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 외전 스즈미야 하루히의 일기 (涼宮ハルヒの日記) 1권 ISBN 978-4-04-429210-6 난 아직도 기억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그 일을... 식구들과 함께 야구를 보러 갔던 그 날. 그 날은 내 인생에 있어서 큰 반환점이 되었다. 야구장 안에 쌀알처럼 가득한 사람들. 아버지는 대략 5만 명쯤 될거라고 가볍게 말했지만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집에 와서 계산기로 확인해 본 결과 그 인원은 일본 전체의 약 2천 분의 1... 나는 그렇게나 많은 사람 중에서 고작 하나였을 뿐이었다. 어디 하나도 특별하지 않은... 그런... 모든 것이 다 재미없어 졌다. 난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니. 분명 특별한 사람이 어딘가에는 있을 텐데... 나는 줄곧 그렇게 생각하며 지냈다. 그리고 중학 시절. 나는 내 자신에게 말했다. "재미있고 특별한 것은 기다린다고 오지 않아!" 그렇다.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기다리기만 하는 여자는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노력했다. 특별한 무언가를 찾기 위해. 그리고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는 그 남자. 그는 자신을 존 스미스라고 했다. 말도 안되는 변명. 일본에 그런 이름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누나라는 사람과 함께 내 앞에 나타났다. 그 두사람은 분명 키타고 교복이었다. 나는 그 날도 뭔가 특별한 것을 찾고 싶은 마음에 학교 운동장에다 우주에 알리는 메시지를 쓰려고 했다. 그는 나를 도와주었다. 처음이었다. 내가 하는 일에 야단을 치거나 무시하지 않고 함께 해준 사람은... 나는 그에게 물었다. "우주인, 미래인, 초능력자는 과연 있을까?" 사실 나는 이미 그런 존재들이 있을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존 스미스는 그런 존재들이 있을 거라고 말했다. 고마웠다. 내가 하는 말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이해하려 해준 것이다. 그 날의 일은 나를 더욱 강하게 해 주었지만 결국 나는 중학교 3년 내내 아무런 신기한 것을 찾지는 못하였다. 덧붙여 그 존 스미스라는 남자도 찾으려고 했으나 그 또한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점점 지쳐갔다. 오늘은 3월 31일. 내일부터 나는 고등학생이다. 키타고. 존 스미스에 대한 단서를 지닌 학교. 그리고, 어쩌면 존 같은 사람이 더 있을 지도 모르는 학교. 키타고를 선택한 이유는 단지 그것 뿐이다. 내일, 어떨지 결정이 나겠지. 물론 존은 이미 졸업해버렸겠지만, 그와 같은 사람이 있을 확률은 다른 곳보다 더 높은 것이다. 나의 노력, 불가사의한 것들과의 만남에 있어서 이 키타고는 새로운 발판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불안하다. 과연 그런 것들이 있기는 한 걸까... 우주인, 미래인, 이세계인, 초능력자... 내일 학교에서 확인해 볼 것이다. 자기 소개 시간이 있을 것이니 그 때 가서 한 번 외쳐볼 것이다. "히가시 중학 출신 스즈미야 하루히! 다른 사람에게는 흥미 없습니다. 이 중에 우주인, 미래인, 이세계인, 초능력자가 있으면 제 쪽으로 와 주십시오! 이상!" 전에 존 스미스를 찾기 위해 가끔 올라와봐서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 키타고는 많이 가파른 곳이다. 정말... 지친다구. 이런데다 학교를 세울 생각을 한 건 대체 누구야? 으휴... 처음부터 짜증난다. 앞으로 3년이나 이런 길을 계속 오르내려야 한다니... 그래도 이런 것 따위에 굴복할 내가 아니다. 이런 학교. 신기한 무언가를 찾아내서 굴복시키고야 말겠어! 입학식은 평범했다. 그냥 체육관에서 지루한 교장이 한마디 하는... 역시 공립학교인가. 뭔가 특별한 것이 있기를 기대했었는데 말이지. 일단 나는 1학년 5반에 배정되었다. 담임은 ...오카베라고 하는 그냥 평범한 체육 선생이었다. 핸드볼을 좋아하는지 계속 그쪽 이야기만 해대더니 반응이 시큰둥한 걸 알고는 그만 두고 모두에게 자기소개를 시키기 시작했다. ...! 자기소개. 어제 분명히 결심했었다. 그래, 이 학교에는 분명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나는 믿으니까. 내 앞의 녀석이 그냥 평범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평범해. 인사하고 박수 받고... 이건 뭔가 아냐. 나는 차례가 되어 일어 섰다. 그리고... "히가시 중학 출신 스즈미야 하루히! 다른 사람에게는 흥미 없습니다. 이 중에 우주인, 미래인, 이세계인, 초능력자가 있으면 제 쪽으로 와 주십시오! 이상!" 말해버렸다. 반응은... 예상 대로 차가웠다. 뭐, 당연한 걸까? 내 앞의 녀석이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본다. '뭐야, 웃어야 하나?' 하는 느낌이다. "흥..." 그래, 어차피 이런 반응일 줄 알았어. 혹시나 여기에 우주인 같은 게 있다고 해도 대놓고 반응을 보이진 않겠지. 그러다보니 자기소개 시간은 끝났고 오늘의 하루는 끝났다. 나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 내 앞의 녀석이 앞으로 나에게 있어서 얼마나 큰 존재가 되고 마는 지를... 그 후 처음으로 돌아오는 금요일이었다. 나는 금요일에 맞는 머리- 4갈래로 묶은 머리를 하고 나왔다. 언제부터인가 우주인과의 교신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다. 내 앞의 녀석이 처음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 봐." 어딘지 부자연스러운 웃음. 이 녀석도 평범하다. 다른 녀석들과 다를 바 없어. 그저 나에게 말 걸어보고 싶어하는 녀석일 것이다. "첫시간의 자기소개 그거, 어디까지가 진심이었던 거야?" "첫시간의 그거라니?" "아니, 그러니까. 우주인이네 어쩌네 했던거 말야." 뭐야, 그 자기소개에 반응을 보이다니. 설마? "너, 우주인이야?" "그런건 아닌데 말이지..." 역시... 아니잖아. "아닌데 뭐?" "아니, 암것도 아냐." "그러면 말걸지 마. 시간 낭비니까." 녀석도 단념한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정말로 시간 낭비다. 이런 녀석의 말에 귀 기울일 바에야 교내 탐색을 하는 편이 빠르겠어. 그 외에도 나에게 드라마 따위를 물어보는 여자도 있었고, 하여간 다들 평범하다니깐. 나는 그 후 교내 탐색을 시작했다. 쉬는 시간 마다 온 학교를 다 조사한 것이다. "...여기도 수상해." 수상한 장소는 모두 가 보았다. 옥상의 돔이 수상해서 공을 던져보았다. 혹시나 우주인과의 교신을 위한 물건은 아니었을까. 수영장 안도 수상했다. 수영하다 죽은 아이의 혼령 같은게 잠들어 있진 않았을까. 그러나 없었다. 아무것도. 키타고는 그저 평범한 고등학교일 뿐이었다. ...재미없어. 학교도, 사람들도 모두 평범해. 어떻게 된 걸까. 내가 판단을 잘못한 걸까. 나는 여러 불만 때문에 계속 뚱한 표정을 짓고 다닐 수 밖에 없었다. 뭐, 중학교 때랑 마찬가지인가. 아아, 정말 없나. 불가사의한 무언가는... 그렇게 재미없는 학교 생활을 하던 나는 한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교내에 있는 모든 부를 다 둘러보면 뭔가 수상한 것이 있지는 않을까. 그리고, 곧 나는 임시 가입을 하여 둘러보았다. 육상부, 라크로스부, 야구부... 이런 운동부에서 뭔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취주악부를 비롯해 수예부라든가 미스테리 연구부, 초자연 현상 연구부 등 모든 부를 다 둘러본 결과. 수확 제로. 이 학교는 뭐지. 수상한 것이 전혀 없잖아! 오히려 운동부에서 스카우트 요청만 계속 받게 되고 상당히 귀찮은 결과만 남아버렸다. 난 운동을 하고 싶은게 아냐! 뭔가 신기하고 굉장한 것을 찾고 싶을 뿐이라고!! ...누구도 이해하지 않겠지. 아니, 사실 이젠 나도 내가 이해가지 않는다. 난 왜 이러고 있는 걸까. 사실... 우주인, 미래인, 이세계인, 초능력자 같은 건... 이 세상에 있지도 않을 텐데... 그리고 골든 위크가 지나서 5월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습관대로 수요일에 맞는 두갈래 파란 리본 머리를 하고 등교했다. '...뭐, 이젠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도 않을 거고. 그래, 그런 거야.' 이런 심정이었다. 그런데 그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요일 별로 머리모양을 바꾸는 건 우주인 대책이냐?" 턱을 괴고 창 밖을 바라보던 나는 놀란 마음에 앞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리고 멍한 얼굴로 질문을 던진 그녀석은 전에도 나에게 한번 말 걸어본적 있는 앞 자리의 그녀석. ...쿈...이라고 했던가? 이상한 별명을 가지긴 했어도 평범해서 신경도 쓰지 않던 녀석이다. "언제 눈치챘어?" 약간 흥미가 생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놀란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그저, 길 앞에 놓인 돌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물었다. "음, 얼마 전에." "아, 그래?" 한 번더 놀랐다. 나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이 있었다니. 그것도 이런 방면으로... 약간 기쁘기도 했다. 나는 그런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최대한 뚱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녀석이라면... 들어줄지도 몰라. "내가 생각해봤는데, 요일에 따라 느껴지는 이미지란 서로 각각 다른 것 같아. 색으로 말하자면 월요일은 노랑, 화요일은 빨강......" 내 생각을 누군가에게 분명하게 전하는 것. 말 하면서 느꼈다. 이런 것 참 오랜만이다...라고. "......토요일은 갈색, 일요일은 흰색이라고." "그렇다는건 숫자로 친다면 월요일이 0이고 일요일이 6인거야?" ...머리 매듭 숫자까지 센건가. "그래." "난 월요일은 1이라고 느껴지는데." '......!' "누가 네 의견을 물어봤데?!" "그러냐." 내 생각을 듣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 의견까지 말했다. 뭔가 자존심이 상하는 기분이라서 울컥하긴 했지만 어떻게 내 말을 이해하는 것 같았다. ...이 기분 전에도 어디선가 느껴본 적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앞으로 고개를 돌려 그 쿈이라는 녀석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뭐지, 뭔가 익숙한데... 한 30초가량 쳐다봤을까. 쿈의 얼굴이 어딘가 목숨의 위협을 받아 긴장하다가 긴장이 지속되어 지친듯한 모습이 되었다. "너, 나랑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지 않아? 꽤 오래전에." "아니." 후... 기분 탓인가? 시끄러, 바보, 닥쳐, 그게 너랑 무슨상관이야. 여태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해서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이것이 쿈과 나의 실질적인 첫 대화였다. ...머리, 월요일이 1이라고...? 아아,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걸까. 저런 얼간이가 한 말에 신경을 쓰다니... 확실히 내가 판단할 때 우주인과 일종의 교신을 위해서 머리모양을 바꾸곤 했지만 이것이 날짜에 따라 핀트가 어긋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 쿈이라는 녀석이 월요일을 1이라고 생각하듯이 우주인이 월요일을 4라고 생각하기라도 하면 커뮤니케이션이 전혀 깨지는 것이었다. ...아니, 그보다. 우주인이 과연 이 머리모양에 신경을 쓰긴 하는 걸까. 으아아! 몰라! 괜히 그녀석이랑 이야기하는 바람에 머리만 더 복잡해졌잖아! 그래, 머리가 문제는 아니야. 안그래도 매일 아침 머리 바꾸느라 힘들었는데 그냥 잘라버려야지. 그리고 다음 날 내가 머리를 자르고 학교에 왔을 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가운데 당황하는 사람은 역시 쿈 뿐이었다. ...이녀석은 평범하긴 하지만 왠지 신경 쓰여! "저기, 내가 어제 머리모양에 대해 말하긴 했지만... ...왜 자른거야?" "......별로." 내가 머리를 자른 그날 나에게 걸어온 질문에 난 그저 이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무슨 상관이람? 하고 생각해봤지만 그러고보니 어제 이야기한 바로 다음 자른 것은 좀 성급했던게 아닐까... 왠지 당연하구나. 쿈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건... 여하튼 쿈과는 이렇게 이야기를 자주 나누게 되었다. 이야기를 나눠 볼수록 이녀석은 그저 평범하지 않나 자꾸 생각하게 되면서도 어떻게 보면 이야기할 때 왠지 즐겁기도 하다. 어째서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처음으로 내 생각을 이해해주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 같다. 아, 처음이 아니다. 3년 전에 만난 존도 이런 느낌이었다. 그래, 그렇구나. 쿈은 어딘가 존과 비슷한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바보 같은 모습이 존과는 전혀 다르지만. 존에 비하면 쿈 녀석,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항상 쿈과 대화하게 되는 시간은 HR전의 짧은 시간이다. "사귀었던 남자는 전부 찼다는 게 정말이야?" 바로 이런 점에서 존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무신경한 질문을 잘도 내벹는다. 도대체가, 무슨 상관이냐고. "어째서 너한테 그런 말을 듣지 않으면 안되는 건데? 뭘 들었는지는 몰라도 뭐, 좋아. 아마 전부 사실일테니까." 타니구치가 한 말일까. 고등학교까지 같은 데를 오다니, 혹시 스토커 아냐? "한 놈 정도는 진지하게 사귀어 봐야될만한 녀석 없었던거야?" "전혀 없었어. 이놈도 저놈도 바보같을 정도로 평범한 녀석들이었어. 우주인도, 미래인도, 초능력자도 아니고." 확실히 평범하고도 착실하기 짝이 없는 녀석들이었으니까 말야. 일요일에 역앞에서 만나기. 영화관 아니면 유원지. 다 똑같은 놈들 뿐이었다고. "그리고 대부분 고백을 전화로 하는 건 또 뭐냐구 그거? 그런 중요한 말은 직접 만나서 하란 말이야!" "뭐, 그럴까...? 나라면 어디로 불러내서 말했을테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그런 건 정말 아무래도 좋았다. 다들 평범한 녀석들 뿐이었으니. ...그런데, 내 앞의 이 쿈 또한 평범하지 않나...? 아냐, 문제는 그게 아니다. "문제는 이 세상에 그런 시시한 남자들 밖에 존재하지 않느냐는 거야. 사실, 중학교 때는 계속 짜증만 났거든." 그렇다. 쿈은 평범한 녀석이긴 해도 어딘가 시시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어서 나도 조금은 기뻤다.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 어쩐지 신이 난다. 쿈과 이야기하는 것은. 그래도 여전히 내 관심사에 있는 것은... "그럼, 어떤 남자라면 좋았는데? 역시나 우주인이냐." 그렇다. "우주인, 혹은 그에 준하는 어떤 거지. 아무튼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면 남자이든 여자이든..." 신나게 이야기를 하려는데 쿈이 내 말을 끊었다. "어째서 그렇게 인간 이외의 존재에 집착하는 거야?" 나는 내 말이 끊겼다는 점에서도 화가 났지만 당연한 질문을 받았다는 점에서 더 흥분해버렸다. 그래서 딱 잘라 한마디 해줬다. "그런 쪽이 재미있지않아?" 언제나 난 그 이유 때문에 그런 것들을 찾은 것이다. 모두들 나를 이해하지 않은 것도 바로 그 점이다. 세상에 그런게 없다는 것 쯤은 당연히 알아야 되는 것. 바로 상식인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실 이 세상에 그런 존재가 어딘가 숨어 있다면? 나는 그 가능성을 놓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특별하지 못한 세상은... 그런 재미없는 세상은... 아아, 괜히 말한건가. 아마 웃기는 소리려니 하고 넘겨버리겠지? 쿈은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그건... 그럴지도 모르겠다." '...!' 그리고 곧 오카베가 들어오는 바람에 HR이 시작되었고 쿈은 돌아앉았다. 쿈의 말이 아직도 머릿 속을 맴돈다. ...내 말을... 이해해준거야? 오늘도... 오늘도... ...어째서? 쉬는 시간이 되어 나는 다시 교내 탐색을 하러 나섰다. 사실, 오늘은 교실에 있는 게 평소보다 더 부담되었다. 쿈 때문이었다. 왠지 계속 신경쓰인다. 어째서일까. 어째서 쿈은 내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걸까... 탐색을 하러 나선건데 머리 속에는 쿈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 내가 왜이러지? 여러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할 때 내 앞에 웬 여자가 나타났다. 웬 여자라고 하면 실례일까. 같은 반의 반장 아사쿠라 료코였으니까. 전에 한번 드라마 이야기로 말을 걸어보려고 하던 녀석이다. "스즈미야?" 오늘은 또 무슨 용건인지. 신경쓰지 말자. 별 일 아닐테니... "이번에도 내 말 들어주지 않는거야?" 나는 무시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귀찮아. 너 같이 평범한 여자애따위 관심 없다구. "내일 아마 아침 조회시간에 자리 바꿀거야." 뒤에서부터 아사쿠라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리 바꾸는게 뭐 어쨌다고. "제비뽑기식으로 할 테니까 너 어쩌면 쿈군하고는 떨어지게 될지도 몰라. 괜찮겠어? 다행히도 말 할 상대가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 "안타깝네. 이제 막 친해졌을텐데 말이지. 너도 좀 더 다른 친구들하고 이야기하고 그러지 않을래? 반장으로서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야." "...시끄러!" 나는 걸음걸이를 좀더 빨리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자리를 바꾸면... 그렇구나. 쿈 하고 떨어져 앉게 되는 걸까. 뭔가 불안했다. 쿈과 떨어져 앉는다니... 내가 왜 자꾸만 신경쓰는 걸까. 쿈과 떨어지면... 더 이상... 이야기 못하는 걸까. 왜지? 그런건, 싫어. 다음 날 아침 통에 자리가 적힌 종이가 들어있어서 그걸 뽑는 방식이었다. 앞의 쿈이 자기 자리의 종이를 뽑고는 나에게 통을 넘겼다. ...이 종이로 자리가 결정된다. 처음이었다. 자리 뽑기가 이렇게나 떨리는 것은. 두근거린다. 제발 좋은 자리를... 쿈과 가까운 자리를! 뭔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종이를 뽑았다. 아, 참 바보같아. 내가 왜 자꾸 쿈에게 신경쓰는 걸까. 며칠 전부터 계속 그 생각만 한다. 왜...? 나는 내 자리의 번호를 들여다보았다. 창가 제일 끝자리... 전망 좋은 자리이긴 한데... "자, 다 뽑았으면 이제 자기 자리로 맞춰 가라." 오카베가 말하였고 모두들 책상 소리를 내며 일어섰다. 흠, 뭐. 쿈하고 꼭 가까운 자리일 필요는 없잖아? 내가 신경 쓰는 건 우주인이나 그런 신비한 존재니까. ...내 앞에 쿈이 앉는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가방을 들고 내 자리로 갔다. 자리에 앉고 가방과 책을 대충 정리하는데 내 앞에 누군가 앉았다. '!' 쿈! 쿈이었다. 내 앞에 앉은 건... 우연인가? 그렇다고 해도 참 기뻤다. 바라던 대로 된 기분이다. 쿈은 자리를 정리하다가 뒤를 돌아보더니 뭔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야, 그건. 나랑 가까운 자리라 기분 나쁘다는 거야?! 나는 충치를 억지로 참는 듯한 표정으로 턱을 괴었다. 속으로는 기뻤는데도... 내일도 아침에 쿈과 이야기 할 수 있는 걸까? 쿈과 다른 자리에 앉게 되지 않을까 가슴 졸이던 나는 다행히도 자리 변경 이 후에도 쿈의 바로 뒷자리에 앉게 되었다. 내가 왜 기뻐했는지 잘 이해는 가지 않는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지금 이 자리에 만족하고 있다. 자리를 바꾼 다음 날, 쿈은 또 나에게 뭔가를 물어왔다. "모든 부에 들어가봤다는 건 정말이야? 어딘가 재미있을 것 같은 부가 있으면 가르쳐주라." 시시한 질문이었다. 그거야 당연히 "없어, 전혀!" 쿈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이상한가? "전혀 없어!" 전혀 재미있을 것 같은 부가 없었다구. 이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나는 어딘가에서 부활동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고등학교에 들어오면 조금은 나아질 줄 알았는데 이래선 의무교육 시절하고 뭐 하나 다를게 없잖아? 진학할 학교를 잘못 고른걸까." 정말이지 이 학교는 너무 평범하다. 뭔가 더 신비한 것이 있을 것이라 기대했기에 내 실망감도 훨씬 컷다. 중학교 3학년 때 얼마나 고대했었는데, 배신이야 이건. 동아리도 다 똑같았다. 일반적인 학교였을 뿐... "미스테리 연구부라는 게 있었어." "엉? 어땠는데?" "웃기지도 않더라. 지금까지 사건다운 사건은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잖아! 부원도 미스테리 소설 바보뿐이고 명탐정 같은 녀석도 없었어." "그거야 그랬겠지." "초현실 현상 연구부에도 조금은 기대 했었는데. 단지 오컬트 매니아들이 모인 곳에 지나지 않더라고!" 나는 좀 더 어필하기 위해 책상을 치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쿈은 이런 평범해 빠진 학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뭐, 자기가 직접 물어보기도 했고, 약간 기대를 걸어 보았지만... "어떻게도 생각 안하는데?" 이런 무책임한 대답이나 하고. 아으으!! "아~ 정말 재미없어!! 이렇게 많으니까 조금은 이상한 부가 있는게 좋잖아?!" 내가 이렇게 머리를 싸메고 소리쳐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는 건 어쩔 수 없잖아?" 라니, 정말이지. 고시엔을 목표로 입학했는데 정작 교내에 야구동아리가 없다는 상황에 처한 야구 매니아같은 심정이랄까. 키타고에 대해서는 실망이 크다고! 쿈은 어쩔 수 없다는 말만 하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왜 그런 부 찾는 걸 그만두어야 하는지. "결국 인간은 주어진 것만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는거니까. 말하자면 만족할 수 없었던 인간이 발견이나 발명을 해서 문명을 발전시킨거지. 하늘을 날고 싶었기에 비행기를 만든 거고 편히 이동하고 싶었기에 자동차랑 기차를 만들어낸 거야. 하지만 그건 일부 인간의 재능이나 발상에 의해 생겨난 것이며 즉, 천재가 가능하게 만든 거라고. 보통 사람인 우리는 인생을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이라고나 할까." 듣자 듣자하니 짜증나는 말만 하고 있어! 평범하게 사는게 제일이라고?! "시끄러워!!" 쿈의 말을 끊어버리면서 바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바보. 내가 왜 이런 녀석이랑 같이 앉고 싶어 했을까? 바보바보바보! 평범한 것 만큼 재미없는 것도 없단 말야! 이런 말에 현혹되면 안돼. 천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래, 맘대로 생각 하라지. 참나. 결국 이 학교엔 천재같은 사람은 없을 테니 특이한 부를 찾는 건 그만두라는 이야기잖아? 특이하고 특별한 것은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거라고? 그건 내가 특별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 너무하잖아. 내가 특별하지 않다니. 내가 왜 그런 것들을 찾고 싶어 하는데. 비록 나는 천재가 아닐지라도 할려면 하는 여자란 말야! 그러니까! 특별한 것을 찾는 동아리 같은게 있다면 나도 열심히... 특별한 것을 찾는 동아리...? 없었지, 우리 학교에는... 뭐, 그것 때문에 기분이 상했던 거니까. '말하자면 만족할 수 없었던 인간이 발견이나 발명을 해서 문명을 발전시킨거지. 하늘을 날고 싶었기에 비행기를 만든 거고 편히 이동하고 싶었기에 자동차랑 기차를 만들어낸 거야. 하지만 그건 일부 인간의 재능이나 발상에 의해 생겨난 것이며 즉, 천재가 가능하게 만든 거라고. ' '...그래!!!' 나는 정신 없이 그저 팔을 내뻗었다. 깨달았어, 쿈! 쿈을 부른다는게 그만 너무 세게 잡아당긴건지 쿈의 뒤통수가 내 책상에 부딪쳐버렸다. "무슨 짓이야!" 쿈은 화난 얼굴로 벌떡 일어섰다. 흥, 아까 나한테 심한 말 한 벌이라고 생각하라고. 아니, 그것보다! 나도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깨달았어!!!!" 쿈은 얼굴을 닦으며 날 쳐다봤다. 잘들어 보라고 쿈! "뭘...?" "어째서 이렇게 간단한 걸 몰랐던 걸까?" "뭐가?" "없다면 스스로 만들면 되는거야!" "그러니까 무엇을?" 답답하긴! "부 말이야!!" 놀랍겠지? 이건 대 발견이라구! 쿈은 입을 쩍 벌렸다. 그러나 그건 놀란 표정이라기보단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아아..." 쿈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을 이었다. "알았다. 뭐, 지금은 진정해라." "그 반응은 뭐야? 너도 좀 기뻐하란 말야! 이 발견을!" "아아." 쿈은 팔을 뻗으며 교실을 가리켰다. 