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 안의 부재

도순태

호계역이 어스름에 젖고 있었다
붉은 박공지붕은 그대로고
향나무와 측백나무가
옛 선로를 따라 묵묵히 서 있었다
유리문만 늦은 빛을 품고 있었다
역사 앞 벽면, 촉지도를 만난다
점과 선으로 만져지는 역이
유리 너머에 아직 숨죽이고 있었다
대함실과 승강장, 출입문과 통로를 더듬는 손끝
길은 모두 제자리에 있는데
이천이십일년십이월이십팔일
마지막 열차는 그 길을 데리고 떠났다
어두움이 한 겹 더 내려앉고
촉지도는 여전히
홀로 호계역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한참 동안
다시 오지 않을 기차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없음마져 떠난 자리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오후의 새벽시장
-구 울산역

도순태

역을 찾으러 간다
학성동과 옥교동으로 향한  
철길은 넓은 길이 되었다
그 위로 무심히 걷는다

저기 어디에 역사가 있었다는데
여기 어디쯤 난전의 새벽장이 섰다는데
흔적 없이 사라진,
나는 보지 못한 역이다

미명의 길을 건너 기차가 내려준 역전 앞,
쭈그리고 앉은 푸성귀 난전들과 
분주한 흥정이 역전 골목을 밀고 다니던
기적 소리보다 길었던 그 새벽은 다 어디로 갔을까

소란이 철거하지 못한 
낮은 상가들
낡은 주머니처럼 
새 건물 사이 아직 남아 있다

큰 가로수 두 개 지나니 
오후의 새벽장이
셔터 속에 
이름만 걸어두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