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 나의 스무살 이야기

주머니가 많은 앞치마 (2026.6.22)                                  

  나의 스무 살은 ‘주머니가 많은 앞치마’였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길 때마다 주머니 하나를 더 채워 갔다. 빵을 굽고, 그림을 그리고, 한복을 입고,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을 만나며 그 안을 차곡차곡 채워 나갔다. 꿈의 주머니였다. 그렇게 주머니를 늘려 가다 보니, 어느새 지금의 내가 되었다.

  2015년, 이어폰에서는 엑소의 「Call Me Baby」와 소녀시대의 「Lion Heart」가 번갈아 흘러나왔다. 블라우스에 테니스 스커트를 입고, 가방에는 늘 노트북을 넣어 다녔다. 누가 봐도 대학 새내기였다. 그해 나는 처음으로 부모님을 설득해 자취를 시작했다. 이유는 세 가지였다. 야간작업, 동아리, 그리고 지역아동센터 미술 교육 봉사.

“네가 빨래는 돌릴 줄 아니? 설거지는? 화장실 청소는?”

  부모님의 걱정은 당연했다. 한 번도 집을 떠나 살아본 적 없는 딸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다. 결국 부모님은 허락하셨고, 나는 학교 근처의 작은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고시원 계약서에 도장을 찍던 날, 좁은 방보다도 앞으로 펼쳐질 대학 생활이 먼저 떠올랐다. 고시원 생활은 나에게 앞치마의 주머니를 하나둘씩 선물했다. 

주머니 하나, 야간작업

  미술 실기실에서 밤을 새우려면 세 명 이상이 함께 남아 있어야 했다. 친구들은 야식을 시켜 먹으며 새벽까지 작업을 이어갔다. 하지만 나는 늘 먼저 자리를 떠나야 했다. 집이 경기도여서였다. 막차 시간에 맞춰 짐을 챙기고 실기실을 나설 때면 친구들은 여전히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건 어쩐지 그들만의 리그 같았다.

  고시원으로 들어간 첫날, 나는 처음으로 막차 시간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작업이 끝날 때까지 남아 그림을 그리고, 새벽녘 실기실 문을 열고 나왔다. 서늘한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항상 집에 있을 시간이었는데, 그날은 학교 앞 거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