모든 학생들이 우리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잘 보니 저 멀리에는 목소리가 작아서 잘 안들리는 영어 선생이 몸을 움츠리며 조심스런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은 수업중이라고." 이해되었다. 언제 수업이 시작되었지? 생각하느라 까맣게 몰랐네. 나는 분위기를 봐서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쿈이 선생님을 배려하듯 손바닥을 내미는 동작을 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부실이 필요하겠어 부실이...' 나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수업이 끝난 직후. 나와 쿈은 복도를 달리고 있었다. 내가 쿈의 넥타이를 잡고 일방적으로 달린 거지만. 뭐, 잘 따라오고 있으니 잘 된 거잖아? 새로운 학교 생활이 곧 시작되려는 거니까! 나는 넥타이를 붙잡은 채 쿈을 끌고서 옥상으로 나가는 문 앞까지 갔다. 미술부의 망가진 이젤과 쓰지 않는 조각상이 흩어져 있었다. 전에 수상하다고 여겨 확인해 본 적이 있는데, 저건 그냥 못쓰는 물건일 뿐이었다. 아니, 그런게 중요한게 아니었지? 난 지금 아주 중요한 일을 시작하려 한다. 넥타이를 꽉 잡고서 쿈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협력하라고." 내 상태는 평소 때와 전혀 달랐다. 평소에는 언제나 불만 상태라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었다면 지금은 엔돌핀이 매우 펑펑 분비되고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나는 매우 신이 나있었다. "뭘 협력하라는 거야." "나의 새로운 부 만들기지." 쿈은 불만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째서 내가 너의 생각에 협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지, 그것부터 먼저 가르쳐다오." 흐흥, 그런 식으로 말할 줄 알았어! 이럴 땐 그냥 밀어붙이면 그만이다. "나는 부실과 부원을 확보할 테니까 너는 학교에 제출할 서류를 준비하라고." "무슨 부를 만들 예정인 건데?" 약간은 도울 생각일까. 나는 타이를 놓으며 외쳤다. "어떻든 상관 없잖아 그런 거! 어쨌든 일단 만드는 거야! 알았어? 오늘 방과후까지 알아 봐. 나도 그때까지 부실을 찾아낼 테니까!" 쿈은 타이를 고치며 멍하니 서 있었다. 알아들은 걸까? "알았지?" 나는 서둘러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뭐,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도망가지는 않을 거고. 이제 부실을 찾는 거야! "으음, 그러니까. 새로운 동아리가 만들고 싶은데 남는 부실이 없냐고?" "네!" 나는 아주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오카베는 당황스럽다는 듯 말했다. "글쎄. 무슨 바람이 분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현재 빈 부실은 없는 걸로 아는데...?" "그러면 폐부 위기에 놓인 동아리 같은 곳이라도 좋은데요?" "모르겠다. 동아리 쪽은 내 관할이 아니니까. 담당 선생님께 찾아가 봐." 당장에 담당 교사가 누군지 알아낸 후 물어보았다. 그 과정에서 교무실이 한바탕 난리가 났다. 교무실에서 큰 소리로 동아리 담당 교사가 누구냐고 소리를 쳤다가 크게 혼났다. 흥, 귀찮기는. 난 지금 내 인생 최대의 사건을 일으키려는 거라구! 이름도 모르는 동아리 담당 선생은 "아마 문예부가 지금 폐부 위기였지? 3학년이 모조리 졸업해버려서 말야." 뒤통수를 잡으며 하하핫 웃어댄다. "그럼 그 부실은 지금 비었나요?!" "아니, 실은 1학년에 딱 한명이 가입해있어서. 인원이 모자르긴 하지만 간신히 버티고 있달까. 뭐 그래." "그렇다면 곧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거죠?!" "음,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당장에 교무실을 뛰쳐나왔다. 선생들이 뛰지 말라고 화를 냈지만 알게 뭐야. 지금 그런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점심시간이라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지금 당장 찾아야지! 문예부라든가 그런 동아리들은 모두 구관에 있었다. 구관 3층. 있을텐데... 이 쯤에. 아, 찾았다. 문예부. 나는 부실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거기엔 짧은 머리에 안경을 한 여자 애가 앉아 있었다. 여자 애는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안녕! 여기가 문예부니?" 여자 애는 인기척을 느끼고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정지.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은 채 약간의 간격을 두고 대답했다. "그래." "있지, 여기에 부원이 너밖에 없어서 폐부위기라는 소릴 들었거든?" "..." "그래서 말인데. 내가 이 부실을 사용해도 될까? 새로운 부를 만들 생각이거든!" 여자 애는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바라만 보았다. 얼굴 표정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마치 기계같은 느낌이랄까. 뭔가 특이한 애네? 꽤 오래 생각하더니 얼굴 근육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말했다. "독서를 방해 하지 않는다면..." "응! 전혀 방해 안할거야! 그럼 결정이다?" "...그래." 좋았어! 부실 확보! 이렇게 간단히 해결 될거라고 생각 안했는데. 아니, 복잡하게 얽히거나 하는 쪽으로도 생각은 안해봤구나. 그냥 신이 나서 아무 생각없이 하고 싶은 대로 했을 뿐이었다. 결과는 매우 순조로운 상태. 이제 쿈의 동아리 만드는데 있어서 필요한 서류를 만들고 나는 새로운 부원만 찾으면 되는 거야! 좋아, 내가 생각해도 이건 대단해! 음, 동아리 이름은 뭘로 정할까? 아, 생각났어! 옛날에 그 누군가가 한 말이었다. 세상을 오지게 들썩이게 만드는... 그래, 내 이름을 따서 '세상을 오지게 들썩이게 만드는 스즈미야 하루히의 단'이라고 하자. 줄여서 SOS단! 이거 제법 그럴듯하잖아? SOS단. 과연 이 부가 나를 구해줄 수 있을까? 재미없고 평범한 일상으로부터... 수업이 끝난 시점. 이번에도 쿈과 나는 복도를 내달리고 있었다. 넥타이에 잡혀 따라오는 쿈은 "자 잠깐. 또냐 또..." 거렸다. 나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문예부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쾅! "이제부터 이 방이 우리들의 부실이야!" 나는 들뜬 나머지 온 몸을 빙글빙글 돌리며 방 전체를 가리켰다. 작지만 쓸만한 공간. 아까 전에 들어왔을 때 이 방의 느낌은 어딘가 특별했다. 그 만큼 내 기분이 많이 상승되어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잠깐 기다려. 어딘거냐 여기는?" 쿈은 부실로 걸어들어오며 물었다. 나는 뒤돌아서며 말했다. "문화계열 부실동이야." 그리고 손가락을 세우며 신나게 설명했다. "미술부나 취주악부라면 미술실이나 음악실이 있잖아? 그런 특별 부실이 필요없는 클럽이랑 동아리의 부실의 모여있는 곳이 부실동. 통칭 구관! 이 방은 문예부야." "그럼 문예부잖아?" 창가 자리로 걸어가서 창 밖을 내다보며 말을 이었다. 바로 옆에는 그 아이가 앉아 있었다. 아까처럼 얌전히 책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지. 여긴 원래는 문예부였지. "그렇지만 올 봄에 3학년이 졸업해서 부원 제로! 새로 누군가가 입부하지 않으면 휴부하기로 한 유일한 동아리인거야." 그리고 책을 읽고있는 문예부원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이 아이가 유일한 신입부원!" 쿈은 어이없는 듯 손으로 얼굴을 싸잡고는 물었다. "그럼 휴부는 아니잖아?" "끝난 거나 마찬가지야. 한 명밖에 없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이 부실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말을 마치고 다시 쿈 쪽으로 걸어가니 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아이는 어쩌려고?" "'별로...' 라고 말하던데?" "진짜냐? 그거..." "점심시간에 만났을 때 부실 빌려줘라고 했더니 그러라고 했어. 책만 읽을 수 있다면 좋다면서." 독서에 방해가 안되게 해달라고 했으니 그 말이 그 말이니까. "특이하다고 하려면 특이하긴 해." 그 점에서도 약간 마음에 들기도 했다. 인형이나 로봇 같기도 하고 책을 좋아하는 과묵형 캐릭터랄까? 그런 거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 쪽으로 그 아이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안경을 고쳐 잡으며 말했다. "나가토 유키." 아, 이름이구나? 그래, 아직 이름도 몰랐구나? 음, 유키라. 눈이라는 의미일까. 예쁜 이름이지? 쿈은 곧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한 유키에게 무언가 물어보기 시작했다. "나가토...라고 했지? 이 녀석은 뭔가 알 수 없는 부의 부실로 쓸 생각이야. 그래도 상관없겠어?" 쿈. 알 수 없는 부라니. 실례잖아? 나는 슬쩍 쿈을 쳐다본 다음 유키의 대답을 기다렸다. 유키는 책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좋아." 짧게 대답했다. 쿈은 기가 막힌지 계속 물어보았다. "아니, 하지만. 아마 엄청나게 폐를 끼치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별로." "그러다가 쫓겨날지도 모른다고." "그러던가." 쿈은 '하아~' 한숨을 내쉬었다. 흐흥, 그래 좋아! "뭐, 그렇게 된거니까!" 나는 쿈 앞으로 튀어 막으며 양 팔로 가로막았다. 더 이상 물어봤자 의미도 없지. 유키도 좋다는 거니까! "이제부터 방과 후엔 이 방으로 집합이야! 절대로 와야 돼!" 쿈에게 손가락을 들이밀며 확실하게 말했다. "안 오면 사형이니까!" "알았어." 쿈은 마지못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음, 아직 불만인 것 같지만... 뭐 좋아! 이렇게 모인거니까! 이것이 우리 부, SOS단의 시작이야! 문예부실을 나와서 계단을 걸어내려갔다. 유키는 좀 더 책을 읽겠다고 했으니 나와 쿈 뿐이었다. 쿈은 그냥저냥 불만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렇다고 관둘 것 같지는 않았다. 뒤에 따라오는 쿈을 향해 말을 걸었다. "우선은 부원이네. 최소한 두 명은 더 필요한거야." 유키도 사실상 우리 부원이라고 해두자. 문예부는 이미 폐부나 다름없는 상태이고 갈 곳 없는 유키는 우리 부에서 받아주는 거야. 그러면 유키도 곤란하지 않을 거고, 우리도 부원 찾는데 수고가 줄어드니까. 거기다, 유키는 왠지 마음에 들었거든. 특이한 아이라서. 그렇지만 나머지 두 명은 어떻게 구해야 될까? 쿈은 어쩐지 걱정되는지 일층까지 내려오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쿈도 부원을 구하는 게 걱정되겠지? 뒤돌아서며 쿈에게 말했다. "안심해. 금방 모을테니까." 나는 쿈을 안심시키려고 말했다. "부원으로 적당한 사람을 찍어 두었으니까." 말하자면 나머지 둘 중 한 명은 누구로 할지 결정되었다는 말이다. 교내 탐사를 하며 봤던 아이다. 2학년 건물 복도에서 어딘지 멍하게 서있던 아이. 아무리봐도 중학생 같이 보였지만 교복과 실내화를 봐서는 틀림없는 키타고 2학년이었다. 그 얼굴이 어딘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 아이, 엄청나게 귀여웠으니까! 사랑스럽달까 내 옆에다 두고 싶었달까 어쨌든 어딘지 신비한 분위기도 풍겼고 마음에 드는 아이였다. 아, 2학년이니까 선배인가? 에이 그냥 어린애같이 생겼는데 아이 아이 불러대도 뭐 어때? 좋아, 말로만 꺼낼게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야지. 그 아이를 네 번째 부원으로 삼는 거야! 쿈은 그날 어딘지 의심스럽다는 듯이 계속 나를 쳐다봤고 나는 그 시선을 가볍게 무시하며 달려서 언덕 아래로 하교하였다. 내일이 기대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일단 점심시간에 그 아이의 반을 알아내었다. 그 반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이름은 아사히나 미쿠루. 생긴대로 얌전하고 소심한 아이라고 했다. 나는 그 정도의 정보만 얻고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좀 있다가 수업 마치면 찾아가야지.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렸다. 나는 앞자리의 쿈에게 "먼저 가 있어!" 하고 외친다음 냅다 달려갔다. 2학년도 수업 종료시간은 동일하니까 지금 바로 가야 잡을 수 있었다. 내가 2학년 복도에 다다르자 하나 둘씩 사람들이 밀려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교실 앞에 그 아사히나 미쿠루와 다른 한 명이 이야기를 나누는 게 보였다. "미쿠루짱~ 오늘도 서예부 가니?" "아, 네에." "으응, 그럼 내일 보자~" "아, 안녕히 가세요. 츠루야씨." 으음, 친구인가? 저 사람 머리 엄청 길다. 어딘가 특이하게 밝은 점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으나 역시나 내 관심은 모조리 저 아사히나 미쿠루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나는 그 친구가 사라지고 나서야 아사히나 미쿠루에게 다가갔다. "아사히나 미쿠루?" "네?" 미쿠루는 얼빵하게 뒤돌아보더니 얼굴이 파래졌다. 무슨 못 볼 걸 봤다는 듯한 표정이랄까. 아니면 무언가 있어서는 안되는 걸 본 표정이었다. "할 말이 있어." "에, 무, 무, 무슨 말이요...?" 뭐야 이 애는? 왜 그렇게 놀라는 걸까. 그냥 후배가 이름으로 막 부른 것에 놀란 걸까? 아사히나 미쿠루는 그 상태로 다리를 오무린 채 벌벌 떨고만 있었다. 안되겠어. 이 상태로는 이야기가 안돼. "음 뭐, 거두절미하고. 일단 따라와!" "예? 아니 그게 무슨...?" 나는 그대로 미쿠루의 손목을 잡고는 끌고 갔다. 자아 가자고 부실로. 미쿠루는 갑작스런 무력에 당황하여 소리를 질렀다. "후, 후에에에~ 대체~ 무슨 일인데요오~?" "으응. 가보면 알아." "자, 잠깐만 놓아주세요오오~" 미쿠루는 끌려 오면서 계속 찡얼거렸다. 시끄럽네. 마치 내가 납치범이라도 되는 줄 알아? 그냥 데려가겠다니까 말이 많아! 뭐, 이런 모습도 어딘가 귀여우니까. 봐 주겠어. 앞으로 내가 만들 부에는 이런 아이가 반드시 있어야 된다고. 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니까. 이런 모습도 보통은 볼 수 없는 특이한 모습이기도 하고 말이지. 자아, 이 아이를 모두에게 소개시키는 거야. 쿈이랑 유키가 기다리고 있겠지? 아마 이 아이를 보면 분명 기뻐할거야. 무엇보다도 내가 찾아서 선택한 모에캐릭터니까 말야! "후에에에에에~ 놔 주세요오오~" 내게 손이 잡힌 채 따라오고 있는 미쿠루는 여전히 찡얼거리기만 하고 있다. 쉽게 잡은 것 같으면서도 약간 귀찮았다. 별 힘도 없으면서 자꾸만 저항하니까. 그렇게 계속 걷다보니 곧 문예부실이 나왔다. 다왔네! 쾅! 나는 문을 열어젖혔다. "야아, 미안 미안~. 좀 늦었지? 잡는 데 약간 걸렸어." 외치면서 미쿠루를 부실 안으로 끌어다 넣었다. 좋아, 이제 끝! 무사히 데려왔으니까 설명만 하면 된다. "뭐예요... 여긴 어디죠? 어째서 제가 끌려온 거죠?" 작은 고양이처럼 울 것 같이 말하는 미쿠루는 내버려둔 채 나는 신나게 부실 문을 잠가버렸다. 혹시라도 도망가면 곤란하니까. 철컥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미쿠루가 뒤에서 소리를 질러댔다. 일단 진정시킬 필요가 있겠지. "왜 열, 열쇠를 잠그시는 거예요! 대체 무슨...!" "조용히 해." 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끊어버렸다. 미쿠루는 딸꾹질을 하듯 움찔하더니 굳어버렸다. 음, 그렇게나 겁먹을 필요 없는데. 아무래도 내 생각보다 더 재밌는 아이다. 쿈이 '나는 지금 정말로 어이라는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 그렇지. 쿈에게 소개해주어야 겠다. 나는 뒤에서 미쿠루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미쿠루는 또 움찔거렸지만 신경쓸 문제는 아니다. "소개할게. 아사히나 미쿠루야!" 흠, 이제 알겠지? 나는 양 옆구리에 손을 얹고는 가슴을 쫙 펴고 섰다. 미쿠루는 떨고 있었고 유키는 말없이 책을 읽고 있었으며 쿈은 그대로 힘이 빠진 듯 굳어버렸다. 응? 뭐지? 내가 눈을 두어번 깜빡이자 쿈이 물어왔다. "어디에서 납치해온거냐?" 아아, 그렇게 생각한 거구나? "그런 짓은 안 했어. 임의동행이라구." "그게 그거지." "2학년 교실에서 멍하니 있던 걸 잡아왔지. 나는 쉬는 시간에 교내를 구석구석까지 돌아다니니까. 몇 번인가 보고 기억해뒀거든." 흠? 이상하네? 이렇게 예쁜 애가 오면 좀 더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이럴까? 쿈은 당황한 듯 또 물어왔다. "그럼 이 사람은 상급생이잖아?" "그게 뭐 어쨌는데?" 정말 문제될 거 있나? 그냥 적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건데. 쿈은 콧등을 싸쥐고 중얼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음, 아니 됐어. 그러니까 아사히나 선배라고 했나? 왜 하필 이 사람인 건데?" 아아, 아직 내 의도를 모르고 있구나? "뭐, 일단 보라구!" 나는 미쿠루에게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무지무지 귀엽지?! 난 말이야. 모에를 꽤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거든." 그게 이유였다. 내가 생각해서 교내 최고의 모에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아이는 이 아사히나 미쿠루뿐이었다. 그러나 쿈은 얼빠진 표정으로 물어왔다. "미안, 뭐라고 했지?" 이해 못한 건가? "모에야 모에!" 나는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며 계속해서 설명했다. 아무래도 쿈은 모에를 모르는 모양이었다. "흔히들 일컫는 특정 모에 요소! 기본적으로 말야. 무언가 이상한 사건이 발생하는 이야기에는 이러한 모에하고 로리한 캐릭터가 하나 정도 필요한 거라구." 열심히 설명하니 쿈도 어느 정도 알아들은 것 같다. 미쿠루를 뚫어지게 보기 시작하였다. 후훗, 알겠지? 모에 캐릭터의 중요성을? 거기다... "그것 뿐만이 아냐!" 나는 미쿠루의 뒤로 가서 끌어 안았다. 그리고 미쿠루의 가슴을 움켜 쥐었다. 뭉클. 아아, 이거 여자인 내가 만져봐도 대단한데? "에, 안돼애!!!!" 미쿠루가 비명을 질렀다. 뭐, 상관 없어. 어차피 아까 끌고 왔을 때 느꼈지만 벗어나진 못할 테니까. "작은 주제에 봐. 나보다 가슴 엄청 크다구! 로리 얼굴에 거유? 이것도 모에의 중요 요소의 하나라구!" "몰라." 나는 신나게 미쿠루의 가슴을 주물러댔고 미쿠루는 그저 바둥거리며 비명만 질러댔다. 힘이 다 빠진 상태로 눈썹을 반쯤 찡그린 채 쿈이 쳐다보고 있었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유키는 책만 읽고 있었다. 으응, 뭐야. 재미있지 않은가? 좀 더 자극적인게 필요하려나? "야아, 진짜 큰데? 왠지 열받는 걸? 이렇게 귀여운 얼굴에 나보다 가슴이 크다니!" "후에에 그마안..." 그 때 누군가 나를 미쿠루에게서 떼어 버렸다. 아, 뭐야. 한참 재밌는데. 쿈은 질렸다는 듯 눈을 반쯤 감고는 말했다. "바보냐 너는." 뭐? 무슨 소리지? 아아, 부러워서 그러나? "하지만 엄청 크단말이야! 진짜로! 너도 만져 볼래?" 하긴, 남자애들은 이런 거 직접 해보고 싶겠지. 응, 내가 허락하니까 해도 좋은데? "사양하마." 쿈은 손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으음. 괜히 빼는 거 아냐? 곧 이어 쿈이 물었다. "그래서, 뭐냐? 너는 이 아사히나 선배가 귀엽고 작으며 가슴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여기에 데려온 거냐?" "그래." 당연하지. 내가 데려온 이유중 가장 적당한 모에 요소만을 집어내었다. 쿈, 이제 모에가 뭔지는 조금 알았겠지? 세상에 필요한 상식이라구. "이러한 마스코트 캐릭터도 필요할 거라고 생각해서 말야. 미쿠루짱, 너 뭔가 다른 동아리 활동하는 거 있어?" 이제 물어봐야지. 확실하게 잡아둬야 되니까. 부를 때도 미쿠루짱이라고 불러야겠다. "저... 서예부에..." 서예라, 그런 고리타분한 걸? "그럼, 거긴 관둬. 우리 부 활동에 방해되니까." 이제부터 미쿠루짱은 우리 부에 확실히 가입이라구. 내가 직접 선택했으니까. 미쿠루짱은 잠시 주춤 하며 두리번거리더니 곧 "아." 하고 감탄사 하나를 터뜨렸다. "아아, 그렇구나. 알겠습니다. 서예부는 관두고 여기로 입부할게요." 좋아. 미쿠루짱도 여기가 마음에 든다는 거겠지? 미쿠루짱은 쿈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지만 문예부는 뭘 하는 곳인지 잘 모르는데요." 어머, 문예부라고 생각했구나? 문예부실이라서? "우리 부는 문예부가 아니야." 내가 한마디 했더니 미쿠루짱은 다시 당황했다. 으음,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될까. 생각 중인데 쿈이 알아서 설명해주었다. "여기 부실은 일시적으로 빌린 것 뿐이에요. 당신이 가입 당하려는 곳은 저기의 스즈미야가 이제부터 만들 활동내용 미정의 이름도 없는 동호회입니다. 덧붙여, 저기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 진짜 문예부원이죠." "하아..." ...듣자 하니 쿈. 왠지 불만에 가득찬 설명인데? 으음. 하긴 아직 우리 부 이름도 안말했구나! "괜찮아!" 나는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외쳤다. 쿈도 걱정이 태산이야. 이렇게나 물 흐르듯 잘 해결되어 가고 있는데 말이지. "이름이라면 방금 생각했으니까!" 사실 방금이라고 하기엔 며칠 흘렀지만, 뭐 어때? 쿈은 동아리 이름이 없었던 것에 답답했었는지 아님 다른 곳에 불만이 있는지 찡그렸다. "말해봐." 좋아, 딱 한번만 말할 테니 잘 들어 두라고! 이런 멋진 이름은 두고두고 찾아봐도 없을테니까! "세상을 오지게 들썩이게 만들기 위한 스즈미야 하루히의 단! 줄여서 SOS단이야!" 이렇게 우리 SOS단이 시작되었다. 나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기도 한 것이었다. 그 후 쿈과 미쿠루짱과 유키의 표정을 설명하자면. 쿈은 충치를 뽑으려다 멀쩡한 이만 두개정도는 빼버린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미쿠루짱은 어딘가 이상한지 고개만 갸우뚱하고 있었으며 유키는 여태까지의 대화를 듣기는 했을지 모르겠지만 계속 책을 읽고 있었다. 어딘가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이런 친구들이 모인 부, 아니 단이라면?! "세상을 오지게 들썩이게 만들기 위한 스즈미야 하루히의 단! 줄여서 SOS단이야!" 내가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외쳤을 때 쿈의 표정은 분명 충치를 빼려다 성한 이만 두어개 뽑은 표정이라고 내가 표현했으나 사실, 그건 좀 아니었다. 그저 어이가 없었던 것 뿐이겠지. 다만, 그 순간 내가 그렇게 느꼈던 이유는 아마도 계속해서 내 말에 딴지를 걸어댔기 때문이다. "여기 학생 수첩에 적힌 동아리 관련 규정을 봐라! 네 생각대로라면 우리의 부는 세상을 오지게 들썩이게 만드는 스즈미야 하루히의 부, 또는 동아리가 되어야 된다고." "왜?" "아니 물론. 뼈대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뭘 하는 집단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야." "그러니까, 단이면 되잖아?" 나는 그 순간에는 그저 신이 나있었으므로 쿈을 그대로 밀어붙여버렸다. 덕분에 내가 원하는 대로 우리 부의 이름은 SOS단. 단으로 남을 수 있었다. 지금 다시 곰곰히 생각해본다. 쿈은 왜 그렇게도 그 날따라 내 의견에 반발만 해대었을까. 으응... 모르겠어. 전엔 내 말도 잘 들어주었는데 말이지. 자꾸만 신경쓰인다. 아니, 이젠 약간 짜증이 나 있었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랬다. 쿈이 교실로 들어오자마자 나는 쿈에게 걸어갔다.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에 살짝 웃음도 나왔다. 어쩐지 쿈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신이 나기도 하고 마음이 편하달까 즐거웠다. 그러나 요즘의 쿈은 뭔가 다르다. 내가 다가가기만 해도 이미 표정이 약간은 변해있었다. 귀찮다는 듯이. "응, 쿈. 후에 필요한 것은 뭐라고 생각해?" "뭐가?" "역시 수수께끼의 전학생은 갖춰 두는게 좋다고 생각되지?" "부탁이니까, 문맥을 확실히 한 후에 대화를 진행시켜주라." "SOS단에 필요한 거 말야!" 이것 봐. 이젠 반응이 다르다니까. 들어주려는 자세가 안되어있어. 나는 옆을 보면서 계속 설명했다. "수상한 전학생 정도는 필요하지 않아?" "그 이전에 수수께끼의 정의를 가르쳐 주면 좋겠다만." "새학년이 시작된 지 두 달도 안되었는데 그런 시기에 전학 오는 녀석은 충분히 수수께끼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되잖아? 너도?" 그리고 몸을 쿈 쪽으로 돌리며 동의를 요구했다. 너도 그렇지 않아? 수수께끼의 조직에서 잠입시키기 위한 스파이라거나 뭔가 이 마을에서 사건을 일으키기 위한 그런 존재. 전학을 하필 지금 올 만한 이유라면 그런 특이한 존재가 아니고서는 없다고 생각한다. 전에 내가 생각한 것을 이해하던 쿈이라면 분명히 내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일지 이해해줄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갑자기 전근하게 되는 경우도 있잖아?" 쿈은 그저 일반적인 사고만 하고 있었다. 뭐야, 재미없어. 나는 다시 몸을 옆으로 돌리며 팔짱을 꼈다. "아냐! 부자연스럽잖아 그런 건." 사실, 나도 그런 편이 더 자연스럽다고 이해하고 있긴 하다. 