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연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보여 가엾은 마음이 드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가엾은 마음, 사람들의 아픔을 지나치시지 못하는 마음, 길을 잃은 이들을 모른 척하지 않는 그분의 마음에서부터 위대한 부르심이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리고 곧바로 열두 사도를 부르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기억해야 할 것은 부르심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라는 점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찾아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들을 직접 찾아가 제자로 부르십니다.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열두 사도만이 아닙니다. 아브라함, 모세, 사무엘, 예레미야, 이사야, 에제키엘, 자캐오, 바오로 등 모두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먼저 위대한 믿음의 계획을 세운 것도 아니고, 모세 역시 스스로 이스라엘을 구하겠다고 나선 것도 아닙니다. 성모님께서도 하느님의 부르심이 앞서 있었기에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하고 응답하셨지, 먼저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기를 자처하신 것이 아닙니다. 또 영국의 노예제도를 없앤 윌버포스 역시 기도하던 중 강한 부르심을 느꼈는데,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내 일생을 바쳐 완수해야 할 사명을 주셨는데, 하나는 노예제도 폐지와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교 정신에 어긋나는 악습들을 개혁하는 일이다” 이처럼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내 뜻을 이루고자 노력한 이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행한 이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 어떤 종교의 창시자도 사람들에게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은 열반에 들기 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자등명, 법등명’이라는 가르침을 남겼습니다. 이 말은 제자들이 의지해야 할 것은 ‘자신과 진리일 뿐이다. 스승에게 얽매이면 안 된다’라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나를 따라오너라”하고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