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같은 마음을 머물게 하는 일/이태호    -어떤 인연-

왜 이혼했을까, 굳이 묻지 않았다. 첫 번째 배우자는 나도 잘 아는 이였다. 한평생을 함께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주변 모두가 인정하던 사내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혼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렸고, 그는 받아들였다. 내가 알지 못하는 단초들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결정적인 이유는 서로의 마음을 온전히 얻지 못한 데 있지 않았을까 짐작할 뿐이다.

이혼 후 그녀는 새장을 탈출한 새처럼 거침없이 한국을 떠났다. 외국인 선교사와 재혼했다거나 호주로 이민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느 쪽이든 그녀가 우리 곁을 떠났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철 지난 매미 울음이 들리던 어느 날, 스무 해가 훌쩍 지나 성인이 된 자식들과 함께 그녀가 불쑥 나타났다. 귀국하자마자 오빠를 찾아왔다며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가 그녀를 수양딸로 들이셨기에 나는 그녀의 오라버니였다. 선친의 친구였던 그녀의 부모는 일찍 세상을 떠났으나, 왜 그토록 서둘러 삶을 마쳤는지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그녀는 총명하고 빼어났다. 학창 시절 내내 수석을 놓치지 않았고, 또래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그런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가출을 감행했다. 이유는 듣지 못했지만, 그녀가 두고 간 철학책 여백에서 단서를 발견했다.
‘나는 항상 타자의 시선에 붙들려 있다. 그 시선 때문에 불안을 느낀다.’

사르트르의 불안 개념에 깊이 빠져있었던 듯하다. 친자가 아니라는 어른들의 수군거림도 한몫했을 것이다. 좁은 마을에는 늘 말이 넘쳤으니까. 그러나 나는 다르게 생각했다. 더 높이 날고 싶은 갈매기의 당찬 비상이었을 것이라고.

그녀와 나는 열일곱 달 차이다. 부모님은 생전에 “그 아이를 네 배필로 생각했었는데…” 하셨지만, 내게 그녀는 끝내 여동생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싫어서가 아니라 배우자가 될 수 없다는 묵직한 선이 마음속에 그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돌아왔다. 회귀일까, 회개일까.

세월이 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