거실 한복판에 앉아서 소주병을 들고 벌개진 얼굴로 집 떠나 가라 고함을 내지르는 유천은 취해도 너무나도 심각하게 취한 상태였다. 집에 갑자기 찾아와서 재중이를 내 쫓더니 짜증이 잔뜩 난 자신에게 대뜸 하는 말이 술 먹자 였다. 뭔가 표정에 안 좋은 기색이 잔뜩 감겨 있어서 술을 사다주긴 했건만, 술도 그렇게 세지 않은 놈이 소주 세병먹고 완전히 맛이 가 버려서 지금 윤호를 있는대로 언짢게 하고 있었다. "아, 씨발! 왜 남에 집에 와서 지랄이야 미친놈아. 아니, 왔으면 곱게 쳐마시고 쳐자든가. 씨발놈이 꽥꽥 소리는 질러대고 지랄이야, 지랄이. 아, 빨리 안 쳐잘래!! 지금 열두시 넘었어 씨발놈아!" "안 자!! 안 자아아아아!!!!!!!" "입 다물어 씨발놈아!!" "..이씨..정윤호. 너 존나 미워. 진짜. 진짜 존나 미워어어어어...." 울 것 같은 표정을 하면서 결국 울지는 않는다. 한참이나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유천을 바라보던 윤호는 결국 한숨을 푸욱 내쉬며 자신의 머리를 있는대로 헤집고 그런 유천의 앞에 털썩 앉아서 담배를 물었다. 아무래도, 김준수 그 꼬맹이랑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이렇게나 술이 떡이되서 지랄하는 모습은 처음 봐서 조금 어색하기까지 하다. 　　　　. . . ..............병신, 죽어도 울지는 않는구만. "정윤호오오오." "왜." "행복해?" "아, 뭐가!" "행복하냐구우!! 김재중하고 얼레리 꼴레리 하니까 행복하냐구우!!" "...씨발, 그래 존나게 행복하다! 됐냐!!" "......그래 됐다 개새끼야." 잔뜩 풀린눈과 꼬여버린 혀로 혼자 뭐라뭐라 중얼대더니 손에 들려있던 얼마 남아있지도 않던 소주를 이번엔 한꺼번에 입에다 쳐 붓는다. 그 모습을 보며 뜨악하는 표정을 짓던 윤호도, 이제는 될 대로 되라 라는 식인지 그냥 망연자실히 그런 유천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다. "나 김준수한테 전화 해 볼래." "...차였냐?" "전화 해 볼래." "...차였으면 하지 마. 꼴 사납게." "전화 할래. 내 핸드폰 어딨어, 윤호야..." ".....왜 해. 용건은 있어? 용건 없이 전화하면 싫어해." "할거라구!! 내 핸드폰 내놓으라구!!" 어린아이 처럼 있는대로 짜증을 부리며 발을 구르는 유천을 벌레보듯이 짜증나는 눈빛으로 쳐다보던 윤호가 "에라이 씹새끼야-" 하며 저기 구석에 굴러다니던 유천의 핸드폰을 유천의 머리에 던져버렸다. 딱딱한 핸드폰에 머리를 맞고도 아무런 감각이 없는지 눈만 꿈뻑거리던 유천이 이내 자신의 어깨에 부딪히며 흘러내리는 핸드폰을 쥐어들고 한참이나 빤히 바라본다. "...심창민하고..어떻게 됬냐고 물어볼거야...잘 됬냐고..." ".....심창민? 그건 또 무슨소리야. 창민이랑 김준수가 뭐가 잘 돼." "......물어 볼거야. 대답 안 해줘도 물어 볼거야..." "............" 　　　. . . . . ...........알아. 비참하다는거. 존나게 비참하다는거. 근데. 씨발, 지금 전화 안 하면 　　　　나 돌아버릴 것 같아. 술 마신 이유도 그거야. 한번만이라도, 단 한번만이라도 놈한테 　　　　　제대로 말 하고 싶어. 너무 좋아한다고. 너무 사랑한다고. 술에 기대어서라도, 말 해보고 　　　　　　　　싶어. 나 여태껏, 놈한테 제대로 해준 거 하나도 없단 말이야............ "이 좆만한 새끼가 어디서 눈을 그따구로 떠, 엉?!" "씨발놈아! 나만큼 큰 좆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아 근데 이 새끼가 진짜." 퍼억! 뒤로 힘 없이 대자로 뻗어버린 준수가 잠시 눈을 감는다. 씨발...이게 뭔 꼴이야. 짜증나게. 집에 들어가기도 그렇고, 술이라는 것에 한번 기대보기라도 할까. 하는 청승맞은 생각에 혼자 술을 떡 되도록 마신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였다. 제어 할 능력도 없으면서 계속 부어대다가 문득 시계를 보니 자정이 넘은걸 문득 깨닫고 일어나서 주체 안 되는 몸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걷다가 하필이면 이 양아치 새끼들과 부딪힌게 문제였다. 