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 충의공 엄선생 실기 : 忠毅公嚴先生實紀
원서명 忠毅公嚴先生實紀
저/편자 엄석헌 (嚴碩憲 , ? ~ ?) 편, 엄택진 (嚴垞鎭 , ? ~ ?) 편
원강사기 圓岡祠記 | 좌승지左承旨 엄기嚴耆
강원국학자료 국역총서 03, 율곡연구원 발행 20221.2.25

원강사기 員岡祠記
[정조 기미년(1797, 정조 21)에 건립하였다]
          좌승지 엄기(嚴耆)
≪좌전(左傳)≫에 이르기를, “귀신은 *동류(同類)가 지내는 제사가 아니면 흠향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모셔야 할 귀신이 아닌데 제사 지내는 것은 아첨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공은 영월(寧越) 사람인데 울주(蔚州)에 사당을 짓는 것은 아무 의리가 없으니, 신이 흠향하겠는가?
아! 공의 절개는 하늘에 있어서는 일월성신(日月星辰)과 같고, 땅에 있어서는 산악과 같아서 만고의 세월이 지나서도 사라져 없어질 수 없다.
그러나 드러나고 감추어지는 것은 때에 달려 있다.
처음에 공이 한목숨 바쳐 큰 *강상(綱常)을 부지할 때 어찌 사후의 명성에 뜻을 두었겠으며, 또한 어찌 후손의 *영고성쇠(榮枯盛衰)를 생각할 겨를이 있었겠는가?
*동청나무에 새벽 달빛 비치니 *금속산(金粟山)으로 유해를 몰래 짊어지고 갔고, 창해에 돗단배 타고 떠났던 *치이자피(鴟夷子皮)의 고고한 자취를 따를 길이 없다. 당시의 종적은 비유컨대 학이 떠난 뒤 구름이 텅 비고 용이 돌아간 뒤 강물만 아득한 것과 같다. 더구나 그 후손들이 위축되어 감히 세상에 나오지 못한 것이 거의 수백 년이다.
*엄응탄(嚴應垣)【‘원(垣)’ 자로 잘못 쓰여 있다.】 과 엄응일(嚴應一)에게 후사가 없다는 애사(哀辭)는 지사(志士)로 하여금 한을 품게 하고, *엄제한(嚴悌漢)이 제사를 대신 받든다는 명문(銘文)을 보아 외손만 홀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고양(高陽)의 호적과 예천(醴泉)의 계파가 어지러이 섞여 나와 그 진위를 가릴 수 없다.
비록 우리 종가에서도 감히 단언하여 의혹을 분변하지 못하는 탓에 조정에서 후손을 녹용(錄用)하는 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