그래도, 쿈이 내 의견에 조금이라도 동조해주길 바랬는데... 약간 화가 났다. "너에게서 자연스러운 게 뭔지 난 알고 싶은데." 당연히 나도 쿈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방법을 써야 되겠지? 내 생각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으니 말야. "아아~ 안오려나? 수수께끼의 전학생..." 나는 이미 몸의 방향을 쿈에게서 완전히 돌려버렸다. 하아, 됐어. 기대하지 말걸... 쿈같은 녀석한테. 뒤에서 쿈이 한숨을 쉬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내 의견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는 거냐. 너는..." 흥. 누가 할 소릴? 이렇듯 요즘들어 쿈이 나의 생각에 별로 발을 맞춰주지 않는 것 같아서 정말 싫다. 짜증나고 신경질나고... 그렇지만 왠지 화를 낼 수는 없었다. 내 생각이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흥, 그런 상식선에서 생각하면 결국 발견할 수 없다고 어딘가 신기하고 특이한 일들은. 정말로 어디 수수께끼의 전학생 하나 안오려나? 쿈의 코를 눌러버리고 싶은데... ...아니, 그냥 그런 걸까. 일단 오늘은 SOS단 설립 이후 첫날이니까. 기분 나쁘게 지내지는 말아야지. 부실이나 멋지고 실용적이게 꾸며야 되겠네? 단장석도 마련해야 되고. SOS단의 시작을 생각하니 다시 신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 그냥 가보는 거야. 쿈 말고도 아직 부원이 두명이나 있으니까. 두명이나... 그리고 하교시간이 되었다. 나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틈틈이 부실을 장식할 물건들을 준비했다. 아침부터 준비해 둔 이동식 옷장이랑 커피 포트, 카세트, 미니 냉장고를 포함해 점심 시간에 챙겨온 여러 식기라든가 테이블, 가스 버너 등도 준비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단장 석은 빈 교실 구석에서 하나 가져왔다. 내가 단장임을 확실히 하기 위해 흰 매직으로 '단장'이라고 쓴 삼각뿔도 완벽했다. 좋아, 이 정도로 준비해둬야 SOS단의 부실이라고 할 수 있지! 아침부터 약간 상해있던 기분이 조금은 풀린 것 같았다. 수업이 마치자마자 부실에 왔는데도 유키는 벌써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전에 앉아있던 위치에 단장 석이 있었기 때문에 약간 옆으로 의자를 옮겨 두었다. 뭐, 저 위치도 적당히 밝은 것 같으니까 유키도 상관 없겠지? 책 읽는데 방해되지 않을테고 말야.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곧 미쿠루짱이랑 쿈이 부실로 들어왔다. 좋아, 모두가 모였구나. 난 흡족한 마음에 단장석에 올라 앉아서 창 밖을 내려다 보며 생각했다. 일단 5명째 부원도 필요한데. 그렇지만 아무나 넣을 순 없는 거고. 며칠 안에 수수께끼의 전학생이 오길 기다려야 되는 걸까. 음, 뭐. 다 잘풀리겠지? 그보다 부실도 이정도로만 꾸며 두면 될까? 뭔가 더 필요한 건 없는지. 하음... 저 맞은 편에 보이는 학교 본관만 바라보자니 지루했다. 뭔가 새롭고도 현대적인 것이 필요한데... 맞아! 컴퓨터! "컴퓨터도 있어야 되겠지?" 나는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그래, 그거야! 지금 필요한 게! "이 정보화 사회에 컴퓨터 한 대도 없다니 용서할 수 없는 일이야!" 나는 단장 석에서 내려왔다. 흐흥. 방금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나는 뚱하게 앉아서 애써 시선을 피하는 쿈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그럼, 조달하러 가자!" 쿈은 앉은 채로 올려다보며 물었다. "어이 어이. 아는 곳이라도 있어? 전자대리점이라도 털 생각이야?" "설마? 좀 더 가까운 곳이야." 내 머리 속에 갑자기 떠오른 그 곳은 바로 컴퓨터 연구부였다. 지난 달 내내 내가 모든 부에 가입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구관을 돌아보니 유독 이 부 만큼은 내가 들어가보지 않았었다. 얼마나 컴퓨터가 있을 진 모르겠지만 아마 엄청 많겠지? 말그대로 연구부니까 말야. 전에 쿈이 나에게 보여준 학생수첩에는 '발족 이후의 활동, 실적에 따라 '연구부'로 승격이 운영위원회에서 결정된다.' 라고 적혀있기도 했으니 학교에서 충분히 활동비를 대주고 있을 것이다. 나는 곧 미쿠루와 쿈에게 따라오라고 명령한 다음, 바로 이웃에 있는 컴퓨터 연구부로 갔다. "안녕하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예상대로 많은 컴퓨터의 모습이 보였다. 보이는 부원들도 다들 모르는 사람들 뿐이었다. 모두들 '누구야?'라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컴퓨터 한 대, 받으러 왔습니다!" 나는 미쿠루짱을 끌고서 부실 깊숙히까지 들어갔다. 이 순간 만큼은 정말로 신이 나 있었기에 아침에 쿈이 뭐라고 했든 상관없었다. 오히려 저 문앞에 쿈이 따라와 주어서 든든하기까지 했으니까. 자아, 컴퓨터 연구부! 이제 나에게 컴퓨터를 내놓으라고!! "부장은 누구?"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지?" 바로 뒤에 앉아 있는 사람이 물어왔다. 이 녀석이 부장이구나. 난 자신감 있게 말했다. "컴퓨터 연구부에 일부러 찾아올 용건이라면 하나뿐이잖아? 한대라도 좋으니까 컴퓨터 줘." "하아?" 상황을 설명하자면 난 지금 미쿠루짱이랑 둘이서 컴퓨터 연구부 부실 한 가운데에 서있고 그 주변에는 모조리 컴연의 부원들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따라온 쿈은 문 앞에서 멀뚱 멀뚱 쳐다만 볼 뿐이었다. 부장이라는 녀석이 물어왔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괜찮잖아 한대 정도는? 이~렇게나 있으니까!" "이보라구. 그것보다, 너희는 누구냐?" 아, 자기소개를 깜빡했다. 확실히 알려둬야겠지? "SOS단 단장 스즈미야 하루히! 이 두사람은 내 부하 1과 그 2야." 내가 손가락질을 한 끝에는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다 내 말에 다시 정신을 차린 쿈이 있었다. 이봐, 쿈. 지금 딴 생각할 때가 아니지. 훌륭한 작전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좀 더 의욕을 보이라구. 나는 쿈이 좀 더 주목하길 바라는 마음에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얼굴을 들이대며 부장에게 명령하였다. "그런 이유니까 군소리 말고 한대 내 놓아!" 컴연의 부장은 약간 발끈해서는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이유냐고? 당연히 안 되지!" 흐응~ 그러셔? 역시나 이렇게 되는 건가. 아아, 난 평화적인 방법을 원했는데 말이지. "아, 그래?" 그리고 나는 미쿠루짱에게 다가갔다. "그럼 이쪽에도 생각이 있거든." 그리고 미쿠루를 부장 쪽으로 이끈 다음, 부장의 손을 잡고는... 물컹 흐흥~ "꺄아아아아아아아~" 미쿠루가 비명을 질렀다. 내가 부장의 손을 미쿠루의 가슴에다 얹었기 때문이다. 뭐, 그거야 그거고. 나는 내가 할 일이나 해야지? 나는 부장이 그 손을 놓기 전에 얼른 카메라를 꺼내서 찍어버렸다. 찰칵. 자아, 이제 어쩌실 건가? 후후, 이 계획. 꽤나 즉흥적이긴 해도 확실하다구. "우왓?" 부장은 손을 떼며 놀라서 일어섰다. "무슨 짓 한 거야!" 어어, 이걸로는 모자라다구. 방해하지 말고... 콱! "크엑!" 나는 발로 일어선 부장의 뒷덜미를 찍어 내린 다음 등을 떠밀었다. "한 번더 한 번더!" "으억!" "꺄윽!" 부장과 미쿠루짱의 비명소리가 겹쳐지면서 두사람은 그대로 포게져버렸다. 좋아, 좋은 각도~ 찰칵 찰칵 찰칵 찰칵 "뭘 하는 거야!" 찰칵 부장이 정신을 차리고 다시 몸을 일으키기까지 총 다섯 장. 이만하면 충분히 써먹을 수 있겠는데? "칫칫칫, 너의 성희롱 사진은 확실히 찍었다구. 이 사진이 교내에 퍼지는 걸 원치 않는다면 얼른 컴퓨터를 내놓으라구." 부장은 입을 떡 벌리고 진땀을 흘리며 반항했다. "그런 바보같은! 네가 억지로 시킨 거잖아! 나는 무죄야!" 반항해봤자지. "대체 몇 명이나 너의 말에 귀를 기울여줄까?" 확실히 이런 경우에는 이 쪽이 더 유리하다구. 아무리 반항하려해도 말이지. 증거가 남아버렸으니까. "윽..., 우, 우와앗!" 부장은 자신이 아직도 미쿠루짱 위에 앉아있었다는 걸 깨닫고는 비명을 지르며 일어섰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발악했다. "여, 여기에 있는 부원들이 증인이야!" 아, 그러고보니 옆에 있는 녀석들을 깜빡했네? "그래!" "부장은 잘못 없다구!" 옆의 부원들이 부장을 옹호하려 했다. 그래 봤자야. 앉아서 손만 들고 외치는 녀석들따위 한마디면 끝 날 일이다. 나는 팔을 쫙 뻗으며 외쳤다. "부원 모두가 이 아이를 XXXX했다고 소문내고 다니겠어!" "으헉!!" 자아, 이제 항복이지?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무렵. 문 앞에 서있던 쿈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나는 그 말에 오히려 더 험악한 인상이 되었다. 뭐야. 도와주지는 못 할망정 말리려고 드는 거야?! 나는 갑자기 끌어오르는 분노를 재빨리 부장에게 퍼부어버렸다. "어쩔 거야? 내놓을 거야? 내놓지 않을 거야?!" 이것이 마지막 한 방이었다. 나는 화난 얼굴 그대로 노려보았고 부장은 이리저리 표정이 변하더니 그대로 주저 앉고는 "마음에 드는 걸로 가져가라..." 라고 허락했다. 후우, 한 건 해결! 계획대로 일이 끝나자 내 분노는 씻은 듯이 날아가버렸다. 신이 나서 빙글빙글 춤까지 춰댔다. 성공했으니까! 좋아, 그걸로 된 거야! 부원들이 쓰러진 부장에게로 모여들었다. 미쿠루는 아까 전부터 그저 주저앉아 있었다. 쿈은 멀리서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 쿈을 보는 순간 다시 짜증이 나려고 했기에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흥, 쓸모 없긴. 이제 컴퓨터를 골라야 할 차례였다. "최신 기종은 어느 거?" 당당하게 물어봤더니 부장이 화를 내었다. "어째서 그런 걸 가르쳐주지 않으면 안되는거냐!" 이미 끝난 걸 그러네. 난 말없이 웃으며 카메라를 가리켰다. "으윽, ...제길. 저거야." 부장은 내 앞의 컴퓨터를 가리켰다. 흠, 정말일까? 나는 뒷주머니에서 그것을 꺼냈다. 후훗, 어제 컴퓨터 매장 앞을 지나길 잘했지. 우연히도 이런 종이를 나눠줬으니 말야. "어제 컴퓨터 매장에서 최근에 나온 기종을 알아봤거든?" 이렇게 써먹을 수 있다니 괜찮은데? 순간 움찔하는 부원들. 그렇지, 이건 확실히 아닌가 보네? "여기에는 실려 있지 않은 것 같은데? 으음... 어?" 그리고 아까 부장이 앉아있던 컴퓨터. 저것 같았다. "오?" "으윽..." 내가 그쪽에 신경을 쓰자마자 바로 반응이 온다. 참 쉬운 녀석들이다. "이거 줘!" "으아아!" "기 기다려 줘! 저건 저번 달에 막 구입한...!" 확실하다. 그렇다면 이걸로 하는 게 맞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카메라를 보여줬다. 부장은 고개를 떨구고는 우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가져가라, 도둑 놈아." 도둑이라니. 엄연히 평화적 협상이지. 참 심한 말도 한다. 이 부장녀석은. 이걸로 결정이네. 우리 부실 컴퓨터는? 그럼 이제 아무 것도 안한 우리 부하를 시켜 먹어야지? 아까 전엔 오히려 내 일을 방해하려고도 했고 말야? "자아, 쿈. 날라." 쿈은 어딘가 피곤한 눈으로 날 바라보며 순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런 식이네 쿈은. 내 생각에 반발하는 것 같으면서도 정작 시키면 하는구나? 으음, 다시 생각해 봐야 겠어? 너무 쿈에게 나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저런 성격이란 걸 이해해야 될까? ...내가 왜 그런 걸 신경쓰는 거지? 아아, 모르겠다. 얼른 날라간 컴퓨터나 확인해 봐야지. 쿈 녀석. 항상 신경쓰이지만 그렇게 미워할 수는 없겠어. 아니, 그...다른 의미라기 보단 역시 중요한 단원 중 하나니까. 쿈은 컴퓨터에 앉아서 이것 저것 점검했다. "어이, 이거 인터넷이 안되는데?" "에엑? 어째서?" "아무래도 LAN선이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뭐야 그게! 그 녀석들 불러! 완벽한 환경도 제공해주지 않다니, 이건 계약 위반이야!" "이봐, 그렇게까지 해야 되겠냐." "당연하지! 앞으로 홈페이지도 만들어야 된단 말야!" "하아아..." 쿈은 싫지만 어쩔수 없다는 표정으로 부실 문 밖으로 나갔다. 옆에 앉아 있는 유키는 아무 말도 없이 책만 읽고 있었고 미쿠루짱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 이제 일은 차근차근 풀려갈 것이다. 내일은 SOS단 홍보도 생각하고 있다. 다만, 방금 전 상황을 잠시 정리해야 되었다. 쿈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를 말리려고 하다가도 내 말을 따라주고 있다. 내 말을 듣고 이해도 해주면서 따라주는 건... 아아, 난 왜 아직도 그의 그림자를 잊지 못하는 걸까. 전에도 느꼈던 것이다. 내가 쿈에게 자꾸 신경을 쓰게 되는 것. 그 칠석 날 밤의 존 스미스. 쿈과 그는 확실히 닮았다. 다만 쿈이 좀 더 비협조적이랄까. 좋은 협조자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상황을 봐서 앞으로 규칙을 하나 둘 만들어 두는게 좋을 듯 하다. 쿈이 함부로 훼방 놓지 못하게 확실한 규정을. 단장이라는 자리에 있으니까.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겠지. 단장이라는 까만 삼각뿔이 놓인 단장석을 바라모며 나는 미소지었다. 그리고 곧 문이 열리며 들려온 소리. "데려왔다." "이, 이번엔 뭐냐?" 쿈과 부장이 부실로 들어왔다. 나는 생각을 접고 곧 행동하기 시작했다. "어째서 여기서는 인터넷이 안되는 거야?" "그, 그야 LAN이 연결되지 않아서 그렇지." "그렇다면 그것까지 확실히 해줘야 겠지?" 나는 환하게 미소지으며 부장에게 명령했다. "자, 우리 부실에서도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게 하라고. 지금 당장!!" 나는 컴연의 부장이 학교 도메인으로 접속할 수 있도록 시켰고 약 두시간 반에 걸친 작업끝에 완료되었다. 좋아! 이제 홈페이지를 만드는 일만 남은 거야!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SOS단 웹사이트 개설] 음. 이렇게 뭐라고 써둔 것만으로도 기분은 났다. 옆에 앉아 있던 쿈이 물었다. "그런데, 누가 만들 건데? 그 사이튼지 뭔지" 음, 난 할 줄 모르는데... 일단 관심을 보였으니 시키면 하겠지? "너. 어차피 한가하잖아? 해!" 쿈의 얼굴이 다시 피곤해보인다. 하기 싫다는 간접 표현이 확실하다. "나는 나머지 부원을 찾아야 하니까. 하루 이틀 내로 부탁해." 쿈이 싫어하든 어떻든 일단 시키고 나면 한다는 걸 이젠 확실히 알고 있다. 이건 써먹을대로 써먹어야지. "일단 사이트가 없어서는 활동할 수가 없으니까." 어휴. 한숨 쉬는 쿈을 내버려둔 채, 나는 다시 모니터에 집중했다. 어디보자, 내일까지 주문해야 되니까 말야. 그래, 이걸로 내일은 미쿠루랑 둘이서 홍보하면 되는 거야. 분명 눈에 확확 뜨일 테니까. 다음 날 점심 시간이 끝나고 앞자리에 앉아서 졸고 있는 쿈에게 물었다. "어때, 사이트 다 됐어?" 내 물음에 쿈은 최대한 이야기 하는 걸 틀키지 않을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아, 되기는 했는데. 보러 온 녀석이 화낼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사이트야." "지금은 그 정도로 충분해. 메일 주소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그럼 휴대전화 메일로 충분하잖아." "그건 안 돼. 메일이 쇄도하면 곤란하다구." "뭘 어떻게 하면 갓 등록한 메일 주소에 메일이 쇄도하는데?" "비밀." 나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방과후가 되면 알게 될 거야. 그때까진 극비 사항." "영원히 극비로 남겨뒀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한번더 씨익 웃어주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쓰던 것을 마저 썼다. 이건 매우 중대한 글이니까. 명확하고 간결하게 써야 했다. 바로 SOS단 소신 표명. 'SOS결단에 따른 소신 표명 우리 SOS단은 이 세상의 불가사의를 널리 모집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불가사의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 사람 현재 굉장히 불가사의한 현상이나 수수께끼에 직면한 사람 머지않아 불가사의한 체험을 할 예정인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우리에게 상담하면 됩니다. 당장 해결해드리겠습니다. 단지, 보통의 불가사의는 안 됩니다. 우리가 놀랄 정도로 불가사의한 일이 아니면 안 됩니다. 주의해주십시오! 메일 주소는...' 음, 대략 이 정도로 쓰면 완벽해! 이제 이걸 복사하는 일만 남았는데... 이제 SOS단을 전교에 널리 알리는 것 부터 시작이야!! 다음 시간인 6교시에는 이미 난 교실에서 나가 있었다. 시간이 아까웠기 때문이다. 어차피 들어보나마나 아는 내용이었으니까. 다만 선생이 내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지 못했기를 기대했다. 그 선생, 출석체크는 자주 잊으니까 말야. 그보다 나는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다. 이 SOS단 소신 표명문을 얼른 복사해야 되는 것이었다. 나는 일단 시내의 인쇄소를 찾아갔다. 찾아가는 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인쇄 비용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어제 그것도 주문해 뒀기 때문에 더 이상의 지출은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만큼은 인쇄소 직원이 잠깐 자리에 없기를 바랬다. 인쇄소 앞에 다다랐을 무렵, 마침 직원 둘이 가게를 나오고 있었다. 둘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허허, 잠깐 쉴까?" "그래, 거기 가지. 전에 거기 말야." "허허허, 괜찮지." 나이스 타이밍! 어디를 가는 건지는 몰라도 저 둘이 나가면 인쇄소에 있을 만한 사람은 가게 주인 한 사람 뿐이다. 그나마 그 주인도 그다지 얼굴을 자주 비치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럼 실례.' 역시나,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도 아무도 없었다. 허술하긴. 이럴 때 도둑이 들면 아무런 대책도 없다고. 난 참고로 도둑이 아니다. 말하자면 돈 없는 학생으로서 무료 봉사를 받으러 온 거라고. 허락 없이 한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갱지로 200장 정도 복사한 다음 서둘러 종이 봉투에다 넣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집이었다. 지난 번에 주문 했을 때, 물건을 집으로 오도록 했던 것이다. 이 물건은 오늘 방과 후에 매우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나랑 미쿠루짱이 함께 입을 거니까. 후훗, 분명 눈에 확확 띄겠지? 이걸로 SOS단의 홍보는 확실할 거야. '음, 내가 도착할 그 타이밍에 오면 좋겠는데.' 라고 생각했고, 내가 집에 다다랐을 무렵, 마침 택배회사 차량이 우리 집 앞에 정지했다. 직원이 물건을 꺼내는 걸 보고 나는 단숨에 뛰어갔다. "주세요!" 오늘 참 나이스 타이밍이라고 할 만한 일이 연속으로 터졌다. 그야말로 기분 최상이었다고나 할까? 나는 그 물건을 들고서 바로 학교로 향했다. 달리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나중에 SOS단 홍보 할 체력을 생각해서 그저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오르막을 걸으며 생각 한 것은 오로지 하나 뿐이었다. 'SOS단 홍보!' 오늘 내가 이렇게 홍보를 하면 일단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겠지. 불가사의를 접한 사람이 아무래도 교내에 한 명, 아니 다섯 명, 아니 스무 명 이상은 있을 거야! 그리고 관심을 가지게되면 그 주변 사람들에게도 SOS단에 대하여 말 할 거고 이 후 많은 사람이 우리 SOS단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불가사의를 경험한 자들이 속출 할 거야! 그렇게 되면 이제 나도 무언가 신기한 것을 겪게 되겠지. 자아, 힘 내보자구! 학교 교문을 들어서면서 부터는 도저히 걷기만 할 수가 없었고 나는 이미 부실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시간은 벌써 방과 후 인지 학생들이 하교 하고 있었다. 좋아, 지금 쯤이면 전부 부실에 모여 있겠군! 어느 새 나는 구관 3층 복도에 다다랐고 힘차게 부실 문을 열어제꼈다. "야~호!!" 당장 들어서니 부원 3명 모두 있다는 걸 확인했다. 나는 곧바로 들고 온 가방을 앞의 긴 책상에다 얹은 뒤 부실의 문을 닫고는 잠갔다. 혹시나 외부에서 방해가 있어서는 안되기도 했고 또, 내부에서 나가는 자가 생겨서도 안되는 것이었다. 내가 문을 잠그자마자 부원 둘이(유키는 뭐, 책만 읽으니까.) 움찔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내가 중대한 일을 한다는 암묵적인 룰이기도 했다. "우선은 이거." 쿈에게 먼저 한 장을 주었다. "뭐냐 이거. 어디, SOS단 결성에 따른... 소신 표명?" 내가 나머지 두 장을 유키와 미쿠루짱에게 주는 동안 쿈은 받아 든 종이를 소리내어 읽었다. 후훗, 이게 뭔지는 잘 알았겠지? 우리 부의 기본 목적이 뚜렷이 나타나있다구. "그리고 이거! 짜자자잔~!" 들고 온 물건을 꺼내 들었다. 내가 가져오는 동안 이미 택배 포장은 뜯어 두었으니 내 손에 들려 올려진 건 그것이었다. 자아, 어때? 이거 말야 이거! 그 순간 쿈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고 미쿠루짱은 내가 준 종이를 읽느라 정신이 없었으며 유키는 책을 읽다가 내가 준 종이로 관심을 옮기고 있었다. 모두에게 아직 설명이 부족한 것 같지만 일단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이제 홍보를 시작하는 거야! "이걸 입고 돌리러 가는 거야." 나의 말에 또다시 날아오는 쿈의 질문 "어디로?" "교문이지. 지금이라면 하교 중인 학생들도 있으니까." "그런데, 뭘 입는다고?" "네가 아니잖아. 입는 건 미쿠루짱이고." 미쿠루짱이 "에?"소리를 내며 내 쪽을 보았고 나는 그것을 보여주었다. "바니걸!!" 나는 토끼 귀를 머리에 쓰며 외쳤다. 이거야 이거. 확실한 물건이지? 그리고 옆에서 물먹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미쿠루짱. "저기 저어... 그건 대체...?" 이제 여기까지 보여줬으면 설명 다 된 거잖아? 얼른 시작해야지. "자아, 갈아입어 갈아입어!" "싫어요!" "시끄러워! 벗으라구 벗어!" 나는 미쿠루짱을 붙잡고 옷을 벗기기 시작하였다. 저항해봤자 지난 번에 미쿠루짱은 완력이 형편 없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안심하고 무력행사했다. 상의를 강제로 벗기자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자아 조금만 더 하면 윗도리는 다 벗기는 거다! 나는 꽤 신이 나 있었다. 미쿠루짱을 괴롭히는 건 이상하게 재미있다. 그 때 옆에서 누군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어이 스즈미야!" 쿈이었다. 벌떡 일어서서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뭐야, 또 방해하려고? 신경 쓰이게 또 한소리하며 막으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미쿠루짱이 소리를 지르면서 쿈의 의도는 실행되지 못하였다. "안돼애애~! 보지 말아요~!!!!" "윽!" "얌전히 있어!" 내가 따끔하게 한마디 한 것과 상관없이 작은 고양이처럼 귀엽게 지른 미쿠루짱의 비명에 쿈은 그만 얼굴을 붉히더니 서둘러 부실 밖으로 - 나가려고 했으나 문이 잠겨있었고 자물쇠를 해제하고서야 - 나가버렸다. 음, 여하튼 방해꾼은 나갔고 나는 하던 일을 계속 진행했다. "으앗, 잠깐!" "됐어 얼른~" "스, 스스로 벗을 테니까..." "팍 팍 전부 벗으라고!" "흐에에~" 몇 분 간 실갱이 끝에 미쿠루짱은 일단 옷을 다 벗었다. 그 다음 바니걸 옷을 입혀면서 보았지만 역시나 미쿠루짱. 그 가슴은 반칙이야. 그렇게나 어린 얼굴에 그런 가슴이라니. 우... 역시나 부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왠지 미쿠루짱을 자꾸만 괴롭히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게 아닐까? 옆에 얌전히 앉아 있는 유키를 보았다. 여전히 책만 읽고 있었다. 항상 그런 모습이니까 이젠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아차, 돈이 없어서 유키 건 준비 못했지? 괜찮겠지 뭐. 둘이서도 충분히 시선 끌테니까. 이런 저런 끝에 나는 미쿠루짱에게 토끼 귀와 커프스까지 모두 입혔고 그러는 틈틈이 나도 옷을 벗고 복장을 갖췄다. 나는 까만 색, 미쿠루짱은 빨간 색. 음, 어울리는 것 같아. 이걸로 오케이. 완료 되었다고 생각하니 밖에 나간 쿈이 생각났다. 기다리겠네? 음, 어떨까. 한 번 감상이라도 들어볼까? 왠지 두근거렸다. 신이 나서 뛰는 심장소리와는 약간 다른 느낌으로. 나는 곧 문을 열고는 쿈을 불렀다. "들어와도 좋아." 복도에 뻘쭘하게 서서 창 밖을 내려다 보던 쿈은 겨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시선에 맞춰서 나는 자세를 잡았다. 토끼 귀랑 꼬리, 커프스, 그 밖에 하이 힐 까지 신었으니 그야말로 완벽한 바니 걸이었다. "어때? 이 정도면 완벽하게 주목 받겠지?" 이 완벽한 복장을 보고 쿈은 잠시 말을 잃더니 "그건 싫어도 눈에 띄겠다." 라는 한심한 평가나 읊었다. 흠, 별로 마음에 안드나? 