대뜸 욕부터 날라오길래 준수 역시 그닥 좋은 성격이 되지 못 하는 터라서 (더군다나 술에 심하게 취해서 사리분별이 제대로 되지 않았었기에) 맞 받아 있는대로 욕을 했다가 결국은 맞아버렸다. 안 그래도 싸움엔 소질이 없는데. 이렇게 술에까지 취해버리니까 몸이 쉽사리 일으켜지지 않는다. "기집애같이 비리비리 말라가지고. 아, 씨발 이거 어떻게 해야되냐?" "확 따먹어 버려. 쿡쿡..." "미친놈아. 사내새끼를 따먹냐?" "왜. 야하게 생겼구만. 몸매도 딱이고. 사내새끼 후장이 얼마나 끝내주는지 모르는구나, 너." 점점 그렇게 취해있던 술이 깨어나가기 시작했다. 차가운 날씨때문에도 그랬고, 놈들이 중얼거리는 수치스러운 말 소리에 더욱 그랬던 것이다. 준수가 입술을 꾸욱 깨물고 힘겹게 몸을 일으켜 보이자 곧바로 다시 날라오는 다른 놈의 발에, 앞 가슴을 정통으로 채인 준수가 "욱.." 하는 신음과 함께 다시 몸을 앞으로 숙여버렸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만큼 아프게 눌려오는 고통에 눈물까지 고일 지경이다. 　　　　. . . . .............문득 떠오르는 얼굴. .......말도 안돼. 이 이놈이 떠오르는거야. "호오. 진짜 꼴리게 생겼네. 기집애같이." 기분나쁜 웃음을 지으며 준수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준수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던 남자가 준수의 턱을 들어올렸다. 감상하듯 이리저리 턱 잡은 손을 움직이며 준수의 얼굴을 보던 남자의 웃음은 더욱 짙어져만 간다. 아찔한 예감에 준수의 눈동자가 일렁거리고, 그 모습을 보던 대여섯명은 되는 남자들이 피식거리며 비웃음 비슷한 웃음을 낮게 흘려댔다. "..안 꺼질래." "야. 꺼지랜다." "푸하하하하하하-" 뭐가 그리 우습고 즐거운지 지나가던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쳐다 볼 정도로 커다랗게 웃는 이들에게 준수는 치가 떨릴 정도로 수치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되지. 정말 어떻게 해야 돼. 일단 맞는 건 둘째치고 이러다간. 정말 이러다간....... "!..." 그때였다. 갑작스레 느껴지는 진동에 준수가 재빠르게 핸드폰을 꺼내보였다. 번호를 확인 하자 마자 곧바로 차오르는 눈물 때문에, 다시 한번 더. 다시 한번 더 확실하게 그 번호 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럴수가 없었다. 뭐지. 도대체 뭐지. 대체 이 기분은 뭐냐구. 아까부터 궁금했어. 박유천. 너만 생각하면 느껴지는 이 기분을 말이야. 말로 설명할 수가 없이 아릿하고 먹먹해져오는 이 통증을 말이야. 대체 뭐야. 대체.....너란 사람은 나에게 있어서 뭐냔 말이야..... 준수가 멀거니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핸드폰을 받을 생각도 않고 쳐다보고만 있자 뭔가 이상하다 느꼈 는지 준수를 둘러싸고 있던 남자 중 한명이 빠르게 준수의 손에 들려있던 핸드폰을 낚아채어 액정을 들여다 본 후 태연스레 전화를 받았다. "누구냐?" -"..너 누구야."- "너는 누군데 씨발놈아." -".....너 누구야."- "너 이 애새끼 친구냐? 어?" 키득거리는 웃음소리와 커다랗게 올려놓은 소리때문에 꽤나 떨어져 있는데도 핸드폰으로 들리는 유천의 목소리가 확연하다. 그저 망연자실히 유천과 놈이 통화하는 걸 바라보고만 있던 준수가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젠, 뭐든 다 상관이 없다. -".....거기 꼼짝말고 기다려."- "..미친놈. 여기가 어딘 줄이나 아냐." -".....알아." 웃음이 나온다. 알긴 뭘 알아 박유천. 병신아. 여기가 어딘지 네가 어떻게 알아. 내가 어디에 있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미친놈아... 병신아....... 