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자형姉兄의 언어                                                          글 德田 이응철(수필가)금병산 줄기가 드넓게 펼쳐진 실레마을은 고향 정족리에 비하면 신문명이 먼저 자리잡은 선진지역이 분명하다.  기차 정거장이 있고, 교회가 있고 학교가 있는 개방된 마을이라 유년기 시절 무작정 내겐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웃인 정족리와 실레는 천양지차였다. 우리 동네는 폐쇄적이다. 유학의 사상에 젖어 외지에서 변화의 물결이 전무하다. 새미泉 진양지로 오르다가 시루 버덩으로 나가면 실레마을이 펼쳐진다. 역무원들이 금테 모자를 쓰고 깃발을 들고 역전을 엄하게 통제해 주눅이 들었다. 당시 춘천행 무네미 기적소리는 시계가 귀하던 시절, 심야와 새벽을 알려주는 어머님의 유일한 시계였다. 
중학생일 때 장에서 공을 사다 주며 학용품도 군말없이 챙겨주던 막내 누나가 몇 번의 월하노인月下老人의 잦은 발품으로 결국 남의 식구가 되어 혼인을 하게 되었다. 슬펐다. 당시는 막내 누님을 빼앗기는 것 같은 고통이었다.  신랑은 가까운 이웃 실레마을에서 밥술이나 먹던 양주 조趙씨의 21대 손이었다. 철부지 중학생인 나는 어머니 심부름으로 참기름,들기름이며 별난행사가 끝나면 새미(泉) 시루 버덩을 지나 실레마을을 자주 갔다.
그런 막내 누님의 출가가 인연이 되어 평생 문학의 길을 걷게 될 줄이야!훤칠한 체격에 마치 이국인 같은 미남을 사위로 맞은 엄니는 뛰어난 외모가 오히려 늘 걱정이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시곤 했다. 외모로 바람이라도 피우지 않나 하는 셋째 사위의 전철 前轍 때문이셨으리라. 엄격히 따지면 자형은 손윗 누이의 남편이고, 매형은 손아래 여동생의 남편이지만, 대개 매형이라고 부르곤 한다. 자형은 호남이셨다. 딸 부자인 정족리에 오시면 항상 처가 식구들에게 선심을 쓰셔 모두 좋아했다. 많은 식구 거느리고 먹여 살리기 위해 일에 쪼들려 형님의 이마엔 항상 내천川 자가 그려져 있다. 평소 일에 파묻혀 과묵하게 대하시다가, 자형이 넘어오시는 날은 모처럼 긴장을 풀고 크게 웃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