뭐 눈에 띌 거라는 예측을 들었으니 만족할까? "나가토는 안 해도 돼?" "두 벌밖에 살 수 없었어. 풀 세트라 비쌌거든." 유키도 이렇게 못 입는 게 그다지 아쉬워보이진 않았으니 그대로 오케이다. 쿈은 계속해서 물어봤다. "그런 건 어디서 파는데?" "인터넷!" "그렇구만..." 쿈에게도 감상을 다 들은 것 같고 이젠 그대로 출발하면 그만이었다. 나는 종이 봉투와 전단지를 챙긴 뒤 미쿠루짱을 불렀다. "그럼 다녀올게. 가자 미쿠루짱~" "히, 히앗, 싫어요~" "에잇!" 나는 미쿠루짱의 팔목을 잡아 끌고서 부실 밖으로 나갔다. 중간에 쿈이 스쳤고 쿈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위기를 보아서 이제 쿈도 어느정도 체념한 것 같았다. 더 이상의 방해꾼은 없는 것이다. 이제 교문에 나가는 것만 남은 것이고. 나가자 교문으로! SOS단을 이 세상에 알리는 첫 걸음이야! 이미 하교 시간이약 30분가량 지났기에 사람의 숫자는 매우 줄어있었다. 뭐 좋아. 아직 많이 있으니까. "자, 미쿠루짱. 홍보 시작이야! 열심히 하라구!" "흐, 흐으..." 미쿠루짱은 얼굴이 완전히 새빨개져서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뭐야 미쿠루짱. 너무 소극적이라고 그거. 그런 얼굴과 몸매를 내가 유용하게 써주겠다는데 그렇게나 비협조적이어도 되는 거야? "미쿠루짱! 뭐하는 거야?" "흐에, 스, 스, 스즈미야씨... 이렇게 부끄러운 모습으로... 흑..." 맙소사. 울음 터뜨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 모습이 주변 남자들에게는 오히려 더 매력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내버려 두기로 했다. 뭐, 전단지는 내가 나누면 되는 거니까. "자! 여러분 주목해주세요!" 나는 소리를 지르며 전단지를 들어보였다. "우리 SOS단에서 이렇게 홍보 나왔습니다! 읽어보시고 메일 부탁합니다!" 그리고 한사람 한사람에게 나눠 줄 생각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모두들 종이를 별로 받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이상하다? 시선은 분명 끌었을텐데? 아까부터 가만히 서서 우리를 보는 사람은 꽤 많았다. 그렇다면 시선 끄는 것 까진 성공적이라는 이야기다. 왜 피하는 거지? 그저 SOS단을 위한 불가사의에 대하여 묻는 홍보지일 뿐인데? ...그래서 피하는 건가? 그래,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불가사의를 찾으려고 애 써봤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고 오히려 피하려고 했었지. ...그건 알고 있었는데도... 그런데도... 왠지 이번 만큼은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늘은 그래도 뭔가, 뭔가 하나라도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불가사의. 3년 넘게 내가 찾으려고 힘쓰던 그것. 우주인이든 미래인이든 이세계인이든 초능력자이든... 어떤 것이든 간에 찾고 싶다. SOS단도 결성하고 여태까지 순조로웠기에 꼭 성공할 거라고 믿고 싶다. 믿고 싶다. ...믿는 게 아니라...? 에이이 맘 약한 소리 하지마! 일단 이 전단지를 모두에게 나누어 주어야 했다. "거기!" "에?" "이거 받아봐. 중요한 거니까." "아니, 됐어." 멀찌기 떨어져서 바라보던 남학생은 쉽게 거절했다. "거기는?" "아니. 새, 생각 없어." 옆에서 보던 여학생 둘도 거절. 뭐야. 왜 하나같이 이 모양이지? 후우 맥 빠지네. "어이, 거기! 너희들 뭐하는 거냐!" 학교 쪽에서 큰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갑자기? 나 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학교 쪽에서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두 사람이 달려왔다. 다른 한명은 잘모르겠지만 일단 선생이었고 츄리닝을 입고 달려온 사람은 담임 오카베였다. 치, 쓸데 없이 껴 들긴. 둘 다 내 앞으로 오더니 바로 고함을 질러댔다. "뭐뭐뭐 뭐냐 그 차림은! 학생이 할 복장이냐?!"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냥 동아리 광고를 하고 있었을 뿐이에요." 앞뒤가 꽉 막힌 선생들 같으니. 동아리 홍보조차 마음대로 못하게 하는 걸까. "크으윽.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당장 그만 둬!" "에엑! 무슨 소리예요 그거!" 그만 두라고?! 웃기지 마! 당신이 뭔데? 선생이면 다야?! "절대 계속 할 거니까 상관 마요!" "바보냐! 어떻게 상관 안 할 수가 있어! 전에 동아리라느니 뭐라느니 물어보더니 무슨 꿍꿍이인거냐! 그그그 그런 옷을 입고 있는 반 학생을 어떻게 내버려 두느냐고! 게다가 난 학생 지도 담당이다!" "시끄러워요! 난 홍보를 계속 할 거니까 더 이상 방해하지 마세요!" 그리고 뒤로 돌아서 전단지를 건냈다. " 그럼 거기는?" "선생 말이 말 같지 않냐!!" "음...? 어? 아, 아니 아니 저... 저기... 그..." 바로 뒤에서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남학생에게 전단지를 건내주려 했지만 되려 얼굴이 벌개진 채 손만 저어 댔다. 칫, 선생 때문에 아무래도 더 이상은 힘들 것 같아. "이 녀석! 더 이상은 그만 둬!" 오카베가 등 뒤에서부터 나를 붙잡았다. "으앗! 뭐하는 거야! 방해하지 말라고!" "시끄러워! 너 같은 녀석은 이렇게라도 해야 되는 거야! 얼른 따라와!" "으아아! 정말!" 방해다 방해! 크악! 그저 동아리 홍보하는 건데도 왜 이러는 거야! 양 팔이 붙잡혀서 나는 그대로 오카베에게 끌려가야만 했다. 뒤에서 미쿠루짱이 흐느끼며 옆의 교사와 함께 따라오고 있었다. 후우, 뭐냐고 이게! 완전 실패잖아! 그 후 미쿠루짱은 부실로 보내졌고 나는 학생 지도실로 끌려갔다. 그 순간의 일은 기억하기 싫지만 대충 설명하자면 오카베는 자기가 학생 지도 담당인 걸 강조하면서도 내 쪽을 똑바로 보며 이야기 하지도 않았고 핸드볼에서 4보 이상이 워킹인 것은 농구보다 느슨하다고 해도 엄연히 규율이라나 뭐라나 과연 핸드볼 오타쿠 다운 인용으로 더 혼란스럽게 설교해대었다. "귀찮게. 당신들은 그저 지금 날 방해했을 뿐이라구." 라고 한마디 하자마자 다시 폭발해서는 거기 있던 교사들은 (특히 오카베) 얼굴이 울그락 붉그락 하더니 뭐라고 더 고함지르려다가 그냥 날 돌려 보냈다. "후우, 그래. 넌 원래 그런 녀석이니까. 이번에만 특별히 봐 주도록 하지. 하지만 한 번더 이런 문제를 일으켰다간 각오해 둬!" 마지막 한 마디를 꼭 덧붙여야만 했을까. 끙... 바보 같은 선생들. 으아아, 완전 실패잖아. SOS단 홍보 작전... 어휴 속 터져. 뭐 때문에 그러는 거야?! 아아 짜증나! 어서 부실로 돌아가야지. 어서 이 화풀이를 하고 싶다. 쿈, 쿈에게 뭔가 화풀이를 하고 싶었다. 내가 뭐라고 하든 들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서 쿈에게 뭐라고든 화를 내고 싶어! "열받아! 뭐야 저 바보 교사들은! 방해라고 방해!!" "뭔가, 문제라도 있었냐?" 나는 부실로 들어서자마자 바로 화풀이를 시작했다. 내가 신은 하이힐이 뚜벅거리면서 더 내 감정에 불을 붙였다. 문제는 엄청났지! 하아, 나 참... 짜증나 짜증! 쿈의 무심한 한마디가 더 내 속을 긁어놓았다. 뚜벅 뚜벅 걸어서 단장석에 앉은 나는 얼른 쿈에게 모든 화풀이를 시작했다. "문제라니! 아직 반 밖에 돌리지 못했는데 선생이 그만 두라잖아! 뭐냐고 그건!" 내가 등을 돌렸으므로 쿈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쿈은 말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쿈의 얼굴 쪽을 보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미쿠루짱은 엉엉 울지를 않나, 나는 학생 지도실로 끌려가지를 않나 핸드볼 바보 오카베도 오질 않나!!!" 쾅 쾅. 나는 분에 차서 컴퓨터가 놓여있는 단장석을 주먹으로 내리찍어댔다. 아무리 말을 해도 화가 풀리지는 않았다.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저 오늘의 계획이 모두 틀어지면서 분노가 폭발해버린 것이다. "오늘은 이걸로 끝! 해산!!" 그렇지만 화를 내면서도 어딘가 맥이 빠졌다. 쿈이었다. 내 말을 듣기는 하는 건지 그냥 말 없이 묵묵히 있기만 하고... 하아, 쿈에게라도 이렇게 털어 놓아서 화를 풀고 싶었는데. 이 상황에서의 침묵은 내 화를 가라앉히지는 못했다. 물론, 쿈이 여기서 딴지를 걸었다면 분명히 나는 2차 폭발을 일으켰을 것이다. 하으으 모르겠어! 그냥 바로 옷을 벗어제꼈다. 해산이라고 외침과 동시에 머리에 있는 토끼 귀를 던졌고 손목의 커프스도 하나 둘 벗고 몸에 걸친 바니 걸 복장을 벗었다. 그러다보니 미쿠루짱이 눈에 비쳤다. 책상에 엎드려서 계속 울고 있었다. "후잉... 힝..." 뭘 잘했다고 울고 있어?!! "언제까지 울 거야?! 자! 얼른 얼른 갈아입어!!" 미쿠루짱의 옷을 다시 갈아입혔다. 이번엔 완전 힘이 빠져버려서인지 갈아 입히는 건 매우 수월했다. 흐으, 됐어 뭐. 교복이야 나도 매일 입는 거니까 입혀 주는 것도 쉽고 말야. 다 갈아입혀놓고 보니 옆에다 (내가) 던져둔 옷이 보였다. 교복 마이. 쿈 거네 이거? ...음, 아까 미쿠루짱 등에 덮어뒀던거지? '...!' 잠깐, 쿈은 지금 어디? 아, 밖으로 나갔구나. 아아... 다행이다. 갈아입을 때 모습을 보일 뻔 했네... ...어? 무슨? 내가 방금 무슨 생각을...? '뭐야, 내가 왜 이러지?' 방금 전에 갈아입는 동안 쿈이 부실 밖으로 나갔다는 것에 나는 안도하고 있었다. 왜? 옷을 갈아 입을 때 누가 있건 말건 분명 신경쓰지 않았었잖아? 그러니까 방금 그건 내가 어쩐지 쿈에게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물론... 신경 쓰이는 녀석이긴 하지만... 뭐지? 방금 매우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어째서... 내가? '......' 쿈의 마이를 들여다보며 왠지 후끈 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주변을 황급히 둘러보았다. 부실 안에 방금 교복을 다 입고서 자리에 힘 빠진 채 주저 앉은 미쿠루짱. 언제나 창가에서 햇빛을 받으며 책만 읽는 유키. 휴, 다행이다. 아무도 못 봤지? 내 모습... 분명히 어딘가 이상했을 것이다.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든가... '내가 왜 이러지?' 왜 이러지? 고작 쿈 때문에... 창 밖을 보니 저녁 노을이 지고 있었다. "미쿠루짱 집에 안 가?" "에, 넷? 아, 저기..." "됐어. 오늘은 이만 가 봐." "아, 저... 네......" 미쿠루짱은 힘없이 쿈의 마이를 집어 들고는 부실 밖으로 나갔다. 부실 문 앞의 쿈에게 옷을 주며 뭔가 이야기하고 걸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쿈이 저 앞에 서 있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아까 홍보하러 갈 때의 그 흥분된 기분에서는 그 시간이 얼마나 되는 지 별로 신경쓰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 화도 났지만 뭐랄까 이상한 기분이다 보니 어쩐지 잠깐 신경이 쓰였다. 정말이지 별 거 아니지만. 나는 가방을 챙겨 들고 나왔다. 바로 옆에 쿈이 있었다. '웃...' 왠지 또다시 신경 쓰였다. 만약 아까 쿈이 그냥 가만있었으면 난 쿈이 있다는 건 눈치 채지도 못하고 그냥 옷을 다 갈아입어버렸을 것이다. 매우 화가 나서 흥분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옷은 속옷까지 모두 벗어서 입는 옷이라 분명... 쿈이 나가지 않았다면 쿈은 모두 보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다시 얼굴이 후끈거렸다. '뭐하는 거야 나...' 정신차리자! 별 볼 일 없는 녀석이라고 쿈 따위! 내가 이렇게 사고하는 동안에도 쿈은 내가 옆에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그저 미쿠루짱이 지나간 복도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뭐야, 어디 보는 거야? "쿈." 쿈은 갑작스런 부름에 화들짝 놀라더니 돌아섰다. "음? 뭐냐?" "...아무 것도 아냐. 오늘은 해산이지만 내일도 꼭 나와!" "알았다고." 나는 그 말만 하고 바로 쿈의 옆을 스쳐서 복도를 걸었다. 더 이상 여기 있는 건 싫었다. 뭔가 기분이 이상하기만 하고. 점점 스트레스만 쌓인달까 얼른 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우으으... 이건 무슨 기분일까. 오늘의 실패에 대한 분노였을까? 아니면... 다음 날 나와 SOS단이 어느 정도 교내에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하루 종일 교실이 SOS단에 관하여 웅성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 내가 그 이야기하는 쪽을 보기만 해도 모두들 시선을 피해버리는 것이었다. 흥,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녀석들한테 특별히 뭔가를 바라는 건 아니라구. 정말로 신기한 뭔가를 경험한 사람을 바라는 거야. 그래, 이런 시시한 녀석들만 학교를 다니는 건 아닐테니까. 어제 좀 더 정확한 홍보를 할 수 없었다는 것에 아직도 화가 났다. 바보 오카베 같으니. SOS단에 대하여 나쁜 이미지만 심겨졌잖아?! 함부로 학생을 연행해 가는 것도 그렇고 도무지 불리한 상황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과연 메일이 오기나 할까. 나조차도 의심스러웠다. 의심을 품었기 때문일까. 방과 후 부실 컴퓨터로 열어본 메일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정말로 아무 것도. 심지어 광고나 장난 메일조차 없었던 것이다. "왜 메일이 한 통도 안온 거야?! 그렇게 선전 했는데도!" 내가 이렇게 화를 내며 소릴 질러대어 봐도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뭐, 지금은 대답을 듣고 싶어서 하는 소리는 아니지만. 나는 혹시나 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몇 번 더 접속해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아으...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인가.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얌전히 앉아서 책만 읽는 유키. 턱을 괴고 만사가 귀찮다는 표정을 짓는 쿈. 그리고 언제나 마스코트답게 얼빵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어? 어디 갔어? 미쿠루짱이 없었다. 음? 어떻게 된거지? "어라? 미쿠루짱... 오늘은 쉰 거야?" 어휴~ 기대했었는데... "힘들게 새로운 의상을 준비했는데..." 어제 시켜본 바니걸 복장이 미쿠루짱은 별로 마음에 들어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어제 바로 새 의상을 주문했다. 미쿠루짱이라면 역시 어리버리하고 예쁘고 얌전하니고 고분고분하니까 그 의상이 딱이었다. 그래서 하루 만에 오는 택배로 요금을 좀 더 내면서까지 주문했는데 미쿠루짱이 안왔다니. 아쉽달까 서운하달까. 이렇게 생각하는데 쿈이 한 마디 던졌다. "스스로 입어." 뭐. "물론 나도 입을 거야. 그렇지만 미쿠루짱이 없으면 재미 없어!" 이 때 나도 모르게 "무, 물론..." 하면서 약간 더듬긴 했지만 다행히 그 소리가 매우 작았으므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읏, 게다가... 나도 입을 거라는 건 거짓말이었다. 왜 그랬지? 난 입을 생각 없었는데... 쿈이 한 말이 뭐길래...... "흐아아아!!!" 나는 그만 소리를 지르며 기지개를 켰다. 나는 머리가 약간 달아오른 것을 느꼈다. 분명 아까부터 짜증과 함께 뭔가 복합된 것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 어제부터 방해만 받고 오늘도 메일 한 통도 안오고. 분명 이건 위기였다. "SOS단 결성하자마자 갑자기 좌초하는 거 아냐?" 왠지 자신감이 떨어졌다. 이런 분위기에서 시작해야 한다니... 아니지. 단장인 내가 기운내지 않으면 안돼. "다들 아까워하는 걸까? 자기만 알려는 걸지도." 대충 이렇게 둘러대는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왠지 기분이 매우 이상했다. 나쁘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딘가가 이상했다. 하아... 왜 이럴까. '있습니까?'라고 물어서 '네, 있습니다!'라는 대답이 나올 정도로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도 이해하고 있긴 했지만... 나는 다시 한번 메일을 확인해보았다. 새로온 메일 0건 '......' 그저 안절부절하며 주체할 수 없는 내 혈기였을 뿐인걸까. 나는 그저 평범하지 않은 척 행동하려고 애쓰기만 하는 게 아닐까... ...아, 왠지 자꾸만 약해진다. 이럴 바에야 다 관두고 그냥... 연애라든가... ......... 내가 지금 무슨?! 말도 안돼! 내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약해지면 안돼! 그건 평범해지는 지름길이라고! 똑똑히 기억하자 스즈미야 하루히! 나는 평범한 것이 싫고 뭔가 좀 더 흥미롭고 신기한 불가사의를 바란다고! 오래 전의 그 기억을 떠올려! 그 날의 그 야구장을! 난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잖아!! 아우우... 내가 갑자기 왜 약해진거지? 그건... 윽... 내가 생각하며 머리를 긁으며 쿈 쪽을 보았을 때, 쿈은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어딘지 불쌍한 사람을 보는 듯한 눈이랄까. 쿈 때문이었던 걸까. 다시 쿈을 보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이건... 분노일까. 아니면... 뭐지 이 기분은? "아악! 짜증나! 진짜. 이렇게나 기다리는데 메일은 왜 안오는 거야?!" 쓸 데 없는데다 짜증을 퍼부었다. 그래, 짜증인거다. 아까부터 아무 말도 없이 정말이지 불쌍하다는 눈으로 보고 있으니 화가 안 날 수가 있나! "갈래!!" 나는 적당히 컴퓨터를 종료시키면서 옆에다 둔 가방을 집어 들었다. 짜증나 정말. 쿈 따위.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냥 부실을 나가버렸다. 나가는 동안에도 쿈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오늘은 정말 기분 나쁜 날이야. SOS단의 위기랄까. 정말이지. 쿈도, 유키도, 미쿠루짱도 그렇게 가라앉은 분위기라니. 나까지 가라앉을 뻔 했잖아. 수수께끼의 전학생이 이젠 반드시 필요할 것 같아. 정말 이런 시기에 갑작스럽게 나타난다면 당장 스카웃 할 거야! 수수께끼의 전학생! 제발 내일 나타났으면 좋겠다! 나는 매우 기뻐서 소리를 질러대어야 했다. 내가 어제 바란 일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왔다구! 고대하던 전학생!" 나는 바로 앞자리에 앉아 있는 쿈에게 매우 흥분한 상태로 말하고 있었다. 아니, 정말로 기쁜일이니까! 이 전학생의 존재는 말야!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수수께끼의 전학생이라구! 틀림없다니까!" 너무 흥분했던 걸까? 내 얼굴은 앞자리에서 뒤돌아 앉은 쿈의 바로 코 앞이었다. 내가 몸을 앞으로 내밀었기 때문이다. 책상을 짚은 채로 최대한 많이... 쿈은 한심한 표정으로 반문하였다. "만나지도 않았는데 수수께끼인지 알 수 있는 거야?" 하하, 그런 한심한 표정에서 그렇게나 한심한 소리가 나올 줄 알았어. 나는 재빨리 자리에 앉으면서 대답했다. 들어보라고 쿈! "전에도 말했잖아? 이렇게 어중간한 시기에 전학을 오는 학생은 분명 높은 확률로 수수께끼의 전학생일 거라구!" 나는 다시 흥분해서 말하는 동시에 온 몸을 날려 쿈의 얼굴 앞으로 내 얼굴을 들이밀어버리고 말았다. 쿈은 지겹다는 듯 또다시 딴지를 걸었다. "그 통계는 누가, 언제, 어떻게 산출해낸 거냐? 그렇게나 높은 확률로 수상한 존재가 있다고 치면 지금쯤 일본 전국에..." 시끄럽긴. 쓸 데 없는 소리만 하고! 저렇게 쓸모 없는 쿈의 논리를 듣느니 당장 그 전학생을 찾아 가 보아야 겠어! 쿈의 헛소리에 대한 반문도 필요하고 말이지! "보러 갔다 올게!" 나는 당장 일어서서 교실을 뛰쳐나갔다. 어느 반이었더라? 응... 9반! 9반이었지?! 교실 저 쪽에서 쿈의 중얼거림이 어렴풋이 들렸다. "아~, 역시나 안듣네..." ...듣고 있어 듣고 있어! 9반 교실은 저쪽 끝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확실히 애매할 만도 하지. 학년 중 남는 인원들이나 있는 어정쩡한 교실이었으니까. 전학생이 우리 반으로 오지 않고 9반으로 간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같은 반이 아니면 뭐 어때? 일단 스카웃하고 보는 거지! 아직 이른 아침이라 HR도 하지 않았고 얼른 9반 교실 문을 열었다. "좋은 아침!" 일단 인사는 해야 되겠지? 내가 우렁차게 인사하자 교실에 있던 학생들의 눈이 모두 휘둥그래졌다. 음... 소리가 컸나? 됐어, 그보다 전학생은? "전학생이 누구지?" 나는 교실 학생들 전체에 대고 물었다. 아직 HR이전이라 오지 않았던 걸까? 라고 생각했을 무렵. 저 쪽에 모여 있던 여자 애들이 흩어지면서 웬 수상한 녀석 하나가 보였다. 일반적으로 전학을 오면 아이들이 모이기 마련이니까... 그렇다면 혹시 저 사람? "예, 무슨 일이십니까?" 다른 학생들 모두 내 물음에 답변할 생각조차 안하고 있는데 그 사람은 굳이 답변해왔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서는 나에게로 다가왔다. 교실이 이상하게 조용한 듯 술렁이긴 했지만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네가 그 수수께끼의 전학생?" "하하, 수수께끼인지 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단은 오늘 아침 키타고로 전학을 오긴 했습니다." 외모를 보니 어딘지 평범했다. 아니, 평범하다기 보다는 조금은 미소년 타입이랄까? 키는 쿈보다 약간 더 커 보였고 호리호리한 체형에 그럭 저럭 잘 생긴 편이었다. 게다가 옅은 미소를 짓고서는 내 쪽을 보고 있었다. "여하튼 오늘 전학왔단 말이지? 수업 마치면 당장 날 찾아와!" "네?" "너는 우리 SOS단에서 스카웃 해 가겠어!" "아니, 무슨 말씀이신지요. SOS단이라니, 뭡니까?" 약간은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싱글 싱글 웃고 있는 걸로 봐서는 정말로 당황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음, 역시 수상해. 수수께끼의 전학생이라고 불러도 될 지도? "SOS단이란 말이지?! 일단 찾아오면 가르쳐줄게! 오늘 마치고 찾아 와. 아니, 내가 부르러 갈게!" "하하, 잘 알겠습니다. 교실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좋아!" 나는 바로 기분이 좋아져서 9반 교실을 뛰어 나왔다. 곧 HR도 해야 했고. 교실에 들어가니 이미 오카베가 들어 와 있었다. 저런 녀석 따윈 살짝 무시하고... 나는 얼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쿈은 약간 뜸을 들이더니 나에게 작은 소리로 물어왔다. "수수께끼가 있는 애 같아 보이디?" "으음... 별로 그런 느낌은 없었어." 확실히, 약간 수상쩍긴 하지만 수수께끼라고 단정 지을 만큼은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전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내 생각이 맞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 나는 그냥 아무생각 없이 쿈에게 지껄여댔다. "잠깐 이야기해봤는데 정보가 부족해. 평범한 사람인 척 가면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고. 솔직히 그럴 가능성이 더 높지 않겠어? 전학 온 첫날부터 정체를 드러내는 전학생은 없을 테니까. 흐흠, 좋아. 다음 시간에 심문해 봐야 되겠다." 거기까지 말하자 쿈은 약간 식은 땀을 흘리며 앞으로 몸을 돌렸다. 음, 뭐야. 너까지 그러기야? 하아, 쿈은 내가 그냥 헛수고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흥, 반드시 SOS단으로 끌고 올 거니까 헛수고라고 생각하지 마셔! 쿈은 "아, 맞다." 하고 중얼거리더니 다시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남자냐 여자냐?" "변장했을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일단 남자처럼 보였어." 쿈은 약간 안도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돌아 앉으며 "그럼 남자겠지..." 하고 중얼거렸다. 음... 남자 부원이 없어서 쓸쓸했나 보네? 알았어 쿈! 내가 널 위해서라도 그 전학생은 반드시 우리 SOS단에 가입시켜 줄게! 단장님이 특별히 생각해 주는 거니까!!! 후후후~ "넌 남자야 여자야?"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쉬는 시간에 쳐들어가자마자 한 질문은 이것이었다. "혹시나 변장을 했을 가능성도 있잖아. 궁금하니까 물어본거야." 어디까지나 너는 수수께끼의 전학생이거든. 여러가지 비밀이 있어도 이상할 건 없다구. 순식간에 교실이 다시 조용해졌다. 9반의 모두는 우리 둘 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하, 일단 남자입니다. 태어났을 때 부터 말이죠. 스즈미야씨가 원한다면 여장을 하고 부실에 갈 생각도 있습니다만..." "아니, 여자이길 바라는 건 아니야. 음, 그런데 내 이름을 알고 있네?" "네. 아까 교실의 여러분께 물어보았습니다. 쉬는 시간에도 오실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만..." 흠, 적극적이야. 여태까지 있었던 어떤 녀석들 보다도 더! "네 이름은 뭔데? 앞으로 단에 가입해야 되니까 단장으로서 이름을 미리 들어두어야 되겠어." "코이즈미 이츠키입니다." "좋아, 코이즈미군. 너는 훌륭한 인재니까 우리 SOS단에 반드시 가입해야 된다. 알았지?" "예, 그런데 그 SOS단이라는 동아리는 도대체 어떤 곳입니까? 