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그랑 주머니/ 이미란

 

시골집 안방 문을 여니 향냄새가 코를 확 덮쳐온다. 엄마가 엉덩이 걸음으로 방 가운데까지 옮겨와 해쓱한 얼굴로 활짝 웃으며 나를 반긴다. 간병인 도움으로 머리를 감고, 채 마르지 않는 머리카락을 빗질하여 시골 아저씨 포마드 바른 머리처럼 딱 붙여 놓았다. 흐트러진 자신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 걱정시킬까 봐 오매불망 걱정이다.

  “저기 호박 가져가거라. 분이 많은 것이 참 좋다.”

해마다 농사지은 호박 중 가장 태가 나는 것을 내 몫으로 남긴다. 엄마가 주는 알토랑 같은 호박, 알밤, 모과, 대봉감, 탱자 등을 우리 집 응접실 귀퉁이에 장식해놓는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한겨울 내내 가을의 풍요로움을 즐긴다.
봄이 산 너머에서 냄새를 풍겨오면 봄맞이 대청소를 한다. 이때 가을의 잔재를 정리하다 보면 호박에는 번번이 속는다. 윗부분은 멀쩡한데 밑은 감쪽같이 살살 상해 들어와 못쓰게 되어 있다. 호박은 골병이 들면 쉽게 상한다. 추수할 때나 옮겨올 때 크고 무거우니까 알게 모르게 부딪쳐 골병이 드는 모양이다. 보이지도 않는 껍질 밑에 사정을 어찌 알리오. ‘조금만 더 있다가’ 미련을 부리다가 당하는 매년 연례행사다.
멀쩡한 호박이 속은 손쓸 수 없게 상해있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인물 좋아 선택된 귀한 것을 해마다 이런 상황을 만들고 보면 죄송스럽다. 속은 다 상하고 겉모양만 남아 있는 물건을 사그랑주머니라고 한다는데 상한 늙은 호박은 영락없는 사그랑주머니다.
 상한 늙은 호박을 보면 엄마의 얼굴이 겹쳐 떠오른다. 호박은 멀쩡한 겉과 달리 속이 몽땅 상해 있다. 삭정이처럼 사그라진 모습이라도 겉은 아쉬운 대로 봐줄 만하나 내장은 모두 유효기간을 넘긴 상태가 어떻게 이렇게 닮았을까. 늙은 호박이나, 엄마나 골병들어 속이 몽땅 상한 모양이다.
 엄마는 다리를 쓰지 못한다. 방안에서 용변을 처리하다 보니 고약한 냄새가 날 수밖에 없었다. 유별나게 냄새에 민감한 딸을 위해 향을 피워 냄새를 쫓으려고 용을 쓴다. 몸은 사그라질 대로 사그라진 상태인데도 자기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