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가는 사랑 (눅10:25~37)

율법교사가 예수님 앞에 섰습니다. 그는 배우려는 사람처럼 서 있었으나, 사실은 시험하려는 사람처럼 서 있었습니다. 입술에는 경건의 언어가 있었지만, 마음 깊은 자리에는 자기 의를 지키려는 차가운 칼끝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는 묻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질문은 겉으로 보기에는 거룩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람의 질문보다 질문하는 사람의 심장을 먼저 보십니다. 어떤 이는 몰라서 묻고, 어떤 이는 알지만 순종하기 싫어서 묻습니다. 어떤 이는 길을 찾기 위해 묻고, 어떤 이는 자기 길이 옳다는 것을 증명받기 위해 묻습니다. 주님 앞에서의 질문은 언제나 그 사람의 영혼을 드러냅니다. 말씀 앞에 서면 입이 아니라 존재가 벌거벗겨집니다. 예수님 앞에 섰던 그 율법교사처럼, 우리도 종종 신앙의 질문을 하지만 사실은 회개의 문 앞이 아니라 자기 정당화의 벽 앞에 서 있을 때가 많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곧장 정답을 주시지 않고, 되묻는 방식으로 그의 가면을 벗기십니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놀랍습니다. 주님은 늘 말씀으로 우리를 다시 데려가십니다. 신앙은 자기 감정의 물결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기록된 말씀 위에 세워집니다. 사람의 생각은 흔들리나, 기록된 말씀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율법교사는 대답합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그 대답은 정확했습니다. 너무 정확해서 오히려 위험했습니다. 머리로 아는 진리는 때때로 심장을 더 완고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지식이 많다고 해서 곧바로 하나님과 가까운 것은 아닙니다. 진리를 외울 수는 있어도 진리 앞에 무너질 수는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씀을 강론할 수는 있어도 말씀에 찔려 울 수는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거룩한 언어를 구사할 수는 있어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떨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종교의 비극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면서도 하나님께 붙들리지 않는 것, 율법을 읽으면서도 율법이 겨누는 자기 죄를 보지 못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