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중봉조헌선생선양회

  제20회 중봉조헌문학상 
◈  대   상  ◈

      
                          태엽을 감는 손

                                                                        김 근 범

아버지의 유품 가운데 낡은 기계식 손목시계 하나가 있다. 은빛이 바래 누르스름하게 변한 메탈 줄, 긁힌 자국이 켜켜이 쌓인 유리면. 하지만 그 안의 초침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나는 가끔 그 시계를 귀에 가져다 댄다. 딱, 딱, 딱. 기계의 심장이 뛰는 소리. 마치 아버지의 맥박이 아직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것만 같아, 차마 서랍 깊숙한 곳에 밀어두지 못한다.

생전 아버지는 매일 아침 태엽을 감으셨다. 출근 전, 넥타이를 매기 전, 거친 세상과 맞닥뜨리기 직전. 시계의 용두를 두 손가락으로 쥐고 돌리는 일은 하루를 여는 아버지의 첫 의식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것이 그저 낡은 시계를 가진 자의 번거로운 습관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마흔 중반의 가장이 된 지금에야 비로소 깨닫는다. 그것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가장으로서 오늘 하루도 온전히 버텨내겠다는 무언의 결의였음을.

1592년 금산, 중봉 조헌(趙憲)은 칠백 의사와 함께 왜적 앞에 섰다. 구원병의 발길은 끊겼고, 등 뒤에서는 헛된 죽음을 피하라는 목소리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돌아서지 않았다. 일찍이 지부상소(持斧上疏)의 도끼를 곁에 두고 대궐 앞에 엎드렸던 그 서슬 퍼런 손으로, 이번에는 기꺼이 창을 쥐었다. 끝내 전원이 산화했고, 지금 금산의 그 자리에는 칠백 개의 넋을 한데 모신 둥근 의총(義塚)만이 무거운 침묵으로 남아 있다.

사람들은 그를 '의(義)'의 상징이라 부른다. 오랫동안 나는 그 '의'란 웅장하고 비장한 자들의 전유물이라 여겼다.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 앞에서 기꺼이 목숨을 던지고, 그리하여 청사에 찬란한 이름을 남기는 것.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