교실의 여러분들도 전부 모르시더군요. 이름은 유명한 것 같습니다만..." "나중에 알려줄게!" 나는 바로 9반 교실을 뛰어 나왔다. 곧 종이 칠 시간이기도 했으니까. 9반 교실 안에서 금방 술렁이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내가 있을 때엔 별 이야기도 없더니, 이상한 녀석들. 어쨌든 잘됐어! 일단 수수께끼의 전학생이 확실하게 가입할 의사를 밝혔으니까! 복도를 가볍게 달려서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자리에 앉았고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후우, 이제 수업이 모두 끝나기만을 기다리면 되는 걸까. 모든 수업이 끝나고 종례 직후. 나는 9반 교실로 달려갔다. 코이즈미 이츠키... 수수께끼의 전학생. 존대말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더욱 수수께끼가 증폭되는 인물이며 내 말에 순순히 따라주는 충실한 단원이 될 가능성이 있는 인재다. 오늘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이제 곧 SOS단이 완성 된다!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했다. '일단 정식 동아리로 올라가면 좋겠는데...' 뭐 그건 아직 생각해 둘 일이었고 우선 해야 될 일은 이 코이즈미 이츠키를 부실로 데려가는 일이었다. 9반 교실이 가까워질 무렵. 교실에 몇몇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달리다 말고 잠깐 멈춰 서서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코이즈미군, 제정신이야? 저 스즈미야의 동아리에 들겠다니?" "네가 아직 스즈미야를 몰라서 그러는데...!" "코이즈미군. 네가 아까워. 가지마 그런 데에는..." 웅성 웅성... 이런 분위기... 매우 화가 났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일이었다.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얼마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이미 익숙하니까, 이런 상황이라면 잘 대처할 수 있었다. "코이즈미군." 내가 교실에 들어서자 순식간에 교실은 조용해졌고 코이즈미군의 주변에 있던 녀석들은 모두 흩어져버렸다. "가자, SOS단으로. 모두를 소개시켜줄게!" "네, 알겠습니다. 가시죠." 바로 등을 돌려 문으로 향했다. 교실의 녀석들은 모두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와 코이즈미군이 교실을 나가자 교실 안은 다시 시끄러워졌다. 아까 전에 있었던 그 분위기구나. 흥, 바로 앞에서는 뭐라고 말도 못하는 녀석들이 시끄럽긴. 바로 앞에서 말해보라고! 그래, 쿈처럼. 그렇게 속 시원하게라도 말하면 내가 편할텐데 말야. 쿈은... 항상 날 방해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가 더 바라는 대로 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는 것 보다는 불평이라도 한마디 더 해주는 게 고마우니까. 코이즈미군은 아무 말 없이 날 따라왔다. 내가 힐끗 바라보니 어딘지 옅은 미소도 짓고 있었다. 그렇지만 왠지 이상하달까. 어색했다. 마치 억지로 짓는 웃음인 것 처럼... 기분탓일까? 이렇게나 인상이 좋은 사람인데. 뭐 그렇겠지. 아까 교실 분위기 때문에 약간 기분이 흐려지기도 했고 말이야. 에이, 오늘은 기쁜 날이야! 좀 더 신나게 행동하자구! 저 앞에 부실 문이 보였다. 문예부. 언젠가 저 명패도 SOS단으로 바뀔 날이 오겠지. 이렇게 부원도 오늘로써 완벽히 갖춰지니까. 그럼 이제 들어가볼까? 코이즈미군을 데려왔으니까 쿈이 좋아하려나? 새로운 남자 맴버이기도 하고. 음... 반응이 궁금한데? 그리고 나는 부실 문을 열어 젖혔다. "헤이! 기다렸지?!" 부실에서 다같이 오델로를 하고 있는 셋을 보며 나는 당장에 소리를 질렀다. "1학년 9반에 오늘 부로 전학온 즉시 전력감 전학생! 이름하야!" 나는 일부러 몸을 크게 휘둘러 소개를 하였다. 팔을 쫙 뻗어서 바라보자 코이즈미군이 곧 말을 이었다. "코이즈미 이츠키입니다. 잘부탁합니다." 이렇게 우리 SOS단은 완벽하게 모였다. 우리 모두는... 완벽한 한 팀이었다! "코이즈미 이츠키입니다. 잘부탁합니다." "여기는 SOS단! 나는 단장인 스즈미야 하루히! 저쪽의 세 사람은 단원 1과 2와 3! 덧붙여 너는 4번이야! 다들 사이좋게 지내자고!" 내가 간단하게 소개하자 잠시 침묵이 일더니 코이즈미군이 물어왔다. "들어가는 건 별로 상관없습니다만, 무엇을 하는 클럽입니까?" 훗, 그렇게 물어 볼 줄 알았어! 훌륭한 질문이야 코이즈미군! "가르쳐주지. SOS단의 활동 내용, 그것은!" 발을 한번 굴렸다. 이건 매우 중요한 거니까, 연출도 매우 신경써야 된는 거야!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3초 가량 뜸을 들인 후, 외쳤다. 온 부실이 울릴 만큼 큰 소리로! "우주인이랑 미래인이랑 초능력자를 찾아 내서 함께 노는 거야!!!" 전 세계가 정지한 줄만 알았다. 라는 건 거짓말이고, 부실의 모두가 조용해져 버렸다. 뭐, 쿈이라면 첫날 했던 말이니 기억하고 있겠지만 다른 세명에게는 어이가 없었던 것 같다. 아무렴 어때. 쿈이라면 이 말을 듣고 어떨까. 이미 발을 들여놓았으니 설마 도망치거나 하진 않겠지. 부실을 얻으면서 함께 얻은 부원 유키. 평소의 멍한 표정과는 달리 나를 상당히 응시하고 있었다. 이 아이에게도 그렇게나 터무니 없게 들렸던 걸까? 직접 잡아온 2학년의 미쿠루짱. 이쪽은 아예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흠... 그러고보니 미쿠루짱한테는 입힐 것이 있었지? 그리고 옆에 서 있는 수수께끼의 전학생 코이즈미군.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지만 역시나 당황한 모습이었다. 어때 코이즈미군? 수수께끼의 전학생으로서의 마음 가짐은? "아, 그렇군요." 코이즈미군은 뭔가 알았다는 듯 슬쩍 둘러보더니 말을 이었다. "역시나 스즈미야씨로군요." 역시나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아마 9반 녀석들에게 들은 말이었을까? 내가 이렇게 터무니 없는 걸 찾고 있다는 것은 9반의 히가시 중 출신 녀석들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분명 그 분위기도 그랬고 코이즈미군에게 나에 관해 좋은 말은 안했겠지. 방금 이 코이즈미군의 말도 사실은 비꼬는 게 아닐까. 나는 약간 걱정되었다. "좋습니다." 아 "입부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다행히 코이즈미군은 시원스럽게 대답하였다. 예상 밖의 대답이었다. 아니, 아침에는 반드시 들어올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긴 했다. 그렇지만 방금... 그 상황 이후에 내가 약간 약해져있었던 걸까. 다행이었다. ...하긴 내가 하는 일인데 이렇게 잘 풀려 나가야 당연하지! 거기다! 코이즈미군은 누가 뭐래도 수수께끼의 전학생이잖아! SOS단에 없어서는 안될 요소라구! 필수야! 나는 다시 기운을 차렸다. 역시 기분이 문제였던 거겠지? 코이즈미군은 몇발짝 나아가더니 쿈에게 손을 내밀었다. "코이즈미입니다. 막 전학온 참이라 배울 점도 있습니다만, 잘 가르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정중하네. 흐흠, 좋아! 이런 부원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라구! 그렇지! 얼른 우리 부원들을 소개시켜줘야지! 쿈 이름이 뭐더라? 에이 뭐 어때! 쿈이 약간 얼떨한 표정으로 손을 잡으며 말하고 있었다. "아, 나는..." "그 녀석은 쿈!" 쿈은 쿈일 뿐이고 그저 쿈이기만 할 뿐이니까. 쿈이 자기 할 말을 잇지 못해서 움찔거리는 게 보였지만 신경 끄자. "저쪽의 귀여운 애가 미쿠루짱이고, 그쪽의 안경아이가 유키." "아..." 미쿠루짱은 자기 이름이 불려서인지 인사를 하려고 일어섰다. "아앗!" 쿠당! 일어서려다가 넘어져버렸다. 발이 의자에 걸렸구나 미쿠루짱... 하여간 저런 면이 점점 모에요소를 갖추고 있다니까! 귀여워 귀여워! "괜찮으십니까?" 코이즈미군이 가까이 가는 게 보였다. 일으켜 주려는 거구나 코이즈미군... 신사적이고 제법인데? 점점 마음에 들어! 좋았어! "그리하여 다섯 명이 다 모였고, 이걸로 부 체제는 갖춰진 거지?!" 내가 신나게 떠드는 동안 코이즈미가 미쿠루짱을 일으키고 쿈도 걱정되는지 가까이 가고 유키는 일어서더니 창가로 걸어갔다. 음... 뭔가 어수선하잖아. 여기선 뭔가 어필할만한 동작이 필요해! "야~~~이!" 오른 팔을 주먹 쥐고 휙 치켜들며 외쳤다. 단장으로서 단원의 주목을 끌고 한마디 해야 했으니까. "SOS단, 드디어 베일을 벗길 때가 온거라구! 모두 하나가 되어 힘내어 봅시다!" 모두들 내 말을 어찌 들은 것 같았다. 이제 리더로서 잘 이끌어가야겠지? 이로써 다섯 명이 모두 모였고 SOS단은 완벽해 졌달까 여하간 이 날이 나에게 있어서는 매우 의미가 깊은 날이었다. 내일부터 할 일은 많다구. 모두 힘내자! 코이즈미군을 모두에게 소개한 그 날. 다들 하교할 때 나는 쿈에게 살짝 물어보았다. "어떻게 생각해?" "무얼?" "코이즈미군 말야. 딱 안성맞춤이지? 수수께끼의 전학생이잖아." "아아, 확실히." 역시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내가 보는 눈이 있다니까. 이제 SOS단의 이름에 걸맞는 맴버가 갖춰진 것 같아! 불가사의 수색 경험 4년차의 내가 단장이고 과묵한 독서광 유키에 모에 요소를 잘 살리는 미쿠루짱, 수수께끼의 전학생 코이즈미군! 그리고 쿈은... ...쿈은 뭐지? "그럼 내일 보자." 쿈은 나에게 인사를 하고 그대로 복도를 따라 걸어갔다. 나는 부실 앞에서 멍하니 서서 그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쿈은... 뭐였지? 그 날, 집에서 뒹굴거리며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쿈을 내가 왜 SOS단에 넣었더라? 음... 일단 쿈에게 협력을 구해서 SOS단을 억지로 만들기 시작하긴 했다. 그렇지만 왜였더라. 쿈에게 협력을 구했던 건... 에이, 괜한 생각 할 거 없고 우선 그것부터 확인하자!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컴퓨터 앞으로 몸을 옮겼다. "읏챠! 그게 왔을라나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사이트에 접속해 확인 해 보았다. <발송되었습니다. 1~2일이면 도착> 만세! 이틀 전에 했던 거니까 오늘까지는 오겠네! 우후후후, 그것만 오면 이제 내일부터 당장 할 거야! 아, 그러고보니 내일 중대한 발표도 해야 될 것 같은데 준비해둘까? 음, 으음. 아무튼 바쁘겠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해야 되니까. 내일이 기대 되는데? 나는 이미 쿈에 관한 생각은 머리 저편으로 보내버린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 의문은 그로부터 며칠 뒤에 다시 떠오르게 되었다. 택배는 어제 저녁에 확실히 받아 두었고 오늘은 오늘의 일을 해야 했다. 먼저 학교 수업을 모두 마치자마자 바로 부실로 뛰어들어갔다. 쾅! 오늘도 신이 나서 그런지 문이 부서질 정도로 세게 열어 젖혔다. "힉... 아, 안녕하세요 스즈미야씨." 안에는 미쿠루짱이 와 있었다. 그리고 창가에는 유키가 책을 읽고 있었다. "야호, 미쿠루짱~." "네에?" "이것 봐!" 나는 손에 든 종이 가방을 내밀었다. "윽, 뭐 뭐 뭔가요 그건..." 미쿠루짱은 갑자기 얼굴을 새파랗게 만들더니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얘가 왜 이런데? "뭘까 맞춰봐." "우, 으... 또, 또 옷인가요..." "맞았어! 눈치 빠른데 미쿠루짱!" "흐엑." "무슨 옷이냐면 말이지!" 나는 가방 안에서 옷을 꺼내 보여주었다. "메이드야 메이드! 어때? 멋지지 않아?!" "헤에...? 메이드인가요?" "응!" 미쿠루짱은 덜덜 떨고 있다가 옷을 보더니 눈이 동그래져서는 바라보았다. "우와아, 귀여워요오." "그렇지? 한 번 입어볼래?" "저, 저기 약간 부끄러운데..." "음? 그럼 내가 입혀줄까?" "에에? 아뇨 저기..." "자아, 벗어 봐!" "흐에에 잠깐만요오오!" 그리고 나는 곧 미쿠루짱을 붙잡고는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지난 번처럼 미쿠루짱은 "후에에에, 안돼요오." 라고 찡얼거리기만 할 뿐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간단하게 치마를 벗기고 상의의 블라우스까지 벗기고 그 동안 내 머릿 속엔 메이드 복을 입힐 생각밖에 없었다. 그래서... 벌컥 "아이 참. 빨리 벗으라니까!" "후에에에에에..." "흐엇." 우리 둘의 대화에 누군가가 감탄사를 넣으며 끼어들었다. 방금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 것 같았는데? 문 쪽을 바라보았다. "아." "히엥... 응?" "어..." 뭐야 쿈이잖아? 쿈은 들어오자마자 인상을 찌푸리더니 멈추어 서버렸다. 그리고 미쿠루짱은... "흐으으... 아아아아아아아악!!!" "으왓!" 콰당! 훌륭한 비명소리로 쿈을 쫓아 내어버렸다. 미쿠루짱은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기운이 떨어져 버렸는지 축 쳐졌다. 음... 미안. 나는 미쿠루짱이 기운이 빠진 틈을 타서 얼른 옷을 마저 벗겼다. 얼른 메이드로 만들어줄게 미쿠루짱. 쿈이 좀 봤다고는 해도 뭐 별 거 있겠어? ...남자한테 속살을 보인다는 건 역시 부끄러운 거겠지? 하여튼. 얼른 메이드가 되자 미쿠루짱. 오늘 할 일은 한두가지가 아니라고. 미쿠루짱의 메이드복이 다 갖춰졌고 의자에 앉혀 보았다. 미쿠루짱은 아까 전에 힘이 다 빠지는 바람에 순순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야 진짜 순종적인 메이드잖아! 너무 잘 어울려. 이 옷 입으니까 훨씬 이쁘고! 진짜 모에라는 단어는 여기에다 써야 될거야! 약간 정리된 분위기라는 걸 느꼈는지 쿈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귀여운 미쿠루짱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약간의 사과의 의미도 담겨 있었다. 다음부터 갈아입는 건 문 잠그고 할게 미쿠루짱. ...그러나 저러나 정말 귀엽다! "역시 모에라고 말한다면 메이드지. 학원 이야기에는 하나쯤은 꼭 있거든." 쿈은 뭔가 힘이 빠진 눈초리로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니,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무슨 학원물이냐?" 평소대로 딴지 거는 걸 잊지 않고 있었다. 뭐 이제는 그러려니하고 무시해서 넘기는 쪽이 낫다는 걸 아니까. "그렇지. 기념으로 사진이라도?" "히엑!" 전에 쓰던 그 사진기가 아니라 좀 더 성능 좋은 디카였다. 이 사진 찍는 것도 오늘 중요한 일과 중 하나라구. 나중에 꼭 써먹어야 되니까! 미쿠루짱은 약간 비명을 지르더니 울먹이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찍지 말아요..." 아으, 이 반응 너무 귀여워! 찰칵 "조금 턱을 빼 봐." 찰칵 "에이프런 꽉 쥐고." "으으..." 미쿠루짱에게 나름 괜찮은 포즈를 취하게 만든 뒤 열심히 사진을 찍어 보았다. "자아, 좀 더 웃어!" 찰칵 찰칵! 음... 자연스러움이 살아나질 않네. 내가 나서야 되려나. 뒤에서 구경하고 있던 쿈을 불렀다. "쿈, 카메라맨 바꾸자." "어, 응." 쿈은 순순히 카메라를 들었고 나는 슬쩍 미쿠루짱에게로 다가갔다. "미쿠루짱, 좀 더 섹시 노선으로 가볼까?" "우왓?" "괜찮아 괜찮아~." "뭐 하시는 거예요오?" 뭐 하냐면 그냥 메이드 복의 윗단추를 풀어버렸지. 약간의 계곡이 보이는 게 더 섹시한 메이드로 보일 걸? "으에엥." 찰칵 약간씩 반항하는 미쿠루짱을 내가 붙잡고 그 사이에 쿈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하하 재밌네. 부웅, 이얍. 찰칵 찰칵 "흐아아아아아아아" 미쿠루짱이 당황하는 표정이 잔뜩 찍혔겠지만 뭐랄까 이런 것도 재밌네? 다른 것도 해볼까? "유키, 안경 빌려줘." 찰칵 유키가 순순히 안경을 주었고 나는 다시 미쿠루짱에게 가서 씌웠다. "아잣!" "후아아..." 찰칵 음, 좋아 이 정도 찍었으면 딱이야! 이제 그걸 거기다 올리면 되니까. 그보다 미쿠루짱. 정말이지... "우으음, 완벽해!" 정말로 환상적이야! "로리에 미유에 메이드에 거기다 안경소녀! 훌륭해!!" 나는 너무 기뻐서 미쿠루짱을 꽉 끌어안았다. 아아, 정말 신난다. 이런 여동생 하나 있으면 좋겠다아. 미쿠루짱은 2학년이지만. 음, 전에 바니보다 오늘 이 메이드 복이 더 잘어울리는 것 같지? 나는 미쿠루짱의 가슴을 주물럭 거리며 말했다. "미쿠루짱, 앞으로 부실에 있을 때에는 이 옷을 입도록 해!" "으으으... ...그런..." 한참 재미있는데 문이 열리더니 코이즈미군이 들어왔다. "우와, 뭡니까 이건?" "응? 좋은 때에 왔네. 다함께 미쿠루짱한테 장난질 하자!" 신이 나서 주물럭 거리며 말하는데 뒤에서 누군가 잡아당겼다. "적당히 해라." 쿈이었다. 아까까진 가만히 서 있더니 코이즈미군이 들어오자마자 갑작스럽게 움직인 것이다. 으음, 그냥 재밌었잖아. 이 정도라면 뭐 장난수준이니까. 그리고 귀찮게 일일이 딴지 걸지마 쿈. 참 나. 코이즈미군은 자리에다 가방을 놓고는 말했다. "사양하겠습니다. 후환이 두렵거든요. 신경 쓰지 마시고 계속 하시죠." 봐, 저렇게 코이즈미군처럼 해 보라고 쿈. 얼마나 정중해? 단장님 의견도 거스르지 않고. "이제 됐잖아? 더 이상은 여러 법률에 걸린다." 쿈이 억지로 힘을 써서 나와 미쿠루짱을 떼어 놓았다. 아이 참 귀찮게. 나는 벌떡 일어섰다. "무슨 법률인데?" 일일이 딴지거는 건 상관없지만 이렇게 방해까지 하고 그래. 음... 아, 괜찮겠네. "뭐, 됐어. 사진도 잔뜩 찍었고." 미쿠루짱이 쓰고 있는 유키의 안경을 다시 주인에게 돌려 주었다. 오늘 할 일 세가지 중 두가지는 이미 끝났으니까. 하나, 미쿠루의 메이드 복. 둘, 메리드 복 촬영. 그리고 셋! 나는 단장석에 올라 서서 외쳤다. "그럼, 이제부터 SOS단 제 1회 미팅을 시작합니다!" 좀 뜬금없지만 완성된 SOS단으로서 이제 활동을 시작해야 된다구. 자아 그럼 우선! "지금까지 우리들은 가지가지 일을 하였습니다. 전단지도 돌렸고 홈페이지도 만들었죠. 교내에 퍼진 SOS단의 지명도는 급격하게 상승 중! 제 1단계는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죠!" 내가 단장 석에 올라서서 말을 시작하자 단원 전체는 나를 바라보았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우리 단의 메일 주소에는 불가사의한 사건을 호소하는 메일이 한 통도 오지 않았고, 또한 이 방에 기괴한 고민을 상담하기 위해 오는 학생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대책이 필요했다. ...그런데, 대책에 관해 말할 생각이긴 했지만 정작 올라서서 말을 하려니 뭘 말할지 잘 떠오르질 않았다. 기죽을 건 없었다. 그냥 일단 아무 말이나 하면 될테니까. "'행운은 누워서 기다려라.'라고 옛 사람은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닌겁니다! 땅을 파엎어서라도 행운을 찾아내야 됩니다! 그러니까 찾으러 갑시다!" 아무도 대꾸하지 않는 가운데 쿈이 물어왔다. "뭘?" 쿈, 우리 단의 목적을 잊은 건 아니겠지? 당연히... "이 세상의 불가사의 말이야!" 쿈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단원들도 그냥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시내를 샅샅이 탐색하면 하나 정도는 분명히 기묘한 현상이 있을 거라구!"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일단 부, 아니 단 활동을 시작하는 거야. 다들 잘 따라오라구 SOS단! 유키도 미쿠루짱도 코이즈미군도 쿈도! "알았지?! 다음 토요일이야. 그러니까 내일! 아침 9시에 키타구치 역에서 집합하는 거야! 지각하면 용서 없어. 오지 않으면 사형!" 일단 거기서 회의는 끝이 났다. 잠깐, 그렇다고 해서 활동이 끝나는 건 아니라구. 가지 말고 다들 앉아 봐! "자아, 그럼 다음은." 메이드 복을 입고 귀엽게 앉아 있는 미쿠루짱에게 명령했다. "미쿠루짱. 메이드가 되었으니까 가서 차 타와." "네?" "여기, 포트랑 주전자도 있으니까. 물 떠와서 끓이면 돼. 얼른!" "아, 저기... 차 끓이는 법을 모르는데요..." "간단해. 그냥 끓인 물에 찻잎을 넣으면 되는 거야. 자아 어서 다녀오라구." "...네에에..." 미쿠루짱이 나간 뒤 쿈이 슬며시 물어왔다. "뭘 하고 싶은 거냐 너는?" "뭘 하고 싶은 거냐니? 그야 메이드의 미쿠루짱이 보고 싶은 거지." "아니 그 말이 아니야. 다음 휴일에 우리가 할 것 말이다." "아까도 말 했잖아. 시내의 수수께끼를 찾아내는 거야. 분명 있을 거라니까." "하아... 그러냐." 쿈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다가 한숨을 쉬더니 시선을 돌렸다. 뭐야 기분 나쁘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당장 하라구. 저렇게 찜찜하게 넘기는 걸 내가 상당히 싫어한다는 걸 알면서... 당일 날 같이 다니나 봐라. 나는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또 삐쳐있었다. 내 심적 상태가 고르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미쿠루짱이 주전자를 가지고 들어와서 차를 타고 그것을 마신 뒤였다. 쿈이 코이즈미와 가벼운 잡담을 나누는 것을 보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쿈의 모습이 못마땅했다. 전에 나와 잡담을 나누던 일이 생각났다. 요즘은 쿈이 왠지 귀찮다는 표정으로 내 말을 별로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 느낌이다. 아니, 오히려 내 말에 사사건건 태클을 걸고 방해까지 서슴지않고 하고 있다. 왜 그럴까. 아으 귀찮게. 다른 녀석들도 내가 하는 일에는 그다지 좋은 인상을 주진 않았다. 중학교 3년 내내 자꾸만 귀찮게 하는 녀석이 생기면 나는 무시했다. 그런데 이 쿈은... 무시할 수가 없다. 쿈이 하는 말에 하나하나 귀 기울이게 된다. 쿈이 태클을 걸면 짜증은 나지만 쿈이 싫은 건 아니다. 뭔가 복잡한 기분. 이상했다. SOS단을 해산시키고 나는 부실에 남아있었다. 아직도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유키가 책을 덮고 나가니 부실이 텅 빈 느낌이었다. "흐음...?" 혼자 있는 건 익숙했었는데, 지금은 왠지 쓸쓸하다. 얼른 집에나 갈까... 하면서도 할 일이 하나 남아있었다. 나는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그리고 오늘 찍은 미쿠루짱의 여러 사진을 옮겼다. 나중에 쓸 일이 있겠지. 그래, 우리 홈페이지 시선을 끌 만한 자료로 쓸까? 그런 저런 이유로 약간의 시간을 소비하고 귀가했다. 집이었다. 시내 탐색. 시내 탐색은 내일이었다. 어떡하면 좋을까. 내일 5명이서 우르르 다니는 건 좋지 않을 테니까. 으음... 조를 나누는 게 좋을까. 간단한 게임을 해서 나눌까. 그냥 제비를 뽑는 방법이 간단하고 좋겠네. 내일 다들 제 시간에 나올까. ...나오겠지. 아니, 분명 나올거야. 내가 선택한 SOS단이니까 다들 나올거라고 믿어. 내일 뭔가 정말로 수확이 있으면 좋겠는데. 수수께끼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 "늦었어! 벌금!" 쿈은 달려오자마자 말했다. "9시 전에는 왔잖아." 아무리 늦지 않았다 해도 제일 마지막에 온 녀석은 벌금이야. 그게 우리의 규칙이고. "처음 듣는 소린데." 지금 정했거든. 왠지 얄미웠다. 제 시간에 늦는 사람이 없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래도 제일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게 쿈이라니. 그냥 심술을 부리고 싶었다. 다른 세 명, 유키랑 미쿠루짱이랑 코이즈미군은 어쩐 일인지 나보다도 일찍 나와있었다. 키타구치 역 앞. 나는 이미 그 세 명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도 서두르는 의미에서 8시 반에 나왔는데 참 부지런하고 좋다. 유키는 평소처럼 교복. 쉬는 날인데도 부 활동이라서 교복을 입은 건 아닐까. 너무 순진하다니까. 말 수도 적은 아이다 보니, 이해는 갔다. 미쿠루짱은 어딘지 모를 어른스러운 분위기의 옷을 입고 있었다. 하긴, 나보다 나이 많았지? 가끔 깜빡한다니까. 뭐, 저런 복장이라도 여전히 어린 아이 분위기지만. 코이즈미군은 갈색 재킷에 분홍 셔츠. 타이도 색을 잘 맞춰서 입고 있었다. 세 명 다 내가 오기 전까지 뭘 하고 있었을까. 내가 오고 나서도 뭔가 조용한 분위기여서 한마디 했었다. "다들 오늘 첫 모임 느낌이 어떤 것 같아?" 유키는 그냥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미쿠루짱은 머뭇머뭇...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코이즈미군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기대됩니다. 과연 제가 전학 온 이 도시에는 어떤 신기한 것들이 있을까요." "코이즈미군. 그 말은 전에 살던 곳에서는 신기한 일이 있었단 말이야?"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평범한 일상이었죠." 뭐야 괜히 기대되는 말만 하고... 코이즈미군. 일단 입부 명목은 '수수께끼의 전학생'이었는데, 왠지 캐물어보지도 않았네. 어떤 수수께끼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지 않으려나? 나를 속이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약간의 의심도 잠시. 쿈이 신경쓰였다. 대략 10분 정도 지났지만 쿈이 오질 않았다. 늦어. 우리들 이미 다 모여 있는데 혼자만 여유롭게 온다는 거지? 나는 팔짱을 끼다가 발을 몇 번 쿵쿵거리다가 하면서 기다렸다. 결국 9시 5분 전. 치사하게 그제서야 나타난 쿈을 보니 왠지 얄미웠다. 그래서 한 말이 그거였다. 벌금! "그러니까 모두에게 차를 쏠 것!" 모두 역 앞의 카페에 들어갔다.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아서 웨이터에게 주문을 하고 음료가 나오길 기다렸다. 다들 아무 말도 없이 멍하니 앉아있었다. 아직 다들 친해지지 않아서 그런지 분위기가 좀 별로 살질 않네. 탐색이 시작되면 다들 가까워지겠지. 음, 그럼 우선 조편성부터 해볼까? "다들 들어 봐." 