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박제에서 문학의 숨결로 귀환
- 팔봉 김기진을 다시 보다 -
   이영숙 시인

  대학원 시절 <문예비평론> 시간에 이상섭 교수의 『문학연구방법』을 오픈 텍스트로 삼고 ‘서정주’를 평가하는 기말시험이 있었다. 역사주의, 형식주의, 사회·윤리주의, 심리주의 중 하나의 관점을 선택해 평가하는 시험이다. 그때 나는 미당의 유려한 문체 이면에 숨은 삶의 이력에 방점을 두고, 역사주의 비평이라는 차가운 메스를 휘두르며 8절지를 빽빽하게 채워나갔다.
오래된 그 기억은 퇴색되기는커녕 문학 활동을 하는 내내 나를 괴롭혔다. 서가에서 책을 꺼내 다시 훑어보며 그 해묵은 비평 방법들에 눈길을 던진다. 그리고 우리 지역 서원구 남이면 팔봉리의 김기진을 만나기 위해 가방을 꾸렸다. 팔봉산 아래 남쪽을 향해 작은 문을 낸 아담한 뜨락에 앉아, 그 시절 팔봉이 남긴 문향(文香)을 가만히 느껴본다.

  한국 근대문학사의 거대한 그림자에 가려 있던 팔봉 김기진(1903~1985). 그는 카프(KAPF)라는 사회주의 조직의 음지와 한국 근대 조각의 개척자로 추앙받는 형 정관 김복진의 그늘에 가려진 안타까운 인물이다. 그동안 우리는 김기진을 ‘카프의 조직가’라는 역사주의적 관점으로만 평가해 왔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라는 엄혹한 시대적 압박 속에서도 그가 끝내 천착했던 것은 작품의 완성도와 예술적 형식이었다. 이제 이데올로기의 외피를 벗겨내고, 오롯이 작가 김기진의 예술 세계를 재조명해 본다.

  김기진은 1920년대 한국 사회주의 경향문학을 이끈 대표적인 문인이다. 그의 문학적 출발점은 첫 소설 『붉은 쥐』(1924)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당시 그는 「조선문단」을 통해 조선 청년의 생생한 생활을 표현하고자 이 소설을 창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가 제목으로 끌어낸 ‘쥐’는 일제강점기 자본주의하에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노동자 빈민층을 상징한다.
박형준의 독백을 헤겔의 변증법적 구도로 복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정(正): 일제강점기 가난한 사람들의 스산한 도시 풍경을 그린다.
반(反): 암울한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