끊긴 전화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던 남자가 "뭐야, 이 미친놈?" 하더니 핸드폰을 다시 준수에게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는 또 다시 준수의 앞에 쭈그려 앉더니 "아 이새끼 어떻게 데리고 놀까. 다 벗겨가지고 지하철 한복판에 새워놓을까?" 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중얼거린다. "...니네 맘대로 해라, 씨발놈들아." 결국 위엣말을 중얼거리며 자포자기식으로 모든 걸 놓아버린 듯 준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유치한 놈들. 정말 하지도 못 할 거면서 겁 주려는 심사로 저렇게 중얼거린다는 것 자체가 유치하다. 그리고 순간, 단련된 딱딱한 주먹이 다시 한번 더 준수의 왼쪽 뺨과 부딪힌다. 둔탁한 마찰음이 나긴 했지만 준수는 비명하나 지르지 않고 그렇게 맞고만 있을 뿐. "애 때려보는거 오랜만이라서 괜히 재밌잖아." 위엣말을 웃어보이며 중얼댄다. 그러더니 이번엔 다른 남자가 준수의 숙여있던 머리를 발로 심하게 내리찍어 버렸다. 이번엔 강도가 심하게 세다. 인상을 확 찌푸린 준수가 너무 맞아서 머리가 팽글팽글 도는 걸 느끼면서도. 어쩌면 이 자리에서 옷이 벗져질지도 모른다는 걸 느끼면서도 이렇게까지 태연 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 . . . ........믿을 수 없겠지만, 어떻게든 박유천이라는 그 사람은. 내가 있는 곳을 찾아내서 　　　　　여기까지 와 줄 거란거. 믿기 힘들지만.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지만... "야, 이 개새끼들아." 　　　　　　　　　. . . . . . . . . .................................................. .....어쩜 저래. 저 사람...어쩜 저래. 어쩌면, 어쩌면 나 이렇게 울게 만들어...... "....박유천....." 엄청 뛰었는지, 이마엔 땀인지 물인지 모를 물방울이 가득 맺혀 턱을 타고 내려와 바닥으로 뚝뚝 떨궈지고 있었다. 얼마나 뛰었을까. 아니, 어쩌면 이렇게 짧은 시간에 날 찾아 낼 수 있었을까. "뭐야, 저 새끼는." 남자들이 모두 준수에게 향했던 시선을 거두고 유천을 바라본다. "..씨발. 사람 존나 많네. 오빠들, 나 싸움 못 한단 말이야." 장난스럽게 중얼거리며 씨익 웃으며 말 하는 유천의 얼굴은 그들의 화를 더욱 더 부추기고 있다. 눈물이 앞을 가려 유천의 얼굴을 잘 볼수는 없었지만 유천의 말투나, 조금씩 흔들리는 눈동자를 봐서 술에 만취한 상태라는 걸 딱 알아 볼 수 있는 준수였다. "...저 새끼 죽여." 대가리로 보이는 놈이 낮게 중얼거리자 남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곧바로 유천에게 달려들었다. 소리한번 내지 않던 준수가 "박유천!!!" 이라고 꽤액 소리를 지르고, 이내 유천의 몸은 남자들의 몸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맞고 있다는 것 하나만큼은 명확하다. 처음부터 유천 혼자서 저 많은 놈들을 상대한다는 건 무리였고, 더군다나 술에까지 취해있는 이 상황에 유천이 준수에게 해 줄 수 있는건 대신 맞아주는 것 뿐이다. 팍!! 퍽!!! 타악!! 몸과 몸이 부딪히는 둔탁하고도 소름끼치는 마찰음이 온 거리를 울리고 있었지만 주위에 있던 사람 들은 경찰에 신고하기는 커녕 신나는 구경거리라고 쳐다보기에만 바쁘다. 미친놈. 미친놈. 박유천 미친놈. 미친놈. 미친놈.......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하염없이 눈물만 떨구던 준수가 핸드폰을 들어 '112' 라는 숫자를 빠르게 찍어내고 누군가 전화를 받자 눈물섞인 목소리로 상황을 앞 뒤 구분없이 무작정 설명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경찰차에서 울리는 신호음이 저 멀리서 들려오기 시작하자 미친듯이 유천을 밟아대던 남자 들이 모조리 어디론가 빠르게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남자들이 사라지자 드디어 보이는 건. ".......