모두의 눈이 내 쪽으로 향했고 나는 설명을 시작했다. "두 팀으로 나눠서 시내를 탐색하자. 신비한 현상을 발견하면 서로 연락하는 거야. 다들 휴대폰 있지? 그걸로 하면 돼. 아, 맞다. 아직 번호 없는 사람 서로 지금 저장해 둬. 연락이 안되면 신기한 걸 발견해도 곤란하잖아. 만나기도 힘들고."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이쑤시개를 집어들었다. 5개. 좋아. 그 중 2개에는 빨간 색을 칠했다. 그러는 와중에 차가 나왔다. 다들 자기 음료를 받아서 맛을 보고 있었다. "자, 주목." 나는 아까 만든 걸 주먹으로 움켜쥐며 내밀었다. "그럼 제비뽑기를 하자." 다들 말 없이 하나씩 뽑아 들었다. 처음으로 뽑은 쿈은 빨간색 표시가 있었다. 헤에, 빨간색이라. 하나 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런데 내가 왜 신경을 쓰고 있는 거지? 다음은 코이즈미군. 색 없는 이쑤시개. 그리고 유키도 색이 없는 이쑤시개를 뽑았다. 이제 손에 남은 두 개 중 하나는 표식이 있는 것. 하나는 없는 것이었다. 미쿠루짱은 둘 중에 어느 걸 뽑을 지 고민하고 있었다. "자아 미쿠루짱. 얼른 얼른!" "아, 네엣!" 눈을 꼭 감더니 하나를 잡고 뽑아 들었다. 그리고 "아..." 빨간색. 표식이 있었다. 미쿠루짱이 뽑아든 이쑤시개에는... "......" 나는 남은 하나. 내 이쑤시개를 보았다. 아무 표식 없는 이쑤시개. 조 편성이 그렇게 끝났다. "이렇게 편성됐어." 나는 유키랑 코이즈미군이랑 한 조. 쿈은 미쿠루짱이랑 한 조. 하아, 왠지 아쉽다. 쿈을 슬쩍 바라보니 쿈의 시선이 이미 미쿠루짱에게 가 있었다. 살짝 웃는 것 처럼 보이기도 했다. 뭐야, 바보. 미쿠루짱도 자기가 뽑은 걸 보면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기분이 나빠졌다. 흥! "쿈, 알고 있지?" "어?"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던 쿈이 나를 바라본다. 흥, 바보같은 얼굴. 나는 테이블을 내려치며 말했다. "데이트가 아니야! 성실하게 하는 거야! 알았지?" "알고 있어." 별로 알아들은 것 같지 않은 대답. 으우, 짜증나. 나는 내가 주문한 아이스 커피를 집어 들고 빨대를 물었다. 쿠르르르르륵 컵에 커피가 남아있지 않았지만 나는 계속 소리를 냈다. 바보 바보. 이런 일에 사적인 감정을 담지 말란 말야. 미쿠루짱이랑 같이 가는 게 그렇게 좋은가? 흥이다 흥! 우리끼리라도 대단한 걸 찾아내서 오늘 탐색을 성공시키고 말겠어! "구체적으로 무얼 찾아야 되는 건가요?" 코이즈미군이 물었다. 그러고보니 탐색에 관한 설명이 부족했던 걸까. "일단 불가사의한 것! 의문이 가는 것! 미스테리한 사람! 그래, 시공이 일그러진 곳이라든지 지구인인 척 행동하는 에일리언을 발견하면 되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코이즈미군도 오늘 조사 목록에 있어. 아직 너는 수수께끼의 전학생이라구. 확실히 캐물어 봐야지. 그런데 다들 갑자기 조용해졌다. 유키도 아까부터 마시던 살구 차를 잠시 내려놓았고 미쿠루짱은 약간 긴장한 표정, 쿈도 뭔가 당황한 듯 차를 마시다 말고 갑작스럽게 내려놓았다. 코이즈미군도 잠깐 사이를 둔 다음에야 "그렇군요." 하고 덧붙였을 뿐이다. 다들 불만이라도 있는 건가? 왜 이런 반응일까. 첫 탐색인데 다들 기가 죽은 거 아냐? 흠... 어쩌지. 이 가라앉은 분위기를 살려 준 것은 코이즈미군이었다. "그러니까 우주인이나 미래인이나 초능력자 본인 혹은 그들이 지상에 남긴 흔적 등을 찾으면 되는 거로군요. 알았습니다." 아하! 확실하게 이해했구나! "그래, 코이즈미군. 너 소질이 있구나. 바로 그거야! 쿈, 너도 조금은 코이즈미의 뛰어난 이해력을 본받으라구!" 데이트하는 기분이나 내지 말고 말야! 오늘은 SOS단의 첫 탐색이야. 조금은 진지해져도 되잖아? 쿈은 아무래도 납득하지 못하는 표정으로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럼 이제 출발하자." 아까부터 계속 기분은 좋지 않다. 얼른 나가서 뭐라도 하나 더 찾아봐야지. 확실한 건 아까부터 쿈 때문에 기분이 나쁜 거야. "진짜로 데이트가 아닌 거야! 놀았다간 죽여버릴 거야! 흥!" 그 말을 던지고 나서 이동을 시작했다. 쿈은 계산을 끝내자마자 바로 미쿠루짱 옆으로 가더니 '그럼 잘 해 보죠.' 같은 소리나 한심하게 던지고 있었다. 물론 한심한 소리는 아니지만 왜 하필 미쿠루짱한테 하는 건데? 모두의 앞에서 한마디 해주면 어디 덧나는 거야? 벌써부터 어딘지 들떠서는 완전 데이트 분위기 내고 있는 것 같잖아. 마음에 안들어 보기 싫어! 화가 나서 쓸 데 없이 소리를 버럭 지르고는 돌아서서 가버렸다. 흥, 열받아. 또 쿈 저 녀석 때문이야. 요즘 들어 왜 자꾸 이러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내릴 수도 없고 그냥 화가 가라앉길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저희는 동쪽을 돌아보는 건가요?" "!" 그러고 보니 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유키랑 코이즈미군. 이 둘과 한 조니까. 아까부터 말 없이 걷는 내 뒤를 둘 다 따라오고 있었다. 뭐야, 챙겨 주지는 못 할망정, 단장답지 못했네. "응, 그렇지. 동쪽이 우리 담당이니까." 아까부터 코이즈미군이 내 균형을 잡아주는 것 같다. 내 기분을 잘 이해하고 바로 잡는다. 왠지 익숙하다. 어디선가 이런 느낌을 가끔씩 받는다. 그냥 편해졌다. 마음 속에서 날뛰던 무언가가 약간 진정되었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이제부터 진짜 탐색의 시작이었으니까. 한 5분 쯤 주변을 둘러보며 걸었다. 수상한 건 특별히 보이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골목길. 코이즈미군이 문득 생각난 듯 말을 걸어왔다. "그러고 보니 스즈미야씨는 히가시(東)중학교를 나오셨죠?" "음? 알고 있네?" "그냥 같은 반 학우들에게 들었습니다. 지금 여기서 얼마나 더 가면 나오나요?" "히가시 중? 별로 멀진 않을 거야. 한 10분 정도 걸으면 나올 걸?" "그럼 오늘은 거길 가볼까요?" 묘하게 적극적이다. 그런데 왜 하필 거길 가는 건데? "무리야 무리. 아무 것도 없어. 내가 3년 동안 거길 샅샅이 뒤져봤는데. 헛수고야. 차라리 이 동네 살면서 내가 둘러보지 못한 쪽을 찾는 편이 빨라." "그렇습니까." 코이즈미군은 살짝 쓴웃음을 지으면서 내 의견에 동조했다. 유키는 아까부터 줄곧 말 한마디 없이 따라만 다녔다. 원래부터 말이 없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좀 심심해 보였다. "유키, 뭔가 이상한 건 없어?" "......없어." "둘러보다가 뭔가 있으면 말해. 아까 말한대로 뭔가 특이한 걸 말야." "......" 유키는 말 없이 고개만 살짝 끄덕이고 다시 뒤따라 걸어왔다. 이 애도 참. 특이한 아이야. 그래도, 아무 말도 안하긴 해도 불평 한마디 안하고 따라와 줘서 고마웠다. 으흠, 좀 더 힘내서 찾아볼까? "그렇지, 코이즈미군." "네?"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무엇입니까?" "전에 살던 곳에서는 뭘 했어?" 그리고 한 20분 째 되어서 드디어 질문을 던졌다.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그러니까 코이즈미군이야 말로 뭔가 특별한 뭔가를 알고 있진 않아? 우주인이라거나 미래인이라거나 초능력자 같은 거. 아니면 이세계인 같은 거라도 아는 바가 없어?" "없군요." "...그래?" 딱 잘라 대답했다. 코이즈미군의 표정은 아까와 변함 없었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수수께끼의 전학생이라고는 해도 별로 특별한 건 없는 걸지도... 하지만 뭔가 걸렸다. '어쩌면, 어쩌면 나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냥 막연하게 그런 생각만 들었다. 내가 무얼 모른다는 건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저 어딘가 가슴 속에서 막힌 느낌이 들 뿐이었다. 왜 그런지 알 수는 없었다. 그렇게 시내 탐색은 한 시간 째로 접어들었다. 수상한 무언가는... 없나. 한 시간 째로 접어든지도 10분이 지났다. 그럼 한 시간 십분이 지난 건가? 아무튼, 열심히 주의를 기울여 주변을 살폈다. 수상한 무언가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아직'을 강조하고 싶다. 없는 게 아니라 아직 보이지 않는 거니까. 반드시 오늘 찾아낼 것이었다. 뒤따라오는 유키랑 코이즈미군을 위해서라도 뭔가 하나 쯤은 조사를 해야 되지 않을까. 어쩌면, 평범해 보이는 것이 오히려 평범하지 않을지도 몰라. 그럼 이런 골목을 걷는 것 보다는 큰 길에서 찾아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아까부터 대략 30분 가량 계속 골목길에서 걷고 있었다. 이건 아니잖아. 다리 아프고, 길 잃을지도 모르고. "다시 큰 길 쪽으로 가보자." 내가 그렇게 결정을 내렸고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아까부터 잘 모르는 길이 나온다 싶더니 점점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어졌다. "우으웅..." 큰일났네. 이런 곳에서 길을 잃어버리다니. 원래 살던 동네라서 조금 헤매다보면 다시 길을 찾아낼 순 있었겠지만 곧 재집합을 할 예정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시간에 맞춰서 갈 수 있을까. "왜 그러시나요?" 코이즈미군이 뒤에서 물어왔다. 내가 곤란해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을까. 유키도 말없이 그저 날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무 것도 아냐." "그렇습니까?" 약해보이기 싫어서 그렇게 말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마 이 골목을 지나면 아까 거기로 나오겠지. 그러면 다시 큰 길로 갈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어쩌지. 전혀 모르는 새로운 곳이 나왔다. 이거 점점 더 알 수 없는 곳으로 가고 있잖아? "여기도 처음 보는 곳이군요. 그런데 이렇게 깊숙히 들어가면 제 시간에 역으로 갈 수 있을까요?" 코이즈미군이 가볍게 물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있어 그 질문은 결코 가벼운 질문이 아니었다. 이건 아닌데. 단장으로써 길을 잃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며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미 해버린 이상, 계속 단장의 권위만을 내세우는 건 좋지 않겠지. 할 수 없지.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저기, 미안한데." "네?" "실은, 길을 잃었거든." 나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사실을 고백했다. "하하, 그거 재밌는 농담인데요?" "우, 웃지 마! 진짜야!" 코이즈미군은 전혀 진지하지 않은 자세로 대답했다. 정말이지, 코이즈미군. 너의 그 미소, 긍정적으로 보이는 건 좋지만 사람 약올리는 것 같아 보여. "어, 어쨌든.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고. 조금 시간이 걸릴 테니 그렇게 알아 둬." "정말인가요? 그렇다면 확실히 곤란한 상황이네요." 치, 곤란하고 말고. 이제 한시간 하고도 삼십분이나 지났다고. 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늦을 것 같잖아? ...뭐, 아직 제한 시간은 정하지 않았었지만. 으으, 어쨌든 이 낯선 골목을 얼른 벗어나고 싶어. 쿈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미쿠루짱이랑 둘이서 히히덕거리고 있는 거 아냐? 짜증나. 뭐 대단한 건 보이지도 않고 길이나 잃어버리고 안풀리네 안풀려. 열심히 짜증을 내고 있는데 유키가 나에게 다가왔다. "길." "응?" "알아. 나갈 수 있어." "뭐?" "따라 와." 어? 이거 어떻게 되는 거야? 아까와 입장이 바뀌어서 이번엔 유키가 앞장을 섰다. 아까까지는 뒤에서 조용하게 걷더니 갑자기 왜 저러지? 아, 그보다. 길을 안다고 했지? 정말일까? 나는 약간 신경쓰였지만 평소에는 아무 말도 안하고 수동적이던 아이가 이렇게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걸 보니 차마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좋아 유키. 네가 길을 안다면 그게 더 좋은 거지. 단장의 허락이야. 과연 유키는 길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유키가 앞장 선지 5분만에 거의 역 근처까지 도달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나 빠르게 도착한 거지? 내가 물어보니 유키는 그저 "지름길." 이라고 대답할 뿐이다. 대단하잖아. 그냥 지름길 수준이 아닌데? 유키, 너 머리 속에 도시 지도 하나 넣어다니는 거 아냐? 그럴 수도 있겠다. 매일 책만 읽으니까 지도 책도 분명 읽어봤겠지. 알고보니 훌륭한 인재였구나. 수고했어. 조금 더 걸어서 곧바로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 처음 출발한 지역에 온 거지? 음... 그러고보니 모이라고 저쪽에다 연락을 보내지 않았네. 나는 얼른 쿈의 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12시에 일단 집합. 아까 그 역 앞에서.' 우리는 이미 모였어. 쿈. 아무 것도 못 찾았으면 가만 안둘 거야. "수확은?" "아무 것도." "정말로 찾아본 거야? 어슬렁거린 건 아니겠지, 미쿠루쨩." 불만이 바로 터져나왔다. 둘이서 오는 모양을 보니 기분이 나빠졌다. 아까 출발할 때 보다 둘 사이가 미묘하게 더 가까워진 것이 느껴졌다. 미쿠루쨩은 내 말에 겁을 먹었는데 쿈 뒤에 서서 고개만 설레설레 젓고 있었다. 무엇보다 수확이 하나도 없다니 앞의 두시간은 낭비한 거잖아? 내가 화를 내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인상을 팍 쓰고 노려보고 있는데, 쿈은 마치 미쿠루쨩을 보호하려는 듯이 한발 앞으로 나오면서 나에게 말했다. "그쪽이야말로 뭔가 찾아낸 거냐?" 윽, 기분 나쁜 소리는 골라서 하고 있어. 나는 대답할 수가 없어서 그저 고개를 돌렸다. 우리가 못 찾았으면 너희라도 찾아야 되는 거 아냐? 보나마나 틀림 없어. 둘 다 어디선가 놀다가 왔겠지. 쿈이 저렇게 말을 돌리는 걸 보면 확실하다. 아아, 싫다. 미쿠루쨩 혼자였다면 뭐라도 할 생각은 했을 텐데. 쿈 녀석. 이번에야말로 같이 다니면서 단단히 시켜먹어야지. "어쨌든 너희 쪽이 지각했으니까 점심은 너희가 내." 나는 한마디 던지며 근처 페스트푸드 점으로 들어갔다. 계산대에서 나는 또다시 짜증을 내어야 했다. "계산은 제가 다 하겠습니다." "아, 아니 그러지 않아도 되요." "괜찮아요. 어차피 저 때문에 늦은 것이기도 하고." "그치만 쿈군은 오전에도..." 미쿠루쨩이랑 쿈이 서로 계산을 하겠다고 다투고 있었다. 아니, 미쿠루쨩은 일종의 더치페이로 내야 할 금액의 반은 자기가 내겠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쿈은 뭐가 좋은지 자기가 전액 다 지불하겠다고 하고 있으니, 그 둘을 바라보고 있자니 막 짜증이 치솟았다. "됐어, 미쿠루쨩. 자기가 하겠다는데 그냥 내버려 둬." "네? 하, 하지만..." "시끄러우니까 그만 해. 단장의 명령이야!" 한마디 호통을 쳤더니 간신히 조용해졌다. 이건 뭐 조용해졌다고 하기에는 억지로 윽박질러 그렇게 만든 것이니 그 다음의 분위기는 매우 어색할 수 밖에 없었다. 쿈은... 미쿠루쨩이 좋은 걸까...? "다시 팀을 나누자." 모두의 세트 메뉴가 도착하자마자 나는 아까 찻집에서 가져온 그 이쑤시개를 꺼냈다. "이걸로 아까처럼 하는 거야. 자, 뽑아." 코이즈미군이 슬쩍 뽑아들더니 "또 표식이 없는 제비네요."라고 한마디하였고 다음은 미쿠루쨩이 뽑았다. 역시나 표식 없음. 미쿠루쨩은 "저도요..."하며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쿈이 손을 내밀었다. 순간 나는 생각했다. 만약 쿈 마저 표식 없는 걸 뽑으면 이번에도 미쿠루쨩이랑 같이 다닐 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 나는 쿈과 같이 다닐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쿈이 표식이 있는 이쑤시개를 뽑기를 간절히 원했다. '표식 있는 걸 뽑아 쿈!' 그리고, 쿈이 뽑아든 제비에는 붉은 색 표식이 있었다. 나는 속으로 가슴을 쓸며 한숨을 쉬었다. 하긴 당연하지. 세 개 중에 두 개였으니 확률적으로도 쿈이 표식이 든 것을 뽑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게 걱정할 일도 아니었잖아? 나도 참, 바보같긴. 결과를 확인하지 못한 미쿠루쨩이 궁금한 듯 쿈에게 물었다. "쿈군은?" 쿈은 약간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쉽지만 표식이 있는 겁니다." 아쉽긴 뭐가 아쉬워. 둘 다 왜 그렇게 서로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거야? 이제 내 손에 남은 이쑤시개는 두 개니까. 둘 중 하나에 달려있겠지. 그럼 이제, "유키, 너도 얼른 뽑아 봐." 유키는 잠시 바라보더니 하나를 골라 뽑았다. 실수하고 있었다. 쿈이 어떤 걸 뽑느냐도 중요했지만, 그랬지만. 빨간색... 설마? 나는 손을 펴 보았다. 표식 없는 제비. 이럴 수가. "결정 된 것 같군요." 코이즈미군이 얄밉게도 한마디 덧붙였다. 나는 코이즈미군과 미쿠루쨩의 조가 되었고 쿈은... 유키와 한 팀이었다. 또 나와 같은 조가 아닌 것이었다. 싫지만, 내가 제안한 방법으로 결정난 것이었으므로 할 수 없었다. 그저 나는 내 주먹 안에 남아있었던 표식 없는 이쑤시개를 노려 볼 뿐이었다. 아니 그것만 노려 본 것은 아니었다. 옆에서 치즈 버거를 깨작거리며 먹고있는 유키를 먼저 보았다. 평소와 같은 무표정...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뭐, 제비뽑기니까 유키가 무슨 의도를 해서 그렇게 되진 않았을 거고.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자. 음 그래. ...그래도, 자꾸 아쉬웠다. 쿈과 유키를 다시 번갈아 바라보았다. 유키는 워낙에나 수동적인 아이라 쿈이랑 같이 가면 어떻게 될까. 아마 아무 생각없이 게으른 쿈을 따라서 그냥 아무 것도 안하게 되겠지. 어휴, 할 수 없다. 이번에 쿈을 내가 끌고 다니지 못하는 건 참 아쉽지만 단장으로서 현재 같이 다니게 된 조만이라도 잘 이끌어 뭔가 특이한 것을 찾아 내고 말겠어! 힘내자. "4시에 역 앞에서 만나는 거야! 이번에야말로 무언가 찾아서 오라구!" 나는 한마디 쏘아 붙이고 나서 남아 있던 쉐이크를 쪼로록 다 마셨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었다. 답답하다고 해야 될까 근질근질하다고 해야 될까... 어차피 쿈과 같이 다닐 수 없다면 한시라도 빨리 탐색을 나가고 싶었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지. 쿈이 무슨 상관이람. 그냥 답답하고 근질거리니까 그런 것일 뿐이야. 그래, 그런 거야. 아직도 덜 먹은 거야? 서두르라고! 쿈도 미쿠루쨩도!!! 이번에는 남과 북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아까는 동쪽이랑 서쪽을 훑어봤으니 다음 차례는 그렇게 하는 게 맞겠지. 우리 조는 북쪽을 찾아보기로 했다. 기분이 나쁜 상태였기 때문에 서둘러 걷기 시작하였다. "저, 저기 스즈미야씨... 천천히 가 주세요오." "엄살 부리지 말고 똑바로 따라와 미쿠루쨩." "히익, 네에에..." 칭얼거리는 미쿠루쨩을 조용히 시키면서도 나는 계속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까 전에 쿈이랑 둘이서 무얼 했을까. 쿈이 말을 돌렸던 걸로 봐서는 분명 찾으라는 건 안찾고 다른 짓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미쿠루쨩한테 협박이라도 해서 물어보면 사실을 실토는 하겠지만, 싫었다. 쿈이 직접 나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왠지 의미도 없었다. 둘이서 뭘 하고 놀았을지는 모르겠지만 미쿠루쨩을 꼬드긴 건 쿈이 분명하다. 아아, 이번엔 유키도 그렇게 되려나... 진짜 싫다 쿈. 어휴. "스즈미야씨?" 응? "어디 안좋으십니까? 아까부터 안색이 나쁜데요.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으십니까?" 코이즈미군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야. 아무 것도." "아까도 그랬던 것 같은데요. 조 편성이 막 끝난 시점에..." "아무 것도 아니라니까. 그냥 생각에 잠겨 있었을 뿐이야." "그렇습니까." 정말 아무 것도 아냐. 쿈이 신경 쓰일 뿐이지만. 그런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도 않으니까. 왜 신경 쓰이는 건지도 아직 모르겠고. 코이즈미군은 싱긋 웃더니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가던 걸음을 잠깐 멈추고 뒤의 두사람을 향하여 몸을 돌렸다. 둘 다 어벙한 표정으로 날 주목했다. "이번엔 뭔가 찾는 거야! 지구인인 척하는 우주인이건 몰래 미래에서 날아와 과거를 감시하는 미래인이건 초능력을 숨기고서 평범한 척 살아가는 초능력자건 뭐건 간에! 알았지? 너희도 잘 찾아야 한다!" 나의 비장한 각오를 역설했다. 남은 시간, 확실하게 찾아내지 않으면 안되니까. 쿈 녀석에게 의욕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도 수상한 어떤 걸 찾아 내어야만 해! 내 말을 들은 두 사람다 웃으면서 (어딘가 떨떠름한 표정이긴 했지만) 간단하게 긍정의 표시를 보였다. 좋아 가자! "이상하다." 이상해. "뭐가요?" "없잖아. 아무 것도." 미쿠루의 얼빠진 질문이 너무도 기분 나쁘게 느껴진다. 한시간 째. 진짜 아무런 이상한 걸 찾을 수 없었다. 수상한 구석이 전혀 없는 동네다. 우주인 미래인 운운 하기 전에 먼저 무슨 사이비 종교 집단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냐? 평범해 빠졌어. 이런 평범한 동네라 해도 어딘가 특이한 부분은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건 아니야. 걸어도 걸어도 목표가 보이지 않는다니, 기운이 빠졌다. "어휴." 나는 적당히 앉을 만한 곳을 찾아서 주저앉았다. "미쿠루쨩. 너도 옆에 앉아." "어, 저도요...?" "응." "저기, 거긴 앉기엔 좀 지저분한데요오..." "괜찮으니까 앉아!" "힉, 네에..." 잠시 쉬자. 계속 걸었으니 좀 쉬기도 해야지. 미쿠루쨩은 조금은 주저하였지만 다리가 많이 아팠는지 바로 주저앉아버렸다. "코이즈미군, 너도 앉아." "아뇨, 괜찮습니다." 코이즈미군은 약간 멀찍이서 서 있을 뿐, 앉을 생각은 없어보였다. 길거리에 이렇게 주저앉은 모습, 지나다니는 사람이 보면 조금 이상하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아무렴 어때, 난 다리가 아프다고. 게다가 아까부터 이 정도의 평범하지 않은 것, 그러니까 사람들이 보건 말건 길거리에 주저앉아 쉬고 있는 고등학생 수준의 평범하지 않은 것들 조차도 찾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 기분 나빴다. 평범해, 너무 평범해. 이렇게나 뭔가 특이하다고 부를 만한 것이 없기에 더 이상한 동네일지도 모르겠어. 쉬고 있었지만 계속 짜증만 치밀었다. 조금만 더 쉬다가 찾으러 다시 나서야겠다고 생각했을 무렵, 문득 시계를 보니 벌써 시간이 상당히 흘러있었다. "4시까지 20분 밖에 안남았네."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얼른 역 앞으로 가자!" "어어, 지금요?" "그래! 되돌아가려면 꽤 걸릴 거야! 서둘러!" "후으. 조, 조금만 더 쉬다 가지..." "일어나!!!" "후에에에엥." 칭얼거리는 미쿠루쨩을 잡아 끌고서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번엔 길도 제대로 보면서 왔으니 돌아가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찾아야 할 것들은 찾지 못했지만 집합 시간을 어기는 것도 절대 해서는 안될 짓이니까! 가자, 쿈 녀석보다 늦는 건 절대 참을 수 없어! 서두른다고 서두르긴 했다. 정말로 늦는 건 싫었기 때문에 아까보다도 훨씬 빠른 보폭으로 걸었고 미쿠루쨩은 다리가 아프다고 더욱 찡얼거렸다. 나도 조금은 지쳤다. 어떻게 반나절을 돌아다녀도 특이한 것이 하나도 나오지 않을 수 있담. 기운이 빠지는 건지 화가 나는 건지 나는 힘은 나지 않았지만 점점 더 빠르게 걷게 되었다. 그리고 한 가지 희망도 가져보았다. 아마도, 아니 분명히 어디론가 유키를 데리고 놀러 갔을 거지만 그래도 쿈이 무언가 찾아 내지 않았을까. 혹시나 찾아 냈다면 그건 미래인일까 우주인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쿈에게 자꾸 기대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래서 더욱 늦고 싶지 않은 것이다. 찡얼거리는 미쿠루쨩이랑, 말 없이 따라만 와 준 코이즈미군을 위해서도 첫 탐색을 시도한 우리 SOS단을 위해서도 뭔가 발견했으면... "헉... 헉......" "좋아, 잘 따라 왔어! 쉬어!" "여기 앉으시죠." "고, 고마워요. 코이즈미군." 코이즈미군이 마련해 주는 자리(그냥 벤치 중 하나지만)에 미쿠루는 흐물흐물 녹듯이 앉았다. 역 앞. 도착했다. 아까 거기서부터 걸어서 미쿠루쨩이 더 이상 찡얼거리지도 못 할 정도로 먼 거리를 걷긴 걸었다. 그리고 우리가 도착한 이 시간이 약속 시간을 넘어섰다는 것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쿈이 보이지 않았다. 유키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봐서 분명 여기 둘 다 없음. "코이즈미군, 지금 몇 시야?" "4시 15분이군요." 약속 시간은 분명 4시였을텐데... 어디서 꾸물거리고 있는 거야 이 바보는! 당장에 전화기를 붙잡고서 전화를 걸려다가 왠지 내가 왜 오늘 이렇게나 화를 내어야 되는지 생각해보았다. 나는 오늘 정말로 열심히 뭔가를 한 것 같았다. 이렇게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하였다. 분명 예전 같으면 할 수도 없었을 일인데 그런데도 왜 나는 화만 내는 걸까. 