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대사에 대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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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6915지인(최현주)
Ⅰ. 원효의 생애 
원효는 신라의 개국공신이자 박혁거세를 추대한 사로 6촌의 촌장 중의 한사람인 설거백 또는 설호진의 후손으로, 설곡(薛嚳)의 4대손이다.
원효는 잉피공의 손자이자 내말(奈末, 육두품 출신이 맡는 제11등급 관직) 설담날(薛談捺)과 조씨(趙氏)의 둘째 아들이다. 원효의 조부인 잉피공의 집이 금성에 있었으므로 원효를 금성 사람이라고도 한다. 잉피공(仍皮公)은 또는 적대공(赤大公)이라고도 하는데, 고려시대 중기 김부식과 일연이 살던 시대까지도 경주 적대연(赤大淵) 옆에 잉피공의 사당이 존재하고 있었다.
원효에게는 형제가 몇 있었는데, 경주 설씨와 순창 설씨의 족보에는 그의 형 중 1명인 설을신(薛乙臣)의 이름이 현재 전한다. 원효는 경주 설씨와 순창 설씨의 중시조인 설총의 생부다.
원효의 어머니 조씨가 그를 수태했을 때, 꿈에 유성(流星)이 품속으로 드는 것을 보고 원효를 임신하였으며 만삭(滿朔)이 된 몸으로 집근처인 상주(湘州) 경산현 압량군(押梁郡)에서 출산하였다. 조씨는 남편의 털옷을 밤나무에 걸고 원효를 낳았는데 이 나무를 사라수(娑羅樹)라 불렀다. 그곳 밤나무의 밤은 크기도 크고 굵으며 맛이 특이하여 사라율(裟羅栗)이라 불렀다.
원효는 나면서부터 총명하고 남보다 뛰어났으며, 기억력이 뛰어났다. 그는 일찍이 고향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유교를 가르치는 태학에 입학하였다. 원효는 스승을 따라 배울 것이 없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부친 담날과 조부 잉피공의 기대를 받으며 화랑으로 활동하였다.
15세 (혹은 28세) 때 어머니 조씨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삶과 죽음에 대해 오래 고민하다가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황룡사에 들어갈 때 집을 희사하여 초개사(初開寺)를 세우게 했으며, 자신이 태어난 사라수 옆에도 절을 세워 사라사(裟羅寺)라 하였다.
그가 출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