병신아..." 이리저리 부은 얼굴에, 피가 너무 많이 흘러서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 하는 유천. 길 바닥에 아무렇게나 몸을 뉘이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지르며 쓰러져 있는 유천을 쳐다보던 준수가 빠르게 그에게로 뛰어갔다. 눈물이, 눈물이. 너무 많이 흘러서 앞 조차 보이지 않는다. "병신아...병신아...너 나 얼만큼 울게 할래...어..? 너 왜이래...왜 자꾸 나 울게 만들어... 너 진짜 왜그래.. 왜 이렇게 나 힘들게 해...병신아.....병신아..." "...하하..내가 이겼어, 병신아....봐봐. 저 새끼들 다 도망갔잖아. 내가 이겨. 내가 이겼어..." "......진짜 병신...진짜..진짜........" 천천히, 천천히 무언가가 풀린다. 가슴속이 쌓여서 그리도 복잡하게 엉켜있던 무언가가 아주 천천히 풀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그쳤던 눈이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너 때문이야...다 너 때문이야.....미친놈아...네가 날 너무 좋아하니까 그래..네가 날 너무 좋아하니까.." 자신이 무슨 말을 내뱉고 있는지도,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채 준수는 그렇게 울먹이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눈 조차 제대로 뜨지 못 할 정도로 맞아 놓고서, 뭐가 그리 좋은지 유천은 계속해서 웃고만 있다. ".....다 핑계야...핑계야....." "......귀염댕아..." ".....너같은 놈을...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 . . . . . . . . .................................................. 좋아 할 수밖에 없나봐. 아니, 좋아 하려고 노력 할 수밖에 없나봐. 너 같이 바보같은 놈은 처음이야. 너 처럼 막무가내인 놈은 처음이야. 탁. 드디어 풀려버렸다. 그렇게도 엉켜서 그들을 옭아매던 잔인한 끈이 드디어 풀려서, 길게. 쭈욱 뻗어 아름다운 호선을 그린다. 유천의 집으로 향하는 길거리는 늦은 밤이라서 그런지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맞아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아직도 취해서 그러는 건지 자꾸만 휘청거리는 유천 덕택에 자신의 몸도 가누기 힘든 마당에 준수의 유천의 팔을 들어 자신의 목에 감고 그를 부축하며 걷고 있다. "...어떻게 찾았어." ".....뭘..." "...나 어떻게 찾았냐구. 바보야." ".....몰라. 그냥 직감." "...병신...." 어두운 밤, 그런 까맣디 까만 밤 하늘을 덮어버린 하얀 눈이. 오렌지 빛 가로등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두 사람의 인영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귀염댕아." "응." "나 취했냐?" "몰라, 병신아." "귀염댕아아.." "아, 왜 자꾸 말 시켜. 힘들어 죽겠는데. 똑바로 좀 걸어봐." "...귀염댕아..." ".......응." "사랑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 되어 있데..." "........응..." "그래서, 사랑이 끝난 후에도..다른 한 사람이 그 끈을 놓아도 나머지 한 사람만 놓지 않으면.." ".....응..." "...두 사람은 이어지게 되어있데.." "......사랑이라는 이름의 끈으로." 묶인다. 얽힌다. 감긴다. 하나가 된다. ...................끈.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