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이른 아침부터 짙은 안개에 덮여 있었다. 나뭇잎 사이로 희미한 햇살이 스며들었고, 작은 새들이 짧게 노래하다 사라졌다. 빨간 망토를 두른 소녀가 바구니를 들고 길을 걸었다. 그녀의 이름은 아무도 정확히 몰랐다. 다만 모두가 그녀를 ‘빨간 모자’라고 불렀다. 할머니가 병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는 딸에게 빵과 버터, 포도주가 든 바구니를 건네며 말했다. “길에서 벗어나지 마. 낯선 이와 말하지도 말고.”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숲의 냄새가 너무 깊고 달콤해서 마음이 금세 흔들렸다. 새들이 이끄는 길 따라 조금만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다. 그때 나타난 늑대는 생각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 “어디 가는 길이니, 예쁜 아가씨?” 빨간 모자는 겁을 먹었지만, 그 말투에는 이상한 매력이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할머니께 가요. 병이 나셔서요.” 늑대는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더 빠른 길을 알려줄게. 하지만 먼저 예쁜 꽃을 좀 꺾어 가면 어떨까? 할머니가 분명 좋아하실 거야.” 그 말에 소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늑대는 그 틈을 타 숲속 깊은 지름길로 달려갔다. 늑대는 먼저 오두막에 도착해 문을 두드렸다. “할머니, 저예요. 빨간 모자예요.” 문이 열리자, 늑대는 단숨에 뛰어들어 할머니를 꿀꺽 삼켰다. 그리고 할머니의 옷을 입고 침대에 누워 기다렸다. 잠시 후 빨간 모자가 도착했다. 그녀는 낯선 기운을 느꼈지만, 할머니의 낡은 목소리가 들리자 안심했다. “할머니, 목소리가 좀 이상해요.” “감기가 심해서 그렇단다.” “눈이 왜 그렇게 커요?” “너를 더 잘 보기 위해서지.” “손이 왜 그렇게 커요?” “너를 더 잘 안기 위해서란다.” “입이 왜 그렇게 커요?” 늑대는 낮게 웃었다. “너를 더 잘 먹기 위해서지.” 순간 늑대는 이빨을 드러내며 뛰어들었다. 빨간 모자는 비명을 질렀지만, 마침 근처를 지나던 사냥꾼이 그 소리를 들었다. 그는 문을 부수고 들어와 늑대의 배를 갈랐다. 안에서 할머니와 빨간 모자가 무사히 나왔다. 늑대의 배는 돌로 가득 채워졌고, 그가 다시 깨어날 일은 없었다. 모든 게 끝난 뒤, 빨간 모자는 숲을 돌아보았다. 햇살이 다시 가지 사이로 흘러내렸다. 그녀는 조용히 속삭였다. “이젠 절대 길을 벗어나지 않겠어요.” 하지만 그 말에는 단순한 복종이 아니라, 세상을 새롭게 이해한 자의 단단한 결심이 섞여 있었다. 그날 이후 빨간 모자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었다. 숲의 냄새를 알아보고, 어둠 속 목소리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 숲도, 그녀의 용기를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