기대가 너무 컸던 건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하니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졌다. 정말로 힘이 빠진다는 건 이런 거구나. 나는 전화기는 집어넣고 미쿠루쨩이 앉아 있는 벤치로 갔다. 그리고 녹아있는 미쿠루쨩 옆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후아......" 힘들다. 오늘은 이렇게 끝나는 걸까... 왠지 내가 하려고 했던 일이 너무 허무하게 느껴졌다. 쿈, 너는 지금 뭘 하고 있어? 혹시나 이번에는 나처럼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지는 않아? 네가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 나, 아무리 뭔가 찾아내려 해도 안돼. 아직도 나는 그 날 이후로도... 나 혼자인가 봐. 그래, 3년 전에 그 여름. 칠석날. 아무도 날 이해해주지 않아서 나 혼자 학교에 잠입했던 그 날. 그 남자만은 내 말을 들어주었는데. 그리고 나와 함께 해 주었는데...... 하아... 이렇게 허무한 생각만으로 시간을 보내면 나답지 않다.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어섰다. 다시 기운을 차리려고 몸을 한번 펴 주고 한번 소리를 질렀다. "아자!" 옆에 녹은 아이스크림처럼 추욱 쳐져있던 미쿠루쨩도 힘든 듯 멀찌기 앉아 있던 코이즈미군도 주변을 지나가던 모르는 사람들도 모두 놀랐는지 내 쪽을 쳐다보았다. 뭐, 이런 시선 따위 익숙하잖아? 그리운 건 그리운 거고 지금은 지금이니까. 기운을 내어서 오늘 일을 마무리 하자! 그러니까 지금 내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나는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4시 28분. 약속 시간으로부터 28분 오버. 죽었어 쿈. "여, 여보세..." "지금 몇 시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 바보!!" 왠지 작은 목소리. 어디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이 녀석? "이익, 미안. 지금 일어난 참이라서 말야." "뭐~?! 이 멍텅구리야!!!!" 역시나 쿈은 아무것도 안했다. 참 나. 기대를 하고 있던 내가 더 멍텅구리같아졌다. 그래, 쿈이 뭔가를 했을 리가 없지. 막 일어났다고 했다면... 잤다는 건가? 팔자도 좋구나. 우리는 뭘 했는데. 쿈이 물어왔다. "...4시 집합이었나?" 당연하지. "당장 돌아와! 30초 이내로!!!" 그리고 난 전화를 끊어버렸다. 바보 바보 바보! 진짜로 돌아오면 가만 안 둘거야!!! "뚜르르르르르르" "큭, 이 바보가." 30초 만에 나타나라고 했는데도 오지 못하는 걸 보면 좀 먼 곳에 있는 걸까. 어디에 있는지나 알아보고 나서 전화를 끊을 걸 후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다시 묻기 위해 계속해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쿈은 무시했다. 유키는 전화가 없는 것 같았고 할 수 없이 계속해서 쿈에게 걸 수 밖에 없었다. 이 멍청이가. 일단은 기다릴까 생각도 해봤지만 열받았다. 우리는 이렇게나 고생하고 다녔는데 뭘 한거야 도대체. 아아, 목도 마르고 짜증도 계속 나네. 아직 5월일텐데 왜 이리 더운 거야? 올해는 날씨도 맛이 간 거 아냐? "아." 힘 없이 앉아있던 미쿠루쨩이 약한 감탄사를 터뜨리며 일어섰다. "저기 오는군요." 코이즈미군이 손가락을 가리킨 곳을 보니 멀리서 터벅터벅 두 사람이 걸어 오고 있었다. 유키의 손에 뭔가 크고 두꺼운 책이 들려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쿈의 의도를 단숨에 잡아내었다. 유키를 꼬셔서 도서관에 갔다 왔구나. 역시나 성실하지 않은 녀석이다. 유키가 책을 좋아한다는 걸 이용해서 시내 탐색은 때려 치우고 근처 도서관에 데려간 다음 유키에게는 책을 읽으라고 해 놓고서 자기는 적당한 자리에 앉아 잠을 잤으리라. 내가 둘이 오는 방향으로 서 있으니 같이 기다리던 미쿠루쨩이랑 코이즈미군도 내 옆에 섰다. 미쿠루쨩은 피곤한 듯이 힘빠진 미소를 살짝 짓고 있었고 코이즈미군은 별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어깨를 으쓱하며 둘을 맞았다. ...유키는 용서해 줄게. 쿈의 꾀임에 빠졌을 뿐이니까. 하지만 쿈. 용서 안할거야! "지각! 벌금!!" 당장 음료수를 사! 더워, 목말라! 결국 성과고 뭐고 아무 것도 없이 허무하게 SOS단의 첫 시내 탐색은 끝이 났다. 유키고 코이즈미군도 돌아갔고 미쿠루쨩은 쿈이랑 무슨 할 말이 있는지 가다 말고 돌아왔다. 뭐라고 이야기 하더니 미쿠루쨩 쪽에서 왠지 친근하게 얼굴을 가까이 해서 한마디 하더니 가버렸다. 쿈은 그게 또 뭐가 좋은지 웃으며 손을 살랑 살랑 흔들고 있었다. 이래선 안돼. "너 오늘, 도대체 뭘 한 거야?" 정말로 뭘 했을까. 우리는 이렇게나 열심히 찾으러 다녔는데 놀러만 다닌 걸까.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더니 거기에 쿈도 짜증으로 대답했다. "그러는 넌 어땠는데? 뭔가 재미있는 거라도 발견할 수 있었냐?"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입을 내밀고서 고개를 돌릴 수 밖에. 그랬다. 나도 발견한 건 아무 것도 없다. 이번 탐색을 위해 노력은 열심히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놀러 다닌 쿈이나 열심히 찾아다닌 나나 특별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기분이 상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더니 쿈은 무정하게 한마디 내벹었다. "뭐, 하루 이틀 사이에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상대도 무방비는 아닐 거야." 무슨 소리야? 날 위로라도 하려는 소리인지 내 잔소리를 죽이려는 소리인지 아무튼 얄미웠다. 상대가 무방비니 뭐니 운운하긴 해도 너. 사실, 내가 찾으려는 것들 별로 믿고있지 않잖아? 사실 처음부터 그랬지? 그냥 내 비위를 맞춰줄 생각 뿐인 거잖아. 순간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단장으로서 한마디는 던져 두어야만 했다. "모레, 학교에서 반성회를 할 거야." 말을 다 끝내자마자 몸을 돌려서 걸어나갔다. 저런 바보 옆에 있어봤자 화만 더 날 뿐이야. 사람들 속으로 들어서서 계속해서 걷다보니 어느 새 역에서 멀어졌다. 이쪽은 우리 집으로 가는 방향이 아닌데. 집으로 가려면 다시 역으로 가야 했다. "......" 쿈과 다시 마주치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나는 가던 길을 계속 가 보았다. 그냥 심술일 뿐이었지만, 나는 나에게 이렇게 한마디 던져주었다. 그래, 아직 탐색은 끝이 아니야. 휴일이 끝나고 다시 월요일. 웬일로 아침 일찍 일어나질 못했다. 사실 그 전날 밤에 잘 자지 못한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이상하게도 요즘 날씨가 더워졌다. 벌써 열대야라거나 뭐 그런 것 까진 아니겠지만 그래도 5월인 것 치곤 엄청 더웠으니까. 토요일 날 있었던 일들에 대한 스트레스가 아직도 다 풀리지 않은 것도 일찍 일어나지 못한 이유라고 하겠다. 간신히 지각은 면할 정도로 등교할 수 있었다. 이 학교는 정말로 등교하는 학교다. 워낙에나 높은 곳에 있으니 '학교에 오른다'는 느낌은 확실하다. 그만큼 오늘같이 더운 날에 더 기운을 빼게 만들기도 한다. 교실에 들어서자 책받침 같은 걸로 얼굴을 부치고 있는 쿈을 볼 수 있었다. ...쿈의 얼굴을 보자 더 더워졌다. 자리에 앉고 나서 그냥 한마디 던져 보았다. "나도 부쳐줘." "스스로 해라." 흐에, 째째하긴. 덥다는 건 바로 짜증과 일치하지 않을까. 그만큼 짜증이 증식을 해서 왕짜증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창 밖을 보며 쿈을 무시하려 하는데 쿈이 별 생각없는 질문 하나를 던졌다. "이봐, 스즈미야." "?" "너, 행복의 파랑새 이야기 알고 있냐?" "그게 뭐?" "아니, 뭐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럼 묻지를 마." 한심한 질문이다. 내가 그런 옛날 이야기도 안 읽어봤을까. 왜 갑자기 그런 걸 꺼낸 거지? 내가 부쳐줘(あおいで)라고 말해서 파랑새(あおいとり)를 떠올린 건가. 쓸 데 없는 말장난은... 흥, 기운도 빠져있는데 더 생각하기도 귀찮았다. 그냥 쿈 따위는 무시하자. 그보다 아직 탐색은 끝나지 않았다고, 그렇게 생각하고는 있었는데, 과연 정말로 그러한가. 짜증이 치밀다 못해 점점 우울해지고 있었다. 수업 시간, 평소처럼 멍하니 수업을 듣고 있다가 갑자기 이것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난 번 탐색의 실패, 그리고 비협조적인 쿈. 그런 것들이 자꾸 떠오르면서 왠지 몸이 근질거렸다. 다만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쿈이라거나 누구와도 전혀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평소라고 하니 조금 이상했다. 원래라고 해야 되려나? 고등학교 입학 직후의 나로 돌아간 느낌이다.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 어차피, 그런 사람이 없다는 건 나도 알고 있으니까. 쿈 마저도. 그날 방과 후 나는 처음으로 부실에 가지 않았다. 탐색의 연장을 위하여 시내를 빙빙 돌았다. 하루 종일 김빠질 정도로 똑같은 골목만을 몇 번이고 보아야 했지만 나는 해가 떨어질 때 까지 몇 시간이고 계속 걸었다. 내가 빠뜨린 건 없는 지, 쿈이 간 곳에 수상한 것을 없었는지 모두 알아보지 않으면 속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그러고보니 오늘 반성회를 할 생각이었는데... 아, 몰라. 그냥 혼자 반성회를 한 거야. 그리고 아무 것도 결국 찾아내지 못했다. 나는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이 날씨는 내 기분이 담겨 있는 걸까. 집에 들어와서 내 방에 틀어박힌 다음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있었다. 잠도 들지 않고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 속을 흘러갔지만 좀처럼 어둠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어둠 속이 왠지 내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상한 건지 아니면 이게 일반적인 감정인 건지 나는 자주 이런 감정에 휘말린다. 이렇게 어두운 공간에서 나는 무언가를 부수고 있다. 이따금씩 구체적으로 부수는 것들이 보이기도 하는데 그 땐 언젠가 보았던 광경이 펼쳐져 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도시의 광경이. 그리고, 그렇게 부수는 기분이 쭉 이어지면서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때 그 때 누군가가 나를 말리는 기분도 든다. 한 사람도 아니고 여러 사람이, 나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부수어야만 속이 풀릴 것 같은 그 기분.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 말리는 기분. 이상하지만 가끔씩 있다. 새벽 내내 뜬눈으로 있었더니 아침 해가 밝아 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진귀한 광경은 아니다. 창 밖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인 것도 아니고 그냥 침대 위에 엎드려 있었을 뿐이기에 주변이 차츰 밝아지고 창문에서 빛이 약간씩 들어오기 시작하였다는 것. 그 정도만 인식할 수 있었다. 밤새도록 자지 않았기 때문에 내 기분은 더 나빴다. 차라리 푹 잠들었으면 좋았을 걸... ...졸려. 엄청나게 졸린 상태에서 그 귀찮은 언덕을 올라 학교에 다다르고 보니 의외로 지각할 시간도 아닌데다 아직 등교하지 않아 빈자리로 가득한 교실을 보며 힘 없이 자리에 앉아서 조금이라도 더 자려고 책상에 엎드린 다음 그래도 아직 시원할 때 도착해서 다행일까 생각했지만 도저히 기분이 나아지질 않았다. 아침이었지만 장마가 오려는지 후끈한 날씨가 대기를 덮고 있었고 졸리고 졸린 상태라 짜증에 짜증을 거듭하고 있었으니 엎드린 상태에서도 그다지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냥 기운이 빠진 채, 이렇게 있는 수 밖에야... 정말로 잠을 자려해도 가능하지 않았다고나 할까 눈을 감고서 몽롱한 상태로 있었지만 특별히 꿈을 꾸지도 못했고 그냥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다 느껴졌다. 졸리다기보단, 피곤했다. 그래도 어제의 그 감정은 모두 사라졌다. 모든 것을 부수고 싶은 욕망... 어차피 누군가가 말리는 기분 안에서 다시 가라앉는다. 지친 몸을 일으키지 않고 그저 눈을 감은 채 엎드려 있었다. 교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잦아지면서 점점 말소리도 들려왔다. 교실에 아이들이 등교하는 소리. 그리고 서로 아는 아이들끼리 인사하며 이야기하는 소리. 서로 아는 아이들이라고 하기는 좀 이상하긴 하다. 학기가 시작된 지 이제 거의 두달 째였다. 반 아이들이 이제는 서로 이름은 물론 친해져서 잘 어울릴 시기다. 중학교 3년 간, 어울리지 않고 아이들 밖에서 지켜보며 아, 슬슬 그런 시기구나 하고 깨닫곤 했다. 고등학교 들어와서 이 느낌이 낯설게 된 건 왜일까. 나도 이미 섞여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 반과 섞인 것 같지는 않았다. 나에게 말을 거는 아이도 없고, 나도 신경쓰지 않으니까. ...눈 감고서 참 온갖 생각을 다 하였다. 기분이 울적하니 그런가... 평소엔 어떡하면 신기한 것들과 만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으로 가득할텐데... "얘." 어제도 힘들여 찾아보았지만 결국 아무 것도 못 찾아내었으니까. 우주인 같은 거, 역시 옆에 두긴 힘든 거지. "얘, 스즈미야." 누가 날 부른다는 걸 깨달은 건 그녀가 세번째로 말을 걸었을 때이다. "몸이 안좋은 거야?" ...누구? 목소리만 듣고는 분명 여자애 목소리다. 쿈이 아니라는 이야기. 즉, 쿈이 아닌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는 이야기였다. 놀라울 일은 아니었지만 특이한 일이었다. 눈을 살짝 떠서 보니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아사쿠라 료코. "말좀 해 봐." 이 여자가 안하던 짓을 왜하나 싶어 나는 무시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반장다운 모습이라고는 해 줘야 되겠다. 반에 안 좋아 보이는 사람은 다 챙겨줄 생각일까. 하지만 쓸 데 없는 참견이야. 지금은 누구하고도 이야기 하고 싶지 않거든. 매우 피곤하니까. 아사쿠라가 몇 번이나 날 흔들어 대었지만 일부러 무시해 주었다. 그러고보니 이 여자가 전에도 나한테 말을 건 적이 있었는데... 복도에서였던가. 무슨 이야기 였던가... 그리고 교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한번 더 들렸다. "괜찮아? 보건실 갈까?" 귀찮은 아사쿠라의 질문이 그걸로 끝이 났다. 아사쿠라는 한숨을 쉬며 옆에 걸어온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왠지 어디 안좋은 모양이야." 누군지 짐작은 갔다. 방금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쿈이다. 문을 열자마자 내 자리 근처로 올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 "부탁할게." 아사쿠라가 인사를 하며 자리를 뜨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앞 자리에 쿈이 앉는 소리. 눈을 감고 있으니 그냥 상상으로 영상이 보이는 기분이었다. "어제는 왜 안 왔어? 반성회를 하기로 하지 않았냐?" 쿈은 평소와 다름 없이 자리에 앉자마자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방금 전 아사쿠라가 귀찮게 하는 바람에 잠도 이미 다 깨었고 그냥 대답 정도는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끄러워, 반성회라면 혼자서 했단 말야." 그냥 대답을 하려고 했는데 저절로 짜증을 내게 되었다. 어제 밤 이후로 나지 않던 짜증이 다시 치밀었다. 혼자서 하는 반성회. 실패로 돌아간 시내 탐색. 머릿 속에 그런 말들이 빙빙 돈다. "어제, 토요일에 갔던 거기. 다시 가봤어. 계속 계속 걸어서 빙빙... 돌아봤어. 빠뜨린 게 없나 싶어서 말야." 쿈은 얼빠진 목소리로 범행 현장에 다시 가는 건 형사 뿐 아니었냐고 되묻는다. 무슨 비유가 그래? "덥고 지쳤어. 옷 갈아입는 건 언제일까? 얼른 하복으로 갈아입고 싶어." 나는 계속 쿈에게 짜증만 부리게 되었다. 기분도 울적한데 쿈은 다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스즈미야, 전에도 말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찾을 기약도 없는 수수께끼 찾기는 그냥 관두고 평범한 고교생다운 놀이를 개척해 보는 건 어떠냐?" "고교생다운 놀이라는 게 뭔데?" "그러니까 멋진 남자라도 찾아 내서 시내 탐색은 그 녀석이랑 하라고. 데이트도 되고 일석이조잖아." 왜 또 시시한 소리를 하고 그래. 쿈이 그 밖에 기괴한 성격을 숨기라느니 뭐니 중얼거렸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흥이다. 남자 따윈 아무래도 상관 없어! 연애감정이란 건 말야, 일시적인 변덕이야. 정신병의 일종이라고!" 나는 쿈의 말을 단칼에 자르려고 말을 꺼냈다. "나도 말이야. 아주 가끔이지만 그런 기분이 들기도 해. 그거야 건강한 젊은 여자이니 몸을 주체 못할 때도 있긴 하니까. 하지만 말야, 일시적인 변덕에 귀찮은 짐을 짊어지는 바보가 아니라고, 나는!" 단칼에 자르려던 말이 왠지 이상한 쪽으로 세어버렸다. 그냥 연애를 하라는 이야기가 나오니 내 지론을 읊은 것 뿐이지만... 조금은, 이 말을 하는 동안은, 부끄러웠다. ...바보같긴. 아무튼 화재를 옮기자. "게다가 내가 남자나 찾아 다니면 SOS단은 어떻게 되겠어? 막 만든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무 거나 적당한 놀이부로 만들면 되지. 그러면 사람들도 모일 거라고." "싫어!" 이젠 아무 말이나 막 하는구나. 우리가 왜 SOS단을 시작했는지 모르겠어?! "그런 거 재미 없으니까 SOS단을 만들었는데! ...모에 캐릭터랑 수수께끼의 전학생도 입부 시켰는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건 왜냔 말이야?! 아아아, 화끈하게 뭔가 사건 하나라도 일어나지 않는 걸까......" 말을 마치며 고개를 푹 숙였다. 더 이상 말을 잇고 싶지 않을만큼 우울했으니까. "뒤숭숭한 말 좀 하지 마!" 갑작스럽게 내 말에 딴지가 걸려왔다. 그런데 쿈이 한 말이 아니었다. 여자 목소리. 어디 갔다 돌아온 건지 아사쿠라 료코가 와서 한 말이었다. 쿈도 갑작스럽게 돌아온 말에 놀라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렇긴 하네. 매일 생활이 즐거운 쪽으로 변해가는 사건이라면 조금은 멋질지도 모르겠네?" 이 여자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그냥 나하고 이야기 해보고 싶은 걸까. 나는 쿈을 살짝 올려다 보았다. 쿈도 왠지 난처한 표정이었다. 다시 고개를 숙이고 나니 아사쿠라가 쿈 한테 뭐라고 한마디 속삭이는 게 느껴졌다. 뭔진 모르겠지만 이젠 귀찮아. 아사쿠라 료코. 그렇게 사람 일일이 신경쓰다가는 언젠가 정신이상이라도 생겨서 사라지게 될지도 몰라. 나 좀 내버려 둬. 쿈도 마찬가지. 고개를 돌려서 창 밖을 내려다보니 운동부의 아침 활동 시간이 끝난 모양이었다. 정리해서 올라오고 있는 체육복 차림의 학생들을 보다보니 슬슬 오카베도 교실에 들어서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이젠 어떻든 좋아. 한 숨 잠이나 잘래. 일어나면 또 재밌는 일이나 찾아서 해 봐야지. 수업 시간 모두를 잠으로 보내고 나서 일어나니 점심 시간이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일어서서 학교 식당으로 가니 더운 날씨인데도 붐볐다. 늦게 일어난 내 잘못이긴 했지만 그래도 피곤한 몸으로 저 사이에 끼어들고 싶진 않았다. 간만에 매점에서 빵을 사먹을까... 적당히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서 계산한 다음 매점 뒤쪽에 있는 둥근 벤치에 앉았다. 점심을 간단하게 때우면서 생각해 보았다. 이렇게 하루종일 기분 나쁜 상태로만 지내지 말고 좀 더 즐겁고 재미있는 일을 생각해 보자. SOS단을 위해 할 일이 뭐가 있을까. 빵을 몇 번 베어 물다가 생각이 났다. 그래! 전에 찍어둔 그 사진들! 그것만 있으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어! 신난다! 오늘 부실에 가면 바로 실행해야지! ...억지로 기운을 차리려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할 일이 생기고나니 좀 더 생기가 돋는 것 같았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 나서 쿈은 벌써 가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부실에 가면 있겠지. 아참, 잘 생각해보니 이 일은 미쿠루쨩이 보기 전에 해치워야 되잖아? 서두르자. 부실로! 빠른 걸음으로 부실동으로 향하였고 곧 부실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바깥도 더웠지만 문이 열리는 순간 부실 안의 기온이 느껴졌다. "덥다아!!" 부실 안에 있는 단원들에게 말하는 느낌으로 감탄사를 터뜨렸다. 안에 있었던 것은 유키와 쿈 둘 뿐. 아직 미쿠루쨩은 오지 않았다. 어디보자 컴퓨터... 나는 평소에 앉듯이 가방을 옆에다 걸며 컴퓨터가 놓인 단장석에 앉았다. 오, 켜져있네? 쿈이 조금 썼을까? 뭐 상관 없지. 유키는 책 읽는 중이고 쿈은 생각에 잠긴 듯 창가에 서서 가만히 있었다. 지금 그걸 해보자. 휴우... 그건 그렇고...... "에어컨이 필요하겠어, 이 방." 정말로 덥잖아. 쿈도 유키도 이런 환경에 잘도 불평없이 있구나. 언젠가 전의 그 수법을 써볼까? 아냐, 그런 방법도 순진한 녀석들 한테나 통하는 데다가 에어컨 설치가 가능한 녀석들이라면 학생회일텐데 괜히 건드렸다가 우리 단이 불리한 위치에 선다면 곤란하지. 그냥 지금은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자. 아까 전의 그 계획! 전에 그걸 어디다 넣어 뒀더라? 음음음... 옳지, 여기 이 폴더에다 넣어 뒀구나. 이걸 HTML태그를 이용해서 연결하면... 좋아. 이제 어떻게 올라갔나 확인해 볼까? 흐음... 뭐 이런 느낌이라면 딱 좋을까. 얼굴이 잘린 사진은 좀 지워야 하나. 아냐, 여기가 강조되는 것도 좋겠어. 역시 찍어두길 잘 했단 말야. 후훗. 한참 홈페이지를 보며 슬슬 업로드를 해야 될 것 같다고 생각한 그 때 뒤에 서 있던 쿈이 소리를 질렀다. "잠깐! 그거 뭐야!!" "뭐냐니? 사진이잖아. 미쿠루쨩의 뇌살 사진!" 그랬다. 내가 계획하고 올리려 한 것은 바로 이 사진이었다. 지난 번에 미쿠루쨩 메이드 기념으로 잔뜩 찍어둔 것들이었다.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쿈? 쿈은 아예 LCD모니터를 뺏어 들며 다시 소리를 질렀다. "그런 건 보면 알아! 그걸 어쩌려는 거냐!" "우리 홈페이지 대문에 걸 거란 말야!" 설명을 또 해 줘야 하나? "이거면 세상의 불가사의 메일도 팍팍 올 거야. 엑세스도 그음방 만 단위로 뛸 거라구!" 나는 설명하면서 일어섰다. 이 사진이라면 금방 유명해 질 거구 그러면 찾아오는 사람도 늘어나니 그 중에 우리가 찾을 만한 수수께끼를 아는 그런 사람도 분명 있을 거라 이 말이다. 만 단위라, 엄청난 숫자지만 정말 그만큼 잡아 낼 수 있겠지. "카운터 자릿수가 충분할까 모르겠네." 만족스럽게 설명을 끝내고 돌아서니 쿈이 모니터를 제자리에 얹어 놓은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모니터 안에서는 온통 드래그 된 미쿠루쨩의 사진이 휴지통으로...... "잠깐!" 들어갔다. "뭘 한 거야, 바보 쿈!" "바보 같은 짓은 관둬라." 쿈은 인상을 가득 쓰며 나에게 말했다.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듣는 거냐 너는! 잘 생각 해봐라! 자신이 메이드복을 입고 뇌살 포즈를 취하고 있는 망측한 사진이 전세계에 퍼지게 된다면 아사히나 선배는 그 자리에서 졸도할 것이 분명하다! 아사히나 선배의 마음에 관해서는 넌 안중에도 없냐? 인터넷이라는 곳은 위험한 공간이다. 개인 정보를 함부로 유출해서는 안되는 거야. 이런 사진이라면 두말 할 것도 없지. 무엇보다 이런 걸 올리려면 아사히나 선배의 동의를 요구해라. 그리고 그 땐 나도 불러. 네가 하는 짓이 안전한지 어떤지는 내가 확인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이젠 알겠지?" "......" 말끝마다 화를 내는 것이 느껴지면서 나도 되려 화가 났다. 쿈이 이렇게나 반대할 거 같았으면 내가 올렸다고 해서 금방 지우라고 화를 낼 게 뻔하다. 하지만... "알았어!" 지우는 걸 쿈에게 맡기고 나서 나는 의자를 돌려 앉았다. 으휴, 열받아. 항상 이렇게 내가 하려는 걸 막기만 하고. 방해꾼 같으니. 내가 이 생각이라도 하지 않았으면 이 홈페이지를 어떡할 생각이란 말야? 내 생각을 이해해주던 예전 모습은 어디로 갔을까. 화나네.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 말을 듣고 이렇게나 화나는 상황에서 참을 수 있었을까. 아니지. 내가 왜 참는 거지? 전부터 이유를 모르겠어. 쿈이 뭐라든 그냥 했으면 되지 않아?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너무 경솔하게 움직인 걸까. 인터넷에 함부로 이런 사진을 올렸다가 미쿠루쨩이 유괴를 당할지도 모르고 아무튼 이건 안되긴 안되네. 그렇다곤 해도 쿈이 이렇게까지 화를 내며 날 말릴 필요가 있었을까? 왜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른 거야, 쿈? 혹시, 그냥 그 사진이 미쿠루쨩의 것이라서 그랬던 거야? ...거기까지 생각하니 더 화가 났다. 그렇다고 터뜨릴 생각은 없었다. 참자. 