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평창문학 원고 - 조영웅

<평창문학 37집 원고 – 시 5편>

1. 긴 수염 검은 물고기

긴 수염, 나팔꽃잎 같은 꼬리지느러미
헤엄치는 옆모습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으려고
핸드폰을 꺼내본다
몸을 빙그르르 돌려 검은 주둥이를 뻐끔대면서
정면으로 돌아서 바라보는 애완용 물고기
반가워서일까. 먹이를 찾으려는 본능일까
감기지 않는 눈으로 빤히 쳐다보는 모습이 나와 닮아
이쪽저쪽 몸을 바꾸며 말 걸어본다
마주하고 선 자리, 
넓은 옆모습의 여백은 어디 있는 것일까?
사무실에 앉아 멍때리고 잠시 바깥세상을 기웃거린다
바다가 있는 곳으로 눈 돌려보지만
세상은 늘 두 개의 평행선을 허용하지 않는 외길 같아
늘 비틀거리며 한곳에 머문다
기웃거리는 것은 낯설어질 뿐이다
나의 부레는 작아져 
내 몸의 등 푸른 바다가 몸을 열 때마다 
나는 오늘 다시 초기화되거나 퇴화한다 

2. 벌레집

이것은 온전히 내 추상이다
스스로 지었다 허무는 무수히 많은 주택 중 하나일 뿐이다
홑잎 나물 나무라고 해야 하나
화살나무 푸른 잎사귀에 벌레처럼 오래 머물렀다
잎맥 가운데 길처럼 까맣게 지어놓고 떠난 애벌레의 집
작은 몸의 진액을 모두 토해 동그란 집을 지어놓고 들어가
등신불처럼 동그랗게 몸을 웅크렸으리라
그 안에서 알이 되고 번데기가 되고 성충이 되어 
하루를 살았을까, 며칠을 살았을까 
텅 빈집만 까맣게 흉터처럼 남아 시들어간다
진딧물이었을까 하루살이였을까 그냥 빈 껍질이었을까
일생을 벗어놓고 떠나간 해탈
이것은 온전히 내 추상일 뿐이지만
살아있는 오늘 실존이 서러워 빈집 앞에서 오래 흔들린다 

3. 내 몸의 각도

나무가 나무에게 기울어져 갈 때 뜨거워지는
나무 몸속의 비스듬한 기울기를 알겠다
그러나 어쩌랴
나도 모르게 너에게 기울어져 가는 내 몸의 기울기와
너도 모르게 나에게 기울어져 오는 네 몸의 기울기가
한곳에서 만날 때
서로에게 불어가는 바람이 된다는 것
너와 나의 거리에서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우리들의 비스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