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협 아라메시 11호 원고 – 오영미

디카시 1편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네

홍조로 말간 웃음 보이는
저 뜨거운 냉가슴
이를 어쩌나
이를 어쩌나

특집 - ‘길’ 주제시

영하
 

 
유년의 영하는 아직 살아있다
청년의 영하는 이미 자라났다
중년의 영하는 벌써 지나갔다
이제는 노년의 영하를 기다린다
아니 어쩌면 오지 않을지 모른다
창밖의 길은 어릴 적 그것보다
힘이 없고 흐물거리며 쉽게 녹는다
세상의 모든 길은 혹독한 것과 반비례하는 것
걸어온 길의 한파가 높고 깊을수록
나의 영하는 말랑거려 기운이 없다
차 바퀴가 지나갈수록 짓이겨지는 바닥
나의 영하가 점점 무기력해지는 이유처럼 선명하다
우리의 길은 어디가 끝일까를 고민한다

자유시 5편

빨간 등대

 
바닷길이 열린다기에
빨간 버버리코트를 입고
길을 나섰다
네가 바다를 지키는 동안
나는 너를 그리워하며
울음 우는 갈매기로
빙빙 돌다가 
훨훨 날다가
빨간 지붕 위 살며시 스치다가
내 자리로 돌아오기까지
반백 년 살기보다 더 힘겨웠다
노을은 또 왜 붉어져 
차가운 가슴을 할퀴는가
네가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린 만큼 나도
망부석 되어 꼼짝하지 않았지
지루하지 않을 저녁
활활 타다가
훌훌 떠나게 되는
기약 없이 머물다 사라진대도
빨간 등대가 석양에 묻힐 때
따라 잠드는 제부도의 밤

박태기
 

 
곁가지를 잘라내며
꼴을 갖추라 애원했던 때가
엊그제
먼 곳까지 바라볼 수 있기를
빌며 빌며
쑥쑥 커지라 거름 듬뿍 주었지
가뭄에 시름 앓다가
꼴 안 날까 봐 물도 주었지
사랑아 사랑아
마른 가지에 진분홍 립스틱
보랏빛으로 구슬 꿰듯
가지마다 화려한 치장
어엿한 숙녀로 자랐구나
팔랑이는 잎새는
뉘 부르는 휘파람이런가
온종일 비바람 일었던
낮 저물고
잠 못 드는 이 밤
나에겐 박태기 너 하나면 족하리

청벚꽃이 붉어지는 이유
 

 
새파랗게 질렸던 얼굴이 점점 붉어지기 시작했다
 
시집갈 나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