참으려고 생각하다보니 도저히 답답해서 부실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 그냥 있고 싶지 않아. 나는 벌떡 일어섰다. "오늘은 그만 돌아갈래." 뒤를 돌아보진 않았지만 아마 쿈이 얼떨떨한 얼굴로 날 보고 있었겠지. 이젠 상관 없었다. 가방을 줏어 들고 바로 부실 문으로 향했다. 철컥 "흐왓!" 문을 열자 비명소리와 함께 미쿠루쨩의 모습이 보였다. "아, 죄송해요." ...이 얼굴도 오늘은 더 이상 보기 싫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복도로 나가서 바로 계단 쪽으로 갔다. 그리고 나는 다시 우울해졌다. 아침처럼. 쿈이 수도 없이 미워지면서...... 터질 것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가 다시 폭풍처럼 일어났다. 무언가 부수는 그 감각. 세계가 부서질 듯 불안하면서도 이 세계는 아무래도 좋을 것 같은 그 기분. 이런 세계, 더 필요할까. 집에 가는 내내, 집에 들어서서도 계속 우울한 그 기분이 사라지지 않았다. 다시 누군가 나를 말리러 내 안에 들어오기까지 난 계속 부수고 있었다. 오늘도 그렇게 되는구나. 내 안에 누군가 항상 나를 위로해주고 있어.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점점 익숙해. 또 다른 내가 있는 걸까? 그렇다고 하기엔 다른 사람이라는 느낌이 강해. ......아직도 풀리지 않는 내 안의 수수께끼. 아마 일종의 정신병 같은 건 아닐까... 아니, 그냥 우울한 것 뿐일거야. 사춘기 여자 아이에게 가끔씩은 찾아오는 우울증 뭐 그런 거겠지. 침대에 엎드린 채 있다보니 어느 새 조금은 진정이 되었다. 일어나서 앉아보았다. 위로하는 듯한 누군가도 내 안에서 이젠 나간 기분이었고 나도 더 이상 우울하지 않았다. "......" 일단 옷 부터 갈아입어야지. 교복을 벗고 집에서 입기 편한 옷으로 입었다. 그리고 별 뭔가 한 것도 없이 저녁을 먹고 나서 곧 잠들어버렸다. 어제 잠을 못잤으니 금방 골아떨어지게 되는 건가. 다음 날. 아침에 등교해서 자리에 앉으니 쿈이 왔다. 왠지 얼굴이 파래보였다. "쿈?" "어, 응?" "무슨 일 있어?" "아니. 별 일 아니야." 일이 있긴 있었구나. 근데 무슨 일이래. 쿈은 앞으로 앉아서 한번 더 한숨을 '피휴우...' 쉬더니 내쪽으로 돌아보지 않았다. 흐음? 평소같으면 둘이서 시시하게나마 이야기를 했을텐데. 뭐, 쿈도 때때론 고민에 빠지는구나. 라고 하기엔 고민에 빠지는 표정이 잦았지? 그것도 항상 나랑 같이 있을 때였던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번에 쿈이 고민하고 있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쿈이 고민에 빠져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어느 새 어제 그렇게 기분 나쁘게 헤어져 놓고도 다시 쿈과 있으면 즐거워지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뭐지, 난. 솔직하지 못한 건가? 쿈에 대해서 생각하면 왠지 즐겁고, 그런데도. 생각을 마치고 창 밖을 내다 보았다. ...오늘도 하늘은 푸르다. 그리고 더워. 교실 앞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면서 오카베가 들어왔다. 홈룸 시간인가 보지. 오카베도 약간 당황한 듯한 얼굴이었다. 교탁 앞에 서서 뜸을 조금 들이더니 교탁을 짚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아아, 아사쿠라 말인데. 아버지 일 때문에... 갑작스럽다고 선생님도 생각하고 있다. 전학 가게 됐다." 금새 술렁이는 교실. 개 중에는 벌떡 일어서서 당황하는 녀석도 보였다. "선생님도 아침에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외국에 간다며 어제 출발했다지 뭐냐." 오카베도 그렇고 교실 분위기도 그렇고 다들 놀란 모양이네. 아사쿠라가 그렇게나 인기인이었나... ...아니 그 전에! 아사쿠라가 전학?! 이런 시기에? "흐와아아!!" 나는 고개를 들며 기쁨의 감탄사를 터뜨렸다. 수상해! 진짜 수상해! 어제 그렇게 말을 걸려고 하던 그 아사쿠라가 전학? 그것도 이런 5월 말인데 말야! 코이즈미군이 전학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이건 수수께끼의 전학생 2라고 불러도 될만큼 수수께끼야! "쿈, 이건 사건이야!" 쿈을 흔들어 불러 보았다. 쿈은 마지 못해 고개를 돌리는 표정을 지었다. 놀라지 않은 척 해도 너도 놀란 거지? 어제도 친하게 이야기 하더니만. 음! 다시 생각해보자. 이건 대사건이라구! "수수께끼의 전학생이 왔다 생각했더니 이번엔 이유도 알리지 않고 전학을 간 여자까지 나왔어. 이건 조사할 필요가 있겠어!" 쿈은 한심한 듯 아버지 일 때문이라잖냐며 되물었지만 그런 시시한 이유는 필요없다. 가장 일반적이라고는 하지만, 그러니까 더욱 뻔하잖아. 게다가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고 하루만에, 이사까지 완벽히 하는 건 진짜 수상하다. "딸한테 이야기를 안했다거나." "그게 말이 되니? 그러니까 조사를 해보자니까." SOS단으로써 학교의 불가사의한 일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지! 쿈은 고개를 창 쪽으로 돌린 채 항의하듯 중얼거렸다. "이 이상 쓸데없는 일을 늘리지 말았으면 하는데... 그게 아니더라도, 나는 점점 더 많은 현안들을 끌어안고 있단 말이다." "어, 뭐야 그게?" "아무 것도 아냐." 무슨 소린지 이해는 안가지만 아무래도 저게 쿈의 고민인 것 같았다. 표현이라도 쉽게 하지. 현안이라는 단어는 잘 안쓰잖아. 쿈은 저렇게 어휘력은 좋으면서 왜 국어 실력은 안좋을까? 국어만이 아니라 대체로 다 못하지. 이상한 녀석이네. 그냥 바보일 뿐인가. 흠, 그보다 어서 계획을 짜보자. 수수께끼의 아사쿠라 전학 사건! 수업 끝나면 바로 조사 개시야! 4교시가 끝나자마자 나는 당장에 교실을 뛰어 나갔다. 교무실로 가서 아사쿠라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예전 어떤 잡지에서 읽은 바에 의하면 교사들이 학교에 있는 동안 긴장감을 가장 풀어두는 시간은 점심시간이라 하였다. 지금 물어본다면 오카베가 순순히 여러가지 대답해 줄 것이다. 복도에 나와서 교무실 쪽으로 가려고 하는데 내 뒤에 누군가가 나오는 게 느껴졌다. 돌아다 보니 쿈이었다. 쿈은 나를 별로 신경도 쓰지 않고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저쪽으로 가면 내려가는 길이 나오면서 부실 동에 가까운데. 무슨 볼일이라도 있나? 뭐, 어때. 점심 먹으러 금방 돌아오겠지. 우선 교무실부터 가보자! "너도 걱정됐나 보구나. 하긴 놀랄만도 하지. 우리들도 아침까지 아무도 몰랐단다." "예, 그래요?" "음. 아침 일찍 아사쿠라의 아버지라는 사람이 전화를 해서 갑자기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하는데 말야..." "어디로 간다고 하던가요?" "그게... 캐나다라더라고." "캐나다요?!" "응. 나도 깜짝 놀라고 말았지. 거짓말 같기도 하고." "그럼 그 캐나다 연락처 주실 수 있어요? 친구가 갑자기 말도 안하고 떠나버려서... 걱정되기도 하고." "네가 아사쿠라하고 그렇게나 친했던가? 아니, 그렇다곤 해도 미안하구나. 실은 나도 연락처 같은 건 없어." "이상하네요. 보통은 이사갈 때 그런 거 남겨두고 가지 않나요?" "미안하다. 나도 걱정은 되는데 말야." "......" 아무 것도 모르겠네. 더 수상하기도 하고. "그럼 전에 아사쿠라가 살던 집 주소는 뭐죠?" "아, 그거라면 가지고 있지." 오카베에게 집 주소가 적힌 종이 한 장을 받아들고 나서 나는 교무실을 나왔다. 아사쿠라 전학 사건. 이 비밀이라도 알아낼 수 있다면 SOS단은 한가지나마 실적을 올리게 될 거야. 그렇다면 나 혼자 갈게 아니라 누굴 데려갔으면 좋겠는데. 단원 전부를 데려갈 일은 아닌 것 같고 가장 믿음직한 사람이 좋으려나... 그렇다면 코이즈미군... ...아니. 쿈으로 하자. 지난 번에는 쿈하고 둘이서 다녀본 적도 없으니까. 쿈에게 '탐문 수색이란 이런 거다!'라는 것도 보여줘야 하는 거고. 그럼 결정났으니 교실로 돌아가자. 교실에 가면 아마 쿈이 있겠지. 평소에 어울리던 그 둘이랑 함께 밥을 먹는다거나 뭐 그러했으니까.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점심도 먹지 않고. "어딜 갔었던 거야! 곧 돌아올 줄 알고 밥 안 먹고 기다렸는데!" 쿈은 급하게 교실로 뛰어들어오고 있었다. 점심시간 끝나기 5분 전. 교실에 돌아오자마자 타니구치 녀석에게 물었을 때 쿈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곧 올거라고 생각해 기다렸는데 이렇게나 늦게 돌아온 것이다. 쿈도 점심을 못 먹었는지 내 말은 별로 들을 생각 않고 자기 자리로 가려고 했다. "그 대사, 소꿉친구가 수줍음을 감추며 화난 느낌으로 해주길 부탁한다." "바보 같은 소리 말고 잠깐 이쪽으로 와!" 나는 쿈의 팔목을 붙들고서 복도로 끌었다. 물론 옛날 유도 교본에서 읽은 약간의 관절기를 걸었기 때문에 쿈은 오기 싫어도 마지못해 따라오는 것 같았다. "밥 먹고 쉬는 시간에 이야기하면 안되냐?" 나도 배고프다 뭐. 그것도 너 때문에. "안돼. 이런 중대한 이야기는 수업을 빼서라도 해야 하니까." 쿈은 한숨을 푹 쉬며 잠자코 따라와 주었다. 수업 중에도 선생한테 걸리지 않을 좋은 장소로 반원형 외부 계단 쪽이 잘 맞았다. 눈에도 잘 안띄고 사람들 이용량도 적은 계단이니까. 특히 선생들은. "아까 교무실에서 오카베한테 들었는데!" 로 시작해서 방금 전에 얻은 정보를 모두 말해 주었다. 아무도 아사쿠라의 이사는 몰랐다는 것. 정말로 수상쩍게도 아사쿠라가 전학간 곳은 캐나다라는 것. 그리고 연락처도 남기지 않고 가버려서 더 수상하다는 것. 그래서 별 수 없이 전에 살던 연락처 밖에 얻지 못했고 오늘 거기에 찾아가야 되겠다는 것. "뭔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 쿈은 내가 말을 끝낼 때 까지 귀찮은 표정으로 "그러냐."라거나 "아닐 걸."같은 소리만 지껄여댔다. 그리고 말을 마치자 이번엔 "어차피 수업 시작했는데 이번 시간은 그냥 땡땡이 칠까." 같은 한심한 소리나 하고 앉았다. "그럼 일단 부실동에 가자." "귀찮다." "아무튼 따라 와!" 도저히 움직이려 하지 않는 쿈의 뒷덜미를 붙잡고 부실 동까지 질질 끌어갔다. 으휴, 역시 나보다 덩치가 큰 녀석이니 끌고 가는데 팔이 좀 아프다. 그러니까 좀 걸으란 말야. 그리고 "너도 가는 거야." 오늘 방과 후에. 아사쿠라의 멘션에. "어째서?!" 짜증나게 반박하는 쿈. 나는 끌고가던 쿈의 뒷덜미를 놓아버렸다. "뜨아핫" 쿵 "으윽..." 꼴좋다. 머리를 붙잡고 웅크린 채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프지? 자꾸만 귀찮다는 듯 반응하는데 아무튼 오늘은 꼭 같이 가야해! 한마디 해주지. "너 그러고도 SOS단의 일원이야?!!" 목소리가 온 복도에 쩌렁 쩌렁 울려퍼졌다. 일단 부실 문에다 라고 써붙여 놓고 왔으니 다른 애들도 괜히 착각하고 부실에 계속 앉아 있거나 하진 않겠지. 쿈과 둘이서 교문을 나와 아사쿠라의 멘션으로 향하고 있었다. 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순순히 내 뒤를 따라왔다. 혹시나 도망을 가거나 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내 의견에 동조해 준 건지 그냥 귀찮아서 오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잘 따라오고 있으니 다행이었다. 하지만 뭔가 불평을 중얼거리는 것 같았는데... "뭐라고 했어?" "아니, 아무 말도." 간단하게 얼버무리는 쿈이 조금은 수상했지만 그냥 가던 길을 가자. 난 손에 든 메모를 보며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언덕을 다 내려오고 나서는 전철 선로를 따라 걸어가야 했다. 슬슬 저 앞에 그 멘션이 보였다. 지어진 지 얼마 안되는데다 집값도 꽤 비싸기로 유명한 저곳에 아사쿠라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같은 반 친구가 이런 집에 살고있었다는 것부터 약간은 수상하지 않을까. "아사쿠라는 여기 505호실에 살았나 봐." "그렇구만." "뭐가 그렇구만 이야?" "아니, 아무 것도 아냐." 방금 전에도 뭔가 중얼거리더니만, 요즘 쿈이 중얼거리는 횟수가 는 것 같다. 으흠. 뭔가 고민거리가 있어서 그런 건가. "그것보다." 쿈은 손을 들어 내 옆에 설치된 장치를 가리켰다. "어떻게 들어갈 생각이냐?" 과연 고급아파트답게 문단속은 철저한 것 같았다. 숫자 버튼이 있었는데 저기에다 번호를 입력해야 문이 열리는 시스템인가 보다. "너, 저 넘버 알고 있는 거냐?" "몰라. 이런 때에는 지구전이지." 기다리는 게 우선이란 말. 쿈은 내 말이 무슨 소린지 이해하지 못한 듯 멀뚱히 쳐다만 보고 있었다. 오래 기다릴 것도 없이 바로 현관 문이 열렸다. 쇼핑을 가는 아줌마가 문을 열고 나서 우리를 보더니 어쩐지 수상하다는 눈빛을 보내며 잠깐 훑고는 나갔다. 이럴 땐 수상하지 않게 보이기 위해 약간의 연기는 필요한 법.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 나는 정중히 인사를 했다. 쿈, 너도 고개 정도는 숙여라. 아까 그 시선 못 느꼈어? 뭐 됐어. 이제 문이 열렸으니까. 나는 닫히려는 문을 발로 막아 다시 열었다. 그리고 들어가서 문을 손으로 잡고는 멍하니 서 있는 쿈을 잡아 끌었다. "얼른 들어 오라구!" "우억!" 잠입 성공! 곧바로 엘리베이터에 탑승해서 5층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곧 상승하기 시작했고 잠깐 여유가 생긴 나는 말을 꺼냈다. 아까 조사했을 때 다 하지 못한 말이 있었으니까. "어쨌든간 절대로 수상하다니까. 갑작스럽게 캐나다로 전학, 게다가 아무도 이사간 곳의 주소를 모른다니." "그 이야기는 아까 들었다." "이상한 점은 아직 있다구. 아사쿠라는 이 시내의 중학교에서 키타고로 온 게 아니라나 봐. 조사를 해 봤더니 어디 시외에 있는 중학교에서 원거리 입학을 했다는 거야. 절대로 수상하잖아?!" 아까 주소를 물어볼 때 오카베가 그 이야기를 덧붙이긴 했다. 그렇게나 전학을 자주 다닐 만한 직장을 가진 아버지라거나... 하면서 얼버무리긴 하던데. "특별히 키타고는 유명한 진학고도 아무 것도 아닌 평범한 공립 고등학교잖아? 어째서 굳이 그런 짓을 한 거지?" "몰라." "하지만 집이 이렇게나 학교와 가까운 곳에 있어. 게다가 분양 아파트야! 이 멘션, 임대가 아니라고. 위치도 좋으니 비싸단 말야, 여긴. 시외에 있는 중학교를 여기서 다녔다고?"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이쪽으로 이사를 했다고 해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잖아. 아무튼 아사쿠라가 수상하다는 건 확실해. 마치 일부러 키타고에 오려는 속셈이었던 것 같잖아. 땡 도착했는지 엘리베이터에서 경쾌한 종소리가 울렸다. 이윽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우리는 5층에 내렸다. "그러니 모른다니까." 쿈은 귀찮은 듯 한마디를 덧붙이며 내 뒤를 따라왔다. "아사쿠라가 언제부터 여기에 살았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는 거지." 복도를 따라 걸어 505호실에 도착을 하긴 했는데 문패도 뭐도 존재하지 않아 문만을 봐서는 확실히 빈 집이라는 게 느껴졌다. 문 손잡이를 잡아보니 잠겨있었다. 어떻게 열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는데 쿈이 한마디 했다. "이미 빈방이야. 열릴 리가 없잖아?" 흐음... 쿈은 지루해 보이는 표정으로 길게 하품을 했다. 이제 방법이 없을까... 음. "관리인실로 가보자." "열쇠를 빌려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야." "그게 아니라 아사쿠라가 언제부터 여기에 살았는지 묻기 위한 거야." 나는 다시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생각이 나면 당장에 실천한다! 이것이 스즈미야 하루히의 방식이다. 그리고... "포기하고 돌아가자." 가만히 서 있던 쿈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귀찮아지면 관두고 돌아가는 것. 이것이 쿈의 방식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둘은 자꾸 어긋나는 것 같았다. "그런 것 알아 봤자,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안 돼!"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엘리베이터까지 걸어갔다. 쿈도 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내 옆으로 왔다. 오늘 만큼은 뭔가 신기한 것을 찾기를 바라는 내 마음을 모르는 걸까. 쿈 녀석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는 동안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쿈은 별 할 말이 없는 듯 했다. 그냥 얼른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얼굴이었다. 내려가서 관리인실에 가면 무슨 말로 물어 봐야 할까, 생각해 볼 일이다. 1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려서 나올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쿈은 혼자 중얼거림으로 한마디 지껄였다. "시간 낭비라니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로비 옆의 관리인실 쪽으로 걸어갔다. 유리창문이 있고 그 안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어떡해야 되나 생각하다 잘 보니 창문 옆에 호출 종이 달려있었다. 종을 울리자 백발의 작은 할아버지가 안쪽에서 천천히 나왔다. 관리인이다. 라고 생각하자마자 바로 말이 나왔다. "저희는 여기에 살던 아사쿠라 료코의 친구인데요, 걔가 갑자기 이사를 갔는데 연락처를 몰라서 곤란했거든요. 어디로 이사를 갔는지 들은 적 없어요? 그리고 언제부터 아사쿠라가 여기에 살았는지 가르쳐 주셨으면 해요." 약간 생각해 둔 대사와 함께 알고 싶은 정보를 모조리 물어보았다. 뭐, 친구라고 해두면 수상할 부분은 없겠지. 그러나 저러나 관리인 할아버지는 어째 말귀를 못 알아듣는 눈치였다. 아까 말을 하는데 잘 안들리는지 귀에 손을 갖다대고 듣는가 싶더니 "응? 응?" 하고 몇 번을 헤메질 않나 급기야 되물어왔다. "뭐?" "아사쿠라 료코가 이사간 곳과 언제부터 여기에 살았는지 가르쳐 주셨으면 합니다!" "아아하! 505호실의 아사쿠라 말이지?" 겨우 알아들은 건지 고개를 끄덕이며 관리인은 말을 이었다. "이삿집 센터에서 온 것 같지도 않았는데 방이 텅 비어서, 깜짝 놀랐지 뭐냐. 얼이 나갔지." "이사업체에서 오지 않았다구요?" "이사간 곳도 못 들었는데 그래." 학교 전학도 연락없이 사라졌다더니 이 아파트에서도 아무 말 없이 사라진걸까? 의혹은 더 증가되고 있었다. "나중에 짐 같은 게 오면 보내줘야 할텐데, 곤란하지 뭐." 아사쿠라의 정체는 뭘까. 마무리를 알 수가 없으면 처음부터 알아봐야 되는 거겠지. "언제쯤부터 여기서 살고 있었죠?" 관리인은 눈을 살짝 뜨고는 실없는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해 주었다. "3년 정도 전일라나. 헛, 예쁘장한 아가씨가 나한테 전통 과자 상자를 가져와서 기억하고 있지." 예쁘장한 아가씨면 아사쿠라 본인에 관한 이야기네. 이 할아버지는 걔 밖에 모르나? "부모님은요? 아버지, 어머니가 어떤 일을 했는지 아시나요?" "그을쎄, 그러고 보니 아가씨는 자주 봤지만 부모님과는 인사한 적이 없구만." 이상해. 아사쿠라 혼자 살았단 말야? "하지만, 이 맨션 비싸잖아요? 아이 혼자 살게 하려고 일부러 대출 받아 살 것 같지 않은데 말이죠." 이 질문에 관리인의 답변은 의외였다. "아니 아니, 대출이 아니라 현금 일시불로 샀지. 엄청난 부자인 것 같다고 생각했지." 일시불? 대체 왜? 점점 더 수수께끼만 커져가는 거 아냐?! 이상해 이상해! 그렇지만 모르겠어! 여기까지 캐서 물을 수 있었던 것만 해도 다행일까? 아냐, 뭔가 석연치 않아. 실마리조차 잡질 못했잖아. 관리인은 기분이 좋아 보이는 얼굴로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적어도 작별인사 정도는 하고 싶었는데 안타깝게 됐지 뭐. 아 그런데, 아가씨도 꽤 얼굴이 예쁘장하구만." 이쯤 가면 정보가 아니라 그저 노인네의 푸념 수준이었다. 더 이상 아사쿠라에 관해 알 것 같지도 않고 됐어. 여기서의 탐색은 여기까지. "자세한 답변, 감사합니다." 나는 예의를 갖춰 할아버지에게 인사하고 물러섰다. 가만히 서 있는 쿈에게 눈짓을 보내면서 출구로 향했다. 나가자. 더 들을 것도 없잖아? 걸음을 옮기는데 뒤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관리인 할아버지가 쿈에게 뭐라고 하는 소리였다. "소년, 저 아가씨는 머지않아 분명히 미인이 될게야." 뭐? "놓치면 안된다." 무슨? 쓸데 없는 소리였다. 그저 노인네의 망언 수준. 나한테도 들릴 만한 소리였으니 틀림없이 쿈도 들었을 것이다. 나는 약간 당황했다. 미인이라느니 뭐 그런 소리라면야 가끔은 들은 적이 있다. 그래봤자 무슨 상관인지 별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놓치면 안된다.'니, 무슨 소리지? 그것도 쿈 한테. 다행히 나는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걸을 수 있었다. 그리고 쿈도 말 없이 내 뒤를 따라왔다. 현관을 나오고 아파트 단지 밖으로 계속 걸어 나갔다. 나는 약간 더 걷는 속도를 올려서 쿈이 나란히 걷지 못하게 뒤를 따라오도록 만들었다. 아까 전에도 그런 식으로 걷고 있었지만 방금 전 그 소리에 신경이 쓰였다. 쿈은 방금 그 소리를 듣고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나는 지금 어떤 표정일까. 가능하면 둘 다 무표정이었으면 좋겠는데... 어라? 생각에 잠겨 걷다가 문득 시야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자주 보는 얼굴이지만 이 근방에서 볼 거라고는 상상도 안했는데. 유키였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세상 사는 게 재미가 없는 건지 그냥 생각이 없는 건지 알 수 없는 무표정을 지은 채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니, 우리가 걸어 나온 아파트 쪽으로 걷고 있었던 게 아닐까. 장을 보고 오는 길인지 뭔가 손에 들고 있었다. 유키가 가까이 다가오자 나는 말을 걸었다. "혹시 너도 이 맨션에 살아? 우연이네." 유키는 여전히 말이 없는 아이였다. 입을 열지 않고 그냥 나와 쿈을 멀뚱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 그렇지! 아사쿠라랑 같은 맨션에 살았다는 거잖아! "그럼 말야, 아사쿠라에 대해 뭔가 들은 거 없어?" 무표정. 모르나? "전학간 건 알지?" 고개를 가로 젓기. 모르는구나. "그래? 혹시 뭔가 알게 되면 가르쳐 줘. 알았어?" 고개를 세로 젓기. 알겠다는 뜻이군. 음, 평소랑 똑같은 유키 같은데 뭔가 이상해. 말 없이 조용하고 순진하고 침착한 조그만 안경 독서 소녀라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어디가 다르지? 음... 아하. 안경이다. "안경은 어떡한거야?" 안경이 없어서 이상한 거였구나. 그러네, 만날 끼고 다니던 안경을 왜 오늘은 안한거지? 콘택트로 바꿨나? 그러면 안경 소녀 캐릭터는 아니게 되잖아. 유키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시선을 약간 돌려서 내 옆에 선 쿈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유키는 너무 감정이나 의사 표현이 없어서 답답해. 후우... 한 10초 정도 기다렸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서 나는 그냥 다시 걷기 시작했다. 방금 당부는 해뒀으니 특별히 인사까지 더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으니까 그냥 유키 옆을 지나쳤다. 몇 발짝 걸어가다 쿈이 따라오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뒤를 돌아보니 쿈은 유키가 간 방향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가자." 내가 부르자 그제야 쿈은 걸음을 옮겼다. "......" 아까와 같은 어색함은 별로 없었다. 유키를 만나면서 약간 얼버무린 걸까. 관리인 할아버지가 했던 그 말은 더 이상 머릿 속에는 남아 있었지만 마음 속에서 나를 흔들어 놓지는 않았다. '내가 왜 그랬지.' 그 생각도 잠시, 나는 다시 걸었다. 이젠 어디로 가야 할까? 걷다보니 전철길 옆을 따라 걷고 있었다. 시간이 좀 흘러서인지 하늘의 태양은 서쪽에서 기울고 있었고 주변은 아직 어둡진 않았지만 얼마 있으면 금방 어둑해 질 것이다. 시간은 점점 흐르는데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 지를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사쿠라가 사라졌다. 아무 얘기도 없이. 학교에서도 아파트에서도 모른다. 하루 만에 캐나다로 가버렸다. 게다가 원래도 이상하게 혼자 살았다. 그렇다면 부모님은 대부호에 원래 캐나다에 살다가 갑자기 딸을 불러들인 건가? 뭐야, 그건. 그렇다면 아사쿠라는 친한 누구한테라도 이야기를 했을 거 아냐. 집안 사정이 그렇다거나 오늘 당장 갈거니 기억해달라 같은 연락 정도. 반장이기도 했고 아이들 사이에서도 꽤 인기있는 아이 같았는데, 어떻게 아무도 모르게 먼 곳으로 갑자기 사라져버린 걸까? 그녀의 존재가 마치 필요없게 된 것 같아. 나야 아사쿠라가 사라지면서 지금 그 존재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긴 하지만 왜 이렇게 된 거지? 하아, 모르겠어. 머리만 복잡해. "이제부터 어디로 갈 예정인데?" 뒤따라 오던 쿈이 한마디 물었다. 그러게, 어디로 가야 될까. "별로......" 생각 안해봤거든. 아니, 생각은 해봤지만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겠어. 지금은 어디로 가든 그냥 일단 걸어야 할 것 같아.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되니까. 오늘 같은 날은 이렇게 뭔가 아침부터 기합을 넣었는데도 잘 풀리지도 않고 생각할 일만 자꾸 많아지면서 자신이 없어지는 오늘 같은 이런 날엔 가끔 우울해지면서 그 때의 그 순간이 자꾸 떠올라. 그리고 아무에게도 한 적 없는 그 때의 이야기를 오늘 만큼은 왠지 누군가에게 말해 버리고 싶어. ... ...